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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Buchmesse > LBM 2017 전시도서 > 치재선생유고(恥齋先生遺稿)[홍인우,박률,이황,이이]

 
치재선생유고(恥齋先生遺稿)[홍인우,박률,이황,이이]
상품명 : 치재선생유고(恥齋先生遺稿)[홍인우,박률,이황,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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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原本 書誌

-도서명 : 恥齋先生遺稿
-편저자 : 洪仁祐(홍인우, 1515-1554) 著
-판사항 : 목판본
-발행사항 : [발행지불명] : [발행처불명], [발행년불명]
-형태사항 : 本集3卷, 附錄, 共2冊 : 四周雙邊 半郭 18.2 x 15.5 cm, 有界, 10行19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25.2 X 19.9 cm
-주기사항 : 表題: 恥齋集, 序: 後學陽川許筬書
-현소장처 :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본 도서는 수명정 1대 건립자 비천 박이서의 부친 遯溪(돈계) 朴栗(박률)[1520~1569] 관련 기록문헌이다.

▣저자 소개

-姓名 : 洪仁祐(홍인우)
-字 : 應吉
-號 : 耻齋
-諡 : 文純[文廟 從祀]
-本貫 : 南陽
-父 : 洪德演‚ 母 : 龍仁 李氏[李思良의 女]
-配 : 順天 金氏[金希稷의 女]
-生沒年 : 中宗10(1515) ~ 明宗9(1554)
-徐敬德, 李滉에게 受學. 盧守愼, 許曄, 朴栗 등과 교유

▣영인본 견본


<비단표지>



▲관동록 : 계축년(명종 3, 1553) 4월 9일 서울을 떠나 5월 20일 되돌아온 42일간의 금강산 유람기

돈계 박률이 비로봉에 올라 고승을 만났을 때의 감흥시 '元韻'과 퇴계 이황이 16년후 이 고승을 다시 만나 읊은 '차운시'

▲율곡 이이의 발문

▣해제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의 시문을 그의 아들 홍진(洪進)이 수집 편찬하여 간행한 문집이다. 박률(朴栗), 남언경(南彦經), 허충길(許忠吉)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기행문 <관동록(關東錄)>이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중종(中宗) 때 연이은 사화(士禍)로 과거(科擧)를 폐하고 구도(求道)의 길을 걸었던 명망받던 젊은 도학자(道學者)들이다. 관동록[明宗 3(1553) 4월 9일 ~ 5월 20일, 42일간의 여행기]에 동반자 중 유일하게 수명정(水明亭)의 건립자 비천(泌川) 박이서(朴彛叙)의 부친인 돈계(遯溪) 박률(朴栗)의 시가 실려있다. 비로봉에 올랐을 때의 감흥을 읊은 시이다. 이 시에 대한 퇴계 이황의 차운시도 함께 실려있다.
이황이 서문(序文)을 쓰고 이이(李珥)가 발문(跋文)을 썼다. 퇴계로 시작하여 율곡으로 끝나는 유일한 책으로 더 유명하다.

▶편저자사항

치재 홍인우는 1515년(중종 10) 홍덕연(洪德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홍덕연은 유숭조(柳崇祖)와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수학하고, 젊은 날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공부했던 인물이다. 그는 1530년 대과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의 자리까지 올랐고, 1552년 생을 마쳤다. 홍인우는 자가 응길(應吉)이고, 초호(初號)는 경재(敬齋)였으며 뒤에 치재(耻齋)로 개호(改號)하였다. 1537년(중종 31)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 대과(大科)를 단념하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한 처사형(處士型) 학자이다. 그는 25세 때 서경덕(徐敬德)을 찾아가 학문을 물었고, 주로 서경덕의 제자인 허엽(許曄)·박순(朴淳)·박민헌(朴民獻) 등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학술사에서 서경덕의 제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는 기묘사화 이후 충주에서 강학하였던 김안국·이연경(李延慶)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연경은 홍인우와 먼 친척관계에 있었고, 절친했던 친구인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과 동생 홍인지(洪仁祉)는 모두 이연경의 제자들이다. 또한 홍인우는 38세에 처음 이황을 만난 이후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서간을 주고받으며 누차 학문을 토론하였기에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에 이황의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홍인우는 1553년 10월 부친상을 당하였고 상을 치르다 병을 얻어 1554년(명종 9) 11월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저서에 『치재유고(恥齋遺稿)』, 「관동록(關東錄)」이 있다.

