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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저자별 > [사]저자[문집총간] : 147종(가격 직접 입력)

 
[사]저자[문집총간] : 147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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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저자별 > 사 : 147종

책번호 [사]저자 서명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바032 상진(尙震, 1493~1564) 범허정집(泛虛亭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01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사가집(四佳集) 27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7 서경덕(徐敬德, 1489~1546) 화담집(花潭集)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27 서경창(徐慶昌, 1758~?) 학포헌집(學圃軒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3 서기(徐起, 1523~1591) 고청유고(孤靑遺稿)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10 서명서(徐命瑞, 1711~1795) 만옹집(晩翁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40 서명응(徐命膺, 1716~1787) 보만재집(保晚齋集)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08 서사원(徐思遠, 1550~1615) 낙재집(樂齋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6 서성(徐渻, 1558~1631) 약봉유고(藥峯遺稿) 2책 1개 서정철(徐廷徹)
나063 서성구(徐聖耈, 1663~1735) 눌헌집(訥軒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65 서영보(徐榮輔, 1759~1816)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8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20 서유구(徐有榘, 1764~1845) 풍석전집(楓石全集)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59 서유본(徐有本, 1762~1822) 좌소산인집(左蘇山人集) 4책 1개 일본 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
마017 서익(徐益, 1542~1587) 만죽헌집(萬竹軒集)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타024 서종급(徐宗伋, 1688~1762) 퇴헌유고(退軒遺稿)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14 서종태(徐宗泰, 1652~1719) 만정당집(晩靜堂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3 서종화(徐宗華, 1700~1748) 약헌유집(藥軒遺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8 서찬규(徐贊奎, 1825~1905) 임재집(臨齋集)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66 서창재(徐昌載, 1726~1781) 오산집(梧山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65 서필원(徐必遠, 1613~1671) 육곡유고(六谷遺稿)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42 서형수(徐瀅修, 1749~1824) 명고전집(明皐全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5 서효원(徐孝源, 1839~1897) 석간집(石澗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79 석지형(石之珩, 1610~?) 수현집(壽峴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38 선우협(鮮于浹, 1588~1653) 돈암전서(遯菴全書)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110 성간(成侃, 1427~1456) 진일유고(眞逸遺稿)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80 성근묵(成近默, 1784~1852) 과재집(果齋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30 성대중(成大中, 1732~1809) 청성집(靑城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5 성만징(成晩徵, 1659~1711) 추담집(秋潭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03 성문준(成文濬, 1559~1626) 창랑집(滄浪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5 성삼문(成三問, 1418~1456) 성근보집(成謹甫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5 성석린(成石璘, 1338~1423) 독곡집(獨谷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31 성수침(成守琛, 1493~1564) 청송집(聽松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54 성여신(成汝信, 1546~1632) 부사집(浮査集)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25 성여학(成汝學, 1557~?) 학천집(鶴泉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3 성운(成運, 1497~1579) 대곡집(大谷集)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56 성이성(成以性, 1595~1664) 계서일고(溪西逸稿)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49 성해응(成海應, 1760~1839)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88책 18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74 성헌징(成獻徵, 1654~1676) 동허재집(洞虛齋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51 성현(成俔, 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8책 2개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05 성혼(成渾, 1535~1598) 우계집(牛溪集) 9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임창재
아151 소두산(蘇斗山, 1627~1693) 월주집(月洲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6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양곡집(陽谷集) 7책 1개 연세대 중앙도서관,일본 동양문고
가121 소시만(蘇始萬, 1734~1765) 국헌집(菊軒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98 소휘면(蘇輝冕, 1814~1889) 인산집(仁山集)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73 손기양(孫起陽, 1559~1617) 오한집(聱漢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15 손만웅(孫萬雄, 1643~1712) 야촌집(野村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04 손명래(孫命來, 1664~1722) 창사집(昌舍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89 손순효(孫舜孝, 1427~1497) 물재집(勿齋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32 손조서(孫肇瑞, 미상) 격재집(格齋集)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마055 손처눌(孫處訥, 1553~1634) 모당집(慕堂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바033 송광연(宋光淵, 1638~1695) 범허정집(泛虛亭集)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12 송국택(宋國澤, 1597~1659) 사우당집(四友堂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42 송규렴(宋奎濂, 1630~1709) 제월당집(霽月堂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23 송근수(宋近洙, 1818~1902) 입재집(立齋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1 송기수(宋麒壽, 1507~1581) 추파집(秋坡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7 송남수(宋柟壽, 1537~1626) 송담집(松潭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41 송내희(宋來煕, 1791~1867) 금곡집(錦谷集)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36 송능상(宋能相, 1710~1758) 운평집(雲坪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74 송달수(宋達洙, 1808~1858) 수종재집(守宗齋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78 송덕상(宋德相, 1710~1783) 과암집(果菴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48 송명흠(宋明欽, 1705~1768) 역천집(櫟泉集)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46 송몽인(宋夢寅, 1582~1612) 금암집(琴巖集)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34 송문흠(宋文欽, 1710~1752) 한정당집(閒靜堂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88 송방조(宋邦祚, 1567~1618) 습정집(習靜集)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52 송병선(宋秉璿, 1836~1905) 연재집(淵齋集) 24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
사203 송병순(宋秉珣, 1839~1912) 심석재집(心石齋集)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79 송상기(宋相琦, 1657~1723) 옥오재집(玉吾齋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4 송상현(宋象賢, 1551~1592) 천곡집(泉谷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40 송순(宋純, 1493~1582) 면앙집(俛仰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47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송자대전(宋子大全) 113책 2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파016 송영구(宋英耈, 1556~1620) 표옹유고(瓢翁遺稿)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4 송이석(宋履錫, 1698~1782) 남촌집(南村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00 송익필(宋翼弼, 1534~1599) 구봉집(龜峯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2 송인(宋寅, 1517~1584) 이암유고(頤庵遺稿)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25 송인수(宋麟壽, 1499~1547) 규암집(圭菴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50 송정렴(宋挺濂, 1612~1684) 존양재집(存養齋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바047 송주석(宋疇錫, 1650~1692) 봉곡집(鳳谷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71 송준길(宋浚吉, 1606~1672) 동춘당집(同春堂集) 18책 4개 연세대학교,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07 송진봉(宋鎭鳳, 1840~1898) 사복재집(思復齋集)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24 송징은(宋徵殷, 1652~1720) 약헌집(約軒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3 송치규(宋穉圭, 1759~1838) 강재집(剛齋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6 송환기(宋煥箕, 1728~1807) 성담집(性潭集) 16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09 송희규(宋希奎, 1494~1558) 야계집(倻溪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84 순조(純祖, 1790~1834) 순재고(純齋稿) 10책 2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200 신개(申槩, 1374~1446) 인재집(寅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3 신경(申暻, 1696~1766) 직암집(直菴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40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여암유고(旅菴遺稿)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7 신광수(申光洙, 1712~1775) 석북집(石北集)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62 신광한(申光漢, 1484~1555) 기재집(企齋集) 10책 2개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80 신구(申球, 1666~1734) 묵암집(默庵集)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타008 신국빈(申國賓, 1724~1799) 태을암집(太乙菴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31 신기선(申箕善, 1851~1909) 양원유집(陽園遺集)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09 신달도(申達道, 1576~1631) 만오집(晩悟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3 신대우(申大羽, 1735~1809) 완구유집(宛丘遺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9 신득구(申得求, 1850~1900) 농산집(農山集) 5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207 신몽삼(辛夢參, 1648~1711) 일암집(一庵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78 신민일(申敏一, 1576~1650) 화당집(化堂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86 신방(申昉, 1686~1736) 둔암집(屯菴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20 신석번(申碩蕃, 1596~1675) 백원집(百源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46 신석우(申錫愚, 1805~1865) 해장집(海藏集)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1 신성하(申聖夏, 1665~1736) 화암집(和菴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0 신수이(愼守彝, 1688~1768) 황고집(黃臯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42 신숙주(申叔舟, 1417~1475) 보한재집(保閑齋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5 신열도(申悅道, 1589~1659) 나재집(懶齋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44 신완(申琓, 1646~1707) 경암집(絅菴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3 신용개(申用漑, 1463~1519) 이요정집(二樂亭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40 신위(申緯, 1769~1845)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29책 6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62 신유(申濡, 1610~1665) 죽당집(竹堂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6 신유한(申維翰, 1681~1752) 청천집(靑泉集) 8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마020 신응구(申應榘, 1553~1623) 만퇴헌유고(晩退軒遺稿)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바014 신응시(辛應時, 1532~1585) 백록유고(白麓遺稿)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92 신익상(申翼相, 1634~1697) 성재유고(醒齋遺稿)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09 신익성(申翊聖, 1588~1644) 낙전당집(樂全堂集)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3 신익전(申翊全, 1605~1660) 동강유집(東江遺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1 신익황(申益愰, 1672~1722) 극재집(克齋集)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73 신작(申綽, 1760~1828) 석천유고(石泉遺稿)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바060 신정(申晸, 1628~1687) 분애유고(汾厓遺稿)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2 신정모(申正模, 1691~1742) 이치재집(二恥齋集) 3책 1개 강경훈(姜景勳)
사046 신정하(申靖夏, 1681~1716) 서암집(恕菴集)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6 신좌모(申佐模, 1799~1877) 담인집(澹人集)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3 신지제(申之悌, 1562~1624) 오봉집(梧峯集)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09 신집(申楫, 1580~1639) 하음집(河陰集) 5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사110 신천익(愼天翊, 1592~1661) 소은유고(素隱遺稿)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94 신체인(申體仁, 1731~1812) 회병집(晦屛集)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64 신최(申最, 1619~1658) 춘소자집(春沼子集)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7 신필흠(申弼欽, 1806~1866) 천재집(泉齋集)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45 신혼(申混, 1624~1656) 초암집(初菴集)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68 신홍망(申弘望, 1600~1673) 고송집(孤松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63 신활(申活, 1576~1643) 죽로집(竹老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27 신후재(申厚載, 1636~1699) 규정집(葵亭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34 신흠(申欽, 1566~1628) 상촌고(象村稿) 20책 4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111 심광세(沈光世, 1577~1624) 휴옹집(休翁集)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도서관
차028 심동구(沈東龜, 1594~1660) 청봉집(晴峯集)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31 심사주(沈師周, 1691~1757) 한송재집(寒松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80 심상규(沈象奎, 1766~1838) 두실존고(斗室存稿) 5책 1개 일본 동양문고,국립중앙도서관
마068 심상정(沈尙鼎, 1680~1721) 몽오재집(夢悟齋集)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4 심수경(沈守慶, 1516~1599) 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9 심언광(沈彦光, 1487~1540) 어촌집(漁村集)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26 심열(沈悅, 1569~1646) 남파상국집(南坡相國集)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72 심유(沈攸, 1620~1688) 오탄집(梧灘集) 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15 심육(沈錥, 1685~1753) 저촌유고(樗村遺稿) 18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14 심의(沈義, 1475~?)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2책 1개 계명대 중앙도서관,일본 봉좌문고
자044 심정진(沈定鎭, 1725~1786) 제헌집(霽軒集)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35 심조(沈潮, 1694~1756) 정좌와집(靜坐窩集)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마007 심지원(沈之源, 1593~1662) 만사고(晩沙稿)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차009 심지한(沈之漢, 1596~1657) 창주집(滄洲集)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05 심희수(沈喜壽, 1548~1622) 일송집(一松集)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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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저자별 > 사 : 147종


▶상진(尙震, 1493~1564) | 범허정집(泛虛亭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범허정(泛虛亭) 상진(尙震, 1493~156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병란과 집안의 쇠퇴로 산일되었으나, 현손 상자화(尙子華), 7세손 상귀택(尙龜澤), 12세손 상위(尙渭)가 유문(遺文)을 수집하여 1942년에 9권 4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5권ㆍ연보 1권ㆍ부록 3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만조(鄭萬朝)ㆍ이중명(李重明)의 서(序)와 유묵(遺墨)ㆍ도(圖)ㆍ총목(總目)이 있다. 시는 20세 때 지은 <기제청송당(寄題聽松堂)>을 비롯하여, 1535년 강원도 관찰사 때 지은 <제강릉연곡창(題江陵連谷倉)>, 1540년 평안도 관찰사 때 지은 <제강계객사(題江界客舍)> 등이 실려 있다. 소차(疏箚)와 계사(啓辭), 의(議), 전(箋) 등은 모두 중종(中宗)ㆍ인종(仁宗)ㆍ명종(明宗)의 실록(實錄)에서 저자의 위정 사적(爲政事蹟)을 발췌한 것이다. 특히 가장(歌章)인 <고조(古調)>는 지난날 우리말의 가사가 언어의 변천으로 없어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훈민정음으로 표기해 전한 것이고, 금조인 <감군은곡>은 임금의 은혜를 생각해 가사체로 표현한 것으로, 당시의 국문학과 가사 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 | 사가집(四佳集) | 권책수 : 27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83년(성종14) 왕명에 의해 저자가 30권으로 편차한 것을, 졸한 직후 1488년에 나머지 유고를 수집하여, 운각(芸閣)에서 갑진자(甲辰字)로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705년(숙종31)에 족손(族孫) 서문유(徐文裕)가 전주 부윤으로 있을 때 문집을 중간하였다. ≪한국문집총간≫에는 시집(詩集) 25권ㆍ시집 보유(詩集補遺) 3권ㆍ문집(文集) 6권ㆍ문집 보유(文集補遺) 2권 합 27책이 실려 있다. 시집은 권1~52까지 편차되어 있으나, 결권(缺卷)을 뺀 25권만이 실려 있다. 권1에는 부(賦)ㆍ사(辭)ㆍ조(操)ㆍ사언시(四言詩)가 실려 있으며, 권2~25에는 각종 시체(詩體)가 섞여 있다. 시집 보유에는 ≪동문선(東文選)≫, ≪황화집(皇華集)≫ 등 여러 문헌에서 뽑은 시편이 3권으로 편차되어 있다. 문집에는 기(記), 서(序)가 실려 있으며, 문집 보유 권1에는 신도비명 등 비지류(碑誌類) 9편이 실려 있고, 권2는 잡저로서 전(箋)ㆍ찬(贊)ㆍ청사(靑詞)ㆍ서(序) 등의 글 8편이 실려 있다. 세조 즉위 후 사명(辭命)의 대부분을 찬술하기도 한 저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서경덕(徐敬德, 1489~1546) | 화담집(花潭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 박민헌(朴民獻)ㆍ허엽(許曄)이 수집ㆍ편차하여 명종ㆍ선조 연간에 10행 20자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이 본은 서ㆍ발이 없고 문과 시를 상ㆍ하권으로 묶은 2권 1책이다. 1601년에 윤효선(尹孝先)이 임진왜란 때 구본(舊本)이 거의 유실된 것을 보고 아들 서응기(徐應麒)에게서 1책을 얻어 민유청(閔惟淸)에게 전사(傳寫)를 부탁하고 자신의 선사발(繕寫跋)을 붙여 보관해 둔 것을, 1605년에는 홍방(洪霶)이 사우간(士友間)에서 유고를 얻어 문집을 간행하였다. 삼간은 중간본을 저본으로 간행한 것이고, 오간은 1786년에는 조유선(趙有善)ㆍ마지광(馬之光)이 개성에서 4권 2책의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원인손(元仁孫)과 윤숙(尹塾)이 지은 서, 목록이 실려 있다. 본집 권1에는 부 1편과 시 100여 수가 실려 있으며, 권2는 문으로 소ㆍ서ㆍ잡저ㆍ서ㆍ명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문인록이 실려 있는데, 민순(閔純)ㆍ박순(朴淳)ㆍ허엽 등 24인의 문인들이 약술되어 있다.
▶서경창(徐慶昌, 1758~?) | 학포헌집(學圃軒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포헌(學圃軒) 서경창(徐慶昌, 1758~?)의 문집이다. 편사(編寫) 경위(經緯)는 불분명한 필사본(筆寫本)이다. 본집(本集)은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천수경(千壽慶) 등이 지은 <학포헌기(學圃軒記)> 2편과 목록(目錄)이 있다. 사(詞), 부(賦), 시(詩), 제문(祭文), 서(書), 설(說), 서(序), 전(傳)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1815년에 지은 <을해탄(乙亥歎)>은 질병(疾病)과 기근(饑饉)으로 유망(流亡)하며, 관청(官廳)의 부역(負役)으로 생활을 할 수 없는 등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극명(克明)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인삼(人蔘) 재배의 상황(狀況)과 모순점을 상세히 개진하고 그 개선책(改善策)을 제시한 <의상재상서(擬上宰相書)>, <전군적삼폐설(田軍糴三弊說)>은 당시 군정(軍政)의 조목별(條目別)로 피력(披瀝)한 것이다. 서(序)는 <종저방서(種藷方序)>로서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구마를 경작하면 구황(救荒)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아울러 언문본(諺文本)도 편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말미(末尾)에는 중형(仲兄)의 제문(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서기(徐起, 1523~1591) | 고청유고(孤靑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의 문집이다. 저자가 본래 저술을 남기기를 좋아하지 않아 시문이 얼마 없는 데다 그마저도 왜란을 겪는 사이에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후 5대손 서행원(徐行遠)이 가전 구록(家傳舊錄)과 제가(諸家)의 문적(文籍)에서 수습하여 시(詩) 11수를 모으고 박지화(朴枝華)가 지은 묘갈명 등을 찾아 1책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을 충청도 관찰사로 있는 홍계희(洪啓禧)에게 가져가 편차(編次)와 간행(刊行)을 부탁하였고 1750년 공주(公州)에서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책의 구성은 본집의 시와 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시로는 10세 때 지은 <제죽병(題竹屛)>, 송익필(宋翼弼)을 만나던 일과 연관된 <숙보은객사(宿報恩客舍)> 등이 있다. 부록에는 묘갈명(墓碣銘), 행장(行狀), 유사(遺事) 등이 실려 있는데, <유사>에는 타인의 문집에 나오는 저자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수록해 놓았다. 제자백가의 책들을 섭렵하고, 선학(禪學)을 애호하였으나, 토정 이지함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부터 유도(儒道)가 정도(正道)임을 깨닫고 후학을 가르치는 데 힘쓴 저자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서명서(徐命瑞, 1711~1795) | 만옹집(晩翁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만옹(晩翁) 서명서(徐命瑞, 1711~17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만보(晩輔)와 현손 구순(九淳)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권재형(權在衡)의 교정을 받아 1899년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1책이다. 권수에는 족현손 정순(正淳)이 1899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이다. 시는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부는 <차등루부(次登樓賦)>로 왕찬(王粲)의 <등루부(登樓賦)>에 차운한 것을 읽고 지은 것이다. 권2는 문(文), 잡저이다. 문의 <김학봉용사일록서(金鶴峯龍蛇日錄序)>는 의령 현감으로 있을 때 이일화(李一華) 등의 부탁으로 지은 이로(李魯)의 ≪용사일기(龍蛇日記)≫의 서문이고, 잡저의 <보첩원류(譜牒源流)>는 달성 서씨의 유래와 분화 등을 기술하고 후손들에게 가문의 명예를 잘 이어나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권3은 <초학화일도(初學畫一圖)> 등의 도설(圖說)이고, 권4는 부록으로 1752년부터 1794년까지 저자의 관직 활동을 기록한 <종환실기(從宦實記)>와 1795년에 이경운(李庚運)이 지은 사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서명응(徐命膺, 1716~1787) | 보만재집(保晚齋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보만재(保晚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아들 서형수와 서호수, 손자 서유구가 주축이 되어 1787년 16권 8책으로 편찬하고, 1838년 서유구가 정미년 편정본 16권 8책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권1~2는 사(辭), 악가(樂歌), 시(詩)이다. 시는 군정(軍丁)의 차출에 시달리는 농민의 애환을 그린 내용,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화운한 것, 백거이(白居易)ㆍ한유(韓愈)ㆍ소동파(蘇東坡) 등의 문장을 논한 것과 독서의 느낌을 쓴 것 등이 있다. 권3~5는 소차(疏箚)와 계(啓)이다. 권6은 서(書)로 안부를 묻는 내용부터 자신의 시문을 보내어 질정을 구하는 내용, 문장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악가(樂歌)에 대한 의논, ≪국조보감(國朝寶鑑)》을 편찬하면서 의논할 점들을 적어 보낸 내용 등이 있다. 권7~9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이다. 서문은 주로 자신이 편찬한 책의 서문이나 그림, 시(詩)에 대한 서가 많다. 그밖에 옥책문(玉冊文), 죽책문(竹冊文), 반교문(頒敎文), 전문(箋文), 상량문, 제문, 묘도 문자, 행장(行狀), 시장(諡狀)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있다.
▶서사원(徐思遠, 1550~1615) | 낙재집(樂齋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목판으로 초간한 후, 후손 택렬(宅烈)이 증보ㆍ재편하여 1843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며, 원집 7권, 연보 3권, 부록 합 4책이다. 권수에 박광석(朴光錫)과 서인순(徐麟淳)이 1843년에 지은 중간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서 시체별로 편차되고, 각각 연대순으로 실려 있는데, 차운시와 경물을 읊은 시가 많다. 권2는 시(詩), 장편, 만사, 부이다. 시는 칠언사운이고 장편은 칠언이며, 차운시가 많은 편이다. 권3~4는 서(書)인데, 대부분 정구에게 올린 편지와 체찰사나 방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권5는 묘갈, 비문, 제문, 축문이고 권6~7은 잡저이다. 그 중에서 <공부차록(工夫箚錄)>은 공부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인도(仁圖), 구인도(求仁圖) 등의 도상이 붙어 있다. 연보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권1은 연보이고, 권2~3은 연보의 부록이다. 행록, 묘갈명, 상량문, 이강서원에 봉안하는 글 등이 있고, 부록은 척독으로 정구(鄭逑), 김우옹(金宇顒), 이호민(李好閔), 정경세(鄭經世)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성(徐渻, 1558~1631) | 약봉유고(藥峯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정철(徐廷徹)
-조선 중기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병란을 거치면서 남아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증손 서문중(徐文重)이 가장(家藏)해 오던 유집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원집 2권, 부록 2권으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했고, 그 후 1705년 아우 서문유(徐文裕)가 전주에서 ≪사가집(四佳集)≫과 함께 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나 현전하는 것이 없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27년 활자로 간행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약 170여 수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왜란 시 경험과 감상을 서술한 <증의승학상(贈義僧學祥)>, 승경(勝景)을 유람하며 지은 것, 중국 사신의 접반관이 되어 사신과 차운한 시 등이 있다. 권2는 시, 잡저, 보유(補遺)이다. 시 중에는 명화(名花)와 여색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지조를 드러낸 <소의행(笑矣行)>이 있다. 잡저로는 선조인 서거정(徐居正)에 대한 제문과, 사직소 등의 글이 있다. 보유로는 시(詩), 서(序), 발(跋), 그리고 태백산사고수직절목(太白山史庫守直節目)이 실려 있다. 권3~4는 부록이다
▶서성구(徐聖耈, 1663~1735) | 눌헌집(訥軒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눌헌(訥軒) 서성구(徐聖耇, 1663~17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7대손 상종(相鍾) 등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권연하(權璉夏) 등의 교감을 받아 189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연하가 1890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1편과 시(詩)이다. <석과불식부(碩果不食賦)>는 역(易)의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는 박괘(剝卦) 상구효(上九爻)의 의미를 풀어낸 것이다. 권2는 시(詩), 서(書), 서(序), 기(記), 명(銘)이다. 기(記) 가운데 <낙천당기(樂天堂記)>는 박천구(朴天球)에게 ‘낙천명(樂天命)’하기를 바라며 지어준 것이고, <눌헌기(訥軒記)>는 눌헌을 짓고 ‘근언(謹言)’과 ‘영모(永慕)’의 뜻을 새기며 지은 것이다. 권4~5는 잡저인 학리도설(學理圖說)로 총 50개의 도설을 수록하여 천인합일의 오묘함을 집약하였으며, 문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권6은 부록이고 권말에는 족후손 재정(在正)이 1896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7대손 상종이 쓴 발, 5대손 상렬(庠烈)이 1898년에 지은 후지가 있다.
