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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문집류) > 新刊本(신간본)-書名別 > > 갈암집(葛庵集)-이현일

 
갈암집(葛庵集)-이현일
상품명 : 갈암집(葛庵集)-이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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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본 기준)

서명 : 갈암집(葛庵集) 
권수제 : 葛庵先生文集
판심제 : 葛庵先生文集
권책 : 原集 29권, 別集 6권, 附錄 5권 합 21책  


*저자소개

성명 : 이현일(李玄逸)
생년 : 1627년(인조 5)
몰년 : 1704년(숙종 30)
자 : 翼昇
호 : 葛庵
본관 : 載寧
시호 : 文敬  


*목차
 
갈암집(葛庵集)
 
葛庵先生文集
卷之一
 詩 
卷之二
 疏 
卷之三
 疏 
卷之四
 疏 
卷之五
 疏 
 箚 
 獻議 
卷之六
 經筵講義 
卷之七
 經筵講義 
卷之八
 書 
卷之九
 書 
卷之十
 書 
卷之十一
 書 
卷之十二
 書 
卷之十三
 書 
卷之十四
 書 
卷之十五
 書 
卷之十六
 書 
卷之十七
 書 
卷之十八
 雜著 
卷之十九
 雜著 
卷之二十
 序 
 記 
卷之二十一
 跋 
 祝文 
卷之二十二
 祭文 
 箴 
 銘 
 贊 
卷之二十三
 碑 
 墓表 
卷之二十四
 墓碣 
卷之二十五
 墓誌銘 
卷之二十六
 行狀 
卷之二十七
 行狀 
卷之二十八
 行狀 
卷之二十九
 諡狀 
別集卷之一
 辭 
 詩 
別集卷之二
 疏 
別集卷之三
 書 
 贈言 
 雜著 
 序 
 跋 
 上梁文 
別集卷之四
 祭文 
 墓表 
 墓碣銘 
別集卷之五
 墓碣銘 
 墓誌銘 
 行狀 
別集卷之六
 行狀 
 諡狀 
附錄卷之一
 年譜 
附錄卷之二
 行狀 
附錄卷之三
 墓誌銘
 遺事 
 就正錄 
附錄卷之四
 家傳 
附錄卷之五
 祭文 
 輓章 
 奉安文 
 祝文 



 


