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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저자별 > 가 : 262종
책번호 [가]저자 서명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바062 강규환(姜奎煥, 1697~1731) 비수재집(賁需齋集) 6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30 강대수(姜大遂, 1591~1658) 한사집(寒沙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55 강명규(姜命奎, 1801~1867) 유계집(柳溪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20 강박(姜樸, 1690~1742) 국포집(菊圃集) 6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079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설봉유고(雪峯遺稿)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8 강석규(姜錫圭, 1628~1695) 오아재집(聱齋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5 강석기(姜碩期, 1580~1643) 월당집(月塘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2 강세진(姜世晉, 1717~1786) 경현재집(警弦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5 강세황(姜世晃, 1713~1791) 표암고(豹菴稿) 3책 1개 고전자료총서 수록 영인본
사134 강운(姜橒, 1773~1834) 송서집(松西集)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74 강위(姜瑋, 1820~1884)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 6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32 강유(姜瑜, 1597~1668) 상곡집(商谷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60 강유선(康惟善, 1520~1549) 주천유고(舟川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82 강이천(姜彝天, 1769~1801) 중암고(重菴稿)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6 강익(姜翼, 1523~1567) 개암집(介庵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21 강재항(姜再恒, 1689~1756) 입재유고(立齋遺稿)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18 강정환(姜鼎煥, 1741~1816) 전암집(典庵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71 강주(姜, 1566~1650) 죽창집(竹窓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4 강준흠(姜浚欽, 1768~1833) 삼명시집(三溟詩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0 강지덕(姜至德, 1772~1832)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17 강진(姜, 1807~1858) 대산집(對山集)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045 강진규(姜晉奎, 1817~1891) 역암집(櫟菴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61 강필신(姜必愼, 1687~1756) 모헌집(慕軒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5 강필효(姜必孝, 1764~1848) 해은유고(海隱遺稿) 13책 3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71 강항(姜沆, 1567~1618) 수은집(睡隱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8 강헌규(姜獻奎, 1797~1860) 농려집(農廬集)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마062 강혼(姜渾, 1464~1519) 목계일고(木溪逸稿)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09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사숙재집(私淑齋集) 5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바046 계덕해(桂德海, 1708~1775) 봉곡계찰방유집(鳳谷桂察訪遺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8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제봉집(霽峯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7 고부천(高傅川, 1578~1636) 월봉집(月峯集)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타012 고상안(高尙顔, 1553~1623) 태촌집(泰村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6 고성겸(高聖謙, 1810~1886) 녹리집(里集)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91 고여흥(高汝興, 1617~1678) 요은집(鬧隱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9 고용후(高用厚, 1577~1652) 청사집(晴沙集)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56 고유(高裕, 1722~1779) 추담집(秋潭集)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146 고인계(高仁繼, 1564~1647) 월봉집(月峯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82 고회(高晦, 1636~1711) 관란재유고(觀瀾齋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2 곽열(郭說, 1548~1630) 서포집(西浦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26 곽재우(郭再祐, 1552~1617) 망우집(忘憂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41 곽종석(郭鍾錫, 1846~1919) 면우집(俛宇集) 63책 13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03 곽진(郭𡺽, 1568~1633) 단곡집(丹谷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13 구봉령(具鳳齡, 1526~1586) 백담집(栢潭集) 12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파002 구사맹(具思孟, 1531~1604) 팔곡집(八谷集)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자067 구영(具瑩, 1584~1663) 죽유시집(竹牖詩集)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70 구용(具容, 1569~1601) 죽창유고(竹窓遺稿) 1책 1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마046 구음(具崟, 1614~1683) 명곡집(明谷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08 구치용(具致用, 1590~1666) 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타006 권구(權絿, 1658~1730) 탄촌유고(灘村遺稿)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바037 권구(權榘, 1672~1749) 병곡집(屛谷集)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39 권극중(權克中, 1585~1659) 청하집(靑霞集)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033 권근(權近, 1352~1409) 양촌집(陽村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4 권덕수(權德秀, 1672~1759) 포헌집(逋軒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48 권도(權濤, 1575~1644) 동계집(東溪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06 권두경(權斗經, 1654~1725) 창설재집(蒼雪齋集)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23 권두문(權斗文, 1543~1617) 남천집(南川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04 권두인(權斗寅, 1643~1719) 하당집(荷塘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23 권득기(權得己, 1570~1622) 만회집(晩悔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7 권렴(權濂, 1701~1781) 후암집(厚庵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8 권뢰(權𡋃, 1800~1873) 용이와집(龍耳窩集)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24 권만(權萬, 1688~1749) 강좌집(江左集)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92 권만두(權萬斗, 1674~1753) 지족당집(知足堂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41 권문해(權文海, 1534~1591) 초간집(草澗集)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17 권방(權訪, 1740~1808) 학림집(鶴林集) 7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차069 권벌(權橃, 1478~1548) 충재집(冲齋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87 권벽(權擘, 1520~1593) 습재집(習齋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75 권변(權忭, 1651~1726) 수초당집(遂初堂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19 권병(權炳, 1723~1772) 약재집(約齋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23 권상일(權相一, 1679~1759) 청대집(淸臺集) 9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32 권상하(權尙夏, 1641~1721) 한수재집(寒水齋集) 16책 3개 권희종(權熙宗)
가102 권성구(權聖矩, 1642~1708) 구소집(鳩巢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타005 권시(權諰, 1604~1672) 탄옹집(炭翁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9 권연하(權璉夏, 1813~1896) 이재집(齋集) 9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178 권오복(權五福, 1467~1498) 수헌집(睡軒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35 권우(權遇, 1363~1419) 매헌집(梅軒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5 권우(權宇, 1552~1590) 송소집(松巢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64 권이진(權以鎭, 1668~1734) 유회당집(有懷堂集)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93 권재운(權載運, 1701~1778) 이택재유고(麗澤齋遺稿)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파007 권정침(權正忱, 1710~1767) 평암집(平庵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타021 권중도(權重道, 1680~1722) 퇴암집(退庵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1 권춘란(權春蘭, 1539~1617) 회곡집(晦谷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23 권태시(權泰時, 1635~1719) 산택재집(山澤齋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09 권태일(權泰一, 1569~1631) 장곡집(藏谷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71 권필(權韠, 1569~1612) 석주집(石洲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7 권헌(權攇, 1713~1770) 진명집(震溟集)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마056 권혜(權寭, 1693~1747) 모산유고(慕山遺稿)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137 권호문(權好文, 1532~1587) 송암집(松巖集) 5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사094 금난수(琴蘭秀, 1530~1604) 성재집(惺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36 금보(琴輔, 1521~1584) 매헌집(梅軒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64 기대승(奇大升, 1527~1572) 고봉집(高峯集) 8책 2개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2 기언정(奇彦鼎, 1716~1797) 나와집(懶窩集) 4책 1개 7대손 기세익(奇世翊) 소장본
사133 기우만(奇宇萬, 1846~1916) 송사집(松沙集) 26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7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노사집(蘆沙集) 17책 3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26 기준(奇遵, 1492~1521) 덕양유고(德陽遺稿)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14 길재(吉再, 1353~1419) 야은집(冶隱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8 김간(金榦, 1646~1732) 후재집(厚齋集) 26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1 김경여(金慶餘, 1596~1653) 송애집(松崖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66 김광욱(金光煜, 1580~1656) 죽소집(竹所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바006 김광익(金光翼, 1721~1772) 반포유고(伴圃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63 김광현(金光炫, 1584~1647) 수북유고(水北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0 김굉(金㙆, 1739~1816) 구와집(龜窩集) 11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99 김구(金坵, 1211~1278) 지포집(止浦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2 김구(金絿, 1488~1534) 자암집(自菴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4 김구(金構, 1649~1704)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차012 김구용(金九容, 1338~1384) 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2책 1개 조성목(趙誠穆),국립중앙도서관
다067 김귀영(金貴榮, 1520~1594) 동원집(東園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01 김귀주(金龜柱, 1740~1786) 가암유고(可庵遺稿) 17책 3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차050 김규오(金奎五, 1729~1791) 최와집(最窩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9 김극성(金克成, 1474~1540) 우정집(憂亭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01 김근행(金謹行, 1713~1784) 용재집(庸齋集) 15책 3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바056 김기(金圻, 1547~1603) 북애집(北厓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29 김기수(金基洙, 1818~1873) 백후집(柏後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01 김낙행(金樂行, 1708~1766) 구사당집(九思堂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2 김남중(金南重, 1596~1663) 야당유고(野塘遺稿)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85 김녕(金寧, 1567~1650) 둔봉집(遯峯集)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마074 김담(金淡, 1416~1464) 무송헌집(撫松軒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27 김대진(金岱鎭, 1800~1871) 정와집(訂窩集) 13책 3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한국국학진흥원
아157 김대현(金大賢, 1553~1602) 유연당집(悠然堂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6 김덕겸(金德謙, 1552~1633) 청륙집(靑陸集) 9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14 김덕승(金德承, 1595~1658) 소전집(少痊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76 김덕오(金德五, 1680~1748) 치헌집(癡軒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1 김덕함(金德諴, 1562~1636) 성옹유고(醒翁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6 김도수(金道洙, 1699~1733) 춘주유고(春洲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07 김도행(金道行, 1728~1812) 우고집(雨皐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11 김도화(金道和, 1825~1912) 척암집(拓菴集) 29책 6개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바009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백곡집(柏谷集) 7책 2개 김상형(金相馨)
다007 김려(金鑢, 1766~1821) 담정유고(庭遺藁)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7 김령(金, 1577~1641) 계암집(溪巖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57 김류(金, 1571~1648) 북저집(北渚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19 김륵(金, 1540~1616) 백암집(柏巖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3 김만기(金萬基, 1633~1687) 서석집(瑞石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8 김만영(金萬英, 1624~1671) 남포집(南圃集) 6책 1개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외
사051 김만중(金萬重, 1637~1692) 서포집(西浦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18 김매순(金邁淳, 1776~1840) 대산집(臺山集)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93 김맹성(金孟性, 1437~1487)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6 김면(金沔, 1541~1593) 송암유고(松菴遺稿)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06 김명석(金命錫, 1675~1762) 우계집(雨溪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79 김민택(金民澤, 1678~1722) 죽헌집(竹軒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97 김방걸(金邦杰, 1623~1695) 지촌집(芝村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28 김봉조(金奉祖, 1572~1630) 학호집(鶴湖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0 김부륜(金富倫, 1531~1598) 설월당집(雪月堂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109 김부필(金富弼, 1516~1577) 후조당집(後彫堂集) 3책 1개 김준식(金俊植)
사077 김상용(金尙容, 1561~1637) 선원유고(仙源遺稿)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아209 김상일(金相日, 1756~1822) 일엄유고(一广遺稿)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59 김상정(金相定, 1722~1788) 석당유고(石堂遺稿) 3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타002 김상진(金相進, 1736~1811) 탁계집(濯溪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7 김상채(金尙彩, 1710~?) 창암집(蒼巖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2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청음집(淸陰集)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7 김서일(金瑞一, 1694~1780) 전긍재집(戰兢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5 김석주(金錫胄, 1634~1684) 식암유고(息庵遺稿) 14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05 김성구(金聲久, 1641~1707) 팔오헌집(八吾軒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18 김성일(金誠一, 1538~1593) 학봉집(鶴峯集) 10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9 김성탁(金聖鐸, 1684~1747) 제산집(霽山集) 9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58 김세렴(金世濂, 1593~1646) 동명집(東溟集) 7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206 김세필(金世弼, 1473~1533) 십청집(十淸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97 김수온(金守溫, 1409~1481) 식우집(拭疣集) 1책 1개 김정상(金正相)
가098 김수인(金守, 1563~1626) 구봉집(九峯集)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75 김수증(金壽增, 1624~1701) 곡운집(谷雲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83 김수항(金壽恒, 1629~1689) 문곡집(文谷集) 13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타023 김수흥(金壽興, 1626~1690) 퇴우당집(退憂堂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3 김숭겸(金崇謙, 1682~1700)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9 김시관(金時觀, 1677~1740) 절곡집(節谷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3 김시민(金時敏, 1681~1747) 동포집(東圃集) 4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마059 김시보(金時保, 1658~1734) 모주집(茅洲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11 김시빈(金始鑌, 1684~1729) 백남집(白南集)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마032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매월당집(梅月堂集) 9책 2개 일본 봉좌문고
파017 김시온(金是, 1598~1669) 표은집(瓢隱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96 김시탁(金時鐸, 1713~1751) 이호유고(梨湖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4 김신겸(金信謙, 1693~1738) 증소집(巢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58 김안국(金安國, 1478~1543) 모재집(慕齋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12 김안로(金安老, 1481~1537) 희락당고(希樂堂稿) 6책 1개 김일근(金一根)
나007 김안절(金安節, 1564~1632) 낙애유고(洛涯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81 김약련(金若鍊, 1730~1802) 두암집(斗庵集)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66 김양근(金養根, 1734~1799) 동야집(東埜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4 김여만(金如萬, 1625~1711) 추담집(秋潭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29 김연(金緣, 1487~1544) 운암일고(雲巖逸稿) 1책 1개 김준식(金俊植)
하011 김영수(金永壽, 1829~1899) 하정집(荷亭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15 김영작(金永爵, 1802~1868) 소정고(卲亭稿)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마025 김영조(金榮祖, 1577~1648) 망와집(忘窩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24 김영행(金令行, 1673~1745) 필운고(弼雲稿)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35 김용(金涌, 1557~1620) 운천집(雲川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7 김우굉(金宇宏, 1524~1590) 개암집(開巖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2 김우급(金友伋, 1574~1643) 추담집(秋潭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44 김우옹(金宇顒, 1540~1603) 동강집(東岡集) 11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21 김우항(金宇杭, 1649~1723) 갑봉유고(甲峰遺稿)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92 김원행(金元行, 1702~1772) 미호집(渼湖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1 김유(金, 1653~1719) 검재집(儉齋集) 16책 3개 청풍김씨 판서공휘인백파종중
자005 김육(金堉, 1580~1658) 잠곡유고(潛谷遺稿) 7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31 김윤식(金允植, 1835~1922) 운양집(雲養集)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다054 김윤안(金允安, 1560~1622) 동리집(東籬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88 김융(金隆, 1549~1594) 물암집(勿巖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19 김응조(金應祖, 1587~1667) 학사집(鶴沙集)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23 김응하(金應夏, 1783~1830) 정수재유고(靜修齋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6 김의정(金義貞, 1495~1547) 잠암일고(潛庵逸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49 김이곤(金履坤, 1712~1774) 봉록집(鳳麓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14 김이만(金履萬, 1683~1758) 학고집(鶴集) 6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026 김이안(金履安, 1722~1791) 삼산재집(三山齋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75 김익(金熤, 1723~1790) 죽하집(竹下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5 김익동(金翊東, 1793~1860) 직재집(直齋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차008 김익희(金益熙, 1610~1656) 창주유고(滄洲遺稿)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6 김인후(金麟厚, 1510~1560) 하서전집(河西全集)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03 김일손(金馹孫, 1464~1498) 탁영집(濯纓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02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사계유고(沙溪遺稿)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1 김재찬(金載瓚, 1746~1827) 해석유고((海石遺稿)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68 김정(金淨, 1486~1521) 충암집(冲庵集)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사014 김정국(金正國, 1485~1541) 사재집(思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9 김정묵(金正默, 1739~1799) 과재유고(過齋遺稿)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69 김정집(金鼎集, 1808~1859) 석세유고(石世遺稿)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84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완당전집(阮堂全集)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64 김제민(金齊閔, 1527~1599) 오봉집(鰲峯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18 김조순(金祖淳, 1765~1832) 풍고집(楓皐集)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16 김종덕(金宗德, 1724~1797) 천사집(川沙集)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41 김종섭(金宗燮, 1743~1791) 제암집(濟庵集) 4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마069 김종수(金鍾秀, 1728~1799) 몽오집(夢梧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39 김종일(金宗一, 1597~1675) 노암집(魯庵集)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25 김종정(金鍾正, 1722~1787) 운계만고(雲溪漫稿)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0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점필재집(佔畢齋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21 김종필(金終弼, 미상) 풍암집(楓巖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45 김종후(金鍾厚, 1721~1780) 본암집(本庵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사044 김종휴(金宗烋, 1783~1866) 서소집(書巢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23 김좌명(金佐明, 1616~1671) 귀계유고(歸溪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4 김주(金澍, 1512~1563) 우암유집(寓庵遺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59 김주신(金柱臣, 1661~1721) 수곡집(壽谷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2 김중청(金中淸, 1566~1629) 구전집(苟全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2 김지남(金止男, 1559~1631) 용계유고(龍溪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0 김지수(金地粹, 1585~1639) 태천집(苔川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94 김지행(金砥行, 1716~1774) 밀암집(密菴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73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죽천집(竹泉集) 21책 4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07 김진동(金鎭東, 1727~1800) 소암집(素巖集)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타022 김진상(金鎭商, 1684~1755) 퇴어당유고(退漁堂遺稿)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54 김진수(金進洙, 1797~1865) 연파시초(蓮坡詩鈔)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98 김집(金集, 1574~1656)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타017 김창립(金昌立, 1666~1683) 택재유타(澤齋遺唾)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3 김창업(金昌業, 1658~1721) 노가재집(老稼齋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70 김창집(金昌集, 1648~1722) 몽와집(夢窩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2 김창집(金昌緝, 1662~1713) 포음집(圃陰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51 김창협(金昌協, 1651~1708) 농암집(農巖集) 22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9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삼연집(三淵集) 34책 7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김귀년(金貴年)
사062 김창희(金昌, 1844~1890) 석릉집(石菱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8 김천일(金千鎰, 1537~1593) 건재집(健齋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바058 김춘택(金春澤, 1670~1717) 북헌집(北軒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60 김충선(金忠善, 1571~1642) 모하당집(慕夏堂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4 김취문(金就文, 1509~1570) 구암집(久庵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8 김치후(金致垕, 1691~1742) 사촌집(沙村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4 김태일(金兌一, 1637~1702) 노주집(蘆洲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17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소호당집(韶濩堂集) 12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동국대학교
자088 김팔원(金八元, 1524~1569) 지산집(芝山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83 김평묵(金平默, 1819~1891) 중암집(重菴集) 33책 7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58 김하구(金夏九, 1676~1762) 추암집(추菴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48 김학배(金學培, 1628~1673) 금옹집(錦翁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33 김해(金垓, 1555~1593) 근시재집(近始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4 김헌기(金憲基, 1774~1842) 초암전집(初庵全集)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22 김현성(金玄成, 1542~1621) 남창잡고(南窓雜藁)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24 김홍욱(金弘郁, 1602~1654) 학주전집(鶴洲全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9 김화준(金華俊, 1602~1644) 당계집(棠溪集)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89 김효원(金孝元, 1542~1590) 성암유고(省菴遺稿)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46 김휴(金烋, 1597~1638) 경와집(敬窩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03 김흔(金訢, 1448~1492) 안락당집(顔樂堂集) 2책 1개 서강대,충남대,국립중앙도서관
사164 김흥국(金興國, 1557~1623) 수북정집(水北亭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2 김흥락(金興洛, 1827~1899) 서산집(西山集) 16책 3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22 김희순(金羲淳, 1757~1821) 산목헌집(山木軒集)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18 김희주(金周, 1760~1830) 갈천집(葛川集)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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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환(姜奎煥, 1697~1731) | 비수재집(賁需齋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분수재(賁需齋) 강규환(姜奎煥, 1697~1731)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 김근행(金謹行)이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산정ㆍ재편하여 1781년경 선사한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본집은 12권 6책이다. 각 2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22년부터 1731년까지 지은 작품이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술회(述懷)>는 1728년 8월 여주(驪州) 청심루(淸心樓)에서 주필로 지은 장편 오언고시(五言古詩)로서 자신의 생평과 학문과정, 종사관으로서의 활약, 은거의 의지 등을 기술하였다. 권2는 소(疏)이고 권3~4는 서(書)이다. 대상인물의 중요성과 연배, 저작 연대를 함께 고려하여 편차하였다. 그중 한원진에게 보낸 편지는 선악과 이기의 관계, 정이(程頤)가 말한 지각과 정동의 관계,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에 관한 질문이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이고 권6은 설(說)이다. 권7은 차의(箚疑)이고 권8~11은 변(辨), 록(錄), 잡저, 애사, 뇌문, 제문, 잡지 내편(雜識內篇), 잡지 외편(雜識外篇)이다. 권12는 부록(附錄)으로 행장, 제문, 애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대수(姜大遂, 1591~1658) | 한사집(寒沙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병화(秉和)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유주목(柳疇睦)의 산정을 받아 1870년 방곡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별로 목록을 실었다. 권수에 유후조(柳厚祚)와 유주목(柳疇睦)이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 만사이다. 작품 중에는 인조반정으로 처형된 정인홍(鄭仁弘)의 집을 지나며 지은 <과야정파댁(過倻鄭破宅)>, 밀양 부사로 있을 때 읊은 <차영남루판상운(次嶺南樓板上韻)>, 졸년에 격양가를 부르며 태평을 칭송한 <문첩(門帖)> 등이 있다. 권3은 불윤비답(不允批答), 교서, 소차이고 권4는 소차, 계사, 서(書)이다. 권5는 전(箋), 계(啓), 서(序), 기(記), 발(跋), 상량문, 잡저, 제문이다. 권6은 비(碑)와 증조부 강인수(姜仁壽), 박인(朴絪), 이양재(李樑材)의 갈명(碣銘) 등이고, 권7은 부록으로 묘갈명(墓碣銘), 가장(家狀), 행장(行狀), 사제문, 제문, 만사가 있다. 권말에는 1870년에 방8대손 영흠(泳欽)이 쓴 발(跋)과 간기(刊記)가 있다.
▶강명규(姜命奎, 1801~1867) | 유계집(柳溪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계(柳溪) 강명규(姜命奎, 1801~1867)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 목활자본 ≪유계집(柳溪集)≫ 8권 4책이 전하고 있는데,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편간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부록에 수록된 아들 임()이 1898년에 지은 가전에 언급되어 있고, 필사본의 필사후기가 1920년에 작성된 점 등으로 볼 때 1898~1920년에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의 전반부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나 저작 연도와 무관하게 편차되어 있는데, 일부 시에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권3의 후반부~4의 전반부는 잡저이다. <두문동지(杜門洞志)>는 14대조인 회중(淮仲)이 두문동 24인 중의 한명으로 정조(正祖)가 그의 충절을 높이 산 사실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주자(朱子)에 대한 태도를 보여 주는 <독주선생서(讀朱先生書)> 등과 존주론에 대한 입장과 천주교 교리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통 성리학에 대한 고수 의지를 보여주는 <독존주록(讀尊周錄)> 등이 있다. 권6은 책(策), 축고문, 제문이다. 권미에 4남 임이 1898년에 지은 가전이 있다.
▶강박(姜樸, 1690~1742) | 국포집(菊圃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국포(菊圃) 강박(姜樸, 1690~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채제공(蔡濟恭)과 윤자 필악(必岳)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77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2권 6책이다. 권수에는 채제공이 1775년에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이 중에서 권1의 중반부터 권3까지는 저자가 1716년부터 1726년까지 엮은 10개의 시록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시록에는 창작 배경을 설명하는 짧은 소서(小序)가 있다. 권7은 소(疏)로, 영조 초기 수찬과 교리 재직 중에 올린 상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8은 서(書), 서(序), 기(記), 설(說)이다. 편지 중에서 오광운에게 보낸 것은 반정 과정에서 폐위된 중종의 비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복위에 관하여 중국 송대(宋代)의 사례를 들어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9는 묘지명, 갈명, 행장, 유사이고 권10은 이정양(李廷揚), 권민(權慜) 등에 대한 제문이다. 권11은 애사, 발(跋), 잡저이다. 권12는 한유의 ≪창려집(昌黎集)≫과 ≪예기≫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대한 책문제(策文題)와 <한묵만희(翰墨漫戲)>, <총명쇄록(聰明瑣錄)>이다.
▶강백년(姜栢年, 1603~1681) | 설봉유고(雪峯遺稿)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 1603~1681)의 문집이다. 저자는 내외(內外) 관직을 거칠 때마다 임소(任所)에서 지은 작품들을 모아 시권(詩卷)을 만들어 두었던 듯하며, 이러한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 강선(姜銑), 강현(姜鋧) 등이 주관하여 1690년대에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30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1은 시(詩)이고 권22~29는 문(文)이며, 권30은 부록이다. 시는 역임한 외직(外職)에 따라 <한계록(閑溪錄)>, <환성록(歡城錄)>, <해서록(海西錄)>과 <오주록(吳州錄)>, <관동록(關東錄)> 등의 시록(詩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으로는 다양한 문체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저자의 벗 박덕일(朴德一)이 안자(顏子)의 유설(遺說)을 모아 엮은 ≪학안록(學顏錄)≫에 대한 발문,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를 분석한 <소요유설(逍遙遊說)>, 1649년 청풍 군수로 있을 때 도곡산인의 허와(虛窩)에 대해서 허자(虛字)의 뜻을 부연해 지은 <허와기(虛窩記)> 등이 실려 있다. 청백리로 알려진 저자의 맑은 성품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강석규(姜錫圭, 1628~1695) | 오아재집(聱齖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오아재(聱齖齋) 강석규(姜錫圭, 1628~16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주우(柱宇)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1738년 저자의 문인 권섭(權燮)의 편차를 거쳐 만든 고본을, 저자의 7대손 학수(學秀)가 6대손 영로(永老)의 산정을 거쳐 191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5는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는 고산 찰방 재임 때에 지은 <갑인초원우관감음(甲寅草原郵館感吟)>, 과제로 지은 <궁전팔영(宮殿八詠)> 등이 있다. 권6은 부, 표, 잠, 명, 송, 찬, 전(箋), 상량문, 애사, 서(書)이다. 권7은 소장, 교서, 주문이다. 성혼과 이이의 문묘 출향이 부당함을 진달하고 복향하여 줄 것을 청한 <우율양현신변소(牛栗兩賢申卞疏)>,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올린 <기사오월상소(己巳五月上疏)> 등이 있다. 권8은 기, 서(序), 발, 식, 논이고 권9는 설, 전(傳), 제문, 묘지, 묘갈명, 묘표이다. 권10은 선조와 기성에 살던 장처사(張處士)와 김담(金譚)의 행장이고, 권말에는 1916년에 7대손 학수(學秀), 6대손 영로, 9대종손 조원(祚遠)이 쓴 발이 있다.
▶강석기(姜碩期, 1580~1643) | 월당집(月塘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월당(月塘) 강석기(姜碩期, 1580~1643)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생전에 유고를 정리해 두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후에 강빈(姜嬪)의 옥사(獄事)로 멸문(滅門)이 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유문(遺文)을 거두어 정리하지 못하였다.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이명한(李明漢)이 찬한 시장(諡狀)이나 신익성(申翊聖)이 찬한 신도비명(神道碑銘)에도 ≪의례문해(疑禮問解)≫ 일부(一部)가 가장(家藏)되어 있다고 할 뿐 문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고의 정리는 1718년(숙종44) 저자가 신원되어 복작되던 즈음에야 행해진 듯하다. 강명달(姜命達)이 쓴 지(識)에 의하면, 1717년 증손(曾孫) 강봉서(姜鳳瑞)가 수년 간 유문을 수집 정리하여 외후손(外後孫)인 박사수(朴師洙)와 함께 편차 교정하고 부록까지 정리해서 정서해 두었으나 재력이 모자라 간행하지 못하다가 1772년(영조48) 5대손 강명달이 음성(陰城) 현감(縣監)으로 나가면서 강봉서의 교정본에 의례문해(疑禮問解)를 별집(別集)으로 편차하고 정포(鄭宲)의 서(序)를 받아 활자로 간행한다고 하였다. 본서는 원집(原集) 8권, 별집(別集) 2권 합 5책이다.
▶강세진(姜世晉, 1717~1786) | 경현재집(警弦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현(警弦)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봉흠(鳳欽)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족제 세백(世白)의 산정을 받은 고본(稿本)을, 세백의 아우 세륜(世綸)과 저자의 외손 정상리(鄭象履)가 교수ㆍ편차하여 1840년 아버지 필신(必愼)의 모헌집(慕軒集)과 함께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권별(卷別)로 수록 문체를 간략하게 기술한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세서회(洗鋤會)>는 1772년 7월 고을의 농민들이 저자를 ‘호미씻이’에 초대한 것을 계기로 지은 것으로,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모여 즐겁게 호미씻이를 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풍습의 유래와 함께 상세히 설명하는 장문의 시서(詩序)가 있다. 권3은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전(傳), 여문(儷文), 애뢰(哀誄)이다. 전은 상주 단밀현(丹密縣) 김씨 집안의 세 여인과 충원(忠原) 사람 홍차기(洪次奇)의 효행, 상주 지질리(坁垤里)의 효자 김영세(金榮世)와 관련된 기이한 일화를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작성 연도가 없는 정상리의 발(跋)이 있다.
▶강세황(姜世晃, 1713~1791) | 표암고(豹菴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전자료총서 수록 영인본
-조선 시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6권 3책의 ≪표암고(豹菴稿)≫와 5권 2책의 ≪표암집(豹菴集)≫이 현재 필사본의 형태로 전하고 있다. 이 중에서 ≪표암고≫는 권5의 제발 중 손석휘(孫錫輝)의 글씨를 평한 글들 말미에 1792년 아들 빈(儐)이 적은 주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표암 사후에 강빈이 정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1~3은 시(詩)로, 작품은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2세에 안산으로 이주하기 이전의 작품, 이후 안산에서 20여 년간 거주하던 시기의 작품, 마지막으로 다시 서울로 이주한 이후 만년 20여 년간의 작품으로 구분된다. 권4는 서(序), 기(記), 설(說), 소인, 서(書), 잡저이다. 기문은 김홍도의 호인 단원(檀園)에 대한 것이고,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는 임금의 남여(藍輿)를 타고 궁궐을 구경한 일에 대해 쓴 것이다. 권5는 제발(題跋), 찬(讚), 명(銘)이다. 제발은 서화첩(書畫帖)에 붙인 것들이 대부분이고, 중국 유명 서화가들의 작품과 조선의 서예가와 주변 인물들의 서화에 붙인 것들이다.
▶강운(姜橒, 1773~1834) | 송서집(松西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서(松西) 강운(姜橒, 1773~18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생전인 1834년에 실화로 8할 정도가 사라진 것을, 손자 한규ㆍ하규(夏奎)와 종손 명규(命奎) 등이 수습하고 1849년에 1차 정리하여 가장(家狀)하였다. 이후 저자의 증손 용(鎔)이 정리 재편한 것을 5대손인 강수원(姜壽元)이 영주에서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드물게 목록에는 연기가 빠지거나, 시제가 달리 쓰인 데가 보인다. 권1~2는 시(詩)이다. 운원잡영(雲院雜詠)은 1827년 12월~1828년 4월까지 소수서원의 강회에 동주(洞主)로 참여하여 지은 시와 강회가 끝난 후 원생과 소백산에 오르며 지은 시이다. 이황의 시에 차운하고, 첩운(疊韻)으로 지은 것이 많다. 권7은 기, 발(跋), 설(說), 고유문, 상량문, 제문이다. <유소백기(遊小白記)>는 1828년에 이황의 후손 이야순(李野淳)의 권유로 이황이 1549년 4월 22일 소백산을 유람한 것에 맞춰 이 날짜에 10여 일간 유람한 내용을 담은 유기이다. 권말에는 문인이자 족손인 명규가 1849년에 지은 발과 증손 용의 발이 있다.
▶강위(姜瑋, 1820~1884) |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 | 권책
수 : 6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고환(古歡) 강위(姜瑋, 1820~1884)의 문집이다. 1885년 아들 강요선(姜堯善)이 시문을 수집하여 광인사(廣印社)에서 17권 3책의 활자로 시고(詩稿)를 간행하였고, 문고(文稿)는 1889년 광인사에서 4권 2책의 활자로 간행하였다. 시고는 권별로 시집 형태를 갖추며, 권마다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권8은 동루연상집(東樓聯賞集)으로 북고사(北固寺)에서 결하(結夏)할 때 지은 시, 선게(禪偈)를 희작(戱作)한 시 등 불교와 관련된 시가 들어 있고, 권11은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으로 저자가 주축이 되어 역관(譯官), 의관(醫官) 등 여항인(閭巷人)과 결성한 육교시사(六橋詩社) 모임에서 지은 시들이 실려 있다. 권12는 북유초(北遊草)로, 정건조를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올 때 지은 시이다. 문고에는 서(序), 기(記), 설(說), 송(頌), 논(論), 의(議), 서(書), 유(諭), 모화문(募化文) 등이 있다. 보유 가운데 <담초여황효후시랑(談艸與黃孝侯侍郞)>은 1874년 중국에 갔을 때 황옥(黃鈺)과 필담한 것으로, 일본의 대만 침략 전말 등을 우리에게 알려 주어 대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글이다.
▶강유(姜瑜, 1597~1668) | 상곡집(商谷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상곡(商谷) 강유(姜瑜, 1597~166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필건(弼健)ㆍ필기(弼耆)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성대중(成大中)의 산정(刪定)을 거쳐 1798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두(卷頭)에 1798년 민종현(閔鍾顯)이 쓴 서문(序文)이 있다. 총목(總目)은 없고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저자가 관직생활 중 외직을 여러 차례 지냈기 때문에 지방에 있을 때 지은 작품들이 많다. 권2는 문(文)으로 소(疏), 명(銘), 제문(祭文)이다. 이 중에서 <척화소(斥和疏)>는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어가를 따라 강화도에 들어갔을 때 올린 상소(上疏)로 청(淸)나라와 화의(和議)하지 말고 항전(抗戰)할 것을 주장한 것이고, <청물쇄환주회인소(請勿刷還走回人疏)>는 1628년에 올린 것으로, 청나라에서 주회인(走回人)을 포로로 송환할 것을 요구한데 대해 이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아뢴 것이다. 권3은 부록(附錄)이고, 권말에는 성대중이 179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강유선(康惟善, 1520~1549) | 주천유고(舟川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1520~1549)의 문집이다. 1550(명종5) 30세의 나이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지 못했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강복성(康復誠)이 정리하고, 평안도 관찰사 한준겸(韓浚謙) 등이 1607(선조40) 선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강복성은 1610(광해군2)에 전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친구 이호민(李好閔)에게 본집의 인본(印本)을 보내 서문을 받았으나 추각(追刻)되지는 않았다. 문집은 원집과 부록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과 발문은 실려 있지 않으며, 간행 이후에 이호민이 쓴 서문은 그의 문집 ≪오봉집(五峯集)≫에 들어 있다. 원집에는 시, 사, 부, 조문, 제문, 묘비명, 서(序), 설, 서(書), 소, 기, 논이 실려 있다. 시 가운데 <견덕양유고유감증인(見德陽遺稿有感贈人)>은 기묘사림 기준(奇遵)의 문집을 보고 기묘년의 사화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주봉설(酒蜂說)>은 술잔에 빠져 죽은 벌을 비유로 들어 자신이 죽는 길인데도 욕심 때문에 물러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경계한 글이다. 인종에게 올린 상소에는 조광조(趙光祖) 등 기묘사림의 신원을 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강이천(姜彝天, 1769~1801) | 중암고(重菴稿)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중암(重菴) 강이천(姜彝天, 1769~18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기백(耆伯)이 원래는 8권으로 편성할 생각이었던 듯하지만 권별로 수록 문체만 제시하고 권차를 따로 규정하지 않은 점과 본문의 편집 상태를 고려하면 아직 정리 중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집은 불분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문체별 총목이 있고, 작품 제목을 수록한 목록이 중간 중간 제시되어 있다. 책1은 부(賦), 시(詩)이다. 부는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 있으니 처한 상황에 만족해하며 삶을 마치겠다는 내용의 <등고부(登高賦)>를 비롯해, <한경사(漢京詞)>는 한양의 산세, 종묘제악에서부터 각종 문화예술을 노래한 106수의 장편 연작시이다. 책3은 잠(箴), 명(銘), 찬(讚), 제발, 제문, 묘지명, 신도비, 행장, 잡저이다. <서촌민부사(書村民婦事)>는 도적에게 살해당한 남편의 복수를 이루고 자진한 제천(堤川)의 어느 열부(烈婦)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화관총화(梨花館叢話)>는 주위에서 보고 들은 민간의 기이한 일화나 서화(書畫)에 관한 이야기를 간결한 필치로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1850년에 쓴 서준보(徐俊輔)의 발문이 있다.
▶강익(姜翼, 1523~1567) | 개암집(介庵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개암(介庵) 강익(姜翼, 1523~1567)의 문집이다. 병란 중에 대부분 사라진 저자의 시문을 친손 강전(姜絟)이 처음으로 유고를 수습하여 정리하였고, 1686년 양천익(梁天翼)이 재차 교정하고 편집하여 함양 남계서원(蘫溪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86년 간본을 1846년경 추각한 후쇄본이다. 본집은 상하 2권 1책으로 총 70판으로 이루어진 적은 분량의 시문집이다. 권수에 1706년 정기윤(鄭岐胤)이 지은 서문이 있다. 상권에는 <숙야재독역(夙夜齋讀易)> 등 20여 수의 시와 <상남명선생서(上南冥先生書)> 등 편지 6편이 있으며 <양진재기(養眞齋記)>와 저자가 오랫동안 관여한 남계서원(蘫溪書院)의 기문이 있다. 추록으로 실린 단가(短歌) 3편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것으로 국문 시가(詩歌)로는 비교적 초기 작품이다. 하권은 부록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 등제(登第)하였으나 관직 생활보다는,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 힘쓰며 신독(愼獨)과 학문의 실천을 중시한 저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강재항(姜再恒, 1689~1756) | 입재유고(立齋遺稿) | 권책
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 1689~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강택일(姜宅一)의 가장에 유집 및 동사평증(東史評証), 추원록(追遠錄) 및 유고를 수집하여 정리하였으나 정고본(定稿本)의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윤광안(尹光顏)이 경상 감사로 재직 시에 본집의 교정을 보고 선사하여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화재로 초고(草稿)가 소진되고 단지 전사본(傳寫本) 한 본만 겨우 전해졌다. 이후 6대손 강욱(姜욱(金+昱)), 강일(姜鎰), 강훈(姜훈(金+薰)) 등이 1912년 윤광안의 교정본인 원집과 부록 20권을 조금도 가감이 없이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서문은 없고, 끝에 6세손 강욱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으며, 권1~6은 시(詩), 권7은 편지글, 권8~11은 잡저(雜著), 권12~13은 서(序), 기(記), 발(跋), 잠(箴), 명(銘), 찬(贊), 권14~17의 앞부분은 논(論), 변(辨), 의(議), 설(說), 권17 뒷부분은 상량문, 제문, 권18~19는 애사, 묘갈명비지, 행장, 전, 부록으로 자지명(自誌銘)과 강택일(姜宅一)의 가장, 윤광소(尹光紹)의 묘지명이다. 끝에 강욱이 지은 발이 있다.
▶강정환(姜鼎煥, 1741~1816) | 전암집(典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전암(典庵) 강정환(姜鼎煥, 1741~18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대우(大瑀)가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유고를 산정하여 김영한(金甯漢)의 행장을 김승규(金昇圭)에게 서(序)를 받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사우록(師友錄)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승규의 서와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곤양(昆陽), 통영(統營), 진해(鎭海)의 정부(貞婦) 3인의 행적을 읊은 시, 1812년 4월 정주성(定州城) 화공(火攻)으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진압된 것을 기뻐하며 지은 시와 명(明)나라가 후금(後金)을 칠 때 원병으로 나가 활동했던 강홍립(姜弘立)과 김응하(金應河)의 전기인 강로전(姜虜傳)과 김장군전(金將軍傳), 그리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기록인 강도록(江都錄)과 남한록(南漢錄)을 읽고 감상을 읊은 시 등이 있다. 권7은 잡저(雜著)이다. <성리차록(性理箚錄)>은 성리학의 여러 논제들에 대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 등이 있다. 권말에 사우록과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용진(金容鎭)의 발(跋)이 있다.
▶강주(姜籀, 1566~1650) | 죽창집(竹窓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창(竹窓) 강주(姜籒, 1566~165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사후에 작은아들 강백년(姜栢年)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654년 목판(木板)으로 초간(初刊)한 후, 시문(詩文)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ㆍ재편하여 1668년 목판으로 간행(刊行)되었는데, 본 문집은 1668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이다. 본집은 10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이 1654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 권말에 1668년에 지은 조경(趙絅)의 발(跋)과 1661년에 지은 허목(許穆)의 발(跋)이 실려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권1~7은 476제의 시와 부(賦) 1편이다. 권8은 서(序), 기(記), 설(說)이다. 그중에서 <타두와기(打頭窩記)>는 조금만 삼가지 않아도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 비좁은 집에서 사는 유 학사(柳學士)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슬설(蝨說)>은 미미한 이도 사람의 나태함을 경계시키고 게으름을 일깨운다는 내용이다. 권9는 교서(敎書)와 제문(祭文)이고 권10은 부록으로 김시국(金蓍國)이 지은 신도비명과 정두경이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강준흠(姜浚欽, 1768~1833) | 삼명시집(三溟詩集) | 권책
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삼명(三溟)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기록이 부족하여 편집 서사의 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수록 작품 중 <임진삼월가행관왕묘……(壬辰三月駕幸關王廟……)>이 1832년 3월에 지어진 것이므로 그 이후 필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8편, 습유 합 4책으로 되어 있는 시집이다. 총 1,272제가 수록되어 있으며, 대체로 남인계 학자 목만중(睦萬中), 채제공(蔡濟恭) 등과 수창한 것, 시절, 기후, 인물, 산천에 대해 읊은 것, 사찰, 궁전 등에 대한 탄식, 악부나 여행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중에서도 악부는 우리 역사와 풍토 및 지리에 대한 애정과 정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편3은 시, 연행록(燕行錄)인데, 연행록은 이국(異國)의 풍물(風物)은 물론 당시 청조(淸朝)의 제도와 정치적인 관행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다. 편6은 시, 한경잡록(漢京雜錄)인데, 한경잡록 가운데 앞부분에 수록된 40제는 삼각산(三角山)에서부터 저자도(楮子島)에 이르기까지 한양 도성 안팎의 승경(勝景)을 읊은 시로, 제목 다음에 지명이나 건축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기해 두고 있다.
