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書總目(도서총목)
初學(초학) 入門書
經部(경부)
文集類(문집류)
古地圖(고지도)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선정
이달의 책걸이(신규)
50%할인 선착순특판
Leipziger Buchmesse
家文을 찾아서
국보급 書畵帖
[알림 및 공지사항]
학선재 소식지
문집화보 1000選
古書齋
출간희망도서 접수
우리책과 문화유산[영상]
 02)453-1040(代)

(평일)오전10시~오후5시


이메일문의
우리은행
1002-833-836076
예금주:박수준
 
 
비밀번호 확인 닫기
文集類(문집류) > 新刊本(신간본)-書名別 > > 간재집(艮齋集)-최규서

 
간재집(艮齋集)-최규서
상품명 : 간재집(艮齋集)-최규서
판매가격 : 350,000
  • 책 제본 선택 :
총 상품 금액 0
全7冊(1포갑)
     
 









한지표지(크게 보기)표갑(크게보기)
<능화 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원본 기준)

서명 : 간재집 ( 艮齋集 ) 
권수제 : 艮齋集
판심제 : 艮齋集
권책  15권 7책  


*저자소개

성명 : 최규서(崔奎瑞)
생년 : 1650년(효종 1)
몰년 : 1735년(영조 11)
자 : 文叔
호 : 艮齋, 少陵, 巴陵, 蠶窩
본관 : 海州
시호 : 忠貞


*목차
 
간재집(艮齋集)
 
卷之一
 詩 
卷之二
 疏 
卷之三
 疏 
卷之四
 疏 
卷之五
 啓 
 書啓 
 議 
卷之六
 書 
卷之七
 應製錄 
 序 
 記 
 銘 
 贊 
 說 
卷之八
 祭文 
卷之九
 墓誌銘 
 神道碑銘 
卷之十
 墓碣銘 
卷之十一
 墓表 
 碑銘 
卷之十二
 行狀 
卷之十三
 錄 
卷之十四
 錄 
卷之十五
 錄 



 


