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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 > 경종국장도감청의궤(景宗國葬都監都廳儀軌)[박윤동]

 
경종국장도감청의궤(景宗國葬都監都廳儀軌)[박윤동]
상품명 : 경종국장도감청의궤(景宗國葬都監都廳儀軌)[박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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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발췌본), 2017 라이프치히 도서전
     
 

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原本 書誌
-도서명 : 景宗國葬都監都廳儀軌[拔萃本(발췌본]
-표제 : 國葬都監都廳儀軌[甲辰年]
-편저자 : 國葬都監(朝鮮) 編
-간행년 : 英祖卽位年(1724)
-크기 : 45×33cm
-판종 : 필사본
-용도 : 분상용(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본 도서는 수명정 5대 승계자이자 ≪韓琴新譜≫(1724)의 편저자 奎齋(규재) 朴胤東(박윤동)[1673~1734] 관련 기록문헌이다.

1724년 박윤동(52세)이 경종의 국장 때 올린 挽詞가 실려 있다. 이 때 젊은 영조를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한 노론들로부터 만사 내용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하였다. ≪한금신보≫가 이 해에 쓰여진 것이다.
*원본은 상하 2권으로 되어 있지만 본 도서는 상권 반차도, 하권 경종의 비문과 만사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영인본 견본

<비단 표지>






≪景宗國葬都監儀軌≫(1724) 挽詞 行副司直 朴胤東(52세)


▣해제

1724년(영조 즉위) 8월 경종(景宗, 1688~1724, 재위 1720~1724)이 승하한 후 거행된 국장의식의 과정과 절차를 기록한 책이다.