▶강지덕(姜至德, 1772~1832) |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여류시인 정일당(靜一堂) 강지덕(姜至德, 1772~1832)의 문집이다. 저자의 남편 윤광연(尹光演)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고 1834년과 1835년에 각각 윤제홍(尹濟弘)의 서문과 윤수경(尹守慶)의 발문을 받고 1836년에 스승 송치규(宋穉圭)의 서후(書後)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애초에 활자로 인쇄한 후 이를 복각(覆刻)한 것으로 보이며 사용된 활자는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추정된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제홍이 1834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시는 절구가 31제로 대부분이고, 5언절구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편 윤광연을 대신해서 지은 것도 8제나 된다. 서는 오빠 강일회(姜日會), 윤광주(尹光周) 등 가족이나 남편의 종친에게 보낸 것이다. 그중에서 종친에게 보내는 5편은 남편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척독은 모두 남편에게 쓴 것으로, 학문과 수신 등에 관한 것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1830년 겨울에 ‘정일당(靜一堂)’이라 쓴 저자의 서적(書蹟)이 있고, 송치규가 1836년에 지은 서후와 윤수경이 1835년에 지은 발이 있다.
▶강진(姜溍, 1807~1858) | 대산집(對山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대산(對山) 강진(姜溍, 1807~185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 정리와 간행은 구의(舊誼)를 중하게 여긴 조인영의 손자 조영하(趙寧夏)가 자신의 조부 ≪운석유고(雲石遺稿)≫를 간행한 뒤, 저자의 아들 구수(龜秀)와 홍수(鴻秀)에게 산일(散逸)되어 있는 유시(遺詩)를 4권 2책으로 편집하게 하여, 1868년에 ≪운석유고≫와 동일한 활자인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는 시집(詩集)으로 권수에 조두순(趙斗淳), 윤정현(尹定鉉), 김학성(金學性), 홍순목(洪淳穆) 등 당대 명사들의 서(序)가 실려 있다. 상대적으로 중년과 만년 작품 비중이 높은 편이다. 권3은 시이다. 1850년부터 1852년까지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안협 현감으로 재직할 할 때 지은 작품이다. <석정탄(石鼎歎)>은 이천(伊川)의 특산품인 석정(石鼎)으로 인해 생긴 폐해를 듣고 지은 시이며, <석거사묘수비후음시읍사(石居士墓䜿碑後吟示邑士)>는 명나라 병부 상서 석성(石星)의 후손으로 조선에 망명해서 안협에 숨어 살았던 석계조(石繼祖)의 묘표를 세워 주고 그 사적을 읊었다. 권4는 1853년부터 1858년까지의 시가 실려 있다.
▶강진규(姜晉奎, 1817~1891) | 역암집(櫟菴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역암(櫟菴) 강진규(姜晉奎, 1817~189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시대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유집을 가장(家藏)해 오다가 1920년에 아들 유(鍮)와 조카 용(鎔)이 동지 한두 명과 수교(讎校)하고 사문(斯文)의 증정(增訂)을 거쳐 원집(原集)을 6책으로 정리하고, 별집(別集) 1책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1970년에 현손 시창(是昌)이 병선(兵燹)으로 전체 판수(板數)의 2/3만 보존되어 있으므로 다시 원집 12권, 보유 2권 합 7책으로 편차하여 석판본(石版本)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2권, 별집 2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권별 목록이 있고, 목록에 저자가 생전에 편찬한 ≪금계록≫, ≪경호록≫ 등에 수록된 글의 출처를 밝혀 놓았다. 권4는 소(疏), 연설(筵說)이다. 권12는 잡저(雜著)이다. <서사기이충정공순절후(書沙磯李忠貞公殉節後)>는 1866년 병인양요로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결한 이시원(李是遠)의 순절에 대해 쓴 글이고, <유엄목문(諭欕木文)>은 엄나무에 비유하여 벽사(辟邪)에 대한 생각을 쓴 것이다. 권말에 1920년 장남 유와 조카 용이 지은 발(跋)이 있다.
▶강필신(姜必愼, 1687~1756) | 모헌집(慕軒集) | 책권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모헌(慕軒) 강필신(姜必愼, 1687~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족질 세백(世白)이 산정한 고본을, 세백의 아우 세륜(世綸)과 외증손 정상리(鄭象履)가 교수ㆍ편차하여 1840년 윤자 세진(世晉)의 ≪경현재집(警弦齋集)≫과 함께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강세륜(姜世綸)이 1840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그중에서 사군(四郡)을 유람하며 지은 일련의 작품은 강박(姜樸)에게 두보(杜甫)의 유법을 깊이 터득하였다는 칭상을 받았으며, <만김원외사십운(挽金員外四十韻)>, <만이주서사십운(挽李注書四十韻)> 등 장편의 만시는 남인 문단의 문학적 전통과 관련이 깊다. 권4는 교서, 소(疏), 연설(筵說)이다. 교서는 무신란에 공을 세운 이수량(李遂良)을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녹훈하는 내용이다. 권5는 서(書), 잡저, 서(序), 기(記), 여문(儷文)이다. 서(書)는 홍중징(洪重徵), 권상일(權相一)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6은 심벌(沈橃), 유헌장(柳憲章) 등에 대한 제문, 구묘문, 모친 전주 이씨(全州李氏)와 외조카 이성록(李星祿)에 대한 행장이다.
▶강필효(姜必孝, 1764~1848) | 해은유고(海隱遺稿) | 책권수 : 13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해은(海隱) 강필효(姜必孝, 1764~184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강헌규(姜獻奎)와 문인 김소(金熽), 손자 집(鏶) 등이 편차하여 60권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손자 면(金+冕)이 종질 제(濟)와 함께 산정하여 20권으로 휘편(彙編)하고, 원집에서 빠진 것은 따로 속(續) 2권으로 만든 후에, 부록 2권을 추가하여 1895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0권, 부록 2권, 속 2권 합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9는 서와 잡저이다. <정전도(井田圖)>는 정전설을 알기 쉽게 도해(圖解)하고 설명을 곁들인 것이고, <겸괘도(謙卦圖)>는 ≪주역(周易)≫ 64괘 중에 회(悔), 린(吝), 흉(凶), 구(咎)가 없는 것은 오직 겸괘이고, 또 겸괘는 간체(艮體)로서 곤괘(坤卦)의 아래에 있어 겸손을 나타내는 괘이므로 특별히 쉽게 이를 알려주기 위해 풀이한 것으로, 겸손의 뜻인 겸괘로 자경(自警)하고 후대의 사람 중에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려 한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권17은 발(跋), 봉안문, 서원축문, 제문이다. 권말에 1894년 손자 면이 쓴 발이 있다.
▶강항(姜沆, 1567~1618) | 수은집(睡隱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은(睡隱) 강항(姜沆, 1567~1618)의 문집이다. 윤순거(尹舜擧)가 금구 현령(金溝縣令)으로 재직하던 중 저자의 시문과 <간양록> 등을 편차 정리하고 1658년 송시열(宋時烈)의 서문(序文)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원집 4권, 간양록, 부록, 별집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1에는 약 180제(題)의 시가 실려 있다. 권2는 부(賦)와 산문이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지은 하전(賀箋), 송(頌), 상량문, 명(銘) 등이 있다. 권3은 상소, 정문(呈文), 서(序), 기(記), 서(書), 잡저 등이다. 잡저 중 <시화(詩話)>에서는 작시(作詩)보다 주시(註詩)가 더 어렵고, 작문(作文)보다 평문(評文)이 더 어렵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권4는 행장과 비명(碑銘)이다. 별집에는 과제(課製)와 시 12제(題), 부(賦) 2편, 의조(擬詔)와 의표(擬表) 8편, <문무병용장구지도의(文武並用長久之道議)> 1편, <존심양성설(存心養性說)> 1편, 그리고 책제(策題)와 대책(對策) 4편이 실려 있는데, 풍수지리(風水地理), 역대(歷代) 도읍(都邑)의 설치, 참위설(讖緯說) 등에 관한 것들이다.
▶강헌규(姜獻奎, 1797~1860) | 농려집(農廬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농려(農廬) 강헌규(姜獻奎, 1797~1860)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자편해둔 것을 삼남 면(𨬋)이, 백형 진()과 중형 류(鎏)가 수집했으나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저자의 유고를 교정하고, 원집 9권 부록 1권 총 10권으로 편차하여 189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부(賦)는 주자(朱子)의 부에 차운하여 지은 <차감춘부(次感春賦)> 1편이 있다. 저작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시는 얼마 없지만 중간 중간 섞여 있는 만시(挽詩) 등으로 추정해 볼 때 편차는 시체에 관계없이 연대순으로 배열된 것으로 보인다. 권3은 서(書)로, 40명에게 보낸 글이 대상별로 실려 있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유학(諭學)>은 학문의 유래와 전수방법, 과거와 학문과의 관계 등 초학자가 지녀야 할 학문 자세에 대해 설명한 것이고, <여생문답(呂生問答)>은 1834년 상중에 찾아온 여생(呂生)이란 과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복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권말에 삼남 면이 1895년 문집을 간행하면서 경위를 서술한 발문이 실려 있다.
▶강혼(姜渾, 1464~1519) | 목계일고(木溪逸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목계자(木溪子) 강혼(姜渾, 1464~1519)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간행되지 못하다가 근래에 와서야 방손(傍孫) 강필수(姜必秀)ㆍ강대수(姜台秀) 등이 제가(諸家)의 문집 및 묘갈(墓碣)ㆍ패관시화(稗官詩話) 등에서 시문 약간 편을 얻어 원집을 만들고,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서 저자 관계 기록을 모아 부록을 만들어 1910년 진주에서 2권 1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은 시 19제(題), 서(序)ㆍ발(跋) 4편, 구묘문(丘墓文) 9편을 모은 것이다. 영남 지방의 누정(樓亭)에 지은 시를 비롯하여 은대선(銀臺仙) 등 기생에게 준 시 및 연산군의 칭상(稱賞)을 받은 응제시 등이 있다. 권2는 부록으로 국승과 야사에서 저자와 관계된 기록을 모은 것 외에 <무오당적(戊午黨籍)>ㆍ<진주지(晉州誌)>ㆍ<탁영연보(濯纓年譜)> 등에서 초록한 척유(摭遺)가 있다. 그리고 저자에 관해 강필수가 지은 가장(家狀), 곽종석이 지은 신도비명 등이 있다. 저자는 문장과 시로 이름을 떨쳤으나 연산군 말년 애희(愛姬)의 죽음을 슬퍼한 왕을 대신하여 <궁인애사(宮人哀詞)>와 제문을 지은 뒤 사림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 | 사숙재집(私淑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성종(成宗)의 명으로 1483년에 아들 강귀손(姜龜孫)이 수집ㆍ편차하여 갑진자(甲辰字)로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아, 1805년에 10대손 강주선(姜柱善) 등이 문중에 가전(家傳)된 원고본(原稿本)을 모아 정리하여 12권 5책으로 편차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483년에 지은 서거정(徐居正)의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5는 시(詩), 권6~10은 문(文), 권11은 금양잡록(衿陽雜錄), 권12는 부록이다. 금양잡록은 농가(農家)ㆍ농담(農談)ㆍ농자대(農者對)ㆍ제풍변(諸風辨)ㆍ종곡의(種穀宜)ㆍ선농구(選農謳)로 편차하여 농사에 대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부록에는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ㆍ≪동문선(東文選)≫ㆍ≪동각잡기(東閣雜記)≫ㆍ≪보한재집(保閑齋集)≫ 등 여러 문헌에서 채록한 저자와 관련된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농촌 사회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작품들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계덕해(桂德海, 1708~1775) | 봉곡계찰방유집(鳳谷桂察訪遺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봉곡(鳳谷) 계덕해(桂德海, 1708~1775)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각문(珏文)과 손자 남저(南著)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초사한 것을, 저자의 손자 남귀(南龜)가 김제면(金濟勉)의 교정ㆍ편차를 받아 185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2권 3책이다. 권수에 이시원(李是遠), 김영작(金永爵), 이참현(李參鉉)이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고, 목록과 권1 사이에 김제면이 지은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권1~8은 경설(經說)로, ≪역경(易經)》, <태극도설(太極圖說)>, ≪서경》의 전래 과정과 진위 문제, <춘추>, <맹자>, <산해경본의(山海經本義)>에 관한 학설과 견해 내용상의 특징 등을 적었다. 권9는 부(賦)와 시(詩)이다. 권10은 윤대(輪對), 공사(供辭), 계사, 서(書)이다. 권11은 잡저(啓辭)이고 권12는 잡록(雜錄), 비문(碑文), 부록(附錄)이다. 잡록 가운데 <문장(文章)>과 <철언제투(綴言諸套)>에서는 진한고문과 당송고문의 차이, 시문을 짓거나 감상하는 방법, 효과적인 독서법, 경전의 개별 특징, 모범으로 삼을 전적 등을 논했다. 권말에 이상선(李象先)이 1857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고경명(高敬命, 1533~1592) | 제봉집(霽峯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편수록본(自編手錄本)의 형태로 사후에도 아들 고용후(高用厚)에 의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고용후의 <남선인유고유감(覽先人遺稿有感)>에, 저자가 의병으로 출전하면서 평소 저술한 시문을 맡겼고, 이후 고용후는 정유재란 중에도 등에 지고 다니며 간직해 왔다고 한다. 1614(광해군6) 이항복(李恒福)에게 산정(刪定)과 편차(編次)를 부탁하고 서문도 받아 1616(광해군8) 남원 부사로 부임하자 시 외에 약간의 문을 더 수집하여 유집(遺集) 1권으로 편차한 뒤 1617(광해군9) 원집과 유집, 속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리고 속집은 원집과는 별도로 유근(柳根)이 가려 뽑은 약 42수 가량의 시를 간행시 속집으로 편차한 것인데, 판식과 글자체가 원집과 약간 달라서 판하본(板下本)이 달리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집은 원집 5권과 유집 1권, 속집 1권 합 6책으로, 권수에는 이항복의 서문이 있고 말미에 유근의 발이 실려 있으며 목록은 없다. 원집 5권은 전체가 모두 1100여 수의 시로 시체의 구분 없이 연도별로 배열되어 있고, 속집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고부천(高傅川, 1578~1636) | 월봉집(月峯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월봉(月峯) 고부천(高傅川, 1578~1636)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고만기(高萬紀)가 1677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6대손 시좌(時佐)가 1725년 선사한 후, 7대손 휘진(輝鎭)ㆍ면진(勉鎭)과 8대손 제원(濟遠) 등이 1861년 6대손 시홍(時鴻)의 교정과 기정진(奇正鎭)의 산정을 거쳐 1864년경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9권 1책이다. 권수에는 서(序), 전교, 예부 복제가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이고 권2는 정문으로서 시, 표, 논이다. 그중에서<곽자의궁사극치지론(郭子儀窮奢極侈之論)>은 향시에서 수석한 글로서, 곽자의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은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부득이 그러했던 것이므로 후세 사람들이 본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권3은 소차와 계사이고, 권4는 응제록으로서 제문, 축문, 교서이다. 권5는 하대표(河大豹)에 대한 묘갈문이고 권6~8은 부록이다. 권9는 연보로서 1578년 저자의 출생에서 1861년 후손들이 유집을 정리한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현손 고만기(高萬紀)가 1737년에 지은 것, 6대손 고시좌가 1785년에 지은 것 등 4편의 발이 수록되어 있다.
▶고상안(高尙顔, 1553~1623) | 태촌집(泰村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란과 가화(家火)로 인해 대부분 산일되고 <농가월령(農家月令)>, <효빈록(效嚬錄)> 등 몇 권이 가장(家藏)되어 있으면서, 오랫동안 책정(冊定)을 거치지 못한 채 초고의 형태로 전해져 오다가 1897년 문중 후손들이 영고재(穎皐齋)에 모여 간행할 것을 의논하였다. 간행을 주관한 주손(胄孫) 고영(高영(氵+穎))은 족숙(族叔)인 고익상(高益相)ㆍ고언묵(高彥默) 등과 함께 가장유고(家藏遺稿) 및 다른 문집 중에 수록된 유적을 수집하여 교감ㆍ편차하였다. 이것을 재차 교정하여 6권 3책으로 엮어, 1898년 3월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 권1~5는 저자의 시문이고 권6은 부록이다. 권수에는 정종로(鄭宗魯)가 저자의 후손 고정규(高挺奎)의 부탁을 받고 지은 서가 실려 있고, 목록이 있다. 권2에는 만사, 전, 서가 있다. 권4~5에는 <효빈잡기(效嚬雜記)>가 실려 있다. 권4의 <총화(叢話)> 편에는 주로 당대 인물들의 일화나 저자의 체험담이 실려 있고, 권5의 <여화(餘話)> 편에는 야담류의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고성겸(高聖謙, 1810~1886) | 녹리집(甪里集) | 권책
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녹리(甪里) 고성겸(高聖謙, 1810~1886)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 사후 9년 뒤인 1895년에 아우 문겸(文謙)과 숙겸(淑謙)의 주도로 상주(尙州) 녹리정(甪里亭)에서 인출되었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실려 있다. 본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권1~7이 시문으로 빼어난 시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부는 선친이 생전에 심어 놓고 아끼던 강성황(江城黃)이라는 품종의 국화에 대해 읊으며 추억한 <강성황부(江城黃賦)>가 있다. 시는 <문서학성행우분유작(聞西學盛行憂憤有作)>은 천주교가 성행하여 윤리도덕과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무너짐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시대상을 알 수 있으며, 7언절구 33수로 구성된 <전원락(田園樂)>은 전원생활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권10은 서(序), 기(記), 지(識), 발, 상량문이다. 기는 광해군 시절에 이이첨(李爾瞻)에게 반대하여 낙향했던 선조 인계(仁繼)와 관련된 정자인 월봉정(月峯亭)을 중수한 기록, 녹리정을 건립하기도 전에 기문부터 지어놓은 <녹리암장기(甪里巖莊記)>이다. 권말에는 아우 문겸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고여흥(高汝興, 1617~1678) | 요은집(鬧隱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 1617~1678)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한덕(漢德)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윤광소(尹光紹)의 고정을 거쳐 1792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광소가 1778년에 지은 서(序)와 종인 정헌(廷憲)이 1791년에 지은 서가 있고 그 뒤에 목록과 범례가 실려 있다. 권1~2는 문견록(聞見錄) 상ㆍ하와 시이다. 저자의 저술 비중에 입각해 일반적인 문집 편차 방식을 따르지 않고 문견록을 앞세우고 그 뒤에 시를 수록하였다. 문견록에는 오경과 그 내용을 전체와 대용으로 설명한 <오경대지도(五經大旨圖)>를 비롯하여 <천인이기도(天人理氣圖)>, <대학지도(大學之圖)>, <중용지도(中庸之圖)>, <중용석의(中庸釋義)>, <가례석의(家禮釋義)> 등이 있고, 시는 친우와 반등산에서 노닌 흥취를 읊은 <유반등(遊半登)> 등이다. 부록에는 윤증(尹拯) 등 31인이 지은 만사와 부장, 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 있고, 권말에 고택겸(高宅謙)이 1792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이택(李澤)의 발, 증손 한덕(漢德)이 1792년에 지은 지가 있다.
▶고용후(高用厚, 1577~1652) | 청사집(晴沙集)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 1577~1652)의 문집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아들로 조흥빈(趙興賓)의 고변사건에 연루되어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 부친 고경명과 두 형, 그리고 누이까지 모두 임진란에 순절하여 충신 효자 가문의 자손이라는 명예를 입고 환로(宦路)에 올랐지만 불우하게 일생을 마치고 적사(嫡嗣)도 없었다. 1680년 서자 고부선(高傅善)이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여 김수항(金壽恒)에게 문집의 산정(刪定)과 서문을 부탁하였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문집이 간행되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누판고(鏤板考)≫에 청사집(晴沙集)의 판목이 저자 부친의 사우인 광주 포충사(褒忠祠)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완영(完營)에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완영책판목록(完營冊板目錄)≫이 작성된 시기가 대략 1759년경이므로 적어도 이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집의 구성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1631년 저자가 동지사로 중국에 갔을 때 서광계(徐光啓)에게 받은 서문과 김수항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1은 시이다. 권말의 중국인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고유(高裕, 1722~1779) | 추담집(秋潭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추담(秋潭) 고유(高裕, 1722~1779)의 문집이다. 사손 익겸(益謙)이 유적을 정리하여 편차해 놓은 글이 타버리고 누락된 글만 남았는데, 이 신여본(燼餘本)이나마 발간하고자 1888년에 고준상(高浚相), 고세림(高世林)이 일을 주관하고, 사종손 문겸(文謙)의 편찬을 거친 뒤 선사하여 교정을 받고, 퇴계 후손 이만인(李晩寅)의 서문을 받아 189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만인의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분 없이 대략 저작 시기순으로 편차되어 있지만 저작연대가 밝혀진 시가 거의 없어서 일부는 편차가 뒤섞여 있기도 하다. <고의(古意)>는 자신의 경륜을 펼치지 못하고 초목처럼 스러져가는 신세를 한탄한 내용이다. 권2는 소(疏), 책문, 전(箋),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설(說)이다. 일반적으로 공거문(公車文)은 연도별로 편차되나 <사지평소(辭持平疏)>가 가장 앞에 배치된 것은 저자의 주요한 글로 여겨서인 듯하다. 이 상소에서 성균관의 유생이 당을 지어 서로 공격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권미에 문겸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고인계(高仁繼, 1564~1647) | 월봉집(月峯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월봉(月峯) 고인계(高仁繼, 1564~164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시고 몇 권만 가장되던 것을 증손 고한상(高漢翔)과 현손 고사건(高師健)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문경(聞慶)의 종인(宗人) 집에서 얻은 서(書)와 사우의 문집에서 찾은 제문(祭文), 행장(祭文) 등의 글을 합하여 권두경(權斗經)의 교정을 거쳐 6책으로 편찬하였다. 그 후 7대손 몽찬(夢贊)과 후손 택룡(宅龍) 등이 재편하여 1859년경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홍상민(洪相民)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17세부터 83세 때까지 지은 시와 만시(挽詩)가 있고, 권2는 첫머리의 <과조동관(過鳥東關)> 이하 모두 호중잡영(湖中雜詠)으로 저자가 호서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지은 기행시가 대부분이다. 권3은 서(書)이고 권4는 제문, 서(序), 묘지, 묘갈, 행록이다. 권5는 부록으로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행장을 비롯하여 묘비명, 제문등이 있고, 권두인(權斗寅), 권두경, 채헌징(蔡獻徵), 이휘재(李彙載)가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권미에는 6세손 고유(高裕)와 7세손 고몽찬(高夢贊)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고회(高晦, 1636~1711) | 관란재유고(觀瀾齋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란재(觀瀾齋) 고회(高晦, 1636~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5대손 명린(命麟)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2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8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시고(詩稿) 없이 문고(文稿)로만 이루어져 있다. 권두(卷頭)에 1862년에 쓴 홍순목(洪淳穆)의 서(序)와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은 송시열(宋時烈) 등 11人에게 보낸 40편의 서(書)이다. 권2는 서(序), 기(記), 문(文)이다. 서(序)는 담양 부사(潭陽府使)로 부임하는 홍득우에게 써 준 것 등이며, 기는 저자가 15세 때 심은 괴목(槐木)과 관련하여 자신의 이안재(怡顔齋)에 대해 쓴 것 등이다. 권3은 자형인 참의(參議) 장선충(張善冲)에 대한 행장(行狀)과 선비(先妣) 유인 강씨(孺人姜氏)에 대한 가장(家狀)인데, 가장 뒤에 송시열이 찬한 묘지(墓誌)가 부기(附記)되어 있다. 권4는 제문(祭文)이고 권5~8은 부록으로 가장(家狀), 행장(行狀), 제문(祭文), 묘지명(墓誌銘), 유사(遺事) 등이 기재되어 있다. 권말에 1862년에 신석우(申錫愚)가 쓴 발(跋)이 실려 있다.
▶곽열(郭說, 1548~1630) | 서포집(西浦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포(西浦) 곽열(郭說, 1548~16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시문 약간 편과 견문을 기록한 수필을 합친 ≪서포일록(西浦日錄)≫이 가장되어 왔고 1899년 겨울에 문중에서 파보를 중인한 다음, 8대손 곽창묵(郭昌默)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모아 7권으로 만들고, 저자의 행장(行狀), 갈명(碣銘), 계첩(契帖)과 증손 경한재 곽시징(郭始徵)이 지은 <육증서(六證書)>, 9대손 곽치섭(郭致爕)이 지은 <경오보변(庚午譜辨)>을 부록으로 편차하였고 1900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900년에 지은 최익현(崔益鉉)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잡저이고 권2~5는 시체순으로 오언고시(五言古詩), 육언고시(六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사율(五言四律),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사율(七言四律)이 실려 있는데 전아(典雅)하여 예스럽고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권6~7은 서포일록이고, 부록에는 윤행의(尹行義)가 지은 행장, 윤봉구(尹鳳九)가 지은 묘갈명 등이 있으며, 권미에는 8대손 곽창묵의 발문이 있다.
▶곽재우(郭再祐, 1552~1617) | 망우집(忘憂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망우(忘憂)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위 성이도(成以道)가 처음으로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2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소략하고 착오가 많아 종자(從子) 곽유(郭瀏)와 곽융(郭瀜) 등이 유문을 증보(增補)하고 권수에 전(傳)을, 권말에 제문과 만사(挽詞)를 붙여 1629년에 2권 1책으로 편차를 마쳤다. 권1에는 임진년에 의병을 일으킨 이후 1604년 찰리사(察理使) 재임 시까지 지은 소(疏), 상서(上書), 계사(啓辭) 등이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비변사의 관문(關文), 김덕령(金德齡)의 서(書), 유지(有旨) 등이 부기되어 있다. <창의시자명소(倡義時自明疏)>나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낸 편지는 경상 감사 김수(金晬)가 근왕(勤王)을 이유로 도망간 일과 관련하여 지은 글들이고, <답김장군서(答金將軍書)>는 김덕령이 연합을 제의한 데 대한 것이다. 그 외에 기복(起復)을 사양하는 소, 산성 수축을 청하는 계초(啓草) 등이 있다. 권2에는 영창대군의 죽음과 관련하여 올린 소, 남송 때 금인(金人)의 침략을 물리쳐 공을 세웠던 장준에 관해 논한 <장준론(張浚論)> 등이 실려 있다.
▶곽종석(郭鍾錫, 1846~1919) | 면우집(俛宇集) | 권책수 : 63책 | 포갑수 : 13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문집이다. 사후 문인들이 유문을 수습하여 1925년 연활자로 인행하였다. 권수에 실린 독대일기는 고종과 단독 면담하여 국가의 급무를 밝힌 내용이다. 원집의 권1~9에는 부(賦)ㆍ조(操)ㆍ시(詩)ㆍ악부가 있다. 이중에서 촌린부(村隣賦)는 이웃 간의 화목과 순후한 풍속을 노래한 글이다. 시는 지리산, 안동, 금강산 등을 유람하며 지은 것과 산촌에서의 일상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서(書)는 성리학에 대해 논한 내용이 많고, 현대식 학교와 예수교 등을 비판하는 내용 등이 있다. 잡저 중에 <이결(理訣)>은 이생기설(理生氣說)을 주장하고 기의 유한성과 이(理)의 무한ㆍ보편성을 말한 논설이고, <석성(釋性)>ㆍ<석지각(釋知覺)> 등은 불교의 심학(心學)을 파헤친 글이다. 그밖에 <후천괘어(後天卦語)>ㆍ<역역수설(易逆數說)>ㆍ<주재설(主宰說)> 등 역학에 관한 내용의 글도 있다. 이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저자는 1919년 3ㆍ1운동 뒤 영남과 호서 유생들의 연서(連書)를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호소문을 작성하였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곽진(郭𡺽, 1568~1633) | 단곡집(丹谷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단곡거사(丹谷居士) 곽진(郭진(山+晉), 1568~1633)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곽사림(郭師林)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고 조보양(趙普陽)이 지은 행장(行狀) 등을 부록으로 편차하였고, 저자의 차남 곽영(郭瓔)의 시(詩)와 소(疏), 서(書)를 수록한 ≪우주암집(宇宙庵集)≫ 1권을 부집(附集)하여 1786년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수에 1775년에 정범조(丁範祖)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오언절구, 칠언절구이고, 권2는 오언사운, 칠언사운, 오언고시, 삼오칠언이며 권3은 칠언고시, 칠언장단구, 칠언배율, 사(辭), 소(疏), 서(書)이다. 권4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축문(祝文),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안문성공묘추향서(安文成公廟秋享序)>는 1612년 안향(安珦)의 묘(廟)에 추향(秋享)을 지낸 전말과 선현을 존모하는 내용이다. 권5는 묘갈명과 묘지명, 잡저이다. 권6은 부록으로 묘갈명(墓碣銘), 행장, 초향문(初享文)과 상향축(初享文)이 있다. 권말에 1786년에 이광정(李光靖)이 지은 발(跋)이 있다.
▶구봉령(具鳳齡, 1526~1586) | 백담집(栢潭集) | 권책
수 : 12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중기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방대하였는데, 손서(孫婿) 이준(李埈)이 작품을 골라 원집과 별집으로 편차할 계획을 세우고 표점까지 찍어 놓았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김계광(金啓光)이 원집을 손보아 연보와 함께 1670년(현종11) 10권 4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인 원집과 추각(追刻)된 부록 및 1811년에 간행된 속집이다. 원집에 실린 시는 황해도, 충청도, 전라도의 재상 어사(災傷御史)와 충청도와 전라도의 관찰사를 지내면서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산문 가운데 <의홍문관진폐소(擬弘文館陳弊疏)>는 당시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개선책을 제시한 글이고, 서(書)는 유성룡, 조목 및 아들 등에게 보낸 것이다. 논(論)으로는 성인의 도를 구해서 보려면 맹자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내용의 글 등이 있다. <상례문답(喪禮問答)>은 상중에 가묘(家廟)에서 제사 지내는 것과 적자(嫡子)와 서자(庶子)가 상복을 입는 데 있어서 차이가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다. 퇴계 문인으로 명종ㆍ선조 대에 관직 생활을 한 저자의 작품을 통해 학문관과 정치 성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구사맹(具思孟, 1531~1604) | 팔곡집(八谷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팔곡(八谷)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의 문집이다. 아들 구성(具宬)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8책의 팔곡유고(八谷遺稿)를 직접 편차하여 7권으로 정리한 뒤 선사(繕寫)해서 가장해 두었는데, 외손서(外孫婿) 이식(李植)은 유고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간행하기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원고(元稿)를 산절해 4권 분량으로 편찬하였다. 이것을 저자의 사남 구굉(具宏)이 목판으로 간행하였지만,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전하지 않게 되자 저자의 외손 심장세(沈長世)가 1646년 영천 군수로 부임하면서, 원집(原集)을 다시 휘별(彙別)로 편차하고 또 저자의 삼남 구용(具容)의 ≪죽창유고(竹窓遺稿)≫를 부집(附集)하여 1648년 영천에서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잡고(雜稿)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수에는 장유(張維)의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잡고는 <난후조망록(亂後弔亡錄)>으로, 임진왜란 이래로 행적이 뛰어나 기록할 만한 사람을 뽑아 시를 지어 애도하고, 충현(忠賢)을 포장(褒奬)하고 투속(偸俗)을 격려하기 위한 글이다. 권미에는 1686년에 쓴 이단하(李端夏)의 잡고발(雜稿跋)이 실려 있다.
▶구영(具瑩, 1584~1663) | 죽유시집(竹牖詩集)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죽유(竹牖) 구영(具瑩, 1584~166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치성(致成)과 치겸(致兼)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저자의 문인 광주 목사(光州牧使) 윤변(尹抃)과 장성 도호부사(長城都護府使) 소두산(蘇斗山) 등이 1668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된 시집으로, 권수에 송시열(宋時烈)이 1664년에 지은 시고서(詩稿序)가 있다. 권상은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그중에서 <갑신초도유감(甲申初度有感)>은 저자가 환갑을 맞은 1644년에 숭정황제(崇禎皇帝)가 사망하고 북경(北京)이 무너지자 태어나던 갑신년 당시에는 만력인(萬曆人)이었음을 대비하여 감회를 쓴 것이다. 권중은 부모를 연달아 여읜 지 1주갑이 되어 추모의 정을 읊은 시인 <계사유감(癸巳有感)> 등 오언율시(五言律詩), 오언고시(五言古詩), 만시(輓詩)이고 권하는 부록(附錄)으로 만시(輓詩), 제문(祭文),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이며 권말에 문집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간(主刊), 서사(書寫), 교정(校正), 각수(刻手) 등으로 구분하여 새겨 놓은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구용(具容, 1569~1601) | 죽창유고(竹窓遺稿)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선 시대 죽창(竹窓) 구용(具容, 1569~16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권필(權韠)이 가장된 저자의 시 94제를 가져와 자신의 시 2수를 지(志)와 함께 수록하여 1권으로 편차한 후 보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질 심장세(沈長世)가 1648년 부친 구사맹(具思孟)의 ≪팔곡집(八谷集)≫을 중간(重刊)하면서 부집(附集)으로 초간(初刊)한 후, 함경도 관찰사 정호(鄭澔)가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1704년 함흥(咸興)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의 시집으로, 권수에 1605년 권필이 지은 서(序)와 1704년 정호(鄭澔)가 지은 서(序)가 있다. 상권과 하권은 시(詩)와 습유의 시 2수를 포함해 270여 수의 시이다. 그중에서<무산잡영(巫山雜詠)>은 정유재란으로 왕자를 성천(成川)으로 배종하던 부친을 따라가, 흘골산(紇骨山) 유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비류강(沸流江) 등의 풍경을 읊은 칠언 절구 10수이다. 부록에는 1602년에 권필이 지은 지(志)가 있고, 권필ㆍ이안눌(李安訥)ㆍ거천로(車天輅)ㆍ윤신지(尹新之)가 저자를 회고하면서 지은 시 7수가 실려 있으며, 1655년에 윤신지가 쓴 후지가 있다.
▶구음(具崟, 1614~1683) | 명곡집(明谷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명곡(明谷) 구음(具崟, 1614~1683)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문유(文游)가 수집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7대손 학조(鶴祖)가 시문(詩文)과 부록(附錄)을 추가하고 7대손 근조(鶴祖)와 8대손 연호(然鎬)가 190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신헌구(申獻求)가 1901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저자가 파기해 버리고 난 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문들을 수습한 것이다 보니 문체나 분량의 비중에 있어서 편차가 심하다. 권1~2는 시(詩)로 시체에 관계없이 수록되어 있다. <초입군경마상구점(初入郡境馬上口占)>은 군수로 부임하여 수안군 경계에 들어서면서 그곳 경제 상황, 풍속 등을 살피며 지방관으로서 생각하는 바를 읊은 것이다. 권3은 기(記), 상량문, 전(箋), 표,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상량문은 요산서원을 창건할 때 지은 것과 안동의 영호루를 중수할 때 지은 것이다. 권말에 김도화(金道和)가 1901년에 지은 발(跋), 이종원(李種元)이 1902년에 지은 발, 8대손 연호가 지은 발이 있다.
▶구치용(具致用, 1590~1666) | 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우교당(于郊堂) 구치용(具致用, 1590~1666)의 문집이다. 본집은 9대손 연승(然昇)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22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6권 2책의 시문집으로 각 책별로 목록을 실었으며, 권수에 1922년 권영호(權永頀)가 지은 서(序)가 있다. 권1~5는 시(詩)이다. 작품 중에는 남구만을 청안(靑眼)으로 맞이하며 읊은 <약천남군래방(藥泉南君來訪)>, 심양에 구금되었을 때의 비참한 심경을 읊은 삼학사 홍익한의 절명시(絶命詩)에 차운한 <인보홍서윤상사시운(忍步洪庶尹上巳詩韻)>, 가을 저녁 낙화암을 지나며 지은 <백마강선유작(白馬江船遊作)>, 부친의 제자인 이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기정택당이판서(寄呈澤堂李判書)> 등이 있다. 권6은 서(書), 제문(祭文), 묘지(墓誌), 기(記)와 부록(附錄)이다. 서(書)에는 장현광에게 어류(語類), 통편(通編) 등에서 의의(疑義)를 모아 질정을 청한 것과 1638년에 심서규(沈瑞奎)에게 존양(存養)과 성찰(省察)을 통해 실천하는 학문에 대해 역설한 것 등이 있다. 권말에 1922년에 8세손 승조(承祖)가 쓴 발(跋)이 있다.
▶권구(權絿, 1658~1730) | 탄촌유고(灘村遺稿)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탄촌(灘村) 권구(權絿, 1658~1730)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봉집(鳳集)이 윤하중(尹夏重)의 협조를 받아 192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인표(鄭寅杓)가 1929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서(書), 서(序), 제발, 발(跋)이다. 그중에서 편지는 조지겸(趙持謙), 한태동(韓泰東) 등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제발 가운데 <제수사소학대문후(題手寫小學大文後)>는 1691년에 자손들이 늘 풍송하고 실천에 옮기기를 바라며 지은 것이다. 권2는 제문, 축고문으로 제문은 조지겸, 최진혁(崔進爀) 등에 대한 것이다. 권3은 잡저 <노문일기(魯門日記)>로 세 차례에 걸쳐 노성(魯城)에서 가르침 받은 일을 기술하였으며, 권4~5는 잡저 <이택문변(麗澤問辨)>이고 권6은 잡저 <석원일기(石院日記)>로 1697년 가을 석실서원에서 3개월 남짓 강마할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권7은 만록(謾錄)으로, 고성 지역을 조사 답사하고 고성에 우거했던 인물들의 옛일, 시문 등의 다양한 내용을 적었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 8대손 봉집이 1929년에 지은 발이 있다.
▶권구(權榘, 1672~1749) | 병곡집(屛谷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병곡(屛谷) 권구(權榘, 1672~1749)의 문집이다. 1797년에 사인(士人) 김필형(金弼衡)의 발의(發議)로 외손 유일춘(柳一春)이 주도하여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목판본 원집 8권, 부록 2권으로 문집을 간행하였고, 고종 연간에는 속집 4권 2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詩)는 차운시, <병산십절(屛山十絶)> 등의 연작시, 만시 등이 실려 있다. 까마귀와 대화 형식으로 쓴 <오대(烏對)>, 참을 인(忍) 자를 주제로 지은 <인자(忍字)> 등에서 저자의 처세관을 엿볼 수 있다. 서(書)는 60여 편이 있다. 잡저(雜著)로는 <대학취정록(大學就正錄)>과 <중용취정록(中庸就正錄)>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만록(謾錄), 설(說), 변(辨) 및 잡문(雜文) 20여 편이 실려 있는데, 잡문은 주로 음양오행, 당론 등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권7에 실린 <무신록(戊申錄)>은 1728년 무신년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겪은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고, <천유록(闡幽錄)>은 효자 등 드러낼 만한 행적이 있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전기이다. 속집에는 시와 소(疏), 서(書), 잡저, 발(跋), 명(銘) 등이 실려 있다.
▶권극중(權克中, 1585~1659) | 청하집(靑霞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 1585~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1659년 수습한 자편고를 바탕으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문인 김우징(金遇澄)이 민진원(閔鎭遠)의 협조로 1704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저자의 묘갈명과 행장을 1720년 이후 추각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문집, 시집 7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민진원이 1704년에 쓴 발(跋), 후에 추각한 조문명(趙文命)이 지은 묘갈명, 1665년에 정두경(鄭斗卿)이 쓴 시집서(詩集序), 저자가 생전에 자편한 시고에 쓴 서설, 정두경이 저자에게 보낸 시(詩) 2수, 후에 추각한 이재(李縡)가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권1~7은 모두 시이다. 정두경은 저자의 시에 대해 “청원하고 부박하며 당송(唐宋)을 넘나드는데, 특히 당풍(唐風)이 농후하다. 재격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오묘한 이치를 많이 언급하였으니, 참으로 유도자(有道者)의 작품이다.”라고 평하였다. 특히 최치원(崔致遠)이 음주던 유상대에서 고인을 읊은 시, 특이한 자연물을 읊은 <박물삼장(博物三章)>, 칠언사운과 칠언소시에 같은 제목으로 읊은 <관기(觀妓)> 등의 시들이 눈에 띈다.
▶권근(權近, 1352~1409) | 양촌집(陽村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권도(權蹈)에 의해 처음 문집이 편찬되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74년 10세손 권주(權儔)가 진주(晉州)에서 40권 10책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에는 응제시(應製詩) 31수가 실려 있고, 권5~7에는 <점마행록(點馬行錄)>, <봉사록(奉使錄)>, <남행록(南行錄)>과 약간 편의 시(詩)가 실려 있다. 권8에는 정도전(鄭道傳)의 시(詩)에 차운하여 지은 <신도팔경(新都八景)> 등의 시가 실려 있다. 권9에는 중국 사신들과 수창(酬唱)하고 그들을 전송하는 시 등이 실려 있다. 권10에는 말년(末年)에 지은 시 117수와 호정(浩亭) 하륜(河崙)의 시 6수가 첨부되어 있다. 권11부터는 다양한 문체의 산문이 실려 있다. 특히 권34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역사 사실 가운데에서 28칙(則)을 택하여 저자의 의견을 붙인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이 실려 있고, 권35에는 고려시대 인물 24인의 행적을 기록한 간단한 전기(傳記) 자료인 <동현사략(東賢史略)>이 실려 있다.
▶권덕수(權德秀, 1672~1759) | 포헌집(逋軒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 1672~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안동 사림(安東士林)과 후손들이 가장되어 있던 ≪담타시고(淡唾詩藁)≫와 황원일기(黃猿日記) 등의 기타 유저를 수습 편차하고, 182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만사이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7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수창자는 이재(李栽), 권구(權榘), 김명석(金命錫) 등이다. 권2는 소(疏), 서(書)이다. 소의 <청물훼사빈영당소(請勿毁泗濱影堂疏)>는 김진(金璡)을 배향한 사빈서원(泗濱書院)에 대한 훼철 명령의 부당함을 진달한 것이고, <사은변무잉청복거소(謝恩辨誣仍請復渠疏)>는 이인좌의 난에 안동 사림들이 받은 무함이 탕척된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도랑의 복개를 요청한 것이다. 편지는 김세호(金世鎬), 이재, 권두경, 김간(金侃) 등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3은 잡저고 권4는 서(序), 지발, 잠(箴), 상량문, 축문 등이다. 권5는 부록으로 이산두(李山斗), 이재경(李載坰) 등이 지은 만사 외에 제문, 행장 등이 있다.
