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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Buchmesse > LBM 2017 전시도서 > 동주선생집(東州先生集)[수명정기]

 
동주선생집(東州先生集)[수명정기]
상품명 : 동주선생집(東州先生集)[수명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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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본 도서는 수명정 3대 승계자 草亭(초정) 朴守玄(박수현)[1605~1674] 관련 기록문헌이다.

▣原本 書誌
-도서명 : 東州先生集
-表題: 觀海集
-편저자 : 李敏求(이민구, 1589-1670) 著
-판사항 : 목판본
-발행사항 : 함경도(咸鏡道) : [발행처불명], [정조년간(후인)]
-형태사항 : 前集8卷, 詩集24卷, 文集10卷, 別集1卷, 共14冊 : 四周雙邊 半郭 19.5 × 14.5 cm,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 29.6 X 18.7 cm
-주기사항 : 表題: 觀海集, 卷首: 崇禎九年之後三年己卯(1639)...自序, 印: 在山樓蒐書之一
-현소장처 : 일본 동양문고
-청구기호 : Ⅺ-4-B-51

▣인물정보

[정의] : 1589(선조 22)∼1670(현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관해(觀海). 신당부수(神堂副守) 이정(李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검(李希儉)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수광(李晬光)이며, 어머니는 김대섭(金大涉)의 딸이다.

[내용]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해 진사가 되고, 1612년 증광 문과에 장원급제해 수찬으로 등용되었다. 이어서 예조·병조좌랑을 거쳐 1622년 지평(持平)이 되고, 이듬 해 선위사(宣慰使)로 일본 사신을 접대하였다.
교리·응교 등을 거쳐 1623년(인조 1)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위해 젊은 관료들에게 독서에 전념하도록 휴가를 주던 제도)했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26년 대사간이 되고, 이듬 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병조참의가 되어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그 해 승지가 되었다가 외직인 임천군수로 나갔다.
1636년 이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역임하고 이 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부사(江都檢察副使)가 되어 왕을 강화에 모시기 위해 배편을 준비했으나, 적군의 진격이 빨라 왕이 부득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소임을 완수할 수 없었다. 난이 끝난 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로 아산에 유배되었다가 영변으로 옮겨졌다. 유배지에서 책임을 통감하면서 날마다 눈물로 자책을 하다가 1649년에 풀려났다. 그 뒤 부제학·대사성·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했을 뿐 아니라, 저술을 좋아해서 평생 쓴 책이 4,000권이 되었으나 병화에 거의 타버렸다 한다.

[저술활동]

저서로는 『동주집(東州集)』·『독사수필(讀史隨筆)』·『간언귀감(諫言龜鑑)』·『당률광선(唐律廣選)』 등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소화시평(小華詩評)』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인본 견본


 
<비단 표지>





▲마포 수명정(水明亭)의 내력을 적은 이민구(李敏求)의 기문. 3대 승계자 박수현에게 써준 글.

▣해제


東州先生集은 芝峯 이수광(李睟光)의 둘째아들 東州 이민구(李敏求)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이수광(李睟光)은 수명정의 건립자 비천(泌川) 박이서(朴彛叙)의 친구이다. 이민구는 비천의 아들 대호(大瓠) 박로(朴𥶇)와는 친구가 된다. 두 집안이 대(代)를 이어 세교(世交)를 했다. 수명정은 이민구가 자주 찾는 마포 제일의 정자로써 벗의 아들인 초정(草亭) 박수현(朴守玄)에게 정자의 내력을 적어 친근히 써준 기문(記文)이다. 이 때 그가 지은 시 2편이 문집에 함께 실려있다.
마포 수명정(水明亭)의 1대 건립자 이조참판 朴彛叙(박이서)는 소북 칠학사의 한 분이고, 2대 중축자 병조참판 朴𥶇(박로)는 소현세자의 스승이고, 3대 승계자 성균관사예 朴守玄(박수현)은 소북 팔문장의 한 분으로 詩와 거문고에 있어 당대 1인자였다. 이렇게 수명정은 대를 거듭하며 한양 사대부들이 자주 찾는 강변 제일의 사교 장소가 되었다.