▶서영보(徐榮輔, 1759~1816) |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 1759~18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해 편차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동년 급제한 이만수(李晩秀)의 시장에 가장되어 있던 유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본집의 필사자와 필사 연대는 불분명하다. 광곽에 교정과 편차를 위해 첨가한 글들과 교정첨지가 많이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교정고본으로 추측된다. 본집은 불분권 8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다. 각 책마다 목록이 있다. 책1은 시로, 규장각에서 숙직하며 이덕무에게 보낸 <직리원시이무관검서(直摛院詩李懋官檢書)>, 부평 오곡에 기거할 때 신위(申緯)의 방문을 받고 지은 <자하객지념삼연서(紫霞客至拈三淵書)>, 유득공의 시에 화답하는 <수유혜보검서(酬柳惠甫檢書)> 등이 있다. 책2는 시, 서(序), 발로 <송인서(送人序)>는 홍충 병영의 성첩을 보수한 공로로 특별히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떠나는 김영수(金永綬)에게 명장 척계광(戚繼光) 같은 인물이 되도록 권하는 글이다. <송극옹부연서(送屐翁赴燕序)>는 1803년에 연경으로 떠나는 이만수에게 주는 글과 시이다. 책8은 예기차록(禮記箚錄)이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 | 풍석전집(楓石全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문집이다. 정조대에 성세를 누린 소론 가문이었으나 중부 서형수(徐瀅修)가 김달순(金達淳)의 옥사에 연루되어 저자도 관직에서 물러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업에 관한 저술을 하였다. 풍석고협집(楓石鼓篋集)은 저자가 18세인 1781년부터 1788년까지의 글을 자편하고, 서형수(徐瀅修)의 서문(序文)과 자인(自引)을 붙여 자편한 문집이고, 금화지비집(金華知非集)은 편찬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나, 그 내용이 저자가 관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고, 권3에 있는 <여계제사침서(與季弟士沈書)>에 있는 구절을 보면 1809년에 저자가 정계에서 물러난 후 김화(金華)에 살 때 자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래 따로 되어 있던 풍석고협집과 금화지비집을 누가 합편하고 전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본집은 풍석고협집 6권, 금화지비집 12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88년에 중부 서형수의 <풍석고협집서(楓石鼓篋集序)>, 이유원(李裕元)의 <풍석집서(楓石集序)> 및 저자의 <자인>이 있다. 풍석고협집은 권1~6으로 되어 있다. 금화지비집은 권1~12로 되어 있다.
▶서유본(徐有本, 1762~1822) | 좌소산인집(左蘇山人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일본 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
-조선 시대 좌소산인(左蘇山人) 서유본(徐有本, 1762~1822)의 문집이다. 서발문이나 사기(寫記) 등의 관련 기록이 없어 명확한 편사(編寫) 경위를 알 수 없고, 다만 괘인지(罫印紙) 판심 하단 우측에 필사되어 있는 ‘풍석암서옥(楓石庵書屋)’이, 서유구가 1837년 ‘자연경실장(自然經室藏)’ 괘인지를 쓰기 전까지 사용하던 것으로 보아, 1837년 이전에 동생 유구가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문집이 8권 4책의 분량임에도 문체를 시(詩)와 문(文)만으로 간단히 구분한 점과 편집을 수정하려는 흔적이 일부 보이는 점, 오자는 붉은 글자로 정정하고, 종이를 덧붙어 새로 정서한 곳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정고본(定稿本)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3은 문(文)으로 모두 서(書)이다. 수신자는 김영(金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안사람이며 내용은 주로 상례에 관한 것이다. 권4는 문으로 서(書)와 변(辨)이다. 권8은 문이다. 1794년에 쓴 <진주순난제신전(晉州殉難諸臣傳)>은 집전(集傳)으로 김시민(金時敏), 최경회(崔慶會) 등이 진주성을 지키고 나라를 방어한 것과 진주성 싸움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서익(徐益, 1542~1587) | 만죽헌집(萬竹軒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 1542~15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증손 서필원(徐必遠)과 4대손 서경조(徐敬祖)가 ≪청구풍아(靑丘風雅)≫, ≪국조시산(國朝詩刪)≫등에서 수집한 시문을 편차한 가장초본에, 7대손 진항(鎭恒)이 부록을 증보하여 179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추부(追附), 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31년에 이재(李縡)가 지은 서문, 1790년에 7대손 서진항(徐鎭恒)이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시체별로 배열된 84제의 시와 약간의 문이 실려 있다. 권1은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이고, 권2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과체시, 소(疏), 묘명이다. 특히 소(疏)는 의주 목사로 재임하던 1585년에 이이, 정철 등이 정여립에게 무고를 당하자 이들을 변호하는 내용이다. 추부에 실린 의(疑) 1편은 편차가 끝난 다음에 습득하여 추가로 부기한 것으로, 1564년에 시행된 사마시 회시의 과제와 저자의 답안이며 부록은 1786년에 이교년(李喬年)이 지은 행장, 1772년에 정실이 지은 지명, 이재가 지은 비명, 은진 갈산서원에 봉안될 때의 제문과 축문이다.
▶서종급(徐宗伋, 1688~1762) | 퇴헌유고(退軒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헌(退軒) 서종급(徐宗伋, 1688~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서문은 없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대개가 일상생활에서 지인들과 화운하거나 관직 생활 중의 심회를 읊은 것이다. 이 가운데 <영회(詠懷)> 이하 여러 작품들은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을 당시 지은 것이며, <관서백연시연주초구화(關西伯延諡宴走草求和)> 이하 몇 편은 홍원 현감(洪原縣監)으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시들이다. 권2~3은 소(疏)이고 권4~5는 응제록으로 반교문, 옥책문, 악장, 교서, 제문, 치제문, 불윤비답이다. 권6~7은 이기진(李箕鎭), 김취로(金取魯) 등의 시장과 가장, 행장, 비명, 묘갈명이다. 권8은 묘지, 책(策), 서(序), 전(箋), 장(狀), 서(書)이고 권9는 상량문, 혼서, 제문, 축문, 기(記), 일록이다. 일록은 조고비묘의 비문을 청하기 위해 청풍(淸風) 황강(黃江)에 있던 권상하(權尙夏)를 찾아뵈러 가면서 적은 일기이다. 권10은 부록으로 저자가 받은 교서와 묘지명, 작자 ㆍ의 묘지, 제문, 만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종태(徐宗泰, 1652~1719) | 만정당집(晩靜堂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만정당(晚靜堂) 서종태(徐宗泰, 1652~1719)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기록, 수집해 두는 데 힘썼으며, 유고는 영조 후기에 손자 서지수(徐志修) 등이 운각 활자를 써서 18권 9책 분량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권1~4는 소부(騷賦), 시(詩)이다. 소부는 1675년 지은 <북산사(北山辭)>, 1703년 지은 명나라 태학사 손승종(孫承宗)의 애사(哀辭) 등 7편이 있고, 시는 360여 제가 실려 있다. 함경도 학성(鶴城) 일대와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것, 송시(送詩), 만시(挽詩), 차운시 등이 있다. 권5~8은 소차(疏箚)이다. 주로 사직소이고, 논사소(論事疏), 시폐(時弊)와 소회(所懷)를 진달한 상소 등이 있다. 권9는 계사(啓辭)와 서계(書啓)이다. 1702년 장희재(張希載)를 살려주자고 한 남구만(南九萬) 등을 신구(伸救)한 <헌부피혐계사(憲府避嫌啓辭)>와 1706년 이후 삼정승 제수를 사양한 뒤 내린 돈유(敦諭)에 대해 올린 서계 등이다. 권10은 의(議), 옥당고사(玉堂故事), 응제록(應製錄)이다. <옥당고사(玉堂故事)>는 임금이 힘써야 할 진정한 총명(聰明)의 의미 등을 논하였다.
▶서종화(徐宗華, 1700~1748) | 약헌유집(藥軒遺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약헌(藥軒) 서종화(徐宗華, 1700~174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명인(命寅)이 1776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증손 유형(有泂)이 교정하여 1861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1738년 부친을 모시고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일련의 시편 중에는 의론을 개진한 작품이 많다. <산유화(山有花)>에서는 유자의 논도(論道)를 경계했고, <유점사봉완광묘어독(楡店寺奉翫光廟御纛)>에서는 세조의 그릇된 판단을 꼬집었다. 권3~4의 앞부분은 서(書)이고 권4의 뒷부분은 국서(國書), 서(序)이다. 서(序) 가운데 <약전화수계서(藥田花樹契序)>는 전곡(錢穀)을 갹출하여 친족계를 만들게 된 취지와 경위를 적은 글이다. 권5는 기(記), 제발, 송(頌), 명(銘), 설(說), 변(辨)이고 권6은 제문이다. 권7은 애사, 묘지, 행장, 유사이고 권8은 잡저와 부록이다. 잡저 가운데 <죄기서(罪己書)>는 지난날을 반추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독려한 글이다. 권말에 아들 명인이 1776년에 지은 발과 증손 유형이 1861년에 지은 발이 있다.
▶서찬규(徐贊奎, 1825~1905) | 임재집(臨齋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문인 이화상(李華祥)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1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권수(卷首)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서문을 수록하고, 부록에 손자 갑수(甲洙)의 가장(家狀)을 추가한 목판본은 1931년에 신현구(申鉉求) 등이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의 임연당(臨淵堂)에서 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집은 17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0~11은 잡저이다. <교성보의(嶠省堡議)>는 1875년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방어책을 논한 것으로 자수자강(自守自强)과 산성(山城)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필(謾筆)>은 천지조화를 이루는 이기론(理氣論)을 논한 것으로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의 주(主)가 된다고 설명하고 서교(西敎)를 비판하고 위정벽이(衛正闢異)가 급선무임을 역설하였다. <잡기(雜記)>는 군자의 학문, 입지, 용심 등 여러 가지 학문,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글이다. 권미에 문인 이화상가 190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서창재(徐昌載, 1726~1781) | 오산집(梧山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오산(梧山) 서창재(徐昌載, 1726~178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명윤(明胤)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손 간발(榦發)이 이인행(李仁行)에게 수교(讎校)를 받아, 저자가 직접 성편(成篇)하고 이상정의 손자 이병원(李秉遠)이 교정한 ≪관례고정≫과 함께 1831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3은 서(書)이다.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대부분 스승이나 문인, 조카들과 경서, 예서 등에 대해 질의 응답한 것으로, 별지나 문목을 덧붙여 작성하였다. 권4는 잡저, 서(序), 발(跋)이다. 잡저는 ≪중용장구≫의 여러 의문점들에 대한 견해를 진술한 <중용질의(中庸質疑)>이다. 권5는 잠(箴), 명(銘), 상량문, 제문, 행장, 묘지이다. <성인육잠(成人六箴)>은 조카 영윤의 관례를 앞두고 성인이 닦아야 할 지신(持身), 사친(事親) 등의 여섯 조목을 들어 규계(規戒)한 것이다. 권미에 종손 간발이 1831년에 지은 발이 있다.
▶서필원(徐必遠, 1613~1671) | 육곡유고(六谷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육곡(六谷) 서필원(徐必遠, 1613~1671)의 문집이다. 본가(本家)의 몇 차례 화재로 인해 유고(遺稿)가 대부분 소실되었다. <호서수군방략(湖西水軍方略)>과 <서원교폐절(目(書院矯弊節目)>과 같은 저작조차 남지 않았는데, 아들 서경조(徐敬祖)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중에서 저자의 소장(疏章) 70편과 계사(啓辭) 12편을 찾아내고, 또 남은 시문을 수습하여 약간 권을 선사(繕寫)해 가장(家藏)해 두었다. 이후 1790년(정조14) 문중에서 저자와 조부 소호공(蘇湖公) 서용갑(徐龍甲), 아들 의암(宜菴) 서경조(徐敬祖)의 문집을 ≪삼세유고(三世遺稿)≫로 간행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본집의 정리와 편차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6세손 서영지(徐榮智)와 서영인(徐榮仁) 등이 이 가장본(家藏本)을 바탕으로 부록문자를 정리하여 이약우(李若愚)의 서와 김기찬(金基纘)의 발을 붙여 1865년(고종2)에 활자로 6권 3책을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1~4는 시문, 권5~6은 부록이다. 권두에 이약우(李若愚)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말에 김기찬의 발과 6세손 서영지의 지(識)가 있다
▶서형수(徐瀅修, 1749~1824) | 명고전집(明皐全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명고(明皐) 서형수(徐瀅修, 1749~1824)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조카 서유구(徐有榘)가 저자의 유명(遺命)에 따라 30권으로 된 시문집을 산정하여 22권으로 만들고, 여기에 저자의 저술인 <학도관(學道關)>, <홍범직지(洪範直指)>, <시고변(詩故辯)>을 붙여서 선사하여 문집을 완성하였다고 하나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필사년 미상의 사본으로, 20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로는 경치를 읊은 것, 회고시, 심양으로 가는 유득공과 연경으로 가는 이희경을 전송한 송시(送詩) 등이 있다. 소계(疏啓)로는 역적 홍계능(洪啓能)에게 글을 배웠다는 이유로 파직시킬 것을 청한 상소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진술하고 사직을 청한 내용 등이 있다. 그밖에 서(書), 서(序), 기(記) 등이 실려 있다. 권17~18은 사서(四書)에 대한 강의(講義)이다. 권19는 <학도관>으로, 천지, 오행(五行), 만물 세 항목으로 나누어 성리학의 주요 개념인 양의(兩儀), 오상(五常)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권20은 <홍범직지>로 홍(洪)은 크다는 뜻이고, 범(範)은 광곽(匡郭)을 뜻한다는 설명에서 시작하여 홍범편의 뜻을 조목조목 설명하였다.
▶서효원(徐孝源, 1839~1897) | 석간집(石澗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 1839~18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의 정리는 장남 석화(錫華)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6권 4책으로 편차한 후 저자의 삼종제 효신(孝信)에게 발문(跋文)을 받아 1916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집(本集)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5는 서(書)이다.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경학과 성리학적 논제에 관한 것과 학행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권6은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상량문(上樑文)이다. 그중에서 <명덕심성변(明德心性辨)>은 ≪대학장구≫에 나오는 명덕(明德)이 ‘심(心)’이냐 ‘성(性)’이냐 ‘심(心)과 성(性)’이냐는 논쟁에 대한 논문이며, <대학전구장의의(大學傳九章疑義)>는 ≪대학장구≫ 제치장(齊治章)의 ‘기가불가교(其家不可敎)’의 ‘가(可)’를 ‘가(可)’와 ‘능(能)’으로 보았을 때의 해석에 대한 논문이다. 권미(卷尾)에는 삼종제 효신이 지은 발(跋)이 있다.
▶석지형(石之珩, 1610~?) | 수현집(壽峴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현(壽峴) 석지형(石之珩, 1610~?)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규서(奎瑞)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성천 부사(成川府使) 정협(鄭悏)의 협조를 받아 170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상ㆍ하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이 1670년에 쓴 서문과 허목(許穆)이 1674년에 쓴 서문이 있다. 권상은 시체별(詩體別) 시와 문(문)이다. 시는 칠언절구가 가장 많고 내용은 대부분 일상생활의 감흥과 근심 등 소소한 감정을 읊은 시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고열행(苦熱行)>은 가뭄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참상과 이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저자의 심정이 장편의 구절 속에 애절하게 드러나 있다. 권하는 문(文)이다. 그중에서 <오위귀감(五位龜鑑)>은 역(易)의 5효가 바로 군위(君位)라서 군도(君道)에 가장 절실하므로 자세히 부연 설명하여 효종에게 바친 것이다. 이 <오위귀감>에 대해 효종은 은혜로운 비답(批答)과 함께 호피(虎皮)를 하사하였다. 권말에 김성호(金性豪)가 1698년에 쓴 발문과 아들 규서가 1709년에 쓴 지(識)가 있다.
▶선우협(鮮于浹, 1588~1653) | 돈암전서(遯菴全書)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돈암(遯菴) 선우협(鮮于浹, 1588~16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윤자(胤子) 선우집(鮮于檝)과 문인 김기수(金起洙) 등이 1672년경에 정리하였고, 1681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송시열의 서문과 박세채의 발문이 실려 있다. 본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대역리상(大易理象)>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심학지요(心學至要)>로, 천도(天道), 천인심성일리(天人心性一理), 등 초학자에게 필요한 심학 공부의 요체를 경전을 참고하여 33조목의 단구(短句)로 정리한 것이다. 권2는 <역학도설(易學圖說)>이 실려 있다. 권3은 해(解)와 설(說)이다. 역(易)에 대한 해설과 역의 기원과 개념 및 변천을 설명한 것이다. 권4는 <태극변해(太極辨解)>가 실려 있다. 첨부한 설(說)은 <태극설>, <음양설>, <오행설> 등 태극과 음양오행에 관련된 글들이다. 권5는 유문(遺文)으로 소(疏), 기(記), 부(賦) 1편씩과 시(詩), 서(序)를 모아놓은 것이다. 시는 28제(題)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성리학의 주요 개념을 다룬 글과 도설(圖說)이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성간(成侃, 1427~1456) | 진일유고(眞逸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 1427~1456)의 문집이다. 유방선(柳方善)의 문인으로, 김수온(金守溫)ㆍ서거정(徐居正)ㆍ이승소(李承召)ㆍ강희맹(姜希孟)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은 저자 사후에 형 성임(成任)이 유고(遺稿)를 모으고, 동생 성현(成俔)이 편집하여 1467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467년 서거정과 성현이 쓴 서문(序文)이 실려 있으며, 권1~3에는 107제 241수의 시가 실려 있다. 시집의 편차는 일정하지 않으나, 권1에는 급제한 이후 관직생활과 관련된 시가 많고, 권2~3에는 명승(名勝)의 유람과 교유시가 많은 편이다. 권4에는 부(賦) 2편, 서(序) 4편, 기(記) 3편, 설(說) 1편, 서후(書後) 1편, 전(傳) 1편, 전(箋) 1편 등 13편의 글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458년 이승소(李承召)가 쓴 발(跋)이 실려 있으나, 이 중 1판(板)이 낙장(落張)되어 있다.
▶성근묵(成近默, 1784~1852) | 과재집(果齋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과재(果齋) 성근묵(成近默, 1784~185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손자 성두호(成斗鎬)가 시문을 수습하여 책자로 만들고 1883년에 8권 4책의 활자본으로 초간하였다. 권1~2의 시(詩) 중에 자경(自警)은 28세에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진 시이고, <주덕시십일장(酒德詩十一章)>은 술의 덕을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 경계하는 내용의 사언시(四言詩)이다. 1843년경에 지은 <관동기행고시십이장장팔구(關東紀行古詩十二章章八句)>는 이천준(李天峻)과 관동 지방을 유람했을 때 지은 시이다. 권3의 소계 가운데 <정미봉사(丁未封事)>는 이양선에 대한 엄중한 대처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권4~5의 잡저 중 가훈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심성을 보존하는 것부터 일용의 세칙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제정한 것이다. 서(序) 중에 <동유록서(東遊錄序)>는 이천준과 관동 지방을 유람한 기록인 동유록 뒤에 붙인 서문이다. 기(記) 중에 <하석정기(霞石亭記)>는 장령(掌令)을 사직하고 관악산 아래로 물러나 지은 정자에 붙인 것이고, <작약산료기(芍藥山寮記)>는 강필로(姜必魯)가 태백산 아래에 지은 별서에 붙인 것이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 | 청성집(靑城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문집이다. 아들 성해응(成海應)의 가집의례에, 시문 외에 송사전(宋史筌) 1권, 췌언(揣言) 1권, 질언(質言) 1권, 성언(醒言) 3권 등이 있었으나 너무 박잡하여 문집으로 편차하기 어려우므로 시문만을 편정하여 산삭하여, 손자 성헌증(成憲曾)이 부친의 뜻을 이어 1840년 조인영(趙寅永)에게 서문을 받고, 조만영(趙萬永)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운각활자로 문집을 10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권두에 조인영이 1840년에 쓴 서문이 실려 있다. 각 권마다 첫머리에 목록이 달려 있고, 권1~4는 시(詩), 권5~10은 문(文)이며, 부록은 실려 있지 않다. 권1~4는 시로, 1763년 서기관으로 조엄(趙曮)을 따라 일본에 다녀오던 때를 전후한 시기의 시가 많다. 전(傳)은 모두 충성과 효행의 실질이 있는 자들을 입전한 것이다. 한순계(韓舜繼)는 선조 연간의 학자로 동기(銅器)를 팔아 노모를 봉양하고 신역을 직접 부담한 인물이며, 유찬(柳澯)은 광해군 때 지조를 지키느라 사직하였는데 인조반정 이후 종부인 유몽인(柳夢寅)에게 연루되어 억울하게 유배가 죽은 인물이다.
▶성만징(成晩徵, 1659~1711) | 추담집(秋潭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성만징(成晩徵, 1659~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석(檡) 등이 산일되고 남은 유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사림의 협조를 받아 1926년 상주(尙州)의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으며 각 책별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1702년에 황강에 가서 지은 <경차선생운(敬次先生韻)> 등 권상하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다. 권2~5는 서(書)로, 주로 예설을 변론(卞論)하고 이기설, 경설에 대하여 토론한 것이며, 권상하, 정호, 이세필, 권욱(權煜), 권섭(權燮), 이태수(李泰壽) 등에게 보낸 편지가 많다. 권6은 기(記), 제발이다. 기 가운데 <자족당기(自足堂記)>는 남극주(南極柱)의 당명(堂名)을 풀이하면서 안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권7은 잡저, 제문, 축문, 행장, 전(傳), 잡기(雜記)이다. 잡저 가운데 <만동사시비변(萬東祠是非辨)>은 1704년에 만동묘 향사를 옹호하며 반노론계의 격렬한 논쟁에 맞서 지은 것이다. 권8은 부록으로 묘표, 가장, 만사 등이고 권말에 7대손 석이 1926년에 쓴 발이 있다.
▶성문준(成文濬, 1559~1626) | 창랑집(滄浪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랑(滄浪) 성문준(成文濬, 1559~1626)의 문집이다. 아들 성직(成㮨)은 1662년경 가장(家藏)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편차한 뒤 형 성익(成杙)의 <나진시고(懶眞詩稿)>를 부집(附集)으로 함께 간행하려고 정두경(鄭斗卿)의 서문(1662년)과 신량(申湸)의 발(1663년)을 받았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표질(表姪) 윤선거(尹宣擧)가 1667년 <우계속집(牛溪續集)>을 편차하면서 저자의 문집 <창랑집(滄浪集)> 2책을 다시 교정하고 송시열에게 묘지명을 받았으며, 증손 성지선(成至善)이 1682년 이 교정본에 박세채(朴世采)의 발(跋)을 받아 전라도 관찰사 신익상(申翼相)의 도움으로 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정두경이 지은 서가 있고, 권1~2는 시, 권3~4는 문(文)이다. 권3~4는 잡문(雜文)인데, 그중 <상해평부원군서(上海平府院君書)>는 1608년 윤근수(尹根壽)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성혼(成渾)을 신원(伸寃)한 광주 목사 신응구(申應榘)의 상소가 정철(鄭澈)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큰 분란을 일으키자, 소를 작성하는 데 참여했던 저자의 변명을 담은 내용이다.
