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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문집류) : 1,262종 > 신활자본-서명별 > [가]서명[신활자본] : 162종(비단표지)

 
[가]서명[신활자본] : 162종(비단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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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가 : 162종   

책번호 [가]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가001 가암유고(可庵遺稿) 김귀주(金龜柱, 1740~1786) 17책 3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가002 가오고략(嘉梧藁略) 이유원(李裕元, 1814~1888) 20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03 가정유고(柯汀遺稿) 조진관(趙鎭寬, 1739~1808)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04 가정집(稼亭集) 이곡(李穀, 1298~1351)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05 가주집(家州集) 이상질(李尙質, 1597~1635)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06 가휴집(可畦集) 조익(趙翊, 1556~1613)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07 각재집(覺齋集) 하항(河沆, 1538~159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08 간송집(澗松集) 조임도(趙任道, 1585~1664) 6책 1개 고려대학교|성균관대학교
가009 간옹집(艮翁集) 이헌경(李獻慶, 1719~1791) 12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0 간이집(簡易集) 최립(崔岦, 1539~1612)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1 간재집(艮齋集) 최연(崔演, 1503~1549)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2 간재집(艮齋集) 이덕홍(李德弘, 1541~1596)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3 간재집(艮齋集) 최규서(崔奎瑞, 1650~1735)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4 간재집(艮齋集) 전우(田愚, 1841~1922) 52책 10개 연세대학교,이병천(李炳天)
가015 간정집(艮庭集) 이유홍(李惟弘, 1566~161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6 갈암집(葛庵集) 이현일(李玄逸, 1627~1704) 21책 4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17 갈천집(葛川集) 임훈(林薰, 1500~158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18 갈천집(葛川集) 김희주(金周, 1760~1830)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19 감수재집(感樹齋集) 박여량(朴汝樑, 1554~1611)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20 감호집(鑑湖集) 여대로(呂大老, 1552~161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1 갑봉유고(甲峰遺稿) 김우항(金宇杭, 1649~1723)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2 강고집(江皐集) 유심춘(柳尋春, 1762~1834) 11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23 강재집(剛齋集) 송치규(宋穉圭, 1759~1838)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4 강좌집(江左集) 권만(權萬, 1688~1749)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25 강한집(江漢集) 황경원(黃景源, 1709~1787) 15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26 개암집(介庵集) 강익(姜翼, 1523~156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7 개암집(開巖集) 김우굉(金宇宏, 1524~159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28 건재집(健齋集) 김천일(金千鎰, 1537~159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29 검간집(黔澗集) 조정(趙靖, 1555~1636)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0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범경문(范慶文, 1738~180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1 검재집(儉齋集) 김유(金, 1653~1719) 16책 3개 청풍김씨 판서공휘인백파종중
가032 격재집(格齋集) 손조서(孫肇瑞, 미상)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033 겸산집(兼山集) 유숙기(兪肅基, 1696~1752)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4 겸암집(謙菴集) 유운룡(柳雲龍, 1539~160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5 겸재집(謙齋集) 하홍도(河弘度, 1593~1666)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6 겸재집(謙齋集) 조태억(趙泰億, 1675~1728) 20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7 경당집(敬堂集) 장흥효(張興孝, 1564~163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38 경렴정집(景濂亭集) 탁광무(卓光茂, 1330~1410)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39 경산집(經山集) 정원용(鄭元容, 1783~1873) 11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40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신위(申緯, 1769~1845) 29책 6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041 경암유고(敬庵遺稿) 윤동수(尹東洙, 1674~1739)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42 경암집(敬菴集) 노경임(盧景任, 1569~162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43 경암집(敬菴集) 이한응(李漢膺, 1778~1864)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44 경암집(絅菴集) 신완(申琓, 1646~1707)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45 경연당집(景淵堂集) 이현조(李玄祚, 1654~171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46 경와집(敬窩集) 김휴(金烋, 1597~163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47 경재유고(敬齋遺稿) 남수문(南秀文, 1408~1442)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048 경재집(敬齋集) 하연(河演, 1376~1453)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49 경재집(景齋集) 우성규(禹成圭, 1830~1905)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0 경정집(敬亭集) 이민성(李民宬, 1570~1629) 10책 2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051 경헌집(敬軒集)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 6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052 경현재집(警弦齋集) 강세진(姜世晉, 1717~178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3 계곡집(谿谷集) 장유(張維, 1587~1638) 18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4 계구암집(戒懼菴集) 윤형로(尹衡老, 1702~1782)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5 계당집(溪堂集) 유주목(柳疇睦, 1813~1872) 8책 2개 이가묵장(李家墨莊)
가056 계서일고(溪西逸稿) 성이성(成以性, 1595~1664)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57 계암집(溪巖集) 김령(金, 1577~164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58 계와집(桂窩集) 조비(趙備, 1616~165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59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최치원(崔致遠, 857~?)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60 계은유고(溪隱遺稿) 이정립(李廷立, 1556~1595)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61 계음집(溪陰集) 조팽년(趙彭年, 1549~1612)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62 고계집(古溪集) 이휘령(李彙寧, 1788~1861)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63 고담일고(孤潭逸稿) 이순인(李純仁, 1533~159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64 고봉집(高峯集) 기대승(奇大升, 1527~1572) 8책 2개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65 고산유고(孤山遺稿) 윤선도(尹善道, 1587~1671)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66 고산집(孤山集) 이유장(李惟樟, 1625~1701)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67 고산집(鼓山集) 임헌회(任憲晦, 1811~1876)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68 고송집(孤松集) 신홍망(申弘望, 1600~167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69 고운집(孤雲集) 최치원(崔致遠, 857~?)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70 고재집(顧齋集) 이만(李, 1669~1734)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71 고주집(孤舟集) 정운희(丁運, 1566~1635)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가072 고죽유고(孤竹遺稿) 최경창(崔慶昌, 1539~158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3 고청유고(孤靑遺稿) 서기(徐起, 1523~159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4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 강위(姜瑋, 1820~1884) 6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5 곡운집(谷雲集) 김수증(金壽增, 1624~170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6 곤륜집(昆侖集) 최창대(崔昌大, 1669~1720)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7 공백당집(拱白堂集) 황덕일(黃德壹, 1748~180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8 과암집(果菴集) 송덕상(宋德相, 1710~1783)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79 과재유고(過齋遺稿) 김정묵(金正默, 1739~1799)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80 과재집(果齋集) 성근묵(成近默, 1784~1852)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81 관란유고(觀瀾遺稿) 원호(元昊, 미상)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82 관란재유고(觀瀾齋遺稿) 고회(高晦, 1636~171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3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김숭겸(金崇謙, 1682~170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4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김구(金構, 1649~1704)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85 관봉유고(冠峯遺稿) 현상벽(玄尙璧, 1673~173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6 관수재유고(觀水齋遺稿) 홍계영(洪啓英, 1687~1705)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7 관아재고(觀我齋稿) 조영석(趙榮, 1686~1761) 2책 1개 이원기(李元基)
가088 관암전서(冠巖全書) 홍경모(洪敬謨, 1774~1851) 32책 6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89 관양집(冠陽集) 이광덕(李匡德, 1690~174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90 관포시집(灌圃詩集) 어득강(魚得江, 1470~1550)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91 관포집(灌圃集) 박홍미(朴弘美, 1571~1642)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92 광뢰집(廣瀨集) 이야순(李野淳, 1755~1831) 7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93 괴담유고(槐潭遺稿) 배상열(裵相說, 1759~1789)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094 괴은유고(乖隱遺稿) 정구(鄭球, 1490~?)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95 교정시집(皎亭詩集) 현일(玄鎰, 1807~188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96 구곡시고(龜谷詩稿) 최기남(崔奇男, 158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097 구당집(久堂集) 박장원(朴長遠, 1612~1671) 18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098 구봉집(九峯集) 김수인(金守, 1563~1626)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099 구봉집(九峯集) 조원기(趙遠期, 1630~168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0 구봉집(龜峯集) 송익필(宋翼弼, 1534~1599)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1 구사당집(九思堂集) 김낙행(金樂行, 1708~1766)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2 구소집(鳩巢集) 권성구(權聖矩, 1642~1708)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03 구암유고(久菴遺稿) 한백겸(韓百謙, 1552~1615)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4 구암집(久庵集) 김취문(金就文, 1509~157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5 구암집(懼庵集) 이수인(李樹仁, 1739~1822)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06 구암집(龜巖集) 이정(李楨, 1512~157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7 구암집(龜巖集) 이원배(李元培, 1745~1802)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08 구암집(歸巖集) 이원정(李元禎, 1622~1680)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09 구애집(龜厓集) 조극승(曺克承, 1803~1877)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10 구와집(龜窩集) 김굉(金㙆, 1739~1816) 11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11 구원집(九集) 이춘원(李春元, 1571~163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2 구전집(苟全集) 김중청(金中淸, 1566~162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3 구정유고(龜亭遺藁) 남재(南在, 1351~1419)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4 구천유고(龜川遺稿) 이세필(李世弼, 1642~1718) 18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15 구촌집(龜村集) 유경심(柳景深, 1516~157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6 구포집(鷗浦集) 안헌징(安獻徵, 1600~1674)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17 국간집(菊磵集) 윤현(尹鉉, 1514~1578) 2책 1개 일본 봉좌문고
가118 국담집(菊潭集) 박수춘(朴壽春, 1572~165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19 국당유고(菊堂遺稿) 박흥생(朴興生, 1374~1446)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20 국포집(菊圃集) 강박(姜樸, 1690~1742) 6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가121 국헌집(菊軒集) 소시만(蘇始萬, 1734~1765)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22 궁오집(窮悟集) 임천상(任天常, 1754~1822)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23 귀계유고(歸溪遺稿) 김좌명(金佐明, 1616~167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24 귀록집(歸鹿集) 조현명(趙顯命, 1691~1752) 20책 4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25 규암집(圭菴集) 송인수(宋麟壽, 1499~1547)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26 규재유고(圭齋遺藁) 남병철(南秉哲, 1817~186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27 규정집(葵亭集) 신후재(申厚載, 1636~1699)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28 규창유고(葵窓遺稿) 이건(李健, 1614~1662)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29 귤옥졸고(橘屋拙稿) 윤광계(尹光啓, 1559~1619)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0 극원유고(屐園遺稿) 이만수(李晩秀, 1752~1820) 12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1 극재집(克齋集) 신익황(申益愰, 1672~1722)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32 극재집(克齋集) 노필연(盧佖淵, 1827~188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3 근시재집(近始齋集) 김해(金垓, 1555~159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4 근암집(近庵集) 유치덕(柳致德, 1823~1881)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35 근와집(近窩集) 유식(柳栻, 1755~1822) 4책 1개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36 근재집(謹齋集) 안축(安軸, 1282~1348)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37 근재집(近齋集) 박윤원(朴胤源, 1734~1799)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38 금강집(錦江集) 장신(張, 1629~1711)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가139 금계집(錦溪集) 황준량(黃俊良, 1517~1563)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40 금계집(錦溪集) 노인(魯認, 1566~1622)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가141 금곡집(錦谷集) 송내희(宋來, 1791~1867)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42 금남집(錦南集) 최보(崔溥, 1454~1504)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43 금대시문초(錦帶詩文鈔) 이가환(李家煥, 1742~1801)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44 금릉집(金陵集) 남공철(南公轍, 1760~1840) 15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45 금석집(錦石集) 박준원(朴準源, 1739~1807)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46 금암집(琴巖集) 송몽인(宋夢寅, 1582~1612)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47 금역당집(琴易堂集) 배용길(裵龍吉, 1556~1609)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48 금옹집(錦翁集) 김학배(金學培, 1628~1673)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49 금천집(琴川集) 정시수(鄭時修, 1601~164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50 금호유고(琴湖遺稿) 이지걸(李志傑, 1632~1702) 2책 1개 평택 임씨 종손가(宗孫家)
가151 금호유고(錦湖遺稿) 임형수(林亨秀, 1514~154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52 급고유고(汲古遺稿) 이홍남(李洪男, 1515~157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53 급암시집(及菴詩集) 민사평(閔思平, 1295~1359) 1책 1개 성암고서박물관
가154 기봉집(岐峯集) 백광홍(白光弘, 1522~1556)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가155 기봉집(碁峯集) 남정중(南正重, 1653~1704)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가156 기봉집(騏峯集) 이시성(李時省, 1598~166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57 기암집(畸庵集) 정홍명(鄭弘溟, 1582~165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58 기언(記言) 허목(許穆, 1595~1682) 21책 4개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가159 기옹집(寄翁集) 남한기(南漢紀, 1675~174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60 기우집(騎牛集) 이행(李行, 1352~143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61 기원집(杞園集) 어유봉(魚有鳳, 1672~1744) 17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162 기재집(企齋集) 신광한(申光漢, 1484~1555) 10책 2개 고려대 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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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가 : 162종 
 
▶가암유고(可庵遺稿) | 김귀주(金龜柱, 1740~1786)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가암(可庵) 김귀주(金龜柱, 1740~1786)의 문집이다.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사본(罫印寫本)로, ≪가암유고≫는 일반적 형태의 문집으로 본문에 교정 첨지가 부착되어 있고 내용 일부가 도말(塗抹)되어 있는데, 시벽시비(時僻是非)와 관련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원집은 37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1767년부터 1769년까지의 작품으로, <현주팔경(玄洲八景)>은 초도(草島)의 해 뜨는 광경 등 소흑산도의 절경을 묘사한 것이다. 권9~14는 서(書)로, 김한록에게 유배지 소흑산도에 들어가기 직전인 1776년 9월에 보낸 편지에는 향후 왕의 처분이 어떻게 내려질 것인지, 가지고 가는 ≪근사록≫ㆍ≪논어≫ㆍ≪주서절요≫를 공부할 수 있을 지 등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1779년 10월에 관주와 일주에게는 섬사람들이 자신을 산송장[尸]이라 부르는 듯이 책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을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었던 송시열의 상황과 견주고 그나마 박인서가 곤욕을 치르면서도 자신을 살펴준다는 등의 소식을 알렸다. 권19는 설(說), 잡저(雜文)이다.
▶가오고략(嘉梧藁略) | 이유원(李裕元, 1814~1888)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년 미상의 자편고(自編稿)로, 불분권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1은 악부(樂府)이다. 이 중에서 해동악부에서는 우리나라 음악에 대해 칠언으로 읊고 이와 관련된 역사 사실을 주석으로 달았고, 소악부에서는 시조를 칠언으로 한역하였다.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는 유구국(琉球國), 안남국(安南國)부터 아리만국(亞利晩國), 서장제번(西藏諸番)까지 30개 나라에 대해 시로 읊은 것이다. 책2~5는 시(詩)로, 저자가 기거하던 가오곡에서 비오는 날 지은 <사시향관잡영(四時香館雜詠)>을 비롯해 중국 역대 국가와 인물을 주제로 지은 사찬(史贊), 사영(史詠) 등의 작품이 있다. 책11에는 선비의 처세와 심(心)에 대해 논하라는 책제(冊題), 중국 고대부터 우리나라 한호(韓濩)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서법(書法)에 대해 설명한 <서가정파설(書家正派說)>, 성인이 인(仁)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비유한 <방서설(放鼠說)> 등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인물, 역사, 제도, 서화(書畵), 시화(詩話), 금석(金石), 일화(逸話)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자료이다.
▶가정유고(柯汀遺稿) | 조진관(趙鎭寬, 1739~180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가정(柯汀) 조진관(趙鎭寬, 1739~180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조인영(趙寅永)이 가장을 짓고, 가장초고를 수습 정리하여 편차하였으며, 간행경위는 알 수 없으나 전사자(全史字)를 사용해 간행되었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소(疏)이다. <사면우윤겸진도하적정소(辭免右尹兼陳都下糴政疏)>는 1795년에 쓴 것으로 체직되어 올리지는 못하였는데, 우윤을 사직하며 겸하여 도하(都下)에서는 적정(糴政)을 시행할 때 분환(分還)보다 발매(發賣)하는 방법이 편리함을 진술한 것이다. 권4는 소(疏), 계(啓), 의(議)이다. <청치범금액례소(請治犯禁掖隷疏)>는 1804년에 금례(禁隷)를 구타하여 기강을 문란케 한 액례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올린 것이다. 계는 내섬시(內贍寺)의 폐단을 바로잡기를 청한 것, 태창(太倉)의 고질적 폐단을 없애기 위해 군자감 낭관의 선발을 자벽(自辟)으로 할 것을 아뢴 것, 숙선옹주방(淑善翁主房)의 전결(田結)에 대한 면세(免稅) 문제를 논한 것 등이다. 권미에 아들 인영이 <역문> 상하편을 교감하고 간행에 앞서 1847년에 지은 역문지(易問識)가 실려 있다.
▶가정집(稼亭集) | 이곡(李穀, 1298~135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의 문집으로 20권 4책이다. 아들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20권으로 편차하고, 1364년(공민왕14)에 저자의 사위인 박상충(朴尙衷)이 금산(錦山)에서 처음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62년(현종3) 전주에서 간행된 사간본(四刊本)이다. 저자는 정동성 향시(征東省鄕試)와 원(元)나라 회시(會試)에 합격하여 원나라에 머물면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 받았다. 이 때문에 문집 속에는 원나라의 사회 문화를 배경으로 한 글과 원나라의 명사(名士)ㆍ문인ㆍ학자ㆍ승려 등과 주고받은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데, 시(詩)와 서(序)는 물론이고, 깊이 교유하였던 여러 사람의 사당기(祠堂記)ㆍ묘지명(墓誌銘)ㆍ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특히 절에 대한 여러 편의 기문(記文)을 통해 원나라 수도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 그밖에 부여(扶餘) 지방의 여행기인 <주행기(舟行記)>와 관동(關東) 지방을 여행하고 기록한 <동유록(東遊錄)> 등도 있다. 저자의 유학 사상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눈을 통해 본 원나라의 풍경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가주집(家州集) | 이상질(李尙質, 1597~163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가주(家州) 이상질(李尙質, 1597~1635)의 문집으로 5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아들 이헌(李藼)이 편집하고, 1660년(현종1)에 정두경(鄭斗卿)의 산정을 맡았다. 그 후 1718년(숙종44)에 증손 이조(李肇)가 목판으로 간행했다. 이헌이 편차한 연보와 정두경이 지은 서문, 이조가 지은 발문이 실려 있으며, 절구와 율시가 주를 이룬다. 1618년(광해군10)에 양양(襄陽) 부사(府使)로 있던 장인 정엽(鄭曄)을 따라 금강산을 유람하고 정엽의 시에 차운한 <백두촌차빙군운(頭白村次聘君韻)>이 있고, 서울에 가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를 전송하는 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 대한 만시(挽詩), 외왕모(外王母)에게 헌수(獻壽)하는 시 등이 들어 있으며, 그밖에 송(頌) 1수, 서(序) 1수, 행장(行狀) 1수, 제문(祭文) 2수와 의고시(擬古詩), 영사시(詠史詩), 잡시(雜詩) 등이 있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문이 없어져서 남아 있는 작품 수가 적은 게 아쉽지만, 정두경이 이 책의 서문에서 ‘청아하며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나다’고 평한 저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가휴집(可畦集) | 조익(趙翊, 1556~161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가휴(可畦) 조익(趙翊, 1556~1613)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이 수집ㆍ편차하여 허목(許穆)에게 보낸 고본이 소실된 후, 종7대손 기연(岐淵) 등이 다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만든 선사본을 1826년 이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의 피구록(避寇錄)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지은 시들이고, 권2는 조천록(朝天錄), 춘방록(春坊錄), 영남록(嶺南錄), 양주록(梁州錄)이다. 권3~5 앞부분은 택반록(澤畔錄)이고 권5의 뒷부분은 상향록(商鄕錄), 만(挽) 및 기타 몇 편의 문(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6은 부록으로 연보와 만사, 행장, 묘갈명 등이고 권7~8은 1592년 4월부터 1598년 12월까지 왜란을 겪으면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진사일기(辰巳日記)이다. 권9는 1599년 9월에 난후진주겸하지사 서장관으로 부경하기 위해 11일 길을 떠나 1600년 1월 10일 복명하기까지의 일을 기록한 황화일기(皇華日記)이다. 권10은 공산일기(公山日記)로 1602년 4월에 공주로 배소가 결정된 후 배소로 출발하는 것부터 1607년 유배가 풀릴 때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각재집(覺齋集) | 하항(河沆, 1538~159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각재(覺齋) 하항(河沆, 1538~1590)의 시문집이다. 전체 상ㆍ중ㆍ하 3권 1책으로 된 목판본으로, 1813년(순조13)에 진주(晉州)의 사림(士林)이 유문(遺文)을 모으고 후손 하경현(河景賢)이 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을 받아 진주 대각서원(大覺書院)에서 간행하였다. 상권에는 시와 부(賦)가 실려 있는데, 칠언절구 중 <서대팔영(西臺八詠)>에는 종질(從姪) 하수일(河受一)의 자세한 주해(註解)가 각 편마다 첨부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시대를 걱정하는 것, 옛일을 감상하는 것, 자신을 경계하는 것,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많다. 중권에는 학문하는 방법 등을 논한 편지를 비롯하여 스승 남명(南冥) 조식(曺植)에 대한 명(銘), 제문(祭文)이 있다. 그리고 친구 오건(吳健)에 대한 전(傳) 등이 실려 있다. 하권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世系), 행장(行狀), 유사(遺事), 제문(祭文), 만사(輓詞), 대각서원 상량문, 축문 등이 실려 있다. 저자가 말년에 지어 문인 하수일에게 맡긴 <남명선생언행록(南冥先生言行錄)>과 <사우연원록(師友淵源錄)> 등의 작품도 병화(兵火)에 사라져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간송집(澗松集) | 조임도(趙任道, 1585~166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 1585~1664)의 문집이다. 초간본은 1744년경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30년에 간행된 활자본으로 5권 2책이다. 시 작품으로는 저자의 나이 19세 때에 간송이라는 자호를 짓고 쓴 <재송간변(栽松澗邊)>, 16인의 현인을 칭송한 <동현십육영(東賢十六詠)>, 함안의 충신, 효자, 절부 세 사람을 기리는 시 <삼강구절구(三綱九絶句)> 등의 작품이 있다. 산문으로는 조정에서 음식을 하사한 것에 대해 사례하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널리 인재를 찾아 등용할 것을 청한 <사사속소(謝賜粟疏)>, 군자의 처세와 관련한 이치를 논한 <우언(寓言)>, 학문하는 방법인 주정(主靜)ㆍ존성(存誠)ㆍ거경(居敬)ㆍ궁리(窮理) 등의 절목과 붕당에 관한 논리 등이 실려 있는 <관규쇄설(管窺說)>, 불교의 허탄함을 비판한 <기이(記異)>, 시제ㆍ기제ㆍ묘제 등 제례 의식을 제시한 <봉선초의(奉先抄儀)>, 스승인 장현광(張顯光)과 입도(入道)의 차례와 학문하는 요체 및 경전의 내용에 대한 문답을 기록한 <취정록(就正錄)> 등이 있다. 17세기 유학사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간옹집(艮翁集) | 이헌경(李獻慶, 1719~1791)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1719~1791)의 문집이다. 본집은 24권 12책의 목판본(木版本)이다. 저자가 졸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문집이 편찬(編纂)된 것으로 보아 저자가 스스로 편집한 원고가 그대로 문집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시(詩)를 지어 신동이란 이름이 났고, 시 공부에 전심하여 시 작품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당시(唐詩)의 풍조를 띤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이 많다. 산문(散文)으로는 동궁에게 올린 <시무상서(時務上書)>, 이름을 고치기를 청한 <청개명소(請改名疏)> 등의 소(疏)와, 고문(古文)과 육경(六經)에 대한 저자의 고찰을 담은 편지글 등이 있다. 잡저(雜著)로는 19세에 지었다는 <마풍(馬諷)>을 비롯하여 답문(答問), 서(序), 고유문(告諭文) 등이 실려 있다. 그중에 <천학문답(天學問答)>에서는 천주학(天主學)을 이단으로 배척하면서 유학의 상제(上帝)는 이(理)이고 성(性)이지, 전각을 지어 놓고 귀신처럼 섬기는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의 문학 세계와 함께 18세기를 살았던 유학자로서 천주교를 보는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간이집(簡易集) | 최립(崔岦, 1539~1612)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간이당(簡易堂) 최립(崔岦, 1539~1612)의 문집이다. 9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31년 활자로 간행된 초간본을 영조 대에 복각(覆刻)하여 간행한 목판본이다. 저자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오랫동안 외교 문서를 맡아왔던 경력을 보여주듯 이 책의 구성은 일반 문집과는 달리 표전(表箋), 주자(奏咨), 서첩(書帖) 등의 사대문자(事大文字)가 문집의 앞부분에 편차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시는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시기별로 편차하였다. 시문의 분량은 많지 않은데, 이는 책의 서문에 저자가 사색을 깊이 하고 글 짓는 법도가 엄격하여 초고를 서너 번 이상 고치지 않으면 내놓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산문으로는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해 중국에 갔을 때 예부(禮部)에 올린 문서나 임진왜란과 관련된 글 등 당시 일본, 명, 조선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다. 또 진주 재임 시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등 중국 문인 10명의 근체시를 뽑아 간행하면서 평가를 적은 <십가근체시발(十家近體詩跋)> 등을 통해 저자의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간재집(艮齋集) | 최연(崔演, 1503~154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간재(艮齋) 최연(崔演, 1503~154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고(家藏草稿) 40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전해져 왔으나 전란과 화재로 인해 거의 없어졌다. ≪한국문집총간≫은 1928년에 가장본을 바탕으로 연보와 신도비명을 부록으로 첨부하고 여러 전적에서 저자의 유문을 모아 강릉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12권과 속집을 합하여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사(辭), 부(賦)를, 권2에는 각 체의 시를 모았고, 말미에는 월과(月課)와 응제(應製)로 지은 오언, 칠언 율시 30수를 실었는데, 이 중 <차임사수견기영설시(次林士遂見寄詠雪詩)> 등은 구절마다 고사와 출처에 대해 자세한 주를 달았다. 그밖에 문장이 아름다워 훗날까지 사람들이 애송했다는 <중종대왕애책문(中宗大王哀冊文)>과 <인종대왕시책문(仁宗大王諡冊文)>을 비롯하여 응제, 교서, 잠(箴), 송(頌), 명(銘), 표(表), 설(說), 잡저, 기(記), 제문, 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 저자가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각 지방의 빼어난 경치를 읊은 것, 중국 사신을 맞으러 나가 주고받은 시들을 통해 당시 교유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간재집(艮齋集) | 이덕홍(李德弘, 1541~159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후손인 이경태(李慶泰)와 이장태(李長泰)가 1752년 활자로 인행(印行)하였으나 현재 전존(傳存)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1766년 후손 이상태(李常泰)가 8권 4책으로 재편(再編)하고 우계서원(迂溪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과 저자가 스승인 퇴계에게 수업한 것을 바탕으로 한 성리학 관계 편저류(編著類)를 합편(合編)한 속집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속집 5권 합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 소(疏)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퇴계에게 보낸 서간문 가운데 가장(家藏)된 초고를 바탕으로 문목(問目)만을 발췌하여 수록하고 퇴계의 답변(答辯)을 첨부한 문목이고, 권4는 서간문이다. 권5~6은 이황의 언행을 종류별로 모아 엮었고, 권7은 잡저(雜著), 명(銘), 도(圖)로 구성되어 있다. 권8은 부록이다. 속집은 권1~5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권5의 <가례주해(家禮註解)>는 1568년 이황이 사촌손녀를 문상하자 저자가 부족(夫族)으로서 따라가서 주자의 가례에 대한 독자적인 해설을 듣고 기록한 것이다.
