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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문집류) : 1,262종 > 신활자본-서명별 > [사]서명[신활자본] : 211종(비단표지)

 
[사]서명[신활자본] : 211종(비단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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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사 : 211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사]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사001 사가집(四佳集) 서거정(徐居正, 1420~1488) 27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02 사계유고(沙溪遺稿) 김장생(金長生, 1548~163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03 사기집(沙磯集) 이시원(李是遠, 1789~1866)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04 사류재집(四留齋集) 이정암(李廷馣, 1541~1600)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05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 차좌일(車佐一, 1753~180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06 사미헌집(四未軒集) 장복추(張福樞, 1815~1900)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07 사복재집(思復齋集) 송진봉(宋鎭鳳, 1840~1898)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08 사서집(沙西集) 전식(全湜, 1563~1642)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09 사숙재집(私淑齋集) 강희맹(姜希孟, 1424~1483) 5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사010 사암집(思菴集) 박순(朴淳, 1523~1589)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11 사애집(沙厓集) 민주현(閔胄顯, 1808~188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12 사우당집(四友堂集) 송국택(宋國澤, 1597~165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3 사우정집(四雨亭集) 이식(李湜, 1458~1488) 2책 1개 일본 봉좌문고,고려대 중앙도서관
사014 사재집(思齋集) 김정국(金正國, 1485~154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5 사천시초(槎川詩抄) 이병연(李秉淵, 1671~175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6 사촌집(沙村集) 장경세(張經世, 1547~161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7 사촌집(沙村集) 안덕린(安德麟, 1563~1609)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18 사촌집(沙村集) 김치후(金致垕, 1691~174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19 사헌집(思軒集) 정내성(鄭來成, 1744~183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20 사호집(思湖集) 오장(吳長, 1565~1617)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1 산당집(山堂集) 최충성(崔忠成, 1458~149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2 산목헌집(山木軒集) 김희순(金羲淳, 1757~1821)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23 산택재집(山澤齋集) 권태시(權泰時, 1635~1719)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24 삼명시집(三溟詩集) 강준흠(姜浚欽, 1768~1833)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5 삼봉집(三峯集) 정도전(鄭道傳, 1342~1398)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6 삼산재집(三山齋集) 김이안(金履安, 1722~1791)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7 삼산집(三山集) 유정원(柳正源, 1702~176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28 삼수헌고(三秀軒稿) 이하조(李賀朝, 1664~1700)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29 삼연집(三淵集) 김창흡(金昌翕, 1653~1722) 34책 7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김귀년(金貴年)
사030 삼탄집(三灘集) 이승소(李承召, 1422~1484) 5책 1개 성암고서박물관,이용신(李庸信),서강대
사031 삽교집(霅橋集) 안석경(安錫儆, 1718~177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32 상곡집(商谷集) 강유(姜瑜, 1597~166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33 상유집(桑楡集) 유사규(柳思規, 1534~160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34 상촌고(象村稿) 신흠(申欽, 1566~1628) 20책 4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35 서경집(西坰集) 유근(柳根, 1549~1627)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36 서계집(西溪集) 박세당(朴世堂, 1629~1703) 11책 2개 연세대 중앙도서관,박승만(朴勝萬)
사037 서계집(西溪集) 이득윤(李得胤, 1553~163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38 서계집(西溪集) 박태무(朴泰茂, 1677~1756) 8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39 서귀유고(西歸遺藁) 이기발(李起浡, 1602~1662)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40 서담집(西潭集) 홍위(洪瑋, 1559~1624)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41 서당사재(西堂私載) 이덕수(李德壽, 1673~1744) 12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2 서산집(西山集) 김흥락(金興洛, 1827~1899) 16책 3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43 서석집(瑞石集) 김만기(金萬基, 1633~1687)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4 서소집(書巢集) 김종휴(金宗烋, 1783~1866)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45 서암유고(西巖遺稿) 이진백(李震白, 1622~170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6 서암집(恕菴集) 신정하(申靖夏, 1681~1716)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47 서애집(西厓集) 유성룡(柳成龍, 1542~1607) 14책 3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48 서재집(西齋集) 임징하(任徵夏, 1687~1730)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49 서주집(西州集) 조하망(曺夏望, 1682~1747)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50 서파집(西坡集) 오도일(吳道一, 1645~1703)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1 서포집(西浦集) 김만중(金萬重, 1637~169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2 서포집(西浦集) 곽열(郭說, 1548~163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3 서하집(西河集) 임춘(林椿, 미상)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4 서하집(西河集) 이민서(李敏敍, 1633~1688)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5 석간집(石澗集) 서효원(徐孝源, 1839~1897)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56 석계집(石溪集) 민욱(閔昱, 1559~162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7 석계집(石溪集) 이시명(李時明, 1590~1674)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58 석담집(石潭集) 이윤우(李潤雨, 1569~163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59 석당유고(石堂遺稿) 김상정(金相定, 1722~1788) 3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사060 석동유고(石洞遺稿) 이문재(李文載, 1615~1689)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61 석루유고(石樓遺稿) 이경전(李慶全, 1567~164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2 석릉집(石菱集) 김창희(金昌, 1844~189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3 석문집(石門集) 정영방(鄭榮邦, 1577~165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4 석문집(石門集) 오이익(吳以翼, 1618~166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5 석문집(石門集) 윤봉오(尹鳳五, 1688~1769)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66 석병집(石屛集) 이회보(李回寶, 1594~1669)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67 석북집(石北集) 신광수(申光洙, 1712~1775)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68 석산유고(石山遺稿) 이승보(李承輔, 1814~1880) 6책 1개 이굉(李?)
사069 석세유고(石世遺稿) 김정집(金鼎集, 1808~1859)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070 석재고(碩齋稿) 윤행임(尹行恁, 1762~1801) 21책 4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사071 석주집(石洲集) 권필(權韠, 1569~161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72 석천시집(石川詩集) 임억령(林億齡, 1496~1568)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73 석천유고(石泉遺稿) 신작(申綽, 1760~182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74 석탄집(石灘集) 이존오(李存吾, 1341~1371)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75 석호유고(石湖遺稿) 윤문거(尹文擧, 1606~1672)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76 선양정집(善養亭集) 정희맹(丁希孟, 1536~159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77 선원유고(仙源遺稿) 김상용(金尙容, 1561~1637)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사078 설곡집(雪谷集) 정포(鄭誧, 1309~1345) 1책 1개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79 설봉유고(雪峯遺稿) 강백년(姜栢年, 1603~1681)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0 설월당집(雪月堂集) 김부륜(金富倫, 1531~1598)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81 설정시집(雪汀詩集) 조문수(曺文秀, 1590~1647)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사082 설정집(雪汀集) 이흘(李, 1568~1630) 3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사083 설초유고(雪蕉遺稿) 최승태(崔承太, 1632~1682)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84 설해유고(雪海遺稿) 이만영(李晩榮, 1604~167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5 성근보집(成謹甫集) 성삼문(成三問, 1418~1456)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6 성담집(性潭集) 송환기(宋煥箕, 1728~1807) 16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87 성당집(性堂集) 정혁신(鄭赫臣, 1719~179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88 성소부부고(惺所覆藁) 허균(許筠, 1569~1618)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89 성암유고(省菴遺稿) 김효원(金孝元, 1542~1590)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90 성암집(誠菴集) 박문오(朴文五, 1835~1899)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1 성옹유고(醒翁遺稿) 김덕함(金德諴, 1562~163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2 성재유고(醒齋遺稿) 신익상(申翼相, 1634~1697)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93 성재집(性齋集) 허전(許傳, 1797~1886) 23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4 성재집(惺齋集) 금난수(琴蘭秀, 1530~160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5 성재집(成齋集) 조병현(趙秉鉉, 1791~1849)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096 성재집(省齋集) 유중교(柳重敎, 1832~1893) 26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7 성재집(誠齋集) 남한호(南漢皜, 1760~1821)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098 성호전집(星湖全集) 이익(李瀷, 1681~1763) 36책 7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099 소고집(嘯皐集) 박승임(朴承任, 1517~1586)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00 소곡유고(素谷遺稿) 윤광소(尹光紹, 1708~1786) 11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01 소눌집(小訥集) 노상직(盧相稷, 1855~1931) 25책 5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02 소릉집(少陵集) 이상의(李尙毅, 1560~1624) 2책 1개 연세대 중앙도서관,한국학중앙연구원
사103 소미산방장(少眉山房藏) 이삼환(李森煥, 1729~181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04 소산집(小山集) 이광정(李光靖, 1714~1789)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05 소송유고(小松遺稿) 이지용(李志容, 1825~1891)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06 소암집(疎菴集) 임숙영(任叔英, 1576~1623)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07 소암집(素巖集) 김진동(金鎭東, 1727~1800)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사108 소암집(所菴集) 이병원(李秉遠, 1774~1840) 10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09 소요재집(逍遙齋集) 최숙정(崔淑精, 1432~1480)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10 소은유고(素隱遺稿) 신천익(愼天翊, 1592~1661)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11 소재집(疎齋集) 이이명(李命, 1658~1722)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12 소재집(齋集) 변종운(卞鍾運, 1790~186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13 소재집(齋集) 노수신(盧守愼, 1515~1590)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14 소전집(少痊集) 김덕승(金德承, 1595~1658)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15 소정고(卲亭稿) 김영작(金永爵, 1802~1868)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16 소총유고(篠䕺遺稿) 홍유손(洪裕孫, 1452~152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17 소호당집(韶濩堂集) 김택영(金澤榮, 1850~1927) 12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동국대학교
사118 손곡시집(蓀谷詩集) 이달(李達, 1539~1610)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19 손암집(損庵集) 조근(趙根, 1631~168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0 손와유고(損窩遺稿) 최석항(崔錫恒, 1654~1724) 6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사121 손재집(損齋集) 조재호(趙載浩, 1702~176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2 손재집(損齋集) 남한조(南漢朝, 1744~1809)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23 손재집(遜齋集) 박광일(朴光一, 1655~1723)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24 송강집(松江集) 정철(鄭澈, 1536~1593)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5 송계집(松溪集) 이요(李㴭, 1622~165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6 송곡집(松谷集) 조복양(趙復陽, 1609~1671)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7 송담집(松潭集) 송남수(宋柟壽, 1537~1626)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28 송당집(松堂集) 조준(趙浚, 1346~140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29 송당집(松堂集) 박영(朴英, 1471~154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0 송당집(松塘集) 유홍(兪泓, 1524~159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1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 이언진(李彦瑱, 1740~1766)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2 송봉유고(松峯遺稿) 오익승(吳益升, 1620~1679)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33 송사집(松沙集) 기우만(奇宇萬, 1846~1916) 26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34 송서집(松西集) 강운(姜橒, 1773~1834)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35 송소집(松巢集) 권우(權宇, 1552~159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36 송암유고(松菴遺稿) 김면(金沔, 1541~1593)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37 송암집(松巖集) 권호문(權好文, 1532~1587) 5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사138 송암집(松巖集) 이로(李魯, 1544~1598)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39 송암집(松巖集) 이재형(李載亨, 1665~174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0 송애집(松崖集) 박여룡(朴汝龍, 1541~161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1 송애집(松崖集) 김경여(金慶餘, 1596~165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42 송오집(松塢集) 정전(鄭佺, 1569~163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3 송와집(松窩集) 안명하(安命夏, 1682~1752)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44 송월만록(松月漫錄) 임득명(林得明, 1767~182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5 송월재집(松月齋集) 이시선(李時善, 1625~171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6 송은집(松隱集) 박익(朴翊, 1332~139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47 송자대전(宋子大全) 송시열(宋時烈, 1607~1689) 113책 2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사148 송재유고(松齋遺稿) 나세찬(羅世纘, 1498~1551) 2책 1개 나금주(羅金柱)
사149 송재집(松齋集) 이우(李堣, 1469~151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50 송재집(松齋集) 한충(韓忠, 1486~1521)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51 송정집(松亭集) 하수일(河受一, 1553~1612)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52 송죽당집(松竹堂集) 정문익(鄭文翼, 1571~163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53 송천유집(松川遺集) 양응정(梁應鼎, 1519~1581)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54 송파일고(松坡逸稿) 박전(朴全, 1514~1558)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55 송파집(松坡集) 이해창(李海昌, 1599~165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56 송파집(松坡集) 이서우(李瑞雨, 1633~1709) 10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57 송호집(松湖集) 유언술(兪彦述, 1703~1773)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58 수계집(修溪集) 이승배(李升培, 1768~1834)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사159 수곡집(壽谷集) 김주신(金柱臣, 1661~172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0 수곡집(睡谷集) 이여(李, 1645~1718)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1 수당유집(修堂遺集) 이남규(李南珪, 1855~1907) 1책 1개 충남대학교,이문원(李文遠)
사162 수몽집(守夢集) 정엽(鄭曄, 1563~162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3 수북유고(水北遺稿) 김광현(金光炫, 1584~164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4 수북정집(水北亭集) 김흥국(金興國, 1557~162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5 수산집(修山集) 이종휘(李種徽, 1731~1797)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6 수색집(水色集) 허적(許𥛚, 1563~164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7 수암유고(守庵遺稿) 박지화(朴枝華, 1513~159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68 수암집(修巖集) 유진(柳袗, 1582~1635)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69 수와집(守窩集) 백경해(白慶楷, 1765~1842) 4책 1개 국사편찬위원회
사170 수은유집(睡隱遺集) 이홍조(李弘祚, 1595~1660)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71 수은집(睡隱集) 강항(姜沆, 1567~161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72 수재유고(壽齋遺稿) 이곤수(李崑秀, 1762~178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73 수정재집(壽靜齋集) 유정문(柳鼎文, 1782~1839) 6책 1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사174 수종재집(守宗齋集) 송달수(宋達洙, 1808~1858)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75 수초당집(遂初堂集) 권변(權忭, 1651~1726)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76 수촌집(水村集) 오시수(吳始壽, 1632~1681)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77 수촌집(水村集) 임방(任, 1640~1724)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78 수헌집(睡軒集) 권오복(權五福, 1467~149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79 수현집(壽峴集) 석지형(石之珩, 161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80 숙재집(肅齋集) 조병덕(趙秉悳, 1800~1870) 13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81 순암집(醇庵集) 오재순(吳載純, 1727~179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82 순암집(順菴集) 안정복(安鼎福, 1712~1791) 15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83 순암집(順菴集) 이병성(李秉成, 1675~173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84 순재고(純齋稿) 순조(純祖, 1790~1834) 10책 2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사185 숭덕재유고(崇德齋遺稿) 이윤경(李潤慶, 1498~156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86 숭악집(崧岳集) 임창택(林昌澤, 1682~172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87 습재집(習齋集) 권벽(權擘, 1520~159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88 습정집(習靜集) 송방조(宋邦祚, 1567~1618)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89 시남집(市南集) 유계(兪棨, 1607~1664) 15책 3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사190 시암집(是庵集) 임화세(任華世, 1675~173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1 시암집(時庵集) 조상우(趙相禹, 1582~165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2 시암집(時庵集) 남고(南皐, 1807~1879) 8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193 시와유고(是窩遺稿) 한태동(韓泰東, 1646~168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4 식산집(息山集) 이만부(李萬敷, 1664~1732) 20책 4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95 식암유고(息庵遺稿) 김석주(金錫胄, 1634~1684) 14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6 식암집(息庵集) 황섬(黃暹, 1544~161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197 식우집(拭疣集) 김수온(金守溫, 1409~1481) 1책 1개 김정상(金正相)
사198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김집(金集, 1574~1656)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사199 신암집(愼庵集) 이만각(李晩慤, 1815~1874)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200 신야집(新野集) 이인행(李仁行, 1758~1833) 7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201 신와집(愼窩集) 정재경(鄭在褧, 1781~185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202 신재집(信齋集) 이영익(李令翊, 1738~1780)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사203 심석재집(心石齋集) 송병순(宋秉珣, 1839~1912)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204 심암유고(心庵遺稿) 조두순(趙斗淳, 1796~1870) 30책 6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205 십성당집(十省堂集) 엄흔(嚴昕, 1508~1543) 2책 1개 일본 내각문고
사206 십청집(十淸集) 김세필(金世弼, 1473~153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사207 쌍계유고(雙溪遺稿) 이복원(李福源, 1719~1792) 5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208 쌍매당협장집(雙梅堂篋藏集) 이첨(李詹, 1345~1405) 3책 1개 이석찬(李錫瓚),김상기(金尙基)
사209 쌍백당유고(雙柏堂遺稿) 임광택(林光澤, 1714~179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210 쌍백당집(雙栢堂集) 이세화(李世華, 1630~1701)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사211 쌍봉집(雙峯集) 정극후(鄭克後, 1577~1658)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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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사 : 211종

▶사가집(四佳集)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 권책수 : 27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483년(성종14) 왕명에 의해 저자가 30권으로 편차한 것을, 졸한 직후 1488년에 나머지 유고를 수집하여, 운각(芸閣)에서 갑진자(甲辰字)로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705년(숙종31)에 족손(族孫) 서문유(徐文裕)가 전주 부윤으로 있을 때 문집을 중간하였다. ≪한국문집총간≫에는 시집(詩集) 25권ㆍ시집 보유(詩集補遺) 3권ㆍ문집(文集) 6권ㆍ문집 보유(文集補遺) 2권 합 27책이 실려 있다. 시집은 권1~52까지 편차되어 있으나, 결권(缺卷)을 뺀 25권만이 실려 있다. 권1에는 부(賦)ㆍ사(辭)ㆍ조(操)ㆍ사언시(四言詩)가 실려 있으며, 권2~25에는 각종 시체(詩體)가 섞여 있다. 시집 보유에는 ≪동문선(東文選)≫, ≪황화집(皇華集)≫ 등 여러 문헌에서 뽑은 시편이 3권으로 편차되어 있다. 문집에는 기(記), 서(序)가 실려 있으며, 문집 보유 권1에는 신도비명 등 비지류(碑誌類) 9편이 실려 있고, 권2는 잡저로서 전(箋)ㆍ찬(贊)ㆍ청사(靑詞)ㆍ서(序) 등의 글 8편이 실려 있다. 세조 즉위 후 사명(辭命)의 대부분을 찬술하기도 한 저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사계유고(沙溪遺稿) | 김장생(金長生, 1548~163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1686년 운각(芸閣)에서 출간하라는 왕명에 따라 1687년 목판으로 초간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교서관본의 간행 이후 1688년경 호남에서 개간(改刊)한 호남중간본이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서 13권 5책이다. 권수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序文)과 김수항(金壽恒)의 서문, 목록이 있다. 권1~2는 소(疏), 계사(啓辭), 주차(奏箚), 장계(狀啓)로서 각기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본집이 숙종의 을람(乙覽)을 위해 편차되었기에 소차와 계사 등이 제일 앞에 놓인 듯하다. 권3~4는 편지이다. 내용은 대체로 시사(時事)에 대한 것과 학문에 대한 토론 등이다. 권5는 변(辨), 설(說), 서(序), 기(記), 발(跋), 제문(祭文), 시 등이다. 권6~8은 묘갈명과 행장(行狀)이며, 권9는 <연석문대(筵席問對)>로, 저자가 경연에서 말한 내용이다. 권10은 저자의 어록으로 송시열과 정홍명(鄭弘溟)이 기록한 것이다. 권11~13은 부록이다. 조선 시대 예학(禮學)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저자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기집(沙磯集) | 이시원(李是遠, 1789~1866)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기(沙磯) 이시원(李是遠, 1789~1866)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손 이건방(李建芳)의 소장본을 1934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전사한 것으로, 불분권(不分卷) 6책으로 되어 있다. 책1~2은 시(詩)이고, 책3~6은 문(文)이다. 시는 모두 227제가 실려 있는데, 이중에서 <송정(松汀)>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던 강화의 어민이 무거운 세금 때문에 떠돌아다니게 된 실정을 읊은 작품이고, <성함후작(城陷後作)>은 1866년 강화도가 프랑스 군대에 함락되어 어진(御眞)이 파천(播遷)하는 것을 보고 형제가 순절(殉節)을 결심하고 지은 시이다. 산문 중에 <유소(遺疏)>는 자결하기 전 고종에게 남긴 상소로, 절용애민(節用愛民)이 치도(治道)의 근본이니, 선왕(先王)의 법에 따라 성학(聖學)을 빛내고, 인정(仁政)을 베푼다면 외부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간언한 내용이다. 그밖에 이희원(李喜遠)이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지은 <예구설(瘞狗說)>, 혼례를 치르기 전에 죽은 남편을 위해 수절(守節)하며 시부모를 섬긴 김정녀(金貞女)의 행실을 적은 기, ≪시경(詩經)≫ 육의(六義)를 논한 <육의론(六義論)> 등의 작품이 있다.
