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圖書總目1 > > 삼봉집(三峯集)[영인본]-정도전

 
삼봉집(三峯集)[영인본]-정도전
상품명 : 삼봉집(三峯集)[영인본]-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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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크기 : 정본 A4(20.5 x 29.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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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원본 기준)
-도서명 : 三峯集
-편저자 : 鄭道傳[1342-1398] 著;鄭文炯 編
-판사항 : 木板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刊寫年未詳]
-형태사항 14卷7冊:四周雙邊 半郭 20.2 x 13.8 cm, 10行20字, 上二葉花紋魚尾; 34.4 x 21.7 cm 
-주기사항 序: (鮮朝)權近
          後序: 成化元年乙酉(1465)...申叔舟
          跋: 弘武三十年(1397)...鄭津
          重刊跋: 成化二十三年丁未(1487)...鄭文炳

<저자소개>
-姓名 : 鄭道傳(정도전)
-生年 : ?
-沒年 : 1398년(朝鮮 太祖 7)
-字 : 宗之
-號 : 三峯
-本貫 : 奉化
-諡號 : 文憲
-특기사항 : 李穡의 門人

*목차 
[冊一]-------------------- 
 序
 後序
 凡例
卷之一
 賦
 五言古詩
 七言古詩
 五言絶句
 六言絶句
卷之二
 七言絶句
 五言律詩
 七言律詩
 詞
 樂章
[冊二]--------------------
卷之三
 疏
 箋
 書
 啓
 序
卷之四
 記
 說
 題跋
 傳
 行狀
 墓表
 祭文
 策題
 銘
 贊
[冊三]--------------------
卷之五
 經濟文鑑
卷之六
 經濟文鑑
 識
 序
[冊四]--------------------
卷之七
 朝鮮經國典
卷之八
 朝鮮經國典
 序
[冊五]--------------------
卷之九
 佛氏雜辨
 識
 序
 跋
卷之十
 心氣理篇
 序
 心問
 天答
 序
[冊六]--------------------
卷之十一
 經濟文鑑別集
卷之十二
 經濟文鑑別集
[冊七]--------------------
卷之十三
 陳法
 拾遺○詩
 拾遺○表
 拾遺○箋
 拾遺○記
 拾遺○跋
 拾遺○碑
 拾遺○圖
卷之十四
 附錄

*견본이미지 및 해제 




<영인본 견본>

《三峯集》은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문집이다.

정도전은 호가 삼봉(三峰)이며 자는 종지(宗之), 본관은 봉화(奉化)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고려말기 향리집안 출신으로 아버지는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이고 어머니는 우연(禹延)의 딸로서 노비의 피가 섞여 있었다는 설이 있다. 어려서 아버지의 친구인 이곡(李穀)의 아들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이존오(李存吾) 등과 함께 공부했다. 이색 및 이색 문하의 이들 문인들은 나중에 조선 개국을 전후해 극적으로 그 운명이 갈라지게 된다. 공민왕 9년(1360) 성균시(成均試), 공민왕 11년(1362) 진사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발을 내디뎠고 공민왕 19년(1370) 이색이 대사성(大司成)이 되자, 성균박사(成均博士)가 되었다. 우왕 1년(1375) 권신 이인임(李仁任)과 경복흥(慶復興) 등의 친원배명(親元排明) 정책을 반대하다가 회진현(會津懸)에 유배되었다. 우왕 3년(1377) 유형을 마치고 고향 영주(榮州)로 돌아와서는 학문연구와 교육활동에 매진하였다. 특히 주자학적 입장에서 불교 배척론을 체계화하였는데 이때의 학습과 사색은 이후 조선 건국의 정치사상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공양왕 2년(1390) 경연지사(經延知事)로 성절사겸변무사(聖節使兼辨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조민수(曺敏修) 등 구세력을 몰아내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과전법(科田法)을 실시함으로써 조선 건국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듬해 이성계가 군사권을 장악하여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자 우군총제사(右軍摠制使)가 되었고 이어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재직하다가 구세력의 역습으로 탄핵을 받아 관직을 박탈당하고 봉화로 유배되었다. 