▶권도(權濤, 1575~1644) | 동계집(東溪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계(東溪) 권도(權濤, 1575~1644)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권대호(權大㦿)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8년 완계서원에서 목판으로 초간한 후, 후손 용성(龍成) 등이 증보ㆍ재편하여 1875년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연보 3권 합 4책이고 권수에 1809년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序)가 있다. 원집 권1은 오언시이고, 권2는 칠언시이다. 권3은 만, 부이다. 부 가운데 <요견복중원(要見復中原)>은 1638년에 지은 것으로서 오랑캐에 짓밟힌 중원의 회복을 기원하지만 힘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권4는 교서, 소, 차자, 계사이다. 소는 피혐소와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권5는 서(書)이고 권6은 잡저, 잠, 책문, 표전, 전문이다. 권7은 축문, 제문, 묘지명, 묘갈명, 행장이고 권8은 벗들과 주고받은 시와 서찰을 모은 것이다. 연보 권1은 저자의 연보로서, 1575년 저자의 출생부터 1824년 시호를 받은 사실까지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권2~3은 부록으로 만장, 제문, 봉안문, 상향문, 상량문, 기사 등이 있다. 권말에는 1875년에 후손 권용성이 지은 중간발(重刊跋)이 있다.
▶권두경(權斗經, 1654~1725) | 창설재집(蒼雪齋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시고에 대해서만은 손수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시록에 있는 자주와 시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아들 권모가 문집의 수습과 편차를 맡고, 이재의 산정을 거쳐, 유치명(柳致明)이 문집을 교정한 1832년에서 1860년 사이에 본집이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1864년 이후에 봉안문 등이 추각되어 후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권1~7은 시록, 권8~16은 문(文), 권17~18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728년에 이재(李栽)가 쓴 편집 서문이 있다. 한편 저자는 장주문(章奏文)에 뛰어나 1717년 영남 유소(儒疏)를 초하기도 하였으니, 본집에는 상소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권8~10은 편지글인데, 그중에서 권10에, 1689년~1703년 사이 갈암에게 보낸 편지에는, 환국으로 정국에 참여한 갈암에게 당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경계한 글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재에게 보낸 편지에는 친분을 유지하면서 서로 학문의 의문처와 갈암의 묘지 및 ≪도산언행록(陶山言行錄)≫의 편찬, 간행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권두문(權斗文, 1543~1617) | 남천집(南川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남천(南川) 권두문(權斗文, 1543~1617)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10대손 동철(東轍)이 1864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고, 저자의 삼종제 두남(斗南)의 묘갈명(墓碣銘)이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두에 1833년에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1864년에 후손 권동철(權東轍)이 지은 지(識)가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사운(五言四韻),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사운(七言四韻), 만사(輓詞)이고 교유한 사람들과 수창한 시들이 다수이고, 권2는 평창 군수로 재임 중에 왜란을 맞아 왜군에게 포로가 되어 20여 일간 끌려 다닌 일을 기록한 ≪호구일록(虎口日錄)≫이다. 권3은 소(疏), 전(箋), 서(書), 제문(祭文)이며, 권4 부록은 문인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장,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 김응조가 지은 <호구일록발(虎口日錄跋)>,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서호구일록후(書虎口日錄後)>, 사우록(師友錄) 등에 나타난 저자에 대한 기록, 구호서원(鷗湖書院)의 봉안문(奉安文) 및 상향축문(常享祝文), 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두인(權斗寅, 1643~1719) | 하당집(荷塘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하당(荷塘) 권두인(權斗寅, 1643~1719)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 아들들이 10여 권의 시문을 수습한 후, 이광정(李光庭)이 11권으로 편차하고 다시 산삭을 가하여 원집 8권으로 정리하였다. 그 후 박손경(朴孫慶)이 원집에서 누락된 시문과 다시 수습한 유문 등을 교정하여 속집 2권으로 편차하여 가장해오다가 1810년 5대손 권재덕(權載德)이 주관하여 원집 8권과 속집 2권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고, 김한동(金翰東)의 발문을 받아 붙였다. 문집은 원집 8권, 속집 2권 합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 권두에 1753년에 이광정의 서문 및 총목록이 있다. 권3은 서(書)와 잡저(雜著)로, 서(書)는 도산사림(陶山士林), 권두경(權斗經) 등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 가운데 도산의 사림들에게 보낸 편지는 ≪퇴계집(退溪集)≫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잡저에는 친척간의 친목을 강조한 <원박(原薄)>, 영춘현(永春縣) 백성들이 공물로 부과된 석용(石茸)을 채취하느라 겪는 고통에 대해 적은 <석용설(石茸說)>, 권상원(權尙遠), 정윤목(鄭允穆) 등에 대한 전(傳)이다. 권미에는 김한동(金翰東)의 발문이 있다.
▶권득기(權得己, 1570~1622) | 만회집(晩悔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만회(晚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의 문집이다. 1630년경 아들 권시(權諰)가 6권으로 편차한 것을 저자의 증손 권이진(權以鎭)이 원집에서 누락된 시문과 잡설을 모아 습유(拾遺) 1권을 만들고 가장(家狀)과 저자에 대한 묘도문자 및 만장(挽章), 제문 등을 모아 부록 1권을 만들어 1712년에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시는 70여 수가 있다. 잡저로는 애한정(愛閑亭), 만취헌(晚翠軒) 등에 대한 기(記)와 한사존성(閑邪存誠), 탕무혁명(湯武革命), 윤회(輪廻) 등에 대한 논(論), 벼슬에 제수되었을 때에 지은 <의소(擬疏)> 등이 실려 있다. 잡저 가운데 <규의(睽義)>는 ≪주역(周易)≫ 규괘(睽卦)에 대한 해설이고, <북정일기(北征日記)>는 왕명을 받아 유영경(柳永慶)을 압송하여 경흥(慶興)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고 돌아온 일을 일기체로 적은 것이다. 서(書)는 20편이 실려 있는데, 아들에게 독서와 처세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 등이 있다. 권6에 실린 <여박인지격물논변설(與朴仁之格物論辨說)>은 ≪대학(大學)≫의 <격물(格物)>에 대해 박지계(朴知誡)의 의견에 반론을 편 내용으로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글이다.
▶권렴(權濂, 1701~1781) | 후암집(厚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암(厚庵) 권렴(權濂, 1701~178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복(以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고, 1812년 7월에 간역을 시작하여 12월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3 전반부는 시(詩)가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연작시가 다수 남아 있는데 <암내십사(菴內十事>는 소두(梳頭), 세면(洗面) 등 집안의 일상을 읊은 것이고, <암외십완(菴外十玩)>은 송(松), 죽(竹) 등 애호하는 사물을 묘사하며 수신의 자세를 읊은 것이다. 권3 후반부는 가(歌), 사(詞)이다. 이 중에서 <춘사(春詞)> 2편은 1750년과 1768년에 지은 것으로 안빈낙도와 관물찰리의 의지를 표현했다. 권4는 서(書)로, 인물의 중요성과 저작 연대를 함께 고려하여 편차하였다. 권5는 잡저로, 설(說), 발(跋), 명(銘), 유록, 정문, 고문 등 여러 문체가 섞여 있다. 권6은 서(序), 기(記)이고 권7은 애사, 축문, 제문, 명, 전, 행략, 기사이다. 권8은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유사, 만사(輓詞)가 실려 있고 권말에 아들 이복이 18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권뢰(權𡋃, 1800~1873) | 용이와집(龍耳窩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용이와(龍耳窩) 권뢰(權뢰(土+耒), 1800~1873)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손자 용한(龍漢), 용한(用漢)과 종질 태두(泰斗) 등은 유문을 수집 등사하여 정리하고, 이후 저자의 증손 오영(五永) 등이 별집과 부록을 추가하고 김도화(金道和)로부터 서문을 받아 1909년경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9권, 속편 1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09년 김도화가 쓴 서와 목록이 있다. 권3의 전반부는 상언(上言), 장(狀), 서(書)이다. 상언은 6대조 권용현, 증조 정래(正來), 조부 중엄(重儼) 등 삼세(三世)의 효를 포증하여 일문지병정(一門之幷旌)이라는 특은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는 것이다. 장은 선조조의 충신이자 효자인 정곽(鄭廓) 등에 대한 정읍(呈邑)의 내용이다. 권7~8은 별집으로 5편의 일기류이다. 1829년과 1837년의 <경행일록(京行日錄)> 및 <동정일기(東征日記)>는 6대조 권용현의 지효(至孝)를 기릴 정려를 청하기 위해 서울로 발행한 여정과 회계서원의 기문과 묘갈명, 행장 등을 받는 경위를 자세하게 일기식으로 쓴 것이다. 말미에 증손 오영이 문집 간행의 배경과 경과를 적은 발이 있다.
▶권만(權萬, 1688~1749) | 강좌집(江左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강좌(江左) 권만(權萬, 1688~1749년)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 후반에 후손들에 의해 당시 영남에서 많이 쓰이던 목활자(木活字)로 인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시는 443제가 실려 있다. 13세에 지은 강상관어(江上觀漁)를 필두로 숙부 권두기(權斗紀)가 영일(迎日)로 이배되자 경주(慶州) 등지를 거쳐 배소를 방문하는 과정에 지은 <향숙부영일양이소오말계촌(向叔父迎日量移所午秣界村)>, 52수에 달하는 연작시로 봉화(奉化) 유곡(酉谷) 마을 주변의 경치를 읊은 <유곡잡영(酉谷雜詠)>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밖에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청나라에 당한 수치를 탄식하는 <행금인(行琴引)> 등 역사 사실을 두고 읊은 시와 채팽윤(蔡彭胤)에 대한 애도시(哀悼詩) 등이 있다. 산문으로는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전(傳), 명(銘), 송(頌), 전(箋), 장(狀), 잡저, 설(說), 책(策), 상량문, 애사, 제문, 행장, 구묘문(丘墓文)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망라되어 있다. 성운(聲韻)에 관한 글, 금석 서화에 관련된 글 등 저자의 취향과 조예를 가늠할 수 있는 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권만두(權萬斗, 1674~1753) | 지족당집(知足堂集)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족당(知足堂) 권만두(權萬斗, 1674~1753)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양연(養然)과 주손 찬복(燦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문손 한모(翰模)의 편차를 받아 190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잡저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만시는 뒤에 따로 배치되었는데 그 분량이 상당하다. 서(書)는 황익재(黃翼再), 정권(鄭權) 등에게 보낸 것들로 이 중에서 1728년 김영갑에게 보낸 편지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당하여 고을에 병사와 무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힘을 보태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2는 서(序), 기(記), 발(跋), 제문, 유사, 부록 등이다. 서(序)의 <반궁수창록서(泮宮酬唱錄序)>는 지성균관사 조태억이 관원 및 제생들과 창수한 시들을 엮은 ≪반궁수창록(泮宮酬唱錄)≫에 붙인 것이고, <사례집요서(四禮輯要序)>는 관혼상제 의식과 절차들을 여러 전적에서 모아 편차한 ≪사례집요(四禮輯要)≫에 대한 것이다. 권말에 문손 한모가 1907년에 지은 발이 있다.
▶권문해(權文海, 1534~1591) | 초간집(草澗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오랫동안 편수를 거치지 못한 채 초고(草稿) 상태로 있다가 병란을 거치면서 많이 산일(散佚)되었던 듯하다. 이 가장 초고(家藏草稿)를 경종 연간에 저자의 증손 권경(權暻)과 4대손인 권봉서(權鳳瑞)가 권두경(權斗經)에게 부탁하여 시 부분을 편차 교정하는 등 문집의 간행을 준비하였고, 8대손 권도상(權道相)이 외후손 황용한(黃龍漢)과 함께 다시 교정을 보고 정리하여 1812(순조12)에 부록과 함께 4권 3책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권수에 정종노(鄭宗魯)의 서문과 목록, 연보가 실려 있으며, 원집 4권, 부록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이다. 저자가 퇴계(退溪)의 제자였으므로 함께 시를 수창한 사람도 같은 문인인 김성일(金誠一), 김극일(金克一), 김부륜(金富倫) 등이었고, 김효원(金孝元), 이산해(李山海) 등 동인 계열과 비교적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권3은 문(文), 권4는 잡기(雜記)와 대동운옥범례(大東韻玉凡例), 권5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본집 편집과 교정에 참여한 황용한의 발이 있다.
▶권방(權訪, 1740~1808) | 학림집(鶴林集) | 권책
수 : 7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학림(鶴林) 권방(權訪, 1740~1808)의 문집이다. 손자 책(策)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 편차하고, 1844년에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발문(跋文)을 붙여 문집 11권 6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원집(原集)은 원집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정주(定州)에서 만난 김성곤(金聖坤)이 가학(家學)을 이어 정진하는 모습을 기리면서 떠도는 자신의 심신(心身)이 보전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차김자정견기운(次金子正見寄韻)>, 압록강(鴨綠江) 가 농민의 곤궁한 삶과 자신의 애환을 그린 <원가행(怨歌行)> 등이 있다. 권3은 시(詩), 소(疏)로, <응지구언소(應旨求言疏)>는 1806년에 우레의 변고로 조야에 구언할 때 영남(嶺南) 유생들이 주장한 임오의리론(壬午義理論)을 강조하고, 하늘이 우레로써 경계하므로 천명을 두려워하고 법을 밝혀 간악한 무리를 척결해야 하며 과거제와 군정 등의 폐단을 혁파하여 덕치를 구현할 것을 주장한 것인데 정원(政院)의 저지로 진달되지 못하였다. 권미(卷尾)에 유치명이 1844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권벌(權橃, 1478~1548) | 충재집(冲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화(士禍)와 병란으로 대부분 산일되고, 죽은 후 120여 년 만에 후손 권목(權霂)ㆍ권유(權濡) 등이 김추길(金秋吉)ㆍ남형회(南亨會)와 함께 사림에서 전송(傳誦)되는 것과 가장일기(家藏日記)에서 약간 편의 시문을 수집하여 본집을 만들어서, 1671년 삼계서원(三溪書院)에서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이동완(李棟完)과 후손 권두경(權斗經)이 초간시에 빠진 시문을 추입(追入)하여 <습유(拾遺)>를 만들고, 부록을 증보ㆍ산삭하여 1705년에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후손 권빈(權薲)이 사우(士友)의 의론을 채집하여, 이광정(李光庭)의 서(序)를 받아 1752년에 9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권수ㆍ본집 9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홍여하(洪汝河)의 서(1671년), 허목(許穆)의 <독권충정공일고(讀權忠定公逸稿)>(1681년) 등과 세계도ㆍ연보ㆍ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시ㆍ계사ㆍ서ㆍ제문ㆍ묘갈ㆍ묘표ㆍ대책, 권2에는 잡저, 권3~6에는 일기, 권7에는 조천록ㆍ유묵, 권8~9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권벽(權擘, 1520~1593) | 습재집(習齋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습재(習齋) 권벽(權擘, 1520~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권필(權韠)이 시만을 정선(精選)하여 4권으로 편차하고 1608년에 이정귀(李廷龜)와 최립(崔岦)의 서(序)를 받아 공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47년에 저자의 증손 권집(權諿)이 자신의 발문을 붙여 1653년(효종4)에 4권 1책으로 간행한 목판 중간본이다. 본 시집은 원집 4권, 보유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1~4에는 약 3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고 보유에 24수의 시가 있다. 시 중에 인물이나 배경, 시의 출전에 대한 주(註)가 달려 있는데, 저자의 자주(自註)로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편차를 담당한 권필(權韠)의 주(註)인 듯하다. 권2의 시 가운데 <차이견발숙령관(次而見發肅寧館)> 등은 1572년 조사(詔使) 한세능(韓世能), 진삼모(陳三謨)가 나오자 정유일(鄭惟一),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원접사 정유길(鄭惟吉)의 종사관이 되었을 때 지은 시이다. 권4는 말년의 작품으로 생일 때마다 전년에 지은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이 많다. 이밖에 임진란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시도 많다.
▶권변(權忭, 1651~1726) | 수초당집(遂初堂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초당(遂初堂) 권변(權忭, 1651~1726)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장수 현감(長水縣監) 헌(攇)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저자의 방5대손 사건(思健)이 186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사건의 부친 제민(躋敏)의 ≪연서유고(淵西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봉구(尹鳳九)가 1765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부(賦)와 시체별 시(詩)로 편차되어 있는데, 대부분 아우 및 친지들과 담담한 어조로 수창한 것이다. 칠언고시의 <두류산(頭流山)>은 백부가 건네준 <두류가(頭流歌)>를 읽은 후에 학이 되어 신선을 만난 꿈을 꾸고 나서 지은 도가풍의 작품이다. 권2는 소장(疏章)으로, 사직 상소들이고 권3은 서(書)가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4는 행장, 비명, 제문 등이고 권5는 서(序), 발(跋), 상량문, 잠(箴), 명(銘)이다. 권6은 부록으로 유사와 일기이다. 일기는 ≪승정원일기≫의 1696년부터 1741년까지의 기사 중 저자와 관련된 기사를 초출하여 구성한 것이다. 권7은 부록이고 권말에 1869년 5대손 사검(思儉)이 지은 지(識)가 있다.
▶권병(權炳, 1723~1772) | 약재집(約齋集) | 권책
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약재(約齋) 권병(權炳, 1723~1772)의 문집이다. 본집은 백형 괴(烠)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우인 이광정(李光靖)ㆍ이종수(李宗洙)의 교감을 받은 고본을, 질자 시필(時駜)과 종질 시봉(時鳳)이 김괴의 재교를 받아 1811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9권 4책이다. 권수에는 이광정이 1786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 앞에 권1~2의 목록이, 권3 앞에 권3~4의 목록이, 권5 앞에 권5~6의 목록이, 권7 앞에 권7~9의 목록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이상정에게 1750년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는 서간을 통하여 한만하게 왕래하는 것보다 수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광정의 충고로 자신이 학문에 매진하게 된 동기와 문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권8의 후반부는 서(序), 발(跋), 명(銘), 제문(祭文), 애사(哀辭)이다. 부인 장씨(張氏)에 대한 제문에는, 부인이 자식도 없이 죽자 이를 애도하여 재기(再期)가 되는 날 제사를 지내며 장편의 제문을 지었는데, 애틋한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권말에는 김괴가 1811년에 지은 후서(後敍)가 있다.
▶권상일(權相一, 1679~1759) | 청대집(淸臺集) | 권책
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조석철(趙錫喆)과 증손 준(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연보 2권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1797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4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특히 ≪퇴계집≫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5는 소(疏), 전이다. 소는 대부분 사직소이고, 전은 1756년에 노병을 위로하여 쌀과 어물 등을 내려준 것에 대해 사례하는 내용이다. 권6~9는 서(書)로, 편지를 주고받은 대상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는데, 90여 명이 넘는 인사들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권10은 잡저, 명(銘), 상량문, 제문이고 권11은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12는 묘갈, 권13은 묘표, 묘지, 행장이고 권14는 행장이다. 권15~16은 관서록(觀書錄)이다. 연보 권1~2는 1790년 ‘희정(僖靖)’의 시호를 받은 일까지 기록된 연보 및 유사, 제문, 만사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는 조석철이 1796년에 지은 발이 있다.
▶권상하(權尙夏, 1641~1721) | 한수재집(寒水齋集) | 권책
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권희종(權熙宗
-조선 시대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1755년경부터 권진응(權震應)의 주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간행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경상도 관찰사 황인검(黃仁儉)의 협조로 대구 감영에서 원집 34권, 연보 1책 총 16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34권과 연보 1권, 합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1761년 윤봉구(尹鳳九)가 쓴 서문이 있고, 원집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2~3은 상소와 서계, 수의 등으로, <사호조참의소(辭戶曹參議疏)>에는 유장태(柳長台)가 저자의 부친과 송시열(宋時烈)과의 관계를 무함한 것에 대해 변무한 내용이 있고, <변우암선생피무소(辨尤庵先生被誣疏)>는 이경석(李景奭)의 손자 이하성(李厦成)이 우암을 비난한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해 반박한 것이고, <사대사헌소(辭大司憲疏)>는 박필기(朴弼基)가 격쟁하여 송시열을 비난한 것을 변론한 것이다. 권4~20은 서(書)로, 257편이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인물의 배열 순서를 살펴보면 스승 우암이 가장 앞에 있고 다음은 동문 이단하(李端夏), 이여(李畬) 등에게 보낸 것인데, 대체로 생년에 따라 수록하였다.
▶권성구(權聖矩, 1642~1708) | 구소집(鳩巢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소(鳩巢) 권성구(權聖矩, 1642~1708)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후손 택수(宅銖)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택수의 윤자 제설(濟說) 등이 1890년대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권연하(權璉夏)의 서문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의 전반까지는 시(詩)이다. 주로 타인의 시에 차운한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만시는 이현일(李玄逸), 김시추(金是樞) 등 58인에 대한 것이다. 권3의 후반은 문(文)으로 부(賦), 소(疏), 전(箋), 장(狀), 서(書), 고유문, 제문, 애사, 상량문, 잡저이다. 그중에서 <태사묘대거소(太師廟對擧疏)>는 1682년 안동의 삼태사묘(三太師廟)의 작헌 순서에서 김선평(金宣平)이 권행(權幸)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수일(金壽一) 등의 상소를 논파하기 위하여 저자가 일문(一門)을 대표하여 작성한 글이다. 삼태사묘의 주향(主享)으로 인한 갈등은 이후 영조대에 재발하는 등 안동김씨와 안동권씨 가문 사이의 해묵은 숙제로 남게 된다. 권4는 부록(附錄)이고 권말에는 김흥락(金興洛)이 지은 발이 있는데 작성 연도는 미상이다.
▶권시(權諰, 1604~1672) | 탄옹집(炭翁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권시(權諰, 1604~16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직접 정리한 시록(詩錄)을 중심으로 저자의 손 권이진(權以鎭)과 증손 권정징(權瀞徵) 등이 수습하고 권정징이 이익(李瀷)에게 서문을 받았다. 이 서문을 받을 때를 전후해서 문집이 간행된 것인데 이 서문은 문집에 실리지 않았으며 문집 간년(刊年)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문집의 권미에 간기(刊記)가 있는데, 서문을 쓴 이익이 ‘증손 장수 현감 권정징(權瀞徵)이 유집을 가지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고 했는데 권정징이 영조 연간 1738년경에 장수 현감을 역임했음은 ≪장수현읍지(長水縣邑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완결(刓缺)된 일부 판목을 보각하고 새로 연보를 첨부한 보각후쇄본이 간행되었다. 연보에 기록된 마지막 연대가 1869년이므로 정사년은 1917년으로 추정된다. 문집은 원집 12권, 부록 1권 합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고, 책별로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이다. 권3은 소(疏), 수의(收議)인데, <논대왕대비복제급윤선도안률소(論大王大妃服制及尹善道安律疏)>가 통해 송시열 측이 서인(西人)들에게 강한 논박을 받았다.
▶권연하(權璉夏, 1813~1896) | 이재집(頤齋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1813~1896)의 문집이다. 저자가 만년에 평생 저술한 많은 시문을 직접 정리하고 저자 사후에 손자 상기(相耆)가 김흥락(金興洛)에게 행장(行狀)을, 이만도(李晩燾)에게 묘갈문(墓碣文)을 받아 유적(遺蹟)과 유문(遺文)을 정리하여 9책으로 산정 편차하였으며, 간역(刊役)은 족질 희연(煕淵)이 일을 주관하고 삼종손 상익(相益)이 원본을 선사(繕寫)하였다. 이후 저자의 문인 및 친족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06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7권 9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9는 발(跋), 명(銘), 상량문(上樑文)이다. 권10은 애사(哀辭), 축문(祝文), 제문(祭文)이다. 1868년 문양리사(文陽里社)가 훼철될 때 이진철(李晉哲)과 이동완(李棟完)의 신위(神位)를 매판(埋版)하면서 올린 축문, 1868년 문산리사가 훼철될 때 홍우정(洪宇定)의 신위를 매판하면서 올린 고유문(告由文), 임천서원이 훼철될 때 이봉(移奉)하면서 올린 고유문, 삼계서원이 훼철될 때 신위를 매판하는 고유문이다. 권미(卷尾)에 저자의 손자 상기가 지은 발(跋)이 있다.
▶권오복(權五福, 1467~1498) | 수헌집(睡軒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 1467~1498)의 문집이다. 저자가 무오사화(戊午史禍)의 화를 입은 후 시문은 불태워지거나 산일(散佚)되었다. 이에 중형(仲兄) 권오기(權五紀)가 중종반정 이후 비안 현감(庇安縣監)으로 부임하여 저자의 시 100여 수 및 잡문 약간 편을 수집하여 1질(帙)을 엮고, 1509년에 강혼(姜渾)의 발문(跋文)을 받아 이를 가장(家藏)하였다. 여기에 후손 권문해(權文海)가 1584년 승지 정여인(鄭汝仁)으로부터 얻은 기우제문 10여 편을 보태어 1585년에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시집 2권ㆍ문집 1권ㆍ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1490년 11월 행대(行臺)의 명(命)을 받고 관동에 갔을 때 지은 시 60여 편이 실린 <관동록(關東錄)> 등이 있다. 권2에는 1496년 야성 현령(野城縣令)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1498년 사화 직전까지의 시 30여 제가 실려 있다. 권3은 잡저이고, 부록에는 김일손(金馹孫)이 지은 <서육현배(書六絃背)>을 비롯하여 <무오사화사적(戊午史禍事蹟)>, <무오당적(戊午黨籍)> 등 사화 관계 기록을 수록하였다.
▶권우(權遇, 1363~1419) | 매헌집(梅軒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여말선초 매헌(梅軒) 권우(權遇, 1363~1419)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저자는 정몽주(鄭夢周)의 문인(門人)이고, 변계량(卞季良) 등과 교유(交遊)하였으며 넷째 형인 양촌(陽村) 권근(權近)과 함께 문장(文章)과 도덕(道德)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고문대책(高文大冊)과 사대표전(事大表箋)이 모두 저자의 손에서 나왔으며, 특히 사륙문(四六文)에 능하였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사후에 아들 권채(權採)가 처음으로 유문(遺文)을 정리한 것을 금산(錦山)에서 5권 1책의 목판본(木板本)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과 후손 권덕재(權德載)가 1722년에 무안(務安)에서 6권의 목판본(木版本)으로 간행(刊行)한 중간본(重刊本)이 있다. 본집(本集)은 6권 1책이다. 권수(卷首)에 1452년에 정인지(鄭麟趾)가 지은 서(序)와 세계도(世系圖)가 실려 있다. 권1~5는 시(詩)이며, 시체별(詩體別)로 분류되어 실려 있고, 권6은 잡저(雜著)와 부록(附錄)이다. 부록(附錄)은 종손 권람(權擥)이 지은 행장(行狀)이고, 권말(卷末)에 1452년에 안지(安止)가 지은 발(跋)과 1722년에 권서경(權敍經)이 지은 발(跋)이 실려 있다.
▶권우(權宇, 1552~1590) | 송소집(松巢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소(松巢) 권우(權宇, 1552~1590)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상일(相一)이 가장초고를 산정한 정고본을 7대손 달충(達忠)이 정종로(鄭宗魯)의 교감과 경광서원(鏡光書院)의 협조를 받아 1811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가 1811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사(辭)이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 서(書)는 조목(趙穆), 유성룡(柳成龍), 이덕홍(李德弘) 등과의 편지이다. 권3은 제문, 잡저, 행장이다. 제문은 이황(李滉), 남치리(南致利), 구봉령(具鳳齡), 이안도(李安道) 등에 대한 것이고 잡저의 <제설변해(諸說辨解)>는 이(理), 성(性) 등에 대해 여러 주석을 비교하며 설명한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 사제문, 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다. 권미에 장현광(張顯光)이 1637년에 지은 발문, 이준(李埈)이 지은 발문, 김득연(金得硏)이 지은 발문, 김응조(金應祖)가 1658년에 지은 지(識), 김방걸(金邦杰)이 지은 <어사서첩후발(御賜書帖後跋)>, 7대손 권달충(權達忠)이 1811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권이진(權以鎭, 1668~1734) | 유회당집(有懷堂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수만헌집(收漫軒集)≫을 산정ㆍ재편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19세기 초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을, 1917년 후쇄한 것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11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요 수창자는 홍영(洪璄), 홍만우(洪萬遇) 등이다. 권3~4는 소(疏)로,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의상소(擬上疏)>는 1704년에 임금이 자신을 수양할 수 있도록 세 가지 근본과 바른 정사를 확립하도록 여섯 가지의 급선무를 제언하고, 시사를 풍자하여 강세귀(姜世龜)와 최석정(崔錫鼎)을 변론하고 김춘택(金春澤)을 성토하여 지은 것이다. 권5~6은 장계, 의(議)이고 권7은 서(書), 서(序), 기(記)이다. 권8은 기(記), 제발이고 권9는 비(碑),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이다. 권10은 묘표, 행장, 행록이고 권11은 축문, 제문, 전(傳), 잠(箴), 잡저 등이다. 권12는 부록이고 권말에 간기(刊記)가 있다.
▶권재운(權載運, 1701~1778) | 이택재유고(麗澤齋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이택재(麗澤齋) 권재운(權載運, 1701~1778)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 권달시(權達時)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1787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서 저자의 아우 계운(啓運)의 ≪풍뢰헌유고(風雷軒遺稿)≫가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채제공(蔡濟恭)이 1786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작품에는 저자의 서재 이택재 인근에 있는 서소고(舒嘯皐), 척구류(滌垢流), 화원(花園), 죽계(竹階) 등의 경물을 읊은 연작시, 의성현(義城縣)으로 가는 여정과 풍경,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읊은 기행시 등이 있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서(序), 기(記), 제문(祭文), 설(說), 변(辨), 발(跋), 명(銘)이다. 권4는 잡저(雜著), 유묵(遺墨)이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행장,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전(傳), 만사(輓詞),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이밖에 권섭(權燮), 권만(權萬), 권치(權緻), 권정침(權正忱)이 저자에게 보낸 시와 김광헌(金光憲)의 <이택재유적후(麗澤齋遺蹟後)> 및 읍지인물조(邑誌人物條)가 실려 있다.
▶권정침(權正忱, 1710~1767) | 평암집(平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평암(平庵) 권정침(權正忱, 1710~176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에 후인들에 의해 문집 간행을 위한 여러 차례의 교수가 이루어졌고, 현손 영하(泳夏)가 간행에 착수하여 1877년 허전의 서문을 받고 1878년 문중 사람들과 함께 다시 교정을 가해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허전(許傳)이 1877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저자의 작품들은 대개가 사도세자의 참변이 있은 1762년 이전의 작품들로 차운시 및 만시, 평소의 한정(閑情)을 읊은 것이 주를 이룬다. 권3은 소(疏)이고 권4는 잡저, 서(書)이다. 잡저 중에서 <연설(筵說)>은 1757년과 1762년 영조와 대담한 기록이 주를 이룬다. 권5는 잡저, 변(辨)이고 권6은 잡저, 정문(呈文), 서(序), 지(識), 기(記), 잠(箴), 명(銘), 송(頌), 상량문이다. 권7은 제문, 애사, 행록, 묘지이고 권8은 부록으로 행록후서, 행장, 묘갈명, 묘지명, 가장, 유사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이돈우(李敦禹), 문손(門孫) 연하(璉夏), 현손 영하(泳夏)가 1878년에 지은 후서가 있다.
▶권중도(權重道, 1680~1722) | 퇴암집(退庵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암(退庵) 권중도(權重道, 1680~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정팔(正八)과 5대손 기홍(基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김진호(金鎭祜) 등의 산정 교감을 받아 1898년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성탁(金聖鐸)이 174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이 중에서 엄천강(嚴川江) 장항동을 유람하고 지은 연작시 <유장항동구영(遊獐項洞九咏)>과 지리산에 관련된 시가 여러 수 있다. 권2는 서(書)로서, 편지를 왕복한 대상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주로 성리설(性理說), 예제 등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많다. 권3은 서(序), 기(記), 제문이고 권4는 잡저이다. 권5는 행록, 묘갈명이고 권6은 찬집(纂輯)으로서, ‘천지저경(天地底敬)’부터 ‘거경실효(居敬實效)’까지 모두 41조 353항으로 이루어진 <낙민언경록(洛閩言敬錄)>으로, 정호, 정이 형제와 주자가 논한 경(敬)의 요어와 경에 대해 가장 긴절한 제유(諸儒)의 논설을 섞어 분류해 찬집한 것이다. 권7은 부록이고 권말에는 외예 김진호(金鎭祜)가 189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권춘란(權春蘭, 1539~1617) | 회곡집(晦谷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권점래(權漸來)와 권국관(權國觀)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78년 목판(木板)으로 초간한 후, 7대손 권엽(權曄)이 새로 수집한 습유와 부록을 추가ㆍ재편하여 1833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세계도, 부록, 습유 합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김굉(金㙆)이 지은 후서, 저자의 외예 안복준(安復駿)이 1776년에 지은 서(序),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시, 칠언시, 소(疏), 서(書), 묘갈, 명(銘), 상량문 등이다. 권2는 권우(權宇), 조목(趙穆) 등의 제문(祭文)과 구봉령에 대한 봉안문과 축문 등이 있으며, 부록으로 세계도와 권태정(權泰精)이 지은 가장,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묘지명이 있고, 김득연(金得硏)이 지은 <여강서원제문(廬江書院祭文)> 등 제문 9편과 정구(鄭逑) 등이 지은 만장(挽章), 서원봉안문(書院奉安文) 등이 있다. 습유(拾遺)에는 저자의 시(詩), 서(書), 제문, 잡저와 부록으로 사우들이 지어 준 시(詩)와 서(書), 행장이 있고, 권미에 7대손 권엽이 183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권태시(權泰時, 1635~1719) | 산택재집(山澤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 1635~1719)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흥락(金興洛)이 수집한 시문을 바탕으로 문인 김익모(金翊模) 등이 편차하여 1910년 안동 경광서당에서 활자로 초간한 후, 신익호(申翼浩) 등 안동사림이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1911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0년 7월에 쓴 김도화(金道和)의 서가 있고, 이어 목록이 있다. 권1~권2의 중반부는 사와 시이다. <의의초사(擬擬招辭)>는 송옥(宋玉)의 <초혼부(招魂賦)>를 본따 남전 여대림(呂大臨)이 <의초사(擬招辭)>를 지은 것을 다시 모의하여 지은 것이다. 시는 저자의 유문이 워낙 일실되고 소실된 상태에서 모은 것이어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지는 못한 듯하다. 작품에는 벗들과 천등산(天燈山), 학가산(鶴駕山) 등을 유람하며 지은 시, 회덕 현감에 제수되어 사은하고 돌아오며 지은 시 등이 있다. 권2 후반부~권3은 서(書), 잡저, 서(序) 등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 1910년 인행 당시 초간본에 실렸던 김형모(金瀅模)의 발과 이듬해인 1911년 5월에 중간하면서 쓴 신익호의 발이 수록되어 있다.
▶권태일(權泰一, 1569~1631) | 장곡집(藏谷集)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장곡(藏谷) 권태일(權泰一, 1569~1569)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도명(金道明)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유형진(柳衡鎭) 등의 교감(校勘)을 거쳐 1860년 주계서원(周溪書院)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수에 이휘녕(李彙寧)이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차(箚), 교서(敎書), 서(書)이다. 그중에서 <관동유산시(關東遊山詩)>는 1606년 강원도 군향어사 때에 금강산, 영랑호(永朗湖), 낙산사(洛山寺)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장편시이다. 권2는 서(書), 축문(祝文), 제문(祭文), 잡저(雜著)이다. 서는 김상헌(金尙憲), 정전(鄭佺), 동서 김영조(金榮祖) 등에게 보낸 것이다. 그중에서 <여옥당동료(與玉堂同僚)>는 전에 차자로 올린 고제(古制)를 따르자던 논의를 신중하게 다루자고 동료들을 설득하는 내용이다. 권3은 부록으로 교서(敎書)와 유서(諭書), 증유(贈遺), 만사(輓詞), 제문(祭文), 신도비명(神道碑銘), 행장(行狀)과 언행문견록(言行聞見錄)이 있다. 권말에 김도명(金道明)이 186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권필(權韠, 1569~1612) | 석주집(石洲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문인(門人) 심기원(沈器遠)과 오숙(吳䎘)이 수습하여 산정(刪定)을 하였으며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종합하여 정리하였고, 1632년 봄에 전주에서 판각을 완료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8권, 외집 1권, 별집 2권 합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8은 시(詩)이다. 4인의 벗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를 비롯하여 시대 상황을 풍자하거나 비판한 시가 많다. 권8은 잡체(雜體)로, 일반적인 정격시체(正格詩體)에서 벗어난 금언체(禽言體), 회문시(回文詩), 옥연환(玉連環), 건제체(建除體), 팔음가(八音歌), 수시(數詩), 층시(層詩), 연구(聯句) 등이 들어 있다. 이 중 층시는 송(松), 죽(竹), 매(梅), 국(菊), 연(蓮)을 글자 수를 한 글자씩 늘려가며 점층적인 구조로 엮은 시이다. 외집은 문(文)이다.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창맹설(蒼氓說)>, 종정도 놀이를 보고 지은 <종정도설(從政圖說)> 등이 들어 있다. 별집의 시 230여 수도 원집과 같이 시체에 따라 편차되어 있으며, 별집 권2의 문에는 서발, 제문, 서(書) 등 약간 편이 들어 있다.
▶권헌(權攇, 1713~1770) | 진명집(震溟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진명(震溟) 권헌(權攇, 1713~1770)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혁수(赫洙)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교수ㆍ선사한 고본을, 7대손 관식(觀植)이 산정ㆍ재편하여 1937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민보(李敏輔)가 179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6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부는 마음과 여름의 무더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사는 승려 혜상인(惠上人)이 강원도 영월로 유람하러 가면서 글을 청하자 써준 것이다. 시 중에서 <관서도호곡(關西都護曲)> 9수와 <후관서도호곡(後關西都護曲)> 8수는 평안도의 풍속과 백성들의 생활상을, <고한탄(苦旱歎)>과 <고우탄(苦雨歎)>은 가뭄과 장마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삶을, <친경행(親耕行)>은 초봄에 임금이 동대문 밖 친경전(親耕田)에 나아가 친경하던 광경을, <황창랑가(黃娼郞歌)>는 황창무(黃昌舞)의 공연 모습을 적은 것이다. 권9는 논(論), 전(傳), 찬(贊), 명(銘), 설(說), 상량문, 잡저, 묘지, 묘음기, 비(碑), 제문이다. 권말에 6대손 혁수의 발(跋), 7대손 관식의 발이 있다.
▶권혜(權寭, 1693~1747) | 모산유고(慕山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모산(慕山) 권혜(權寭, 1693~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필형(金弼衡)과 삼남 성규(聖槼)ㆍ 손자 수(檖)가 권보(權䋠)가 정리한 쇄록(瑣錄)과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권규(權규(氵+奎))와 정종로(鄭鍾魯)의 교수를 받아 1800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는 권규가 1800년에 지은 서(序)와 정종로가 지은 서(序), 총목이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詩)로, 화답시, 증시, 만시가 많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서술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발(跋), 논(論), 잠(箴)이다. 그중에서 <유령삭발론(遺令削髮論)>은 송나라의 왕단(王旦)이 임종할 때 진종(眞宗)이 봉선하는 일에 대해 바르게 간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자신을 승려의 예로 염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에 대하여 논한 글이다. 권4~5는 잡저이다. 권4는 전체가 <쇄록>으로서, 권구의 문하에서 보고 들은 것을 차기(箚記)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권6은 제문, 애사, 유사, 통문, 정문과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유일춘(柳一春)의 서후(書後)가 수록되어 있다.
▶권호문(權好文, 1532~1587) | 송암집(松巖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중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이 병화로 산일된 뒤에 아들 권행가(權行可)가 난고(亂稿)를 수습하여 제현(諸賢)의 교정까지 거쳤으나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1679년에 안동에서 목판으로 원집이 간행되었고, 1809년에 후손 권택부(權宅孚) 등이 속집을 간행하였고, 1957년 후손 권영갑(權寧甲) 등이 석인(石印)으로 연보를 포함한 별집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6권과 부록, 속집 6권, 연보와 별집 2권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시는 도학과 은둔에 뜻을 둔 뒤 학문에 매진하던 시기, 스승인 퇴계가 죽은 뒤 유고의 정리와 강학 활동에 열중하던 시기의 작품 등이 권별로 나뉘어 실려 있다. 권6은 <잡의집록(雜儀輯錄)>으로, 자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을 지시한 <가잠(家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우리 실정에 알맞게 기술한 <동감(洞鑑)>이 있다. 속집 권6에는 현존하는 경기체가(景幾體歌) 중 마지막 작품인 <독락팔곡(獨樂八曲)> 등이 실려 있다. 별집은 연보와 시문(詩文)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의 문인으로 평생을 산림처사로 지낸 저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금난수(琴蘭秀, 1530~1604) | 성재집(惺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금시술(琴詩述)과 금서술(琴書述) 형제가 수집 정리한 시문(詩文)을 바탕으로 10대손 금정기(琴鼎基)와 금대기(琴岱基)가 저자의 시문을 다시 수집(蒐集)하고, 연보(年譜) 및 부록(附錄) 등을 증보 합편하여 1909년에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卷頭)에는 1908년에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詩體)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서(書)와 잡저(雜著)로, 서는 이황과 조목, 김성일, 김부륜(金富倫), 남치리(南致利)에게 보낸 것이고, 잡저는 지(識), 변(辨), 의(議) 등이다. 권3은 기(記), 명(銘), 제문(祭文), 연보(年譜)이고, 권4는 부록으로 유근(柳根)이 지은 묘갈명, 8대손 금서술이 지은 유사와 봉안문, 상량문, 고유문 각 1편과 만사(挽詞), <고산정제영(孤山亭題詠)>, <일동산수기(日洞山水記)>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미(卷尾)에 1909년에 이만도(李晩燾)와 10대손 금정기가 지은 발(跋)이 있다.
▶금보(琴輔, 1521~1584) | 매헌집(梅軒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매헌(梅軒) 금보(琴輔, 1521~1584)의 문집이다. 본집은 10세손 금우열(琴佑烈)이 수집 편차한 것을 사손 금호열(琴祜烈)이 김학진(金鶴鎭)의 발문을 받아 아들 금윤고(琴胤古)의 묘갈명을 부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연보, 원집 3권, 부록 합 2책이다. 권수에 이휘녕(李彙寧)이 지은 서문, 그 뒤에 연보,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인데, 이황의 시에 차운한 것과 경주를 유람하고 황폐해진 고도(古都)의 정경을 읊은 것이 있다. 권2는 서(書), 제문, 갈문, 잡저로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이 나눈 사칠변(四七辨)의 편차에 대한 것과 우탁(禹倬)을 모신 역동서원(易東書院)을 세운 전말을 기록한 <역동서원기사(易東書院記事)> 등이 있다. 권3은 잡저인데 산일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서질의(四書質疑)≫로 1556년 한서암(寒栖庵) 곁에 거처하며 이황에게 강의를 받고 문난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부록은 사우기증(師友寄贈), 금시양(琴是養)이 지은 가장 등이고, 권말에 1909년에 김학진이 지은 발, 1853년에 금서술(琴書述)이 지은 발, 1891년에 금우열(琴佑烈)이 지은 지(識)가 실려 있다.
