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書總目(도서총목)
初學(초학) 入門書
經部(경부)
文集類(문집류) : 1,262종
古地圖(고지도)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선정
Leipziger Buchmesse
家文을 찾아서
국보급 書畵帖
50%할인 선착순특판
[알림 및 공지사항]
학선재 소식지
출간희망도서 접수
우리책과 문화유산[영상]
 02)453-1040(代)

(평일)오전10시~오후5시


이메일문의
우리은행
1002-833-836076
예금주:박수준
 
 
비밀번호 확인 닫기
文集類(문집류) : 1,262종 > 신활자본-저자별 > [바]저자[신활자본] : 76종(비단표지)

 
[바]저자[신활자본] : 76종(비단표지)
상품명 : [바]저자[신활자본] : 76종(비단표지)
판매가격 : 100,000원
  • 책번호 :
  • 문집명 :
  • 저자 :
  • 권책수 :
  •    
총 상품 금액 0
*아래 목록표을 보고 직접 입력해 주세요
*여러 부 구매시 권책수에 함께 기재. 예)1책(2부)
*[입력옵션 추가] 클릭 후, 책수에 맞게 수량 조정
*권당:10만원[비단],12만원[능화]
*포갑추가는 별도 주문
     
 

* 책   크기 : 정본 A4(20.5 x 29.3cm)
* 비단표지 : 비단 천으로 제작하여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상단의 도서 이미지가 비단표지 견본) 
* 능화표지 : 옛 고서처럼 한지를 전통 匠人이 손수 배접/능화판 작업으로 고급스럽게 제작됩니다.
* 포갑추가 : 포갑은 별도 품목으로 주문시 [포갑추가]를 하면 맞춤제작됩니다. 포갑추가 주문서 작성 : 바로가기(클릭)
확대보기
<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문집 신활자본 견본>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저자별 > 바 : 76종
책번호 [바]저자 서명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사123 박광일(朴光一, 1655~1723) 손재집(遜齋集)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72 박광전(朴光前, 1526~1597) 죽천집(竹川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07 박광후(朴光後, 1637~1678) 안촌집(安村集)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86 박규수(朴珪壽, 1807~1876) 환재집(瓛齋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74 박기종(朴淇鍾, 1824~1898) 죽포집(竹圃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77 박내오(朴來吾, 1713~1785) 이계집(尼溪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3 박로(朴𥶇, 1584~1643) 대호유고(大瓠遺稿)
*복초집(復初集)
4책 1개 박형원,박상덕,박홍준 등 *신규
바044 박로(朴𥶇, 1584~1643) 복초집(復初集)
*대호유고(大瓠遺稿)
4책 1개 박형원,박상덕,박홍준 등 *신규
사090 박문오(朴文五, 1835~1899) 성암집(誠菴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30 박문일(朴文一, 1822~1894) 운암집(雲菴集) 25책 5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바059 박미(朴瀰, 1592~1645) 분서집(汾西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65 박민(朴敏, 1566~1630) 능허집(凌虛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62 박상(朴祥, 1474~1530) 눌재집(訥齋集) 6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122 박상현(朴尙玄, 1629~1693) 우헌집(寓軒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0 박성(朴惺, 1549~1606) 대암집(大菴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34 박성양(朴性陽, 1809~1890) 운창집(芸窓集)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36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서계집(西溪集) 11책 2개 연세대 중앙도서관,박승만(朴勝萬)
나016 박세채(朴世采, 1631~1695) 남계집(南溪集) 56책 1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9 박수검(朴守儉, 1629~1698) 임호집(林湖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8 박수춘(朴壽春, 1572~1652) 국담집(菊潭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7 박수현(朴守玄, 1605~1674) 초정유고(草亭遺稿) 5책 1개 박형원 등 *신규
사010 박순(朴淳, 1523~1589) 사암집(思菴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99 박승임(朴承任, 1517~1586) 소고집(嘯皐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4 박시묵(朴時默, 1814~1875) 운강집(雲岡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12 박시원(朴時源, 1764~1842) 일포집(逸圃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19 박여량(朴汝樑, 1554~1611) 감수재집(感樹齋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40 박여룡(朴汝龍, 1541~1611) 송애집(松崖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9 박영(朴英, 1471~1540) 송당집(松堂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18 박영석(朴永錫, 1735~1801) 만취정유고(晩翠亭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67 박영원(朴永元, 1791~1854) 오서집(梧墅集) 12책 2개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96 박운(朴雲, 1493~1562) 용암집(龍巖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7 박운수(朴雲壽, 1797~1841) 덕은유고(德隱遺稿)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53 박윤묵(朴允默, 1771~1849) 존재집(存齋集)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7 박윤원(朴胤源, 1734~1799) 근재집(近齋集)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3 박은(朴誾, 1479~1504)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1 박의중(朴宜中, 1337~1403) 정재일고(貞齋逸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3 박이장(朴而章, 1547~1622) 용담집(龍潭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6 박익(朴翊, 1332~1398) 송은집(松隱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73 박인(朴絪, 1583~1640) 무민당집(无悶堂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34 박인로(朴仁老, 1561~1642) 노계집(蘆溪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97 박장원(朴長遠, 1612~1671) 구당집(久堂集) 18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6 박재형(朴在馨, 1838~1900) 진계집(進溪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54 박전(朴全, 1514~1558) 송파일고(松坡逸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29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정유각집(貞㽔閣集)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9 박종경(朴宗慶, 1765~1817) 돈암집(敦巖集)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2 박종여(朴宗輿, 1766~1815) 냉천유고(冷泉遺稿)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45 박준원(朴準源, 1739~1807) 금석집(錦石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7 박지계(朴知誡, 1573~1635) 잠야집(潛冶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58 박지서(朴旨瑞, 1754~1819) 눌암집(訥菴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51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67 박지화(朴枝華, 1513~1592) 수암유고(守庵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01 박창원(朴昌元, 1683~1753) 박담옹집(朴澹翁集)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마008 박치복(朴致馥, 1824~1894) 만성집(晩醒集)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38 박태무(朴泰茂, 1677~1756) 서계집(西溪集) 8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32 박태보(朴泰輔, 1654~1689) 정재집(定齋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9 박태순(朴泰淳, 1653~1704) 동계집(東溪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04 박태한(朴泰漢, 1664~1697)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02 박팽년(朴彭年, 1417~1456)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44 박필주(朴弼周, 1680~1748) 여호집(黎湖集) 15책 3개 하버드대학
가091 박홍미(朴弘美, 1571~1642) 관포집(灌圃集)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57 박홍중(朴弘中, 1582~1646) 추산집(秋山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9 박흥생(朴興生, 1374~1446) 국당유고(菊堂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17 배삼익(裵三益, 1534~1588) 임연재집(臨淵齋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91 배상룡(裵尙龍, 1574~1655) 등암집(藤庵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93 배상열(裵相說, 1759~1789) 괴담유고(槐潭遺稿)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47 배용길(裵龍吉, 1556~1609) 금역당집(琴易堂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03 배유화(裵幼華, 1611~1673) 팔사유고(八斯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06 배응경(裵應褧, 1544~1602) 안촌집(安村集)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69 백경해(白慶楷, 1765~1842) 수와집(守窩集) 4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가154 백광홍(白光弘, 1522~1556) 기봉집(岐峯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76 백광훈(白光勳, 1537~1582) 옥봉집(玉峯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05 백문보(白文寶, 1303~1374) 담암일집(淡庵逸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1 백분화(白賁華, 1180~1224) 남양시집(南陽詩集)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30 범경문(范慶文, 1738~1801)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5 변계량(卞季良, 1369~1430) 춘정집(春亭集)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사112 변종운(卞鍾運, 1790~1866) 소재집(歗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러두기>---------------------------------------------------
*총 문집 : 1,262종
*본 문집 [신활자본]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원문 자료를 활용하여 제작됩니다.
*한국고전번역원(http://db.itkc.or.kr) <한국문집총간>에서 자세한 서지 및 해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규로 추가된 문집은 진하게 표시하였습니다.
*문제 소지가 있는 문집은 출간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허위사실, 악의적 왜곡 및 비방 내용 등)
*회색으로 표시된 문집은 출간이 제한된 도서입니다.
*방대한 원문을 자료화 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전번역원 원문 오류신고 참조) 
*본 문집 외에 추록할 내용이 있으면, 책 말미에 추가하여 제본해드립니다. (별도 비용)
*문의처 : 02-453-1040, 이메일 
haksunje@naver.com
  

---<해제 : 상세보기>----------------------------------------------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저자별 > 바 : 76종

▶박광일(朴光一, 1655~1723) | 손재집(遜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1655~17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박하진(朴夏鎭) 등이 수습하여 20편을 만들고 이민보(李敏輔)의 산정을 거쳐 1782년에 목활자본 10권 5책으로 인행하였다. 권1은 부(賦) 1수와 시(詩) 80여 수이다. <차유통(次幽通)>은 후한의 반고(班固)가 지은 <유통부(幽通賦)>에 차운한 것이다. 화양동(華陽洞)에 들어갈 때에 지은 시 등이 실려 있다. 권2는 소(疏) 6편이다. 최석정(崔錫鼎)이 엮은 ≪예기유편(禮記類編)≫에 대해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내용 등이 있다. 권3~4는 서(書)인데, 주로 경전의 뜻을 토론하는 내용이다. 권5~7은 잡저이다. 예설(禮說)에 대한 문답과 <삼재일태극도설(三才一太極圖說)>, <하도생성수설(河圖生成數說)> 등 저자의 학문 성향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권8은 서(序), 발(跋), 기(記), 제문, 묘지, 묘표, 행장이다. 권9는 우암선생어록(尤庵先生語錄)이다. 경전과 예설에 대한 제가(諸家)의 주석에서부터 윤휴(尹鑴)와 윤증(尹拯)에 대한 비판, 기타 신변 잡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권10은 근사록차기(近思錄箚記)이다.
▶박광전(朴光前, 1526~1597) | 죽천집(竹川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의 문집이다. 시문은 문인인 선정달(宣廷達)이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었는데 주자서(朱子書)에 대한 질의(質疑) 1책만 따로 간행되었을 뿐 오랫동안 산정도 거치지 못한 초고 상태로 있었던 듯하다. 연보에 의하면 1739년 ‘문집성(文集成)’이라고 하여 이 시기에 저자의 후손 박봉석(朴鳳錫) 등이 편차해 성서(成書)해서 윤봉조(尹鳳朝)에게 서문을 받아 간행을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1754년 봄에 5대손 박내석(朴乃錫) 등이 불분권 1책으로 간행하였지만 전하지 않는다. 1809년에 후손 박재환(朴在煥), 박형덕(朴馨德) 등이 이후에 수집한 시문을 증보하고 범례와 연보 등의 내용을 수정하여 송치규(宋穉圭)의 고열(考閱)을 거쳐 용산서원(龍山書院)에서 4권 2책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권1~5는 저자의 시문이고 권6~9는 부록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제문은 1610년에 저자를 좌승지에 추증할 때에 내린 제문과 1707년에 용산서원을 사액할 때에 내린 제문이다. 마지막에는 1930년에 죽곡정사(竹谷精舍)에서 간행한다는 인권지(印權紙)가 실려 있다.
▶박광후(朴光後, 1637~1678) | 안촌집(安村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 1637~1678)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1년 기정진(奇正鎭)의 서문을 받은 후, 저자의 사손 원규(元圭)가 부록을 증보하여 아들 중회(重繪)의 소은집(素隱集)과 함께 190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기정진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소, 서(書)이다. 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것이 1675년에 지은 것이므로 본서에 수록된 저자의 시는 대부분 만년작으로 추정된다. 수창시가 다수를 차지하며, 수창한 이들은 송시열(宋時烈), 나세기(羅世器) 등이다. 권2는 서(書)로서, 스승 송시열과 족숙 박치도(朴致道)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3은 잡저, 어록, 기이다. 그중 잡저의 <수록(手錄)>은 예송논쟁 이후 송시열의 신변과 광주 지역 유림의 동향을 기록한 글이고, 권4는 제문, 축문, 묘갈, 행장, 속편부록으로, <갑을록(甲乙錄)>은 예송논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된 송시열을 신구하기 위한 저자의 활동을 기록하였고, 말미에는 광주 안청리(安淸里)에 있는 저자의 집 외성당(畏省堂)에 대한 시문이 실려 있다.
▶박규수(朴珪壽, 1807~1876) | 환재집(瓛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박선수(朴瑄壽)에 의해 수집 교정된 다음 이후 문인 김윤식(金允植)이 주도하여 유고의 편집ㆍ간행이 이루어졌다. 김윤식의 문집 ≪속음청사(續陰晴史)≫에 간행 과정이 상세히 나타나 있는데, 김윤식은 1911년 9월 28일에 조기원(趙蘷元)을 시켜 본서를 필사하게 하였고, 조기원의 필사가 마음에 들지 않자 10월 3일에 황병욱(黃炳郁)으로 바꾸어 필사하게 하여, 11월 30일에 중초본을 완성하였다. 1912년 4월에 총독부의 간행 허가를 받아, 5월 2일부터 보성사(普成社)에서 연활자(鉛活字)로 간행을 시작하였는데, 1913년 7월 4일에 본서 5책을 200부 간행하였다. 본서는 11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1년에 김윤식이 지은 서(序), 아우 박선수(朴瑄壽)가 짓고 김윤식이 손질한 행장초, 총목이 있다. 권4는 잡저와 서(序)이다. <답김덕수논기전존의(答金德叟論箕田存疑)>는 기자가 조선에 와서 실시한 정전(井田)은 성안에만 시행된 것이 아니라 도읍지 전체에 걸쳐 시행된 것임을 논술한 글이다. 권7은 윤음, 발(跋), 자문, 서계이다.