그 이듬해 잠시 풀려난 바 있으나 정몽주의 탄핵으로 또 다시 투옥되었고 정몽주가 살해된 뒤에야 풀려나와 조준(趙浚), 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그 공으로 분의좌명개국공신(奮義佐命開國功臣) 1등에 녹훈되고,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예문춘추관사(藝文春秋館事)에 임명되어 사은겸정조사(謝恩兼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천도할 때엔 궁궐과 종묘의 위치 및 도성의 기지, 궁과 문의 모든 칭호 등을 정하는 등 정권 핵심의 역할을 맡았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조선 법제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태조 4년(1395) 정총(鄭摠) 등과 함께 『고려사(高麗史)』를 지었다. 태조 6년(1397)에는 동북면도선무순찰사(都宣撫巡察使)가 되어 성을 수축하고 역참(驛站)을 신설하는 등 국방개혁에도 힘을 쏟았다. 표전문(表箋文) 문제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정도전을 잡아 보내라고 하자, 이에 격분하여 요동정벌(遼東征伐)을 계획하였는데 군량미를 확보하고 진법(陣法)을 훈련하는 등 요동정벌을 준비하던 와중인 태조 7년(1398) 제1차 왕자의 난을 맞아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살해되었다. 『조선경국전』, 『경제문감(經濟文鑑)』,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 등을 지어 조선의 정치적 기틀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 『심문천답(心問天答)』, 『심기리편(心氣理篇)』, 『불씨잡변(佛氏雜辨)』 등의 사상적 저술을 통해 유교적 사회질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정치사상은 유가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고려 시대에 만연했던 불교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으며 엄격한 신분질서 아래 확고한 도덕적 신념으로 무장한 유교적 관료들이 사회를 이끌어 갈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유교적 도덕성만을 강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강력한 군사력 증강과 구체적인 사회적 규약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도덕과 부국강병을 동시에 추구하는 유교적 현실주의가 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사상은 오늘날에도 되새겨 볼 의의가 매우 크다. 또한 왕권을 견제하기 위하여 신권(臣權)의 강화를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측면은 조선조 역사 내내 관철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왕조가 성립하자마자 신권이 강화되는 것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우려한 이방원 세력은 왕권강화를 주장하며 정도전 세력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문집은 아들 정진(鄭津)이 그가 살아 있던 태조 6년(1397)에 간행한 바 있다. 그 후 증손 정문형(鄭文炯)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세조 11년(1465) 안동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奎章閣)에서 재편집하여 대구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1791년 판본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은 확인되지만 정확한 간기사항을 알 수는 없다.
이 책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권근의 서(序)와 신숙주(申叔舟)의 후서(後序)가 실려 있고 이어서 범례(凡例)와 총목(總目)이 실려 있다. 권1에는 부(賦) 3편, 오언고시 46제, 칠언고시 7제, 오언절구 4제, 육언절구 1제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칠언절구 79제, 오언율시 61제, 칠언율시 20제, 사(詞) 1편, 악장(樂章) 6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소(疏) 1편, 전(箋) 3편, 서(書) 4편, 계(啓) 1편, 서(序) 14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기(記) 14편, 설(說) 6편, 제발(題跋) 6편, 전(傳) 1편, 행장(行狀) 1편, 묘표(墓表) 1편, 제문(祭文) 3편, 책제(策題) 2편, 명(銘) 2편, 찬(贊) 1편이 실려 있다. 권5-6에는 「경제문감(經濟文鑑)」이 실려 있다. 