▶기대승(奇大升, 1527~1572) | 고봉집(高峯集) | 권책
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 간행된 것은 손서(孫婿)인 조찬한(趙纘韓)이 선산 부사로 있던 1629년(인조7)으로, 원집을 3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문 수백 편과 <논사록(論思錄)>은 원집이 간행된 다음 해인 1630년 2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는 209제이다. 내용은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을 때 주고받은 것, 서경시(敍景詩), 차운시(次韻詩) 등이다. 잡저 중에 퇴계 선생과의 편지에는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와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에 실리지 않았던 예제(禮制), 인물평, 심성설(心性說) 등이 포함되어 있다. <논사록>은 저자가 경연에서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 등을 강론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요순(堯舜)부터 정주(程朱)에 이르기까지의 도학 연원(道學淵源)과 제왕의 왕도 정치를 말하고, 성의 정심(誠意正心) 등의 수양을 하여 지치(至治)를 이루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예학(禮學)에 뛰어나고 사서(史書)에 해박하였으며, 퇴계의 주리론적 성리학의 완성을 견인한 저자의 문학과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기언정(奇彦鼎, 1716~1797) | 나와집(懶窩集) | 권책
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7대손 기세익(奇世翊) 소장본
-조선 시대 나와(懶窩) 기언정(奇彦鼎, 1716~17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학중(學中)은 가장을 지어 행적을 정리하고, 1911년 7대손 세철(世哲)과 후손 관섭(觀燮)은 송병순(宋秉珣)의 서문을 받고 이듬해 1912년 5대손 동필(東弼)과 족질 헌섭(憲爕)이 방손 기동준(奇東準)의 발문을 받아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4책이다. 권수에는 송병순이 1911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의 앞에 권1~3의 목록이, 권4 앞에 권4~5의 목록이, 권6 앞에 권6~7의 목록이, 권8 앞에 권8~10의 목록이 있다. 제목에 나오는 이름이 상당수 자(字)로 호칭되고 있어 대상 인물의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이 중에서 <북관록(北關錄)> 19수 중의 <황제총(皇帝冢)>은 송(宋)나라 휘종(徽宗)의 것으로 전해지는 회령(會寧) 운두산성(雲頭山城) 아래의 어느 무덤을 소재로, 가을날 무덤의 퇴락한 풍경에서 한때 풍류를 즐기던 일국의 황제가 이국의 땅에서 외로이 숨을 거두게 된 사연을 떠올리며 감상에 잠기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저자의 방손 동준과 5대손 동필이 19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기우만(奇宇萬, 1846~1916) | 송사집(松沙集) | 권책
수 : 26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인 양회갑(梁會甲)의 주도로 1919년에 편차해 둔 50권의 정고본을 저본으로 사용하여 석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2권, 원집 50권, 속집 2권 합 26책이다. 원집 권1은 시(詩) 192제이다. 학문을 면려하면서 지어준 시,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疏)이다. 이 중에서 <을미소(乙未疏)>는 1895년 명성황후가 승하했다는 소식이 반포되고 얼마 후 원수에 대한 복수, 단발령 철회 등을 주장하며 올린 상소이다. <병신소(丙申疏)>는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소식을 접하고 장성(長城)에서 거의(擧義)하고 나주로 가서 전열을 정비한 상황을 아뢴 상소이다. <을사소(乙巳疏)>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올린 상소로 매국노를 처단하고, 세금을 견감해 줄 것 등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3~10은 서(書)이다. 을미년 이후의 정세에 대한 논의 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권11~12는 잡저이다. 이중에는 <윤고열읍문(輪告列邑文)>, 격문 등 거의와 관련하여 열읍(列邑)과 병영에 유시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 | 노사집(蘆沙集)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집이다. 손자 기우만(奇宇萬)이 1881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883년 봄에 장성의 담대헌(澹對軒)에서 활자(活字)로 처음 인행하였다. 본집은 문인들 사이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1902년 목판으로 간행된 삼간본(三刊本)이다. 본집은 목록, 원집28권, 부록 2권 합 17책이다. 권1~2는 시 272제이다. 지구(知舊), 제자들과의 차운시, 증시(贈詩)가 많다. 권3은 소(疏), 사장(辭狀), 책(策)이다. 이중에서 <병인소(丙寅疏)>는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조정에서 양이(洋夷)와 화의(和議)하자는 논의가 일자 비분강개하여 올린 상소이다. 권4~5는 서(書)이다. 음양이기(陰陽理氣),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심기체질(心氣體質) 등 학문적인 내용이 많다. 권16에는 저자의 3대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통설(理通說)>, <납량사의(納凉私議)>, <외필(猥筆)> 등의 잡저가 실려 있다. 권25에 실린 <소모격문(召募檄文)>은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江華)를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擧義)를 위하여 지은 격문이다.
▶기준(奇遵, 1492~1521) | 덕양유고(德陽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덕양(德陽) 기준(奇遵, 1492~15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집은 1606년 저자의 증손 기자헌(奇自獻)이 ≪덕양유고(德陽遺稿)≫라고 제명(題名)하여 목판본 3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시(詩)에는 관직 생활 중에 지은 응제시(應製詩) 1제(題)를 비롯하여 송별시와 유람시가 많다. 또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아산(牙山)과 온성(穩城)의 적소(謫所) 및 옥중에서 지은 연군사친(戀君思親)의 내용을 담은 시도 많다. 문(文)으로는 적소의 삼엄함을 기록한 <위리기(圍籬記)>를 비롯하여, 적소 주변의 문방필연(文房筆硯)으로부터 솥ㆍ부엌ㆍ굴뚝 등에 이르기까지 60개 물건의 상(象)을 보아 거기에 해당되는 이름을 붙인 <명물기(名物記)>와 여기에 자경(自警)의 뜻을 붙인 <육십명(六十銘)> 등이 있다. 부록에는 박순(朴淳)ㆍ홍인우(洪仁祐)ㆍ이황(李滉) 등 10여 명의 글 중에 저자와 관련된 시문을 초록한 글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605년에 쓴 오억령(吳億齡)의 발문이 있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기묘사화와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유배되고 죽음을 당한 저자의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길재(吉再, 1353~1419) | 야은집(冶隱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집이다. 1570년 윤지형(尹之亨)이 저자의 풍절(風節)을 사모하여 금오서원(金烏書院)을 중수(重修)하고 아울러 5대손 길회(吉誨)로 하여금 저자의 시문을 간행토록 하여 1573년 ≪야은선생행록(冶隱先生行錄)≫을 간행하였으나 이 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58년 송내희(宋來熙)가 교정한 3권 1책의 속집과, 이때 개간한 원집 3권 1책 합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본 문집은 야은선생언행습유 3권ㆍ야은선생속집 3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습유 권상(卷上)에는 7편의 유시(遺詩)와, 벼슬하기 전에 지은 <산가서(山家序)>와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후산가서(後山家序)>가 있다. 권중(卷中)에는 여러 문헌에서 뽑은 저자와 관련된 기록, 그리고 제문ㆍ사제문, 오산(吳山)ㆍ금오(金烏) 두 서원의 봉안문과 향사문 등이 실려 있다. 권하(卷下)에는 제현(諸賢)이 저자를 예찬하여 지은 <찬영제시(讚詠諸詩)>가 실려 있다. 속집의 권상(卷上)에는 새로 찾은 저자의 시(詩), 뇌(誄), 찬(贊), 서(書), 행록(行錄)이 실려 있다.
▶김간(金榦, 1646~1732) | 후재집(厚齋集) | 권책수 : 26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재(厚齋) 김간(金榦, 1646~1732)의 문집이다. 1758년 호남에서 저자의 문집을 간행해 올리도록 하라는 영조의 명이 내리면서 본격적인 편찬 작업에 들어가 원인손(元仁孫)이 1766년 전주 감영에서 목판으로 초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46권, 별집 4권, 연보 2권 합 26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맨 앞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자주(自註)가 자세하고, <차우재송선생철영시운(次尤齋宋先生鐵嶺詩韻)>에만 원운이 부기되어 있다. 권8~16은 문답(問答)이다. 편지 가운데 문답 부분을 경의(經義), 예의(禮疑)로 크게 나누고, 다시 경의에서는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으로 분류하고 예의에서는 통례, 관례, 혼례, 상례등로 분류하여 각기 이에 해당하는 편지들을 나누어 실어 놓았다. 권1 후반~권4는 잡저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孝章世子) 상을 즈음하여 대왕대비[仁元王后]와 왕대비[宣懿王后]의 복제를 정제두(鄭齊斗)의 의견대로 손복과 질복(姪服)으로 입어야 함을 논한 <복제사의(服制私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인물 등에 관해 수필 형식으로 지은 글을 모은 <수록(隨錄)> 등이 있다.
▶김경여(金慶餘, 1596~1653) | 송애집(松崖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 1596~16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손자와 증손 등이 수습해 정리해 두었는데, 1932년에 가서 8대손 김철원(金喆源)과 9대손 김정옥(金正玉)이 정고본(定稿本)을 바탕으로 6권 2책의 원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1936년에는 김철원이 산일되었거나 미처 인출(印出)되지 않은 공사 문자(公私文字)를 모아 2권 1책의 속집을 만들어 활자로 인행하였다. 원집 권1은 시 8제(題)이다. 외사촌 송국택(宋國澤)에게 준 송시(送詩)와 외삼촌 송희진(宋希進)에게 차운한 시 외에는 모두 만시(挽詩)이다. 권2는 소(疏)와 계(啓)이다. 권3은 서(書), 제문, 잡저이다. 권4는 습유로, 부(賦), 표(表), 명(銘)이다. 부로는 송시열 등을 염두에 두고 인재 등용을 강조한 <현자국가지주기부(賢者國家之舟驥賦)>, 인의충신(仁義忠信)으로 안민(安民)하는 것이 곧 최강의 갑병(甲兵)임을 말한 <안민시갑병부(安民是甲兵賦)> 등이 있다. 명(銘)은 우 임금이 구정(九鼎)을 만든 뜻을 알고 지은 <우정명(禹鼎銘)>이 있다. 권5~6은 부록이다. 속집 권1은 계(啓), 서(書), 책(策)이고, 권2는 부록이다.
▶김광욱(金光煜, 1580~1656) | 죽소집(竹所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소(竹所) 김광욱(金光煜, 1580~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세기 전반에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저자의 종자 김수익(金壽翼)의 청악루유고(靑岳樓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사부(詞賦)이고, 권2~3은 모두 시로서 구성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차운시, 전송시(餞送詩), 만시이다. 권4는 소차, 계사, 장(狀)이다. 그중 소차는 주로 맡고 있던 관직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 제주에서 공마(貢馬)를 들여온 것에 대해 해명하는 것, 인조반정 이후 적몰전답(籍沒田畓)의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데 대하여 해명하는 것이다. 권5는 응제문, 제문, 갈명, 일록, 보유이다. 특히 일록 중 <경란록(經亂錄)>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1636년 12월 13일부터 다시 입도(入都)하는 1637년 2월 22일까지 저자가 겪은 호란의 참상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부록(附錄)은 묘지명, 사제문(賜祭文), 제문이다.
▶김광익(金光翼, 1721~1772) | 반포유고(伴圃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반포(伴圃) 김광익(金光翼, 1721~177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재명(載明)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13년 장혼(張混)의 협조로 목활자인 이이엄자(而已广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습유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표제지와 이만수(李晩秀)가 1812년에 지은 서(敍)가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권수제 다음 행에는 “분성 김광익천서 저(盆城金光翼天瑞著)”라고 기재하여 저자를 밝혀주고 있다. 원집 상~하, 습유는 모두 시(詩)로,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대부분이 자연과 생활을 노래한 시들로, 세속과는 거리를 두고 전원에 살고자 하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오언율시의 <추야(秋夜)>는 가을밤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늙어가는 자신을 서글퍼하는 내용이고, 육언절구의 <회용사도중(回龍寺途中)>은 양주(楊州) 회룡사를 찾아가는 길을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원집 맨 뒤에 김유근(金逌根)이 1812년에 지은 발(跋)이 있고, 습유 맨 앞에 김정희(金正喜)가 1813년에 지은 습유서(拾遺敍)가 있으며, 권말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아들 재명의 발이 있다.
▶김광현(金光炫, 1584~1647) | 수북유고(水北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북(水北) 김광현(金光炫, 1584~16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희순(羲淳)이 고본(稿本)을 바탕으로 교감(校勘)ㆍ산정(刪定)하고 연보(年譜)와 부록(附錄)을 합하여 1805년 대구(大丘)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木板)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부록(附錄)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김희순(金羲淳)이 1805년에 지은 발문(跋文)이 있고, 총목(總目) 및 세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시(詩)로서 월과(月課)로 지은 시, 조천(朝天)하러 가거나 임지(任地)로 가는 지인들에게 주는 송시(送詩), 상대의 시에 차운(次韻)한 시, 유배지인 삼수(三水)로 출발하면서부터 사면되어 돌아올 때까지의 시, 순천 부사(順天府使) 시절의 시, 만시(挽詩) 등과 같이 가능한 한 주제별로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권4는 문(文)으로 편지, 송서(送序), 명(銘) 등이고, 부록(附錄)에는 저자가 출생한 1584년부터 신도비를 세운 1753년까지 재록(載錄)된 연보(年譜)를 비롯해 신도비명(神道碑銘), 비명후록(神道碑銘), 묘표음기(墓表陰記),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김굉(金㙆, 1739~1816) | 구와집(龜窩集) | 권책
수 : 11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구와(龜窩) 김굉(金㙆, 1739~1816)의 문집이다. 손자 약수(若洙)가 가장(家狀)되어 있던 유집(遺集) 30여 권을 정리하여 이병원(李秉遠)에게 고교(考校)를 받고 다시 유치명(柳致明)의 산정(刪定)을 거쳐 14권으로 엮은 뒤 수년의 노력 끝에 1846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원집(原集)은 14권 7책이다. 별도의 서발문(序跋文)은 없으며,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58년부터 1816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동문 지인들과 교유하거나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 겪은 일을 소재로 하는 시들이 많다. 권2~3은 소(疏)로, 이 중 1788년 영남 사림(嶺南士林)을 대신하여 지은 <창의변무소(倡義辨誣疏)>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에서 활약한 영남 의병(嶺南義兵)들의 업적을 공인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798년 백성들의 실태를 보고하라는 왕명(王命)에 따라 당시 단양의 폐단을 인호(人戶)와 군액(軍額)의 불균형, 환정(還政)의 불합리한 운영 등을 통해 설명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말미(末尾)에는 정조(正祖)의 비답(批答)이 첨부되어 있다.
▶김구(金坵, 1211~1278) | 지포집(止浦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지포(止浦) 김구(金坵, 1211~1278)의 문집이다. 18대손 김동호(金東灝) 등이 ≪동문선(東文選)≫ㆍ≪고려사(高麗史)≫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뽑아 정리ㆍ교수(校讎)하고 1795년 송환기(宋煥箕)에게 서문(序文)을 받았으며, 여기에 16대손 김홍철(金弘哲)이 편차한 연보와 정실(鄭宲)이 지은 신도비문(神道碑文)을 붙여 1801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은 시(詩), 권2~3은 문(文)이고 권3에는 부록이 부편되어 있다. 권수에는 1795년 외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가 시체별(詩體別)로 묶어져 있는데, 그중에 저자가 1240년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원(元)에 갔을 때 지었다는 <북정록(北征錄)>이 실려 있고, 권2는 <응제록(應製錄)>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계(啓), 소(疏), 서(書), 비명(碑銘)이 실려 있다. 이어 신도비문(神道碑文)이 부편, 권미에는 외손 김인순(金麟淳)의 발(跋)이 있다.
▶김구(金絿, 1488~1534) | 자암집(自菴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자암(自菴) 김구(金絿, 1488~1534)의 문집이다. 시문이 병란을 거치면서 많이 유실된 것을 외증손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이 모아 가장(家藏)하였고, 1659년(효종10)에 안몽윤의 아들 안응창(安應昌)이 의성 현령(義城縣令)으로 부임하여 시문(詩文)과 연보(年譜)ㆍ묘비명(墓碑銘) 등의 부록(附錄)을 수록하고 정두경(鄭斗卿)의 서문(序文)을 붙여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本集) 2권ㆍ기년록(紀年錄)ㆍ부록(附錄) 합 1책으로, 권수는 정두경(鄭斗卿)의 서(序)와 목록(目錄)이다. 권1은 시, 권2는 문(文)으로, 부(賦)ㆍ표(表)ㆍ송(頌)ㆍ책문(策問)ㆍ기우제문(祈雨祭文)ㆍ옥중상소(獄中上疏)ㆍ갈기(碣記)ㆍ수토록(搜討錄)ㆍ서독(書牘), 권미는 외현손 안응창의 발문(跋文)이다.
▶김구(金構, 1649~1704) |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관복재(觀復齋) 김구(金構, 1649~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 연도 미상의 괘인사본으로, 1780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원집 9권, 습유 합 6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실려 있는데 칠언 절구가 주류를 이루며, 차운시와 연작시인 <노장(老將)>, <노병(老兵)>, <노선(老仙)>, <노농(老農)>, <노승(老僧)>과 이민서(李敏敍)를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2는 잡저로 스승 박세채(朴世采)와 사돈 이세백(李世白)에게 보낸 편지, 관동의 화악산, 춘천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동행일기(東行日記)> 등이다. 권3~7은 소차로, 1683년 1월에서 1703년 12월 사이에 올린 것을 각 시기별로 모았다. 그중에서 <청파주제영조계(請罷主第營造啓)>는 각사 관아의 건물 및 공주의 저택과 조사(朝士)의 집을 짓는 역사에 대한 정지를 청한 것이다. 권8~9는 계(啓), 서계, 의(議), 전(箋)이고 습유는 소차로서 1682년에 인현왕후의 고명문제로 청나라 사신의 모욕적인 행위에 통분하며 국격을 지켜야 한다고 진언한 <청물허노사친전왕후고명소(請勿許虜使親傳王后誥命疏)> 등이 있다.
▶김구용(金九容, 1338~1384) | 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조성목(趙誠穆),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김명리(金明理)가 편차하여 1400년 진양 목사(晉陽牧使)로 나갔을 때 관찰사 조박(趙璞)의 협조를 얻어, 2권 2책의 목판본으로서 저자의 유고를 모은 본집과 저자와 교유한 사람들의 시문을 모은 외집(外集)으로 편차하고, 서ㆍ발 및 세계ㆍ행적은 본집 권수에 수록하여 간행하였다. 그 후 17세손 김상원(金相元)이 1884년경 그의 종숙 김병식(金秉湜) 등과 함께 2권 2책의 활자본으로서 정환요(鄭煥堯) 및 17세손 김상원(金相元)의 서와 허전(許傳)의 발을 권수에 추가하고, ≪여지승람≫ 등의 문헌과 대교한 소주를 붙여 문집을 개간하였다. 1964년에는 영천(永川) 약은정(藥隱亭)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문집을 개간하였다. 문집은 본집 상ㆍ하 2권과 외집 합 2책으로 되어 있으며, 본집은 모두 저자의 시이고 외집은 부록으로 저자와 교유한 사람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수에는 1399년 하륜(河崙)이 지은 서, 1386년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서, 이색(李穡)이 지은 발과 아들 김명리가 지은 세계행사요략(世係行事要略)이 실려 있다.
▶김귀영(金貴榮, 1520~1594) | 동원집(東園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 1520~1594)의 문집이다. 저자가 임진왜란 중에 충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소에서 죽었고, 아들 김개(金闓) 또한 허균(許筠)의 옥에 연루되어 장살(杖殺)되었기 때문에 집안이 영락하여 유문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1778년경에야 저자의 8세손인 김우현(金禹鉉)이 공사간의 기록에서 저자의 시문을 수집하고 당대의 명사들에게 글을 받아 문집을 정리하였고, 1935년에 12세손 김교희(金敎熙)가 여기에 ≪실록≫이나 야사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사를 널리 채집하여 시문 2책과 연보 1책 합 3책으로 석인본(石印本)을 간행하였다. 권1은 시문인데, 소재나 대상에 따라 배열하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부(賦) 1편 뒤에 1580년 알성연 후에 지어올린 시가 있고, 다음으로 1569년 퇴계를 전송한 시가 배열되어 있으며, 1619년 선영(先塋)을 성묘한 시 등이 실려 있고, 끝에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그리고 제문 2편과 서(書) 3편이 있다. 권2에는 묘갈문 9편, 권3에는 차(箚), 소(疏), 계(啓), 교문(敎文), 비문(碑文)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김귀주(金龜柱, 1740~1786) | 가암유고(可庵遺稿)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가암(可庵) 김귀주(金龜柱, 1740~1786)의 문집이다.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사본(罫印寫本)로, ≪가암유고≫는 일반적 형태의 문집으로 본문에 교정 첨지가 부착되어 있고 내용 일부가 도말(塗抹)되어 있는데, 시벽시비(時僻是非)와 관련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원집은 37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1767년부터 1769년까지의 작품으로, <현주팔경(玄洲八景)>은 초도(草島)의 해 뜨는 광경 등 소흑산도의 절경을 묘사한 것이다. 권9~14는 서(書)로, 김한록에게 유배지 소흑산도에 들어가기 직전인 1776년 9월에 보낸 편지에는 향후 왕의 처분이 어떻게 내려질 것인지, 가지고 가는 ≪근사록≫ㆍ≪논어≫ㆍ≪주서절요≫를 공부할 수 있을 지 등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1779년 10월에 관주와 일주에게는 섬사람들이 자신을 산송장[尸]이라 부르는 듯이 책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을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던 송시열의 상황과 견주고 그나마 박인서가 곤욕을 치르면서도 자신을 살펴준다는 등의 소식을 알렸다. 권19는 설(說), 잡저(雜文)이다.
▶김규오(金奎五, 1729~1791) | 최와집(最窩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최와(最窩)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현(耳鉉)과 문인ㆍ붕우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한 고본을, 종손 정건(貞健)이 교수ㆍ정리하여 종중(宗中)의 협조를 받아 184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김노겸(金魯謙)이 1848년 문집 간행시 지은 서문이 있고, 책별로 권1, 권3, 권5, 권7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4는 잡저이다. 1770년의 <문화양서원통문(問華陽書院通文)>은 경인호통(庚寅湖通)이라 불리는데 저자와 송시열(宋時烈) 후손측 유림이 대립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발단은 예전에 윤봉구가 지은 <화양서원묘정비문(華陽書院廟庭碑文)>의 명시(銘詩) 내용이 인물성이설(人物性異說)을 주장한 것이라 하여 인물성동설(人物性同說)을 지지하던 김창협(金昌協), 송덕상(宋德相) 등 낙론(洛論)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병계(屛溪)의 설을 적극 지지하던 저자가 이 통문을 지어 윤봉구가 송시열, 권상하 학문의 적통이라며 반박한 것이다. 말미에 1832년 문집의 편차와 교정, 간행 과정을 상술한 김정건(金貞健)의 발문이 실려 있다.
▶김극성(金克成, 1474~1540) | 우정집(憂亭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우정(憂亭) 김극성(金克成, 1474~154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200여 년 만에 적손 김양흠(金亮欽)이 우연히 민가에서 습득하여 등사(謄寫)하고, 김양흠의 손자 김영수(金永秀)ㆍ김헌수(金憲秀) 등이 정귀석(鄭龜錫)의 교감(校勘)을 받아 시 600여 수와 문(文) 7편을 4권으로 편집하고 부록 2권을 붙여 3책으로 정고(定稿)한 후 1860년(철종11)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2권 합 3책으로 권수는 송내희(宋來熙)의 서문과 목록이, 본집은 문체별로 권1은 오언절구와 칠언절구, 권2는 오언사율, 권3은 칠언사율, 권4는 연구와 오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 잡저, 묘갈문, <황조시편후지(皇祖詩篇後識)>, 권5~6은 부록으로 권5는 교서(敎書)ㆍ소원록(溯源錄)ㆍ행장(行狀)ㆍ이경탁(李慶倬)이 찬(撰)한 행장후지(行狀後識) 및 심지원(沈之源)의 가장(家藏)ㆍ시장(諡狀), 이정귀(李廷龜)의 신도비명이 있으나 시장은 일문(逸文)이고, 권6은 중종이 내린 제문과 제인(諸人)의 제문과 만사(輓詞)가 있으며, 권말엔 정귀석의 발문이 있다.
▶김근행(金謹行, 1713~1784) | 용재집(庸齋集)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용재(庸齋) 김근행(金謹行, 1713~1784)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여러 명이 나누어 필사한 각필사본(各筆寫本)으로, 본문의 오자와 낙자에 대한 교정부호와 연작시나 산문의 경우 하나의 작품 내에서도 산절(刪節) 대상의 표시 및 제목이나 목록에 시문의 초선을 위해 가점이 되어 있는 점, 목록과 본문의 수록 내용에 일부 차이가 보이는 점, 내용이 보충될 것을 대비하여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공백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리 단계의 사본으로 보인다. 본집은 15권 15책이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1ㆍ3ㆍ5를 제외한 나머지 권에는 권목이 있다. 권1~2는 시(詩), 소(疏)이다. 소는 모두 의소(擬疏)로서, 1749년 성균관의 유생 구건(具楗)이 권상하(權尙夏)의 행장과 관련하여 스승인 한원진(韓元震)을 변호하기 위하여 지은 <의상변사무소(擬上辨師誣疏)>와 탕평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시비와 선악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지적한 <의상론탕평소(擬上論蕩平疏)> 등이다. 권5~9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스승 한원진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질설(氣質說) 등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질정을 청하는 내용이 많다.
▶김기(金圻, 1547~1603) | 북애집(北厓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북애(北厓) 김기(金圻, 1547~160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6세손 김흠(金欽), 김섭(金燮) 등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사(辭), 부(賦), 시(詩), 서(書), 모량문(募糧文), 제문(祭文), 향약(鄕約), 장(狀), 전(傳) 등 198편을 수습하여 1책으로 유고를 정리 편차하여 1775년경 이세택(李世澤)의 교감(校勘)을 거친 고본(稿本)을, 1897년 이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 이야순(李野淳)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사(辭), 부(賦), 시(詩)이고, 대체로 저작순으로 실려 있고 교유한 사람들이 지은 시에 차운한 작품이 많다. 권3은 서(書), 제문(祭文), 장(狀), 전(傳), 잡저(雜著)의 문(文)이며, 권4는 부록(附錄)으로 이세택(李世澤)이 지은 행장과 묘갈명(墓碣銘), 이만도(李晩燾)가 지은 묘지명(墓誌銘), 권춘란(權春蘭)ㆍ김령(金坽) 등이 지은 제문과 조목(趙穆)ㆍ박성(朴惺) 등이 지은 만사, <낙천향사봉안문(洛川鄕社奉安文)> 등이 있고, 권미에 후손 김시찬(金是瓚)이 1828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김기수(金基洙, 1818~1873) | 백후집(柏後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백후(柏後) 김기수(金基洙, 1818~1873)의 문집이다. 저자 문집의 간행은 아들 우현(友鉉)이 수습하고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煕)의 교감을 받아 인행되었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허전(許傳)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1850년 이후의 시가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재정(李在鼎)과 수창한 시가 주류를 이룬다. 권6은 서(序), 기(記), 설(說), 장(狀), 잡저, 상량문, 제문, 고유문, 행장이다. <해주설(海舟說)>은 저자가 남해에서 배를 탄 경험을 접목시켜 항상 전전긍긍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경계한 내용이다. <청가증효자덕탄김공장(請加贈孝子德灘金公狀)>은 삼가(三嘉)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한 효자 김두남(金斗南)의 가증(加贈)을 청한 글이다. 잡저의 <통영천도회소문(通永川道會所文)>은 정석달(鄭碩達)과 정중기(鄭重器)의 향사를 둘러싸고 위차(位次) 논쟁이 벌어지자 해결책을 제시한 통문으로, 정석달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말에는 문인 이승희와 아들 우현이 1896년 간행 당시에 지은 발(跋)이 있다.
▶김낙행(金樂行, 1708~1766) | 구사당집(九思堂集) | 권책
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의 문집이다. 1801년에 그동안 정리하여 교정한 본을 가지고 별집을 제외한 9권 5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1893년에는 원집에서 누락된 시문 및 부록 등을 수집, 편차하여 4권 2책의 속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로는 부친의 술회시(述懷詩)에 차운한 시, 부친의 유배지인 제주와 광양(光陽)에 따라가 그곳의 산수를 읊은 시, 만시(輓詩) 등이 있다. 잡저로는 상제례(喪祭禮)에 관한 것이 많으며, 독역설(讀易說), 심체용설(心體用說), 직석설(織席說), 남초설(南草說)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밖에 자신을 경계하는 내용의 질의잠(質疑箴), 경명(鏡銘), 자경잠(自警箴), 성신잠(省身箴) 등과, 고사(告辭), 제문(祭文), 애사(哀辭)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에는 예송(禮訟)과 기축옥사(己丑獄事)에 관해 듣고 본 바에 따라 논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문견록(聞見錄), 극(極) 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무극태극설기의(無極太極說記疑), 죽계(竹溪) 지방 어느 민가의 강아지 두 마리가 보신탕용으로 죽은 어미개를 위해 복수한 일을 적은 효구설(孝狗說) 등이 실려 있다.
▶김남중(金南重, 1596~1663) | 야당유고(野塘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야당(野塘) 김남중(金南重, 1596~1663)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 후반에 전사된 괘인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되어 있고, 총목, 서(序), 발(跋)은 없다. 권1~3은 모두 시(詩)이다. 시체의 구분이 없고 저자의 시에는 <즉사(卽事)>, <우음(偶吟)> 등과 같이 즉흥적인 감흥과 경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회를 읊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기이(記異)>는 1635년 12월 9일에 인조(仁祖)의 비인 인열왕후(仁烈王后)가 승하하자, 백홍(白虹)이 해를 뚫고 큰 우레가 친 이변이 일어남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읊은 것이다. <남한즉사(南漢卽事)> 3수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가를 따라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갔을 때의 참담한 현실을 묘사하였다. 만시(輓詩)는 이정귀(李廷龜), 박정(朴炡), 강유(姜瑜), 나만갑(羅萬甲), 신경진(申景禛), 이도장(李道章), 인평대군(麟坪大君), 김집(金集) 등에 대한 것이다. 수창시도 다수 실려 있는데, 주로 수창한 이들은 강유(姜瑜), 이시매(李時楳), 박일성(朴日省), 이소한(李昭漢), 이명한(李明漢), 박세채(朴世采) 등이다.
▶김녕(金寧, 1567~1650) | 둔봉집(遯峯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둔봉(遯峯) 김녕(金寧, 1567~1650)의 문집이다. 저자는 저술이 매우 많았고 사우간에 강론한 도록(圖錄), 붕우들의 만시와 제문, 편지, 기(記), 서(序) 등도 적지 않았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후 5대손 김용(金鎔)이 친척과 지인의 집에서 저자의 유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용(鎔)의 아들 상직(尙直)과 7대손 우선(右宣)이 부록(附錄)을 증보(附錄)하여 180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권, 연보(年譜), 부록 합 2책이다. 권수에 김굉(金㙆)이 1809년에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이다. 시는 최현(崔晛), 목대흠(睦大欽), 두보(杜甫) 등의 시를 차운한 시와 경광을 읊은 시, 만시(輓詩) 등이 많다. 권2는 소(疏), 서(書), 봉안문(奉安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명(銘), 묘갈명(墓碣銘)이다. 특히 상소는 박이립(朴而立)이 정구를 무고하자 정구를 변호하고 박이립의 처벌을 청하는 내용이다. 그 뒤로 연보와 부록이 실려 있고 권말에 정위(鄭煒)가 지은 발문, 목만중(睦萬中)이 1809년에 지은 서문이 실려 있다.
▶김담(金淡, 1416~1464) | 무송헌집(撫松軒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무송헌(撫松軒) 김담(金淡, 1416~1464)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현손 김륵(金玏)이 저자의 시문(詩文)을 찾아 모아둔 것에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추가해 목판(木板)으로 문집(文集)을 초간(初刊)하였다가, 1447년에 증보(增補)하여 간행(刊行)하였고, 1767년에는 10대손 김방(金埅)이 문집(文集)을 삼간(三刊)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김응조(金應祖)가 1646년에 지은 시(識)와 목록(目錄)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 송(頌), 전(箋), 소(疏)이고, 권2는 계사(啓辭)이며 권3은 헌의(獻議), 대책(對策), 잡록(雜錄)이다. 권4~6은 부록(附錄)이다. 권4에는 어서(御書)를 비롯하여 장신(張璶), 권두인(權斗寅), 8대손 김만주(金萬柱)가 1707년에 지은 중간발(重刊跋) 3편과 10대손 김방(金埅)이 1767년에 지은 삼간발(三刊跋)이 있고, 권5~6은 연보(年譜)이다.
▶김대진(金岱鎭, 1800~1871) | 정와집(訂窩集) | 권책
수 : 13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한국국학진흥원
-조선 시대 정와(訂窩) 김대진(金岱鎭, 1800~187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 사후에 문인 김상수(金常壽), 김성진(金城鎭), 김진한(金鎭瀚), 김경진(金敬鎭) 등이 유문(遺文)을 수집 등사(謄寫)하여 문집 초본(草本) 18권을 완성한 뒤 교정을 거쳐 12책으로 편차하였다. 이 초본을 1883년 5월에 권연하(權璉夏)가 도연서원(陶淵書院)에서 1차로 교정하여 현전하는 10책 분량으로 정리하였다. 몇 년 뒤에 김흥락(金興洛)에게 말감(末勘)하게 하고 간행 직전에 또다시 김석락(金奭洛), 김진린(金鎭麟), 김양진(金養鎭) 등이 모여서 교감하여 1888년 1월에 간역을 시작하여 1889년 6월에 20권 10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0권 10책, 속집(續集) 4권 2책, 부록(附錄) 2권 1책 합 13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 권두에 서문은 없고 총목만 있다. 권1~2는 시(詩), 소(疏)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속리산(俗離山)을 유람하며 읊은 시와 퇴계(退溪), 학봉, 대산(大山) 등 안동 일대 선현의 시에 차운한 것이 있다. 권8~11은 잡저(雜著)이다.
▶김대현(金大賢, 1553~1602) | 유연당집(悠然堂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序跋)이나 지(識) 등이 없어 문집의 간행 경위와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8대손 김종탁(金宗鐸)이 지은 <도림추원사이건기(道林追遠祠移建記)>에 1804년 추원사의 공역을 시작해서 1806년에 마쳤다고 하였는데, 이 기사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806년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와 서(書)이고, 권2는 소(疏)와 논(論)이다. 그중에서 <척화소(斥和疏)>는 오늘의 정세를 보면 이적(夷狄)의 환란(患亂)과 살육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니 일본과 강화하지 말 것을 청한 상소(上疏)이다. 권3은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 제문(祭文),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부록이다. 김상헌(金尙憲)이 1635년에 지은 유사를 비롯하여 정경세(鄭經世)가 지은 묘갈명(墓碣銘),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년기(行年記), 사제문(賜祭文), 신경진(辛慶晉)이 지은 만사(輓詞), 김굉(金㙆)이 지은 구호서원(鷗湖書院)에 봉안하는 글 등이 있다.
▶김덕겸(金德謙, 1552~1633) | 청륙집(靑陸集) | 권책
수 : 9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륙(靑陸) 김덕겸(金德謙, 1552~163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난리를 겪는 동안 산일되어 전하지 않고 중년에 지은 것도 화재로 인해 대부분 산일되었다. 아들 김상(金尙)이 산일되고 난 나머지를 수집 편차하여 2책으로 만들었는데 시(詩)가 459수, 잡저가 33편이었다. 이식(李植)이 산정하고 1647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647년에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4는 시이다. 권1과 권2는 임진란 후의 참담한 상황에서부터 사신으로 가거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동료를 전송하는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권3은 송별시와 만사가 많고, 권4는 동헌이나 누각을 읊은 시, 차운시와 만시가 많다. 권5는 잡시습유이고, 권6은 잡저, 게첩, 소(疏), 잠(箴), 제문, 사부이다. 그 중에서 잡저는 이정귀(李廷龜)의 정자인 보만정(保晩亭)에 대한 서문, 문천상(文天祥)과 정몽주(鄭夢周)의 유사를 모아 만든 ≪성인록(成仁錄)≫에 대한 발문 등이며 권미에 아들 김상이 1647년 경주 부윤 때 지은 지(識)와 이식이 1645년에 지은 제(題)가 있다.
▶김덕승(金德承, 1595~1658) | 소전집(少痊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전(少痊) 김덕승(金德承, 1595~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문과 관계기록을 수집ㆍ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시, 칠언시, 만(挽), 부(賦)이다. 시는 1613년부터 1647년까지 지은 것으로 홍익한(洪翼漢), 이명한(李明漢) 등과 수창한 작품이 있다. 권2는 계(啓), 소(疏), 기(記), 제문, 서(書), 잡저이다. 계(啓)는 1625년부터 1635년 사이에 사헌부 또는 사간원에 재직 시에 올린 대계(臺啓)이고, 기의 <상방제명기(尙方題名記)>는 상의원의 관원 명단에 덧붙인 글로 1647년 상의원 정으로 재직 시에 지은 것이다. 잡저의 <천사대관(天槎大觀)>은 1624년 동지 겸 성절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경로를 묘사한 그림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은 해로 사행의 경로를 29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각 지역의 연혁, 인근 지역과의 거리, 산천 및 유적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관련된 시를 인용한 경우도 많다. 권2 말미에는 김우량(金宇梁)이 지은 행장과 박세당(朴世堂)이 지은 묘지가 실려 있다.
▶김덕오(金德五, 1680~1748) | 치헌집(癡軒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치헌(癡軒) 김덕오(金德五, 1680~1748)의 문집이다. 문인 권전(權烇)과 서자 김대연(金大淵)이 유고를 수습하고 정리하여 이상정(李象靖)의 교정과 서문까지 받았으나 형편상 간행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집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치헌정(癡軒亭)의 중수를 계기로 남공수, 김대진(金岱鎭)이 5권 2책으로 재편차하고 교정하여 1870년에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중간은 곽종석(郭鍾錫)이 1912년에 지은 발문에 의하면, 대산 이상정 및 김대진이 편차한 원집에는 사학의변과 기주연법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간행하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권순모(權舜模)와 남조와(南朝洼)가 편차를 주도하여 원집 4권 2책, 속집 2권 2책 합 6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다고 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그 뒤에 이상정과 김대진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권3 뒷부분은 기(記), 제문(祭文), 뇌사(誄辭)이다. <우죽기(愚竹記)>는 자신이 은거하는 곳 인근 밭에 뿌리만 남은 대나무를 가져다 심고서 지은 것인데, 대나무에 대한 고사(故事)를 나열하고 자신이 우죽을 좋아하는 뜻을 적은 것 등이다.
▶김덕함(金德諴, 1562~1636) | 성옹유고(醒翁遺稿)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옹(醒翁) 김덕함(金德諴, 1562~163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자호란 때에 대부분 산일되었는데, 손자 김우석(金禹錫)이 시문을 수집 편차하였고, 우석의 아들 김연(金演)이 안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김연이 자신이 찬차한 연보와 새로 수집한 습유, 연계, 부록 등을 추가하여 4권 2책으로 재편한 다음, 1706년에 대구(大丘)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 있다. 본 문집은 중간본으로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703년에 남구만(南九萬)과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서문과 총목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여문인데,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잡저, 소차, 계사인데, 그중에서 <사공조참의소(辭工曹參議疏)>는 1624년에 올린 상소로, 이괄의 난 때 토벌에 소극적인 이안눌을 탄핵한 내용 등이 실려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안눌이 경성(鏡城)에 유배된 전말 등이 부기되어 있다. 권3~4는 연중주사(筵中奏事)와 부록이며, 부록에는 연보, 행장, 시장 등과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릴 때의 수의가 실려 있고 권미에는 1706년에 지은 김연의 발문이 실려 있다.
▶김도수(金道洙, 1699~1733) | 춘주유고(春洲遺稿)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춘주(春洲) 김도수(金道洙, 1699~1733)의 문집이다. 저자는 워낙 젊은 나이에 졸한 관계로 생전에 따로 시문을 편차해 놓을 기회는 없었을 듯하고, 사망 당시에 아들 김성무(金聖懋)도 3세에 불과하였으니 다른 친족이나 가까이 지냈던 벗들에 의해 편차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집은 운각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부록문자 없이 원집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발이나 인기(印記) 등이 전혀 없어 편찬, 간행 사항도 알 수 없다. 본집은 원집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 부록문자나 서발은 없으며, 총목 없이 권별 목록만 각기 달려 있다. 권2는 서(序), 기(記), 서(書), 애사, 제문, 설(說), 명(銘), 전(傳), 비(碑), 제(題), 논(論)이다. 설(說)에는 18, 19세 때 패설에 빠졌을 당시 편찬한 ≪제가문수(諸家文粹)≫에서 후에 도가서와 불서를 산절하고 문중자, 한유를 첨가한 뒤 지은 <산정제가문수설(刪定諸家文粹說)>이 실려 있는데, 참고로 ≪제가문수≫에 관해서는 ≪서당사재(西堂私載)≫에 그 서문이 실려 있음을 밝혀 둔다. 또한 거처에 옮겨 심은 대나무를 치인(治人)에 비유한 <죽설(竹說)> 등이 있다.
▶김도행(金道行, 1728~1812) | 우고집(雨皐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고(雨皐) 김도행(金道行, 1728~1812)의 문집이다. 저자는 문장을 여사(餘事)로 여겨 외부의 청탁을 받지 않았고 일부 수응하는 경우에도 초고를 남겨두지 않아 문집의 분량이 많지 않다. 본집은 손자 조운(祚運)이 족현손 대진(岱鎭)의 교정을 받은 고본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발은 없고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많지 않은 편인데 그중에서 만시(輓詩)가 29편이나 된다. 권2~4는 서(書)이다. 인물별,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외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권2와 권3 앞부분에 배열되어 있고, 권3은 대부분 일가의 족형, 족질, 족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5는 잡저, 잠명, 축문, 제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자식마저 죽자 음독자결한 유장원의 딸에 대해 적은 <서유인유씨원사경개후(書孺人柳氏寃死梗槪後)> 와 문방구를 두고 읊은 <필잠(筆箴)> 등이 있다. 권8은 부록으로, 김회운의 제문에 저자가 기대를 걸었던 문인 김호운과 김붕운이 모두 죽어서 저자의 유문을 정리할 이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있다.