▶사류재집(四留齋集) | 이정암(李廷馣, 1541~160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사류재(四留齋) 이정암(李廷馣, 1541~16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火)를 겪는 동안 대부분 유실되었는데, 현손(玄孫) 이여주(李汝柱)가 수집, 편차하여 5책(冊)의 정고본(定稿本)으로 만들었고, 그의 아들 이성룡(李聖龍)이 이의현(李宜顯)의 서문(序文)을 붙여 1736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2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1~5에는 315제(題)의 시가 실려 있다. 권6에는 소차(疏箚) 6편이 실려 있고, 권7에는 잡저로 <답왜장서(答倭將書)>,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檄文)인 <모의격문(募義檄文)>과 <정유격서(丁酉檄書)>, 임종 한 달 전에 적은 유서(遺書) 등이 실려 있다. 권8에는 <세계보록(世系譜錄)>과 저자의 일대기가 자세히 기록된 <행년일기(行年日記)>가, 권9에는 <해서결의록(海西結義錄)>, <의병약속(義兵約束)>과 서장(書狀), 장계(狀啓), 첩관(牒關) 3편이 실려 있다. 권10은 <왜변록(倭變錄)>으로, 삼국 시대 이래 왜(倭)의 침입을 기록한 것이다. 권11~12는 부록이다. 왜란과 관련한 자료가 많이 실려 있어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사명자시집(四名子詩集) | 차좌일(車佐一, 1753~180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사명자(四名子) 차좌일(車佐一, 1753~1809)의 문집이다. 저자는 평소 많은 시를 지었으나 모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없어진 것을 거의 100년이 지난 1914년 봄에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활자로 인행하였다. 총 278제가 실려 있는데, <차북창집운(次北窓集韻)>은 북창 정렴(鄭磏)의 <송사제군경독서강사(送舍弟君敬讀書江舍)>에 차운한 시로서 도에 나아가는 요체는 성(誠)이라는 내용이고, <복낭(福娘)>은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시이다. <반지주(反止酒)>는 도연명이 술을 끊고자 <지주(止酒)>를 지었지만 실제로 끊었는지는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읊은 시이다. 그밖에 1805년 관서(關西)로 유람을 떠나는 이경연을 따라나서서 개성의 선죽교, 화담(花潭), 만월대(滿月臺)와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부벽루(浮碧樓) 등을 방문하여 지은 시들이 있다. 칠언고시인 <매옥행(賣屋行)>은 1808년에 지은 절필시(絶筆詩)로 장남과 막내가 죽고 어려운 살림에 집까지 팔려고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는 처량한 신세를 묘사한 시이다. 권말에는 부록으로 제문(祭文) 4편과 행장, 발(跋) 4편이 있다.
▶사미헌집(四未軒集) | 장복추(張福樞, 1815~190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1815~1900)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과 문인들에 의해 정리되어 1906년에 11권 6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권1은 시 108제와 소(疏) 2편이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선석도중구호(禪石途中口號)>는 부단히 정진하면 학문의 도를 터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며, <갑조술회(甲朝述懷)>는 회갑을 맞이하여 지은 시로서,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시이다. <의청우산서원복설소(擬請愚山書院復設疏)>는 정경세가 모셔져 있던 우산서원이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다시 설치할 것을 청한 상소이고, <청물개의제소(請勿改衣制疏)>는 복제(服制) 변경의 명을 거둘 것을 청하는 상소이다. 권2~5는 서(書) 257편으로, 경서와 예에 대해 논한 것이 대부분인데, 학문에 있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 무극태극(無極太極) 등에 대해 논한 내용이 있다. 권6은 잡저이다. 이 중에서 <척유록(摭幽錄)>은 충효가 독실하였지만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11인의 행적을 모아 기록한 것이고, <불개명설(不改名說)>은 인간의 화복은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 내용이다.
▶사복재집(思復齋集) | 송진봉(宋鎭鳳, 1840~189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사복재(思復齋) 송진봉(宋鎭鳳, 1840~1898)의 문집이다. 유적 정리는 가장(家狀)을 지은 문인 박희원(朴煕元)의 주도하에 1899년 3월 이전에 1차로 문집이 편성된 다음, 부록으로 제문, 고묘문, 행장, 유사, 전, 묘갈명, 묘지명, 세계(世系) 등을 추가하여 6권 3책으로 편집하였으며, 1903년 3월에 정의림(鄭義林)의 발문을 붙여 아들 상호(翔浩)가 계재(契財)에서 자금을 마련하여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세계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스승 김평묵(金平默)이 1884년에 저자에게 지어 준 <사복재기(思復齋記)>를 싣고, 이어 1903년 기문을 권수에 편차한 의도를 기술한 기우만(奇宇萬)의 후서(後書)를 실었으며, 총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조(操), 시(詩)이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묵리필록(墨里筆錄)>은 장흥(長興) 묵촌(墨村)에 거주하면서 읽은 책에 대한 소개와 감회, 절의 있는 선비, 열녀, 무신난이나 당론과 연결된 인물의 소개와 평 등을 37개 조항으로 엮은 것이다. 권미에 시조 유익(惟翊)에서부터 저자의 아들 상호까지 25세를 약술한 세계 3판이 수록되어 있다.
▶사서집(沙西集) | 전식(全湜, 1563~164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사서(沙西) 전식(全湜, 1563~16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자손들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하여 1847년(현종13)에 7대손 전종한(全宗漢)이 문집을 편찬하였다가 1862년(철종13)에 이휘령(李彙寧)의 서문과 자신의 발문을 붙여 9권 4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7권, 부록 2권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에는 시가 실려 있다. 특히 <주행(舟行)> 이하 30여 편은 1625년 조경사(朝京使)가 되어 중국에 갔다 오는 도중의 경물을 읊은 것이 많은데 이전의 사행(使行)과는 달리 해로(海路)로 다녀온 것이 특징이다. 권3에는 교(敎), 소차(疏箚), 계(啓), 경연강의(經筵講義)가 실려 있다. 권4에는 서(書) 41편과 잡저(雜著)가 실려 있다. 잡저로는 학문의 도와 효의 도에 대해 자손에게 경계로 남긴 <서시손(書示孫)과 <국전고오(國典考誤)>, 책문(策問) 2편이 실려 있다. 권5는 <사행록(槎行錄)>이 실려 있다. 권6은 <수수차록(隨手箚錄)>으로, 임진왜란을 겪으며 기록한 자전적인 글이 등이 들어 있다. 권7은 발(跋), 표전(表箋), 축문(祝文), 제문, 행장(行狀) 등이다.
▶사숙재집(私淑齋集) | 강희맹(姜希孟, 1424~148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성종(成宗)의 명으로 1483년에 아들 강귀손(姜龜孫)이 수집ㆍ편차하여 갑진자(甲辰字)로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아, 1805년에 10대손 강주선(姜柱善) 등이 문중에 가전(家傳)된 원고본(原稿本)을 모아 정리하여 12권 5책으로 편차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483년에 지은 서거정(徐居正)의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5는 시(詩), 권6~10은 문(文), 권11은 금양잡록(衿陽雜錄), 권12는 부록이다. 금양잡록은 농가(農家)ㆍ농담(農談)ㆍ농자대(農者對)ㆍ제풍변(諸風辨)ㆍ종곡의(種穀宜)ㆍ선농구(選農謳)로 편차하여 농사에 대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부록에는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ㆍ≪동문선(東文選)≫ㆍ≪동각잡기(東閣雜記)≫ㆍ≪보한재집(保閑齋集)≫ 등 여러 문헌에서 채록한 저자와 관련된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농촌 사회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작품들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사암집(思菴集) | 박순(朴淳, 1523~158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외증손 이문망(李文望)이 1652년 전주에서 처음 간행하였고, 그 후 박원응(朴源應)이 저자의 유문(遺文)과 고사(故事) 등을 수집하여 원집에 첨부한 뒤 1857년 전주에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중간본으로 7권 3책의 목판본이다. 권수에는 김상헌(金尙憲)의 서문이 실려 있고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이다. 송순(宋純)의 면앙정(俛仰亭)에 제(題)한 30운(韻)과 재상어사(災傷御史)로 나갔을 때에 지은 23수를 비롯하여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들이 다수 들어있다. 권4는 문이다. 윤원형(尹元衡)을 논척(論斥)한 계(啓), 이이(李珥)와 이기(理氣)에 대해 논(論)한 서(書) 등이 있다. 권5~7은 부록이다. 이 중 권7에는 저자 관계 기록과 중국 사신을 비롯하여 당대ㆍ후대의 문인 교우들이 지은 송별시ㆍ차운시ㆍ제시(題詩)ㆍ만시(挽詩)ㆍ추모시(追慕詩) 등이 실려 있다. 서경덕의 문인으로 동서 당쟁 속에서 이이ㆍ성혼을 편들다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은거했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사애집(沙厓集) | 민주현(閔胄顯, 1808~188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는데, 초간(初刊)은 갑오동학혁명이 끝난 혼란기인 1895년에 손자 대호(大鎬), 종손 응호(膺鎬) 등이 기우만(奇宇萬)의 편정(篇定)을 받아 6권 3책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것이다. 이후 1933년에 최기현(崔璣炫)이 화순의 임대정(臨對亭)에서 초간본(初刊本)을 재편하고 연보(年譜),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등의 부록(附錄) 및 최익현(崔益鉉)의 발문을 추가하여 8권 2책을 활자로 중간(重刊)하였다. 또 증손 영세(泳世)가 당대의 문망 있는 사람들에게 교검(校檢)을 받고 산일(散逸)된 글을 수습하고 연보를 거듭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다가 1959년에 종제 영흥(泳興)의 물질적 지원을 받아 임대정에서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는데, ≪사애당집(沙厓堂集)≫이라는 제명(題名)으로 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原集) 6권, 부록 2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3은 소(疏)이다. 권5는 잡저(雜著)이다. 권미(卷尾)에는 최익현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사우당집(四友堂集) | 송국택(宋國澤, 1597~165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우당(四友堂) 송국택(宋國澤, 1597~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성준(星駿)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선사한 고본에, 저자의 8대손 인식(寅植)과 9대손 병준(炳俊)이 관계기록을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장자 규광(奎光)과 이상길(李相吉)이 편차한 연보를 증보하여 1890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7권, 연보 2권 합 4책으로, 서문은 없고 권두에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7 뒤에 발문이 있다. 권1은 시, 소, 계사이다. 작품 중 <강선지유경정사계선생(降仙之遊敬呈沙溪先生)>은 1617년에 이항복(李恒福)이 북청(北靑)에 유배를 가게 되자 스승인 김장생이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강선(降仙) 등지를 유람할 적에 동행하며 지어 올린 것이고 소는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잡저, 발(跋), 축문, 제문, 행장, 묘지명이다. 권4는 부(賦), 의(疑)이고 권5~7은 부록이다. 권7에는 저자의 행적과 관련하여 여러 사람들의 글에서 뽑아 엮은 <제가기술잡록(諸家記述雜錄)>이 실려 있고 권말에 저자의 8대손 송인식(宋寅植)이 1890년에 쓴 발이 있다.
▶사우정집(四雨亭集) | 이식(李湜, 1458~148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봉좌문고,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사우정(四雨亭) 이식(李湜, 1458~14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도안부정(道安副正) 이철(李轍)과 회안부정(淮安副正) 이식(李軾)이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고(詩稿)를 바탕으로 편차하여 1500년(연산군6)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은 상(上)ㆍ하(下) 2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성현(成俔)ㆍ채수(蔡壽)의 서(序)와 강혼(姜渾)ㆍ아들 이철(李轍)의 발(跋)이 실려 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상권은 일본(日本) 봉좌문고장본(蓬左文庫藏本)으로서 이우성(李佑成)의 벽사해외수일본(碧史海外蒐佚本)에 의하였고, 하권은 고려대학교 만송문고장본이다. 본 문집은 상ㆍ하 2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에는 시 205제(題), 하권에는 213제가 실려 있는데, 고시(古詩)ㆍ배율(排律)ㆍ율시(律詩)ㆍ절구(絶句)가 유별(類別)로 편차되어 있다. 유람하면서 풍경을 읊은 기행시(紀行詩)와 친구들과의 차운시(次韻詩)ㆍ기증시(寄贈詩)ㆍ송별시(送別詩)가 많이 실려 있다.
▶사재집(思齋集) | 김정국(金正國, 1485~154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전기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김요립(金堯立)이 영유 현령(永柔縣令)으로 있을 때에 윤두수(尹斗壽)의 도움을 받아 1591년에 처음 간행하였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603년, 영유 현령 윤효선(尹孝先)이 초간본의 잘못된 곳과 빠진 부분을 교정ㆍ보판(補板)하여 후쇄(後刷)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시, 권3~4는 문이다. 권1~2에는 각체시(各體詩) 380제(題)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권3에는 저자가 지은 ≪역대승통도(歷代承統圖)≫ 등의 발문(跋文)을 비롯하여 서(序)ㆍ기(記)ㆍ서(書)ㆍ소(疏)ㆍ제문(祭文) 등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관력(官歷) 중 보고 들은 일화(逸話)와 당시 인물들의 야담(野談) 등을 89조(條)에 걸쳐 만필(漫筆)식으로 쓴 척언(摭言)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정광필(鄭光弼)ㆍ안당(安塘) 등 기묘명현(己卯名賢) 82명의 기묘당적(己卯黨籍)이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형(兄) 김안국(金安國)이 쓴 묘지(墓誌)와 김요립(金堯立)ㆍ윤효선(尹孝先)이 쓴 발(跋)이 실려 있다.
▶사천시초(槎川詩抄) | 이병연(李秉淵, 1671~175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문집이다. 본집은 홍악순(洪樂純)이 남숙관(南肅寬)의 선본과 저자의 수초본을 바탕으로 시 500여 편을 선정ㆍ편차하여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1778년 평양 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과 목록이 없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산수시(山水詩), 영물시, 수창시 및 잡영, 장편시 등이 실려 있으며, 강건하고 웅장하다는 평을 받았다. 권상은 20대 중반까지 충남에 살면서 지은 것을 비롯하여 백악산(白岳山) 취록헌(翠麓軒)으로 이거하고 나서부터 화 현감 퇴임 이후까지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하는 배천 군수와 삼척 부사 재임 시의 작품 및 취록헌에 우거한 만년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품 중 <애여부(哀輿夫)>는 관리의 가마를 메고 고개를 넘어야 하는 가마꾼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 것이다. 노년기에는 삶을 관조하며 여유롭고 진솔한 작품을 지었는데, <아기마(我騎馬)>는 말 발길 닿는 대로 쉬어가며 시 한 수 읊조리는 넉넉함을 즐긴 것이다. 권말에는 홍낙순이 1778년에 지은 발이 있다.
▶사촌집(沙村集) | 장경세(張經世, 1547~161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촌(沙村) 장경세(張經世, 1547~161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7세손 장희(張熺)가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 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부록을 증보하여 1824년에 주암서원(舟巖書院)에서 목활자로 4권 2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다. 1920년에는 남원(南原)에 사는 후손 장인식(張寅植)이 연보가 완성된 것을 계기로, 황윤석(黃胤錫)이 지은 행장, 허제(許璾)가 지은 묘갈문, 김형노(金亨老) 등이 지은 만사 등을 추가 재편하여 목활자로 6권 2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는데, 본 집은 1824년에 주암서원에서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이다. 권1은 고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가 실려 있다. 시는 임진왜란 이후에 지은 것이 많으며, 충군애민(忠君愛民)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2는 칠언율시, 오언배율, 칠언배율, 가사, 부록이고, 권3은 기(記), 서(書), 설(說), 서(序), 발(跋), 행장이며, 권4는 제문, 갈명, 뇌사, 부록이 실려 있는데 부록은 방원진(房元震)과 양경우(梁慶遇)가 지은 제문, 김정균(金鼎均)이 지은 묘지, 봉안시축문, 춘추향축문, 중건상량문 등이고, 권미에는 7세손 장윤이 지은 발이 있다.