▶성삼문(成三問, 1418~1456) | 성근보집(成謹甫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만력 연간에 윤유후(尹裕後)가 ≪성선생유고(成先生遺稿)≫ 사본을 ≪동문선(東文選)≫ 등과 비교하여 중첩된 것은 빼고 7~8편을 보태어 시부(詩賦) 89수, 문(文) 16편으로 편집하였다고 한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영조 연간에 간행된 편간자(編刊者) ㆍ 4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1의 시는 총 45제(題) 107수(首)인데, 저자가 세종 24년(1442)에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할 당시 박팽년(朴彭年) 등과 수창(酬唱)한 장편 연구(聯句) 3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비해당(匪懈堂)>을 읊은 오절(五絶) 48수 등 저자의 주요 행력과 관계가 깊은 작품이 많다. 권2는 문(文)이다. 당시 화어(華語)의 입문서로 알려진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과 안평대군이 찬(撰)한 ≪팔가시선(八家詩選)≫에 대한 서문 등이다. 그 외에 송(頌) 2편, <팔준도명(八駿圖銘)>과 신도비명, <집현전진팔준도전(集賢殿進八駿圖箋)>과 대책(對策)이 있다. 권3~4는 부록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저자의 시문과 저자에 관한 유사(遺事)가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성석린(成石璘, 1338~1423) | 독곡집(獨谷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42년(세종24) 왕명으로 경연에서 정리ㆍ편집하여, 14년 뒤인 1456년(세조1) 6월에 손서(孫婿)인 평양 감사 김연지(金連枝)가 처음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4년 뒤인 1460년 김연지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진주(晉州)에서 다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상ㆍ하 2권 합 2책의 시집으로, 450여 제(題)의 시가 실려 있다. 상권에는 여러 편의 행(行)ㆍ가(歌)ㆍ고시(古詩)를 비롯하여 오언율시 95제(題), 칠언율시 63제가, 하권에는 오언절구 57제, 칠언절구 210제, 육언시 1제가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송시(送詩)ㆍ차운시(次韻詩)ㆍ화답시(和答詩) 등이 많아 시에 나타난 인물만도 2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권1의 <차융상인시권제공운(次融上人詩卷諸公韻)>ㆍ<차휴상인귀풍악산차기우자운(次休上人歸楓岳山次騎牛子韻)> 등 17수, 권2의 <송승지풍악(送僧之楓岳)> 등 43수는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시제(詩題)이다.
▶성수침(成守琛, 1493~1564) | 청송집(聽松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문집이다. 본 문집이 처음 간행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영천(靈川) 신응구(申應榘)에게 준 편지에서 본집에 부록(附錄)된 <절효선생묘지명(節孝先生墓誌銘)>을 인용하고 있고 <청송행장(聽松行狀)>이 1576년에 지어진 것을 미루어 보면 선조 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1806년 8세손 성긍주(成肯柱)가 풍기 군수(豐基郡守)로 있을 때 초간본을 가장초본(家藏草本)과 교수(校讎)하여 그 탈오(脫誤)를 고치고 아울러 시 약간 편을 얻어 부록에 첨입(添入)한 후 경상도 관찰사 윤광안(尹光顔)의 발을 받아 풍기의 욱양서원(郁陽書院)에서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은 시, 권2~3은 부록이다. 권1은 시로서, <산거잡영(山居雜詠)>은 말년에 구작(舊作)을 기억하여 칠언절구를 모아 스스로 이름 붙인 것이다. 권미에는 1806년에 지은 윤광안의 발이 실려 있다.
▶성여신(成汝信, 1546~1632) | 부사집(浮査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1546~163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家藏)된 유문(遺文)을 3책으로 정리하고 연보(年譜)를 편차하여 붙인 것을 1785년 그의 종자(從子) 성동익(成東益)과 족손(族孫) 성사렴(成師濂)의 주도로 진주(晉州)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모두 8권 4책이다. 이 중에서 권5와 권6이 결책(缺冊)되어 본집에 수록된 것은 모두 6권 3책이다. 권1~2는 시(詩), 사(辭), 부(賦) 등의 운문(韻文)이다. 경주의 유적지를 대상으로 지은 <동도유적(東都遺跡)>과 평양의 유적지를 대상으로 한 <서도유적(西都遺跡)>,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금천(琴川)을 대상으로 한 <구곡시(九曲詩)> 등이 있다. 권3은 소(疏), 서(書), 서(序), 발(跋), 기(記)이다. 권4는 상량문, 잠(箴), 찬(贊), 비명(碑銘), 묘지(墓誌), 제고축문(祭告祝文)이다. 권5와 권6은 결권된 부분이고, 권7은 세계도(世系圖)와 연보이다. 권8은 안시진(安時進)이 찬(撰)한 언행록(言行錄), 안정복(安鼎福)이 찬한 행장(行狀) 및 묘갈명, 그리고 만사(挽詞)와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성여학(成汝學, 1557~?) | 학천집(鶴泉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 155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는 외손(外孫)인 도정(都正) 한후명(韓厚明)이 수집 편찬하여 정서(淨書)해두었다가 1706년 그 조카 이야(李壄)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자 이돈(李墪)의 서를 실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의 구성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고 전체가 모두 시인 시집이다. 권두에 두 판이 빠진 이돈의 서문이 있으며 기타 저자 관계 기록이나 부록 문자는 없다. 저자의 시는 내용상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지우(知友)들과 주고받은 차운시와 당시(唐詩)에 차운한 시, 그리고 <야음(夜吟)>, <유감(有感)>, 등의 서정시가 많다. 시 중 약 50여 수가 심종직(沈宗直), 이수광(李睟光),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과 주고받은 시이다. 그중에서 이수광의 경우는 시우(詩友)로 각별히 생각한 저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지봉집(芝峯集)≫에도 학천(鶴泉)에 차운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또 저자는 당시(唐詩)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는 이달(李達),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등 삼당시인(三唐詩人)이 활약하던 때인 만큼 시대적 조류이기도 했다.
▶성운(成運, 1497~1579) | 대곡집(大谷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596년 저자의 처조카인 김가기(金可幾)가 시집을 간행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김덕민(金德民)이 1603년 충청도 관찰사 유근(柳根)의 협조를 받아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상(卷上)은 시, 권중(卷中)은 시와 잡저, 권하(卷下)는 갈명(碣銘)ㆍ제문이다. 상권에는 24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대곡우음(大谷偶吟)>ㆍ<촌거(村居)>ㆍ<한거(閑居)> 등과 같이 한가로이 거할 때의 감흥을 읊은 시가 많으며, 보은 주변 고을과 속리산 등을 유람하면서 자연의 경물을 읊은 시들이 많다. 잡저 중 <허부찬(虛父贊)>은 허수아비가 보지도 듣지도 성내지도 않는 것을 찬양하여 자호(自號)를 <허부(虛父)>라고 한 연유를 적은 글이고, <취향기(醉鄕記)>는 산림에서 자신의 지절(志節)을 지키려는 의지를 적은 글인데, 모두 <노장(老莊)의 풍(風)>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권에는 갈명 4편과 제문 3편이 실려 있는데, 조식(曺植)에 대하여 쓴 묘갈명은 그에 대한 존경심과 인품ㆍ학식ㆍ조행(操行)에 대해 전아(典雅)하고 간결한 필치로 적은 작품이다.
▶성이성(成以性, 1595~1664) | 계서일고(溪西逸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종진(鍾震)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6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교서, 제문, 소(疏), 계사, 서계, 서(書),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 특히 <연행일기>는 1645년 사은 겸 진하사(謝恩兼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연행한 기록이다. 소현세자가 돌아오자 조정에서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을 정사, 정세규(鄭世規)를 부사, 저자를 서장관으로 삼아 연경으로 보냈다. 3월 17일 한양을 출발하여 윤6월 12일 복명하기까지의 경위가 자세하다. 현지인들에게 들은 청(淸)나라의 정세와 숭정황제의 최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쟁론원종추숭소(爭論元宗追崇疏)>는 1634년 인조의 생부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는 데 반대하는 상소이다. <사수찬소(辭修撰疏)>는 1635년 인성군의 자손을 석방한 일로 물의가 일어나자 사직을 청하는 상소이다. 권2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 및 만사 등이고 권말에 1863년 8대손 종진(鍾震)이 지은 지(識)가 실려 있다.
▶성해응(成海應, 1760~1839) |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 권책수 : 88책 | 포갑수 : 18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61권, 외집 70권, 속집 17권, 행장 합 88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 가운데 <참마항(斬馬巷)>은 김유신(金庾信)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 취한 사이 자신을 태우고 창가(娼家)에 이른 말의 목을 친 내용을 읊은 시이며, 그밖에 기행시, 영사시(詠史詩), 영물시(詠物詩), 애시(哀詩), 만시(挽詩) 등이 있다. 문(文) 중에는 휴정대사(休靜大師)를 모신 수충사(酬忠祠)의 기문, 철원과 단양의 산수를 유람한 유람기(遊覽記), 계절마다 금강산의 이름이 다른 연유를 설명한 <풍악설(楓嶽說)>, 의로운 행동을 한 인물과 말[馬]에 대해 쓴 전(傳), 패수(浿水)는 대동강이고 살수(薩水)는 청천강이라는 사실을 여러 사료를 근거로 고증한 <답조운석서(答趙雲石書)> 등의 편지, 중국의 시대별 경학(經學)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한학(漢學)과 송학(宋學)을 서로 보완해야 경의(經義)가 분명해진다고 본 <육경설(六經說)> 등의 작품이 있다. 그밖에 경(經)에 대한 제설(諸說)을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부기(附記)한 <경해(經解)> 등이 있다.
▶성헌징(成獻徵, 1654~1676) | 동허재집(洞虛齋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통허재(洞虛齋) 성헌징(成獻徵, 1654~16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이홍(爾鴻)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손 우주(宇柱)가 아들 최열(最烈)과 족질 긍열(兢烈)에게 정사ㆍ교정하게 하여 1769년 상주의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표제지에 장판기(藏板記)가 있으며, 권수에 한덕전(韓德全)이 172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시(詩), 서(書), 기(記), 책(策), 잡저가 실려 있다. 시는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우음(偶吟)>, <임명시(臨命詩)>, <인일자경(人日自警)> 등에서 저자의 의취를 살필 수 있다. 편지는 조이순(趙以純), 이정화(李鼎華) 등에게 보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12세 때 흥암서원 남쪽의 수석정에서 읊은 칠언율시 <수석정(水石亭)>과 <수석정기(水石亭記)>, 18세 때 이이(李珥)의 <천도책(天道策)>을 따라 지은 책문 <문천도(問天道)> 등이 있다. 부록으로 1714년에 권상하가 지은 행장과 1732년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趙顯命)이 저자의 포증을 청한 상소대략(上疏大略)이 있다.
▶성현(成俔, 1439~1504) | 허백당집(虛白堂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성세창(成世昌)이 편집하여 중종ㆍ선조 연간에 처음 간행하였다. 그 후 점차 산일되어 문중에서조차 소장본이 남아 있지 않던 중, 정조ㆍ순조 연간에 후손 성천주(成天柱)가 비서각에 전해 온 구본(舊本)을 발견하여 이를 등사하여 간직하였다. 이어 성재억(成載億)이 이를 다시 등사하고 성재숭(成載崇)이 와류된 것을 교정하였으며, 1842년 봄 12대손 성재항(成載恒) 등이 성재숭의 교정본을 구하여 나주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시집 14권ㆍ보집(補集) 5권ㆍ풍아록(風雅錄) 2권ㆍ습유 1권ㆍ문집 14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42년 후손 성근묵(成近默)이 지은 중간서와 목록이 있다. 시집 14권에는 각체(各體)의 시 630여 제가 저작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보집 5권에도 저작 연대순으로 200여 제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풍아록 2권은 가집(歌集)으로서 총 119편이 각체별(各體別)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508년에 문인 김안국(金安國)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으며 권미에는 성재숭과 성근수(成近壽)가 각각 지은 발이 실려 있다.
▶성혼(成渾, 1535~1598) | 우계집(牛溪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임창재
-조선 중기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집이다. 율곡(栗谷)과 우계(牛溪) 문하를 중심으로 하여 아들 성문준(成文濬)이 초고(草稿) 500여 장을 수집하고 편차하였으며 제자들이 당시 북인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초고의 40% 정도를 산절한 300여 장만 1621(광해군13) 임실에서 목판으로 초간하였고, 속집은 외손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윤증(尹拯)이 편차하고 윤증의 당질 윤경교(尹敬敎)가 충청도 관찰사로 1682(숙종8) 공주에서 6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중간은 1809(순조9) 후손 성긍주(成肯柱)가 밀양에 군수로 나가면서 판각하고 창녕 물계서원에 판목을 보관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속집 6권, 연보 1권, 연보부록 합 8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원집 권두에 목록이 있고, 권1은 시인데, 저작연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편자주가 다수 들어있다. 권2~6은 문이다. 소명을 사양하거나, 관직 사면을 청하는 등의 소(疏)와 이이(李珥)와 이기를 논한 편지 등이다. 속집 6권은 원집과 비슷한 구성으로 권1은 시, 권2~6은 문이다. 이어 세계도, 연보와 연보부록이 실려 있다.
▶소두산(蘇斗山, 1627~1693) | 월주집(月洲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월주(月洲) 소두산(蘇斗山, 1627~169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제자로서 금고(禁錮) 중에 죽어 자손도 가세도 한미해져 유고(遺稿)를 수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사위 권변(權忭)이 소략하나마 유고를 정리하고 묘지명(墓誌銘)을 지은 다음, 5대손 소수헌(蘇洙憲)이 가장(家藏)된 유집(遺集)을 정리하고 제현(諸賢)의 문집에서 저자의 글을 수집하여 정고본(定稿本)을 한 부를 만들었으며, 7대손 소휘면(蘇輝冕) 등이 다시 산삭(刪削)과 수집을 더하고 부록(附錄)을 첨가하여 조두순(趙斗淳)의 서문과 김병학(金炳學)의 발을 받아 1866년(고종3) 활자로 5권 3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권두에 조두순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 권2~3은 소(疏), 계사(啓辭), 장계(狀啓)의 공거문(公車文)과 서(書), 잡저(雜著), 권4~5는 부록(附錄)으로, 권4는 제문과 만사, 묘지, 신도비명, 행장이 있다. 권5는 연보와 유사이다. 연보는 고종 3년에 문집의 편차와 간행에 대한 기사까지 실려 있어 문집 간행 즈음에 편차된 것으로 보인다. 권말엔 1866년 김병학(金炳學)의 월주집발(月洲集跋)이 실려 있다.
▶소세양(蘇世讓, 1486~1562) | 양곡집(陽谷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일본 동양문고
-조선 초기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아들 소수(蘇遂)가 저자가 사행(使行)할 적에 지은 시, 퇴휴(退休)한 뒤에 지은 시와 서(序)ㆍ기(記)ㆍ비지(碑誌) 등을 모아 14권 7책으로 편집하고 박충원(朴忠元)의 서를 받아 1571년에 곡산(谷山) 임소(任所)에서 간행한 것이다. 권1~10의 시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지은 작품과 중종 28년(1533) 진하사(進賀使)로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작품 등을 모은 것이다. 그중 권1에는 <동정추월(洞庭秋月)> 등의 응제 문자(應製文字)와 <제괴원장방축(題槐院長房軸)> 등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응제 문자 가운데 <태액청파(太液淸波)>와 <서산제설(西山霽雪)>은 진하사로 중국에 갔다가 귀국한 후 왕명에 따라 지어올린 시이다. 권11~14는 문(文)이다. 그중 권11~12는 저자가 지은 비지(碑誌)를 모은 것이고, 권14는 기(記), 서, 잡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는 <임실외민당기(任實畏民堂記)>ㆍ<신태인선정기(申泰仁善政記)> 등이고, 잡저에는 <서남공시축후(書南公詩軸後)>ㆍ<천자문발(千字文跋)> 등과 사직을 계청(啓請)하는 글이 실려 있다.
▶소시만(蘇始萬, 1734~1765) | 국헌집(菊軒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국헌(菊軒) 소시만(蘇始萬, 1734~1765)의 문집이다. 사후 저자의 행적은 모친 이씨(李氏)가 언문으로 기록한 것을 이씨의 종제 이조악(李朝岳)이 한문으로 옮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계제 시운(始運)이 가장(家狀)을 지어 정리하였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손자 환술(煥述)이 저자에 의해 불타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홍석주(洪奭周)가 1835년에, 이득일(李得一)이 1808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상은 수리저설(數理著說)이다. 1762년에 종인 수몽(洙蒙)의 청으로 지은 <수리설(數理說)>을 편집하여 실은 것으로, 세상의 이치를 수리로 분석하여 설명하였으며 저자의 학문적 역량이 집약되어 있다. 권하는 서(書), 책(策), 시(詩)와 부록(附錄)이다. 시에는 1761년 가을 밤에 안심사(安心寺) 적설루(積雪樓)에서 읊은 것과 꿈속에서 송(宋)나라의 학자 장식(張栻)과 수창한 오언시 3구가 있고, 계제 시운이 지은 가장(家狀)이 있다.
▶소휘면(蘇輝冕, 1814~1889) | 인산집(仁山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1814~18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遺文)은 손자 진형(鎭衡)이 여러 문인들과 함께 수습하여 가장(家藏)하고 있다가 이후 목활자(木活字)로 인행(印行)되었으나, 전본(傳本)에 서문과 발문이 없어 인행시기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본집(本集)은 17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고, 책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편자주(編者註)가 있다. 주로 차운시(次韻詩)이다. 권2~12는 서(書)로, 성리설과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문답이 주된 내용이다. 권15는 제문(祭文), 비(碑),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행장(行狀), 행록(行錄), 전(傳)이다. 전은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제원우(濟源郵) 전투에서 우리(郵吏) 이광석(李光碩)과 함께 순절한 조연(趙淵), 조헌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청주(淸州) 상당산성(上黨山城) 전투에서 순국한 박천붕(朴天鵬)에 대한 것이다. 권17은 손자 진형이 지은 가장(家狀), 문인 권헌수가 지은 묘표, 문인 이사희가 지은 유사(遺事)가 있다.
▶손기양(孫起陽, 1559~1617) | 오한집(聱漢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문집이다. 증손 손석관(孫碩寬)이 유고를 철습하여 등사하였고, 5대손 사익(思翼)이 1781년 저자의 시문과 관계기록을 다시 수집ㆍ편차하고 1782년 이광정(李光靖)의 교감을 거쳐 만든 정고본을, 7대손 종하(鐘夏) 등이 다시 이상발(李祥發)의 산정을 받아 182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원집 4권, 연보,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82년에 이광정, 채제공이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2제와 ≪배민록(排悶錄)≫에 실린 총 179제의 시이고, 권2는 ≪철조록(輟釣錄)≫으로 128제의 시가 실려 있다. 권3은 소, 서(書), 서(序), 기, 비명, 제문, 전(箋), 상량문, 전(傳)이고 권4는 잡저, 연보, 부록이다. 특히 <일록(日錄)>은 난중일록으로, 1598년 1월 1일부터 1599년 3월 27일까지의 기록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갈명, 제문, 만사와 저자 관련 기록, 이익이 지은 <칠탄정제영(七灘亭題詠)> 등이 있다. 부록의 말미에 5세손 손사익과 7세손 손종하가 지은 문집후지가 있으며 마지막에 1825년에 유심춘이 지은 발문이 있다.
▶손만웅(孫萬雄, 1643~1712) | 야촌집(野村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야촌(野村) 손만웅(孫萬雄, 1643~17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익현(益顯)이 수습하고 편차하여 1774년경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을 받아 4권으로 정리해 두었다가, 7대손 영로(永老) 등이, 앞서 익현(益顯) 등이 편차한 초본에 연보와 연행일록 등을 증보하고 허훈(許薰)의 산정을 받아 1890년경 목활자로 인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이상정의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의 전반부는 시(詩)로서, 1672년부터 저자가 사망하는 1712년까지 지은 시가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2의 후반부는 소(疏), 계(啓), 장(狀)이다. <진민폐소(陳民弊疏)>는 1679년 공주 목사 재임 때에 올린 것으로, 공주 지역의 각종 폐단을 조목조목 진술하고 그 시정을 촉구한 글이다. 권3은 서(書), 잡저, 서(序), 기(記) 등이고 권4는 연행일록으로 숙종 3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 5일까지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경과를 기록하였다. 권5~6은 부록으로 편자 ㆍ의 연보, 행장, 신도비명, 묘갈문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는 정종로(鄭宗魯)의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손명래(孫命來, 1664~1722) | 창사집(昌舍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사(昌舍) 손명래(孫命來, 1664~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소실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5대손 종만(鍾萬)ㆍ종갑(鍾甲)이 부록 등을 증보하여 1874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우윤(李佑贇)이 1840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로, 입사(入仕) 이후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7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권2는 시(詩), 만(輓), 부(賦), 서(書)이다. 그중에서 <안락와부(安樂窩賦)>는 낙양에 있는 안락와를 소재로 소옹(邵雍)을 기리고 혼란한 말세를 개탄하며 월과로 지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잠(箴), 송(頌), 논(論), 책(策)이다. 권4는 책(策)과 책문이다. 책 가운데 <일본책(日本策)>은 백성을 돌보아 민심을 얻고 마땅한 사람으로 장수를 선택하여 일본을 방비할 계책을 삼을 것과 아울러 병자호란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북방에 대한 경계책도 세울 것을 역설한 것이다. 권5는 문(文), 비표, 행장, 설(說) 등이고 권6은 부록으로 만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이진상이 1874년에 지은 발, 세계도, 목록이 있다.
▶손순효(孫舜孝, 1427~1497) | 물재집(勿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 1427~14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초고 형태로 가장되다가, 1726년에 후손 손경기(孫敬基), 손항(孫沆)이 주도하여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1874년에 후손 손치범(孫致範), 손치봉(孫致鳳), 손치겸(孫致謙) 등이 간행을 위한 작업을 준비하여, 1876년에 후손 손석래(孫錫來)가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두에 1726년에 정호(鄭澔)가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사부(詞賦), 시(詩), 잡저이고 권2는 상소이며, 부록은 신도비명, 어찰(御札), 증시, 유사, 습유이다. 신도비명은 이창신(李昌臣)이 지었고, 어찰은 1492년에 성종이 저자에게 내린 것인데, 당시 문형인 홍귀달(洪貴達)의 발(跋)이 첨가되어 있다. 증시는 <정칠휴정(呈七休亭)>이라는 시제로 홍귀달, 이창신, 남곤이 지은 것이다. 유사는 ≪용재총화(慵齋叢話)≫, ≪오산설림(五山說林)≫, ≪북저야사(北渚野史)≫에서 저자에 관한 일화를 뽑아 수록한 것이다. 습유는 예조 참의로 치사하는 임수겸(林守謙)에게 지어 준 시이다. 권미에 1726년에 이세환(李世瑍)이 지은 발이 있다.
▶손조서(孫肇瑞, 미상) | 격재집(格齋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79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란을 겪으며 유실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유실되고 남은 갱시(賡詩) 1권에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 수 편을 수록하고, ≪점필재집≫ㆍ≪박선생유고≫에서 뽑아낸 창수시(唱酬詩)와 묘갈명 등을 부록에 집록(輯錄)하여 총 4권 1책으로 편집하여 1831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 권1에는 시 25수가 실려 있고, 권2에는 갱시 260제와 <무원록발(無寃錄跋)> 1편이 실려 있다. 갱시는 벼슬을 버리고 난 이후에 충의(忠義)의 심정을 당송(唐宋) 절구시에 차운하여 지은 것인데, 뜻이 비슷한 것을 뽑아 분류하여 편차하였다고 한다. 부록에는 창수시와 묘갈명 외에 저자가 향사(享祀)된 청호서원(靑湖書院)과 추증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고, 권미에는 이의한(李宜翰)과 김재순(金載順)이 지은 중간발이 실려 있다. 저자는 육신옥(六臣獄)이 일어나고 단종이 승하한 불우한 시대에 심상(心喪)을 하면서 벼슬하지 않고 은둔했기 때문에, 작품도 자연을 소재로 삼아 지은 것이 많다. 그러나 곳곳에 자신의 슬픈 처지를 빗대어 읊은 작품이 보인다.
▶손처눌(孫處訥, 1553~1634) | 모당집(慕堂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손양겸(孫養謙)이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784년 활자(活字)로 초간(初刊)한 후, 방손 정환(廷煥)이 시문을 증산(增刪)ㆍ재편(再編)하고 연보(年譜) 등을 추가(追加)하여 184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중간본(重刊本)이다. 본집은 9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784년에 이광정(李光靖)이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目錄)이 있으며, 권미에는 1849년에 이원조(李源祚)가 지은 발(跋)이 있다. 권1은 오언시(五言詩)와 장단구(長短句)이고 권2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권3은 칠언율시(七言律詩)와 만시(輓詩)이다. 권4는 서(書)이고 권5는 잡저(雜著), 제문(祭文), 축문(祝文), 묘도문(墓道文), 행록(行錄)이다. 그중에서 잡저의 <부정척사통문(扶正斥邪通文)>은 이언적과 이황의 문묘배향을 배척한 정인홍의 상소에 대한 성토문이다. 권6~9은 부록으로 연보 범례(凡例),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등과 사우서독(師友書牘)인데 정구, 장현광, 서사원 등 14인의 편지 58편이 실려 있다.