경종은 조선 제20대 왕이다. 숙종(肅宗)의 아들이며, 어머니가 희빈 장씨(禧嬪 張氏)이다. 2차 예송 이후로 조정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태어나 숙종의 주장에 따라 바로 원자에 책봉되었다.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를 폐서인하고 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이듬해인 1690년(숙종 16) 세자에 책봉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세자와 새 중전을 옹호하던 남인들이 축출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며, 왕비이던 생모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격하되고 1701년(숙종 27)에 사사되었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세자의 정치적 지위가 불안해졌고 조정의 갈등 또한 수습되지 못하였다. 1720년(경종 즉위) 경종이 즉위한 후, 후계자를 둘러싸고 왕세제 책봉을 주장하던 노론과 이를 왕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소론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두 차례 큰 사화가 일어나 노론 대신들과 그 자제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1724년 8월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에 왕이 승하한 날부터 시신을 매장하고 신주를 혼전에 모시기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 국장도감은 이 기간 동안 설치되어 장례의식 전반에 걸친 의례 절차를 주관하였다. 국장도감은 단독으로 설치되지 않고, 발인하는 날까지 시신을 안치하고 제향 올리는 일을 담당하는 빈전도감(殯殿都監), 왕릉의 조성을 담당하는 산릉도감(山陵都監)과 함께 국상의례의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렇게 동시에 설치되는 국장 관련 도감들을 ‘국장 3도감’이라고 불렀다.
국장도감은 경종이 승하한 날 바로 설치되었다. 경종이 창경궁 환취정(環翠亭)에서 승하한 후 내시가 왕의 손과 발을 정돈하고, 내시 두 사람이 강사포와 곤룡포를 함에 담아서 대궐 지붕으로 올라가 세 번 경종의 존호를 불렀다. 왕세제로서 계승하게 된 영조(英祖)가 자식과 같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애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했는데, 왕위 계승자에게 자식으로서의 의리가 있으므로 상례를 일체 『오례의(五禮儀)』에 따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왕세제[영조]도 옷을 벗고 머리를 풀고 기둥 밖에서 거애했으며, 대신 이하도 일제히 문 밖에서 거애했다. 곡이 끝나자 이광좌(李光佐)가 경종의 죽음을 외정(外庭)에 알려 공식화했다. 8월 25일 미시에 습례(襲禮)와 반함(飯含)을 하였고, 8월 26일에 소렴(小斂)을, 8월 29일에 시신이 안치된 어상(御牀)을 환취정에서 창덕궁 선정전으로 옮겨 봉안한 후 대렴(大斂)을 행하였다. 8월 30일 묘시에 백관이 선정전에서 성복하였고, 9월 3일에 시호를 올렸다. 경종의 발인의식은 12월 16일에 거행되었고, 17일에 반우(返虞)하여 우주(虞主)를 혼전에 안치하였다. 국장 의식의 총호사로 영의정 이광좌가 임명되었고, 조태억(趙泰億), 홍치중(洪致中), 이세최(李世最) 등이 국장도감 제조로 임명되었다.
국장도감에서는 의식을 진행하면서 여러 관청과 주고받은 공문과 도감에서 생산한 문서들을 모아 의궤를 작성하였다. 국장도감의궤를 통해 국장의 제반 절차를 비롯하여, 관련 관서 간의 업무 협조 과정, 장례에 필요한 각종 기물의 종류와 규격, 그 제작에 소요된 물품의 종류, 수량과 그 조달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국장에 쓰인 여러 기물을 그린 채색도와 국장 행렬을 그린 반차도 등 시각자료도 풍부하다.
이 책은 상·하 2책으로 구성된 『경종국장도감의궤』 중 상책으로, 국장도감 도청과 일방이 주관한 업무를 수록하였다. 권두에는 목록이 있고, 장례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일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1724년 8월 25일 경종이 승하하였고, 29일 묘시 선정전에 빈전을 마련하였다. 12월 16일 축시에 발인하여, 같은 날 사시에 산릉 정자각에 봉안하고, 17일 진시에 현궁을 내렸다. 우주를 길유악궁(吉帷幄宮)에서 쓰고, 혼전인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 반우하였다. 일지 끝에 왕의 묘호는 경종, 혼전의 이름은 경소(敬昭), 능호는 명릉(明陵)임을 밝혔다. 도감의 일을 관장하는 총호사 이하 도감 관원들의 명단과 도감의 운영규칙을 적은 도감사목이 이어진다.
계사질(啓辭秩)에는 1724년 9월 2일부터 8월 12일까지 국장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계사와 비답이 수록되어 있다. 이문질(移文秩)에는 도감에서 황해감영, 호조, 혼전도감, 훈련도감, 금위영, 병조 등 여러 관청에 보내어 협조를 구한 공문을 모았다. 내관질(來關秩)에는 도감과 같은 급의 여러 관청으로부터 국장도감으로 보내온 문서들이 수록되었다. 품목질(稟目秩)과 감결질(甘結秩)에는 인력동원, 물자 조달, 업무 협조를 위해 하급 관청과 주고받은 공문을 날짜별로 수록하였다. 예관질(禮關秩)에는 국장도감에서 시행할 국상 의절과 관련하여 예조에서 보내온 문서들을 수록하였다. 경종에게 올릴 시호, 묘호, 전호의 내용, 택일과 관련된 사항, 시보식, 개명정식, 우주식 등과 관련된 논의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의주질(儀註秩)에는 여러 의식의 절차를 기록한 의주를 수록하였다. 종묘에 시호를 고하는 의식[請諡宗廟儀], 시책과 시보를 올리는 의식[上諡冊寶儀]을 비롯하여 계빈의(啓殯儀), 견전의(遣奠儀), 발인의(發靷儀), 노제의(路祭儀), 영가지주정설전급지릉소봉안의(靈駕至晝停設奠及至陵所奉安儀), 천전의(遷奠儀), 입주전의(立主奠儀), 반우의(返虞儀) 등을 통해 발인 및 반우 의식의 구체적인 절차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의궤 편찬과 관련된 사항을 정리한 의궤사목이 있다. 의궤는 어람용 1건, 춘추관(春秋館), 의정부(議政府), 예조(禮曹), 강화부(江華府)에 나누어 보관할 의궤 각 1건씩, 총 5건의 의궤가 제작되었다. 이어 도감의 일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장도감의 총호사, 제조, 도청 낭청 등의 명단인 도감별단(都監別單), 도감 내 도청 및 각 방에서 업무를 보조한 산원(算員), 의원(醫員), 서리(書吏), 고직(庫直), 사령(使令) 등의 명단인 도감원역별단(都監員役別單), 각종 장인 및 화원의 명단인 도감제색공장별단(都監諸色工匠別單)이 이어지고, 이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적은 1724년 12월 25일자 비망기(備忘記)가 실려 있다.
다음은 일방의궤가 이어진다. 국장도감의 일방에서는 큰 상여인 대여(大輿)와 작은 상여인 견여(肩輿), 혼백요여(魂帛腰輿), 애책채여(哀冊彩輿), 시책요여(諡冊腰輿), 시보요여(諡寶腰輿), 죽책교명요여(竹冊敎命腰輿), 옥인옥보요여(玉印玉寶腰輿), 옥책요여(玉冊腰輿), 영좌교의(靈座交倚), 윤여(輪輿), 혼백련(魂帛輦) 등 국장 의식에 필요한 각종 가마 및 혼백함을 안치할 기물의 제작을 담당하였다. 대여 및 각종 가마를 메고 갈 군사와 이들에게 입힐 옷을 마련하는 일도 일방에서 맡았다. 말미에 경종 국장의 발인행렬을 그린 32면의 채색반차도가 수록되어 있다.
경종의 국장의식에 대해 기록한 5건의 의궤 중 가장 정성스레 제작된 어람용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강화부(〈奎 13566〉)와 의정부(〈奎 14871〉)에 보관되었던 분상용 의궤가 전한다. 이 중 의정부본은 1책만 남아 있는 영본이다. 저주지를 사용한 여타 분상용 의궤와 달리 초주지를 사용하여 오랜 세월에도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초록운문대단(草綠雲文大段)으로 장황된 의궤의 표지 뿐 아니라 도화서 화원이 일일이 그린 붉은 인찰선(印札線)에 특별히 발탁된 서사관(書寫官)이 쓴 단정한 글씨, 섬세하게 채색된 도설과 반차도 등에서 어람용 의궤에 쏟은 특별한 정성을 엿볼 수 있다.(김지영)(출처 : 외규장각의궤 http://uigwe.museum.go.kr/)