▶사촌집(沙村集) | 안덕린(安德麟, 1563~160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사촌(沙村) 안덕린(安德麟, 1563~16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병란(丙亂)을 거치며 거의 다 없어지고 시문(詩文) 1권, ≪가례≫ㆍ≪중용장구≫ㆍ≪대학장구≫에 대한 차의(箚疑) 약간 편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것을 100여 년 후 현손 안수태(安受泰)가 소실(燒失)되고 남아 있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수습하고 현손 안상윤(安相尹)과 그의 아들 안경(安炅)이 정리 편차하여 성편(成編)하였고, 사손인 7대손 안정록(安廷籙)이 안환(安煥) 등과 같이 한치응(韓致應)의 서문을 받아 1822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부(賦), 시(詩), 기(記), 제문(祭文), 잡저(雜著), 부록(附錄)의 순으로 실려 있다. 특히<무제(無題)>는 4살 때 지은 시로서 신동이라 이름이 났다. <사가헌기(四可軒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밭 갈 수 있고, 산에서 나물을 캘 수 있고, 내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어서 사가(四可)라 이름 지은 사가헌(四可軒)에 대한 기문이다. 부록은 이야순(李野淳)이 1819년에 지은 행장과 유태좌(柳台佐)가 지은 묘갈명(墓碣銘)이고, 권말(卷末)에 5대손 안환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사촌집(沙村集) | 김치후(金致垕, 1691~174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촌(沙村) 김치후(金致垕, 1691~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종정(鍾正)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6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총목은 별도로 없으며 권별로 권목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18년부터 1742년 사이에 지은 작품들로서, 저자가 위도(蝟島)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1738년과 1739년의 시편들이 많다. 권2는 소(疏)로, 대부분 사직소이고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제발, 제문, 애사, 묘지명, 잡저이다. 그중에서 종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배 생활의 구체적 모습과 모친의 건강에 관한 염려, 아들에 대한 당부 등 저자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권4는 책(策)과 책문이다. 책은 유불도 삼교의 차이점과 유학의 유행에도 참된 선비가 나타나지 않는 원인에 대하여 논한 <유노불(儒老佛)>과 임금을 위해 신하가 상복을 입는 것의 유래와 근거 그리고 올바른 방식에 대하여 논한 <군신복제(君臣服制)>이다. 권말에는 저자의 아들 종정이 1765년에 문집을 간행하며 지은 발과 신경(申暻)이 1761년에 종정의 부탁으로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사헌집(思軒集) | 정내성(鄭來成, 1744~18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사헌(思軒) 정내성(鄭來成, 1744~18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지락(之洛)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하여 유형진(柳衡鎭) 등과 교감 산정하고 편차하여 유치명(柳致明)에게 행장을 받았으나 간행에 앞서 졸하여, 손자 운규(雲逵)이 이휘녕(李彙寧)에게 받은 묘갈명을 증보하여 1860년 봄에 판각한 뒤 유형진의 발문을 붙여 그 해 여름에 반질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3은 서(書), 뇌사(誄辭), 잠(箴), 상량문이다. 서는 정조가 1799년에 영남 명현들의 사적을 수집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을 때 자신의 선대 정사성(鄭士誠), 정사신(鄭士信) 등의 사적이 선교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김진동(金鎭東)에게 보낸 것이다. 권5는 서(序), 지발(識跋), 잡저, 묘갈명이다. 잡저 가운데 <경술사장변(經術詞章辨)>은 경전의 뜻은 궁구하지 않고 외우는 데만 힘쓰는 풍토를 경계하여 지은 것이며, <심도기(沁都記)>는 장녕전 별검으로 있을 때 나라의 보장(保障)인 강화도의 성지, 대사(臺榭), 풍토의 대략을 기술한 것이다. 권미에 유형진이 1860년에 지은 발이 있다.
▶사호집(思湖集) | 오장(吳長, 1565~161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사호(思湖) 오장(吳長, 1565~161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현손 오중서(吳重瑞)와 외예 강후기(姜垕基) 등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8대손 사진(思鎭)이 부록을 증보하고 이원조(李源祚)의 교정을 거쳐 1858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1718년에 강현(姜鋧)이 지은 서문, 1781년에 강세황(姜世晃)이 지은 서문, 1781년에 정지검(鄭志儉)이 지은 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절구와 칠언절구이고, 권2는 오언율, 칠언율, 오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 사언, 부, 사이다. 그중에서 <송군수환향(送君秀還鄕)>은 임진왜란으로 5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박문영(朴文楧)이 진안(鎭安)으로 찾아와 회포를 나누고 돌아가는 것을 전송한 시이다. 권3은 계사와 소(疏)이고 권4는 정구(鄭逑), 유성룡(柳成龍) 등과의 편지이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 논(論), 명이고, 권6은 잡저, 전(箋), 계, 상량문, 축문, 제문, 묘지이며, 권7과 권8은 부록으로 연보와 사적, 만장, 이여정(李如珵)이 지은 서호서원에 대한 상량문, 정래정(鄭來鼎)이 지은 봉안문 등이 있다.
▶산당집(山堂集) | 최충성(崔忠成, 1458~149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 1458~149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후손 최방언(崔邦彥)이 소장하고 있던 초고(草稿)를 박세채(朴世采)의 교감(校勘)을 받아 1685년 원집 2권 1책으로 편집하였으나 고본(稿本)으로만 남아 있다가, 1805년에 9대손 최혁(崔爀)이 송환기(宋煥箕)의 서문(序文)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66년에 후손 최병윤(崔秉潤) 등이 간행한 중간본이다. 원집 권1의 잡저(雜著)는 <속원인(續原人)>ㆍ<독소학문(讀小學文)> 외에 ≪소학(小學)≫에 관한 글 3편 등이 실려 있다. 원집 권2의 서(書)는 1487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점필재에게 불무(佛巫)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청하는 상소인 <상점필재선생서(上佔畢齋先生書)> 등이 있으며, 기(記) 중에 <증실기(蒸室記)>와 <경려분각기(警慮焚刻記)>는 중풍을 치유하려고 힘쓰던 때의 기록이다. 전(傳)은 <산당서객전(山堂書客傳)>으로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후에 지은 자전적인 글이다. 권3은 별집, 권4~5는 부록이다. 김굉필의 제자로서 ≪소학≫을 중시하고 이단을 배척한 저자의 성리학 연구 성과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산목헌집(山木軒集) | 김희순(金羲淳, 1757~1821)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산목(山木) 김희순(金羲淳, 1757~182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유적(遺蹟)과 유문(遺文)의 정리를 맡은 이는 동생 양순(陽淳)이다. 양순은 1827년경 홍석주(洪奭周)에게 신도비명(神道碑銘)을 부탁하고 유문을 수습(收拾) 편차(編次)하였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재임 중이던 1833년에 이익회(李翊會)의 서문(序文)을 추가하여 목판(木板)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本集)은 18권 9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卷首)에 1833년 이익회가 쓴 서(序), 동생 양순이 쓴 발(跋)과 총목(總目)이 있다. 목록(目錄)은 불규칙하게 편성되어 있던 것을 영인시 재편(再編)하여 권1, 권2~3, 권4~5, 권6~7, 권8~10, 권11~13, 권14~15, 권16~18로 묶어서 해당 권 앞에 배치하였다. 권4~7은 강의(講義)로 1789년 경연(經筵)에서 ≪시경(詩經)≫에 대한 정조(正祖)의 조문(條問)에 답변한 것이다. 권16~18은 모두 응제록(應製錄)으로 반교문(頒敎文), 제문(祭文), 진향문(進香文), 비(碑), 부(賦), 시(詩), 표(表), 책(策), 서(序), 기(記), 논(論), 설(說)이다.
▶산택재집(山澤齋集) | 권태시(權泰時, 1635~171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 1635~1719)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흥락(金興洛)이 수집한 시문을 바탕으로 문인 김익모(金翊模) 등이 편차하여 1910년 안동 경광서당에서 활자로 초간한 후, 신익호(申翼浩) 등 안동사림이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1911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0년 7월에 쓴 김도화(金道和)의 서가 있고, 이어 목록이 있다. 권1~권2의 중반부는 사와 시이다. <의의초사(擬擬招辭)>는 송옥(宋玉)의 <초혼부(招魂賦)>를 본따 남전 여대림(呂大臨)이 <의초사(擬招辭)>를 지은 것을 다시 모의하여 지은 것이다. 시는 저자의 유문이 워낙 일실되고 소실된 상태에서 모은 것이어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지는 못한 듯하다. 작품에는 벗들과 천등산(天燈山), 학가산(鶴駕山) 등을 유람하며 지은 시, 회덕 현감에 제수되어 사은하고 돌아오며 지은 시 등이 있다. 권2 후반부~권3은 서(書), 잡저, 서(序) 등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 1910년 인행 당시 초간본에 실렸던 김형모(金瀅模)의 발과 이듬해인 1911년 5월에 중간하면서 쓴 신익호의 발이 수록되어 있다.
▶삼명시집(三溟詩集) | 강준흠(姜浚欽, 1768~183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삼명(三溟)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기록이 부족하여 편집 서사의 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수록 작품 중 <임진삼월가행관왕묘……(壬辰三月駕幸關王廟……)>이 1832년 3월에 지어진 것이므로 그 이후 필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8편, 습유 합 4책으로 되어 있는 시집이다. 총 1,272제가 수록되어 있으며, 대체로 남인계 학자 목만중(睦萬中), 채제공(蔡濟恭) 등과 수창한 것, 시절, 기후, 인물, 산천에 대해 읊은 것, 사찰, 궁전 등에 대한 탄식, 악부나 여행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중에서도 악부는 우리 역사와 풍토 및 지리에 대한 애정과 정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편3은 시, 연행록(燕行錄)인데, 연행록은 이국(異國)의 풍물(風物)은 물론 당시 청조(淸朝)의 제도와 정치적인 관행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다. 편6은 시, 한경잡록(漢京雜錄)인데, 한경잡록 가운데 앞부분에 수록된 40제는 삼각산(三角山)에서부터 저자도(楮子島)에 이르기까지 한양 도성 안팎의 승경(勝景)을 읊은 시로, 제목 다음에 지명이나 건축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기해 두고 있다.
▶삼봉집(三峯集) | 정도전(鄭道傳, 1342~139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문집이다. 아들 정진(鄭津)이 저자의 자편(自編) 시고(詩稿)를 모아 1397년에 처음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791년에 정조(正祖)의 명으로 규장각에서 정리하여 대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삼간본이다. 본 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賦), 시(詩), 사(詞), 악장(樂章) 등의 운문과 소(疏), 전(箋), 서(序), 계(啓), 서(序) 등 다양한 문체의 산문이 실려 있다. 특히 권5~6은 <경제문감(經濟文鑑)>으로, 중국과 조선의 역대 재상부터 수령에 이르기까지 명칭ㆍ연혁ㆍ직임의 득실ㆍ인물의 현부(賢否) 등을 대상으로 저자의 견해를 붙여 편찬한 것이다. 권7~8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권9는 <불씨잡변(佛氏雜辨)>, 권10에는 <심기리편(心氣理篇)>과 <심문(心問)>ㆍ<천답(天答)>이 실려 있다. 권11~12는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으로 군주의 치도(治道)를 논하였다. 권13에는 진법(陣法)과 습유(拾遺)가 실려 있다. 권14는 부록이다.
▶삼산재집(三山齋集) | 김이안(金履安, 1722~1791)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 1722~179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고를 수집, 편찬하였다가 1854년경 종손 김수근(金洙根)이 12권 6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시(詩)는 202제가 실려 있다. 북한산, 수락산, 금강산, 단양 일대를 유람할 때 지은 작품이 많고, 차운시(次韻詩)도 많다. 산문 중 서(書)의 내용은 대부분 상례(喪禮)나 제례(祭禮) 등의 의문에 관한 문답, 경전에 대한 논변, 성리설에 대한 것이 많다. 잡저 중에는 문왕을 유리(羑里)에서 구해낸 산의생(散宜生)을 논한 <산의생론(散宜生論)>, 융적(戎狄)이 중국을 차지했으니, 이제 우리나라가 중화(中華)가 될 때라고 논변한 <화이변(華夷辨)>,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이 미발지전(未發之前)의 기질(氣質)의 선악(善惡)을 논하는 것을 비판한 <미발기질설(未發氣質說)>, ≪역학계몽(易學啓蒙)≫과 ≪중용장구≫의 의문을 조목별로 정리한 <기의(記疑)> 등이 실려 있다. 권11~12에 걸쳐 실린 <의례경전기의(儀禮經傳記疑)>는 모친상(母親喪) 중에 ≪의례(儀禮)≫를 읽으면서 의문점을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
▶삼산집(三山集) | 유정원(柳正源, 1702~176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삼산(三山) 유정원(柳正源, 1702~1761)의 문집이다. 1863년에 현손 유기진(柳箕鎭), 유형진(柳衡鎭), 유택흠(柳宅欽)이 참여하여 원집과 부록 8권 4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1868년 간행 이후의 사실을 약간 보충하고 잘못된 곳을 수정하여 보각후쇄(補刻後刷)하였다. 시(詩)는 1725년에 지은 자경(自警)을 시작으로 <유청량산(遊淸涼山)> 등의 유람시와 만시(輓詩) 등이 있다. 서(書)는 주로 남인(南人)과 소론계(少論系) 학자들, 일가 친척과 주고받은 편지가 많다. 잡저 중 <안성유씨우선설변(安城劉氏右旋說辨)>은 일월오성(日月五星)이 좌선(左旋)한다는 주자의 통설에 대해 우선(右旋)이라고 주장하는 안성유씨(安城劉氏)의 논을 변론한 것이다.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은 1755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조령산성설진의(鳥嶺山城設鎭議)>는 남로(南路)의 요충지인 조령에 산성을 쌓을 것을 건의한 것이다. 그밖에 역(易)에 대한 관심과 조예를 알 수 있는 <역전팔칙양생설(易傳八則陽生說)>, ≪맹자(孟子)≫ 경계장(經界章)을 읽고 정전법(井田法)에 대해 설한 <정전설(井田說)> 등의 작품이 있다.
▶삼수헌고(三秀軒稿) | 이하조(李賀朝, 1664~170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삼수자(三秀子) 이하조(李賀朝, 1664~1700)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형 김창협(金昌協)과 그의 아우 김창흡(金昌翕)이 산정한 고본에, 백형 희조(喜朝)가 부록 등을 증보하여 친우 조정만(趙正萬)의 협조를 받아 1712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이명(李頤命)이 1712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시(詩)로, 주요 수창자는 이희조(李喜朝), 남용익(南龍翼) 등이다. 작품 중에서 서행록(西行錄)은 1700년에 형의 임소인 해주(海州)에 가서 모친을 뵙고 이이(李珥)의 유적지인 석담구곡(石潭九曲) 등을 유람하며 지은 것으로, 그 해 7월 김창협이 지은 서행록 발문이 부기되어 있다. 권3은 서(序), 기(記), 제발이다. 제발 가운데 <종씨자동형동유록후(從氏子東兄東遊錄後)>는 1689년 금강산에 다녀온 이해조(李海朝)의 유람기에 쓴 것이다. 권4는 제문, 애사, 잡저이다. 잡저의 <예학지(瘞鶴誌)>는 1688년 형 이희조가 평강에서 보내준 학을 잃고 지은 것이다. 권5는 부록으로 행록, 묘표, 묘지명이고 권말에는 서종태와 매형 민진후(閔鎭厚)가 17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삼연집(三淵集)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 권책수 : 34책 | 포갑수 : 7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김귀년(金貴年)
조선 시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1732년 운각 활자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36권 18책, 습유 32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詩)는 저자가 복거한 곳에서 지은 것이 많고, 강화, 속리산 등 각지를 유람하고 지은 것들이 많다. 서(書)로는 주로 당시 소론과의 갈등 문제나 학문에 대한 문답 내용이다. 설(說)로는 <논지자설(論智字說)> 등이 있고, 찬(贊)으로는 장희백(臧僖伯) 등 75명에 대한 찬을 모은 <좌사제찬(左史諸贊)> 등이 있다. 잡저로는 동생 김창립(金昌立)의 전(傳), 구산(龜山)의 유후론(留侯論)을 비판한 <소절잔도론(燒絶棧道論)> 등이 있다. 권33~36은 잡록(雜錄), 일록(日錄), 만록(漫錄)이다. 잡록은 1702년에 성의장(誠意章), 자기지의(自欺之義), 태극(太極) 등에 관한 수상(隨想)을 적은 것이고, 일록은 곡운(谷雲), 벽계(檗溪) 등에서 지낼 때의 독서 내용과 생활, 기타 수상(隨想)을 적은 일기이며, 만록은 성리학에 관한 견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인물과 고사, 제도 등에 관해 적은 것이다. 습유도 원집의 편차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삼탄집(三灘集) | 이승소(李承召, 1422~148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암고서박물관,이용신(李庸信),서강대학교
조선 초기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졸한 직후 성종의 명에 의해 아들 이희(李熙)가 수습(收拾)하고 선사(繕寫)하여 올렸으나 성종의 승하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외손 이수동(李壽童)이 1515년(중종10)에 함흥(咸興)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14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신용개(申用漑)ㆍ남곤(南袞)이 지은 서(序) 2편과 행장(行狀), 김뉴(金紐)가 지은 묘지(墓誌)가 실려 있다. 권1~9는 시, 권10~14는 문이다. 시는 대체로 창작 시기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권1에는 부(賦)ㆍ사(辭)가 포함되어 있다. 권10에는 기(記)와 서(序), 권11에는 서(序)ㆍ발(跋)ㆍ해(解), 권12에는 논(論)ㆍ의(議)ㆍ장(狀)ㆍ서(書)ㆍ제문, 권13에는 비갈(碑碣), 권14에는 묘지ㆍ행장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502년에 지은 성현(成俔)의 발과 문집 편찬ㆍ간행 경위를 밝힌 이수동(李壽童)의 발(跋)이 실려 있으며, 끝에 초간간기(初刊刊記)가 있다. 시서(詩序)나 송서(送書) 등의 작품을 통해 조선 초기까지도 불교 사상이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삽교집(霅橋集) | 안석경(安錫儆, 1718~177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삽교(霅橋) 안석경(安錫儆, 1718~177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정리된 초본의 상태로 전해지다가 1906년에 와서야 7권 4책의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시(詩)는 모두 296제로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가면서 읊은 시, 강릉 일대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시, 삽교의 생활을 읊은 시들이 있다. 서(序) 중에 <삽교만록서(霅橋漫錄序)>는 저자가 만년에 횡성(橫城) 삽교(霅橋)에 은거할 당시 농사짓는 여가에 사람들과 한 얘기를 기록한 ≪삽교만록≫에 대한 서문이다. 기(記) 가운데 <용촌기(龍村記)>는 임백후(林伯厚)가 용촌(龍村)이라 자호(自號)한 데 대해 써 준 것이며, <기임백호어(記林白湖語)>는 호걸지사(豪傑之士)인 임제(林悌)란 인물이 임종시에 남긴 말을 기록한 것이다. 기타 심(心)의 중요성과 귀함을 논한 <명덕설(明德說)>, 치악산에서 독서할 당시 선승(禪僧)과 함께 약초를 캐면서 깨우친 바를 쓴 <산중잡설(山中雜說)>, 선조를 잊지 말 것을 경계하며 박돈성(朴敦性)에게 지어준 <염재명(念齋銘)>, 시정책으로 93판에 달하는 장문(長文)인 <의대정대책(擬大庭對策)>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있다.
