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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문집류) : 1,262종 > 신활자본-서명별 > [다]서명[신활자본] : 91종(비단표지)

 
[다]서명[신활자본] : 91종(비단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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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다 : 91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다]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다001 다산집(茶山集) 목대흠(睦大欽, 1575~163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2 단계유고(丹溪遺稿) 하위지(河緯地, 1412~1456)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03 단곡집(丹谷集) 곽진(郭𡺽, 1568~163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4 단릉유고(丹陵遺稿) 이윤영(李胤永, 1714~175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5 담암일집(淡庵逸集) 백문보(白文寶, 1303~1374)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6 담인집(澹人集) 신좌모(申佐模, 1799~1877)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7 담정유고(庭遺藁) 김려(金鑢, 1766~1821)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08 담헌서(湛軒書) 홍대용(洪大容, 1731~1783)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09 당계집(棠溪集) 김화준(金華俊, 1602~1644)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0 당촌집(塘村集) 황위(黃暐, 1605~1654)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다011 대계유고(大溪遺稿) 황재영(黃在英, 1835~188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12 대계집(大溪集) 이승희(李承, 1847~1916) 20책 4개 이규석(李葵錫)
다013 대곡집(大谷集) 성운(成運, 1497~157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4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심의(沈義, 1475~?) 2책 1개 계명대 중앙도서관,일본 봉좌문고
다015 대봉집(大峯集) 양희지(楊止, 1439~1504)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6 대산집(大山集) 이상정(李象靖, 1711~1781) 27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7 대산집(對山集) 강진(姜, 1807~1858)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다018 대산집(臺山集) 김매순(金邁淳, 1776~1840)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19 대소헌일고(大笑軒逸稿) 조종도(趙宗道, 1537~159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0 대암집(大菴集) 박성(朴惺, 1549~1606)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21 대야집(大埜集) 유건휴(柳健休, 1768~1834)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다022 대연유고(岱淵遺藁) 이면백(李勉伯, 1767~183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3 대호유고(大瓠遺稿)
*복초집(復初集)
박로(朴𥶇, 1584~1643) 4책 1개 박형원,박상덕,박홍준 등 *신규
다024 덕계집(德溪集) 오건(吳健, 1521~1574)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5 덕봉집(德峯集) 이진택(李鎭宅, 1738~180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26 덕양유고(德陽遺稿) 기준(奇遵, 1492~1521)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27 덕은유고(德隱遺稿) 박운수(朴雲壽, 1797~1841)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28 덕촌집(德村集) 양득중(梁得中, 1665~174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29 덕포유고(德浦遺稿) 윤진(尹搢, 1631~169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0 도계유고(陶溪遺稿) 윤홍규(尹弘圭, 1760~1826)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31 도곡집(陶谷集) 이의현(李宜顯, 1669~1745)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2 도암집(陶菴集) 이재(李縡, 1680~1746) 25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3 도운유집(陶雲遺集) 이진망(李眞望, 1672~173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4 도은집(陶隱集) 이숭인(李崇仁, 1347~139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35 독곡집(獨谷集) 성석린(成石璘, 1338~1423)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36 독석집(獨石集) 황혁(黃赫, 1551~161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7 독암유고(獨庵遺稿) 조종경(趙宗敬, 1495~1535)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38 돈암전서(遯菴全書) 선우협(鮮于浹, 1588~1653)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39 돈암집(敦巖集) 박종경(朴宗慶, 1765~1817)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0 돈와유고(遯窩遺稿) 임수간(任守幹, 1665~172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1 동강유고(東岡遺稿) 최시옹(崔是翁, 1646~173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2 동강유고(桐江遺稿) 이석(李, 1701~175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3 동강유집(東江遺集) 신익전(申翊全, 1605~166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4 동강집(東岡集) 김우옹(金宇顒, 1540~1603) 11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45 동계유고(東溪遺稿) 이영보(李英輔, 1687~174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6 동계유고(東溪遺稿) 최윤창(崔潤昌, 1727~?)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다047 동계집(東溪集) 조형도(趙亨道, 1567~163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48 동계집(東溪集) 권도(權濤, 1575~1644)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49 동계집(東溪集) 박태순(朴泰淳, 1653~1704)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0 동계집(東谿集) 조귀명(趙龜命, 1693~1737)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1 동계집(桐溪集) 정온(鄭蘊, 1569~1641)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2 동고유고(東皐遺稿) 이준경(李浚慶, 1499~1572)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3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이규보(李奎報, 1168~1241) 14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4 동리집(東籬集) 김윤안(金允安, 1560~162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5 동리집(東里集) 이은상(李殷相, 1617~1678)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56 동리집(東里集) 이오수(李五秀, 1783~185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57 동림집(東林集) 유치호(柳致皜, 1800~1862)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다058 동명집(東溟集) 김세렴(金世濂, 1593~1646) 7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59 동명집(東溟集) 정두경(鄭斗卿, 1597~167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60 동번집(東樊集) 이만용(李晩用, 1792~186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61 동산유고(東山遺稿) 조성한(趙晟漢, 1628~168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62 동상집(東湘集) 허진동(許震童, 1525~161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63 동악집(東岳集) 이안눌(李安訥, 1571~1637) 13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64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이승휴(李承休, 1224~1300) 1책 1개 황의돈(黃義敦)
다065 동암집(東巖集) 유장원(柳長源, 1724~1796) 7책 2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다066 동야집(東埜集) 김양근(金養根, 1734~1799)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67 동원집(東園集) 김귀영(金貴榮, 1520~1594)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68 동은고(峒隱稿) 이의건(李義健, 1533~162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69 동주집(東州集) 이민구(李敏求, 1589~1670)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0 동촌유고(東村遺稿) 유대춘(柳帶春, 1543~163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1 동춘당집(同春堂集) 송준길(宋浚吉, 1606~1672) 18책 4개 연세대학교,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2 동토집(童土集) 윤순거(尹舜擧, 1596~1668)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다073 동포집(東圃集) 김시민(金時敏, 1681~1747) 4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다074 동허재집(洞虛齋集) 성헌징(成獻徵, 1654~1676)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5 동호유고(東湖遺稿) 윤자학(尹滋學, 1830~1893)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다076 동호집(東湖集) 문덕교(文德敎, 1551~161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7 동호집(東湖集) 이서(李𥳕, 1566~1651)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78 두곡집(杜谷集) 홍우정(洪宇定, 1595~165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79 두기시집(杜機詩集) 최성대(崔成大, 1691~176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80 두실존고(斗室存稿) 심상규(沈象奎, 1766~1838) 5책 1개 일본 동양문고,국립중앙도서관
다081 두암집(斗庵集) 김약련(金若鍊, 1730~1802)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82 두와집(蠹窩集) 최흥벽(崔興璧, 1739~1812) 8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다083 두타초(頭陀草) 이하곤(李夏坤, 1677~1724) 18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84 둔계유편(遯溪遺編) 허후(許厚, 1588~1661)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다085 둔봉집(遯峯集) 김녕(金寧, 1567~1650)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86 둔암집(屯菴集) 신방(申昉, 1686~1736)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87 둔오집(屯塢集) 임종칠(林宗七, 1781~1859)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다088 둔옹집(遁翁集) 한여유(韓汝愈, 1642~1709) 4책 1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다089 둔촌잡영(遁村雜詠) 이집(李集, 1327~138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다090 둔헌집(遯軒集) 이홍유(李弘有, 1588~1671)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다091 등암집(藤庵集) 배상룡(裵尙龍, 1574~165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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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집(茶山集) | 목대흠(睦大欽, 1575~163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다산(茶山) 목대흠(睦大欽, 1575~163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조카인 목존선(睦存善)이 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商右道兵馬節度使)로 나가게 되자 1685년에 진주(晉州)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가 시로만 구성된 시집이다. 약 55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다. 당시 문인들이 사행(使行)이나 유람(遊覽), 또는 지방에 부임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시기에 지었던 시들을 록(錄)이란 이름으로 정리해 놓곤 하였는데, 본집은 이전에 <조천록(朝天錄)>이나 <남정록(南征錄)> 등으로 묶여 있던 원고를 시체(詩體)별로 재편한 흔적이 많다. 권유(權裕)는 저자의 시를 두고 장편이나 단편이나 모두 전아하면서도 참신하며, 문장은 부드럽고, 간략한 글귀에도 뜻이 깊어 풍소(風騷)의 기상이 있다고 평하면서 당시 시로 이름을 떨치던 차천로(車天輅)가 함께 시를 짓다가 저자의 시를 보고는 풀이 죽어 붓을 던지고 나갔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시는 주로 지인(知人)들과의 차운시(次韻詩), 승려들에게 준 증시(贈詩), 중국 사행(使行) 때 지은 기행시 등인데, 담담하고 맑은 기풍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단계유고(丹溪遺稿) | 하위지(河緯地, 1412~145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단계(丹溪) 하위지(河緯地, 1412~1456)의 문집이다. 1658년 사육신(死六臣)의 문집인 ≪육선생유고(六先生遺稿)≫ 권3의 <하선생유고(河先生遺稿)>로 제명(題名)되어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그 후 후손 하용익(河龍翼) 등이 ≪육선생유고≫에서 저자의 시문(詩文)과 부록(附錄)만을 떼어내 ≪단계선생유고(丹溪先生遺稿)≫로 제명(題名)하여 1768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과 상하 부록 3권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은 저자의 시와 문으로 시는 칠언시(七言詩) 9제(題)와 연구(聯句) 1제가 실려 있다. 문종이 즉위할 때 중국 사신들과 함께 읊은 두 수의 시는 중국의 ≪요해편(療海篇)≫에 등재되기도 한 수작이다. 문은 서(書) 1편, 소(疏) 1편, 교서(敎書) 1편, 대책(對策) 1편이 실려 있다. 이 중 <사좌사간소(辭左司諫疏)>는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주살하고, 단종에게 청하여 좌사간(左司諫)을 제수하고 불렀을 때 사양한 글이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음을 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인 저자의 시에 담긴 우국충정을 느낄 수 있고, 사육신의 행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문집이다.
▶단곡집(丹谷集) | 곽진(郭𡺽, 1568~163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단곡거사(丹谷居士) 곽진(郭진(山+晉), 1568~1633)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곽사림(郭師林)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고 조보양(趙普陽)이 지은 행장(行狀) 등을 부록으로 편차하였고, 저자의 차남 곽영(郭瓔)의 시(詩)와 소(疏), 서(書)를 수록한 ≪우주암집(宇宙庵集)≫ 1권을 부집(附集)하여 1786년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수에 1775년에 정범조(丁範祖)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오언절구, 칠언절구이고, 권2는 오언사운, 칠언사운, 오언고시, 삼오칠언이며 권3은 칠언고시, 칠언장단구, 칠언배율, 사(辭), 소(疏), 서(書)이다. 권4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축문(祝文),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안문성공묘추향서(安文成公廟秋享序)>는 1612년 안향(安珦)의 묘(廟)에 추향(秋享)을 지낸 전말과 선현을 존모하는 내용이다. 권5는 묘갈명과 묘지명, 잡저이다. 권6은 부록으로 묘갈명(墓碣銘), 행장, 초향문(初享文)과 상향축(初享文)이 있다. 권말에 1786년에 이광정(李光靖)이 지은 발(跋)이 있다.
▶단릉유고(丹陵遺稿) | 이윤영(李胤永, 1714~175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단릉산인(丹陵山人) 이윤영(李胤永, 1714~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생전에 저자가 시문을 소집(小集) 형태로 엮어두었던 것을 동생 운영(運永)이 정리하고 우인 김종수(金鍾秀)가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로 재직 중이던 1779년 목판(木板)으로 초간(初刊)한 후, 증보(增補)ㆍ재편(再編)된 괘인사본(罫印寫本)으로 서사경위(書寫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5권 4책이다. 권별로 목록이 실려 있다. 권1~10은 시(詩)로서, 대체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명명된 10개의 시록(詩錄)으로 구성되어 있어 권의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권11은 산사(山史)이다. 단양의 구담(龜潭), 연자산(鷰子山), 석지등(石芝磴), 항선대(降仙臺), 장회탄(長淮灘), 가은동(可隱洞) 등지를 지인들과 유람하며 지은 기문(記文) 18편을 모은 것으로 원래는 별도의 저술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권12는 기(記), 서(序), 제문(祭文), 묘지(墓誌), 묘표(墓表), 소(疏)이다. 1750년 눈병으로 잠시 시력을 잃었을 때 지난날 산수를 유람하며 보고 즐겼던 일을 떠올리며 지은 <심관기(心觀記)>가 수록되어 있다.
▶담암일집(淡庵逸集) | 백문보(白文寶, 1303~137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1303~1374)의 문집이다. 후손들이 초기 정주학(程朱學)의 발전에 공헌한 저자의 공로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동문선(東文選)≫ 등에서 시문과 잡저 약간을 모아 김도화(金道和)의 후서(後敍)와 이만도(李晚燾)의 발(跋)을 받아 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 권1의 시(詩)로서 ≪동문선≫에서 뽑은 6수를 포함하여 11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2는 문(文)으로서 소차(疏箚), 서(序), 기(記), 설(說), 행장(行狀), 비명(碑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序), 기(記), 설(說)은 대부분 ≪동문선≫에 실려 있다. 부록 권1에는 이곡이 저자에게 준 시 3수와 <증유제편(贈遺諸篇)>과 저자의 당호(堂號)인 동재(動齋)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고, 부록 권2에는 만사(挽辭)ㆍ행장(行狀)과 사전수집(史傳搜輯), 편년(編年), 운산서원봉안문(雲山書院奉安文), 상향축문(常享祝文), 중건상량문(重建上樑文), 동문록(同門錄), 문인록(門人錄) 등이 실려 있다.
▶담인집(澹人集)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 1799~1877)의 문집이다. 차남인 신승구(申昇求)가 부친의 저술을 10여권의 초고로 정리해 두었다가 사후 정서본을 만들고, 한기동(韓耆東)의 서문을 받아 두었다. 그 후 1916년 청주에서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 600여 제이다. 권1에 응제시(應製詩) 22제를 모은 과시응제집(課試應製集)을 수록하였고, 권2부터는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금강산을 유람했을 때 지은 해악유상(海嶽遊賞) 61제를 비롯해 원주와 강화, 영남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가 많다. 또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의 서장관이 되어 중국을 오가며 지은 연사기행(燕槎紀行) 33제도 실려 있다. 상소 중에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건의하고, 대원군을 실각시킨 최익현을 비난한 내용이 보인다. 그밖에 프랑스군에게 강화성을 빼앗긴 강화 유수를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계사와 해서(海西) 유생들이 단군을 모신 삼성사(三聖祠)의 증수(增修)를 청하는 내용 등의 상언(上言), 1875년 9월에 일본 군함 운양호를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흥선대원군에게 축하하는 내용의 편지 등이 실려 있다.