▶간재집(艮齋集) | 최규서(崔奎瑞, 1650~1735)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간재(艮齋) 최규서(崔奎瑞, 1650~1735)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본으로 필사경위가 분명치 않으나 구한말에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별도의 서발이나 부록문자 없이 저자의 시문만으로 구성된 15권 7책의 필사본이다. 권1은 시(詩)로서 1671년부터 1734년까지의 작품이 시체에 관계없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4는 70여 편의 상소가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5는 계(啓), 서계, 의(議)이다. 계는 1685년 강화 유수 윤해(尹瑎)의 파직을 청하는 계사로부터 대부분 삼사(三司)와 정원에 있을 때 올린 피혐계 등이고, 서계는 사관, 승지 등을 보내 전유하거나 소명을 내린 것에 대한 답이며, 의는 1698년의 단종과 신비(愼妃)의 복위에 대한 것 외에는 모두 저자가 영의정에 제수되었던 이후에 올린 것이다. 권6은 편지이고, 권7은 응제록(應製錄)과 서(序), 기(記), 명(銘), 찬(贊), 설(說)이다. 권8은 제문(祭文)이고 권9~12는 묘지명(墓誌銘),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의 묘도문자이다. 권13~15는 1718년 치사하고 난 후 노후에 자신의 일생과 견문을 기록한 병후만록(病後漫錄)이다.
▶간재집(艮齋集) | 전우(田愚, 1841~1922) | 권책수 : 52책 | 포갑수 : 10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이병천(李炳天)
조선 시대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들이 추진하여 1926년에 처음으로 ≪간재사고(艮齋私稿)≫를 간행하였다. 본집은 1927년경 논산 봉양정사(鳳陽精舍)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본집은 전편(前編) 17권, 전편속(前編續) 6권, 후편(後編) 22권, 후편속(後編續) 7권, 별편, 사차(私箚) 합 5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書)에는 성리학의 명제에 대해 질정한 내용, 한일합방 때에 순국한 열사들을 찬양한 내용, 처세와 응변(應變)에 대한 내용, 변복(變服)을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왜노(倭奴)로 규정하고 유자(儒者)의 본분을 목숨 걸고 지킬 것을 말한 내용 등이 있다. 잡저 중 <정중유물설(靜中有物說)>은 정중유물에 대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학설을 불가(佛家)의 지각설(知覺說)과 비교하여 설명한 글이고, <율우종지(栗尤宗旨)>는 이기와 심성에 대한 이이와 송시열의 학설을 인용하여 기정진과 이항로의 주장을 반박한 글이다. 시(詩) 가운데 <최국(催菊)>과 <대국답(代菊答)>은 국화가 피기를 기다리는 저자의 마음을 먼저 표현하고 이에 대한 국화의 답을 저자가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간정집(艮庭集) | 이유홍(李惟弘, 1566~161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간정(艮庭) 이유홍(李惟弘, 1566~161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12대손 최종(最鍾)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종후손 덕하(德夏)의 교정을 거쳐 1912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각 권마다 앞에 목록이 있다. 권1부터 권3의 앞부분은 시(詩)이고, 영통사(靈通寺) 주지, 유정(惟政) 등 스님에게 준 시가 많으며 칠언과체(七言科體)는 과거 시험에서 쓰이는 과체에 따라 지은 것으로 과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권3 뒷부분은 소(疏), 계사(啓辭), 서(書), 잡저이다. 그중에서 <논삼간계(論三奸啓)>는 선조의 내선과 관련하여 유영경(柳永慶)을 논척한 정인홍(鄭仁弘), 이경전(李慶全), 이이첨(李爾瞻)을 귀양 보내기를 청한 계사이다. 권4는 서(序), 기(記), 표전, 교유서, 고유문, 제문, 묘지명이고, 권5는 부록으로 행장과 묘갈명, 묘갈추기, 묘지명, 묘지추기, 만사, 충청도 유생 등이 증작과 사시를 청한 소(疏) 및 그에 대한 연계와 이조초기가 실려 있다. 권말에는 후손 이덕하(李德夏)와 이최종(李最鍾)이 1912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갈암집(葛庵集) | 이현일(李玄逸, 1627~1704) | 권책수 : 21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졸하기 이전부터 아들 이재(李栽)에 의해서 수습되어 오다가 1724년에 정본(定本)을 완성하였으나 문집으로 간행된 것은 1810년경이다. 그러나 그것도 죄인의 문집을 사사로이 간행했다는 이유로 소각되었다가 1909년(순종3)에 증보되어 중간(重刊)되었다. 시는 저자의 나이 9세에 지은 <영화왕(詠花王)>과 저자의 몰년에 지은 <병중서회(病中書懷)>를 포함해 200여 수의 작품이 있다. <경연강의(經筵講義)>는 ≪주역≫과 ≪대학연의≫ 등을 진강한 경연에 참여한 기록을 말하는데, 경연에서 주고받은 연중설화(筵中說話)가 첨부되어 있다. 서(書)에는 사칠변(四七辨), 인심도심설, 격물설, 예론 등에 대한 의견이 많다. 잡저로는 저자의 벗 권해(權瑎)가 창성에서 벼슬살이할 때에 그 고을 자제들을 가르친 <사범(士範)>에 대해 조목별로 견해를 적은 <권학사사범의의(權學士士範疑義)>, 중국과 우리나라 선유들의 글 중에서 이기, 태극, 선천도, 오행, 역법 등 다양한 논제에 대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모아 변론한 <수주관규록(愁州管窺錄)> 등이 있다.
▶갈천집(葛川集) | 임훈(林薰, 1500~158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갈천(葛川) 임훈(林薰, 1500~15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증손이 병화(兵火)를 겪어 사라진 시문을 수합하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서문를 받아 1665년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시는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우흥시(寓興詩)와 수창시(酬唱詩)가 있다. 부(賦)로는 <토폐(土陛)>ㆍ<와(蝸)>ㆍ<앙마(秧馬)> 3편이 있다. 상소문 가운데 <언양진폐소(彦陽陳弊疏)>는 1566년(명종21) 경명행수지인(經明行修之人)으로 뽑혀 언양 현감이 되었을 때 만들어 올린 것으로, 흉년이 들어 농촌이 황폐해지고 있으니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문으로는 정여창을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경위를 논한 <일두선생사당기(一蠹先生祠堂記)>와 덕유산 향적봉을 등반한 내용을 기록한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峯記)>, 안자(顔子)의 안빈낙도를 칭송한 <누항기(陋巷記)> 등이 있다. 저자는 나라를 다스리고 학문을 하는 방도로 수신이 가장 중요함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비록 그가 남긴 작품이 많지는 않으나 담담하고 혼후(渾厚)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갈천집(葛川集) | 김희주(金煕周, 1760~183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갈천(葛川) 김희주(金煕周, 1760~1830)의 문집이다. 서발(序跋) 등 간행 경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없고, 다만 5대손 응환(應煥)의 연보발(年譜跋)에 의하면 1903년 간행 당시에 가장(家藏)되어 있던 저자의 원고(原稿) 가운데 반 정도를 산삭(刪削)하고 50부만 인출하여 반질(頒帙)하였다고 한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4는 경연강의(經筵講義), 서(書)이다. 경연강의는 1800년과 1809년 경연에 입시하였을 때 경전을 강독하면서 성군이 되기 위한 방안을 진달하는 등 순조(純祖)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권5는 서(書), 잡저(雜著)이다. 서는 한진호(韓鎭㦿), 이시수(李蓍秀) 등 8인과 문중에 보낸 것이다. 서학(西學)과 영남 사림을 연계하여 무함한 오영(吳瑛)에게 변무한 것, 금희규(琴僖圭)에게 ≪중용장구≫와 ≪대학장구≫에 관한 질의에 별지로 답한 것 등이고, <기해의예변(己亥議禮辨)>에서는 기해예송에서 체이부정설(體而不正說)을 제기한 송시열(宋時烈)을 비판하였다. 권7은 발(跋), 명(銘),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상향축문(常享祝文), 제문(祭文)이다.
▶감수재집(感樹齋集) | 박여량(朴汝樑, 1554~161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감수재(感樹齋) 박여량(朴汝樑, 1554~16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8대손 박창도(朴昌道)와 노상현(盧相鉉), 김준호(金俊鎬) 등이 산실되고 남은 수택고본(手澤藁本)과 통문(通文)을 돌려 수집한 유문(遺文) 등을 합편하고, 저자의 손자 박명진(朴鳴震)의 ≪사암공실록(思菴公實錄)≫을 부집(附集)하여 1914년 안의군(安義郡) 장수동(長水洞)에서 활자(活字)로 8권 5책을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8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914년 정연시(鄭然時)가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권2는 시(詩)와 부(賦)인데, 만시에서는 선조(宣祖), 하항(河沆), 박성(朴惺) 등을 애도하였다. 권3은 소(疏)와 계(啓)이며 권4는 전(箋), 장(狀), 책(策), 서(書), 명(銘), 제문(祭文), 고유문(告由文), 기(記), 서(序)이다. 권5~6은 잡저(雜著)이고 권7~8은 부록으로 세계도(世系圖)와 연보(年譜), 교서(敎書), 사제문(賜祭文) 등이 있으며 권미에 저자의 시문 수집을 위해 돌린 통문과 1914년 정직교(鄭直敎)가 지은 발(跋)이 있다.
▶감호집(鑑湖集) | 여대로(呂大老, 1552~161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 1552~1619)의 문집이다. 본집은 병화로 대부분 소실되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손자 대에 이르러 묘도문자를 정리하면서 유고에 대한 정리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증손 문징(文徵)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710년 목판으로 초간한 후, 9대손 찬조(纘祖) 등이 증보ㆍ재편하여 1860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3권 2책이다. 권수에 민흥도(閔興道)가 1710년에 지은 서, 유치명(柳致明)이 1860년에 지은 중간서, 총목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전(箋)이다. 시는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고, 권2는 제문, 서(序), 정문, 지명, 서(書), 논(論), 책(策)이다. 권3은 부록으로 정경세(鄭經世) 등이 지은 만사와 정유성(鄭維城)ㆍ여덕로(呂德老)가 지은 제문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일을 기록한 <창의실략(倡義實略)>, 여이명(呂以鳴)이 지은 <금릉지(金陵誌)>, 노계원(盧啓元)이 지은 송계서원(松溪書院)의 상량문, 김몽화(金夢華)가 지은 경양서원(鏡陽書院)의 상량문, 이사정(李師靖)이 지은 봉안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갑봉유고(甲峰遺稿) | 김우항(金宇杭, 1649~172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갑봉(甲峰) 김우항(金宇杭, 1649~17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많이 사라져서 소차(疏箚)나 서(書) 등의 산문만이 편차되어 간행되었다. 맨 먼저 유문의 간행을 시도한 사람은 1898년경 7대손 김운배(金雲培)로, 가장유문을 모아 총 5편으로 편차하였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1904년에 저자의 5대손 김연식(金連植)이 간행을 도모하여 목활자로 완성하였다. 본집은 5권 5책으로, 가장되던 소차(疏箚)와 계(啓), 의(議)에 중점을 두고 또 저자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 주는 <서적일기(西謫日記)>를 잡저로, 가군(家君)과 백씨(伯氏)에게 준 편지를 서(書)로 모아 간행하였다. 문집 내용의 대부분이 공거문(公車文)이라 그의 문학 세계나 사상을 살피기 어려운 게 아쉽지만 1675년 제생(諸生)과 함께 상소하여 동춘(同春), 우암(尤庵) 두 선생을 위해 신변(伸辨)한 것, 탕춘대(蕩春臺) 축성(築城) 의논을 반대한 것, 군제(軍制)와 양역(良役)의 변통에 대해 의논한 것 등 이조 판서, 병조 판서를 포함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저자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피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고집(江皐集) | 유심춘(柳尋春, 1762~1834)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강고(江皐) 유심춘(柳尋春, 1762~183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주목(疇睦)이 1840년 가장유고를 수습하고 유문을 모아서 저자의 문인들과 수차례 고증 교수하여 10편으로 정리한 다음, 사림의 협조를 받아 상주(尙州) 도남서원(道南書院)에서 문집을 판각하였으나, 바로 인출하지 않고 다시 수정을 거쳐 1852년에 보간(補刊)을 완료하였다. 본집은 원집 19권 10책과 연보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저자의 자주(自註)가 간혹 달려 있다. 권2는 소(疏)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796년 효릉 참봉(孝陵參奉)이 되어 올린 글로 ≪중용장구≫의 구경(九經)을 천하를 다스리는 대경대법이라고 진달하는 한편 당시의 폐해를 환정(還政), 양역(良役), 전정(田政) 등의 문제로 나누고 구제책까지 제시하였다. 권3~7은 서(書)이다. 내형 조학수(趙學洙)와 이존수(李存秀) 등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적정(糴政)과 태환(太還) 등의 병폐로 인한 백성의 교통을 걱정하였고, 유세명(柳世鳴)의 ≪우헌집(寓軒集)≫을 교정하는 문제를 상의하였다.
▶강재집(剛齋集) | 송치규(宋穉圭, 1759~183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졸한 뒤 아들 송흠성(宋欽成)이 남아 있는 글을 수집(蒐集)하여 12책으로 편차(編次)하였고, 손자 송기수(宋騏洙)가 이를 산삭(刪削)하여 1865년 활자(活字)로 간행(刊行)하였다. 시(詩)는 주로 친지나 스승과 주고받은 것들이다. 상소(上疏)는 왕세자(王世子) 상례(喪禮) 후에 올리거나 순조(純祖)에게 올린 진위소(進慰疏) 등이고, 헌의(獻議)는 궁중(宮中)에서 일어나는 길흉례(吉凶禮)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피력(披瀝)한 것이다. 서(書)는 성리학(性理學)이나 복제(服制)에 관한 내용이 많다. 서(序)에는 문집서(文集序)와 족보서(族譜序)가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옥천군 창주서원(滄洲書院) 중수기(重修記) 등의 기문, ≪국당유고(菊堂遺稿)≫ㆍ≪송재집(松齋集)≫ㆍ≪정일당집(靜一堂集)≫ㆍ≪활계집(活溪集)≫ 등에 대한 발문(跋文), 금석로(琴錫老)가 독서하는 방법을 묻자 그에 대해 설명한 독서설(讀書說) 등이 있다. 이이(李珥)ㆍ김장생(金長生)ㆍ성혼(成渾)의 학문을 계승하여 이기일도설(理氣一途說)을 지지한 저자의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강좌집(江左集) | 권만(權萬, 1688~174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강좌(江左) 권만(權萬, 1688~1749년)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 후반에 후손들에 의해 당시 영남에서 많이 쓰이던 목활자(木活字)로 인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시는 443제가 실려 있다. 13세에 지은 강상관어(江上觀漁)를 필두로 숙부 권두기(權斗紀)가 영일(迎日)로 이배되자 경주(慶州) 등지를 거쳐 배소를 방문하는 과정에 지은 <향숙부영일양이소오말계촌(向叔父迎日量移所午秣界村)>, 52수에 달하는 연작시로 봉화(奉化) 유곡(酉谷) 마을 주변의 경치를 읊은 <유곡잡영(酉谷雜詠)>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밖에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청나라에 당한 수치를 탄식하는 <행금인(行琴引)> 등 역사 사실을 두고 읊은 시와 채팽윤(蔡彭胤)에 대한 애도시(哀悼詩) 등이 있다. 산문으로는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전(傳), 명(銘), 송(頌), 전(箋), 장(狀), 잡저, 설(說), 책(策), 상량문, 애사, 제문, 행장, 구묘문(丘墓文)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망라되어 있다. 성운(聲韻)에 관한 글, 금석 서화에 관련된 글 등 저자의 취향과 조예를 가늠할 수 있는 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강한집(江漢集) | 황경원(黃景源, 1709~1787)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 1709~1787)의 문집이다. 본집은 교서관에서 정조의 명에 따라 유고를 편차하여 1790년 운각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35권 15책이다. 시는 대부분 산천을 유람하며 지은 것인데, 계정(谿亭)에 모여 이천보, 오원, 남유용과 연구(聯句)로 지은 장편시 <계정연구(谿亭聯句)>, 단양ㆍ평양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와 사신으로 가면서 지은 시 등이 있다. 특히 <문효세자책례일연구(文孝世子冊禮日聯句)>는 세자 책례일에 정조(正祖)가 첫 구와 마지막 구를 짓고, 여러 신료들이 함께 지은 연시(聯詩)이다. 산문으로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있는데, 의식에 쓰이는 글을 많이 지었고, 시들을 엮고 지은 서문이나 명승지를 돌아보고 지은 기문 등도 많다. 그밖에 중국 송나라 태종에서부터 단종에 이르기까지 7대 제왕의 치적과 종실ㆍ유림ㆍ열녀ㆍ환관ㆍ간신 등 인물의 공과(功過) 업적 등을 상세히 논한 글, 일무(佾舞)에 관해 고증하고 논한 것, 명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유명한 조칙이나 조선과 관계된 글을 뽑아 싣고 전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것,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킨 65명에 대한 전기 등이 있다.
▶개암집(介庵集) | 강익(姜翼, 1523~156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개암(介庵) 강익(姜翼, 1523~1567)의 문집이다. 병란 중에 대부분 사라진 저자의 시문을 친손 강전(姜絟)이 처음으로 유고를 수습하여 정리하였고, 1686년 양천익(梁天翼)이 재차 교정하고 편집하여 함양 남계서원(蘫溪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86년 간본을 1846년경 추각한 후쇄본이다. 본집은 상하 2권 1책으로 총 70판으로 이루어진 적은 분량의 시문집이다. 권수에 1706년 정기윤(鄭岐胤)이 지은 서문이 있다. 상권에는 <숙야재독역(夙夜齋讀易)> 등 20여 수의 시와 <상남명선생서(上南冥先生書)> 등 편지 6편이 있으며 <양진재기(養眞齋記)>와 저자가 오랫동안 관여한 남계서원(蘫溪書院)의 기문이 있다. 추록으로 실린 단가(短歌) 3편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쓴 것으로 국문 시가(詩歌)로는 비교적 초기 작품이다. 하권은 부록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 등제(登第)하였으나 관직 생활보다는,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 힘쓰며 신독(愼獨)과 학문의 실천을 중시한 저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개암집(開巖集) | 김우굉(金宇宏, 1524~159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 1524~1590)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경렴(景濂)이 1729년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ㆍ편차하여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의 정정(訂正)을 받은 후, 행장(行狀)과 복향문(復享文), 연보(年譜) 등 부록(附錄)을 증보하여 1772년경에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原集) 4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광정이 지은 서문, 연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이고, 몇몇 시에는 ≪해동악부(海東樂府)≫, ≪덕계집(德溪集)≫ 등 출전을 밝혀 놓았고, 차운(次韻)과 원운(原韻)을 첨부해 놓았다. 권2는 소(疏), 차(箚), 계사(啓辭), 교서(敎書)이다. 상소는 경상도 유생이 올린 보우(普雨)를 참하라고 청한 22차례의 상소(上疏) 중에서 저자가 지은 5개의 상소와 부교리를 사직하는 상소이다. 권3은 서(書), 잡저(雜著), 발(跋), 제문(祭文), 묘문(墓文)이고, 권4는 부록(附錄)으로 권상일(權相一)이 지은 행장(行狀), 이준(李埈)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등이 있고, 권말에 김여용(金汝鎔)이 지은 지(識)가 수록되어 있다.
▶건재집(健齋集) | 김천일(金千鎰, 1537~159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임진왜란 중에 대부분 없어졌으며 남은 글들을 모아 1802년경부터 간행을 시도했으나 하지 못하다가, 1893년 3월에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93년 11월에 본손(本孫) 김연수(金蓮洙)가 약간의 편을 증보하고 편차를 달리하여 다시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7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원집에는 쌍으로 나는 꿩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을 읊은 <원금가치아부(援琴歌雉我賦)>와 충(忠)과 효(孝)를 주제로 한 시와 전란에 대처하는 방도를 진달한 소, 전란 중에 재상에게 당시 폐단을 10조목으로 제시한 편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격문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여러 문인이 저자에게 지어준 시와 ≪선묘보감(宣廟寶鑑)≫, ≪중봉집(重峯集)≫, ≪우계집(牛溪集)≫, 유희춘(柳希春)과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등에 나오는 저자 관련 기사를 모아 놓은 <차록(摭錄)>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분투상과 전란에 대처하기 위한 대책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검간집(黔澗集) | 조정(趙靖, 1555~163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검간(黔澗) 조정(趙靖, 1555~1636)의 문집이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저자가 졸하고 나서 백년이 지난 뒤인 1740년경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원집과 연보와 부록 4권, <진사일록(辰巳日錄)> 2권으로 합 4책이다. 시는 14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이중 40여 수가 만시(挽詩)이고, 그밖에 임진왜란 중 충의에 북받쳐 강개한 심정을 읊은 시가 많다. 산문으로는 소(疏), 전(箋), 장(狀), 서(書), 잡저와 논(論), 제문 등이 있는데, <청친정소(請親征疏)>와 <장준핵이강론(張浚劾李綱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으로는 서애(西厓)와 한강(寒岡) 등 사우(師友)와 가족에 대한 것이 있다. <진사일록>은 왜구의 침입을 처음 들은 날로부터 선조가 환도(還都)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날까지의 정치 관계 기사, 의병(義兵)의 활동상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연구의 주요 자료가 된다. <소청일기(疏廳日記)>에는 친정(親征)을 주청하는 소를 올리기 위해 향론(鄕論)을 모으고 의사를 결정해 소를 올리는 과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향론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 범경문(范慶文, 1738~180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검암(儉巖) 범경문(范慶文, 1738~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아들 윤행 등이 시를 편하여 2권으로 만들고, 1814년에 서영보의 서와 이만수의 발을 받아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된 시집(詩集)으로, 권수에 서영보(徐榮輔)가 1814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시는 시체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에 따라 편차되어 있다. 서영보의 서문에서 말한 대로, 저자는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는데, 영물시, 한거시, 유람시, 증시와 만시 등 다양한 내용의 시가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온후한 기상을 담고 있다. 권2는 1766년부터 1800년까지 지은 시로, <합매(閤梅)>는 매화를 읊은 것인데 미개(未開), 반개(半開), 성개(盛開), 낙화(落花)로 나누어 매화꽃이 피고 지는 것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쓴 것이다. <천안주(千眼廚)>는 당시 부자와 고관들이 다투어 갖고자 했던 화려한 서랍이 달린 작은 금고인 가께수리를 읊은 것이고, <애체(靉靆)>는 안경에 대해 쓴 것이다. 권말에 이만수(李晩秀)가 1814년에 지은 제후(題後)가 있다.
▶검재집(儉齋集) | 김유(金楺, 1653~1719)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청풍김씨 판서공휘인백파종중
조선 시대 검재(儉齋) 김유(金楺, 1653~1719)의 문집이다. 유문은 저자 사후에 아들 정로(正魯) 등이 김간(金榦)에게 묘지를 지어줄 것을 청하였고, 적어도 18세기 중반까지는 저자의 유고가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32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서발문이나 부록은 없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4는 부(賦) 4편 외에 시(詩)로서, 시는 각 권마다 시기별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권5~12는 서(書)로서 문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상은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 등 주로 노론 계열의 인물들이다. 권16은 강의, 반교문, 전문이고 권17은 의(議), 논(論)이며 권18은 변(辨), 권19는 서(序), 권20은 기(記)이다. 특히 <동행계거기(東行啓居記)>는 1675년 여름 양근(楊根)에 있는 박세채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돌아오는 여정의 대강을 기록한 것이다. 권22~26은 제문, 애사, 묘갈명, 묘표, 행장 등이고, 권27~32는 잡저로 전대의 일화, 당대 인물에 대한 평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 등 매우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격재집(格齋集) | 손조서(孫肇瑞, 미상)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79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란을 겪으며 유실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유실되고 남은 갱시(賡詩) 1권에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 수 편을 수록하고, ≪점필재집≫ㆍ≪박선생유고≫에서 뽑아낸 창수시(唱酬詩)와 묘갈명 등을 부록에 집록(輯錄)하여 총 4권 1책으로 편집하여 1831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 권1에는 시 25수가 실려 있고, 권2에는 갱시 260제와 <무원록발(無寃錄跋)> 1편이 실려 있다. 갱시는 벼슬을 버리고 난 이후에 충의(忠義)의 심정을 당송(唐宋) 절구시에 차운하여 지은 것인데, 뜻이 비슷한 것을 뽑아 분류하여 편차하였다고 한다. 부록에는 창수시와 묘갈명 외에 저자가 향사(享祀)된 청호서원(靑湖書院)과 추증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고, 권미에는 이의한(李宜翰)과 김재순(金載順)이 지은 중간발이 실려 있다. 저자는 육신옥(六臣獄)이 일어나고 단종이 승하한 불우한 시대에 심상(心喪)을 하면서 벼슬하지 않고 은둔했기 때문에, 작품도 자연을 소재로 삼아 지은 것이 많다. 그러나 곳곳에 자신의 슬픈 처지를 빗대어 읊은 작품이 보인다.
▶겸산집(兼山集) | 유숙기(兪肅基, 1696~1752)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겸산(兼山) 유숙기(兪肅基, 1696~1752)의 문집이다. 본집은 사자(嗣子) 언부(彦傅)와 문인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재순(金載順)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7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0권 10책이다. 권수에 김양행이 1775년에 지은 서문과 총목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19년부터 만년까지의 시들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일부 시에 창작의 배경이나 시구의 유래를 설명하는 자주(自註)가 있다. 권2~6은 서(書)이다. 김창흡(金昌翕), 강석붕(姜錫朋), 이재(李縡), 박필주(朴弼周), 윤봉구(尹鳳九) 등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7은 서(序), 기(記), 제발(題跋), 설(說), 찬명(贊銘), 축사(祝辭)이다. 권8은 이성지(李性之)의 아내 김씨와 김명석(金命錫)의 천출인 김응룡(金應龍)에 대한 전(傳)과 잡저이고, 권9~10은 잡저이다. 권11~12는 제문, 애사이고 권13~15는 부친 명웅(命雄), 처숙부 이건명(李健命), 처외조부 장선징(張善澂)에 대한 행장과 묘표, 묘지명, 묘갈명이다. 권16~20은 차의(箚疑)이다.
▶겸암집(謙菴集) | 유운룡(柳雲龍, 1539~160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 1539~16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동생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12권으로 편집하였으나 홍수로 대부분 없어졌고, 그 후 1742년(영조 18)에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03년에 초간본을 증보, 재편하여 8권 4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37제(題)가 실려 있는데, 퇴계 선생과 문인들이 서로 시를 주고받을 때 저자가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바친 시 등이 있다. 소(疎)로는 안동이 부(府)에서 현(縣)으로 강등된 것을 다시 부로 승격시켜 달라는 내용의 <청안동복호소(請安東復號疏)>가 있다. 잡저로는 각종 제사를 그림을 곁들여 의절(儀節)을 소상하게 설명하였고, 구두(句讀)를 설명하고 ≪시경≫의 난해한 구절 등을 설명하였다. 그밖에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인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 퇴계 선생에 대한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시 작품을 통해 전원 풍경과 세속의 먼지를 떨어버린 시원스러운 기상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제례 등에 관한 글을 통해 고례(古禮)를 준수하면서도 현실 여건을 고려한 저자의 견해를 볼 수 있다.