*해제


<능화표지>



<신간 활자본 견본>

[편찬 및 간행]
저자는 본래 저술이 많지 않았으며 또한 자손들에게 문집을 간행하지 말 것을 遺戒로 남기기까지 하였다. 年譜의 부록으로 널리 遺戒에 의하면 “근래 文集이 외람되이 많은 것은 실로 폐단이 되어 좋지 못하고 단지 졸렬함만 드러낼 뿐이니 조상을 빛내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저술이 없어 이럴 근심은 없지만 너희들도 마땅히 이런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심지어 神道碑를 세우지 말 것과 諡號를 청하지 말 것을 遺命으로 남겼다. 1749년에 沈錥이 지은 저자의 墓表에도 저술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생전에 자신의 글을 정리해두거나 사후에 자손이 곧 유문을 정리해두지 못한 듯하다. 더구나 英祖 이후 少論系가 몰락하여 저자의 후손과 문인들의 활동도 미미하였으므로 문집의 간행을 준비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다만 哲宗 연간에 저자의 年譜가 7권 3책의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권두에 실려 있는 世系로 보아 저자의 5대손인 崔璜이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 연보는 正宗 무신년(1788)에 예관을 보내 致祭하였다는 기사가 마지막으로 실려 있고 연보 내에서 저자의 편지나 上疏, 獻議, 啓辭 등이 자세히 인용되어 있으며, 책끝에는 遺事와 遺戒 등이 附錄으로 실려 있다. 이 연보에도 문집의 편찬, 간행과 관련된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도 成書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데 자손들이 문집 간행은 하지 못하고 대신 연보를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艮齋 年譜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한57-가2890)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의 글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艮齋集」이란 題名으로 규장각(奎15757)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의 15권 7책과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艮齋漫錄」 1책뿐이다. 후자는 본집에 실려 있는 病後漫錄과 동일한 내용인데 필기류의 소품으로 따로 필사본이 유통되기도 하였던 듯하다. 「艮齋集」의 필사본이 언제쯤 누구에 의해서 정리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필사형태로 보아 구한말, 일제 시기에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편찬 체제는 일반적인 문집의 편집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연도순 배열을 취하고 있다. 頭註에는 작품 연도와 誤字, 脫字, 배열의 수정, 작품의 취사 등 다양한 교정 사항이 적혀 있고, 본집의 筆體도 여러 가지인 것으로 보아 定稿本이라기보다는 유문을 수습, 편찬한 뒤 書寫하여 교감 중인 교정본으로 보인다. 또한 尹拯의 「明齋集」이나 朴世采의 「南溪集」, 南九萬의 「藥泉集」 등에는 저자에게 답한 편지와 問目에 대한 글도 다수 실려 있으며, 崔錫鼎의 「明谷集」에도 저자와의 酬唱詩가 다수 실려 있는데 반해 본집에는 詩와 書의 비중이 적은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을 거치는 동안 遺文의 散逸이 있었던 듯하다.
본서의 저본은 이 필사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구성과 내용]
본집은 별도의 序跋이나 附錄文字 없이 저자의 詩文만으로 구성된 15권 7책의 필사본이다. 卷頭에 總目錄이 있어 각 권에 실린 글의 제목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편차 기준은 문체별 내에서 다시 연도별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상소 등의 公車文과 墓道文字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권1은 詩로서 1671년부터 1734년까지 詩體에 관계없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총 163題가 실려 있다. 간혹 저작 연도의 착오로 배열이 잘못된 경우는 〈戱贈書狀房妓月華〉에 나타난 것처럼 頭註에 옮겨야 할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함께 차운한 대상으로는 동문수학한 崔錫鼎, 李東郁과 동서인 徐宗泰 등이 있다. 특히 1697년 世子冊封奏請副使로 떠났을 때 지은 시가 45題나 되는데 함께 나간 上使 崔錫鼎, 書狀官 宋相琦와 차운한 것이 많으며, 이 외에 肅宗, 景宗, 孝章世子 挽詞를 비롯하여 挽詩가 38제나 실려 있다.