▶김도화(金道和, 1825~1912) | 척암집(拓菴集) | 권책
수 : 29책 | 포갑수 : 6개
-판본소장처 :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집이다. ≪원집≫은 손자 헌주(獻周)가 유문을 수습하여 저자의 문인들과 1916년에 간역을 시작하여 1917년에 목판본 초간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속집≫은 금석문자 중 산일되어 원집에 싣지 못한 것과 시문, 서찰 중 수습되지 못한 것을 수집한 후 속집 6권으로 만들었고,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945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부록≫은 4권 2책으로 목판본과 석인본 두 종류가 있다. ≪별집≫은 1956년경 2권 2책으로 연활자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36권 19책, 속집 13권 6책, 부록 4권 2책, 별집 2권 2책이 합부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3~8은 소(疏), 서(書)이다. 부록은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곽도(郭鋾) 등이 지은 만사 99편이 실려 있다. 권말은 급문록(及門錄)으로, 문인 하대운(河大運) 등 216인에 대한 관련 기록이다. 별집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사(詞), 시, 조(詔), 소(疏), 서(書), 격문, 비, 지(誌), 잡저, 고유문, 전이다. 권미에 채헌기가 1956년에 쓴 발문이 있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 | 백곡집(柏谷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김상형(金相馨)
-조선 중기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얼마 안 되어 친손 김가행(金可行)과 외손 이렴(李濂)에 의해 정리가 이루어졌고, 1687년에 박세당(朴世堂)에 의해서 편차와 교정이 완료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원집 7책과 부록이 합쳐진 괘인정사본(罫印淨寫本)으로 후손 김상형(金相馨)씨 소장본이다. 책1~4는 시로, 약 15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저자가 유람한 지역의 서경시(敍景詩), 기행시 등의 시 공부를 위해 당시(唐詩)의 운(韻)과 제목을 따서 지은 시, 교유하던 명사들과의 차운시, 증답시(贈答詩), 만시(挽詩)와 <야음(夜吟)> 등의 서정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부록의 <수록(搜錄)>과 <기문록(記聞錄)>에는 저자의 일화와 함께 문장에 대한 제가(諸家)의 평이 실려 있다. 책5~7은 문(文)으로 186편의 문이 문체별로 분류되어 있다. 당(堂), 정(亭)의 기문, <소산집서(小山集序)>, 등의 서(序), <선고유고발(先考遺稿跋)>을 비롯한 발문(跋文),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김려(金鑢, 1766~1821) | 담정유고(藫庭遺藁)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담정(藫庭) 김려(金鑢, 1766~182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우 김선(金䥧)이 저자의 시문을 7책으로 베껴 써서 초본을 만들었고, 그 후 손자 김겸수(金謙秀)가 고령 현감으로 있을 때 초본에 보유집(補遺集) 1권을 추가하여 1882년에 12권 6책을 목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권1~6은 시(詩), 권7~11은 문(文), 권12는 보유집이다. 권1은 <귀현관시초(歸玄觀詩草)>, 권2는 <간성춘예집(艮城春囈集)>, 권3은 <의당별고(擬唐別藁)>, 권4는 만선와잉고(萬蟬窩賸藁), 권5~6은 사유악부(思牖樂府)이다. 권7은 <북천일록(北遷日錄)>과 <기몽시(記夢詩)>이다. 권8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이다. 권9는 <단량패사(丹良稗史)>로, <이안민전(李安民傳)>, <삭낭자전(索囊子傳)> 등 8편의 전(傳)이 들어 있다. 권12의 보유집에 실린 시 중에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장편 서사시로, 백정의 딸과 양반인 파총(把摠)의 아들과의 결혼을 다루고 있는데다. 관직 생활을 하며 지은 것, 각종 인물, 풍속, 설화, 민간 생활에 대해 읊은 것 등 다양한 소재의 시와 산문 작품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김령(金坽, 1577~1641) | 계암집(溪巖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계암(溪巖) 김령(金坽, 1577~1641)의 문집이다. 저자는 평소 문한(文翰)을 즐기지 않아 시문 약간 권만이 문인과 자제들에 의해 간직되다가 1772년 3월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는 약 330여 수가 있는데, 서정적인 시가 많으며, 저자가 어릴 때 자랐던 복천(福川)을 그리며 지은 시, 청량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 병자호란 때의 절통한 마음을 표현한 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린 데 대한 통분을 나타낸 시 등이 있다. 서(書)로는 지우(知友)와 아들에게 보낸 것 27편이 있고, 그밖에 소(疏), 제문, 표전(表箋)과 잡저 등이 실려 있다. 표전은 대부분 중국의 인물과 사실(史實)을 끌어다 작성하였다. 잡저로는 의성(義城)에서 걸식을 하며 노모를 봉양한 효자에 대한 <효자전(孝子傳)>이 있다. <정훈차록(庭訓箚錄)>은 저자가 부친에게 들은 제례(祭禮), 학문, 행동거지 등에 대한 훈계이다. 광해군 때 혼정(昏政)에서 벗어나 인륜을 지킨 것, 인조반정 후 의리를 지켜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 병자호란 후 명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킨 것을 두고 저자의 비분강개한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료이다.
▶김류(金瑬, 1571~1648) | 북저집(北渚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북저(北渚) 김류(金瑬, 1571~164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유문은 친손(親孫)인 김진표(金震標)에 의해 1658년에 원집 9권, 별집 합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4에는 약 340여 편의 시(詩)가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1626년에 조사(詔使)와 화답한 차운시(次韻詩)와 만시(挽詩), 김상헌(金尙憲)ㆍ정홍명(鄭弘溟)ㆍ이식(李植) 등 당대의 명사들과 화답한 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1의 <용호래주중강(龍胡來駐中江)>으로 시작하는 시와 <청음입심양(淸陰入瀋陽)>, <부서심양(附書瀋陽)> 등은 병자호란 후 용골대(龍骨大)의 횡포와 김상헌이 심양(瀋陽)으로 잡혀간 일 등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권5는 제문이다. 권6~7은 소차(疏箚)이다. 병란에 없어지고 남은 93편의 소차가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대부분 짤막한 사직소와 대죄소(待罪疏) 등이다. 권8~9는 묘지(墓誌)와 시장(諡狀) 등 묘도문자이다. 누락된 글과 새로 수습한 글을 다시 모아서 정리한 별집은 잡저로 되어 있지만, 내용은 응제문(應製文)과 헌의(獻議), 계사(啓辭)로 이루어져 있다.
▶김륵(金玏, 1540~1616) | 백암집(柏巖集) | 권책
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백암(栢巖) 김륵(金玏, 1540~161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본(家藏草本)으로 약간 권이 전해져 왔는데, 6대손 김위(金㙔)가 종자(從子) 김약련(金若鍊) 및 족자(族子) 김세련(金世鍊)으로 하여금 초본(草本)대로 등사(謄寫)하고 연대순으로 편차하게 하여, 1772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운문으로는 <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 <지수부(止水賦)>, 시(詩)가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서정록(西征錄)>, <조천록(朝天錄)>, <화산록(華山錄)> 등의 시모음집이 있으며, 그밖에 주변 경치를 읊은 시들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이태조(李太祖)의 종계(宗系)가 바로잡힌 것을 축하하여 대사면령을 내린 <종계변무반사중외교서(宗系辨誣頒赦中外敎書)>, 군(郡)의 폐단 10가지를 상소한 <영월군진폐소(寧越郡陳弊疏)>,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彥迪), 이황(李滉) 등 5인을 문묘에 종사하기를 청하는 내용의 <청본조오현종사문묘계(請本朝五賢從祀文廟啓)> 등의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선조대의 중국ㆍ일본과의 관계, 당쟁의 경향, 임진왜란 당시의 실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김만기(金萬基, 1633~1687) | 서석집(瑞石集) | 권책
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석(瑞石) 김만기(金萬基, 1633~1687)의 문집이다. 손자인 김춘택(金春澤)이 주관하여 김만중(金萬重)이 편찬해 놓았던 문집 18권 9책을 1701년 교서관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이 중에서 끝의 2권은 부록이다. 권1~4는 시(詩)로 380여 제가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율시와 절구뿐만 아니라 행(行), 곡(曲) 등 각 체의 시, 당시(唐詩)와 두보(杜甫) 등의 운에 차운한 시가 많으며, 과제시(課題詩)가 80여 수나 실려 있다. 권3과 4의 후반부에는 만시(挽詩)를 따로 모아 두었다. 권5~6은 서(序), 기(記) 등 잡문과 응제록(應製錄)이다. 권7~12는 소차(疏箚)와 계사(啓辭)이다. 대부분 대죄하고 사직하는 내용으로, 남인(南人) 집권 기간 동안 서인(西人)을 보호해 온 저자의 처지를 살필 수 있다. 권13~16은 행장, 시장과 묘지 등의 묘도문자이다. 권17~18은 부록이다. 숙종이 직접 지어 내려준 <어제화상찬(御製畫像贊)>과 <묘표어필대자(墓表御筆大字)>가 실려 있으며, 이후 교서와 사제문,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과 묘표음기, 김수항(金壽恒)ㆍ이민서(李敏敍)가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김만영(金萬英, 1624~1671) | 남포집(南圃集) | 권책
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외
-조선 시대 남포(南圃) 김만영(金萬英, 1624~167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나만성(羅晩成), 나경성(羅景聖) 등의 제자 및 외손들이 수습하여 1차 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저자의 문인 나만성(羅晩成) 등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저자의 5대손 양국(亮國) 등이 시문을 추가ㆍ재편하여 1831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부록 2권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김유헌(金裕憲)의 후서, 한용간(韓用幹)의 신간발, 이현일(李玄逸)의 구발, 목록이 있다. 권1~7은 시로,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일부 시에는 세주가 달려 있는데, 자주와 편자주가 혼재되어 있다. 권4의 <사증남교리(謝贈南校理)>는 1660년 암행어사로 내려왔던 남구만(南九萬)이 저자를 방문하고 갈 때 사례하며 준 것이다. 권8~10은 소, 서(書), 서(序) 등이다. 권11은 경의설(經義說)로 주로 경문에 관한 것들인데, ≪중용장구≫에 대한 글들이 많다. 권14~15는 남교일기(南郊日記)이고, 권16은 경세통전(經世通典)으로 사민(士民), 내관제(內官制) 등으로 나누어 각각에 해당하는 전례(典例)와 그 근거를 제시한 글이다.
▶김만중(金萬重, 1637~1692) | 서포집(西浦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로 남아 있는 것은 시문집 외에 ≪서포만필(西浦漫筆)≫이 있고, 소설로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시문집 10권은 사후 10년째 되는 1702년에 아들 김진화(金鎭華)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전체적으로 현종, 숙종 연간의 중앙 관직 생활, 1689년의 남해 유배 시절 등에 지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인을 그린 시와 사친시(思親詩)가 많다. 권2의 악부시는 국문 시가인 ‘쌍화점(雙花店)’을 개작한 것이다. 권7~8은 소(疏), 차(箚), 계(啓)이다. 권9는 제문, 악장, 비답, 교서, 옥책문, 표전, 서(序), 발(跋), 기(記), 지(識)이다. 본집에는 서간이 한 편도 실리지 않았는데, ≪송자대전(宋子大全)≫이나 ≪초려집(草廬集)≫ 등을 보아도 저자와 나눈 다수의 서찰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환국의 와중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권10은 1690년에 모친 윤부인(尹夫人)에 대해 지은 행장(行狀)이다.
▶김매순(金邁淳, 1776~1840) | 대산집(臺山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문집이다. 저자는 향리에 은거하고 있을 때 가장하고 있던 시문을 몇 권으로 편차하여 석릉고(石陵稿)라는 이름으로 완성하였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임종시에 문인 김상현(金尙鉉)에게 가장초고에 관한 일을 부탁하여 1868년경에 교수를 마쳐 1897년에 아들 김선근(金善根)이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이다. 시(詩)는 339제가 실려 있는데, 재종 형제나 벗들과 수창한 것이 많고, 임지로 부임하면서 지나가는 곳의 경물을 읊은 것도 여러 수 된다. 산문으로는 인정전(仁政殿) 화재 후 옥당에서 연명으로 올린 차자, 1834년에 올린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청하는 계사, 저자의 저작인 <주자대전차의문목표보(朱子大全箚疑問目標補)>와 석릉고에 대한 서(序), <뇌암기(雷庵記)>, 일본인 태재순(太宰純)이 지은 ≪논어훈전(論語訓傳)≫과 정세익(鄭世翼)이 지은 ≪시연(詩演)≫ 등에 대한 발(跋) 등이 있다. 권15~20의 <궐여산필(闕餘散筆)>은 경사자집(經史子集) 등을 읽은 뒤 보고들은 내용 및 의문점을 채록한 다음 이를 분류하여 논변한 것이다.
▶김맹성(金孟性, 1437~1487) |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지당(止止堂) 김맹성(金孟性, 1437~148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사후에 친구였던 극암(克庵) 이창신(李昌臣)이 시(詩) 300여 수를 수습 편차하여 저자의 질서인 김응기(金應箕)에게 주어 간행(刊行)을 맡겼다. 김응기는 이를 조위(曺偉)에게 교정(校正)을 받아 이규(李逵)에게 주어 1501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고, 1914년에 방손 김병훈(金秉勳)이 자신의 선조 김주(金輳)의 ≪운암집(雲巖集)≫을 간행하면서 저자의 문집을 중간(重刊)하고자 하여, 초간본(初刊本)에 부록(附錄)을 첨가하여 2권 1책으로 편차하고 노상직(盧相稷)의 교감을 거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의 시집으로, 권두에 1501년에 조위가 지은 서문이 있다. 시 245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고, 그 내용은 절기의 변화나 풍광을 읊은 것과 차운시, 송별시 등이며, 만시(輓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유호인(兪好仁), 조위, 표연말(表沿沫), 서거정(徐居正), 양희지(楊煕之) 등 당대의 문인들이 지은 시에 차운한 작품들이 많다. 권미에 1501년에 김응기(金應箕)가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김면(金沔, 1541~1593) | 송암유고(松菴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암(松菴) 김면(金沔, 1541~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200여 년이 지날 때까지 가장되어 오다가, 1772년에 후학 한방윤(韓邦胤)이 김씨 문중의 가장에서 시문과 일록을 수습하고, 1774년에 최재억(崔載億), 이회근(李悔根)이 편차한 고본을, 1785년 송암선생실기(松庵先生實記)로 증산ㆍ재편하여 1786년 활자로 인행한 후,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하고 재편하여 1884년 이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 1774년에 김수묵(金守默)이 지은 서문, 1785년에 김중조(金重祚)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문, 권2는 보유, 권3은 부록이다. 권1은 시(詩), 서(書), 문(文)인데, 문(文)은 1592년에 호남을 순찰한 권율(權慄)에게 보낸 이문(移文)과 왜란 중에 선영(先塋)에 고하는 글이다. 권2는 보유이고, 권3은 부록으로, 교서, 유서, 장계, 사제문, 제문, 행장, 신도비명, 도암서원(道巖書院)의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ㆍ봉안문(奉安文)ㆍ이건시고문(移建時告文), <청시청액소초(請諡請額疏草)>, <공충도각읍유생통문(公忠道各邑儒生通文)>이다.
▶김명석(金命錫, 1675~1762) | 우계집(雨溪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계(雨溪) 김명석(金命錫, 1675~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엽운(曄運)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족증손 회운(會運)의 편차ㆍ교감을 받은 고본을, 1880년대 이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선조들의 문집에서 차운한 시가 종종 보이고, 도연(陶淵), 선유정(仙遊亭), 사빈서원(泗濱書院) 등 안동 지역 내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읊은 시들이 많다. 함께 어울리며 시를 수창한 이들은 재종제 김성탁(金聖鐸), 권만(權萬) 등이다. 권3은 만사, 서(書), 잡저, 제문, 유사이다. 잡저 중 <시제손(示諸孫)>은 자손들에게 종고조 용(涌)의 팔자부(八字符)와 족숙 학배(學培)의 이자훈(二字訓) “근근(謹勤)”의 의미를 전하며 권면하는 내용이다. 서(書)는 권구, 김성탁 등에게 보낸 것들로 일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권4는 부록으로 족증손 회운이 지은 행장, 권연하(權璉夏)가 지은 묘갈명, 유관현(柳觀鉉) 등이 지은 만사, 이유원(李猷遠) 등이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김민택(金民澤, 1678~1722) | 죽헌집(竹軒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헌(竹軒) 김민택(金民澤, 1678~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선재(善材)와 증손 준(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제 양택(陽澤)이 1760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종질 초재(楚材)의 ≪묵재유고(默齋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천보(李天輔)가 176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조광한(趙匡漢), 이규서(李奎瑞) 등을 애도한 만시가 포함되어 있다. 권2는 소차, 달사, 영서, 비답, 서(序), 기(記), 잡저이다. 소차에는 영남 유생들을 대신하여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거제서원(巨濟書院)의 사액을 청한 것이 있는데 이후 반곡서원(盤谷書院)으로 사액되었다. 잡저에는 <열부상낭전(烈婦尙娘傳)>, <아자혼서(兒子婚書)> 등이 있다. 권3은 행장이고 권4는 행장, 제문, 애사, 고문, 서(書)이다. 권5는 부록으로 민우수(閔遇洙)가 1753년에 지은 행장, 이천보가 1759년에 지은 묘표이고 권말에는 족숙 김진상(金鎭商)이 1755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방걸(金邦杰, 1623~1695) | 지촌집(芝村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유문을 아들들이 거두어 가장하여 오다가, 유치명(柳致明)의 수교를 거치고 그의 서문을 받아 후손들이 1865년에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유치명의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절구, 율시, 배율, 고시인데 칠언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칠언절구는 <과송도(過松都)>, <평양유감(平壤有感)> 등 행로 중의 감회를 읊은 시가 대부분이며, 칠언율시는 <차태질운(次台姪韻)>, <만이별검(輓李別檢)> 등 차운시나 만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권2는 소로, 일홍(日虹)의 재이가 발생하여 구언의 하교가 내리자 임금이 입지를 바르게 하고 실제에 힘써야 한다는 대책을 연명으로 올린 <홍문관청우재수성소(弘文館請遇災修省疏)>, 영양 현민을 대신해 영해부에 속해 있는 영양을 독립시켜 줄 것을 호소한 <영양복현소(英陽復縣疏)> 외에는 모두 사직 상소이다. 권3은 서(書), 기, 발, 축문, 제문, 구묘문(丘墓文)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와 제문, 행장, 묘갈명, 행년기(行年記)가 실려 있고 권말에 간기(刊記)가 있다.
▶김봉조(金奉祖, 1572~1630) | 학호집(鶴湖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 1572~1630)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이나 지(識) 등이 없어 문집의 간행 경위와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다만 돈녕도정(敦寧都正) 유규(柳규(氵+奎))가 지은 행장에 저자의 6대손 김상섭(金相燮)과 7대손인 김종석(金宗錫) 등이 유집을 가져와 교정을 부탁하였다는 것으로 유추하면, 본집은 순조 초년 후손 김상섭 등이 가장본을 바탕으로 수집하고 유규의 교정을 거친 후 1813년경 저자가 구호서원(鷗湖書院)에 봉안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판으로 간행된 것이다. 본집의 구성은 세계도, 연보, 총목과 원집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서, 발은 없다. 권1은 시로서, 50여 수의 각 체의 시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소(疏), 장계(狀啓), 전(箋) 등의 공거문(公車文)이다. <왜정장계(倭情狀啓)>는 1623년 12월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보낸 원지차(源智次)의 접위관으로 차임되어 동래로 내려갔을 때 올린 8건의 장계이다. 당시 접견 절차상의 예우문제와 세견선(歲遣船)의 증가 등 저들의 요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우리나라와 대마도 간의 외교 및 무역 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김부륜(金富倫, 1531~1598) | 설월당집(雪月堂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설월당(雪月堂) 김부윤(金富倫, 1531~15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3대손 김기업(金基業) 등이 문집 간행을 도모하고 10대손 김제면(金濟冕) 등이 집안에서 정리해 둔 정고본(定稿本)을 개정(改正)하여 6권 3책으로 1940년 안동에서 석인하였다. 권1~2에는 부로 <지사석일단(志士惜日短)>이 맨 앞에 실려 있고 그 뒤에 오언시와 칠언시가 실려 있다. 이 시들은 9세에 지었다는 <만춘즉사(晚春卽事)>를 시작으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퇴계(退溪)의 문하로 들어간 시기를 전후하여 지은 시 8수에는 퇴계의 시평이 실려 있다. 권3은 서(書)로 퇴계 선생에게 올린 편지와 답서가 많다. 권4는 제문과 잡저이다. 잡저로는 <퇴계선생언행차록(退溪先生言行箚錄)>과 <문답차록(問答箚錄)> 등 9편이 있다. 권5에는 ≪심경(心經)≫과 ≪대학(大學)≫의 <독서차기(讀書箚記)>가 실려 있는데, 어려운 곳에는 곳곳에 언해(諺解)와 구결(口訣)을 써서 해석해 놓았다. 권6은 부록이다. 퇴계의 문인이었던 저자의 문집 곳곳에 퇴계와 관련한 자료가 많이 실려 있다.
▶김부필(金富弼, 1516~1577) | 후조당집(後彫堂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김준식(金俊植)
-조선 시대 후조(後彫)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영(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1822년에 받은 증시기록(贈諡記錄) 등을 증보하여 재편한 괘인선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원집 권1~2에는 시 178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스승 퇴계 이황과 관련된 시와 사제 김부의(金富儀) 등과 수창한 시, 동문인 황준량(黃俊良), 조목(趙穆) 등과 차운한 시, 매화를 소재로 지은 시 등이 있다. 권3은 서(書), 제문, 잡저로 편지는 이황 등에게 보낸 편지와 혹인의 문목에 답한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4는 독서차록(讀書箚錄)이다. ≪심경≫, ≪주자연보(讀書箚錄)≫ 등을 읽으면서 수시로 기록한 것으로 단어와 문장의 풀이와 고증이 많다. 부록 권1에는 방손 김시찬(金是瓚)이 지은 가장, 한치응(韓致應)이 지은 행장, 김조순(金祖淳)이 지은 시장, 박성(朴惺)이 지은 묘지,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고, 권2에는 만사, 제문, 사문증유, 동문증답, 제가척언, 청작시소, 예조회계 등이 실려 있다.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선원유고(仙源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火)를 겪는 동안 많이 산일(散佚)되어 남아 있는 것이 유고(遺稿) 2권뿐이었다. 1640년에 아들 김광환(金光煥)과 김광현(金光炫)이 이를 수집하여 상(上)ㆍ하(下) 2권으로 편차하고 보유(補遺)로 <기몽설(記夢說)>을 넣은 뒤 신익성(申翊聖)의 서(序)와 김상헌(金尙憲)의 신도비명, <제식유훈(祭式遺訓)>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시(詩) 가운데는 <몽곤아(夢坤兒)> 등 망아(亡兒) 곤(坤)을 그리며 지은 시가 다수이며, <원성우사춘첩자(原城寓舍春帖子)> 등 원주(原州)에 우거하면서 지은 시도 많다. 칠언절구 <차조생운(次趙生韻)> 이하 10여 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검찰사(檢察使) 김찬(金瓚)의 막하에 있으면서 지은 시들이다. 또 <산해관봉귀인(山海關逢歸人)>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시 등 1598년 성절사(聖節使)로서 중국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와 송시(送詩)와 만시(挽詩) 등이 있다. 잡저에는 교서(敎書), 애사(哀辭), 명(銘), 제문(祭文), 묘명(墓銘), 서(序) 등이 편차되어 있다. 속고(續稿)는 1753년에 간행되었다.
▶김상일(金相日, 1756~1822) | 일엄유고(一广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엄(一广)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의 원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아들 숙(肅/心)은 저자의 묘갈문(墓碣文)을 직접 찬(撰)하고 저자가 성현서(聖賢書)와 성리등편(性理等篇)에서 요의(要義)를 취하고 의견을 더하여 지은 ≪문견록(聞見錄)≫과 평소에 지은 시문(詩文)을 합하여 이를 ≪농수일득(聾叟一得)≫ 4책으로 엮었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이후 손자 재직(在直)이 1852년 무렵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煕)에게 산정(刪定)을 받아 3권 2책으로 편차한 뒤 ≪일엄유고(一广遺稿)≫란 이름을 붙이고 아들 숙의 유고 ≪소안재유고(小安齋遺稿)≫를 더하여 1853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本集)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일부 글에는 편찬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교감기(校勘記)가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3은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잠(箴), 명(銘), 제문(祭文), 잡저(雜著)이다. 권미(卷尾)에는 송내희가 1852년 손자 재직에게 보낸 편지를 절록(節錄)한 형식의 발(跋)과 재직이 185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김상정(金相定, 1722~1788) | 석당유고(石堂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 1722~17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기응(箕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재직 중이던 1804년 예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서는 6권 3책인데, 권1~3은 문(文), 권4~6은 시(詩)로 구성되어 있다. 권1 머리에 문(文)의 목록이, 권4의 머리에 시(詩)의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문 86편이 문체에 관계없이 실려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권3 끝에 편차된 <원학(原學)>, <예원(禮原)>, <예통(禮統)> 3편인데, 저자의 대표작으로 특별히 언급한 저작이다. 제문은 의성 현령 때 지은 기우제문(祈雨祭文) 2편이 실려 있다. 전(傳)은 품팔이해 먹기도 힘들 정도로 곤궁해지자 스스로 굶어 죽은 종에 대한 것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김만수(金萬壽)에 대한 열전이다. 권4~6은 시(詩)이다. 유한준(兪漢雋)은 본집 서문에서 시가 차분하고 우아하면서도 건실하여 정경(情境)이 서로 어울리고 내용과 표현이 균형감이 있어 중도에서 치우치지 않았다고 극찬하였다. 마지막에 유한준의 서(序)와 저자의 아들 기응의 지(識)가 실려 있다.
▶김상진(金相進, 1736~1811) | 탁계집(濯溪集) | 권책
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탁계(濯溪) 김상진(金相進, 1736~1811)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제 상소(相韶)와 문인(門人) 이원숙(李元肅)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을, 손자 직신(直信)이 교수하여 저자의 문인들의 협조를 받아 1828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과 범례(凡例)가 있고, 책별로 묶은 목록이 있다. 권5~7은 잡저로, 허벅다리 살을 베어 부모의 병간호를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님을 주장한 <규고설(刲股說)>이다. 권10은 유사(遺事), 전(傳), 시(詩)이다. <상원일화이명구삼백시(上元日和李鳴九三白詩)>는 달[月], 눈[雪], 머리[頭]의 삼백(三白)을 소재로 1797년에 지은 장시인데, 모두 109개의 ‘백(白)’ 자가 나타나 있다. 저자는 1799년 이후로 줄곧 병마에 시달렸는데 1802년에 지은 <병중감회(病中感懷)>에서는 평생의 학문은 정주(程朱)만을 흠모하여 국가를 위해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고자 하였으나 오활한 유학자밖에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였다. 권미에 손자 직신이 1828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상채(金尙彩, 1710~?) | 창암집(蒼巖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암(蒼巖) 김상채(金尙彩, 1710~?)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손자 종식(宗軾)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장혼(張混)의 협조(協助)를 받아 1816년 이이엄자(而已广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아들 제량(濟良)의 ≪삼성재유고(三省齋遺稿)≫가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3권 1책이다. 권수(卷首)에는 조종영(趙鍾永)이 1816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다. 권1~2는 사언(四言), 절구(絶句), 율시(律詩), 고시(古詩)이다. 그중에서 사언 <팔잠(八箴)>은 저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인간의 덕목을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禮義廉恥) 8항목으로 나누어 운문 형식으로 기술한 것이고,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술계자질시(述誡子姪詩)>는 저자 가문의 자제 3인이 관직을 얻자 이를 기념하고 자질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행장(行狀), 잡저(雜著)이다. 권말(卷末)에 손자 종식이 1816년에 지은 제(題), 장혼의 후서(後敍), 조인영(趙寅永)이 1816년에 지은 서후(書後)가 수록되어 있다.
▶김상헌(金尙憲, 1570~1652) | 청음집(淸陰集) | 권책
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문집이다. 1645년 이후 지은 작품들을 차례로 정리하여 자신의 시문을 스스로 산정(刪定), 자편(自編)하였다. 이에 본집은 저자 사후 바로 간행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이나, 본집의 간행 사실을 알려주는 서발이 없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1653년경 아들 김광찬(金光燦)이 주도하여 간행을 시작, 40권 16책의 목판으로 이듬해쯤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간을 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었지만, 김수항(金壽恒)과 김수흥(金壽興)이 유배되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 하에서, 단지 연보만 1767년에 저자의 현손 김용겸(金用謙)이 김상용(金尙容)의 7대손인 경상 감사 김응순(金應淳)과 함께 간행하였다. 본집은 40권 16책이다. 권9는 <조천록(朝天錄)>으로, 1626년 성절겸사은진주사(聖節兼謝恩陳奏使)로 북경에 다녀올 때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으로, 모문용(毛文龍)이 우리나라를 무날(誣捏)한 사정을 진달하기 위하여 예부(禮部)와 병부(兵部)에 올린 정문(呈文), 정묘호란의 소식을 듣고 청병(請兵)하기 위하여 병부(兵部)에 올린 정문(呈文) 등이 있다.
▶김서일(金瑞一, 1694~1780) | 전긍재집(戰兢齋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전긍재(戰兢齋) 김서일(金瑞一, 1694~178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중일(重鎰)이 1868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유주목(柳疇睦)이 1868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대부분이 만시(輓詩)이다. 권2는 서(書)로서, 병산, 풍산, 호계의 사림에게 문집 간행, 효자 선양, 선현 배향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편지, 관찰사 김화진(金華鎭), 이은(李溵), 부사 이창운(李昌運) 등에게 인사를 전하는 편지, 족제 김서구(金敍九)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편지 등이 있다. 권3은 기(記), 발(跋), 묘지명, 뇌사, 상량문, 제문이다. 그중에서 <이대윤효행실기(李大胤孝行實記)>는 저자의 벗 이존중(李存中)의 아들 이대윤(李大胤)의 효행을 기록한 글이고, <근제정훈록후(謹題庭訓錄後)>는 1714년에 지은 것으로 저자의 선조 대현(大賢)이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직할 때에 아들 연조(延祖)에게 전해준 교훈을 읽고 쓴 글이다. 권4는 부록으로 김민원(金敏源)이 지은 가장을 비롯하여 행장, 묘갈명, 만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김석주(金錫胄, 1634~1684) | 식암유고(息庵遺稿)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식암(息庵) 김석주(金錫胄, 1634~16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1685년~1689년 사이 편차(編次)가 이루어졌고 곧 교서관인서체자(校書館印書體字)로 인행(印行)되었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23권과 보유(補遺), 별고(別稿) 2권으로 모두 1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賦) 가운데 <서기부(鼠機賦)>는 부귀영화를 탐하다 주벌(誅罰)을 당하는 벼슬살이를, 미끼를 탐하다 덫에 걸린 쥐에 비유한 내용이다. 시(詩)는 만시(挽詩), 차운시(次韻詩), 증시(贈詩), 송별시(送別詩), 동래 부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시 등 내용이 다양하다. 서(序) 중에 <해동사부서(海東辭賦序)>는 저자가 우리나라 사부(辭賦) 57편을 뽑아 엮고 지은 것이다. 전(傳)으로 <곽장군전(郭將軍傳)>이 있는데, 이는 곽재우(郭再祐)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활약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잡저(雜著) 중에서 <의훈(醫訓)>은 수척한 몸을 걱정하는 이에게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으로 살찌우라는 의원의 충고를 적은 것이고, <답사문(答士問)>은 진정한 선비의 기풍(氣風)에 대해 논한 글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김성구(金聲久, 1641~1707) | 팔오헌집(八吾軒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1641~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진동(鎭東)이 김희삼(金希參), 김우옹(金宇顒) 등 의성 김씨 일문 20여 명의 문헌을 수집 편차하고, 그 후 6대손 승지 우수(禹銖)가 안동 사림의 도움을 받아 1873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세계도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제주에서 지은 것이 많으며, 시체 구분 없이 실렸다. 작품에는 제주에서 가르친 세 명의 제자에게 성취하길 바라며 준 <증별삼동자(贈別三童子)>, 이봉징(李鳳徵)ㆍ현일(玄逸) 등을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3은 소(疏), 계사, 연주, 경연강의, 장(狀)으로 1678년에 수찬으로서 재해를 만나 수성하는 도리 등을 논하여 올린 <청응천미재소(請應天弭災疏)> 등이 있다. 권4는 서(書), 명, 제문, 행장, 잡저이고 권5~6은 남천록(南遷錄)으로, 정의 현감으로 좌천되어 가는 과정에서부터 부임 후의 일들을 일기체로 담았다. 권7은 부록으로 행장, 서비음후, 묘지명, 사제문, 만사 등이고 권말에는 1873년에 외예 권연하(權璉夏)가 지은 발과 6대손 우수가 지은 지가 있다.
▶김성일(金誠一, 1538~1593) | 학봉집(鶴峯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 수집, 편차된 것은 여강서원(廬江書院)의 산장(山長) 이홍조(李弘祚), 종손(從孫) 김시온(金是榲) 등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산일되고 남은 가장(家藏) 수록본(手錄本)과 1642년 저자의 사위 김영조(金榮祖) 등이 간행한 ≪해사록(海槎錄)≫ 등을 수집, 편차하여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만들어 1649년 여강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중간(重刊)은 원집과 속집 판본의 완결(刓缺)이 심해지면서 10대손 김진구(金鎭龜), 김진화(金鎭華) 등에 의해 도모되었다. 이들은 1847년부터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과 함께 문집을 재편, 교정하였는데, 고이(考異)와 두표(頭標)를 붙이고 속집에는 습유(拾遺)를 더하고 원집의 형태대로 호당삭제(湖堂朔製) 등으로 재편하여 원집을 7권 4책, 속집을 5권 3책으로 만들었다. 본집은 원집 7권, 속집 5권, 부록 4권 합 1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2의 시문은 저자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김성탁(金聖鐸, 1684~1747) | 제산집(霽山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의 문집이다. 아들 김낙행(金樂行)이 유문을 수습하고 정리하였으나 정사도 하기 전에 졸하였다. 이후 조카 김도행(金道行)의 주도 아래, 1780년 저자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유관현(柳觀鉉)의 아들 유도원(柳道源), 유장원(柳長源) 등의 편차와 교정을 거쳐 16권 8책으로 만들어졌지만, 문집의 간행은 1795년 손자 김시전(金始全)의 호소와 채제공(蔡濟恭)의 협조로 저자의 신원과 복관이 행해진 1801년에야 재용을 마련하여 아들 김낙행의 문집과 함께 목판으로 간행되어 반질한 후 목판은 세거지인 안동 경산재(景山齋)에 보관되었다. 1881년 경산재의 화재로 책판이 소실되자 1893년 후손과 영남의 사람들이 원집 18권 9책, 부록 1책, 합 10책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16권, 연보, 부록 합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목록이 달려 있고 서발은 없다. 별책엔 연보와 부록이 있다. 연보는 숙종 10년 저자가 태어난 해부터 순조 30년 개장 때까지의 기록이다. 부록은 종자 김도행(金道行)이 기록한 유사, 채제공이 지은 묘갈명, 권덕수(權德秀) 등이 지은 제문과 만사 등이다.
▶김세렴(金世濂, 1593~1646) | 동명집(東溟集) | 권책
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아들 김필상(金弼相)과 김준상(金儁相)이 수집ㆍ편차하였고, 문인이자 처조카인 유형원(柳馨遠)이 허목(許穆)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 후 증손 김일기(金一基)가 김필상이 편차한 10권 6책에다 부록 1책을 증보하고 허목의 서문과 자신의 발문을 붙여서 1737년에 흙을 주조한 활자인 토자(土字)로 인행하였다. 시는 약 8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유배지의 쓸쓸한 감회를 서술한 작품, 현풍 현감으로 좌천된 시기의 작품 등 서정시가 많고, 서경시(敍景詩)ㆍ의고시(擬古詩) 등도 있다. 권4의<사상록(槎上錄)>은 1636년 일본에 통신 부사로 갔던 시기의 작품집이다. 잡저 중에<거관잡기(居官雜記)>는 목민관의 임무에 대한 선유(先儒)의 격언 30여 개를 조목별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 소차와 계사, 장계는 문체에 따라 연도별로 배열되어 있는데, 북방 지역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유민의 방지, 경비의 강화를 위한 강병책을 적극 주장한 글도 있다. 향약의 실천 강령과 의사 결정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은 다른 읍에까지 시행하도록 왕명이 내려지기도 한 자료이다.
▶김세필(金世弼, 1473~1533) | 십청집(十淸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의 문집이다. 1627년 이식(李植)이 충주 목사(忠州牧使)로 나갔을 때, 저자가 향사(享祀)된 검암서원(劍巖書院)을 참배하고, 증손 김인룡(金仁龍)의 집에서 유고 1책을 얻어 교정ㆍ편집하여 ≪십청선생유고(十淸先生遺稿)≫ 1책을 정고(定稿)하고, 1629년 자신의 서문을 붙여 후손가에 전하게 하였다. 그 후 1748년 7세손 김광악(金光岳)이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신도비명 등 부록 문자를 합하고 민우수(閔遇洙)에게 발을 얻어 4권 2책을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하였다. 권1~3은 본집으로 각 체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연행록(燕行錄)≫ 및 ≪관동록(關東錄)≫ 등에서 발췌한 것도 있다. 산문은 서(序)ㆍ설(說)ㆍ명(銘)ㆍ묘표(墓表)ㆍ행장(行狀) 순으로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趙光祖)를 사사(賜死)하자, 임금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장배(杖配)되었고, 이후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후진을 교육한 저자의 여러 작품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김수온(金守溫, 1409~1481) | 식우집(拭疣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김정상(金正相)
-조선 초기 식우(拭疣)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성종(成宗)의 명으로 교서관(校書館)에서 인행(印行)되었으나 화재로 전질(全帙)이 거의 없어지고, 권2, 권4만 낙질본(落帙本)으로 전하였다. 그 후 1673년 14대손 김우준(金禹濬)이 ≪속동문선(續東文選)≫ㆍ≪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가장(家狀) 등에서 모은 저자의 시문을 필사하여 낙질본과 함께 1책으로 엮었다. 권2에는 기(記) 35편이 실려 있고 <동인시화서(東人詩話序)>는 필사(筆寫)로 추기(追記)되어 있다. 기는 대부분 절이나 누각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세조대의 고승인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의 동생인 관계로 회암사(檜巖寺)ㆍ상원사(上元寺)ㆍ정인사(正因寺) 중창기(重創記) 등 사찰 관계 기록이 많다. 권4에는 부(賦) 2편과 시 200여 제가 실려 있다. 특히 1456년 명나라 사신 진감(陳鑑)을 맞이하며 지은 <희청부(喜晴賦)>로 명나라에까지 명성이 널리 퍼져 김희청(金喜晴)이라 불렸다 한다. 보유에는 시ㆍ문이 각체별(各體別)로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14대손 김우준의 경제식우집후(敬題拭疣集後)가 실려 있다.
▶김수인(金守訒, 1563~1626) | 구봉집(九峯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봉(九峯) 김수인(金守訒, 1563~1626)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김지립(金志立)과 8대손 김명규(金命奎)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6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30년에 지은 정규석(鄭奎錫)의 서문, 1854년에 지은 조두순(趙斗淳), 이정관(李正觀)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소(疏), 서(書), 잡저가 실려 있고, 권2에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箴)이 실려 있다. 잡저 중에서 <난중잡록(亂中雜錄)>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며, <반중회유문(泮中回諭文)>은 영창대군의 옥사 등 인륜이 무너지는 망극한 일에 대해 성균관의 여러 유생들에게 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할 것을 권유한 글이다. 권3은 부록으로 유장원(柳長源)이 지은 행록(行錄)을 비롯하여 행장,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만사(輓詞), 제문(祭文), 지구(知舊)들 간의 왕복서(往復書)가 실려 있고, 권미에는 1850년에 지은 유진익(柳進翼)의 발문과 1866년에 지은 7세손 김지립의 후지(後識)가 있다.
▶김수증(金壽增, 1624~1701) | 곡운집(谷雲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가장유고(家藏遺稿)를 바탕으로 김창흡(金昌翕)이 시문을 편차 정리하고, 저자의 외증손인 이의현(李宜顯)의 도움을 받아 1711년 목판으로 6권 3책을 간행하였다. 권1~2는 시로 약 540여 수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저자의 동생 및 조카나 사위 등과 수창한 시이다. 내용은 산수를 유람하며 읊은 것이 많은데, 연작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권3~4는 31편의 기문(記文)이다. 내용상 가기(家記)와 유기(遊記)로 나뉜다. 가기는 조부 김상헌(金尙憲)에 대한 유사가 많으며, 선조의 묘갈에 대한 통문(通文)과 의논 등이 있다. 유기는 <유희령산기(遊戱靈山記)>를 비롯해 금강산을 유람한 <유풍악기(遊楓岳記)>까지 모두 날짜별로 일정과 감상을 자세히 적었다. 그밖에 서(書)와 제문, 장지(狀誌)와 잡문이 있는데, 잡문 중 <김승경사실(金勝京事實)>은 병자호란 때 피랍된 김승경이란 자가 여진과 몽고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그곳의 풍속, 지리, 목축 등 생활상이 소개된 글이다. 성리학에 심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리학 관계 논저를 남기지는 않은 점이 특이하다.
▶김수항(金壽恒, 1629~1689) | 문곡집(文谷集) | 권책
수 : 13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이 유고(遺稿) 가운데 시(詩) 1030수, 문(文) 477편을 뽑아 정리하여, 28권으로 편차하였고, 저자 사후 10년이 되는 1699년에 김창집이 운각활자(芸閣活字)를 빌려 28권 13책을 인행(印行)하였다. 시로는 16세 때 이소한(李昭漢)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상으로 필묵(筆墨)까지 받은 문현주이공소한(聞玄洲李公昭漢)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시와 그 다음 해에 지어 태학사(太學士) 택당(澤堂) 이식(李植)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오호도조전횡(嗚呼島弔田橫)>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하거나 유배 가서 지은 시와 조부 김상헌(金尙憲), 형 김수증(金壽增)과 김수흥(金壽興), 아들 김창흡(金昌翕)ㆍ김창협 등과 차운한 시와 여러 사람에 대한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소차(疏箚)는 관직 제수를 사양하는 상소가 가장 많고, 갑인예송과 경신환국 등 당시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진정(陳情)한 내용이 많다. 서독(書牘)으로는 문우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형과 사위 등에게 사사(賜死)에 앞서 고결(告訣)하는 내용의 편지 등이 있다.