▶겸재집(謙齋集) | 하홍도(河弘度, 1593~1666)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1593~1666)의 문집이다. 1758년경에 목활자로 처음 간행되었으며, 12권 6책이다. 시는 250여 제(題)가 시체별로 실려 있고, 뒤에 부(賦)와 애사(哀辭)가 들어 있는데, 덕천서원(德川書院)에 관한 것, 남명(南冥)의 운(韻)에 차운한 것이 많으며 만시(挽詩)의 비중이 높다. 또 향교의 위패 배치에 대한 문목, 상복(喪服)에 대한 문목 및 복제(服制)를 논한 글, 정묘호란 때에 의병의 궐기를 독려한 글, 저자가 지은 아동용 한시(漢詩) 교육 교재인 ≪백련초(百聯抄)≫의 단점을 보완하여 ≪연구속선(聯句續選)≫을 만들고 그 책에 대해서 서문을 쓴 <연구속선서(聯句續選序)>, 여자의 계례(笄禮)에 대한 기록을 곡례(曲禮), 내칙(內則), 단궁(檀弓), 등에서 발췌하여 모은 <계례집설(笄禮輯說)> 등이 있다. 그밖에 부록으로 허목(許穆)이 지은 묘갈(墓碣), 이익이 지은 묘지명,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행장과 당시 문인 사우들이 지은 제문, 만사와 행록이 실려 있다. 영남 남인학파로서 벼슬하지 않고 경의(經義)와 예문(禮文)을 강설(講說)한 저자의 학문 세계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겸재집(謙齋集) | 조태억(趙泰億, 1675~1728)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의 문집이다. 평소 자신의 시문을 정리해 간직하고 있었던 듯하며, 현존하는 사본의 분량이 45권 20책이나 된다. 시는 10살 때에 지었다는 <추야호운(秋夜呼韻)>을 비롯하여 둘째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10수 연작시 <곡자(哭子)>,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 등이 있다. 그밖에 통신사에 차임되어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지은 작품들이 실려 있는 <동사록(東槎錄)>이 있고, 반송사 또는 접반사로서 의주(義州)를 다녀올 때에 지은 시도 많이 실려 있으며, 감군은시(感君恩詩)도 2제 90수가 실려 있다. 산문으로는 거의 모든 문체가 실려 있는데, 각종 벼슬을 사직하거나 소회를 아뢴 소차, 무함을 받고 삭탈관작 되었던 일에 대해 변론한 상소를 비롯해 미아리(彌阿里) 동림사(東林寺)의 영건(營建) 때 시주를 권한 모연문까지 있다. 회문체(回文體), 팔음체(八音體), 산박사체(算博士體), 건제체(建除體) 같은 잡체시를 포함해 다양한 문체의 글들을 접할 수 있고,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 오면서 지은 <동사록> 등의 기록을 통해 두 나라 교린의 연혁과 풍속과 지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경당집(敬堂集) | 장흥효(張興孝, 1564~163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저술을 좋아하지 않아 유고(遺稿)를 많이 남기지 않았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원집은 1693년에 간행된 초간본이고 속집은 1818년에 간행하여 1908년에 추각된 후쇄본이다. 본집은 원집 2권, 속집 2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시는 문인들을 권면하는 <시학자(示學者)>, <세제일여소우배(歲除日與少友輩)> 등의 시가 있고, 부(賦)로는 도학자다운 면모를 볼 수 있는 <도대인행(道待人行)>이 있다. 산문으로는 인조반정 이후 인정(仁政)을 베풀기를 바라며 올리려 한 <의상인조대왕소(擬上仁祖大王疏)>와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외손 등에게 답한 편지가 있다. 그밖에 증언(贈言), 제문, 잡저 등이 있다. 부록 가운데 <일기요어(日記要語)>는 자신의 언행의 득실, 독서와 사색 중 얻은 내용 등을 기록한 것이고,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는 복희(伏羲) 선천도(先天圖)에 문왕(文王) 후천도(後天圖)를 참고하여 심(心)에 부합하도록 만든 것이다. 퇴계 학풍을 이어받은 저자의 경전ㆍ역사ㆍ성리학 등에 대한 연구 성과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경렴정집(景濂亭集) | 탁광무(卓光茂, 1330~141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경렴정(景濂亭) 탁광무(卓光茂, 1330~141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문헌에 산재해 오다가 후손들이 세보(世譜)를 만들 때 수집ㆍ정리하였다. 초간본은 2권 1책의 목판본인데, 내용이 소루하고 판본도 널리 유포되지 못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인 중간본은 후손 탁운한(卓雲翰)이 1850년에 다시 보충하여 간행한 5권 2책의 활자본이다. 시는 교유인들과 화답한 시가 대부분인데, 이제현(李齊賢)ㆍ이색(李穡)ㆍ정몽주(鄭夢周)가 경렴정에 제(題)한 시를 비롯하여 증시(贈詩)ㆍ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여사(麗史)ㆍ읍지(邑誌)ㆍ≪동문선(東文選)≫ 등 여러 문헌에서 채록한 저자의 행적과 제문ㆍ묘갈ㆍ봉안문(奉安文) 등이 실려 있다. 이어 시조부터 29세까지 열거된 <광산탁씨세계(光山卓氏世系)>와 <경자보서(庚子譜序)>를 비롯하여 세보의 성격을 띤 글들이 함께 편집되어 있다. 책 끝에는 1850년에 쓴 19세손 탁운한의 발문과, 저자와 아들 탁신(卓愼)의 유적(遺蹟)이 있다.
▶경산집(經山集) | 정원용(鄭元容, 1783~1873)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경산(經山)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문집을 60권으로 자편(自編)해 두었으며, 이유원(李裕元)에게 서문(序文)까지 받아두었다. 그 후 저자의 손자인 정범조(鄭範朝)가 1895년 활자(活字)로 20권을 간행하였다. 운문(韻文) 가운데 강도부(江都賦)는 강화의 연혁과 형세를 읊은 글이다. 시로는 오대산 사고(史庫)에 포쇄(曝曬)하러 가던 길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것, 1831년 동지정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오는 길에 지은 것과 중국인들과 화답한 것, 말년에 자식들의 임소(任所)인 강화와 전주, 서흥 등지에서 지은 것 등이 있다. 소차(疏箚) 중 <관서위유사진서로사의소(關西慰諭使陳西路事宜疏)>는 관서에 수해와 전염병이 들자 위유사로 차임되어 피폐한 상황을 살핀 뒤에 개혁책을 아뢴 글이다. 기(記) 가운데 <삼사루기(三思樓記)>는 권세를 피하고, 교유(交遊)를 신중히 하고, 정기(精氣)를 기르라는 부친의 세 가지 유언을 유념하면서 세운 누대에 대한 것이다. 주(奏), 소(疏), 계(啓) 등의 작품을 통해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개혁책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 신위(申緯, 1769~1845) | 권책수 : 29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경수당(警修堂) 신위(申緯, 1769~1845)의 문집이다. 저자는 시(詩), 서(書), 화(畵)에 능했으며, 생전에 43세 때인 1811년 이후에 지은 시만을 편차하여 ≪경수당집(警修堂集)≫을 남겼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29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차된 시모음집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29책에 붙인 시록(詩錄)의 제목이 흥미로운데, <무인록(戊寅錄)>은 죽은 형이 태어난 해를 시집 제목으로 삼아 지어 형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고, <홍잠집(紅蠶集)>은 누에가 늙으면 붉은 색을 띤다는 데에서, 노경(老境)에 지은 시를 모았음을 밝힌 것이다. <창서존고(倉鼠存藁)>는 벼슬에서 물러나서도 여전히 녹봉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쥐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것과 같다고 느껴 지은 이름이며, <부와집(覆砙集)>은 자신의 시문이 후세에 항아리 뚜껑으로나 쓰이게 될 것이라는 겸손한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중국 북송(北宋)의 소식(蘇軾)을 따르고자 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풍을 이루었고, 현실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양반 배척, 서얼의 차별 대우 철폐, 당쟁 배격을 내용으로 하는 시도 있다.
▶경암유고(敬庵遺稿) | 윤동수(尹東洙, 1674~173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경암(敬庵) 윤동수(尹東洙, 1674~1739)의 문집이다. 후손과 문인들이 유고를 수습하여 가장(家藏)해 놓았는데, 1916년에 처음 활자로 간행되었다. 시의 내용은 문인과 주고받은 차운시나 증시(贈詩)가 대부분이고, 단양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 저자가 편찬과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던 명재의 유집에 차운한 시 등도 있다. 소장은 모두 관직 또는 별유(別諭), 소명(召命)을 사양하며 지은 것이다. 서(書)는 200편 가까운 편지들이 인물별 연대순으로 실려 있는데, 사우와 친족에게 보낸 것들이다. 문하의 사우들과는 명재를 변무하기 위한 일을 의논한 편지가 많고, 경종 즉위 후 관직에 나아가는 문제, 명재의 문집 편찬 문제 등을 의논한 편지 등이 있다. 또한 당시 정치의 급선무 여섯 조항을 말하면서 백구(伯舅) 한배하(韓配夏)에게 보내려고 지은 <의상백구(擬上伯舅)>가 있다. 기타 문인들에게 준 편지는 진학(進學)을 면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1716년의 병신 처분(丙申處分) 처분을 전후하여 노론계 인물들과의 갈등 속에서 단양 군수 외에는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이 문집을 통해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경암집(敬菴集) | 노경임(盧景任, 1569~162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경암(敬菴)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남인 계열인 후손들이 영락을 거듭하면서 수습되지 못하다가 증손 노명전(盧命全) 때에 와서 수집되어 편질을 이루게 되었고, 그 후 1784년에 와서야 7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는 독서와 유람으로 지내던 시절의 생활과 심사를 읊은 것들이 많고, 서애(西厓) 선생과 나눈 것, 서애 선생과 한강(寒岡) 선생 등에 대한 만시(輓詩) 등이 실려 있다. 사(辭)로는 냉산(冷山)을 유람하고 지은 <냉악사(冷岳辭)> 등이 있다. 서(書)는 스승이나 지우(知友)와 나눈 편지를 모아 놓았는데, 이 중 서애 선생에게 답한 편지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의 문제점을 제시하였고, 한강 선생에게 답한 편지에서는 박이립(朴而立)의 무고 사태에 위로하는 뜻을 담았다. 잡저로는 풍기 군수 시절과 영해 부사 시절에 교유(校儒), 도유사(都有司) 등에게 유시한 글 등과 선산에서 칩거하던 시절 지은 <향중완의(鄕中完議)>가 있다. 성리학적 주제와 천지 자연 현상 등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적은 글, 향약에 지방 행정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기능을 추가하여 정리한 글들을 주목할 만하다
▶경암집(敬菴集) | 이한응(李漢膺, 1778~186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경암(敬菴) 이한응(李漢膺, 1778~186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저자 사후에 아들 헌상(憲相)이 수습 정리하여 이휘재(李彙載)의 교정을 받아 간행을 착수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헌상이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졸하자 손자인 흥로(興魯)가 이를 이어받아 이수영(李秀榮)에게 간목(刊木)의 감정과 묘지명(墓誌銘)을 부탁하여 받아 1885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13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문집 전체에 대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근차망와려장운(謹次忘窩藜杖韻)>은 망와 김영조(金榮祖)가 선인(仙人)에게서 얻었다고 전해지는 단려장(丹藜杖)에 대한 내력을 적고 감탄하여 차운해 지은 것이다. <쌍경탄(雙鏡歎>은 학사 강필로(姜必魯)가 준 안경을 실수로 깨뜨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읊은 것이다. 권8은 잡저(雜著)이다. 나무로 만든 기이한 주전자라도 그 본성대로 사용하면 천지간에 쓸모없는 물건이 되지 않음을 객과의 문답형식을 빌려 쓴 <목이설(木匜說)>, 처마에 친 거미줄을 걷어내다가 만물에 부여된 자생(自生)의 방도를 해쳐서는 안 됨을 깨닫고 스스로를 경계한 <주망설(蛛網說)> 등이 있다.
▶경암집(絅菴集) | 신완(申琓, 1646~170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암(絅菴) 신완(申琓, 1646~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성하(聖夏)ㆍ정하(靖夏) 형제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정고본을, 손자 경(暻)이 교감하고 저자의 증손 대손(大孫)의 협조를 받아 176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가 2권, 문(文)이 6권으로 각 권의 첫머리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부사, 시(詩)이다. 시는 대체로 저작 순서로 배열되었고, 일상의 소소한 심정을 읊고 차운한 시들과 만시가 섞인 가운데 <치장추(雉將雛)>, <와우(蝸牛)> 등의 시에서는 새, 곤충, 벌레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의인화시켰다. 권3~5는 소차, 계(啓), 의(議)이다. 소차는 대부분 체직, 사직, 대죄를 청하며 소회를 진달한 것이고, 의(議)는 사당건립이나 문묘종사 등에 대한 임금의 하문에 대해 검토하여 올린 것이다. 권6~8은 가장, 시장, 묘지, 묘갈명, 제문, 애사, 잡저, 서독이다. 특히 애사는 임영(林泳)에 대한 것이고, 서독은 박세채(朴世采), 임영, 이여(李畬), 정호(鄭澔) 등과 집안 자제들에게 준 것이다. 말미에 신경이 1766년에 쓴 발(跋)이 붙어 있다.
▶경연당집(景淵堂集) | 이현조(李玄祚, 1654~171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연당(景淵堂) 이현조(李玄祚, 1654~1710)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증손 이반(李磐)이 1788년 6권 3책으로 편찬하여 목활자(木活字)로 간행(刊行)한 것이다. 동시대 다른 학자들의 문집에 비해 서간문(書簡文)이 적고 시집(詩集)의 분량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약 510여 제의 시(詩)가 실려 있다. 당쟁(黨爭) 속에서 근심을 풀기 위해 지은 ‘소우록(消憂錄)’, 함경도 지역을 돌면서 지은 ‘북정록(北征錄)’, 회양 부사로 있을 때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며 지은 ‘동유록(東遊錄)’,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동해안을 유람하며 지은 ‘관동록(關東錄)’ 등의 시록(詩錄)으로 구분되어 연대순(年代順)으로 수록되어 있다. 시 중에 간간이 있는 소자쌍행(小字雙行)의 소주(小註)는 주로 시의 배경이나 시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밖에 상소(上疏), 제문(祭文), 행장(行狀), 잡저(雜著)와 여문(儷文) 등이 실려 있는데, 상소 등 공거문(公車文)과 묘도문자(墓道文字)의 비중은 약하고 잡저와 산문이 많다. 지방관으로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지은 시들이 많아 당시의 풍습을 이해하고 경치를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와집(敬窩集) | 김휴(金烋, 1597~163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경와(敬窩) 김휴(金烋, 1597~1638)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가전(家傳)되던 초고가 1860년대 후반 이후인 철종 말년에서 고종 초기에 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시로는 관동의 산수를 유람하는 길에 인동(仁同)에 들러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찾아뵙고 도산(陶山)에 한 달을 머물다가 떠난 선우협(鮮于浹)을 전송하면서 지은 <송선우돈암환관서부(送鮮于遯庵還關西賦)>, 나이 서른에 학문도 이루지 못하고 가난 때문에 종형제 여섯이 함께 살지도 못하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을 담아 종제(從弟) 김주(金燾)에게 준 <감회기종제자인부(感懷寄從弟子仁賦)>, 등에 제(題)한 연작시(連作詩)가 들어 있는 <제영(題詠)>, 금강산을 기행하면서 지은 시를 모은 <금강록(金剛錄)>, 장현광 등에 대한 만사, 임종을 앞두고 학문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저자의 탄식을 담은 <임종자만(臨終自輓)> 등이 있다. 잡저로 실린 <조문록(朝聞錄)>은 근독(謹獨), 불기(不欺), 등에 대한 내용을 경전 및 낙민 제현(洛閩諸賢)의 글에서 뽑아 엮은 것으로서 도식(圖式)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놓아 수양서로 읽기 좋도록 편찬되었다.
▶경재유고(敬齋遺稿) | 남수문(南秀文, 1408~144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경재(敬齋) 남수문(南秀文, 1408~14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이 산일되고 그중 전(箋)ㆍ기(記)ㆍ묘지 약간 편이 ≪동문선≫에 실려 전하였다. 9세손 남희석(南熙錫)과 11세손 남국환(南國煥)이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과 ≪동문선≫ 등에서 채록한 시문을 2권 1책으로 편집하여 순조 4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시, 서(序), 기, 발, 묘지명, 묘표가 실려 있다. 기문으로는 1429년에 왕명을 받아 지은 <태평관중수기(太平館重修記)>, 1442년에 군수 송을개(宋乙開)가 향교(鄕校) 남루(南樓)를 새로 세웠을 때 지은 <옥천향교신루기(沃川鄕校新樓記)> 등이 있다. 발문은 강원 감사 유계문(柳季聞)이 세종의 명으로 중간(重刊)할 때 쓴 <운부군옥발(韻府群玉跋)> 등이 있다. 권2에는 잡저, 전(箋), 교서, 서계(書契), 제문, 축문, 고문, 해괴문(解怪文)과 부록이 실려 있는데, <경회루북호명처해괴문(慶會樓北狐鳴處解怪文)> 등의 해괴문은 괴이한 일에 대해 재액을 풀고 안녕을 빌려는 의도로 지어진 독특한 글이다.
▶경재집(敬齋集) | 하연(河演, 1376~145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경재(敬齋) 하연(河演, 1376~14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병화(兵火)에 산일되었는데, 5세손 하혼(河渾)이 시문 약간 편을 모아 ≪진양연고(晉陽聯稿)≫에 편입하여 1609년 처음으로 간행하였고, 1826년에 후손 하대성(河大成)ㆍ하인혁(河寅爀) 등이 ≪진양연고≫에 수록된 저자의 글과 흩어진 시문을 모아 합천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밀양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삼간본이다. 시로는 1418년 세종이 태종을 상왕(上王)으로 삼고 상왕전(上王殿)에 나가 헌수(獻壽)할 때 세종ㆍ태종 및 제신(諸臣)과 함께 지은 <시연연구(侍宴聯句)> 등을 비롯해 지우(知友)에게 보내는 시와 자연물을 노래한 시가 많다. 소(疏)로는 <척불소(斥佛疏)>가 있는데, 전문(全文)은 전하지 않는다. 서(序)로는 1425년 경상도 관찰사 재임 시에 지은 <경상도영주제명기서(慶尙道營主題名記序)> 등이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의 정도를 바로세우고자 했고 경(敬) 사상을 중시했던 저자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경재집(景齋集) | 우성규(禹成圭, 1830~190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재(景齋) 우성규(禹成圭, 1830~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족손 택와(擇窩) 하철(夏轍)이 가장(家狀)을 작성하고, 족질 성동(成東)과 기동(畿東)이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에게 묘갈명을 받고, 박승동(朴昇東)에게 행장을 받았으나 서발문 등 간행과 관련된 자료가 없어 명확한 편찬 경위는 알 수 없고, 1911년 사림의 지원을 받아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4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으며, 별도의 서발문은 없다. 권1~2는 시(詩)이다.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연작시, 유람시, 차운시, 만시 등이 있다. 권13은 명(銘), 잠(箴), 찬(贊), 전(箋),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갈문(墓碣文), 행장(行狀)이다. 명은 강학소인 열락당, 병풍의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등에 대한 것이다. 잠은 1888년에 지은 것으로, 1850년 경술년에 부친이 관즐(盥櫛)할 때 빗이 매우 낡았던 것을 기억하며 부친의 검약한 규모를 기록한 <소잠(梳箴)>이다. 권14는 부록으로 박승동이 지은 행장(行狀)과 송병순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어 있다.
▶경정집(敬亭集) | 이민성(李民宬, 1570~1629)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경정(敬亭) 이민성(李民宬, 1570~162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생전에 편집해 둔 ≪연사창수집(燕槎唱酬集)≫ 등이 가장(家藏)되어 있었으나 많은 작품이 산일(散佚)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원집은 저자의 동생 이민환(李民寏)이 수집ㆍ편차한 정고본을 아들 이정기(李廷機)가 현종 연간에 초간한 것이고, 이후 속집 및 연보가 추각되었다. 시는 1592년에 강릉 임소로 부친을 모시고 갔을 때 지은 <배등북성(陪登北城)>, <알이제묘(謁夷齊廟)> 등 1602년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들이 다수 들어 있고, <부해(浮海)> 등 1605년 제주의 점마어사(點馬御史)로 다녀오면서 지은 시들도 있다. 부(賦)로 <봉황래의(鳳凰來儀)>, 사(辭)로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 등과 <망일헌기(望日軒記)> 등의 기문 등이 있고, 잡저 가운데 태극(太極)의 동정(動靜) 등을 논한 책문(策問)이 있다. 속집에 실린 <조천록(朝天錄)>은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올 때의 기록이다. 시작(詩作)에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저자의 시 세계를 감상할 수 있고, 당시 중국에서의 여정과 활동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경헌집(敬軒集) |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세자인 효명세자(孝明世子) 이대(李旲, 1809~1830)의 문집이다. 저자는 1834년 11월 헌종 즉위 이후 곧 익종(翼宗)으로 추존되며, 이듬해 저자의 시문 역시 순조의 시문과 함께 ≪열성어제(列聖御製)≫에 수록되어 간행하려는 작업이 시작되어 이 과정에서 저자의 문집이 증보되어 다음해 1836년 1월 23일에 새로이 정리된 선사본이다. 저자의 시문은 현종실록자(顯宗實錄字)로 인쇄된 ≪열성어제≫의 권90~95 및 별편(別編) 권6에 편정(編定)되었으나, ≪열성어제≫는 선집(選集)이기 때문에 전집은 따로 필사해서 올린 것이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마다 목차가 있다. 권1은 부(賦), 사(詞), 시(詩)이다. 권6은 연구(聯句), 치사(致詞), 악장(樂章), 전문(箋文)이다. 권7은 소(疏), 제문, 서(書), 비(批), 서(序), 기(記), 잠(箴), 찬(贊), 상량문(上樑文)이다. 권12는 비(批)이다. 1828~1830년에 지은 것이다. 권9~12에 실린 글들은 대리청정 시기에 벌어진 중요한 정치적 사건과 정국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긴요한 자료이다.
▶경현재집(警弦齋集) | 강세진(姜世晉, 1717~178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경현(警弦)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봉흠(鳳欽)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족제 세백(世白)의 산정을 받은 고본(稿本)을, 세백의 아우 세륜(世綸)과 저자의 외손 정상리(鄭象履)가 교수ㆍ편차하여 1840년 아버지 필신(必愼)의 모헌집(慕軒集)과 함께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권별(卷別)로 수록 문체를 간략하게 기술한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세서회(洗鋤會)>는 1772년 7월 고을의 농민들이 저자를 ‘호미씻이’에 초대한 것을 계기로 지은 것으로,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모여 즐겁게 호미씻이를 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풍습의 유래와 함께 상세히 설명하는 장문의 시서(詩序)가 있다. 권3은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전(傳), 여문(儷文), 애뢰(哀誄)이다. 전은 상주 단밀현(丹密縣) 김씨 집안의 세 여인과 충원(忠原) 사람 홍차기(洪次奇)의 효행, 상주 지질리(坁垤里)의 효자 김영세(金榮世)와 관련된 기이한 일화를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작성 연도가 없는 정상리의 발(跋)이 있다.
▶계곡집(谿谷集) | 장유(張維, 1587~1638)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문집이다. 저자는 졸하기 하루 전까지 글을 쓸 정도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또 스스로 정리해 놓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저자 사후 아들 장선징(張善澂)이 계곡초고(谿谷草稿)를 수습하여 보충하고, 계곡만필(谿谷漫筆)까지 붙여 완질(完秩)을 만들어 1643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내용은 사(詞), 부(賦), 표(表), 전(箋), 교서(敎書), 책문(冊文), 잠(箴), 명(銘), 찬(贊), 잡저(雜著), 설(說), 서(序), 기(記), 제문(祭文), 비(碑), 행장(行狀), 소(疏), 계(啓), 주(奏), 자(咨), 격첩(檄帖)과 고금체(古今體)의 여러 가지 시와 만필(漫筆) 2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곡만필은 208가지의 단편을 모은 것인데, 천지와 바다에 관한 견해, 왕양명(王陽明)과 육상산(陸象山)에 관한 평가, 우리나라의 학풍,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대한 평가, 사기(史記)의 오류, 율곡(栗谷)의 삭발 여부, 중국의 시험과 인재 선발 등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어 저자의 학문하는 태도, 시사(時事)에 관한 견해, 인물 평가, 우주관 등을 이해할 수 있다.
▶계구암집(戒懼菴集) | 윤형로(尹衡老, 1702~178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계구암(戒懼菴) 윤형로(尹衡老, 1702~1782)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윤수연(尹守淵)이 시문(詩文)을 수집, 편차하여 1865년경 활자(活字)로 간행하였다. 시(詩)는 시체(詩體)의 구분 없이 저작 시기별로 편차된 듯하다. 이백(李白)의 시를 차운한 시가 많고, 그 외에 의성(義城)의 풍광을 읊은 시, 제일 마지막에는 <인물성편전영(人物性偏全詠)>이 있다. 서(書)는 태극설(太極說)을 비롯하여 성리설(性理說)의 의문을 질의한 내용, 심설(心說)과 관련된 내용, ≪맹자(孟子)≫ 고자장(告子章)을 두고 이기(理氣)를 설명한 것, ≪중용장구(中庸章句)≫ 내용에 관한 문답(問答) 등이 있다. <존성록(尊性錄)>은 원성편(原性篇)과 복성편(復性篇)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새해에 지은 <원조잠(元朝箴)>을 비롯하여 스승이나 동문 등에 대한 제문 5편과 가훈이 실려 있는데, 가훈(家訓)은 독서, 극기, 조심, 검신(檢身)을 비롯하여 사친(事親), 우애(友愛), 형처(刑妻), 교자(敎子), 근검(勤儉), 그리고 세상의 처세를 담은 거향(居鄕), 교우(交友), 고궁(固窮), 사환(仕宦) 등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당집(溪堂集) | 유주목(柳疇睦, 1813~187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이가묵장(李家墨莊)
조선 시대 계당(溪堂) 유주목(柳疇睦, 1813~1872)의 문집이다. 본집은 1928년 8월에 증손이 16권 8책 100질을 우천(愚川) 계당(溪堂)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詩)로는 차운시, 소회를 읊은 시, 경물시, 만시 등이 있다. 이중에서 경수연시(慶壽宴詩)은 1868년 정승을 사직하고 전리(田里)로 돌아온 부친을 위해 우천 집에서 형제들이 잔치를 열고 지은 시이고, <제자인동헌벽상(題慈仁東軒壁上)>은 자인 현감으로 있는 아들 유도석(柳道奭)에게 자애로 백성을 다스리고 어짊으로 만물을 사랑하라고 권면한 시이다. 소(疏) 중에서 <의상육조소(擬上六條疏)>은 학문에 힘쓰고, 이교도와 외국 선박과의 연락을 봉쇄할 것, 인재를 등용할 것 등 여섯 조항을 아뢰려고 쓴 작품이다. 서(書) 중에 <답박문실문목(答朴文實問目)>에서는 박규현에게 육선생의 향사에 관한 예를 들어 제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고, <답이양백심경문목(答李良伯心經問目)>에서는 이준구(李濬九)가 질의한 심학도(心學圖),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 등에 대해 답하고 있다. 잡저 중에는 사육신의 글에 대해 적은 <육고기사(六稿記事)> 등이 있다.