▶송광연(宋光淵, 1638~1695) | 범허정집(泛虛亭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범허정(泛虛亭) 송광연(宋光淵, 1638~16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인명(寅明)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44년 교서관에서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조현명의 서문과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유람을 좋아하여 구월산, 지리산 등을 두루 유람하였는데, 이때 지은 시편과 저자가 주로 거주했던 행주 범허정에서 지은 시가 많다. 권4는 소차인데, 대부분 병을 이유로 올린 사직 상소이다. 권5는 계(啓), 서계, 서(書)이다. 그중에서 <사지평계(辭持平啓)>는 1670년 치러진 별시 문과의 파방을 청하는 글이다. 시관 이원정(李元禎)과 그의 아들 이담명(李聃命), 그리고 박천영(朴千榮)을 논죄하는 내용이다. <논판윤이지익계(論判尹李之翼啓)>는 갑인예송(甲寅禮訟) 당시 대사간으로서 직분을 방기한 이지익(李之翼)을 논죄하는 내용이다. 권6은 행장과 제문이고 권7은 서(序), 기, 발, 명, 잡저, 부록이다. 부록으로 송징은(宋徵殷)이 지은 행장과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신도비명이 있고 권말에 송인명의 발문이 있다.
▶송국택(宋國澤, 1597~1659) | 사우당집(四友堂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우당(四友堂) 송국택(宋國澤, 1597~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성준(星駿)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선사한 고본에, 저자의 8대손 인식(寅植)과 9대손 병준(炳俊)이 관계기록을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장자 규광(奎光)과 이상길(李相吉)이 편차한 연보를 증보하여 1890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7권, 연보 2권 합 4책으로, 서문은 없고 권두에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7 뒤에 발문이 있다. 권1은 시, 소, 계사이다. 작품 중 <강선지유경정사계선생(降仙之遊敬呈沙溪先生)>은 1617년에 이항복(李恒福)이 북청(北靑)에 유배를 가게 되자 스승인 김장생이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강선(降仙) 등지를 유람할 적에 동행하며 지어 올린 것이고 소는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잡저, 발(跋), 축문, 제문, 행장, 묘지명이다. 권4는 부(賦), 의(疑)이고 권5~7은 부록이다. 권7에는 저자의 행적과 관련하여 여러 사람들의 글에서 뽑아 엮은 <제가기술잡록(諸家記述雜錄)>이 실려 있고 권말에 저자의 8대손 송인식(宋寅植)이 1890년에 쓴 발이 있다.
▶송규렴(宋奎濂, 1630~1709) | 제월당집(霽月堂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 1630~1709)의 문집이다. 신임옥사 때 유배지에서 졸한 송상기(宋相琦)의 부친으로, 70세 이후 10년간 한거하는 동안 시문을 정리하여 유고 약간 권을 남겼고, 이것을 아들 송상기가 1723년 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기 전에 행장을 지으면서 다시 수습,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현손 송기정(宋基鼎)은 원본에서 산일되고 남은 시(詩), 부(賦), 장소(章疏) 및 산문들을 수집하여 원집 7권으로 편차하고, 아들 송상기의 행장, 박필주(朴弼周)의 신도비명, 이교악(李喬岳)이 제진한 치제문과 기타 만사 등을 부록으로 만들어서 김상휴(金相休)의 질정을 받아 1819년 목활자로 원집 7권, 부록 합 4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록이 있고, 서문은 없다. 권1~3은 사(辭), 사(詞), 시로 시기는 갑술환국 이후, 잠시 중앙 관직에 나올 때, 한거하던 시절로 구분된다. 권4~6은 소(疏), 계(啓)이고, 부록은 김유(金楺)가 제진한 미호서원철향제문(渼湖書院腏享祭文), 만사이고, 권말에 현손 송기정의 발문이 실려 문집 간행의 시말을 알려주고 있다.
▶송근수(宋近洙, 1818~1902) | 입재집(立齋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입재(立齋) 송근수(宋近洙, 1818~190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조카 병선(秉璿)이 행장과 묘표를 지어 유적을 정리한 활자본 ≪입재집(立齋集)≫이 전하고 있는데 간행과 관련한 기록이 본집 내에는 없고, 다만 ≪연재집(淵齋集)≫의 송병선 연보에 1905년 6월, 사우(士友)들과 옥천(沃川)의 용문영당(龍門影堂)에 모여 유고를 교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05년 이후에 활자로 인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본집은 21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매권 권수에 권목(卷目)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시는 주로 선조 송시열(宋時烈)의 자취나 유적이 있는 곳을 소재로 지은 선배들의 시에 차운한 것과 여행 중에 지은 것들이다. 권3은 소차(疏箚)이다. 권9~10은 잡저(雜著)로 <성산잡록(星山雜錄)>이다. 상(上)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행지(行止)나 일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견해들을 채록한 것으로 우암과 관련된 기록이 많다. 권21은 부록으로 1903년에 내린 고종의 사제문, 동궁사제문, 종자 병선이 1903년에 지은 행장과 묘표가 실려 있다.
▶송기수(宋麒壽, 1507~1581) | 추파집(秋坡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추파(秋坡) 송기수(宋麒壽, 1507~158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사후 170여 년이나 지난 뒤 8대손 송현필(宋賢弼)은 산일된 유고를 수습하여 원집 2권과 부록 3권, 연보 합 2책으로 꾸며 1753(영조29)경에 목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후손 송해운(宋海運)이 문집과 실록 등의 기록에서 저자의 글을 모두 수집해 증보해서 영호남의 유림들과 함께 교정을 보아 8권 4책으로 편차하고 유동준(柳東濬)의 서문과 이의국(李義國)의 발문을 받아 1931년 대전에서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권수의 연보, 목록까지 합하여 5권 2책이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3~5는 부록이다. 권3은 언행록(言行錄)이고, 권4에는 삼남 송응순(宋應洵)이 쓴 가장 및 외손 신흠(申欽)이 1624년경 찬한 신도비명과 묘지가 실려 있다. 권5의 사우추허록(師友推許錄)은 정경세(鄭經世)의 일록(日錄)이나 기재일기(企齋日記) 등에서 저자 관계기사를 추출한 것이고, 끝으로 1552년 퇴계가 저자의 종형 송인수(宋麟壽)의 죽음을 위로하며 보낸 서(書) 1편을 별부하였다.
▶송남수(宋柟壽, 1537~1626) | 송담집(松潭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담(松潭) 송남수(宋柟壽, 1537~1626)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손자 송국사(宋國士)와 증손 송규렴(宋奎濂) 등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686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원집(原集)에, 증손 규렴(奎濂)이 1687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검신요결(檢身要訣)>과 1696년 추각(追刻)한 김창협(金昌協)의 발문(跋文)을 합부(合附)한 것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수(卷首)에 1686년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序)가 있고, 권미(卷尾)에 1696년 김창협이 지은 발이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이며, 작품 전반에 걸쳐 시주(詩酒)와 금서(琴書)로 소일하며 담박한 삶을 살고자 했던 저자의 성향이 드러나 있다. 권2는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칠언배율(七言排律), 오언고시(五言古詩), 잡저(雜著)와 부록(附錄)으로 <검신요결(檢身要訣)>이 있다. 특히 <검신요결>은 성현(聖賢)의 격언(格言)을 초록하여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일종의 수신서이며, 이에 대해 1623년에 지은 자지(自識)와 1687년 송시열이 지은 발이 있다.
▶송내희(宋來煕, 1791~1867) | 금곡집(錦谷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煕, 1791~1867)의 문집이다. 1876년에 차자 송익로(宋益老)가 유고 수십 책을 문하의 선비들과 함께 교정, 편차하여 10책으로 만들었고, 1907년에 손자 송종규(宋鍾奎)가 목활자본으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8권과 부록, 합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14세 때 지은 월야를 시작으로 136제의 시가 실려 있는데, 충청도 공주와 서산 등지를 유람하고 읊은 것, 중국의 지명을 소제목으로 삼아 지은 영사시, 진주 동곡(桐谷)의 풍경을 읊은 <동곡팔영(桐谷八詠)> 등의 시가 있다. 권2~3에는 정치하면서 힘써야 할 여섯 조항을 헌종에게 건의하려고 한 <의상육조소(擬上六條疏)>, 폐단을 교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응교폐전교소(應矯弊傳敎疏)> 등이 있다. 권9의 잡저 중 <과규>는 선비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시한 것이고, 잡록은 관혼상제의 예절 및 복식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권10에는 저자가 편찬한 ≪당시선(唐詩選)≫, ≪예절람요(禮節覽要)≫의 서(序) 등이 실려 있고, 권11에는 임진왜란 때 칠백의사(七百義士)와 함께 순절한 조헌(趙憲)의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 등이 있다.
▶송능상(宋能相, 1710~1758) | 운평집(雲坪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평(雲坪) 송능상(宋能相, 1710~1758)의 문집이다. ≪순조실록(純祖實錄)≫ 9년 3월 27일조에 “……≪상례비요(喪禮備要)≫도 조목(條目)에 따라 폄하한 것이 더없이 망측하니 직명(職名)을 삭제하고 문판(文板)을 파기하소서.”라는 유생(儒生) 윤우대(尹遇大) 등의 상소(上疏)에 따라 저자를 유일(遺逸)에서 삭제(削除)하고 문집의 각판을 파기시키라는 명(命)이 내리지만 문집의 저본 <상례비요지두사기(喪禮備要紙頭私記)>에 유생들이 비판했던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고, 초간본(初刊本)의 판각이 지례(知禮) 이참봉택(李參奉宅)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왕명대로 파기시키지 않고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문집의 간행은 1802년 이후와 위의 상소가 올라온 1809년 이전에 송환장과 송환기의 주도하에 문인 이의조(李宜朝)의 도움을 받아 10권 4책의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0권 4책으로,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다. 권1은 시(詩), 권2는 소(疏), 서계(書啓), 장(狀), 권3~7은 편지글, 권8은 서(序), 기(記), 인(引), 제문(祭文), 고문(告文), 권9~10은 잡저(雜著)이다.
▶송달수(宋達洙, 1808~1858) | 수종재집(守宗齋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종재(守宗齋) 송달수(宋達洙, 1808~18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송병찬(宋秉瓚)과 삼남 송병종(宋秉琮)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02년 13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인행하였다. 권1은 시 55제이다. 이 중에서 <성산별곡번사(星山別曲翻辭)>, <훈민가번사(訓民歌翻辭)>, <주문답번사(酒問答翻辭)>은 정철(鄭澈)의 가사와 시조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고, <화양구곡차무이도가운(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은 1844년 여름 화양동의 암서재(巖棲齋)에 머물 때 주자(朱子)의 <무이도가(武夷棹歌)>에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계, 헌의(獻議)이다. 권3~6은 서(書)이다. 이 중에서 1852년 동생 송근수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자가 북한산, 도봉서원, 남한산성 등지를 둘러보면서 보낸 것으로, 유람하는 노정(路程)이 잘 기록되어 있다. 권7~8은 잡저이다. <전례변설(典禮辨說)>은 헌종(憲宗)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축식의 호칭이 논란이 되었는데, 저자가 공자, 정자 등의 학설을 참고하여 변설한 글이다. <석명사전(石名士傳)>은 돌의 견강(堅剛)한 덕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의 글이다.
▶송덕상(宋德相, 1710~1783) | 과암집(果菴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과암(果菴) 송덕상(宋德相, 1710~1783)의 문집이다. 1929년에 와서야 초간본(初刊本)이 연활자(鉛活字)로 간행(刊行)되었다. 본집은 1933년에 나온 목판본(木板本)이다. 시(詩)는 대부분 자신의 감회를 읊은 것과 차운시(次韻詩)와 만시(挽詩)이다. <철령술회(鐵嶺述懷)>는 저자가 삼수부로 유배갈 때 철령(鐵嶺)을 지나면서 지은 것으로, 고조인 송시열(宋時烈)도 덕원으로 유배갈 때 이 고개를 넘으며 자신의 신세와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을 떠올린 내용이다. 소(疏)는 사직소(辭職疏)를 비롯해 홍국영의 누이인 원빈(元嬪)이 죽고 나서 저사(儲嗣) 문제를 언급한 상소인 <청광저사소(請廣儲嗣疏)> 등이 있다. 서(書) 중에는 태극설문목, 가례문목, 오례의문목 등에 답한 것이 있다. 잡저로는 <경연강의(經筵講義)>, ≪대학장구≫ㆍ≪중용장구≫ㆍ≪논어≫ㆍ ≪서전(書傳)≫에 대한 차록(箚錄)인 <경의문변(經義問辨)>,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뵙고 심성론 등에 대해 문답한 <한천문답(寒泉問答)> 등이 있다. 경학과 성리학, 예학의 연구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으며, 홍국영의 역모와 관련된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송명흠(宋明欽, 1705~1768) | 역천집(櫟泉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1705~176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아들 송시연(宋時淵)과 임성주(任聖周), 김원행(金元行) 등이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는 데 참여하였고, 1805년 송시연이 성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19권 10책을 목판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권1~3은 시(詩)이다. 시를 수창한 대상은 대부분 일가친척이나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고, 시의 내용은 유람한 지역이나 배알한 서원들을 읊은 것이 많다. 권4는 소(疏), 서계, 헌의이다. 소(疏) 중에서 1763년에 올린 <출성후갱진연대미필지회소(出城後更陳筵對未畢之懷疏)>는 임금의 노여움을 사 결국 관직이 삭탈되고 서인(庶人)이 되어 전리(田里)로 방축되는 일을 겪는 계기가 되었다. 권5~11은 서(書)이다. 성리학에 대한 문답, 상례 등에 대한 물음에 조목조목 답한 내용 등이 있다. 권12~13의 앞부분은 잡저이다. ≪대학장구≫에 대한 문답을 기록한 <옥유강록(玉溜講錄)>, 경구(警句)를 이것저것 모아 놓은 잡지, 화전(花田)에서 이재(李縡)와 성리학에 대해 문답한 <화전기문(花田記聞)> 등이 있다. 그밖에 서(序), 기(記), 제발(題跋), 논(論) 등이 실려 있다.
▶송몽인(宋夢寅, 1582~1612) | 금암집(琴巖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암(琴巖) 송몽인(宋夢寅, 1582~1612)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아들 송국택(宋國澤)이 수집ㆍ편차하고 이수광(李睟光)의 교정과 이시직(李時稷)의 정서를 거쳐 승 지숭(智崇)이 1616년 회덕(懷德) 비래암(飛來庵)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권수에 이수광이 1615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본집의 내용은 시와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100여 편이며, 서울과 황해도 신천(信川), 충청도 회천(懷川) 등지에서 지은 것이 많다. 저자의 시에 대해 송상기(宋相琦)는 묘갈명에서 청신하고 준엄하며 고결하다는 평을 하였다. 그중에서<반림송고군섭남환(泮林送高君涉南還)>은 태학에서 <중승전(中丞傳)>을 고부천(高傅川)에게 주면서 송별한 것이며, <기회천제우(寄懷川諸友)>는 신천에서 고향에 있는 송문창(宋文昌), 구인후(具仁垕), 송유록(宋緌祿) 등 9인에게 각각 1수씩을 부친 것이다. 그리고 문 1편은 <상빙군계(上聘君啓)>인데, 자신을 알아준 장인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길 떠나면서 올린 글이다. 권말에는 신익성(申翊聖)이 161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송문흠(宋文欽, 1710~1752) | 한정당집(閒靜堂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정당(閒靜堂) 송문흠(宋文欽, 1710~175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을 처음 정리한 사람은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이인상(李麟祥), 신소(申韶) 등이다. 이인상이 1760년에 졸하고 1764년에 저자가 상소로 인해 서인이 되어 전리로 방축되는 등 집안에 화란이 닥치면서 문집 간행에는 손을 대지 못하다가 종자 송시연(宋時淵)이 다시 문집 간행을 주도한 것 같다. 본집은 1788년 사위 김광묵(金光默)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정리되어 있던 8권 4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없고 맨 뒤에 송시연이 지은 발문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5~6은 잡저로, 권6은 치포관에 대해 논한 <치관설(緇冠說)>, 백이가 주(周)나라를 섬기지 않은 의를 논한 3편의 <백이론(伯夷論)> 등이다. 권7은 잡저, 서(序), 기, 발, 명, 찬, 송이다. 잡저의 <부인복식고(婦人服飾攷)>는 부인복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고, <전제잡고(田制雜攷)>는 정현(鄭玄)의 주를 인용하여 여러 전제(田制)를 설명하고 끝에 왕기천리도(王畿千里圖)를 첨부하였다. 권말에는 송시연이 지은 발이 첨부되어 있다.
▶송방조(宋邦祚, 1567~1618) | 습정집(習靜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습정(習靜) 송방조(宋邦祚, 1567~161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과 유묵은 거의 수십 권이 되었으나 여러 차례 병화를 겪는 동안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후 11대손 좌헌(左憲)이 그의 조부 지평공(持平公)이 집일한 고본을 후손 병순(秉珣)의 교정을 거쳐 1907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각 권의 앞에 목록이 있다. 권수에는 1907년에 송병순(宋秉珣)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습유이고 시에는 저자의 자주가 간간이 붙어 있다. 권2는 소(疏), 서(書), 계(啓)이다. 권3은 기(記), 발(跋), 설(說), 잡저, 제문, 묘문, 비음기(碑陰記)이다. 그중에서 <서신기(書紳記)>는 조헌(趙憲)을 따라 왜적과 싸우다가 금산(錦山)에서 순절한 이득부(李得夫)의 인품과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고<유향산일기(遊香山日記)>는 1610년에 승문원 저작으로 의주(義州)에 갔다가 귀로에 묘향산 등지를 유람한 기록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을 비롯해 묘지명, 유사, 제문, 만사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1907년 후손 송태헌(宋台憲)과 11대손 송좌헌(宋左憲)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송병선(宋秉璿, 1836~1905) | 연재집(淵齋集) | 권책수 : 24책 | 포갑수 : 5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동생 송병순(宋秉珣)과 정기연(鄭璣淵) 등 문인들이 1907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3권 2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는 부(賦)와 시(詩)이다. 부는 서정부(西征賦)로 관서 지방을 유람하고 경치와 고사에 대해 읊은 것이다. 시는 관서(關西), 관동(關東)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가 많다. 권4의 소(疏)에는 사직소와 의제(衣制)를 개혁하지 말 것을 청한 소, 양인의 교주당(敎主堂) 설치를 금지할 것을 청한 소, 흉적(凶賊)을 토벌할 것을 청한 소 등이 있다. 권5~16은 서(書)이다. 편지의 대부분은 성리학과 예(禮)에 대해 질의하고 논한 것이다. 권17~22는 잡저이다. 이중에서 <수문잡지(隨聞雜識)>는 ≪맹자≫, ≪서경≫ 등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적은 것이다. 권18에 실린 설(說) 중에서 <벽사설(辟邪說)>은 노자와 양묵(楊墨) 등 이단을 물리쳐야 한다는 내용이고, <장희설(長噫說)>은 예악형정(禮樂刑政)과 의관문물(衣冠文物)이 파괴되고 있음을 직시하며 성현의 학문을 지키자고 제언한 내용이다.
▶송병순(宋秉珣, 1839~1912) | 심석재집(心石齋集)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순국지사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문집이다. 아들 증헌(曾憲)과 사방 사우(士友)들이 ≪학문삼요(學問三要)≫, ≪사례축식(四禮祝式)≫ 등과 유집(遺集) 14권 및 유서(遺書)를 모아 10여 책으로 선사하여 가장하고, 언행의 대개를 기록하여 연보를 편찬하여 35권 15책의 목활자본 ≪심석재선생문집≫이 전하고 있는데 서발문 등의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간행 경위를 알기가 어렵다. 다만 말미에 ‘장계술고정사개간(長溪述古精舍開刊)’의 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청(山淸) 장계(長溪)의 술고정사(述古精舍)에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35권 1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권마다 권목(卷目)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차운시와 경치를 보고 감회를 적은 시가 많다. 권4는 소(疏)로 1865년 만동묘의 복원을 청하기 위해 지은 <의청복만동묘소(擬請復萬東廟疏)>이다. 권5~11은 서(書)이다. 세도(世道)가 점점 무너지는 것, 갑신정변, 단발령 등 이적(夷狄)의 풍습으로 변하는 것을 한탄한 것 등이 대부분이다. 권12~14는 잡저(雜著)이다. 권말에 장계 술고정사에서 개간(開刊)했다는 간기가 있다.
▶송상기(宋相琦, 1657~1723) | 옥오재집(玉吾齋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 1657~172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강진 유배 기간에 아들 송필환(宋必煥)과 자신의 시문초고를 정리한 것을, 송필환이 유고를 수습하고 편차하여 이의현(李宜顯), 이병상(李秉常)의 산정을 받았으며, 송필환의 아들 송재희(宋載禧)가 김재로(金在魯), 유척기(兪拓基), 김원행(金元行), 홍계희(洪啓禧)의 교정을 받아 간행하였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편지글은 한 편도 싣지 않았고, 또 산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시문이 누락되었다. 손자 송재희가 남원 부사로 있을 때 비용을 마련하고 당시 대제학 김양택(金陽澤)의 도움으로 운각의 새활자본으로 1760년에 경국(京局)에서 인쇄하였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서문이 없다. 권1~4는 사(辭), 시(詩)이고, 권5~11은 소차, 계(啓), 의(議), 권12는 반교문, 책문, 교명문, 교서, 전(箋), 장, 상량문, 악장, 권13은 서(序), 기(記), 제발, 권14는 비명, 묘지명, 묘갈명, 묘표, 권15는 시장, 행장, 권16은 제문, 권17은 ≪남천록(南遷錄)≫ 상ㆍ하, 권18은 부록이다.
▶송상현(宋象賢, 1551~1592) | 천곡집(泉谷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9대손 송달호(宋達浩)가 가장(家藏)된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편차하여 1834년 동래(東萊) 부사(府使)로 부임한 이탁원(李鐸遠)에게 산정(刪定)과 서문을 받아 1835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문집은 초간본이 저자의 사후 240여 년이나 지난 뒤에 발간되어서 인지 내용이 매우 영세하여 부록을 합쳐 2권 1책 분량으로 간행되었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수에는 이탁원이 쓴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시, 표(表), 조(詔), 교(敎)가 실려 있다. 시 중에, <절구불음주(絶口不飮酒)>는 육언시(六言詩)로 송대(宋代) 악비(岳飛)가 금(金)의 군사들이 침입하자 좋아하던 술을 끊고 적을 평정한 뒤에야 술을 마시겠다고 한 충성심을 찬탄한 내용의 시이다. <의당위숙옥사부립부비(擬唐魏叔玉謝復立仆碑)>는 당(唐) 태종(太宗)이 참언(讒言)을 듣고 위징(魏徵)의 비석을 넘어뜨렸다가 요동정벌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위징의 충성을 생각하여 다시 비석을 세운 고사를 인용하여, 위징의 입장에서 감사하는 뜻을 쓴 시이다.