▶담정유고(藫庭遺藁) | 김려(金鑢, 1766~1821)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담정(藫庭) 김려(金鑢, 1766~182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우 김선(金䥧)이 저자의 시문을 7책으로 베껴 써서 초본을 만들었고, 그 후 손자 김겸수(金謙秀)가 고령 현감으로 있을 때 초본에 보유집(補遺集) 1권을 추가하여 1882년에 12권 6책을 목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권1~6은 시(詩), 권7~11은 문(文), 권12는 보유집이다. 권1은 <귀현관시초(歸玄觀詩草)>, 권2는 <간성춘예집(艮城春囈集)>, 권3은 <의당별고(擬唐別藁)>, 권4는 만선와잉고(萬蟬窩賸藁), 권5~6은 사유악부(思牖樂府)이다. 권7은 <북천일록(北遷日錄)>과 <기몽시(記夢詩)>이다. 권8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이다. 권9는 <단량패사(丹良稗史)>로, <이안민전(李安民傳)>, <삭낭자전(索囊子傳)> 등 8편의 전(傳)이 들어 있다. 권12의 보유집에 실린 시 중에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장편 서사시로, 백정의 딸과 양반인 파총(把摠)의 아들과의 결혼을 다루고 있는데다. 관직 생활을 하며 지은 것, 각종 인물, 풍속, 설화, 민간 생활에 대해 읊은 것 등 다양한 소재의 시와 산문 작품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담헌서(湛軒書) | 홍대용(洪大容, 1731~178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문집이다. 본집은 스스로 시문을 정리하여 편차한 것으로 보이나, 내집(內集) 맨 뒤 보유의 <임하경륜(林下經綸)>, <의산문답(毉山問答)> 등 6편은 저자 사후 유고(遺稿)를 수습, 정리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임하경륜>은 전국의 행정 조직, 통치 구조, 전제(田制), 군제(軍制), 학교(學校) 등을 바로잡을 방도 등을 다방면에 걸쳐 제시한 작품이고, <의산문답>은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입을 통하여 지구자전(地球自轉)의 원리를 비롯한 천체의 형상을 설명하고, 사람과 사물의 근본, 고금의 변화, 화이(華夷)의 구별 등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파악해야 하며 기존의 인식 틀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 작품이다. 또 35세 때 연경(燕京)을 다녀온 것을 계기로 두 나라 문화의 차이부터 새로운 문명에 대한 경이로움까지 다양한 방면에 걸쳐 적은 <연기(燕記)>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성리학의 본령인 심성(心性)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에서부터 사회 문제는 물론, 천문 관측 및 수학 계산, 북경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사유와 다양한 경험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당계집(棠溪集) | 김화준(金華俊, 1602~164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당계(棠溪) 김화준(金華俊, 1602~1644)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용수(龍壽)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과, 가장하고 있는 어사보연의 관계기록을 편차한 어사당계김공보연기적(御賜棠溪金公寶硯記蹟)을 합부하여 6대손 효원(孝源)과 7대손 찬모(瓚模) 등이 1869년 고부의 망산제각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표(表), 시(詩) 등이다. 그중에서 부는 승시(陞試)와 감시(監試)의 권문(卷文)으로 내용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으며, 시에는 월과, 차운시, 만시 등이 있다. 그리고 성경현전의 직지를 체득하여 ‘성(誠)’으로써 정사를 펼 것을 아뢴 문과 급제 시의 대책(對策), 이행진(李行進)ㆍ김남중(金南重) 등에게 보낸 편지, 월과로 1639년에 지은 <절함명(折檻銘)>, <토계송(土階頌)>, <설중송백찬(雪中松栢贊)>과 윤황을 애도한 제문 등이 있다. 부록에는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동호사우록(東湖師友錄)에서 저자와 관련된 부분을 초록한 것과 김용수(金龍壽)가 지은 가장, 윤인규(尹仁圭)가 지은 행장, 이돈영(李敦榮)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
▶당촌집(塘村集) | 황위(黃暐, 1605~165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당촌(塘村) 황위(黃暐, 1605~1654)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형(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8대손 현(玹)의 교정을 거친 후, 형의 아들 호현(晧炫)이 1907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송근수(宋近洙)가 1892년에 쓴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로, 1649년 사마광(司馬光)의 꿈을 꾸고 난 후 몽중에 지은 인조(仁祖)의 만시(挽詩)를 기억하여 쓰고 이에 차운한 <기몽시(記夢詩)>을 비롯해 북청 유배지에서 졸한 이항복을 위해 세운 오성서원에 대해 지은 <오성서원(鰲城書院)> 등이 있다. 권3은 소(疏), 서(書), 잡저(雜著)이다. 특히 잡저의 <창의일기(倡義日記)>는 1636년 12월에 격문을 돌려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면서부터 이듬해 파진하고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이고 <북관일기(北關日記)>는 함경도 도사로서 3년여의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지은 것이다. 권4는 서(序)와 기(記)이고 권5는 발(跋), 잠(箴), 상량문(上樑文), 행장(行狀) 등이며 권6은 부록으로 김집(金集), 안방준(安邦俊) 등이 애도한 만시(輓詩)이다.
▶대계유고(大溪遺稿) | 황재영(黃在英, 1835~188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대계(大溪) 황재영(黃在英, 1835~1885)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후손들이 유문(遺文) 약간 편을 수집하여 4권으로 정리하고, 신헌구(申獻求)의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신헌구가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1884년 성두호(成斗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향음주례(鄕飮酒禮)는 고례(古禮)이나 지금에 행할 수 있을 것이니 한번 시행해보려 한다며 조언을 구하였다. 1877년에 김형모(金瀅模)에게 준 편지에는 일본의 유학자 태재순(太宰純)의 ≪논어고훈외전(論語古訓外傳)≫을 보았는데 박학 강구한 것은 볼만하나 천지간의 괴려한 물건이라고 평하였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가 수록되어 있다. 기(記)는 김헌락(金獻洛)이 백낙천(白樂天)의 십용시(十慵詩)에 감화되어 세거하던 안동의 용암(龍巖)을 용암(慵庵)이라 바꾼 배경과 의미를 기록한 <용암기(慵庵記)>, 목치중(睦致中)의 처로 혼인한 다음날 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다 남편을 따라 죽은 절부(節夫) 엄씨(嚴氏)의 정려기 등이다.
▶대계집(大溪集) | 이승희(李承煕, 1847~1916)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이규석(李葵錫)
독립운동가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煕, 1847~1916)의 문집이다. 장남 기원(基元)이 가장초고(家藏草稿) 가운데 일부를 선정하여 1916년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이 교정을 시작하고 1918년에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교정하였으나, 기원이 유림단(儒林團) 사건으로 일경(日警)에 체포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1927년 4월에 서울 관훈동의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신연활자로 인역(印役)을 시작하여 8월에 원집과 속집 총 20권에 달하는 ≪대계집(大溪集)≫의 인쇄를 마쳐 반질(頒帙)하였다. 본집은 목록, 원집(原集) 36권, 속집(續集) 6권 합 20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원집과 속집 목록, 기원이 지은 발(跋), 정오표가 있다. 권3은 서유록(西遊錄)으로 시(詩)가 포함되어 있다. 1913년 12월 북경으로 가서 공교회(孔敎會) 총회에 참석하여 동삼성(東三省) 지부 설치를 승인받고, 이듬해 2월 곡부(曲阜)의 성지를 순례한 후 5월에 봉천으로 돌아와 이주할 곳을 모색할 때까지의 여정이 담긴 기행시문이다. 권29~30은 잡저(雜著)이다. 권말에는 1927년 8월에 삼봉서당(三峯書堂)에서 발행하였다는 내용의 판권지가 있다.
▶대곡집(大谷集) | 성운(成運, 1497~157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596년 저자의 처조카인 김가기(金可幾)가 시집을 간행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의 아들 김덕민(金德民)이 1603년 충청도 관찰사 유근(柳根)의 협조를 받아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상(卷上)은 시, 권중(卷中)은 시와 잡저, 권하(卷下)는 갈명(碣銘)ㆍ제문이다. 상권에는 24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대곡우음(大谷偶吟)>ㆍ<촌거(村居)>ㆍ<한거(閑居)> 등과 같이 한가로이 거할 때의 감흥을 읊은 시가 많으며, 보은 주변 고을과 속리산 등을 유람하면서 자연의 경물을 읊은 시들이 많다. 잡저 중 <허부찬(虛父贊)>은 허수아비가 보지도 듣지도 성내지도 않는 것을 찬양하여 자호(自號)를 <허부(虛父)>라고 한 연유를 적은 글이고, <취향기(醉鄕記)>는 산림에서 자신의 지절(志節)을 지키려는 의지를 적은 글인데, 모두 <노장(老莊)의 풍(風)>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권에는 갈명 4편과 제문 3편이 실려 있는데, 조식(曺植)에 대하여 쓴 묘갈명은 그에 대한 존경심과 인품ㆍ학식ㆍ조행(操行)에 대해 전아(典雅)하고 간결한 필치로 적은 작품이다.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 심의(沈義, 147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 중앙도서관,일본 봉좌문고
조선 초기 대관재(大觀齋) 심의(沈義, 147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가 남아 있던 것을 바탕으로 외손 윤대승(尹大承)이 약간 편의 시문을 모으고 권응인(權應仁)이 편차하여 1577년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부(賦)ㆍ사(辭)ㆍ시(詩)가 실려 있고, 권2~3에는 시가 실려 있다. 권1의 부는 <대관부(大觀賦)>ㆍ<소관부(小觀賦)> 등 14편이고, 사는 성세창(成世昌)을 전송한 <송성번중사(送成蕃仲辭)>, 백제사(百濟史)를 읽고 의자왕 때의 충신 흥수(興首)의 울분을 대신 적은 <사미인사(思美人辭)> 등 3편이다. 시는 김정(金淨)ㆍ성세창 등과 수창한 시, 서경덕(徐敬德)과 수창한 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4는 잡저로서 우리나라 역대 문장의 등급을 평하고 세상사가 한갓 꿈에 불과하다고 한 <기몽(記夢)>, 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시인이 경박하다는 논의를 변론한 <경박해(輕薄解)> 등이 실려 있다. 몽유록계 소설의 효시가 된 <기몽> 등의 작품과,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달관한 심회(心懷)를 표현한 저자의 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대봉집(大峯集) | 양희지(楊煕止, 1439~15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대봉(大峯) 양희지(楊熙止, 1439~1504)의 문집이다. 저자의 관력(官歷)이나 교우 관계로 볼 때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으로 추측되나, 본집이 간행되기 전까지는 간본은 물론 고본(稿本)조차도 성책(成冊)되지 못하였다. 사후 280년이 지나 외후손 이천섭(李天燮)이 본가에 겨우 남아 있던 유고와 각종 전적에 수록된 시문을 모아 2권으로 편집하고, 행장과 묘지명ㆍ제현기증(諸賢寄贈)ㆍ유묵(遺墨) 등 부록 자료를 2권으로 성편(成篇)하였다. 이를 10대손 양락(楊濼)이 안정복(安鼎福)의 교정을 거치고 서문(序文)을 받았고, 1785년에 이민보(李敏輔)의 서문을 붙여 4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시, 권2에는 소(疏), 차(箚), 서(書), 서(序), 제문, 묘갈명, 기(記)가 수록되어 있다. 권3은 부록으로 저자 사후 3년이 지나 무오사화로 유배된 자들의 양이(量移)를 건의한 계사를 크게 평가하고 내린 사제문(賜祭文), 사후 20년 뒤에 만들어진 행장, 묘표, 묘지명, 신도비명이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당시 김종직(金宗直) 등이 기증한 시와 <호당록(湖堂錄)>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유묵과 이천섭의 발(跋)이 있다.
대산집(大山集) | 이상정(李象靖, 1711~1781) | 권책수 : 27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동생 이광정(李光靖)과 아들 이완(李埦), 조카 이우(李㙖), 여러 문인이 유고를 수집, 편차하고 교정하여 1802년 의성의 고운사(孤雲寺)에서 52권 27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시(詩)는 350제가 실려 있는데, ≪퇴계집(退溪集)≫의 시에 차운한 작품이 여러 수 있고, 관직 생활을 하던 시절에 지은 시, 접위관(接慰官)으로 동래(東萊)에 다녀올 때 지은 시, 고산정사(高山精舍)의 풍광을 읊은 시, 만시(挽詩) 등이 있다. 소(疏) 중에 이른바 <구조소(九條疏)>라 불리는 형조 참의 사직소에서는 입지, 명리(明理), 거경, 체천(體天), 납간(納諫), 흥학(興學), 용인(用人), 애민(愛民), 상검(尙儉) 아홉 조항으로 군덕(君德)을 삼을 것을 아뢰었다. 서(書) 620여 편은 선배, 사우, 문인, 친족에게 보내고 답한 것으로, 내용은 왕패(王覇)를 논한 것, 육경(六經) 및 ≪주자서≫의 본지(本旨),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 등을 논한 것, 태극도(太極圖)와 도의 체용(體用)을 논한 것, 인설(仁說)을 논한 것, 예제(禮制)를 논한 것 등이 있다.
대산집(對山集) | 강진(姜溍, 1807~185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대산(對山) 강진(姜溍, 1807~185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 정리와 간행은 구의(舊誼)를 중하게 여긴 조인영의 손자 조영하(趙寧夏)가 자신의 조부 ≪운석유고(雲石遺稿)≫를 간행한 뒤, 저자의 아들 구수(龜秀)와 홍수(鴻秀)에게 산일(散逸)되어 있는 유시(遺詩)를 4권 2책으로 편집하게 하여, 1868년에 ≪운석유고≫와 동일한 활자인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는 시집(詩集)으로 권수에 조두순(趙斗淳), 윤정현(尹定鉉), 김학성(金學性), 홍순목(洪淳穆) 등 당대 명사들의 서(序)가 실려 있다. 상대적으로 중년과 만년 작품 비중이 높은 편이다. 권3은 시이다. 1850년부터 1852년까지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 안협 현감으로 재직할 할 때 지은 작품이다. <석정탄(石鼎歎)>은 이천(伊川)의 특산품인 석정(石鼎)으로 인해 생긴 폐해를 듣고 지은 시이며, <석거사묘수비후음시읍사(石居士墓䜿碑後吟示邑士)>는 명나라 병부 상서 석성(石星)의 후손으로 조선에 망명해서 안협에 숨어 살았던 석계조(石繼祖)의 묘표를 세워 주고 그 사적을 읊었다. 권4는 1853년부터 1858년까지의 시가 실려 있다.
대산집(臺山集) | 김매순(金邁淳, 1776~1840)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문집이다. 저자는 향리에 은거하고 있을 때 가장하고 있던 시문을 몇 권으로 편차하여 석릉고(石陵稿)라는 이름으로 완성하였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임종시에 문인 김상현(金尙鉉)에게 가장초고에 관한 일을 부탁하여 1868년경에 교수를 마쳐 1897년에 아들 김선근(金善根)이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이다. 시(詩)는 339제가 실려 있는데, 재종 형제나 벗들과 수창한 것이 많고, 임지로 부임하면서 지나가는 곳의 경물을 읊은 것도 여러 수 된다. 산문으로는 인정전(仁政殿) 화재 후 옥당에서 연명으로 올린 차자, 1834년에 올린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청하는 계사, 저자의 저작인 <주자대전차의문목표보(朱子大全箚疑問目標補)>와 석릉고에 대한 서(序), <뇌암기(雷庵記)>, 일본인 태재순(太宰純)이 지은 ≪논어훈전(論語訓傳)≫과 정세익(鄭世翼)이 지은 ≪시연(詩演)≫ 등에 대한 발(跋) 등이 있다. 권15~20의 <궐여산필(闕餘散筆)>은 경사자집(經史子集) 등을 읽은 뒤 보고들은 내용 및 의문점을 채록한 다음 이를 분류하여 논변한 것이다.
대소헌일고(大笑軒逸稿) | 조종도(趙宗道, 1537~159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대소헌(大笑軒) 조종도(趙宗道, 1537~15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孫) 조징성(趙徵聖)ㆍ조징천(趙徵天), 증손(曾孫) 조숙(趙璹) 등이 임진왜란ㆍ정유재란 때 유실되고 남은 시 약간 수와 잡저를 수집하였다. 이것을 5대손 조화세(趙華世)의 부탁을 받고 이광정(李光庭)이 1748년경 교정ㆍ편차하고 제현(諸賢)의 글과 유사(遺事) 등 관계 기록을 모아 첨부하고 연보를 개정하였고, 그 후 7대손 조휘진(趙輝晉)이 채제공(蔡濟恭)의 서문과 세계(世系) 등을 첨부하여 1769년경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저자의 시문이 실려 있다. 시(詩)는 8세 때 지은 <영와우(詠蝸牛)>를 비롯하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강정(江亭)을 읊은 <제원지당(題遠志堂)> 등이 실려 있다. 문(文)은 간독(簡牘), 제문, 묘표, 부(賦), 책(策), 잡저가 있다. 이 중 <학교책(學校策)>은 교육 제도에 대해 자문(諮問)한 것으로 교육이 과거 시험에 치중한 점을 비판한 내용이다. 권2~3은 부록이다. 왜적과의 전투 태세를 의논한 편지와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지은 격문 등 임진왜란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된 자료이다.