▶계서일고(溪西逸稿) | 성이성(成以性, 1595~166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종진(鍾震)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6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교서, 제문, 소(疏), 계사, 서계, 서(書), 연행일기(燕行日記)이다. 특히 <연행일기>는 1645년 사은 겸 진하사(謝恩兼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연행한 기록이다. 소현세자가 돌아오자 조정에서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을 정사, 정세규(鄭世規)를 부사, 저자를 서장관으로 삼아 연경으로 보냈다. 3월 17일 한양을 출발하여 윤6월 12일 복명하기까지의 경위가 자세하다. 현지인들에게 들은 청(淸)나라의 정세와 숭정황제의 최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쟁론원종추숭소(爭論元宗追崇疏)>는 1634년 인조의 생부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는 데 반대하는 상소이다. <사수찬소(辭修撰疏)>는 1635년 인성군의 자손을 석방한 일로 물의가 일어나자 사직을 청하는 상소이다. 권2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 및 만사 등이고 권말에 1863년 8대손 종진(鍾震)이 지은 지(識)가 실려 있다.
▶계암집(溪巖集) | 김령(金坽, 1577~164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계암(溪巖) 김령(金坽, 1577~1641)의 문집이다. 저자는 평소 문한(文翰)을 즐기지 않아 시문 약간 권만이 문인과 자제들에 의해 간직되다가 1772년 3월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는 약 330여 수가 있는데, 서정적인 시가 많으며, 저자가 어릴 때 자랐던 복천(福川)을 그리며 지은 시, 청량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 병자호란 때의 절통한 마음을 표현한 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린 데 대한 통분을 나타낸 시 등이 있다. 서(書)로는 지우(知友)와 아들에게 보낸 것 27편이 있고, 그밖에 소(疏), 제문, 표전(表箋)과 잡저 등이 실려 있다. 표전은 대부분 중국의 인물과 사실(史實)을 끌어다 작성하였다. 잡저로는 의성(義城)에서 걸식을 하며 노모를 봉양한 효자에 대한 <효자전(孝子傳)>이 있다. <정훈차록(庭訓箚錄)>은 저자가 부친에게 들은 제례(祭禮), 학문, 행동거지 등에 대한 훈계이다. 광해군 때 혼정(昏政)에서 벗어나 인륜을 지킨 것, 인조반정 후 의리를 지켜 관직에 나가지 않은 것, 병자호란 후 명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킨 것을 두고 저자의 비분강개한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료이다.
▶계와집(桂窩集) | 조비(趙備, 1616~165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계와(桂窩) 조비(趙備, 1616~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原集) 7권, 부록(附錄) 합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는데 권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문체별로만 정리되어 있다. 권1~5는 시(詩)로, 권5 전반부까지는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있고, 권5 후반부에는 남대록(南臺錄)을 시체(詩體) 구분 없이 수록하였다. 특히 병려문(騈驪文)은 남조(南朝)의 서유체(徐庾體)를 깊이 터득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7에는 서(序), 상량문, 교서(敎書)가 수록되어 있다. 서는 <제야서(除夜序)>, <노탄분로서(盧灘分路序)>, <애백주서(哀伯周序)>, <각금당서(覺今堂序)>이고, 상량문은 자신의 집에 대한 <백실상량문(白室上樑文)>이며, 교서는 전라 감사 권우(權堣)에게 내리는 것이다. 부록으로 이단하가 1673년에 지은 묘지명(墓誌銘)과 박세채(朴世采)가 1693년에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어 있으며, 끝으로 이단하가 1673년에 지은 부인 덕수 이씨(德水李氏)의 묘지(墓誌)가 수록되어 있다.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 최치원(崔致遠, 85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통일신라 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문집이다. 885년(헌강왕11)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이듬해인 886년(정강왕1) 당나라에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을 28권의 문집으로 간추려서 정강왕에게 바쳤는데, 이 가운데 ≪중산복궤집≫ 등 8권은 전하지 않고 ≪계원필경≫ 20권만 전한다. 1834년 서유구(徐有榘)가 호남 관찰사로 재직 중 홍석주(洪奭周)의 집에 가장(家藏)된 구본(舊本)을 얻어 편목(編目)과 의례(義例)는 그대로 두고 잘못된 글자만을 교정하여 전주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2의 표(表), 권3의 장(狀), 권4~5의 주장(奏狀)은 대부분 천자에게 올린 글이다. 권6은 당장(堂狀)으로 중국 관리들에게 올린 글이다. 권11에는 격서(檄書) 등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토황소격문>은 저자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친 글이다. 권12는 <위곡(委曲)>으로 중국 관원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가 실려 있다. 권15에는 도교 관계의 글인 <재사(齋詞)>가 있다. 신라와 당과의 교통 및 문화 교류 연구 자료로서뿐 아니라 사륙변려체의 명문을 뽑아 넣은 문집으로 한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자료이다.
▶계은유고(溪隱遺稿) | 이정립(李廷立, 1556~159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계은(溪隱) 이정립(李廷立, 1556~159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을 아들 이진담(李眞聃)이 수집하여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에게 편차를 부탁하였고, 이 정고본을 이항복의 아들 이성남(李星男)이 보관해 두었다가, 그 뒤 이성남의 증손 이광좌(李光佐)가 이를 수습하여 1708년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산문에는 전(箋) 6편에 계(啓), 교서, 사문(赦文), 비답(批答), 소(疏), 서(序), 기(記), 상량문, 제문이 한두 편씩 실려 있다. 전으로는 1582년 응제(應製)로 지은 <독서당사사선전(讀書堂謝賜扇箋)>, 1590년 평난공신에 봉해진 뒤에 올린 <평난공신사사연전(平難功臣謝賜宴箋)> 등이 실렸고, 사문으로는 1589년에 지어 올린 <참역괴정여립사문(斬逆魁鄭汝立赦文)>이 있다. 비답으로는 <우의정정철불윤비답(右議政鄭澈不允批答)>이 실려 있다. 운문으로는 부(賦) 1편과 시(詩)가 실려 있다. 부는 강호에서 임금을 걱정하는 내용의 <처강호우기군(處江湖憂其君)>가 있고 16세 때 지은 시로는 호당(湖堂)을 주제로 한 시, 평난공신이 될 때 지은 시 등이 있다. 당시 시대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계음집(溪陰集) | 조팽년(趙彭年, 1549~161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계음(溪陰) 조팽년(趙彭年, 1549~161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시부, 잡저 도합 500여 편이 가장되었는데 후손 조득하(趙得河)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한 것을 1894년에 후손 조면형(趙冕衡)에게 선사를 부탁하여 간행 준비를 마쳤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후손 조면형이 교정을 맡고, 조창하(趙昌河)가 재정을 맡고, 최선상(崔善尙) 등이 감인을 맡아 1898년 11월에 문집의 판각을 시작하여 1899년 4월에 영암(靈巖)에서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99년에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2는 시로, 의주에서 지은 시를 비롯해 왜란 이후에 지은 시 등이 있다. 권3은 부(賦)이고 권4는 논(論) 2편으로 그 중에 <범순인논구채확론(范純仁論救蔡確論)>은 구법을 문란하게 한 채확의 허물을 용서한 범순인의 일에 대해 논한 글이다. 권5에는 전(箋), 서(書) 등이 실려 있다. 권6은 행장, 묘표 등의 묘도문자, <호성공신도감정문(扈聖功臣都監呈文)> 등에서 뽑은 저자 관련자료 등이며, 권미에는 1899년에 지은 후손 조면형(趙冕衡)의 후서가 있다.
▶고계집(古溪集) | 이휘령(李彙寧, 1788~186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고계(古溪) 이휘령(李彙寧, 1788~186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가장(家藏)되어 있던 문집 약간 권을 손자 중인(中寅)과 장증손 충호(中寅)가 저자의 족자 만인(中寅)에게 교정(校正)과 함께 묘갈명(墓碣銘)을 위촉하고, 외종손 허훈(許薰)으로부터 산정(刪正)과 발문(跋文)을 받은 뒤 1897년 목활자(木活字)로 인출에 착수하여 늦어도 1898년에는 완료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本集)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실려 있다. 권4는 기(記), 발(跋), 상량문(上樑文)이다. 그중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의병 구재(懼齋) 김득추(金得秋) 및 정재(靜齋) 조상치(曺尙治)의 실기에 대한 것과 단종(端宗) 복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가 자결한 권산해(權山海)를 기리는 정충각(旌忠閣)의 중수후지(重修後識)이다. 권5는 축문(祝文), 제문(祭文), 비명(碑銘)이다. 비명은 <박무의공동도복성비명(朴武毅公東都復城碑銘)>으로 임진왜란 때 경주성의 수복에 큰 공을 세웠던 무장 박의장(朴毅長)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권말(卷末)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외종손 허훈의 발(跋)이 있다.
▶고담일고(孤潭逸稿) | 이순인(李純仁, 1533~159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 1533~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7대손 안분당(安分堂) 이공(李公)이 남은 유고(遺稿)와 공사 문자(公私文字)를 수집한 데 이어 10대손 이진옥(李鎭玉)이 시문을 여러 문적에서 찾아 모으고 제현(諸賢)이 찬술한 저자와 관계된 글들을 붙여 2책으로 편차하여 1891년 활자로 간행하였다. 시는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는데, 퇴계 선생이 남쪽으로 돌아갈 때 지은 송별시 <한강송퇴계선생(漢江送退溪先生)>으로 시명(詩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시의 내용은 저자가 평생 여러 명승 사찰을 유람하며 독서처로 삼았던 까닭에 연곡사(燕谷寺), 봉은사(奉恩寺) 등 절에서 읊은 시가 많다. 산문으로 소(疏), 교문(敎文), 제문, 과체(科體)로서 부(賦)ㆍ시(詩)ㆍ표(表)ㆍ책(策) 등이 실려 있는데, 이 중 소는 윤원형(尹元衡) 일파의 위사훈(衛社勳) 삭탈을 요청하며 6회에 걸쳐 올린 것이 있다. 저자는 20세에 이황ㆍ조식을 종유(從遊)하고, 이이ㆍ성혼 등과 친교를 맺고 도학과 문장을 강마하였다. 저자는 팔문장가(八文章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격(詩格)이 맑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봉집(高峯集)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 간행된 것은 손서(孫婿)인 조찬한(趙纘韓)이 선산 부사로 있던 1629년(인조7)으로, 원집을 3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문 수백 편과 <논사록(論思錄)>은 원집이 간행된 다음 해인 1630년 2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시는 209제이다. 내용은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을 때 주고받은 것, 서경시(敍景詩), 차운시(次韻詩) 등이다. 잡저 중에 퇴계 선생과의 편지에는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와 양선생사칠이기왕복서(兩先生四七理氣往復書)에 실리지 않았던 예제(禮制), 인물평, 심성설(心性說) 등이 포함되어 있다. <논사록>은 저자가 경연에서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 등을 강론한 내용을 모은 것으로, 요순(堯舜)부터 정주(程朱)에 이르기까지의 도학 연원(道學淵源)과 제왕의 왕도 정치를 말하고, 성의 정심(誠意正心) 등의 수양을 하여 지치(至治)를 이루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예학(禮學)에 뛰어나고 사서(史書)에 해박하였으며, 퇴계의 주리론적 성리학의 완성을 견인한 저자의 문학과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고산유고(孤山遺稿)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78년 6권의 정고본(定稿本)이 만들어져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나, 이 초간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796년 3월에 초간본을 보각(補刻)한 후쇄본이다. 시는 250여 제(題)가 실려 있는데, 14세에 지은 <자국도회주(自國島廻舟)>를 시작으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 지은 시들이 많다. 맨 끝에 연대를 알 수 없는 <기휘일시(記諱日詩)>가 있는데, 친가와 외가 조상의 기일(忌日)을 엮은 시이다. 상소로는 이이첨, 박승종 등의 주벌을 청한 <병진소(丙辰疏)>,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제(服制)의 삼년설(三年說)을 주장한 <논예소(論禮疏)>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서(書), 제문, 회문(回文), 축문(祝文), 서(序), 기(記), 설(說) 등이 있다. 별집 상(上)은 시(詩), 부(賦), 논(論), 책(策), 표전(表箋)이고, 하(下)는 가사(歌辭)이다. 가사는 영덕(盈德) 유배 후 해남에서 지낼 때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등이 있다. 국문학 작품을 많이 싣고 있어 한국 시가 연구 자료로 주목할 문집이다.
▶고산집(孤山集) | 이유장(李惟樟, 1625~170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고산(孤山) 이유장(李惟樟, 1625~170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증손 이상신(李象辰)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한 유문을 편차하고 교정하였으며, 그가 졸한 후에 이홍신(李弘辰)과 이민정(李敏政) 등이 유집(을 마저 정리하여 1775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는 370여 제(題)가 실려 있는데, 대체로 당시 영남의 여러 인사들과 차운한 시(詩), 이들에 대한 만시(挽詩)가 주를 이룬다. 서(書) 중에 스승 유직(柳㮨)에게 답한 편지에서는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의 강학(講學)을 청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記)로는 이동표(李東標)를 위해 지어준 <향양재기(向陽齋記)>, 자신의 초당에 지은 <마애초당기(磨崖草堂記)> 등이 있다. 발(跋)로는 고려 말의 김구용(金九容)을 위해 유고(遺稿)를 편찬하고 지은 것, 이환(李煥)의 문집 ≪호우유고(湖憂遺稿)≫ 등에 쓴 것이 있다. 그밖에 제문, 서문 등이 실려 있다. 주자와 이황의 예론(禮論)을 절충하여 독자적 이론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단군 이후의 사적을 간추린 ≪동사절요(東史節要)≫를 편찬하기도 한 저자의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다.
▶고산집(鼓山集) | 임헌회(任憲晦, 1811~1876)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 1811~1876)의 문집이다. 고제(高弟)인 전우(田愚) 등이 1883년 9월 목활자로 원집 20권과 속집 13권을 인행하였다. 원집 권1에 실린 청년기의 시는 이이, 주자, 도잠 등의 시에 차운하거나 집구한 것이 많다. 이밖에 <억망제회숙(憶亡弟晦叔)>은 동생 임헌명(任憲明)을, <억망아달교(憶亡兒達敎)>은 요절한 아들 달교를 그리는 시이고, <매산선생만사(梅山先生輓詞)>은 스승 홍직필을 애도하는 만시이다. 이밖에 <상연(賞蓮)>, <청야음(淸夜吟)> 등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시들도 있다. 권3~7은 서(書)로, 경전, 예설 등에 대해 토론한 것들이 많다. 권8의 잡저 중에서 <이계(二戒)>는 부모의 상례를 성(誠)과 경(敬)으로써 하라는 것과 남녀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 가도를 바르게 하라는 내용이고, <간서잡록(看書雜錄)>은 선현들의 언행 가운데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뽑아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권9에 실린 발문 중에는 저자가 편찬한 ≪오현수언(五賢粹言)≫에 대한 발문과 홍직필이 문인들에게 준 편지를 묶어 간행한 서간집의 발문인 <매산선생서증편발(梅山先生書贈編跋)> 등이 있다.
▶고송집(孤松集) | 신홍망(申弘望, 1600~167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고송(孤松) 신홍망(申弘望, 1600~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증손 진구(震龜)가 이유장(李惟樟)이 산정한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눌은 이광정(李光庭)의 교정을 거쳐 1739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3권, 부록 2권 합 2책으로, 권수에 이광정이 쓴 서문이 있고 목록은 없다. 권1~2는 시로, 저자의 시가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로 수창한 사람은 조송년(趙松年), 이정기(李廷機), 심징(沈澂), 신유(申濡) 등이다. 권3은 소(疏)와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본현폐막소(本縣弊瘼疏)>는 의성 현감을 대신해서 지은 것으로, 1616년 재상경차관(災傷敬差官) 강린(姜遴)이 본세(本稅) 외에 500여석의 허세(虛稅)를 늑정(勒定)한 이후로 고질이 된 명목에 대해 혁파해줄 것을 호소한 내용이다. 제문은 장현광(張顯光), 박칭(朴偁), 자형 이거(李擧), 사위 유중하(柳重河), 이정기(李廷機) 등에 대한 것이다. 부록(附錄) 상ㆍ하는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송서(送序), 제문 등이고, 권말에 권상일(權相一)이 173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고운집(孤雲集) | 최치원(崔致遠, 85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일신라 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문집이다. 저자가 당나라에서 지은 시문은 ≪계원필경집≫의 간행으로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그러나 귀국 후에 지은 대부분의 산문과 당나라에 있을 적에 지은 약간의 시는 여러 문헌과 금석문 등에 흩어져 있었다. 이에 악부ㆍ≪동문선≫ㆍ야사ㆍ승전(僧傳)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록을 모아 1926년에 간행하였다. 권1의 시는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있다. 표(表)와 장(狀)은 귀국 후에 지은 신라왕의 대작(代作)으로 당(唐)에 보낸 국서(國書)이다. 기(記) 2편은 불교와 관계된 글이다. 권2에는 <무염화상비명(無染和尙碑銘)>과 <진감화상비명(眞鑑和尙碑銘)>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신라 왕실에서 사원을 세운 내력을 담고 있는 <대숭복사비명(大崇福寺碑銘)>과 <지증화상비명(智證和尙碑銘)>이 실려 있다. 이밖에 ≪동문선≫에 수록된 <순응화상찬(順應和尙贊)>ㆍ<이정화상찬(利貞和尙贊)> 등 3편의 찬(贊)이 있다. 비명(碑銘)은 귀국 후 왕명을 받들어 지은 것으로, 당시에 유행한 사륙변려문(四六騈驪文)으로 지어졌다.
▶고재집(顧齋集) | 이만(李槾, 1669~173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고재(顧齋) 이만(李, 1669~17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증손 우계(宇啓)가 1809년에 이우(李㙖)에게 행장을, 1816년에는 김굉(金㙆)에게 묘갈명을 받는 등 유적을 정리하고 시문을 수집 편차하였고, 1856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권1~8의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시에는 조선장(曺善長), 조덕린(趙德鄰), 권구(權榘) 등과 교유한 것, 김시온(金是榲)이 은거했던 와룡산(臥龍山) 도연(陶淵)에서 김시온의 손자에게 지어 준 시 등이 있다. 편지는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7은 서(書)이고, 권7에 잡저가 7편 실려 있다. 잡저 가운데 <상촌김선생유적발(桑村金先生遺蹟跋)>은 안동 출신으로 조선개국 후 자결하여 절의를 지킨 김자수(金自粹)의 관련 기록에 붙인 것이고, <봉유제생문(奉諭諸生文)>은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훈장을 맡으며 김성탁 등과 교육에 전념할 때 올바른 학문의 길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권9는 습유이고, 권10은 부록으로 이우가 1809년에 지은 행장을 비롯하여 묘갈명, 묘지명,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고주집(孤舟集) | 정운희(丁運煕, 1566~163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고주(孤舟) 정운희(丁運煕, 1566~1635)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덕주(德輖)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황윤석(黃胤錫)의 교정을 거쳐 종제 덕언(德彥)과 함께 1786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786년에 황경원(黃景源)이 지은 서문, 1785년에 황윤석(黃胤錫)이 지은 서문, 1785년에 황윤석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별로 실려 있고, 권2는 시(詩), 문(文), 부록(附錄)이다. 그중에서 <제충렬록후(題忠烈錄後)>는 1619년에 김응하(金應河)가 심하(深河)에서 전사하자 박승종(朴承宗) 등이 엮은 ≪충렬록(忠烈錄)≫에 대한 제후(題後)로 김응하의 충성을 기린 것이다. 문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인 <거의격(擧義檄)>, 일본과 힘을 합쳐 명(明)나라를 치려는 것은 무고(誣告)라고 황응양에게 해명하는 <상황지휘사서(上黃指揮使書)> 등이다. 부록은 이신의, 홍서봉에게 보낸 편지이다. 끝 부분에 ‘병오중추하한감인현손덕언방손광우(丙午中秋下澣監印玄孫德彦旁孫光宇)’라는 간기(刊記)가 있다.
▶고죽유고(孤竹遺稿) | 최경창(崔慶昌, 1539~158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란 중에 대부분 산일되고 약간의 가장본(家藏本)만이 남아 있었는데, 손자 최진해(崔振海)가 이 가장본을 바탕으로 백광훈의 시집과 저자의 시집을 합간해 만든 ≪최백집(崔白集)≫ 등에서 유문을 수집하여 1책으로 편차하였다. 이것을 1683년 최진해의 아들 최석영(崔碩英)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수에는 1683년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문이 실려 있다. 본집에는 140여 수의 시가 시체별(詩體別)로 나뉘어 실려 있는데, 때때로 시제(詩題) 아래 인물과 장소, 또는 시를 찾은 경위 등을 설명한 편자(編者)의 주가 보인다. 1576년 종사관으로 중국에 다녀올 때 도중의 감상을 읊은 <천단(天壇)>, 1577년 가을 영광 군수를 사직한 뒤 고향에도 못 돌아가고 서울에 우거하는 빈한한 생활 속에서 자신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을 읊은 장편시 <기군환락우성서작(棄郡還洛寓城西作)>, 두보(杜甫)의 쓸쓸한 말년을 두보시의 구절을 따서 지은 <노병유고주(老病有孤舟)>가 실려 있다. 또 <양호사(養虎詞)>는 이이(李珥)가 화를 입을 것을 예언한 시로 유명하다.
▶고청유고(孤靑遺稿) | 서기(徐起, 1523~159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의 문집이다. 저자가 본래 저술을 남기기를 좋아하지 않아 시문이 얼마 없는 데다 그마저도 왜란을 겪는 사이에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후 5대손 서행원(徐行遠)이 가전 구록(家傳舊錄)과 제가(諸家)의 문적(文籍)에서 수습하여 시(詩) 11수를 모으고 박지화(朴枝華)가 지은 묘갈명 등을 찾아 1책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을 충청도 관찰사로 있는 홍계희(洪啓禧)에게 가져가 편차(編次)와 간행(刊行)을 부탁하였고 1750년 공주(公州)에서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책의 구성은 본집의 시와 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시로는 10세 때 지은 <제죽병(題竹屛)>, 송익필(宋翼弼)을 만나던 일과 연관된 <숙보은객사(宿報恩客舍)> 등이 있다. 부록에는 묘갈명(墓碣銘), 행장(行狀), 유사(遺事) 등이 실려 있는데, <유사>에는 타인의 문집에 나오는 저자 관련 기사를 발췌하여 수록해 놓았다. 제자백가의 책들을 섭렵하고, 선학(禪學)을 애호하였으나, 토정 이지함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부터 유도(儒道)가 정도(正道)임을 깨닫고 후학을 가르치는 데 힘쓴 저자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 | 강위(姜瑋, 1820~188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고환(古歡) 강위(姜瑋, 1820~1884)의 문집이다. 1885년 아들 강요선(姜堯善)이 시문을 수집하여 광인사(廣印社)에서 17권 3책의 활자로 시고(詩稿)를 간행하였고, 문고(文稿)는 1889년 광인사에서 4권 2책의 활자로 간행하였다. 시고는 권별로 시집 형태를 갖추며, 권마다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권8은 동루연상집(東樓聯賞集)으로 북고사(北固寺)에서 결하(結夏)할 때 지은 시, 선게(禪偈)를 희작(戱作)한 시 등 불교와 관련된 시가 들어 있고, 권11은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으로 저자가 주축이 되어 역관(譯官), 의관(醫官) 등 여항인(閭巷人)과 결성한 육교시사(六橋詩社) 모임에서 지은 시들이 실려 있다. 권12는 북유초(北遊草)로, 정건조를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올 때 지은 시이다. 문고에는 서(序), 기(記), 설(說), 송(頌), 논(論), 의(議), 서(書), 유(諭), 모화문(募化文) 등이 있다. 보유 가운데 <담초여황효후시랑(談艸與黃孝侯侍郞)>은 1874년 중국에 갔을 때 황옥(黃鈺)과 필담한 것으로, 일본의 대만 침략 전말 등을 우리에게 알려 주어 대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글이다.
▶곡운집(谷雲集) | 김수증(金壽增, 1624~170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가장유고(家藏遺稿)를 바탕으로 김창흡(金昌翕)이 시문을 편차 정리하고, 저자의 외증손인 이의현(李宜顯)의 도움을 받아 1711년 목판으로 6권 3책을 간행하였다. 권1~2는 시로 약 540여 수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저자의 동생 및 조카나 사위 등과 수창한 시이다. 내용은 산수를 유람하며 읊은 것이 많은데, 연작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권3~4는 31편의 기문(記文)이다. 내용상 가기(家記)와 유기(遊記)로 나뉜다. 가기는 조부 김상헌(金尙憲)에 대한 유사가 많으며, 선조의 묘갈에 대한 통문(通文)과 의논 등이 있다. 유기는 <유희령산기(遊戱靈山記)>를 비롯해 금강산을 유람한 <유풍악기(遊楓岳記)>까지 모두 날짜별로 일정과 감상을 자세히 적었다. 그밖에 서(書)와 제문, 장지(狀誌)와 잡문이 있는데, 잡문 중 <김승경사실(金勝京事實)>은 병자호란 때 피랍된 김승경이란 자가 여진과 몽고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그곳의 풍속, 지리, 목축 등 생활상이 소개된 글이다. 성리학에 심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리학 관계 논저를 남기지는 않은 점이 특이하다.
▶곤륜집(昆侖集) | 최창대(崔昌大, 1669~1720)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 1669~172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최수신(崔守身)이 수습하여 편정한 것으로 보인다. 초고가 대부분 산일된 가운데 부(賦) 2수, 시(詩) 712수, 문(文) 227수를 선정하여 1725년 여름에 활자로 인쇄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부친의 임소에 따라갔을 때에 지은 것, 부친을 모시고 산천을 유람하며 지은 것, 암행어사로 호남을 순찰할 때 지은 것, 육진(六鎭)을 다녀오면서 지은 것 등이 실려 있다. 기(記)로는 육진을 다녀올 때 지은 <북정기(北征記)>, 양주(楊州) 송산(松山)에 있는 부친의 정자 일표정(一瓢亭)에 대해 지은 기문 등이 실려 있다. 소차(疏箚)로는 서연(書筵)을 자주 열어야 함을 아뢴 것, 성균관의 폐단 개선책에 대해 올린 것 등이 실려 있다. 잡저 중 책문(策問) 4편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근본 요지를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설명했으며, <경시영대송(經始靈臺頌)>에서는 왕도 정치를 강조했다. 그밖에 상서(上書), 서계(書啓), 편지, 교서, 비답, 잠(箴), 송(頌), 찬(贊), 제문, 애사, 묘도 문자, 유사(遺事) 등이 있다.
▶공백당집(拱白堂集) | 황덕일(黃德壹, 1748~180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공백당(拱白堂) 황덕일(黃德壹, 1748~1800)의 문집이다. 본집은 8권 3책이 사본으로 전한다. 권1의 시(詩) 중 <극기(克己)>는 저자가 스승 안정복에게 극기에 대해 묻고 그 대답을 얻은 후 스스로 경계한 것이고, <독사유감(讀史有感)>은 사서(史書)를 읽고서 왕도와 패도가 이어지고 흥망이 교차되는 데 대한 감회를 읊은 것이다. 권2는 서(書)로, 내용은 독서법에 대해 논한 것 등이 있다. 권3의 잡저 중 <진학도(進學圖)>는 주자가 말한 학문의 방법인 궁리, 천실, 거경을 도표로 그려 설명한 것이고, <선악기도(善惡幾圖)>는 이(理)와 기(氣)에서 사단칠정이 분리되고, 선악의 구분이 생기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설명을 붙인 것이다. 권4~7에 실린 잡저에는 책을 읽고 느낌을 적은 <독서잡기(讀書雜記)>, 공자(孔子)ㆍ안자(顔子) 등의 가르침과 후인들의 기록을 서술한 <성현기상집설(聖賢氣像集說)>, ≪춘추(春秋)≫를 읽고 경사(經史)를 차례로 나열하여 춘추의 뜻에 부친 <춘추부의(春秋附義)>, 도가(道家)ㆍ석가(釋家) 등의 폐해를 선유들의 말을 인용해서 가숙제자들에게 고한 <삼가략(三家略)> 등이 있다.