▶송순(宋純, 1493~1582) | 면앙집(俛仰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직접 편찬한 것을 가장(家藏)해 오다가 9세손 송재열(宋在悅)이 시문을 모아 본집 4권 2책의 목활자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그 후 부록 3권을 추가하여 7권 4책으로 증보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3권ㆍ속집 3권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3에는 시가, 권4에는 가사(歌詞)와 문(文)이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중국 사신 증별시, 면앙정시(俛仰亭詩), 경상도를 유람하며 지은 시 등이 있다. 가사는 <면앙정장가(俛仰亭長歌)> 1편, 단가(短歌) 7편, 잡가(雜歌) 2편과 <몽견주상가(夢見主上歌)>ㆍ<치사가(致仕歌)>ㆍ<오륜가(五倫歌)> 등인데, 한역문(漢譯文)으로 실려 있다. 저자의 문(文) 외에도 교유한 사람과 문인들이 지은 송별시, 정철(鄭澈)이 지은 제문, 외손 최기(崔棄)가 지은 행적(行蹟), 송희규(宋希奎)가 지은 유애비(遺愛碑) 등이 유사(遺事)로 묶여 실려 있다. 권5~7은 부록이며, 속집에도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조선 중기 시가 문학 연구 자료로 중요한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 송자대전(宋子大全) | 권책수 : 113책 | 포갑수 : 2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에 대한 수습과 정리는 저자가 사사(賜死)된 이후 권상하(權尙夏)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787년 간행된 기영본(箕營本) ≪송자대전(宋子大全)≫에, 1901년 13권 6책으로 중간(重刊)된 ≪송자대전≫에 대한 주해서(註解書)인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1927년 간행된 ≪송서습유(宋書拾遺)≫, 1929년 3권 2책으로 ≪송서습유≫ 이후에 다시 남은 저자의 유문과 부록문자를 모아 간행한≪송서속습유(宋書續拾遺)≫를 합부한 것이다. ≪송자대전≫을 살펴보면, 권1~4는 시부(詩賦), 권5~26은 공거문(公車文)이다. 권27~129는 서간문으로, 모두 5500여 편이다. 권130~153은 잡저와 기(記), 서(序), 발(跋), 제문 등이다. 잡저의 내용은 경서에 대한 의론과 예설(禮設), 자설(字說), 시사(時事)에 대한 글, 자손에게 전하는 것 등이다. 서(序)는 모두 104편으로 시문집 등 간행 서적에 대한 서(序), 족보서(族譜序), 송서(送序), 도서(圖序)와 모임에 대한 서(序) 및 시서(詩序)이다.
▶송영구(宋英耈, 1556~1620) | 표옹유고(瓢翁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 1556~1620)의 문집이다. 성혼(成渾)의 문인(門人)이고 이항복(李恒福), 황신(黃愼), 이정귀(李廷龜)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본집은 7대손 송문술(宋文述)이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793년경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김종수(金鍾秀)의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이고, 권2는 시와 잡저(雜著)로, 시는 총 226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수록되어 있고, 각 시체(詩體) 내에서 다시 저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부(賦)와 상량문(上樑文), 서(序), 지(誌), 서(書) 등 모두 6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부(賦)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위왕(魏王)의 호(瓠)를 소재로 삼은 것이고, 2통의 편지는 장만(張晩)과 이항복(李恒福)에게 보낸 것이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연보(年譜)와 사제문(賜祭文), 유근(柳根) 등 23인이 지은 만사(挽辭)와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실려 있다. 권말(卷末)에 이민보(李敏輔)가 지은 발(跋)이 있다.
▶송이석(宋履錫, 1698~1782) | 남촌집(南村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 1698~1782)의 문집이다. 본집은 구체적인 간행 경위가 불분명하지만, 저자 사후 130여 년이 지났을 무렵 후손 결익(夬翼)이 권상익(權相翊)에게 받은 묘갈명과 1921년에 후손 필린(必璘)이 찬한 묘지가 문집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1921년 이후에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7권 3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의 전반부는 시(詩)이고, 권1의 후반부~2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그중에서 <방덕천서원(訪德川書院)>은 1738년 진주(晉州)의 덕천서원(德川書院)을 방문하여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한 시이고, 편지는 거상(居喪) 시에 유념할 사항을 기술한 이규수에게 보낸 편지 외에는 대부분 안부나 상장례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권2의 후반부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3~4는 축문, 제문, 뢰(誄), 상량문, 묘지이고 권5는 행장이다. 권6은 묘갈명이고 권7은 부록으로 이만운(李萬運)이 지은 행장, 권상익이 지은 묘갈명, 후손 필린이 1921년에 지은 묘지, 장석우(張錫愚)가 지은 매양서원(梅陽書院)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이 수록되어 있다.
▶송익필(宋翼弼, 1534~1599) | 구봉집(龜峯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인 죽서(竹西) 심종직(沈宗直)이 1622년 홍산 현감으로 재직시 시(詩)만을 수집 선정하여 ≪비선구봉선생시집(批選龜峯先生詩集)≫이란 이름으로 5권 1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김상성(金相聖)이 의성현으로 부임해 저자의 저서 전질을 재편차하고, 동생 송한필(宋翰弼)의 ≪운곡고(雲谷稿)≫를 부집(附集)하여 1762년 11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45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이이(李珥), 성혼(成渾), 정철(鄭澈) 등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 잡저로는 <태극문(太極問)>, <답인설(答人說)>, <은아전(銀娥傳)> 등이 있다. 권4~5는 <현승편(玄繩編)>으로 이이, 성혼, 정철, 김장생, 이산보, 조헌 등과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예설(禮說)과 성리학에 대한 논제부터 서로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단순한 근황, 시사(時事)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얼 출신이었으나 예학에 밝았던 저자의 글을 통해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 예절과 성리학을 배울 수 있는 자료이다.
▶송인(宋寅, 1517~1584) | 이암유고(頤庵遺稿)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이암(頤庵) 송인(宋寅, 1517~1584)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병화로 산일된 것을 손자 송기(宋圻)가 순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여 가장(家藏)하였으나 전해진 것이 없고, 선조 말에서 광해군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34(인조12) 증손 송희업(宋熙業)이 간성 군수(杆城郡守)로 나가 소실된 판각을 보각(補刻)하면서 이식(李植)과 장유(張維)의 서(序)를 받아 함께 실었다. 현재 전하는 판본은 12권의 속집과 별집, 부록과 부록보유까지 편차한데다, 잡기(雜記) 내용 중 후대 간행된 ≪혼정편록(混定編錄)≫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뒤에 증보가 행해졌음을 추측케 한다. 따라서 증보의 주체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누판고(鏤板考)≫나 이이명(李頤命)의 소장인(所藏印) 등으로 볼 때 숙종 연간에 중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집은 서ㆍ총목ㆍ원집 4권, 속집 4권, 별집 2권, 부록 2권, 후서(後敍) 합 4책으로, 권수에 장유의 서와 총목이 있다. 특히 저자가 금석문의 대가였음을 반증하듯이 저자가 쓴 비갈목록(碑碣目錄)과 목각서법목록(木刻書法目錄) 50여 개가 있고, 권미에는 이식의 후서가 있다.
▶송인수(宋麟壽, 1499~1547) | 규암집(圭菴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 1499~154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차례의 병화를 겪어 수습된 것이 많지 않았다. 이에 후손 송태헌(宋台憲)ㆍ송재용(宋在容) 등이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ㆍ서(書)에 사우가(士友家)를 방문하여 찾아 모은 유고를 더하고, 종후손 송병선(宋秉璿)이 교정하고 재편차한 연보를 부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찬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초간본을 증보해 1935년에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은 시로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지은 시가 비교적 많다. 권2는 소(疏), 차(箚), 계(啓), 서(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로는 심상인(心喪人)이 참제(參祭)할 때의 복색에 관한 내용을 담은 <답퇴계이경호(答退溪李景浩)> 등 3편이 있다. 권3의 <제현창수시편(諸賢唱酬詩篇)>은 저자와 관계있는 시와 저자가 종남우사(終南寓舍)에 머물면서 지은 시에 차운한 시 등을 모은 것이다. <제가기술(諸家記述)>은 ≪정원일기(政院日記)≫ㆍ≪퇴계집(退溪集)≫ㆍ≪송자대전(宋子大全)≫ 등에서 관계 기록을 가려 뽑아 집록한 것이다. 권4는 연보이다.
▶송정렴(宋挺濂, 1612~1684) | 존양재집(存養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존양재(存養齋) 송정렴(宋挺濂, 1612~1684)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지식(之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연보 등 부록을 증보하여 이근옥(李根玉) 등이 1901년 합천 신천서당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사(辭)이다. <술회부(述懷賦)>는 1637년에 지은 것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시국에 비분강개하고, 족숙인 송치원(宋致遠)과 종제 정속(挺涑)이 재능을 펴지 못함을 위로한 부이다. 권2는 소(疏), 책(策), 논(論)이다. 권3은 서(書), 기(記), 서(序), 잠(箴), 제문이다. 권4는 축문, 행장, 묘갈명이다. 부록 권1에는 연보, 아들 지식이 쓴 행장, 묘갈명, 묘지명, 유사가 실려 있고, 말미에는 후지가 붙어 있다. 권2에는 만시, 제문, <고암서원봉안문(古巖書院奉安文)>, <신천서원봉안문(新川書院奉安文)>, <신천서원상량문(新川書院上樑文)>, <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이 실려 있다. 권말에 허전(許傳)이 지은 발이 있다.
▶송주석(宋疇錫, 1650~1692) | 봉곡집(鳳谷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봉곡(鳳谷) 송주석(宋疇錫, 1650~1692)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달수(達洙)가 수집ㆍ편차하여 1858년 교정한 고본(稿本)을, 7대손 병선(秉璿)이 1905년 회덕(懷德)의 판교재사(板橋齋舍)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과 칠언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특히 오언고시의 <경차왕부봉서사이자운……(敬次王父鳳棲寺已字韻……)>을 비롯한 조부 송시열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고 송군석(宋君錫), 정명공주(貞明公主), 김만기(金萬基) 등을 애도한 만(挽)이 있다. 권2는 소(疏), 서계(書啓), 서(書)이고 권3은 잡저(雜著)이다. 그중에서 <구화사적(構禍事蹟)>은 당쟁과 관련하여 윤선거(尹宣擧)가 병자호란 중에 의리를 지키지 못한 일과 송시열이 사사(賜死)된 경위 등을 기술하고 윤휴(尹鑴)와 윤증을 비판한 것이다. 권4~6은 기(記), 발(跋), 잠(箴), 혼서(婚書),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표(墓表) 등이고 권7은 부록이다. 권말에는 1905년에 병선이 지은 발(跋)이 있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 | 동춘당집(同春堂集)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4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80년경신환국 이후에 왕명에 의해 간행되었는데, 1687년경에 초간하고 1695년경에 후쇄본을 인출(印出)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간본은 목록 1권, 원집 24권 합 13책의 목판본이다. 소차(疏箚)는 대부분이 사직 소차이고, 사학(四學)의 운영 규칙을 정한 것, 태묘의 악장을 정리하여 순서를 바로잡고 책으로 간행할 것 등이 있다. 헌의(獻議)는 국상(國喪) 때의 백관(百官)의 복제 등에 관한 예론(禮論)이 대부분이다. 서(書)는 여러 사우(師友), 제자, 자손들에게 보내는 것들로, 경전의 내용과 성리설, 예설(禮說)에 관한 문답이 많다. 그밖에 잡저, 기(記), 제발(題跋), 축문, 제문 등이 있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만시(挽詩)이다. 원집 간행에 이어 1702년경에 별집 9권 5책이 간행되었는데, 예론을 다룬 편지를 따로 모아 놓았다. 17세기 기호학파가 조선 성리학 이론을 심화시키고, 현실에서 그 이념을 실현하려 했던 노력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특히 당시 예송(禮訟)과 당쟁사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송진봉(宋鎭鳳, 1840~1898) | 사복재집(思復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사복재(思復齋) 송진봉(宋鎭鳳, 1840~1898)의 문집이다. 유적 정리는 가장(家狀)을 지은 문인 박희원(朴煕元)의 주도하에 1899년 3월 이전에 1차로 문집이 편성된 다음, 부록으로 제문, 고묘문, 행장, 유사, 전, 묘갈명, 묘지명, 세계(世系) 등을 추가하여 6권 3책으로 편집하였으며, 1903년 3월에 정의림(鄭義林)의 발문을 붙여 아들 상호(翔浩)가 계재(契財)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세계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스승 김평묵(金平默)이 1884년에 저자에게 지어 준 <사복재기(思復齋記)>를 싣고, 이어 1903년 기문을 권수에 편차한 의도를 기술한 기우만(奇宇萬)의 후서(後書)를 실었으며, 총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조(操), 시(詩)이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묵리필록(墨里筆錄)>은 장흥(長興) 묵촌(墨村)에 거주하면서 읽은 책에 대한 소개와 감회, 절의 있는 선비, 열녀, 무신난이나 당론과 연결된 인물의 소개와 평 등을 37개 조항으로 엮은 것이다. 권미에 시조 유익(惟翊)에서부터 저자의 아들 상호까지 25세를 약술한 세계 3판이 수록되어 있다.
▶송징은(宋徵殷, 1652~1720) | 약헌집(約軒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약헌(約軒) 송징은(宋徵殷, 1652~1720)의 문집이다. 영조(英祖) 연간에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들이 수습한 것으로 보인다. 14권 7책으로 편정되어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되었다. 권1은 시(詩) 198수이다. 주자의 감흥 시를 본떠 지은 <의감흥이십수(擬感興二十首)>를 비롯하여 소강절(邵康節)의 <안락와중음(安樂窩中吟)> 등 차운시와 송시,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권2~4는 소차(疏箚) 56편이다. 1696년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에 올린 만언소(萬言疏) 및 사직소, 진폐소(陳弊疏) 등이 실려 있다. 권5~6은 경연강의(經筵講義), 주사(奏事), 계사(啓辭)이다. 권7~9는 서(書) 49편이다. 박세채(朴世采)에게 올린 <대학독서기차의(大學讀書記箚疑)>를 비롯하여,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에 대한 유귀삼(柳貴三)의 문목(問目)에 대답한 편지 등이 실려 있다. 권10은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 등이다. 잡저에는 양명학(陽明學)의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논박한 <양명논학변(陽明論學辨)>,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읽고 지은 <독유문(讀柳文)> 등이 실려 있다.
▶송치규(宋穉圭, 1759~1838) | 강재집(剛齋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졸한 뒤 아들 송흠성(宋欽成)이 남아 있는 글을 수집(蒐集)하여 12책으로 편차(編次)하였고, 손자 송기수(宋騏洙)가 이를 산삭(刪削)하여 1865년 활자(活字)로 간행(刊行)하였다. 시(詩)는 주로 친지나 스승과 주고받은 것들이다. 상소(上疏)는 왕세자(王世子) 상례(喪禮) 후에 올리거나 순조(純祖)에게 올린 진위소(進慰疏) 등이고, 헌의(獻議)는 궁중(宮中)에서 일어나는 길흉례(吉凶禮)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피력(披瀝)한 것이다. 서(書)는 성리학(性理學)이나 복제(服制)에 관한 내용이 많다. 서(序)에는 문집서(文集序)와 족보서(族譜序)가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옥천군 창주서원(滄洲書院) 중수기(重修記) 등의 기문, ≪국당유고(菊堂遺稿)≫ㆍ≪송재집(松齋集)≫ㆍ≪정일당집(靜一堂集)≫ㆍ≪활계집(活溪集)≫ 등에 대한 발문(跋文), 금석로(琴錫老)가 독서하는 방법을 묻자 그에 대해 설명한 독서설(讀書說) 등이 있다. 이이(李珥)ㆍ김장생(金長生)ㆍ성혼(成渾)의 학문을 계승하여 이기일도설(理氣一途說)을 지지한 저자의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송환기(宋煥箕, 1728~1807) | 성담집(性潭集)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1728~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1891년 이후에 목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30권, 부록 2권 합 16책이다. 권1~2에는 12제의 시가 있는데, 청량산(淸凉山)과 도산(陶山)을 둘러보고 지은 것,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는 작품,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권3~4는 소(疏), 서계(書啓), 헌의(獻議)이다. 상소의 내용은 대부분 사직하는 것, 소명(召命)을 사양하는 것 등이다. 권5~10은 편지로 ≪우암집(尤庵集)≫의 편차를 위한 의논, 그 외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중 변례(變禮)에 대한 논의가 많다. 권11~12는 잡저이다. 산수를 유람하고 쓴 기록이 많으며,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지신장(持身章) 내용을 도표화한 <지신요령도(持身要領圖)> 등이 실려 있다. 그 외에 의사(義士), 효자, 열녀와 단종(端宗)의 충신인 송간(宋侃), 고려말 홍건적을 물리쳤던 안우(安祐)에 대한 입전(立傳)과 서(序), 기(記), 발(跋), 명찬(銘贊), 애사, 비문(碑文), 행장 등이 실려 있다. 권31~32는 부록으로 순조(純祖) 때 내린 사제문(賜祭文)과 연보(年譜)이다.
▶송희규(宋希奎, 1494~1558) | 야계집(倻溪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6대손 송응벽(宋應璧)이 편찬한 연보와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수집하여 1789년 이사정(李師靖)이 산정ㆍ편차하여 만든 고본을 조카 송사이(宋師頤)의 ≪신연선생유적(新淵先生遺蹟)≫을 합편하여 1816년 활자로 초간한 후, 후손 송준필(宋浚弼) 등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하고 부록과 연보를 증보하여 재편하고 장석영(張錫英)의 교정을 거쳐 1924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권수, 원집 3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16년에 지은 정종로(鄭宗魯)의 서문과 목록, 세계, 연보 및 1898년에 지은 송기선(宋祺善)의 연보후지(年譜後識)가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계사, 책(策), 서(書), 논(論), 잠(箴), 제문, 비(碑), 유사이고, 권2~3은 부록이다. 권2에는 손자 송유경(宋惟敬)이 쓴 저자의 이력, 김취문(金就文)이 지은 행장과 묘지, 김희삼(金希參)이 지은 정려비음기(旌閭碑陰記),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묘비명을 비롯하여, 만장, 증유, <양정동년회창수(羊汀同年會唱酬)>, 청증시소(請贈諡疏) 등이 실려 있다.
▶순조(純祖, 1790~1834) | 순재고(純齋稿)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 1790~1834)의 문집이다. 이름은 이강(李玜)이다. 순조가 승하하고 헌종이 즉위한 뒤 남공철(南公轍) 등은 왕명을 받아 순조와 익종의 어제를 편찬 간행하여 1836년 5월 19일에 진상하자 헌종은 봉모당(奉謨堂), 문헌각(文獻閣), 오처사고(五處史庫), 외규장각(外奎章閣) 등 12곳에 각 1질을 봉안토록 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별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 율부(律賦), 악장(樂章), 치사(致詞), 사(詞)이다. 시에는 숙종, 영조 등 선대왕의 어제(御製)에 차운한 시, 선대왕의 능묘를 오가며 지은 시, 왕실의 누각에서 쓴 제영시가 보인다. <현령(懸鈴)>, <목침(木枕)>, <곡정(曲釘)>처럼 주변의 사물을 통해 세상사를 표현한 작품도 다수 있다. 권5는 잠(箴), 명(銘), 송(頌), 찬(贊)이다. <십팔반기부마기명(十八般技附馬技銘)>은 십팔반무예에 사용하는 병기인 월도(月刀), 제독검(提督劍) 등에 대한 설명이다. 그밖에 영조가 ≪대학장구≫에 쓴 어제서(御製序)에 대한 찬이 있다. 권9는 윤음(綸音)이다. 권15~20은 비(批), 판(判)이다.
▶신개(申槩, 1374~1446) | 인재집(寅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인재(寅齋) 신개(申槩, 1374~1446)의 문집이다. 후손 신현국(申鉉國)ㆍ신우균(申佑均) 등이 ≪동문선≫과 ≪승정원일기≫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수집한 후, 가장(家藏)하고 있던 연보ㆍ묘갈을 붙여 4권 2책으로 편차하여 간행한 초간본으로, 소ㆍ계ㆍ전은 ≪정원일기≫에서, 시ㆍ서ㆍ기는 ≪문선≫에서 뽑은 것을, 후손 신재희(申在熙)ㆍ신창균(申漲均) 등이 1929년 문경(聞慶) 상강정(上江亭)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3권ㆍ부록 1권 합 2책으로, 권수는 목록과 유묵, 권1은 시, 기, 소로 ≪동국여지승람≫ㆍ≪동문선≫ 및 역사서에서 채록한 것이고, 권2는 소와 전, 권3은 계와 문, 잡저, 권4는 부록으로 연보, 정원일기, 사제문, 사전(史傳)과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명, 1745년(영조21) 후손 신종하(申宗夏)가 지은 <자손록(子孫錄)>, 9대손 신확(申瓁)이 지은 묘표, 신익성(申翊聖)이 지은 <서양졸당후기(書養拙堂後記)>가 있다. 권미는 후손 신현국의 발문이 있다.
▶신경(申暻, 1696~1766) | 직암집(直菴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직암(直菴) 신경(申暻, 1696~176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신대부(申大傅)가 가장유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하여 편차하고 사손 신소(申素)가 선사하였는데, 가화가 연이어 가전 서적이 태반은 유실되고 저자의 수필 원고도 산망되었다. 특히 경서의 해석과 예론에 관한 글들이 많이 산일되었는데, 외손 김세연(金世淵)이 주축이 되어 재차 편집하여 김회연(金會淵)이 경상 감사로 재직하던 1811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서는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없고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2는 소(疏), 수의, 서계로, <재서겸진후재선생유의서(再書兼陳厚齋先生遺意書)>는 1756년에 올린 이른바 병자상소로 김간(金榦)의 유지를 통해 박세채(朴世采)의 학문 연원과 도덕을 밝힌 후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처럼 문묘에 종사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권3~6은 서(書)로, 권3은 스승 김간에게 보낸 것으로, 회니(懷尼)에 대한 박세채의 태도를 노론의 입장에서 논의한 것, 성리학에 대해 질의한 것, 그중에 특히 문집간행(文集刊行)에 대한 것이 많아 박세채의 남계집(南溪集)≫ 간행에 대한 논의 등이 있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 | 여암유고(旅菴遺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저자의 문인들 및 홍양호(洪良浩)가 주축이 되어 유문을 수습하고 편차한 것으로 보이나 1910년에 가서야 목활자로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13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장연(長淵) 현감 재임 중에 지은 <민은시(民隱詩)> 등이 있다. 권2는 <화방재사(畫舫齋辭)> 1편과 서(書) 10편이다, <화방재사>는 옥천 군수 신씨(申氏)가 연안에 누선(樓船)이 정박한 모양의 화방재(畫舫齋)를 짓자 여기에 기문과 아울러 지어준 노래로, <어부가(漁父歌)>의 형식을 빌어 지었다. 권3은 서(序)이다. 강계지(疆界誌), 도로고(道路考), 훈민정음의 편리함과 우수성에 대해 논한 <운해(韻解)> 등 자찬(自撰) 저술에 대한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권7~10의 잡저 중 <소사문답(素沙問答)>은 색깔[素]과 형태[沙]의 문답을 통해 음양(陰陽), 소장(逍長) 등에 관한 상대적 가치에 관해 논한 글이다. <시칙(詩則)>에서는 시의 체격(體格)을 48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고, <시중필례(詩中筆例)>에서는 시를 구성하는 14가지 요법을 설명하였다.
▶신광수(申光洙, 1712~1775) | 석북집(石北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문집이다. 저자의 많은 작품이 산일된 것으로 보이나 시집의 구성이 <관서록(關西錄)>, <여강록(驪江錄)>, <탐라록(耽羅錄)>, 또는 <북산록(北山錄)>, <임장록(臨漳錄)>, <오중록(粤中錄)> 등으로 묶여 있는 점으로 보아 생전에 시록(詩錄)을 정리하여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아들 신우상(申禹相)과 신이상(申履相)에 의하여 수집, 편차되었고, 5세손 신관휴(申觀休)가 1906년에 16권 8책을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10은 시 1,100여 제와 <관서악부(關西樂府)>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서악부>는 1774년 친구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평양 감사로 부임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어준 율체(律體)의 악부이다. 서관(西關)의 비류(沸流), 패강(浿江) 등지를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것으로, 평양에 대한 형승(形勝), 속요(俗謠) 등 다양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권11~16은 문(文) 186편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은 서(書)와 제문류가 많은 편이다. 그밖에 서(序), 비음기(碑陰記), 전(傳), 여문(儷文), 잡저와 부록이 실려 있다.