▶상곡집(商谷集) | 강유(姜瑜, 1597~166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상곡(商谷) 강유(姜瑜, 1597~166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필건(弼健)ㆍ필기(弼耆)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성대중(成大中)의 산정(刪定)을 거쳐 1798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두(卷頭)에 1798년 민종현(閔鍾顯)이 쓴 서문(序文)이 있다. 총목(總目)은 없고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저자가 관직생활 중 외직을 여러 차례 지냈기 때문에 지방에 있을 때 지은 작품들이 많다. 권2는 문(文)으로 소(疏), 명(銘), 제문(祭文)이다. 이 중에서 <척화소(斥和疏)>는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어가를 따라 강화도에 들어갔을 때 올린 상소(上疏)로 청(淸)나라와 화의(和議)하지 말고 항전(抗戰)할 것을 주장한 것이고, <청물쇄환주회인소(請勿刷還走回人疏)>는 1628년에 올린 것으로, 청나라에서 주회인(走回人)을 포로로 송환할 것을 요구한데 대해 이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아뢴 것이다. 권3은 부록(附錄)이고, 권말에는 성대중이 179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상유집(桑楡集) | 유사규(柳思規, 1534~160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상유자(桑楡子) 유사규(柳思規, 1534~16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십 수 권이 있었으나 전란 중에 산실되었다. 만년에 시작(詩作)을 모아 자편(詩作)하여 ≪상유집(桑楡集)≫이라 명명하였던 것을 아들 유순익(柳舜翼)이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있으면서 송방조(宋邦祚)의 발문(跋文)을 받고, 1618년에 저자의 사위인 이현영(李顯英)에게 서문(序文)을 받아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의 시집이다. 권수(卷首)에 이현영이 지은 서문이 있으며, 권미(卷尾)에 문인 송방조(宋邦祚)가 지은 발(跋)이 있다. 권상(卷上)과 권하(卷下)에는 각각 177제와 187제의 시(詩)가 시체(詩體) 구분 없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집당인시구사절(集唐人詩句四絶)>은 한유(韓愈), 가도(賈島), 두보(杜甫) 등의 시 한 구씩을 연구(聯句)로 맞춘 것이고, <감고삼십운(感古三十韻)>은 고사 30건을 인용하여 각각의 주제로 삼고 칠언율시(七言律詩) 한 수씩으로 구성한 장편(長篇)의 영사시(詠史詩)이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동정호 부근의 사계절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팔경(八景)을 노래하였다.
▶상촌고(象村稿) | 신흠(申欽, 1566~1628)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상촌거사(象村居士) 신흠(申欽, 1566~1628)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모아 편차해 ≪상촌고(象村稿)≫라 이름하고 자서(自序)까지 지어 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1629년에 아들 신익성(申翊聖)이 유고(遺稿)를 활자(活字)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60권, 부록 3권 합 20책이다. 운문(韻文)은 악부체(樂府體)와 고시(古詩)가 앞쪽에 편차되어 있고, 중국 사신 영위사(迎慰使)로 나가 지은 시작(詩作)을 모은 <영위록(迎慰錄)>과 1609년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중국에 다녀올 때의 시작(詩作)을 모은 <조천록(朝天錄)>이 함께 편차되어 있다. 산문으로는 각종 문체를 망라해 작품을 남겼다. 임진왜란 당시 외교 문서와 편지 등을 모은 <응제록(應製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시말(始末)을 적은 지(志), 경전 구절 등을 내용으로 한 <휘언(彙言)>, 성현의 휘언(徽言)과 술사(述辭)와 저자의 논찬(論撰)을 실은 <구정록(求正錄)>,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를 공부하고 상수(象數)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난해한 구절을 뽑아 설명한 <선천규관(先天窺管)> 등의 작품이 있다.
▶서경집(西坰集) | 유근(柳根, 1549~162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서경(西坰) 유근(柳根, 1549~162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외손 오정위(吳挺緯)가 산일되고 남은 가장시고(家藏詩藁)와 ≪황화집(皇華集)≫에 실린 시를 수집하여 4권 2책으로 편차하여 1662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외증손 김진표(金震標)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초간본에 빠진 관각(館閣)ㆍ응제(應製) 문자, 비문, 행장, 소차 등을 수집, 8권 3책으로 증보하여 1665년 삼척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4에는 시가 실려 있다. 최립(崔岦) 등과의 차운시, 이덕형(李德馨) 등에 대한 만시, 중국 사행 가는 이들에게 주는 증별시가 많다. 권4에는 ≪황화집≫에서 뽑은 시(詩) 134제(題)가 실려 있다. 권5에는 임란을 당하여 호(戶)마다 면포나 쌀 등을 내어 전선(戰船)을 만들어 강도(江都)를 방비할 것을 촉구한 통유문(通諭文)과 상량문 등이 실려 있다. 권8에는 임란 이후 수습책을 제시한 <논전수화삼책소(論戰守和三策疏)>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임진왜란 시기의 사회 상황을 알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서계집(西溪集) | 박세당(朴世堂, 1629~1703)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박승만(朴勝萬)
조선 후기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문집이다. 16권 8책의 목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이후 간행된 추각본으로, 모두 22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시록별(詩錄別)로 편차되어 800여 수가 실려 있다. 저자 생전에 자편(自編)해 놓은 <동행습낭(東行拾囊)>, <잠고(潛稿)>와 저자 사후(死後) 문집 간행 때 수습하여 정리한 <보유록(補遺錄)>을 합하여 편차하였다. 산문 중 서(書)의 내용은 노장설(老莊說)에 관한 견해, 전제(田制) 개혁론, 김시습(金時習)의 동봉사우(東峯祠宇) 건립에 관한 일 등이다. 서(序)에는 자신이 지은 ≪색경(穡經)≫의 서, 최석정(崔錫鼎)의 부탁으로 지은 ≪지천집(遲川集)≫의 서 등 전적에 대한 서와 송서(送序) 여러 수가 실려 있다. 간독(簡牘)은 아들, 조카 등에게 안부를 묻거나 학문상의 의문에 답하거나 정치 현안에 대해 조언하거나 지방관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밖에 다양한 내용과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사변록≫을 지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유배되는 수난을 당했던 저자의 독창적인 사상을 만나볼 수 있는 자료이다.
▶서계집(西溪集) | 이득윤(李得胤, 1553~16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위 변시망(卞時望)의 4대손인 매평(梅坪) 변지정(卞至鼎)이 병란(丙亂)과 화재로 산실(散失)되고 남은 유고(遺稿) 약간 편을 수습(收拾)하여 본손(本孫)에게 베껴서 소장하게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6대손 이정연(李靜淵)이 산재(散在)된 유문(遺文)을 수집(蒐集)하고 증보 재편(再編)하여 1833년에 목활자(木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사운(五言四韻), 칠언사운(七言四韻), 소(疏)이고, 권2는 서(書)로서 김장생(金長生)과 태극도(太極圖)와 역학(易學)에 관해 토론한 내용과 정두원(鄭斗源)과 거문고에 관한 지식을 교류한 것들이다. 권3은 잡저(雜著), 서(序), 제발(題跋), 잠(箴), 명(銘), 축문(祝文), 제문(祭文), 행장(行狀), 예설(禮說)이고 권4는 부록으로 김상헌(金尙憲), 최명길(崔鳴吉) 등이 지은 만사(挽詞)를 비롯하여 제문(祭文)과 행장(行狀), 손자 이만헌(李萬憲)의 청으로 1657년에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묘갈명(墓碣銘)과 축문(祝文)이 있다.
▶서계집(西溪集) | 박태무(朴泰茂, 1677~175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서계(西溪) 박태무(朴泰茂, 1677~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박지서(朴旨瑞)가 정종로(鄭宗魯)의 서(序)와 1808년에 지은 최흥벽의 발(跋)을 붙이고 재원을 확보하여 각수(刻手)를 고용해 181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정종로의 서가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의 앞부분은 시(詩), 부(賦)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오언율시와 칠언절구의 비중이 큰 편이다. 청량산(淸凉山)과 소백산(小白山) 등지를 기행할 때 지은 연작시, 주자(朱子)와 이황(李滉) 등의 시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2의 뒷부분~권4의 앞부분은 서(書)이다. 권4의 뒷부분은 장(狀), 알묘문이고 권5는 축문, 제문, 명(銘), 잠(箴), 찬(贊), 서(序)이다. 남명학 전통을 이어받아 수양을 중시한 결과 명과 잠의 저작이 많다. 권6은 기(記), 발(跋), 상량문 등이고 권7은 잡저, 책문이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 증손 지서가 1812년에 지은 지(識)와 최흥벽(崔興璧)이 180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서귀유고(西歸遺藁) | 이기발(李起浡, 1602~166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귀(西歸) 이기발(李起浡, 1602~1662)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승연(承淵)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7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저자의 형 흥발(興浡)의 ≪운암일고(雲巖逸藁)≫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별로 목차를 실었다. 권1은 고가시(古歌詩)이다. 가요체의 장편 고시로 <은거사(隱居詞)> 외에는 장문의 서(序)가 있다. 권2는 오언고시와 오언배율이고 권3은 칠언고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이며 권4는 칠언율시이다. 작품 중에는 ‘서귀’로 호를 삼고 은거하며 ‘인의’를 지키고자 하는 다짐을 노래한 <서귀시(西歸詩)>, 임경업의 위용을 기리고 그의 죽음을 애통히 여긴 <위임장군작(爲林將軍作)> 등이 있다. 권5는 소(疏)와 서(書)이고 권6은 서(序)와 기(記)이다. 권7은 잡저와 묘명인데, 잡저에는 사계 김장생을 모신 화산서원의 상량문인 <익산화산서원상량문(益山華山書院上樑文)>과 효성이 지극한 양사룡(梁四龍)과 악사 송경운(宋慶雲)의 전(傳) 등이 있다. 권8은 제문, 문답이다. 권9~10은 부록으로 1876년 문집 간행 기사까지 수록된 연보 등이 있다.
▶서담집(西潭集) | 홍위(洪瑋, 1559~162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담(西潭) 홍위(洪瑋, 1559~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승(昇)이 1682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이광정(李光靖)의 교감을 거쳐 1846년 목판으로 초간한 원집과 새로 수집한 시문과 손자 승이 편찬한 연보를 바탕으로 후손 종소(鍾韶)가 편차한 고본을 9대손 장섭(樟燮)과 10대손 재겸(在謙)의 평정을 거쳐 1906년 활자로 인행한 속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상ㆍ하 합 2책과 속집 3권, 부록 합 1책이 합부되어 있다. 권1~2는 시(詩), 사(詞)이고 권3~4는 소, 서(書), 제문, 묘갈, 잡저가 실려 있다. 부록 상ㆍ하에는 행장, 묘갈명 등이 있다. 속집은 권두에 속집 목록이 있다. 권1은 선계(先系)로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문학지사를 파견할 때 온 홍천하(洪天河)를 1세로 하여 10세 홍몽주(洪夢疇)까지, 다시 20대조 홍은열(洪殷悅)을 1세로 하여 저자의 부친 홍흔(洪訢)까지 20세의 약력을 기술했다. 권2는 연보이고 권3은 시, 부, 책문, 서(書), 제문, 부록이다. 부록에는 가장, 만(輓) 등과 유도헌ㆍ홍원화ㆍ김규창이 지은 기(記)가 있다.
▶서당사재(西堂私載) | 이덕수(李德壽, 1673~1744)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 1673~174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집으로 현재 규장각에 전하는 12권 12책의 필사본 ≪서당사재(西堂私載)≫가 있는데, 이름으로 볼 때 저자는 생전에 시문을 정리하고 자편(自編)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권1~2는 시(詩)로, 450여 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김창협(金昌協), 남구만(南九萬) 등에 대한 만시, 이덕부(李德孚), 홍태유(洪泰猷) 등과의 차운시(次韻詩),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 서울과 양근(楊根)을 오가며 지은 시 등이 특히 많다. 또 불교(佛敎)에 조예가 깊어 승려들과 사귀며 주고받은 시들도 많다. 권3~4는 서(書),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이다. 서(書)의 내용은 고금의 문장론에 대한 것, 어묵(語默)의 중도(中道)를 지키라는 것 등이 있다. 잡저로는 회니시비(懷尼是非)에 근본한 당화(黨禍)를 경계한 <자혹(咨惑)>과 <붕당론(朋黨論)>, 고향 양근(楊根)에 도적이 많은 것을 가지고 논한 <가외유인부(可畏惟人賦)>, <김광수전(金光遂傳)> 등이 있다. 권5~8은 신도비명, 묘갈명이며, 권9~12는 묘지명, 묘표, 시장(諡狀), 행장(行狀)이다.
▶서산집(西山集) | 김흥락(金興洛, 1827~1899)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문집 간행 작업이 시작되어 약 7년 동안 선사, 감교의 과정을 거쳐 1907년에 원집(原集) 24권, 속집(續集) 6권 합 16책으로 간행되었다. 원집 권1은 시(詩) 124제인데, 그중에서 만사(輓詞)가 57편이다. 권2는 영해 부사(寧海府使)를 사직하는 소(疏)와 서(書)이다. 편지 중에서 <상정재유선생문목(上定齋柳先生問目)>은 퇴계(退溪)의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 대해 질의하고 유치명(柳致明)이 답한 내용을 첨부한 편지이다. 이밖에도 ≪중용장구≫의 귀신장(鬼神章), 주기주리설(主氣主理說) 등 성리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 권13~14는 잡저이다. 이 중에서 <입학오도(入學五圖)>는 배움에 이르는 길을 입지(立志), 거경(居敬), 궁리(窮理), 역행(力行)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고, <논어차의(論語箚疑)>는 ≪논어(論語)≫의 여러 구절을 뽑아서 해석한 것이고, <가제의(家祭儀)>는 사당(祠堂), 사시제(四時祭), 묘제(墓祭), 토신제(土神祭)의 의식 절차에 대해 도표를 곁들여 설명하는 글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서석집(瑞石集) | 김만기(金萬基, 1633~1687)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석(瑞石) 김만기(金萬基, 1633~1687)의 문집이다. 손자인 김춘택(金春澤)이 주관하여 김만중(金萬重)이 편찬해 놓았던 문집 18권 9책을 1701년 교서관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이 중에서 끝의 2권은 부록이다. 권1~4는 시(詩)로 380여 제가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율시와 절구뿐만 아니라 행(行), 곡(曲) 등 각 체의 시, 당시(唐詩)와 두보(杜甫) 등의 운에 차운한 시가 많으며, 과제시(課題詩)가 80여 수나 실려 있다. 권3과 4의 후반부에는 만시(挽詩)를 따로 모아 두었다. 권5~6은 서(序), 기(記) 등 잡문과 응제록(應製錄)이다. 권7~12는 소차(疏箚)와 계사(啓辭)이다. 대부분 대죄하고 사직하는 내용으로, 남인(南人) 집권 기간 동안 서인(西人)을 보호해 온 저자의 처지를 살필 수 있다. 권13~16은 행장, 시장과 묘지 등의 묘도문자이다. 권17~18은 부록이다. 숙종이 직접 지어 내려준 <어제화상찬(御製畫像贊)>과 <묘표어필대자(墓表御筆大字)>가 실려 있으며, 이후 교서와 사제문,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과 묘표음기, 김수항(金壽恒)ㆍ이민서(李敏敍)가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서소집(書巢集) | 김종휴(金宗烋, 1783~186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소(書巢) 김종휴(金宗烋, 1783~1866)의 문집이다. 저자의 행적은 손자 진흠(縉欽)이 이휘재(李彙載)에게 행장을 받고, 증손 세락(世洛)이 저자의 생질인 유도헌(柳道獻)에게 묘갈명을 받아 정리하여 교감을 받은 뒤, 간역을 시작하여 3년만인 1900년 봄에 6권 3책의 목판으로 완성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1810년부터 1862년까지 지은 시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군영(五君詠)>은 중국 진(晉)나라의 안연지(顔延之)가 혜강(嵇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향수(向秀), 유령(劉伶)의 다섯 군자를 읊은 것을 본떠 치건(緇巾), 안경(眼鏡), 단공(短笻), 목침, 연초(煙草) 등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다섯 가지에 대해 읊은 것이다. 권3은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잡저는 태극도설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덧붙인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1597년에 주화(主和)의 잘못을 논한 편지에 대한 산삭의 문제에 대해 논변한 <갑오척화변(甲午斥和辨)> 등이다. 권미에는 저자의 증손 세락이 지은 발문이 있다.
▶서암유고(西巖遺稿) | 이진백(李震白, 1622~170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암(西巖) 이진백(李震白, 1622~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택(澤)과 연(沇) 형제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남구만(南九萬)의 편차를 거쳐 1710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남구만의 서가 있다. 권상에서 권하의 앞부분까지는 저자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주로 향리에 있으면서 주변의 풍광 및 즉흥적 감상을 소재로 하여, 한거의 정회를 노래하고 생을 반추한 내용의 시가 많다. 권하는 칠언배율과 고시, 여문(儷文), 애사(哀辭), 잡저(雜著), 과제시(科製詩), 과제표(科製表)이다. 칠언배율은 모두 이항의 시에 차운한 것이고, 오언고시 가운데 <치아진락불능저작우언자관(齒牙盡落不能咀嚼寓言自寬)>은 83세가 되어 치아가 다 빠지자 이것을 천공에게 따지고 천공이 이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우언이다. 과제시(科製詩)에는 중국 장안에 있던 이별의 장소인 소혼교를 읊은 <소혼교(消魂橋)> 등 5편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남구만이 지은 묘갈명과 최규서(崔奎瑞)가 지은 행장, 서종태(徐宗泰), 김창집(金昌集) 등이 지은 만장(輓章)이 실려 있다.
