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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집(簡易集)-최립
상품명 : 간이집(簡易集)-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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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원본 기준)

서명 : 간이집(簡易集) 
권수제 : 簡易文集
판심제 : 簡易集
권책 : 目錄, 原集 9권 합 9책

*저자소개

성명 : 최립(崔岦)
생년 : 1539년(중종 34)
몰년 : 1612년(광해군 4)
자 : 立之
호 : 東皐, 簡易堂
본관 : 通川

*목차

간이집(簡易集)

簡易文集序
卷之一
 奏 
 封事 
 陳言 
 控辭 
 投進 
 表箋 
 呈書 
 揭帖 
 謠誦 
 祭文 
 上梁文 
 檄 
 策 
 評 
 說 
 碑 
卷之二
 神道碑 
 墓誌 
 墓碣 
 記 
卷之三
 序 
 識 
 跋 
卷之四
 四行文錄 
卷之五
 槐院文錄 
卷之六
 焦尾錄 
 拾遺 
 丁丑行錄 
 辛巳行錄 
 分津錄 
 晉陽錄 
 扈行錄 
 亂後錄 
 癸巳行錄 
卷之七
 甲午行錄 
 公山錄 
 松都錄 
 驪江錄 
 麻浦錄 
卷之八
 西都錄前 
 西都錄後 
 還京錄 
 東郡錄 
 還朝錄 
 休假錄 
卷之九
 稀年錄 
 附錄

*견본이미지 및 해제



<신간 활자본 견본>

[편찬 및 간행]
저자는 일찍이 문장가로 당대에 문명을 떨쳤고 임진년을 전후해서는 국가의 주요 문서가 대부분 공의 손에서 나와 대신들도 손대기를 꺼려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였으나 문벌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주요직에는 등용되지 못하였다. 행장에 의하면 생전에 저술이 매우 많았는데 「周易本義口訣附說」 2책은 閔維重이 간행하였고, 「史漢列傳抄」, 「昌黎文口訣」 등도 모두 당시에 간행되었으며 「拜罷錄」 4책이 家藏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시문은 自編稿 9책이 남아 있었으나 사후에 후손이 영락하여 간행되지 못하고 遺稿가 산일되어 거의 없어질 지경이었다. 「仁祖實錄」 9년 10월 26일 기사에 의하면 교서관에서 “선조의 재신 崔岦은 문장으로 한 시대를 울렸는데, 논자는 ‘근대 문인의 작품 가운데 후세에 전할 만한 것으로는 이 사람의 작품 같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은 뒤로 유고가 흩어져서 장차 완전히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며 애석해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朝臣들이 상의하여 通文을 돌리고 사재를 모아 活字를 사용해 인쇄한 것이 이제 공역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이것이 개인의 문집이기는 하나 이미 조신들이 널리 의논하여 인출한 책이기에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자 仁祖가 가납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저자의 문집은 公議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즉 李廷龜가 문집을 간행할 것을 주달하고 신료들이 도와 1631년(인조 9) 自編稿 9권 9책을 교서관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초간본》 이 초간본은 현재 규장각(奎1679)과 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3648-문82-27)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全州에서 초간본을 覆刻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성균관대 도서관장본의 권8 表紙官案에 건륭12년(1736) 擧案이 있는 것으로 보아 英祖代에 복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판본은 현재 규장각(奎1637), 국립중앙도서관(한44-가45),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12a),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408) 등처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631년 활자로 간행된 초간본을 영조대에 복각한 규장각장본이다.

[구성과 내용]