대암집(大菴集) | 박성(朴惺, 1549~160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대암(大菴) 박성(朴惺, 1549~160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졸한 뒤 70여 년이 지나 증손 박세희(朴世煕)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편차하고 1679년에 이윤우(李潤雨)의 손자인 이원정(李元禎)에게 서문을 받는 등 간행을 준비하였고 1693년에 박세희가 조원기(趙遠期)의 협조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4책이고 권수에는 1679년에 이원정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오언절구, 오언사운, 오언고시, 칠언절구로 차운한 시, 왜란과 관련된 시 등이 있고, 권2에는 제문, 잡저, 서(序), 통문이 실려 있는데 특히 <소모밀양사민통문(召募密陽士民通文)>은 김성일(金誠一)의 종사관으로 있을 때, 밀양의 백성들에게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임금과 부형을 위해 의병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권3은 서(書)와 묘지명이고 권4에는 소(疏) 3편이 실려 있으며 권5~6은 부록으로, 장현광(張顯光)이 1632년에 지은 행장과 정구(鄭逑)ㆍ조호익(曺好益) 등이 지은 만사 12편, 장현광(張顯光)ㆍ이후경(李厚慶) 등이 지은 제문 35편, 김세렴이 1641년에 지은 묘비명이 실려 있다.
대야집(大埜集) | 유건휴(柳健休, 1768~183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대야(大埜) 유건휴(柳健休, 1768~18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종손 치덕(致德)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5책으로 편성하고, 유치명 및 그의 문인 유치유(柳致游)와 이병하(李秉夏) 등에게 교정을 받은 뒤, 검토가 더 필요한 부분은 직접 교정하여 1857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6의 뒷부분~8은 잡저이다. <암재어록(巖齋語錄)>은 스승인 유장원에게 나아가 들은 일상의 몸가짐부터 공부의 방법 및 시사에 이르기까지의 가르침을 대체로 질의응답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 <설경헌독서록의의(薛敬軒讀書錄疑義)>는 설선(薛瑄)이 지은 ≪독서록≫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나 선가(禪家)의 이론과 흡사한 부분을 열거하고 경서나 주자ㆍ정자의 설을 비교하여 정리한 내용이고, <독한남당인심도심설변(讀韓南塘人心道心說辨)>은 한원진(韓元震)이 이기호발론(理氣互發論) 등을 비판한데 대해 반박하여 이론을 제시한 내용이다. 부록에는 이병운(李秉運), 김희수(金羲壽) 등의 만사(輓詞), 박시원(朴時源)의 뇌문(誄文), 이병원, 이병하 등 7인의 제문, 유치명(柳致明)의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대연유고(岱淵遺藁) | 이면백(李勉伯, 1767~18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대연(岱淵) 이면백(李勉伯, 1767~1830)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 연도를 알 수 없는 사본으로, 권1은 시(詩), 권2는 문(文)이다. 시는 11제가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추화도연명처사음주이십수(追和陶淵明處士飮酒二十首)>는 도잠의 음주시에 화운한 것이다. <귀산작(歸山作)>은 1801년 서울에서 돌아와 우거하면서 울적한 심정을 푼 작품 등이 있다. 권2에는 잡문, 서(序), 기(記), 묘문, 행장, 전, 제문, 애사가 실려 있다. 잡문 가운데 <비지설(碑誌說)>은 없는 사실을 미화하여 묘도문을 지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망자를 욕되게 한다는 내용이다. 서(序)로는 함께 도봉산을 유람한 유형주(兪衡柱)와 박종철(朴宗哲)을 추억하고 그에 대한 행력을 기록한 <도봉이객서(道峯二客序)> 등이 있다. 기(記) 가운데 <곡운기(谷耘記)>는 진사 권복(權馥)이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겠다고 하면서 글을 청하자 지은 것이다. 안경을 보고 서구 문물의 신기함을 노래한 시 ‘안경’이나 천주교에 연루되어 처벌받게 된 주인을 천주교도가 아니라고 옹호하여 살린 노비의 충성을 찬양한 <기유씨비사(記柳氏婢事)> 등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다.
대호유고(大瓠遺稿) | 박로(朴𥶇, 1584~1643) | 책권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박형원(朴亨遠),박상덕(朴商德),박홍준(朴洪濬) 등
조선 시대 대호(大瓠) 박로(朴𥶇, 1584~1643)의 문집이다. 박로의 字는 노직(魯直), 號는 대호(大瓠), 복초헌(復初軒)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그의 문집으로 ≪대호선생유고(大瓠先生遺稿)≫와 ≪復初軒集(복초헌집)≫[일명 復初集(복초집)]이 있다. 본 ≪대호유고≫는 필사 단행본으로, 시(詩)만 모은 미정본(未定本)이다. 구성을 보면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오언고시(五言古詩) 등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심양관소(瀋陽館所)에서 소현세자 및 대군(大君), 시강원 동료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며 주고 받은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가첩(家牒)에 의하면 그의 문집으로 ≪복초헌집(復初軒集)≫이 따로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 밀양박씨의 ≪술선록(術先錄)≫에서 권두제가 ‘復初集’으로 되어 있는 별도의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내용은 대동소이 하지만 ≪대호유고≫에는 없는 안동 부사 시절 청량산 유람 때 지은 <각화유상첩(覺華遊賞帖)>과 여러 편의 시가 초반부에 실려 있고 소현세자의 편지를 비롯, 장계, 상소문, 만시와 제문 등 다수의 글이 함께 담겨 있다.
*박로에 대한 음해와 날조 : 인조의 대청외교에서 4차례의 사신행으로 국난 극복에 진력했던 그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주둔한 청군의 진영에서 40일간 눈속에서 농성을 하며 사신의 임무를 다했다. 인조의 항복 이후엔 소현세자의 스승으로 심양(瀋陽)에 볼모로 가서 재신(宰臣)의 임무을 도맡아 했지만 남인(南人)과 서인(西人)들의 갖은 음해로 사론(士論)에서 배제되었다. 남인과 서인의 공동정권은 소북인(小北人)이였던 그에게 ‘정뇌경(鄭雷卿)의 죽음’을 사주했다고 음해하였다. 특히 남인계였던 김종일(金宗一)이 심양에서 살아 돌아와 거짓 소문을 유포하면서 확산되었다. 1850년 그의 후손이 만든 ≪노암집(魯庵集)≫은 날조된 글로 우후죽순 만들어진 조선 말기 문집의 대표적인 사례로 취급되고 있다. 정뇌경과 인척관계인 남인 윤선도(尹善道)정두경(鄭斗卿)정뇌경의 비문(≪고산유고(孤山遺稿)≫)묘지명(≪동명집(東溟集)≫)에 허위사실을 기재하였는데, 이 글이 1969년 정뇌경의 후손들이 만든 ≪운계집(雲溪集)≫에 실려 알려지면서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역사학자 안정복(安鼎福)도 정뇌경 조작에 일조했다. 그가 정뇌경의 행장을 다시 지어주는데, 앞의 날조된 비문이 사실인양 검증해주는 내용이다.(≪순암집(順菴集)≫) 본래 행장이 먼저 쓰여지고 그것을 토대로 비문이 작성되는데, 정뇌경은 비문이 날조되고 난 후에 행장을 다시 지어 정당화 하려 한 것이다. 박로에 대한 날조된 글의 정점은 서인(노론) 송시열(宋時烈)이다. 송시열은 숙종 때 사약을 받기 전, ‘박뢰(박로+정뇌경=박뢰)’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 박로를 간신배로 뒤바꿔 놓았고 사실 관계를 완전 날조하였다. ≪송자대전(宋子大全)≫ <박광일록(朴光一錄)>≪손재집(遜齋集)≫ 그 전모가 실려 있다. 송시열 사후에도 그를 추종하는 서인과 노론(老論)들로부터 집요한 북벌론의 희생양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32년 막역지우였던 대제학 이식(李植)은 그의 문집 ≪택당집(澤堂集)≫에 40여편의 시문을 남겨,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소현심양일기(昭顯瀋陽日記)≫, ≪심양장계(瀋陽狀啓)≫ 등이 번역되어 일반에 공개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재조명 되고 있다. 힘없는 인조의 마지막 대청 외교관이자 소현세자의 스승이었던 그의 숙명이 택당의 <松竹問答> 시에 잘 담겨있다. 어떤 풍파에도 굽히지 않는 소나무는 나무 木 변의 ‘植’(이식)을, 부러지기 보다는 바람에 몸을 맡기되 청춘의 절개를 지키겠다는 대나무는 대죽 변의 ‘𥶇’(박로)를 말한다.
▶덕계집(德溪集) | 오건(吳健, 1521~157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덕계(德溪) 오건(吳健, 1521~1574)의 문집이다. 1663년경 하홍도(河弘度)를 비롯한 서계서원의 원유들에 의해 문집의 편찬, 간행이 시도되어, 18세기 초에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시로는 성주 훈도(星州訓導) 시절 유람하며 지은 것, 남명선생(南冥先生)과 지곡사(智谷寺)에서 만나 지은 것, 호남 어사로 나갈 때 지은 것, 고향 서계(西溪)를 읊은 것 등이 실려 있다. 소차(疏箚)로는 <청진학납간소(請進學納諫疏)>, <논국혼비례소(論國婚非禮疏)>, <청정심납간차(請正心納諫箚)> 등이 있다. 권6의 <연평답문질의(延平答問質疑)>는 1563년 도산(陶山)으로 퇴계 선생을 방문하여, 주자(朱子)와 연평(延平) 선생의 문답을 담은 <연평답문(延平答問)>에 대한 것을 들은 내용이다. 논(論)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뜻을 나름대로 해석한 <강목불계춘추론(綱目不繼春秋論)>, <주공청명삼왕론(周公請命三王論)>, <송이종숭상이학론(宋理宗崇尙理學論)> 3편이 있다. 권7~8은 외집(外集)으로 부록 성격이다. 저자의 성리학적 조예와 관물(觀物) 태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덕봉집(德峯集) | 이진택(李鎭宅, 1738~180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덕봉(德峯) 이진택(李鎭宅, 1738~1805)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아들 복한(復漢)이 가장(家狀)을 지어 금파(琴坡) 이정병(李鼎秉)에게 묘갈명(墓碣銘)을 받아 유적(遺蹟)을 정리하고 저자(著者)의 증손 우영(祐榮)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에 저자(著者)의 현손 규일(圭一)과 규승(圭升)이 부록문자(附錄文字)를 증보(增補)하여 이만도(李晩燾)의 교정(校正)을 받아 1902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6권, 소회록(疏會錄)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이만도가 1902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권2는 소(疏), 계(啓)이다. 소의 <사대직겸진사노혁파소(辭臺職兼陳寺奴革罷疏)>에서는 1793년에 장령을 사직하면서 각 관서 소속의 시노비(寺奴婢)가 받는 고통이 추쇄관(推刷官)을 없애기 전보다 심한 실정 등을 아뢰면서 노비속안(奴婢續案)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정조가 이를 등사하여 관계 요로에 알리도록 하였으며 이후 1801년에 공노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시노비(內寺奴婢) 혁파의 계기가 되었다.
▶덕양유고(德陽遺稿) | 기준(奇遵, 1492~152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덕양(德陽) 기준(奇遵, 1492~15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집은 1606년 저자의 증손 기자헌(奇自獻)이 ≪덕양유고(德陽遺稿)≫라고 제명(題名)하여 목판본 3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시(詩)에는 관직 생활 중에 지은 응제시(應製詩) 1제(題)를 비롯하여 송별시와 유람시가 많다. 또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아산(牙山)과 온성(穩城)의 적소(謫所) 및 옥중에서 지은 연군사친(戀君思親)의 내용을 담은 시도 많다. 문(文)으로는 적소의 삼엄함을 기록한 <위리기(圍籬記)>를 비롯하여, 적소 주변의 문방필연(文房筆硯)으로부터 솥ㆍ부엌ㆍ굴뚝 등에 이르기까지 60개 물건의 상(象)을 보아 거기에 해당되는 이름을 붙인 <명물기(名物記)>와 여기에 자경(自警)의 뜻을 붙인 <육십명(六十銘)> 등이 있다. 부록에는 박순(朴淳)ㆍ홍인우(洪仁祐)ㆍ이황(李滉) 등 10여 명의 글 중에 저자와 관련된 시문을 초록한 글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605년에 쓴 오억령(吳億齡)의 발문이 있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으로 기묘사화와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유배되고 죽음을 당한 저자의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덕은유고(德隱遺稿) | 박운수(朴雲壽, 1797~184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덕은(德隱) 박운수(朴雲壽, 1797~18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손자 정양(定陽)에 의해 저자 부친의 문집인 ≪냉천유고(冷泉遺稿)≫, 저자 아들 제근(齊近)의 문집인 ≪경암유고(敬菴遺稿)≫와 함께 편간(編刊)이 이루어졌다. 정양은 1886년 아들 승길(勝吉)을 시켜 시문 초고 4책을 소산(素山) 이응진(李應辰)에게 보내어 교정(校正)을 부탁하여 산정(刪定)된 원고를 받았다. 이후 1894년에 묘표(墓表)를 작성하고 서문(序文)을 붙여 1895년에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였다. 본집(本集)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손자 정양(定陽)이 1894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으며, 각 권마다 권목(卷目)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詩體)나 저작 연도 등과는 무관하게 편차(編次)되어 있다. 달, 닭, 단선(團扇), 분매(盆梅) 등을 읊은 영물시(詠物詩), 생일, 방문, 유람(遊覽), 주변 사람들의 내왕(來往) 등 일상생활 혹은 즉감(卽感)을 읊은 작품이 주를 이룬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고문(告文), 기우문(祈雨文), 행록(行錄)이다.
▶덕촌집(德村集) | 양득중(梁得中, 1665~174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덕촌(德村) 양득중(梁得中, 1665~17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양순해(梁舜諧) 등이 수집하여 등사(謄寫)해 정리하고, 저자의 외증손인 윤인기(尹仁基)가 문집의 오류를 교정하고 문체별로 편차하는 등 정리를 맡았다. 이후 1806년에 10권 5책을 활자로 인출하였다. 상소는 대부분이 사직소이며, 전정(田政)의 개혁을 위해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참고할 것을 권한 내용 등이 있다. 권3의 <등대연화>는 연석에서 나눈 대화로 탕평책과 양역(良役)의 폐단, 정책 시행 과정에서 착오가 생기는 경우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잡저 중 <이기론(理氣論)>은 저자가 15세 때 지어 박세채(朴世采)의 칭찬을 받은 글이고, <알묘설(揠苗說)>은 맹자의 <알묘설>을 인용하여 말마다 예의염치를 따지는 자들이 바로 염치의 도(道)를 죽이는 무리라며 조정과 사림의 허위의식을 공격한 글이다. 시는 13편만이 실려 있다. <만필(漫筆)>에는 스승인 윤증(尹拯)의 유명(遺命), 중국 고사에 대한 사론(史論) 등이 짤막하게 기술되어 있다. 편지는 대부분 <이기설(理氣說)> 등의 의문점을 묻거나 자신의 설을 질정하는 것이다.