▶신광한(申光漢, 1484~1555) | 기재집(企齋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서(序)ㆍ발(跋) 등이 없어 간행자와 간행 경위 등을 알 수 없다. 원집 권1에는 <화이소경(和離騷經)> 등 15편의 부(賦)가 실려 있고, 권2~4에는 여주(驪州)에서 우거(寓居)할 적에 지은 작품을 비롯하여 1539년 중국 사신을 맞으러 나갈 때 지은 작품이 실려 있다. 권5에는 1520년 삼척 부사(三陟府使)로 부임하면서 지은 시를 모은 <관동록(關東錄)>이 실려 있으며, 권8에는 기순(祁順) 등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에 지은 시를 모은 <동사록(東槎錄)>이 실려 있다. 권11~12는 ≪황화집(皇華集)≫에서 저자의 시만을 초록한 것으로, 권11은 1539년 도사선위사(都司宣慰使)로서 화찰(華察) 등을 맞이할 때 원접사 소세양(蘇世讓)을 대신하여 지은 수창시(酬唱詩)이다. 별집 권1~7에는 시가 실려 있으며, 문집에는 변(辨), 기(記), 지(志), 설(說), 논(論), 서(序), 차(箚), 장(狀), 비명(碑銘), 묘지, 제문, 잡저, 표전(表箋), 명(銘), 가요(歌謠) 등이 실려 있다. 화평담아(和平淡雅)하다는 평을 얻는 저자의 시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신구(申球, 1666~1734) | 묵암집(默庵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묵암(默庵) 신구(申球, 1666~1734)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 중반 이후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김이안(金履安)이 1790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소(疏), 서(書), 서(序), 설(說), 기(記)이다. <변척기무소(辨斥譏誣疏)>는 송시열과 윤증(尹拯)의 시비를 결단하여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게 된 병신처분을 이끌어낸 계기가 된 문건의 하나이다. 서(書) 가운데 <답우인서(答友人書)>는 1716년 항소(抗疏)의 취지를 밝히며 벗에게 보낸 것이고, <원정(原情)>은 1722년에 병신년의 상소를 보충하여 윤선거를 조목별로 비판하며 지은 것이다. 권2는 제문, 행장, 묘지이다. 제문에는 1722년에 징하(徵夏)를 양자로 들인 것을 아뢰며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올린 것, 1704년 거제에 건립한 반곡서원에서 송시열에게 고한 것 등이 있다. 행장은 부친 신여규(申汝逵)에 대한 것이며, 묘지는 27세로 요절한 재종형 신총(申總)에 대한 것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지명, 묘갈명이 실려 있고 권말에 이민보(李敏輔)가 1791년에 지은 발이 있다.
▶신국빈(申國賓, 1724~1799) | 태을암집(太乙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태을암(太乙菴) 신국빈(申國賓, 1724~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현대(鉉大)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된 고본을 1944년 밀양 경정당(景貞堂)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943년 송준필(宋浚弼)이 쓴 서문과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詩), 사가(詞歌), 고부(古賦)이다. 졸년인 1799년에 지은 <기미입춘감음이절(己未立春感吟二絶)>은 75세 평생을 되돌아보고 자손들에게 면학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권5는 잡저 중에서 <경두후서시제아(經痘後書示諸兒)>와 <기몽(記夢)>은 1789년 마마를 앓고 회복된 뒤에 쓴 글이고, <노인독서해조(老人讀書解嘲)>와 <수설(睡說)>에서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변치 않는 저자의 근면한 독서 습관을 볼 수 있으며, 1795년 과거를 보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서행일기(西行日記)>도 있다. 권7~8은 부록이다. <승상증하시(升庠贈賀詩)> 9편은 1795년 저자가 72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며 권사호(權思浩), 이귀성(李龜星) 등 저자와 교유하던 당대의 문인 학자들이 지은 것이다.
▶신기선(申箕善, 1851~1909) | 양원유집(陽園遺集)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양원(陽園)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에 가장과 시장, 제문 등을 부록으로 붙인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권1~2는 시(詩)이고, 권3~4는 소(疏)이다. <언사소(言事疏)> 7편은 국내의 정치 사범의 논죄와 벌칙에 관해 법부대신으로서 올린 상소문이고, <변명소(辨明疏)>는 군부대신으로 재직할 때 군함 계약에 관한 부정 혐의에 대해 변명한 것이다. 권11에 실린 잠(箴) 중에는 입지(立志)ㆍ위학(爲學)ㆍ사친ㆍ계색(戒色)에 대한 것이 있고, 찬(贊) 중에는 정암(靜菴)ㆍ퇴계(退溪)ㆍ율곡(栗谷)ㆍ사계(沙溪) 등을 기린 <본조육군자찬(本朝六君子贊)>이 있으며, 논(論) 중에는 남녀가 서로 지켜야 할 법도에 대해 쓴 <변남녀론(辨男女論)>이 있다. 권15는 문답으로 스승 임헌회를 찾아가서 문답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사우문답(師友問答)>, 스승과 동문들의 문답을 적은 것으로 성리학, 시국관, 처세관, 인물평 등을 담은 <명강문답(明剛問答)> 등이 있다. 권17에 실린 잡저에는 <계몽천자문(啓蒙千字文)>, <병정일기(丙丁日記)>, <봉사일기(奉使日記)>가 실려 있다.
▶신달도(申達道, 1576~1631) | 만오집(晩悟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만오(晩悟) 신달도(申達道, 1576~1631)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신홍기(申鴻基)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27년 의성의 신석기숙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이다. 경광을 읊은 시, 차운시 등이 고루 섞여 있고, 그중 <성동즉사(城洞卽事)>는 임진왜란 때 피란했던 황학산 성동에서의 일을 읊은 것이다. 권2는 <진시폐십조소(陳時弊十條疏)>로서 1626년에 올린 소이다. 권3은 차로, 지평ㆍ문학 등을 사직하는 상소와 여러 상황에 대한 소회를 아뢴 것이다. 권4~5는 계, 공함, 정문이고 권6은 조목 외에 장현광, 정경세, 이호민 등과의 서(書)이다. 권7은 잡저로<남산문목(南山問目)>은 아우 신열도(申悅道)와 함께 남산에 머무르고 있는 장현광을 찾아가 경전을 논의한 것, 장현광의 저술인 ≪역학도설(易學圖說)≫을 보고 이기에 대해 논의한 것 등이다. 권8은 서(序), 기, 발, 잠, 표, 전(箋), 애사, 고사, 제문, 묘지, 행장이고 권9는 연보와 후지이다. 권10은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등이다.
▶신대우(申大羽, 1735~1809) | 완구유집(宛丘遺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완구(宛丘) 신대우(申大羽, 1735~1809)의 문집이다. 양명학자이자 소론인 정제두(鄭齊斗)의 문인(門人)으로 강화학파(江華學派)이면서 서예가(書藝家)이다. 아들 신진(申縉), 신작(申綽), 신현(申絢) 형제가 저자가 생전에 엮은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시문(詩文)을 더 정선(精選)하여 재편집하였고 이충익(李忠翊)이 1816년에 서문(序文)을 썼다. 문집의 글자는 팔분체(八分體)이고, 시(詩)를 단 한 편도 싣지 않았으며, 문(文)도 문체별로 분권하여 권수는 10권이나 된다. 권1~4는 잡저(雜著)와 편지글, 서(序), 기(記)이고, 권5~10은 묘도문자(墓道文字)로 묘지(墓誌), 묘갈(墓碣), 신도표(神道表), 행장(行狀) 및 제문(祭文)이다.
▶신득구(申得求, 1850~1900) | 농산집(農山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농산(農山) 신득구(申得求, 1850~19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에 문인 장진학(張鎭學)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12권 5책으로 초출(抄出)하여 1917년 봄에 고흥 지역의 문중에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편지는 임헌회(任憲晦), 신좌모(申佐模), 신응조(申應朝), 송근수(宋近洙) 등 87인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권5는 잡저(雜著)이다. <우필(偶筆)>은 1899년 복제에 관하여 전거를 들어 ‘우임활수(右袵闊袖)’와 ‘좌임착수(左袵窄袖)’를 비교하여 지은 것이다. 권말에 <오성각거일언도(五聖各擧一言圖)>, <중용도(中庸圖)>, <맹자호연지도(孟子浩然之圖)>, <사물잠도(四勿箴圖)>가 실려 있다. 권12는 가장(家狀), 유사(遺事), 전(傳)이다. 가장은 부친 제모(濟模), 모친 여산 송씨(礪山宋氏), 종백부 희모(曦模)에 대한 것이고, 유사는 종조 세록에 대한 것이며, 전(傳)은 신여량(申汝樑), 신정빈(申正彬)과 신직구(申直求), 조석윤(曺錫胤), 한사검(韓思儉) 등에 대한 것이다.
▶신몽삼(辛夢參, 1648~1711) | 일암집(一庵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암(一庵) 신몽삼(辛夢參, 1648~17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족후손 신자순(辛子順)과 손자 신필전(辛必㙉), 증손 신덕종(辛德鍾) 등이 수습(收拾)하고 이광정(李光庭)이 편정(編定)하였는데, 시문을 편정한 시기는 1755년경이다. 원집(原集)의 편정이 끝난 뒤 신덕종은 이광정에게 행장(行狀)을 받고 이상정(李象靖)에게 서문(序文)을 받았으나 간행(刊行)되지 못하고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1865년경에 후손들에 의해 인행(印行)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권두에 이상정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1은 시(詩), 권2~3은 편지글, 권4~5는 답문(家藏), 권6은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잠명(箴銘), 상량문(上樑文), 권7은 축문(祝文), 제문(祝文), 행록(行錄), 부록(附錄)에는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이광정의 행장(行狀), 이상정(李象靖)의 묘갈명(墓碣銘), 유치명(柳致明)의 상향축문(常享祝文), 유치호(柳致皜)의 봉안문(奉安文), 이휘준(李彙濬)의 상량문(上樑文) 등이 있으며, 권미(卷尾)에는 이원조(李源祚)의 발문(跋文)이 있다.
▶신민일(申敏一, 1576~1650) | 화당집(化堂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당(化堂) 신민일(申敏一, 1576~165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자손의 집에 산재하였는데 그마저도 여러 차례 화란을 겪어 약간 편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에 아들 신양과 손자 신명규(申命圭)가 유문을 수집하여 상중하 3책으로 편차,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었지만, 1688년에 신명규가 세상을 떠나고, 서문과 묘지문을 써 주기로 하였던 박세채(朴世采)도 1695년에 세상을 떠나고, 신양(申懹) 마저 1706년에 졸하여 간행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1719년에 현손 신사철(申思喆)이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자 증손 신임(申銋)이 위의 정고본을 그에게 보내어 간행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해인 1720년 4월에 5권 3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서와 목록은 없다. 권1~2는 사부(辭賦), 시, 명(銘), 잠(箴), 상량문, 제문이다. 사부에는 <알경현묘사(謁景賢廟辭)>가 있다. 권3~4는 서(序), 기(記), 논(論), 설(說), 발(跋), 잡저(雜著), 서(書), 돈유초(敦諭草), 소차(疏箚), 계사(啓辭), 묘지명(墓誌銘), 보유(補遺)로 구성되어 있다.
▶신방(申昉, 1686~1736) | 둔암집(屯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둔암(屯菴) 신방(申昉, 1686~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경(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사위 홍인한(洪麟漢)이 175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이 중에서 <몽파산(夢坡山)>은 1706년 지은 것으로, 외가인 파주(坡州)에 간 꿈을 꾼 뒤 너무도 생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슬픔을 노래한 320자의 장시(長詩)이다. 권3은 소차(疏箚)로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권4는 소차, 계(啓), 서(書), 척독(尺牘), 서(序)이다. 서(書)는 홍귀조(洪龜祚), 이귀령(李龜齡), 정내교(鄭來僑)에게 답한 편지이다. 권5는 기(記), 제발, 잡저이고 권6은 교문, 교서, 악장, 전문, 상량문, 묘지, 행장 등이다. 권7은 제문, 애사, 전이고 권8은 잡지이다. <병중잡소(病中雜疏)>, <평일우기(平日偶記)>, <서좌우(書座右)>, <수필록(隨筆錄)>, <시화(詩話)> 등이 실려 있는데, 독서 후나 일생생활에서 보고 들은 중에 느낀 소소한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동생 경이 1758년에 지은 서후(書後)가 실려 있다.
▶신석번(申碩蕃, 1596~1675) | 백원집(百源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백원(百源) 신석번(申碩蕃, 1596~167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신환(申爟)이 수집하고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1845년경에 가서야 저자의 7대손 신덕규(申德圭)가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시로는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제만폭동(題萬瀑洞)>, 상주(尙州)에 우거하면서 낙동강과 관련하여 지은 시 등이 있다. 이만영(李晚榮), 김준민(金俊民), 등과 나눈 시가 많으며, 효종대왕(孝宗大王), 이준(李埈), 등에 관한 만시(挽詩)도 있다. 소(疏) 가운데 <사장령소(辭掌令疏)>는 장령을 사양하면서 흉년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에 대해 말하고 황구첨정(黃口簽丁), 백골징포(白骨徵布) 등의 폐단을 극언(極言)한 내용이다. 서(書)는 190여 편으로, 이만영(李晚榮), 김도(金濤), 등과 나눈 편지들을 인물별로 모아 놓았다. 잡저로는 보은 유생을 대신하여 효자 이사안(李思顏)의 정려(旌閭)를 청하며 지은 <정예조문(呈禮曹文)> 등이 있고, 서(序)로는 길흉상조(吉凶相助)의 뜻으로 맺은 우연계(偶然契) 문적(文籍)의 서인 <우연계서(偶然契序)>가 있다. 그밖에 발(跋), 고문(告文), 제문, 묘지(墓誌) 등이 있다.
▶신석우(申錫愚, 1805~1865) | 해장집(海藏集)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해장(海藏) 신석우(申錫愚, 1805~1865)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 양균(養均)이 가장초고(家藏草藁)를 당시 문(文)은 윤종의(尹宗儀)와 박규수가 편차(編次)하고, 시(詩)는 조면호(趙冕鎬)가 산교(刪校)하였는데 시는 비교적 순탄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이나 문은 작업에 차질이 있어서 저자의 조카 연익(淵翼)이 저자의 문고(文藁)를 선사(繕寫)하고 8책으로 편정한 것을 1878년 윤종의가 다시 산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다시 부록으로 제문(祭文), 유사(遺事), 시장(諡狀)을 붙여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8권 13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를 수록하였고, 권9~17은 문을 수록하였다. 권1ㆍ2, 권3ㆍ4, 권5ㆍ6, 권17ㆍ18은 책별로, 권9~16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그리고 권7과 권8은 목록이 없다. 권1은 부(賦), 가행(歌行), 시이다. 권3은 시이다. <종감저(種甘藷)>는 1836년에 고구마 수본(數本)을 구해서 서유구(徐有榘)의 ≪종저보(種藷譜)≫에 나오는 대로 재배한 일에 대해 지은 시이다. 권12는 기, 발(跋)이다. 권미에 1874년과 1878년에 쓴 윤종의의 발 2편이 실려 있다.
▶신성하(申聖夏, 1665~1736) | 화암집(和菴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암(和菴) 신성하(申聖夏, 1665~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자 경(暻)이 가장초고 중에서 시(詩)만을 선정ㆍ편차하여 1748년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의 시집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고 자주와 편자주가 있으며,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작품에는 <추야(秋夜)>, <부벽루차최호운(浮碧樓次崔顥韻)> 등 10대 초반에 부친의 북방지역 임지에서 지은 것을 비롯하여 고조부 신경진(申景禛)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비하던 일과 유덕을 기린 것으로 악부시의 특징을 살려 지은 <동문행(東門行)>, 고려가 망하자 평산 황의산(黃衣山)에 은거한 선조 신안고(申晏高)의 절의를 기려 지은 <배록동(排祿洞)>, 여러 차례 개성 지역을 유람하고 지은 <고무담(鈷鉧潭)>, 예천 군수 시절에 단양팔경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구담(龜潭)>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구일감회(九日感懷)>는 술잔 기울일 벗들은 가고 없어 중양절에 홀로 시를 지으며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다. 부록에는 묘갈명, 애사, 장일감음(葬日感吟)과 추만이 실려 있고 권말에 차남 경이 1748년에 지은 발이 있다.
▶신수이(愼守彝, 1688~1768) | 황고집(黃臯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彝, 1688~1768)의 문집이다. 본집은 1845년 증손 필우(必祐)와 현손 재정(在正), 재성(在誠)이 홍직필(洪直弼)에게 다시 행장을 받고,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같은 해 홍직필에게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3책이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서 고시, 절구, 율시, 사자시,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원래 한글이었으나 저자의 아들 의명(義明)이 오언육구(五言六句)의 한시로 번역하였다. 원작은 시조(時調)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3~4는 서(書)로 이재(李縡), 민우수(閔遇洙)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5는 서(序), 발(跋), 기(記), 설(說), 상량문, 제문이고 권6은 애사, 고축문, 잡저이다. 그중에서 <감설(感說)>은 눈 내리는 광경을 보고 이치를 설파하는 내용이며, <치재규범(致齋規範)>은 경건한 태도로 치재에 임하지 않는 세태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권7은 묘갈명, 묘표, 행장이고 권8은 부록으로 김종후(金鍾厚)와 홍직필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김종후의 행장은 미완성인데 말미에 그 이유를 밝힌 아우 김종수(金鍾秀)의 기록이 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 | 보한재집(保閑齋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문집이다. 성종의 명을 받아 손자 신종호(申從濩)가 교편(校編)하여 진상(進上)해 1487년(성종18) 교서관에서 인행(印行)하였으나 이 초간본은 유실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45년(인조23) 7대손 신속(申洬)이 영천 군수(榮川郡守)로 나갔을 때 초간본 완질을 구하여 목판으로 복각(覆刻)해 17권 4책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본집 17권ㆍ보유(補遺)ㆍ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본집 권1~12는 시(詩), 권13~17은 문(文)이다. 권1에는 부(賦) 6편이 실려 있고, 권2~11에는 시가 각체별(各體別)로 배열되어 있다. 권12에는 명사(明使) 예겸(倪謙)이 우리나라에 사신 왔을 때 함께 수창(唱酬)한 시집 <요해편(遼海編)>이 실려 있다. 권13에는 1468년에 지은 가훈(家訓) 6조목과 책(策) 1편이 실려 있다. 그밖에 기(記), 서(序), 제발(題跋), 제문, 소문(疏文)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1443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쓴 글 등을 통해 당시의 한일 관계와 일본의 사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신열도(申悅道, 1589~1659) | 나재집(懶齋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나재(懶齋) 신열도(申悅道, 1589~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세기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은 시로, 서장관으로 부경할 때 상사 송극인(宋克訒)과 수창한 시 및 사행 중 각처에서 소회를 읊은 시가 가장 많다. 권2는 교서, 사제문, 소, 계이다. 그중에서 <청물견신사잉자핵계(請勿遣信使仍自劾啓)>에서는 강화 사신을 보내지 말 것을 주장한 정온(鄭蘊)을 옹호하고 간관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체직을 청하였다. 권3은 <조천시문견사건계(朝天時聞見事件啓)>로, 서장관이 되어 1628년 7월 11일 사조하고 해로로 부경하여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권4는 명(明)나라의 도독 모문룡(毛文龍), 등주 군문, 예부(禮部)에 올린 정문(呈文)이고 권5는 서(書)이고, 권6은 잡저, 서(序), 발(跋), 상량문, 축문이고 권7은 제문과 묘표지이다. 권8은 행장이고, 권9는 부록으로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행장과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지가 있다.
▶신완(申琓, 1646~1707) | 경암집(絅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암(絅菴) 신완(申琓, 1646~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성하(聖夏)ㆍ정하(靖夏) 형제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정고본을, 손자 경(暻)이 교감하고 저자의 증손 대손(大孫)의 협조를 받아 176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가 2권, 문(文)이 6권으로 각 권의 첫머리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부사, 시(詩)이다. 시는 대체로 저작 순서로 배열되었고, 일상의 소소한 심정을 읊고 차운한 시들과 만시가 섞인 가운데 <치장추(雉將雛)>, <와우(蝸牛)> 등의 시에서는 새, 곤충, 벌레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의인화시켰다. 권3~5는 소차, 계(啓), 의(議)이다. 소차는 대부분 체직, 사직, 대죄를 청하며 소회를 진달한 것이고, 의(議)는 사당건립이나 문묘종사 등에 대한 임금의 하문에 대해 검토하여 올린 것이다. 권6~8은 가장, 시장, 묘지, 묘갈명, 제문, 애사, 잡저, 서독이다. 특히 애사는 임영(林泳)에 대한 것이고, 서독은 박세채(朴世采), 임영, 이여(李畬), 정호(鄭澔) 등과 집안 자제들에게 준 것이다. 말미에 신경이 1766년에 쓴 발(跋)이 붙어 있다.
▶신용개(申用漑, 1463~1519) | 이요정집(二樂亭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이요정(二樂亭) 신용개(申用漑, 1463~1519)의 문집이다. 아들 신한(申瀚)이 초고(草稿)를 거두어 가장(家藏)해 두었다가 1541년(중종36)에 숙부 신광한(申光漢)의 질정을 받아 간행한 초간본에 김안국(金安國)ㆍ심언광(沈彥光)의 서(序)와 신광한의 발문을 첨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고, 후손 신응구(申應榘)가 심열(沈悅)의 집에 보관된 1본을 선사(繕寫)하여 가장해 두었던 것을 1682년(숙종8)에 신응구의 손자 신익상(申翼相)이 전라감사로 나갔을 때 전주에서 15권 3책으로 간행하였으며, 이 중간본에 <습유(拾遺)>로 일시(逸詩) 2편과 신흠(申欽)이 지은 화상기(畫像記), 사록(史錄)에서 뽑은 유사(遺事)를 원집 부록 뒤에 붙이고 신익상의 발을 첨부하였다. 문집은 본집 15권ㆍ부록ㆍ습유 합 3책으로, 권수는 김안국(金安國)의 서(序)와 심언광(沈彥光)의 서가 있고, 권미엔 6대손 신익상의 발과 당제(堂弟) 신광한의 발이 있다.
▶신위(申緯, 1769~1845) |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 권책수 : 29책 | 포갑수 : 6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경수당(警修堂) 신위(申緯, 1769~1845)의 문집이다. 저자는 시(詩), 서(書), 화(畵)에 능했으며, 생전에 43세 때인 1811년 이후에 지은 시만을 편차하여 ≪경수당집(警修堂集)≫을 남겼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29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차된 시모음집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29책에 붙인 시록(詩錄)의 제목이 흥미로운데, <무인록(戊寅錄)>은 죽은 형이 태어난 해를 시집 제목으로 삼아 지어 형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고, <홍잠집(紅蠶集)>은 누에가 늙으면 붉은 색을 띤다는 데에서, 노경(老境)에 지은 시를 모았음을 밝힌 것이다. <창서존고(倉鼠存藁)>는 벼슬에서 물러나서도 여전히 녹봉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쥐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것과 같다고 느껴 지은 이름이며, <부와집(覆砙集)>은 자신의 시문이 후세에 항아리 뚜껑으로나 쓰이게 될 것이라는 겸손한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중국 북송(北宋)의 소식(蘇軾)을 따르고자 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풍을 이루었고, 현실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양반 배척, 서얼의 차별 대우 철폐, 당쟁 배격을 내용으로 하는 시도 있다.
