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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Buchmesse > LBM 2017 전시도서 > 남한일기(南漢日記)[박로]

 
남한일기(南漢日記)[박로]
상품명 : 남한일기(南漢日記)[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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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책(포갑포함), 2017 라이프치히 도서전
     
 

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原本 書誌
-도서명 : 南漢日記
-편저자 : 石之珩(석지형, 1610-?)[朝鮮]
-판사항 : 筆寫本
-발행사항 : 未詳
-형태사항 : 不分卷4冊 : 左右雙邊 19.5 x 13.5 cm, 烏絲欄, 10行22字 註雙行, 上黑魚尾 ; 26.5 X 17.5 cm
-주기사항 : 後識: 崇禎丙子後再癸酉(1753)留守兼守禦使李箕鎭(1687-1755)謹識
-현소장처 :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본 도서는 수명정 2대 중축자 大瓠(대호) 朴𥶇(박로)[1584~1643] 관련 기록문헌이다.

병자년(인조 14, 1636) 12월. 청나라 태종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기습적으로 압록강을 넘어 쳐들어 오자 그 예봉을 저지코자 박로를 급파한다. 네번째 사행이다. 목적은 타협보다 진격을 늦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군은 이미 개성을 지났다. 급보로 仁祖(인조)의 피신을 알리고 자신은 사신이면서 포로가 되어 두차례나 협상을 진행하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남한산성으로 인조가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에 주둔한 청나라 진영으로 찾아가 다시 요구했다. “내가 임금께 복명해야 하니, 성으로 들어가게 허락해 주시오”. 청군이 허락하지 않자 40여일간 성 아래에서 사신의 節旗[깃발]을 들고 서리와 눈을 맞으며 노숙하며 시위를 했다. 남한일기는 바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있을 때의 행적을 석지형이 기록한 일기이다.


𥶇    字魯直瓠。參判。丙子被拘南漢城下。持節處雪中四旬。


박로    이서의 아들. 자는 로직. 호는 대호. 참판. 병자년 남한산성 아래에서 구금되어 節旗를 잡고
눈 속에서
40일을 보냈다.


≪東國氏族攷≫


47일만에 인조가 굴욕적으로 항복하며 성문을 나오자 박로는 어가를 모시고 환도했다. 昭顯世子(소현세자)가 인질로 잡혀가는 仁祖에게 박로는 마지막 신하요, 외교관이었다. 인조는 직접 박로를 불러 侍講院의 世子賓客으로 삼아 세자 보필을 부탁하여 세자와 함께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 일기는 박로가 기록한 관직일기 ≪凝川日錄(응천일록)≫(7책)의 다음을 잇는 일기라 하겠다. 이어서 8년간의 ≪昭顯
瀋陽日記(소현심양일기)≫[일명 講院日記]가 그 뒤를 잇는 것이다.


*바로 잡습니다 : 일부 백과사전에 ≪凝川日錄(응천일록)≫의 저자가 朴鼎賢(박정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본 도서전 고문헌 연구를 통해 살펴본 결과, ≪한금신보≫의 저자 응천후인 박윤동(朴胤東)의 증조부 대호(大瓠) 박로(朴𥶇)의 일기로 확인되었다. 일기는 박로가 증광시에 급제하여 대기발령 기간이던 기유년(광해군 1, 1609) 11월 28일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3번째 날짜가 12월 13일 자신의 첫 관직인 승문원(承文院)으로 간택된 내용이고, 6번째 날짜가 12월 26일 부친 박이서(朴彛叙)가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된 내용이다. 응천일록 7권의 마지막 일기는 그가 심양으로 추신사[3차 사행]로 떠나기 직전인 을해년(인조 13, 1635) 8월 13일짜이다.
일기의 대부분은 조보(朝報, 승정원에서 육조관청에 배포된 정사 및 장계 요약본)를 근간으로 하였기에 조보를 베껴쓴 ‘朴鼎賢家日記’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인용된 ‘박정현가일기’와 상당 부분 다르다. 특히 소북인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점, 인조 반정이 일어난 계해년(광해군 15, 1623) 3월부터 5월까지의 민감한 일기가 모두 빠져 있다. 이 때 박로는 사판(仕版)에서 삭제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어서 갑자년(1624), 병인년(1626) 연이은 무고로 옥사를 치르게 되는 내용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미년(1631) 3월 옥사 때는 옥천인(沃川人) 조흥빈(趙興賓)의 고변으로 홍성징이 심문을 받을 때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박광선(朴光先)을 만났더니, 회양(淮陽)에서 유배지가 변경되어 나올 때에 부사 조찬한(趙纘韓)이 만류하여 함께 유숙했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옛 임금을 잊을 수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박로(朴𥶇)가 눈물을 흘리면서, ‘……’라고 말했다.” [朴光先。則自淮陽移配出來時。府使趙纘韓勸留同宿。垂淚而言曰。不能忘舊主。且言朴𥶇流涕而言云云。]”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유독 박로가 했다는 말은 빠져있다. 민감한 내용이거나 거짓된 내용이거나 밝히기 곤란한 것이기에 자신의 일기에서 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도 박로는 무죄로 풀려 났다. 이번을 기회로 ≪凝川日錄(응천일록)≫의 저자를 朴𥶇(박로)로 바로 잡는다.