<水明亭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東州先生文集≫ 卷之三○記



▲<二水亭> 鄭敾 作(1742). 마포 일대 모습. 수명정을 건립한 박이서의 동갑계 친구 漢陰 李德馨(이덕형)의 정자이다. 현재 사라진 마포 수명정의 모습을 가늠해 볼 그림이다. 수명정은 1616년(광해군 8) 건립되어 5대 승계자인 ≪韓琴新譜≫의 편저자 규재(奎齋) 박윤동(朴胤東)이 거주한 이후 1758년(영조 34) 靑莊館 이덕무(李德懋)가 水明亭에 거주하며 공부했다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東國輿圖 중 '도성도', 1800~1822年間作 추정, 47.0×66.0cm,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마포 주변 부분 확대


水明亭記 수명정기


漢濱地多形勝。升三浦之峯。試旋目而望焉。自銅津,露梁,瓦丘,龍山。下至玄石,西江,竹里。十數里間。其倍高臨深遙山近陼。平鋪闊遠之致大都一槩。而三浦居其中。猶登龍斷者罔市利。一游矚而上下之美盡焉。則漢濱之勝。三浦固已專之矣。


한강 물가에는 경치 좋은 곳이 많으니 삼포(三浦)의 봉우리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동작진(銅雀津), 노량진(露梁津), 와구(瓦丘), 용산(龍山)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현석(玄石), 서강(西江), 죽리(竹里)에 이르는 10 몇 리 사이 그 뒤에는 멀리 높은 산이 물 가까이에 있어서 멀리 넓게 펼쳐진 큰 도성이 대강 보이고 삼포가 그 가운데에 있어서 높은 언덕에 올라가면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고  한번 눈을 돌려 바라보면 위아래의 경치를 다 볼 수가 있어 한강가의 경치로는 삼포가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故處城市厭湫隘而樂間曠者。咸就以爲亭。接棟宇連榱題。疊起而對峙。俱擅有名。然而近水則地卑。不宜於遠望。有危墜之虞腥穢之臭。而射利喧鬨。日亂吾視聽。則擧大全者或病焉。


성시(城市)에 자리하여 낮고 협소한 곳을 싫어하여 넓고 트인 곳을 좋아하는 자들은 모두 이곳에다 정자(亭子)들을 지어서 기둥들이 서로 닿고 서까래가 이어져 마주하도록 겹쳐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물에서 가깝고 땅이 낮아서 멀리 바라보기에는 마땅하지 못하고 위태롭고 비린내가 날 염려가 있는데도 이익을 노리는 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날마다 내 눈과 귀를 어지럽혀서 큰 것만 들자면 혹 좋은 곳이라 할 수 없다.


獨水明亭。枕崇岑之麓。據衆丘之顚。三江滙其趾。雙島案其前。木覓,白嶽,負兒,馬鞍,砥柱,蠶巖,桂陽之山。始興之山。飣餖於左右。帆檣之翕集。市里之都會。閭閻閈閎之交錯列分。爲魚鱗爲蜂房。悉歸吾朝夕日用之觀。而諸亭之接棟宇連榱題者。又皆在於指顧之內。則水明亭爲第一於諸亭。當無異論矣。


그러나 유독 수명정(水明亭)만은 높은 산봉우리 기슭에 자리하여 여러 언덕의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삼강(三江)이 그 발꿈치를 감아돌고 쌍도(雙島)가 앞에 밥상처럼 놓여 있다. 목멱(木覓), 백악(白嶽), 부아(負兒), 마안(馬鞍), 지주(砥柱), 잠암(蠶巖), 계양(桂陽)의 산과 시흥(始興)의 산이 좌우에 괴어놓은 떡처럼 벌여 있고, 강에는 돛단배들이 모여들고 큰 도회를 이룬 마을의 대문이 어지럽게 줄지어 마치 물고기 비늘이나 벌집과 같은 풍경이 내가 아침저녁으로 항상 보는 경치이다. 또 여러 처마의 서까래와 현판(懸板)들이 맞닿은 정자들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여러 정자들 가운데서도 수명정이 제일이라는 데에 이론(異論)이 없다.


