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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天易說 산천역설 San-cheon-yeog-s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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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天易說 산천역설 San-cheon-yeog-seol
金相岳(1724~1815)이 여러 학자들의 주해를 참고하여 엮은『周易』해설서. 全史字本. 全6冊.


●書誌(원본 기준)
-도서명 : 山天易說
-편저자 : 金相岳 撰
-간행년 : 1879(고종 16년)
-판본사항 : 全史字本 
-형태사항 : 12卷 6冊, 장정: 線裝, 판식: 半郭 23.0×15.7cm
-주기사항 : 印記 : 帝室圖書之章, 李王家圖書之章, 舊宮
-현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 K1-10


●目錄
≪山天易說≫

(一)

山天易說卷之一 上經 : 乾,坤,屯,蒙
山天易說卷之二 : 需,訟,師,比,小畜,履
(二)
山天易說卷之三 : 泰,否,同人,大有,謙,豫,隨,蠱
山天易說卷之四 : 臨,觀,噬嗑,賁,剝,復
(三)
山天易說卷之五 : 无妄,大畜,頣,大過,坎,離
山天易說卷之六 下經 : 咸,恒,遯,大壯,晉,明夷,家人,睽
(四)
山天易說卷之七 : 蹇,解,損,益,夬,姤
山天易說卷之八 : 萃,升,困,井,革,鼎
(五)
山天易說卷之九 : 震,艮,漸,歸妹,豐,旅,巽,兌
山天易說卷之十 : 渙,節,中孚,小過,旣濟,未濟
(六)
山天易說卷之十一 : 繫辭上傳,繫辭下傳
山天易說卷之十二 : 說卦傳,序卦傳,雜卦傳
圖說
跋(李度中, 金尙鉉)


●解題

≪山天易說≫는 金相岳(1724~1815)이 여러 학자들의 주해를 참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엮은 『周易』에 대한 해설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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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사항
全史字로 간행된 것으로 四針線裝을 하였다. 편제면에 ‘己卯(1879)仲夏壽泉亭開印’이라는 간행 기록과 산천역설이라는 제목이 기록되어 있다. 권수 상단에 ‘帝室圖書之章’과 ‘李王家圖書之章’이 같이 날인되어 있으며, 하단에 舊宮이 날인되어 있다. 판심 문양은 上下向白魚尾이다. 서문 부분에 兪漢雋(1732~1811) 序, 從姪箕德敬敘, 尹定鉉(1793~1874) 謹序가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매 권수 다음에 光山 金相岳(1724~1815) 撰, 曾孫 尙鉉(1811~1890) 校字가 기록되어 있으며, 책 마지막에 李度中 謹撰, 聖上卽阼十六年己卯夏五月曾孫尙鉉謹識가 기재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김상악은 金長生의 6세손으로, 30대에 관악산에 들어가 60여 년간 오로지 주역을 연구하여 10여 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본서를 남겼다. 이 책 제목의 山天은 『주역』 大畜卦의 象인데, 저자는 “옛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을 연구하여 덕을 기른다.”는 象을 취하여 자신이 기거하던 곳을 山天齋라 이름하였고, 평생 연구의 결과물인 이 책의 제목도 『山天易說』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책은 그의 증손인 金尙鉉(1811~1890)이 1879년(고종 16) 교정하여 12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兪漢雋, 金箕德, 尹定鉉의 序가 있고, 말미에는 李度中과 김상현의 跋이 있다. 서를 작성한 학자들의 생몰년을 미루어 볼 때, 이 책이 간행되기 전에 이미 당대 여러 학자들이 이 책을 열람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책은 권1~5는 上經(乾卦~離卦), 권6~권10은 下經(咸卦~未濟卦), 권11은 繫辭傳(上·下), 권12는 說卦傳·序卦傳·雜卦傳·圖說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주역』의 원문을 쓰고, 한 단 낮추어 원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한 다음, 동그라미 표시를 하여 저자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부분에 비해 64괘에 대해 해설한 권1~권10에는 程頤·朱熹 등 先儒들의 견해를 인용한 부분이 비교적 적고, 저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점을 통해 볼 때 저자는 본서를 통해 程傳과 本義의 견해를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묵수하지 않고 다른 여러 학자들의 설도 참고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우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저자는 象과 辭, 그리고 易簡의 德을 중시하는 특징적인 면모도 드러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박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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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미용(美鏞)ㆍ송보(頌甫), 호는 다산(茶山)이다. 좌찬성(左贊成) 정응두(丁應斗, 1508~1572)의 8대손이다. 실학자로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전남 강진군 다산에서 19년 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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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력 
▪ 영조 38(1762) 임오 1세 : 6월 16일, 廣州 草阜面 馬峴里에서 태어나다.
