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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해(大學諺解)
상품명 : 대학언해(大學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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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언해(論語諺解)
200,000
 
 
* 책   크기 : 정본 A4(20.5 x 29.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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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원본 기준)
-도서명 : 大學諺解
-표지제 : 學解
-편저자 : 宣祖(朝鮮) 命編 
-간행년 : 顯宗年間
-간행처 : 未詳
-판사항 : 戊申字本
-형태서지 : 1冊(32張);31.3x19.5m

*목차  
대학언해(大學諺解)
경문(經文)
전문(傳文)     
 제 1 장 - 강고왈극명덕(康誥曰克明德)
 제 2 장 - 탕지반명왈구일신(湯之盤銘曰苟日新)
 제 3 장 - 시운방기천리(詩云邦畿千里)
 제 4 장 - 자왈청송오유인야(子曰聽訟吾猶人也)
 제 5 장 - 차위지지지야(此謂知之至也)
 제 6 장 - 소위성기의자(所謂誠其意者)
 제 7 장 - 소위수신재정기심자(所謂修身在正其心者)
 제 8 장 - 소위제기가재수기신자(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제 9 장 - 소위치국필선제기가자(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제 10 장 - 소위평천하재치기국자(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견본이미지 및 해제


<영인본 견본>

四書의 하나인 大學의 原文에 吐를 달고 우리 말로 諺解한 책.
四書의 언해는 世宗代의 集賢殿에서 착수되었다고 하나, 宣祖代의 校正廳에서  일단락  된다.  四書가언해된 경위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朝鮮朝建國이래 이들 經書에 대한 口訣의  문제와 諺解의 문제는 經書의 硏究와 敎育에서 중대한 과제였다. 世宗 30年 3月  癸丑條(世宗實錄 卷 119)의 記錄 "時集賢殿奉敎以諺文譯四書 直提學金汶主之 汶死 集賢殿薦鉤  ?甑齬?興拖?을 통하여 四書諺解에 대한 事業이 世宗代에 集腎殿에서 착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世宗實錄에 四書諺解가 이루어졌다는 記事가 없는 이상 世宗代에 四書가 諺解되어 刊行되었는지는 疑問이다. 그후 口訣釋義가 학자에 따라 차이가 많아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체계있는 口訣 또는 諺解가 요구되었다. 成宗代의 柳崇祖가 經書諺解의 始祖로 일컬어 지고있으나 口訣만을 詳定해 놓은 것이지 諺解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 柳希春의 ≪眉巖日記≫를 통하여 宣祖初에 校書館에서 懸吐作業 즉 口訣을 다는 작업이 進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校書館의 懸吐作業에 참여했던 인물은 退溪와 眉巖 외에도 姜士尙·奇大升·具??·趙廷機·金命元·鄭澈·宋應漑 등이다. 宣祖 7年 甲戌년에서도 退溪가 考證한 四書五經口訣諺解가 있다는 사실과 栗谷이 이미 口訣諺解를 詳定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副提學柳希春所啓李滉考證四書五經口訣諺釋反其校正朱子大全語類等冊 訪問其家 收取上送事' 및 '朝坡州成持平揮  專?仟送李叔獻詳定吐釋大學來云云' (眉巖日記), 또한 經筵日記의 甲戌年의  記事  '又上曰人言經書吐不可改 此言何爲 臣對曰 柳崇祖等所定吐誠善 然今講尙書 亦往往有誤處  未審當改否'는 柳崇祖 등이 懸吐한 사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 吐가 참으로 홀륭하나 잘못된 곳이 있다고 柳希春은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宣祖 이전에 經書에 대한 諺解란 口訣을 다는 것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柳希春은 退溪의 說도 정밀하나 만족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하였고 栗谷의 口訣과 諺解를 가져다가 참고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記錄으로 미루어 國家的인 사업으로 四書나 三經의 諺解가 이루어 진 것은 宣祖代 以後로 朝鮮朝初에 佛經諺解 사업이 이루어 진 것과 대조를 보여준다.  宣祖는 同 18年에 校正廳을 설립하고 經書의 口訣과 諺解를 하도록 命하고 鄭逑·崔永慶·洪晩·韓百謙·鄭介淸을 특별히 불러 校正郞으로 命했다. 이때 校正廳에서  刊行된  諺解本을 官本諺解라 하여, 다른 諺解本과 구별한다. 官本의 諺解란 몇몇 個人에 의한 것이 아니라 當代의 代表的 儒臣들 대부분이 참여한 經書諺解의 結晶이라고 할 수  있다. 선조 19년(1586)에는 小學과 四書의 諺解가 끝나고 21년에는 七書, 즉  四書三經의 언해가 모두 끝나 상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陶山書院에 전하는 四書의 諺解本은 모두 校正廳에서 刊行된 것이라고 한다. 본 ≪대학언해≫는 官本의 성격을 띠며 栗谷本≪栗谷先生大學諺解≫와 두드러진 用語選擇의 차이를 보인다.  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는 官本들은 가능한한 순수국어를 사용하여 언해 한 것들로  栗谷本과 차이가 있다. '人:사(람), 言:말, 事:일, 國:나라,  明:(발)근,  善:어딘,  學:배호와, 敎:(가라)치다, 事:셤기다, 得:얻다'등과 같이 栗谷本에서는 原文의 漢字를 그대로 諺解에 써서 原意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官本의 경우는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순수국어를 사용하였다. 官本과 栗谷本의 吐는 거의 일치한다. 原文에  吐만 단 것과 官本栗谷本을 比較해 보면 다음과 같다. [原文]:大學之道(난)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官本]:大學의 道(난) (발)근 德을  (발)김애  이시며 民을 새롭게 홈애 이시며 지극한 善에 止홈애 인(난)니라. [栗谷本]:大學의 道는  明德을 明호매 이시며 民을 新호매 이시머 至善의 止호매 잇(나)니라.  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는 官本 가운데는 광해군 3년(1611)에 刊行된 책이 가장 오랜 것이다.  이책에는  漢字의 注音에 '△'이나 '古'의 表記가 유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언해문에서 직접  '(용)납(하난)디라(24張) (사)랑(하)며(24張) 사람이(아)(25張)'과 같은 예를 보여준다. 이책은 初刊本으로 알려진 宣祖 23년의 陶山書院藏本과 內容이나 表記가  完全히 一致하지만, 다만 傍點의 表記가 없을 뿐이다. 傍點表記와 '△'이나 '古'의 有無를  제외하면 위 두책과 全州府河慶龍藏本, 丙午仲夏咸鏡監營開刊의 刊記가 있는  冊등의  表記法은 거의 一致하고 있다. 庚辰新刊內閣藏板만이 表記上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光海君 3年에 刊行된 책과 改鑄甲寅字本 內閣藏板의 表記를 비교해 보면 위의 표와  같다.  이와같이 官本 大學諺解들은 刊行年代의 差異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차이를 갖지 않고 初刊本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도산서원본은 중세국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落張되어 있는 1張, 2張은 방점표기를 제외하면 光海君  3年本에 의해 추정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631年(仁祖 9)에 刊行된 大學諺解도 光海君 3年에 刊行된 책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결국 大學諺解중에는  陶山書院所藏本이  中世國語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규장각 소장본들은 中世國語에서 近代國語로 변하는 과정의 國語史 硏究를 위한 資料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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