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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Buchmesse > LBM 2017 전시도서 > 죽계지(竹溪志)[밀양박씨]

 
죽계지(竹溪志)[밀양박씨]
상품명 : 죽계지(竹溪志)[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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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 2017 라이프치히 도서전
     
 

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原本 書誌
-도서명 : 竹溪志
-편저자 : 周世鵬(朝鮮) 編纂
-판사항 : 木板本
-발행사항 : 未詳
-형태사항 : 3冊 : 四周單邊, 半葉匡郭:22.4×18cm, 有界, 10行 20字 大黑口, 上下花紋魚尾 ; 32.9×22.4cm

*본 도서는 밀양박씨 가문의 심법[가학]의 근원이 되는 고려말 大提學 朴允文(박윤문)과 아들 5형제 관련 기록문헌이다.

≪죽계지≫는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이 문성공 안향의 본향인 풍기군 순흥의 죽계에 건립하게 된 내력을 기록한 책이다. 고려말 여러 형제들이 함께 과거 급제한 가문을 소개한 '賀竹溪安氏三子登科詩序'에 밀성박씨 박밀양, 박대양, 박삼양, 박계양 4형제가 소개되고 있다.  모두 대제학 박윤문의 아들로 박대양은 후에 진현관 대제학이 되면서 고려말 성리학의 일가를 확립하였다. 가정 이곡, 목은 이색의 한산이씨 가문과 특히 교유가 깊었다. 새로운 나라 조선이 개국하자 그 후손들은 본향인 밀양으로 낙향하여 후진양성를 하며 후일을 도모하였다. 점필재 김종직이 그 문하생이기도 하다. 중종 때 사림이 대거 등용될 때, 박윤문의 8대손 돈계 박률이 대과 2등 급제로 첫 출사하면서 밀양박씨 제일의 명문가로 커가게 된다. 수명정 1대 건립자 비천 박이서가 바로 박률의 아들이다. 정조(正祖) 때 북학(北學)의 대학자였던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도 그 후손이다.