▶덕포유고(德浦遺稿) | 윤진(尹搢, 1631~169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덕포(德浦) 윤진(尹搢, 1631~1698)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헌규(憲圭)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3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2권 합 2책으로, 권두에 서문은 없고 목록만 있다. 원집(原集)의 권상은 시(詩), 소(疏)이다. 시는 1658년부터 1694년까지 지은 것을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이중에서 만시(挽詩)가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안숙(安塾), 박장원(朴長遠), 최유지(崔攸之), 이후산(李後山), 이하(李夏) 등에 대한 것이다. 소는 정언, 수찬, 교리, 사간 등을 사직하는 상소이다. 권하는 서(書), 잡저(雜著), 제문(祭文), 과체(科體)이다. 특히 과체는 1666년 별시 초시 때 지어 올린 <방현령자령도지론(房玄齡自領度支論)>과 나라를 다스릴 때 우선적으로 체통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전시에서 1등을 차지한 글인 <전시책(殿試策)> 등이 실려 있다. 부록(附錄)의 권상은 연보(年譜)이고 권하에는 가장(家狀), 지명, 묘표, 치제문, 제문, 만사, 춘추향축문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저자의 족현손인 윤형규(尹馨圭)가 1833년에 지은 발이 있다.
도계유고(陶溪遺稿) | 윤홍규(尹弘圭, 1760~182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도계(陶溪) 윤홍규(尹弘圭, 1760~1826)의 문집이다. 이돈영(李敦榮)의 묘갈명과 조석우(曺錫雨)의 서문에도 문집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만 1875년 족손 자덕(滋悳)이 쓴 행장에 “저자의 유집 몇 권이 가장되어 있다.”라고 하였지만, 언제 누구의 편차와 교감을 통해 문집을 간행하였는지는 불명확하다. 그저 행장을 쓴 1875년 이후 목활자로 인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1873년 조석우가 쓴 서(序)가 있다. 권1 앞에 권1~2의 목록이 있고 권3 앞에 권3~4의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와 관계없이 대체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목이 길어 일종의 소서(小序)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많다. 시는 주로 그때그때의 소회(所懷)를 읊은 것, 기행시, 만시(挽詩) 등이 있다. 권2는 서(書)로, <유서계종자(遺書戒從子)>는 저자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글로, 죽은 후에 상례를 검소하게 치를 것과 효우할 것 등을 당부한 것이다. 부록으로는 1875년에 후손 자덕이 쓴 행장, 1864년에 이돈영이 쓴 묘갈명, 족제 심규와 경규, 이의원이 쓴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도곡집(陶谷集) | 이의현(李宜顯, 1669~1745)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아들 이보문(李普文)과 함께 시문을 수습하였고, 저자의 유언에 의하여 가장초고를 물려받은 사손(嗣孫) 이학조(李學祚)가 32권으로 편차하여 1766년에 철활자(鐵活字)로 간행하였다. 시는 700여 수로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오는 길에 지은 것, 유배 생활을 할 때에 지은 것 등이 있다. 소차는 대개 제수된 벼슬을 사직한 것, 내린 상전(賞典)을 사양한 것 등이며, 계(啓)는 1721년에 유봉휘(柳鳯輝)의 토죄(討罪)를 청한 것 등이며, 의(議)는 노산군(魯山君)과 중종(中宗)의 폐비 신씨(愼氏)의 위호(位號)를 추복(追復)하는 데에 대한 것이다. 서(序)는 ≪잠필록(簪筆錄)≫ 등의 서문이다. 기(記)로는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 <이천제승유람기(伊川諸勝遊覽記)>가 있다. 잡저로는 ≪운양만록(雲陽漫錄)≫ 등 고금의 학술과 인물에 대해 적어 두었던 단편들을 기록한 것이다. 잡지(雜誌)는 연경에 다녀올 때의 일들을 노정(路程)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권32 ≪기년록(紀年錄)≫은 출생부터 1744년까지의 일을 기록한 자찬(自撰) 연보(年譜)이다.
▶도암집(陶菴集) | 이재(李縡, 1680~1746) | 권책수 : 25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의 문집이다. 저자가 남긴 많은 시문은 저자 사후 박성원(朴聖源)이 편찬을 주도하여 여러 문인에 의해 편찬, 간행이 시도되었으나 저자의 문인이었던 홍계희(洪啓禧)와의 갈등 등으로 문집이 간행되지 못하다가 이후 손자 이채(李采)에 의해 1778년 편찬 작업이 재개되어 1803년에 원집 50권 25책을 정리자체(整理字體) 활자로 간행하였다. 시는 640여 제로, 8세에 지은 <즉사(卽事)>부터 67세 졸한 해까지의 시가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송도(松都)ㆍ금강산ㆍ설악산ㆍ호서ㆍ영남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시와 차운시, 만시(挽詩) 등이 있다. 소(疏)는 대부분 사직소(辭職疏)이고, 그밖에 환관과 당론의 폐해 등에 관해 올린 것 등이 있다. 강의(講義)는 1725년 8월 주강(晝講)에 입시하였을 때의 ≪맹자(孟子)≫ 강의와 진계(陳戒) 내용을 대화 형식 그대로 정리해 놓은 것으로, 성학(聖學)에 힘쓸 것을 청하고 궁가(宮家) 절수(折受)의 폐단 등 민생(民生)의 현안들을 아뢴 것이다. 서(書)는 스승, 친척, 사우 등에게 보내고 답한 650여 편이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도운유집(陶雲遺集) | 이진망(李眞望, 1672~173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도운(陶雲) 이진망(李眞望, 1672~1737)의 문집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저자의 문집에는 5대손 이상순(李象恂)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이는 1854년에 저자의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성책(成冊)하고 지은 것이다. 본집은 불분권 2책이다. 시는 약 720제가 실려 있는데, 시의 내용은 야(夜), 우(雨), 설(雪), 주(酒), 매화(梅花), 즉사 등의 제목이 많으며, 서정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문(文)은 잡저까지 합쳐서 23편에 불과하다. 큰며느리인 이광덕(李匡德)의 처 풍양 조씨(豐壤趙氏)의 묘지(墓誌), 증조 이경석을 변무한 내용의 소(疏), 1725년에 지은 제주 고씨(濟州高氏) 보첩(譜牒)의 서문과 저자의 시조인 덕천군(德泉君) 사우(祠宇)의 중수에 관한 서문, 건물에 대한 기문, 박세채(朴世采)에 대한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기실문(寄室文)>은 1699년작으로 부인에게 부귀를 탐하지 말고 빈천을 편안히 여기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하자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고, <의언(醫言)>은 14세 때 지었다는 주(註)가 붙어 있는데, 환자와 의원의 말을 빌려 치국(治國)의 도는 기강을 바로잡음에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도은집(陶隱集) | 이숭인(李崇仁, 1347~139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1406년에 저자에게 이조 판서를 추증하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내린 후, 유고(遺稿)를 모아 간행하라는 태종의 명에 의해 변계량(卞季良)이 편차(編次)하고 권근(權近)이 서(序)를 지어 시집(詩集) 3권ㆍ문집(文集) 2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 초간본이 간행된 후 간행 연도가 불분명한 두 종류의 이본(異本)이 간행되었는데,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9행 15자의 목판본이다. 권1에는 사(辭) 1편, 오ㆍ칠언고시 30제(題), 권2에는 오ㆍ칠언율시 154제, 권3에는 오ㆍ육ㆍ칠언절구 153제가 실려 있다. 권4에는 기(記) 7편, 지(誌) 1편, 서(序) 12편이 실려 있다. 이 중 <상죽헌기(霜竹軒記)>ㆍ<여흥군신륵사대장각기(驪興郡神勒寺大藏閣記)> 두 편은 이본(異本)에는 모두 서(序) 뒤에 편차되어 있다. 권5에는 전(傳), 제후(題後), 의(議), 행장(行狀), 찬(讚), 자설(字說), 표(表), 전(箋)이 실려 있다.
▶독곡집(獨谷集) | 성석린(成石璘, 1338~142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42년(세종24) 왕명으로 경연에서 정리ㆍ편집하여, 14년 뒤인 1456년(세조1) 6월에 손서(孫婿)인 평양 감사 김연지(金連枝)가 처음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4년 뒤인 1460년 김연지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진주(晉州)에서 다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상ㆍ하 2권 합 2책의 시집으로, 450여 제(題)의 시가 실려 있다. 상권에는 여러 편의 행(行)ㆍ가(歌)ㆍ고시(古詩)를 비롯하여 오언율시 95제(題), 칠언율시 63제가, 하권에는 오언절구 57제, 칠언절구 210제, 육언시 1제가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송시(送詩)ㆍ차운시(次韻詩)ㆍ화답시(和答詩) 등이 많아 시에 나타난 인물만도 2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권1의 <차융상인시권제공운(次融上人詩卷諸公韻)>ㆍ<차휴상인귀풍악산차기우자운(次休上人歸楓岳山次騎牛子韻)> 등 17수, 권2의 <송승지풍악(送僧之楓岳)> 등 43수는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시제(詩題)이다.
▶독석집(獨石集) | 황혁(黃赫, 1551~161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독석(獨石) 황혁(黃赫, 1551~16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생질 이후원(李厚源)이 여러 전적(典籍)에서 집일(輯佚)ㆍ편차(編次)하고 저자의 외손 유시번(柳時蕃)이 1670년 본판(本板)으로 초간(初刊)한 후, 저자의 현손 휘(暉)가 시문(詩文)을 증보(增補)ㆍ재편(再編)하고 6대손 황선(黃璿)이 1727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칠언배율(七言排律), 잡저(雜著), 제문(祭文), 행장(行狀), 표(表), 대책(對策)과 부록이 실려 있고, 권수에는 1674년에 송시열(宋時烈)과 김수항(金壽恒)이 지은 서문이 있다. 송시열의 서문에는 이교악(李喬岳)이 1727년에 지은 발문이 첨부되어 있다. 그중에서 잡저는 광국 공신(光國功臣) 윤두수(尹斗壽), 평난 공신(平難功臣) 홍성민(洪聖民)ㆍ최황(崔滉)에게 내린 교서와 왕자를 대신해 천장(崔滉)에게 올린 글, <신천향교상량문(信川鄕校上樑文)>이다. 제문은 순화군(順和君), 안경창(安慶昌) 등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부친 황정욱의 것이다.
▶독암유고(獨庵遺稿) | 조종경(趙宗敬, 1495~153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독암(獨庵) 조종경(趙宗敬, 1495~1535)의 문집이다. 본집은 둘째 아들 온양 군수(溫陽郡守) 조정추(趙廷樞)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편차(編次)하여 온양에서 1587년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고, 1643년에는 증손 풍안군(豐安君) 조흡(趙潝)이 목판(木板)으로 문집을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그 후 1760년에 7대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이 구본(舊本)에 묘문(墓文)과 유사(遺事)를 부록으로 붙여서 상주(尙州)에서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고, 65판의 판목을 남장사(南長寺) 보각(譜閣)에 보관하였다. 본집(本集)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내용은 시(詩)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643년에 지은 박미(朴瀰)의 구간서(舊刊序)와 1760년에 지은 정존겸(鄭存謙)의 중간서(重刊序)가 있다. 시(詩)는 200제가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혼재되어 실려 있다. 간지(干支)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저자가 김안로(金安老) 일파에게 축출되어 서울을 떠나 과천(果川) 청계산(淸溪山) 아래에서 눌러 살면서 지은 시가 많다.
▶돈암전서(遯菴全書) | 선우협(鮮于浹, 1588~165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돈암(遯菴) 선우협(鮮于浹, 1588~16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윤자(胤子) 선우집(鮮于檝)과 문인 김기수(金起洙) 등이 1672년경에 정리하였고, 1681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송시열의 서문과 박세채의 발문이 실려 있다. 본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대역리상(大易理象)>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심학지요(心學至要)>로, 천도(天道), 천인심성일리(天人心性一理), 등 초학자에게 필요한 심학 공부의 요체를 경전을 참고하여 33조목의 단구(短句)로 정리한 것이다. 권2는 <역학도설(易學圖說)>이 실려 있다. 권3은 해(解)와 설(說)이다. 역(易)에 대한 해설과 역의 기원과 개념 및 변천을 설명한 것이다. 권4는 <태극변해(太極辨解)>가 실려 있다. 첨부한 설(說)은 <태극설>, <음양설>, <오행설> 등 태극과 음양오행에 관련된 글들이다. 권5는 유문(遺文)으로 소(疏), 기(記), 부(賦) 1편씩과 시(詩), 서(序)를 모아놓은 것이다. 시는 28제(題)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성리학의 주요 개념을 다룬 글과 도설(圖說)이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돈암집(敦巖集) | 박종경(朴宗慶, 1765~181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돈암(敦巖) 박종경(朴宗慶, 1765~1817)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아들 기수(岐壽)가 수습 정리하여 4권으로 편차하고 저자의 동생 종희(宗喜)가 발문을 붙인, 서사경위(書寫經緯)가 불분명한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본집은 10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시는 시체(詩體)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編次)되어 있다. <서구(恕狗)>는 밤에 달그림자를 보고 짖는 두 마리의 개 때문에 나아가던 병이 더 심해지자 종에게 개를 죽이라고 하였다가 개의 본성이 그러한 것을 깨닫고는 살려주게 하고 느껴 지은 것이다. 권5는 계(啓), 강의(講義)이다. 계는 평시서 제조, 선혜청 당상, 총융사, 병조 판서, 호조 판서, 훈련대장 등의 직임을 맡고 있을 때 건의한 것들로 난전민(亂廛民)의 정세(定稅)를 정지하는 문제, 빙고(氷庫)를 개수할 때 선혜청(宣惠廳)의 저치미(儲置米)를 가져다 쓰는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내용이 실려 있다. 권미(卷尾)에 작성 연도를 알 수 없는 계제 종희(宗喜)가 지은 발(跋)이 있다.
▶돈와유고(遯窩遺稿) | 임수간(任守幹, 1665~172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돈와(遯窩) 임수간(任守幹, 1665~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3권 3책의 활자본(活字本)으로 간행되었으나 서발이나 관계 기록이 없어 편찬과 간행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아들 임광(任珖)의 수집 편차를 거쳐 손자 임희성(任希聖)이 1760년대에 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권1~2는 모두 시(詩)로 총 360여 제의 시가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권2에는 1711년 통신 부사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여정(旅程)과 중도에 풍랑을 겪은 일, 풍물과 정취를 읊은 내용이 많다. 권3에는 상소, 기(記), 서(序), 발(跋), 논(論), 제문 등을 모아놓았다. 상소는 대부분 사직소이며, 남인(南人)을 변호하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기(記)는 경주의 망월루 등을 유람하고 지은 것 등이며, 서발(序跋)로는 <송준상인서(送儁上人序)>, <백석집서(白石集序)> 등에 대한 발문이 있다. 논(論)으로는 <춘추론(春秋論)>, <이필론(李泌論)>등 3편이 있다. 그밖에 교서(敎書), 장(狀), 담배를 주제로 지은 <연다부(烟茶賦)> 등 3편의 부(賦), 저자의 부친 임상원(任相元)의 묘지, 애사(哀辭), 제문 등이 있다.