▶구성 및 내용

본서는 3권 건곤(乾坤)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은 서두에 허엽의 아들 허성(許筬)이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이어서 권1의 시(詩)·잠(箴)·전(箋)·서(書)·행장(行狀)과, 권2의 「일록초(日錄抄)」가 실려 있다. 곤은 권3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유산기(遊山記)인 「관동록」과 「관동록」에 쓴 서문과 발문이 실려 있고, 부록에는 만시(輓詩), 제문(祭文), 묘지명(墓誌銘), 묘표음기(墓表陰記), 행장(行狀)이 실려 있다.
권1의 시는 10제(題) 14수(首)로 「訪韓永叔斗尾精舍」, 「訪花潭徐處士」, 「望孝陵」, 「和南時甫」, 「永郞湖」, 「送盧寡悔赴關東」(4수), 「奉贐尹仲簡送利城」, 「用草堂韻慰南時甫喪子」, 「寄盧穌齋」(2수), 「鉢淵寺懷國善時甫」이다. 노수신과 남언경(南彦經)에게 써준 시가 가장 많고, 이외에 서경덕, 허엽 등에게 써준 시가 있다. 잠은 「續四勿箴」 한 편으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부연한 글이다. 전(箋)은 「擬禮曹請於成均館設更點以礪學者箋」, 「擬弘文館請寫抑戒于屛以備燕閑之覽箋」 2편이다. 서(書)는 모두 20편으로 이황에게 보낸 9편으로 가장 많고, 노수신에게 보낸 3편, 허충길(許忠吉)에게 보낸 2편이 실려 있다. 이 외에 서경덕·이구수(李龜壽)·강유선(康惟善)·이정(李楨) 등에게 보낸 서간들이 있다. 행장은 조광조의 행장인 「故大司憲靜庵先生行狀」과 부친 홍덕연의 행장인 「府君僉知中樞府事行狀」 두 편이 실려 있다. 권2는 「日錄抄」로 이루어져 있다. 「日錄抄」는 24세 때인 1538년(중종 33)부터 생을 마친 때인 1554년 3월 1일까지의 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권3은 「關東錄」이다. 「關東錄」은 홍인우가 박률·남언경·허충길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산수유기(山水遊記)이다. 「관동록」의 말미에는 이황이 쓴 서문과 이황이 화운한 시인 「曾和東遊錄中, 二律今錄呈以愽笑」, 그리고 이황이 노년에 우연히 홍인우와 금강산 여행을 함께 했던 스님을 만나 박률의 시를 보고 차운한 시가 실려 있다. 시 뒤에는 이이(李珥)가 「관동록」에 쓴 발문을 수록하였다. 부록에는 남언경·이황·심희수(沈喜壽)의 글에서 발췌한 차록(箚錄)이 앞에 실려 있다. 이어서 이황·양사준(楊士俊)·김귀영(金貴榮)이 쓴 만시(輓詩), 이황·허엽·구사맹(具思孟)이 쓴 제문(祭文), 홍가신(洪可臣)이 쓴 신도비명(神道碑銘), 심희수(沈喜壽)가 쓴 묘지명(墓誌銘), 한준겸(韓浚謙)이 쓴 묘표음기(墓表陰記), 아들 홍진(洪進)이 쓴 행장(行狀)이 실려 있다.