夫以漢濱之勝而三浦專其美。以諸亭之擅名而水明亭爲第一焉。則爲主人者必其得之天者全。優淸福保至樂。不數數於當世者之所能得以久專也。


대저 한강가의 경치로는 삼포(三浦)가 제일 아름답고 여러 정자들 가운데는 수명정이 제일 아름다우니, 주인이 반드시 자연 경관을 차지한 것은 청복(淸福)이 많고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으로 당세 사람 아무도 자주 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


始萬曆丙辰歲。吏部左侍郞泌川朴公實刱爲是亭。嗣子兵部左侍郞大瓠公增治垣屋。至其孫奉化君。舍縣紱而歸去之。今三世三十九年。結構日益牢。階庭日益修。基不以傾。業不以隳。豈不難哉。


처음 만력(萬曆) 병진년(1616)에 이부좌시랑(吏部左侍郞) 비천(泌川) 박공(朴公)이 이 정자를 창건하고, 사자(嗣子) 병부좌시랑(兵部左侍郞) 대호공(大瓠公)이 증축하고 그 손자 봉화군(奉化君, 草亭 朴守玄)에 이르러 현감 관직을 버리고 돌아오니, 이제 3세(世) 39년이 되었으니 그동안. 집 건물이 날로 더욱 튼튼해지고 뜰이 날로 손질되며 기초가 기울지 않고 가업(家業)이 떨어지지 않기란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嗚呼。宇宙。逆旅也。忽來而忽去。四嶽三塗。其姓不一。尙安以恒其有也。富貴無常也。秦之祈年,阿房。陳之結綺,臨春。隋之顯仁,汾陽,迷樓之屬。非不傑然巨麗。而曾未一瞬。荒墟壞墉。翦焉爲狐兔之區。尙安以恒其有也。而況於江干水滸一畝之宮。數椽之室。朝暮易主。閱人多矣。唯朴氏能世其守。堂構無虧。奉化君勉乎哉。


아아, 우주(宇宙)는 나그네가 머물다가는 여관과 같아서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는 존재요 사악(四嶽)과 삼도(三塗)는 그 성(姓)이 한둘이 아닌데 아직까지 안전하게 소유하고 있으며 부귀(富貴)는 덧없는 것이어서 진(秦)나라의 기년궁(祈年宮)과아방궁(阿房宮), 진(陳)나라의 결기각(結綺閣)과 임춘각(臨春閣), 수(隋)나라의 현인루(顯仁樓), 분양루(汾陽樓), 미루(迷樓) 등속이 우뚝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나 한 순간에 파괴되어 황폐해져 여우와 토끼가 사는 언덕이 되고 말았는데 수명정은 아직껏 항상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더군다나 강가의 몇 칸 되는 작은 정자는 아침 녁으로 주인이 바뀌기 쉬워 많은 주인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씨(朴氏)들은 여러 대 동안 잘 지켜 보존해서 건물이 훼손되지 않고 있으니, 봉화군(奉化君)은 힘써야 할 것이다.


天地無窮期而山川有定形。以定形而求無窮。奉化君之心。亦何所不至。奉化君旣保有是亭矣。惟早夜兢兢。規爲永久圖。遺之子若孫。以無替泌川,大瓠公之舊。庶其曰不棄其基。奉化君勉乎哉。以余嘗僑寓於是。固要余爲文紀之。因繫以詩。見詩集


천지는 무궁하고 산천(山川)은 형체가 정해져 있다. 형체가 정해져 있는 산천을 무궁하게 전하고자 하면 봉화군이 무슨 마음을 쓰지 못하겠는가. 종화군이 이미 이 정자를 보존해 온 것도 오직 아침저녁으로 조심스레 영구히 보존하기를 도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자손들은 비천공과 대호공의 옛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아마 정자 터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니, 봉화군은 힘쓸지어다. 내가 일찍이 잠시 그곳에 우거(寓居)하였다 하여 나에게 기문을 청하므로 이상과 같이 쓰고 시(詩)를 짓는다.