▶동강유고(東岡遺稿) | 최시옹(崔是翁, 1646~173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강(東岡) 최시옹(崔是翁, 1646~17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저자가 졸한 후 후손들이 수습하여 가장하고 있었다가 19세기 중반에 간행되었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5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58년에 서유훈(徐有薰)이 지은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별로 수록되었는데 주로 산사에서 독서하거나 벗들과 모임을 하였을 때 지은 시들이 많으며 승려에게 보낸 증시가 많다. 권2는 서(書)로 윤증(尹拯), 박세채(朴世采)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중에서 <상명재선생(上明齋先生)>은 윤증에게 박세채와의 불화설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내용과 ≪예기유편(禮記類編)≫ 문제가 사론의 분열을 가져오므로 최석정(崔錫鼎)을 설득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 등이다. 권3은 문목(問目), 변답이고 권4는 서(序), 기(記), 발(跋), 찬(贊), 변(辨)이다. 권5~7은 제문과 축문, 묘표, 묘갈명, 행장 등이다. 권8은 부록으로 윤광소(尹光紹)가 지은 행장, 한만유(韓晩裕)가 지은 묘지명,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동강유고(桐江遺稿) | 이석(李, 1701~175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강(桐江) 이석(李석(氵+奭), 1701~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규빈(奎彬)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윤광안(尹光顔)의 편차를 받은 고본을, 저자의 손자 간(暕)이 1810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2책이다. 권수에 윤광안이 1810년에 지은 서(序),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묘표, 목록이 있다. 권1~2는 서독(書牘)으로, 이덕수(李德壽), 조귀명(趙龜命)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3은 묘표, 묘지명이고 권4는 증조부 희상(喜相), 조부 평(坪), 부친 봉진(鳳鎭), 이급(李伋), 황진(黃璡), 성도민(成道敏) 등에 대한 행장(行狀)이다. 권5는 제문, 잡저, 시(詩)이다. 잡저 가운데 <동원기(東園記)>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동원의 형세와 연혁, 개수의 전말 등을 기술한 글이고, <대호서유생청사왕자건사소(代湖西儒生請四王子建祠疏)>에서는 단종 때 순절한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 등을 위해 사당을 건립하여 이들을 배향할 것을 요청하였다. 시 중에는 이병연(李秉淵)의 차운시와 조유수(趙裕壽), 오도일(吳道一)의 원운(原韻)이 부기되어 있다.
▶동강유집(東江遺集) | 신익전(申翊全, 1605~16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강(東江) 신익전(申翊全, 1605~16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신정(申晸)이 1672년 호남 감사(湖南監司)로 재임 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직접 정리하고 편차하였다. 그 후 19권 3책의 분량으로 한구자(韓構字)로 인행되었는데 재편찬과 간행 경위는 관련 서발이나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다. 권1~9는 시(詩), 권10~15는 문(文), 권16은 별록(別錄), 권17~19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신정의 발문이 있다. 시는 320여 수로 구성되어 있다. 형인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과의 차운시가 많은 편이다. 또한 기행시나 증시(贈詩), 서정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文)으로는 서(序), 기(記), 행장, 제문,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별록으로 실린 <밀양지(密陽志)>는 저자가 1652년 밀양 부사로 재직시 지은 읍지이다. 읍의 연혁과 지리적 요건, 속현과 읍, 사우(祠宇)와 주요 건물, 명승지, 인물뿐만 아니라 세수(稅收)와 지출 상황, 관아의 인원, 노비, 특산물과 공부(貢賦)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병자호란 이후의 급변하는 사회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동강집(東岡集) | 김우옹(金宇顒, 1540~1603)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의 문집이다. 화재로 거의 타 버리고 남은 주의(奏議), 소차(疏箚), 부영(賦詠), 필찰(筆札) 100여 편과 ≪속강목(續綱目)≫ 한 질을 바탕으로 자손들이 문집의 수집과 정리를 시작하였고, 1723년~1755년경에 초간본이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6년에 원집과 보유(補遺)를 합해 17권으로 재편차하고 별책의 연보와 부록을 4권으로 묶어 총 11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고 만시(挽詩) 7편을 끝부분에 실었다. 함양의 서계(西溪)를 유람하고 지은 <서계창수(西溪唱酬)> 등이 실려 있고, 권용중(權用中)과 차운한 시가 특히 많다. 사(詞)ㆍ부(賦)에는 1590년에 회령 유배지에서 지은 <황화사(黃華詞)>, 15세 때 지은 <심비부(沈碑賦)>가 있다. 소(疏)에는 46편이 실려 있는데, 주로 사직(辭職)ㆍ걸퇴(乞退)의 내용이며, 상제(喪制), 예제(禮制)와 관련한 상소도 다수 있다. 서(書)는 임진왜란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임진왜란 전후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붕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동계유고(東溪遺稿) | 이영보(李英輔, 1687~174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계거사(東溪居士) 이영보(李英輔, 1687~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광원(廣源)ㆍ술원(述源)이 수집하여 남유용(南有容)의 편차를 받아 1759년 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아우 문보(文輔)의 ≪대관유고(大觀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남유용이 1759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저자의 시 중에는 연작이 적지 않은데, 다수의 팔경시(八景詩)를 비롯하여 금강산 유람시(遊覽詩) 등이 있다. 권4는 서(書), 서(序), 기(記), 잡저, 행장, 제문, 애사이다. 서(書)는 유척기(兪拓基), 이천보(李天輔), 남유용(南有容)에게 보낸 것이다. 서(序)는 32세 무렵 그간 지은 시를 정리하며 쓴 <시고자서(詩稿自序)>이다. 잡저 가운데 <서망우김군회포효정문후(書亡友金君晦褒孝呈文後)>는 벗 김환(金晥)이 효행으로 지평에 추증된 일을 기념하는 글이다. 이밖에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순절한 남연년(南延年), 이봉상(李鳳祥), 홍림(洪霖)의 위패를 청주(淸州) 충열사(忠烈祠)에 봉안한 경위를 밝힌 글이 있다.
▶동계유고(東溪遺稿) | 최윤창(崔潤昌, 172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동계(東溪) 최윤창(崔潤昌, 1727~?)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체가 정갈하고, 교정이나 수정 사항 없이 한 사람의 손에서 필사되었지만, 필사 경위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해 전사되었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다만 저자가 생전에 어느 정도 시문에 대한 정리를 해두었던 듯한데 이는 본집 내의 주가 자주(自註)이고, 권2에 있는 <유루추록(遺漏追錄)> 등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본집은 3권 3책의 시집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권1~3은 총 1,063제의 시와 엄계흥(嚴啓興)에게 쓴 편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도별로 편차하였다. 저자의 시는 화려한 표현이나 지나친 수식은 피하고 절제된 시어를 썼다고 평가되는데, 아전으로서 관아에 있을 때, 서사(西社) 모임과 시한재(是閒齋) 등 도성 주변의 장소에서 갖은 시회(詩會) 때, 혹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낀 자연 경물에 대한 감흥을 읊은 것이 많다. 이 가운데 <시한재청유도서(是閒齋淸遊圖序)>는 1778년 가을에 화원 윤도행이 그린 아회도(鴉會圖)에 서문을 붙여 당시의 정황을 기록하고 시를 지은 것이다.
▶동계집(東溪集) | 조형도(趙亨道, 1567~163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1567~1637)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윤창(胤昌)과 응창(應昌)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였고, 7대손 기서(基緖)와 기평(基平) 등이 1845년 이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원집 5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의 서(序)와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부(賦) 1편 외에 모두 시(詩)이다. 시는 신지제(申之悌), 오여벌(吳汝橃) 등에게 보낸 것, 소유정(小有亭), 하한정(夏寒亭), 쌍계정(雙溪亭), 망운정(望雲亭) 등에서 심경을 읊은 것 등과 북쪽 오랑캐에 대해 분격한 마음에 지은 <문노적패맹욕동창래갈조정송신득연칙유(聞奴賊敗盟欲東搶來喝朝廷送申得淵敕諭)>‚ <탄김노칭참호(歎金虜稱僭號)> 등이다. 권4는 소, 서(書), 서(序), 기, 제문, 행장이다. 그중에서<사괴산군수소(辭槐山郡守疏)>는 정묘호란 직후 과분하게 받은 괴산 군수직을 체차해 달라는 내용이다. 권5는 부록으로 만사, 행장, 묘지명, 유사, <덕봉사봉안문(德峯祠奉安文)>, <십삼충록서(十三忠錄序)>이다. 권말에 이종상(李鍾祥)과 7대손 조기록(趙基祿)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동계집(東溪集) | 권도(權濤, 1575~164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계(東溪) 권도(權濤, 1575~1644)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권대호(權大㦿)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8년 완계서원에서 목판으로 초간한 후, 후손 용성(龍成) 등이 증보ㆍ재편하여 1875년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연보 3권 합 4책이고 권수에 1809년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序)가 있다. 원집 권1은 오언시이고, 권2는 칠언시이다. 권3은 만, 부이다. 부 가운데 <요견복중원(要見復中原)>은 1638년에 지은 것으로서 오랑캐에 짓밟힌 중원의 회복을 기원하지만 힘이 없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권4는 교서, 소, 차자, 계사이다. 소는 피혐소와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권5는 서(書)이고 권6은 잡저, 잠, 책문, 표전, 전문이다. 권7은 축문, 제문, 묘지명, 묘갈명, 행장이고 권8은 벗들과 주고받은 시와 서찰을 모은 것이다. 연보 권1은 저자의 연보로서, 1575년 저자의 출생부터 1824년 시호를 받은 사실까지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권2~3은 부록으로 만장, 제문, 봉안문, 상향문, 상량문, 기사 등이 있다. 권말에는 1875년에 후손 권용성이 지은 중간발(重刊跋)이 있다.
▶동계집(東溪集) | 박태순(朴泰淳, 1653~170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계(東溪) 박태순(朴泰淳, 1653~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사집(師緝)이 저자의 자편고를 수사하여 사위 송성명(宋成明)의 협조를 받아 1736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송성명이 1736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5는 시(詩)로, 저작 연도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두보(杜甫), 이상은(李商隱), 이안눌(李安訥), 오도일(吳道一) 등의 시에 차운한 시, 박세당(朴世堂), 유득일(兪得一) 등이 연행(燕行)할 때와 김창협(金昌協), 유성운(金昌協) 등이 임지로 떠날 때 지은 송시, 만시 등이 있다. 권6은 잠(箴), 송(頌), 교서 등이고 권7은 제사, 제문 등이다. 권8~9는 소(疏)와 계사로, <응지소(應旨疏)>는 향온의 진상을 막는 등 절손하여 낭비를 억제할 것과 변경의 교역 등에 관하여 올린 것이고 <청건잠곡서원소(請建潛谷書院疏)>는 가평(加平)의 선비들을 대신하여 쓴 것으로, 김육(金堉)의 학덕과 유풍을 기리기 위한 서원의 건립을 청한 것이다. 권10은 행장과 묘표 등으로 묘표는 증조 박동언(朴東彦), 부친 박세상(朴世相), 이세선(李世選)에 대한 것이다.
▶동계집(東谿集) | 조귀명(趙龜命, 1693~173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 1693~1737)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유문을 편찬하고 간행한 이는 조현명(趙顯命)이다. 그는 1741년 12권 6책을 교서관인서체자로 간행하였다. 시(詩)보다 산문의 비중이 높다. 기(記)로는 1714년의 서실 마당에 꽃나무를 심고 쓴 작품을 비롯하여 <서계(西溪)>, 지리산 등지를 유람하고 남긴 작품들이 실려 있다. 전으로는 서얼 출신으로 술과 여색을 좋아하며 삶을 즐겼던 남중하(南重河), 분(粉)을 팔며 평생을 수절한 <매분구(賣粉嫗)> 등이 있다. 설(說)로는 우화로 지은 <왜려설(倭驢說)>,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역설한 <장공예백인설(張公藝百忍說)> 등이 있다. 잡저로는 <독사(讀史)>, <독산해경(讀山海經)>, <독노자(讀老子)>와 같이 독서를 하며 소감을 적은 글들이 많다. 또 20대 초반에 쓴 병해(病解)는 병고에 시달리며 생사를 초탈하게 된 경위를 기술한 것이고, <화왕본기(花王本紀)>는 ≪서경(書經)≫의 문장을 본떠서 꽃들의 세계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그밖에 <정체(靜諦)>, <논선제편(論禪諸篇)> 등 불교적인 내용을 담은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동계집(桐溪集) | 정온(鄭蘊, 1569~1641)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의 문집이다. 1660년에 원집 4권에 부록을 추가해 9행 19자의 목판으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초간에서 누락되었던 유문과 후에 증가된 부록문자를 속집 3권으로 편차하여 원집, 부록과 함께 1852년에 10행 20자의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시는 기행시와 유배 중에 우국사친(憂國思親)의 정회(情懷)를 담아 지은 시가 가장 많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비분강개를 담은 시 몇 편과 말년에 은거하는 동안 지은 <산거(山居)> 등의 작품 수십여 편이 있다. 기로는 제주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후에 대정현(大靜縣)의 산악과 섬 등에 대해 상세히 적은 것 등이 있다. 소차(疏箚)로 1626년 계운궁(啓運宮) 상례(喪禮)의 잘못을 지적한 <걸체소(乞遞疏)>, 끝까지 척화주전(斥和主戰)을 주장한 <산성차자(山城箚子)> 등이 있다. 정인홍의 문인으로 북인으로서 출사하였으나 갑인봉사(甲寅封事)로 인해 북인과 결별하고 이후 남인의 영수가 된 저자의 척화론(斥和論)과, 임란을 겪으며 비분강개한 마음을 표현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동고유고(東皐遺稿) | 이준경(李浚慶, 1499~157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1586년에 아들 이덕열(李德悅)이 청주에서 활자로 처음 인행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며 거의 유실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증손 이필행(李必行)이 가장초고(家藏草稿)와 공사(公私) 전적(典籍)에서 다시 수집하여 편차한 중간본에 이웅징(李熊徵)이 새로 얻은 유문(遺文) 수 편을 추보(追補)하여 1711년에 간행한 추각후쇄본이다. 소(疏)로는 <천인상여(天人相與)>의 원리를 먼저 밝히고 군덕(君德)ㆍ사습(士習)ㆍ국본(國本)에 대하여 논계(論啓)한 <답재이구언소(答災異求言疏)> 등 5편이 실려 있다. 차(箚)로는 을사ㆍ기유년 옥(獄)의 원왕(寃枉)을 신설(伸雪)하는 일과 김굉필(金宏弼)ㆍ조광조(趙光祖)의 문묘 종사를 주청한 글 등 20편이 실려 있다. 계사(啓辭)로는 을사사화의 억울함을 풀어 명예를 회복하고, 위훈을 삭제하기를 주청한 글이 있다. 저자는 훈구파에서 사림으로 정권이 이행하는 과도기를 산 인물로, 저자의 소ㆍ차ㆍ계(啓) 등의 글을 통해 국가 체제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났던 당시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 생존시에 아들 이함(李涵)이 초고(草稿)를 수합하여 편집하고 1241년 8월 최우(崔瑀)의 지시에 따라 목판으로 간행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간행 도중 저자가 죽자 이함은 다시 빠진 시문을 모아 동년 12월에 후집(後集)을 추보ㆍ편집하고, 이어 연보 및 뇌서(誄書)와 묘지명을 첨부하여 총 53권 14책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조선 후기에 다시 개간한 본으로 영조 연간에 개간된 것으로 보인다. 전집 권1~18에는 시(詩), 권19~41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1193년에 지은 장편서사시 <동명왕편(東明王篇)>, 당 명황(唐明皇)의 유적을 읊은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43수를 포함해 관직 생활을 하며 지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잡저로는 상량문ㆍ송(頌)ㆍ찬(贊)ㆍ게(偈)ㆍ명(銘)ㆍ잠(箴)ㆍ운어(韻語)ㆍ어록(語錄)ㆍ전(傳) 등이 실려 있고, 그밖에 설(說)ㆍ서(序)ㆍ발(跋), 논(論)ㆍ의(議)ㆍ평(評) 등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후집은 권1~10에 시 847수, 권11~12에 문 50편이 편차되어 있다.