권2~4에는 총 75편의 상소가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2는 1685년~1689년까지 18편이 실려 있고, 권3에는 1698년~1721년까지 27편, 권4에는 1722년~1735년까지 30편이 실려 있다. 南九萬이 西北人의 등용을 요청한 건의에 대해 반대한 〈請西北人擇人通淸疏〉를 비롯해 죽기 전날에 御醫를 소환해 줄 것을 청한 〈臨終疏〉까지 대부분이 사직소이거나 인피하는 내용, 周急이나 봉록을 사양하는 내용이다. 주요 상소의 배경과 내용은 病後漫錄에 자세한 상황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권5는 啓(12), 書啓(22), 議(4)이다. 啓는 1685년 江華 留守 尹瑎의 파직을 청하는 계사로부터 대부분 三司와 政院에 있을 때 올린 避嫌啓 등인데 軍役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族譜를 간행하는 무리들에 대한 처벌을 논한 계사와 숙종의 西北人 등용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계사 등도 있다. 書啓는 사관, 승지 등을 보내 傳諭하거나 召命을 내린 것에 대한 답이며, 議는 1698년의 端宗과 愼妃의 復位에 대한 것 외에는 모두 저자가 영의정에 제수되었던 이후인 1724년과 1728년, 1729년에 올린 것이다.
권6은 편지이다. 일반적으로 문집의 書는 대상별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집은 연도별로 되어 있어 같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도 분산되어 수록하였다. 대체로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는 少論系의 주요 인물과 주고받은 글이 많은데 明谷 崔錫鼎과의 편지가 9편으로 가장 많고, 李光佐(4), 李寅燁(3), 李肇, 李東郁, 兪得一, 金鼎臣, 崔錫恒, 尹拯 등과의 교류가 있었다. 내용은 明谷에게 보낸 것은 田役이나 折受의 폐단 등 정책적인 문제를 別紙로 논한 것이 많으며, 또 「周易」이나 禮, 天官 등에 대한 질문도 있다. 李寅燁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栗谷이나 趙靜庵도 黨爭을 조정할 수 없었다는 말로 時事를 어찌할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권7은 不允批答, 敎書, 賜祭文 등의 應製錄 8편과 序(4), 記(3), 銘(3), 贊(1), 說(2)이다. 서문은 李志傑의 「琴湖集」, 南九萬의 「藥泉集」, 「晚晦詩帖」 등에 대한 서이고, 자신의 호로 삼은 艮巖에 대한 銘, 莊子와 佛家의 영향이 보이는 〈睡鄕記〉와 〈觀心說〉 등이 있다.
권8은 祭文 19편이다. 주로 사돈관계인 金夢臣, 元命卨, 李善溥와 먼저 죽은 자녀 등 친지들에 대한 제문이 많으며, 그 밖에는 南九萬, 崔錫鼎, 尹拯, 李東郁, 朴世恭 등의 제문이다.
권9~12는 墓誌銘(17), 神道碑銘(2), 墓碣(16), 墓表(8), 碑銘(1), 行狀(5) 등의 묘도문자이다. 저자의 양부모와 본생 부모, 형제, 처가와 외가, 일찍 죽은 자식들과 손녀, 부인 등 친인척들에 대한 행장과 묘지가 많은 편이며, 또 李大成, 沈榥의 신도비와 南九萬, 金柱臣의 墓表, 李斗岳, 李漢翼, 元豪, 沈龜瑞의 묘지명이 실려 있다. 비명은 〈忠賢書院事蹟碑銘〉(1712년)으로 徐起가 창설했던 公州 孔巖書院을 중건하면서 朱子의 畫像을 모시고 趙憲, 金長生, 宋浚吉 등을 배향하여 忠賢書院으로 賜額받은 내용이다.
권13~15는 病後漫錄으로 「艮齋漫錄」이란 題名으로 별도의 필사본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1718년 치사하고 난 후 노후에 자신의 일생과 견문을 기록한 자전적인 글이다. 어린시절의 이력과 崔錫鼎, 崔錫恒, 李師命, 朴泰維 등과 동문수학하던 일화부터 宋浚吉, 尹拯, 許穆, 朴世采 등을 찾아뵌 일, 政界에 나온 뒤 老論과 少論의 갈등, 科場의 祕話, 獄事 등 일상 생활까지 연도순으로 서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권13은 주로 1689년 己巳換局까지의 이야기이고, 권14는 1690년부터 1728년 무신년 난리 때의 일까지 실려 있는데, 저자가 지방관을 하면서 보고 겪은 지방의 관습과 백성들의 생활을 서술하고 있다. 원래 1718년 漫錄을 작성하고 나서 그 뒤에 또 몇 조항의 續錄을 지어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권15는 經典과 朱子의 논설, 性理學에 대한 선현의 警句와 저자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메모의 형식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며, 중간에 〈五行分屬陰陽二劃圖〉가 실려 있어 저자가 「周易」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 金成愛


 
책수에 따라 주문후 배송까지 1주일~보름 정도 소요됩니다.
비단배접지의 문양과 색상은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본의 상태에 따라 영인본의 인쇄가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본이 일부 缺失된 고서는 원본에 준하여 그대로 발행됩니다.
잘못된 책은 교환해드립니다.
 
 
 
 
 
상호명 : 학선재(學善齋) 사업자등록번호 : 206-92-90181 [사업자정보확인]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0서울노원0214호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개인정보담당자 : 박수준 대표 : 박수준
사업장소재지 : ●서울 강남구 논현동 86-6 1층 박선희한복(內)●工房:서울 노원구 한글비석로14길 8, 210-1506
Copyright ⓒ 도서출판 학선재 All Rights Reserved. 02)453-1040(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