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書總目(도서총목)
初學(초학) 入門書
經部(경부)
實錄[조선왕조실록]
儀軌(의궤)
古地圖(고지도)
文集類(문집류) : 1,262종
국보급 書畵帖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선정
Leipziger Buchmesse
기타 국제도서전 출품
家文을 찾아서
50%할인 선착순특판
[알림 및 공지사항]
학선재 소식지
출간희망도서 접수
우리책과 문화유산[영상]
 02)453-1040(代)

(평일)오전10시~오후5시


이메일문의
우리은행
1002-833-836076
예금주:박수준
 
 
비밀번호 확인 닫기
圖書總目(도서총목)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2016개정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2016개정판]
상품명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2016개정판]
판매가격 : 1,400,000
  • 책 제본 선택 :
총 상품 금액 0
全25冊(5포갑) 2016 라이프치히 도서전 전시도서
     
 
* 책   크기 : 정본 A4(20.5 x 29.3cm)
* 비단표지 : 비단 천으로 제작하여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상단의 도서 이미지가 비단표지 견본)
* 능화표지 : 옛 고서처럼 한지를 전통 匠人이 손수 배접/능화판 작업으로 고급스럽게 제작됩니다.
* 포갑추가 : 포갑은 별도 품목으로 주문시 [포갑추가]를 하면 맞춤제작됩니다.
 
확대보기
<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원본 기준)
-도서명 : 新增東國輿地勝覽 
-편저자 : 盧思愼(朝鮮) / 李荇·洪彦弼 等受命編.
-판사항 : 木版本
-형태사항 : 55卷25冊 : 地圖, 四周雙邊, 半葉匡郭: 26×16.7 cm, 8行16字, 版心: 上下花紋魚尾 ; 36.7×22.2 cm.
-발행년 : 光海君3年(1611) 

*목차
新增東國輿地勝覽

<목록책>
-권수(卷首), 목록 

<1책>
-제1권  경도 상(京都上) 
-제2권  경도 하(京都下)  

<2책>
-제3권  한성부(漢城府)  
-제4권  개성부 상(開城府上) 
-제5권  개성부 하(開城府下) 

<3책>
-제6권  경기(京畿) 
-제7권  경기(京畿) 
-제8권  경기(京畿) 

<4책>
-제9권  경기(京畿) 
-제10권  경기(京畿) 

<5책>
-제11권  경기(京畿) 
-제12권  경기(京畿) 
-제13권  경기(京畿) 

<6책>
-제14권  충청도(忠淸道) 
-제15권  충청도(忠淸道) 

<7책>
-제16권  충청도(忠淸道) 
-제17권  충청도(忠淸道) 
-제18권  충청도(忠淸道) 

<8책>
-제19권  충청도(忠淸道) 
-제20권  충청도(忠淸道) 

<9책>
-제21권  경상도(慶尙道) 
-제22권  경상도(慶尙道) 

<10책>
-제23권  경상도(慶尙道) 
-제24권  경상도(慶尙道) 

<11책>
-제25권  경상도(慶尙道) 
-제26권  경상도(慶尙道) 
-제27권  경상도(慶尙道) 

<12책>
-제28권  경상도(慶尙道) 
-제29권  경상도(慶尙道) 
-제30권  경상도(慶尙道) 

<13책>
-제31권  경상도(慶尙道) 
-제32권  경상도(慶尙道) 

<14책>
-제33권  전라도(全羅道) 
-제34권  전라도(全羅道) 

<15책>
-제35권  전라도(全羅道) 
-제36권  전라도(全羅道) 
-제37권  전라도(全羅道) 

<16책>
-제38권  전라도(全羅道) 
-제39권  전라도(全羅道) 
-제40권  전라도(全羅道)

<17책>
-제41권  황해도(黃海道) 
-제42권  황해도(黃海道) 

<18책>
-제43권  황해도(黃海道) 

<19책>
-제44권  강원도(江原道) 
-제45권  강원도(江原道) 

<20책>
-제46권  강원도(江原道) 
-제47권  강원도(江原道) 

<21책>
-제48권  함경도(咸鏡道) 
-제49권  함경도(咸鏡道) 

<22책>
-제50권  함경도(咸鏡道) 

<23책>
-제51권  평안도(平安道) 
-제52권  평안도(平安道) 

<24책>
-제53권  평안도(平安道) 
-제54권  평안도(平安道) 
-제55권  평안도(平安道)
발(跋) 

*견본이미지 및 해제


<포갑제본 견본>


<포갑제본 견본>












<영인본 견본>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목판본. 55권 25책.