▶서암집(恕菴集) | 신정하(申靖夏, 1681~171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암(恕菴) 신정하(申靖夏, 1681~1716)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친구와 아들과 조카가 유문(遺文)을 정선(精選)하고 거듭 산정하였고, 이 정고본을 1738년 사손(嗣孫) 신대권(申大權)이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4에는 부(賦)와 사(詞) 각 1편과 시 650여 제가 실려 있다. 남한산성을 지나면서 고조부인 신경진(申景禛)의 유덕(遺德)을 기린 <동문루부(東門樓賦)>가 있고, 방옹(放翁) 육유(陸游) 등 당인(唐人)의 운(韻)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5에는 소(疏)가 실려 있고, 권말에는 <춘방고사(春坊故事)>가 실려 있다. 권6~9까지는 서(書)와 척독(尺牘)인데, 서(書)는 가르침을 청하거나 시평(詩評)을 부탁하는 내용, 문장이나 교유에 관한 내용 등 실용적인 사안이 많다. 권10은 서(序), 권11은 기(記), 권12는 제발(題跋)과 잡저이다. 잡저 중에는 과작(科作)으로 지은 <증불거항우불망론(增不去項羽不亡論)>을 비롯해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권13~15는 행장, 신도비, 묘갈, 묘표, 묘지와 제문, 애사(哀辭)이다. 권16은 <잡기(雜記)>로서 역대의 인물, 문장, 서화 등에 관한 평론이 실려 있다.
▶서애집(西厓集)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집이다. 1631년 저자의 아들 유진(柳袗)이 문집 간행을 도모하여 해인사에서 판각, 인쇄하여 1633년 원집 20권, 별집 4권의 목판본을 내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원집과 별집에 증보된 연보(年譜)를 합편하여 하회(河回)의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원집 권1~2는 시(詩)이다. 220여 제(題)가 실려 있다. 초기의 작품에는 부친의 임소인 정주(定州)와 형 유운룡(柳雲龍)의 임소인 인동(仁同), 기타 옥연서당(玉淵書堂)과 남계서당(南溪書堂)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권3~5는 주문(奏文), 소(疏), 차(箚)이다. 권6~9는 서장(書狀), 계사(啓辭), 정문(呈文), 서(書)이다. 권10~12는 서(書)이다. 권13~16은 잡저이다. 상례(喪禮)와 장례(葬禮)의 의문 사항에 대한 것, 국방에 관한 문제와 방책을 논한 글, 정치 관계 기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맨 끝에는 장현광(張顯光)과 이준(李埈)의 발(跋)이 각각 있다. 별집의 체제 또한 원집과 비슷하다. 임진왜란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실려 있다.
▶서재집(西齋集) | 임징하(任徵夏, 1687~173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서재(西齋) 임징하(任徵夏, 1687~173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천모(天模)ㆍ원모(元模)가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저자의 5대손 헌회(憲晦)가 홍직필(洪直弼)의 산정을 받고 부록을 추가ㆍ재편하여 1844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조인영(趙寅永)의 서(序), 홍직필이 1844년에 지은 서(序), 총목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기별로 엮어 초년록(初年錄)은 유배 이전에, 서행록(西行錄)은 순안(順安)으로 유배되는 도중에, 안정록(安定錄)은 순안 유배시기에, 남천록(南遷錄)은 제주로 이배되는 도중에, 감산록(柑山錄)은 제주 유배 중에, 영어록(囹圄錄)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의금부의 옥에서 지은 시이다. 권3은 소(疏)이고 권4는 소, 계(啓), 공장이다. 소는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 인사들의 책임을 묻고, 실추된 노론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목적에서 올린 것이 대부분이다. 권5는 서(書), 기(記), 잡저이고 권6은 잡저, 제문, 고문, 애사이다. 권7은 묘지, 묘표, 행록이고 권8은 부록이다. 권말에 임헌회가 1844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서주집(西州集) | 조하망(曺夏望, 1682~174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서주(西州)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봉진(鳳振)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1826년 신작(申綽)의 편차를 받은 고본을, 현손 석우(錫雨)가 1854년 대구의 영남 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신작의 서(序)와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로,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원유(遠遊)>와 당(唐)나라 고황(顧況)의 <일만가(日晩歌)>를 차운한 <속원유부(續遠遊賦)>와 <회산거(懷山居)> 등이 있다. 권2~4는 시(詩)로서, 모의록(模擬錄), 연향록(軟香錄) 등 14개의 시록(詩錄)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5는 소(疏)이고 권6은 서(序), 기(記)이다. 권7은 서(書)로, 윤증, 조현명(趙顯命)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8은 잡저로 함열(咸悅) 공곡(孔谷)에 대성영전(大聖影殿)을 건립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대호남유생정방백문(代湖南儒生呈方伯文)>, 강릉 부사 재직 시 경포대를 중건하고 지은 <경포대상량문(鏡浦臺上樑文)> 이 있다. 권9는 제문, 축문이다. 권10은 애사, 행장, 묘문이고 권11은 유사, 부록이다.
▶서파집(西坡集) | 오도일(吳道一, 1645~1703)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시문을 정리해 놓은 것을 1729년에 아들 오수엽(吳遂燁)이 철활자(鐵活字)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0권 15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사부(辭賦), 시(詩)이다. 시는 18개의 시록(詩錄)이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맨 뒤에 보유로 11수가 실려 있다. 권9~16은 소(疏), 차(箚), 계(啓), 의(議), 장계(狀啓), 공사(供辭)이다. 권17~20은 서(序), 기(記), 잡저, 발(跋) 등이다. 잡저로는 18세 때 지은 <원이기불상리설(原理氣不相離說)> 등이 있다. 발(跋)로는 1681년에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리며 지은 작품 등이 있다. 권21~22는 서(書)이다. 권23~24는 행장, 묘표, 묘지, 묘지명, 묘갈명, 비명(碑銘), 시장(諡狀)이다. 권25는 반교문, 교서, 불윤비답(不允批答), 전(箋), 상량문이다. 권26은 잡지(雜識)이다. 권27~28은 <곤득편(困得編)>으로, 26세 때 경전과 우리나라 선유들이 논한 성명(性命) 이기(理氣)의 근원, 조존(操存) 궁격(窮格)의 요체 등이 있다. 권29~30은 부록이다.
▶서포집(西浦集) | 김만중(金萬重, 1637~169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로 남아 있는 것은 시문집 외에 ≪서포만필(西浦漫筆)≫이 있고, 소설로 ≪구운몽(九雲夢)≫과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시문집 10권은 사후 10년째 되는 1702년에 아들 김진화(金鎭華)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전체적으로 현종, 숙종 연간의 중앙 관직 생활, 1689년의 남해 유배 시절 등에 지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인을 그린 시와 사친시(思親詩)가 많다. 권2의 악부시는 국문 시가인 ‘쌍화점(雙花店)’을 개작한 것이다. 권7~8은 소(疏), 차(箚), 계(啓)이다. 권9는 제문, 악장, 비답, 교서, 옥책문, 표전, 서(序), 발(跋), 기(記), 지(識)이다. 본집에는 서간이 한 편도 실리지 않았는데, ≪송자대전(宋子大全)≫이나 ≪초려집(草廬集)≫ 등을 보아도 저자와 나눈 다수의 서찰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환국의 와중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권10은 1690년에 모친 윤부인(尹夫人)에 대해 지은 행장(行狀)이다.
▶서포집(西浦集) | 곽열(郭說, 1548~163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포(西浦) 곽열(郭說, 1548~16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시문 약간 편과 견문을 기록한 수필을 합친 ≪서포일록(西浦日錄)≫이 가장되어 왔고 1899년 겨울에 문중에서 파보를 중인한 다음, 8대손 곽창묵(郭昌默)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모아 7권으로 만들고, 저자의 행장(行狀), 갈명(碣銘), 계첩(契帖)과 증손 경한재 곽시징(郭始徵)이 지은 <육증서(六證書)>, 9대손 곽치섭(郭致爕)이 지은 <경오보변(庚午譜辨)>을 부록으로 편차하였고 1900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900년에 지은 최익현(崔益鉉)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잡저이고 권2~5는 시체순으로 오언고시(五言古詩), 육언고시(六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사율(五言四律),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사율(七言四律)이 실려 있는데 전아(典雅)하여 예스럽고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권6~7은 서포일록이고, 부록에는 윤행의(尹行義)가 지은 행장, 윤봉구(尹鳳九)가 지은 묘갈명 등이 있으며, 권미에는 8대손 곽창묵의 발문이 있다.
▶서하집(西河集) | 임춘(林椿, 미상)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서하(西河) 임춘(林椿, ?~?)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교우인 이인로(李仁老)가 잔고(殘稿)를 모아 6권으로 편집하고 아들 임비(林秘)를 시켜 교정(校正)ㆍ선사(繕寫)해둔 것을 최우(崔瑀)가 1222년에 서경(西京)의 제학원(諸學院)에 보내어 목판(木板)으로 간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고려 승려 담인(淡印)이 구리 항아리에 넣어 약야계(若耶溪) 근처에 파묻어 놓은 것으로, 1656년 한 승려가 청도(淸道) 운문사(雲門寺) 근처에서 발견한 것을 이하구(李夏耉)가 소장하고 있다가 신유한(申維翰)을 통해 14대손 임재무(林再茂)에게 전하여 교정을 거쳐 1713년 목판으로 개간한 것이다. 본 문집은 6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최석정(崔錫鼎)과 조태억(趙泰億)이 지은 중간서(重刊序)와 이인로(李仁老)의 서(序)가 실려 있다. 권1~3에는 시(詩) 144제(題) 174수, 권4~6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권4에는 서간(書簡) 18편이 실려 있다. 권5에는 서(序), 기(記), 전(傳)이 실려 있다. 권6에는 계장(啓狀)과 제문이 실려 있다.
▶서하집(西河集) | 이민서(李敏敍, 1633~1688)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 1633~16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이관명(李觀命)과 이건명(李健命)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17권으로 편차하고, 부록문자로 가장을 짓는 등 문집 간행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1700년 말 이건명이 충주 목사로 나가 판각을 시작하여, 1701년 원집 17권, 부록 합 8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5는 사(辭), 부(賦), 시(詩), 악장이다. 사(辭)는 김수항(金壽恒)의 딸에 대한 애사 등이 있고, 부(賦)는 평앙에 들러 지은 <차등루부(次登樓賦)> 등이 있다. 시(詩)는 지방관을 지내며 지은 작품들이 큰 줄거리를 이루며, 또 1653년 명을 받고 지은 <계사칠석봉교제(癸巳七夕奉敎製)>, 은자 6인을 연작으로 읊은 <육은시(六隱詩)> 등의 작품도 있다. 그밖에 만시(挽詩)와 악장이 있다. 산문 중에 잡저로는 월과로 지은 <심기유출입변(心豈有出入辨)>, 왕양명(王陽明)의 글을 읽고 적은 <독양명자(讀陽明子)> 등이 있고, 서독(書牘)으로는 김수항, 이익상(李翊相) 등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가 인물별로 수록되어 있다. 부록은 아들 이관명이 1701년경 지은 가장 1편이다.
▶석간집(石澗集) | 서효원(徐孝源, 1839~189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 1839~18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의 정리는 장남 석화(錫華)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6권 4책으로 편차한 후 저자의 삼종제 효신(孝信)에게 발문(跋文)을 받아 1916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집(本集)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5는 서(書)이다.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경학과 성리학적 논제에 관한 것과 학행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권6은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상량문(上樑文)이다. 그중에서 <명덕심성변(明德心性辨)>은 ≪대학장구≫에 나오는 명덕(明德)이 ‘심(心)’이냐 ‘성(性)’이냐 ‘심(心)과 성(性)’이냐는 논쟁에 대한 논문이며, <대학전구장의의(大學傳九章疑義)>는 ≪대학장구≫ 제치장(齊治章)의 ‘기가불가교(其家不可敎)’의 ‘가(可)’를 ‘가(可)’와 ‘능(能)’으로 보았을 때의 해석에 대한 논문이다. 권미(卷尾)에는 삼종제 효신이 지은 발(跋)이 있다.
▶석계집(石溪集) | 민욱(閔昱, 1559~162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계(石溪) 민욱(閔昱, 1559~1625)의 문집이다. 박사종(朴嗣宗), 조헌(趙憲),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고 송방조(宋邦祚), 민여로(閔汝老), 박정홍(朴廷弘) 등과 교유하였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산일(散逸)되어 시문 약간이 1질로 남아 있었는데 8대손 민치종(閔致鍾)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871년에 상곡(桑谷)에서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1870년에 임헌회(任憲晦)가 지은 서문(序文)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고, 권2는 소(疏), 명(銘), 찬(贊), 서(序), 기(記), 제문(祭文) 등의 문(文)이다. 권3은 병진이후일기(丙辰以後日記)로, 1616년 58세 이후에 기록한 일기(日記)이다. 권4는 부록(附錄)으로 행장(行狀), 묘갈(墓碣), 제문(祭文), 만사(輓詞), 애사(哀辭), 유사(遺事), 기술잡록(記述雜錄), 세덕(世德)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권말(卷末)에는 8대손 민치종(閔致鍾)이 1871년에 지은 발문(跋文), 방7대손 민익현(閔益顯), 민유현(閔有顯)이 지은 발문이 있다.
▶석계집(石溪集) | 이시명(李時明, 1590~167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목판으로 초간한 후, 다시 저자의 시문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ㆍ재편하고 목록을 추가하여 고종 연간에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사(辭), 부(賦),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이고 권2는 오언사운(五言四韻), 칠언사운(七言四韻), 오언장편, 칠언장편, 소(疏)이다. 그중에서 <논우율종사소(論牛栗從祀疏)>는 이이(李珥)의 이기설(理氣說)과 성혼(成渾)의 출처(出處)를 비판하고 문묘종사를 반대한 소로 1650년에 경상도 유림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잠명(箴銘), 축문(祝文)이다. 권4는 장흥효(張興孝), 조임(趙任), 백형(伯兄), 중형(仲兄) 등을 추도한 제문(祭文)과 구묘문(丘墓文)과 행장(行狀)이다. 부록 권1은 만사(行狀), 제문, 행장 등이고 권2는 <대명동유허비명(大明洞遺墟碑銘)>, <수산유허비명(首山遺墟碑銘)>, 청시사적(請諡事蹟) 등이다. 권말에 유묵(遺墨) 7판이 있다.
▶석담집(石潭集) | 이윤우(李潤雨, 1569~163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1569~163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산정ㆍ편차한 고본과 저자의 7대손 이만운(李萬運)이 편차한 실기(實記)를 합편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나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실기, 연보(年譜)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詩)와 만시(輓詩)로 시체 구분 없이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서(書)로, 정구에게 보낸 편지와 <의례문목(疑禮問目)> 등이 있다. 권3은 차(箚), 계사(啓辭), 전문(箋文), 정문(呈文), 명(銘),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4는 제문(祭文), 묘지(墓誌), 행록(行錄)과 잡저(雜著)이다. 잡저의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은 정구를 모시고 봉산의 온천에 다녀 온 1617년 7월 20일에서 9월 5일까지의 일록이다. 실기는 7대손 이만운(李萬運)이 찬술하였고, 부록은 사제문(賜祭文), 봉안문(奉安文), 고문, 묘지명 등이다. 연보에는 숙종 16년까지의 기사가 실려 있고, 부록으로 1634년에 아들 이도장(李道長)이 지은 가장과 저자가 1628년에 담양 부사로 나갈 때 지인들에게 받은 신장(贐章)이 있다.
▶석당유고(石堂遺稿) | 김상정(金相定, 1722~178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 1722~17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기응(箕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재직 중이던 1804년 예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서는 6권 3책인데, 권1~3은 문(文), 권4~6은 시(詩)로 구성되어 있다. 권1 머리에 문(文)의 목록이, 권4의 머리에 시(詩)의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문 86편이 문체에 관계없이 실려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권3 끝에 편차된 <원학(原學)>, <예원(禮原)>, <예통(禮統)> 3편인데, 저자의 대표작으로 특별히 언급한 저작이다. 제문은 의성 현령 때 지은 기우제문(祈雨祭文) 2편이 실려 있다. 전(傳)은 품팔이해 먹기도 힘들 정도로 곤궁해지자 스스로 굶어 죽은 종에 대한 것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김만수(金萬壽)에 대한 열전이다. 권4~6은 시(詩)이다. 유한준(兪漢雋)은 본집 서문에서 시가 차분하고 우아하면서도 건실하여 정경(情境)이 서로 어울리고 내용과 표현이 균형감이 있어 중도에서 치우치지 않았다고 극찬하였다. 마지막에 유한준의 서(序)와 저자의 아들 기응의 지(識)가 실려 있다.
▶석동유고(石洞遺稿) | 이문재(李文載, 1615~168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동(石洞) 이문재(李文載, 1615~1689)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남의(南儀)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정기(鄭琦)의 교감을 거쳐 1935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저자는 성리학 외에 수학, 천문학 등에도 뜻을 두고 깊이 탐구하여 약관에 선기옥형을 직접 만들었고 저술한 <선기옥형주해(璿璣玉衡註解)>, <기삼백주해(朞三百註解)> 등은 사우들 간에 전송되기까지 하였다. 또한 경세서(經世書)에 대해서도 정밀히 연구하여 관련 저작들을 남겼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김복한(金福漢)이 1922년에 지은 서(序)와 정기(鄭琦)가 1932년에 지은 서가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자연과 일상을 소재로 읊은 시가 많고 간혹 유람이나 기행 중 지은 작품들이고, 권2는 서(書)로 인물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3~7의 앞부분은 잡저(雜著)이고 권7의 뒷부분은 기(記), 제문, 묘갈명, 행장, 유사이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 송교순(宋敎淳)이 1922년에 지은 발(跋), 8대손 남의(南儀)가 1935년에 지은 발, 9대손 기석(起石)이 1935년에 지은 발이 있다.