▶박기종(朴淇鍾, 1824~1898) | 죽포집(竹圃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죽포(竹圃) 박기종(朴淇鍾, 1824~18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은 족질 순상(舜相)과 임상(琳相)의 부탁으로 오계수(吳繼洙)가 행장을, 이용원(李容元)이 묘갈명을 완성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문인 송영술(宋榮述), 고태주(高兌柱), 최택현(崔澤鉉)과 동족(同族) 우상(禹相), 홍상(洪相), 기용(淇龍), 임상 등이 간행을 결의하고,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시고(詩稿)와 산문을 유별로 편집한 뒤 1911년 기우만(奇宇萬)에게 서문을 받아 1912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기우만이 1911년에 지은 서(序), 권1~4까지의 목록(目錄)이 있는데 목록은 책별로 묶은 것이다. 권2는 소(疏)이다. 권4는 문(文), 발(跋)이다. 그중 부인 광산 김씨(光山金氏)에 대한 제문은 1천 3백여 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남편의 도리를 못한 회한(悔恨), 그리고 두 딸들에 대한 부모의 염려 등 신산(辛酸)한 저자의 가족사가 드러나 있다. 권말에 과방록(科榜錄), 박순상ㆍ오근후(吳根厚)ㆍ박임상이 지은 3편의 발(跋), 나경성(羅經成)이 1912년에 지은 후서(後敍)가 있다.
▶박내오(朴來吾, 1713~1785) | 이계집(尼溪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계(尼溪) 박내오(朴來吾, 1713~1785)의 문집이다. 시문은 생전에 수차례 초고를 정리하여 성섭(成涉), 하일호(河一浩), 이우육(李宇錥), 박규순(朴奎淳)에게 서문을 받아두었고, 50세 이후에는 초년의 시문을 따로 모아 별록(別祿)을 엮는 등, 저자는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여 꾸준히 자편고를 만들어 두었다. 저자 사후 현손 규호(圭浩)가 유적을 정리하여 저자의 5대손 헌소(憲韶)의 주관 하에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2권 5책이다. 권수에는 신헌구(申獻求)와 박치복(朴致馥)이 1893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6은 서(序), 기(記)이다. 서는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신구도(天命新舊圖)>를 개선하고 그 경위를 기록한 것과 집안 선조들에 관한 기록을 모아 정리한 ≪밀성가장(密城家藏)≫이다. 권9는 별록(別錄)이다. 어린 시절에 지은 시문을 별도로 모은 것으로, 시(詩) 18제와 <장려미앙궁부(壯麗未央宮賦)>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말미에는 노년에 별록을 엮게 된 경위를 서술한 자전적 성격의 후서(後敍)가 있다. 권말에는 저자의 외예 김진호(金鎭祜)의 발(跋)이 있다.
▶박로(朴𥶇, 1584~1643) | 대호유고(大瓠遺稿)*복초집(復初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신규
-판본소장처 : 박형원,박상덕,박홍준 등 *신규
-조선 시대 대호(大瓠) 박로(朴𥶇, 1584~1643)의 문집이다. 박로의 字는 노직(魯直), 號는 대호(大瓠), 복초헌(復初軒)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그의 문집으로 ≪대호선생유고(大瓠先生遺稿)≫와 ≪復初軒集(복초헌집)≫[일명 復初集(복초집)]이 있다. 본 ≪대호유고≫는 필사 단행본으로, 시(詩)만 모은 미정본(未定本)이다. 구성을 보면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오언고시(五言古詩) 등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심양관소(瀋陽館所)에서 소현세자 및 대군(大君), 시강원 동료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며 주고 받은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가첩(家牒)에 의하면 그의 문집으로 ≪복초헌집(復初軒集)≫이 따로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 밀양박씨의 ≪술선록(術先錄)≫에서 권두제가 ‘復初集’으로 되어 있는 별도의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내용은 대동소이 하지만 ≪대호유고≫에는 없는 안동 부사 시절 청량산 유람 때 지은 <각화유상첩(覺華遊賞帖)>과 여러 편의 시가 초반부에 실려 있고 소현세자의 편지를 비롯, 장계, 상소문, 만시와 제문 등 다수의 글이 함께 담겨 있다.
*박로에 대한 음해와 날조 : 인조의 대청외교에서 4차례의 사신행으로 국난 극복에 진력했던 그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주둔한 청군의 진영에서 40일간 눈속에서 농성을 하며 사신의 임무를 다했다. 인조의 항복 이후엔 소현세자의 스승으로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서 재신(宰臣)의 임무을 도맡아 했지만 남인(南人)과 서인(西人)들의 갖은 음해로 사론(士論)에서 배제되었다. 남인과 서인의 공동정권은 소북인(小北人)이였던 그에게 ‘정뇌경(鄭雷卿)의 죽음’을 사주했다고 음해하였다. 특히 남인계였던 김종일(金宗一)이 심양에서 살아 돌아와 거짓 소문을 유포하면서 확산되었다. 1850년 그의 후손이 만든 ≪노암집(魯庵集)≫은 날조된 글로 우후죽순 만들어진 조선 말기 문집의 대표적인 사례로 취급되고 있다. 정뇌경과 인척관계인 남인 윤선도(尹善道)정두경(鄭斗卿)정뇌경의 비문(≪고산유고(孤山遺稿)≫)묘지명(≪동명집(東溟集)≫)에 허위사실을 기재하였는데, 이 글이 1969년 정뇌경의 후손들이 만든 ≪운계집(雲溪集)≫에 실려 알려지면서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역사학자 안정복(安鼎福)도 정뇌경 조작에 일조했다. 그가 정뇌경의 행장을 다시 지어주는데, 명백한 사실관계를 무시한채 앞의 날조된 비문이 사실인양 검증해주는 내용이다.(≪순암집(順菴集)≫) 본래 행장이 먼저 쓰여지고 그것을 토대로 비문이 작성되는데, 정뇌경은 비문이 날조되고 난 후에 행장을 다시 지어 정당화 하려 한 것이다. 박로에 대한 날조된 글의 정점은 서인(노론) 송시열(宋時烈)이다. 송시열은 숙종 때 사약을 받기 전, ‘박뢰(박로+정뇌경=박뢰)’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 박로를 간신배로 뒤바꿔 놓았고 사실 관계를 완전 날조하였다. ≪송자대전(宋子大全)≫ <박광일록(朴光一錄)>≪손재집(遜齋集)≫에 그 전모가 실려 있다. 송시열 사후에도 그를 추종하는 서인과 노론(老論)들로부터 집요한 북벌론의 희생양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32년 막역지우였던 대제학 이식(李植)은 그의 문집 ≪택당집(澤堂集)≫에 40여편의 시문을 남겨,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소현심양일기(昭顯瀋陽日記)≫, ≪심양장계(瀋陽狀啓)≫ 등이 번역되어 일반에 공개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재조명 되고 있다. 힘없는 인조의 마지막 대청 외교관이자 소현세자의 스승이었던 그의 숙명이 택당의 <松竹問答> 시에 잘 담겨있다. 어떤 풍파에도 굽히지 않는 소나무는 나무 木 변의 ‘植’(이식)을, 부러지기 보다는 바람에 몸을 맡기되 청춘의 절개를 지키겠다는 대나무는 대죽 변의 ‘𥶇’(박로)를 말한다.
▶박로(朴𥶇, 1584~1643) | 복초집(復初集)*대호유고(大瓠遺稿)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신규
-판본소장처 : 박형원,박상덕,박홍준 등 *신규
- *≪대호유고(大瓠遺稿)≫ 참조
▶박문오(朴文五, 1835~1899) | 성암집(誠菴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암(誠菴) 박문오(朴文五, 1835~1899)의 문집이다. 원집은 장남 동흠(東欽)이 수습하고 문인 이윤실(李允實)이 교정을 담당하여 김학진(金鶴鎭)의 서문과 박은식(朴殷植), 전병훈(全秉薰)의 발문을 덧붙여 오도빈(吳道斌)과 함께 서울에서 전사자(全史字)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별집은 초간본에 누락된 시문과 부록이 별집으로 존재하는데도 별본(別本)으로 통행된 점으로 미루어 초간본 이후에 간행된 것은 분명하나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904년에 지은 저자의 행장이 실려 있고 초간본과 동일한 활자로 간행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초간본 간행 직후에 인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원집 4권 4책과 별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에 김학진이 쓴 서문과 이윤실의 본전(本傳)이 실려 있고, 권별로 권목이 있다. 권1은 시(詩)다. 대부분 중년 이후에 해당하는 고종 연간에 지은 것으로, 초기작은 일실된 것으로 보인다. 별집은 권두에 권별 목록이 있다. 상(上)은 사(詞), 서(書), 장(狀), 서(序), 기, 발, 묘지명이다. 하(下)는 잡저, 부록이다. 아들 동흠이 1904년에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박문일(朴文一, 1822~1894) | 운암집(雲菴集) | 권책수 : 25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암(雲菴) 박문일(朴文一, 1822~1894)의 문집이다. 초고(草藁)의 망실을 우려한 문인(門人)들이 원집(原集) 12권, 속집(續集) 및 부록(附錄) 13권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초간본(初刊本)의 권질(卷帙)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이유로 백례행(白禮行), 노덕제(盧德濟), 김응묵(金應默) 등의 문인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의 예에 따라 1911년에 초간본의 내용을 요약(要約)하여 17권 9책으로 문집을 중간(重刊)하였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12권, 속집 18권, 연보(年譜) 2권 합 25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卷頭)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2는 말미(末尾)에 실려 있는 조수초목(鳥獸草木) 및 기물(器物)을 읊은 시에서 소소한 사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권11은 서(序), 기(記), 발(跋),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비문(碑文), 행장(行狀)이다. 연보(年譜)는 상ㆍ하로 되어 있다. 저자의 아우 문오(文五)가 작성한 것으로, 1822년 저자의 출생부터 1897년 운곡정당(雲谷正堂)에 저자의 영정을 봉안할 때까지의 사실이 실려 있다.
▶박미(朴瀰, 1592~1645) | 분서집(汾西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분서(汾西) 박미(朴瀰, 1592~1645)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세채(世采)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장손 태두(泰斗)가 168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詩)로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고 각 시체 내의 작품 배열은 연대순을 따르고 있다. 소재는 단군묘(檀君廟), 기자묘(箕子廟), 동명왕묘(東明王廟)를 비롯한 유적, 묘청(妙淸)의 난과 무신(武臣)의 난, 임진왜란 등 역사적 사건, 김부식(金富軾)과 정지상(鄭知常), 이여송(李如松)과 이성량(李成梁) 등 인물에 얽힌 고사가 있다. 이밖에 처용무(處容舞), 학련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 배따라기, 그네뛰기, 연등(燃燈), 썰매타기 등 민속 자료도 풍부하다. 권9~10은 서(序)이고, 권11은 기(記)이다. 권12는 묘지명이고 권13은 묘표와 행장이다. 권14는 잡저이고 권15는 제문이다. 권16은 발(跋)이고 부록으로는 저자가 지은 자지와 저자의 조카 세채가 여기에 덧붙인 후서(後敍), 그리고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 세채가 지은 행장이 있다. 권말에 박세채가 지은 발문이 있다.