▶서지적 가치

홍인우의 문집은 모두 두 차례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아들 홍진(洪進)이 저자의 원고를 수집 정리하고, 심희수가 쓴 묘지명과 한준겸이 쓴 묘표음기를 싣고, 허성(許筬)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것이다. 이 초간본은 지금 고려대학교 만송 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639년 증손 홍유형(洪有炯)이 부록과 시 2제, 잠 1편, 서 6편을 증보하여 3권 2책으로 간행한 것이 중간본이다. 이 중간본은 현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는 중간본과 동일한 판본이지만,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중간본과는 글자의 출입이 보인다. 권1에 수록되어 있는 「여노과회서(與盧寡悔書)」의 본문 가운데 연세대학교 소장 중간본에 “前日二說”로 되어 있는 것이 본서에서는 “前日三說”로 되어 있다. 편지가 오고간 정황을 살펴보면 “前日三說”로 쓰는 것이 옳다. 아울러 본서에는 이황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본문 가운데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소장 중간본에는 알아볼 수 없게 지워진 네 개의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본서가 중간본에서 오탈자가 있는 장을 수정하여 다시 찍은 개판본임을 알 수 있다. 본서와 같은 판본인 책이 고려대학교 치암 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치암 문고에 소장되어 있는 책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책 권두의 서문과 2책에 실려 있었을 권3과 부록이 유실된 상태이다. 따라서 본서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소장 중간본인 『치재유고』와의 대조 및 교감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내용적 가치

본서에 수록되어 있는 「관동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산수유기로서 문학사적으로 가치 높은 자료이다. 「관동록」은 홍인우가 매부 남언경·친구 박률, 허충길과 함께 1553(명종 8)년 4월 9일부터 5월 28일까지 49일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쓴 일기체의 기행문이다. 이 「관동록」은 16C 중엽 관동지방의 지리·풍물에 대한 정보와 16세기 중엽 사대부의 산수유람의 구체적인 면모, 그리고 저자 홍인우의 학문태도 등을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본서에는 중종 말기와 명종 초기의 사상계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중요한 자료들이 실려 있다. 권2에 수록되어 있는 「일록초」에는 홍인우가 서경덕을 만나 선천후천(先天後天)·이기(理氣)·체용(體用)의 문제를 질의하여 가르침을 받은 사실과, 서경덕의 제자인 박순·허엽 등과 『맹자(孟子)』·『심경부주(心經附註)』 등의 내용을 토론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노수신·강유선(康惟善)·허충길 등 기묘사림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한 젊은 사류들의 정치적 행보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권1에 수록되어 있는 이황과 주고받은 서간문 또한 이황의 독서 범위와 명종 초기의 학문적 분위기를 알려주는 자료들이다. 권1에 수록되어 있는 편지와 권2에 수록되어 있는 「일록초」에는 홍인우와 남언경이 이황에게서 『전습록(傳習錄)』을 빌려와서 읽고 왕수인의 사상에 대한 토론한 기록이 실려 있다. 『전습록』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을 알린 최초의 문헌은 김세필(金世弼)의 『십청헌집(十淸軒集)』이다. 이 책에는 김세필이 1522년 무렵『전습록』을 읽고 쓴 시가 기재되어 있다. 「일록초」에는 김세필이 『전습록』을 논한 시를 지은 지 30여년 시간이 흐른 뒤인 1553년에 홍인우가 이황에게 『전습록』을 빌려와서 읽고 이황·남언경과 왕수인의 학문을 논한 정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서는 중종 말기와 명종 초기의 학술적 상황과 양명학의 전래와 관련된 초기 학자들의 학문적 동향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 사상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신향림, 「16C 전반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에 관한 고찰」, 『퇴계학보』 118, 퇴계학연구원, 2005. 황광욱, 「홍인우와 남언경의 양명학 이해에 대한 고찰」, 『한국사상과 문화』 18, 한국사상문화학회, 2002. *집필자 : 신향림(출처 :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인물 연구<3> : 遯溪(돈계) 朴栗(박률)