▶동리집(東籬集) | 김윤안(金允安, 1560~162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1560~162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손자 김여만(金如萬)이 가장(家藏)하고 있다가 화재로 대부분 소실(燒失)되었다. 5대손 김반(金槃)이 산일(散逸)되고 남은 저자의 시문을 수습하고, 이상정(李象靖)에게 편차(編次)를 받았고, 7대손 김세규(金世奎)ㆍ김세유(金世瑜)가 김굉(金㙆)과 유집(遺集)을 교정(校正)하고 아울러 1811년에 김굉에게 발문(跋文)을 받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本集)은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원집(原集) 5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773년에 이상정(李象靖)이 지은 서문(序文)이 있고, 이어 세계도, 연보,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2는 각각 10세부터 56세까지 지은 시(詩)와 58세부터 61세까지 지은 시와 만시(輓詩) 21제가 실려 있다. 권3~4는 문(文)으로 소(疏)와 서(書), 기(記), 제문(祭文), 잡저(雜著) 등이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 만시(輓詩)가 실려 있다. 권미(卷尾)에는 1811년에 지은 김굉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동리집(東里集) | 이은상(李殷相, 1617~167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리(東里) 이은상(李殷相, 1617~1678)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모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초(詩草)는 저자의 손을 거쳐 사위 김만중(金萬重)에게 전해져 산정(刪定)되어 가장(家藏)되고, 소차(疏箚) 등의 문 역시 저자가 모아 놓았던 것을 김만중의 아들 김진화(金鎭華)가 이희조(李喜朝)의 협조를 받아 편집하여 가장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702년 김진화가 의성 현령으로 나가면서 16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맨 앞에 김창협(金昌協)의 서문이 있다. 시(詩)는 930여 제(題)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중앙 관직에 있을 때 지은 과제(課製),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기행시 등이 주를 이룬다. 소(疏)는 양호(兩湖)의 민폐를 진달한 것, 천재(天災)가 이어지는 원인을 진달하고 수성(修省)에 힘쓰기를 권면한 것, 인선왕후(仁宣王后) 상(喪)의 조대비(趙大妃) 복제(服制) 논의에 대한 것 등이 있다. 그밖에 표전(表箋), 비답, 교서, 유서(諭書), 서(書), 서(敍), 상량문, 서(序), 발(跋), 책문, 제문, 애책문, 행장, 묘갈 등이 있다. 권16은 변려문을 모은 별고(別稿)이다.
▶동리집(東里集) | 이오수(李五秀, 1783~185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리(東里) 이오수(李五秀, 1783~1853)의 문집이다. 정환(庭煥)이 유적과 유문을 수습ㆍ정리한 뒤 이만각(李晩慤)과 이돈우(李敦禹)에게 행장과 묘갈명을 요청하고 강진규(姜晉奎)에게 교감을 부탁하였으나 발문의 작성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이돈우가 서문을 작성한 1884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이돈우가 1884년에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4는 서(書), 변(辨), 서(序), 기(記), 발, 고유문, 제문이다. <송족제매수귀영양서(送族弟邁秀歸永陽序)>는 영양에서 자신을 찾아와 생계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돌아가는 족제에게 궁핍하더라도 견개한 마음을 변치 말고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한 글이다. <송족질정진귀인산서(送族姪庭振歸仁山序)>는 가난 때문에 떠돌아다니는 족질 정진에게 빈곤을 참지 못해 남에게 굽실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처신하여 속히 환향하기를 도모하라고 당부한 글이다. <서권계만내각일록후(書權啓萬內閣日錄後)>는 권계만이 ≪내각일록(內閣日錄)≫ 뒤에 쓴 글로, 영남 지역 선사(繕寫)의 유풍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권말에 강진규가 지은 발이 있다.
▶동림집(東林集) | 유치호(柳致皜, 1800~186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동림거사(東林居士) 유치호(柳致皜, 1800~1862)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30여 년 후 아들 홍진(弘鎭)이 김흥락(金興洛)에게 묘갈명을, 족질인 정호(廷鎬)에게 행장을 받아 행적을 정리하고, 저자의 시문은 건흠(健欽)이 수집ㆍ편차하고 족제 치엄(致儼)과 치유(致游)가 교정을 한 뒤 보관하여 오다가 정호 등이 다시 교정을 하고 부록을 붙여 11권 6책으로 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동생 치확(致碻)이 사망한 뒤 매화를 보고 처연한 느낌이 들어 지은 시와 가난했던 신상윤(申相贇)이 부인 안씨(安氏)가 82조각의 천을 기워 만든 적삼을 기쁘게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은 시이다. 권3~6은 서(書)이다. 그중에서 권5의 1857년 이능덕에게 보낸 답장에서는 학문하는 방법에 있어 하학상달(下學上達)을 강조하고, 1860년 정진헌에게 보낸 답장에서는 사서에는 평이한 부분과 심원한 부분이 혼재되어 있으며 학문의 기본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권말에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족손 필영(必永)의 발(跋)이 있다.
▶동명집(東溟集) | 김세렴(金世濂, 1593~164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 1593~16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아들 김필상(金弼相)과 김준상(金儁相)이 수집ㆍ편차하였고, 문인이자 처조카인 유형원(柳馨遠)이 허목(許穆)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 후 증손 김일기(金一基)가 김필상이 편차한 10권 6책에다 부록 1책을 증보하고 허목의 서문과 자신의 발문을 붙여서 1737년에 흙을 주조한 활자인 토자(土字)로 인행하였다. 시는 약 8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유배지의 쓸쓸한 감회를 서술한 작품, 현풍 현감으로 좌천된 시기의 작품 등 서정시가 많고, 서경시(敍景詩)ㆍ의고시(擬古詩) 등도 있다. 권4의<사상록(槎上錄)>은 1636년 일본에 통신 부사로 갔던 시기의 작품집이다. 잡저 중에<거관잡기(居官雜記)>는 목민관의 임무에 대한 선유(先儒)의 격언 30여 개를 조목별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 소차와 계사, 장계는 문체에 따라 연도별로 배열되어 있는데, 북방 지역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유민의 방지, 경비의 강화를 위한 강병책을 적극 주장한 글도 있다. 향약의 실천 강령과 의사 결정 과정 등에 대한 내용은 다른 읍에까지 시행하도록 왕명이 내려지기도 한 자료이다.
▶동명집(東溟集) | 정두경(鄭斗卿, 1597~167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이미 시문을 스스로 편차하여 정리해 두고 있었던 듯하다. 1674년(현종15)에 남구만(南九萬)이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시집 11권을 함흥에서 간행하였다. 효종이 심양에 인질로 있을 때에 지은 감회시(感懷詩)를 보고 비분강개하여 지었다는 <의왕자사귀곡사수(擬王子思歸曲四首)>, 이안눌(李安訥)이 화전(花牋)까지 보내며 간절히 시를 구한 데 대해 답한 <상동악(上東岳)> 등의 작품이 있다. <장가행(長歌行)>이나 <행로난(行路難)> 등은 전형적인 당시풍(唐詩風)의 작품이고, <전억석가(前憶昔歌)>와 <후억석가(後憶昔歌)>는 각각 현사(賢士)의 계책을 쓰지 않아 흉노에게 시달리던 한(漢)과 오랑캐에게 멸망한 송(宋)을 노래하면서 은근히 북방에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자신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당시 조정을 비판한 작품이다. 최석정(崔錫鼎)은 서문에서 저자의 시는 이백, 두보 등 성당(盛唐) 시대의 작가를 표준으로 삼아 빼어나면서도 기세가 높다고 극찬하였다. 또 효종이 저자의 시고(詩稿)를 항상 안상(案上)에 놓아두었다는 일화(逸話)도 전한다.
▶동번집(東樊集) | 이만용(李晩用, 1792~186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번(東樊) 이만용(李晩用, 1792~1863)의 문집이다. 본집은 사후 30여 년이 지나 증손 이원창, 이원승 형제가 김택영(金澤塋)에게 산정을 부탁하여 1909년 10월에 4권 2책을 활자본으로 인행하였다. 권1~3은 시(詩)이고, 권4는 문(文)이다. 시는 금강산ㆍ삼일포ㆍ낙산사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기행시, 양사언(楊士彦)의 <천불동기(千佛洞記)>에 나오는 만물초에 대해 읊은 시, 정약용의 예전(禮箋) 30편에 대해 찬탄한 시, 파주 용미리에 있는 석불 입상을 두고 지은 시 등이 있다. 권4에는 산문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여황산김공서(與黃山金公書)>는 저자의 조부 이봉환과 부친 이명오의 충절을 선양하고 침체된 집안을 소통시켜 주기를 조정에 건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제정승지문(祭丁承旨文)>은 정약용에 대한 제문으로, 소식이 구양수를 제사한 글의 자구를 사용하고 그 문체를 본받아 지은 것이다. <제망자문(祭亡子文)>은 아들 이지형을 제사한 글로 애틋한 마음이 묻어 있다. <백발부(白髮賦)>는 정학연(丁學淵)이 백발영 10절을 보내어 늙음을 슬퍼하자, 늙는 것을 마음 아파할 것이 없다는 내용으로 지은 작품이다.
▶동산유고(東山遺稿) | 조성한(趙晟漢, 1628~168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산(東山) 조성한(趙晟漢, 1628~1686)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81년 이후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1은 시, 서(書)이다. 정운한(鄭雲翰), 정운박(鄭雲搏) 등과 교유한 시가 대부분이며 시체 구분 없이 실었다. 편지는 백형 창한(昌漢)에게 청탁을 거절하는 것과 아우 정한(晸漢)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 등, 송준길(宋浚吉) 등에게 안부를 묻는 것과 그 외에 이여발(李汝發) 등과 주고받은 것이 있다. 권3은 가장으로 부친 조극선의 행장이고 권4는 일록으로 1667년 2월 신창(新昌)에서 열린 포저 조익(趙翼)을 향사하기 위한 도산서원 건립 추진 모임에 참석할 때의 노정을 기록한 회덕행록(懷德行錄), 1677년 5월 진잠에 있는 수촌 조세환을 방문한 일정을 기록한 진잠행록(鎭岑行錄), 1676년 2월~6월 어수원의 옥사가 진행된 과정과 석방까지를 상세히 기록한 적룡기사(赤龍記事)가 있다. 부록으로 조희일(趙煕一)이 쓴 행장과 최응진(崔應鎭), 김의일(金義一) 등 93명의 문인록이 있다.
▶동상집(東湘集) | 허진동(許震童, 1525~161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상(東湘) 허진동(許震童, 1525~1610)의 문집이다. 본집은 1820년대에 와서 8대손 허질(許瓆)이 문집을 간행하려고 1823년에 홍희준(洪羲俊), 1824년에 박기수(朴綺壽)에게 서문을 받았으나 간행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 후 허질(許瓆)의 손자인 10대손 허오(許澳)와 그의 족질 허민식(許民植)이 2책으로 다시 유고를 편차 교정하고 윤치희(尹致羲)의 서문과 기정진(奇正鎭), 박이휴(朴頤休)의 발문을 받아 1870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2책이다. 권수에 1869년에 윤치희(尹致羲)가 지은 서문과 권1~3까지의 목록(目錄)이 있다. 권4~7까지의 목록은 권4 앞부분에 실려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로, 경관이나 회포를 읊은 시, 차운시 등이다. 권2는 오언율시(五言律詩), 육언, 장단구이며, 권3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고, 권4는 칠언율시(七言律詩)와 고시(古詩)이다. 권6은 부록으로 만사, 행장,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고, 권7은 조천록(朝天錄)인데, 1572년 8월부터 1573년 2월까지의 사행(使行) 기록이며, 권미에 1870년에 기정진과 박이휴가 지은 발문이 있다.
▶동악집(東岳集) | 이안눌(李安訥, 1571~1637)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졸한 1637년경부터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조카 이침(李梣)과 재종질(再從姪) 이식(李植)이 수집, 편차하였다. 권1~24까지는 1639년 11월 간행되었고, 권25와 26은 1640년 1월 이후에 추각(追刻)되어 원집에 첨부된 것이다. 그 뒤 1670년대에 원집 간행 이후에 수습된 등제(登第) 이전의 시를 모아 저자의 아들 이갑(李柙) 등이 속집을 간행하였다. 원집은 외직에 있을 때의 작품을 시기별로 정리 편차한 자편 시록(詩錄) 21권, 체직되어 산직(散職)에 있는 동안의 작품들과 서울에 있을 때의 작품들을 모은 습유록(拾遺錄) 2권, 집자체(集字體) 1권, 부초(賦鈔)와 잡저초(雜著鈔) 각 1권으로 되어 있다. 시의 내용은 왜란 이후의 참상을 잘 묘사한 것, 우국충정과 귀양살이의 슬픔을 표현한 것, 연경 사행(使行)의 과정을 소상하게 표현한 것 등이 있다. 잡저초에는 21편의 제문과 교서, 하전(賀箋), 명(銘), 발(跋), 첩(帖), 요(謠)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저자가 벼슬길에 나오기 이전의 작품들과 저자에 대한 묘도문자들이다.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 이승휴(李承休, 1224~130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황의돈(黃義敦)
고려 말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인 1290년(충렬왕16)에 <빈왕록(賓王錄)>을 자편(自編)하여 남겼고, 사후에 이연종(李衍宗)이 여기에 그 외의 유문을 수집하고 합하여 시집인 행록(行錄) 4권과 사륙문(四六文)을 모은 잡저 1부를 편차하였다. 그러나 문집을 편찬할 때에는 문은 모두 없어져 만년의 작품인 <촌거자계문(村居自誡文)> 등 겨우 10여 편만을 수습하였다. 간행 시기는 1359년 겨울에 이색이 서를 쓴 점과, 1360년에 장편 서사시인 <제왕운기(帝王韻紀)>가 경주에서 간행된 점을 미루어 볼 때 문집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잡저에는 기(記)ㆍ서(書)ㆍ계(啓)ㆍ법어 등 10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만년에 두타산 간장암(看藏庵)에 은거할 때의 작품들이다. 은거할 때의 감회를 기술한 것, 불교와 관련된 활동을 담은 것, <제왕운기>의 초간본을 받아보고 자신의 심회를 서술하며 교정을 부탁하는 것 등이 있다. 행록 4권은 모두 시집으로 되어 있으며, 평소에 감흥을 기록한 시 및 문사들과 수창한 교유시, 기행시가 실려 있다.
▶동암집(東巖集) | 유장원(柳長源, 1724~179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동암(東巖) 유장원(柳長源, 1724~1796)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약문(約文)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7년 경 황산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는데 서발은 없고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의 후반부에서 권8까지는 편지로 권1의 후반부~2가 스승과 장자(長者)에게 보낸 것이고, 권3~5의 편지가 동문들에게 보낸 것이며, 권6~7은 문인ㆍ자제들이고, 권8은 일가에게 보낸 글로 편차되어 있다. 권10~11은 잡저(雜著)로, <의례고견>은 ≪가례(家禮)≫, ≪의례(儀禮)≫ 뿐만 아니라 윤증(尹拯)이나 김장생(金長生), 이현일(李玄逸)의 예설(禮說)을 인용하여 상례(喪禮)에서의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총 31조항이 실려 있다. <권처사전(權處士傳)>은 무인이지만 평생 효도를 실천한 권두징(權斗徵)에 대한 전이다. <망녀원사경개(亡女寃死梗槪)>는 김시길(金始吉)에게 시집간 딸이 남편이 죽은 뒤 17년 후 유복자마저 죽자 자결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권14는 부록(附錄)이다. 남한조의 행장과 이우(李㙖)의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동야집(東埜集) | 김양근(金養根, 1734~179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야(東埜) 김양근(金養根, 1734~17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 도균(度均)과 하균(夏均)에 의해 정리 편차한 뒤 1841년에 김이양(金履陽)에게 서문을 받고, 1845년에는 홍직필(洪直弼)에게 서문을 받고 강태중(姜泰重)의 교정과 발문을 받아 활자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14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홍직필이 1845년에 지은 서, 김이양이 1841년에 지은 서와 총목이 있다. 목록은 권1ㆍ2, 권3ㆍ4ㆍ5, 권6ㆍ7, 권8ㆍ9, 권10ㆍ11, 권12ㆍ13ㆍ14로 묶인 각 책 머리에 실려 있다. 권1~4는 부(賦), 시(詩)이다. 시는 시체별로 나누어 편차하였고, 대체로 수사에 치중하기 보다는 평이한 언어로 표현하였다. 권13은 잡저이다. 문장가들의 말기(末技)인 부(賦)를 짓고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것을 경계하여 양오(養吾)에게 지어 준 <서시양오종(書示養吾從)>과 김상헌(金尙憲)을 제향한 서간사(西磵祠)에 학전(學田)과 장서(藏書)의 구비를 요구하기 위해 김광묵(金光默)에게 올리려던 <위서간사림의상김방백장(爲西磵士林擬上金方伯狀)> 등이 있다. 권미에 강태중(姜泰重)이 1845년에 지은 발이 있다.