▶박민(朴敏, 1566~1630) | 능허집(凌虛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능허(凌虛) 박민(朴敏, 1566~16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1631년에 문인 제자들이 유집을 편찬하고 연보, 행록, 사우록 등을 서술하여 약간 권으로 만들었고, 1640년 소실된 후, 증손 태무(泰茂)가 시문을 집일하고 자편한 사우록과 함께 1741년 편차한 고본에 6대손 지서(旨瑞)가 부록(附錄)을 증보하여 1799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하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정범조(丁範祖)가 1797년에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서(書)이고, 권2는 잡저(雜著)이다. 그중에서 책문은 1626년에 지은 것으로 전왕의 제도를 따라 지키는 준수(遵守), 변통하여 개혁하는 경장(更張)에 대해 논한 것이다. 권3과 권4는 부록이다. 권3은 세계(世系), 연보(年譜), 행장, 묘지명, 묘갈명, 언행총록(言行總錄), 언행별록(言行別錄), 유사, 보유이고 권4는 <사우록(師友錄)>이다. 정구(鄭逑), 최영경(崔永慶), 김우옹(金宇顒) 등 97명의 행적이 간략하게 적혀 있고, 권말에 증손 박태무가 1741년에 지은 발문과 조술도(趙述道)가 1799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박상(朴祥, 1474~1530) | 눌재집(訥齋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8백여 수가 남아 전하였는데, 동생 박우(朴祐)가 7권으로 산정하였고, 이 산정본을 1547년(명종2)에 임억령(林億齡)이 금산 임소에서 시 7권과 행장 1권 합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43년(헌종9)에 광주 목사 조철영(趙徹永)이 간행한 사간본으로, 본집 7권ㆍ속집 4권ㆍ별집 1권ㆍ부록 2권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 7권은 부(賦) 3편과 시이다. 속집 4권은 김수항(金壽恒)이 편집한 것으로 저자의 시문과 문인들의 글이다. 별집 1권은 본ㆍ속집에 빠진 시문을 여러 문헌에서 뽑아 수록한 것으로, 부와 을해년 봉소(封疏)할 당시 지은 시 및 김정(金淨)ㆍ유옥(柳沃)의 차운시가 포함되어 있고, 이어 신도비명ㆍ묘갈명을 비롯하여 서간ㆍ표(表)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부록으로는 윤구(尹衢)가 지은 행장, 김정이 짓고 저자가 첨삭한 <청복고비신씨소(請復故妃愼氏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김창협(金昌協)의 발문이 실려 있다. 청렴하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저자의 타고난 시재(詩才)와 웅장한 기풍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박상현(朴尙玄, 1629~1693) | 우헌집(寓軒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우헌(寓軒) 박상현(朴尙玄, 1629~169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이 ‘모연지기(暮年知己)’라 하였고, 본집에도 우암(尤庵)과의 편지, 만시(挽詩)와 제문(祭文)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 우암과의 관계를 강조한 1780~1790년대 경에 활자로 인행(印行)한 초간본은 전하는 것이 없고, 1889년(고종26)에 송기노(宋綺老)에게 발문을, 1898년(광무2)에 후손 박태동(朴泰東), 박협동(朴協東) 등이 송근수(宋近洙)에게 서문을 받아 상하 2책을 5권 2책으로 분권(分卷)하여 목활자로 중간(重刊)하였다. 문집은 5권 2책으로 권두에 송근수의 서문과 총목록이, 권1은 시, 권2~4는 편지글, 권5는 잡저로 <음양소장도(陰陽消長圖)>, <이설(理說)>과 퇴계(退溪)와 고봉(高峯)의 사칠왕부서(四七往復書)에 대한 제후(題後) 등이 실려 있다. 권말은 1717년 권상하(權尙夏) 지은 묘갈명, 이희조(李喜朝)가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권차(卷次) 외에 첨부되어 부록(附錄)에 해당하는 글인데, 권수제(卷首題)는 없고 판심제(板心題)가 각기 우헌선생묘갈명(寓軒先生墓碣銘), 우헌선생묘지명(寓軒先生墓誌銘)으로 되어 있다.
▶박성(朴惺, 1549~1606) | 대암집(大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대암(大菴) 박성(朴惺, 1549~160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졸한 뒤 70여 년이 지나 증손 박세희(朴世煕)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편차하고 1679년에 이윤우(李潤雨)의 손자인 이원정(李元禎)에게 서문을 받는 등 간행을 준비하였고 1693년에 박세희가 조원기(趙遠期)의 협조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4책이고 권수에는 1679년에 이원정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오언절구, 오언사운, 오언고시, 칠언절구로 차운한 시, 왜란과 관련된 시 등이 있고, 권2에는 제문, 잡저, 서(序), 통문이 실려 있는데 특히 <소모밀양사민통문(召募密陽士民通文)>은 김성일(金誠一)의 종사관으로 있을 때, 밀양의 백성들에게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임금과 부형을 위해 의병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권3은 서(書)와 묘지명이고 권4에는 소(疏) 3편이 실려 있으며 권5~6은 부록으로, 장현광(張顯光)이 1632년에 지은 행장과 정구(鄭逑)ㆍ조호익(曺好益) 등이 지은 만사 12편, 장현광(張顯光)ㆍ이후경(李厚慶) 등이 지은 제문 35편, 김세렴이 1641년에 지은 묘비명이 실려 있다.
▶박성양(朴性陽, 1809~1890) | 운창집(芸窓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운창(芸窓) 박성양(朴性陽, 1809~1890)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인이자 척표질(戚表姪)인 이해익(李海翼)이 유초(遺草)를 수집하여 10계(呇)로 촬략(撮略)하고 1910년 봄 교감(校勘)을 완료하여 저자의 아들 승철(勝喆)에게 보내자, 승철은 성석용(成錫庸)과 비용을 마련하여 같은 해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5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930년 이환익(李桓翼)이 쓴 서문과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로 권목(卷目)이 있다. 권2는 소(疏)이다. 이 중에서 <개의제시진소회소(改衣制時陳所懷疏)>는 1884년 6월 관리들의 의복 제도를 바꾸도록 한 것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이다. 권11은 설(說), 발(跋), 명(銘), 잠(箴), 찬(贊), 상량문이다. 조선의 유맥(儒脈)과 관련하여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을 다룬 <국조칠선생찬(國朝七先生贊)>, 평안도 출신으로 병자ㆍ정묘호란 때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최효일(崔孝一), 차예량(車禮亮) 등에 대한 <관서칠의사찬(關西七義士贊)>이다. 권말에 박의동(朴儀東), 박기서(朴驥緖), 한진석(韓鎭錫)이 1930년에 지은 발(跋)이 실려 있다.
▶박세당(朴世堂, 1629~1703) | 서계집(西溪集)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박승만(朴勝萬)
-조선 후기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문집이다. 16권 8책의 목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이후 간행된 추각본으로, 모두 22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시록별(詩錄別)로 편차되어 800여 수가 실려 있다. 저자 생전에 자편(自編)해 놓은 <동행습낭(東行拾囊)>, <잠고(潛稿)>와 저자 사후(死後) 문집 간행 때 수습하여 정리한 <보유록(補遺錄)>을 합하여 편차하였다. 산문 중 서(書)의 내용은 노장설(老莊說)에 관한 견해, 전제(田制) 개혁론, 김시습(金時習)의 동봉사우(東峯祠宇) 건립에 관한 일 등이다. 서(序)에는 자신이 지은 ≪색경(穡經)≫의 서, 최석정(崔錫鼎)의 부탁으로 지은 ≪지천집(遲川集)≫의 서 등 전적에 대한 서와 송서(送序) 여러 수가 실려 있다. 간독(簡牘)은 아들, 조카 등에게 안부를 묻거나 학문상의 의문에 답하거나 정치 현안에 대해 조언하거나 지방관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밖에 다양한 내용과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사변록≫을 지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유배되는 수난을 당했던 저자의 독창적인 사상을 만나볼 수 있는 자료이다.
▶박세채(朴世采, 1631~1695) | 남계집(南溪集) | 권책수 : 56책 | 포갑수 : 1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간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1732년 초에 조현명이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의 목판본 간행을 완료하여 봉진한 것으로 보인다. 정집의 시는 470여 제이다. 이지겸, 송시열 등과 차운한 시와 만시, 애시 등이 있다. 소(疏) 중에 <정주경연고사(程朱經筵故事)>는 정자와 주자가 경연 및 주대와 관련하여 올린 차자나 주장(奏狀) 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덧붙여 놓은 것이고, <진시무만언소(陳時務萬言疏)>는 시무에 대해 12조항으로 방안을 개진한 내용이다. 서(書)는 <문답논사(問答論事)>와 <강학논예(講學論禮)>로 나누어 편차하였다. 잡저로는 <성학지행로맥(聖學知行路脈)> 등을 도(圖)로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 정주퇴율(程朱退栗)의 성리학설과 육학 등에 관해 적은 <편록(編錄)> 등이 있다. 의로는 1660년 기해복제에 관해 기년복의 타당성을 논한 <복제사의(服制私議)> 등이 있다. 기사(記事) 가운데 <기소시소문(記少時所聞)>은 김장생, 김상헌 등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다.
▶박수검(朴守儉, 1629~1698) | 임호집(林湖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 1629~1698)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양후(良垕)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현손 상순(尙淳)ㆍ문순(文淳)이 1812년 제천 광암(堤川廣巖)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810년에 김선(金銑)과 1805년에 강화석(姜華錫)이 지은 서(序)와 연보, 차남 양후가 지은 행장초가 있다. 권1~4는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으며 두보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고 이일경(李一卿), 이봉령(李鳳齡), 강재망(姜宰望) 등과 교유한 시 등이 있으며, 자주를 달았다. 권5는 주(奏), 표(表), 전(箋), 문(文), 잡저이다. 이영선(李榮先), 곽세익(郭世翼) 등을 추도한 제문, 의림지 동쪽의 우륵이 살았다는 옛 터에 우륵당을 중건하고자 1691년에 쓴 <우륵당중건권유문(于勒堂重建勸諭文)>, 이봉(李逢)의 시집과 곽세익의 <자경편(自警篇)>에 부친 서문 등이 있다. 권6은 서(序), 비명, 기, 서(書)와 책문이다. 권말에는 1812년에 현손 상순이 쓴 발과 “제천북광암개간(堤川北廣巖開刊)”의 간기(刊記)가 있다.
▶박수춘(朴壽春, 1572~1652) | 국담집(菊潭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 1572~1652)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세기에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 자편(自編)의 추선록(追先錄)이 합부되어 있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로서 차운시(次韻詩), 증시(贈詩), 만시(輓詩) 등이 많다. 권2는 소(疏), 격(檄), 서(序), 문(文), 잠(箴), 명(銘)이다. 그중에서 <무오소(戊午疏)>는 1618년에 광해군(光海君)에게 올리려고 지었으나 소장(疏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왕명으로 인해 올리지 못했고, <창의격(倡義檄)>은 1597년에 왜구가 재침하자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들어가며 백성들에게 창의(倡義)에 참여할 것을 권한 격서(檄書)이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1657년에 조임도(趙任道)가 지은 행장(行狀)을 비롯하여 행록(行錄), 묘갈명(墓碣銘), 여표비명(閭表碑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봉안할 때의 제문(祭文) 및 봉안문, 상량문, 문집서(文集序),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린 저자 관련 기술 등이 실려 있다.
▶박수현(朴守玄, 1605~1674) | 초정유고(草亭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신규
-판본소장처 : 박형원 등
-조선 시대 초정(草亭) 박수현(朴守玄: 1605~1674)의 문집이다. 자(字)는 태현(太玄)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시(詩)와 문장(文章)에 능하였던 그는 소암(疎菴)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의 문하에서 수학(受學)하였고, 조선 중기에 소북파(小北派) 팔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으로 불리었다. 소북 팔문장은 草亭 朴守玄(박수현), 南谷 任翰伯(임한백), 滄溟 南翧(남선), 雪峯 姜柏年(강백년), 竹堂 申濡(신유), 庥菴 李休徵(이휴징), 沙川 沈𪗆(심제), 晩洲 鄭昌胄(정창주)가 그들이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과 남인이 정쟁으로 다툴 때, 학식과 명망이 높았던 이들은 막역한 친분으로 당대 사림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본 유고(遺稿)는 8백30여 수(首)의 시(詩)와 60여 편(篇)의 문(文)이 문집형식의 5책으로 된 필사본(筆寫本)이다. 당시에 교류하였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심경을 여과 없이 읊은 작품들이 저작의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어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또한 초정(草亭)이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의 침체된 나라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산중(山中)의 제왕인 호랑이를 의인화(擬人化)한 <산군전(山君傳)>은 가전체(仮傳體) 문학의 귀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시를 주제로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할 만큼 특히 시(詩)에 능했으며 거문고에도 능하여 당대 제일가는 한양 풍류객이자 소북의 결속을 주도했던 학자이다. 
▶박순(朴淳, 1523~1589) | 사암집(思菴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외증손 이문망(李文望)이 1652년 전주에서 처음 간행하였고, 그 후 박원응(朴源應)이 저자의 유문(遺文)과 고사(故事) 등을 수집하여 원집에 첨부한 뒤 1857년 전주에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중간본으로 7권 3책의 목판본이다. 권수에는 김상헌(金尙憲)의 서문이 실려 있고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이다. 송순(宋純)의 면앙정(俛仰亭)에 제(題)한 30운(韻)과 재상어사(災傷御史)로 나갔을 때에 지은 23수를 비롯하여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들이 다수 들어있다. 권4는 문이다. 윤원형(尹元衡)을 논척(論斥)한 계(啓), 이이(李珥)와 이기(理氣)에 대해 논(論)한 서(書) 등이 있다. 권5~7은 부록이다. 이 중 권7에는 저자 관계 기록과 중국 사신을 비롯하여 당대ㆍ후대의 문인 교우들이 지은 송별시ㆍ차운시ㆍ제시(題詩)ㆍ만시(挽詩)ㆍ추모시(追慕詩) 등이 실려 있다. 서경덕의 문인으로 동서 당쟁 속에서 이이ㆍ성혼을 편들다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은거했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박승임(朴承任, 1517~1586) | 소고집(嘯皐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문도(門徒) 김륵(金玏), 오운(吳澐) 등이 1600년 5월 이산서원에서 회합을 갖고, 6월에 초고를 산절(刪節)ㆍ교정(校正)하였다고 한다. 원집 4권 2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속집은 1782년 저자의 6대손 박희천(朴希天)이 1782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권1은 4편의 부(賦)와 1541년 풍기 군수(豐基郡守)로 부임하는 주세붕(周世鵬)을 전송하는 시로 시작하여 권2에는 1569년 사행(使行) 때의 시작(詩作)인 <관광록(觀光錄)>이 있다. 권3부터 수록된 산문은 <소수서원화상개수지(紹修書院畫像改修識)>, <향교가요(鄕校歌謠)> 등 서원(書院)과 관련된 글이 많다. 속집 역시 <무극부(無極賦)>로 시작하여 시가 권1~2에 실려 있다. 원집에는 공거문이 수록되지 않은 반면, 속집에는 상소, 차자(箚子), 계사(啓辭), 전(箋)이 수록되어 있다. 퇴계의 문인으로 1557년 윤원형(尹元衡)의 세도가 더욱 심해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심학(心學)ㆍ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저자의 학문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박시묵(朴時默, 1814~1875) | 운강집(雲岡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 1814~1875)의 문집이다. 아들 재형(在馨)은 자신의 문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산정하라는 부친의 유지에 따라 원고를 세 번 바꾼 뒤에야 유고(遺稿)를 3책으로 완성한 다음, 손자 내현(來鉉)이 1894년 김도화(金道和)에게 서(序)를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한 듯하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도화가 1894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저작 연대나 시체를 구분하지 않고 편차되어 있다.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등 ≪소학≫의 편목을 제재로 핵심 내용을 시화(詩化)한 <독소학(讀小學)>등 ≪소학≫을 중시하여 만년까지 수시로 읽고 음미하며 스스로 “나는 소학 중의 사람이다.”라고 했던 저자의 추향(趨向)을 보여 준다. 권2~3은 서(書)이다. 외세의 침입이 극심해지는 시국을 걱정하거나 서로의 근황과 경조사에 대한 인사를 전하는 내용 외에 선조(先祖)와 선유(先儒)의 유집 편찬에 관한 일 및 서원(書院) 철폐령에 따라 그곳에 봉안된 사적(事蹟)의 처리 문제 등 실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권말에 아들 재형이 쓴 발문이 있다.