태조 4년(1395) 지은 것으로 권근이 주해를 하였다. 재상(宰相), 대관(臺官), 간관(諫官), 위병(衛兵), 감사(監司), 주목(州牧), 군태수(郡太守), 현령(縣令)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권7-8에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이 실려 있다. 태조 3년(1394) 지은 것으로 정보위(正寶位), 국호(國號), 정국본(定國本), 세계(世系), 교서(敎書), 치전(治典), 부전(賦典), 예전(禮典), 정전(政典), 헌전(憲典), 공전(工典)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이 가운데 치전, 부전, 예전, 정전, 헌전, 공전은 주례(周禮)의 육전(六典) 체제를 모방하여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이다. 권9에는 불씨잡변(佛氏雜辨)이 실려 있다. 불교의 교리와 현실 도피적인 비현실성 등을 이론적으로 비판한 글로서 모두 1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0에는 「심기리편(心氣理篇)」과 「심문(心問)」, 「천답(天答)」이 실려 있다. 「심기리편」은 심난기(心難氣), 기남심(氣難心), 이유심기(理諭心氣) 의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문」과 「천답」은 상천(上天)에게 선악과 길흉에 대한 응보가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자문자답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11-12에는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이 실려 있다. 권근의 서가 앞에 실려 있고 이어서 중국의 요순시절에서부터 당, 송, 원까지의 군도(君道)와 고려의 군도(君道) 및 의론(議論)이 실려 있다. 여기에선 주로 군주의 덕목에 관해 논하고 있는데, 이는 신하의 직분을 주로 다룬 「경제문감」과 표리를 이룬다. 권13에는 진법(陣法)과 습유(拾遺)가 실려 있고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 「팔진삼십육변도보(八陣三十六變圖譜)」, 「감사요약(監司要約)」 등 전해지지 않는 제목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학자지남도」는 1934년 간행된 책이 발견된 바 있다. 권14에는 사실(事實), 교고문(敎告文), 제현서술(諸賢敍述) 등의 부록이 실려 있고 이어서 저자의 부친을 제사한 제정상서운경문(祭鄭尙書云敬)이 실려 있다.
조선의 이념적 정치적 기반을 닦은 탁월한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정도전의 인생과 사상을 드러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건국이념 그 자체까지 담고 있는 매우 귀중한 문헌이라 평가할 수 있다. (채석용) *출처:서울대규장각

<행력>
*~ ~ ~ ~ ~ ~  - 三峯에서 태어나다.
*공민왕 9(1360) - 成均試에 합격하다.
*공민왕 11(1362) - 10월, 同進士에 합격하다.
*공민왕 12(1363) - 봄, 忠州司錄이 되다.
*공민왕 13(1364) - 여름, 典校注簿가 되다.
*공민왕 14(1365) - 通禮門祗候가 되다.
*공민왕 15(1366) - 1월, 부친상을 당하다. ○ 12월, 모친상을 당하다. ○ 양친을 榮州에 祔葬하다.
~ ~ ~ ~ ~ ~  - 榮州에서 經籍을 연구ㆍ토론하며 3년상을 마치다.
*공민왕 18(1369) - 三峯의 舊居로 돌아오다.
*공민왕 19(1370) - 성균관이 중건되자 成均博士에 임명되어 李穡ㆍ鄭夢周ㆍ李崇仁 등과 性理學을 강론하다.
*공민왕 20(1371) - 7월, 太常博士가 되다. ○ 圖形을 상고하여 종묘의 樂器를 만들다.
~ ~ ~ ~ ~ ~  - 禮儀正郞, 藝文應敎로 옮기고 成均司藝에 오르다.
*공민왕 23(1374) - 9월, 왕이 시해되자 명 나라에 喪事를 고하도록 하다.
*우왕 1(1375) - 원 나라 사신이 국경에 이르자,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간하여 羅州 會津縣에 유배되다. ○ 12월, 「心問」ㆍ「天答」2편을 짓다.
*우왕 3(1377) - 7월, 謫所로부터 三峯의 舊居로 돌아오다.
*우왕 8(1382) - 諸生을 거느리고 거처를 富平, 金浦로 옮기다.
*우왕 9(1383) - 가을, 東北面都指揮使 李成桂의 幕僚가 되어 咸州(咸興)에 가다.
*우왕 10(1384) - 咸興에서 金浦로 돌아오다. ○ 7월, 典校副令으로 聖節使 鄭夢周의 書狀官이 되어 명 나라에 가서 承襲과 諡號를 청하다. 이때 쓴 詩들이 「奉使雜錄」이다.
*우왕 11(1385) - 4월, 귀국한 당일로 成均祭酒 知製敎가 되다. ○ 5월, 왕명으로 承襲과 諡號를 청하는 表文을 짓다.
*우왕 13(1387) - 乞郡하여 南陽府使가 되었다가, 이성계의 천거로 成均館大司成이 되어 여러 차례 계책을 올리다.
*창왕 1(1388) - 書筵侍讀이 되다. ○ 趙浚 등과 私田의 혁파를 청하다. ○ 密直副使가 되다. ○ 10월, 知貢擧 知申事가 되다.