<세계도>


▣영인본 견본

<비단 표지>





▲密城朴氏 박밀양[일명 僯], 박대양, 박삼양, 박계양[일명 啓陽, 개명 돈지(惇之, 敦之)] 4형제


▣해제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에 있는 白雲洞書院[소수서원]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白雲洞書院은 풍기군수로 있던 周世鵬(1459-1554)에 의해 1543년(중종 38)에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安珦을 제향하였으며 이후 1544년에 安軸과 安輔를 추배하였다. 1546년(명종 1)에 安珦의 후손인 安玹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서원의 운영과 유지에 필요한 제반 경제적 기반을 갖추는데 주력하였으며‚ 이어 풍기군수로 부임한 李滉의 건의로 1550년 ‘紹修書院’으로 賜額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竹溪志≫는 서원이 창건된 다음 해인 1544년에 편찬되었는데‚ 〈1〉 <古 1360-7A>본은 跋文의 연대가 1548년이고 또 책의 내용중에 1550년 사액된 이후의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이 완성된 것은 사액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03년(순조 3)에 安珦의 후손인 安時中 등이 ≪竹溪志≫를 3책으로 간행하였는데‚ 본서가 그때 간행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周世鵬의 본관은 상주이며 자는 景游‚ 호는 愼齋이다. 1522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홍문관·성균관 등 주로 학술기관에서 관직을 맡았다. 특히 지방관 재직시 敎學振興을 통한 敎化에 힘써 白雲洞書院·首陽書院 등을 창건하였고 呂氏鄕約의 시행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본서의 내용을 보면‚ 책의 맨 앞에 周世鵬이 쓴 서문에서 白雲洞書院의 창건 경위를 밝히고 있으며 이어 <白雲洞文成公廟記>가 있다. 권1은 行錄으로 <文成公傳> <文貞公傳> <鷄林府尹文敬公安先生墓地銘> 등 白雲洞書院에 제향되어 있는 安珦·安軸·安輔 등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또 安軸이 지은 <竹溪別曲>을 비롯한 여러 시문들이 실려 있다. 권2에는 安珦 등과 관련된 각종 서신문·祭文 등과 周世鵬 자신이 지은 <道東曲><六賢歌><儼然曲> 등 長歌와 <君子歌> 등의 短歌가 기록되어 있다. 또 <上監司沈公書> 에는 李滉이 풍기군수로 있을 때에 관찰사 沈通源에게 白雲洞書院에 편액과 田土를 하사할 것을 주청하도록 청한 글이 기록되어 있고‚ <白雲洞紹修書院記>에는 安珦과 그 가문이 白雲洞 지역에 世居하면서 학문과 덕으로 이름이 높았음을 말하고 周世鵬이 서원을 창건하고 안향을 제향하게 된 경위와 사액을 받은 과정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그 밖에 <豊基俗尙記> <豊基移建學校記> <白雲洞次朱文公白鹿洞賦> 등의 글과 <安文成公春秋大享圖> <祭式> <依圖祭用雜物式> 등이 기록되어 있다. 권3에서 <尊賢錄>에는 周濂溪·程頤·程顥·張敬夫 등을 위해 朱喜가 지은 여러 祠記와 <壯節亭記> 등의 글‚ 그리고 馮夢得이 지은<考亭書院上樑文>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서원들의 상량문과 각종 기록 등이 실려 있다. <學田錄>에는 먼저 <建寧府崇安縣學田記> 등 중국 서원의 學田에 관한 내용을 먼저 기록하고 이어 白雲洞書院에 學田이 설치된 과정 등을 기록하였다. 권4의 <藏書錄>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국 서원들의 藏書에 관한 내용들을 먼저 적고 이어 白雲洞書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적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권5의 <雜錄>에서는 朱喜가 창건한 白鹿洞書院에 관한 기록들과 주희가 지은 <白鹿洞賦> 등이 실려있으며‚ 또 주희의 “學求聖賢鳶飛魚躍”의 여덟 글자를 모사하고 그에 대한 周世鵬 자신의 평을 기록하였다. 제 6권의 <別錄>에서는 爲學·立敎·闢邪 등으로 조목을 나누어 ≪論語≫ ≪孟子≫ ≪禮記≫ 등의 경서에서 관련되는 내용을 뽑아 정리하였다. 〈2〉<古 1360-7>본은 1803년(순조 3)에 安時中이 가냉한 죽계지의 내용을 安珦의 후손인 安昞烈이 3권 1책으로 줄여서 重刊한 것으로 규장각에 있는 <奎 6205>본은 본서를 다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자세한 내용은 <奎 6205>본의 해제 참조. 〈3〉<가람 古 181.11-J869j>본은 영본으로 제 1책에는 〈1〉<古 1360-7A>본의 제 1책 중 序文과 行錄의 내용‚ <安文成公春秋大享圖> 등이 실려 있고 제 2책에는 〈1〉<古 1360-7A>본의 제 1책 중 <豊基俗尙記><白雲洞次朱文公白鹿洞賦> 등의 잡저와 제 3책의 <雜錄><別錄>의 내용이 실려 있다. 〈4〉<一蓑 古 181.11-J869j>본은 영본으로 〈1〉<古 1360-7A>본의 내용 중 제 2책에 해당하는 <尊賢錄><學田錄><藏書錄>의 내용만 실려 있다. (강문식)[출처 :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竹溪志≫ 竹溪行錄


 


賀竹溪安氏三子登科詩序 李穡


죽계안씨 세 아들의 등과 축하시 서문[1] 이색(李穡)


 


竹溪謹齋先生之嗣今密直簽書公。穡同年進士也。嘗曰。吾先君三昆季。由科第顯。致位宰相。而吾子三人。又皆僥倖綴末第。此天也。吾族祖文成公之孫政堂公有三子。又登科。何天之厚吾安氏之至此耶。文成公事忠烈王。興學敎。作成人材。文章之盛。近古未有。猶且歷三世而後。其孫之登科。則其受報也遲矣。吾先君雖曰積德行義。而吾未有以承之。而吾之子登科也如是之亟。豈非天耶。天道福善禍淫。而未有無其實而得其名。則吾祖考之德行。上合天心下澤子孫者。安可不播之聲詩。以爲後學勸哉。然不請予筆者久矣。


 