▶동원집(東園集) | 김귀영(金貴榮, 1520~159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 1520~1594)의 문집이다. 저자가 임진왜란 중에 충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소에서 죽었고, 아들 김개(金闓) 또한 허균(許筠)의 옥에 연루되어 장살(杖殺)되었기 때문에 집안이 영락하여 유문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1778년경에야 저자의 8세손인 김우현(金禹鉉)이 공사간의 기록에서 저자의 시문을 수집하고 당대의 명사들에게 글을 받아 문집을 정리하였고, 1935년에 12세손 김교희(金敎熙)가 여기에 ≪실록≫이나 야사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사를 널리 채집하여 시문 2책과 연보 1책 합 3책으로 석인본(石印本)을 간행하였다. 권1은 시문인데, 소재나 대상에 따라 배열하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부(賦) 1편 뒤에 1580년 알성연 후에 지어올린 시가 있고, 다음으로 1569년 퇴계를 전송한 시가 배열되어 있으며, 1619년 선영(先塋)을 성묘한 시 등이 실려 있고, 끝에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그리고 제문 2편과 서(書) 3편이 있다. 권2에는 묘갈문 9편, 권3에는 차(箚), 소(疏), 계(啓), 교문(敎文), 비문(碑文)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동은고(峒隱稿) | 이의건(李義健, 1533~162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은(峒隱) 이의건(李義健, 1533~1621)의 문집이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5세손으로, 도잠(陶潛)과 위응물(韋應物)의 시격(詩格)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본집은 종손 후원(厚源)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신흠(申欽)과 정홍명(鄭弘溟)의 산정(刪定)을 받은 후, 대구 부사(大丘府使) 심장세(沈長世)의 협조로 1659년 대구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원집 3권, 부록 합 1책의 시고(詩稿)이다. 권수에 이경석(李景奭)과 정두경(鄭斗卿)이 1659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종손 이후원(李厚源)이 165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권1~3의 시는 대부분 산수를 읊거나 계절에 대한 감상, 산중 생활의 한가함 등을 탈속적인 청아한 필치로 묘사하였으며, 시체(詩體) 구분 없이 실었다. 부록에는 신흠이 지은 묘갈명(墓碣銘)과 김상헌이 지은 묘지명(墓誌銘), 만사(挽詞)가 있으며, 서(書)는 신흠이 종손인 이후원(李厚源)에게 문집의 산정에 대해 답한 것과 김상헌이 이후원에게 묘지명을 찬하는 과정을 전한 3편이 있다.
▶동주집(東州集) | 이민구(李敏求, 1589~1670)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1589~1670)의 문집이다. 저자는 작품 4000여 편 가운데 병화로 소실되고 남은 시문을 수습하여 연도별로 편차하여 자편고(自編稿)를 만들어 두었는데, 저자 사후 숙종 연간에 목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43권 13책으로 전집, 시집, 문집, 별집으로 나뉘어 있다. 전집에는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의 일들을 읊은 작품이 실려 있다. 시집은 영흥(永興) 철옹(鐵甕)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이 실려 있는 <철성록(鐵城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집에는 중국의 우하(虞夏)로부터 우리나라 역사에 이르기까지 당대 임금들의 납간(納諫)과 거간(拒諫)에 관련된 기사를 모아 2권으로 엮어서 ≪간언귀감(諫言龜鑑)≫을 만들고 이것을 진헌하며 올린 <진간언귀감차(進諫言龜鑑箚)>, <서애선생문집서(西厓先生文集序)> 등 당시 명유들의 문집 서문, 등의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별집은 한 권으로, 1621년 이전의 시 60제(題)를 모았는데, <의고(擬古)>, <동산행(東山行)>등이 실려 있다. 문장에 뛰어나고 사부(詞賦)에 능하였다는 저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동촌유고(東村遺稿) | 유대춘(柳帶春, 1543~163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촌(東村) 유대춘(柳帶春, 1543~1631)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정한(鼎漢)과 기목(起木)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7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이 1806년에 쓴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상은 시(詩)로서, 홍군서(洪君瑞), 윤명은(尹鳴殷), 윤경희(尹景禧) 등에게 준 증시, 유태수(柳太守) 등을 애도한 만시, 소회를 읊은 시 등이 시체 구분 없이 실려 있다. 권하는 서(書), 소(疏), 제문으로 황해도 관찰사에게 1616년에 부임한 신천 군수의 유임을 청한 <상도백서(上道伯書)>, 1571년에 이경안(李景顔)이 군수로 부임하여 흥학(興學)에 힘쓰면서 세운 정사(精舍)가 난으로 피폐해져, 이를 중수한 뒤에 사액하여 줄 것을 청한 <정원서원청액소(正源書院請額疏)> 등이다. 부록(附錄)에는 행장(行狀), 동촌사기(東村祠記), 동촌사찬(東村祠贊), 승향제문(陞享祭文), 춘추향축문(春秋享祝文),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 등이 있고 권말에는 1807년에 조종영(趙鐘永)이 쓴 발(跋)이 있다.
▶동춘당집(同春堂集) | 송준길(宋浚吉, 1606~1672)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80년경신환국 이후에 왕명에 의해 간행되었는데, 1687년경에 초간하고 1695년경에 후쇄본을 인출(印出)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초간본은 목록 1권, 원집 24권 합 13책의 목판본이다. 소차(疏箚)는 대부분이 사직 소차이고, 사학(四學)의 운영 규칙을 정한 것, 태묘의 악장을 정리하여 순서를 바로잡고 책으로 간행할 것 등이 있다. 헌의(獻議)는 국상(國喪) 때의 백관(百官)의 복제 등에 관한 예론(禮論)이 대부분이다. 서(書)는 여러 사우(師友), 제자, 자손들에게 보내는 것들로, 경전의 내용과 성리설, 예설(禮說)에 관한 문답이 많다. 그밖에 잡저, 기(記), 제발(題跋), 축문, 제문 등이 있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만시(挽詩)이다. 원집 간행에 이어 1702년경에 별집 9권 5책이 간행되었는데, 예론을 다룬 편지를 따로 모아 놓았다. 17세기 기호학파가 조선 성리학 이론을 심화시키고, 현실에서 그 이념을 실현하려 했던 노력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특히 당시 예송(禮訟)과 당쟁사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동토집(童土集) | 윤순거(尹舜擧, 1596~166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71년경에 저자의 조카인 윤증(尹拯) 등이 수습하여 교정하였고, 이 원고를 가장(家藏)해 왔다. 그 뒤 저자가 졸한 지 74년이 되던 해인 1741년 3월에 저자의 현손(玄孫) 윤광소(尹光紹) 등에 의해서 노강서원(魯岡書院)에서 철활자로 300부가 인출(印出)되었다. 그 뒤 저자의 8세손 윤상작(尹相爵) 등이 원집 간행시 산삭된 저자의 시문 약간 편 및 저자에 대한 묘도 문자 등을 모아 1900년에 활자본 5권 1책으로 속집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6권, 부록, 속집 5권 합(合)이 3책이다. 원집의 권1~4는 시(詩)로 만시(挽詩)는 뒤에 따로 편차되어 있고, 연구(聯句)와 과체(科體)가 첨부되어 있다. 권5~6은 잡저인데, 향약(鄕約)의 일종으로서, 사시절사(四時節祀)와 교육 등에 대한 종중(宗中) 종약(宗約)과 강항(姜沆)이 편차한 ≪강감회요(綱鑑會要)≫의 서문, 강항 일행이 왜적에게 잡혀 일본을 다녀온 경위가 상세하게 실려 있는 행장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의 시(詩)도 원집과 마찬가지로 만시는 뒤에 따로 편차되어 있다.
▶동포집(東圃集) | 김시민(金時敏, 1681~174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동포거사(東圃居士)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면행(勉行)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57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윤봉조(尹鳳朝)와 한계진(韓啓震)이 각각 1754년과 1751년에 쓴 서문과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6은 시(詩), 정시(程詩)이다. 저자의 시에는 강호(江湖), 산림(山林), 사시(四時)의 의취로부터 어조(魚鳥)의 부침(浮沈), 운연(雲煙)의 변화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주로 홍세태(洪世泰), 이병연(李秉淵)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권7은 서독, 잡저이다. 서독의 <상삼연(上三淵)>은 1715년 김창흡에게 부탁한 부친의 묘표를 받아 읽은 뒤에 보낸 답서로, 뒤에 제례(祭禮)에 관한 문목이 붙어 있다. 권8은 제문, 가승이다. 가승은 부친 김성후(金盛後), 모친 임천 조씨(林川趙氏), 종형인 김시서(金時敍) 등에 대한 행장, 유사, 묘지 등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지명, 묘갈명, 묘표, 만사가 실려 있고, 권말에는 신경(申暻)이 1757년에 지은 발이 있다.
▶동허재집(洞虛齋集) | 성헌징(成獻徵, 1654~167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통허재(洞虛齋) 성헌징(成獻徵, 1654~16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이홍(爾鴻)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손 우주(宇柱)가 아들 최열(最烈)과 족질 긍열(兢烈)에게 정사ㆍ교정하게 하여 1769년 상주의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표제지에 장판기(藏板記)가 있으며, 권수에 한덕전(韓德全)이 172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시(詩), 서(書), 기(記), 책(策), 잡저가 실려 있다. 시는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우음(偶吟)>, <임명시(臨命詩)>, <인일자경(人日自警)> 등에서 저자의 의취를 살필 수 있다. 편지는 조이순(趙以純), 이정화(李鼎華) 등에게 보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12세 때 흥암서원 남쪽의 수석정에서 읊은 칠언율시 <수석정(水石亭)>과 <수석정기(水石亭記)>, 18세 때 이이(李珥)의 <천도책(天道策)>을 따라 지은 책문 <문천도(問天道)> 등이 있다. 부록으로 1714년에 권상하가 지은 행장과 1732년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趙顯命)이 저자의 포증을 청한 상소대략(上疏大略)이 있다.
▶동호유고(東湖遺稿) | 윤자학(尹滋學, 1830~189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동호(東湖) 윤자학(尹滋學, 1830~1893)의 문집이다. 장남 상룡(相龍)이 유적을 정리하고 가장(家狀)을 지어 기우만(奇宇萬)에게 묘갈문과 서문을, 최익현(崔益鉉)에게 행장(行狀)을 받아 <사례축홀(四禮祝笏)>, <민보조약(民堡條約)>을 덧붙여 2책으로 편차한 뒤 1899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기우만이 1897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권1ㆍ2, 권3ㆍ4ㆍ5의 책별로 묶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詩體)나 저작 연도의 구분 없이 편차되어 있다. 내용은 우국충정(憂國衷情)을 표현한 감개시(感慨詩)와 사물을 두고 읊은 영물시(詠物詩)가 대부분이다. 권2는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이다. 권4는 민보조약(民堡條約)과 보유(補遺)이다. 민보조약은 마침 임진(壬辰)ㆍ계사(癸巳) 연간에 동학교도(東學敎徒)의 소요(騷擾) 분위기로 세상이 어지러워질 기미가 있자 이에 대비하여 만든 것으로 남녀노소 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어떻게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어떤 방어조직을 만들어 지킬 것인가를 규정한 규약이다. 권미에는 장남 상룡이 지은 발문이 있다.
▶동호집(東湖集) | 문덕교(文德敎, 1551~161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동호(東湖) 문덕교(文德敎, 1551~16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남구만(南九萬)이 아들 남학명(南鶴鳴)이 구한 저자의 유문을 1671년 함흥에서 목판으로 초간하고, 남학명이 저자의 임진록(壬辰錄)과 송시열(宋時烈)의 창의사우기(彰義祠宇記)를 1687년 목판으로 보관한 후, 현손 도창(道昌)이 새로 수집한 유문을 이탄(李坦)이 산정ㆍ재편하고 목록을 붙여 1718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으로서 아우 선교(善敎)의 행장 등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내송, 습유,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고 권수에 1684년에 이민서(李敏叙)가 지은 서문과 1685년에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지(識)가 있다. 내송은 자성하는 글들을 모은 것이다. 습유의 <오잠(五箴)>은 외천(畏天), 양심, 경신, 개과, 독지(篤志)에 대한 잠이고, <임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상황과 의병을 일으킨 일 등 임진년의 여러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부록은 한준겸(韓浚謙)이 지은 묘지명, 차천로(車天輅)가 지은 <동호별업십영(東湖別業十詠)> 등과 한기백(韓紀百)이 지은 행장이다. 권말에 박태보(朴泰輔), 윤증(尹拯) 등이 지은 발이 있다.
▶동호집(東湖集) | 이서(李𥳕, 1566~165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동호(東湖) 이서(李서𥳕, 1566~165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바로 수습되지 못한 채 가장되어 오다가 6대손 부운(復運)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후, 이를 6대손 섭운(燮運)이 헌종 연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이다. 권수에 정종로(鄭宗魯)와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서문(序文),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서(書), 축문(祝文), 제문이다. 시는 화운시(和韻詩)와 경관을 읊은 시 등이 있고, 만시가 19편이다. 권2는 갈문(碣文),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 잡저(雜著)이고, 잡저에는 ≪한강집(寒岡集)≫의 서문, 정구의 언행록, 총서(摠敍)가 있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허적(許積)ㆍ이원정(李元禎)ㆍ이유석(李惟碩)ㆍ박공구(朴羾衢)ㆍ정홍석(鄭弘錫) 등이 지은 만사를 비롯하여 제문, 가장(家狀),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 유허비명(遺墟碑銘) 등이 있다. 그 뒤로 사우척독(師友尺牘)이 있는데 정구(鄭逑)와 배상룡(裵尙龍)의 편지이다. 부록(裒錄)은 이승(李承)의 사우록(師友錄)과 이육(李堉)의 사우록에서 저자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두곡집(杜谷集) | 홍우정(洪宇定, 1595~165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두곡기인(杜谷畸人) 홍우정(洪宇定, 1595~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후손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1692년경 권유(權愈)의 산정을 거친 고본에, 7대손 담(墵) 등이 부록(附錄)을 증보(增補)하여 1824년 봉화(奉化) 삼계서원(三溪書院)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권유(權愈)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모두 절구(絶句)와 율시(律詩)이고 대부분의 시는 저자가 해배(解配)된 뒤 전국을 유람하던 때와 봉화에 은거한 이후의 작품으로 보인다. 권4는 시(詩), 부(賦), 서(書), 잡저(雜著)이다. 작품 중에서 <여오빈우서(與吳賓羽書)>는 적소에 있는 오빈(吳䎙)에게 보낸 편지로 1650년 강계 부사 재직 시 채삼(採蔘)의 일로 아산(牙山)에 유배된 오빈에게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내용이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제문(祭文),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전(傳), 행장(行狀) 등이고, 권말에는 1823년 이야순(李野淳)이 지은 발(跋)과 1824년 7대손 담(墵)이 지은 지(識)가 있다.