▶박시원(朴時源, 1764~1842) | 일포집(逸圃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 1764~1842)의 문집이다. 아들 종교(宗喬)가 지은 가장을 바탕으로 유치명(柳致明)에게 행장을, 강필효(姜必孝)에게 묘갈명을 받아 저자의 유적을 정리하였다. 이후 영천의 사림들이 유문을 부집(裒輯)하고 이휘녕(李彙寧)의 발문을 받아 문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5는 설(說), 전(傳), 뇌사(誄辭), 축문이다. 설 중에서 <사군물기설(事君勿欺說)>은 1798년 초에 경연을 마친 뒤 정조가 지은 부(賦)가 몇 편이나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500여 편을 지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보름 후에 과거 합격으로 사은했을 때 정조가 이를 기억했던 일을 서술하였다. 전 중 <체상여인전(髢商女人傳)>은 가난한 가발 장수 여인이 길가에서 명주를 주어 주인을 찾아주고는 반반씩 나누어 갖자는 제안도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고 쓴 것이다. <열부유인송씨전(烈婦孺人宋氏傳)>은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병으로 먼저 죽자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에 자결한 열부 이동욱(李東煜)의 처에 관한 것이다. 권말에는 이휘녕이 지은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박여량(朴汝樑, 1554~1611) | 감수재집(感樹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감수재(感樹齋) 박여량(朴汝樑, 1554~16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8대손 박창도(朴昌道)와 노상현(盧相鉉), 김준호(金俊鎬) 등이 산실되고 남은 수택고본(手澤藁本)과 통문(通文)을 돌려 수집한 유문(遺文) 등을 합편하고, 저자의 손자 박명진(朴鳴震)의 ≪사암공실록(思菴公實錄)≫을 부집(附集)하여 1914년 안의군(安義郡) 장수동(長水洞)에서 활자(活字)로 8권 5책을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8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914년 정연시(鄭然時)가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권2는 시(詩)와 부(賦)인데, 만시에서는 선조(宣祖), 하항(河沆), 박성(朴惺) 등을 애도하였다. 권3은 소(疏)와 계(啓)이며 권4는 전(箋), 장(狀), 책(策), 서(書), 명(銘), 제문(祭文), 고유문(告由文), 기(記), 서(序)이다. 권5~6은 잡저(雜著)이고 권7~8은 부록으로 세계도(世系圖)와 연보(年譜), 교서(敎書), 사제문(賜祭文) 등이 있으며 권미에 저자의 시문 수집을 위해 돌린 통문과 1914년 정직교(鄭直敎)가 지은 발(跋)이 있다.
▶박여룡(朴汝龍, 1541~1611) | 송애집(松崖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송애(松崖) 박여룡(朴汝龍, 1541~16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전란을 겪는 동안 거의 유실된 것을 후손 박서동(朴瑞東)이 유고(遺稿)를 수집, 편차하여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교정(校正)을 거친 후 1776년 목판(木板)으로 처음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50년 후손 박상준(朴相駿) 등이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에는 <석담어록(石潭語錄)>이 실려 있는데, 대체로 율곡(栗谷)에게 배울 때의 문답을 기록한 것이다. 권2에는 저자의 유고 7편이 실려 있는데, <은병정사청액소(隱屛精舍請額疏)>ㆍ<동문계서(同門契序)>와 <약속(約束)> 16조(條)ㆍ<박윤생채갈설(駁尹甥採葛說)> 등이 글이 있다. 권3은 연보이고, 권4는 가장(家狀), 행장(行狀), 신도비명(神道碑銘)과 방현사기(傍賢祠記), 청가증사시서(請加贈賜諡書)와 향현사봉안제문(鄕賢祠奉安祭文), 방현서원봉안제문(傍賢書院奉安祭文) 등이다. 율곡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그 공으로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봉되었던 저자의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박영(朴英, 1471~1540) | 송당집(松堂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문집이다. 1655년 4대손 박경길(朴敬吉)이 남아 있는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ㆍ대학경일장(大學經一章) 사본(寫本)과 약간의 시문을 수습하여 부록을 붙이고, 박진경(朴晉慶)ㆍ이이송(李爾松)의 발을 받아 종제(從弟)인 박경지(朴敬祉)에게 간행하도록 하였다. 이어 초간본의 편차가 잘못되었다는 사론(士論)에 따라 개간(改刊)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5년에 종손 박문호(朴文浩) 등이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중간한 삼간본이다. 본 문집은 목록ㆍ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시 19제, 서(書) 2편, 기(記) 2편 등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자찬묘표(自撰墓表)>와 <백록동규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2에는 <대학도>와 <대학경일장연의(大學經一章演義)>가 실려 있다. 권3에는 부록으로서 <도통상승차제록(道統相承次第錄)>과 <문인록> 등에서 뽑은 저자 관련 기사와 신도비명이 실려 있다. 권4에는 김재로(金在魯)가 지은 시장(諡狀)을 비롯하여 각 서원의 봉안문(奉安文) 등이 실려 있다. 시문 이외에도 의학에 관한 저술들이 있었으나 임진란으로 산일되었다.
▶박영석(朴永錫, 1735~1801) | 만취정유고(晩翠亭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만취정(晩翠亭) 박영석(朴永錫, 1735~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문이나 사기(寫記) 등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서사 경위를 알 수 없으며, 작은 글씨로 오자를 일부 수정한 점, 권수제가 글의 중간에 반복되어 있는 점, 일부 글의 문체 분류가 명확하지 않으며 제목도 분명하지 않은 작품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고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본집은 불분권 1책이다. 사(辭), 가(歌), 시(詩), 명(銘), 기(記), 서(序), 논(論), 설(說), 묘표, 제문, 잡저, 서독(書牘)이 수록되어 있다. <속차귀거래사(續次歸去來辭)>는 50이 다 되도록 이름이 알려지지 못한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좋은 시대에 후회가 없다는 내용인데, 저자는 도잠(陶潛)을 흠모하여 그의 시에 차운한 시가 많다. 논(論) 중에서 <칠금맹획론>은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에 대해 논한 것으로, 이것이 제갈공명과 맹획(孟獲) 두 사람의 상호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로 보았다. 잡저 중에서 <남초설(南草說)>은 담배를 논한 것인데, 담배가 타들어가면서 사람의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을 불교의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박영원(朴永元, 1791~1854) | 오서집(梧墅集)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서(梧墅)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의 문집이다. 저자의 장남 박도빈(朴道彬)은 저자가 졸한 이후부터 1860년대 초반 사이에 행장과 묘표, 묘지명을 직접 짓고, 시장(諡狀)을 정원용(鄭元容)에게 받아 두었는데, 이 글들은 모두 부록으로 편차되어 있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선사본이다. 본집은 16책이지만, 책1, 6, 7과 목록 또는 책16은 낙질(落帙)된 낙질본이다. 시는 시록 형태로 묶여 전해지는데, 내직에서 근무할 때 지은 시를 모은 반춘록(伴春錄), 수원부 유수 시절 지은 시를 모은 화축록(華祝錄), 진하겸사은사정사로서 연경(燕京)에 다녀오는 길에 지은 시를 모은 연사록(燕槎錄), 함경도 관찰사 재직 시절 지은 시를 모은 풍패록(豐沛錄) 등이 있다. 책5는 응제록(應製錄)과 사명록(詞命錄)이다. 책8~9는 공거록(公車錄)이고, 책10은 경연과 서연(書筵)에서 경전을 강의한 것을 기록한 강의(講義)이다. 책11은 가승(家乘)과 집안의 제례, 상례 등에 대하여 자손에게 당부하는 글인 시곤록(示昆錄)이다. 책12~13은 건연록(巾衍錄)으로 각종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책14~15는 부록이다.
▶박운(朴雲, 1493~1562) | 용암집(龍巖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용암(龍巖) 박운(朴雲, 1493~15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오랫동안 초고 형태로 가장되어 오다가 1700년대에 정간(鄭榦)이 초고를 바탕으로 산정하여 1757년에 시부(詩賦) 1권, 문(文) 1권, <격몽편>과 <자양심학지론> 1권, 부록 1권 합 4권 2책을 ≪용암선생문집(龍巖先生文集)≫으로 편차하고, 따로 ≪용암선생별집(龍巖先生別集)≫ 5책으로 편차하였는데, 후손들이 문집과 별집을 모두 정사하여 가장하였고, 이후 1778년 후손들이 이상정(李象靖)의 발문을 받아 4권 2책의 ≪용암선생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는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부(賦)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서(書), 잡저, 서(序), 제문, 묘표, 행장이 실려 있다. 권3은 <격몽편(擊蒙編)>과 <자양심학지론(紫陽心學至論)>이다. 권4는 부록으로, 이황(李滉)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김취문(金就文)이 지은 묘지, 최응룡(崔應龍)이 지은 정려비음기(旌閭碑陰記), 사우문인록(師友門人錄)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1757년에 쓴 정간의 발문과 1778년에 쓴 이상정(李象靖)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박운수(朴雲壽, 1797~1841) | 덕은유고(德隱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덕은(德隱) 박운수(朴雲壽, 1797~18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손자 정양(定陽)에 의해 저자 부친의 문집인 ≪냉천유고(冷泉遺稿)≫, 저자 아들 제근(齊近)의 문집인 ≪경암유고(敬菴遺稿)≫와 함께 편간(編刊)이 이루어졌다. 정양은 1886년 아들 승길(勝吉)을 시켜 시문 초고 4책을 소산(素山) 이응진(李應辰)에게 보내어 교정(校正)을 부탁하여 산정(刪定)된 원고를 받았다. 이후 1894년에 묘표(墓表)를 작성하고 서문(序文)을 붙여 1895년에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였다. 본집(本集)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손자 정양(定陽)이 1894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으며, 각 권마다 권목(卷目)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詩體)나 저작 연도 등과는 무관하게 편차(編次)되어 있다. 달, 닭, 단선(團扇), 분매(盆梅) 등을 읊은 영물시(詠物詩), 생일, 방문, 유람(遊覽), 주변 사람들의 내왕(來往) 등 일상생활 혹은 즉감(卽感)을 읊은 작품이 주를 이룬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고문(告文), 기우문(祈雨文), 행록(行錄)이다.
▶박윤묵(朴允默, 1771~1849) | 존재집(存齋集)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의 문집이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이루어진 괘인사본으로, 저자 생존 시에 편차한 자편고를, 저자 사후에 아들들이 만년의 작품들을 보충 정리하여 완성한 것이다. 서문은 1836년 최면(崔沔)이 썼고, 필사는 세 아들 박기복(朴基福)ㆍ박기호(朴基祜)ㆍ박기조(朴基祚)가 분담하였는데, 각 책 끝에 작은 글씨로 등사자가 표시되어 있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최면의 서문이 있고, 권미에 박기수(朴綺壽)의 발(跋)이 있으며, 권별 목록이 있다. 권1 앞부분 부(賦)는 <이조부(異鳥賦)>, <춘조부(春鳥賦)>, <추려부(楸廬賦)>이다. 권1 중간부터 권22까지 2,600여 제의 시가 실려 있는데, 주로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지어 “맑고 깨끗하며 참신하다.”, “간결하고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26은 부록으로, 김주교(金周敎)의 행장, 서준보(徐俊輔), 권대긍(權大肯) 등의 만사 7편, 윤정현(尹定鉉)의 묘갈, 서준보의 묘지명이 실려 있고, 추록은 저자 사후 1880년에 아들 박기복이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자 법전에 의거하여 내려진 추증 교지이다.