*해제


<능화표지>



<신간 활자본 견본>

[편찬 및 간행]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졸하기 이전부터 아들 李栽에 의해서 收拾되어 왔다. 李栽의 行狀에, “어릴 적부터 先生(葛庵)의 著作 및 편지 등을 모두 빠짐없이 收錄하였고, 선생이 졸한 뒤 곧 바로 遺文을 修整하고 여러 同志들과 함께 勘校하여 定本을 만들었다.” 하였고, 密菴自序에도 “不肖 兄弟들이 錦陽新築에서 服喪 중에 遺文을 수습하여 同志들과 함께 勘校하였다.” 하였다. 李栽는 평소 정리해온 시문을 바탕으로 저자가 졸한 이듬해인 1705년(숙종 31)에 修整을 착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門人 申益愰이 1705년에 쓴 就正錄 後識에는 “선생의 아들들이 선생의 遺文 및 事蹟을 정리하는 중에 나에게 선생의 문하에서 보고들은 바를 적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였다.
遺文을 勘校하는 일에는 權斗經, 李光庭 등이 참여하였다. 李栽가 1725년에 쓴 權斗經의 行狀(密菴集 卷19)에, 權斗經이 주도하여 저자의 遺文을 編摩하였고 또한 年譜를 修潤하고 誌文을 지었으며 간행하고자 일을 시작하였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고, 權斗經에게 보낸 편지들(密菴集 卷4)을 보면 그 진척 상황을 알 수 있는데, 1707년에 보낸 편지에는 “遺集은 天祥(李光庭)이 對勘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하였고, 1711년에 보낸 편지에는 “疏箚는 初本에 견주어 보면 이미 열에 서넛을 刪去하였는데 지금 또 別集으로 많이 옮겼으니 혹시 지나치게 실상을 놓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며, 1721년에 보낸 편지에는 “先稿의 修改해야 할 곳에 대해서… 찾아 뵙고 의논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 외에도 遺集을 勘校해 보낸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내용이라든지 詩文의 刪削 과정에서 주고받은 내용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결국 1724년(경종 4)에 이르러 李栽는 權斗經과 함께 遺集을 최종 校正한 뒤 本集 15책, 別集 2책으로 定本을 완성하게 된다. 본 문집의 重刊本 目錄 끝부분에는 당시 교정자의 이름이 실려 있는데, “李栽 初校, 金台重 再校, 權斗寅과 權斗經 對校, 李琓과 李光庭 校”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글들을 종합해 보면, 저자의 시문은 1705년경부터 李栽가 수습 정리하여 權斗經과 함께 刪定을 해서 1707년경 初本을 완성하였고, 이 초본을 權斗經과 李栽 등이 의논하며 勘校를 계속하였으며, 李光庭 등이 교정에 참여하여 1724년에 定本을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저자의 연보는 시문의 정리가 1차 완료된 직후인 1708년에 역시 李栽가 편차하였고, 1717년에 권두경이 修潤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3, 4차례에 걸친 교정과 교감을 통해 定稿本이 완성되었음에도 곧 바로 開刊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는데, 그 이유의 하나는 1694년 甲戌獄事 이후 이름이 罪籍에 올라 있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伸寃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에 時議를 염려하여 간행을 자제한 듯 한데, 반면 家藏하고 있던 定本에 대해서는 계속 증보와 교정이 더해진 듯하다. 곧 1732년(영조 8) 여름에 ‘金聖鐸이 「葛庵集」을 교정하였다.’(金聖鐸年譜, 霽山集)는 내용이 그것으로, 定本에서 미진한 부분이 증보 보충되었거나 일부 修潤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貴175, 한46-가523)에는 目錄 1卷, 本集 19권, 別集 2권, 附錄 2권 합 24권 24책으로 이루어진 寫本이 소장되어 있는데, 1732년에 金聖鐸이 교정을 본 것이 이 寫本과 내용이 같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의 문집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저자의 사후 100여 년이 지난 1810년경 寧海에서 후손 李光振, 李相采 등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아직도 신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죄인의 문집을 사사로이 간행했다는 이유로 冊板은 관아에 수거되어 소각당하였고 책은 태워졌으며, 간행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유배를 당하는 등 文梓의 禍를 당하기에 이르렀는데, 毁板焚書된 이 사건을 ‘庚午板變’이라 한다. 1810년 12월 25일자의 「承政院日記」기사에 의하면 당시 이 일을 조사 처리한 경상 감사 金會淵의 보고 내용이 보이는데, “己巳凶徒 李玄逸의 문집을 간행한 일을 조사하여 치계하였습니다. …사사로이 文集을 간행하였으며…首犯은 3차 嚴刑을 가해서 絶島에 평생 유배하게 하소서. …凶書는 이미 모아서 불태웠습니다만, 혹시라도 숨겨놓고 신고하지 아니하다가 나중에 발각되면 수범과 같은 죄로 엄히 다스리라고 분부하소서.” 