본 문집은 9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5는 문, 권6~8은 시, 권9는 문이다. 권수에는 1631년에 쓴 張維의 서문이 있으며, 권9를 제외하고 각 권마다 목록이 첨부되어 있고 부록은 없다.
구성에 있어서 일반적인 문집과는 달리 表箋, 奏咨, 書帖 등의 事大文字가 문집의 앞에 편차된 것이 특징인데, 이는 저자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오랫동안 외교문서를 맡아왔던 경력이나 본집이 자손이 아닌 公議에 의해 하나의 典範으로 삼기 위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하다고 보인다. 또 저자가 의사가 깊고 글짓는 법도가 엄격하여 초고를 서너 번 이상 고치지 않으면 내놓지 않았으며(張維의 序) 또 晉州 牧使로 재임한 6년 동안 단지 한 수의 율시만을 지었다(仁祖實錄)는 일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글에 대한 퇴고와 수정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문장으로 당세를 풍미했던 명성에 비해 본다면 시문의 분량이 많지 않다. 대체로 저자는 문에 있어서는 班固와 韓愈를 본받아 문장이 날카롭고 의사가 담박하며 격조가 뛰어난 데 비해 좀 陝搾한 듯한 느낌이 있으며, 시에 있어서는 黃山谷과 陳后山의 시체를 터득하여 의미부여가 너무 깊고 수식을 제거하고 陳言을 없애는 데 힘써 경색한 말이 많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반적으로 車天輅의 詩와 저자의 文을 칭하고 있지만 許筠이나 洪萬宗은 시가 문보다 오히려 낫다고 평하기도 한다.
권1에는 表箋 23편을 비롯해 각 체의 문과 공거문이 섞여 있는데 이 중 〈周易本義口訣附說投進疏〉는 저자가 杆城 郡守로 있으면서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周易本義口訣附說」 4책을 완성해 올리면서 지은 소이고, 〈權元帥幸州碑〉는 幸州大捷에서 승리한 權慄을 기려 지은 비문이다. 권2는 神道碑, 墓誌 등의 묘도문자 24편과 記 8편이며, 권3은 序, 識, 跋이다. 〈新印陶隱詩集跋〉은 晉州 牧使로 재임 시 방백의 도움을 받아 새로 활자를 만들어 「陶隱集」을 인출하면서 지은 것이고, 〈十家近體詩跋〉 역시 진주 재임 시 李白, 杜甫, 韓愈, 柳宗元, 孟郊, 韋應物, 杜牧, 黃庭堅, 陳與義, 陳師道 등 10명의 근체시를 뽑아 간행하면서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적은 것이다.
권4는 四行文錄으로 1581년 宗系辨誣를 위해 중국에 갔을 때 禮部에 올린 문서와 1594년 奏請副使로 두 차례 중국에 갔을 때 올린 글로 甲午上書帖 15편, 甲午下書帖 14편이 실려 있다. 四行文書는 우리나라가 中國에 보내는 외교문의 형식으로 極行부터 平行까지 모두 四格이 있기에 붙인 이름이다. 권5는 槐院文錄으로 역시 외교문서인 癸巳奏咨書帖 26편, 甲午奏咨書帖 3편, 乙未奏咨書帖 5편, 丙申奏咨書帖 9편이 실려 있다. 저자의 문장이 이로 인해 중국에까지 소문나 찬획사 劉黃裳은 공이 지은 글을 볼 때는 반드시 손을 씻은 후에야 읽었다고 한다. 내용은 대부분 임진왜란과 관련된 글들이 많아 당시 日本, 明, 朝鮮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권6~8은 각 체의 시를 시체에 관계없이 시기별로 편차한 것이다. 焦眉錄은 거의 초년에 지은 작품이고, 1559년에 지은 〈銀臺二十詠〉이 拾遺로 붙어 있다.
丁丑行錄과 辛巳行錄은 1577년과 1581년 종계변무를 위해 중국에 다녀오며 중도의 풍물을 읊은 것이다. 分津錄은 甕津 縣監 재직시 저작으로 杜甫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가 많은 것이 특징이고, 晉陽錄은 1589년 晉州 牧使로 재직시 지은 것이다. 扈行錄과 亂後錄은 임진란을 전후한 저작이고, 癸巳行錄(1593)과 甲午行錄(1594)은 전란 중 중국과의 외교를 담당할 때에 지은 것으로 변경과 遼東 등처의 정경을 읊은 것이 많다. 公山錄과 松都錄은 1598년 公州에 사명을 받들고 갔다 온 뒤 松都에 기거하던 시기의 작품으로 車天輅, 李海壽와의 차운시가 많다. 驪江錄은 1601년 驪州 牧使 재임 시의 저작이고, 麻浦錄은 驪州에서 체직된 후 잠시 麻浦에 우거할 때에 지은 것이다.
西都錄은 1598년 이후 몇 년간 平壤에 사는 동안 지은 시인데 승려에게 준 시가 많다. 還京錄은 1602년 다시 승문원 제조로 제수되어 조정으로 돌아온 시기의 작품이고, 東郡錄은 저술을 위해 杆城 郡守로 나갔던 시기로 關東의 승경을 노래한 시가 많은데 특히 〈三日浦〉가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還朝錄은 1606년 詔使의 접대를 위해 다시 조정으로 소환되었을 때의 작품이므로 조사와의 차운시가 많고, 休暇錄은 병으로 평양에 우거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권9는 稀年錄으로 주로 말년에 지은 각 체의 문 32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부록으로 韓愈의 文과 周易의 道를 체득한 글이어서 좋아한다는 저자의 평을 담은 李純馨의 〈贈田正字序〉가 포함되어 있고, 권말에는 노년과 쇠병으로 더이상 글을 지을 수 없어 절필한다는 내용의 1608년작 〈絶筆文〉이 실려 있다.
필자 : 金圻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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