▪ 영조 41(1765) 을유 4세 : 글을 배우기 시작하다.
▪ 영조 43(1767) 정해 6세 : 부친을 따라 漣川 任所에 가서 살다.
▪ 영조 44(1768) 무자 7세 : 五言詩를 짓기 시작하다.
▪ 영조 46(1770) 경인 9세 : 모친상을 당하다.
▪ 영조 47(1771) 신묘 10세 :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 있던 부친에게 經書와 史書를 배우다.
▪ 영조 52(1776) 병신 15세 : 豐山洪氏 洪和輔의 딸과 혼인하다. ○ 부친이 호조 좌랑으로 다시 出仕하게 되자, 부친을 따라 서울 明禮坊에 가서 살다.
▪ 정조 1(1777) 정유 16세 : 星湖 李瀷의 글을 읽고, 학문에 뜻을 두다. ○ 가을, 和順 縣監으로 나가는 부친을 따라가다.
▪ 정조 2(1778) 무술 17세 : 화순현의 東林寺에서 독서하다. ○ 가을, 同福縣의 勿染亭과 光州의 瑞石山을 유람하다.
▪ 정조 4(1780) 경자 19세 : 봄, 醴泉 郡守로 옮긴 부친을 뵙고, 晉州 촉석루를 유람하다. ○ 예천의 伴鶴亭에서 독서하다.
▪ 정조 5(1781) 신축 20세 : 서울에서 과거를 준비하다. ○ 7월, 딸을 얻었으나 5일 만에 죽다.
▪ 정조 6(1782) 임인 21세 : 처음으로 서울 倉洞에 집을 사다. ○ 가을, 奉恩寺에 기거하며 經義를 익히다.
▪ 정조 7(1783) 계묘 22세 : 봄, 經義로 進士가 되어 太學에 들어가다. ○ 4월, 會試에 入格하여 처음으로 正祖를 알현하다. ○ 9월, 장남 丁學淵이 태어나다.
▪ 정조 8(1784) 갑진 23세 : 여름, 중용강의 80여 조목에 대해 율곡 李珥의 설을 써서 답하여 정조의 인정을 받다. ○ 여름, 이벽과 斗尾峽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처음으로 西學에 대해 듣고, 「天主實義」, 「七克」 등 서학 관계 서적을 보다.
▪ 정조 10(1786) 병오 25세 : 7월, 차남 丁學游가 태어나다.
▪ 정조 11(1787) 정미 26세 : 李基慶의 江亭에서 다시 서학을 접하게 되다.
▪ 정조 12(1788) 무신 27세 : 이기경이 베껴 준 서학 관련 책을 읽다.
▪ 정조 13(1789) 기유 28세 : 문과에 합격하다. ○ 抄啓文臣이 되다. ○ 겨울, 한강에 주교를 설치하는 공사에 참여하여 規制를 지어올리다.
▪ 정조 14(1790) 경술 29세 : 2월, 예문관 검열이 되었으나, 나가지 않다. ○ 3월, 小官으로서 牌招를 어겼다 하여 海美縣에 정배되었으나, 10일 만에 귀양이 풀려 돌아오다. ○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이 되다.
▪ 정조 15(1791) 신해 30세 : 5월, 사간원 정언이 되다. ○ 10월, 사헌부 지평이 되다. ○ 겨울, 「詩經」의 義 800여 조항을 바쳐, 정조에게 크게 칭찬을 받다.