▶신유(申濡, 1610~1665) | 죽당집(竹堂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당(竹堂) 신유(申濡, 1610~1665)의 문집이다. 본집은 계자 선함(善涵) 등이 저자가 1659년에 자편한 시고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689년 임상원(任相元)의 산정을 거쳐 만든 고본을, 18세기 후반에 시만을 분리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의 문과 부록을 합부한 것이다. 본집은 15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저자가 1659년에 쓴 서문이 있다. 권1~10은 시록(詩錄)이다. 권1은 심관록(瀋館錄), 구성록(駒城錄), 옥당록(玉堂錄)이다. 저자가 시강원 문학으로 1639년 2월에 세자를 모시고 16개월에 걸쳐 심양에 다녀오는 여정에 읊은 시, 여러 직책을 거치며 지은 시를 편차한 것 들이다. 권2~3은 해사록(海槎錄)이다. 권4~10은 은대록(銀臺錄), 연대록(燕臺錄) 등이다. 권11은 소(疏)이고 12는 제진문(製進文), 전문, 계사, 장(狀)이다. 권13은 서기(序記), 잡문, 제문이고 권14는 묘갈, 묘지, 행장이다. 권15는 부록으로,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신도비명, 1666년에 현종이 내린 제문을 지제교 이단하(李端夏)가 대작한 사제문이 실려 있다.
▶신유한(申維翰, 1681~1752) | 청천집(靑泉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 문생들이 유고를 수집하고, 선대로부터 교분이 있던 이미(李瀰)가 영남의 관찰사로 부임하여 1770년에 유고 중 뛰어난 시문만을 정선하여 6권 3책으로 편찬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872년경부터 종손 신태진(申泰鎭)은 가장하고 있던 유고를 바탕으로 널리 유문을 모으고 부록을 보강하여 1877년에는 속집의 편차를 완료하였다. 이에 친족들과 향토 사림의 협조를 받아서 족손 신두상(申斗相)과 함께 간행을 준비하여 영간소(營刊所)를 설치하고 권연하(權璉夏)의 서문과 신재석(申在錫)의 후지를 받았지만, 신태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업은 지지부진해져 간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1891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6권 3책, 속집 12권 5책 합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 권수에는 이미의 서문이 실려 있다. 속집 권3~6은 해사동유록(海槎東遊錄)으로, 일기체의 사행록이다. 권3에는 이해 4월 11일 대궐을 출발하여, 6월 20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는 과정과 일본에 도착하고 난 뒤 폭풍을 만나 객관에 머무르는 8월 초까지의 기록이 실려 있다.
▶신응구(申應榘, 1553~1623) | 만퇴헌유고(晩退軒遺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만퇴헌(晩退軒) 신응구(申應榘, 1553~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遺文)은 손자인 신익상(申翼相)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 편차(編次)한 소(疏), 계사(啓辭), 서(書) 등의 문(文) 2권에, 아들 신량(申湸)이 지은 행장(行狀)과 신량의 부탁으로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신익상이 박세채(朴世采)에게 받은 묘표(墓表) 등을 부록(附錄)으로 첨부(添附)하였다. 이것을 신익상이 1683년 3월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부임한 후 이듬해인 1684년경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권1은 소(疏)와 계사(啓辭)인데, 그중에서 <위망사우계선생변무소(爲亡師牛溪先生辨誣疏)>는 광주 목사(廣州牧使) 재임 시에 성혼의 신원(伸寃)을 위해 올린 상소(上疏)이며, <진시무십조봉사(陳時務十條封事)>는 난후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으로 국방 강화 등의 열 가지 조목을 기술하여 1610년에 올린 것이다. 권2는 서(書), 서(序), 제문(祭文), 잡문(雜文)이고, 부록(附錄)으로는 통정대부에 가자(加資)하는 교서(敎書)를 비롯해 제문(祭文), 만사(挽詞), 행장, 유사 등이 있다.
▶신응시(辛應時, 1532~1585) | 백록유고(白麓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백록(白麓) 신응시(辛應時, 1532~158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유실되었고, 남은 유고를 아들 신경진(辛慶晉)이 수습하고 손자 신희계(辛喜季)가 편차하여 1660년 8월경 불분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신희계가 다시 저자의 시문 권미에 있는 습유 일부를 더 추각하였다. 권수에 송시열(宋時烈)의 서(序)가 있다. 시는 대부분으로, 풍경을 읊은 시, 승려에게 준 시, 송별시 등이다. <화담유감(花潭有感)>은 1567년(명종22) 호당(湖堂)에 있을 때 서경덕(徐敬德)을 추모하여 지은 것으로서 왕이 보고는 호조 좌랑을 추증(追贈)하도록 하였다는 시이다. 또 <해당화하두견제(海棠花下杜鵑啼)>, <남훈해온(南薰解慍)> 등의 응제 문자(應製文字)도 실려 있다. 습유(拾遺)의 <한도부(漢都賦)>는 17세에 지은 작품으로,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태평세월을 누리고 있음과 제왕은 지리(地利)보다는 인화(人和)를 중시하여 덕(德)을 닦아야 함을 읊은 글이다. 예의를 숭상한 내용의 맑고 격조 높은 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신익상(申翼相, 1634~1697) | 성재유고(醒齋遺稿)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재(醒齋) 신익상(申翼相, 1634~16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전해 오던 가장초고가 1834년경에야 정리되었으나 이후 간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책1~5는 시(詩)이다. 형 신필상(申必相)과 동생 신우상(申遇相) 등과 나눈 시, 기행시, 월과(月課)로 지은 시, 우거 시절 등에 지은 시 등이 있다. 책5의 <북관록(北關錄)>은 1674년 북도 병마평사 시절의 시작(詩作)을 모은 것이다. 책6~9에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서(序)로는 <감구서(感舊序)>와 송서(送序) 등이 있고, 기(記)로는 자신의 <육오당(六吾堂)> 등에 대한 기문이 있으며, 록(錄)으로는 1654년에 영천, 안동 등을 유람하고 지은 <남정록(南遊錄)>이 있다. 책10에는 유상운(柳尙運)이 지은 행장, <현석문인박상순소록(玄石門人朴尙淳所錄)>, <부잡록(附雜錄)>과 서(書)가 실려 있다. 편지는 박세채, 남구만(南九萬), 최석정(崔錫鼎) 등 주로 소론계(少論系) 인물들에게 보내고 답한 것들이 실려 있는데, 내용은 정치와 정책 현안을 의논하는 것과 안부 편지가 대부분이다.
▶신익성(申翊聖, 1588~1644) | 낙전당집(樂全堂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편 초고(自編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 신면(申冕), 신최(申最) 등이 수습, 편정(編定)하여 1650년을 전후해서 ≪낙전당고(樂全堂稿)≫ 26권과 ≪낙전당속고(樂全堂續稿)≫ 17권으로 사본(寫本)을 만든 다음, 1654년 이민구(李敏求)의 산정(刪定)을 거쳐 1681년경에 저자의 외손 김석주(金錫胄)가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15권 7책으로 되어 있다. 시 가운데<오자시(五子詩)>는 정홍명(鄭弘溟), 최명길(崔鳴吉), 장유(張維), 박미(朴瀰), 이명한(李明漢) 등을, <십자편(十子篇)>은 앞의 5인을 포함하여 이식(李植), 이민구(李敏求), 정백창(鄭百昌), 등을 읊은 것이다. 서(序)로는 송서(送序), ≪청허당집(淸虛堂集)≫ 등 문집의 서문, 수서(壽序), 증서(贈序) 등이 있다. 기(記)로는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개혁을 주도하다 기사사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한 김식(金湜)의 사당에 대한 기문인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이 있다. 당시의 풍물과 시무(時務), 정사(政事)에 대한 내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신익전(申翊全, 1605~1660) | 동강유집(東江遺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강(東江) 신익전(申翊全, 1605~16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신정(申晸)이 1672년 호남 감사(湖南監司)로 재임 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직접 정리하고 편차하였다. 그 후 19권 3책의 분량으로 한구자(韓構字)로 인행되었는데 재편찬과 간행 경위는 관련 서발이나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다. 권1~9는 시(詩), 권10~15는 문(文), 권16은 별록(別錄), 권17~19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신정의 발문이 있다. 시는 320여 수로 구성되어 있다. 형인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과의 차운시가 많은 편이다. 또한 기행시나 증시(贈詩), 서정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文)으로는 서(序), 기(記), 행장, 제문,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별록으로 실린 <밀양지(密陽志)>는 저자가 1652년 밀양 부사로 재직시 지은 읍지이다. 읍의 연혁과 지리적 요건, 속현과 읍, 사우(祠宇)와 주요 건물, 명승지, 인물뿐만 아니라 세수(稅收)와 지출 상황, 관아의 인원, 노비, 특산물과 공부(貢賦)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병자호란 이후의 급변하는 사회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신익황(申益愰, 1672~1722) | 극재집(克齋集)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극재(克齋) 신익황(申益愰, 1672~1722)의 문집이다. 저자는 여러 권의 시문을 비롯하여 <운곡휘음(雲谷徽音)>, <도산휘음(陶山徽音)>, <양선생서식강도첩(兩先生棲息講道帖)>, <동국승경와유록(東國勝境臥遊錄)>, <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 등을 저술하였는데, 이 가운데 시문만이 1862년에 현손 신정응(申楨應)의 주도로 13권 7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권1은 <추야사(秋夜辭)> 1편과 시 154제인데, 시의 내용은 호남의 영암, 해서(海西), 금오산(金烏山) 등을 유람하며 지은 것들이 많다. 이밖에 차운시와 만시(輓詩)가 실려 있다. 편지는 이현일(李玄逸)을 비롯한 스승과 선배, 친구와 문인과 주고받았으며, 내용은 주로 성리학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설, 출처의 의리 등을 논한 것들이다. 잡저로는 갈암 선생에게 받은 가르침을 정리하여 적어 놓은 <취정록(就正錄)>, 1701년 해서 기행 때 도로(道路)의 도(道)로 도덕(道德)의 도(道)를 비유하는 것에 관해 논하고 자신을 인도해 줄 사우(師友)를 그리는 마음을 적은 <이로유도설(以路喩道說)>, 제생(諸生)을 위해 지은 <관선재학규(觀善齋學規)> 등이 실려 있다.
▶신작(申綽, 1760~1828) | 석천유고(石泉遺稿)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천(石泉) 신작(申綽, 1760~182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신명연(申命淵)이 중심이 되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편지 등을 수습하여 문집을 편차하였다. 본집은 현재 간본은 없고 사본≪석천유집(石泉遺集)≫과 ≪석천유고(石泉遺稿)≫ 2종이 있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권1에는 기(記), 소(疏), 제문, 만장, 행장, 묘지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원비(原碑)>는 1807년에 <한예비문(漢隷碑文)>을 직접 쓰고 난 뒤에, 중국 역대 비갈(碑碣)의 기원과 비갈을 지은 작가들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를 적은 글이다. 권2에 실린 <노자지략서(老子旨略序)>는 노자의 경문을 뜻이 통하도록 새로 편차하고 여러 학설을 모아 간략하게 설명한 책인 ≪노자지략≫의 서문이고, <하곡유문(霞谷遺聞)>은 외증조부 정제두의 일화를 기록한 것이고, <일시서(逸詩序)>는 300편 외의 시 47단(段)을 경전자사(經傳子史)에서 채록한 ≪일시(逸詩)≫의 서문이다. 권3에는 훈고학에 대한 식견을 알 수 있는 저서인 ≪상서고주(尙書古注)≫, 유경(柳儆)의 모친 완산 이씨(完山李氏)가 지은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대한 서문 등이 실려 있다.
▶신정(申晸, 1628~1687) | 분애유고(汾厓遺稿)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분애(汾厓) 신정(申晸, 1628~16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집은 ≪분애유집(汾厓遺集)》, ≪분애유고(汾厓遺稿)》, ≪분애집(汾厓集)》 세 가지의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이상 세 가지의 필사본은 결국 연속된 교정 작업으로 인한 것인데,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차 교정본인 ≪분애유고》로, 규장각장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1200여 제(題)가 <형설록(螢雪錄)>, <석갈록(釋褐錄)>, 등 12개의 시록(詩錄)으로 분류되어 실려 있다. 산문으로는 소차(疏箚), 계사(啓辭), 서(書) 등 다양한 문체가 실려 있는데, 잡저 중에는 부친 신익전(申翊全)의 ≪동강유집(東江遺集)》에 쓴 발(跋), 8대조부터 조부까지의 일을 기록한 <선세유사(先世遺事)> 등이 있다. 권11은 <빈왜일록(儐倭日錄)>으로, 1670년 대마도주의 차왜(差倭)가 이관(移館)을 청한 일로 경접위관(京接慰官)이 되어 동래(東萊)에 다녀올 때의 기록이다. 권12는 <남행일록(南行日錄)>, <잡록(雜錄)>이다. <잡록(雜錄)>은 한사군(漢四郡)과 삼국(三國)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짧은 잡문이다. 권13~14는 부록이다.
▶신정모(申正模, 1691~1742) | 이치재집(二恥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강경훈(姜景勳)
-조선 시대 이치재(二恥齋) 신정모(申正模, 1691~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상헌(相憲)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김도화(金道和)의 교감을 받아 1899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는 1898년에 지은 김도화의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부와 사는 1724년에 지은 <농은와사기정신상사(聾隱窩辭寄呈申上舍)>를 제외하면 모두 유배 중에 지은 것들이다. 시는 유배 이후에 지은 시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며, 유산시와 모친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시가 자주 보인다. 권2는 시(詩), 서(書)이고 권3은 서(書),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명, 설(說), 변(辨), 상량문이다. 그중에서 <이치재명(二恥齋銘)>은 저자가 자신에게 나라를 배반하여 충을 어기고 부모와 떨어져 효를 훼손하게 된 두 가지의 부끄러운 과오가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하여 유배소의 소재(小齋)를 ‘이치재’로 명명하고 그 경위를 기록한 글이다. 권4는 제문, 애사, 뇌문, 유장, 묘갈명이고 권5~6은 부록이다. 권말에는 종5대손 돈식(敦植)이 1899년에 지은 발이 있다.
▶신정하(申靖夏, 1681~1716) | 서암집(恕菴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암(恕菴) 신정하(申靖夏, 1681~1716)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친구와 아들과 조카가 유문(遺文)을 정선(精選)하고 거듭 산정하였고, 이 정고본을 1738년 사손(嗣孫) 신대권(申大權)이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4에는 부(賦)와 사(詞) 각 1편과 시 650여 제가 실려 있다. 남한산성을 지나면서 고조부인 신경진(申景禛)의 유덕(遺德)을 기린 <동문루부(東門樓賦)>가 있고, 방옹(放翁) 육유(陸游) 등 당인(唐人)의 운(韻)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5에는 소(疏)가 실려 있고, 권말에는 <춘방고사(春坊故事)>가 실려 있다. 권6~9까지는 서(書)와 척독(尺牘)인데, 서(書)는 가르침을 청하거나 시평(詩評)을 부탁하는 내용, 문장이나 교유에 관한 내용 등 실용적인 사안이 많다. 권10은 서(序), 권11은 기(記), 권12는 제발(題跋)과 잡저이다. 잡저 중에는 과작(科作)으로 지은 <증불거항우불망론(增不去項羽不亡論)>을 비롯해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권13~15는 행장, 신도비, 묘갈, 묘표, 묘지와 제문, 애사(哀辭)이다. 권16은 <잡기(雜記)>로서 역대의 인물, 문장, 서화 등에 관한 평론이 실려 있다.
▶신좌모(申佐模, 1799~1877) | 담인집(澹人集)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 1799~1877)의 문집이다. 차남인 신승구(申昇求)가 부친의 저술을 10여권의 초고로 정리해 두었다가 사후 정서본을 만들고, 한기동(韓耆東)의 서문을 받아 두었다. 그 후 1916년 청주에서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 600여 제이다. 권1에 응제시(應製詩) 22제를 모은 과시응제집(課試應製集)을 수록하였고, 권2부터는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금강산을 유람했을 때 지은 해악유상(海嶽遊賞) 61제를 비롯해 원주와 강화, 영남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가 많다. 또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의 서장관이 되어 중국을 오가며 지은 연사기행(燕槎紀行) 33제도 실려 있다. 상소 중에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건의하고, 대원군을 실각시킨 최익현을 비난한 내용이 보인다. 그밖에 프랑스군에게 강화성을 빼앗긴 강화 유수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계사와 해서(海西) 유생들이 단군을 모신 삼성사(三聖祠)의 증수(增修)를 청하는 내용 등의 상언(上言), 1875년 9월에 일본 군함 운양호를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흥선대원군에게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 등이 실려 있다.
▶신지제(申之悌, 1562~1624) | 오봉집(梧峯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봉(梧峯) 신지제(申之悌, 1562~1624)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신진귀(申震龜)가 회산잡영 등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39년 이광정(李光庭)의 교정을 거쳐 1740년에 의성 장대서원에서 목판으로 초간한 원집과, 현손 진귀(震龜)가 새로 수집한 시문과 자신이 찬한 연보를 김이만(金履萬)의 산정을 거쳐 편차한 별집을 1789년에 6대손 체인(體仁)이 7대손 정오(鼎五)와 함께 교감ㆍ개편하여 목판으로 초간한 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과 별집을 합본한 5책으로, 원집은 4책이고, 별집은 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에 1739년에 이광정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같은 해에 지은 권상일(權相一)의 발문이 있다. 각 책의 앞에 목록이 있다. 권1~5는 시(詩)이고, 권6~7은 기, 서(序), 차, 교, 제문, 묘지, 서(書), 습유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미에 1739년에 권상일이 지은 문집발과 간기가 있다. 별집은 목록, 시, 소, 서(書), 지발, 제문 등 70여 편과 연보가 있으며, 1742년에 김이만이 지은 별집발과 6세손 신체인이 지은 별집개편후지(別集改編後識)가 있다.
▶신집(申楫, 1580~1639) | 하음집(河陰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하음(河陰) 신즙(申楫, 1580~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권창(權僘)과 신정주(申鼎周)가 1800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유회문(柳晦文)과 치명(致明) 부자의 교정을 거친 후 1825년 목판으로 초간하고, 7대손 신홍좌(申弘佐)가 초간시 누락된 시문과 부록을 증보ㆍ재편하여 1835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9권 5책이다. 권수에는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은 부, 시, 사이다. 부 2편 중에서 <빈부(貧賦)>는 어느 선비와 진신 선생(搢紳先生) 간의 빈궁과 부귀에 대한 문답을 통해 군자의 수신과 낙도, 출처에 대해 논한 글이다. 시는 19세부터 졸할 때까지 지은 것이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4는 소, 장계, 정문, 장이고 권5는 서(書)와 서(序)이다. 권6은~7은 전(箋), 상량문, 송, 잡저, 록(錄)이다. 특히<평왜송(平倭頌)>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황제의 은덕과 대의를 지켜 외적을 막아낸 선조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권8은 제문, 묘지, 행장이고 권9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유치명과 7대손 신홍좌가 지은 발이 있는데, 모두 1835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천익(愼天翊, 1592~1661) | 소은유고(素隱遺稿)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 1592~1661)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원만(元萬)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하여 1691년 남구만(南九萬)의 편차(編次)를 거쳐 1696년 정의현(旌義縣)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해익(海翊)의 ≪호산행록(湖山行錄)≫이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남구만이 지은 서문이 있다. 본집은 크게 시(詩), 부(賦), 문(文)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는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있고, 부(賦)는 대부분 창작 연도와 배경이 제목 아래 주석으로 자세히 부기되어 있다. 특히 <칠회부(七懷賦)> 7수 연작은 광해조의 난정(亂政)을 개탄하는 내용이며, <장귀사(將歸辭)>는 인목대비 폐위에 강개하여 지은 것이다. 참고로 저자는 사부(辭賦)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에는 제문, 명(銘), 잠(箴), 설(說), 소(疏) 및 묘도문자(墓道文字) 등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상소(上疏)>는 저자 58세 때 올린 글이다. 정심(正心)이 치국(治國)의 근본임을 논하고 아울러 병을 이유로 체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신체인(申體仁, 1731~1812) | 회병집(晦屛集)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 1731~1812)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목판(木板)으로 판각된 후, 시문(詩文)의 일부(一部)와 부록문자(附錄文字)를 활자(活字)로 보각(補刻)하여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本集)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은 없고 목록(目錄)이 있다. 권6은 잡저(雜著)이다.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 안정복(安鼎福), 이헌경(李獻慶), 조술도(趙述道) 3인의 천주교(天主敎) 변척(辨斥) 글을 읽고 그 글에 실려 있던 ‘천학종지도(天學宗旨圖)’가 사욕(私慾)을 내세웠으므로 천주학(天主學)이 이단(異端)임을 증명(證明)하고, 세 사람의 설(說)을 보완(補完)하기 위해 1791년에 쓴 것이고, <중하상부재이면변(中何嘗不在裏面辨)>은 남헌(南軒) 장식(張栻)이 주장한 ‘이발지후중하상부재이면(已發之後中何嘗不在裏面)’설을 펴는 선배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주자(朱子)의 정론(正論)을 들어 후학(後學)을 경계한 것이다. 권12는 부록(附錄)이다. 이병원(李秉遠)이 1834년에 지은 행장(行狀)이 실려 있다.
▶신최(申最, 1619~1658) | 춘소자집(春沼子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춘소(春沼) 신최(申最, 1619~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의화(儀華)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표질 김석주(金錫胄)가 1682년 한구자(韓構字)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의화의 ≪사아자유고(四雅子遺稿)≫와 묘지명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사(辭), 부(賦)이다. <화귀거래혜사(和歸去來兮辭)>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으며 고금의 사람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화운한 것이다. 권2는 시(詩)이고 권3은 원(原), 서(序)이다. 권4는 기(記), 설(說), 논(論), 변(辨)이다. 기(記) 가운데 <정허당기(靜虛堂記)>와 <장육당기(藏六堂記)>는 붕우 홍주세와 조귀석(趙龜錫)의 요청으로 당(堂)의 명명 의미를 서술해 준 것이다. 권5는 전(傳), 소(疏), 서독, 잡저이고 권6은 제문, 뇌(誄), 묘지갈표이다. 권7은 행장이고 권8은 책(策)으로 인(仁), 상위, 감여, 의약 등에 대해 묻는 책문에 답한 것이다. 부록에는 조현기(趙顯期)가 1659년에 지은 행장, 이민구가 지은 묘갈명, 김석주가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신필흠(申弼欽, 1806~1866) | 천재집(泉齋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천재(泉齋) 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종질 종호(鍾浩)와 익호(翼浩), 족손 상익(相翼) 등이 유문(遺文)을 수습 정리하고 방산(舫山) 허훈(許薰)의 교감(校勘)을 받아 1895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권연하(權璉夏)가 1895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근래 유상(遊賞)에 탐닉하여 자신도 모르게 시를 여러 편 짓게 되어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한 옛사람의 교훈을 어겼다 하며 앞으로는 시를 짓지 않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의 긴 제목을 붙인 시도 보인다. 권6은 잡저, 서(序), 기(記)이다. <의계설(義雞說)>은 암탉 두 마리가 피차의 소산(所産)을 가리지 않고 병아리를 돌보는 것을 보고 인성(人性)을 빗대어 논한 글이고, <대책(對策)>은 고을 수령을 대신하여 왕의 구언(求言)에 응한 글로 삼정(三政)에 관한 개선책을 제시한 글이다. 권7은 발(跋), 명(銘), 상량문(上梁文), 축문(祝文), 뇌사(誄辭), 제문(祭文)이다. 권말(卷末)에 허훈이 1895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신혼(申混, 1624~1656) | 초암집(初菴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초암(初菴) 신혼(申混, 1624~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신사년에 제주목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12권, 별집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1663년에 조경(趙絅)이 쓴 서(敍)가 있다. 권1~6은 시로서, 520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맏형인 죽당(竹堂)의 시에 차운한 시가 많다. 장소, 관직, 연도 등으로 시록의 제목을 붙여 편차하여 저자의 행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권7에는 부, 표, 전(箋), 주, 제, 비답, 송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箋)은 모두 방백을 대신하여 지은 대작이며, 비답은 좌의정 김육(金堉)의 초도정사에 대한 불윤비답이다. 그리고 옥과 현령에 재직할 당시 백성의 폐단을 아뢰는 <계사재옥과시략진민막소(癸巳在玉果時略陳民瘼疏)> 등이 있다. 권8은 소, 차이고 권9는 서(書), 서(序)이고 권10은 기이며 권11은 논(論)과 잡저이다. 권12는 제문, 비지, 행장, 척독 등이고, 별집의 권1은 약관록(弱冠錄) 상으로 20세 이전에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2는 약관록 하로 20세 이전에 지은 문이 수록되어 있다.