▶두기시집(杜機詩集) | 최성대(崔成大, 1691~176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두기(杜機) 최성대(崔成大, 1691~1762)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가 자신의 시(詩)를 편차한 고본(稿本)을, 증보(增補)하여 18세기 후반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5권 3책이다. 각 권은 그 성격에 따라 선(選)ㆍ속(續)ㆍ보(補)ㆍ습(拾)의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권1은 선(選) 10편으로 저자의 젊은 시절부터 1740년까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속(續) 5편으로 1740년부터 1748년까지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증이광광보(贈李垙光甫)>는 이광의 시를 읽고 느낀 점을 기술한 것으로 이광의 시가 소리만 있는 지금의 노래와 달리 정을 담고 있는 옛날의 노래를 닮았다고 평하고 있어 저자의 시관을 엿볼 수 있다. 권3은 보상(補上) 8편이고, 권4는 보하(補下) 9편이다. 권5는 습(拾) 4편으로, 60세부터 몰년까지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작품 중에서 <절필(絶筆)>은 저자가 임종 시에 남긴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을 험한 파도를 두려워하는 작은 배에 비유하며 인간 세상을 떠나 신선의 세계로 넘어가고자하는 바람을 표현하였다.
▶두실존고(斗室存稿) | 심상규(沈象奎, 1766~183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동양문고,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 1766~1838)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詩)와 대책(對策), 주의(奏議), 장소(章疏) 등 18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중간에 상당량이 산일되어 현재는 시만 실려 있는 ≪두실존고≫ 4권과 90편의 편지글을 모은 ≪두실척독(斗室尺牘)≫ 1책이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본집은 원집과 <척독(尺牘)>을 합부한 것으로, 원집 권1~4는 시 494제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43세부터 67세까지 지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연경에 사신 가서 중국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 김조순(金祖淳)의 옥호산(玉壺山) 별장에 모여 노닐며 지은 시, 이노익(李魯益)이 지은 옥천정(玉泉亭)과 관련한 시 등이 있다. 척독은 서영보(徐榮輔), 김조순 등에게 준 편지와 평양, 안악 등의 수령을 맡은 지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정조에게 <상규(象奎)>라는 이름과 <가권(可權)>이라는 자(字)를 하사받았고, 1808년경에는 순조의 명을 받아 만기(萬機)를 주재하는 군주가 정무를 총람(摠攬)하도록 ≪만기요람(萬機要覽)≫을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저자의 시 세계와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두암집(斗庵集) | 김약련(金若鍊, 1730~180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두암(斗庵) 김약련(金若鍊, 1730~18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낙재(樂在)가 수집ㆍ편차하여 황용한(黃龍漢)ㆍ유치명(柳致明) 등의 교감을 거쳐 사림의 협조(協助)를 받아 1836년 영주(榮州) 두암본가(斗庵本家)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836년 유치명이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4~5는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전(傳)이다. 그중에서 제 새끼만 챙기고 어미를 돌보지 않는 닭을 보고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인계설(人雞說)>, 시장에서 담배를 사다가 쟁리(爭利)와 무욕(無慾)에서 현불현(賢不賢)이 갈라짐을 깨달은 <매초설(買草說)> 등 흥미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은 대부분 효부(孝婦) 열녀전(烈女傳)으로, 미천하고 가난한 여자임에도 어렵게 정절을 지킨 일반 백성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 특이한 것은 닭과 개를 주인공으로 해서 충의(忠義)라는 인간적 가치를 실현한 동물 이야기를 전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권말에 1836년 문집간행의 전말을 자세히 기술한 박시원(朴時源)의 발문이 있다.
▶두와집(蠹窩集) | 최흥벽(崔興璧, 1739~181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두와(蠹窩) 최흥벽(崔興璧, 1739~1812)의 문집이다. 저자의 종형이자 스승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사손 시교(峕敎)를 주축으로 저자의 재종증손 시술(蓍述)에게 산정 재편과 교감을 부탁하여 8책으로 만든 후 나머지는 속집과 부록으로 후일 다시 간행할 것을 기약하고 1908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7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5~6은 잡저(雜著)로, <산중문답(山中問答)> 상ㆍ하가 있는데, 상은 객과의 문답 형식을 빌려 기술한 것으로 먼저 편론(偏論)의 폐단, 과거의 폐단, 산송(山訟)의 폐단, 양역(良役)의 폐단, 환상(還上)의 폐단이라는 5개의 시폐(時弊)를 열거하고 그중 가장 큰 것으로 환자의 폐단을 꼽은 후 그 실상을 상세히 밝혔으며, 고려 때부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들을 설명하고 나서 주자(朱子)의 사창법(社倉法)을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맨 뒤의 총론에서는 사창의 설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고, 하에서는 사창사목(社倉事目)과 사창기(社倉記)를 다루었다. 권17은 부록(附錄)으로 정종로(鄭宗魯)의 행장(行狀)이고, 권말에 재종증손 시술의 발(跋)이 있다.
▶두타초(頭陀草) | 이하곤(李夏坤, 1677~1724)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의 문집이다. 두타초(頭陀草)란 제목은 저자가 살던 두타산(頭陀山)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본집은 시문을 수습해 선사한 뒤 교정과 산정 사항을 표시한 교정 초본 단계에서 전해진 필사본이다. 책1~11에는 1,530여 제 약 2,0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저자가 8세 때 지은 <번야추조(樊墅秋早)>를 비롯하여 관동 지역과 금강산 등지를 기행하고 지은 시, 시우(詩友)였던 이희함(李喜涵)의 병과 죽음을 애도하는 시, 비를 소재로 한 시, 스승인 김창협(金昌協)이 신임사화(辛壬士禍)로 화를 입자 금계(金溪)에 은거한 이후 병중에 지은 시 등이 있다. 책12~18은 문(文)이다. 편지를 통해서는 소론과 노론 인사 모두와 교유하고 중인 계층의 시인이나 화사들과 어울린 저자의 다양한 교유 관계를 볼 수 있는데, 내용은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것, 자신의 학문관, 처세관을 피력한 것들이다. 그밖에 패관 소설의 의미에 대해 묻는 책문, 숙종이 기르던 고양이에 대한 <서궁묘사(書宮猫事)>, 혹인에게 관직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유혹(喩或)>, 기행록인 <남유록(南遊錄)> 등이 있다.
▶둔계유편(遯溪遺編) | 허후(許厚, 1588~166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둔계(遯溪) 허후(許厚, 1588~1661)의 문집이다. 본집은 1677년경에 제자 이명시(李命蓍)가 답문(答問), 서소(書疏), 제문(祭文), 운어(韻語) 등 저자의 유문(遺文)을 모아둔 것을 허목이 편차하고, 따로 소장하였던 <군상폐제답문(君喪廢祭答問)>, <폭건지제(幅巾之制)> 등 몇 편을 덧붙였다. 그 후 저자의 제자 권수(權脩)가 황해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중 1679년에 해주(海州)에서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허목(許穆)이 1678년에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답문과 답문부이다. 그중에서 <거관지절(居官之節)>은 1659년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로 인해 척주(陟州)로 좌천되는 허목에게 준 글로, 관직에 거처하면서 처신의 기준으로 삼을 교훈들로 구성되었다. 권2는 소(疏), 서찰, 제문, 제문별록, 시(詩), 행장, 묘지명이다. 특히 서찰은 이정호(李挺豪)에게 답한 것이 4편에 이르는데, 대부분 심학과 이기의 문제를 토론하고, 왜적의 움직임을 걱정하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이명시가 1676년에 쓴 언행부록, 권수가 1679년에 쓴 발이 있다.
▶둔봉집(遯峯集) | 김녕(金寧, 1567~165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둔봉(遯峯) 김녕(金寧, 1567~1650)의 문집이다. 저자는 저술이 매우 많았고 사우간에 강론한 도록(圖錄), 붕우들의 만시와 제문, 편지, 기(記), 서(序) 등도 적지 않았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후 5대손 김용(金鎔)이 친척과 지인의 집에서 저자의 유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용(鎔)의 아들 상직(尙直)과 7대손 우선(右宣)이 부록(附錄)을 증보(附錄)하여 180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권, 연보(年譜), 부록 합 2책이다. 권수에 김굉(金㙆)이 1809년에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이다. 시는 최현(崔晛), 목대흠(睦大欽), 두보(杜甫) 등의 시를 차운한 시와 경광을 읊은 시, 만시(輓詩) 등이 많다. 권2는 소(疏), 서(書), 봉안문(奉安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명(銘), 묘갈명(墓碣銘)이다. 특히 상소는 박이립(朴而立)이 정구를 무고하자 정구를 변호하고 박이립의 처벌을 청하는 내용이다. 그 뒤로 연보와 부록이 실려 있고 권말에 정위(鄭煒)가 지은 발문, 목만중(睦萬中)이 1809년에 지은 서문이 실려 있다.
▶둔암집(屯菴集) | 신방(申昉, 1686~173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둔암(屯菴) 신방(申昉, 1686~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경(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사위 홍인한(洪麟漢)이 175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이 중에서 <몽파산(夢坡山)>은 1706년 지은 것으로, 외가인 파주(坡州)에 간 꿈을 꾼 뒤 너무도 생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슬픔을 노래한 320자의 장시(長詩)이다. 권3은 소차(疏箚)로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권4는 소차, 계(啓), 서(書), 척독(尺牘), 서(序)이다. 서(書)는 홍귀조(洪龜祚), 이귀령(李龜齡), 정내교(鄭來僑)에게 답한 편지이다. 권5는 기(記), 제발, 잡저이고 권6은 교문, 교서, 악장, 전문, 상량문, 묘지, 행장 등이다. 권7은 제문, 애사, 전이고 권8은 잡지이다. <병중잡소(病中雜疏)>, <평일우기(平日偶記)>, <서좌우(書座右)>, <수필록(隨筆錄)>, <시화(詩話)> 등이 실려 있는데, 독서 후나 일생생활에서 보고 들은 중에 느낀 소소한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동생 경이 1758년에 지은 서후(書後)가 실려 있다.
▶둔오집(屯塢集) | 임종칠(林宗七, 1781~185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둔오(屯塢) 임종칠(林宗七, 1781~1859)의 문집이다. 저자의 행적과 유문에 대한 정리는 우선 1865년경 저자의 재종질 희증(煕曾), 문인 허륜(許侖)ㆍ이강렬(李綱洌) 등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조병덕(趙秉悳)에게는 행장을 조두순(趙斗淳)에게는 묘갈명을, 박규수(朴珪壽)에게는 서문을, 김낙현(金洛鉉)에게는 교수와 발문을 받은 다음, 저자의 문인들이 출자하여 1872년에 문인 김기형(金璣衡), 김종선(金鍾善) 등이 김병학(金炳學)에게 서문을 받고 이응진(李應辰)에게 발문을 받아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김병학과 박규수가 각각 지은 서문과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실려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문집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가장 많은 편이다. 북청 부사(北靑府使) 이정리에게 주자서와 송시열의 저서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문인들과는 안부를 묻고 예제나 성리학의 여러 주제 등을 가지고 논의한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5는 서(序), 기(記), 발, 잡저이다. 권미에는 1865년에 김낙현이 지은 발문과 1872년 문집 간행 시에 이응진이 지은 발문이 있다.
▶둔옹집(遁翁集) | 한여유(韓汝愈, 1642~170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선 시대 둔옹(遁翁) 한여유(韓汝愈, 1642~1709)의 문집이다. 본집은 3남 익신(益新)이 1740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증손 대윤(大胤)과 4대손 필룡(弼龍) 등이 남봉양(南鳳陽)과 함께 1830년 경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남용만(南龍萬), 유영로(柳榮魯) 등의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칠언절구, 칠언사운, 잠(箴), 명(銘)이다. 권2는 잡저, 의(義)이고 권3은 경사기의(經史記疑)로서, 독서를 하며 의문이 났던 사항들을 논변한 것이다. 권4~5는 잡도(雜圖)와 변해(辨解)로 <지우도(智愚圖)>, <거경도(居敬圖)>, <괘변도(卦變圖)>, <건곤변(乾坤辨)> 등이 있다. 권6은 제(題)로서, 수록된 <중용혹문후(中庸或問後)>는 ≪중용장구≫의 편장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용맥락도(中庸脈絡圖)>와 관련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권7은 논(論)이고 권8은 중용맥락도(中庸脈絡圖) 및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이다. 권9는 부록(附錄)이고, 권말에는 이정엄(李鼎儼)의 발(跋)과 남봉양(南鳳陽)의 발후(跋後)가 수록되어 있다.
▶둔촌잡영(遁村雜詠) | 이집(李集, 1327~138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둔촌(遁村) 이집(李集, 1327~13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이지직(李之直)이 하륜(河崙)의 서(序)를 받아 1410년 공주(公州)에서 처음으로 간행하였으나 이 본은 전하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46년 간행된 이진한본(李鎭翰本)으로 활자본이다. 본 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저자의 시와 부록(附錄)으로 되어 있다. 시(詩)는 시체별로 나누어 편차하였는데, 기증시(寄贈詩)ㆍ차운시(次韻詩)로서 목은(牧隱) 이색(李穡)ㆍ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ㆍ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과 주고받은 시가 주를 이룬다. 부록에는 저자의 원시(原詩)ㆍ차운시가 없는 제인(諸人)의 차운시ㆍ증답시(贈答詩)와 <둔촌기(遁村記)>ㆍ<명자설(名字說)>ㆍ송서(送序)ㆍ답서(答書)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보편(補編)에는 후손 이항(李恒)이 쓴 행록(行錄)과 후손 이필행(李必行)이 지은 <사우연원록(師友淵源錄)>, 이휴징(李休徵)이 지은 묘갈문, 그리고 여러 문헌에서 뽑은 저자 관계 기록과 원우문(院宇文)이 실려 있다.
▶둔헌집(遯軒集) | 이홍유(李弘有, 1588~167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둔헌(遯軒) 이홍유(李弘有, 1588~1671)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이광영(李匡榮)이 가장초고(家藏草稿)을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890년 자양재(紫陽齋)에서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김낙현(金洛鉉)이 1890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연보(年譜), 문(文)이다. 연보는 저자와 부친 득윤(得胤)의 행력을 섞어서 서술하였다. 권2는 문(文),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시(詩)는 문에 비해 다양하고 시체별(詩體別)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읊은 것과 만시(輓詩) 및 차운시 등이 섞여 있고, 저작 연대도 뒤섞여 있어서 다소 산만하다. 권3~4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교유한 인물 중에서 홍석기(洪錫箕)와 수창한 시가 가장 많아 교유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연작시가 많다는 것이다. 권말(卷末)에 8대손 광영(匡榮)이 1890년에 지은 발(跋)과 “경인중춘자양개간(庚寅仲春紫陽開刊)”이라는 간기(刊記)가 붙어 있다.
▶등암집(藤庵集) | 배상룡(裵尙龍, 1574~165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 1574~1655)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홍모(洪模)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59년 성주(星州)의 도천서원(道川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6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책1에는 세계도, 연보, 부록이 실려 있다. 세계도는 시조 배위준(裵位俊)부터 저자의 손자인 20세까지 기록되어 있다. 책2는 권1~2이다. 권두에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서문과 총목차가 있다. 권1은 시(詩), 애사, 부(賦)이다. 권2는 서(書)로서,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도경유(都慶兪), 허목(許穆), 조임도(趙任道) 등에게 준 것이다. 책3은 권3~4이다. 권3은 묘표, 축문, 제문이고 권4는 잡저로서, 스승 정구의 언행을 모아 실은 <한강선생언행록(寒岡先生言行錄)>, 주희의 <경재잠(敬齋箴)>에 대한 도(圖), 해(解), 서후, 향교 등에 보낸 통문(通文) 등이다. 책4는 권5~6으로, 부록이다. 권5는 묘갈명, 묘지명, 행록이고 권6은 제문, 만(挽), 문집발, <경서등암배선생경재잠해후(敬書藤庵裵先生敬齋箴解後)> 등이다. 마지막에 간기(刊記)가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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