죽계(竹溪) 근재(謹齋)선생의 아들인 지금 밀직 첨서(密直簽書)는 이색(李穡)과 동년(同年) 진사이다.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내 선친 삼 형제가 과거를 하고 현달하여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고 또 내 자식 삼 형제가 모두 요행히 과거에 들어갔으니, 이는 하늘이 준 것이다. 내 족조(族祖) 문성공(文成公)의 손자 정당공(政堂公)의 아들 삼 형제가 또 과거에 올랐으니[2], 하늘이 우리 안씨만을 후하게 한 것이 이 정도에 이르렀는가. 문성공은 충렬왕을 섬겨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양성하였고 근고에 없는 훌륭한 문장을 지니셨는데도 오히려 3대를 지나서 그 손자가 과거에 올랐으니 그 갚음을 받은 것이 늦어졌다 하겠다. 그러나 내 선친이 비록 덕을 쌓고 의()를 행했다고 하지만 내가 계승한 것이 없는데, 내 자식이 과거에 오른 것이 이와 같이 빠르니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은 착한 자를 복되게 하고 음란한 자에게 화를 내리는 법이니, 그 실상이 없고서 그 이름을 얻는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 조고의 덕행이 위로 천심(天心)을 감동시켜 자손에게 혜택을 내린 것이니, 어찌 시문(詩文)으로 전파하여 후학의 권장이 되게 할 만하지 않은가.


하였는데, 그러나 그 뒤로 나에게 글을 청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一日。仲氏叔氏來曰。以吾三子登科之故。國家廩給吾母。又封宅主以寵異之。於是而不聲於詩。是慢也。且子之道。惟顯父母之是急。此吾等所以望先生之文也。


 


하루는 그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와서 말하기를,


“우리 삼 형제가 과거에 올랐기 때문에 나라에서 우리 모친에게 녹을 주고 또 택주(宅主)로 봉하여 영광되게 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시로 노래하지 아니하면 이는 태만한 일입니다. 또 자식의 도리는 오직 부모를 현양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선생의 글을 바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予惟光廟設科之後。至于令未嘗罷。而父子兄弟聯中者。夫豈少哉。吾病也。不能博考。子其訪之古老。求之史氏。錄之以來。吾將爲子序之。


 


이에 내가 말하기를,


“광종(光宗)이 과거를 창설한 이래로 지금까지 한번도 파한 적이 없었으니, 부자 형제가 내리 과거에 오른 자가 어찌 적겠는가. 나는 병이 들어서 넓게 상고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이 고로(古老)에게 물어보고 역사서에서 찾아 기록해 오기를 바라네. 내가 장차 그대를 위하여 서문을 짓겠네.


하였다.


 


未幾。安氏又來曰。吾不敢遠稽諸古。爰自忠烈王以後。得上黨韓中贊公而下十六家耳。雖多何益。願先生之敎焉。予曰。宰相金覲有子三人登科。曰富佾。曰富軾。曰富儀。是已。平章閔公珪有子五人登科。曰康鈞。曰迪鈞。曰光鈞。曰仁鈞。曰良鈞。是已。平章任儒有子三人登科。曰景肅。曰景謙。曰景純。是已。贈僕射李翮有子三人登科。曰瑱。曰▦。▦。是已。檢校政丞金台鉉有子三人登科。曰光轍。曰光載。曰光輅。是已。其他不可悉考也。予之所得淸州韓氏。曰謝奇。曰謝謙。曰譜。咸陽朴氏。曰莊。曰理。曰季元。晉陽朴氏。曰仁幹。曰仁祉。曰仁祐。竹州朴氏。曰文華。曰孝修。曰松生。化平盧氏。曰承綰。曰承肇。曰承愼。是已。今之世所共知者。金海金氏。曰東陽。曰光閏。曰廣元。密城朴氏。曰密陽。曰大陽。曰三陽。曰季陽。曲城廉氏。曰國寶。曰興邦。曰廷秀。昌寧成氏。曰石璘。曰石瑢。曰石。興安裵氏。曰中甫。曰中誠。曰中有。曰中倫。全州柳氏。曰克綱。曰克恕。曰克齊。丹山禹氏。曰洪壽。曰洪康。曰洪得。又有異母者。月城李氏。陽川許氏。回鶻偰氏。


 


그후 며칠이 안 되어 안씨가 또 와서 말하기를,


“저희들이 감히 멀리 옛일까지는 상고하지 못하고 우선 충렬왕으로부터 상당(上黨) 한중찬공(韓中贊公) 이하 열여섯 집을 찾았습니다. 많은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부디 선생께서 가르쳐주십시오.