▶과암집(果菴集) | 송덕상(宋德相, 1710~178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과암(果菴) 송덕상(宋德相, 1710~1783)의 문집이다. 1929년에 와서야 초간본(初刊本)이 연활자(鉛活字)로 간행(刊行)되었다. 본집은 1933년에 나온 목판본(木板本)이다. 시(詩)는 대부분 자신의 감회를 읊은 것과 차운시(次韻詩)와 만시(挽詩)이다. <철령술회(鐵嶺述懷)>는 저자가 삼수부로 유배갈 때 철령(鐵嶺)을 지나면서 지은 것으로, 고조인 송시열(宋時烈)도 덕원으로 유배갈 때 이 고개를 넘으며 자신의 신세와 국가의 장래를 염려했던 것을 떠올린 내용이다. 소(疏)는 사직소(辭職疏)를 비롯해 홍국영의 누이인 원빈(元嬪)이 죽고 나서 저사(儲嗣) 문제를 언급한 상소인 <청광저사소(請廣儲嗣疏)> 등이 있다. 서(書) 중에는 태극설문목, 가례문목, 오례의문목 등에 답한 것이 있다. 잡저로는 <경연강의(經筵講義)>, ≪대학장구≫ㆍ≪중용장구≫ㆍ≪논어≫ㆍ ≪서전(書傳)≫에 대한 차록(箚錄)인 <경의문변(經義問辨)>,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뵙고 심성론 등에 대해 문답한 <한천문답(寒泉問答)> 등이 있다. 경학과 성리학, 예학의 연구 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으며, 홍국영의 역모와 관련된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과재유고(過齋遺稿) | 김정묵(金正默, 1739~179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과재(過齋) 김정묵(金正默, 1739~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1928년 충북 영동에서 6대손 김용계가 연활자로 간행하였다. 시는 송시열의 <차강절수미음(次康節首尾吟)>을 차운하여 자신의 일생과 회한을 읊은 119수의 연작시 <차수미음(次首尾吟)>이 있다. 이밖에 만년에 집안에 영특한 후손이 있는 것을 기뻐하며 지은 <희증족자재정(喜贈族子在精)>, 황간(黃澗)으로 유배간 이운영에게 보낸 시, 신재응을 송별한 시, 1792년 역병을 피해 친척 지우들과 함께 있으며 지은 시록에 붙인 시 등이 있다. 편지는 문인과 백씨, 조카들에게 보낸 것들인데, 내용은 대부분 상례나 제사, 학문의 진보, 경전의 의문처 등에 관한 것이다. 잡저 <경서변답보유(經書辨答補遺)>는 경전의 집주와 소주(小註)에 대해 저자가 보충 설명을 하거나 의문점을 표시한 것이고, <남당집차변(南塘集箚辨)>, <인심도심설변(人心道心說辨)>, <서기질오상변후(書氣質五常辨後)>, <미발곤부변(未發坤復辨)>, <예설변(禮說辨)> 등은 남당의 잡저와 편지 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그의 설을 반박한 내용이다. 그밖에 제문, 묘지, 전(傳) 등이 있다.
▶과재집(果齋集) | 성근묵(成近默, 1784~185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과재(果齋) 성근묵(成近默, 1784~185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손자 성두호(成斗鎬)가 시문을 수습하여 책자로 만들고 1883년에 8권 4책의 활자본으로 초간하였다. 권1~2의 시(詩) 중에 자경(自警)은 28세에 지난 10년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진 시이고, <주덕시십일장(酒德詩十一章)>은 술의 덕을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 경계하는 내용의 사언시(四言詩)이다. 1843년경에 지은 <관동기행고시십이장장팔구(關東紀行古詩十二章章八句)>는 이천준(李天峻)과 관동 지방을 유람했을 때 지은 시이다. 권3의 소계 가운데 <정미봉사(丁未封事)>는 이양선에 대한 엄중한 대처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권4~5의 잡저 중 가훈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심성을 보존하는 것부터 일용의 세칙에 이르기까지 집안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제정한 것이다. 서(序) 중에 <동유록서(東遊錄序)>는 이천준과 관동 지방을 유람한 기록인 동유록 뒤에 붙인 서문이다. 기(記) 중에 <하석정기(霞石亭記)>는 장령(掌令)을 사직하고 관악산 아래로 물러나 지은 정자에 붙인 것이고, <작약산료기(芍藥山寮記)>는 강필로(姜必魯)가 태백산 아래에 지은 별서에 붙인 것이다.
▶관란유고(觀瀾遺稿) | 원호(元昊, 미상)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관란(觀瀾) 원호(元昊, ?~?)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원숙강(元叔康)이 사관으로 있다가 직필(直筆) 때문에 죽음을 당하자 저자가 직접 불태워 버려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26년 후손 원지상(元持常) 등이 저자의 흩어진 유고와 저자와 관련된 실기(實記) 등을 합하여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1책이다. 권수에는 한치응이 지은 서와 원세보(元世寶)가 지은 중간서(重刊序)가 실려 있다. 권1에는 저자의 유고(遺稿) <탄세사(歎世詞)>ㆍ<몽유록(夢遊錄)>ㆍ<여우인서(與友人書)> 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몽유록>의 작자가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권2~3은 실기이다. 권2에는 1681년 영월 부사 곽세익이 지은 전(傳)을 비롯하여 행장ㆍ묘갈명과 정려(旌閭)ㆍ증시(贈諡)에 관련된 글을 수록하였다. 권3에는 저자와 관련된 기록과 서원에 배향하고 사액한 전말에 대한 기록, 생육신의 행적을 드러내는 글들을 수록하였다. 권4는 척유(摭遺)로 사료와 후인들의 제영시(題詠詩)를 수록하였다.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를 바라보며 신하의 도리를 다한 저자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관란재유고(觀瀾齋遺稿) | 고회(高晦, 1636~171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란재(觀瀾齋) 고회(高晦, 1636~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5대손 명린(命麟)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2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8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시고(詩稿) 없이 문고(文稿)로만 이루어져 있다. 권두(卷頭)에 1862년에 쓴 홍순목(洪淳穆)의 서(序)와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은 송시열(宋時烈) 등 11人에게 보낸 40편의 서(書)이다. 권2는 서(序), 기(記), 문(文)이다. 서(序)는 담양 부사(潭陽府使)로 부임하는 홍득우에게 써 준 것 등이며, 기는 저자가 15세 때 심은 괴목(槐木)과 관련하여 자신의 이안재(怡顔齋)에 대해 쓴 것 등이다. 권3은 자형인 참의(參議) 장선충(張善冲)에 대한 행장(行狀)과 선비(先妣) 유인 강씨(孺人姜氏)에 대한 가장(家狀)인데, 가장 뒤에 송시열이 찬한 묘지(墓誌)가 부기(附記)되어 있다. 권4는 제문(祭文)이고 권5~8은 부록으로 가장(家狀), 행장(行狀), 제문(祭文), 묘지명(墓誌銘), 유사(遺事) 등이 기재되어 있다. 권말에 1862년에 신석우(申錫愚)가 쓴 발(跋)이 실려 있다.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 김숭겸(金崇謙, 1682~170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복암(觀復菴) 김숭겸(金崇謙, 1682~170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한두 사우(士友)가 남은 원고를 수습하여 인행하려 하자 부친 김창협은 동생 김창흡에게 시고의 산절을 맡겨 300수 정도로 만들도록 하고 서문도 짓게 하였다. 김창협이 1708년에 졸하자 1709년 그의 문집인 ≪농암집≫을 인행하였는데, 이 인행을 마치고 나서 저자의 시고도 함께 인행하였다. 시고는 13세 때 지은 <설월(雪月)>을 시작으로 19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가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부친을 모시고 영평(永平) 농암(農巖), 양주(楊州) 석실서원(石室書院), 미호(渼湖), 삼각산(三角山), 도봉서원(道峯書院), 강도(江都), 송도(松都), 백운산(白雲山), 삼주(三洲) 등에서 강학하며 지내거나 다녀올 때 지은 것이 대부분이고, 숙부나 종형(從兄), 친구 등과의 차운시가 다수 실려 있다. 저자의 시에는 곤궁하고 외로운 심정을 읊은 것이 많고, 조야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심정을 담은 것도 많다. 부친 김창협은 그가 지은 묘표에서 아들의 시풍이 뛰어나고 노련하다고 칭찬하면서 보는 이마다 놀라 감탄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 김구(金構, 1649~170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관복재(觀復齋) 김구(金構, 1649~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 연도 미상의 괘인사본으로, 1780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원집 9권, 습유 합 6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실려 있는데 칠언 절구가 주류를 이루며, 차운시와 연작시인 <노장(老將)>, <노병(老兵)>, <노선(老仙)>, <노농(老農)>, <노승(老僧)>과 이민서(李敏敍)를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2는 잡저로 스승 박세채(朴世采)와 사돈 이세백(李世白)에게 보낸 편지, 관동의 화악산, 춘천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동행일기(東行日記)> 등이다. 권3~7은 소차로, 1683년 1월에서 1703년 12월 사이에 올린 것을 각 시기별로 모았다. 그중에서 <청파주제영조계(請罷主第營造啓)>는 각사 관아의 건물 및 공주의 저택과 조사(朝士)의 집을 짓는 역사에 대한 정지를 청한 것이다. 권8~9는 계(啓), 서계, 의(議), 전(箋)이고 습유는 소차로서 1682년에 인현왕후의 고명문제로 청나라 사신의 모욕적인 행위에 통분하며 국격을 지켜야 한다고 진언한 <청물허노사친전왕후고명소(請勿許虜使親傳王后誥命疏)> 등이 있다.
▶관봉유고(冠峯遺稿) | 현상벽(玄尙璧, 1673~173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봉(冠峯) 현상벽(玄尙璧, 1673~1731)의 문집이다. 저자가 평소에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나 저자가 졸한 뒤 한참 후에나 문집의 간행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서발(序跋), 부록문자(附錄文字) 등이 없이 원집(原集)만 10권 5책으로 편차되어 목활자(木活字)로 인행되었다. 권1에는 시(詩) 26제가 실려 있다. 권2~6은 서(書)로, 스승과 사우(士友), 후배,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논쟁과 관련된 내용, 1716년의 병신처분(丙申處分)을 환영하는 내용, 스승 권상하(權尙夏)를 위한 변무소(辨誣疏) 문제, 영조 초 저자와 사우들의 관직 진출 문제, 기타 상례 문답 등을 주제로 지은 것들이다. 권7~9는 잡저로 대부분 인물성론(人物性論)과 예학(禮學)에 대한 내용이다. 권10에는 우저서원(牛渚書院)의 향음주례시(鄕飮酒禮詩)에 적은 서(序), 단양의 우준경(禹準卿)을 위해 지어준 <성재기(醒齋記)>, 유광기(兪廣基)를 위해 지어준 <천주정사기(天柱精舍記)>, 우암(尤庵)과 수암(遂庵) 두 선생의 유묵(遺墨)에 적은 발(跋) 등이 실려 있다.
▶관수재유고(觀水齋遺稿) | 홍계영(洪啓英, 1687~170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수재(觀水齋) 홍계영(洪啓英, 1687~1705)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친 우채(禹采)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하여 홍세태(洪世泰)의 산정ㆍ편차를 받아 1721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홍세태, 조유수(趙裕壽)의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절구(絶句), 율시(律詩), 배율(排律), 고시(古詩), 과체시(科體詩), 명(銘), 사(詞)이다. 특히 오언배율과 칠언배율은 모두 남궁원(南宮垣)과 수창하였으며, 오언고시는 홍천(洪川) 수타사(水墮寺)를 유람하고 지은 112구의 장편 기행시와 낙향하는 재종형 홍계상(洪啓相)을 전송하며 지은 <송재종형내심씨귀향(送再從兄乃心氏歸鄕)>이다. 명(銘)은 8세에 지은 <연적명(硯滴銘)>으로 연적의 모습과 기능을 진평과 관중에 비유한 글이며, 사(詞)는 눈이 내리는 광경을 선경(仙境)에 비유한 국문가사(國文歌辭) <희설(喜雪)>이다. 권2는 부록으로 신완(申琓), 이언경(李彦經), 오명준(吳命峻), 임방(任埅), 남궁원 등이 지은 만사(挽詞)와 부친 홍우채와 외숙 조정범(趙正範)이 지은 제문이다.
▶관아재고(觀我齋稿) | 조영석(趙榮祏, 1686~176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이원기(李元基)
조선 시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자신의 시문(詩文)을 편차하여 수서(手書)한 자편차(自編次) 수고본(手稿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된 이희조(李喜朝)의 신원을 청하는 소(疏) 1편과 시(詩)이다. 시(詩) 가운데 두 번째로 편차된 <신도객관차병상당시운(信島客館次屛上唐詩韻)>과 세 번째로 편차된 <차두율진주잡시운작도행잡영(次杜律秦州雜詩韻作島行雜詠)>은 1726년 저자가 경기 점마 별감(京畿點馬別監)으로 경기의 도서(島嶼)를 편력할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권2는 서(序), 기(記)이고 권3은 찬(贊), 발(跋), 상량문, 잡저이다. 그중에서 잡저는 도화(圖畫)의 유래와 기능에 대해 질문한 책제(策題), 저자의 경험과 전문을 기록한 만록(漫錄)이다. 만록에는 어진(御眞) 도사(圖寫)에 얽힌 논란, 송시열의 화상,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의 편찬 경위, 김창흡에 관한 일화 등 24조가 실려 있다. 권4는 제문, 애사, 행장, 묘표, 묘지이다. 행장은 저자의 장남 중희(重希)와 차남 중환(重睆)의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행록이다.
▶관암전서(冠巖全書) | 홍경모(洪敬謨, 1774~1851) | 권책수 : 32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 1774~1851)의 문집이다. ≪관암전서≫는 시문 중 상당수를 가려 뽑은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시문을 종합하려는 의도에서 자편한 것으로 보인다. ≪관암전서≫의 체재는 저자가 개편한 ≪총사≫와도 상이하고, 저자의 저술 내에는 편찬에 대한 언급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저자 70세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32책으로 되어 있다. 분권은 되어 있으나 권차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대체로 각 권에 실린 문체에 따라 따로 목록을 만들었는데, 책12에는 목록이 없다. 책10은 명(銘), 상량문, 전(傳)이다. 전 가운데 <정생전(鄭生傳)>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홍도전(紅桃傳)>과 같은 내용으로 임진왜란 당시 가족의 만남과 헤어짐을 서술한 글이다. 책25는 발미(跋尾)이다. 국조어묵(國朝御墨)이라는 편명 하에 조부와 저자가 수집한 역대 국왕의 필적에 대한 글이다. <열성조어필첩(列聖朝御筆帖)>에 문종(文宗), 세조(世祖) 등의 필적을 수록하고, <원릉신한첩(元陵宸翰帖)>에 영조(英祖)의 필적 12건을 수록하였다. 이밖에 인목왕후(仁穆王后), 장헌세자의 필적에 대한 언급도 있다.
▶관양집(冠陽集) | 이광덕(李匡德, 1690~174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관양(冠陽) 이광덕(李匡德, 1690~1748)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19권 4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저자의 유문을 수습하여 문체별(文體別)로 정리하는 단계로 보인다. 시(詩)는 263제 약 400수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부친에게 차운한 시, 해서(海西)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오가며 지은 시, 한가로이 지내며 지은 시 등이 있다. 상소(上疏)는 윤용(尹容)의 파직(罷職)을 환수할 것을 청한 것을 비롯해 41편이 연도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서(書)는 부친과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장 앞에 실려 있는데, 서로 안부를 묻고 독서를 권하는 내용, 탕평론(蕩平論) 등이 실려 있다. 잡저(雜著) 중에는 호남(湖南)의 아전인 정차삼ㆍ박태화에 대한 이야기, 호랑이를 잡은 함경도(咸鏡道)의 이인(異人) 등에 대한 일화를 적은 전(傳)과 의인화(擬人化)한 목침(木枕)을 소재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태도를 반성하는 내용을 담은 <사침(謝枕)> 등의 글이 있다. 그밖에 응제문(應製文), 서계(書啓), 공사(拱辭), 시장(諡狀), 묘도문, 제문, 서(序), 기(記), 논(論), 뇌(誄) 등이 있다.
▶관포시집(灌圃詩集) | 어득강(魚得江, 1470~155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관포당(灌圃堂)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의 문집이다. 본집은 경상도 관찰사 오겸(吳謙)이 저자의 외손에게서 유고를 얻어 1558년 이황(李滉)의 발(跋)을 붙여 곤양(昆陽)에서 목판으로 초간한 후, 목판이 소실되자 저자의 외손 하진보(河晉寶)가 1580년경 밀양에서 목판으로 중간(重刊)하고, 임진왜란으로 판목이 다시 일실되자 저자의 외증손 하증(河憕) 등이 정구(鄭逑) 가장(家藏)의 구본에 저자의 시와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수집ㆍ편차한 추록(追錄)을 증보하여 경상도 관찰사 윤훤(尹暄) 등의 협조를 받아 1617년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삼간본(三刊本)이다. 본서는 불분권 1책으로, 상량문 1편 외에 모두 시(詩)이고, 추록(追錄)이 있다. 시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이다. 시체별(詩體別)로 구분되어 있으며, 저작 연대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같은 시기의 작품을 함께 배열한 것으로 보인다. 추록(追錄)에는 초간에 실리지 못했던 시(詩)와 기(記)를 실었고, 권미에 1617년에 외증손 하증이 본집 편찬 과정을 기술한 지(識)와 1558년에 이황이 지은 발문이 있다.
▶관포집(灌圃集) | 박홍미(朴弘美, 1571~164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관포(灌圃) 박홍미(朴弘美, 1571~1642)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박치영(朴致榮)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치영의 아들 동규(東奎)가 이양연(李亮淵)의 산정을 거쳐 저자의 종제 홍중(弘中)의 ≪추산집(秋山集)≫과 함께 1846년 경상도(慶尙道) 구산현(龜山縣)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둘째 아들 대이(大頤)의 ≪동호집(東湖集)≫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두에 1846년에 홍경모(洪敬謨)가 지은 서(序)와 행장, 1645년에 지은 인조(仁祖)의 <어제친제문(御祭親製文)>이 있다. 상권은 시로 칠절, 오고, 칠고, 오율(五律), 칠율, 오배, 칠배, 부이다. 특히 칠절의 <차낙부영공운(次樂夫令公韻)>은 1623년에 반정 뒤 흉도들의 반란에 대비하여 경기 관찰사로 제수된 홍명원(洪命元)의 노고를 위로한 것이다. 하권은 소(疏), 교서, 제문, 잡저, 비(碑)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636년에 양양 부사로서 치안책(治安策)으로 올린 만언소(萬言疏)이며, 제문은 송방조(宋邦祚)와 장남 박대익(朴大益)의 것이다. 권말에 1846년 7대손 박동규(朴東奎)가 지은 지(識)가 있다.
▶광뢰집(廣瀨集) | 이야순(李野淳, 1755~1831)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광뢰(廣瀨) 이야순(李野淳, 1755~1831)의 문집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문집의 편차 및 간행에 관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 다만 저자의 집안에 가장되어 있던 유집을 이만도, 유필영, 유치호 등의 편차하고 교정하여 1899년경 목활자로 인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집은 13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록이 있다. 일부 글에는 교감기가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서(書)로, 모두 스승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에게 보낸 것이다. 이중 1788년에 보낸 편지는 김종덕이 ≪퇴계집≫의 오자를 지적한 것과 관련한 것이고, 1795년에 보낸 것도 문집에 있는 오자와 낙자(落字) 등을 지적한 것에 관한 의견을 보낸 것이다. 권4~6은 서이다. 권10은 비(碑), 묘지명, 묘갈명, 묘표이다. 비는 임영부(臨瀛府) 쌍계방(雙溪坊)에 세운 종선비(種善碑)에 관한 것이다. 1780년 무렵 이 마을은 전세(田稅)와 산삼까지 공납해야 하는 상황에서 흉년이 거듭되어, 고진창(高鎭昌) 등 15인이 마을을 구할 계책을 세워 공납할 산삼을 감량 받고 계를 만들어 대신 세금을 납부하였다. 후에 이를 기념하여 비를 세우고 이에 비명을 쓴 것이다.
▶괴담유고(槐潭遺稿) | 배상열(裵相說, 1759~178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의 문집이다. 저자의 형 상현(相賢)이 난고(亂稿)를 일부 수습 편차하여 정서하였고, 아들 현두(顯斗)가 부친의 저서 정리 작업을 계속하여 조술도(趙述道)에게 서문을, 정종로(鄭宗魯)에게 묘지명을 받은 뒤 김희분(金煕奮)에게 문집을 감정(勘正) 받아 1811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조술도가 1799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제문(祭文), 서(序), 기(記), 잠(箴), 명(銘), 잡저(雜著)이다. 시의 <관물음(觀物吟)>은 봄날 한적한 일상에서 천지만물의 생성 원리를 관조하는 내용이고, <태고몽기(太古夢記)>는 꿈에 그림 문자로 편수(篇首)에 ‘태고천토(太古天土)’라 쓰여진 책을 보고, 각 글자를 다시 해체 분석하여 그 함의를 해득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권2~5는 잡저이다. 권3은 도학육도(道學六圖)로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연계와 인간 심성 세계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도설(圖說)이다. 권말(卷末)에 김한동(金翰東)과 황용한(黃龍漢)이 각각 1808년에 지은 지(識)와 발(跋)이 있다.
▶괴은유고(乖隱遺稿) | 정구(鄭球, 149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괴은(乖隱) 정구(鄭球, 1490~?)의 문집이다. 본집은 1541년에 성세창(成世昌)이 지은 서문(序文)에, 저자의 사후에 아들 정희 등이 유편을 부집(裒集)하여 10권으로 정리하였다고는 하였으나 간행(刊行) 사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묘지(墓誌)를 지은 외현손 조경(趙絅)이 “≪괴은집≫ 4권이 전해진다.”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4권으로 ≪괴은집≫이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유일본은 시(詩)만 수록된 목판본(木板本)으로 2권 1책인데, 아마도 4권으로 간행된 것의 영본(零本)으로 추정된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권수에 1541년에 성세창(成世昌)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에 실린 시(詩)는 주로 홀로 있을 때의 심경을 표현한 시와 유람지의 풍광을 읊은 작품이 많고, 특히<영회(詠懷)>는 1517년에 회음(會飮)을 주선한 것으로 인해 파직되었을 때의 소회를 읊고 있다. 권2에 실린 시는 같은 운을 사용해 지은 시에서부터 아들의 동당시(東堂試) 초문(草文)을 보고 급제 소식을 기다리는 심정을 나타낸 것까지 다양한 내용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교정시집(皎亭詩集) | 현일(玄鎰, 1807~188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교정(皎亭) 현일(玄鎰, 1807~1888)의 문집이다. 저자는 만년에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 중년 이후 지은 시들을 정리한 뒤 문암(聞庵) 이명선(李鳴善)을 통해 강위(姜瑋)에게 평열(評閱)과 서문을 부탁하였으나 중도에 졸하였다. 이후 손자 은(檃)이 1880년 강위에게 서문을 받는 한편 유문을 다시 교열(校閱)하여 5권으로 편집(編輯)하고 1906년 연활자(鉛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오세창(吳世昌)이 1906년에 쓴 전서체(篆書體)의 제서(題書), 강위가 1880년에 지은 서(序)와 홍현보(洪顯普)의 서가 있다. 권1은 만관수초(灣館收草)로 의주(義州)에 근무할 때 지은 시(詩)가 수록되어 있다. 아마도 역학 훈도(譯學訓導)로 의주에 파견 나갔을 때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연대는 확실치 않다. 권5는 일하시존(日下詩存)으로 만년에 서울에 거처할 때 지은 시로 생각된다. 권5 뒤쪽에 수록된 <노의(老醫)>, <노승(老僧)>등은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본래 연작시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권말(卷末)에 손자 은이 1906년 문집을 간행하며 지은 발(跋)이 있다.
▶구곡시고(龜谷詩稿) | 최기남(崔奇男, 158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곡(龜谷) 최기남(崔奇男, 1586~1671)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7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차를 상ㆍ하로 나누어 배열하였다. 권수에 1640년 신익성(申翊聖)과 1665년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서(序)가 있다. 권1 상은 오언고시이고 권2 상은 칠언고시, 권3 상은 오언율시, 권4 상은 오언배율, 권1 하는 칠언율시, 권2 하는 오언절구, 권3 하는 칠언절구이다. 작품 중에는 1643년 일본에 가면서 지은 <도해(渡海)>, <대마도(對馬島)> 등의 기행시 및 신유(申濡), 윤순지(尹順之), 조경(趙絅), 박안기(朴安期)와 수창한 시가 부기되어 있는 <궁주주상차종사관운(宮洲舟上次從事官韻)>, 정남수가 괴석(恠石), 분송(盆松), 분죽(盆松)을 읊은 시에 차운한 <차행림영물운(次杏林詠物韻)>, 젊은 시절 유람한 금강산을 회고하며 지은 <억풍악구유(憶楓岳舊遊)> 등이 있다. 권말에 문으로, 자전인 <졸옹전(拙翁傳)>이 있는데, 74세의 노경에 평생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를 이루어 수졸(守拙)하고자 한 저자의 심경이 집약되어 있다.
▶구당집(久堂集) | 박장원(朴長遠, 1612~1671)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문집이다. 저자가 졸한 후 아들과 사위가 유고를 정리하고 부록을 준비해 이후 1730년에 저자의 증손인 박문수가 대구 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8은 사부와 시이다. 10세 때 지었다는 <증혜희상인(贈慧熙上人)>부터 죽기 전날에 지은 <차이생기래운(次李甥寄來韻)>까지 거의 한 해도 빠진 해가 없이 작품이 실려 있다. 권9~11은 소차(疏箚)와 계사(啓辭), 전(箋), 교서(敎書) 등의 공거문이다. 전(箋) 중에 <사사미포전(謝賜米布箋)>은 현종이 노모를 위해 미포(米布)를 하사한 데 대한 사은전이다. 이 외에 묘지, 행장, 기사(記事), 제문, 애사, 서간, 서(序), 기(記), 설(說), 논(論) 등이 있다. 권17의 <일중편(一中篇)>은 정자와 주자의 글과 성리서 등에서 좋은 글을 뽑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것이다. 권18~19는 차록(箚錄)이고, 권 20은 <기문(記聞)>이다. <기문>에는 동시대를 살던 명공(名公)들과 외조부인 심현(沈誢)의 유사(遺事)가 적혀 있다. 부록으로 실린 신도비명, 제문, 언행록을 통해 저자의 성품과 학문 세계를 알 수 있다.