*출처 : [국역]忠簡公朴彛叙資料集



 


 


東州先生詩集 卷之十三○西湖錄二


 


水明亭移居   수명정으로 거처를 옮기다


 


長湖雲物翼曾楹        강의 경치 날개처럼 기둥 옆에 펼쳐지고


積水浮階永夜明        깊은 물은 높은 섬돌에 밤새 밝구나


每挹天光迷上下        매번 하늘빛 받아 위와 아래 모르겠는데


寧隨月色異陰晴        어찌 달빛 따라 어둡고 밝음 다르랴


孤槎曉接星河白        외로운 뗏목은 새벽에 밝은 은하에 닿고


一氣秋涵沆瀣淸        기운이 가을에 맑은 이슬[1] 머금은


棲泊暮年還有此        늘그막에 머문 곳에 도리어 이런 경치 있으니


世間何處是蓬瀛        세상 어디가 봉영(蓬瀛)이란 말인가[2]


 


 


 


東州先生詩集 卷之十三○西湖錄二


 


水明亭聯句體 수명정에서 연구체로 짓다


 


據曾阿。높다랗게 언덕에 자리 잡아


曠豁臨遙浸   광활하게 강물 내려다보네


邃可步三休   멀어서 쉬어야 오를 있고


高宜望六。높아서 천지 사방 바라볼 있네[3]


峽呀川北奔   벌어진 골짝 따라 물은 북으로 내닫고


峯西闖。울퉁불퉁 산은 봉우리가 서쪽으로 내밀었네


渚潤早潮肥   윤기 나는 물가에 아침 조수 불어나고


沙虛春雨。빈 백사장에 봄비 스미누나


澄宵素靄褰   맑은 밤에 아지랑이 걷히고


霽夕彤霞沁    저녁에 붉은 노을 스며드네


村畫雜丹靑   조잡한 그림 단청과 어우러지고


舟梭競織。배들이 다투어 종횡으로 오간다


蠶崖仙掌撑   잠두봉(蠶頭峯)[4] 선인장처럼 버텨서고


孔石獰牙噤   공석(孔石)[5] 억센 어금니처럼 막아섰네


奰屭巨靈威。힘찬 모습 거령(巨靈)의 위엄이고[6]


嶪峨厚載任   높이 솟은 것은 두터운 땅의 짐이네


重爻象習坎   거듭된 효가 습감의 상으로


尺五隣嚴禁   지척에 궁궐과 이웃했네[7]


地紀控長源   지세는 강과 닿았고


天光承下廕   하늘빛은 아래 그늘로 이어받네


苞桑記往圖   얽힌 뽕나무 도서에 기록되었고[8]


種李聞前讖   오얏 심은 도참설에서 들었네[9]


故國十年歸   십년 만에 고향 돌아와


新居數月賃   거처에 달간 들어 지내네


旅次寬。방과 나그네 거처로 넉넉하고


水火朋情。물과 불을 벗들에게 부탁하네


升旭晃晨扉   떠오르는 햇살 새벽 사립문에 빛나고


凊午枕。불어오는 바람 낮잠 자리에 서늘하네


翠蘇草腸抽   풀싹 돋아나 푸른빛 돌아오고


紅綻花胎。꽃망울 터져 붉게 물드네


大造旣陶甄   천지의 조화가 이미 만들어 냈으니


餘生且飯飮   남은 먹고 마시며 살아야지


芹蒿采沼沚   미나리와 쑥을 물가에서 캐고


醽醁取藏窨。맛난 술을 움막에서 얻네


心逸得浮游   마음 평안하니 유람 즐길 있고


跡疏違謗譖   찾아오는 발길 드무니 비방 면하네


雖親浩蕩鷗   비록 호탕하게 노는 갈매기와 친하지만


實懼宴安鴆   실로 연안(宴安)의 짐독(酖毒) 두렵구나[10]