行副司直 朴胤東


天祐吾邦寶曆綿。篤生神哲應千年。喤喤已占符昌聖。嶷嶷仍知邁啓賢。
明德盡心襁褓養。文皇遇物訓箴宣。躬持百行人無間。運履多艱德不愆。
三紀元良仁聞洽。四年參決聖功全。文王有子無憂者。大舜何人願學焉。
禮樂豈亶承令緖。誠明元自授眞詮。風霆半夜消虹孛。日月中天次度躔。
高拱穆淸如帝坐。旁馳風化若郵傳。淵泓不測千尋海。嵬蕩無名一大天。
便殿夜闌看牘奏。講帷秋早對箱編。薰琴遞與塤箎和。黼扆仍幷枕被聯。
千歲白雲方祝聖。一朝金鼎遽昇仙。欄花天上巡遊遠。階莢人間節序遷。
曉葆凄涼行有日。宵衣寂寞覿無緣。如傷惠入嬴癃厚。若喪情敎婦孺偏。
尺地瞻天曾儼若。寸心傾日自油然。生成有力恩侔海。報答無階淚徹泉。
怳愡有時驚夢寐。怦營謾自索筵篿。揄揚盛德臣何敢。慚愧詞場筆似椽。



行副司直 朴胤東 행부사직 박윤동


天祐吾邦寶曆綿  하늘이 도와 우리 나라 보력이 이어지니
篤生神哲應千年  독생하여 신령이 밝아 천년동안 응하리.
喤喤已占符昌聖  엉엉 울며 이미 부절을 잡고 성군을 불러봐도
嶷嶷仍知邁啓賢  높이 높이 올라갔음을 알고 어진 임금께 아룁니다.
…<중략>…
生成有力恩侔海  나서 자라 세력을 가졌으니 성은이 하해와 같은데
報答無階淚徹泉  제 보답은 관직없는 처지니 흐르는 눈물은 샘과 같습니다.
…<중략>…
揄揚盛德臣何敢  신이 어찌 감히 성덕을 기려 드러내겠습니까?
慚愧詞場筆似椽  부끄럽게 만사를 쓰니, 붓이 서까래 만해졌습니다.

≪경종국장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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