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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 > 가정집(稼亭集)[이곡,박윤문]

 
가정집(稼亭集)[이곡,박윤문]
상품명 : 가정집(稼亭集)[이곡,박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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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본 도서는 밀양박씨 가문의 心法[家學]의 근원이 되는 고려말 大提學 朴允文(박윤문)과 아들 5형제 관련 기록문헌이다.

▣ 原本 書誌
-도서명 : 稼亭先生文集
-편저자 : 李穀[忠烈王 24(1293)∼忠定王 3(1351)] 著
-판사항 : 목판본
-발행사항 : [대구(大邱)] : [발행처불명], [인조 13(1635)]
-형태사항 : 雜錄1卷, 本集20卷, 共5冊 : 四周單邊 半郭 18.8 x 14.6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黑魚尾 ; 28.2 X 19.1 cm
-주기사항 : 表題: 稼亭集, 印: 印: 樂浪書齋
-현소장처 : 일본 동양문고
-청구기호 : Ⅶ-4-22

*저자 소개
-姓名 : 李穀(이곡)
-初名 : 芸白
-字 : 中父
-號 : 稼亭
-諡 : 文孝
-本貫 : 韓山
-父 : 李自成[贈都僉議贊成事], 母 : 李氏[李椿年의 女]
-配 : 咸昌 金氏[金澤의 女]
-生沒年 : 忠烈王 24(1298) ~ 忠定王 3(1351)
-李齊賢의 門人

고려말 충렬왕때 稼亭 李穀(이곡)과 대제학 후배인 朴允文(박윤문)이 元나라 북경 서쪽 太液池(태액지)에 있는 정자 '臨漪亭(임의정)'에서 주고 받은 詩가 문집에 실려있다. 3년상으로 시묘살이 하는 박윤문의 효행을 칭찬하는 글과 시가 아울러 실려있다. 韓山李氏密陽朴氏, 고려말 新儒學을 대표하는 두 집안이다. 이들의 인연은 아들로 이여졌다. 목은 이색박밀양[린],대양,소양,삼양,계양[돈지] 등과의 친분이 ≪牧隱藁≫와 비문에 자세히 나온다.
두 집안은 모두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했으나 후일 士林의 등장으로 다시 조정에 출사하면서 교분을 이어갔다. 바로 李山海(이산해)•李慶全(이경전) 부자와 朴彛叙(박이서)•朴𥶇(박로) 부자의 친분이 그들의 문집에 자세히 담겨있다. 특히 竹泉 李德泂(이덕형)과 박이서의 친분은 小北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더 유명하다.  ≪竹窓閑話≫에 자세히 나온다. 이들은 모두 이곡과 박윤문의 직계 후손들이다.

*목차

가정집(稼亭集)
稼亭先生年譜
年譜
稼亭先生文集
卷之一
雜著
卷之二

卷之三

卷之四

卷之五

卷之六


卷之七

題跋
銘讚
卷之八



卷之九

卷之十

表牋
疏語
靑詞
卷之十一
祭文
墓誌銘
卷之十二
墓誌銘
行狀
卷之十三
程文
[策]
卷之十四
古詩
卷之十五
律詩
詠史
律詩
卷之十六
律詩
卷之十七
律詩
卷之十八
律詩
灤京紀行
律詩
卷之十九
律詩
卷之二十
律詩