勝事耿難忘   멋들어진 눈에 선해 잊을 없으니


衰途幸亦甚   늘그막에 다행한 일이 또한 많구나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오승준 정만호 (공역) | 2015








[1] 맑은 이슬 : 항해(沆瀣)는 깊은 밤중에 내리는 이슬인데, 도가(道家)에서는 이것을 수명(修命)의 약으로 먹는다. ≪열선전(列仙傳)≫에 “봄철에는 조하(朝霞), 여름철에는 항해를 복식(服食)한다.”라고 하였다.

[2] 세상 …… 말인가 :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갖추고 있으니, 여기 말고 신선 세계가 다시 어디에 있겠느냐는 말이다. 봉영(蓬瀛)은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병칭으로, 방장(方丈)과 함께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전하는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키며, 신선이 산다고 한다.

[3] 멀어서 …… 있네 : 수명정이 높은 곳에 있어서 오르기가 어렵지만, 조망이 좋다는 말이다. 삼휴(三休)는 세 번 쉰다는 말인데, 춘추 시대 초()나라의 영왕(靈王)이 스스로 왕위에 오른 뒤에 별궁을 지으면서 가운데에 높이가 30여 인()이나 되는 장화대(章華臺)를 지었는데, 이 누각에 오르려면 세 번 쉬어야 한다고 해서 삼휴대(三休臺)라는 이명(異名)으로 불리었다. 육침()은 미상인데, 상하(上下)와 사방(四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4] 잠두봉(蠶頭峯) : 서울 양화(楊花) 나루 동쪽에 있는 언덕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한성부(漢城府)>에 “잠두봉은 도성 밖 서쪽 10, 양화도(楊花渡) 동쪽 언덕에 있는데, 민간에서 가을두(加乙頭)라고 부르며, 또 용두봉(龍頭峯)이라 이름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5] 공석(孔石) : 공암(孔巖). 양천 허씨(陽川許氏)의 시조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양천 탑산 기슭의 바위 동굴이다. 공암은 양천(陽川)의 별칭으로 현재 서울 양천구(陽川區) 가양동(加陽洞) 지역이다. 고려 태조(太祖) 때 허선문(許宣文)이 처음 봉해진 뒤로 양천 허씨의 본관이 되었다. 공암진(孔巖津)은 양천(陽川) 북쪽 5리(里)의 북포(北浦), 즉 고양(高陽)의 행주진(幸州津)을 말한다. 바위가 물 복판에 서 있고 그 속에 구멍이 나 있으므로 그렇게 불려졌다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0 陽川縣≫.

[6] 힘찬 …… 위엄이고 : 수명정 주위의 빼어난 지형을 읊은 것이다. 거령(巨靈)은 황하(黃河)의 신 이름이다. 황하의 물줄기가 화산에 가로막혀 휘돌아 갈 수밖에 없자, 거령이 손을 들어 산의 머리를 쳐서 둘로 쪼갠 다음에 그 사이로 직진해서 흘러가게 했다는 거령비희(巨靈贔)의 전설이 후한(後漢) 장형(張衡)이 지은 <서경부(西京賦)>의 주()에 나온다.

[7] 거듭된 …… 이웃했네 : 수명정 주위의 지형이 험난하면서 궁궐과 가깝다는 말이다. 습감(習坎)은 ≪주역≫ 감괘(坎卦)를 말하는데, ( )이 중복되었기 때문에 습감이라고 한다. <감괘 단()>에 “하늘의 험함은 올라갈 수 없고, 땅의 험함은 산천과 구릉이다. 그래서 왕공이 시설을 험하게 해서 나라를 지키나니, 험한 이치를 때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그 뜻이 크다고 할 것이다.〔天險, 不可升也, 地險, 山川丘陵也. 王公設險, 以守其國, 險之時用, 大矣哉.〕”라고 하였다.