朴栗(박률)[1520(中宗 15)~1569(宣祖 3) 향 50歲]의 字는 寬仲(관중), 自號는 遯溪(돈계)이다. 만성보, 호보, 신도비명에 적힌 그의 인물평이다.
도서명 인물평 내용
萬姓譜抄 有文名 학문으로 이름이 났다. 
名人號譜 以文章名。策問刊行。爲一時程式。*여타 호보 동일 내용 문장으로 유명하다. 책문이 간행되어 일시에 程式(정식)이 되었다. 
姓號譜彙
號譜
朴栗神道碑 公天資篤實。儀度端重。沈厚寡。喜怒不形。不甚矜持。而擧止自中禮法。造次倉卒之際。亦未有疾言遽色。爲文章不徒尙詞藻。典雅純正。爲一時楷範。 공은 타고난 자질(資質)이 독실(篤實)하고, 태도가 단정(端正)하고 중후(重厚)하며, 침착(沈着)하고 후덕(厚德)하며 과묵(寡)하였다. 기쁨과 노함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고 긍지(矜持)를 심히 들어내지 않아서 행동거지가 저절로 예법(禮法)에 맞았다. 아무리 다급하고[造次] 허둥지둥[倉卒]할 때도 역시 빨리 말하거나 급히 서두르는 안색을 낸 적이 없었다. 문장을 짓는데, 오히려 아름다운 문사[詞藻]를 취하지 않았으나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하여 일시에 세상의 모범이 되었다. 

종합하면,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다. ‘內功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성균관 동기 恥齋 洪仁祐(홍인우)였다. 花潭 徐敬德(서경덕)과 退溪 李滉(이황)의 문인이다. 홍인후가 계획한 금강산 유람에 朴栗(박률)과 南彦經(남언경), 許忠吉(허충길)까지 동행하여 4명이 1553년(명종 3) 4월 9일 서울을 떠나 5월 20일[42일간] 돌아와서 여행기를 탈고한 것이 그 유명한 ≪關東錄(관동록)≫이다. 이들은 모두 연이은 士禍(사화)에 염증을 느끼고 과거를 폐하고 求道에 전념했던 젊은 道學者들이였다.

<金剛全圖>(1734) 정선(호암미술관)

이 책이 유명한 이유는 退溪 李滉(이황)이 序文을 쓰고 栗谷 李珥(이이)가 跋文을 쓴 책이기 때문이다. 퇴계로 시작해서 율곡으로 끝맺음한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동반자 중 유일하게 박률의 詩가 실려 있다. 돈계 박률이 비로봉에 올라 고승을 만났을 때의 감흥시이다. 16년 후 퇴계 이황이 이 고승을 다시 만나 읊은 次韻 시를 같이 실었다. 
 

<元韻 朴栗>

與洪上舍仁祐 字應吉号恥齋 遊金剛山 - 遯溪*
상사 홍인우 자는 응길(應吉), 호는 치재(恥齋)이다 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다. – 돈계

追隨應吉曾同伴  응길을 뒤따라 길동무 되니
心仰心工近古  근래에 드물게 어진 사람이네.
癸丑年中乘款段  계축년(명종3, 1553)에 말 빌려 타고서
毘盧峯上問高  비로봉 위에서 고승을 물었었네.
人云眼大尤容物  사람들 안목 높여 만물을 용납한다고 하는데
天爲樓成喚作  하늘은 누각을 지어 신선 불러 놀게 하네.
偶値元賓相與者  우연히 큰 손님 만나 어울리니
旅窓疎雨意范  客窓(객창)에 내리는 빗소리 듬성하네.