稼亭雜錄
稼亭集跋

*견본이미지 및 해제





박윤문의 효행을 칭찬하는 시와 글. <寄朴持平詩序> 아래 번역 참조

*원운 朴允文 <臨漪亭> : 浩浩東溟入眼。蒼蒼老樹幾經。此亭佳致誰能畫。夕照西山橫斷。≪東文選≫
<컬러 영인본 견본>

*편찬 및 간행
저자의 문집은 아들 李穡이 20권으로 편차하고, 1364년(공민왕 13)에 저자의 사위인 朴尙衷이 이색의 同年인 華之元의 도움을 받아 錦山에서 처음 간행하였다.≪초간본≫ 현재 초간본의 후쇄본으로 보이는 3권 1책(권11~13)이 성암고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뒤 1422년(세종 4) 손자인 李種善이 강원도 관찰사 柳思訥의 도움을 얻어 문집을 다시 간행하였다.≪중간본≫ 그러나 兵亂 등을 겪으며 傳本이 귀하게 되자, 이에 宗人 李德泂이 「稼亭集」 1編을 구하여 경상도 관찰사인 후손 李基祚에게 重刊을 부탁하였고, 1635년(인조 13)에 金尙憲의 발을 받아 대구에서 간행하였다.≪삼간본≫ 그런데 이 삼간본은 板冊이 散亡한 가운데 편간을 모아서 간행하였으므로 詩文의 일부가 殘缺된 缺遺本으로 간행되었으며, 결유된 시문에 대해서는 餘白으로 刊行함으로써 補亡을 기약하였다.
그 후 1658년에 충청도 관찰사 李泰淵이 完本을 구하여 간행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마침 임기를 채우고 돌아가게 되어 간행에는 이르지는 못하였고, 1662년(현종 3)에 다시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외손인 군수 安獻徵ㆍ李恒鎭의 도움을 받아 전주에서 補亡重刊 하였다.≪사간본≫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40년에는 후손 李英馥 등이 권수에 〈稼亭公事蹟〉, 권미에 洪汝河가 撰한 〈稼亭碑記〉, 羅繼從이 撰한 〈稼亭先生畫像贊〉을 添入하여 忠南 禮山에서 鉛活字로 간행하였다.≪오간본≫ 이 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출처: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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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稼亭先生文集≫ 卷之九○序 / ≪東文選≫ 卷之八十五

寄朴持平詩序
박 지평(朴持平)에게 부친 시와 서문


前監察持平朴君允文質夫世家密城郡。有兄中郞將允謙。以姻婭故居福州。迎養大夫人。至元戊寅八月。大夫人卽世。因葬之。持平廬於墓。捧土植木。且以讀禮之餘。念佛寫經追冥福。終其制。福於慶尙道爲大邑。賓客雜遝。凡知與不知經由於福者。必詣苫前問慰。旣還京。稱嘆不絶口。
전(前) 감찰 지평(監察持平) 박군 윤문(朴君允文) 질부(質夫)는 대대로 밀성군(密城郡)에서 거주하였다. 그런데 그의 형인 중랑장(中郞將) 윤겸(允謙)이 인아(姻婭)[1]의 연고로 복주(福州 안동(安東))에 살면서 그곳에 대부인(大夫人)을 모셔다 봉양하였는데, 지원(至元) 무인년(1338, 충숙왕 복위 7)[2] 8월에 대부인이 별세하자 그곳에 그대로 장례를 지냈다. 지평이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땅을 돋우어 나무를 심는 한편, 독례(讀禮)[3]하는 여가에 염불을 하고 사경(寫經)을 하여 명복을 빌면서 예제(禮制)를 마쳤다. 복주는 경상도의 대읍이라서 빈객이 많이 왕래하였는데,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간에 복주를 경유할 때면 반드시 박군의 여막을 찾아가 위문을 하였고 서울에 돌아와서는 칭찬하며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余昔在辛酉。參福州幕。識中郞面。辛未。入藝文館。踵持平後。於朴氏昆季甚熟。思一負笈致蒭。邈不可得。迺諗諸朋友。託之歌詩。以寄其感慕之情。因謂之曰。
내가 과거 신유년(1321)에 복주의 막료로 있으면서 중랑과 만나 서로 알고 지냈고, 신미년(1331, 충혜왕 1)에 예문관(藝文館)에 들어가서 지평(持平)의 뒤를 이었으니, 박씨 형제와는 매우 잘 아는 사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한번 배낭을 메고 생추(生蒭)를 올리려고 생각하였으나[4] 멀어서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붕우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는 가시(歌詩)에 의탁하여 감모(感慕)하는 정을 부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孝者人子之所當爲。古者敎其不能而已。未甞賞其能也。後世有孝行之出衆者。官爲旌表其門閭而復其家。于以見風俗之變也。
효(孝)라는 것은 사람의 자식이 된 자라면 당연히 행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효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들을 가르쳤을 뿐이요, 제대로 행하는 자들을 포상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는 효행이 출중한 자가 있으면 관청에서 그 문려에 정표를 하고 그 집안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으니, 이를 통해서도 풍속이 변한 것을 알 수가 있다.