조선은 건국 후 통치상의 필요에서 지리지 편찬의 중요성을 통감, 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孟思誠) ·신색(申檣) 등이 1432년(세종 14)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찬진(撰進)하였다. 그 후 명나라에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들어오자, 양성지(梁誠之)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서거정(徐居正) 등이 성종의 명으로 이 체제를 본따고 《신찬팔도지리지》를 대본으로 하여 1481년(성종 12)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하였다. 이를 다시 1486년에 증산(增刪) ·수정하여 《동국여지승람》 35권을 간행하고, 1499년(연산군 5)의 개수를 거쳐 1530년(중종 25)에 이행(李荇) ·홍언필(洪彦弼)의 증보에 의해 이 책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성종대에 盧思愼, 姜希孟, 梁誠之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1481년(성종 12)에 50권으로 편찬되었고, 다시 1487년(성종 17)에 55권으로  재편집되었다. 이후 1499년(연산군 5)에 成俔, 任士洪 등에 의해 한차례 교정이 가해지고 다시  1530년(중종 25)에 增修되는데, 현재 영인본으로 많이 이용되는≪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1년에 완성된 것을 내용으로 삼아서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목판본이다. 
체재는  建置沿革·屬縣·鎭管·官員·郡名·姓氏·形勝·山川·土産·烽燧·宮殿·學校·驛院·佛宇·祠廟·陵墓·古跡·名宦·人物·題詠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세종(世宗)ㆍ세조(世祖)ㆍ성종(成宗)의 시기는, 말하자면 자기 비판 자아 반성에 의하여 민족 문화를 재정리하고 재수립한, 동방의 문예부흥기였던 것이다. 즉 이 시기에는 위로 위대한 영도자(領導者)의 지도와 그 밑에 여러 유능한 문인ㆍ학자들의 협력으로 한동안 문운(文運)의 융성(隆盛)을 가져왔던 것이니, 그것은 당시의 창의적(創意的)인, 또는 집약(集約)ㆍ집성적(集成的)인 제시설과 제작(製作)과 편찬물(編纂物) 등을 통하여 넉넉히 파악된다. 이 융성기의 최후기인 성종 때에는 창의적인 것보다도 수성적(守成的)이고 집성적인 것이 많았다. 특히 편찬물에서 그것을 볼 수 있으니, 저 《동문선(東文選)》을 비롯하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ㆍ《동국통감(東國通鑑)》ㆍ《악학궤범(樂學軌範)》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시문(詩文)ㆍ지지(地誌)ㆍ역사ㆍ음악에 관하여 각각 그것을 집대성한 것으로, 《통감》을 제외하고는 모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도 전국(全國)에 관한 지지(地誌) 편찬과 같은 것은 이미 세종 때로부터 성종 때의 《승람》에 이르기까지 수삼차나 실행되어 정(精)에 정(精)을 더하고 증보(增補)에 증보를 가하여 결국 후자(後者)의 완성을 보게된 만큼 가장 힘을 들였던 것이다.
이 《여지승람》이 당시 전성(全盛) 조선의 실태(實態)와 전모(全貌)를 엿보는 데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재론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더욱이 당시 경제외적(經濟外的) 수탈(收奪)을 일삼던 봉건 국가의 위정자(爲政者)에 있어서는 필요 불가결의 서적이 되었다. 그래서 성종의 뒤인 연산(燕山)ㆍ중종(中宗) 때에는 여기에 두 차례의 신증(新增)이 더하여졌고, 또 그 후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것의 여러 차례의 간행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리서(地理書)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에 수록된 것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소략한 내용의 역사 지지로서 주로 주ㆍ군ㆍ현의 소속 관계와 변천 관계를 기록한 데 불과한 것이다. 