▪ 정조 16(1792) 임자 31세 : 3월, 홍문관 수찬이 되다. ○ 4월, 진주 목사로 있던 부친이 졸하여, 5월에 忠州에 返葬하고 馬峴으로 돌아오다. ○ 겨울, 수원성 축조의 規制와 〈起重架圖說〉을 지어 올리다.
▪ 정조 18(1794) 갑인 33세 : 7월, 성균관 직강이 되다. ○ 8월, 備邊郞이 되다. ○ 겨울, 홍문관 교리ㆍ수찬이 되다. ○ 11월, 암행어사가 되어 積城, 麻田, 漣川, 朔寧의 민정을 살피다.
▪ 정조 19(1795) 을묘 34세 : 1월, 司諫이 되었다가 곧이어 同副承旨가 되다. ○ 2월, 병조 참의가 되다. ○ 7월, 周文謨 사건에 연루되어 李家煥은 忠州 牧使로, 저자는 충청도 金井 察訪으로 좌천되다. 이때, 〈西巖講學記〉, 〈陶山私淑錄〉을 저술하다.
▪ 정조 20(1796) 병진 35세 : 11월, 병조 참지가 되다. ○ 12월, 초계문신으로서 李晩秀, 李在學, 李翼晋, 朴齊家 등과 「史記英選」의 교정에 참여하다.
▪ 정조 21(1797) 정사 36세 : 봄, 李書九, 尹光顔, 李相璜 등과 「春秋左氏傳」 교정에 참여하다. ○ 6월, 동부승지가 되다. 〈辨謗辭同副承旨疏〉를 올려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비방하는 것에 대해 젊은 날 한때 마음을 두었던 것은 사실이나 30세 이후 功令에 몰두했음을 밝히고, 사직을 청하다. ○ 윤6월, 谷山 府使가 되다. ○ 겨울, 홍역을 치료하는 처방을 수집하여 「麻科會通」을 완성하다.
▪ 정조 22(1798) 무오 37세 : 4월, 곡산 부사로 있으면서 「史記纂註」를 저술하다. ○ 「醫零」을 저술하다.
▪ 정조 23(1799) 기미 38세 : 2월, 黃州 迎慰使가 되다. ○ 4월, 병조 참의가 되다.
▪ 정조 24(1800) 경신 39세 : 西敎 문제로 다시 물의가 일자, 반대파의 질시를 피해 향리로 돌아갈 뜻을 밝힌 상소를 바치고 처자를 데리고 馬峴里로 낙향하다. 정조가 불러 다시 상경하다. ○ 6월, 정조가 죽자 고향 마현리에 돌아가 집을 집고, 堂號를 ‘與猶’라 하다. ○ 「文獻備考刊誤」를 완성하다.
▪ 순조 1(1801) 신유 40세 : 2월, 천주교도의 冊籠에서 저자 집안의 書札이 나온 일로 인하여, 李家煥, 李承薰, 형 丁若銓ㆍ丁若鍾이 하옥되다. 이승훈, 정약종은 참수되고, 이가환은 옥사하였으며, 저자와 丁若銓은 장기현과 薪智島로 유배되다. ○ 10월, 黃嗣永 帛書 사건이 일어나, 저자는 다시 康津縣으로 移配되고, 丁若銓은 黑山島로 이배되다.
▪ 순조 2(1802) 임술 41세 : 장남 丁學淵이 勤親하러 오다.
▪ 순조 3(1803) 계해 42세 : 겨울, 太妃가 특명으로 저자와 蔡弘遠을 석방하려고 하였으나, 徐龍輔가 저지하다. ○ 〈檀弓箴誤〉를 완성하다.
▪ 순조 5(1805) 을축 44세 : 1803년부터 시작한 喪禮外篇 12권을 완성하다.
▪ 순조 8(1808) 무진 47세 : 봄, 尹博의 소유인 康津 橘洞의 茶山草堂으로 옮겨 기거하다. 차남 丁學游가 찾아오다. ○ 周易四箋, 易學緖言을 저술하다.
▪ 순조 9(1809) 기사 48세 : 毛詩講義를 저술하다.
▪ 순조 10(1810) 경오 49세 : 毛詩講義補, 梅氏尙書平, 尙書古訓, 小學珠串을 저술하다.