▶김수흥(金壽興, 1626~1690) | 퇴우당집(退憂堂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 1626~1690)의 문집이다. 김상헌(金尙憲)의 손자로 기사환국 때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적소에서 졸하였으며, 이단상(李端相), 신정(申晸), 박세채(朴世采) 등과 교유하였다. 사위 이희조(李喜朝)는 시문 유초(遺草)를 습(收拾), 편차(編次)하는 과정에서 산정에 잘못이 있을까 염려하여 되도록 많은 시문을 싣고자 하였으나 종자 김창흡(金昌翕) 및 아들 김창열(金昌說)은 간략한 쪽을 따르고자 하였다. 이렇게 산정된 유고는 1710년 임피 현령으로 재직 중인 저자의 아들 김창열에게 보내졌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선사(繕寫), 교정(校正)의 최종 단계를 거치게 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김창열이 물력을 대어 10권 5책이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쇄되었다. 문집은 10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권마다 앞부분에 권목록이 있다. 권3~6은 소차(疏箚)로, 1661년 올린 <진시폐소(陳時弊疏)>는 15조목을 아뢰는 장문의 상소이다. 권7은 계(啓)로, <염문별단서계(廉問別單書啓)>에는 17조목의 구체적인 개혁 의견이 들어 있다. 권미에는 사위 이희조(李喜朝)가 1710년에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김숭겸(金崇謙, 1682~1700) |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복암(觀復菴) 김숭겸(金崇謙, 1682~170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한두 사우(士友)가 남은 원고를 수습하여 인행하려 하자 부친 김창협은 동생 김창흡에게 시고의 산절을 맡겨 300수 정도로 만들도록 하고 서문도 짓게 하였다. 김창협이 1708년에 졸하자 1709년 그의 문집인 ≪농암집≫을 인행하였는데, 이 인행을 마치고 나서 저자의 시고도 함께 인행하였다. 시고는 13세 때 지은 <설월(雪月)>을 시작으로 19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가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부친을 모시고 영평(永平) 농암(農巖), 양주(楊州) 석실서원(石室書院), 미호(渼湖), 삼각산(三角山), 도봉서원(道峯書院), 강도(江都), 송도(松都), 백운산(白雲山), 삼주(三洲) 등에서 강학하며 지내거나 다녀올 때 지은 것이 대부분이고, 숙부나 종형(從兄), 친구 등과의 차운시가 다수 실려 있다. 저자의 시에는 곤궁하고 외로운 심정을 읊은 것이 많고, 조야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심정을 담은 것도 많다. 부친 김창협은 그가 지은 묘표에서 아들의 시풍이 뛰어나고 노련하다고 칭찬하면서 보는 이마다 놀라 감탄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시관(金時觀, 1677~1740) | 절곡집(節谷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절곡(節谷) 김시관(金時觀, 1677~174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언근(彥根)이 수집ㆍ편차하여 1865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병학(金炳學)이 1865년에 쓴 서문과 총목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대체로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주로 친족과 친우 간에 수창한 시, 감흥시들이 많다. 만시는 각 시체의 맨 끝에 별도로 묶어 놓았다. 권2는 서(書)로, 스승인 김창협, 김창흡, 김창집과 주고받은 것, 이재의 문인인 신이의(愼爾儀)와 임성주(任聖周)에게 쓴 것, 족질인 김원행(金元行)에게 쓴 것 등이다. 내용은 주로 학문적인 의견을 문답한 것이다.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발, 잡저이다. 서(書)는 모두 김득성(金得性)에게 보낸 것인데, 주로 예설과 경서 중의 의문처에 대한 질의응답을 한 내용이다. 잡저에는 <오륜설(五倫說)>, 친구 윤득휴(尹得休)의 동생에게 ‘여각(汝覺)’의 자(字)를 지어주게 된 경위와 뜻을 설명한 <윤득상자설(尹得相字說)> 등이 있다. 권4는 제문, 행장, 부록이고 권말에 족손 김세균(金世均)이 1865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시민(金時敏, 1681~1747) | 동포집(東圃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동포거사(東圃居士)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면행(勉行)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57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윤봉조(尹鳳朝)와 한계진(韓啓震)이 각각 1754년과 1751년에 쓴 서문과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6은 시(詩), 정시(程詩)이다. 저자의 시에는 강호(江湖), 산림(山林), 사시(四時)의 의취로부터 어조(魚鳥)의 부침(浮沈), 운연(雲煙)의 변화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주로 홍세태(洪世泰), 이병연(李秉淵)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권7은 서독, 잡저이다. 서독의 <상삼연(上三淵)>은 1715년 김창흡에게 부탁한 부친의 묘표를 받아 읽은 뒤에 보낸 답서로, 뒤에 제례(祭禮)에 관한 문목이 붙어 있다. 권8은 제문, 가승이다. 가승은 부친 김성후(金盛後), 모친 임천 조씨(林川趙氏), 종형인 김시서(金時敍) 등에 대한 행장, 유사, 묘지 등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지명, 묘갈명, 묘표, 만사가 실려 있고, 권말에는 신경(申暻)이 1757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시보(金時保, 1658~1734) | 모주집(茅洲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모주(茅洲) 김시보(金時保, 1658~173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이복(履復) 등이 김창협의 증손 김이안(金履安)과 상증하여 마무리한 뒤 이민보(李敏輔)에게 서문을 받고 안의 현감으로 있던 증손 재순(在淳)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1790년에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민보(李敏輔)가 1790년에 지은 서(序)가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8은 시이고, 권8에 부(賦)가 다섯 편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저자는 풍아에서 한(漢)ㆍ당(唐)ㆍ송(宋) 명가의 시까지 두루 섭렵하였고 김창흡의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부 가운데 <나곡부(蘿谷賦)>는 1723년에 사사된 이건명(李健命)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권9는 서(書), 서(序), 기(記), 제(題), 발이다. 편지는 시사에 관련된 것과 정호에게 천명지성(天命之性)과 솔성지도(率性之道) 등에 관해 질의한 것 등이 있다. 권10은 묘지명, 행장, 제문, 애사이고 부록에는 족제 신겸(信謙)이 1734년에 지은 제문, 권말에 손자 이복이 1790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시빈(金始鑌, 1684~1729) | 백남집(白南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백남(白南) 김시빈(金始鑌, 1684~1729)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증손 귀환(龜煥)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종현손 기헌(騏獻)과 종5대손 진하(鎭河)가 내용을 증보하고 김종휴(金宗烋)ㆍ이종상(李鍾祥)과 교감ㆍ재편하여 185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시체의 구분이 없고 권1의 남향록(南鄕錄), 서유록(西遊錄), 교거록(僑居錄), 권2의 관동록(關東錄), 호서록(湖西錄), 호남록(湖南錄), 권3의 북관록(北關錄)이 시록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만시와 <속몽중구(續夢中句)>가 실려 있다. 권4는 소(疏), 계(啓), 서(書)이다. 그중에서 경상도 선비들과 연명으로 올린 <진신소(縉紳疏)>는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에 관련자들을 명확히 처벌하여 영남인을 모두 역당으로 만들려는 설에 대해 무고함을 밝혀 줄 것을 청한 것이다. 권5는 정문, 잡저, 서(序), 전(箋), 제문 등이고 권6은 부록이다. 권말에는 정홍경(鄭鴻慶)이 1828년에 쓴 발문, 이종상의 발문, 종5대손 진하와 종현손 기헌이 1858년에 쓴 발문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 | 매월당집(梅月堂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일본 봉좌문고
-조선 초기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문집이다. 1583년(선조16)에 선조가 운각(芸閣)에 명하여 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시집 15권ㆍ문집 8권 총 23권 9책으로 되어 있다. 시집 권1~8에는 주제나 제재 혹은 문체별로 묶어 소제목을 달아 편차하였는데, 고풍(古風)ㆍ기행ㆍ궁전ㆍ즉경(卽景)ㆍ선도(仙道)ㆍ석노(釋老)ㆍ동식물ㆍ송별ㆍ질병ㆍ의약ㆍ악장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권9~14에는 청년 시절 울분을 달래기 위해 천하를 유람하며 지은 <유관서록(遊關西錄)>, <유관동록(遊關東錄)>, <유호남록(遊湖南錄)>, <유금오록(遊金鰲錄)> 등이 있다. 권15에는 부(賦)와 잡체시가 실려 있다. 권16 이하는 문집으로, 잡저에는 천형(天形)ㆍ북신(北辰)ㆍ복기(腹氣)ㆍ용호(龍虎)ㆍ귀신(鬼神)ㆍ미재(弭災)ㆍ상장(喪葬) 등 주로 도가(道家)에 대한 논문이 실려 있고, 논(論), 설(說), 의(義) 등이 있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유불(儒佛)을 아우른 그의 사상과 문학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김시온(金是榲, 1598~1669) | 표은집(瓢隱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손자 태중(台重)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권두경(權斗經)과 이재(李栽) 등의 교정을 거친 후, 1735년 이후 현손 도행(道行)이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두에 이현일(李玄逸)이 쓴 서문과 목록(墓誌)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문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언율(五言律) 중에서 <몽등관어대(夢登觀魚臺)>는 1669년 저자가 작고하기 며칠 전 꾼 꿈의 내용을 읊은 것으로 저자의 기상을 알 수가 있다. 권2는 서(書)로, 김응조(金應祖), 이홍조(李弘祚), 이조영(李朝英), 김시종(金時宗), 이복(李馥) 등과 주고받은 것이다. 권3은 서(書), 제문(祭文), 묘지(墓誌)이다. 서(書)는 대부분 자손들과 주고받은 것이고 묘지(墓誌)는 종조고 김씨(金氏), 숙부 김용(金涌)과 정부인 이씨(貞夫人李氏)의 합장에 대한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 제문, 이보(李簠)가 1703년에 지은 <와룡초당기(臥龍草堂記)>, 조덕린(趙德鄰)이 1732년에 지은 <유사후서(遺事後敍)>가 실려 있다.
▶김시탁(金時鐸, 1713~1751) | 이호유고(梨湖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호(梨湖) 김시탁(金時鐸, 1713~175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허증(許增) 등의 문인들이 언행록을 작성하고 박성원(朴聖源)에게 행장을, 김원행(金元行)에게 묘갈명을 위촉하여 유적을 수집ㆍ편차하여 1771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1책이다. 권수에는 이의철(李宜哲)이 1771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그중 이재에게 보낸 것이 16편으로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작성 시기는 1736~1743년이며 심설(心說), 의례, 경서 구절의 해석, 과거와 학문의 모순, 개성에서의 강학 활동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권2는 잡저이다. <참전지결(參前旨訣)>은 규모(規模), 계제(階梯) 등의 주제로 경훈(經訓) 중에서 요어(要語)를 취하여 엮은 것이며, <인론(人論)>은 유학적 관점에서 인간됨의 의미와 근거에 대해 논구한 것이다. <천상일기(泉上日記)>는 1732년, 1734년, 1736년, 1740년 한천(寒泉)의 이재 문하에서 수학할 때 받았던 가르침을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다. 말미에 찬정(纂定)의 동기와 원칙을 기술한 허증의 발(跋)이 있다.
▶김신겸(金信謙, 1693~1738) | 증소집(橧巢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증소(橧巢) 김신겸(金信謙, 1693~1738)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으로, 1856년경 저자의 현손 정근이 화재로 불타버리고 남은 가장유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유문을 추가로 수집하여 5대손 병우의 협조 하에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총목이나 서발문은 없으며 권별로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1708년부터 만년까지의 작품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등주록(登州錄), 호유록(湖遊錄), 해유록(海遊錄) 등의 시록을 포함하여 지인이나 친척들과 각지를 유람하며 수창한 시편들이 대다수이다. 권7은 서(書), 제문이다. 서는 유숙기(兪肅基), 민우수(閔遇洙), 이희지(李喜之) 등에게 보낸 것과 1729년에 지은 아들 양행(亮行)의 혼서(婚書)가 수록되어 있다. 권9는 발(跋), 행장, 애사이고 권10은 묘지, 묘표, 유사이다. 유사에는 백부 김창집, 중부 김창협, 부친 김창업에 대한 것과 1722년 거제(巨濟)에서 압송되는 도중에 성주(星州)에서 사사된 김창집의 임종 때의 상황을 기록한 <성산유사(星山遺事)>가 수록되어 있다.
▶김안국(金安國, 1478~1543) | 모재집(慕齋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허충길(許忠吉)이 영천(榮川) 군수로 부임하여 1574년(선조7) 영천에서 판각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박세채(朴世采)가 초간본을 증보ㆍ재편하고 1687년 현령(縣令) 김구(金構)가 용강(龍岡)에서 15권 7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크게 벼슬살이 할 때, 물러나 거할 때, 다시 복직되었을 때 등 세 시기로 구분되어 시체의 구분없이 편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1517년 경상도 관찰사 재임 중 도내(道內)의 주현(州縣) 학교 강당에 걸어 놓게 한 권학시(勸學詩) 60여 제를 포함하여 일본 사신과 수창한 시, 명승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 등이 있다. 문(文) 가운데 <청견자제입학주(請遣子弟入學奏)>는 조선 학생이 명나라에 유학 갈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를 요구한 글이고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기문(記文)과 송서(送序), 문집의 서문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부록으로는 선생의 행장 및 이언적(李彥迪)ㆍ성제원(成悌元)ㆍ이문건(李文楗) 등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
▶김안로(金安老, 1481~1537) | 희락당고(希樂堂稿)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김일근(金一根)
-조선 초기 희락당(希樂堂)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이른바 ‘정유삼흉(丁酉三兇)’의 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간행되지 못하고 저자의 후손가에 비장(秘藏)된 채 세전(世傳)되어 왔다. 근래에 김일근(金一根) 교수가 후손가에서 이 비장된 고본(稿本)을 입수하여 저자의 부친인 김흔(金訢)의 ≪희락당집(顔樂堂集)≫ 필사본과 함께 해제를 붙여서, 1974년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2책으로 합본 영인하였다. 본 문집은 8권 6책으로 되어 있고, 권1~4는 시, 권5~8은 문이다. 시에는 구(句)마다 단어의 전거 혹은 인용된 고사(故事)의 출처를 밝힌 저자의 소주가 붙어 있으며, 각체(各體)의 시가 창작 배경별로 실려 있다. <구금언(九禽言)>은 새소리를 취하여 그 뜻을 부연한 금언체(禽言體)의 시이다. 권8은 잡저로서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이다. 1525년(중종20) 경기도 용천(龍泉)에 유배되어 있을 때 배소(配所)에서의 근심을 풀고 적막함을 달래기 위하여 지은 일종의 필기류(筆記類)로서 대략 40측(則)이다. 이것은 ≪대동야승(大東野乘)≫ 권13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글자의 이동(異同)과 오자가 많다.
▶김안절(金安節, 1564~1632) | 낙애유고(洛涯遺稿)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낙애(洛涯) 김안절(金安節, 1564~1632)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김인준(金仁俊)이 종가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한 후, 인준(仁俊)의 아들 제묵(濟默)이 7대손 익현(益顯)과 다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01년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권, 부록(附錄)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유한준(兪漢雋)이 지은 서문이 있으며, 목록은 권별로 실려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인데, 그중에서 <술회봉정인리제군자(述懷奉呈仁里諸君子)>는 임진왜란 때의 참혹한 상황, 모친을 모시고 온계(溫溪)로 피란한 일, 나랏일에 대한 걱정 등을 나타낸 부(賦)이며, <연악연구(淵嶽聯句)>는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김원진(金遠振), 김지복(金知復) 등 11명과 모여 읊은 연구이다. 권2는 서(序), 제문(祭文), 행장(行狀), 잡저(雜著)이다. 부록은 사실(雜著), 김도(金濤)가 지은 행장, 신석번(申碩蕃)이 지은 묘표, <화암서원사적(花巖書院事蹟)>이고, 권말에는 1801년에 6세손 김제묵(金濟默)이 지은 발문과 김근순(金近淳)이 지은 제후(題後)가 수록되어 있다.
▶김약련(金若鍊, 1730~1802) | 두암집(斗庵集) | 권책
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두암(斗庵) 김약련(金若鍊, 1730~18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낙재(樂在)가 수집ㆍ편차하여 황용한(黃龍漢)ㆍ유치명(柳致明) 등의 교감을 거쳐 사림의 협조(協助)를 받아 1836년 영주(榮州) 두암본가(斗庵本家)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836년 유치명이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4~5는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전(傳)이다. 그중에서 제 새끼만 챙기고 어미를 돌보지 않는 닭을 보고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계설(人雞說)>, 시장에서 담배를 사다가 쟁리(爭利)와 무욕(無慾)에서 현불현(賢不賢)이 갈라짐을 깨달은 <매초설(買草說)> 등 흥미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은 대부분 효부(孝婦) 열녀전(烈女傳)으로, 미천하고 가난한 여자임에도 어렵게 정절을 지킨 일반 백성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특이한 것은 닭과 개를 주인공으로 해서 충의(忠義)라는 인간적 가치를 실현한 동물 이야기를 전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권말에 1836년 문집간행의 전말을 자세히 기술한 박시원(朴時源)의 발문이 있다.
▶김양근(金養根, 1734~1799) | 동야집(東埜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 도균(度均)과 하균(夏均)에 의해 정리 편차한 뒤 1841년에 김이양(金履陽)에게 서문을 받고, 1845년에는 홍직필(洪直弼)에게 서문을 받고 강태중(姜泰重)의 교정과 발문을 받아 활자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14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홍직필이 1845년에 지은 서, 김이양이 1841년에 지은 서와 총목이 있다. 목록은 권1ㆍ2, 권3ㆍ4ㆍ5, 권6ㆍ7, 권8ㆍ9, 권10ㆍ11, 권12ㆍ13ㆍ14로 묶인 각 책 머리에 실려 있다. 권1~4는 부(賦), 시(詩)이다. 시는 시체별로 나누어 편차하였고, 대체로 수사에 치중하기 보다는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였다. 권13은 잡저이다. 문장가들의 말기(末技)인 부(賦)를 짓고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것을 경계하여 양오(養吾)에게 지어 준 <서시양오종(書示養吾從)>과 김상헌(金尙憲)을 제향한 서간사(西磵祠)에 학전(學田)과 장서(藏書)의 구비를 요구하기 위해 김광묵(金光默)에게 올리려던 <위서간사림의상김방백장(爲西磵士林擬上金方伯狀)> 등이 있다. 권미에 강태중(姜泰重)이 1845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여만(金如萬, 1625~1711) | 추담집(秋潭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김여만(金如萬, 1625~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윤재(潤在)ㆍ영재(泳在)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유도헌(柳道獻)의 교감을 거쳐 190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905년에 유도헌(柳道獻)이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로, 편차에 일정한 기준을 두지는 않은 듯하나 자주와 후서가 있는 작품이 많아 작품의 배경과 지어진 시기,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차운시가 대부분이고, <탄김권이간지적(歎金權二諫之謫)>은 1707년에 이잠(李潛)의 옥사와 관련하여 교리 김세흠(金世欽)과 지평 권두기(權斗紀)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사건을 읊은 시이다. 권2는 만시(輓詩)이고, 권3은 서(書)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4는 제문이고, 권5는 행장, 선고, 선비, 재종형 김여옥(金如玉), 망자 하윤(夏鈗)에 대한 묘지, 잡저로 <인인설(人人說)>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이현일(李玄逸)의 아들 이재(李栽)가 지은 행장과 행록 및 행록보유가 수록되어 있고, 만시, 애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김연(金緣, 1487~1544) | 운암일고(雲巖逸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김준식(金俊植)
-조선 시대 운암(雲巖) 김연(金緣, 1487~154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8세손 김영(金瑩)이 채제공(蔡濟恭)에게서 서문을, 정범조(丁範祖)에게서 발문을 받고, 연보와 관계 기록을 수집 편차하여 1783년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2권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 대책, 논(論), 기(記), 소(疏), 전(箋) 등 13편이 있는데, 특히 소(疏)는 성균관 유생들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1519년에 사사(賜死)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권2는 부록으로 행장, 신도비명, 묘지명, 가장, 사제문, 제문, 만사, 별장이 있는데, 행장은 1783년에 정범조가 지은 것이고, 신도비명은 같은 해에 채제공이 지은 것이다. 묘지명은 외손 박성(朴惺)이 지었고, 가장은 아들 김부의(金富儀)가 지었다. 제문은 이언적(李彦迪), 장응정(張應旌)이 지었고, 이언적과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만사가 있다. 별장에는 이자(李耔), 송인수(宋麟壽), 이황(李滉), 성수침(成守琛), 정응두(丁應斗), 성세창(成世昌), 홍섬(洪暹) 등이 저자에게 지어 준 송별시 14제가 실려 있다.
▶김영수(金永壽, 1829~1899) | 하정집(荷亭集) | 권책
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하정(荷亭) 김영수(金永壽, 1829~18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상당히 많았으나 대부분 정리가 안 된 초고 상태의 것이었고, 잃어버린 것이 태반이었다. 저자가 졸한 후 가장초고를 차자 김갑수(金甲洙)가 편차하고, 생질 홍순형(洪淳馨)이 산삭하여 약간 권으로 만들었다. 이를 홍순형에게 보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발문을 쓰게 하여 1916년에 8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6년에 홍순형이 지은 서(序), 윤명섭(尹命燮)이 지은 발(跋)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연광정(練光亭), 부벽루(浮碧樓)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 첩문(帖文)에 붙인 시, <차묘향산사태사운(次妙香山四太史韻)>은 영변 부사로 있을 때 묘향산에 갔다가 심상규(沈象奎), 김이소(金履素) 등의 시첩을 보았었는데 아들이 영변 부사로 간다 하자 그때를 생각하며 화운시를 지은 것이다. 권4는 내제집(內製集)과 외제집(外製集)이다. 내제집은 옥책문, 금책문 등으로 왕실 내부에 관련된 글이다. 외제집은 교서, 치제문으로 신료들에 관한 글이다. 끝에 윤명섭이 지은 발이 있다.
▶김영작(金永爵, 1802~1868) | 소정고(卲亭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정(卲亭) 김영작(金永爵, 1802~186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으로 시고(詩稿) 2권 1책, 문고(文稿) 4권 2책으로 이루어진 전사자(全史字) 인본(印本)이 전하고 있는데, 간행과 관련된 서발문 등의 기록이 없어 명확한 편간 경위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시고의 표제지에 간기(刊記)가 있어 저자의 아들 홍집(弘集)이 1891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시고(詩稿) 2권, 문고(文稿) 4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시고(詩稿)는 편년순으로, 문고(文稿)는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책별(冊別)로 목록이 있다. 시고 권1의 <제이기리척형시권(題李綺里戚兄詩卷)>은 저자의 인척으로 ≪기리총화(綺里叢話)≫를 지은 이현기(李玄綺)의 시권(詩卷)을 읽고 쓴 제시(題詩)로 그의 작품이 이상은(李商隱)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다구시(茶甌詩)>는 역대의 다구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조선의 청화백자(靑華白磁)로 만든 다구를 자세히 묘사한 시이다. 문고 권1은 소(疏), 의(義), 서(書)이다. 문고 말미(末尾)에는 아들 홍집이 지은 묘표(墓表)가 부록(附錄)으로 실려 있다.
▶김영조(金榮祖, 1577~1648) | 망와집(忘窩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망와(忘窩) 김영조(金榮祖, 1577~164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5대손 김행원(金行源)과 종손 김택원(金宅源)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75년 외5대손 이세택(李世澤)의 교감을 거친 후, 19세기 중반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의 추각후쇄본이다. 본집은 목록, 원집 5권,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775년에 이세택이 지은 서가 있다. 권1~2는 시이다. 그 내용은 광해군 때에 은거하여 유유자적하는 심사를 읊은 것에서부터 단성에서 근친하고 형제들과 두류산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 등이 있다. 권3은 시와 서(書)이다. 시는 1629년 북평사로 관북에 갔을 때와 길주 목사 재임 시에 지은 것 등이고 편지는 유진과 주고받은 것이 4편이며 그밖에 아우, 아들, 조카에게 보낸 것이다. 권4는 소, 차, 계사, 전(箋), 제문이고, 권5는 잡저, 기, 묘표, 행장이다. 부록으로는 연보와 행장, 묘갈명, 묘지명과 만사, 제문, 봉안문, 상향축문, 조천송별록(朝天送別錄)이다. 조천송별록은 1633년 세자책봉 주청부사로서 북경에 갈 때 김상용(金尙容), 김상헌(金尙憲) 등이 지어 준 시이다.
▶김영행(金令行, 1673~1745) | 필운고(弼雲稿) | 권책
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필운옹(弼雲翁) 김영행(金令行, 1673~1745)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이건(履健)이 1747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정사본(淨寫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정행(正行)의 ≪송창유고(松牕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시고(詩稿) 4책, 문고(詩稿) 5책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책1~4는 시고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달려 있다. 수록된 시를 보면 실제로 1691년부터 1729년 지평 현감(砥平縣監)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유람시, 계부 시보(時保)의 시에 차운한 것들이 매우 많다. 만년에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들이 많다. 책5~9는 문고이다. 책8~9는 잡저로 정장(呈狀), 서(書)가 포함되어 있다. <서도봉원벽(書道峯院壁)>은 1697년에 지은 것으로 조광조(趙光祖)와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한 도봉서원의 폐단과 그 개혁 방안을 논한 글이고, <정병조장(呈兵曹狀)>은 1717년 서연에서 익위사의 폐단에 대해 진달하였다가 익위사가 대간의 탄핵을 받게 되자 처결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말에 장남 이건이 1747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용(金涌, 1557~1620) | 운천집(雲川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운천(雲川) 김용(金涌, 1557~1620)의 문집이다. 본집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편찬되고 간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1694년(숙종20) 권해(權瑎)의 서문과 조덕린(趙德鄰)의 행장(行狀)에서, 현손 김창석(金昌錫), 김세흠(金世欽), 김세호(金世鎬)의 부탁으로 짓는다고 한 걸로 보아 이들이 문과 급제한 다음 문집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1694년에 일어난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南人) 계열인 이들이 모두 파직되는 바람에 문집 간행이 중단되었다가 1720년(숙종46)경에 이들이 졸하기 전 묵계서원(默溪書院)에서 원집 5권과 부록 합 4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집은 원집(原集) 5권,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권해(權瑎)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 부(賦)이다. 권3은 소(疏), 서(書), 잡저(雜著), 서(序), 교서(敎書), 전(箋),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제문(祭文), 묘갈(墓碣), 묘지(墓誌)이다. 권5는 언행록(言行錄)으로, 숙부 김성일(金誠一)에 대한 것이다. 권6은 부록이다. 권말에 저자의 유묵(遺墨) 9수가 실려 있다.
▶김우굉(金宇宏, 1524~1590) | 개암집(開巖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 1524~1590)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경렴(景濂)이 1729년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ㆍ편차하여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의 정정(訂正)을 받은 후, 행장(行狀)과 복향문(復享文), 연보(年譜) 등 부록(附錄)을 증보하여 1772년경에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原集) 4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광정이 지은 서문, 연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이고, 몇몇 시에는 ≪해동악부(海東樂府)≫, ≪덕계집(德溪集)≫ 등 출전을 밝혀 놓았고, 차운(次韻)과 원운(原韻)을 첨부해 놓았다. 권2는 소(疏), 차(箚), 계사(啓辭), 교서(敎書)이다. 상소는 경상도 유생이 올린 보우(普雨)를 참하라고 청한 22차례의 상소(上疏) 중에서 저자가 지은 5개의 상소와 부교리를 사직하는 상소이다. 권3은 서(書), 잡저(雜著), 발(跋), 제문(祭文), 묘문(墓文)이고, 권4는 부록(附錄)으로 권상일(權相一)이 지은 행장(行狀), 이준(李埈)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등이 있고, 권말에 김여용(金汝鎔)이 지은 지(識)가 수록되어 있다.
▶김우급(金友伋, 1574~1643) | 추담집(秋潭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 1574~1643)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오준선(吳駿善)의 교감을 거쳐 1929년 장성의 요월정(邀月亭)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저자의 장남 여옥(汝鈺)의 미산공실기(薇山公實記)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목록,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구상(具庠)이 지은 서(序)와 전체 목록, 권말에 1928년에 오준선(吳駿善)이 지은 발(跋)과 1929년에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권1~7은 모두 1,450제의 시(詩)이고, 권8은 서(書), 계, 책, 서(序), 기(記), 설(說), 명(銘), 상량문, 제문, 묘표이다. 그중에서 <중화책(中和策)>은 기수의 변화와 응변의 방도에 대해 말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요체는 수령을 잘 선택하는 데 달려 있는데 뇌물이 횡행하는 탓에 화기가 줄어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부록은 행장, 묘지명, 고유축문 등이며, 권말에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1929년에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의 요월정에서 간행한다는 판권지가 있다.
▶김우옹(金宇顒, 1540~1603) | 동강집(東岡集)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의 문집이다. 화재로 거의 타 버리고 남은 주의(奏議), 소차(疏箚), 부영(賦詠), 필찰(筆札) 100여 편과 ≪속강목(續綱目)≫ 한 질을 바탕으로 자손들이 문집의 수집과 정리를 시작하였고, 1723년~1755년경에 초간본이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6년에 원집과 보유(補遺)를 합해 17권으로 재편차하고 별책의 연보와 부록을 4권으로 묶어 총 11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고 만시(挽詩) 7편을 끝부분에 실었다. 함양의 서계(西溪)를 유람하고 지은 <서계창수(西溪唱酬)> 등이 실려 있고, 권용중(權用中)과 차운한 시가 특히 많다. 사(詞)ㆍ부(賦)에는 1590년에 회령 유배지에서 지은 <황화사(黃華詞)>, 15세 때 지은 <심비부(沈碑賦)>가 있다. 소(疏)에는 46편이 실려 있는데, 주로 사직(辭職)ㆍ걸퇴(乞退)의 내용이며, 상제(喪制), 예제(禮制)와 관련한 상소도 다수 있다. 서(書)는 임진왜란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임진왜란 전후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붕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김우항(金宇杭, 1649~1723) | 갑봉유고(甲峰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갑봉(甲峰) 김우항(金宇杭, 1649~17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많이 사라져서 소차(疏箚)나 서(書) 등의 산문만이 편차되어 간행되었다. 맨 먼저 유문의 간행을 시도한 사람은 1898년경 7대손 김운배(金雲培)로, 가장유문을 모아 총 5편으로 편차하였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1904년에 저자의 5대손 김연식(金連植)이 간행을 도모하여 목활자로 완성하였다. 본집은 5권 5책으로, 가장되던 소차(疏箚)와 계(啓), 의(議)에 중점을 두고 또 저자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 주는 <서적일기(西謫日記)>를 잡저로, 가군(家君)과 백씨(伯氏)에게 준 편지를 서(書)로 모아 간행하였다. 문집 내용의 대부분이 공거문(公車文)이라 그의 문학 세계나 사상을 살피기 어려운 게 아쉽지만 1675년 제생(諸生)과 함께 상소하여 동춘(同春), 우암(尤庵) 두 선생을 위해 신변(伸辨)한 것, 탕춘대(蕩春臺) 축성(築城) 의논을 반대한 것, 군제(軍制)와 양역(良役)의 변통에 대해 의논한 것 등 이조 판서, 병조 판서를 포함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저자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피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원행(金元行, 1702~1772) | 미호집(渼湖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의 문집이다. 시문(詩文) 이외에 중용문답(中庸問答), 중용강설(中庸講說), 독서차록(讀書箚錄) 등과 문인들이 정리한 언행록(言行錄), 기문록(記聞錄), 경서강의(經書講義)가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시문만 1799년경에 운각활자로 인행되어 전하고 나머지는 필사본으로 전한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183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초년에 지은 <영릉지감(寧陵志感)>을 시작으로 단양, 금강산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시가 많고, 그 외에 차운시와 증시(贈詩), 만시(挽詩)도 있다. 서(書)는 230여 편으로 본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본생조부 김창집(金昌集)의 신원(伸寃)을 부탁하는 내용, 장유(張維)의 중용설(中庸說)을 비판하는 내용, 국휼(國恤) 중에 사사(私祀)나 혼례를 행해도 되는지에 관하여 의견을 말한 내용, 역(易)을 공부하면서 생긴 의문점에 관한 내용, 사칠설(四七說)에 관한 내용, 예설(禮說)의 문목(問目)에 답하는 내용 등이 있다. 그 외에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 애사(哀辭), 전(傳) 등의 글들이 실려 있다.
▶김유(金楺, 1653~1719) | 검재집(儉齋集)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청풍김씨 판서공휘인백파종중
-조선 시대 검재(儉齋) 김유(金楺, 1653~1719)의 문집이다. 유문은 저자 사후에 아들 정로(正魯) 등이 김간(金榦)에게 묘지를 지어줄 것을 청하였고, 적어도 18세기 중반까지는 저자의 유고가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32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서발문이나 부록은 없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4는 부(賦) 4편 외에 시(詩)로서, 시는 각 권마다 시기별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권5~12는 서(書)로서 문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상은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 등 주로 노론 계열의 인물들이다. 권16은 강의, 반교문, 전문이고 권17은 의(議), 논(論)이며 권18은 변(辨), 권19는 서(序), 권20은 기(記)이다. 특히 <동행계거기(東行啓居記)>는 1675년 여름 양근(楊根)에 있는 박세채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돌아오는 여정의 대강을 기록한 것이다. 권22~26은 제문, 애사, 묘갈명, 묘표, 행장 등이고, 권27~32는 잡저로 전대의 일화, 당대 인물에 대한 평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 등 매우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김육(金堉, 1580~1658) | 잠곡유고(潛谷遺稿)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의 문집이다. 실록에 1668년 김좌명(金佐明)이 수어청(守禦廳) 수어사로 동철(銅鐵)로 활자를 주조하였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때에 주조된 활자가 무신자(戊申字)로 1670년경 김좌명의 생존 시에 위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편차하여 인행(印行)한 것으로 초간본, 곧 무신자본(戊申字本)이다. 그 후 김좌명의 아들 김석주(金錫胄)가 숙종 초에 한구자(韓構字)를 주조하고 1683년경 초간본을 14권 7책으로 재편집해서 이 활자로 인행하였다. 197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잠곡전집(潛谷全集)≫이란 제명으로 잠곡유고 초간본과 후손가(後孫家)에 필사본으로 가장(家藏)되어 있던 ≪잠곡속고(潛谷續稿)≫, ≪잠곡필담(潛谷筆譚)≫, ≪종덕신편(種德新編)≫, 연보와 가장, 세승(世乘) 등을 영인하여 출판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권두에 ≪조경일록(朝京日錄)≫에 대한 윤신지(尹新之)의 서문, 권1~2는 시(詩)와 부(賦), 권3은 집두시(集杜詩), 권4~6은 소차(疏箚), 권7은 계사(啓辭) 등이고, 권말에는 신익성(申翊聖)의 <조천록후지(朝天錄後識)>가 문집 발문을 대신해 실려 있다.
▶김윤식(金允植, 1835~1922) | 운양집(雲養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문집이다. 박규수(朴珪壽), 유신환(兪莘煥)의 문인이자 김육(金堉)의 후예로, 온건개화정책(穩健開化政策)을 주장하였으며 한일병합 뒤에 일본의 작위를 받았으나 3ㆍ1운동 때는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총독부와 일본 정부에 전달하여 징역형을 선고받고 작위를 삭탈 당하였다.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직접 교감을 보고 상당량을 산삭하여 16권으로 편차해 둔 것을 1911년에 정화음(鄭華陰)이 등사하고 1912년에 문인 정윤수(鄭崙秀)가 교정하고 황병욱(黃炳郁)이 편집하여 1914년 강설산관(絳雪山館)에서 석판으로 16권 8책의 230질이 간행되었고, 중간은 1917년에 문인 정윤수(鄭崙秀), 이빈승(李斌承) 등이 교정하고 황병욱(黃炳郁)이 편집하여 서울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로 15권 5책으로 인행하였으며, 권수에 이빈승의 <약전(略傳)>, 말송겸징(末松謙澄) 등이 지은 중간제사(重刊題辭) 7편, 윤희구(尹喜求) 등의 중간서(重刊序) 3편을 첨부하고, 약간 편의 시문을 증보하여 15권 5책으로 다시 편차하고, 권말에 정만조(鄭萬朝)와 김택영(金澤榮)의 발문을 붙였다.
▶김윤안(金允安, 1560~1622) | 동리집(東籬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1560~162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손자 김여만(金如萬)이 가장(家藏)하고 있다가 화재로 대부분 소실(燒失)되었다. 5대손 김반(金槃)이 산일(散逸)되고 남은 저자의 시문을 수습하고, 이상정(李象靖)에게 편차(編次)를 받았고, 7대손 김세규(金世奎)ㆍ김세유(金世瑜)가 김굉(金㙆)과 유집(遺集)을 교정(校正)하고 아울러 1811년에 김굉에게 발문(跋文)을 받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本集)은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원집(原集) 5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773년에 이상정(李象靖)이 지은 서문(序文)이 있고, 이어 세계도, 연보,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2는 각각 10세부터 56세까지 지은 시(詩)와 58세부터 61세까지 지은 시와 만시(輓詩) 21제가 실려 있다. 권3~4는 문(文)으로 소(疏)와 서(書), 기(記), 제문(祭文), 잡저(雜著) 등이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 만시(輓詩)가 실려 있다. 권미(卷尾)에는 1811년에 지은 김굉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김융(金隆, 1549~1594) | 물암집(勿巖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물암(勿巖) 김융(金隆, 1549~1594)의 문집이다. 1774년경에 5대손 김상건(金尙建)과 6대손 김세완(金世椀) 등이 유문(遺文)을 두루 수집하여, 편차하고 묘도문을 청탁하여 4권 3책의 목판으로 초간(初刊)하였다. 본집은 연보와 부록을 포함하여 모두 5권 3책이다. 권1은 시와 부 1편으로 되어 있다. 시는 102수(首)가 실려 있는데, 독서에 힘썼던 저자의 행적과 관련한 시들이 다수 보이며, 기타 스승 명고선생(嘯皐先生)이나 이안도(李安道)ㆍ이덕홍(李德弘) 등과 나눈 시가 많다. 권2에는 월천(月川) 조목(趙穆)에게 보낸 편지, 임란(壬亂)과 관련된 내용의 편지 등이 실려 있다. 잡저로 분류된 <주인록(做人錄)>은 행실의 기준이 되는 경서의 격언과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종지(宗旨)를 도표로 표시하고 설명을 붙인 것이다. 권3~4는 모두 강록(講錄)이다. 퇴계로부터 수업 받으며 들은 자구(字句)의 석의(釋義)를 기록하였는데, 권3의 <가례강록(家禮講錄)>은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관련한 예(禮)를 조목별로 나누어 참고하기 좋도록 실어 놓았다. 권5는 연보와 부록 문자이다.
▶김응조(金應祖, 1587~1667) | 학사집(鶴沙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시대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158~1667)의 문집이다. 유성용(柳成龍), 장현광(張顯光),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저자의 시문은 1734년경 증손 목사공(牧使公) 김정(金정(亻+政))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김정의 중형(仲兄) 동추공(同樞公) 金价(金价)가 연보 및 부록을 추가하였으며, 이광정(李光庭)이 편차하였다. 이 가운데 시는 저자가 <산중록(山中錄)>으로 자편(自編)해 놓았던 것이다. 1774년, 김정의 차자(次子) 김서필(金瑞必)이 위의 고본(稿本)을 간행하기 위하여 의산서원(義山書院)의 원유(院儒)들과 의논하여 재원(財源)을 마련하였으나 원고(元稿)의 분권(分卷) 차제(次第)가 가지런하지 않고 자획에도 잘못된 것이 많으며 연보에 간혹 누락된 기사가 있는 등 문제점이 대두되어 수교(讐校)하여 바로잡아 정고본을 만들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1776년경에 현손 김서필(金瑞必)이 주도하여 원유(院儒)들의 협조와 이상정(李象靖)의 도움을 받아 위 정고본을 손보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집은 원집 9권, 외집 1권, 세계도, 연보, 부록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이다.
▶김응하(金應夏, 1783~1830) | 정수재유고(靜修齋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수재(靜修齋) 김응하(金應夏, 1783~1830)의 문집이다. 차자 일형(日炯)이 흩어져 있던 시문과 가장 원고를 모아 4권으로 편차 교정하여 초고를 완성하고, 종손 규서(奎書)가 초고를 바탕으로 한장석(韓章錫)의 서문과 이시달(李時達)의 본전(本傳)을 추가하여 1878년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연대 미상인 한장석의 서와 이시달이 저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본전, 그리고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작품 중에 모란, 매화, 낙조, 눈, 비 등과 같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특히 <화조팔영(花鳥八詠)>은 8가지의 꽃과 새를 소재로, 그것이 각각 상징하는 명칭으로 제목을 삼아 읊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제발, 설(說), 변(辨), 찬(贊), 잡저이다. <제임가원괴석기후(題任可遠怪石記後)>는 임가원의 <괴석기>에 대한 것으로 이것을 통해 자신을 살피는데 경계를 삼을 만하다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차자 일형이 산일된 원고를 수습 교정한 뒤의 감회를 밝힌 글과 1878년에 종손 규서가 문집을 간행하면서 지은 발문이 있다.
▶김의정(金義貞, 1495~1547) | 잠암일고(潛庵逸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잠암(潛庵) 김의정(金義貞, 1495~1547)의 문집이다. 시문은 아들 김농(金農)이 유고(遺稿)를 철습하여 상하 2편으로 등사(謄寫)하고 가장(家狀)을 권말에 붙여 가장(家藏)한 것을, 1833(순조33) 10세손 김종규(金宗奎)가 행장ㆍ묘갈명 등 부록(附錄)을 가장 뒤에 첨부하고 김수근(金洙根)의 서(序)와 김정균(金鼎均)의 발(跋)을 붙였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졸한 뒤에 김종규의 동생 김종옥(金宗鈺)과 주손(胄孫) 김노흠(金魯欽)이, 저자가 1859(철종10)에 증작(贈爵)되고 1863(철종14) 증시(贈諡), 이듬해 개시(改諡)된 사실 및 시장(諡狀)ㆍ고유문(告由文) 등을 부록에 첨부하고 이휘재(李彙載)의 서를 받아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1권 합 2책으로, 권수에는 이휘재와 김수근의 서와 목록이 있고, 권1은 부(賦), 권2~3은 시, 권4는 문(文), 권5는 부록으로, 1832 유태좌(柳台佐)가 지은 행장, 1833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다. 행장에는 문집 간행 및 묘갈을 세우게 된 경위도 밝히고 있다. 권미는 김정균의 발문이다.