▶구봉집(九峯集) | 김수인(金守訒, 1563~162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봉(九峯) 김수인(金守訒, 1563~1626)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김지립(金志立)과 8대손 김명규(金命奎)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6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30년에 지은 정규석(鄭奎錫)의 서문, 1854년에 지은 조두순(趙斗淳), 이정관(李正觀)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소(疏), 서(書), 잡저가 실려 있고, 권2에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箴)이 실려 있다. 잡저 중에서 <난중잡록(亂中雜錄)>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며, <반중회유문(泮中回諭文)>은 영창대군의 옥사 등 인륜이 무너지는 망극한 일에 대해 성균관의 여러 유생들에게 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할 것을 권유한 글이다. 권3은 부록으로 유장원(柳長源)이 지은 행록(行錄)을 비롯하여 행장,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만사(輓詞), 제문(祭文), 지구(知舊)들 간의 왕복서(往復書)가 실려 있고, 권미에는 1850년에 지은 유진익(柳進翼)의 발문과 1866년에 지은 7세손 김지립의 후지(後識)가 있다.
▶구봉집(九峯集) | 조원기(趙遠期, 1630~168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봉(九峯) 조원기(趙遠期, 1630~1680)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鶴城)ㆍ편차(編次)하여 영조 연간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에는 장인 이경석(李景奭)이 백마성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망백마산성유감(望白馬山城有感)>, 솔바람 부는 북악산 대은암의 풍취를 묘사한 <대은암(大隱巖)>, 성현의 길로 가고자 관심(觀心)하며 정진하는 모습을 노래한 <술회시사제(述懷示舍弟)>, 봄날의 아취와 청춘을 구가하고 봄바람에 온갖 시름을 날리며 지은 <춘일장안(春日長安)> 등이 있다. 권5는 서(書), 잡저(雜著)이고 권6은 서(序), 제문(祭文)과 부록(附錄)으로 송도(松都)와 학성(鶴城)으로 유람 가는 동생과 금강산으로 유람 가는 이정영(李正英)에게 준 <장유록서(壯遊錄序)>, <송이가산지금강서(送李嘉山之金剛序)>, 이경석과 아우 창기(昌期) 등을 추도한 제문, 부록으로 아우 형기(亨期)가 쓴 묘지와 자손록이 있다.
▶구봉집(龜峯集) | 송익필(宋翼弼, 1534~159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인 죽서(竹西) 심종직(沈宗直)이 1622년 홍산 현감으로 재직시 시(詩)만을 수집 선정하여 ≪비선구봉선생시집(批選龜峯先生詩集)≫이란 이름으로 5권 1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김상성(金相聖)이 의성현으로 부임해 저자의 저서 전질을 재편차하고, 동생 송한필(宋翰弼)의 ≪운곡고(雲谷稿)≫를 부집(附集)하여 1762년 11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45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이이(李珥), 성혼(成渾), 정철(鄭澈) 등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 잡저로는 <태극문(太極問)>, <답인설(答人說)>, <은아전(銀娥傳)> 등이 있다. 권4~5는 <현승편(玄繩編)>으로 이이, 성혼, 정철, 김장생, 이산보, 조헌 등과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예설(禮說)과 성리학에 대한 논제부터 서로의 저작에 대한 비평과 단순한 근황, 시사(時事)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얼 출신이었으나 예학에 밝았던 저자의 글을 통해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 예절과 성리학을 배울 수 있는 자료이다.

▶구사당집(九思堂集) | 김낙행(金樂行, 1708~176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의 문집이다. 1801년에 그동안 정리하여 교정한 본을 가지고 별집을 제외한 9권 5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1893년에는 원집에서 누락된 시문 및 부록 등을 수집, 편차하여 4권 2책의 속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로는 부친의 술회시(述懷詩)에 차운한 시, 부친의 유배지인 제주와 광양(光陽)에 따라가 그곳의 산수를 읊은 시, 만시(輓詩) 등이 있다. 잡저로는 상제례(喪祭禮)에 관한 것이 많으며, 독역설(讀易說), 심체용설(心體用說), 직석설(織席說), 남초설(南草說)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밖에 자신을 경계하는 내용의 질의잠(質疑箴), 경명(鏡銘), 자경잠(自警箴), 성신잠(省身箴) 등과, 고사(告辭), 제문(祭文), 애사(哀辭)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에는 예송(禮訟)과 기축옥사(己丑獄事)에 관해 듣고 본 바에 따라 논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문견록(聞見錄), 극(極) 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무극태극설기의(無極太極說記疑), 죽계(竹溪) 지방 어느 민가의 강아지 두 마리가 보신탕용으로 죽은 어미개를 위해 복수한 일을 적은 효구설(孝狗說) 등이 실려 있다.
▶구소집(鳩巢集) | 권성구(權聖矩, 1642~170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소(鳩巢) 권성구(權聖矩, 1642~1708)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후손 택수(宅銖)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택수의 윤자 제설(濟說) 등이 1890년대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권연하(權璉夏)의 서문과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의 전반까지는 시(詩)이다. 주로 타인의 시에 차운한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만시는 이현일(李玄逸), 김시추(金是樞) 등 58인에 대한 것이다. 권3의 후반은 문(文)으로 부(賦), 소(疏), 전(箋), 장(狀), 서(書), 고유문, 제문, 애사, 상량문, 잡저이다. 그중에서 <태사묘대거소(太師廟對擧疏)>는 1682년 안동의 삼태사묘(三太師廟)의 작헌 순서에서 김선평(金宣平)이 권행(權幸)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수일(金壽一) 등의 상소를 논파하기 위하여 저자가 일문(一門)을 대표하여 작성한 글이다. 삼태사묘의 주향(主享)으로 인한 갈등은 이후 영조대에 재발하는 등 안동김씨와 안동권씨 가문 사이의 해묵은 숙제로 남게 된다. 권4는 부록(附錄)이고 권말에는 김흥락(金興洛)이 지은 발이 있는데 작성 연도는 미상이다.
▶구암유고(久菴遺稿) | 한백겸(韓百謙, 1552~161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구암(久菴) 한백겸(韓百謙, 1552~1615)의 문집이다. 본집이 간행된 것은 1640년경의 일로 보인다. 이식(李植)이 1640년에 찬한 본집의 서문에 저자의 시문은 병화에 모두 유실되었으며 본집은 문인들이 베끼어 익히던 것을 모아 편찬한 것이라고 하였다. 본 문집은 2권 1책이다. 상하 2권으로 구분하여 문체별로 편차하였는데, 상권에는 <기전유제설(箕田遺制說)>을 필두로 설(說), 변(辨), 기(記), 서(序), 발(跋) 등이 실려 있고, 하권에는 3편의 상소와 4편의 행장이 실려 있다. <기전유제설>과 <기전도(箕田圖)>는 평양성 밖의 기자정전(箕子井田)을 보고 은(殷)나라 전자형(田字形)의 전제(田制)에 대하여 논증한 것이다. <심의설(深衣說)>도 도(圖)와 함께 수록되었고,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역시 <사단칠정도(四端七情圖)>가 같이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빈풍금등설(豳風金縢說)>과 <회재논태극도설후(晦齋論太極圖說後)>, <접목설(接木說)>, <조석설(潮汐說)> 등이 실려 있다. 하권에는 사직소와 <공물변통소(貢物變通疏)>, 저자의 조부(祖父)인 한여필(韓汝弼)의 행장을 비롯한 4편의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구암집(久庵集) | 김취문(金就文, 1509~157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김몽의(金夢儀)가 유문을 수집 편차하였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죽자, 아우 김몽화(金夢華)가 형의 뜻을 이어 문집을 간행하려고 1789년에 정범조(丁範祖)에게 서문을 받았다. 이어 7대손 김태화(金太和)가 저자의 문집에 형 김취성(金就成)의 ≪진락당유고(眞樂堂遺稿)≫를 합편하여, 종조형 김낙항(金樂恒)의 협조를 받아 1791년에 운각활자로 3권 2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791년 1월에 운각활자로 간행된 사실이 기록된 표제지, 1789년에 지은 김종수(金鍾秀)의 서문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소차, 계(啓), 서(書), 기(記), 제발, 잡저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잡저, 묘갈, 묘지가 실려 있다. 그중에서 잡저는 오자서, 서불, 전횡에 대한 논(論) 3편과 1537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을 때의 시권인 <치도책(治道策)>이다. 권3은 부록으로 행장, 묘지, 유사, 제현기술, 사제문, 제문, 낙봉서원선액시사제문 등이 있고, 권말에는 1789년에 지은 오재순(吳載純)의 발문이 실려 있다.
▶구암집(懼庵集) | 이수인(李樹仁, 1739~182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 1739~18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효영(孝永)과 족질 관영(觀永)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습 정리하여 이정기(李鼎基)에게 유사를 받고, 이정엄(李鼎儼)에게 묘지명을, 유태좌(柳台佐)에게는 묘갈명을 받아 1860년에 9권 5책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9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휘녕(李彙寧)이 지은 서와 총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병처직포(病妻織布)>는 옷이 없어 추위에 떠는 자신을 위해 병든 아내가 길쌈하는 것을 보고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황세탄(荒歲歎)>은 1814년 심각한 흉년에 백성들의 생활고를 상세히 묘사한 장시이다. 권5는 서(書), 잡저, 서(序)이다. 두 마리의 거북 중 한 마리는 잡아 약으로, 나머지 한 마리는 살려준 일화를 가지고 불교의 인과설을 부인하고 평범한 음식이 아닌 것은 먹지 않는 태도를 설명한 <살구방구설(殺龜放龜說)>, 앞의 설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시(時)와 수(數)에 따라 달라진 거북의 명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한 <후설(後說)>등이 있다. 권미에 작성연도를 알 수 없는 이종상(李鍾祥)이 지은 후서(後敍)가 있다.
▶구암집(龜巖集) | 이정(李楨, 1512~157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구암(龜巖) 이정(李楨, 1512~157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생전에 정리되지 못하였다. 초간본은 구암서원 유생들이 수집해 온 시문을 허목(許穆)이 1책으로 정리하고 발문을 쓴 것을 바탕으로 1641년 5월 구암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2년에 간행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의 구성은 원집ㆍ속집ㆍ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운문은 시체별로 분류하고 그 안에서 대략 저작 시기순으로 편차하였다. 산문은 원집에서 기(記)를 맨 처음에 배치하고 소차(疏箚) 등의 공거문을 시작으로 지(識), 제문, 찬(贊) 등의 순으로 배열하였다. 속집 권1에서는 원집에서 누락된 저자의 시문을 시기와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속집 권2는 부록으로 퇴계가 저자에게 보낸 시를 ≪퇴계집≫에서 뽑아 실었으며 그 외에 제문과 만사(輓詞)가 있다. 별집의 서간은 모두 ≪도산전서(陶山全書)≫에서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이종기(李種杞)의 발문이 있다. 생전에 성리학과 관련된 서책의 판각에 정열을 기울였으며, 퇴계의 편저를 간행하는 일에도 앞장선 저자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구암집(龜巖集) | 이원배(李元培, 1745~180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암(龜巖) 이원배(李元培, 1745~18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현익수(玄翊洙)와 족형 이영배(李永培)의 아들 순(恂)이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이조 판서 김이교(金履喬), 홍직필(洪直弼) 등 재경 인사들의 도움을 받고, 교서관에서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쇄하는 도중에 어렵사리 오희상(吳煕常)에게 묘갈명을 받아 추부한 후 1823년 7월에 인역을 마쳤으며, 100질을 인행하여 반질하였다. 본집은 16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김이교가 1820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참마항(斬馬巷)>은 15세 소녀 천관녀(天官女)와 김유신의 민간설화를 소재로, <파경합(破鏡合)>은 신라 진평왕 때의 사량부(沙梁部) 출신 가실(嘉實)과 설씨녀(薛氏女) 설화를 소재로 지었다. 권9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논(論)으로, <육덕화기(六德花記)>는 이웃에서 심은 채소의 꽃이 명정(明淨)하여 씨를 받아 뜰에 심고 완상하면서 화후(和厚), 인(仁) 등의 여섯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칭송한 것이다. 권미에 유성주(兪星柱)가 182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구암집(歸巖集) | 이원정(李元禎, 1622~168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 1622~1680)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저자가 시호를 받은 1671년 이후 활자로 인행한 후, 11대손 강진(綱鎭)이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저자의 윤자 담명(聃命)의 정재집(靜齋集)과 함께 1937년 칠곡 경암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서(序)와 발(跋)은 없고, 권수에 목록만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로, 만시가 대부분이며, 경신출척이 일어난 1680년에 지은 시로 초산에 유배된 이후의 작품들이다. 권2~3은 소로, 권2의 <칠곡진폐소(漆谷陳弊疏)>와 권3의 <영남유소(嶺南儒疏)>를 제외하면 모두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영남진폐소(嶺南陳弊疏)>는 거듭된 흉년으로 영남 지방 백성들의 생활고를 서술하고 조세의 감면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권4는 차, 계사, 공사, 함사이고, 권5는 헌의, 유서, 전(箋), 정문, 서(書), 잡저이다. 권6은 서(序), 기, 발이고 권7~8은 축문, 제문 등이다. 권9~10은 행장이고, 권11~12는 부록으로 숙종의 사제문(賜祭文)을 비롯해 제문, 만사, 가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구애집(龜厓集) | 조극승(曺克承, 1803~187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구애(龜厓) 조극승(曺克承, 1803~187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병수(秉秀)가 편집하여 3책으로 정리한 뒤, 김도화(金道和)에게 서문을 부탁하고, 김흥락(金興洛)에게는 문집의 교정과 발문을 부탁하였으며, 장승원(張升遠)에게도 발문을 받아 1898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898년에 지은 김도화의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나 저작 연도와는 무관하게 편차되어 있다. 공부나 강학 활동, 기행, 주변 사람들과의 모임이나 교유 등과 같이 일상에서 일어났던 일을 계기로 지은 시가 다수를 이루고 있고 증시(贈詩)나 차운시(次韻詩)도 적지 않게 실려 있다. 권6은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축문(祝文)이다. 서 가운데 <회계서원수리계안서(晦溪書院修理契案序)>는 선조 임계(林溪) 경온(景溫)의 사우(祠宇)를 회계서원(晦溪書院)으로 옮기기까지의 내력과 이 서원을 보수하기 위한 계(契)를 결성한 일을 서술하였다. <종안서(宗案序)>는 자파(自派)의 종안(宗案)에 지은 서이다. 권말(卷末)에는 김흥락과 장승원의 발(跋)이 있다.
▶구와집(龜窩集) | 김굉(金㙆, 1739~1816)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구와(龜窩) 김굉(金㙆, 1739~1816)의 문집이다. 손자 약수(若洙)가 가장(家狀)되어 있던 유집(遺集) 30여 권을 정리하여 이병원(李秉遠)에게 고교(考校)를 받고 다시 유치명(柳致明)의 산정(刪定)을 거쳐 14권으로 엮은 뒤 수년의 노력 끝에 1846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원집(原集)은 14권 7책이다. 별도의 서발문(序跋文)은 없으며,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58년부터 1816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동문 지인들과 교유하거나 관직 생활을 하는 중에 겪은 일을 소재로 하는 시들이 많다. 권2~3은 소(疏)로, 이 중 1788년 영남 사림(嶺南士林)을 대신하여 지은 <창의변무소(倡義辨誣疏)>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에서 활약한 영남 의병(嶺南義兵)들의 업적을 공인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응지소(應旨疏)>는 1798년 백성들의 실태를 보고하라는 왕명(王命)에 따라 당시 단양의 폐단을 인호(人戶)와 군액(軍額)의 불균형, 환정(還政)의 불합리한 운영 등을 통해 설명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말미(末尾)에는 정조(正祖)의 비답(批答)이 첨부되어 있다.
▶구원집(九畹集) | 이춘원(李春元, 1571~163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구원(九畹) 이춘원(李春元, 1571~16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산일되어 남아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자의 아들 이초로(李楚老)가 1656년(효종7)에 영천 군수로 나가면서 문집 간행에 뜻을 두고 세상에서 전해지는 것으로 초본을 편차하여 4권으로 만들고 스스로 감교(監校)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초간본에 보유(補遺)를 추가한 추각본(追刻本)이다. 본집은 원집 4집과 부록, 보유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310여 제(題)가 있는데, 호남을 유람할 때 지은 것, 동래 부사가 되었을 때 지은 것, 강원도와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지은 것, 성절사(聖節使)로 북경에 다녀올 때 지은 것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송시(送詩)와 별시(別詩), 만시(挽詩)와 애시(哀詩)가 실려 있다. 잡저로는 과체시(科體詩) 2편, 부(賦), 비답(批答), 제문 등이 있다. 부록으로는 윤순거(尹舜擧)가 지은 행장,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신도비명, 구봉서(具鳳瑞)가 지은 치제문, 김류(金瑬) 등이 지은 제문이 있으며, 보유는 8편의 시를 수집하여 추가한 부분이다.
▶구전집(苟全集) | 김중청(金中淸, 1566~162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 1566~162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남형회(南亨會)와 손자 김양렬(金楊烈)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외현손 이광정(李光庭)이 1744년에 저자의 현손 김이명(金爾銘)과 5대손 김태운(金泰運)과 함께 감정ㆍ재편한 후, 후손 김영택(金榮宅) 등이 김시찬(金是瓚)의 교정을 거쳐 1831년경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연보, 부록, 별집(別集)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1744년에 지은 이광정의 서(序), 1829년에 지은 김정균(金鼎均)의 후서가 있다. 권1은 사(辭), 부(賦), 시(詩)이고, 권2~3은 1615년부터 지은 시를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대부분 만시, 월과, 차운시, 송시 등이다. 권4는 교서, 소(疏), 계사, 서장, 책(策), 서(書)이고 권5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명이며 권6은 전(箋), 제문, 축문, 묘지명, 묘갈명, 행장이다. 별집은 목록에 권8로 편차되어 있는데, <조천록(朝天錄)>과 <문견사건말단헌설(聞見事件末端獻說)>로서, <조천록>은 1614년 북경(北京)에 사신으로 다녀온 기록이다.
▶구정유고(龜亭遺藁) | 남재(南在, 1351~141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구정(龜亭) 남재(南在, 1351~141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1대손 남학명(南鶴鳴)이 1675년 여러 문헌과 문집 중에서 수집하기 시작하여, 세계(世系) 및 현달한 자손의 기사를 첨부하여 1편(編)으로 만들었다. 그 후 사손(祀孫) 남반(南磐)이 삼대기문(三代記聞)을 수집하여 저자의 시(詩)ㆍ세계사실(世系事實) 및 자손 기사와 저자 손자의 사적(事蹟)을 붙여 1권을 만들었고, 이것을 1689년 남학명이 교정하고 11대손 남용익(南龍翼)에게서 발(跋)을 받았다. 그 후 20대손 남일우(南一祐)가 후손가에서 구본(舊本)을 구해서 교정하고, 시문 약간과 연보ㆍ비장(碑狀)을 추가하여 1869년에 처음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상ㆍ하 2권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상권의 시는 모두 10제(題)인데, 이 중 2제는 결시(缺詩)이다. 문(文)은 2편으로, 이숭인(李崇仁)을 탄핵하는 소(疏)와, 1392년 대사헌 재임시 올린 시무(時務)에 관한 상소가 실려 있다. 이어 세계ㆍ연보, 유사(遺事)가 실려 있으며, 부록으로 공신축(功臣軸)ㆍ사제문(賜祭文)ㆍ행장(行狀)ㆍ비지(碑誌) 등이 실려 있다.
▶구천유고(龜川遺稿) | 이세필(李世弼, 1642~1718)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천(龜川) 이세필(李世弼, 1642~1718)의 문집이다. 본집은 오로지 편지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체재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본이며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필사 경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괘인사본으로 그 전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35권 18책으로 되어 있다. 목록은 2권마다 하나씩 수록되어 있다. 권1~7은 서(書)로서, ≪심경(心經)≫에 대해 논란한 편지를 모은 것을 비롯해 대부분이 저자의 질문과 송시열의 답변, 그리고 저자의 추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박필주(朴弼周), 박태한(朴泰漢), 김간(金幹), 최후상(崔厚相)에게 보낸 것은 ≪대학장구≫의 정심장(正心章)과 격물장(格物章), 그리고 <대학서(大學序)>의 내용에 대해 논란하는 편지이다. <상남상론동춘경연설화(上南相論同春經筵說話)>는 송준길 연보의 교정을 맡은 남구만에게 보낸 것으로 연보에 실려 있는 송준길의 발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글이고, 권7의 <답현석서(答玄石書)>는 박세채의 출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글이다. 권8~35는 모두 예설(禮說)로, 크게 가례도, 통례, 관례, 혼례, 상례, 제례, 왕조례로 구성되어 있다.
▶구촌집(龜村集) | 유경심(柳景深, 1516~157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구촌(龜村) 유경심(柳景深, 1516~1571)의 문집이다. 본집은 외손 최몽량(崔夢亮)과 외증손 배상익(裵尙益)이 수집ㆍ편차하여 이정귀(李廷龜)의 교정을 거친 후, 최몽량의 아들인 최제(崔濟)가 저자의 외손서인 이상일(李尙逸)과 외증손 여경(呂경(氵+敬))의 협조를 받아 165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653년에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지(識), 유중영(柳仲郢)이 지은 행장과 유성룡(柳成龍)이 지은 갈명이 실려 있다. 권1은 칠언율시, 남정고, 관새록이다. 연대는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차운시가 많고 만시도 몇 편 있다. 남정고는 밀양 등지를 다니며 지은 것인데 각 지역의 동헌과 영남루 등 누각의 운을 차운해 지은 시가 많다. 관새록은 김화, 홍원 등을 다니며 지은 시이다. 권2는 부(賦), 전(傳), 서(序), 변(辨), 설(說), 서후, 논(論), 명(銘), 책(策), 찬(贊)이 있는데, 그 내용에는 인심의 선악은 경(敬)의 존망에 달려 있으니 만나는 것마다 성실을 다하고 독실하게 생각하여 잊지 말라고 읊은 <경부(敬賦)>와 수진(修進)의 방도를 논한 책문 등이 있다.
▶구포집(鷗浦集) | 안헌징(安獻徵, 1600~167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구포(鷗浦) 안헌징(安獻徵, 1600~1674)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외손 이조 판서 최석정(崔錫鼎)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산정ㆍ편차하여 1696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에 서문과 목록이 없다. 권1~3은 시로서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주로 이안눌(李安訥), 신유(申濡), 유황(兪榥), 채유후(蔡裕後) 등과 수창하였다. 그중 칠언절구의 <봉송채백창조천지행(奉送蔡伯昌朝天之行)>은 문재가 뛰어났던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가 청나라로 사신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어준 것이고 칠언배율의 <습전곤명지운(習戰昆明池韻)>은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곤오이(昆吾夷)를 정벌하기 위하여 수전(水戰)을 연습시키려고 장안(長安)에 곤명지란 큰 못을 팠던 고사(故事)를 가지고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쓸 것을 권면한 내용으로 응제(應製)에서 거수(居首)하였다. 권4는 관과록(館課錄)으로 과제로 지은 의표(擬表) 10편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을 대신해 국가의 큰일이 있을 때 지은 대문자(大文字)의 글들이 여러 편 있다. 권말에는 저자의 외손 최석정(崔錫鼎)이 1696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국간집(菊磵集) | 윤현(尹鉉, 1514~15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봉좌문고
조선 중기 국간(菊磵) 윤현(尹鉉, 1514~1578)의 문집이다. 저자가 시문을 원고로 남기려 하지 않아 가장(家藏)된 작품이 많지 않았고, 또 사후 자손이 거의 끊겨 유문(遺文)을 정리할 사람이 없었다. 종질(從姪) 윤안성(尹安性)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처음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1591년에 목활자로 3권 2책을 간행하였다. 상권은 잡저로, <목안설(木雁說)>, <한유논사변(韓柳論史辨)> 등 여러 문체의 글이 섞여 있다. 중권에는 160여 제의 시류(詩類)가 실려 있다. <방귀(放龜)>, <방압(放鴨)> 같은 시는 미물까지도 애련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감수성을 보여 주며, <왕소군(王昭君)>은 하권의 <명비사(明妃詞)>와 함께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읊은 시이고, 맨 뒤에 나오는 <영남탄(嶺南歎)>은 198구의 장구로, 도탄에 빠진 영남의 상황을 목도하고 지은 시이다. 하권의 <독서당잡영(讀書堂雜詠)> 6수는 사가독서 중에 지은 시이고, <상관동추경(想關東秋景)>은 선영(先塋)이 있는 관동을 그리는 심정을 그린 시이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감수성이 담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국담집(菊潭集) | 박수춘(朴壽春, 1572~165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국담(菊潭) 박수춘(朴壽春, 1572~1652)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세기에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 자편(自編)의 추선록(追先錄)이 합부되어 있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로서 차운시(次韻詩), 증시(贈詩), 만시(輓詩) 등이 많다. 권2는 소(疏), 격(檄), 서(序), 문(文), 잠(箴), 명(銘)이다. 그중에서 <무오소(戊午疏)>는 1618년에 광해군(光海君)에게 올리려고 지었으나 소장(疏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왕명으로 인해 올리지 못했고, <창의격(倡義檄)>은 1597년에 왜구가 재침하자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들어가며 백성들에게 창의(倡義)에 참여할 것을 권한 격서(檄書)이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1657년에 조임도(趙任道)가 지은 행장(行狀)을 비롯하여 행록(行錄), 묘갈명(墓碣銘), 여표비명(閭表碑銘), 남강서원(南岡書院)에 봉안할 때의 제문(祭文) 및 봉안문, 상량문, 문집서(文集序),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린 저자 관련 기술 등이 실려 있다.
▶국당유고(菊堂遺稿) | 박흥생(朴興生, 1374~144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국당(菊堂) 박흥생(朴興生, 1374~1446)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아들 박인번(朴仁蕃)에 의해 시문이 정리되었다가, 후손 박희석(朴禧錫)이 난초(亂草)로 쓰인 저자의 시문 약간 수를 얻어 교수(校讎)한 다음, 1828년 활자로 처음 인행(印行)하였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95년 7월에 박중호(朴重浩)가 목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은 시(詩), 권2는 문(文), 권3은 부록이다. 시는 관직을 그만두고 영동(永同)에 물러난 뒤에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권2에 실린 문(文) 중에 기문(記文)으로는 영동 고당포의 이요당(二樂堂)과 쌍청루(雙淸樓) 기문이 있다. 제문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쓴 것이고, 잡저로는 관직에 있는 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을 모은 <거관잠계(居官箴戒)>가 있다. 산수이요(山水二樂)와 풍월쌍청(風月雙淸)에서 뜻을 취해 이요당과 쌍청루 이름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듯, 벼슬을 그만두고 학문에만 정진한 저자의 고상한 기풍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국포집(菊圃集) | 강박(姜樸, 1690~174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국포(菊圃) 강박(姜樸, 1690~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채제공(蔡濟恭)과 윤자 필악(必岳)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77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2권 6책이다. 권수에는 채제공이 1775년에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이 중에서 권1의 중반부터 권3까지는 저자가 1716년부터 1726년까지 엮은 10개의 시록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시록에는 창작 배경을 설명하는 짧은 소서(小序)가 있다. 권7은 소(疏)로, 영조 초기 수찬과 교리 재직 중에 올린 상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8은 서(書), 서(序), 기(記), 설(說)이다. 편지 중에서 오광운에게 보낸 것은 반정 과정에서 폐위된 중종의 비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복위에 관하여 중국 송대(宋代)의 사례를 들어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9는 묘지명, 갈명, 행장, 유사이고 권10은 이정양(李廷揚), 권민(權慜) 등에 대한 제문이다. 권11은 애사, 발(跋), 잡저이다. 권12는 한유의 ≪창려집(昌黎集)≫과 ≪예기≫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대한 책문제(策文題)와 <한묵만희(翰墨漫戲)>, <총명쇄록(聰明瑣錄)>이다.