당대의 전국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지지》 편찬을 시도하기는 세종 때로부터였으니, 오늘날 잔존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등본(謄本) 같은 것은, 세종 6년 각도에 통첩한 규격(각 읍의 연혁ㆍ산천ㆍ경역ㆍ성곽ㆍ교통ㆍ목장ㆍ토산물ㆍ고적ㆍ민속 등등)에 의한 것으로 제1차에 계획한 전국 지지의 일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적으로는 세종 14년에 윤회(尹淮)ㆍ신장(申檣)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가 그것인데 이것은 후일 《세종실록》의 지리지(地理志)로 수록되었다. 형식상 단종(端宗)의 선양(禪讓)을 받아 즉위한 세조는 초년에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 양성지(梁誠之)에게 명하여 다시 팔도 지지(地志)와 아울러 지도(地圖)를 편찬하게 하였으나, 동왕 재위시에는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다음 예종(睿宗)이 즉위함에 미쳐 다시 그로 하여금 계속 편찬하게 하였으나 얼마 아니하여 왕이 돌아가고 성종이 즉위하였다. 양(梁)의 지리지(《팔도지지》)가 완전 탈고되어 진상한 것은 성종 9년 정월인데, 탈고 직전에 왕은 거기에 역대의 시문(詩文)을 첨재(添載)할 것을 명하였다.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명에 의하여 양성지 등으로 더불어 편찬한 《동문선(東文選)》이 완성을 고한 것도 바로 같은 해(성종 9년)이었다. 양성지는 《팔도지지》 이외에도 아국의 산천 형승(山川形勝)과 주군 연혁(州郡沿革) 등을 적은 동국승람(東國勝覽)이란 책을 저술하였는데, 양의 이러한 저술들이 다음에 말할 《동국여지승람》의 큰 기본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성종은 양성지의 편수한 《지리지》에 만족하지 못한 듯 그해에 다시 규모를 크게 하여 노사신(盧思愼)ㆍ강희맹(姜希孟)ㆍ서거정ㆍ성임(成任)ㆍ양성지 등을 총재(總裁)로 하여 《동국여지승람》의 찬수를 명하였다. 그러나 양성지의 《지리지》가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승람》 편찬의 기본적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바꿔 말하면 양의 것을 토대로 크게 수보를 가하여 송(宋)의 축목(祝穆)의 방여승람(方輿勝覽)의 체재를 모방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국여지승람》이 제1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성종 12년으로, 이때의 권수는 도합 50권, 인쇄에 부치지 않고 고본(稿本) 그대로 두었다가, 4년 후인 성종 16년에 다시 김종직(金宗直) 등으로 하여금 이 고본에 수정을 더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듬해인 성종 17년(1484년) 12월에 탈고를 고(告)하니, 이것이 제2차 수정으로 완성된 《동국여지승람》이었다. 이 수정본은 명의 《일통지(一統志)》를 모방하여 수정을 가한 것으로, 제1차의 것보다 5권이 더한 - 도합 55권의 서(書)이었다. 이렇게 정(精)에 정(精)을 가하여 이루어진 55권의 《승람》은 왕명으로 마침내 인출(印出)되어 그 자태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이때의 인본(초간본)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것은 극히 드문바 다행히 그중의 한 책인 권37 및 38이 잔존(殘存)하여 현재 외우(畏友) 김두종(金斗鍾) 박사의 장서 가운데 들어있다. 그 책은 몹시 오손(汚損)된 형태이나, 귀중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김 박사의 말과 같이 단종(端宗) 3년의 을해자(乙亥字)로써 인쇄한 활자본임이 분명하다. 김 박사에게는 이 책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간행된 《동문선》 초간본의 1책도 소장되어 있거니와 역시 같은 을해자의 인본이다. 