▶박윤원(朴胤源, 1734~1799) | 근재집(近齋集)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박종여(朴宗輿)가 수습 정리하여 유한준(兪漢雋), 홍직필(洪直弼) 등의 편차와 교정을 거친 뒤 32권 16책으로 편찬한 것을 조카 박종경(朴宗慶)이 1817년 간행하였다. 시는 327제가 실려 있는데, 1749년에 여주 처가에 갔을 때 지은 <여강객회(驪江客懷)>, 집안의 종 이강(二江)의 죽음을 슬퍼한 <도이강(悼二江)> 등 젊은 시절의 작품과, 부친을 따라 아산, 평양 일대와 송도(松都) 등을 둘러보고 지은 시, 1798년 친족 간의 모임을 읊은 <중수영원계시(重修鴒原禊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는 스승인 김원행(金元行)을 포함해 문인과 동료에게 보낸 것들이 실려 있는데, 주로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서≫, 경서(經書)와 예설(禮說)의 문목에 답한 내용이다. 서(序)로는 ≪사기≫ 중 자서(自序)와 열전(列傳) 등 20편의 글을 뽑아 편찬하고 그 취지를 쓴 <마사선서(馬史選序)> 등이 있다. 기(記)로는 1759년에 지은 <사기(射記)>를 비롯해 아산에 있는 오교대(五敎臺), 현충사(顯忠祠), 관호정(觀湖亭) 등에 대한 기문이 실려 있다.
▶박은(朴誾, 1479~1504) |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 1479~1504)의 문집이다. 1514(중종9)에 친구 이행(李荇)이 남아 있는 시문 약간 편을 모아 편차하고 또 교유간(交遊間)에 흩어진 것을 합하여 1질로 엮어 간행하였으나 현재 전하지 않고, 1580(선조13)에 아들 박공량(朴公亮)이 원집에 빠진 글을 수습해 둔 것을 손자 박유(朴愈)와 박무(朴懋)가 ≪별고(別稿)≫라 하여 초간본과 합질, 상ㆍ하권으로 간행하고 심수경(沈守慶)에게 발문을 받았으며, 1651(효종2)에는 정두경(鄭斗卿) 등이 전라감사 심택(沈澤)에게 부탁하여 전주에서 중간하였고, 1709(숙종35)에는 유득일(兪得一)이 정홍좌(鄭弘佐)에게 부탁하여 2권 1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으며, 1795(정종19)에는 정조가 박공량이 편한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중에서 문집에 빠져 있는 것을 첨부ㆍ증보하여 간행하게 하였는데 권수에 심환지(沈煥之)가 쓴 정조의 어제서와 목록을 싣고 부록에 초ㆍ중간서 3편을 실었고, 1843(헌종9)에는 김학언(金學顏)이 충렬사에 소장되어 있던 삼간본의 완결된 곳을 보완하여 중인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합 2책이다.
▶박의중(朴宜中, 1337~1403) | 정재일고(貞齋逸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정재(貞齋) 박의중(朴宜中, 1337~1403)의 문집이다. ≪용재총화≫ 등의 기록에,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문집이 세상에 유전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전하지 않고, 편찬ㆍ간행에 관한 경위조차 전무하다. 그 후 후손 박원식(朴元植)ㆍ박인성(朴演性) 등이 ≪고려사≫와 제현들 문집 속에서 시문을 집일(輯佚)하여 유고 1권을 편집하고, 제현들 문집과 가승에서 관계 기록을 모아 부록을 엮었다. 이를 18세손 박인선(朴麟善)이 교수(校讎)하여 발문을 쓰고 김영한(金寧漢)ㆍ박인하(朴寅廈)의 서문을 붙여 1924년 김제 삼송재(三松齋)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1책으로, 권1은 본집, 권2는 부록, 권3은 척유이다. 권수는 1923년 김영한과 18세손 박인하가 쓴 서문 및 목록이다. 시 중에는 고려 말 도학ㆍ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숭인ㆍ이색ㆍ정몽주 등과 주고받은 교유시가 많고, 문으로는 우왕때 문하사인으로서 올린 <계일예소(誡逸豫疏)>와 예문관 재직시에 지은 <계주서(誡酒書)> 및 <도통설(道統說)>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923년에 쓴 박인선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박이장(朴而章, 1547~1622) | 용담집(龍潭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 1547~1622)의 문집이다. 저자가 남긴 글은 서재(書齋) 모덕와(慕德窩)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것을, 8대손 박규환(朴奎煥)이 가내의 전존된 잔고(殘稿)를 모으고 부록을 붙여 7권 3책으로 만들었으나 1901년(광무5) 박규환의 사망으로 중단되고, 1911년 9대손 박인현(朴寅鉉), 박윤현(朴允鉉) 등에 의하여 활자로 인행(印行)되었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1년 정래석(鄭來錫)이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1~2는 부(賦), 시이다. 권3은 교서(敎書), 소(疏), 차(箚), 계(啓), 연설(筵說), 책(策)이다. 권4는 서(書), 서(序), 논(論), 제문(祭文), 행장(行狀)이다. 권5는 연보인데, 여기에는 영조 2년(1726)의 신도비명(神道碑銘) 찬술 기사까지 실려 있다. 권6에는 노수신(盧守愼)의 증시(贈詩)를 비롯하여 저자에게 보낸 시와 편지, 만장(挽章), 제문(祭文)을 모은 것이고, 권7은 조경(趙絅)이 지은 행장 등 묘도문자(墓道文字)를 중심으로 편차한 것이다. 권말에 장석영(張錫英)과 9대손 박인현과 박윤현이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박익(朴翊, 1332~1398) | 송은집(松隱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839년경 후손 박세신(朴世臣) 등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1832~1835년간 자인(玆仁)의 후손가에서 저자의 유고가 발견되고 또 청도(淸道)의 후손가에서 영정(影幀)과 시첩(諡牒) 및 비표(碑表) 등이 발견되자, 후손 박세진(朴世震) 등이 이화(李鏵)에게 유고의 찬차(撰次)ㆍ감교(勘校)를 의뢰하고 네 아들의 문집인 ≪우당유고(憂堂遺稿)≫ㆍ≪인당유고(忍堂遺稿)≫ㆍ≪아당유고(啞堂遺稿)≫ㆍ≪졸당유고(拙堂遺稿)≫를 부편하였으며, 홍명주(洪命周)의 서문(序文)을 붙여 1책으로 편찬하였다. 그 후 신계서원(新溪書院)이 창건되자 4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 현존하는 초간본이다. 권수에는 두 편의 서(序)와 목록, 권1에는 시(詩) 16제(題)와 문(文) 5편, 문(文)은 잠(箴) 2편, 전(箋) 1편, 제문 1편, 유서(遺書) 1편, 권2에는 만(輓)ㆍ화상찬(畫像贊)과 묘소문(墓所文)ㆍ묘표(墓表), 권3은 부록, 권4는 속집으로 신계서원 창건과 봉안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박인(朴絪, 1583~1640) | 무민당집(无悶堂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무민당(无悶堂) 박인(朴絪, 1583~1640)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박성림(朴聖林)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14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세계도, 연보, 원집 7권, 별집 2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1798년에 지은 서(序), 세계도, 연보 및 목록이 있는데, 목록에는 원집인 권7까지만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이다. 그중에서 1609년에 부친에게 과거공부를 그만두겠다고 청한 글을 올린 후 부질없이 20년 세월을 과거공부에 허비해왔음을 반추하여 지은 시인 <폐거후유감(廢擧後有感)>, 북인들이 영창대군을 모살하고 대비를 폐하려 하자 이를 가슴 아파하며 지은 시인 <애연(哀鷰)> 등이 주목된다. 권2~3은 서(書)이고, 권4는 서(序), 기(記), 설(說), 잡저, 제문, 묘갈이다. 권5는 조식(曺植)의 언행총록(言行總錄)과 연보(年譜)이다. 권6~7은 부록으로 제문, 행장 등이다. 별집 권1은 제영 및 저자의 언행총록 등이고, 권2는 49명이 수록된 사우록과 43명이 수록된 문도록(門徒錄)이다. 권말에 저자의 5세손 성림이 1814년에 쓴 지(識)가 실려 있다.
▶박인로(朴仁老, 1561~1642) | 노계집(蘆溪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1690년(숙종16)이다. 이후 1831년 후손 박천주(朴天柱)와 박희주(朴希柱)가 원집과 부록 상하권으로 나누고 가사(歌辭) 1권을 별록으로 편차한 뒤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세계도(世系圖), 네 개의 도(圖)와 시(詩), 전(傳), 기(記)가 실려 있다. 도는 중용성도(中庸誠圖), 태학경도(大學敬圖), 등으로 성리학 개념을 도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시는 100수 가량이 실려 있는데, <문족부(捫足賦)>는 자모(慈母)의 엄한 교육이 자식을 현철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며, <증최상사기남(贈崔上舍起南)>은 이욕(利慾)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드러난 작품이다. <경전가(耕田歌)>, <사시음(四時吟)>, <안분음(安分吟)> 등은 자연에 은거해 지내며 농경을 일삼는 청빈한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그 외에 자전적인 글인 <무하옹전(無何翁傳)>과 <몽견주공기(夢見周公記)>가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행장과 묘갈명, 저자의 운에 차운하여 지은 시 등이 들어 있다. 권3은 국한문혼용가사로 가사 7편과 단가(短歌) 60수가 실려 있다.
▶박장원(朴長遠, 1612~1671) | 구당집(久堂集)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문집이다. 저자가 졸한 후 아들과 사위가 유고를 정리하고 부록을 준비해 이후 1730년에 저자의 증손인 박문수가 대구 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8은 사부와 시이다. 10세 때 지었다는 <증혜희상인(贈慧熙上人)>부터 죽기 전날에 지은 <차이생기래운(次李甥寄來韻)>까지 거의 한 해도 빠진 해가 없이 작품이 실려 있다. 권9~11은 소차(疏箚)와 계사(啓辭), 전(箋), 교서(敎書) 등의 공거문이다. 전(箋) 중에 <사사미포전(謝賜米布箋)>은 현종이 노모를 위해 미포(米布)를 하사한 데 대한 사은전이다. 이 외에 묘지, 행장, 기사(記事), 제문, 애사, 서간, 서(序), 기(記), 설(說), 논(論) 등이 있다. 권17의 <일중편(一中篇)>은 정자와 주자의 글과 성리서 등에서 좋은 글을 뽑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것이다. 권18~19는 차록(箚錄)이고, 권 20은 <기문(記聞)>이다. <기문>에는 동시대를 살던 명공(名公)들과 외조부인 심현(沈誢)의 유사(遺事)가 적혀 있다. 부록으로 실린 신도비명, 제문, 언행록을 통해 저자의 성품과 학문 세계를 알 수 있다.
▶박재형(朴在馨, 1838~1900) | 진계집(進溪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 1838~1900)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9권 4책의 목판본 ≪진계문집(進溪文集)≫이 전하고 있으나 서발문 등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편간 경위는 불분명하다. 다만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행장에 저자의 손자 순열(淳烈)이 행장을 부탁했다고 한 내용과 권말 판권지에 저자의 장손 순병(淳炳)이 발행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손자들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2~5는 서(書)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시국을 우려하거나 선친과 선현들의 문집에 관련된 일, 아우와 아들의 죽음 등 잇따른 상사를 겪은 뒤의 심사 등을 전하는 내용으로 수신인별로 묶어 편차하였다. 권6은 잡저(雜著), 서(序), 기(記)이다. 잡저는 태극, 음양, 춘하추동, 오행, 사단칠정, 인심, 도심 등에 대해 논한 <성리유설(性理類說)>이고, 서는 진계(進溪)라는 자호(自號)의 의미를 서술한 <진계자서(進溪自敍)>이다. 권9는 부록으로 셋째 아들 창현(昌鉉)이 쓴 가장(家狀)이 실려 있다.
▶박전(朴全, 1514~1558) | 송파일고(松坡逸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파(松坡) 박전(朴全, 1514~1558)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여러 차례 이사하고 화재가 나서 거의 산일되었고, 벼슬할 때 지은 일기(日記) 1권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본집에는 일기가 실려 있지 않다. 본집은 8대손 박주원(朴周元)이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유문을 모아 유고를 편차하고, 9대손 박구일(朴龜一)이 1809년에 정종로(鄭宗魯)에게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09년에 지은 정종로의 서문이 있다. 본집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장편, 칠언장편, 육언, 명(銘), 사(辭), 설(說), 책(策)이 있는데, 특히 명(銘)은 관(冠), 리(履), 장척(長尺), 시(匙), 호(戶), 창(窓), 병(屛), 궤(几)에 대해 지은 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고, <문충효책(問忠孝策)>은 1546년 증광 문과에 합격했을 때 지은 책문으로, 자식과 신하로서 충효를 다해야 함을 말했다. 그리고 정종로가 지은 행장(行狀)과 8대손 박주원이 지은 가장(家狀)이 실려 있다.