▶김이곤(金履坤, 1712~1774) | 봉록집(鳳麓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봉록(鳳麓) 김이곤(金履坤, 1712~1774)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이복(履復)이 저자가 자선(自選)한 시문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평양 서윤(平壤庶尹)으로 재직 중이던 1778년 우인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홍낙순(洪樂純)의 협조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두에 김종후(金鍾厚)가 1778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관기무(觀妓舞)>는 기생들의 춤추는 모습과 그것을 구경하는 구경꾼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권4는 서(書), 서(序), 찬(贊), 묘지명(墓誌銘), 묘표(墓表), 행장(行狀), 제문(祭文), 애사, 잡지(雜識)이다. 서(書) 중에서 김양행에게 보낸 것은 노모를 모시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고, 김상숙(金相肅)에게 보낸 것은 문사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는 내용이며, 김종후에게 보낸 것은 ≪중용장구》의 구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이다. 서(序)에는 여류시인 이온(李媼)의 시집에 붙인 것이 있는데 이온의 재능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극찬하는 내용이다. 권말에 홍낙순이 지은 묘문과 발이 있다.
▶김이만(金履萬, 1683~1758) | 학고집(鶴臯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재편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고,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6은 부(賦), 시(詩)이다. 시는 저자가 생전에 자편한 것인데 초고, 중고, 만고의 세 시기로 나누어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한가롭게 고향 제천(堤川)에 퇴거해 있으면서 지은 한거시와 각지를 유력하며 지은 기행시, 중국 사서(史書)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영사시 등이 많은 편이다. 권7은 소(疏), 전(箋), 서(書)이다. 소의 <단계서원청액소(丹溪書院請額疏)>는 선조 김담(金淡)을 향사한 순흥(順興)의 단계서원에 대한 사액을 청한 것으로 사림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고, 나머지는 사직소이다. 권8은 서(序), 기(記), 발(跋), 축문, 제문이고 권9는 잡저로 <산사(山史)>이다. 산사는 <천하명산기(天下名山記)>를 읽던 중 영동 및 단양 유람에 대한 기록만 있는 것을 깨닫고는 과거 자신이 유람했던 곳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기록으로 남기면서 이름 지은 것이다. 권10은 잡저, 비갈표이고 권11은 행장, 부록이다.
▶김이안(金履安, 1722~1791) | 삼산재집(三山齋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 1722~179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고를 수집, 편찬하였다가 1854년경 종손 김수근(金洙根)이 12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시(詩)는 202제가 실려 있다. 북한산, 수락산, 금강산, 단양 일대를 유람할 때 지은 작품이 많고, 차운시(次韻詩)도 많다. 산문 중 서(書)의 내용은 대부분 상례(喪禮)나 제례(祭禮) 등의 의문에 관한 문답, 경전에 대한 논변, 성리설에 대한 것이 많다. 잡저 중에는 문왕을 유리(羑里)에서 구해낸 산의생(散宜生)을 논한 <산의생론(散宜生論)>, 융적(戎狄)이 중국을 차지했으니, 이제 우리나라가 중화(中華)가 될 때라고 논변한 <화이변(華夷辨)>,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이 미발지전(未發之前)의 기질(氣質)의 선악(善惡)을 논하는 것을 비판한 <미발기질설(未發氣質說)>, ≪역학계몽(易學啓蒙)≫과 ≪중용장구≫의 의문을 조목별로 정리한 <기의(記疑)> 등이 실려 있다. 권11~12에 걸쳐 실린 <의례경전기의(儀禮經傳記疑)>는 모친상(母親喪) 중에 ≪의례(儀禮)≫를 읽으면서 의문점을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김익(金熤, 1723~1790) | 죽하집(竹下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하(竹下) 김익(金熤, 1723~1790)의 문집이다. 본집은 20권 10책의 필사본으로 각 필사본은 모두 괘인사본으로 비교적 깨끗하게 선사된 편이며, 서발은 없으나 총목과 목록이 실려 있다. 수록 작품의 순서나 편수도 모두 같으며 체제나 소주의 내용도 똑같은 걸로 보아 동일한 사본을 등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시의 소주 내용이 자주인 듯한 걸로 보아 저자가 정리해둔 시고를 바탕으로 정리된 듯하다. 소차나 연주 등의 주의류 외에 기타 저술은 적은 편이고 정밀하게 산정이 이루어진 상태는 아닌 듯하다. 문집은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발이나 부록 등은 없고, 권수에는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권20에는 기가 잔약해도 맥은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는 <유맥설(諭脈說)>, 민속놀이인 윷놀이의 연원을 추리하여 그 의의를 논한 <쌍사서(雙四敍)>가 있으며,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양보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변론한 글, 두보가 소동파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지은 팔진도시에 대해 해명했다는 일화를 다룬 <변동파소두공부변명팔진도시(辨東坡笑杜工部辨明八陣圖詩)> 등 흥미 있는 내용도 실려 있다.
▶김익동(金翊東, 1793~1860) | 직재집(直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직재(直齋) 김익동(金翊東, 1793~186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20여 년 뒤 아들 덕흠(悳欽)이 이돈우(李敦禹)에게 행장을 받고, 저자의 동문인 김흥락(金興洛)과 유지호(柳止鎬)에게 비문을 구하여 문집을 정리한 이후 1908년 손자 희교(羲敎)의 주도로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이돈우가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사(詞), 부(賦), 시이다. 부는 이한중(李漢中)이 사는 마을을 읊은 <녹문동부(鹿門洞賦)>와 인심, 세로(世路) 등을 바다 풍경의 변화에 맞춰 비유적으로 그려낸 <관해부(觀海賦)>이다. 시는 지도(智島)에 유배 중이던 유치명(柳致明)을 찾아가는 경로에서 지은 시, <음시제손(吟示諸孫)>은 저자가 64세 때 손자에게 지어준 시로, 저자의 뚜렷한 학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권3은 서(書)이다. 유치명에게는 율곡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옳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납득시켜달라는 내용, ≪태극도설≫, ≪중용장구≫ 등의 학문에 관한 질의가 대부분이다. 권말에는 장석룡(張錫龍) 및 김도화(金道和)가 1908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익희(金益熙, 1610~1656) | 창주유고(滄洲遺稿)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주(滄洲) 김익희(金益熙, 1610~165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중자(仲子) 김만증(金萬增)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교정하여 15권으로 편차하였고, 이것을 손 김진옥(金鎭玉)이 1708년 용담(龍潭) 현령으로 재임할 때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김진규(金鎭圭)가 지은 서문에는, 저자가 평소에 세상에 문집이 많이 간행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유고를 간행치 말 것을 아들들에게 부탁하였으나 저자의 시문이 세상에 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한 송시열의 말에 따라 김만증과 김진옥이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저자의 9대손 김명수(金命洙)가 상주 목사로 재임하던 1901년에 활자로 중간본을 인출하였다. 이 중간본에는 초간본 18권에 김만증의 묘지와 남구만의 시장(諡狀)이 첨부되어 있고, 끝에는 송근수(宋近洙)의 중간 발문이 실려 있다. 문집은 18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2~7은 시로, 과제(課製), 만시(輓詩), 송시(送詩), 차운시가 대부분이다. 권8은 봉사(封事)로, 1654(효종5)에 올린 <갑오봉사(甲午封事)>가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종손 김진규의 문집 서(敍)가 실려 있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 | 하서전집(河西全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유고 십여 권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등의 시서(詩書)가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이에 저자의 문인 조희문(趙希文)이 8년간 수집한 초본(草本)을 백광훈(白光勳)이 초서(抄書)하고 저자의 문인 양자징(梁子澂)과 신각(申覺)이 교정 및 간역(刊役)을 맡아 전라 감사 송찬(宋贊)의 협조로 1568년에 간행하였다. 그 뒤 김수항(金壽恒)이 저자의 현손 김시서(金時瑞), 외증손 이실지(李實之) 등과 함께 문집 중간(重刊)을 도모하여, 박세채(朴世采)의 편집을 거쳐 초간본에 부록을 첨부하여 14권으로 재편하고 별집 9권을 추가하여 1686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12권, 부록 4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어제사제문(御製賜祭文), 사제문(賜祭文), 문묘종사교서(文廟從祀敎書), 문묘종사반교문(文廟從祀頒敎文), 문묘승배축문(文廟陞配祝文)과 서(序), 발(跋) 및 총목차가 있다. 서는 송시열(宋時烈)의 서와 조희문의 구서(舊序)이며, 발은 이직보(李直輔)의 전집본발(全集本跋)과 박세채가 중간시 지은 구발(舊跋)이다.
▶김일손(金馹孫, 1464~1498) | 탁영집(濯纓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탁영자(濯纓子)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문집이다. 중종 때 신원복작되자, 조카 김대유(金大有)가 약간 권을 수집하여 시휘(時諱)에 저촉되지 않는 것을 바쳤다. 1519년 김안국(金安國)이 서문를 짓고 목판본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초간본에 완결이 많아지자 1668년 송시열(宋時烈)의 서문을 받아 목판본 6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삼간은 송환기(宋煥箕)가 유문을 첨입하고 편차와 세계ㆍ범례를 교정하여 <세계> 등을 부록에 싣고 1827년에 조인영(趙寅永)의 발을 받아 목판본 7권 3책으로 간행하였다. 사간은 1834년 ‘문민(文愍)’의 시호가 내리자 삼간본에 청시사적(請諡事蹟)을 추가하고 다시 판을 새겨 1838년 사림들이 목판본 8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오간은 1903년 김영호(金榮灝)가 본집 3권ㆍ속집 1권ㆍ연보 2권ㆍ연보속 1권 합 7권 7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8권ㆍ속집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의 부는 소인이 정치를 문란하게 하고 임금을 오도하는 것을 탄식한 <질풍지경초부(疾風知勁草賦)>와 같이 거의 시사에 대한 글이다. 끝에 1925년에 간행된 사실을 알 수 있는 판권지가 있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 | 사계유고(沙溪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1686년 운각(芸閣)에서 출간하라는 왕명에 따라 1687년 목판으로 초간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교서관본의 간행 이후 1688년경 호남에서 개간(改刊)한 호남중간본이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서 13권 5책이다. 권수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序文)과 김수항(金壽恒)의 서문, 목록이 있다. 권1~2는 소(疏), 계사(啓辭), 주차(奏箚), 장계(狀啓)로서 각기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본집이 숙종의 을람(乙覽)을 위해 편차되었기에 소차와 계사 등이 제일 앞에 놓인 듯하다. 권3~4는 편지이다. 내용은 대체로 시사(時事)에 대한 것과 학문에 대한 토론 등이다. 권5는 변(辨), 설(說), 서(序), 기(記), 발(跋), 제문(祭文), 시 등이다. 권6~8은 묘갈명과 행장(行狀)이며, 권9는 <연석문대(筵席問對)>로, 저자가 경연에서 말한 내용이다. 권10은 저자의 어록으로 송시열과 정홍명(鄭弘溟)이 기록한 것이다. 권11~13은 부록이다. 조선 시대 예학(禮學)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저자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김재찬(金載瓚, 1746~1827) | 해석유고((海石遺稿) | 권책
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해석(海石) 김재찬(金載瓚, 1746~182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두 종류의 필사본으로, 12권 6책의 ≪해석유고(海石遺稿)≫와 10권 5책의 ≪해석집(海石集)≫이 남아 있는데, 모두 서발이 붙어 있지 않아 편찬, 전사 경위 등이 분명하지 않다. 이 두 책을 비교해 보면, 시(詩)는 모두 권1~4에 편차되어 있으나, 문(文)은 편차가 다르고 수록 내용에 약간 출입이 있다. 예컨대, 서(書)는 ≪해석유고≫에는 권7, ≪해석집≫에는 권5에 실려 있고, ≪해석유고≫에는 ≪해석집≫에 실린 것보다 제문 3편, 전(箋) 19편, 묘지 8편이 더 실려 있다. 또한 권차가 일부 매겨져 있지 않은 ≪해석집≫에 비해, ≪해석유고≫는 판심까지 권차가 정돈되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분량이나 편차에서 ≪해석유고≫가 더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본서는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이 있고, 각 권의 앞에는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권1~4는 시, 권5~12는 문이다. 권11~12에는 시장(諡狀) 8편이 실려 있는데, 양대박(梁大樸), 한익건(韓翼謇), 이병태(李秉泰), 이민보(李敏輔), 김한철(金漢喆) 등에 대한 것이다.
▶김정(金淨, 1486~1521) | 충암집(冲庵集) | 권책
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초기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당질인 김천우(金天宇)가 유고를 모아 신광한(申光漢)에게 교정(校正)과 산정(刪定)을 부탁하였으나, 김천우의 사망으로 간행에는 이르지 못하고, 허백기(許伯琦)가 별도로 수습한 유고를 신광한이 소장하고 있던 원고와 합하여 본집과 외집으로 나누어서, 1552년 공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증손 김성발(金聲發)이 초간본 외집의 편차가 일정하지 못한 점을 바로잡아 외집의 시문을 창작 시기에 따라 본집에 편차시키고, 아울러 잘못 수록된 한충(韓忠)의 사직소(辭職疏)를 삭거(削去)하여 목판 5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5권ㆍ연보 2권 합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신광한의 서(序)가 있다. 권1~3은 각체(各體)의 시를 대체로 연대순에 따라 수록하였다. 그중 권3에는 진도와 제주 유배 시에 지은 시를 모은 <해도록(海島錄)> 및 <문견록(聞見錄)> 15제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 권4는 문으로 제주 유배 기간에 견문을 적은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등을 수록하였다. 권미에는 허백기의 발과 김성발의 지(識)가 실려 있다.
▶김정국(金正國, 1485~1541) | 사재집(思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전기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김요립(金堯立)이 영유 현령(永柔縣令)으로 있을 때에 윤두수(尹斗壽)의 도움을 받아 1591년에 처음 간행하였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603년, 영유 현령 윤효선(尹孝先)이 초간본의 잘못된 곳과 빠진 부분을 교정ㆍ보판(補板)하여 후쇄(後刷)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시, 권3~4는 문이다. 권1~2에는 각체시(各體詩) 380제(題)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권3에는 저자가 지은 ≪역대승통도(歷代承統圖)≫ 등의 발문(跋文)을 비롯하여 서(序)ㆍ기(記)ㆍ서(書)ㆍ소(疏)ㆍ제문(祭文) 등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관력(官歷) 중 보고 들은 일화(逸話)와 당시 인물들의 야담(野談) 등을 89조(條)에 걸쳐 만필(漫筆)식으로 쓴 척언(摭言)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정광필(鄭光弼)ㆍ안당(安塘) 등 기묘명현(己卯名賢) 82명의 기묘당적(己卯黨籍)이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형(兄) 김안국(金安國)이 쓴 묘지(墓誌)와 김요립(金堯立)ㆍ윤효선(尹孝先)이 쓴 발(跋)이 실려 있다.
▶김정묵(金正默, 1739~1799) | 과재유고(過齋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과재(過齋) 김정묵(金正默, 1739~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1928년 충북 영동에서 6대손 김용계가 연활자로 간행하였다. 시는 송시열의 <차강절수미음(次康節首尾吟)>을 차운하여 자신의 일생과 회한을 읊은 119수의 연작시 <차수미음(次首尾吟)>이 있다. 이밖에 만년에 집안에 영특한 후손이 있는 것을 기뻐하며 지은 <희증족자재정(喜贈族子在精)>, 황간(黃澗)으로 유배간 이운영에게 보낸 시, 신재응을 송별한 시, 1792년 역병을 피해 친척 지우들과 함께 있으며 지은 시록에 붙인 시 등이 있다. 편지는 문인과 백씨, 조카들에게 보낸 것들인데, 내용은 대부분 상례나 제사, 학문의 진보, 경전의 의문처 등에 관한 것이다. 잡저 <경서변답보유(經書辨答補遺)>는 경전의 집주와 소주(小註)에 대해 저자가 보충 설명을 하거나 의문점을 표시한 것이고, <남당집차변(南塘集箚辨)>, <인심도심설변(人心道心說辨)>, <서기질오상변후(書氣質五常辨後)>, <미발곤부변(未發坤復辨)>, <예설변(禮說辨)> 등은 남당의 잡저와 편지 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그의 설을 반박한 내용이다. 그밖에 제문, 묘지, 전(傳) 등이 있다.
▶김정집(金鼎集, 1808~1859) | 석세유고(石世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석세(石世) 김정집(金鼎集, 1808~1859)의 문집이다. 문집의 간행을 주도한 인물은 저자의 손자 교헌(敎獻)으로, 장자 창희(昌煕)가 1차 교열하고 손자 교헌이 추가로 교정하여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서수붕(徐壽朋)이 1900년에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827년 이후의 작품들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랜 내직 생활 중에 지은 응제시와 서준보(徐俊輔), 김로(金鏴) 등과 함께 지은 응제 연구(聯句), 효명세자(孝明世子), 헌종(憲宗), 순원왕후(純元王后) 등 왕실 인물에 대한 만장(輓章) 등이 주를 이룬다. 권3은 교령(敎令), 제문(祭文), 진향문(進香文), 전문(箋文), 상량문, 묘표(墓表)이다. 제문은 군기(軍旗)를 새로 만들어 군정(軍政)의 확립을 기원하는 <기치신비제문(旗幟新備祭文)>, 저자가 늦은 나이에 연년생으로 얻은 두 아들 창희와 철희(喆煕)가 순조롭게 천연두를 앓은 것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천연두 귀신을 전별하는 <송두신문(送痘神文)>이 있다. 권미에 손자 교헌이 1899년에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 | 완당전집(阮堂全集) | 권책
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문집이다. 저자는 저술로 자립(自立)하는 걸 원치 않아 두 번이나 원고를 불태웠지만, 문인 남병길(南秉吉)이 남은 시(詩)를 수집 편차하여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 7권 2책을 전사자(全史字)로 1867년 겨울에 인행(印行)하였으며, 종현손 김익환(金翊煥)이, 증손 김기원(金沂元)과 종현손 김승렬(金承烈)이 각각 수집(蒐集)한 시문(詩文)에 이미 간행된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 ≪완당척독(阮堂尺牘)≫, ≪완당집(阮堂集)≫을 재편차하고 홍명희(洪命憙)의 교정(校正)을 거친 후 김영한(金寗漢)과 정인보(鄭寅普)의 서문을 받아 ≪완당전집(阮堂全集)≫ 10권 5책으로 1934년에 서울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연활자(鉛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권1은 고(攷), 설(說), 변(辨), 권2는 소(疏), 서독(書牘), 권3~5는 서(書), 권6은 서(序), 기(記), 제발(題跋), 권7은 전(箋), 명(銘), 송(頌), 잠(箴),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묘표(墓表), 잡저(雜著), 권8은 잡지(雜識), 권9~10은 시(詩), 권말에는 김승렬의 발(跋)이 있다.
▶김제민(金齊閔, 1527~1599) | 오봉집(鰲峯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봉(鰲峯) 김제민(金齊閔, 1527~15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도기(道器)가 수집ㆍ편차한 고본(稿本)을 외현손 제주 목사 이익태(李益泰)가 1695년 제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에, 1804년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과 1829년 저자의 증직관계기록(贈職關係記錄)을 모은 속집(續集)을 헌종 연간(憲宗年間)에 후쇄(後刷)한 것이다. 본집은 원집 3권, 속집 합 3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편집 체제가 조금 뒤섞여 있다. 권수에 1684년에 윤증(尹拯)이 지은 서(序)와 1804년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이 있다. 권1은 권수제(卷首題)가 ‘오봉선생집’으로 되어 있는 부분과 ‘오봉유고’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고, 권2에는 <진보방요무소(進保邦要務疏)>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과 외적을 방어하는 방도 등을 논한 <보방요무(保邦要務)> 42조 중 23조가 실려 있으며, 권3에는 <보방요무> 19조와 제문 등이 있다. 원집 권미에는 1695년 이익태(李益泰)가 지은 발문이 있고, 속집에는 증직과 시호를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소본(疏本)과, 이후 1829년 저자가 이조 판서를 증직 받은 기록이 있다.
▶김조순(金祖淳, 1765~1832) | 풍고집(楓皐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김유근(金逌根)이 하고, 간행은 삼남 김좌근(金左根)이 한 것을 알 수 있다. 종형인 김용순(金龍淳)에게 출계한 장남 김유근은 저자가 죽자 유문을 수집하여 편차까지 완료하였으나, 끝내 문집의 간행을 이루지 못하고 1840년 사망하였고, 김유근이 만든 고본을 가지고 저자의 삼남인 김좌근이 1854년 정리자로 인행하였던 것이다. 본집은 16권 8책이다. 권수에 철종이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고, 권말에 정원용(鄭元容) 등이 지은 발(跋)이 있다.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6은 시(詩)로, 권2의 <지정청우령배곡희부(池亭聽禹伶俳曲戱賦)>는 판소리 소리꾼 우가(禹家)의 공연 모습을 그린 작품이고, 권3의 <증금사(贈琴師)>는 저자가 49세 때인 1813년 직접 거문고를 배우는 어려움을 묘사해 지은 시이다. 권4의 <석훈(昔訓)>은 옛 성현의 말씀에 따라 세속의 아첨하는 말과 음탕한 소리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겠다는 내용의 시이고, 권9의 <관서음사변통주(關西蔭仕變通奏)>는 음사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서도(西道) 지역에 대한 인사를 개선할 것을 아뢰는 글이다.
▶김종덕(金宗德, 1724~1797) | 천사집(川沙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1724~1797)의 문집이다. 사후 유적의 정리와 문집 등 저술 간행은 아우 김종발(金宗發)이 수집 정리하여 종질 당진(堂進)의 주관 하에 10책으로 편차하여 1806년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9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으며,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문집의 규모에 비해 시(詩)가 적고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성리학자 문집의 특징이다. 권2~13은 모두 서(書)이다. 권2~3은 1759년~1781년 동안 스승 이상정에게 올린 36편의 편지로서, 1771년에 올린 ≪심경강록(心經講錄)≫에 대한 장편의 문목은 저자가 대산의 사후 이 유업을 이어 완성하게 된 이유를 짐작케 하는 글이다. 권14~16은 잡저(雜著)이다. 권14는 <인설의품(仁說疑稟)>으로 주자(朱子)의 인설(仁說)과 인설도(仁說圖)에 대해 분석하고 나름대로 문답을 설정하여 인에 대한 개념을 추론한 것인데, 1765년 짓고 1766년 스승 이상정에게 질정을 받은 것이다. 권19는 행장으로 스승 이상정, 부친 김남응(金南應)의 유사와 아우 김종경, 김종섭의 가장이 실려 있다.
▶김종섭(金宗燮, 1743~1791) | 제암집(濟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제암(濟庵) 김종섭(金宗燮, 1743~1791)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서발(序跋)이 없어 편찬(編纂) 및 간행경위(刊行經緯)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저자의 아들 경진(經進)이 수집(收集) 편차(編次)하고 저자의 백형 종덕(宗德)이 교감(校勘)한 고본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詩體)와 관계없이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간혹 달려 있다. 권6의 뒷부분~7은 잡저(雜著), 설(說), 발(跋), 잠(箴), 묘지명(墓誌銘)이다. <독박남야갑을록차록(讀朴南野甲乙錄箚錄)>은 주자(朱子)가 장식의 인설을 논한 것을 일찍이 이상정(李象靖)이 변설한 적이 있는데 박손경(朴孫慶)의 갑을록(甲乙錄)을 읽고 이상정이 오인한 부분을 발견해 다시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에 근거해 변증한 것이다. 책문(策文)은 맹자(孟子)의 정통성, 퇴계학(退溪學)의 의의, 미발시(未發時)의 공부, 경재잠(敬齋箴)과 공구근외(恐懼謹畏), 복괘(復卦)의 천지지심(天地之心)에 관한 것이다.
▶김종수(金鍾秀, 1728~1799) | 몽오집(夢梧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몽오(夢梧) 김종수(金鍾秀, 1728~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7권, 연보 2권 합 2책의 연활자본(鉛活字本)으로, 1910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시는 107제(題)가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차운시가 다수이고, 강서 현령(江西縣令) 시절, 기장현ㆍ김갑도(金甲島) 유배 시절, 평안 감사(平安監司) 시절, 평해(平海) 유배 시절 지은 시들이 대부분이다. 소차(疏箚)는 ≪경연고사비례(經筵故事比例)≫, ≪역대명신주의요략(歷代名臣奏議要略)≫ 등을 올리면서 쓴 차자, 홍국영(洪國榮)을 귀양 보내도록 청한 차자, 김등(金縢) 사건과 관련하여 채제공(蔡濟恭)의 상소를 반시(頒示)하도록 청한 상소 등 노론 벽파(僻派)로서의 역정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실려 있다. 강의(講義)는 <춘궁시강일기(春宮侍講日記)>로, 춘궁 시절의 정조에게 강목(綱目)과 경서를 진강한 내용이다. 고사(故事)는 입지(立志), 진학(進學), 극기(克己), 납간(納諫), 사천(事天) 등 18칙으로 권면한 <경연고사(經筵故事)>와 경계가 될 만한 것을 뽑아 엮고 부연 설명한 <규장각고사(奎章閣故事)>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종일(金宗一, 1597~1675) | 노암집(魯庵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노암(魯庵) 김종일(金宗一, 1597~1675)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희영(煕永)이 여러 문집과 정원일기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집일하고, 연보 등 부록을 합편하여 1850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에 1848년 정홍경(鄭鴻慶)이 쓴 서문과 목록, 연보가 있다. 권1은 시이다. 대부분 만시로 장현광(張顯光), 신지제(申之悌) 등에 대한 것이다. 권2는 소(疏), 계(啓), 서(書), 제문, 갈명, 묘지명, 행장이다. 그중에서 <논강도실수소(論江都失守疏)>는 1637년 병자호란 때 윤방(尹昉), 김자점(金自點) 등이 종묘사직을 지키지 못한 것을 논죄하여 올린 것이다. 권3은 책(策), 잡저이다. 잡저의 <심양일승(瀋陽日乘)>은 1637년 7월 19일부터 1639년 4월 15일까지 시강원 사서가 되어 청(淸)나라에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들어가 일어났던 일들과 본국으로 송환되어 영덕으로 유배가기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는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발, 이종상(李鍾祥)이 지은 후지, 김희영이 1849년에 지은 후지, 강시영(姜時永)이 1850년에 지은 발이 있다.
▶김종정(金鍾正, 1722~1787) | 운계만고(雲溪漫稿) | 권책
수 : 15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운계(雲溪) 김종정(金鍾正, 1722~1787)의 문집이다. 손자 동헌(東獻)이 가장되어 오던 유고를 간행하기 위해 필사해 정리하던 고본으로 보이지만 분명한 필사 시기와 전해온 경위는 미상인 괘인사본이다. 본서는 원집 32권, 습유 3권, 부록 합 1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목록에 실린 작품 제목에도 산삭과 교정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에 뛰어나다는 평을 듣지는 못했지만 일상의 감상을 읊거나 업무차 외지로 나가게 된 경우 명승지에서 지은 것, 차운시(次韻詩)와 만시(挽詩) 등의 교유시가 고루 실려 있다. 권8은 잡저이다. <심폐편(審弊篇)>은 부역과 과세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개혁을 촉구한 글인데 저자가 경기, 강원, 관서, 영남 등지에 어사로 다니면서 민폐를 직시하였기에 보다 실정에 가까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듯하다. 부록에는 이득일(李得一)의 <경기감사교서(京畿監司敎書)>, 윤승렬(尹承烈)의 <강원감사교서(江原監司敎書)>, 신대전(申大傳)이 엮은 유사(遺事), 이희관(李羲觀)의 사제문, 본문은 없고 제목만 남은 조인영(趙寅永)의 시장이 실려 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 | 점필재집(佔畢齋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집이다. 생질 강백진(康伯珍) 등이 시문 25권과 ≪이준록(彝尊錄)≫을 모으고 조위(曺偉)의 편집을 거쳐 선사(繕寫)하였으나 무오사화로 거의 유실되고 남은 것을, 1520(중종15)에 강중진(康仲珍)이 숭산(嵩善, 선산(善山))에서 읍재(邑宰)의 도움을 받아 간행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거의 잃어버렸다. 이후 1649(인조27) 경상감사 이만(李曼)이 중간하고, 1789(정조13)에 이헌경(李獻慶)의 서(序)를 붙여 간행하고, 1892(고종29) 송병선(宋秉璿)의 발(跋)을 첨부하여 간행하고, 1917년에 김계현(金啓鉉) 등이 대구에서 간행하였는데, 모두 초간본을 교정ㆍ보판(補板)한 후쇄본이다. 문집은 시집 23권ㆍ문집 2권ㆍ이준록 2권ㆍ연보ㆍ부록 합 9책으로, 시집 권1~23은 각체시(各體詩)를 창작 시기 순으로 배열하였고, 연보는 손자 김뉴(金紐)가 1580(선조13)에 작성하고 1789(정조13) 이헌경(李獻慶)이 교정을 보아 문집에 합부(合附)한 것으로 무오사화사적과 문인록이 포함되어 있으며, 김뉴의 발이 있다. 부록은 신도비명과 장현광(張顯光)의 발이다.
▶김종필(金終弼, 미상) | 풍암집(楓巖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풍암(楓巖) 김종필(金終弼, ?~?)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방6대손 김육(金堉)이 그의 숙부가(叔父家)에 가장(家藏)된 고본(稿本)을 1635년 안변(安邊)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내용은 모두 시(詩)이다. 권수(卷首)에는 1635년에 지은 신익성(申翊聖)의 서문(序文)이 있고, 권미(卷尾)에는 1635년에 지은 김육(金堉)의 발문(跋文)이 있다. 시(詩)는 72제의 시(詩)가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편차(編次)되어 있다. 그중에서 <방언(放言)>은 위태로운 벼슬살이보다는 자연(自然)에 은거(隱居)하여 살겠다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칠언율시(七言律詩)로서,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린 저자의 유일한 시(詩)인데 본집에 실린 시(詩)와는 글자의 출입(出入)이 있다. <하처난망주(何處難忘酒)> 2수는 백거이(白居易)의 시 제목을 취하여 지은 것으로 자연에 은거할 때 더욱 술이 필요함을 말한 시이고, <억석행(憶昔行)>은 1497년 5월에 불족봉(佛足峰)에 오르고 백운암(白雲庵), 금강사(金剛寺) 등지를 유람(遊覽)한 것을 회상(繪像)하며 지은 장편시(長篇詩)이다.
▶김종후(金鍾厚, 1721~1780) | 본암집(本庵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시대 본암(本庵) 김종후(金鍾厚, 1721~1780)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김종수(金鍾秀)가 시문을 몇 권으로 정리하고 문인 임육(任焴)이 1798년 운각인서체자로 12권 6책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12권 6책에 속집 6권 3책 총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시(詩)는 136제이다. 강서(江西)와 면천(沔川), 관서(關西) 등 아우 김종수의 임지(任地)와 관련된 시가 10여 편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밖에 친인척에게 준 시, 만시(挽詩) 등이 있으며, 도봉서원(道峯書院), 사충서원(四忠書院), 만동묘(萬東廟)를 배알하거나 박연(朴淵), 금강산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시들이 있다. 서(書)는 주로 성리학에 관련된 학문적인 논의와 종법(宗法) 등 예제(禮制)에 관한 내용들이다. 잡저로는 <심기질변(心氣質辨)>, <농암삼연논율곡선악청탁기설변(農巖三淵論栗谷善惡淸濁氣說辨)>, <독이씨원론(讀李氏原論)>, <술세(述世)>, <계제(戒弟)> 등이 있다. 그밖에 자신의 거처인 본암에 대한 명(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심잠(心箴)>, 연꽃과 술에 대한 찬(贊)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종휴(金宗烋, 1783~1866) | 서소집(書巢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소(書巢) 김종휴(金宗烋, 1783~1866)의 문집이다. 저자의 행적은 손자 진흠(縉欽)이 이휘재(李彙載)에게 행장을 받고, 증손 세락(世洛)이 저자의 생질인 유도헌(柳道獻)에게 묘갈명을 받아 정리하여 교감을 받은 뒤, 간역을 시작하여 3년만인 1900년 봄에 6권 3책의 목판으로 완성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1810년부터 1862년까지 지은 시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군영(五君詠)>은 중국 진(晉)나라의 안연지(顔延之)가 혜강(嵇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향수(向秀), 유령(劉伶)의 다섯 군자를 읊은 것을 본떠 치건(緇巾), 안경(眼鏡), 단공(短笻), 목침, 연초(煙草) 등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다섯 가지에 대해 읊은 것이다. 권3은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잡저는 태극도설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덧붙인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1597년에 주화(主和)의 잘못을 논한 편지에 대한 산삭의 문제에 대해 논변한 <갑오척화변(甲午斥和辨)> 등이다. 권미에는 저자의 증손 세락이 지은 발문이 있다.
▶김좌명(金佐明, 1616~1671) | 귀계유고(歸溪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귀계(歸溪) 김좌명(金佐明, 1616~1671)의 문집이다. 본집의 간행을 주도한 사람은 아들 김석주(金錫胄)로 보이는데, 그는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시문을 수습하여 상하 2권으로 편차하여 1672년경 간행에 들어가고 뒤에 얻은 시문을 보유(補遺)로 편차하여 뒤에 붙여서 1책의 활자본을 완성하였다. 원집 상권은 시, 소차, 서계, 계사, 교서, 치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53제(題)가 있는데 월과(月課)로 지은 <의목란시(擬木蘭詩)>, 1654년 노산군묘(魯山君墓)에 치제(致祭)하러 갈 때 지은 시, 1665년 동지사로 연경에 갔을 때 지은 시 등이 있다. 소차 중 1664년 올린 <인이단상소진정청퇴소(因李端相疏陳情請退疏)>에서는 송시열(宋時烈)과 격조(隔阻)한 이유와 기해 복제(己亥服制)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하권에는 서발(序跋), 서후(書後), 기사(記事), 서(書), 제문 등이 있다. 보유는 사(辭), 시(詩), 소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로는 1662년에 지은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가 있고, 시로는 투호 모임을 기념하여 지은 <투호회시(投壺會詩)> 등이 있고, 소차로는 사직소 등이 있다.
▶김주(金澍, 1512~1563) | 우암유집(寓庵遺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우암(寓庵) 김주(金澍, 1512~1563)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산실되고 남용익(南龍翼)이 만든 <기아(箕雅)>와 읍지(邑誌)에 몇몇 작품만 전해지자, 6대손 김래(金䅘)가 가전(家傳)되던 금연응제시(禁宴應製詩)와 김주가 방백(方伯)으로 있으면서 관내 주현(州縣)의 정우(亭宇)에 제영(題詠)한 것, 성천도기(成川圖記), 논(論), 표(表), ≪소재집(蘇齋集)≫ 등의 기록과 김래의 종질 김득현(金得顯)이 수집한 자료를 합하고, 이복원(李福源)의 서(序)를 받아 모두 7권 1책을 1789(정조13) 목판본(木板本)으로 간행하였고, 후손 김문연(金文演)이 초간본이 너무 소략한 것을 한탄하고 제가(諸家)의 가장(家藏), 명산(名山)의 비장(祕藏) 등에서 관련 기록들을 찾아 후손 김주연(金胄演) 등의 도움을 받아 1874(고종11)에 6권 3책의 활자본(活字本)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7권 1책으로 권1~4는 시, 권5는 서ㆍ기ㆍ명ㆍ묘갈명, 권6은 논ㆍ책ㆍ교서ㆍ표, 권7은 김래와 김득현이 만든 유사(遺事)와 이복원(李福源)의 시장(諡狀), 권말은 김래의 발이다.
▶김주신(金柱臣, 1661~1721) | 수곡집(壽谷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곡(壽谷) 김주신(金柱臣, 1661~17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경종대(景宗代)에 운각인서체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서(序), 설(說), 변(辨)이다. 권2는 서(書)이다. 박세당(朴世堂)에게 ≪남화경(南華經)≫에 대해 묻는 내용, 김창협(金昌協)에게 부친의 지문(誌文)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등이 있다. 권3은 소차(疏箚) 16편이다. 권4는 <선대지문(先代誌文)>으로, 우리나라의 문적(文籍)을 널리 상고하고 선조의 행적을 수집하여 지은 것이다. 권5는 묘지명, 권6은 묘표(墓表), 묘갈추기(墓碣追記), 광기(壙記), 언행록(言行錄)이다. 권7~8은 행장, 제문, 축문, 애사(哀辭)이다. 권9는 <거가기문(居家記聞)>과 <수사차록(隨事箚錄)>으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다. 권10~11은 <산언(散言)>이다. 경전의 구절을 해석하거나 문장을 평하거나 예제(禮制)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 등 다양한 수상(隨想) 180여 조(條)가 실려 있다. 권12는 별고(別稿)로, 시(詩), 부(賦), 책(策), 경의(經義), 잡저가 실려 있다.
▶김중청(金中淸, 1566~1629) | 구전집(苟全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 1566~162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남형회(南亨會)와 손자 김양렬(金楊烈)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외현손 이광정(李光庭)이 1744년에 저자의 현손 김이명(金爾銘)과 5대손 김태운(金泰運)과 함께 감정ㆍ재편한 후, 후손 김영택(金榮宅) 등이 김시찬(金是瓚)의 교정을 거쳐 1831년경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연보, 부록, 별집(別集)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1744년에 지은 이광정의 서(序), 1829년에 지은 김정균(金鼎均)의 후서가 있다. 권1은 사(辭), 부(賦), 시(詩)이고, 권2~3은 1615년부터 지은 시를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대부분 만시, 월과, 차운시, 송시 등이다. 권4는 교서, 소(疏), 계사, 서장, 책(策), 서(書)이고 권5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명이며 권6은 전(箋), 제문, 축문, 묘지명, 묘갈명, 행장이다. 별집은 목록에 권8로 편차되어 있는데, <조천록(朝天錄)>과 <문견사건말단헌설(聞見事件末端獻說)>로서, <조천록>은 1614년 북경(北京)에 사신으로 다녀온 기록이다.
▶김지남(金止男, 1559~1631) | 용계유고(龍溪遺稿)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용계(龍溪) 김지남(金止男, 1559~1631)의 문집이다. 본집은 ≪내사(內史)≫, ≪소설(小說)≫, ≪내학(內學)≫, ≪좌사절요(左史節要)≫ 등과 함께 가장되어 있었는데, 외손 이관하(李觀夏)가 저자의 유고를 수습하여 1654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40년 후 묘갈명과 서문을 보태어 이선부(李善溥)가 1697년에 추각후쇄하였다. 본집은 부록, 원집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오도일(吳道一)이 지은 서문, 부록으로 정두경(鄭斗卿)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 권1~4는 모두 시이며,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권1은 1591년 저자가 33세 때부터 47세 때인 1605년까지 지은 시 129제이고 권2에는 1606년 48세에 왜(倭)의 사신을 접대하는 접위관(接慰官)이 되었을 때 지은 시부터 1616년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갔던 해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다. 권3에는 1617년부터 1623년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는데, 교유하던 지인들에게 주는 증시, 송별시가 많다. 권4에는 1624년 순천 부사(順天府使)로 있을 때부터 졸하기 전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으며, 권미에 외증손 이선부가 1697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김지수(金地粹, 1585~1639) | 태천집(苔川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천(苔川) 김지수(金地粹, 1585~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계손(繼孫)이 시문과 조천록(朝天錄)을 수집ㆍ편차하여 1697년 김창협(金昌協)의 산정을 거쳐 민진원(閔鎭遠)의 협조를 받아 170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새로 수집한 시문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하고 목록을 편차하여 1892년 이후 활자로 인행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고, 1697년에 김창협이, 1703년에 민진후(閔鎭厚)가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만사, 제문, 소(疏), 논(論), 묘갈, 봉명제책문시제(奉命制策問試題), 서(序), 표(表) 및 저자에 대한 시장과 묘갈명이다. 권2는 조천록과 조천하러 가는 저자를 배웅하면서 제현(諸賢)이 지은 신장(贐狀), 사행길에 받은 중화제현(中華諸賢)이 찬한 글, 시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부록이다. <황조배신전(皇朝陪臣傳)>과 <존주록(尊周錄)>은 저자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고, <사실(事實)>은 후손 용재(龍載)가 1892년 저자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에 1635년의 <을유동경계안(乙酉同庚稧案)>이 실려 있다.
▶김지행(金砥行, 1716~1774) | 밀암집(密菴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밀암(密菴) 김지행(金砥行, 1716~1774)의 문집이다. 아들 이수(履脩)가 저자의 언행(言行) 140여 칙(則)과 문경(文經) 5권을 채록(採錄)하고 조카 이홍(履弘)이 보유(補遺) 42장, 시(詩) 90여 수, 부(賦)ㆍ제문(祭文)ㆍ잡저(雜著)ㆍ서(書) 40편을 채록하였으나 간행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본집(本集)은 6대 종손 김인진(金寅鎭)이 소장한 등사본(謄寫本)으로 저자의 아들 이수와 조카 이홍이 정리한 것의 관계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6은 서(書)로, 종형 원행에게 보낸 편지에는 화양서원(華陽書院) 묘정비(廟庭碑) 건립 건에 대한 장문의 글이 있다. 당시 윤봉구가 죽고 발견된 화양(華陽) 비문(碑文)의 내용을 두고 시비 논쟁이 벌어졌는데 화양서원 원유(院儒)들은 건립을 주장하는 반면 원장이던 김원행은 이를 중지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저자는 이 편지에서 비문 새기는 것을 중지시킨 처사의 부당함을 논하고 스승을 위해 변론을 하고 있다. 권15는 서(序), 설(說), 잡저(雜著), 제문(祭文), 행장(行狀)이다. 권말에 등사기(謄寫記)가 있다.