이 초간본 《승람》의 나머지 부분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내용이나 체재를 자세히 말하기 어려우나 후일 신증본의 그것으로 비추어 보아, 첫머리에 노사신의 상전문(上箋文)과 서거정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고, 다음에 목차가 계속되고 또 다음에 팔도 총도(總圖)를 붙이고, 각도 권수(卷首)에는 각 도의 지도(목판)를 붙였고, 그 아래에는 경도(京都)편을 위시하여 원문을 싣고, 원문에는 각 도 각 읍의 연혁ㆍ씨성(氏姓)ㆍ산천ㆍ성곽ㆍ토산ㆍ누정(樓亭)ㆍ학교ㆍ역원(驛院)ㆍ봉수(烽燧)ㆍ신앙 건물ㆍ고적ㆍ인물ㆍ제영(題詠)에 이르기까지 수록하고, 권말(卷末)에는 김종직(金宗直) 등의 발문(跋文)을 실었던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와 같이 호구와 토지 결수(結數)가 여기에 기재되었더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뻔하였다.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성종이 돌아가고 아들 연산군(燕山君)이 즉위하여서는 동 3년에 성현(成俔)ㆍ임사홍(任士洪) 등을 시켜 《승람》 인본 중에 잘못된 곳을 수교(讎校)하게 하는 한편 약간 보충을 가하게 하였다. 그러나 55권에는 변동이 없었다.
이 수정본은 연산 5년(1499년)에 완성ㆍ인출되었는데, 그때의 인본은 지금 국내에서 한 책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일본 경도대학에 55권 중 28권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연산군이 물러나고 중종(中宗)이 즉위하여서는 역시 전대의 편찬 간행 사업을 계승하여 종종의 서적을 간행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이었다. 이 《신증》의 명(命)을 받은 사람은 이행(李荇)ㆍ홍언필(洪彦弼) 등이니 이들은 동왕 23년에 《승람》에 대한 재차 교오(校誤)와 증보(增補)에 착수하여 동왕 25년(1530년)에 끝을 맺었다. 권질에는 역시 변동이 없고, 단지 증보처에 《신증》 두 글자로 표시하여 따라서 책명도 그와 같이 하였다. 이 중종 때의 《신증》 본은 동년에 계축자(癸丑字)(성종 23년 소주)로 인쇄된 활자본으로, 그것의 존전(存傳)이 매우 희귀한데 그 영본(零本) 1책(권53ㆍ54)이 김두종 박사 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신증본》(55권)의 내용 체재는 첫머리에 이행(李荇) 등의 전문(箋文)과 서문(序文)을 싣고 다음에 성종 때의 최초 고본을 이루어 바친 노사신(盧思愼) 등의 전문과 서거정(徐居正) 등의 서문을 싣고 권말에는 동 성종 때의 재수찬의 명을 받아 김종직(金宗直) 등의 발문(跋文)을 붙였다.
위와 같이 3차의 인출을 거듭한 《여지승람》은 원래 그 수효가 넉넉하지 못하던 중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로는 더욱 희귀하여 광해군(光海君) 3년에 중종 때의 《신증》본을 그대로 복간하고 인조 말년 경에도 이를 중간하는 등 역대를 통하여 여러 차례의 중인이 있었고, 숙종 때(5년, 25년)와 영조 때(33년)에는 《승람》의 증보 개판(增補改版)을 시도하다가 이루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중종 때의 신증 이후로는 더 증보되지 못하고, 인쇄도 대개 목판에 불과하였다. 지금 항간에 전래하는 고본(古本) 《승람》은 대부분이 광해(光海) 이후의 복간본으로 그것의 온전한 권질은 역시 희귀한 상태에 있다.
이병도<<민족문화추진회>>


 
책수에 따라 주문후 배송까지 1주일~보름 정도 소요됩니다.
비단배접지의 문양과 색상은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본의 상태에 따라 영인본의 인쇄가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본이 일부 缺失된 고서는 원본에 준하여 그대로 발행됩니다.
잘못된 책은 교환해드립니다.
 
 
 
 
 
상호명 : 학선재(學善齋) 사업자등록번호 : 206-92-90181 [사업자정보확인]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0서울노원0214호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개인정보담당자 : 박수준 대표 : 박수준
사업장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132길 9(논현동) 마루빌딩 1층 박선희한복(內)
工房●서울특별시 노원구 한글비석로14길 8, 210-1506
Copyright ⓒ 도서출판 학선재 All Rights Reserved. 02)453-1040(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