하므로, 내가 이르기를,


“재상 김근(金覲)의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올랐으니 부일(富佾)ㆍ부식(富軾)ㆍ부의(富儀)이고, 평장(平章) 민규(閔珪)공의 아들 오형제가 과거에 올랐으니 강균(康鈞)ㆍ적균(迪鈞)ㆍ광균(光鈞)ㆍ인균(仁鈞)ㆍ양균(良鈞)이고, 평장(平章) 임유(任儒)의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올랐으니 경숙(景肅)ㆍ경겸(景謙)ㆍ경순(景純)이고, 증복야(贈僕射) 이격(李翮)의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올랐으니 진()ㆍ▨ㆍ▨이고, 검교정승(檢校政丞) 김태현(金台鉉)의 아들 삼형제가 과거에 올랐으니 광철(光轍)ㆍ광재(光載)ㆍ광뢰(光輅)이네. 그 나머지는 다 상고할 수 없네.


내가 아는 바로는, 청주한씨 사기(謝奇)ㆍ사겸(謝謙)ㆍ보() 삼형제, 함양박씨(咸陽朴氏) ()ㆍ리()ㆍ계원(季元) 삼형제, 진양박씨(晉陽朴氏) 인간(仁幹)ㆍ인지(仁祉)ㆍ인우(仁祐) 삼형제, 죽주박씨(竹州朴氏) 문화(文華)ㆍ효수(孝修)ㆍ송생(松生) 삼 형제와 화평노씨(化平盧氏) 승관(承綰)ㆍ승조(承肇)ㆍ승신(承愼) 삼형제이네. 지금 세상에서 모두 아는 이로는 김해김씨(金海金氏) 동양(東陽)ㆍ광윤(光潤)ㆍ광원(廣元) 삼형제, 밀성박씨(密城朴氏) 밀양(密陽)ㆍ대양(大陽)ㆍ삼양(三陽)ㆍ계양(季陽)[3] 사형제, 곡성염씨(曲城廉氏) 국보(國寶)ㆍ흥방(興邦)ㆍ정수(廷秀) 삼형제, 창녕성씨(昌寧成氏) 석린(石璘)ㆍ석용(石瑢)ㆍ석인() 삼형제, 흥안배씨(興安裵氏) 중보(中甫)ㆍ중성(中誠)ㆍ중유(中有)ㆍ중륜(中倫) 사형제와, 전주유씨(全州柳氏) 극강(克綱)ㆍ극서(克恕)ㆍ극제(克齊) 삼형제, 단산우씨(丹山禹氏) 홍수(洪壽)ㆍ홍강(洪康)ㆍ홍득(洪得) 삼형제가 있네. 또 특이한 어머니로서 월성이씨(月城李氏)ㆍ양천허씨(陽川許氏)ㆍ회골설씨(回鶻偰氏)가 있네.”


하였다.


 


嗚呼。此足以見國家培養風俗之美。而三韓人物之盛。雖不盡在於科第。然由科第之盛。而一國政理之氣像。益著而不可掩矣。吾東方在虞夏時。史不傳。不可考。周封殷大師箕子。則其通中國也。蓋可知已。雖其封之。又不臣之。重其受禹範。爲道之所在也。


 