하였고, 1997년에 후손들이 만든 「忠孝堂史」에는 후손 李光振(1751~1833)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蝟島에 3년간 流配되고, 李相采(1787~1854)는 전라도 綾州로 유배를 당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초간본》 현재 이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柳致明이 1855년(철종 6)에 쓴 神道碑銘(癸丑追補)에, “疏箚, 講義, 詩文, 雜著 20권이 세상에 전해지며, 또 惇典稡語, 尊周錄, 忠節錄, 永慕錄, 新編八陣圖說, 舟水圖說發揮, 洪範衍義가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 하였는데, 여기서 언급한 20권은 목록 1권을 포함한 초간본 本集을 가리키는 것인 듯하다. 그리고 李壽瀅의 「曉山集」 卷5에, 1902년경에 原集 20권 가운데 완전히 불타버린 4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차의 결손부분을 謄補한 뒤 지은 書後가 실려 있으니, 초간본 본집은 20권이었음이 분명하고 1902년경까지는 殘本이 더러 남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초간본 간행시 별집, 부록, 연보 등이 함께 간행되었는지의 여부는 미상이다.
이렇게 훼판분서된 「葛庵集」은 1909년(순종 3)에 증보되어 重刊되었다. 중간본에도 역시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자세한 重刊 경위는 알 수 없으나, 「忠孝堂史」에 의하면, 경오년 文梓의 禍를 당하였던 후손 李相采에 관한 기록 가운데 “40여 년을 伸寃에 힘써 마침내 1852년에 갈암선생이 신원되고, … 家乘先稿 40여 책을 究明하는 데 힘썼다.” 하여 40책본의 「갈암집」이 언급되어 있고, 胄孫 李晦發(1876~1935), 後孫 李壽嵒(1844~1924)과 李壽岳(1845~1927) 등이 중간본을 간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간본은 원집 29권, 별집 6권, 부록 5권이다.《중간본》 이 중간본은 寫本에 비하면 詩文의 분량이 상당히 증보되었으며, 1909년 重刊 기사까지 追補된 年譜가 附錄에 첨입되었다. 초간본을 산정할 때 時諱에 저촉될 것을 우려하여 산삭하였던 많은 시문들을 1908년 관작이 회복된 이후 중간본을 간행할 때에 추가한 것으로 보이며, 尊周錄 등 여타 저술에 실려 있던 글들도 다수 본집으로 옮긴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규장각(古3428-739), 장서각(4-5717),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2267),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D3B-17),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415),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에도 續集 4권이 있다. 간행 경위는 역시 미상이나, 1909년에 「葛庵集」을 重刊하고 1910년에는 「恒齋集」을 重印하였으며 이어서 1912년에 「恒齋集」의 續集을 간행한 사실로 미루어보건대 「葛庵集」의 續集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으리라 짐작된다. 속집은 권1에 詩, 書, 권2에 書, 권3에 書, 雜著, 記, 上樑文, 祝文, 祭文, 神道碑銘, 墓碣銘이 실려 있으며, 권4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해 師友 門人들이 지은 祭文, 挽章 등이 실려 있다.
한편 1986년 驪江出版社에서 저자의 문집(본집, 별집, 부록, 속집)에다 기타 癸丑追補, 聖諭錄, 尊周錄, 己甲辛癸錄, 辨整錄, 錦陽及門錄 등의 저술을 합편하여 「葛庵全集」을 영인 출간한 바 있는데, 문집의 소장처를 醴泉 味山古宅 手澤本이라고 밝혀 놓았다.
본서의 저본은 1909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중간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