[8] 얽힌 …… 기록되었고 : 수명정 근처에 뽕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포상(苞桑)은 본래 ≪주역≫ <비괘(否卦) 구오(九五)>에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무더기로 난 뽕나무에 매어놓은 것처럼 안정될 것이다.〔其亡其亡, 繫于苞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9] 오얏 …… 들었네 : 수명정 주변에 오얏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2 <제국부(諸國部) 국도(國都)>전 왕조 때에 ≪도선도참≫에 의거하여 한양에 오얏나무를 심어서 그 기운을 눌렀으므로 종리촌이라고 한다.〔前朝時, 用道詵圖讖種李於漢陽以厭之, 故曰種李村.〕”라는 말이 있다.

[10] 비록 …… 두렵구나 : 수명정 부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기에 좋지만, 안일에 빠질까 염려된다는 말이다. 짐새의 깃을 술에 담가 마시면 그 독이 사람을 죽이는데, ≪춘추좌씨전≫ 민공(閔公) 원년 기사에 안일에 빠지는 것은 짐독과 같은 것이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宴安酖毒, 不可懷也.〕”라고 하였다.





≪한금신보≫와 수명정의 내력을 추적해 가다 보면, 한 집안의 五代에 걸친 사연과 마주치게 된다. 수명정은 박이서, 박로 두 부자가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논쟁으로 혼탁한 조정에서 물러나 ‘더러운 자취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에서 ‘물가에 밝게 비추다’란 뜻의 ‘수명(水明)’이란 시구를 취해 한강이 비치는 곳에 세운 정자였다.

당대 명사(名士)들이 찾던 마포 제일의 사교의 장소였다. 주요 방문객으로 一松 沈喜壽(심희수), 仙源 金尙容(김상용), 竹窓 李德泂(이덕형), 愚伏 鄭經世(정경세), 月沙 李廷龜(이정구), 滄洲 尹知敬(윤지경), 石樓 李慶全(이경전), 澤堂 李植(이식), 汾西 朴瀰(박미), 東州 李敏求(이민구), 疎庵 任叔英(임숙영), 谿谷 張維(장유), 雪峯 姜栢年(강백년), 竹堂 申濡(신유), 白湖 尹鑴(윤휴), 恬軒 任相元(임상원), 白閣 姜鋧(강현), 松谷 李瑞雨(이서우), 星湖 李瀷(이익), 西坡 吳道一(오도일), 三淵 金昌翕(김창흡) 등이 그들이다.


수명정은 한 집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여기 살았던 역대 다섯 주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담은 장소였다.
1대 朴彛叙(박이서)는 소북을 대표하는 칠학사(七學士)의 한 분으로 명나라 사행길에 목숨을 잃은 충신(忠臣)이었다. 시호가 충간(忠簡)이다. 박이서에게 수명정은 외지(外地)로, 사지(死地)로 떠나면서 친구들과 이별했던 ‘전별의 장소’였다.
2대 朴𥶇(박로)는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인조(仁祖)의 유일한 對淸外交(대청 외교) 사신이자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스승이었다. 시호가 문헌(文獻)이다. 박로에게 수명정은 볼모지 심양에서 돌아와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만남의 장소’였다.
3대 朴守玄(박수현)은 천재 시인이자 학자이면서 부친의 누명으로 출사길이 막혔던 한 많은 성균관 거문고 선생이었다. 박수현에게 수명정은 정적들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은둔의 장소’였다.
4대 朴紳(박신)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과 함께 성균관 경서교정관(經書校正官)이었으며 유가(儒家) 경전을 바로잡듯 가문을 바로 세운 분이다. 박신에게 수명정은 종친들과 벗들을 초대하여 친목을 다지던 ‘연회의 장소’였다.
5대 朴胤東(박윤동)은 엄혹한 정쟁(政爭)의 시대에서 가문과 자신을 지키며 수양하던 한양 사대부의 대표 선비였다. 박윤동에게 수명정은 거문고 명인들을 초대하여 배우고 연주하던 ‘수련의 장소’이자 ‘공연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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