▶박제가(朴齊家, 1750~1805) | 정유각집(貞㽔閣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유(貞蕤)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재 간본은 없고, 사본으로 시집 ≪정유각집(貞蕤閣集)≫과 문집 ≪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이 있으며 모두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알 수 없다. 본집은 시집 5책, 문집 4책 합 9책으로, 시집은 초집~오집이며, 권두에 1768년 19세 때 엮은 초기 시집에 대한 이덕무(李德懋)의 서문과 1776년 7월에 사신으로 연경에 갔던 유금(柳琴) 일행이 받아온 청인 반정균(潘庭筠), 이조원(李調元)의 서문이 있다. 초집 210제의 시 중에서 <측상(廁上)>은 측간에 앉아 내다보이는 봄날의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저자의 재기를 엿볼 수 있다. 사집(四集)에는 146제의 시가 실려 있다. 팽원서(彭元瑞), 기윤(紀昀), 옹방강(翁方綱) 등 청의 문인들을 묘사한 <속회인시(續懷人詩)> 18수가 실려 있다. 권2에는 문(文)이 실려 있는데, <응지진북학의소(應旨進北學議疏)>는 1798년에 영평 현령으로 있던 저자가 농업 개혁을 위해 농서를 구한다는 정조의 명에 응하여 바친 글이다. 그 내용은 농법의 개량보다는 현재의 법을 고치는 변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종경(朴宗慶, 1765~1817) | 돈암집(敦巖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돈암(敦巖)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아들 기수(岐壽)가 수습 정리하여 4권으로 편차하고 저자의 동생 종희(宗喜)가 발문을 붙인, 서사경위(書寫經緯)가 불분명한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본집은 10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시는 시체(詩體)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編次)되어 있다. <서구(恕狗)>는 밤에 달그림자를 보고 짖는 두 마리의 개 때문에 나아가던 병이 더 심해지자 종에게 개를 죽이라고 하였다가 개의 본성이 그러한 것을 깨닫고는 살려주게 하고 느껴 지은 것이다. 권5는 계(啓), 강의(講義)이다. 계는 평시서 제조, 선혜청 당상, 총융사, 병조 판서, 호조 판서, 훈련대장 등의 직임을 맡고 있을 때 건의한 것들로 난전민(亂廛民)의 정세(定稅)를 정지하는 문제, 빙고(氷庫)를 개수할 때 선혜청(宣惠廳)의 저치미(儲置米)를 가져다 쓰는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실려 있다. 권미(卷尾)에 작성 연도를 알 수 없는 계제 종희(宗喜)가 지은 발(跋)이 있다.
▶박종여(朴宗輿, 1766~1815) | 냉천유고(冷泉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냉천(冷泉) 박종여(朴宗輿, 1766~1815)의 문집이다. 저자의 증손 정양(定陽)이 정리하여 이응진(李應辰)의 교정을 받고 한장석(韓章錫)에게 묘갈명을 받아 1895년 7월에 저자의 유고 3책, ≪덕은유고≫ 1책, ≪경암유고≫ 2책을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기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완성하였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조병덕(趙秉悳)이 1869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편차되어 있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른 흥취를 읊은 시들이 주를 이루며, 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내용도 여러 편 보인다. 부친 윤원(胤源), 계부 준원(準源)의 시에 차운한 것이 있고, ≪목은집(牧隱集)≫에서 차운한 것이 6수 보인다. 만시로는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에 대한 것이 13수에 이른다. 권7은 부록으로 이요중(李堯中), 중종형 종경, 홍직필의 제문, 이규복의 애사(哀辭), 아들 운수의 언행록, 홍직필의 묘지명, 한장석의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언행록은 제목만 있고 내용은 운수의 ≪덕은유고(德隱遺稿)≫에 실려 있다.
▶박준원(朴準源, 1739~1807) | 금석집(錦石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금석(錦石)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에 유고 중에 정화(精華)만을 선정하고, 다시 산정을 하여 1816년에 원집 10권, 부록 2권을 활자로 간행하였다. <감주부(甘澍賦)>는 정조가 날이 가문 것을 안타까워하며 전교를 내리자 비가 내린 일을 주제로 성덕을 칭송한 내용이다. 시는 404제 5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유람시, 궁중에 직숙하면서 지은 시 등이다. 서(書)는 99편이 실려 있는데, 경전의 내용에 대한 질정, 원자(元子)의 탄생에 대한 기쁨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송서(送序), 수서(壽序), 김재순(金在淳)의 시고(詩稿)에 쓴 서문, 나라에서 근신들에게 곡식 씨가 담긴 주머니를 나누어주어 풍년을 기원한 고사를 읊은 <자해낭명(子亥囊銘)> 등이 실려 있다. 잡저 중 <태복마(太僕馬)>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속담을 통해 저자가 들은 근거 없는 비난을 해명한 글이고, <토로설(土爐說)>은 조부로부터 전해 내려온 질화로를 소재로 하여 검소한 가풍과 효심을 드러낸 글이고, <사설(射說)>은 활쏘기를 통해 곤궁함을 겪은 뒤 분발하여 이룬다는 이치를 깨달았다는 내용의 글이다.
▶박지계(朴知誡, 1573~1635) | 잠야집(潛冶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 1573~1635)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작 간행은 박세채(朴世采)가 1690년(숙종16)에 저자의 시문을 수윤(修潤)하고, 그 후에 이를 가지고 저자의 문인 원두표(元斗杓)의 4대손 원경순(元景淳)이 1761년경(영조37)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에 목판으로 간행을 시도하였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1766년(영조42)에 김상로(金尙魯), 박성원(朴聖源), 김종후(金鍾厚) 등이 교정하고 10편으로 편정(編定)하여 저자의 5대손 박명양(朴鳴陽)이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출(印出)하였다. 문집은 총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고 매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3은 소(疏)로 구성되어 있다. 권4~5는 서(書)로 구성되어 있고, 권6은 제문(祭文), 잡저(雜著), 묘갈(墓碣)로 구성되어 있다. 권7~9은 예변(禮辨)이고, 권10은 차록(箚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장(諡狀)은 권10에 첨부되어 있다. 시는 없다. 권말에 박명양(朴鳴陽)의 발(跋)이 있다. 소 가운데 1633년에 올린 장편 상소 <만언소(萬言疏)>가 있고, 서는 대부분 예에 대한 문답이다.
▶박지서(朴旨瑞, 1754~1819) | 눌암집(訥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눌암(訥菴) 박지서(朴旨瑞, 1754~181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사순(士淳)이 가장을 지어 유적을 정리하면서,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8책으로 정고한 것을, 증손 기형(夔衡), 일형(一衡) 등이 다시 교수 산정하고, 사장(事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을 증보하여 4책으로 재편한 후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1908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곽종석이 1908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독퇴계서초서(讀退溪書抄序)>는 일본인 처사(處士) 촌칠종장(村七宗章)이 이황의 문집을 초집한 10책에 그의 제자가 지은 서를 읽고, 바른 의리를 얻는 데 왜인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며 기쁜 마음에 읊은 것이다. 권4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잡저 가운데 <산가설변(山家說辨)>은 산천의 길흉에 매달리는 풍수의 폐단을 열거하면서 발복(發福)을 바라고 묘지를 고르기에 앞서 ‘성효(誠孝)’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권미에 족증손 주형(周衡)이 1908년에 지은 후서(後序)와 증손 일형이 1908년에 지은 발이 있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 | 연암집(燕巖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택영(金澤榮)이 저자의 글을 원집 6권 2책으로 편찬하여 1900년에 전사자로 간행하였으며 다음 해인 1901년에 같은 양식으로 속집 3권 1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932년 저자의 후손 박영철(朴榮喆)이 박종채(朴宗采)의 정리본을 17권 6책으로 정리하여 서울에서 연활자로 인행한 삼간본이다. 권1~5는 원집, 권6~10은 별집, 권11~15는 <열하일기(熱河日記)>, 권16~17은 <과농소초(課農小抄)>로 구성되어 있다. 문체별로는 서(序), 기(記), 발(跋), 서(書), 시(詩) 등 다양한 문체가 실려 있다. 내용은 우도(友道)가 무너진 세태를 탄식한 것,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을 주장한 것, 서민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서술한 것, 양반 사회의 위선적인 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 등 뛰어난 문장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특히 <열하일기>는 1780년 저자가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중국의 성경(盛京), 북경(北京), 열하(熱河)를 돌아보고 지은 것으로 변화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뛰어난 필치로 생생하게 전하는 연행문학(燕行文學)이다.
▶박지화(朴枝華, 1513~1592) | 수암유고(守庵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암(守庵) 박지화(朴枝華, 1513~1592)의 문집이다. 저자는 한미한 서얼 출신인 관계로 가장(家藏)된 유고(遺稿)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 사후(死後) 90여 년이 지난 1683년경 관복재(觀復齋) 김구(金構)가 홍문관에 보관된 사본(寫本)을 발견하고는 이후 용강 현령으로 부임하여 이를 틈틈이 고정(考正)한 뒤 1684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1은 시, 권2는 문이다. 시 중에 <청가(聽歌)>는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이 죽은 뒤에 그의 비(婢) 석개(石介)의 노래를 듣고 지은 시이다. 이밖에 만시(輓詩)와 남을 대신하여 지은 작품 등이 실려 있다. 권2에는 고청거사(孤靑居士) 서기(徐起)의 묘갈명, 이경기(李慶祺)의 묘표, 박민헌(朴民獻)의 행장 등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침술(鍼術)에 정통한 이이(李耳)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부록에는 유사(遺事)를 비롯하여 저자에 대한 만시, 애도시, 시화(詩話)가 실려 있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유ㆍ불ㆍ도에 두루 통하였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박창원(朴昌元, 1683~1753) | 박담옹집(朴澹翁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담옹(澹翁) 박창원(朴昌元, 1683~1753)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 윤득관(尹得觀) 등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하여 김용겸(金用謙) 등의 산정ㆍ편차를 받아 1770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송가상(宋可相)이 1769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상~중은 시(詩), 연구(聯句), 사(詞)이다. 시는 주로 산영루(山映樓), 문수사(文殊寺), 동장대(東將臺) 그리고 필운대(弼雲臺), 탕춘대(蕩春臺), 한강 가의 읍청루(挹淸樓), 압구정(狎鷗亭), 빙호(氷湖)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남양주의 도곡(陶谷)과 석음재(惜陰齋), 여강(驪江)까지와 서쪽으로는 인천의 능허대(凌虛臺)까지, 고양의 흥성암(興聖菴) 등 서울과 인근의 명승들이 소재가 되고 있다. 권하는 잠(箴), 명(銘), 찬(贊), 서(書), 서(序), 발(跋), 기(記), 잡기이다. 명의 <죽암명(竹巖銘)>은 윤득관이 자신의 호를 죽암(竹菴)에서 죽암(竹巖)으로 고치고 요청하자 지어 준 것 등이 있다. 부록으로 이재휘(李在徽)가 지은 전(傳)이 있고 권말에 서유로(徐有魯)가 1765년에 지은 발이 있다.
▶박치복(朴致馥, 1824~1894) | 만성집(晩醒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 1824~1894)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희선(煕善)이 난고(讕稿) 및 유문을 정리하였으나 격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 단질(單帙)의 초본이 망실될 것을 염려하여 약간 권의 고본(稿本)을 후산(后山) 허유(許愈)와 교감하여 1896년 단성(丹城) 이택당(麗澤堂)에서 목활자로 13권 6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다. 이후 저자의 종자 정선(正善)은 연보를 당대의 명사들에게 광정하여 완성하고 노상직(盧相稷), 조긍섭(曺兢燮), 이용구(李容九)로부터 행장과 묘도문자를 받은 뒤에 문집을 원집 16권, 부록 2권으로 수정하여 저자의 사손 영철(永喆) 등과 함께 1925년 달성(達城)의 광거당(廣居堂)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6권, 부록 2권 합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조한원(趙漢元)이 1925년에 지은 발(跋), 김진호(金鎭祜) 등이 지은 구발(舊跋)이 있다. 원집 권1~3은 시(詩)이다. 권8~10은 잡저(雜著)이다. 부록은 권1에 연보, 권2에 노상직이 지은 행장(行狀), 조긍섭이 지은 묘갈명, 이용구가 지은 묘지명, 사손 영철이 지은 <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이 수록되어 있다.
▶박태무(朴泰茂, 1677~1756) | 서계집(西溪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서계(西溪) 박태무(朴泰茂, 1677~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박지서(朴旨瑞)가 정종로(鄭宗魯)의 서(序)와 1808년에 지은 최흥벽의 발(跋)을 붙이고 재원을 확보하여 각수(刻手)를 고용해 181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정종로의 서가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의 앞부분은 시(詩), 부(賦)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오언율시와 칠언절구의 비중이 큰 편이다. 청량산(淸凉山)과 소백산(小白山) 등지를 기행할 때 지은 연작시, 주자(朱子)와 이황(李滉) 등의 시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2의 뒷부분~권4의 앞부분은 서(書)이다. 권4의 뒷부분은 장(狀), 알묘문이고 권5는 축문, 제문, 명(銘), 잠(箴), 찬(贊), 서(序)이다. 남명학 전통을 이어받아 수양을 중시한 결과 명과 잠의 저작이 많다. 권6은 기(記), 발(跋), 상량문 등이고 권7은 잡저, 책문이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 증손 지서가 1812년에 지은 지(識)와 최흥벽(崔興璧)이 180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박태보(朴泰輔, 1654~1689) | 정재집(定齋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문집이다. 부친 박세당(朴世堂)이 저자의 유고를 수집하고 편차하여 1698년 외사촌 남학명(南鶴鳴)에게 행장을 받고, 1699년 윤증(尹拯)에게 묘표를 받아 1702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892년에 6대손 박제억(朴齊億)이 원집과 별집을 중간하면서 후집 6권을 추가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9권, 별집 5권, 부록, 후집 6권 합 10책으로, 권두에 부록까지의 목록이 있고, 후집은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서(序)는 없다. 권4 뒷부분~권7은 차(箚), 소(疏), 계(啓) 등으로, 본집에서 가장 비중이 두어진 부분이다. 특히 남학명에게 답한 편지는 정황돈(程篁墩)의 ≪심경부주(心經附註)≫의 의문점을 물은 데 답한 것이고, 조형보(趙衡輔)에게 보낸 편지도 이와 관련한 것이다. 본집이 간행된 뒤 이 편지들을 본 윤증은 후환이 있을까 우려하기도 하였다. 나양좌에게 보낸 편지는 송시열의 공척을 받은 윤선거(尹宣擧)의 강도사(江都事) 등을 변석한 헌납 김두명(金斗明)이 지은 상소의 미비점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맨 뒤에 6대손 박제억의 발문이 실려 있다.