[구성과 내용]
본 문집은 원집 29권, 별집 6권, 부록 5권 합 2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는 目錄이 실려 있고 목록 끝에는 校正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原集 권1은 詩이다. 2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詩體 구분없이 대략 저작 시기별로 편차되어 있다. 맨 앞에 실린 〈詠花王〉은 1635년(9세)에 지은 것으로서 ‘봄바람에 花王이 말없이 단 위에 피어 있네. 저 만발한 百花 중에 어느 꽃이 丞相이 될 것인가.’라는 내용인데, 저자의 어릴 적 기상이 담겨 있다고 널리 알려진 詩이며, 맨 끝에 실린 〈病中書懷〉는 저자의 몰년인 1704년(78세)에 지은 것으로서 ‘평생 한 일이 무엇이던가.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려 했네.’라고 읊은 絶筆詩이다.
권2~5는 疏(51), 箚(4), 獻議(4)이다. 疏는 시기별로 편차되어 있다. 1666년에 지은 〈擬論大王大妃服制疏〉는 慈懿大妃의 복제에 대한 宋時烈의 禮論을 비판하는 글로서 嶺南 士林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고, 1678년에 올린 〈辭免持平兼陳五條疏〉와 1691년에 올린 〈進君德時務六條疏〉 등은 당시의 時事를 논한 疏이다. 그 외 대부분의 상소가 벼슬을 사직하는 상소이다. 箚는 1692년과 1693년에 올린 것인데, 勿除道以迎北使, 修身正家, 進德正俗育才, 君德 등에 대하여 논하는 箚子이다. 獻議는 〈先陵誌文改撰議〉, 〈六臣復官致祭賜額議〉 등이다.
권6~7은 經筵講義이다. 1689년부터 1694년까지 「周易」, 「大學衍義」 등을 진강한 經筵에 참여한 기록인데, 經筵에서 주고받은 筵中說話가 첨부되어 있다.
권8~17은 書이다. 書는 인물별로 정리하였고 같은 인물 안에서는 시기별로 편차하였다. 맨 앞에 趙絅에게 올린 편지가 실려 있고, 그 뒤에 金應祖, 洪宇遠, 權大運, 洪汝河, 金學培 등에게 안부와 정세 등을 묻는 내용으로 보내고 답한 편지가 실려 있다. 특히 丁時翰, 權斗經, 李琓, 李棟完, 申益愰, 黃壽一 등에게 보낸 편지에는 四七辨, 人心道心說, 格物說, 禮論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別紙가 첨부되어 있다. 또한 問目이 많은데, 尹夏濟, 辛夢參, 金以鈺, 權尙精 등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兄弟와 子姪들에게 보낸 편지는 권17에 따로 편차하였고, 여기에는 仲兄 李徽逸, 아우 李嵩逸을 비롯한 형제들, 李檥와 李栽 등의 아들들, 기타 조카와 손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권18~19는 雜著(7)이다. 권18에 실린 〈栗谷李氏論四端七情書辨〉은 1688년에 지은 것으로서, 四端七情에 대해 退溪와 견해를 달리한 栗谷의 이론 중에서 19조목을 추려서 비판한 글이다. 〈讀金天休論李大柔理氣性情圖說辨〉은 역시 1688년경에 지은 것으로서, 李絿의 理氣性情圖說에 대한 天休 金學培의 論辨을 저자가 다시 평론한 것이다. 저자가 쓴 後記에 의하면, 金學培는 저자의 벗이고 李絿는 이들보다 나이가 16세 가량 적은 후학인데, 이 두 사람의 往復書인 이 글은 理氣說의 正論을 부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고 하였다. 〈權學士士範疑義〉는 저자의 벗 權瑎가 지은 「士範」에 대해 조목별로 견해를 적은 것이다. 「士範」은 權瑎가 昌城에서 벼슬살이 할 때에 지어서 그 고을 자제들을 가르친 책으로 모두 34篇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689년에 교정을 부탁받고 저자가 이 글을 지은 것이다. 그 외에 館學의 儒生들을 효유한 〈諭館學諸生文〉, 朴宗文 將軍의 遺事를 적은 〈記朴將軍遺事〉, 丁好寬을 辨誣하기 위해 癸丑獄事의 시말을 적은 〈記昏朝癸丑事〉 등이 실려 있다. 권19는 〈愁州管窺錄〉이다. 이는 1695년에 鍾城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에 지은 것으로서, 중국과 우리나라 先儒들의 글 중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모아 변론한 것이다. 理氣, 太極, 先天圖, 五行, 曆法 등 다양한 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실려 있다.