▶신홍망(申弘望, 1600~1673) | 고송집(孤松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고송(孤松) 신홍망(申弘望, 1600~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증손 진구(震龜)가 이유장(李惟樟)이 산정한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눌은 이광정(李光庭)의 교정을 거쳐 1739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3권, 부록 2권 합 2책으로, 권수에 이광정이 쓴 서문이 있고 목록은 없다. 권1~2는 시로, 저자의 시가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로 수창한 사람은 조송년(趙松年), 이정기(李廷機), 심징(沈澂), 신유(申濡) 등이다. 권3은 소(疏)와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본현폐막소(本縣弊瘼疏)>는 의성 현감을 대신해서 지은 것으로, 1616년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 강린(姜遴)이 본세(本稅) 외에 500여석의 허세(虛稅)를 늑정(勒定)한 이후로 고질이 된 명목에 대해 혁파해줄 것을 호소한 내용이다. 제문은 장현광(張顯光), 박칭(朴偁), 자형 이거(李擧), 사위 유중하(柳重河), 이정기(李廷機) 등에 대한 것이다. 부록(附錄) 상ㆍ하는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송서(送序), 제문 등이고, 권말에 권상일(權相一)이 173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신활(申活, 1576~1643) | 죽로집(竹老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로(竹老) 신활(申活, 1576~1643)의 문집이다. 본집은 4대손 신방달(申邦達)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2년 이주원(李周遠)의 교감을 거친 후, 후손들이 순조 연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조술도(趙術道), 한치응(韓致應)의 서와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로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와 만사이다. 저자의 시에 대해 이주원(李周遠)은 ‘청일고아(淸逸高雅)’하다고 하였으며, 그 가운데 <문서보(聞西報)>, <문심양변입산서회(聞瀋陽變入山書懷)>, <탄시사술회(歎時事述懷)> 등은 병자호란 당시의 비애감을 읊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書), 서(序), 원규이다. 특히<계해의상봉사(癸亥擬上封事)>는 저자의 시국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1623년에 지은 장편 의소이고, <상여헌장선생문목(上旅軒張先生問目)>은 상례 중 특히 연복제에 대해 장현광에게 질의하는 글인데, 답글이 덧붙여져 있다. 권3은 기와 잡저이다. 권4는 부록으로 연보, 행장, 묘갈명, 묘지명, 봉안문, 상향축문 등이고, 끝에 이주원과 이우재(李愚在)가 지은 발이 있다.
▶신후재(申厚載, 1636~1699) | 규정집(葵亭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규정(葵亭) 신후재(申厚載, 1636~16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손자 사석(思奭)이 저자가 자편한 규정시고(葵亭詩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저자의 외증손 정범조(丁範祖)의 산정을 거쳐 177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권수에 자서와 정범조(丁範祖)가 1778년에 지은 서문이 있다. 목록은 권마다 실려 있다. 권1~6은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외직에 여러 차례 부임하였으므로 그 주변 지역의 자연경관이나 명승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들이 많이 있는데, 오언고시 중 <기구유(記舊遊)>는 젊은 시절 유람하였던 것을 기억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체를 모방해 지은 장편의 시이다. 권7은 문으로, 잡저, 사, 찬, 잠, 송, 소차, 갈명 등이다. 특히 잡저 중 <전법문(錢法問)>은 주전하여 화폐를 유통시킬 것을 주장한 내용이고, <호패설(號牌說)>은 인구수와 귀천의 등급, 위험한 범법자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인 호패법을 시행할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갈명(碣銘)은 신개(申槩), 신첨(申詹), 이성길(李成吉), 이중국(李重國), 부친 신항구(申恒耈) 등에 대한 것이다.
▶신흠(申欽, 1566~1628) | 상촌고(象村稿)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상촌거사(象村居士) 신흠(申欽, 1566~1628)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모아 편차해 ≪상촌고(象村稿)≫라 이름하고 자서(自序)까지 지어 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1629년에 아들 신익성(申翊聖)이 유고(遺稿)를 활자(活字)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60권, 부록 3권 합 20책이다. 운문(韻文)은 악부체(樂府體)와 고시(古詩)가 앞쪽에 편차되어 있고, 중국 사신 영위사(迎慰使)로 나가 지은 시작(詩作)을 모은 <영위록(迎慰錄)>과 1609년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중국에 다녀올 때의 시작(詩作)을 모은 <조천록(朝天錄)>이 함께 편차되어 있다. 산문으로는 각종 문체를 망라해 작품을 남겼다. 임진왜란 당시 외교 문서와 편지 등을 모은 <응제록(應製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시말(始末)을 적은 지(志), 경전 구절 등을 내용으로 한 <휘언(彙言)>, 성현의 휘언(徽言)과 술사(述辭)와 저자의 논찬(論撰)을 실은 <구정록(求正錄)>,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공부하고 상수(象數)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난해한 구절을 뽑아 설명한 <선천규관(先天窺管)> 등의 작품이 있다.
▶심광세(沈光世, 1577~1624) | 휴옹집(休翁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휴옹(休翁) 심광세(沈光世, 1577~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심억(沈檍) 등에 의해 수집되어 이식(李植)의 산정(刪定)을 거쳐 1636년에 시와 소(疏) 등이 불분권 1책으로 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형태의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소(疏)가 제외된 시고(詩稿)만으로 이루어진 목판 간본(刊本)이 남아있다. 중간은 1859년에 저자의 9세손 심경택(沈敬澤)이 초간본을 대본으로 하지 않고 가장본(家藏本)을 바탕으로 초간본의 시고를 2권으로 분권하고 해동악부(海東樂府)와 산문(散文), 부록을 증보하여 5권 3책으로 재편하여 목판 5권 3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5권 3책이다. 권두에 1859년에 9세손 심경택이 쓴 중간서(重刊序)와 1635년에 이경석(李景奭)이 쓴 초간본 서(序), 1636년 이식이 쓴 초간본 발(跋)이 실려 있다. 매권 첫머리에는 각 권의 목록이 실려 있다. 권3은 해동악부이다. 해동악부는 고성(固城) 유배지에서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에서 감계가 될 만한 것 44편을 골라서 가시로 읊은 것을 1617년에 모아 엮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식이 지은 행장과 묘표가 들어 있다.
▶심동구(沈東龜, 1594~1660) | 청봉집(晴峯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봉(晴峯) 심동구(沈東龜, 1594~1660)의 문집이다. 본집은 중자 유(攸)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1673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5는 시(詩)이다. 저자는 <당음(唐音)>과 두시(杜詩)를 좋아하였다. 수창한 이들은 이경석(李景奭), 박장원(朴長遠) 등 서인계 문인들 뿐만 아니라 조경(趙絅), 이민구(李敏求) 등 남인계 문인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권6은 표전, 비답, 교서, 부(賦), 송(頌), 명(銘), 찬(贊), 설(說), 서(敍)이다. 그중에서 <의당이백사소견금란전표(擬唐李白謝召見金鑾殿表)>는 이백(李白)이 하지장(賀知章)의 추천으로 금란전(金鑾殿)에서 현종을 알현한 일을 소재로 지은 것으로 이백이 소명을 거절하여 올리는 표문을 의작하였다. 이밖에 <동지하전(冬至賀箋)>, <대전탄일전(大殿誕日箋)>, <원손탄생하전(元孫誕生賀箋)> 등은 저자가 유배되기 전에 지은 것이다. 말미에 실린 <장녕시권소서(長寧詩卷小敍)>는 저자가 장흥에 유배 중이던 1644년부터 1649년까지 지은 시를 모은 시권에 쓴 자서이다.
▶심사주(沈師周, 1691~1757) | 한송재집(寒松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한송재(寒松齋) 심사주(沈師周, 1691~1757)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정진(定鎭) 등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을, 저자의 손자 문영(文永)이 재편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1796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남유용(南有容)이 1769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1739년 무렵부터 말년까지의 작품들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관직 생활이나 벗들과의 교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과 밀착된 소재의 시들이 많은 편이다. <살송충(殺松蟲)>은 의릉 참봉(懿陵參奉)으로 있을 때 당시 원릉(園陵)에 창궐하던 송충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노래한 장편의 고시(古詩)이다. 권3은 문(文)이다. 별도의 문체 구분 없이 서(書), 서(序), 기(記), 발(跋), 고유문(告由文), 제문(祭文), 애사(哀辭), 행장(行狀),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행장, 묘지명, 유사(遺事)와 상기(像記), 제문 등이 수록된 부록(附錄)이고 권말에 저자의 손자 문영이 1796년에 지은 발이 있다.
▶심상규(沈象奎, 1766~1838) | 두실존고(斗室存稿)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일본 동양문고,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 1766~1838)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詩)와 대책(對策), 주의(奏議), 장소(章疏) 등 18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중간에 상당량이 산일되어 현재는 시만 실려 있는 ≪두실존고≫ 4권과 90편의 편지글을 모은 ≪두실척독(斗室尺牘)≫ 1책이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본집은 원집과 <척독(尺牘)>을 합부한 것으로, 원집 권1~4는 시 494제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43세부터 67세까지 지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연경에 사신 가서 중국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 김조순(金祖淳)의 옥호산(玉壺山) 별장에 모여 노닐며 지은 시, 이노익(李魯益)이 지은 옥천정(玉泉亭)과 관련한 시 등이 있다. 척독은 서영보(徐榮輔), 김조순 등에게 준 편지와 평양, 안악 등의 수령을 맡은 지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정조에게 <상규(象奎)>라는 이름과 <가권(可權)>이라는 자(字)를 하사받았고, 1808년경에는 순조의 명을 받아 만기(萬機)를 주재하는 군주가 정무를 총람(摠攬)하도록 ≪만기요람(萬機要覽)≫을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저자의 시 세계와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심상정(沈尙鼎, 1680~1721) | 몽오재집(夢悟齋集)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몽오재(夢悟齋) 심상정(沈尙鼎, 1680~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우인 윤순(尹淳)과 이거원(李巨源)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광좌(李光佐)의 산정을 받은 고본을, 이수항(李壽沆)이 1735년 교서관(校書館)에서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윤순(尹淳)과 이덕수(李德壽)가 1735년에 쓴 서문(序文)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연천(漣川), 철원(鐵原)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 1719년 통신사로 가는 정사 홍치중(洪致中)과 종사관 이명언(李明彦)을 전송하며 지은 시 등이 있다. 권4는 소(疏), 제문이다. <청갱핵임진과옥계(請更覈壬辰科獄啓)>는 1712년 과옥으로 아산현(牙山縣)에 부처되어 죽은 이돈(李墪)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재조사를 요구하며 1716년에 올린 것이며, 이 외에는 대부분 이 상소건과 관련하여 올린 피혐소이다. 부록에는 이거원(李巨源)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고 권말(卷末)에 이거원이 1735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심수경(沈守慶, 1516~1599) | 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청천당(聽天堂)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정사본(淨寫本) 1책 48장의 시집으로, 서(序)나 발(跋)이 없고 서사(書寫) 경위도 분명치 않다. 저자의 또 다른 필사본 ≪청천당수고(聽天堂手藁)≫는 1592년 7월부터 1597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미루어 저자 말년의 작품으로 보인다. 본 문집이 1556년 강원도 관찰사 시절의 작품 등 전 생애에 걸쳐 지어진 시들을 싣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본 문집에는 이 수고본(手藁本)의 작품이 모두 실려 있지는 않으며, 실려 있는 작품 중에도 내용상의 차이점이 보인다. 문집은 저자의 시를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등 시체별로 나누어 1책으로 엮어 놓았다. 내용은 저자가 각도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여선지 각도의 지명과 명승이 시제(詩題)에 자주 오르고 있다. 그리고 화답과 차운시 류에서는 서교(西郊) 송찬(宋贊)과 나눈 작품이 40여 수에 달하고, 죽계(竹溪) 안한(安澣)과의 작품도 다수 실려 있다.
▶심언광(沈彦光, 1487~1540) | 어촌집(漁村集)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어촌(漁村) 심언광(沈彥光, 1487~154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생(孫甥) 홍춘년(洪春年)이 1572년(선조5)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유집(遺集) 4책을 간행하였으나, 병란을 거치면서 거의 산일(散佚)되었다. 그 후 1889년(고종26) 후손 심양수(沈陽洙)ㆍ심영수(沈榮洙)ㆍ심승탁(沈升鐸)에 의해 문집이 중간되었다. 본 문집은 13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10은 저자의 시문(詩文)이고, 권11~13은 부록이다. 권수에 실린 서문은 송시열(宋時烈)ㆍ박세채(朴世采)ㆍ이민서(李敏敍)가 지은 것으로 신원(伸寃)을 위한 글이다. 시문은 1530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때의 작품인 <동관록(東關錄)>, 1536년 평안도 경변사(警邊使)로 나갔을 때의 작품인 <서정고(西征稿)>, 1537년 8월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을 때의 작품을 모은 <북정고(北征稿)> 등을 수록하고 있다. 권10은 <귀전록(歸田錄)>으로 1538년 파직되어 향리로 돌아가 경호(鏡湖) 별업(別業)에서 몰(歿)하기까지의 작품이다.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저자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심열(沈悅, 1569~1646) | 남파상국집(南坡相國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남파(南坡) 심열(沈悅, 1569~16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 사후 20년이 지난 뒤에 조원기(趙遠期)가 저자의 손자인 심추(沈樞)와 함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 편차하여 6권 3책으로 만들었고, 저자의 이성종질(異姓從姪)인 임의백(任義伯)이 1665년(현종6)에 6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은 시이고, 권2~6은 문(文)이다. 시로는 신익성(申翊聖), 권필(權韠) 등과 차운한 시가 있고, 만시(挽詩)가 많다. 소(疏)는 30편이 있다. 차(箚)는 80여 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호조판서시차(戶曹判書時箚)>에서는 은을 빌려 쓰고 갚아야 할 대금을 인삼으로 충당할 것, 청나라 사신 접대비를 절약할 것, 대마도와의 소 무역을 그만둘 것, 염철사(鹽鐵使)를 보내지 말 것 등을 건의하였다. 전(箋)은 명나라 희종(熹宗)의 등극(登極) 때 보낸 하전(賀箋) 등이고, 서장(書狀)은 외직에 있을 때에 올린 것으로서 그 지역 백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심오하고 전아하면서도 호방하고 활달하다는 평을 받는 시 작품과 저자의 실무 역량을 보여주는 글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심유(沈攸, 1620~1688) | 오탄집(梧灘集) | 권책수 : 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오탄(梧灘) 심유(沈攸, 1620~16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한주(漢柱)가 수집ㆍ편차하여 의성에서 170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상하(權尙夏)와 김진규(金鎭圭)가 1708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목록이 실려 있다. 권1~12는 시로, 시체별 분류를 해 놓았다. 각 시체 내에서는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용안 현감, 옥천 군수, 안변 부사, 황해도 관찰사 등 지방관 재직 시, 왜사 접위관 시 지은 시들이 다수이다. 권13은 표전, 교서, 하장, 소(疏) 등이다. 표전은 동지, 정조, 탄일, 평복을 하례하는 전문 4편과 승하를 진위하는 전문 2편이고, 교서는 김석익(金鎭圭)과 이선(李選)에게 내린 것이다. 이밖에 <경시관복명후진호남민정소(京試官復命後陳湖南民情疏)>는 1670년 호남에 경시관으로 다녀와 자연재해가 심해 대동수미, 군포, 조적 등을 완전히 감면시키지 않으면 안 될 실상을 진달한 것으로, 끝에 묘당과 의논하여 처리하겠다는 비답이 부기되어 있다. 소는 대부분 사직소이다. 권14는 행장으로 조부 집(諿), 부친 동귀(東龜)에 대한 것이다.
▶심육(沈錥, 1685~1753) | 저촌유고(樗村遺稿)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저촌(樗村) 심육(沈錥, 1685~1753)의 문집이다.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으로 강화학파의 중심인물이며 이진병(李震炳), 윤순(尹淳), 윤선(尹璿) 등과 교유하였다. 평생 몇 번의 소명(召命)에 나아갔다가 돌아온 것 외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대부분을 강학(講學)과 유람(遊覽)으로 보냈는데, 특히 영조대(英祖代)에 영의정(領議政)까지 올랐던 부친 심수현(沈壽賢)을 배행하여 의주(義州), 관동(關東), 영남(嶺南) 등지는 물론 중국의 연경(燕京)까지 다녀오면서 견문을 넓혔다. 따라서 이때 지은 시작(詩作)이나 일기(日記) 등이 유고(遺稿)로 남게 되었지만, 저자에 대해 묘도문자(墓道文字)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저자의 문집으로 전하는 것도 1938년에 등사(謄寫)된 필사본(筆寫本)이 전부다. 본집은 47권 18책으로, 권두(卷頭)에 총목록(總目錄)과 권별 목록이 있고, 서발(序跋)은 없다. 권1~24는 시(詩), 권25~34는 편지글, 권35~41은 잡저(雜著), 권42는 서(序), 설(說), 논(論), 제문(祭文), 권43~46은 묘갈명(墓碣銘), 유사(遺事),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 권47은 간독(簡牘)이다.
▶심의(沈義, 1475~?) |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계명대 중앙도서관,일본 봉좌문고
-조선 초기 대관재(大觀齋) 심의(沈義, 147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가 남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외손 윤대승(尹大承)이 약간 편의 시문을 모으고 권응인(權應仁)이 편차하여 1577년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부(賦)ㆍ사(辭)ㆍ시(詩)가 실려 있고, 권2~3에는 시가 실려 있다. 권1의 부는 <대관부(大觀賦)>ㆍ<소관부(小觀賦)> 등 14편이고, 사는 성세창(成世昌)을 전송한 <송성번중사(送成蕃仲辭)>, 백제사(百濟史)를 읽고 의자왕 때의 충신 흥수(興首)의 울분을 대신 적은 <사미인사(思美人辭)> 등 3편이다. 시는 김정(金淨)ㆍ성세창 등과 수창한 시, 서경덕(徐敬德)과 수창한 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4는 잡저로서 우리나라 역대 문장의 등급을 평하고 세상사가 한갓 꿈에 불과하다고 한 <기몽(記夢)>, 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시인이 경박하다는 논의를 변론한 <경박해(輕薄解)> 등이 실려 있다. 몽유록계 소설의 효시가 된 <기몽> 등의 작품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달관한 심회(心懷)를 표현한 저자의 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심정진(沈定鎭, 1725~1786) | 제헌집(霽軒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제헌(霽軒) 심정진(沈定鎭, 1725~1786)의 문집이다. 생전에 정리해둔 자편고(自編稿)를 저자의 우인(友人)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조경(趙璥)이 1786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本集)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序文)이나 부록(附錄) 등은 없으며, 목록(目錄)은 각 권의 앞에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감초안작(感初鴈作)>은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학업을 이루려는 청운의 꿈을 담은 내용이고, <백전가(栢田歌)>는 잣을 공물로 바치는 회양현(淮陽縣) 백성들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북청(北靑)에서 이항복(李恒福)의 유적지와 여진족(女眞族)의 유허를 둘러보고 지은 <숙신유허잡영(肅愼遺墟雜詠)>이 있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경학(經學)에 대한 주장을 담은 <중용귀신설(中庸鬼神說)>과 <역설(易說)>이 있고, 귀먹고 말 못하는 이철(已鐵)이 오히려 장애를 통해 도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쓴 <농눌자이철전(聾訥者已鐵傳)>이 있다. 말미에는 심재진(沈載鎭)과 오재순(吳載純)이 1786년에 쓴 발문 2편이 목판으로 판각되어 첨부되어 있다.
▶심조(沈潮, 1694~1756) | 정좌와집(靜坐窩集)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좌와(靜坐窩) 심조(沈潮, 1694~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1756년 산정한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하고 부록문자를 증보한 괘인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4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절반가량은 만시(輓詩)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강학의 과정에서 지은 것으로 도학적 색채가 농후하다. 권2~8은 서(書)로, 한원진(韓元震), 이간(李柬) 등에게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경전의 난해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질정을 구하는 내용, 태극도설에 대한 논의, 성리설과 예설에 대해 답하는 내용, ≪예기≫, ≪대학장구≫, ≪중용장구≫ 등에 대한 문목에 답하는 것 등이다. 권9~11은 잡저이다. 그중에서 <서경차의(書經箚疑)>는 ≪서경≫에 보이는 기삼백(朞三百)과 천체의 둘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며, <중용차의>는 ≪중용장구≫의 난해처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내용으로 총 8조목이다. 권12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제(題) 등이고 권13~14는 잡지이다. 권말에 세계도, 연보, 아들 낙현(樂賢)이 지은 가장, 김근행(金謹行)이 지은 행장, 족손 기택(琦澤)이 지은 묘지명이 있다.
▶심지원(沈之源, 1593~1662) | 만사고(晩沙稿)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만사(晩沙) 심지원(沈之源, 1593~16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제5자 익성(益成)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익성의 아들 정최(廷最)가 저자의 증손 상운(翔雲)ㆍ익운(翼雲)과 함께 교감(校勘)하고 재편(再編)하여 175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은 소(疏)와 차(箚)이다. 소(疏)는 1627년부터 1654년까지 올린 것으로 대부분 사직소이다. 차(箚)는 1654년 상직(相職)에 제수된 이후의 것이 많고 역시 사직을 청하는 내용이 다수이다. 권3은 제문(祭文), 가장(家狀), 묘지(墓誌), 묘갈명(墓碣銘), 시장(諡狀)이다. 권4는 시(詩)로, 대부분이 만시(挽詩)이다. 권5는 연행일승(燕行日乘)으로 1653년 저자가 동지사(冬至使)로 연행하였을 때의 기록이다. 권말에 1759년에 저자의 손자 정최가 지은 발문이 있다. 부록(附錄)으로 민유중(閔維重)이 지은 치제문(致祭文), 정태화(鄭太和) 등 5인이 지은 제문(祭文), 이경석(李景奭) 등 32인이 지은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심지한(沈之漢, 1596~1657) | 창주집(滄洲集)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창주(滄洲) 심지한(沈之漢, 1596~1657)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악청(樂淸)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7대손 노삼(魯三)이 186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별집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마다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의 세태에 대한 염려와 울분을 엿볼 수 있는 시가 많은데, <상시(傷時)>는 청(淸)나라를 섬겨야 하는 현실을 한탄한 작품이다. 권2는 소차이고 권3은 소차, 계(啓), 서(書), 서(序), 제발이다. 그중에서 소차의 <사간시차자(司諫時箚子)>는 새로 즉위한 효종에게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도록 청하는 내용이고, <응지소(應旨疏)>는 금산 현감으로 재직 중 구언에 응하여 올린 상소로 고을의 폐단을 아뢴 것이다. 권4는 표전, 응제록, 잡저, 묘지, 행장, 제문, 고문, 부록이다. 그리고 별집은 저자가 별도의 저술로 편찬한 월괘도설이다. 권두에 1656년 저자가 지은 자서와 1720년 정호가 지은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1656년 저자가 지은 발문과 1706년 권상하(權尙夏)가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심희수(沈喜壽, 1548~1622) | 일송집(一松集)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 1548~1622)의 문집이다. 문집의 편찬과 간행은 경위를 밝혀 주는 자료가 없어 확실히 알 수 없고,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일송침상국문집서(一松沈相國文集序)>에, “공(公)을 곡(哭)한 지 28년이 지났는데 공의 손자 심유행(沈儒行)이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는 글로 보아, 1649년(인조27)경에 심유행이 문집을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유고는 별도로 편집되어 사본으로 남아 있다가 후에 앞의 원집과 합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집은 원집 8권, 유고 합 5책으로, 서발(序跋)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 없이 저자의 시문만 실려 있다. 원집의 권1~4는 시이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 등이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칠언율시가 특히 많고 각 체 내의 편차 원칙은 불분명하다. 권5~7은 차(箚)와 의(議)이다. 권8은 제문 및 묘도문자이다. 유고에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고, 잡저(雜著) 2편이 실려 있다. 시는 원집과 유사한 구성과 특징을 갖추고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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