▶박태순(朴泰淳, 1653~1704) | 동계집(東溪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 1653~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사집(師緝)이 저자의 자편고를 수사하여 사위 송성명(宋成明)의 협조를 받아 1736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송성명이 1736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5는 시(詩)로, 저작 연도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두보(杜甫), 이상은(李商隱), 이안눌(李安訥), 오도일(吳道一) 등의 시에 차운한 시, 박세당(朴世堂), 유득일(兪得一) 등이 연행(燕行)할 때와 김창협(金昌協), 유성운(金昌協) 등이 임지로 떠날 때 지은 송시, 만시 등이 있다. 권6은 잠(箴), 송(頌), 교서 등이고 권7은 제사, 제문 등이다. 권8~9는 소(疏)와 계사로, <응지소(應旨疏)>는 향온의 진상을 막는 등 절손하여 낭비를 억제할 것과 변경의 교역 등에 관하여 올린 것이고 <청건잠곡서원소(請建潛谷書院疏)>는 가평(加平)의 선비들을 대신하여 쓴 것으로, 김육(金堉)의 학덕과 유풍을 기리기 위한 서원의 건립을 청한 것이다. 권10은 행장과 묘표 등으로 묘표는 증조 박동언(朴東彦), 부친 박세상(朴世相), 이세선(李世選)에 대한 것이다.
▶박태한(朴泰漢, 1664~1697) | 박정자유고(朴正字遺稿)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문신 박태한(朴泰漢, 1664~169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사한(師漢)과 아들 민수(民秀)가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하여 18세기 초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4권, 부록 2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문(文)이다. 그중에서 <자경문(自警文)>은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고 지은 것이고, <가훈(家訓)>은 자손들에게 경전 위주로 배울 것과 미신과 여색을 경계할 것 등의 가르침을 준 것이다. 권3은 시무잡록(時務雜錄)으로, 과거제도의 폐해, 신역(身役) 등에 관하여 90조로 기술하였다. 권5는 장소(章疏)이고 권6~8은 서독(書牘)이다. 편지에는 스승 윤증과 부형, 사우들에게 보낸 것 등이 있다. 권9는 묘지와 유사이고 권10은 부(賦)와 시(詩)이다. 그중에서 <영화당부(映花堂賦)>는 1692년 영화당이 중수되었을 때 송가(頌歌)로 지은 것이고, 시는 부친과 아우 등과 거주지 여강 주변에서 풍정을 즐기며 수창한 것이 많다. 권11은 서(序), 설(說), 제문, 과제 등이고 권12는 문(文)으로 <격물설(格物說)>, <격물설후록(格物說後錄)> 등이다. 권13~14는 독서차기(讀書箚記)이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 | 박선생유고(朴先生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50년경에 7대손 박숭고(朴崇古)에 의하여 수습ㆍ편집되었고,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3권 3책 중 제1권 1책으로 합집(合集)되어 1658년 외손 이경억(李慶億)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본 문집에는 시(詩) 29수와 문(文)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제목 아래 ≪동문선(東文選)》ㆍ≪대동시림(大東詩林)》등 인용 서명과 창작 배경, 수습 경위 등을 소주(小註)로 밝히고 있다. 산문류(散文類)는 부(賦), 전(箋), 잠(箴), 송(頌)과 문(文)으로 분류하여 편차하였다. 문(文) 속에는 봉책문(封冊文)ㆍ서(序)ㆍ기(記)ㆍ송(頌)ㆍ설(說)ㆍ서(書)ㆍ장(狀)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는 <팔가시선서(八家詩選序)>, <삼절시서(三絶詩序)>를 포함한 서(序)와 <비해당기(匪懈堂記)>, <망운정기(望雲亭記)>를 포함한 기(記), 임금이 신하 기르는 도를 천리마(千里馬)라도 잘 기르지 않으면 보통 말밖에 못됨에 비유하여 설명한 <수마설(瘦馬說)> 등이 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저자의 우국충정과 인품을 느낄 수 있는 자료이다.
▶박필주(朴弼周, 1680~1748) | 여호집(黎湖集)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하버드대학
-조선 시대 여호(黎湖) 박필주(朴弼周, 1680~1748)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까지 필사본으로만 전하고 있다. 본집은 권1~2는 시(詩)이다. 권1은 1694년 15세 때 선유봉(仙遊峯)을 유람한 시로부터 1731년 김천건(金天健)의 만시(挽詩)까지 140제가 실려 있으며, 권2에는 1732년 송도(松都)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박연(朴淵)>, <숭악(崧岳)> 등을 비롯하여 1748년 임종 때에 지은 절필시(絶筆詩)인 <문종(聞鐘)>, <추회(秋懷)>까지 120제가 실려 있다. 권3~8은 상서(上書), 상소, 서계(書啓), 헌의(獻議)와 같은 공거문(公車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9~16은 편지로, 전기에는 김창흡(金昌翕), 이희조(李喜朝), 김간(金榦) 등 스승과 동료와 주고받은 것이 많고, 후기에는 후배, 문인들과의 문답(問答), 강목(講目)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권17~18은 잡저이다. 성리학적인 주제와 개념을 논한 글들이 많다. 권32도 잡저인데, 이 부분은 쇄록(瑣錄)으로, 당시의 세태와 개인적인 일, 선현의 일화, 조상의 유사(遺事), 중국 고사, 안의 노복들을 가르치는 <계유가중(戒諭家衆)> 등이 있다.
▶박홍미(朴弘美, 1571~1642) | 관포집(灌圃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관포(灌圃) 박홍미(朴弘美, 1571~1642)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박치영(朴致榮)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치영의 아들 동규(東奎)가 이양연(李亮淵)의 산정을 거쳐 저자의 종제 홍중(弘中)의 ≪추산집(秋山集)≫과 함께 1846년 경상도(慶尙道) 구산현(龜山縣)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둘째 아들 대이(大頤)의 ≪동호집(東湖集)≫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두에 1846년에 홍경모(洪敬謨)가 지은 서(序)와 행장, 1645년에 지은 인조(仁祖)의 <어제친제문(御祭親製文)>이 있다. 상권은 시로 칠절, 오고, 칠고, 오율(五律), 칠율, 오배, 칠배, 부이다. 특히 칠절의 <차낙부영공운(次樂夫令公韻)>은 1623년에 반정 뒤 흉도들의 반란에 대비하여 경기 관찰사로 제수된 홍명원(洪命元)의 노고를 위로한 것이다. 하권은 소(疏), 교서, 제문, 잡저, 비(碑)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636년에 양양 부사로서 치안책(治安策)으로 올린 만언소(萬言疏)이며, 제문은 송방조(宋邦祚)와 장남 박대익(朴大益)의 것이다. 권말에 1846년 7대손 박동규(朴東奎)가 지은 지(識)가 있다.
▶박홍중(朴弘中, 1582~1646) | 추산집(秋山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추산(秋山) 박홍중(朴弘中, 1582~1646)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박동규(朴東奎) 등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이양연(李亮淵)의 산정을 거쳐 저자의 종형 홍미(弘美)의 관포집(灌圃集)과 1846년 경상도(慶尙道) 귀산현(龜山縣)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두에 1846년에 이약우(李若愚)가 지은 서(序)와 1845년에 이양연(李亮淵)이 지은 행장이 있다. 상권은 시(詩)이고 하권은 서(序), 기(記), 소(疏), 서(書), 묘지, 제문, 잡저, 전(傳), 표(表), 책(策)이다. 그중에서<신구남이공소(伸救南以恭疏)>는 1613년에 올린 것으로 이원익(李元翼)과 남이공의 신구(伸救)를 청하는 당론(讜論)이며, <논구박래장소(論救朴來章疏)>와 더불어 폐모론(廢母論)을 둘러싼 정치적 견해가 드러난 소이다. <응변책(應變策)>에서는 인심을 모아 국세를 회복하여 국내의 환란을 방지할 것 등을 역설하고, 군제(軍制)를 개편하고 연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국방 정책에 대한 의견을 펼쳤다. 권말에 1846년에 성근묵(成近默)과 7대손 박동규(朴東奎)가 지은 발이 있다.
▶박흥생(朴興生, 1374~1446) | 국당유고(菊堂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 1374~1446)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아들 박인번(朴仁蕃)에 의해 시문이 정리되었다가, 후손 박희석(朴禧錫)이 난초(亂草)로 쓰인 저자의 시문 약간 수를 얻어 교수(校讎)한 다음, 1828년 활자로 처음 인행(印行)하였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95년 7월에 박중호(朴重浩)가 목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은 시(詩), 권2는 문(文), 권3은 부록이다. 시는 관직을 그만두고 영동(永同)에 물러난 뒤에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권2에 실린 문(文) 중에 기문(記文)으로는 영동 고당포의 이요당(二樂堂)과 쌍청루(雙淸樓) 기문이 있다. 제문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쓴 것이고, 잡저로는 관직에 있는 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을 모은 <거관잠계(居官箴戒)>가 있다. 산수이요(山水二樂)와 풍월쌍청(風月雙淸)에서 뜻을 취해 이요당과 쌍청루 이름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만 정진한 저자의 고상한 기풍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배삼익(裵三益, 1534~1588) | 임연재집(臨淵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배용길(裵龍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가장을 짓고 유성룡(柳成龍)에게 신도비명을 청하였으나 유고를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9대손 배한주(裵翰周)가 배용길이 편차한 고본을 가지고 유치명(柳致明)의 서문을 받아 185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수에 1855년 유치명이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이며, 차운시와 증시가 대부분이다. 권3은 시와 소(疏), 계사, 정문이며 특히 시는 사행(使行) 때의 시를 모아둔 것이다. 권4는 서(書), 명(銘), 전(箋), 축제문, 갈지, 조천록(朝天錄)이다. 서는 김성일(金誠一), 권호문(權好文) 등 지인들과의 문안 편지이며, 아들 배용길에게 보낸 것에는 학업에 매진하기를 당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권5~6은 부록으로 연보, 어찰, 유지, 교서, 조천별장(朝天別章), 사제문, 제문이 있고, 아들 배용길이 지은 가장과 유성룡이 1596년에 지은 신도비명,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묘지명, 계문제자록(溪門諸子錄) 등이 공신 추록을 청하는 계(啓)가 실려 있다.
▶배상룡(裵尙龍, 1574~1655) | 등암집(藤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 1574~1655)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홍모(洪模)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59년 성주(星州)의 도천서원(道川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6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책1에는 세계도, 연보, 부록이 실려 있다. 세계도는 시조 배위준(裵位俊)부터 저자의 손자인 20세까지 기록되어 있다. 책2는 권1~2이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서문과 총목차가 있다. 권1은 시(詩), 애사, 부(賦)이다. 권2는 서(書)로서,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도경유(都慶兪), 허목(許穆), 조임도(趙任道) 등에게 준 것이다. 책3은 권3~4이다. 권3은 묘표, 축문, 제문이고 권4는 잡저로서, 스승 정구의 언행을 모아 실은 <한강선생언행록(寒岡先生言行錄)>, 주희의 <경재잠(敬齋箴)>에 대한 도(圖), 해(解), 서후, 향교 등에 보낸 통문(通文) 등이다. 책4는 권5~6으로, 부록이다. 권5는 묘갈명, 묘지명, 행록이고 권6은 제문, 만(挽), 문집발, <경서등암배선생경재잠해후(敬書藤庵裵先生敬齋箴解後)> 등이다. 마지막에 간기(刊記)가 있다.
▶배상열(裵相說, 1759~1789) | 괴담유고(槐潭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의 문집이다. 저자의 형 상현(相賢)이 난고(亂稿)를 일부 수습 편차하여 정서하였고, 아들 현두(顯斗)가 부친의 저서 정리 작업을 계속하여 조술도(趙述道)에게 서문을, 정종로(鄭宗魯)에게 묘지명을 받은 뒤 김희분(金煕奮)에게 문집을 감정(勘正) 받아 1811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조술도가 1799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제문(祭文), 서(序), 기(記), 잠(箴), 명(銘), 잡저(雜著)이다. 시의 <관물음(觀物吟)>은 봄날 한적한 일상에서 천지만물의 생성 원리를 관조하는 내용이고, <태고몽기(太古夢記)>는 꿈에 그림 문자로 편수(篇首)에 ‘태고천토(太古天土)’라 쓰여진 책을 보고, 각 글자를 다시 해체 분석하여 그 함의를 해득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권2~5는 잡저이다. 권3은 도학육도(道學六圖)로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계와 인간 심성 세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도설(圖說)이다. 권말(卷末)에 김한동(金翰東)과 황용한(黃龍漢)이 각각 1808년에 지은 지(識)와 발(跋)이 있다.