▪ 순조 11(1811) 신미 50세 : 尙書知遠錄을 저술하다. ○ 1803년부터 시작한 喪禮四箋을 완성하다. ○ 我邦疆域考를 저술하다.
▪ 순조 12(1812) 임신 51세 : 봄, 季父 丁載進의 행장을 짓다. 民堡議를 완성하다. ○ 겨울, 春秋考徵을 저술하다.
▪ 순조 13(1813) 계유 52세 : 겨울, 論語古今註를 저술하다.
▪ 순조 14(1814) 갑술 53세 : 〈孟子要義〉, 〈中庸自箴〉, 〈中庸講義補〉, 〈大學公議〉, 〈熙政堂大學講錄〉, 〈大東水經〉을 저술하다.
▪ 순조 15(1815) 을해 54세 : 〈小學枝言〉, 〈心經密驗〉을 저술하다.
▪ 순조 16(1816) 병자 55세 : 봄, 樂書孤存을 저술하다. ○ 6월, 仲兄 丁若銓의 상을 당하다.
▪ 순조 17(1817) 정축 56세 : 1808년부터 시작한 四禮家式을 완성하다. ○ 經世遺表를 저술하다.
▪ 순조 18(1818) 무인 57세 : 9월, 응교 李泰淳의 상소로, 18년 만에 유배에서 돌아오다. ○ 牧民心書, 〈國朝典禮考〉를 저술하다.
▪ 순조 19(1819) 기묘 58세 : 봄, 충주에 있는 선영을 돌아보다. ○ 가을, 용문산을 유람하다. ○ 여름에 欽欽新書, 겨울에 雅言覺非를 저술하다.
▪ 순조 20(1820) 경진 59세 : 겨울, 尹書有의 묘지명을 짓다.
▪ 순조 21(1821) 신사 60세 : 9월, 伯氏 丁若鉉의 상을 당하다.
▪ 순조 22(1822) 임오 61세 : 회갑을 맞아 지나온 인생과 학문적 업적을 정리하여 본인의 묘지명인 〈自撰墓誌銘〉을 짓다. ○ 尹持訥의 묘지명을 짓다.
▪ 순조 34(1834) 갑오 73세 : 봄, 尙書古訓蒐略과 尙書知遠錄을 합편하여 尙書古訓으로 정리하다. ○ 가을, 梅氏書評을 改正하다. ○ 겨울, 尹奎範의 묘지명을 짓다.
▪ 헌종 2(1836) 병신 75세 : 2월 22일, 고향 마현리에서 졸하다.
▪ 순종 4(1910) 경술 ― : 正憲大夫 奎章閣 提學에 추증하고, ‘文度’의 시호를 내리다.
▪ 1938 무인 ― 
     
*기사전거 : 自撰墓誌銘, 年譜(丁奎英 撰, 丁茶山全書), 羅州丁氏都憲公派譜, 朝鮮王朝實錄 등에 의함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 김진옥(金鎭玉) | 2005)

-어문학해제
조선 선조 때 弘文館에서 ≪孝經大義≫의 본문에 한글로 口訣을 달고 언해한 초학서의 하나이다. 불분권 1책이며‚ 활자본(庚辰字本)‚ 목판본‚ 필사본이 함께 전한다. 현재 일본 동경의 尊經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활자본의 내사기에 의하면‚ 1590년(선조 23)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간행경위는 柳成龍의 跋에 따르면 ≪孝經≫의 가르침이 오랫동안 돌보아지지 않음을 탄식한 宣祖의 명령에 따라 ≪효경대의≫와 함께 간행된 것이라고 한다.
언해는 ≪효경대의≫를 그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즉 <朱子刊誤>의 經 1장과 傳 14장의 본문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 대의와 주석은 모두 생략하고 있다. 언해방식은 經과 傳의 본문에 한글로 독음과 구결을 달고 이어 언해문을 실었다. 跋文에서는 선조가 홍문관으로 하여금 언해하도록 하였다고 하나 언해의 양식과 책의 판식‚ 경진자로 된 활자본인 점 등이 교정청의 사서언해와 꼭 같으므로 이 책도 교정청의 언해사업의 일환이라 하겠다. 후대의 이본들은 모두 이 활자본을 저본으로 하여 방점과 정서법 등만을 약간 손질한 것들이다.