권20은 序(9), 記(5)이다. 序에는「御製舟水圖說發揮」, 「洪範衍義」, 「惇典稡語」 등에 대한 自序와 磻溪 柳馨遠의 「磻溪隨錄」, 松巖 權好文의 문집, 東岡 金宇顒의 문집, 崇禎處士로 자처한 瓢隱 金是榲의 문집, 藥圃 鄭琢의 문집 등에 대한 서문이 실려 있으며, 記에는 〈首比谿亭記〉, 1658년에 지은 〈葛庵記〉, 〈雲溪草堂記〉 등이 실려 있다.
권21은 跋(15), 祝文(20)이다. 跋에는 대개 〈新編八陣圖說〉, 〈易經本義〉, 〈輯古文〉, 〈茅谿文先生行實記〉 등의 저작물에 대한 後書가 실려 있으며, 祝文에는 亡室 務安朴氏, 先妣 宜人張氏, 仲氏 李徽逸 등에 대한 祝文을 비롯하여 焚黃文, 告墓文, 祭文, 奉安文, 告由文 등이 실려 있다.
권22는 祭文(21), 箴(6), 銘(2), 贊(1)이다. 祭文은 陶窩 朴璿, 仲氏 李徽逸, 韓景愈, 洪汝河, 洪克, 伯氏 李尙逸, 아들 李檥 등에 대한 것이고, 箴과 銘은 〈自警箴〉, 〈好學箴〉, 〈寡欲箴〉, 〈自警銘〉 등 저자 자신의 修身에 관한 내용이다. 贊은 1691년에 지은 〈御屛十六幅贊〉이다. 肅宗이 故事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경계삼을 만한 것을 추려서 16폭의 병풍을 만들게 하였는데, 이들 각각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贊이다.
권23~29는 묘도문자이다. 권23에는 愚伏 鄭經世에 대한 碑陰記, 申漌 등에 대한 墓碑銘(2), 權濤, 金宇顒 등에 대한 神道碑銘(3), 鄭達仲, 李宜活 등에 대한 墓表(3)가 실려 있고, 권24에는 黃孝恭, 李宗準 등에 대한 墓碣銘(15), 권25에는 金垓, 成安義, 朴玏 등에 대한 墓誌銘(17)이 실려 있다. 권26~28은 行狀(15)인데 李徽逸, 洪汝河, 金玏, 先考 李時明, 金弘度, 李厚慶, 金學培, 崔永慶 등에 대한 것이며, 권29는 諡狀(4)인데 鄭起龍, 洪可臣, 郭再祐 등에 대한 것이다.
別集은 권두에 목록이 있고, 권1은 辭, 詩이다. 辭는 〈伏次家君感春辭韻〉 1편인데 1684년 설날에 두 아우들과 함께 先考의 感春辭를 次韻한 글이다. 詩에는 1649년에 지은 〈讀懲毖錄有感〉, 1670년에 孟嘗君과 春申君에 대해서 지은 〈二君詠〉 등 57수가 실려 있으며 다수의 挽詩가 들어 있다.
권2는 疏(76)이다. 引退하거나 辭職하는 상소가 대부분이고, 廬江書院에 賜額을 청하고 鶴峯 金誠一의 諡號를 청하는 상소, 1691년에 〈御屛十六幅贊〉을 지어 올리며 함께 올린 상소, 日新軒과 隆武堂에서 肅宗의 詩文을 보고 和答詩를 지어서 올리며 함께 올린 상소 등이 실려 있다.
권3에는 書(28), 贈言(1), 雜著(2), 序(6), 跋(13), 上樑文(2)이 실려 있다. 書의 맨 앞에 실린 〈擬爲國家檄山東士民書〉는 1649년에 山西에서 倡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국왕의 이름으로 檄書를 지은 擬作이다. 贈言에 실린 〈與姪〉은 冠禮를 마친 조카 李에게 학문의 방도를 일러준 것이고, 雜著에 실린 〈政說〉은 1668년에 정치의 방도를 논한 글인데 총 8조목 가운데 廣儲蓄, 正經界, 定軍制 등 3조목만 남아 있다. 그 외에 〈月行分度推算法〉, 〈金久庵文集序〉, 〈存養齋宋公文集序〉 등이 실려 있다.
권4~6은 묘도문자이다. 祭文(4), 墓表(9), 墓碣(14), 墓誌(2), 行狀(12), 諡狀(1)이 실려 있다. 그중 金孝元 묘갈명, 李德弘ㆍ趙任道 행장, 申湜 시장 등이 주목된다.
附錄은 권1은 저자의 年譜이고, 권2는 權斗寅이 지은 行狀이며, 권3은 權斗經이 지은 墓誌銘과 遺事, 門人 申益愰이 쓴 就正錄이다. 就正錄은 門人 신익황이 생전에 보고 들은 것들을 간략히 적은 것인데 四端七情과 理發氣發 등에 대해 질정한 내용이 주류이며, 葛庵의 嗣子의 부탁으로 1705년에 썼다는 後識가 붙어 있다. 권4는 아들 李栽가 지은 家傳이고 권5는 사우문인들이 지은 祭文, 挽章, 奉安文, 祝文 등이다.


필자 : 朴憲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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