▶석루유고(石樓遺稿) | 이경전(李慶全, 1567~164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석루(石樓) 이경전(李慶全, 1567~164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자호란에 대부분 없어졌으나 말년에 자편(自編)한 시문 4권을 바탕으로 아들 이무(李袤)가 1659년에 4권 4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3의 시고(詩稿)는 권수제(卷首題)가 ≪석루유고(石樓遺稿)≫로 되어 있고, 문(文) 부분은 ≪석루유고문집(石樓遺稿文集)≫으로 되어 있다. 시는 약 670여 제(題)가 있다. 문집에는 소차(疏箚), 제문, 기(記), 발(跋), 설(說), 명(銘)과 교서(敎書), 상량문, 서(序), 책제(策題)가 실려 있다. <사찬삼전도비문소(辭撰三田渡碑文疏)>와 <재소(再疏)>는 이경석(李景奭), 장유(張維) 등과 함께 <삼전도비문(三田渡碑文)>을 찬진하라는 명을 받고는 늙었다는 이유로 사양한 내용이다. <대설방천방사기(大雪訪天方寺記)>는 눈길을 헤치고 아들 손자와 함께 천방사(天方寺)를 찾아간 과정과 설경(雪景) 속의 산사(山寺)의 정취를 쓴 글이다. 대북파(大北派)의 영수인 이산해(李山海)의 아들로서 광해군 시기 북인(北人) 집권 하에서 이이첨(李爾瞻) 등과 함께 정국을 주도한 저자의 시문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석릉집(石菱集) | 김창희(金昌煕, 1844~189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릉(石菱) 김창희(金昌煕, 1844~1890)의 문집이다. 아들 교헌(敎獻)이 저자가 생전에 정리한 고본(稿本)과 별저(別著)들을 바탕으로 1898년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서는 12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제발(題跋)이다. <서노소문장익주화상기후(書老蘇文張益州畫像記後)>는 당시 조선의 서북 지역 백성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개탄하고 있다. <서전은유통의후(書錢銀流通議後)>는 당시 조선에 은화가 유통되지 못해서 겪는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기술하고 있는 바, 저자의 <부강팔의보(富強八議補)> 중 한 편으로 추정된다. 권4는 가장(家狀), 잡저(雜著)이다. 가장은 선친 정집(鼎集)의 행장이다. 잡저의 <식유(植儒)>에는 유교의 교화를 서양까지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는 작자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변로(辨老)>에서는 노자(老子)에 대해 상고 시대 황제(黃帝)의 다스림을 부흥시키기 위해 자(慈)와 검(儉)을 숭상하며, 때때로 유가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록(附錄)에는 아들 교헌(敎獻)이 지은 사략(事略)과 사제문(賜祭文)이 실려 있다.
▶석문집(石門集) | 정영방(鄭榮邦, 1577~165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정인욱(鄭仁勖)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21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1769년경에 정언충(鄭彦忠)이 지은 서(序), 1802년에 조술도(趙述道)가 지은 서(序),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사(辭), 부(賦), 시(詩), 만사(輓詞)이다. 그중에서 사(辭)의 <일만가기유덕무(日晩歌寄柳德茂)>는 미인과 이별하며 해가 지는 풍경을 읊어 유덕무에게 부친 것이다. 권4는 서(疏), 서(書), 기(記), 제문, 지갈, 행록, 유사, 잡저이다. 특히 상소는 용궁(龍宮)의 사민(士民)들을 위하여 광해군 때 정해진 하중(下中)의 전답 부세를 하하(下下)로 견감시켜 줄 것을 청하는 것과, 영해(寧海)에 속해 있는 영양을 다시 현(縣)으로 복구시켜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부록은 묘지명, 묘갈명, 제문, 만사, 봉안문, 습유 등이다. 권말에 1732년에 정내주(鄭來周), 1821년에 정필규(鄭必奎), 1821년에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발(跋)이 실려 있다.
▶석문집(石門集) | 오이익(吳以翼, 1618~166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문(石門) 오이익(吳以翼, 1618~1666)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항규(恒圭)ㆍ원규(元圭)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74년 나주 도림강당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경재(李景在)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3의 앞부분은 시로, 시체별로 분류하였다. 그중 오언사율의 <무술십월십칠승나명효발장성(戊戌十月十七承拿命曉發長城)>과 <입육입경익일취리우익일결배정읍유별안공명(卄六入京翌日就理又翌日決配井邑留別安孔明)>은 1658년 한양으로 잡혀 갈 때와 정읍으로 귀양이 결정되고 나서의 소회를 읽을 수 있고, 칠언절구의 <감회시(感懷詩)>는 효종 승하 시 유배지에서 지은 10수의 시로 우국충군(憂國忠君)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권3의 뒷부분은 부(賦), 송(頌), 전문(箋文), 서(序)이다. 권4는 소(疏), 잡저, 제문, 묘지명, 서(書)이고, 권5는 부록(附錄)이다. 권말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병학의 발, 기정진(奇正鎭)ㆍ고시홍(高時鴻)ㆍ8대손 준선(駿善)이 1874년에 지은 발(跋)과 간기(刊記)가 있고 이어 유묵(遺墨)이 실려 있다.
▶석문집(石門集) | 윤봉오(尹鳳五, 1688~176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석문(石門) 윤봉오(尹鳳五, 1688~1769)의 문집이다. 본집은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 목록의 말미에 1764년 자신의 화상에 쓴 자찬(自贊)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시는 대부분 지인들과의 수창시 및 공사간의 이유로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지은 제영시이다. 권4는 소(疏)로, 1748년 경상도 유생 권태우(權泰佑) 등 1500인이 연명한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묘 종향(從享)을 청하는 상소, 균역법 제정 후 필요한 조치를 건의한 상소 등이다. 권5는 소(疏), 서(書), 서(序), 기(記), 상량문이고 권6은 제발, 전(箋), 혼서, 명(銘), 잡저, 묘지이다. 그중에서 잡저는 영천 군수 재직 시 양로연(養老宴)에서 읽은 치사, 청주 송경창(宋經昌)의 처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그의 아들 현기(鉉器)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절행을 알리고 표창을 청하는 정문(呈文), 영천 군수 재직 시 제정한 동몽과 유생의 교육에 관한 규정이다. 권7은 묘갈명, 묘표, 행장이고 권8은 제문, 고문, 애사이다.
▶석병집(石屛集) | 이회보(李回寶, 1594~166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병(石屛) 이회보(李回寶, 1594~1669)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학원(學源)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1849년경 수집ㆍ편차한 후, 후손 평원(平源)과 방손 원표(平源) 등이 191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부와 시이다. 월과(月課)와 대작(代作)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3~4는 소(疏)이다. 그중에서 <기축봉사(己丑封事)>는 1649년 올린 것으로 시정의 폐단을 개진한 뒤 성학에 힘쓰고 백성을 돌보도록 권면하는 한편 김자점(金自點)의 죄상을 논하는 1만 5천 여 자의 상소이다. 권5는 병자남한일기(丙子南漢日記), 잡저, 서(序), 기(記), 설(說)이다. 특히 병자남한일기는 1636년 12월 11일부터 이듬해 2월 1일까지의 기록으로 어가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는데, 청군의 침입 소식이 조정에 알려지는 시기부터 화의가 성립된 이후의 일까지 상세히 다루고 있다. 권6은 전(箋), 계(啓), 잠(箴), 부록 등이고 권말에 1913년 후손 강호(康鎬)가 지은 지(識)가 있다.
▶석북집(石北集) | 신광수(申光洙, 1712~1775)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문집이다. 저자의 많은 작품이 산일된 것으로 보이나 시집의 구성이 <관서록(關西錄)>, <여강록(驪江錄)>, <탐라록(耽羅錄)>, 또는 <북산록(北山錄)>, <임장록(臨漳錄)>, <오중록(粤中錄)> 등으로 묶여 있는 점으로 보아 생전에 시록(詩錄)을 정리하여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아들 신우상(申禹相)과 신이상(申履相)에 의하여 수집, 편차되었고, 5세손 신관휴(申觀休)가 1906년에 16권 8책을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10은 시 1,100여 제와 <관서악부(關西樂府)>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서악부>는 1774년 친구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평양 감사로 부임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어준 율체(律體)의 악부이다. 서관(西關)의 비류(沸流), 패강(浿江) 등지를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것으로, 평양에 대한 형승(形勝), 속요(俗謠) 등 다양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권11~16은 문(文) 186편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은 서(書)와 제문류가 많은 편이다. 그밖에 서(序), 비음기(碑陰記), 전(傳), 여문(儷文), 잡저와 부록이 실려 있다.
▶석산유고(石山遺稿) | 이승보(李承輔, 1814~188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이굉(李?)
조선 시대 석산(石山) 이승보(李承輔, 1814~188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근수(根秀)가 유적과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김익용(金益容)에게 묘지문(墓誌文)을, 조영하(趙寧夏)에게는 시장을 받아, 이후 1990년에 현손 굉(鍠)이 전주이씨양녕대군파대종회(全州李氏讓寧大君派大宗會)의 협조를 받아 대전(大田)에서 위의 선사된 정고본(定稿本)을 가지고 영인 출판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연보, 부록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885년 김재현(金在顯)이 쓴 서문이 있으며 권1~6까지는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5는 주(奏), 계(啓), 서(序), 기(記), 명(銘), 발(跋), 지(誌), 표(表), 시장(諡狀), 서(書)이다. 권말에는 연보(年譜)와 부록(附錄)이 있다. 연보는 아들 근수가 지은 것으로 보이며, 1881년 ‘문헌(文憲)’으로 시호를 받은 기록까지 실려 있다. 부록은 아들 근수가 지은 가장(家狀), 조영하(趙寧夏)가 지은 시장(諡狀), 김익용(金益容)이 지은 지문(誌文), 홍언주(洪彦周), 심동만(沈東晩), 하겸락(河兼洛) 등이 지은 제문 9편, 장석용(張錫龍), 권재항(權在恒) 등이 지은 만사 5편이 있다.
▶석세유고(石世遺稿) | 김정집(金鼎集, 1808~185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석세(石世) 김정집(金鼎集, 1808~1859)의 문집이다. 문집의 간행을 주도한 인물은 저자의 손자 교헌(敎獻)으로, 장자 창희(昌煕)가 1차 교열하고 손자 교헌이 추가로 교정하여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서수붕(徐壽朋)이 1900년에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827년 이후의 작품들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랜 내직 생활 중에 지은 응제시와 서준보(徐俊輔), 김로(金鏴) 등과 함께 지은 응제 연구(聯句), 효명세자(孝明世子), 헌종(憲宗), 순원왕후(純元王后) 등 왕실 인물에 대한 만장(輓章) 등이 주를 이룬다. 권3은 교령(敎令), 제문(祭文), 진향문(進香文), 전문(箋文), 상량문, 묘표(墓表)이다. 제문은 군기(軍旗)를 새로 만들어 군정(軍政)의 확립을 기원하는 <기치신비제문(旗幟新備祭文)>, 저자가 늦은 나이에 연년생으로 얻은 두 아들 창희와 철희(喆煕)가 순조롭게 천연두를 앓은 것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천연두 귀신을 전별하는 <송두신문(送痘神文)>이 있다. 권미에 손자 교헌이 1899년에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석재고(碩齋稿) | 윤행임(尹行恁, 1762~1801) | 권책수 : 21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헌종 연간에 전사(轉寫)된 원집 20권과 1870년대 후반에 전사된 부록과 1870년대 중후반에 전사된 별고 21권을 합부한 것이다. 원집 권1~2에는 시 163제가 편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서감(書感)>은 척화파로 청나라에 잡혀가 순절한 윤집(尹集)의 후손으로서 원한을 갚고자 하는 기개가 드러나는 글이다. 이밖에 정조를 수행하여 화성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가 많고, 길재(吉再)의 사당 등을 방문하고 지은 작품들이 있다. 권5의 <이문강의(摛文講義)>는 정조가 문신들을 발탁하여 매달 글을 짓고 경전을 강독하였는데, 저자가 여기에 참여하여 토론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권6의 <증전추록(曾傳秋錄)>은 ≪대학장구≫ 가운데 의문점을 기록하여 책자로 만들어 올리고, 정조가 그에 대한 답교를 내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권9의 <해동외사(海東外史)>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관련된 인물과 지명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별고(別稿)는 <신호수필(薪湖隨筆)>로 1801년 5월 강진현 신지도로 유배되어 9월 사사되기 전까지 경전과 사서(史書)를 읽으면서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석주집(石洲集) | 권필(權韠, 1569~161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문인(門人) 심기원(沈器遠)과 오숙(吳䎘)이 수습하여 산정(刪定)을 하였으며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종합하여 정리하였고, 1632년 봄에 전주에서 판각을 완료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8권, 외집 1권, 별집 2권 합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8은 시(詩)이다. 4인의 벗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를 비롯하여 시대 상황을 풍자하거나 비판한 시가 많다. 권8은 잡체(雜體)로, 일반적인 정격시체(正格詩體)에서 벗어난 금언체(禽言體), 회문시(回文詩), 옥연환(玉連環), 건제체(建除體), 팔음가(八音歌), 수시(數詩), 층시(層詩), 연구(聯句) 등이 들어 있다. 이 중 층시는 송(松), 죽(竹), 매(梅), 국(菊), 연(蓮)을 글자 수를 한 글자씩 늘려가며 점층적인 구조로 엮은 시이다. 외집은 문(文)이다.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창맹설(蒼氓說)>, 종정도 놀이를 보고 지은 <종정도설(從政圖說)> 등이 들어 있다. 별집의 시 230여 수도 원집과 같이 시체에 따라 편차되어 있으며, 별집 권2의 문에는 서발, 제문, 서(書) 등 약간 편이 들어 있다.
▶석천시집(石川詩集) | 임억령(林億齡, 1496~156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제주 목사 소흡(蘇潝)이 1572년에 제주에서 목판으로 처음 간행하였다. 간행에 관한 사항은 서(序)ㆍ발(跋)이 없어 확인할 수 없고 다만 권미에 간기(刊記)가 붙어 있어 간역(刊役)을 주관한 자와 각수(刻手) 등의 성명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본 저본은 시집 7권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체별(詩體別)로 분권(分卷)되어 있으며 권1에 오언장편 69제, 권2에 오언장편 66제, 권3에 오언사운 146제, 권4에 오언절구 169제, 권7에 칠언장편 9제, 권6에 칠언사운 56제, 권7에 칠언절구 145제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고금(古今) 각체(各體)의 시를 평생에 걸쳐 지었는데, 생활 전반에 걸쳐 소재를 취했다. 응제시(應製詩)와 차화증답(次和贈答)한 작품들 외에는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감상한 것들과 한가로운 정취를 노래한 작품이 많다. 또 노불의 한가하고 고요한 세계를 추구하는 뜻을 드러낸 작품과 승려에게 준 시편(詩篇)도 적지 않다. 그의 시는 대체로 맑고 뜻이 분명하며, 경물(景物) 묘사에는 아치(雅致)를 추구하였고 심회(心懷)를 터놓을 때에는 진솔함을 숭상하였다.
▶석천유고(石泉遺稿) | 신작(申綽, 1760~182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석천(石泉) 신작(申綽, 1760~182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신명연(申命淵)이 중심이 되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편지 등을 수습하여 문집을 편차하였다. 본집은 현재 간본은 없고 사본≪석천유집(石泉遺集)≫과 ≪석천유고(石泉遺稿)≫ 2종이 있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권1에는 기(記), 소(疏), 제문, 만장, 행장, 묘지가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원비(原碑)>는 1807년에 <한예비문(漢隷碑文)>을 직접 쓰고 난 뒤에, 중국 역대 비갈(碑碣)의 기원과 비갈을 지은 작가들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를 적은 글이다. 권2에 실린 <노자지략서(老子旨略序)>는 노자의 경문을 뜻이 통하도록 새로 편차하고 여러 학설을 모아 간략하게 설명한 책인 ≪노자지략≫의 서문이고, <하곡유문(霞谷遺聞)>은 외증조부 정제두의 일화를 기록한 것이고, <일시서(逸詩序)>는 300편 외의 시 47단(段)을 경전자사(經傳子史)에서 채록한 ≪일시(逸詩)≫의 서문이다. 권3에는 훈고학에 대한 식견을 알 수 있는 저서인 ≪상서고주(尙書古注)≫, 유경(柳儆)의 모친 완산 이씨(完山李氏)가 지은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대한 서문 등이 실려 있다.
▶석탄집(石灘集) | 이존오(李存吾, 1341~137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석탄(石灘) 이존오(李存吾, 1341~137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모두 흩어져 전하지 않았다. 이에 10세손 이유경(李裕慶)이 널리 문헌을 조사하여 저자의 시문을 모아 ≪유고(遺藁)≫를 편차하였다. 또한 저자의 연보를 지어 붙이고, 여러 사람의 칭술(稱述) 중에서 긴요한 사실을 뽑아 부록을 엮어 1726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734년(영조10) 이민행(李行敏)이 고성 현감(固城縣監)으로 부임하여 보유(補遺) 1편을 증보한 추각후쇄본이다. 상권은 저자의 유고로서 11제(題) 12수의 시와 1편의 상소문이 실려 있다. 하권인 부록에는 저자의 전기(傳記)인 <이장사전(李長沙傳)>과 <여사제강(麗史提綱)>에서 뽑은 관계 기록 및 여러 사람이 칭술(稱述)한 시, 그리고 방목(榜目)ㆍ사액제문(賜額祭文)이 실려 있다. 부록보유(附錄補遺)에는 이이(李珥)가 지은 <현의사기(顯義祠記)>와 <의열사사액행이(義烈祠賜額行移)>, 조석주(趙錫周)가 지은 <고산사상량문(孤山祠上樑文)>이 실려 있다.