本國之制。守親墓三年。許旌其門。不問平日所爲爲何如也。近世士大夫多令家奴代之。終且私爲復其身。任其所之。故爲奴隷者爭欲爲之。夫小人之急於利。猶君子之重於義。人子之念親。豈不如奴隷之愛主乎。顧牽於習俗不爲之耳。
본국의 제도에 의하면, 어버이의 묘소를 3년 동안 지킬 경우에는 그 문려에 정표를 하고, 평일의 소행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근세의 사대부들이 흔히 가노(家奴)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게 하고는, 그 일이 끝나면 사적으로 그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고서 마음대로 떠나게 하고 있는데, 그런 까닭에 노예로 있는 자들이 서로 다투어 그 일을 하려고 하는 형편이다. 대저 소인이 이익에 급급하는 것은 군자가 의리를 중시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자식이 된 자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이 어찌 노예가 주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못하겠는가마는, 단지 습속에 이끌린 나머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 따름이다.

持平平居。奉其親無所不至。及其歿而能以禮葬。葬而能以制終。又能廬墓以盡哀。其敦薄俗而激頹風者多矣。
지평은 평소 어버이를 봉양할 때에는 극진하게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버이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예법대로 장례를 지냈고, 장례를 지낸 뒤에는 예제를 지키면서 상기를 마쳤으며, 여기에 또 여묘(廬墓)를 하면서 애통한 마음을 다하였으니, 그가 야박한 풍속을 돈후하게 하고 퇴폐한 풍조를 격동시킨 점이 많다고 하겠다.

先王制禮。要歸於中。喪不過三年。持平祥期已近。當皷琴之夕。歌吾黨之詩。雖子路之勇。亦不敢笑之矣。
선왕(先王)이 예법을 제정한 목적이 중도(中道)를 행하게 하려는 데에 있는 만큼, 거상하는 기간을 정할 때에도 3년을 넘지 못하게 하였다.[5] 그런데 지평이 대상(大祥)을 지낼 기일도 이미 가까워 오고 있으니, 거문고를 타는 저녁을 당하여 우리들의 시를 노래한다면, 아무리 용맹스러운 자로(子路)라고 할지라도 감히 그 일을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6]

親喪當自致。      친상은 스스로 극진히 해야 하는 법
至性莫能移。      지극한 이 성품은 바뀔 수가 없는 것
風樹終天恨。      종신토록 이어지는 풍수의 한스러움[7]이요
雲山盡日思。      종일토록 계속되는 운산의 그리움[8]이로다
牛岡浮瑞氣。      묘역 주위엔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駟隙近祥期。      빠른 세월은 어느덧 대상이 가까운 때
宰木陰將合。      재목의 그늘이 장차 겹치려 하노니
何曾鹿觸枝。      사슴이 언제 나뭇가지 치받은 적 있으리오[9]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6