▣영인본 견본


<비단 표지>







▲남한산성 호종록에 박로의 사촌 박심, 그 아들 종질 박수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초정 박제가의 직계 선대조들이다.


▣해제

석지형(石之珩)이 쓴 『남한일기(南漢日記)』는 필사본(筆寫本) 4책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날로부터 항복하기까지의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부록으로 이기진(李箕鎭)의 후지(後識), 그리고 호종록(扈從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국내에 여러 이본이 존재하나 가장 완벽한 필사본으로 볼 수 있다.


*상세정보
▶편저자사항
석지형(石之珩, 1610-?)은 본관이 화원(花園)이며, 자는 숙진(叔珍)이고, 호는 수현(壽峴)이다. 아버지는 석경하(石擎廈)이다. 1633년(인조 11)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뒤에 형조좌랑(刑曹佐郞)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다. 호란 후 횡성현감(橫城縣監)으로 재직 중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곧바로 풀려나와 오랫동안 강화부교수(江華府敎授)를 지냈으며 현종 때 개성부교수를 지냈다.
1653년(효종 4) 시사(時事)를 소론(疏論)하고 『주역』의 내용을 확대 해석한 『오행귀감(五行龜鑑)』을 왕에게 바쳐 『역경』·『심경』과 호피(虎皮)를 하사받았다. 저서로는 문집인 『수현집(壽峴集)』 과 『남한일기(南漢日記)』가 있다.