▶김진규(金鎭圭, 1658~1716) | 죽천집(竹泉集) | 권책
수 : 21책 | 포갑수 : 4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35권, 별집 1권, 부록 3권 합 21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1773년의 영조 어제서문이 있고, 목록은 각 권별로 실려 있다. 원집 권1~5는 부, 시(詩)이다. 권6은 기, 제, 잡저, 의(議)이고, 권7은 연주(筵奏), 의주(擬奏)이다. 연주는 대부분 청(淸)ㆍ왜(倭)와의 현안 문제와 관련한 것이고, 의주는 한(漢)나라 때의 고사 3건을 놓고 지은 것이다. 권8~10은 책문, 반교문 등이다. 권13은 서(書)로, 대부분 안부를 묻고 권면, 책려하는 내용이다. 권14~30은 소(疏), 차, 계로 각기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31은 가장으로 부친 김만기(金萬基)에 대한 것인데, 후에 추각된 부분이다. 권35는 행장, 비명이다. 맨 뒤에 민진원(閔鎭遠)이 1729년에 쓴 발문이 있다. 별집은 전(傳), 서(序), 제문, 소, 계, 묘지명 등이다. 부록은 권1에 이이명이 지은 행장, 권2에 정호(鄭澔)가 1720년에 짓고 김양택(金陽澤)이 1754년에 추록한 묘지명, 이의현(李宜顯)이 지은 묘표, 이재(李縡) 등이 지은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김진동(金鎭東, 1727~1800) | 소암집(素巖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소암(素巖) 김진동(金鎭東, 1727~18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은 아들 희분(煕奮)과 희질(煕質)이 정리하고, 유문은 저자의 현손 진영(震永)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습 정리하였다. 본집 내에 서, 발 등이 없고 간행 연도에 관련한 구체적 언급도 없어 간행시기를 확정할 수 없지만, 1880년에 쓴 이돈우(李敦禹)의 행장과 1882년 권연하(權璉夏)가 작성한 묘지명으로 추측컨대 1882년~1909년 사이에 목판으로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서는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권3은 서(序), 기(記), 발지(跋識), 송(頌), 상량문(上樑文), 잡저(雜著)이다. 송은 경술생(庚戌生)인 공자(孔子)와 주자(朱子)를 찬미하며 원자(元子)의 탄생을 송축한 <경술생성인송(庚戌生聖人頌)>이다. 권6은 부록이다. 조술도, 김약련 등의 만사 8편, 조술도, 김종발(金宗發), 남한조(南漢朝), 유범휴, 김희주(金煕周)의 제문 11편, 이돈우의 행장, 권연하의 묘갈명이 실려 있다.
▶김진상(金鎭商, 1684~1755) | 퇴어당유고(退漁堂遺稿)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 1684~1755)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손 상정(相定)이 편차한 고본을, 손자 상목(相穆)이 1805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4는 시(詩)이다. 족형인 김진성(金鎭成), 이천기(李天紀), 신석봉(申錫鳳), 이기진(李箕鎭) 등과 수창한 시 및 두보(杜甫)의 시와 ≪간재집(簡齋集)≫, ≪농암집(農巖集)≫ 등에서 차운하여 지은 시가 다수 있다. 권5~7 앞부분까지는 소(疏)로, 1717년부터 1753년까지 관직에 있으면서 올린 것으로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그리고 <논왕세자부당위단의빈행연서(論王世子不當爲端懿嬪行練書)>와 <논단의빈연사재서(論端懿嬪練事再書)>는 1718년 세자빈 심씨(沈氏)의 상사(喪事)에 상이 대공복(大功服)을 입었다가 뒤에 기복(期服)으로 개복(改服)해야 된다는 의논이 일어났는데, 이때 왕세자가 연제(練祭)를 행하는 것의 부당함을 예제(禮制)를 들어 논설한 것이다. 권7 뒷부분은 달사(達辭)이고 권말에는 손자 상목이 1805년에 쓴 지(識)가 실려 있다.
▶김진수(金進洙, 1797~1865) | 연파시초(蓮坡詩鈔)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파(蓮坡) 김진수(金進洙, 1797~1865)의 문집이다. 저자는 중인(中人) 가문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고, 연경과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서사집(西社集), 호령집(湖嶺集), 관해집(關海集), 연사집(燕槎集), 벽로집(碧蘆集) 등 11권, 금강북정행기(金剛北征行紀) 3책, 약간 권의 서(序), 논(論), 잡문을 남겼다. 저자가 졸하고 3년 뒤인 1868년에 아들 김동필(金東弼)이 가장되어 있던 시문을 편차해 두었는데, 그 후 손자 김돈희(金敦煕)가 시(詩) 2권만을 직접 필사하여 1928년 석판(石板)으로 간행하였다. 먼저 연경에 가는 도중과 연경에 가서 지은 시로는, <도만(渡灣)>, <석문령(石門嶺)>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연도잡영은 등희(燈戱), 태자하(太子河), 이제묘(夷齊廟) 등에 대해 지은 7언 절구 35수가 있다. 국내 산천을 유람하며 지은 시로는 경주, 통영 등의 경상도 지방을 유람할 때 지은 것, 금강산을 거쳐 동해안을 유람할 때 지은 것 등이 있다. 이밖에 환갑을 맞이하여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회포를 적은 <육십세음(六十歲吟)>과 송시(送詩), 증시(贈詩), 차운시 등이 실려 있다.
▶김집(金集, 1574~1656) |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문집이다. 이 문집은 돈암서원(遯巖書院)을 중심으로 문인(門人)들이 주도하여, 1710년 여름 유고(遺稿) 15권 7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1에는 38수의 만시(挽詩)와 병중에 지은 시 등이 있다. 권2는 <차구봉시(次龜峯詩)> 180여 수로 노년에 스승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시에 차운한 시를 모아 놓은 것이다. 권3은 소(疏)이다. 대부분이 사직소이다. 권4는 <경연주사(經筵奏辭)> 2편이다. 권5는 잡저(雜著) 9편이다. 제문, 제사(題辭), 서(序) 등이 들어 있다. 권6~7은 서(書) 100여 편이다. 권6에 부친 김장생(金長生), 이시백(李時白), 김상헌(金尙憲) 등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 권7에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이유태(李惟泰) 등 문인에게 보낸 편지를 인물별로 모아 놓았다. 권8~10은 묘갈(墓碣), 묘지(墓誌), 묘표음기(墓表陰記)이다. 권13은 <고금상례이동의(古今喪禮異同議)>이다. 권14~15는 부록이다. 성리학과 예제(禮制)에 관한 내용이 많아 17세기 예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김창립(金昌立, 1666~1683) | 택재유타(澤齋遺唾)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택재(澤齋)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의 문집이다. 본집은 우인들이 유시를 수집하여 저자의 숙형 창흡(昌翕)의 산정을 받아 1684년 활자로 초간한 후, 백형 창집(昌集)이 묘지명 등을 추가하여 강화 유수로 재직 중이던 1700년 강화에서 홍유인(洪有人)의 ≪칩와유고(蟄窩遺稿)≫와 함께 운각활자로 인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시와 부록으로만 되어 있다. 권수에 김석주(金錫胄)가 168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시(詩)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오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김창협은 저자의 시가 맑고 유연하고 호탕하며 격조가 높으면서도 정취가 풍부하다고 평하였다. 작품 중 <야등국사암(夜登國師巖)>은 부친의 유배지에서 지은 시로 10세 때 도선(道詵) 국사의 탄생 설화가 있는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에서 지은 것이고, <철원(鐵原)>은 궁예의 옛 성터를 바라보며 회고한 것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표, 묘지명, 전(傳), 애장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1684년에 김수항, 김창흡 등이 지은 발과 지은 연도가 표기되지 않은 김만중(金萬重)의 발이 있으며, 간기(刊記)가 있다.
▶김창업(金昌業, 1658~1721) | 노가재집(老稼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김언겸(金彥謙), 김신겸(金信謙)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고를 수습하였고, 족질 김시보(金時保)가 1730년대 5권의 시집을 산정하였다. 증손 김이익(金履翼)이 1798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판각한 후 인본(印本)을 집에 보관해 오다 1820년 김조순의 서문을 추각(追刻)하여 반포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3책인데, 원집은 전체가 980여 수의 시(詩)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은 아들 김신겸(金信謙)이 지은 묘표이다. 시는 1678년에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영암에서 철원으로 이배(移配)되었을 때에 배소(配所)에서 부친과 함께 지내면서 지은 것, 만시(輓詩), 차운시, 나무와 꽃에 대해 읊은 영물시 등이 실려 있다. 동교잡영(東郊雜詠)은 서울 동교(東郊) 송계(松溪)에 거처할 때 지은 시들로서 춘추로 감역(監役)이 적간(摘奸)을 나와 민간에 폐단을 저지르는 것을 풍자한 <가비(可悲)>, 만시, 차운시 등이 실려 있다. 연행운지록(燕行塤篪錄)은 1712년 사신 가는 김창집(金昌集)을 따라 연경을 다녀올 때에 지은 시를 따로 모은 것이다.
▶김창집(金昌集, 1648~1722) | 몽와집(夢窩集) | 권책
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 김원행(金元行)이 저자가 생전에 정리해 둔 시록(詩錄)을 포함한 시와 장주 문자(章奏文字)만으로 유고를 정리, 편차하여 10권 5책으로 만들어 두었다. 정고본(定稿本)이 처음 간행된 것은 1758년이며, 본집은 1859년에 초간본을 복각한 목판본(木版本)이다. 권1~2에는 사(辭)로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 1편과 시 184제가 실려 있는데, 은거할 때와 벼슬살이 할 때의 작품,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흡(金昌翕) 등과의 차운시 등이다. 권3은 <연행훈지록(燕行塤篪錄)>으로 사은겸동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올 때 동생 김창업(金昌業)과 수창(酬唱)한 시 88제를 모은 것이다. 권4는 거제로 유배 가는 도중과 사사(賜死)되기 전의 감회 등을 읊은 시 30제를 모은 <남천록(南遷錄)>등이 있다. 권5~9는 소차(疏箚)로, 1711년 붕당의 폐단을 진달한 <진소회차(陳所懷箚)>, 1713년 연경에서 돌아와 서로(西路)의 폐단을 진달한 차자 등이 있다. 권10은 의(議)로, 1710년부터 1721년까지 정승으로 있을 때 수의(收議)한 내용이 실려 있다.
▶김창집(金昌緝, 1662~1713) | 포음집(圃陰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포음(圃陰) 김창집(金昌緝, 1662~1713)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에 곧 바로 유문(遺文)을 수집하고 정리한 사람은 셋째 형인 김창흡(金昌翕)이다. 그가 시문을 몇 권으로 정리해 가장해 오다가 문인 유척기(兪拓基)가 경상도 감사로 나가게 되자 1726년 비용을 대어 운각활자(芸閣活字)로 6권 3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는데, 최종적인 산정과 교정 등은 조카인 김신겸(金信謙) 등이 맡았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는 간략한 총목이 있다. 권1은 시이다. 16세 때 영암에 유배되어 있던 부친을 찾아가 지은 <배가친유월출산……(陪家親遊月出山……)>부터 1712년 <이강중만(李剛仲挽)>까지 약 125제의 시가 연도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형식은 오언율시가 많은 편이다. 권2~4는 서(書)로, 모두 16명에게 보낸 44편이 실려 있다. 일반적인 문집과 달리 형제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권2의 제일 앞에 편차되어 있는데 내용도 일반적인 안부보다 수양과 학문의 태도, 심성 등 성리학에 대한 질문 등이 많다. 권5는 잡저와 일록(日錄)이다. 맨 뒤에 김신겸이 1726년에 지은 본집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김창협(金昌協, 1651~1708) | 농암집(農巖集)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 김시좌(金時佐), 어유봉(魚有鳳) 등이 수습하고 편정하여 1709년 9월에 저자의 아우 김창흡(金昌翕)에게 서문을 받아 운각인서체자본 34권 17책으로 처음 인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36권, 속집 2권, 별집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의 권1~6은 부(賦) 4편과 시(詩) 890여 수이다. 한겨울에 얼음 뜨는 사람들의 고생스런 모습을 보고 지은 <착빙행(鑿氷行)>, 만사(挽詞), 아우 김창흡과의 화운시(和韻詩)가 실려 있다. 소차(疏箚)에는 연촌서원(煙村書院), 덕수서원(德水書院), 옥병서원(玉屛書院)에 사액(賜額)할 것을 청한 것,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한 것 등이 있다. 서(書)는 288편이 실려 있는데, 부친 김수항(金壽恒)에게 올린 편지를 비롯하여 형제 등 집안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많다. 그밖에 송시열(宋時烈)에게 올린 문목(問目) 및 권상하(權尙夏), 조성기(趙聖期)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문목은 ≪서전(書傳)≫, ≪중용장구≫, ≪맹자≫, ≪심경≫ 등에 대해서 의문 나는 조목을 질문한 것이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 | 삼연집(三淵集) | 권책수 : 34책 | 포갑수 : 7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김귀년(金貴年)
-조선 시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1732년 운각 활자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36권 18책, 습유 32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詩)는 저자가 복거한 곳에서 지은 것이 많고, 강화, 속리산 등 각지를 유람하고 지은 것들이 많다. 서(書)로는 주로 당시 소론과의 갈등 문제나 학문에 대한 문답 내용이다. 설(說)로는 <논지자설(論智字說)> 등이 있고, 찬(贊)으로는 장희백(臧僖伯) 등 75명에 대한 찬을 모은 <좌사제찬(左史諸贊)> 등이 있다. 잡저로는 동생 김창립(金昌立)의 전(傳), 구산(龜山)의 유후론(留侯論)을 비판한 <소절잔도론(燒絶棧道論)> 등이 있다. 권33~36은 잡록(雜錄), 일록(日錄), 만록(漫錄)이다. 잡록은 1702년에 성의장(誠意章), 자기지의(自欺之義), 태극(太極) 등에 관한 수상(隨想)을 적은 것이고, 일록은 곡운(谷雲), 벽계(檗溪) 등에서 지낼 때의 독서 내용과 생활, 기타 수상(隨想)을 적은 일기이며, 만록은 성리학에 관한 견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인물과 고사, 제도 등에 관해 적은 것이다. 습유도 원집의 편차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김창희(金昌煕, 1844~1890) | 석릉집(石菱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릉(石菱) 김창희(金昌煕, 1844~1890)의 문집이다. 아들 교헌(敎獻)이 저자가 생전에 정리한 고본(稿本)과 별저(別著)들을 바탕으로 1898년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서는 12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제발(題跋)이다. <서노소문장익주화상기후(書老蘇文張益州畫像記後)>는 당시 조선의 서북 지역 백성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개탄하고 있다. <서전은유통의후(書錢銀流通議後)>는 당시 조선에 은화가 유통되지 못해서 겪는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기술하고 있는 바, 저자의 <부강팔의보(富強八議補)> 중 한 편으로 추정된다. 권4는 가장(家狀), 잡저(雜著)이다. 가장은 선친 정집(鼎集)의 행장이다. 잡저의 <식유(植儒)>에는 유교의 교화를 서양까지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는 작자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변로(辨老)>에서는 노자(老子)에 대해 상고 시대 황제(黃帝)의 다스림을 부흥시키기 위해 자(慈)와 검(儉)을 숭상하며, 때때로 유가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록(附錄)에는 아들 교헌(敎獻)이 지은 사략(事略)과 사제문(賜祭文)이 실려 있다.
▶김천일(金千鎰, 1537~1593) | 건재집(健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임진왜란 중에 대부분 없어졌으며 남은 글들을 모아 1802년경부터 간행을 시도했으나 하지 못하다가, 1893년 3월에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93년 11월에 본손(本孫) 김연수(金蓮洙)가 약간의 편을 증보하고 편차를 달리하여 다시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7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원집에는 쌍으로 나는 꿩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을 읊은 <원금가치아부(援琴歌雉我賦)>와 충(忠)과 효(孝)를 주제로 한 시와 전란에 대처하는 방도를 진달한 소, 전란 중에 재상에게 당시 폐단을 10조목으로 제시한 편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격문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여러 문인이 저자에게 지어준 시와 ≪선묘보감(宣廟寶鑑)≫, ≪중봉집(重峯集)≫, ≪우계집(牛溪集)≫, 유희춘(柳希春)과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등에 나오는 저자 관련 기사를 모아 놓은 <차록(摭錄)>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분투상과 전란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김춘택(金春澤, 1670~1717) | 북헌집(北軒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 1670~1717)의 문집이다. 저자는 인경왕후(仁敬王后)의 부친 김만기(金萬基)의 장손으로서 남인과 소론(少論)에 의해 대표적인 척신(戚臣)으로 지목받아 평생을 옥사와 유배로 보냈다. 저자는 생전에 <초년록(初年錄)>, <수해록(囚海錄)>, <취산록(鷲山錄)>, <은귀록(恩歸錄)>, <습유록(拾遺錄)>, <노산록(蘆山錄)> 등을 정리해 두었고, 저자의 손자 김두추(金斗秋)가 1760년에 운각 활자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20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시작(詩作)의 대부분이 억울한 심정과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을 읊은 것, 유배지의 풍광을 읊은 것, 유배지로 찾아온 가족이나 친지와 차운한 것 등이다. 특히 정철(鄭澈)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한역(漢譯)한 시와 <사미인곡(思美人曲)> 및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을 이어 언문(諺文)으로 <별사미인곡(別思美人曲)>을 짓고 대지(大旨)를 적은 시가 눈에 띈다. 권7~20은 문(文)이다. 옥사에 연루되고 유배되는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 작품들이 많고, 중국 역사상의 논점에 관한 글, 경전에 관한 의문을 변석한 글 등이 있다.
▶김충선(金忠善, 1571~1642) | 모하당집(慕夏堂集) | 권책
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의 문집이다. 저자는 임진왜란 때에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거부하여 귀화한 일본인으로 화포(火砲)와 조총(鳥銃)의 제조 기술을 전수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본집은 6대손 김한조(金漢祚)가 가장초고(家藏草稿)와 김사눌가(金思訥家)에서 구한 유록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연보와 함께 1798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1권, 부록 1권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연보, <사성김해김씨족보구서(賜姓金海金氏族譜舊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서(書), 소(疏), 장(狀), 지(誌), 기(記), 가훈과 향리약조이다. 그중에서<강화서(講和書)>는 1592년에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부를 청한 것이고, <상절도사서(上節度使書)>에서는 1593년에 화포와 조총을 만들어 시험한 후 각처에 보급하여 전력을 강화할 것을 청하였다. 권2는 부록으로 오응정(吳應鼎)과 변량준(邊良俊)의 시, 김수(金睟)ㆍ김응서(金應瑞) 등의 서(書), 행록, 묘지, 묘갈, 전(傳)과 그밖에 소(疏)ㆍ장(狀)ㆍ축문ㆍ용완사실척록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1798년 6대손 김한조가 지은 발이 있다.
▶김취문(金就文, 1509~1570) | 구암집(久庵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김몽의(金夢儀)가 유문을 수집 편차하였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죽자, 아우 김몽화(金夢華)가 형의 뜻을 이어 문집을 간행하려고 1789년에 정범조(丁範祖)에게 서문을 받았다. 이어 7대손 김태화(金太和)가 저자의 문집에 형 김취성(金就成)의 ≪진락당유고(眞樂堂遺稿)≫를 합편하여, 종조형 김낙항(金樂恒)의 협조를 받아 1791년에 운각활자로 3권 2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791년 1월에 운각활자로 간행된 사실이 기록된 표제지, 1789년에 지은 김종수(金鍾秀)의 서문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소차, 계(啓), 서(書), 기(記), 제발, 잡저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잡저, 묘갈, 묘지가 실려 있다. 그중에서 잡저는 오자서, 서불, 전횡에 대한 논(論) 3편과 1537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을 때의 시권인 <치도책(治道策)>이다. 권3은 부록으로 행장, 묘지, 유사, 제현기술, 사제문, 제문, 낙봉서원선액시사제문 등이 있고, 권말에는 1789년에 지은 오재순(吳載純)의 발문이 실려 있다.
▶김치후(金致垕, 1691~1742) | 사촌집(沙村集) | 권책
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촌(沙村) 김치후(金致垕, 1691~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종정(鍾正)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6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총목은 별도로 없으며 권별로 권목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18년부터 1742년 사이에 지은 작품들로서, 저자가 위도(蝟島)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1738년과 1739년의 시편들이 많다. 권2는 소(疏)로, 대부분 사직소이고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제발, 제문, 애사, 묘지명, 잡저이다. 그중에서 종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배 생활의 구체적 모습과 모친의 건강에 관한 염려, 아들에 대한 당부 등 저자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권4는 책(策)과 책문이다. 책은 유불도 삼교의 차이점과 유학의 유행에도 참된 선비가 나타나지 않는 원인에 대하여 논한 <유노불(儒老佛)>과 임금을 위해 신하가 상복을 입는 것의 유래와 근거 그리고 올바른 방식에 대하여 논한 <군신복제(君臣服制)>이다. 권말에는 저자의 아들 종정이 1765년에 문집을 간행하며 지은 발과 신경(申暻)이 1761년에 종정의 부탁으로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김태일(金兌一, 1637~1702) | 노주집(蘆洲集) | 권책
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 1637~1702)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47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만 있고, 서(序), 발(跋)은 실려 있지 않다. 권1~2는 부(賦)와 시(詩)이다. 시는 모두 350여 제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아우인 해일(海一)과 이동표(李東標) 및 승려들과 수창한 시도 많이 있으며, 특히 이동표에게는 자(字)인 군칙(君則) 외에도 고산산인(孤山散人) 등 다양한 호칭으로 시를 읊어주면서 자주로 상대가 이동표임을 밝히고 있다. 권3은 소, 서(書), 서(序), 기(記), 발 등이다. 특히 서(書)는 기해복제(己亥服制)에 대해 변론한 유원지(柳元之)의 <존요록(尊堯錄)>을 간행하기에 앞서 허목(許穆)에게 이를 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로 부치지는 못했던 것과, 또 한 통은 동주(洞主)인 신필성(申弼成)에게 홍여하(洪汝河)를 존향하도록 애써줄 것을 당부하는 편지로 저자가 졸한 해에 쓴 것이다. 권4는 상량문, 갈지, 행장이고 권5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김택영(金澤榮, 1850~1927) | 소호당집(韶濩堂集)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동국대학교
-조선 시대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자편(自編)하여 여러 번 간행하였는데, 본집은 1922년에 연활자로 인행된 ≪합간소호당집(合刊韶濩堂集)≫에 이후 인행된 4종의 속편을 합부한 것이다. 본집은 원집 21권 8책, 보유(補遺) 2권 1책, 속(續) 5권 1책, 차수정잡수(借樹亭雜收) 4권 1책, 속집 불분권(不分卷) 1책 합 1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시집에는 평양(平壤), 삼남(三南) 등지를 유람하여 경치를 묘사한 기행시,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조병세(趙秉世)와 민영환(閔泳煥)을 추모하는 시 등이 있다. 원집 문집의 권2~3에는 <유학경위서(儒學經緯序)>, <강역고보론서(疆域考補論序)> 등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8에 실린 잡언(雜言)에는 문학, 경학(經學), 시화(詩話),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문인의 작품 평가 등 다양한 내용이 있으며, <홍삼지(紅蔘志)>에는 각종 문헌에서 수집한 홍삼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속(續) 5권에 실린 <단씨조선기(檀氏朝鮮記)>는 단군조선의 성립과 천부경(天符經)이 실려 있는데, 천부경에는 저자가 주석을 달았다.
▶김팔원(金八元, 1524~1569) | 지산집(芝山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산(芝山) 김팔원(金八元, 1524~1569)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이 수집ㆍ편차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일실한 후, 종한(宗漢)ㆍ종우(宗愚)가 다시 유문을 수집ㆍ편차하여 김시찬(金是瓚)의 정정을 거쳐 1826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826년 김시찬(金是瓚)이 지은 서문,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이다. 권2는 시(詩), 서(書), 찬(贊), 지(識), 설(說), 제문(祭文), 부록(附錄)이다. 시는 정탁(鄭琢), 김극일(金克一), 이황(李滉), 김부륜(金富倫)의 시를 차운한 것, 경물(景物)에 대한 시가 대부분이다. 부록은 이유장(李惟樟)이 지은 행장,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묘갈명,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묘지명, 구봉령(具鳳齡)이 지은 제문, 김부륜이 지은 만사 등이다. 사우증유(師友贈遺)에는 이황, 구봉령, 조목(趙穆) 등이 저자에게 준 시와 저자의 시를 차운한 시 등이 있고, 사우척언(師友摭言)에는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정사성사록(鄭士誠事錄), 조목(趙穆)의 기록, 구봉령의 유어 등에서 뽑은 저자에 관한 기록이 있다.
▶김평묵(金平默, 1819~1891) | 중암집(重菴集) | 권책수 : 33책 | 포갑수 : 7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의 문집이다. 손자 김춘선(金春善)과 사위 홍재귀(洪在龜), 문인 유기일(柳基一)이 수습하여 유실에 보관하고 있던 유고를 김춘선이 교정하고 증손 김익증(金益曾)이 편집하여 1905년에 관서의 사인 김병식(金昞植), 김관식(金寬植) 등이 개천(价川)의 숭화재(崇華齋)에서 원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원집 말미에 유인석의 발(跋)과 별집 <우암송선생사실기(尤菴宋先生事實記)>가 있다. 원집이 인행된 후, 지도(智島)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때 호남의 문인들이 원집에서 산삭해서는 안 되는데 산삭된 것이 있고, 유문이 널리 유포되지 못했으며, 또 원집에 근간이 되는 골자가 빠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가장 수본(手本)과 원집에서 산삭된 부분을 수집하여, 1912년 능주(綾州)에서 별집 11권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54권 28책, 별집 11권 5책 합 3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에는 권두에 목록 1책과 권미에 별집 1책이 첨부되어 있는데, 별집은 <우암송선생사실기>이다. 서(序)는 없고, 권미에 1906년에 유인석이 지은 발이 있다. 별집에는 권두에 목록이 있다.
▶김하구(金夏九, 1676~1762) | 추암집(추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추암(추(秋/木)菴) 김하구(金夏九, 1676~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신치달(申致達)ㆍ김만보(金萬寶) 등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신치달의 아들 신대중(申大重)과 김성련(金聖鍊)이 유범휴(柳範休) 등에게 교감을 받아 182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정구(鼎九)의 ≪정자공유고(正字公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6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시찬(金是瓚)이 182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고시, 절구, 율시, 육언, 관화록(觀化錄), 만사이다. 칠언시의 비중이 가장 크고, 아우인 용구(龍九)와 정구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관화록은 저자가 죽기 전 1759년부터 1761년까지 지은 시들을 별도로 모아 놓은 시록이다. 권4는 소(疏), 서(書), 잡저이다. 소(疏)의 <의남강서원청액소(擬南江書院請額疏)>는 영덕(盈德)에 있는 남강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의소(擬疏)이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설(說), 명(銘), 상량문이고 권6은 제문, 애사, 행장, 묘갈명, 부록이다. 권말에는 유묵과 신창조(申昌朝)가 182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김학배(金學培, 1628~1673) | 금옹집(錦翁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1628~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질자 세탁(世鐸)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이 소실(燒失)된 후,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재편(再編)하여 1732년 이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권해(權瑎)와의 우의를 다지고 대도(大道)를 닦고자 한 포부를 술회한 <서회증권개옥(書懷贈權皆玉)>, 1664년에 반생을 되돌아보아 5조목을 열거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고자 지은 <오회가(五悔歌)> 등이 있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잡저(雜著), 서(序), 발(跋),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제문(祭文)과 애사(哀辭)이고 권5는 의성 김씨 일문의 언행록(言行錄)과 임종 전날 구술한 <자갈명(自碣銘)>이다. 권6은 부록(行狀)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묘지(墓誌), 유사(遺事)와 별록(別祿), 보유(補遺), 만사(輓詞), 제문(祭文) 등이다.
▶김해(金垓, 1555~1593) | 근시재집(近始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 1555~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증손 김석윤(金錫胤)이 가장되어 오던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불분권 1책의 형태로 이보(李簠)에게 발(跋)을 받고 1708년에 조덕린(趙德鄰)에게 서문을 받았고, 1783년경 후손인 김돈(金墪)과 김영(金瑩) 등이 주축이 되어 김석윤(金錫胤)이 정리한 유고를 4권 2책으로 재편하고 다시 정범조(丁範祖)에게 발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조덕린이 1708년에 지은 서(序), 정범조가 1783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이보(李簠)의 발(跋)이 있다. 권1은 사(辭), 시(詩)이고, 권2와 권3 앞부분은 서(書)이며 권3 뒷부분은 잡저로, 설(說), 변(辨), 제후, 제문, 표(表), 전(箋), 계(啓), 유사, 묘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이기설(理氣說)>에서 저자는 이황(李滉)의 ‘이발기수(理發氣隨)’, ‘기발이승(氣發理乘)’에 동조하고 있으나 뒷부분이 일실되었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명, 가장 등과 조목 외 7인이 지은 제문, 조목과 신지제가 지은 만사가 수록되어 있다.
▶김헌기(金憲基, 1774~1842) | 초암전집(初庵全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초암(初庵) 김헌기(金憲基, 1774~1842)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사위 백응진(白膺鎭), 문인 김제오(金濟五), 백일현(白一顯) 등이 유고(遺稿)를 모아 ≪남산속고(男山續稿)≫를 만들고, 구고(舊稿)의 편차(編次)를 따르면서 속고(續稿)와 합편(合編)하여 ≪초암집(初庵集)≫을 만들어 가장(家狀)하였다. 1881년에 김택영(金澤榮), 박재현(朴載鉉), 최중건(崔中建) 등이 ≪초암집≫을 교정(校正)하여 14권으로 만들고 85부를 개성(開城)에서 간행하였다. 중간(重刊)은 장시순, 임황식(林晃植)이 주사를 맡아 보았고, 김원배(金元培), 윤재청(尹在淸), 김환철(金煥喆) 등이 간행(刊行) 자금을 대어 중국의 남통(南通) 한묵임서국(翰墨林書局)에서 1921년에 250부를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 1828년에 쓴 자서(自序), 연보(年譜), 증손 영락(永樂)이 지은 행략(行略), 유묵(遺墨), 범례(凡例), 목록(目錄)이 있다. 권6은 잡저(雜著)이다. 권7은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찬(贊), 자사(字辭), 혼서(婚書), 축문(祝文)이다.
▶김현성(金玄成, 1542~1621) | 남창잡고(南窓雜藁)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수사(手寫)한 오칠언절구(五七言絶句) 100여 편을 문인인 오숙(吳䎘)에게 남겼고, 오숙이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 장유(張維)의 서문을 받아 1634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으며, 문(文)은 없고 모두 시(詩)이다. 권두에 1634년에 장유가 지은 서문이 있다. 오언절(五言絶), 칠언절(七言絶), 오언율(五言律), 칠언율(七言律)의 시 138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고 주로 지방관으로 나가 있으면서 주변의 풍광을 읊은 서정시가 많고 그밖에 송별시, 증시 등이 있는데 시를 수창(酬唱)하던 이로는 권필(權鞸), 심종직(沈宗直), 김치(金緻), 김계휘(金繼輝), 이정귀(李廷龜) 등이 있다. 특히 칠언율의 <부가산시숙송도게마어청석동(赴嘉山時宿松都憩馬於靑石洞)>은 가산 군수(嘉山郡守)로 부임하던 1585년에 송도를 지나며 감회를 읊은 것이고<송일본회답사(送日本回答使)>는 1607년에 일본으로 사신 가는 여우길(呂祐吉), 경섬(慶暹), 정호관(丁好寬) 등에게 지어 준 송별시이다.
▶김홍욱(金弘郁, 1602~1654) | 학주전집(鶴洲全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 1602~1654)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는 곧 삭탈관직과 자손, 근친 금고(禁錮)의 명이 내려 문집 간행이 시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아들 김세진(金世珍)이 문집 간행을 도모하여 행장을 짓고, 송시열(宋時烈)에게 신도비명을 받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고, 다만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한 유고의 수집에만 힘을 기울였다. 처음 문집이 간행된 것은 강빈(姜嬪)의 위호(位號)가 회복되고 저자에게 증직(贈職)의 조처가 내린 뒤 8월에 김세진의 아들 김두벽(金斗壁)이 경상도 개령 현감으로 있으면서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7대손 김만재(金萬載), 김경희(金景喜), 김좌희(金佐喜) 등이 계획하여, 8대손 김상유(金商裕), 김상휴(金商休) 등의 도움을 받아 구본을 교정하고, 일시(逸詩) 5편을 추가하고, 연보, 부록을 추보하여 새로 편차해서 15권 6책으로 정리하여 서울 흥성암(興盛菴)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5권 합 6책이다. 권1~6은 시이다. 권2는 <남행록(南行錄)>, 권3는 <서행록(西行錄)>이 실려 있다. 권7은 소(疏)와 차자(箚子)이다.
▶김화준(金華俊, 1602~1644) | 당계집(棠溪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당계(棠溪) 김화준(金華俊, 1602~1644)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용수(龍壽)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과, 가장하고 있는 어사보연의 관계기록을 편차한 어사당계김공보연기적(御賜棠溪金公寶硯記蹟)을 합부하여 6대손 효원(孝源)과 7대손 찬모(瓚模) 등이 1869년 고부의 망산제각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표(表), 시(詩) 등이다. 그중에서 부는 승시(陞試)와 감시(監試)의 권문(卷文)으로 내용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으며, 시에는 월과, 차운시, 만시 등이 있다. 그리고 성경현전의 직지를 체득하여 ‘성(誠)’으로써 정사를 펼 것을 아뢴 문과 급제 시의 대책(對策), 이행진(李行進)ㆍ김남중(金南重) 등에게 보낸 편지, 월과로 1639년에 지은 <절함명(折檻銘)>, <토계송(土階頌)>, <설중송백찬(雪中松栢贊)>과 윤황을 애도한 제문 등이 있다. 부록에는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동호사우록(東湖師友錄)에서 저자와 관련된 부분을 초록한 것과 김용수(金龍壽)가 지은 가장, 윤인규(尹仁圭)가 지은 행장, 이돈영(李敦榮)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
▶김효원(金孝元, 1542~1590) | 성암유고(省菴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 1542~1590)의 문집으로 괘인선사본(罫印繕寫本)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김극련(金克鍊) 등이 1614년에서 1618년 사이에 편찬 선사(繕寫)한 후, 꾸준히 간행하려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계획대로 되지 못한 듯하다. 본 문집은 2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내용은 대부분 일상의 일들을 읊은 것이며 승려에게 주거나 화답한 시도 여러 편 있다. 권2에 실린 부(賦)에는 <누항금부(陋巷琴賦)>, <사이관덕부(射以觀德賦)>, 그리고 절용애민(節用愛民)을 노래한 <일현백전부(日懸百錢賦)>가 있다. <유중대사시권서(遊中臺寺詩卷序)>는 두타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권(詩卷)의 서문(序文)이며, <영유서재기(永柔書齋記)>는 부친의 임소에서 지은 기문(記文)이다. 이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부록의 <언행록(言行錄)>과 <경행사기(景行祠記)>는 이준(李埈)이 지은 ≪일선지(一善志)≫에서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동인(東人)으로서 당쟁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10여 년간을 한직(閒職)에 머물렀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김휴(金烋, 1597~1638) | 경와집(敬窩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경와(敬窩) 김휴(金烋, 1597~1638)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가전(家傳)되던 초고가 1860년대 후반 이후인 철종 말년에서 고종 초기에 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시로는 관동의 산수를 유람하는 길에 인동(仁同)에 들러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찾아뵙고 도산(陶山)에 한 달을 머물다가 떠난 선우협(鮮于浹)을 전송하면서 지은 <송선우돈암환관서부(送鮮于遯庵還關西賦)>, 나이 서른에 학문도 이루지 못하고 가난 때문에 종형제 여섯이 함께 살지도 못하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아 종제(從弟) 김주(金燾)에게 준 <감회기종제자인부(感懷寄從弟子仁賦)>, 등에 제(題)한 연작시(連作詩)가 들어 있는 <제영(題詠)>, 금강산을 기행하면서 지은 시를 모은 <금강록(金剛錄)>, 장현광 등에 대한 만사, 임종을 앞두고 학문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저자의 탄식을 담은 <임종자만(臨終自輓)> 등이 있다. 잡저로 실린 <조문록(朝聞錄)>은 근독(謹獨), 불기(不欺), 등에 대한 내용을 경전 및 낙민 제현(洛閩諸賢)의 글에서 뽑아 엮은 것으로서 도식(圖式)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놓아 수양서로 읽기 좋도록 편찬되었다.
▶김흔(金訢, 1448~1492) | 안락당집(顔樂堂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강대,충남대,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안락당(顔樂堂) 김흔(金訢, 1448~14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20여 년이 지난 1513년(중종8)에 아들 김안로(金安老)에 의하여 수습ㆍ편집되어 1516년(중종11)년 영주(榮州)에서 간행되었다. 본 문집은 4권 2책이다. 권1에는 시가 실려 있으며 전반부에는 편자가 수습한 시(詩)를 시체(詩體)나 창작 시기의 구분 없이 수록하고, 후반부에는 저자의 자편 행록(自編行錄)인 <부상기행록(扶桑紀行錄)>과 <관광록(觀光錄)>을 토대로 대략 창작 순서에 따라 편차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김종직(金宗直)ㆍ김극검(金克儉)이 쓴 발후(跋後)가 첨부되어 있다. 권2에는 29편의 산문(散文)을 <잡저>로 표제(標題)하여 수록하였다. 문체별로는 변(辨), 서(序), 상량문, 시책문(諡冊文), 제문, 가요(歌謠) 등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김안로가 찬(撰)한 세계와 연보가 실려 있다. 권4에는 저자와 형 김심(金諶)의 묘도 문자 및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기록과 인물에 대한 간략한 평을 붙인 <선집기(先執記)>가 있다. 전체적으로 공사(公事)에 관한 내용이 많아 10여 년간 문사(文事)를 담당했던 저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흥국(金興國, 1557~1623) | 수북정집(水北亭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북정(水北亭)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화재로 인해 문고(文稿)는 전혀 없이 시(詩) 약간 편만 남아 있던 것을 저자의 6대손 김재련(金載鍊)과 7대손 김호철(金浩喆), 김호일(金浩一) 등이 주축이 되어 수집(蒐集) 편차(編次)하고 송치규(宋穉圭)의 서문(序文)과 송흠대(宋欽大)의 발문(跋文)을 받은 뒤, 황옥(黃鈺)이 써 준 행장(行狀) 등을 첨부하여 1832년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저자의 시(詩)를 모은 시고(詩稿)와 부록(附錄)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卷頭)에 송치규가 1831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目錄)이 있다. 시(詩)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고시, 장단구(長短句)로 이루어진 칠언고시로 총 160제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부록에는 황신(黃慎)의 후손 황옥(黃鈺)이 지은 행장과 신흠(申欽)이 수북정(水北亭)의 팔경(八景)을 읊은 시 및 저자의 시에 차운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 송흠대(宋欽大)와 이지수(李趾秀)가 1832년에 지은 발(跋) 2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흥락(金興洛, 1827~1899) | 서산집(西山集)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집 간행 작업이 시작되어 약 7년 동안 선사, 감교의 과정을 거쳐 1907년에 원집(原集) 24권, 속집(續集) 6권 합 16책으로 간행되었다. 원집 권1은 시(詩) 124제인데, 그중에서 만사(輓詞)가 57편이다. 권2는 영해 부사(寧海府使)를 사직하는 소(疏)와 서(書)이다. 편지 중에서 <상정재유선생문목(上定齋柳先生問目)>은 퇴계(退溪)의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 대해 질의하고 유치명(柳致明)이 답한 내용을 첨부한 편지이다. 이밖에도 ≪중용장구≫의 귀신장(鬼神章), 주기주리설(主氣主理說) 등 성리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 권13~14는 잡저이다. 이 중에서 <입학오도(入學五圖)>는 배움에 이르는 길을 입지(立志),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고, <논어차의(論語箚疑)>는 ≪논어(論語)≫의 여러 구절을 뽑아서 해석한 것이고, <가제의(家祭儀)>는 사당(祠堂), 사시제(四時祭), 묘제(墓祭), 토신제(土神祭)의 의식 절차에 대해 도표를 곁들여 설명하는 글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희순(金羲淳, 1757~1821) | 산목헌집(山木軒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산목(山木) 김희순(金羲淳, 1757~182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유적(遺蹟)과 유문(遺文)의 정리를 맡은 이는 동생 양순(陽淳)이다. 양순은 1827년경 홍석주(洪奭周)에게 신도비명(神道碑銘)을 부탁하고 유문을 수습(收拾) 편차(編次)하였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재임 중이던 1833년에 이익회(李翊會)의 서문(序文)을 추가하여 목판(木板)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本集)은 18권 9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卷首)에 1833년 이익회가 쓴 서(序), 동생 양순이 쓴 발(跋)과 총목(總目)이 있다. 목록(目錄)은 불규칙하게 편성되어 있던 것을 영인시 재편(再編)하여 권1, 권2~3, 권4~5, 권6~7, 권8~10, 권11~13, 권14~15, 권16~18로 묶어서 해당 권 앞에 배치하였다. 권4~7은 강의(講義)로 1789년 경연(經筵)에서 ≪시경(詩經)≫에 대한 정조(正祖)의 조문(條問)에 답변한 것이다. 권16~18은 모두 응제록(應製錄)으로 반교문(頒敎文), 제문(祭文), 진향문(進香文), 비(碑), 부(賦), 시(詩), 표(表), 책(策), 서(序), 기(記), 논(論), 설(說)이다.
▶김희주(金煕周, 1760~1830) | 갈천집(葛川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갈천(葛川) 김희주(金煕周, 1760~1830)의 문집이다. 서발(序跋) 등 간행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다만 5대손 응환(應煥)의 연보발(年譜跋)에 의하면 1903년 간행 당시에 가장(家藏)되어 있던 저자의 원고(原稿) 가운데 반 정도를 산삭(刪削)하고 50부만 인출하여 반질(頒帙)하였다고 한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4는 경연강의(經筵講義), 서(書)이다. 경연강의는 1800년과 1809년 경연에 입시하였을 때 경전을 강독하면서 성군이 되기 위한 방안을 진달하는 등 순조(純祖)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권5는 서(書), 잡저(雜著)이다. 서는 한진호(韓鎭㦿), 이시수(李蓍秀) 등 8인과 문중에 보낸 것이다. 서학(西學)과 영남 사림을 연계하여 무함한 오영(吳瑛)에게 변무한 것, 금희규(琴僖圭)에게 ≪중용장구≫와 ≪대학장구≫에 관한 질의에 별지로 답한 것 등이고, <기해의예변(己亥議禮辨)>에서는 기해예송에서 체이부정설(體而不正說)을 제기한 송시열(宋時烈)을 비판하였다. 권7은 발(跋), 명(銘),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상향축문(常享祝文), 제문(祭文)이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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