[1] 인아(姻婭) : 사위집 쪽의 사돈 및 남자끼리의 동서 간을 말한다. 사위의 아버지, 곧 사돈을 인(姻)이라 하고, 여자 형제의 남편끼리, 곧 동서끼리를 아(婭)라 함.
[2] 지원(至元) 무인년(1338, 충숙왕 복위 7) : 이때 이곡은 나이 41세로서 判典校寺事 藝文館提學 知製敎였다.
[3] 독례(讀禮) : 거상(居喪)을 뜻한다.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의 “장사 지내기 전에는 상례를 읽고, 장사 지낸 뒤에는 제례를 읽는다.〔未葬讀喪禮 旣葬讀祭禮〕”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4] 배낭을 …… 생각하였으나 : 조촐한 예물로 조문하는 일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배낭을 메고 각지를 유력하다가 누가 죽거나 상을 당하면 도보로 먼 길을 찾아가서 제사를 올린 뒤에 곧장 떠나갔으므로 그가 누구인지 상주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곽태(郭太)가 모친상을 당했을 적에 누군가가 그의 여막 앞에 생추(生蒭) 한 묶음을 놔두고 떠났으므로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자, 곽태가 “필시 남주(南州)의 고사 서유자(徐孺子)일 것이다. 《시경》 백구(白駒)에 이르지 않았던가, ‘망아지에게 먹이는 싱싱한 풀 한 다발, 그 사람 백옥처럼 아름다운 분.〔生芻一束 其人如玉〕’이라고. 하지만 나의 덕이 어떻게 이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한 고사가 전한다. 유자(孺子)는 서치의 자이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5] 선왕(先王)이 …… 하였다 : “상기(喪期)가 3년을 넘지 않게 하고, 저마(苴麻)의 최복(衰服)이 해져도 수선하지 않게 하고, 장례를 지내고 나서는 무덤에 더 흙을 쌓지 않게 하고, 대상일(大祥日)이 되면 장식하지 않은 거문고를 타게 하는 것 등은, 사람들에게 복상(服喪)의 슬픔에도 한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喪不過三年 苴衰不補墳墓不培 祥之日 鼓素琴 告民有終也〕”라는 말이 《예기》 상복사제(喪服四制)에 나온다.
[6] 거문고를 …… 것이다 : “공자는 대상(大祥)을 지내고 나서 5일 뒤에 거문고를 탔는데 그때는 하나의 곡을 끝까지 다 연주하지 않았다. 그 뒤 10일이 지나서 생황을 불며 노래하였는데 그때는 끝까지 다 마쳤다.〔孔子旣祥五日彈琴 而不成聲 十日而成笙歌〕”라는 말이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나온다. 또 “어떤 노나라 사람이 아침에 대상을 지내고는 저녁에 노래를 부르자 자로가 너무 빠르다고 비웃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하기를 ‘유야, 너는 남에게 완전함을 요구하며 꾸짖는 일을 끝내 그만둘 수 없느냐. 요즘 세상에 삼년상을 제대로 치렀으니, 그것만도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로가 나가자 다시 공자가 말하기를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한 달만 더 넘기고 나서 노래했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아쉬워했다.〔魯人有朝祥而莫歌者 子路笑之 夫子曰 由爾責於人 終無已夫 三年之喪 亦已久矣夫 子路出 夫子曰 又多乎哉 踰月則其善也〕”라는 말이 역시 단궁 상에 나온다.
[7] 풍수(風樹)의 한스러움 : “나무가 잠잠해지려 하나 바람이 자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子欲養而親不待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자식이 어버이를 여읜 슬픔을 뜻한다. 《韓詩外傳 卷9》
[8] 운산(雲山)의 그리움 : 부모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을 뜻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의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부임할 적에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멀리 남쪽으로 흰 구름 하나가 떠가는 것을 보고는, 저 구름 아래에 부모님이 계실 것이라면서 한참 동안 바라보며 사념에 젖다가 구름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떠나갔다는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15 狄仁傑傳》
[9] 재목(宰木)의 …… 있으리오 : 짐승도 감동할 만큼 효성이 지극한 덕분에, 묘역에 심어 놓은 나무도 무성해져서 그늘을 드리울 정도로, 묘소가 아무 탈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허자(許孜)가 양친의 묘소 주위에 심어 놓은 소나무 묘목을 사슴이 치받아 망쳐 놓은 것을 보고서 “사슴이 어찌 유독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鹿獨不念我乎〕”라고 탄식하였는데, 그다음 날에 보니 맹수에게 죽은 사슴의 시체가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88 孝友傳 許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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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文選≫ 卷之二十一○七言絶句

元韻 朴允文               

臨漪亭                   
임의정[1]              

浩浩東溟入眼           넓고 넓은 동쪽 바다 눈 앞에 드는데
蒼蒼老樹幾經           푸르고 푸른 늙은 나무는 몇 해나 지났는고
此亭佳致誰能畫           이 정자의 아름다운 경치 뉘 능히 그리랴
夕照西山橫斷           해 떨어지는 서산에 연기 가로 비꼈네



≪稼亭先生文集≫ 卷之二十

次韻 李穀                  

次臨漪亭詩韻
임의정(臨漪亭) 시에 차운하다

此亭光價倍於           이 정자의 성가가 전보다 배나 올랐나니
詩老命名延祐           시로가 연우 연간에 명명했기 때문이라
典簿獨游人不識           典簿(전부)[2] 홀로 노닐 뿐 남은 나를 모르니
不慙操筆答雲           붓 잡고 운연에 답해도 부끄럽지 않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6

[1] 臨漪亭(임의정) : 元(원) 시대의 북경 서쪽 太液池(태액지)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 사신들이 머무는 高麗館(고려관) 숙소 근처이다. 태액지는 明(명) 시대에 紫禁城(자금성)의 서쪽으로 황실의 苑囿(원유)인 西苑(서원)으로 확장되었다. 원 시대는 北海(북해)와 中海(중해)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명 시대는 그 남쪽에 다시 못을 파고 南海(남해)를 만들어서, 삼해(三海)를 형성하게 되었다.
[2] 전부(典簿) : 가정 이곡 자신을 가리킨다. 가정은 1343년(충혜왕 복위3)에 원나라에서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를 제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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