현재 규장각에는 목판본 3종과 필사본 3종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古 1328-2>는 중앙에서 간행된 목판본으로 연대가 확인되는 ≪효경언해≫ 가운데 最古本이다. “康熙五年(1666)十月二十三日∕內賜議政府左參贊宋浚吉孝∕經諺解一件云云”이란 내사기로 보아 1666년(현종 7)에 간행 · 반사된 것이다. 그 외의 목판본‚ 필사본도 언어사실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이들은 17세기 후반의 국어사 자료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원간본인 활자본과 중간본인 목판본에서 보이는 언어사실의 차이로는 우선 구결에서의 차이를 들 수 있다. ‘刑于四海니→리니(3a)‚ 右 … 釋至德以順天下하니라→다(8a)’ 등. 또한 목판본은 번역양식에 있어서 활자본보다 직역체의 모습을 보인다. 활자본에서의 고유어가 한자어로‚ 동사적 표현이 명사적 표현으로 바뀐 예들이 그것이다. ‘어딘 침이→德敎ㅣ(3a)‚ 홀아비와 홀어미→鰥이며 寡(11b)‚ 병잠개예 해이니→兵니(17a)’ 등. 끝으로 어휘 변화로 말미암아 일어난 차이가 지적될 수 있다. 그러한 예는 ‘아븨 令(←긔걸‚ 22b)마다‚ 벼슬의(←구위예‚ 21b)‚ 伯과 子과 男가(←에여‚ 11a)’ 등에서 보인다.
근대국어 자료로서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표기법적 특징으로 분철표기가 일반적인 경향임을 들 수 있다(아님이(2b)‚ 셤김이(21b)‚ 귀신으로(26a)). ‘ㅂ’계 합용병서로는 ‘(3b)‚ 내디(4a)‚ 나디(24a)’‚ ‘ㅅ’계 합용병서로는 ‘넘디(4a)‚ (9a)‚ (10a)‚ 디디(24a)’ 등이 보인다. 각자병서로는 ‘욕까(20b)’가 유일예로 보인다. 어말 ㄷ 받침을 보이는 예로는 ‘니라(2b)‚ 잗(22a)‚ 벋(24a)‚ 몯거시라(24a)‚ 이니라(26b)’ 등이 있다. 언해문에는 ‘근본(2a)‚ 예법(3a)‚ 법도(3b)‚ 실(5a)’ 등에서처럼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도 많이 보인다.
명사형 어미로 ‘-오∕우-’가 소멸된 ‘-음’ 명사형이 매우 대부분이다(아님(2b)‚ 셤김(21b)). 한편 ‘-오∕우-’가 반영된 형태도 극소수 보이는데‚ ‘공슌홈(6a)‚ 親요미(14b)‚ 이숌(25b)’ 등과 같은 보수적 형태가 그것이다. 간혹 ‘셤기기(5b)‚ 밧고기(8b)‚ 랑기(22b)’처럼 ‘-기’ 명사형도 보인다. 한편 ‘--‚ --’과 같은 객체경어법를 나타내는 선어말어미가 ‘밧온거시라(2b)‚ 묻좁노니(13a‚ 22b)‚ 듣왓거니와(22b)’에서 보인다. 이것은 16세기 중세국어 자료에 대한 중간본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파악된다. (신중진)
(해제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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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해제는 고문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기관의 관련 정보를 인용한 것으로 영인본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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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회도서관, 하버드-옌칭도서관,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고전번역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재청, 국립국악원,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일본 동양문고, 경도대학 가와이문고, 오사카부립 나카노시마 도서관, 학선재 등이 창작한 원문 자료를 활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책사이즈 : 정본 A4(28.5 x 20cm) / 문고본 B5(25 x 17cm) [일부 품목 예외]
*인쇄용지 : 전통한지인 순지에 인쇄하여 원본의 질감을 살렸습니다.[일부 예외]
*능화표지 : 한지에 능화문양을 입혀 옛책처럼 표지를 재현하여 제작됩니다.
*비단표지 : 비단천으로 제본하여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사정에 따라 비단의 색상과 문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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