▶국헌집(菊軒集) | 소시만(蘇始萬, 1734~176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국헌(菊軒) 소시만(蘇始萬, 1734~1765)의 문집이다. 사후 저자의 행적은 모친 이씨(李氏)가 언문으로 기록한 것을 이씨의 종제 이조악(李朝岳)이 한문으로 옮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계제 시운(始運)이 가장(家狀)을 지어 정리하였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손자 환술(煥述)이 저자에 의해 불타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홍석주(洪奭周)가 1835년에, 이득일(李得一)이 1808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상은 수리저설(數理著說)이다. 1762년에 종인 수몽(洙蒙)의 청으로 지은 <수리설(數理說)>을 편집하여 실은 것으로, 세상의 이치를 수리로 분석하여 설명하였으며 저자의 학문적 역량이 집약되어 있다. 권하는 서(書), 책(策), 시(詩)와 부록(附錄)이다. 시에는 1761년 가을 밤에 안심사(安心寺) 적설루(積雪樓)에서 읊은 것과 꿈속에서 송(宋)나라의 학자 장식(張栻)과 수창한 오언시 3구가 있고, 계제 시운이 지은 가장(家狀)이 있다.
▶궁오집(窮悟集) | 임천상(任天常, 1754~182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궁오(窮悟) 임천상(任天常, 1754~1822)의 문집이다. 서발(序跋)이나 사기(寫記) 등의 기록(記錄)이 없어 전사경위(轉寫經緯)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저자의 시문(詩文) 초고(草稿)와 ≪궁오유고(窮悟遺稿)≫를 대본으로 삼아 산정(刪定)한 정고본(定稿本)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으며, 각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4는 시(詩)이다.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編次)되어 있으며, 장문의 소서(小序)와 소자쌍행(小字雙行)의 자주(自註)를 달아 작시의 배경이나 인물, 고사, 지명의 유래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더하였으며, 문학적 취향이 두드러진다. <적표행(赤驃行)>은 서유대(徐有大)가 구입한 호마(胡馬)가 어승마(御乘馬)가 되었는데 정조(正祖)의 승하(昇遐) 이듬해에 굶어 죽어 ‘의마(義馬)’로 칭송된 일화를 노래한 것이다. 권6은 제발(題跋), 잡저(題跋)이다. 제발에는 1784년에 주로 조선 중기 인물들의 언행(言行), 풍류(風流), 해학(諧謔) 등의 유전일화(流傳逸話)를 모은 ≪시필(試筆)≫에 붙인 것이다.
▶귀계유고(歸溪遺稿) | 김좌명(金佐明, 1616~167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귀계(歸溪) 김좌명(金佐明, 1616~1671)의 문집이다. 본집의 간행을 주도한 사람은 아들 김석주(金錫胄)로 보이는데, 그는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시문을 수습하여 상하 2권으로 편차하여 1672년경 간행에 들어가고 뒤에 얻은 시문을 보유(補遺)로 편차하여 뒤에 붙여서 1책의 활자본을 완성하였다. 원집 상권은 시, 소차, 서계, 계사, 교서, 치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53제(題)가 있는데 월과(月課)로 지은 <의목란시(擬木蘭詩)>, 1654년 노산군묘(魯山君墓)에 치제(致祭)하러 갈 때 지은 시, 1665년 동지사로 연경에 갔을 때 지은 시 등이 있다. 소차 중 1664년 올린 <인이단상소진정청퇴소(因李端相疏陳情請退疏)>에서는 송시열(宋時烈)과 격조(隔阻)한 이유와 기해 복제(己亥服制)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하권에는 서발(序跋), 서후(書後), 기사(記事), 서(書), 제문 등이 있다. 보유는 사(辭), 시(詩), 소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로는 1662년에 지은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가 있고, 시로는 투호 모임을 기념하여 지은 <투호회시(投壺會詩)> 등이 있고, 소차로는 사직소 등이 있다.
▶귀록집(歸鹿集) | 조현명(趙顯命, 1691~1752)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 1691~175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정리된 괘인사본으로서 고종 연간이나 그 이후에 전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시는 1140여 제가 있다. 1720년 당쟁으로 인한 옥사가 치열하던 때에 박세채(朴世采)의 파붕당론(破朋黨論)을 주장한 시, 선성(宣城) 일대와 청량산ㆍ지리산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 송운대사(松雲大師)ㆍ정혜대사(定慧大師) 등 승려의 시축에 지은 시 등이 있다. 상소로는 1727년 7월에 올린 <만언소(萬言疏)>로서 붕당의 타파와 신하의 예우, 동궁의 교양 등 12조목을 아뢴 <언사소(言事疏)>가 있고, 군제의 개편, 양역, 진정(賑政) 등 민폐에 대한 정책을 언급한 소가 간간이 실려 있다. 편지는 주로 문장과 의리를 논한 것, 성리학과 예학에 대한 논의, 벼슬을 하는 몸가짐, 안부 등에 관한 것이다. <자저기년(自著紀年)>은 태어나던 해부터 1750년까지의 저자의 행적을 관력을 중심으로 스스로 기록한 것으로, 탕평책을 둘러싼 소론 완론과 준론(峻論) 간의 갈등, 자신을 탄핵했던 상소와 그에 대해 반박한 내용 등이 들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보여준다.
▶규암집(圭菴集) | 송인수(宋麟壽, 1499~154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 1499~154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차례의 병화를 겪어 수습된 것이 많지 않았다. 이에 후손 송태헌(宋台憲)ㆍ송재용(宋在容) 등이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ㆍ서(書)에 사우가(士友家)를 방문하여 찾아 모은 유고를 더하고, 종후손 송병선(宋秉璿)이 교정하고 재편차한 연보를 부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찬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초간본을 증보해 1935년에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은 시로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지은 시가 비교적 많다. 권2는 소(疏), 차(箚), 계(啓), 서(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로는 심상인(心喪人)이 참제(參祭)할 때의 복색에 관한 내용을 담은 <답퇴계이경호(答退溪李景浩)> 등 3편이 있다. 권3의 <제현창수시편(諸賢唱酬詩篇)>은 저자와 관계있는 시와 저자가 종남우사(終南寓舍)에 머물면서 지은 시에 차운한 시 등을 모은 것이다. <제가기술(諸家記述)>은 ≪정원일기(政院日記)≫ㆍ≪퇴계집(退溪集)≫ㆍ≪송자대전(宋子大全)≫ 등에서 관계 기록을 가려 뽑아 집록한 것이다. 권4는 연보이다.
▶규재유고(圭齋遺藁) | 남병철(南秉哲, 1817~186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규재(圭齋) 남병철(南秉哲, 1817~1863)의 문집이다. 저자가 졸한 다음해에 남병길(南秉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친구들 간에 주고받은 시문과 공거문(公車文) 등을 모아 1864년에 6권 3책으로 전사자 인행을 하였다. 권1~2는 시(詩)이고, 권3~6은 문(文)이다. 시 중에 권1의 옥호하좌집(玉壺夏坐集) 22수는 옥호에서 여름을 보낼 때 친구들과 함께 지은 시를 모은 것이고, 회인시(懷人詩) 32수는 권돈인(權敦仁), 조면호(趙冕鎬) 등 서화가(書畵家)를 비롯하여 저자와 교유한 31명에 대해 읊은 시이다. 권2의 동곽연음집(東郭聯吟集) 32수는 1862년 겨울 병 조리를 위해 낙산(駱山) 아래 석간정(石澗亭)에 살면서, 윤원(尹瑗), 안순지(安順之)와 수창한 시이다. 권4에 실린 <삼정구폐의(三政捄弊議)>는 군적(軍籍), 환자, 전결(田結)의 폐단과 이를 바로잡을 대책에 대해 논한 글이다. 권5에 실린 <서추보속해후(書推步續解後)>는 저자가 편찬한 ≪추보속해(推步續解)≫에 대한 발문으로서 천문학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는 글이다. 권6은 독서사기(讀書私記)로,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경전에 대한 논평을 적은 것이다.
▶규정집(葵亭集) | 신후재(申厚載, 1636~169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규정(葵亭) 신후재(申厚載, 1636~16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손자 사석(思奭)이 저자가 자편한 규정시고(葵亭詩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저자의 외증손 정범조(丁範祖)의 산정을 거쳐 177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권수에 자서와 정범조(丁範祖)가 1778년에 지은 서문이 있다. 목록은 권마다 실려 있다. 권1~6은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외직에 여러 차례 부임하였으므로 그 주변 지역의 자연경관이나 명승지를 유람하고 지은 시들이 많이 있는데, 오언고시 중 <기구유(記舊遊)>는 젊은 시절 유람하였던 것을 기억하여 백낙천(白樂天)의 시체를 모방해 지은 장편의 시이다. 권7은 문으로, 잡저, 사, 찬, 잠, 송, 소차, 갈명 등이다. 특히 잡저 중 <전법문(錢法問)>은 주전하여 화폐를 유통시킬 것을 주장한 내용이고, <호패설(號牌說)>은 인구수와 귀천의 등급, 위험한 범법자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인 호패법을 시행할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갈명(碣銘)은 신개(申槩), 신첨(申詹), 이성길(李成吉), 이중국(李重國), 부친 신항구(申恒耈) 등에 대한 것이다.
▶규창유고(葵窓遺稿) | 이건(李健, 1614~166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규창(葵窓) 이건(李健, 1614~1662)의 문집이다. 초간본은 저자의 아들들이 가장초고를 두고 임상원(任相元)과 강현(姜鋧)의 산정(刪定)을 받아 1712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2권 7책 분량의 사본(寫本)으로 숙종 연간에 서사(書寫)된 것으로 보이는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권1~9는 시(詩), 권10~12는 문(文)이다. 수록된 시는 총 1230여 수로, 부친 인성군(仁城君)이 역적의 오명을 썼던 신분 때문인지 수창(酬唱)한 상대는 일가친척들로 국한되어 있다. <과원성서(過原城序)>는 어릴 적 부친을 따라 와서 노닐던 원주를 1637년 사면된 뒤 다시 찾아가 보고 감회를 시와 함께 적은 글이다. <유찬기(流竄記)>에는 1628년 부친이 자결한 뒤 형제들과 함께 제주로 유배 가던 길부터 모친과 가족이 번갈아 풍토병을 앓던 일, 양양(襄陽)으로 이배되고 병자호란에 피난하던 일, 복작(復爵)의 명이 내린 일까지가 날짜순으로 적혀 있다. <을미록(乙未錄)>은 1655년 모친상을 당한 뒤 장지(葬地)를 정하는 과정과 후에 부친의 묏자리가 불길하다고 해서 천장(遷葬)한 일을 서술한 것이다.
▶귤옥졸고(橘屋拙稿) | 윤광계(尹光啓, 1559~161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귤옥(橘屋) 윤광계(尹光啓, 1559~161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편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저자의 사후에 증손 윤승후(尹承厚), 윤천후(尹天厚) 형제가 1676년에 김수항(金壽恒)에게 유고의 산정을 거치고 서문을 받았으며, 1680년에 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을 받았고, 이후 후손 윤정은(尹正殷)이 1829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676년에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서문, 1680년에 송시열이 지은 발문이 있다. 상권~중권은 시체별로 수록된 시(詩)이다. 그중에서 <오애시(五哀詩)>는 저자의 아우, 아들, 조카, 딸, 유모를 애도하며 지은 시이고, 칠언 율시는 저자가 가장 선호한 시체로 제시, 증시, 차운시 등을 많이 지었다. 하권은 문(文)으로 잡저 상ㆍ하와 보(補)이다. 잡저에는 기, 소, 서(書), 서(序), 기, 설, 전(傳), 묘지명, 애사, 제문 등과 교서, 전(箋), 상량문, 발 31편이 실려 있고 보(補)에는 서(序), 전(傳), 비음, 가장, 제문, 사(辭), 부(賦) 등 15편이 실려 있으며 권미에 후손 윤정은이 1829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극원유고(屐園遺稿) | 이만수(李晩秀, 1752~1820)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극원(屐園) 이만수(李晩秀, 1752~1820)의 문집이다. 본집은 1821년경 형 이시수(李時秀)가 20권으로 편차하였는데, 이는 자편고를 바탕으로 시문을 수집하여 편차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손자 이세익(李世翼)과 이공익(李公翼)이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15권 12책으로 편차하였다. 시(詩)는 257제가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희부사극(戱賦賜屐)>은 정조에게 나막신을 하사받은 일과 관련하여 지은 것이다. <증두실심치교상규(贈斗室沈穉敎象奎)>는 이십팔수시(二十八宿詩)를 시의 제재로 사용하여 심상규에게 지어준 시이다. 권2에는 <극옹루기(屐翁樓記)>, <은사보전지(恩賜寶錢識)> 등이 실려 있다. 권3은 사극집(賜屐集)으로 정조의 <어제명(御製銘)>, 24명의 신하가 수창한 <갱재명(賡載銘)> 등이 실려 있다. 권4는 사홀집(賜笏集)이고, 권7~11은 옥국집(玉局集)이다. 옥국집에는 문학ㆍ정사ㆍ인물 등의 내용이 실린 정조의 어록 <일득성어록(日得聖語錄)>이 들어 있다. 그밖에 사행 때 지은 시를 모아 편차한 유거집(輶車集), 유배 기간의 감회를 도잠의 시에 화운하여 지은 시를 모은 화도집(和陶集) 등이 실려 있다.
▶극재집(克齋集) | 신익황(申益愰, 1672~172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극재(克齋) 신익황(申益愰, 1672~1722)의 문집이다. 저자는 여러 권의 시문을 비롯하여 <운곡휘음(雲谷徽音)>, <도산휘음(陶山徽音)>, <양선생서식강도첩(兩先生棲息講道帖)>, <동국승경와유록(東國勝境臥遊錄)>, <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 등을 저술하였는데, 이 가운데 시문만이 1862년에 현손 신정응(申楨應)의 주도로 13권 7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권1은 <추야사(秋夜辭)> 1편과 시 154제인데, 시의 내용은 호남의 영암, 해서(海西), 금오산(金烏山) 등을 유람하며 지은 것들이 많다. 이밖에 차운시와 만시(輓詩)가 실려 있다. 편지는 이현일(李玄逸)을 비롯한 스승과 선배, 친구와 문인과 주고받았으며, 내용은 주로 성리학의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설, 출처의 의리 등을 논한 것들이다. 잡저로는 갈암 선생에게 받은 가르침을 정리하여 적어 놓은 <취정록(就正錄)>, 1701년 해서 기행 때 도로(道路)의 도(道)로 도덕(道德)의 도(道)를 비유하는 것에 관해 논하고 자신을 인도해 줄 사우(師友)를 그리는 마음을 적은 <이로유도설(以路喩道說)>, 제생(諸生)을 위해 지은 <관선재학규(觀善齋學規)> 등이 실려 있다.
▶극재집(克齋集) | 노필연(盧佖淵, 1827~188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극재(克齋) 노필연(盧佖淵, 1827~1885)의 문집이다. 저자의 두 아들 상익(相益)과 상직(相稷)이 유고를 절략(節略) 편차한 뒤 이만도(李晩燾)에게 교감을 받고 학정계(學正契)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1897년에 간행했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김익용(金益容)이 1887년에 지은 서(序), 정래석(鄭來錫)이 1888년에 지은 서, 박치복(朴致馥)이 1890년에 지은 서 및 세계도, 목록이 있다. 권3~4는 잡저이다. <극기도(克己圖)>는 극기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도식화한 뒤 역대 성현들의 극기에 관한 설을 첨부한 것이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주자(周子)의 ≪태극도설≫의 구조를 분석한 글이다. <상례유고(喪禮類攷)>는 초종(初終)부터 배빈(拜賓)까지 상례의 제반 절차에 관한 ≪가례(家禮)≫ 등 예서의 내용과 사계(沙溪), 우복(愚伏), 한강(寒岡) 등 우리나라 선현들의 의견을 두루 기술한 뒤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저자의 핵심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권5는 서(序), 기, 상량문, 제문, 묘문, 장록(狀錄)이다. 권미에 이만도, 안희원(安禧遠), 아들 상익이 1897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근시재집(近始齋集) | 김해(金垓, 1555~159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 1555~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증손 김석윤(金錫胤)이 가장되어 오던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불분권 1책의 형태로 이보(李簠)에게 발(跋)을 받고 1708년에 조덕린(趙德鄰)에게 서문을 받았고, 1783년경 후손인 김돈(金墪)과 김영(金瑩) 등이 주축이 되어 김석윤(金錫胤)이 정리한 유고를 4권 2책으로 재편하고 다시 정범조(丁範祖)에게 발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조덕린이 1708년에 지은 서(序), 정범조가 1783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이보(李簠)의 발(跋)이 있다. 권1은 사(辭), 시(詩)이고, 권2와 권3 앞부분은 서(書)이며 권3 뒷부분은 잡저로, 설(說), 변(辨), 제후, 제문, 표(表), 전(箋), 계(啓), 유사, 묘지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이기설(理氣說)>에서 저자는 이황(李滉)의 ‘이발기수(理發氣隨)’, ‘기발이승(氣發理乘)’에 동조하고 있으나 뒷부분이 일실되었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명, 가장 등과 조목 외 7인이 지은 제문, 조목과 신지제가 지은 만사가 수록되어 있다.
▶근암집(近庵集) | 유치덕(柳致德, 1823~188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근암(近庵) 유치덕(柳致德, 1823~188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은 아들 진호(震鎬)와 관호(觀鎬)가 친족이자 문인인 병호(秉鎬), 연뢰(淵雷), 연각(淵覺) 등과 함께 수습 정리하여 족손 필영(必永)에게 가장(家狀)을, 김도화(金道和)에게 행장(行狀)을, 이만규(李晩煃)에게 1895년경 묘갈명(墓碣銘)을 받아 저자의 동문 신익호(申翼浩)에게 교정을 받고, 신상익(申相翼) 등의 감정(勘定)을 거친 뒤 원고(原稿) 3권과 <임려문답(林廬問答)>을 합하여 6권 3책으로 편차하였다. 문집의 간행 연도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정할 수 없지만 이만규가 묘갈명을 작성한 1895년에, 늦어도 아들 진호의 몰년인 1909년 이전에는 간행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편차되어 있다. 권3~5는 잡저로 모두 <임려문답(林廬問答)>이다. 조선 말기의 누적된 폐정을 총체적으로 비판하면서 제현(諸賢)의 설을 인용하여 그 대안을 문답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권미에 작성 연대를 알 수 없는 신익호의 발문이 있다.
▶근와집(近窩集) | 유식(柳栻, 1755~182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근와(近窩) 유식(柳栻, 1755~1822)의 문집이다. 5대 종손 승경(承景)과 족손 승조(承祖)가 종중(宗中)과 사림의 지원을 받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7대 종손 병철(炳喆)이 제문 및 삼종현손 언형(彦馨)과 자신의 발문을 목활자로 23판을 별도로 찍어 첨부한 후 1961년경에 반질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전윤석(全胤錫)이 1960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만(輓)이다. 그중에서 <봉정손재남공금강산행(奉呈損齋南公金剛山行)>은 1796년 4월에 금강산 유람을 떠나는 남한조를 송별한 것이고, <산천재연구(山泉齋聯句)>는 남한조의 강학처에서 남한보, 조승수, 남한호와 가을날에 회우하여 강마하는 즐거움을 함께 읊은 것이다. 권5는 잡저(雜著)이다. <근재기(近齋記)>는 자신의 서재에 ‘행원자이(行遠自邇)’의 뜻을 붙여 약술한 것이다. <참매설(斬梅說)>은 창에 바짝 심은 매화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달빛과 바람을 막는 통에 베어버리게 되자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 사람도 그러리라 여겨 지은 것이다. 권미에 삼종현손 언형과 7대 종손 병철이 지은 발(跋)이 있다.
▶근재집(謹齋集) | 안축(安軸, 1282~134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근재(謹齋) 안축(安軸, 1282~1348)의 문집이다. 저자가 1330년 5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강릉도 존무사(江陵道存撫使)로 나갔을 때 지은 시문집 ≪관동와주(關東瓦注)≫를 사위 정양생(鄭良生)이 1364년 청주(淸州)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그 후 중간본과 삼간본이 나왔으며,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10년에 간행한 사간본이다. 본 문집은 모두 4권 2책이다. 권1~3은 저자의 시문, 권4는 부록이다. 권1에는 <관동와주>가 있는데, 첫머리에 이제현(李齊賢)의 서(序)가 있으며, 시(詩) 110제(題)와 기(記) 1편이 실려 있다. 권2에는 현손 안숭선(安崇善)이 보유(補遺)한 시 4제(題)와 가사(歌辭) 2편, 표(表) 1편, 기(記) 2편이 실려 있다. 권3은 후손 안경운(安慶運)이 증보(增補)한 것으로, 시 3제(題)와 책(策) 1편, 기(記) 1편, 묘지명 1편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으로, 이제현이 지은 송서(送序)와 만(輓), 사전(史傳) 기록, 이곡(李穀)이 지은 묘지명 등 여러 문헌에 실려 있는 저자 관계 기록들이 채집되어 있다.
▶근재집(近齋集) | 박윤원(朴胤源, 1734~1799)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박종여(朴宗輿)가 수습 정리하여 유한준(兪漢雋), 홍직필(洪直弼) 등의 편차와 교정을 거친 뒤 32권 16책으로 편찬한 것을 조카 박종경(朴宗慶)이 1817년 간행하였다. 시는 327제가 실려 있는데, 1749년에 여주 처가에 갔을 때 지은 <여강객회(驪江客懷)>, 집안의 종 이강(二江)의 죽음을 슬퍼한 <도이강(悼二江)> 등 젊은 시절의 작품과, 부친을 따라 아산, 평양 일대와 송도(松都) 등을 둘러보고 지은 시, 1798년 친족 간의 모임을 읊은 <중수영원계시(重修鴒原禊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는 스승인 김원행(金元行)을 포함해 문인과 동료에게 보낸 것들이 실려 있는데, 주로 ≪이정전서(二程全書)≫, ≪주자서≫, 경서(經書)와 예설(禮說)의 문목에 답한 내용이다. 서(序)로는 ≪사기≫ 중 자서(自序)와 열전(列傳) 등 20편의 글을 뽑아 편찬하고 그 취지를 쓴 <마사선서(馬史選序)> 등이 있다. 기(記)로는 1759년에 지은 <사기(射記)>를 비롯해 아산에 있는 오교대(五敎臺), 현충사(顯忠祠), 관호정(觀湖亭) 등에 대한 기문이 실려 있다.
▶금강집(錦江集) | 장신(張璶, 1629~171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금강(錦江) 장신(張璶, 1629~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박이장(朴履章)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72년 영천(榮川)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772년에 이상정(李象靖)이 쓴 서가 있다. 권1은 시로서 시체별ㆍ연대순으로 실었고, 김만주(金萬柱) 등을 애도한 만시가 대부분이다. 74세에 사우들과 정수암에서 읊은 <정수암증동유제군(淨水庵贈同遊諸君)>, 78세 봄에 신사(新寺)에 놀러가 유세두(柳世斗)에게 보낸 <장유신사요유정언(將遊新寺邀柳廷彦)> 등이 있다. 권2~4는 서(書)로, 풍악(楓岳)을 유람하게 된 유세명(柳世鳴)에게 쓴 <여유이능(與柳爾能)>, 권두경(權斗經)에게 권벌(權橃)의 유고를 보내 준 것에 대해 1705년에 쓴 <여권천장(與權天章)> 등과 그 외에 정선(鄭鍹) 등에게 보낸 것이 있고, 권5는 기(記), 발(跋), 제문, 묘표, 묘지, 행장이다. 권6은 부록으로 1745년에 눌은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행장과 권두인(權斗寅), 권두경(權斗經) 등이 애도한 만사와 장용(張瑢), 장만걸(張萬杰) 등이 추도한 제문이 있다.
▶금계집(錦溪集)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본래 4권 분량의 시문집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것을 단양 군수 손여성(孫汝誠)이 저자의 아우 황수량(黃秀良)과 함께 유집을 수습하여 퇴계(退溪)에게 편차를 부탁한 것으로 보이며, 1564년에서 1566년 사이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초간본 판목이 화재로 인하여 많이 소실된 후 초간본 뒤에 행장과 만사 등의 글을 부록으로 실어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내집 5권, 외집 9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내집의 시는 약 200여 제(題)로, 퇴계에게 보내거나 차운한 시, 부여 등 고적을 기행한 시 등이 실려 있다. 소(疎)로는 문정왕후가 보우(普雨)를 등용하여 불교의 부흥을 꾀해 선종과 교종을 다시 살리려는 것에 반대한 <청혁양종소(請革兩宗疏)>가 있다. 외집에는 기행시, 만시(挽詩), 소(疏), 전(箋) 등이 있다. 퇴계로부터 ‘문(文)이 시(詩)보다 뛰어나 논사(論事)가 명쾌하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저자의 산문을 통해 당시의 병폐를 짚어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저자의 역량을 살필 수 있다.
▶금계집(錦溪集) | 노인(魯認, 1566~162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금계(錦溪) 노인(魯認, 1566~1622)의 문집이다. 문집은 1823년 나주의 금계원(錦溪院)에서 활자로 8권 2책이 인행되었다. 권1은 시로 77제가 시체별로 실려 있다. 임진란 때 의병 활동을 하며 지은 시가 몇 편 있고, 저자가 중국에 머물 때 후의를 베풀어 주었던 민중제현(閩中諸賢)에게 사례하는 시가 많다. 권2는<황명유운(皇明遺韻)>으로, 무이 서원의 생도들이 지어준 시 21제와 저자가 귀국할 때에 진의(陳儀)가 지은 송서(送序) 등이 실려 있다. 권3는<주환록(周還錄)>이라고 불리는데, 저자의 일기 중 일부분을 뽑아 제목을 붙여 재편집한 것이다. 권4는 문(文)으로 명나라 신종황제(神宗皇帝)에게 귀국을 청원하기 위해 올린<최귀원정소(催歸原情疏)>, 일본에 대한 복수를 위해<소오책(沼吳策)>을 올렸을 때 사직지신(社稷之臣)이란 칭찬과 함께 수원 부사에 제수하는 교지 등이 실려 있다. 권5는 부록으로 저자의 행적과 유문을 보고 제현(諸賢)이 쓴 기록을 모아놓은 것이 있고, 권6은<일본풍속기(日本風俗記)>로 저자가 일본의 지형과 병세를 탐지해 복수의 바탕으로 삼고자한 기록으로, 일본의 역사와 관제, 지형까지을 적고 있다.
▶금곡집(錦谷集) | 송내희(宋來煕, 1791~186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煕, 1791~1867)의 문집이다. 1876년에 차자 송익로(宋益老)가 유고 수십 책을 문하의 선비들과 함께 교정, 편차하여 10책으로 만들었고, 1907년에 손자 송종규(宋鍾奎)가 목활자본으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8권과 부록, 합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14세 때 지은 월야를 시작으로 136제의 시가 실려 있는데, 충청도 공주와 서산 등지를 유람하고 읊은 것, 중국의 지명을 소제목으로 삼아 지은 영사시, 진주 동곡(桐谷)의 풍경을 읊은 <동곡팔영(桐谷八詠)> 등의 시가 있다. 권2~3에는 정치하면서 힘써야 할 여섯 조항을 헌종에게 건의하려고 한 <의상육조소(擬上六條疏)>, 폐단을 교정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응교폐전교소(應矯弊傳敎疏)> 등이 있다. 권9의 잡저 중 <과규>는 선비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시한 것이고, 잡록은 관혼상제의 예절 및 복식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권10에는 저자가 편찬한 ≪당시선(唐詩選)≫, ≪예절람요(禮節覽要)≫의 서(序) 등이 실려 있고, 권11에는 임진왜란 때 칠백의사(七百義士)와 함께 순절한 조헌(趙憲)의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 등이 있다.