*≪述先錄≫에 시의 제목이 ‘<與洪上舍仁祐[字應吉号恥齋]遊金剛山>-遯溪’로 되어 있다.
≪恥齋先生遺稿≫ 卷之三 續內集

<次韻 李滉>

余友洪上舍應吉。求道甚切。不垂遭親喪。過毁滅性。痛哉。應吉曾示余以遊金剛山錄。余爲之敍題。今不復能記。東歸船上。偶逢一僧。乃所與導遊山者。能言當日探歷事。余感涕久之。聊以一詩[次詩軸中朴栗韻]*見情云。
내 친구 上舍 洪應吉은 道를 매우 간절히 구하였는데 불행히 親喪을 당해 너무 슬퍼하다 죽었으니, 애통한 일이다. 응길이 일찍이 나에게 金剛山遊覽錄(금강산 유람록)을 보여주어 내가 序文을 써주었다. 이제 다시 기억나지 않았는데 동쪽으로 가는 배에서 우연히 한 중을 만났다. 바로 금강산 유림 때 길 안내를 맡았던 자로서 그날 두루 탐방하던 일을 말하므로 내가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부족하나마 시 하나로[詩軸(시축) 가운데 朴栗(박률)의 운을 次韻하여] 정을 보인다.
*≪述先錄≫에는 ‘聊以一詩見情云’이 ‘聊次詩軸中朴栗韻見情云’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 ‘次韻’字를 넣지 않으면 표절시비가 된다.

楓岳久聞天下勝  전에 풍악산이 명승이란 말 들었는데
洪君可惜後來  애석하게 홍군이 뒤늦게야 왔네.
盪胸曾喜憑遊錄  일찍이 유람기 읽고 가슴 뛰었는데
隔世今嗟遇伴  이제 스님 만나 함께 하니 격세지감 드네.
只爲相同從學道  서로 만나 함께 도를 배웠지만
非緣長往獨求  오래 지냈는데 신선될 인연은 아니었네.
冷烟風雨驪江上  여강에 찬 연기 끼며 풍우 치는데
回首平生思惘  고개 돌려 평생을 돌아보니 뜻이 서글프네.

隆慶己巳暮春退叟書  융경 기사년(선조 2, 1569) 늦봄 - 퇴수

 
≪退溪先生文集≫ 卷之五 續內集 *퇴계집을 편집한 유성룡이 시제목에서 박률 이름자와 '次韻'한 내용을 빼버렸다.

물론 이 시는 ≪退溪集(퇴계집)≫에도 실렸다. 69세 이황이 40세에 요절한 제자를 벗으로 칭하며 사제의 정을 담은 시로써 유명해져 李廷馨(이정형)의 ≪東閣雜記≫, 權鼈(권별)의 ≪海東雜錄≫ 등 다수의 책에 옮겨져 널리 알려졌다. 박률의 시를 차운했다는 내용은 빠져있다. 홍인우의 아들 洪進(홍진)이 이이에게 편집을 부탁하여 ‘편집인 율곡’이 간행한 책이 되며 유명세를 탔다.
박률은 홍인우가 죽은지 4년 후 명종 13년(1558)에 39세 나이로 出仕(출사)를 한다. 式年試 갑과 2등으로 급제했는데 그 때의 科文 2편이 ≪震英粹語(진영수어)≫에 실려 있다. ‘동쪽 영재들의 빼어난 말’이란 뜻의 ≪진영수어≫는 과제별로 모범답안지를 선별하여 科擧를 준비하는 士林들에게 필독서로 전국의 鄕校에 보급된 책이다.

  
≪震英粹語≫

▲외교 정책을 다룬 <征伐和親> : 박률

▲선비의 기상과 학습을 다룬 <士氣士習> : 박률

외교 정책을 다룬 <征伐和親>, 선비의 기상과 학습을 다룬 <士氣士習>이 그것이다. 이 두 科文은 당대 사림들에게는 물론 집안 후손들에게 미친 영향력은 지대했다. 이이의 대책문도 3편이 실려있는데 그 유명한 <天道策>이 여기에 실려 있다. 박률의 출사를 계기로 그 후손들은 대를 이어가며 과거에 급제하며 밀양박씨 제일의 가문으로 성장한다.


<贈吏曹參判遯溪先生朴公神道碑銘(증이조참판돈계선생박공신도비명)>

‘박률신도비’의 두전(頭篆)은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 篆書로 썼고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이 비문의 글씨를 써서 유명하다. 비문은 형조판서,대사헌을 지낸 망촌(忘村) 송순(宋諄)이 찬(撰)하였다. 송순은 박률의 사위이다. 비석은 양주 밀양박씨 선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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