▶석호유고(石湖遺稿) | 윤문거(尹文擧, 1606~167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 1606~1672)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저작 순서대로 정리해 놓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아들 윤륜(尹掄)이 모아 저자의 조카 윤증(尹拯)에게 보내어 편차를 부탁하였다. 그 후 1816년~1834년 순조 연간에 1712년 즈음에 정리된 정고본을 바탕으로 이후 얻어진 유고를 엮어 만든 원집 6권, 부록 2권, 보유(補遺)를 합하여 4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1 앞부분은 시이다.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의 절구, 율시, 고시 50제(題)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차운시(次韻詩)가 많고, 만시(挽詩)도 다수 실려 있다. 권1 뒷부분~권2 앞부분은 소(疏)이다. 17편이 대부분 청죄(請罪), 사직(辭職), 걸귀(乞歸)하는 내용이다. 권2 뒷부분~권5는 서(書)이다. 본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6은 제문, 애사(哀辭), 묘표(墓表)이다. 권7~8은 부록이다. 저자는 1636년 병자호란 때 사간원 정언으로 척화의(斥和議)를 진계(陳啓)하였고, 그해 12월 청나라가 침입하자 아버지를 따라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한 인물이다.
▶선양정집(善養亭集) | 정희맹(丁希孟, 1536~159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선양정(善養亭) 정희맹(丁希孟, 1536~1596)의 문집이다. 저자는 시문 15권을 남겼다고 하는데, 병자호란 때 산실되고 남은 3권이 가장되었다. 본집은 8대손 정운로(丁雲老)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4년 송환기(宋煥箕)의 교정과 편차를 거친 후, 후손 영두(永斗)가 1905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에 1905년 송병선(宋秉璿)이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고, 권미에 1747년에 유최기(兪㝡基)가 지은 발(跋)이 있다. 권1은 부(賦), 오언절구, 육언절구, 칠언절구이다. 권2는 오언사율, 장단사율, 칠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서(書)이다. 장단사율 <용산정사팔경(龍山精舍八景)>은 버드나무와 국화 등이 어우러진 경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고, 권3은 서(序), 기(記), 발(跋), 찬(贊), 전(傳), 잡저이다. 권4는 부록으로 1797년 임육(任焴)이 지은 행장과 1803년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묘갈명, 제문, 만사, 서(書)와 신응시(辛應時) 등이 강항(姜沆)이 지은 <선양정서(善養亭序)> 등과 1807년 집의에 추증된 데 대한 관련 기사 및 축문과 연보가 있다.
▶선원유고(仙源遺稿) | 김상용(金尙容, 1561~163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火)를 겪는 동안 많이 산일(散佚)되어 남아 있는 것이 유고(遺稿) 2권뿐이었다. 1640년에 아들 김광환(金光煥)과 김광현(金光炫)이 이를 수집하여 상(上)ㆍ하(下) 2권으로 편차하고 보유(補遺)로 <기몽설(記夢說)>을 넣은 뒤 신익성(申翊聖)의 서(序)와 김상헌(金尙憲)의 신도비명, <제식유훈(祭式遺訓)>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시(詩) 가운데는 <몽곤아(夢坤兒)> 등 망아(亡兒) 곤(坤)을 그리며 지은 시가 다수이며, <원성우사춘첩자(原城寓舍春帖子)> 등 원주(原州)에 우거하면서 지은 시도 많다. 칠언절구 <차조생운(次趙生韻)> 이하 10여 수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검찰사(檢察使) 김찬(金瓚)의 막하에 있으면서 지은 시들이다. 또 <산해관봉귀인(山海關逢歸人)>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시 등 1598년 성절사(聖節使)로서 중국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와 송시(送詩)와 만시(挽詩) 등이 있다. 잡저에는 교서(敎書), 애사(哀辭), 명(銘), 제문(祭文), 묘명(墓銘), 서(序) 등이 편차되어 있다. 속고(續稿)는 1753년에 간행되었다.
▶설곡집(雪谷集) | 정포(鄭誧, 1309~134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설곡(雪谷) 정포(鄭誧, 1309~134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정추(鄭樞)가 모아 1361년경 전(前)ㆍ후집(後集) 2권으로 편집하고 이제현(李齊賢)ㆍ이색(李穡)의 서문(序文)을 받았다. 이것을 1376년 안동도호부사인 이방한(李邦翰)에게 부탁하여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8대손 정구(鄭逑)가 저자 외에 저자의 아들 정추, 손자 정총(鄭摠)의 문집과 조부 정해(鄭瑎)를 비롯하여 후손들의 시문을 합편(合編)하여 1607년경 ≪서원세고(西原世稿)≫로 간행하였는데,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이 중 ≪설곡집≫만을 저본으로 삼았다. 권1에는 시(詩) 61제(題)가, 권2에는 시 37제와 문(文)이 실려 있다. 시는 위주(蔚州)ㆍ복주(福州)에서 지은 작품과 만년에 중국에서 지은 작품이 다수 실려 있다. 문은 표(表) 2편, <예문수제(藝文修製)> 10편, 서(序) 1편이 실려 있다. 권미에 이방한이 지은 초간발(初刊跋)이 있다. 이색은 서문에서 “맑아도 몹시 외롭지 않고, 화려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사기(辭氣)가 우아하고 심원하여 저속한 글자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설봉유고(雪峯遺稿) | 강백년(姜栢年, 1603~1681)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 1603~1681)의 문집이다. 저자는 내외(內外) 관직을 거칠 때마다 임소(任所)에서 지은 작품들을 모아 시권(詩卷)을 만들어 두었던 듯하며, 이러한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 강선(姜銑), 강현(姜鋧) 등이 주관하여 1690년대에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30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1은 시(詩)이고 권22~29는 문(文)이며, 권30은 부록이다. 시는 역임한 외직(外職)에 따라 <한계록(閑溪錄)>, <환성록(歡城錄)>, <해서록(海西錄)>과 <오주록(吳州錄)>, <관동록(關東錄)> 등의 시록(詩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으로는 다양한 문체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저자의 벗 박덕일(朴德一)이 안자(顏子)의 유설(遺說)을 모아 엮은 ≪학안록(學顏錄)≫에 대한 발문,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를 분석한 <소요유설(逍遙遊說)>, 1649년 청풍 군수로 있을 때 도곡산인의 허와(虛窩)에 대해서 허자(虛字)의 뜻을 부연해 지은 <허와기(虛窩記)> 등이 실려 있다. 청백리로 알려진 저자의 맑은 성품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설월당집(雪月堂集) | 김부륜(金富倫, 1531~159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설월당(雪月堂) 김부윤(金富倫, 1531~15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3대손 김기업(金基業) 등이 문집 간행을 도모하고 10대손 김제면(金濟冕) 등이 집안에서 정리해 둔 정고본(定稿本)을 개정(改正)하여 6권 3책으로 1940년 안동에서 석인하였다. 권1~2에는 부로 <지사석일단(志士惜日短)>이 맨 앞에 실려 있고 그 뒤에 오언시와 칠언시가 실려 있다. 이 시들은 9세에 지었다는 <만춘즉사(晚春卽事)>를 시작으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퇴계(退溪)의 문하로 들어간 시기를 전후하여 지은 시 8수에는 퇴계의 시평이 실려 있다. 권3은 서(書)로 퇴계 선생에게 올린 편지와 답서가 많다. 권4는 제문과 잡저이다. 잡저로는 <퇴계선생언행차록(退溪先生言行箚錄)>과 <문답차록(問答箚錄)> 등 9편이 있다. 권5에는 ≪심경(心經)≫과 ≪대학(大學)≫의 <독서차기(讀書箚記)>가 실려 있는데, 어려운 곳에는 곳곳에 언해(諺解)와 구결(口訣)을 써서 해석해 놓았다. 권6은 부록이다. 퇴계의 문인이었던 저자의 문집 곳곳에 퇴계와 관련한 자료가 많이 실려 있다.
▶설정시집(雪汀詩集) | 조문수(曺文秀, 1590~164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설정(雪汀) 조문수(曺文秀, 1590~16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시(詩)를 수집ㆍ편차하여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8권 3책의 시집으로 각 권마다 목록이 있으며, 시체별 및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수에 이식(李植)과 임숙영(任叔英)의 서(序), 정전(鄭沺)의 발(跋), 신익성(申翊聖)의 동유록후(東游錄後)가 있다. 권1은 오언고시(五言古詩)이고 권2는 칠언고시(七言古詩)이다. 특히 이식이 칠언고시 중 으뜸으로 꼽은 <송애호(松崖狐)>, 여호제영(驪湖諸詠) 중 초기작으로 임숙영, 이식의 차운을 부기한 <강호행기소암……(江湖行寄疎菴……)>과 외형 김반(金槃)을 애도한 만사 등이 있다. 권3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이고, 권4~5는 칠언절구(五言絶句) 상ㆍ하이다. 권6은 오언율시(五言律詩)이고, 권7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권8은 오언배율(五言排律)과 칠언배율(七言排律)로 신익성의 시에 차운하여 금강산의 선경(仙境)을 노래한 <유풍악이십운……(遊楓岳二十韻……)>, 이안눌(李安訥), 나만갑(羅萬甲) 등을 애도한 만(挽), 월과로 지은 <도문전이소십운(都門餞二疏十韻)> 등이 있다.
▶설정집(雪汀集) | 이흘(李忔, 1568~163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설정(雪汀) 이흘(李忔, 1568~1630)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이환(李鍰)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20년 청주(淸州) 신항서원(莘巷書院)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수에 송치규(宋穉圭)가 1820년에 지은 서(序)가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부(賦) 1편 외에 다양한 시체의 시인데 대부분 금강산을 유람할 때와 진하시로 사신갈 때에 지은 것이 많으며 춘첩자(宋穉圭)와 월과(月課)로 지은 시 및 김상헌(金尙憲), 정운호(鄭雲湖), 성여학(成汝學), 윤안국(尹安國) 등 지인들과 주고받은 시, 만시(挽詩)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봉사(封事), 서(書), 행장(行狀), 서(序), 잡저(雜著)이다. 특히 봉사의 <무신진폐소(戊申陳弊疏)>는 백천 군수로 있을 때 공정하게 부세(貢法)를 내도록 공법(貢法) 개정을 청한 것이다. 권5는 전(箋)과 제문이며 권6은 부록으로 칙서, 조천행적, 유첩, 제문, 비망기와 행장 등이다. 권말에 6대손 이환(李鍰), 이석(李錫), 이황(李鎤)이 1820년에 지은 발(跋)이 있으며, 끝 부분에 간기(刊記)가 있다.
▶설초유고(雪蕉遺稿) | 최승태(崔承太, 1632~168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설초(雪蕉) 최승태(崔承太, 1632~168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세연(世衍)이 홍세태(洪世泰)와 함께 1705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내용은 모두 시이다. 권수에 홍세태가 1705년에 지은 서가 실려 있고, 권수제 다음 행에 “천녕최승태자소저(川寧崔承太子紹著)”라고 기재하여 저자를 밝혀주고 있다. 시 157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홍세태의 서에 따르면 저자는 처음에 당나라 이백(李白)을 배우고 만년에는 명대(明代) 복고파 백설루(白雪樓) 이반룡(李攀龍) 등 후칠자(後七子)를 좋아하여 가행과 장편에 뛰어났다고 한다. 작품에는 아들 세연이 태어나 자라는 것을 지켜 본 기쁨을 읊고 부귀와 빈천은 운명에 맡기고 가풍을 지킬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저자의 평생과 가치관이 잘 요약되어 있는 <공산여사서회기세연(公山旅舍書懷寄世衍)>, 세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방외의 자취를 생각하는 쇠약한 자신을 슬퍼하는 내용의 <제문수동석상(題文殊洞石上)> 외에 홍세태(洪世泰), 임준원(林俊元) 등과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설해유고(雪海遺稿) | 이만영(李晩榮, 1604~167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설해(雪海) 이만영(李晩榮, 1604~1672)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한 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2권에 권별 목차가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이다. 시에는 이지익(李之翼), 홍주원(洪柱元) 등의 시에 차운한 시, 홍처량(洪處亮), 정승명(鄭承明) 등을 송별한 시, 김육(金堉), 김좌명(金佐明) 등을 애도한 만시, 죽서루(竹西樓) 등의 경승을 완상한 시, 사행(使行)ㆍ유배(流配)와 외직 재임 중에 소회를 읊은 시 등이 있다. 권2는 칠언절구외에 여(儷), 조(詔), 잠(箴), 명(銘), 송(頌) 등과 부록(附錄)이다. 특히 <화상찬(畫像贊)>은 명나라에서 그려온 화상을 18년 만에 다시 펴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였고, <복기견천지지심(復其見天地之心)>은 복괘(復卦)에 ‘생생(生生)’하는 천지의 마음이 들어 있음을 논하였다. 권3은 조천록(朝天錄)이다. 1636년 병자호란 직전에 성절천추사(聖節千秋使) 김육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복명하기까지 1년간의 일기체 견문록이며, 권미에 예부정문(禮部呈文)이 있다.
▶성근보집(成謹甫集) | 성삼문(成三問, 1418~145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만력 연간에 윤유후(尹裕後)가 ≪성선생유고(成先生遺稿)≫ 사본을 ≪동문선(東文選)≫ 등과 비교하여 중첩된 것은 빼고 7~8편을 보태어 시부(詩賦) 89수, 문(文) 16편으로 편집하였다고 한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영조 연간에 간행된 편간자(編刊者) ㆍ 4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1의 시는 총 45제(題) 107수(首)인데, 저자가 세종 24년(1442)에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할 당시 박팽년(朴彭年) 등과 수창(酬唱)한 장편 연구(聯句) 3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비해당(匪懈堂)>을 읊은 오절(五絶) 48수 등 저자의 주요 행력과 관계가 깊은 작품이 많다. 권2는 문(文)이다. 당시 화어(華語)의 입문서로 알려진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과 안평대군이 찬(撰)한 ≪팔가시선(八家詩選)≫에 대한 서문 등이다. 그 외에 송(頌) 2편, <팔준도명(八駿圖銘)>과 신도비명, <집현전진팔준도전(集賢殿進八駿圖箋)>과 대책(對策)이 있다. 권3~4는 부록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저자의 시문과 저자에 관한 유사(遺事)가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성담집(性潭集) | 송환기(宋煥箕, 1728~1807)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1728~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1891년 이후에 목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30권, 부록 2권 합 16책이다. 권1~2에는 12제의 시가 있는데, 청량산(淸凉山)과 도산(陶山)을 둘러보고 지은 것,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는 작품,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권3~4는 소(疏), 서계(書啓), 헌의(獻議)이다. 상소의 내용은 대부분 사직하는 것, 소명(召命)을 사양하는 것 등이다. 권5~10은 편지로 ≪우암집(尤庵集)≫의 편차를 위한 의논, 그 외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중 변례(變禮)에 대한 논의가 많다. 권11~12는 잡저이다. 산수를 유람하고 쓴 기록이 많으며,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지신장(持身章) 내용을 도표화한 <지신요령도(持身要領圖)> 등이 실려 있다. 그 외에 의사(義士), 효자, 열녀와 단종(端宗)의 충신인 송간(宋侃), 고려말 홍건적을 물리쳤던 안우(安祐)에 대한 입전(立傳)과 서(序), 기(記), 발(跋), 명찬(銘贊), 애사, 비문(碑文), 행장 등이 실려 있다. 권31~32는 부록으로 순조(純祖) 때 내린 사제문(賜祭文)과 연보(年譜)이다.
▶성당집(性堂集) | 정혁신(鄭赫臣, 1719~179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당(性堂) 정혁신(鄭赫臣, 1719~1793)의 문집이다. 본집은 외손 김박연(金博淵)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을 손자 호건(浩乾)ㆍ호곤(浩坤)이 1845년 정리자(整理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1845년 홍직필(洪直弼)이 쓴 서문(序文)이 실려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대체로 장년 이후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이는 그 이전의 작품은 유고가 산일되어 유실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권1은 시(詩)이다. <감음(感吟)>은 저자의 부인과 장남이 모두 죽은 뒤에 지은 시인데 소서(小序)를 보면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의리 때문에 과거를 보지 않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생긴 일이라 자책하는 애통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권5는 부록(附錄)이다. <호서암행어사심환지서계별단(湖西暗行御史沈煥之書啓別單)>은 1787년 심환지(沈煥之)가 호서 암행어사로 나왔다가 저자를 방문하고 조정에 경학지사(經學之士)로 천거하며 올린 별단으로 그에 대한 전교(傳敎)가 이어서 실려 있고, 이를 처리한 이조(吏曹)의 초기(草記)에 대한 비지(批旨)가 실려 있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 허균(許筠, 1569~1618)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성소(惺所) 허균(許筠, 1569~1618)의 문집이다. 저자는 시(詩), 부(賦), 문(文), 설(說)의 4부로 나누어 64권으로 편차하고 이름을 ≪부부고(覆瓿藁)≫라고 하였다. 현존하는 사본(寫本)들은 사위 이사성(李士星)의 집안에서 보관해오던 정고본을 바탕으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26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정유조천록(丁酉朝天錄)>, <무술서행록(戊戌西行錄)>처럼 저작 시기별로 나누어 편명을 붙였다. 서는 <석주소고서(石洲小稿序)>와 저자가 뽑아 엮은 ≪고시선(古詩選)≫, ≪당시선(唐詩選)≫ 등에 대한 서문이 실려 있다. 기 중 <사우재기(四友齋記)>는 서재를 ‘사우재’라고 이름하고 도연명(陶淵明), 이태백(李太白) 등을 벗 삼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읊은 내용이다. 전으로는 <엄처사전(嚴處士傳)>,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등이 실려 있다. 논으로는 <학론(學論)>, <유재론(遺才論)>, <호민론(豪民論)> 등이 실려 있고, 그밖에 고문(古文)의 문체를 논한 <문설(文說)>, 시도(詩道)를 논한 <시변(詩辨)> 및 <몽해(夢解)>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성암유고(省菴遺稿) | 김효원(金孝元, 1542~159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 1542~1590)의 문집으로 괘인선사본(罫印繕寫本)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김극련(金克鍊) 등이 1614년에서 1618년 사이에 편찬 선사(繕寫)한 후, 꾸준히 간행하려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계획대로 되지 못한 듯하다. 본 문집은 2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내용은 대부분 일상의 일들을 읊은 것이며 승려에게 주거나 화답한 시도 여러 편 있다. 권2에 실린 부(賦)에는 <누항금부(陋巷琴賦)>, <사이관덕부(射以觀德賦)>, 그리고 절용애민(節用愛民)을 노래한 <일현백전부(日懸百錢賦)>가 있다. <유중대사시권서(遊中臺寺詩卷序)>는 두타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권(詩卷)의 서문(序文)이며, <영유서재기(永柔書齋記)>는 부친의 임소에서 지은 기문(記文)이다. 이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부록의 <언행록(言行錄)>과 <경행사기(景行祠記)>는 이준(李埈)이 지은 ≪일선지(一善志)≫에서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동인(東人)으로서 당쟁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10여 년간을 한직(閒職)에 머물렀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성암집(誠菴集) | 박문오(朴文五, 1835~189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암(誠菴) 박문오(朴文五, 1835~1899)의 문집이다. 원집은 장남 동흠(東欽)이 수습하고 문인 이윤실(李允實)이 교정을 담당하여 김학진(金鶴鎭)의 서문과 박은식(朴殷植), 전병훈(全秉薰)의 발문을 덧붙여 오도빈(吳道斌)과 함께 서울에서 전사자(全史字)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별집은 초간본에 누락된 시문과 부록이 별집으로 존재하는데도 별본(別本)으로 통행된 점으로 미루어 초간본 이후에 간행된 것은 분명하나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904년에 지은 저자의 행장이 실려 있고 초간본과 동일한 활자로 간행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초간본 간행 직후에 인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원집 4권 4책과 별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에 김학진이 쓴 서문과 이윤실의 본전(本傳)이 실려 있고, 권별로 권목이 있다. 권1은 시(詩)다. 대부분 중년 이후에 해당하는 고종 연간에 지은 것으로, 초기작은 일실된 것으로 보인다. 별집은 권두에 권별 목록이 있다. 상(上)은 사(詞), 서(書), 장(狀), 서(序), 기, 발, 묘지명이다. 하(下)는 잡저, 부록이다. 아들 동흠이 1904년에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성옹유고(醒翁遺稿) | 김덕함(金德諴, 1562~163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옹(醒翁) 김덕함(金德諴, 1562~163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자호란 때에 대부분 산일되었는데, 손자 김우석(金禹錫)이 시문을 수집 편차하였고, 우석의 아들 김연(金演)이 안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김연이 자신이 찬차한 연보와 새로 수집한 습유, 연계, 부록 등을 추가하여 4권 2책으로 재편한 다음, 1706년에 대구(大丘)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 있다. 본 문집은 중간본으로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703년에 남구만(南九萬)과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서문과 총목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여문인데,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잡저, 소차, 계사인데, 그중에서 <사공조참의소(辭工曹參議疏)>는 1624년에 올린 상소로, 이괄의 난 때 토벌에 소극적인 이안눌을 탄핵한 내용 등이 실려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안눌이 경성(鏡城)에 유배된 전말 등이 부기되어 있다. 권3~4는 연중주사(筵中奏事)와 부록이며, 부록에는 연보, 행장, 시장 등과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릴 때의 수의가 실려 있고 권미에는 1706년에 지은 김연의 발문이 실려 있다.