▶금남집(錦南集) | 최보(崔溥, 1454~150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금남(錦南) 최부(崔溥, 1454~150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외손 유희춘(柳希春)이 수집ㆍ편차하여 1571년(선조4)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간행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책판이 없어졌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76년(숙종2)에 외6대손 나두춘(羅斗春)이 표해록(漂海錄)을 합편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본이다. 본집 권1에는 소(疏), 기(記), 비명(碑銘)과 동국통감론(東國通鑑論)이 실려 있다. 동국통감론은 성종(成宗)의 명으로 서거정(徐居正)ㆍ정효항(鄭孝恒) 등이 편찬한 ≪동국통감≫ 중 118 문제를 들어 거기에 저자의 논(論)을 덧붙인 것인데, 단군조선에서 경순왕(敬順王)까지 38편이 실려 있고, 권2에는 신라망(新羅亡)에서 고려망(高麗亡)까지 80편이 실려 있다. 권3~5는 표해록이다. 표해록은 저자가 제주에 갔다가 부친상으로 분상(奔喪)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13일 만에 중국에 도착하고 그 후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일기이다. 권미에는 유희춘의 발(跋)이 실려 있다. 표류 상황과 절강(浙江)에서 연경(燕京)까지의 산천, 토산, 인물, 풍속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자료이다.
▶금대시문초(錦帶詩文鈔) | 이가환(李家煥, 1742~180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2권 1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서발(序跋)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가 없다. 권상은 시(詩)로, 총 97제 130여 수(首)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송만덕환탐라(送萬德還耽羅)>는 제주(濟州)의 기근(饑饉)을 구제한 공으로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하고 돌아간 제주 여인 만덕을 찬탄한 것이고, <신동자서지후(申童子書識後)>는 13세의 신동 신급(申汲)의 글씨에 적은 시이다. <입야(入夜)> 등의 시에는 자신을 총애해 주던 정조(正祖)에 대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권하에는 1793년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사직하면서 종조부였던 이잠(李潛)을 변호한 내용의 소(疏), 1674년 갑인예송(甲寅禮訟)을 일으켜 송시열(宋時烈)의 실각까지 이끈 도신징(都愼徵)의 문집에 대한 글인 <죽헌집서(竹軒集序)>와 위항문학(委巷文學)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풍요속선서(風謠續選序)>, 조길증(趙吉曾)을 위해 지은 <독서처기(讀書處記)>, 병자호란 때 문묘의 신주를 지킨 수복(守僕)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정신국전(鄭信國傳)> 등이 있다.
▶금릉집(金陵集) | 남공철(南公轍, 1760~1840)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릉(金陵)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자편(自編)하여 1815년에 취진자(聚珍字)로 초간한 24권 12책의 ≪금릉집≫에, 이후의 시문을 모아 1822년에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한 5권 2책의 ≪영옹속고(潁翁續藁)≫와 1830년경에 전사자로 인행한 3권 1책의 ≪영옹재속고(潁翁再續藁)≫를 합한 것이다. 원집 1~4는 부(賦)와 시(詩)이다. 부로는 금부(琴賦), 악기부(樂器賦), 추형부(秋螢賦)가 있다. 시의 내용은 송별시, 만시(輓詩), 풍속시, 영사시(詠史詩) 등 다양하다. 권5는 내제집(內製集)과 외제집(外製集)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문, 교지(敎旨), 교서 등이 실려 있다. 권14에 실린 잡저 가운데 <시론(詩論)>, <서론(書論)> 등은 저자의 문학론을 살필 수 있는 글이다. 권20의 <일득록(日得錄)>은 정조의 어록에서 문학, 정사(政事), 인물, 훈어(訓語)와 관련된 것을 발췌하여 실은 글이다. 권23~24의 <서화발미(書畵跋尾)>는 중국의 그림과 글씨 154편에 대해 작품의 진위(眞僞) 여부, 수장(收藏) 경위, 작가의 생애 등을 품평하여 제발(題跋)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석집(錦石集) | 박준원(朴準源, 1739~1807)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금석(錦石)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에 유고 중에 정화(精華)만을 선정하고, 다시 산정을 하여 1816년에 원집 10권, 부록 2권을 활자로 간행하였다. <감주부(甘澍賦)>는 정조가 날이 가문 것을 안타까워하며 전교를 내리자 비가 내린 일을 주제로 성덕을 칭송한 내용이다. 시는 404제 5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유람시, 궁중에 직숙하면서 지은 시 등이다. 서(書)는 99편이 실려 있는데, 경전의 내용에 대한 질정, 원자(元子)의 탄생에 대한 기쁨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송서(送序), 수서(壽序), 김재순(金在淳)의 시고(詩稿)에 쓴 서문, 나라에서 근신들에게 곡식 씨가 담긴 주머니를 나누어주어 풍년을 기원한 고사를 읊은 <자해낭명(子亥囊銘)> 등이 실려 있다. 잡저 중 <태복마(太僕馬)>는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속담을 통해 저자가 들은 근거 없는 비난을 해명한 글이고, <토로설(土爐說)>은 조부로부터 전해 내려온 질화로를 소재로 하여 검소한 가풍과 효심을 드러낸 글이고, <사설(射說)>은 활쏘기를 통해 곤궁함을 겪은 뒤 분발하여 이룬다는 이치를 깨달았다는 내용의 글이다.
▶금암집(琴巖集) | 송몽인(宋夢寅, 1582~161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암(琴巖) 송몽인(宋夢寅, 1582~1612)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와 아들 송국택(宋國澤)이 수집ㆍ편차하고 이수광(李睟光)의 교정과 이시직(李時稷)의 정서를 거쳐 승 지숭(智崇)이 1616년 회덕(懷德) 비래암(飛來庵)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권수에 이수광이 1615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본집의 내용은 시와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100여 편이며, 서울과 황해도 신천(信川), 충청도 회천(懷川) 등지에서 지은 것이 많다. 저자의 시에 대해 송상기(宋相琦)는 묘갈명에서 청신하고 준엄하며 고결하다는 평을 하였다. 그중에서<반림송고군섭남환(泮林送高君涉南還)>은 태학에서 <중승전(中丞傳)>을 고부천(高傅川)에게 주면서 송별한 것이며, <기회천제우(寄懷川諸友)>는 신천에서 고향에 있는 송문창(宋文昌), 구인후(具仁垕), 송유록(宋緌祿) 등 9인에게 각각 1수씩을 부친 것이다. 그리고 문 1편은 <상빙군계(上聘君啓)>인데, 자신을 알아준 장인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길 떠나면서 올린 글이다. 권말에는 신익성(申翊聖)이 161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금역당집(琴易堂集) | 배용길(裵龍吉, 1556~160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 사후 220여 년이 지난 1855년(철종6) 후손들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 문집은 7권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부(賦) 1수와 시(詩)이다. 권2는 소(疏)와 차(箚)이다. 소로는 정유재란 때 강화(講和)의 움직임이 있자 주전(主戰)과 왕의 친정(親征)을 주장한 <팔조소(八條疏)>와 천하의 모든 일이 군주의 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내용의 <육조소(六條疏)> 등이 있다. 권3의 서(書) 중에는 명나라 장수들에게 원병(援兵)에 대한 사례와 전공을 치하하는 내용의 편지도 있다. 권4에는 <대책(對策)>, <수록(隨錄)>, <어류고의(語類考義)>, <가례고의(家禮考義)> 등이 있다. 서(序)에는 황극중(黃克中)에 대한 송서(送序), 저자의 저작인 <필담(筆談)>에 대한 자서(自序) 등이 있다. 권5에는 <정우정기(淨友亭記)>, 송렴(宋濂)의 ≪구침록(求鍼錄)≫에 대한 발(跋), 중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을 주제로 한 논(論), <풍수변(風水辨)> 등의 변(辨)이 있다. 권6은 제문 및 묘도문자이다.
▶금옹집(錦翁集) | 김학배(金學培, 1628~167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금옹(錦翁) 김학배(金學培, 1628~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질자 세탁(世鐸)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이 소실(燒失)된 후,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재편(再編)하여 1732년 이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권해(權瑎)와의 우의를 다지고 대도(大道)를 닦고자 한 포부를 술회한 <서회증권개옥(書懷贈權皆玉)>, 1664년에 반생을 되돌아보아 5조목을 열거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고자 지은 <오회가(五悔歌)> 등이 있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잡저(雜著), 서(序), 발(跋),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제문(祭文)과 애사(哀辭)이고 권5는 의성 김씨 일문의 언행록(言行錄)과 임종 전날 구술한 <자갈명(自碣銘)>이다. 권6은 부록(行狀)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묘지(墓誌), 유사(遺事)와 별록(別祿), 보유(補遺), 만사(輓詞), 제문(祭文) 등이다.
▶금천집(琴川集) | 정시수(鄭時修, 1601~164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금천(琴川) 정시수(鄭時修, 1601~1647)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집일ㆍ편차한 고본을 1904년 곽종석(郭鍾錫)과 윤주하(尹胄夏)의 교정을 거쳐 저자의 9대손 규동(圭東) 등이 1907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세계도, 연보, 원집 2권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907년에 이만도(李晩燾)가 쓴 서(序), 목록, 세계도, 연보가 있다. 권1은 시로 1646년에 자경의 의미로 지은 <자조(自嘲)>, 1637년에 왕세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자 충분을 토로한 <한야억초수(寒夜憶楚囚)>, 오덕홍(吳德泓), 정이도(鄭以度) 등을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전(傳), 설(說) 등이다. 그중에서 <문산천험고(問山川險固)>는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은 산천의 험고에 달린 것이 아니며, 덕을 닦아 인화를 이루는 것이 선무임을 강조하고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현실을 질책하였고, 부록으로 양천익(梁天翼)이 지은 행장, 종7대손 종덕(宗悳)이 지은 묘표, 이헌경(李獻慶)이 쓴 영천사상향문(瀯川祠常享文)이 있다. 권말에 종8대손 재선(載善)이 쓴 발이 있다.
▶금호유고(琴湖遺稿) | 이지걸(李志傑, 1632~170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평택 임씨 종손가(宗孫家)
조선 시대 금호(琴湖) 이지걸(李志傑, 1632~17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세근(世瑾)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최석정(崔錫鼎)의 산정을 거쳐 1712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권두에 남구만(南九萬)이 1710년에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원집은 모두 시록으로서, 구협록(舊篋錄), 백년록(百年錄), 서호에서 시주에 의지하며 지내던 시절에 시사의 여러 사람들과 수창한 시들을 수록한 서호록(西湖錄), 1680년 처음 벼슬하게 되었을 무렵 지은 작품을 모아놓은 해벽록(西湖錄), 1688년 영덕 현령으로 있을 때 지은 작품을 모아놓은 청심록(西湖錄), ‘만은(晩隱)’이라 자호하고 다시 벼슬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지낼 때 지은 작품을 모아놓은 만은록 등 총 1,500여 수의 작품을 17개 시록으로 나누어 편차하였다. 부록에는 윤증(尹拯)이 지은 묘갈명과 부기한 부인합장음기(夫人合葬陰記),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묘지명과 서종태(徐宗泰)가 지어 부기한 부인합장지명(夫人合葬誌銘), 최석정ㆍ윤증 등이 지은 만장(挽章)이 실려 있다. 권말에 최규서(崔奎瑞)가 17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금호유고(錦湖遺稿) | 임형수(林亨秀, 1514~154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1514~154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정유재란에 없어지고 저자의 후사(後嗣)가 끊기는 바람에 본가에는 전해지지 못하였다. 뒤에 저자의 외손자 유평(柳玶)이 ≪동사록(東槎錄)≫에 수록된 저자의 시 약간 수를 권필(權韠)을 통해 얻고, 보고 들은 글들을 수습하여 1책으로 편차하여 보관해 두었다. 그 후 유평의 종손(從孫) 유응수(柳應壽)가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에게 교정을 받아 정고본을 만들어 1677년 광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과 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에는 시(詩) 110제, 책문(冊文) 1편, 지(誌) 1편, 잡저(雜著) 2편이 실려 있다. 시는 1539년 원접사 종사관이 되었을 때 영송(迎送)을 위해 왕래하면서 주고받은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다. 책문과 지는 중종에 대한 것으로, 인종의 명에 따라 31세에 지은 것이다. 부록으로는 이정형(李廷馨)이 지은 ≪동각잡기(東閣雜記)≫ 가운데 저자에 대한 기록을 뽑은 <제가잡기(諸家雜記)>, 중국 사신들로부터 받은 시를 모아 실은 <제현수창(諸賢酬唱)> 등이 있다.
▶급고유고(汲古遺稿) | 이홍남(李洪男, 1515~157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급고자(汲古子) 이홍남(李洪男, 1515~1572)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시고(詩稿)를 자편(自編)하여 ‘울적함을 달래는 시(詩)’라는 뜻에서 ≪금촌공규(衿村蛩叫)≫라고 명명하였는데 손자 정신(廷紳)이 저자가 자편한 금촌공규와 장남 민각(民覺)이 수집ㆍ편차한 급고난고(汲古亂稿)를 바탕으로 한 전사본(轉寫本)에, 외손 송민고(宋敏古)가 수집ㆍ편차한 습유를 합편하고, 송민고(宋敏古)의 교정과 선사를 거쳐 1617년 정신이 평안도 가산 군수로 부임하면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세계(世系)가 있다. 권상과 권중은 시이고, 권하는 습유로, 시(詩), 부(賦), 전(箋), 표(表), 논(論), 기(記), 묘갈명이 실려 있다. 특히 논 가운데 <광무불복형상론(光武不服兄喪論)>은 별시에서 2등한 것으로,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기 전에 유현(劉玄)에게 피살된 형 유연(劉縯)의 복(服)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해 논한 글이다. 묘갈명은 통진 현감 구순(具淳)에 대한 것이다. 이어 1617년 가평에서 문집이 개간된 사실을 밝혀주는 간기가 있으며, 권말에는 손자 이정신의 발문이 실려 있다.
▶급암시집(及菴詩集) | 민사평(閔思平, 1295~135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암고서박물관
고려 말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 1295~135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말년의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산일(散佚)되었는데, 외손 김구용(金九容)이 남아 있는 시 약간 편을 간수하였다가 1360년에 편찬하고, 이제현(李齊賢)ㆍ백문보(白文寶)ㆍ이색(李穡)의 서(序)를 받았다. 그 후 저자의 문인 이이(李頤)가 김구용의 선사본(繕寫本)을 판하본(板下本)으로 하여 이색ㆍ이인복(李仁復)의 발(跋)을 받아 1370년 5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권수에는 서(序)ㆍ발(跋)ㆍ묘지명ㆍ연보(年譜)ㆍ만사(挽詞) 1편이 실려 있다. 권1~4는 시(詩), 권5는 시와 사소(詞疏)이다. 권5에는 <목단시(牧丹詩)>와 <사소(詞疏)> 10편이 실려 있다. <목단시>는 익재가 여러 노인이 지은 목단(牧丹) 및 잡제시(雜題詩) 수백 수를 모아 찬(撰)한 ≪병거견민집(屛居遣悶集)≫에서 저자의 시만을 뽑은 것이다. <목단시> 끝에는 1360년에 쓴 외손(外孫) 김제민(金齊閔)의 지(誌)가 있다. 사소에는 도량문(道場文)ㆍ축문(祝文)ㆍ초례문(醮禮文)ㆍ불소(佛疏) 등이 실려 있다.
▶기봉집(岐峯集) | 백광홍(白光弘, 1522~155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기봉(岐峯) 백광홍(白光弘, 1522~1556)의 문집이다. 본집은 백광훈 집에 전해져 내려온 약간의 유문을 바탕으로 방후손 백진항(白鎭恒)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8대손 후진(垕鎭)이 1866년 관서별곡(關西別曲)과 부록을 증보ㆍ재편한 후, 12대손 채인(采寅)ㆍ희인(羲寅) 형제가 새로 수집된 시산잡영(詩山雜詠) 등 시문을 증보하여 1899년 전라도 장흥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851년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서문과 백사근(白師謹)이 지은 서문이 있고,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권2는 오언절구, 오언사운, 오언고시, 칠언절구이며, 권3은 칠언사운과 칠언고시이다. 권4는 시산잡영(詩山雜詠)과 관서별곡으로, 시산잡영에는 태인 군수로 가는 신잠(申潛)을 봉송한 시, 태인을 유람한 시, 차운시 등이 있고, 관서별곡은 1555년 평안도 평사가 되어 부임하는 과정에서의 경관과 관방을 둘러보고 지은 가사이다. 권5는 부록으로 김인후ㆍ최경창 등이 평안도 평사로 부임하는 저자에게 지어 준 시와 만사 등이 있다. 권미에는 홍직필이 지은 묘갈명, 기우만(奇宇萬) 등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기봉집(碁峯集) | 남정중(南正重, 1653~17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기봉(碁峯) 남정중(南正重, 1653~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유용(有容)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성천 부사로 재직 중이던 1764년 윤자 한기(漢紀)의 ≪기옹집(寄翁集)≫과 함께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고시, 율시, 절구, 배율, 잡체시로서, 주요 수창자는 남용익(南龍翼), 김창협(金昌協) 등이다. 칠언고시의 <마천령가차이백촉도난운(磨天嶺歌次李白蜀道難韻)>은 부친이 유배될 때 당쟁으로 점철된 세로(世路)만큼이나 험준한 고개를 넘으면서 지은 것이다. 권2는 소차, 계사, 의, 교서, 비답, 치제문, 전이다. 소차 가운데 <추송선원소(追訟先冤疏)>는 부친 남용익이 1689년에 작성한 <원자정호후반교문(元子定號後頒敎文)>의 ‘몽란(夢蘭)’ 두 글자가 문제되어 참소를 입고 명천(明川)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에 신원을 청한 것이다. 권3은 행장, 잡저이다. 행장은 부친 남용익에 대한 것이며, 잡저의 <도곡돈종계서(陶谷敦宗稧序)>는 선영이 있는 수락산 동해곡의 종계에 부쳐 지은 것이고 권4는 부록으로 치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
▶기봉집(騏峯集) | 이시성(李時省, 1598~166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기봉(騏峯) 이시성(李時省, 1598~1668)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최석정(崔錫鼎)의 산정을 받은 후, 후손 기환(箕煥)이 1802년 운각(芸閣)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합 2책으로, 권두에 1795년 이경일(李敬一)이 쓴 서문과 총목이 있다. 권1~3은 시로,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로 저자의 세거지(世居地)인 포천(抱川) 주변의 경물과 호서지역, 동해안,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시들이 많다. 권4는 서(序), 기(記), 설(說), 서(書), 논(論), 책(策)이다. 그중에서 <송풍안군조공부간성군서(送豐安君趙公赴杆城郡序)>는 저자가 1632년 부친의 임소인 인제현에서 간성 현감(杆城縣監)로 있던 이식(李植)을 찾아뵙고 간성 일대를 유람하며 지낸 일을 회고하면서 조흡(趙潝)이 명승지 간성으로 발령되어 가는 것을 전송한 것이고 <두예향유낙중귀요론(杜預餉遺洛中貴要論)>은 1636년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했을 때 지은 것이다. 부록으로 묘갈, 만사가 실려 있다. 끝에 “임술오월하완운각활인(壬戌五月下浣芸閣活印)”이라는 간기(刊記)가 있다.
▶기암집(畸庵集) | 정홍명(鄭弘溟, 1582~165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의 문집이다. 저자가 만년에 자신의 시문을 ≪기암병고(畸庵病稿)≫라는 이름으로 문체별로 자편(自編)해 두었고, 사후 아들 정리(鄭涖)가 이 자편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정리하고 비안 현감인 조카 정양(鄭瀁)이 공역을 맡아 1653년에 목판으로 10권 4책의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84년 간행된 중간본이다. 시 중에 <기몽(記夢)>은 불행하게 생을 마친 시우(詩友) 권필(權韠)을 꿈에 만나 지은 시이다. 권3의 <동사록(東槎錄)>은 1626년 원접사 김류(金瑬)의 종사관으로서 사신을 접대하러 갔을 때 지은 시모음집이다. 권9의 부사(賦詞) 중 <속초(續招)>와 <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가 있다. 권10의 소(疏) 가운데 <신원소(伸寃疏)>는 1624년 중형인 정종명(鄭宗溟)과 연명으로 올린 장문으로, 기축옥사 때 부친인 정철(鄭澈)이 입은 무고(誣告)를 밝는 내용이다. 권11과 12는 속록(續錄)으로, ≪대동야승(大東野乘≫에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기옹만필(畸翁漫筆)> 외에도 서(書), 기(記), 잡저 등 저자의 주요 저작이 많이 실려 있다.
▶기언(記言) | 허목(許穆, 1595~1682) | 권책수 : 21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저술을 손수 편차하여 <기언(記言)>이라 이름하고 서문까지 써 놓았다. 기언의 간행은 저자 사후 7년이 되던 1689년(숙종15)에 그의 유문(遺文)을 간행하라는 왕명에 따라 1692년경 원집 67권, 별집 26권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천지(天地)의 화육(化育)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 풍우한서(風雨寒暑)의 왕래, 오곡(五穀)이 자라나는 것, 인사(人事)의 마땅함과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사물의 법칙, 시서육예(詩書六藝)의 가르침,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등 형기(形氣)의 느낌, 제사, 귀신, 요상(妖祥), 사방의 풍속과 기후의 차이, 음악과 풍속, 기사(記事), 서사(敍事), 논사(論事), 답술(答述), 도(道)의 낮고 높음, 세상의 치란(治亂), 현인(賢人)ㆍ열사(烈士)ㆍ정부(貞婦), 간인(奸人)ㆍ역수(逆竪)ㆍ우매한 자에 대한 경계 등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육경(六經)과 예악(禮樂), 제자백가(諸子百家) 탐구를 통하여 고인들의 학문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던 저자의 노력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기옹집(寄翁集) | 남한기(南漢紀, 1675~174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기옹(寄翁) 남한기(南漢紀, 1675~1748)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자 유용(有容)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성천 부사(成川府使)로 재직 중이던 1764년 부친 정중(正重)의 ≪기봉집(碁峯集)≫과 함께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서 손자 공보(公輔)의 ≪성재령고(省齋零藁)≫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고시, 율시, 절구, 배율, 잡체시 등의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고시에서는 주(周), 진(秦) 등의 역사를 읊은 영사시와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시들이 주목할 만하다. 권4~5는 서기(序記), 제문, 애사, 행장, 광지, 잡저이다. 그중에서 서기에는 영평 현령에서 물러나 있을 때 나려사(羅麗史), 우리나라 명신들의 문집, 패설, 야언 등에서 기록할 만한 언행들을 모아 두었다가 김제 군수로 재직 중 33조목 8권 4책으로 완성한 ≪가경편(可警編)≫에 대한 서와 1740년 민간의 발의로 조적을 위해 서운리(瑞雲里)에 창고를 건립하고 지은 기(記)가 있다. 권6은 부록으로 황경원(黃景源)이 지은 치제문, 아들 유용이 지은 행장과 유사가 실려 있다.
▶기우집(騎牛集) | 이행(李行, 1352~143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 1352~143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란 등을 거치며 모두 산일(散佚)되었는데, 11세손 이지운(李之運)이 처음으로 사서(史書)와 제현(諸賢)의 기록에서 저자의 시문과 관계 사적을 모아 ≪철감록(掇感錄)≫의 일부로 책을 편찬하였다. 그 후 추가로 수집한 시문을 합하여 ≪문절공유고(文節公遺稿)≫로 전해 오다, 1872년 후손 이동호(李東祜) 등이 밀양에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원집, 권2~3은 부록이다. 권1에 실린 시는 각 지방의 누정(樓亭) 등에 쓴 시가 대부분이다. 소(疏)로는 우왕 14년 당시 첨설직(添設職)의 폐단에 대해 논한 <간첨설관직소(諫添設官職疏)>와, 전제 개혁에 대하여 논한 <전제소(田制疏)>가 있다. 묘지는 박계양(朴啓陽)의 묘지이다. 권2~3은 부록으로 여러 사적과 문집에서 저자 관련 기록을 가려 뽑은 것이다. <유사척록(遺事摭錄)>은 저자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수집한 것이며, <구정충록(九貞忠錄)> 등은 여말의 충신으로 저자와 함께 절개를 지키고 목숨을 바친 72현사(賢士)들에 대한 기술이다.
▶기원집(杞園集) | 어유봉(魚有鳳, 1672~1744)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기원(杞園) 어유봉(魚有鳳, 1672~174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초고 상태로 가장되어 오다가 몇 차례 더 증보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거쳐 1887년경에 어윤중이 원집 16책, 연보 1책으로 재편하였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본집은 1887년에 한장석(韓章錫)의 교정을 거친 사본으로 규장각장본이다. 시(詩)는 1,400여 수로, 차운시, 송시, 유람시, 만시 등과 절필시가 실려 있다. 소(疏) 중에는 관학 유생을 대신하여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종향(從享)할 것을 청한 것, 박세당(朴世堂)을 토죄할 것을 청한 것, 송시열(宋時烈)ㆍ권상하(權尙夏)ㆍ김창협(金昌協) 등을 위하여 변무(辨誣)한 것 등이 있다. 권13~18은 서(書) 65편이다. 스승으로 섬겼던 김창협과 김창흡(金昌翕) 등에게 올린 글들이 실려 있다. 서(序)로는 송서(送序)를 비롯해 ≪오자수언(五子粹言)≫의 서문 등이 실려 있다. 경전 구절에 대한 간략한 소감을 적어 놓은 <독서산록(讀書散錄)>이나 저자가 농암선생(農巖先生) 문하에서 선생과 주고받은 문답을 기록한 <농암선생어록(農巖先生語錄)> 등은 경학과 성리학의 주요 논제를 다루고 있는 자료이다.
▶기재집(企齋集) | 신광한(申光漢, 1484~1555)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서(序)ㆍ발(跋) 등이 없어 간행자와 간행 경위 등을 알 수 없다. 원집 권1에는 <화이소경(和離騷經)> 등 15편의 부(賦)가 실려 있고, 권2~4에는 여주(驪州)에서 우거(寓居)할 적에 지은 작품을 비롯하여 1539년 중국 사신을 맞으러 나갈 때 지은 작품이 실려 있다. 권5에는 1520년 삼척 부사(三陟府使)로 부임하면서 지은 시를 모은 <관동록(關東錄)>이 실려 있으며, 권8에는 기순(祁順) 등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에 지은 시를 모은 <동사록(東槎錄)>이 실려 있다. 권11~12는 ≪황화집(皇華集)≫에서 저자의 시만을 초록한 것으로, 권11은 1539년 도사선위사(都司宣慰使)로서 화찰(華察) 등을 맞이할 때 원접사 소세양(蘇世讓)을 대신하여 지은 수창시(酬唱詩)이다. 별집 권1~7에는 시가 실려 있으며, 문집에는 변(辨), 기(記), 지(志), 설(說), 논(論), 서(序), 차(箚), 장(狀), 비명(碑銘), 묘지, 제문, 잡저, 표전(表箋), 명(銘), 가요(歌謠) 등이 실려 있다. 화평담아(和平淡雅)하다는 평을 얻는 저자의 시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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