*공양왕 1(1389) - 11월, 공양왕을 추대하여 奉化縣 忠義君에 봉해지고 輸忠論道佐命功臣號를 받고 三司右使가 되다.
*공양왕 2(1390) - 6월, 政堂文學이 되어 명 나라에 가서 聖節을 하례하고, 이성계가 명 나라를 침범한다는 무고를 밝히다. 이때 쓴 詩들이 「重奉使錄」이다.
*공양왕 3(1391) - 1월, 五軍을 통합하여 三軍都摠制府가 설립되자 右軍摠制使가 되다. ○ 4월, 求言하는 교서가 내리자 刑賞의 得失을 上言하여 왕의 뜻에 거슬리다. ○ 우군총제사를 사직하다. ○ 9월, 일에 연루되어 平壤府尹으로 나가다. ○ 겨울, 奉化로 귀양 가 職牒과 功臣錄券을 환수당하고 다시 羅州로 移配되다. ○ 奉化로 量移되고, 아들 典農正 鄭津과 宗簿副令은 庶人으로 쫓겨나다.
*태조 1(1392) - 봄, 귀양에서 풀려 榮州로 돌아오다. ○ 이성계의 羽翼으로 탄핵을 받아 甫州(醴泉)로 압송되었다가 光州로 귀양가다. ○ 6월, 소환되어 다시 忠義君에 봉해지다. ○ 7월, 태조가 즉위하자 奮義佐命開國功臣 1등에 策勳되고 門下侍郞贊成事 兼判尙書司事가 되다. ○ 8월, 義興親軍衛節制使가 되다. ○ 겨울, 計稟使로 명 나라에 가다.
*태조 2(1393) - 〈文德曲〉ㆍ〈夢金尺〉ㆍ〈受寶籙〉 3편의 樂詞를 지어 바치다.
*태조 3(1394) - 1월, 判義興三軍府事가 되다. ○ 3월, 判三司事로서 慶尙ㆍ全羅ㆍ楊廣 三道都摠制使가 되다. ○ 「朝鮮經國典」을 撰進하다. 「心氣理篇」을 짓다.
*태조 4(1395) - 1월, 鄭摠 등과 「高麗史」를 수찬하다. ○ 6월, 「經濟文鑑」을 撰하다. ○ 「監司要約」을 지어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는 李茂에게 주다. ○ 奉化伯에 봉해지다. ○ 10월, 漢陽에 궁궐과 종묘가 완성되자 왕명으로 新宮과 모든 殿과 門의 이름을 짓고 그 뜻을 써 올리다. ○ 〈新都八景詩〉를 지어 올리다.
*태조 5(1396) - 동지공거로서 初場에 講經하는 법을 처음 만들다.
*태조 6(1397) - 「經濟文鑑別集」을 撰하다. ○ 12월, 東北面都宣撫巡察使가 되어 園陵을 수리하는 한편, 각 고을의 경계선을 劃定하고 城堡를 수리하다. ○ 아들 鄭津이 문집을 간행하다.
*태조 7(1398) - 봄, 서울로 돌아오자 상이 노고를 위로하다. ○ 權近과 함께 成均館提調가 되어 4品이하의 儒士들을 모아 經史를 강습하다. ○ 여름, 병으로 휴가를 얻은 지 수일 만에 「佛氏雜辨」 19편을 짓다.○ 9월, 王子의 亂에 죽음을 당하다.
*태종 11(1411) - 公의 죄를 追正하여 庶人으로 만들고, 자손까지 禁錮하다.
*세조 11(1465) - 증손 鄭文烔이 문집을 重刊하다.
*성종 17(1486) - 증손 鄭文烔이 문집을 追刻하다.
*정조 15( 1791) - 正祖의 명으로 문집이 간행되다.
-  - 1914 갑인  -  -  - 문집이 補刊되다.
*기사전거 : 事實 및 고려사ㆍ태조실록 등에 의함

<편찬 및 간행>
본 문집은 아들 鄭津이 저자의 「錦南雜詠」ㆍ「錦南雜題」ㆍ「奉使錄」 등의 저자의 自編 詩稿를 모아 成石璘의 精選과 權近의 批點을 받아서 저자 生前인 1397년에 간행하였다.《초간본》 현재 誠庵古書博物館에 零本이 소장되어 있다.