, 이로써 국가가 아름다운 풍속을 배양하였음을 엿볼 수 있으며, 삼한(三韓) 인물의 번성함이 과거에 다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가 번성함으로 말미암아 한 나라 정치의 기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이 우하(虞夏) 시대에 있었다고 하나 역사가 전하지 않아 상고할 수 없고, 주 나라가 은 태사(殷太師) 기자(箕子)를 봉하게 되고서 중국과 통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비록 봉했지만 신하로 여기지 아니하였으니, 우범(禹範)을 받은 것을 중히 여긴 때문이며, 또 그곳에 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大師之祠。在平壤府。國家祀之彌謹。則大師之化我東人也深矣。豈雙冀王融之淺淺而爲我文風之始也哉。雖然。雙氏王氏所以誘掖後生者亦至矣。所以榮華夸耀聳動一時。使愚夫愚婦皆歆科擧之爲美。而勉其子弟以必得之。未必不自二人始也。是以。薰陶漸債[4]。家家讀書取第。至於三子五子之俱中焉。雙氏王氏之功大矣。今將歌詠安氏也。而及於雙氏王氏者。蓋飮食必祭始爲者之法也。嗚呼。人苟得志而忘其本。獨何心哉。


 


태사의 사당이 평양부에 있어 국가에서 경건하게 제사를 올리고 있으니, 태사가 우리나라 사람을 감화시킨 것이 매우 깊었다. 어찌 쌍기(雙冀)ㆍ왕융(王融)의 천박한 무리가 우리 문풍(文風)의 시작이 된 것에 비하랴. 그러나 쌍씨ㆍ왕씨가 후생을 계도한 공도 지극하다 하겠다. 그 영예가 한 시대의 선망이 되어 어리석은 남녀들로 하여금 모두 과거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게 하여 그 자제들에게 기필코 얻도록 힘쓰게 하였으니, 이는 사실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로써 훈도되고 감화되어 집집마다 글을 읽어서 과거를 얻었고, 삼형제 오형제가 함께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쌍씨ㆍ왕씨의 공이 크다 하겠다. 지금 장차 안씨 가문의 영예를 노래하면서 쌍씨ㆍ왕씨에 미치는 것은 대개 음식을 할 때에 반드시 처음 만든 자에게 제사하는 법과 같은 것이다. , 사람이 뜻을 얻고 나면 그 본을 잊는다 하는데 그 마음이 도대체 어떤 것일까.


 


謹齋先生諱軸。字當之。政堂公諱輔。字員之。密直公名輯。字穆之。簽書公子。長曰仲溫。軍簿判書。次曰景良。在[5]獻納。次曰景恭。典理佐郞。季曰景儉。習擧業云。


 


근재(謹齋) 선생의 이름은 축(), 자는 당지(當之)이다. 정당(政堂)공의 이름은 보(), 자는 원지(員之)이다. 밀직(密直)공의 이름은 집(), 자는 목지(穆之)이다. 첨서(簽書)공의 아들로서 장자 중온(仲溫)은 군부 판서(軍簿判書)이고, 둘째 경량(景良)은 좌헌납(左獻納)이고, 셋째 경공(景恭)은 전리 좌랑이고, 넷째 경검(景儉)은 과거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蒼龍戊午四月日。


 


창룡(蒼龍) 무오년(1378) 4월 일.


  


*출처 : 고전번역원






[1] 죽계안씨 …… 서문 : 《牧隱文稿》卷8, 《東文選》 卷86에 수록되어 있다.
[2] 정정당공(政堂公)의 …… 올랐으니 : 정당문학 안목(安牧 1290~1360)의 아들 원숭(元崇)ㆍ원형(元衡)ㆍ원린(元璘) 삼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이른다. 안목의 자는 익지(益之), 호는 겸재(謙齋)이다. 1315년 급제하여 밀직부사(密直副使)ㆍ서연시독관(書筵侍讀官)ㆍ통헌대부정당문학진현관대제학(通憲大夫政堂文學進賢館大提學)을 지냈고 순흥군(順興君)에 봉해졌다. 시호가 문숙(文淑)이다. 부인은 화평군부인(化平郡夫人) 김씨(金氏)로 첨의중찬(僉議中賛) 문정공(文正公) 쾌헌(快軒) 김태현(金台鉉)의 딸이다. 《墓碣銘 ; 奇宇萬》
[3] 계양(季陽) : 일명 계양(啓陽)이다. 훗날 돈지(惇之, 일명 敦之)로 개명하였다.
[4] : ‘漬’의 오기로 보인다. 《牧隱文稿》 卷8 序와 《東文選》 卷86에는 ‘漬’로 되어 있다.
[5] 在 : ‘左’의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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