▶구성 및 내용
『남한일기』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날로부터 항복하기까지의 일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총 4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책은 병자년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 2책은 12월 20일 기시(巳時)부터 12월 26일까지, 3책은 12월 27일부터 정축년 1월 5일까지, 4책은 1월 6일부터 1월 30일까지의 기록과 이기진(李箕鎭, 1687-1755)의 후지(後識), 그리고 호종록(扈從錄)이 수록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책은 1636년 12월 14일 인조가 수구문을 나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때부터 20일까지 7일간의 일기이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간 직후에 호종신(扈從臣)들의 주장에 따라 강화도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수성(守城)을 하다가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남한산성에 머물게 된다. 이후로 인조를 중심으로 한 대신간의 다양한 논의가 이어진다. 즉, 호진(胡陳)에서 사신을 보내면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강화와 척화에 대한 의견 대립, 군량 문제에 대한 걱정, 인조의 성 방비하는 군사 위로, 전공을 세운 군사에 대한 상급 논의 등이 이루어진다.
제2책은 12월 20일 기시부터 26일까지로 피위(被圍)된 속에서의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 갈등 속에서 군량 부족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즉, 군량 부족으로 인한 군사 호궤(犒饋)에 대한 인조의 걱정, 강화도의 상황에 대한 궁금증, 근왕병(勤王兵)이 빨리 이르지 않음에 대한 논의, 화의(和議)가 진행됨에 따른 군사들의 동요, 민가를 헐어 성곽을 보강할 수밖에 없는 처지, 대소전투가 시작됨에 따라 전공을 군사들의 상급(賞給) 논의, 근왕병 활동의 소극적인 것에 대한 논란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제3책은 12월 27일부터 1637년 1월 5일까지로 세찬(歲饌)의 부족과 대신간의 갈등 그리고 소규모의 근왕병의 전투들이 서술되어 있다. 대신의 갈등에 대한 기록은, 근왕병과 협력하여 전투할 방책 논의, 성안 백성들의 식량 고갈에 따른 논의, 진척없는 화(和)·전(戰) 논의, 호진에 세시(歲時) 인사를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호진에 청 황제가 도달하였는지에 대한 논란, 호진에 보낼 문서 형식에 대한 최명길(崔鳴吉)과 김상헌(金尙憲)의 대립, 호진에서 보내온 글에서 황제 칭호에 대한 대신간의 의견 대립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제4책은 1월 6일부터 30일까지로 강화가 실함(失陷)된 소식을 접하고, 김상용(金尙容) 등이 자분(自焚), 이어 인조가 항복하고 환도할 때까지의 기록이다. 적진에 보낼 답서의 시안을 보고 김상헌이 찢어버린 일, 사신이 오감에 따라 국서의 왕래가 이어지고 국서의 표현에 대한 논의가 분분해짐, 척화신을 요구하는 호진의 요구에 대응책을 논의, 척화신을 보내는 것이 부당하다는 상소가 이어짐, 강화도 함락에 애통해 하는 인조와 대신, 출성을 결정하고 나서 이에 대한 분노의 표현, 출성 시 복생과 거둥에 대한 논의, 인조의 척화신 윤집(尹集)과 오달제(吳達濟) 위로, 출성하여 항복의 의식을 거행하고 창경궁 양화당(養和堂)에 돌아온 일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기진의 「후지」는 1753년(영조 29)에 쓴 것이다. 여기에는 “병자·정축년간 고사(故事)를 보려고 했으나 기록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수소문해보니 「남한일기(南漢日記)」가 민가에 있었는데 더러 소루(疏漏)함은 있으나 믿을 만한 기록이 된다고 생각하여 등사하여 보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석지형이 강화부교수로 있을 적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책 끝부분의 「호종록」은 영의정 김류(金瑬, 1571-1648) 이하 호종한 347명의 관직명과 성명을 적은 기록이다.


▶서지적 가치
『남한일기』는 총 4책으로 엮어진 책으로 병자호란 관련 실기 가운데 가장 자세하고 방대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이 책은 국내에 여러 이본이 존재하나 가장 완벽한 필사본으로 볼 수 있다. 즉, 4책으로 이루어진 규장각본은 부분적으로 지워진 글자가 있고(1면), 3책으로 이루어진 국립중앙도서관본에는 척화신의 이름자를 공란으로 비워둔 것에 비해 결락 부분이 없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남한일기』의 이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3책본이 소장되어 있고, 규장각에 4책본이, 동국대 도서관에 4책본이, 숙명여대 도서관에 4책본이 소장되어 있다. 고려대 도서관과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1책본이다.


▶내용적 가치
『남한일기』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머물던 인조와 호종 대신 간에 이루어졌던 논의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지만 내용 전개는 국왕을 중심으로 놓고 어떤 사안에 대해 대신과의 논의를 펼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왕이 기록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각 날짜별로 기록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왕은 남한산성에 계셨다. 대전에 정원과 옥당의 2품 이상이 문안드리니 알았노라 답하셨다. 세자궁 문안에도 알았노라고 답하셨다.(上在南漢山城. 大殿政院玉堂二品以上問, 安答曰知道, 世子宮問, 安答曰知道.)”라는 표현을 앞세우고 있다. 이어서 그날 그날 들어온 각 부서의 품의나 장계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이와 관련된 대신과의 논의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권력의 가장 상층부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실기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이와 함께 국왕 인조가 성을 방어하는 군사들이나 성 안의 백성들에 대하여 애석해 하는 행동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 국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대신들의 논의에 대해서도 주전론자와 주화론자의 입장을 편중 없이 기록하면서 저자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아 객관성을 띠고 있는 자료라고 하겠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병자호란을 겪은 호종신하들의 입장을 파악해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장경남, 병자호란 실기와 저작자 의식 연구」, 『숭실어문』17, 숭실어문학회, 2001.


집필자 : 장경남(출처 :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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