그 후 증손 鄭文炯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 「經濟文鑑」ㆍ「朝鮮經國典」ㆍ「佛氏雜辨」ㆍ「心氣理篇」ㆍ「心問天答」 등을 합하여 1465년에 安東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중간본》 이 본은 저자가 비명에 숨진 것을 원통히 여겨 先業을 잇고 또 허물을 덮고자 하여 간행된 것으로 詩에 批點이 없다. 현재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零本이 소장되어 있다.
그 후 1486년에 文炯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그동안 蒐集한 詩賦 100여 수와 「經濟文鑑別集」을 追刻하였다. 다음 해에 강원도에서 追刻된 板本을 안동부의 重板本과 합쳐 8책으로 만들었다.《追刻本》
그 뒤 1791년에 正祖의 명으로 奎章閣에서 分類ㆍ再編하고 註釋ㆍ校正하여 大邱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삼간본》 이 삼간본은 규장각에 소장된 증손 정문형이 간행한 重板本의 抄本을 토대로 하여, 舊本에 누락된 陣法과 詩文들을 수록하고, 정도전의 事實에 대한 기록을 보완하고 舊本의 누락된 글자와 字句의 訛謬를 보충 교정한 것이다. 또한 記事의 중첩된 부분을 삭제하고 批點과 註釋을 첨가하여 編次를 다시하여 14권 7책으로 만든 것이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14년에는 14권 7책으로 補刊되기도 하였다. 이 본은 현재 성균관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1791년에 正祖의 명으로 간행된 三刊本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장본이다.
*기사전거 : 跋(아들 鄭津ㆍ증손 鄭文炯 撰) 및 凡例 등에 의함

<구성과 내용>
본 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詩, 권3~4는 文, 권5~6은 經濟文鑑, 권7~8은 朝鮮經國典, 권9는 佛氏雜辨, 권10은 心氣理篇ㆍ心問天答, 권11~12는 經濟文鑑別集, 권13은 陣法ㆍ拾遺, 권14는 附錄이다. 각 권 앞에는 目錄이 첨부되어 있다.
권수에는 權近의 序와 申叔舟의 後序, 凡例, 總目이 실려 있다.
권1~2는 詩로서, 成石璘이 精選하고 權近이 批點한 것이다. 권1에는 賦 3편, 오언고시 46제, 칠언고시 7제, 오언절구 4제, 육언절구 1제, 권2에는 칠언절구 79제, 오언율시 61제, 칠언율시 20제, 詞 1편, 樂章 6편이 실려 있다. 詩는 시체별로 구분하고 각각의 詩體는 考證을 통하여 창작순으로 배열하고 年紀를 상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빼버렸다. 이것은 舊本이 雜詠ㆍ錦南雜詠ㆍ奉使錄의 시기별로 묶은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권3~4는 文이다. 권3에는 疏 1편, 箋 3편, 序 4편, 啓 1편, 序 14편, 권4에는 記 14편, 說 6편, 題跋 6편, 傳 1편, 行狀 1편, 墓表 1편, 祭文 3편, 策題 2편, 銘 2편, 贊 1편이 실려 있다. 이 중 1375년부터 수 년간 羅州 會津에서의 유배 생활 중에 지은 글을 모은 「錦南雜題」에서 뽑은 글이 상당수 실려 있다. 특히 〈答田父〉는 조정에서 배척을 당하여 유배 생활을 하게 된 자신의 심경을 농사꾼과의 대화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권5~6은 經濟文鑑이다. 1395년에 撰한 것으로 權近이 註解를 하였다. 권5의 경제문감(上)에는 宰相, 권6의 경제문감(下)에는 臺官ㆍ諫官ㆍ衛兵ㆍ監司ㆍ州牧ㆍ郡太守ㆍ縣令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경제문감은 前代의 문헌에서 정치에 관련되는 글을 뽑아, 저자 자신의 견해를 붙여 편찬한 것이다. 그 내용은 중국의 고대부터 元代까지 그리고 고려와 조선의 宰相부터 守令에 이르기까지 명칭ㆍ연혁ㆍ職任의 得失ㆍ人物의 賢否 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권6 뒤에 鄭摠의 序가 실려 있다.