▶배용길(裵龍吉, 1556~1609) | 금역당집(琴易堂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 사후 220여 년이 지난 1855년(철종6) 후손들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 문집은 7권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부(賦) 1수와 시(詩)이다. 권2는 소(疏)와 차(箚)이다. 소로는 정유재란 때 강화(講和)의 움직임이 있자 주전(主戰)과 왕의 친정(親征)을 주장한 <팔조소(八條疏)>와 천하의 모든 일이 군주의 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내용의 <육조소(六條疏)> 등이 있다. 권3의 서(書) 중에는 명나라 장수들에게 원병(援兵)에 대한 사례와 전공을 치하하는 내용의 편지도 있다. 권4에는 <대책(對策)>, <수록(隨錄)>, <어류고의(語類考義)>, <가례고의(家禮考義)> 등이 있다. 서(序)에는 황극중(黃克中)에 대한 송서(送序), 저자의 저작인 <필담(筆談)>에 대한 자서(自序) 등이 있다. 권5에는 <정우정기(淨友亭記)>, 송렴(宋濂)의 ≪구침록(求鍼錄)≫에 대한 발(跋), 중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을 주제로 한 논(論), <풍수변(風水辨)> 등의 변(辨)이 있다. 권6은 제문 및 묘도문자이다.
▶배유화(裵幼華, 1611~1673) | 팔사유고(八斯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팔사(八斯) 배유화(裵幼華, 1611~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상선(相善) 등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8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연하(權璉夏)가 1889년에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잡저, 제문이다. 시는 주로 만년에 지은 작품들이다.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내용은 친지간의 차운시, 유람의 감흥, 만시(輓詩) 등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서(書)는 이자고(李子固), 배상유(裵尙瑜), 금화중(琴和仲), 성사익(成士翼), 강흡(姜恰)에게 보낸 것인데, 서로 문안하며 친교를 다지는 일상의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2는 부록(附錄)으로 증유(贈遺), 냉천기(冷泉記),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증유는 성직(成稷), 이희무(李希楙), 윤순거(尹舜擧) 등 저자의 교유인사들에게서 받은 시문이다. <냉천기(冷泉記)>는 저자가 집을 지었을 때 옆에서 솟은 냉천의 내력과 의미에 대해 정칙(鄭侙)이 쓴 글이다. 권말에 저자의 7대손 배상선(裵相善)이 1889년에 쓴 지(識)가 있다.
▶배응경(裵應褧, 1544~1602) | 안촌집(安村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안촌(安村) 배응경(裵應褧, 1544~160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시부(詩賦) 200여 수로, 서(書), 소(疏), 잡록(雜錄) 약간이 2권으로 가장(編次)된 것을 8대손 배한식(裵漢植)이 유문(遺文)을 수습(收拾)하여 황재영(黃在英)에게 편차(編次)를 부탁하고, 1883년에 권연하(權璉夏)에게 받아 둔 서문(序文)을 붙여 1884년에 2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시부(詩賦)이고, 김우옹(金宇顒), 정구(鄭逑), 한준겸(韓浚謙), 오운(吳澐), 권두문(權斗文), 김륵(金玏), 김개국(金蓋國), 유성룡(柳成龍) 등과 수창(酬唱)한 것이 많고, 여정 중의 누각, 정자 등에 대해 지은 시, 절기(節氣)가 바뀔 때 느낀 소회 등을 읊은 것이 많다. 권3은 소(疏), 기(記), 서(書), 제문(祭文), 논(論), 잡록(雜錄) 등이며, 권4는 부록(雜錄)으로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 만사(輓詞), 상량문(上樑文), 문인록(門人錄) 등에서 채록한 행록(行錄), 1602년에 북경(北京)으로 사신 갈 때 받은 증유시(贈遺詩)가 있다.
▶백경해(白慶楷, 1765~1842) | 수와집(守窩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수와(守窩) 백경해(白慶楷, 1765~18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아들 종걸(宗杰)이 정리하고 시문의 편차는 친우 홍직필(洪直弼)을 도움을 받아 산정하여, 증손 이행(彝行)이 박문일(朴文一)의 서문을 받고 가장의 일부 내용을 증보하여 1906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884년 박문일이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제발(題跋), 기(記)이다. 기에는 1796년 태백산 유람기와 정주(定州) 오봉산(五峰山) 사우(祠宇)의 중건에 대한 것 등이 있다. 권4는 기, 서(書)이다. 기는 <북행일기(北行日記)>로 1813년 길주(吉州)로 귀양 갔다 돌아온 130여 일 동안의 기록이다. 서는 종자 종륜(宗倫), 홍직필 등에게 보낸 것으로 그중 <대관서제인정정부서(代關西諸人呈政府書)>는 관서 차별의 부당성을 토로하고 고른 인재의 등용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부록에는 아들 종걸이 기술한 가장과 유사, 홍직필의 신도비명, 신석우(申錫愚)의 신도비명, 종인 주진(周鎭)과 김동건(金東健)의 묘지명 2편 및 증손 이행의 지(識)가 붙어 있다.
▶백광홍(白光弘, 1522~1556) | 기봉집(岐峯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 1522~1556)의 문집이다. 본집은 백광훈 집에 전해져 내려온 약간의 유문을 바탕으로 방후손 백진항(白鎭恒)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8대손 후진(垕鎭)이 1866년 관서별곡(關西別曲)과 부록을 증보ㆍ재편한 후, 12대손 채인(采寅)ㆍ희인(羲寅) 형제가 새로 수집된 시산잡영(詩山雜詠) 등 시문을 증보하여 1899년 전라도 장흥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851년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서문과 백사근(白師謹)이 지은 서문이 있고,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권2는 오언절구, 오언사운, 오언고시, 칠언절구이며, 권3은 칠언사운과 칠언고시이다. 권4는 시산잡영(詩山雜詠)과 관서별곡으로, 시산잡영에는 태인 군수로 가는 신잠(申潛)을 봉송한 시, 태인을 유람한 시, 차운시 등이 있고, 관서별곡은 1555년 평안도 평사가 되어 부임하는 과정에서의 경관과 관방을 둘러보고 지은 가사이다. 권5는 부록으로 김인후ㆍ최경창 등이 평안도 평사로 부임하는 저자에게 지어 준 시와 만사 등이 있다. 권미에는 홍직필이 지은 묘갈명, 기우만(奇宇萬) 등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백광훈(白光勳, 1537~1582) | 옥봉집(玉峯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임진왜란으로 거의 없어지고 남은 유고를 아들 백진남(白振南)이 ≪옥봉유고≫란 이름으로 수집 편차하였는데,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를 왕명으로 ≪동국시문(東國詩文)≫을 찬집(撰集)하던 이정귀(李廷龜)가 보고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는 윤안성(尹安性)에게 간행을 권하였고, 이에 백진남(白振南)이 상ㆍ중ㆍ하 3권과 보유(補遺)로 편차된 유고를 선사(繕寫)하여 1608년 호남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에 1609년 이정귀와 유근(柳根)의 서문, 윤광계의 후서를 받았고 이후 1611년 신흠(申欽)의 서를 덧붙였다. 별집(別集)은 1742년(영조18) 5대손 백수형(白受珩), 백수경(白受璥)이 집에 보관한 저자의 편지글을 간행하면서 원집을 재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별집초간(別集初刊)의 부록(附錄)에는 이이(李珥)와 정철(鄭澈)의 만사(挽詞)와 이희조(李喜朝)가 수정한 연보, 정호(鄭澔)의 묘갈명과 수독후서(手牘後書)가 수록되어 있으며 간행자인 백수경의 별집발문(別集跋文)이 있다. 문집은 원집 상ㆍ중ㆍ하 3권과 별집 1권 합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문보(白文寶, 1303~1374) | 담암일집(淡庵逸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1303~1374)의 문집이다. 후손들이 초기 정주학(程朱學)의 발전에 공헌한 저자의 공로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동문선(東文選)≫ 등에서 시문과 잡저 약간을 모아 김도화(金道和)의 후서(後敍)와 이만도(李晚燾)의 발(跋)을 받아 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 권1의 시(詩)로서 ≪동문선≫에서 뽑은 6수를 포함하여 11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2는 문(文)으로서 소차(疏箚), 서(序), 기(記), 설(說), 행장(行狀), 비명(碑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序), 기(記), 설(說)은 대부분 ≪동문선≫에 실려 있다. 부록 권1에는 이곡이 저자에게 준 시 3수와 <증유제편(贈遺諸篇)>과 저자의 당호(堂號)인 동재(動齋)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고, 부록 권2에는 만사(挽辭)ㆍ행장(行狀)과 사전수집(史傳搜輯), 편년(編年), 운산서원봉안문(雲山書院奉安文), 상향축문(常享祝文),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 동문록(同門錄), 문인록(門人錄) 등이 실려 있다.
▶백분화(白賁華, 1180~1224) | 남양시집(南陽詩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남양(南陽) 백분화(白賁華, 1180~1224)의 문집이다. 본 시집은 현존하는 문집 가운데 오래된 판본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에 판각된 경판(經板)들과 함께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다. 권두에 이함(李涵)의 서문이 있으나 간행 경위는 지면의 마멸이 심하여 알 수 없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43년 해인사에 소장된 잡부(雜部)를 새로이 인출(印出)할 때 간행된 후쇄본이다. 본 시집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간 당시 1천여 수의 유시(遺詩) 중에 200여 수를 뽑아 간행하였다고 하나 목판이 유실되거나 마모가 심한 것이 많아 현재 전해지는 것은 82제 111수뿐이다. 본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차운구지부곡유제(次韻仇知部曲留題)>는 여행 중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시로, 구구하게 매이지 않으려는 저자의 호방한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범경문(范慶文, 1738~1801) |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검암(儉巖) 범경문(范慶文, 1738~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아들 윤행 등이 시를 편하여 2권으로 만들고, 1814년에 서영보의 서와 이만수의 발을 받아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된 시집(詩集)으로, 권수에 서영보(徐榮輔)가 1814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시는 시체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에 따라 편차되어 있다. 서영보의 서문에서 말한 대로, 저자는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는데, 영물시, 한거시, 유람시, 증시와 만시 등 다양한 내용의 시가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온후한 기상을 담고 있다. 권2는 1766년부터 1800년까지 지은 시로, <합매(閤梅)>는 매화를 읊은 것인데 미개(未開), 반개(半開), 성개(盛開), 낙화(落花)로 나누어 매화꽃이 피고 지는 것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쓴 것이다. <천안주(千眼廚)>는 당시 부자와 고관들이 다투어 갖고자 했던 화려한 서랍이 달린 작은 금고인 가께수리를 읊은 것이고, <애체(靉靆)>는 안경에 대해 쓴 것이다. 권말에 이만수(李晩秀)가 1814년에 지은 제후(題後)가 있다.
▶변계량(卞季良, 1369~1430) | 춘정집(春亭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의 문집이다. 문인(門人) 정척(鄭陟)이 찬집한 것을 왕명에 의해 집현전에서 유의손(柳義孫)ㆍ김서진(金瑞陳)이 수교(讎校)하여 선사(繕寫)한 뒤에 경상감사 권맹손(權孟孫)이 12권 5책의 목판본으로 밀양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초간본이 거의 유실되자 저자를 향사하고 있는 거창(居昌)의 병암서원(屛巖書院) 유생들이 각지로 탐방한 끝에 흥해(興海)에서 문집 1질을 찾아내어 김시찬(金是瓚) 등의 교수와 증보를 거쳐 1825년에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12권 5책, 속집 4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원집 권1~12와 속집 권1은 저자의 시문, 속집 권2~4는 부록이다. 원집 권수에는 1824년에 심상규(沈象奎)가 지은 중간서와 권제(權踶)ㆍ안지(安止)가 1442년경 지은 초간서ㆍ발, 그리고 1822년에 김시찬이 지은 중간지가 실려 있고 이어 목록이 있다. 속집 권미에는 17세손 변두성(卞斗星)이 지은 발과 판권지가 첨부되어 있다.
▶변종운(卞鍾運, 1790~1866) | 소재집(歗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소재(歗齋) 변종운(卞鍾運, 1790~186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만년에 남긴 10편의 자편고를 윤정현이 3권으로 선정하고 서문을 써주었고, 사후 종인 변원규(卞元圭)가 7권 2책으로 산삭해 만든 본을, 손자 변춘식(卞春植)이 1890년에 연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시초(詩鈔) 4권, 문초(文鈔) 3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에서 <중야문금(中夜聞琴)>은 한밤중에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느낀 감상을 읊은 것이고, <이이의(而已矣)>는 중인으로 태어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스러움이 나타난 작품이며, <도비(逃婢)>는 고달품을 견디다 못해 달아난 어린 여종을 잘 돌보아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걱정하는 내용이다. 문초에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질광설(質狂說)>은 30세 때 쌍도(雙島)에 머물며 광인(狂人)을 만나 광(狂)에 대해 논한 내용이고, <각저소년전(角觝少年傳)>은 연약한 소년이 씨름 솜씨를 발휘하여 악승(惡僧)을 징벌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며, <청계혜원선사전(淸谿惠圓禪師傳)>은 불교의 지옥을 유교 시각으로 해석하여 그 실재를 부정하는 혜원선사의 기행(奇行)을 그린 것이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책수에 따라 주문후 배송까지 1주일~보름 정도 소요됩니다.
비단배접지의 문양과 색상은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본의 상태에 따라 영인본의 인쇄가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본이 일부 缺失된 고서는 원본에 준하여 그대로 발행됩니다.
잘못된 책은 교환해드립니다.
 
 
 
 
 
상호명 : 학선재(學善齋) 사업자등록번호 : 206-92-90181 [사업자정보확인]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0서울노원0214호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개인정보담당자 : 박수준 대표 : 박수준
사업장소재지 : ●서울 강남구 논현동 86-6 1층 박선희한복(內)●工房:서울 노원구 한글비석로14길 8, 210-1506
Copyright ⓒ 도서출판 학선재 All Rights Reserved. 02)453-1040(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