권7~8은 朝鮮經國典이다. 1394년에 撰한 것으로, 권7의 조선경국전(上)에는 正寶位ㆍ國號ㆍ定國本ㆍ世系ㆍ敎書ㆍ治典ㆍ賦典ㆍ禮典, 권8의 조선경국전(下)에는 政典ㆍ憲典ㆍ工典이 실려 있다. 이 중 治典ㆍ賦典ㆍ禮典ㆍ政典ㆍ憲典ㆍ工典은 周禮의 六典체제를 모방하여 우리나라에 적용한 것으로, 각각 摠序가 첨부되어 각 법전의 내용을 개괄하여 서술하고 있다. 「조선경국전」은 뒷날 「경제육전」을 거쳐 「경국대전」의 모체가 된 점에 의의가 있다. 권8 뒤에 鄭摠의 序가 실려 있다.
권9는 佛氏雜辨이다. 1398년에 지은 것으로, 佛敎의 교리를 이론적으로 비판한 글이 대부분이며, 모두 19편으로 되어 있다. 먼저 불교의 교리인 輪廻ㆍ因果說 등 10여 편을 유가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이어 〈佛法入中國〉부터 〈事佛甚謹年代尤促〉까지 4편은 西山 眞德秀의 大學衍義說을 인용하여 비판하였다. 권 뒤에 저자의 議와 權近의 序ㆍ尹起畎의 跋이 실려 있다.
권10에는 心氣理篇과 心問ㆍ天答이 실려 있다. 權近이 註解를 하였다. 이 중 심기리편은 1394년에 지은 것으로 3편으로 되어 있다. 〈心難氣〉에서는 老氏를, 〈氣難心〉에서는 佛氏를 비판하고, 이어 〈理諭心氣〉에서는 유교를 가지고 老ㆍ佛을 開諭한 것으로 결국 유교의 우위를 강조하였다. 뒤에 권근의 序가 있다. 〈心問〉은 上天에게 善惡ㆍ吉凶에 대한 應報가 뒤바뀌는 사실에 대해 질문한 것이며, 〈天答〉은 이에 대한 上天의 답변이다. 뒤에 권근의 序가 있다.
권11~12는 經濟文鑑別集이다. 1397년에 撰한 것으로, 권11의 경제문감별집(上)에는 권근의 序가 실려 있고 이어 중국의 唐에서 五代까지의 君道가, 권12의 경제문감별집(下)에는 宋ㆍ元 및 高麗의 君道, 이어 議論이 실려 있다. 〈君道〉는 중국과 고려의 제왕 가운데 본받을 만하고 경계해야 할 역대제왕을 수록하였다. 「경제문감별집」은 군주의 治道를 논하고 있는데, 이는 신하의 직분만을 다룬 「경제문감」과 표리를 이루고 있다. 〈議論〉은 易卦의 五爻에 대한 程傳의 說을 모은 것으로 군주의 治德을 논한 것이다.
권13에는 陣法과 拾遺가 실려 있다. 陣法은 역대 兵法 중에서 진치는 법, 공격 및 방어법 등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拾遺에는 「여지승람」ㆍ「고려사」ㆍ「국조보감」 등에서 뽑은 詩 3제, 表 3편, 箋 1편이 실려 있다. 이 밖에 學者指南圖ㆍ八陣三十六變圖譜ㆍ監司要約 등 佚失된 글의 제목이 실려 있다.
권14는 附錄으로서 事實ㆍ敎告文ㆍ諸賢敍述이 실려 있고, 이어 저자의 부친을 제사한 〈祭鄭尙書云敬文〉이 附記되어 있다. 〈事實〉은 「고려사」ㆍ「삼봉집」ㆍ「국조보감」 등에서 저자에 관한 자료를 뽑아 年譜처럼 編次한 것이다. 〈諸賢敍述〉은 대부분 당시 인물들이 저자에 대해서 쓴 詩文으로, 본 문집의 편찬ㆍ간행 경위를 알 수 있는 序와 跋이 상당수이며 아울러 佚失된 「監司要約」의 跋文이 실려 있다.(필자 : 金圻彬)*출처: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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