▶성재유고(醒齋遺稿) | 신익상(申翼相, 1634~169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재(醒齋) 신익상(申翼相, 1634~16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전해 오던 가장초고가 1834년경에야 정리되었으나 이후 간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책1~5는 시(詩)이다. 형 신필상(申必相)과 동생 신우상(申遇相) 등과 나눈 시, 기행시, 월과(月課)로 지은 시, 우거 시절 등에 지은 시 등이 있다. 책5의 <북관록(北關錄)>은 1674년 북도 병마평사 시절의 시작(詩作)을 모은 것이다. 책6~9에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서(序)로는 <감구서(感舊序)>와 송서(送序) 등이 있고, 기(記)로는 자신의 <육오당(六吾堂)> 등에 대한 기문이 있으며, 록(錄)으로는 1654년에 영천, 안동 등을 유람하고 지은 <남정록(南遊錄)>이 있다. 책10에는 유상운(柳尙運)이 지은 행장, <현석문인박상순소록(玄石門人朴尙淳所錄)>, <부잡록(附雜錄)>과 서(書)가 실려 있다. 편지는 박세채, 남구만(南九萬), 최석정(崔錫鼎) 등 주로 소론계(少論系) 인물들에게 보내고 답한 것들이 실려 있는데, 내용은 정치와 정책 현안을 의논하는 것과 안부 편지가 대부분이다.
▶성재집(性齋集) | 허전(許傳, 1797~1886) | 권책수 : 23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재(性齋) 허전(許傳, 1797~1886)의 문집이다. 본집은 1891년 산청(山淸)의 법물리(法勿里) 이택당(麗澤堂)에서 33권 17책으로 판각하여 간행하였다. 속편과 부록은 1903년에 12권 6책의 목판으로 함께 간행되었다. 시(詩)는 거울에 빗대어 사람의 선악을 말한 조경(照鏡)을 시작으로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이중에서 <백운가(白雲歌)>는 친구인 조석룡(趙錫龍)이 궁벽한 백운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을 칭송한 내용이고, <책기(責己)>는 제대로 도를 전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자책하는 내용이다. 서(書)에는 주로 안부를 묻는 내용과 경서에 대한 질의에 답한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잡저 중에서 <천지변(天地辨)>은 천체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지구와 우주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고, <곤륜하원변(崑崙河源辨)>은 곤륜산과 황하의 근원에 대한 고증이다. 서(序)로는 ≪서경≫과 ≪대학장구≫의 종지(宗旨) 중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엮은 종요록(宗堯錄)과 선왕의 도는 균전(均田)과 양민(養民)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예악(禮樂)은 왕도(王道)의 완성임을 말한 수전록(受廛錄)에 대한 서가 있다.
▶성재집(惺齋集) | 금난수(琴蘭秀, 1530~16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금시술(琴詩述)과 금서술(琴書述) 형제가 수집 정리한 시문(詩文)을 바탕으로 10대손 금정기(琴鼎基)와 금대기(琴岱基)가 저자의 시문을 다시 수집(蒐集)하고, 연보(年譜) 및 부록(附錄) 등을 증보 합편하여 1909년에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卷頭)에는 1908년에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詩體)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서(書)와 잡저(雜著)로, 서는 이황과 조목, 김성일, 김부륜(金富倫), 남치리(南致利)에게 보낸 것이고, 잡저는 지(識), 변(辨), 의(議) 등이다. 권3은 기(記), 명(銘), 제문(祭文), 연보(年譜)이고, 권4는 부록으로 유근(柳根)이 지은 묘갈명, 8대손 금서술이 지은 유사와 봉안문, 상량문, 고유문 각 1편과 만사(挽詞), <고산정제영(孤山亭題詠)>, <일동산수기(日洞山水記)>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미(卷尾)에 1909년에 이만도(李晩燾)와 10대손 금정기가 지은 발(跋)이 있다.
▶성재집(成齋集) | 조병현(趙秉鉉, 1791~1849)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재(成齋) 조병현(趙秉鉉, 1791~1849)의 문집이다. 본집은 사후 몇 년 내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괘인선사본이다. 본집은 원집 15권, 동생 및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인 금강관서(金剛觀敍), 연보, 합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이다. 자신의 소회를 읊은 것, 금강산ㆍ낙산사 등 명승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 1837년 효현왕후책왕비주청겸사은부사(孝顯王后冊王妃奏請兼謝恩副使)로 중국에 가서 이제묘(夷帝廟), 옥하관(玉河館), 백운관(白雲觀) 등에서 지은 것, 신에게 제사 올리는 노래라는 뜻의 새신곡(賽神曲) 30수, 행상(行商)의 일을 읊은 고객악(估客樂) 30수, 어부사(漁父詞) 22수 등이 있다. 권9에는 소차(疏箚)가 실려 있는데, 사직소, 변무소(辨誣疏), 호서(湖西)의 결전(結錢)과 대동미의 정퇴(停退)를 청하는 상소, 자핵소(自劾疏) 등이다. 권13의 서(書)는 차남 조봉하(趙鳳夏)에게 심성을 수양할 것과 학문에 힘쓸 것을 권하는 편지가 대부분이며, 조카 조용하(趙龍夏)에게 보낸 편지는 적소에서 가족들에게 영결을 고하고 운구(運柩), 상장(喪葬) 등을 부탁하는 유서 형식의 글이다.
▶성재집(省齋集) | 유중교(柳重敎, 1832~1893) | 권책수 : 26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1894년 겨울에 유인석(柳麟錫)이 유중악(柳重岳)과 함께 유고를 교수하고 편정하여 정고본을 만들었다. 1897년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문집 간행이 재논의 되어 문인 오인영(吳寅泳) 등이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46권, 별집 4권, 부록 합2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1은 사(詞), 금조(琴操), 시(詩)이다. 사와 금조는 저자가 연주하던 거문고인 자양금(紫陽琴)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시는 도학적(道學的)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권2의 <제사헌부지평후진정소(題司憲府持平後陳情疏)>에서는 양이(洋夷)를 물리칠 것과 중화와 도학 전통을 계승할 것을 건의한 내용이다. 권3~22는 왕복잡고(往復雜考)로, 서(書) 567편이 실려 있다. 권23~36은 강설잡고(講說雜稿)로 경서와 성리학에 대해 고찰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권37~46은 가하산필(柯下散筆)로, 잡저에 해당하는 글이다. 별집에 실린 <현가궤범(絃歌軌範)>은 교인(敎人)의 도구로 현가(絃歌)를 중시하여 율려(律呂)와 금률(琴律)에 대한 설들을 서술하고 고금의 악장(樂章)을 덧붙인 것이다.
▶성재집(誠齋集) | 남한호(南漢皜, 1760~182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성재(誠齋) 남한호(南漢皜, 1760~18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식정(植正)에 의해 수집 편차(編次)되어 조승수(趙承洙)에게 행장(行狀)을, 유치명(柳致明)에게 묘갈명(墓碣銘)을 받았으나 서발문(序跋文) 등 관련 기록이 없어 정확한 간행 경위를 알 수 없고, 다만 문인(門人) 황원선(黃源善)의 제문(祭文)에 정로(定老)의 산정(刪定)을 거쳤으나 아직 간행을 하지 못했다고 한 걸로 보아 1863년 이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卷首)에는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대부분이 경학(經學)에 관한 서(書)로 시문(詩文)은 별로 없다. 권8은 잡저(雜著)이다. 주로 성리학(性理學) 관련 논의에 대한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대학장구≫와 ≪중용장구≫에 관한 것이 많다. <휼고불배설(恤孤不倍說)>은 ≪대학장구≫ 전 10장의 ‘불배(不倍)’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이경익(李景翼)과 밀암(密菴) 이재(李栽)와는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불배(不倍)’를 “백성들이 그 고(孤)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았으며 이에 대해서는 동암(東巖) 유장원(柳長源) 등도 동의하였다고 하였다.
▶성호전집(星湖全集) | 이익(李瀷, 1681~1763) | 권책수 : 36책 | 포갑수 : 7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문집이다. 조카 이병휴(李秉休)와 문인 안정복이 1772년부터 저자의 문집을 분류하여 선사하는 일에 착수하여 1774년에 70권 40책의 분량으로 정리하였다. 본집은 1922년 밀양 모렴당(慕濂堂)에서 72권 36책으로 중간한 목판본이다. 권1~6은 부(賦) 4수와 시(詩) 608제 1150여 수이다. 저자가 광주(廣州) 성호(星湖)에 살면서 지은 연작시가 많으며, 만시(挽詩)도 128편이나 된다. 권7~8은 <해동악부(海東樂府)>로 모두 119수이다. 신라 때부터 전해온 <도솔가(兜率歌)>, <회소곡(會蘇曲)> 등을 비롯하여 문익점(文益漸)의 고사를 읊은 <목면가(木綿歌)>, 유관(柳寬)의 청렴함을 읊은 <수산행(手傘行)>, 광해군 때 권필(權韠)의 필화(筆禍) 사건을 읊은 <궁중유(宮中柳)>까지 악부를 집대성하여 그 계통을 밝혔다. 권38~48은 잡저로 의(疑), 설(說), 변(辨), 의(義), 논(論)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설(禮說)과 경설(經說), 사론(史論) 등 다양한 내용이 있다. 권54~56은 제발(題跋)로, 서학(西學)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고집(嘯皐集) | 박승임(朴承任, 1517~1586)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문도(門徒) 김륵(金玏), 오운(吳澐) 등이 1600년 5월 이산서원에서 회합을 갖고, 6월에 초고를 산절(刪節)ㆍ교정(校正)하였다고 한다. 원집 4권 2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속집은 1782년 저자의 6대손 박희천(朴希天)이 1782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권1은 4편의 부(賦)와 1541년 풍기 군수(豐基郡守)로 부임하는 주세붕(周世鵬)을 전송하는 시로 시작하여 권2에는 1569년 사행(使行) 때의 시작(詩作)인 <관광록(觀光錄)>이 있다. 권3부터 수록된 산문은 <소수서원화상개수지(紹修書院畫像改修識)>, <향교가요(鄕校歌謠)> 등 서원(書院)과 관련된 글이 많다. 속집 역시 <무극부(無極賦)>로 시작하여 시가 권1~2에 실려 있다. 원집에는 공거문이 수록되지 않은 반면, 속집에는 상소, 차자(箚子), 계사(啓辭), 전(箋)이 수록되어 있다. 퇴계의 문인으로 1557년 윤원형(尹元衡)의 세도가 더욱 심해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심학(心學)ㆍ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저자의 학문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소곡유고(素谷遺稿) | 윤광소(尹光紹, 1708~1786)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소곡(素谷) 윤광소(尹光紹, 1708~178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100년이 훨씬 지난 1915년에야 22권 11책의 목활자본으로 완성되었다. 권1은 소(疏)이고, 권2는 차(箚), 서(書)이다. 서(書)의 내용으로는 주자의 <숭존성이억문학(崇尊性而抑問學)>이 타당함을 논한 것, 윤증(尹拯)의 ≪의례문답(疑禮問答)≫, 학문을 권면한 것 등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자신이 만든 자경도(自警圖)와 도설서(圖說序) 및 후지,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수윤(修潤)하고 지은 서(序) 등이 실려 있다. 권4에 실린 시(詩) 중에는 을해옥사 이후 은거할 때 지은 <자송(自訟)>, 퇴계(退溪), 김상철(金尙喆) 등에 차운한 것, 옥천 군수 시절에 교지를 받들어 지은 <민은사팔장(民隱詞八章)>, 낭주(朗州) 유배 시절에 지은 것 등이 있다. 권13~14에는 <처감록(處坎錄)>, <복주록(福州錄)> 등이 실려 있다. 권15~16에는 <독서수록(讀書隨錄)>, <심경차록(心經箚錄)>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자찬 연보(年譜) <고주록(孤舟錄)>, 권3에 실린 자경도(自警圖)를 부연하여 설명한 <자경도부설(自警圖附說)> 등의 작품이 있다.
▶소눌집(小訥集) | 노상직(盧相稷, 1855~1931) | 권책수 : 25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1855~193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을 박해철(朴海徹), 손기조(孫基祚) 등 9명이 연명하여 정리 작업을 시작하고, 다시 몇 차례 원고를 바꿔 가며 정리하여 23책 가량의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었으나 총독부의 검열 도중에 일부 원고가 누락되어 최종적으로 48권 24책과 목록 1책 도합 25책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본집은 목록 3권, 원집 48권 합 25책으로 되어 있다. 목록은 상ㆍ중ㆍ하로 되어 있다. 권1~4는 시(詩)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3의 <신해기행(辛亥記行)>은 한일합방 후 먼저 만주로 이거한 형 상익의 뒤를 따라 1911년 만주 안동(安東)으로 가면서 읊은 시이다. 향리인 여산(蘆山)에서 출발하여 만주 안동현에 이르러 흥융가(興隆街)에 가옥을 임대한 내용까지의 여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권19~24는 잡저이다. 권23은 <심의고증(深衣考證)>이다. 심의 제도에 관한 중국 학자의 학설과 함께 퇴계 이황 등 조선 학자의 설까지 고증하였다. 권24는 단군조선 이래 고려까지의 역대 강역(疆域)을 고증한 <역대국계고(歷代國界考)>이다. 권말에 판권지가 있다.
▶소릉집(少陵集) | 이상의(李尙毅, 1560~162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소릉(少陵) 이상의(李尙毅, 1560~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젊었을 때 지었던 사고(私稿)는 불태워 버려 만년에 지은 약간 편이 가장(家藏)되어 있었는데, 장손 원진(元鎭)이 1665년 편차(編次)한 황려세고(黃驪世稿)에 포함된 시(詩)를 바탕으로 현손 정휴(井休)가 수집(蒐集)한 저자의 시문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현손 안동 부사(安東府使) 진휴(震休)가 편차(編次)하여 1708년 안동(安東)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연보(年譜), 원집(原集)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08년에 이서우(李瑞雨)가 지은 서문과 연보가 있다. 권1~2는 시(詩)가 대체로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그중에서 권2의 상당부분은 <신해조천록(辛亥朝天錄)>에 속하는데, 이것은 저자가 1611년에 동궁고명면복주청사(東宮誥命冕服奏請使)가 되어 북경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은 것이다. 권3은 소(疏), 차(箚), 간독(簡牘), 잡저(雜著)이고, 권4는 부록으로 시, 만사(挽詞), 제문(祭文), 유사(遺事), 기사(記事), 화상찬(畫像讚), 가장(家狀)이며 권말에 1708년에 현손 이진휴가 지은 발문이 있다.
▶소미산방장(少眉山房藏) | 이삼환(李森煥, 1729~181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미(少眉) 이삼환(李森煥, 1729~1813)의 문집이다. 본집은 한치응(韓致應)이 간행을 위해 보관 중이던 저자의 유고 8책이 가화(家火)로 소실된 후, 저자의 손자 시홍(是鉷)이 시문을 다시 수집하고 3책으로 편차하여 1852년 서사한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원집 6권,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손자 시홍이 1852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5는 서(序), 기(記), 문(文), 변(辨), 사(辭), 논(論), 명(銘)이다. 변 가운데 <양학변(洋學辨)> 상ㆍ하편은 1786년 3월에 천주학을 비판하여 개유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상편에서는 양학은 불교에서 나와 유가의 설을 끌어들인 이단이라 하고 양학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석하였으며, 하편에서는 주로 교리의 허황됨을 비판하고 박해를 예견하며 그 법을 버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권유하였다. 부록은 정범조(丁範祖)의 증서(贈序), 이규환(李圭煥)의 수서(壽序), 종제 가환과 이기양(李基讓)의 화상찬(畫像贊), 정수대의 송계도찬(松溪圖贊), 이유수의 사림장통문(士林葬通文), 생질 박효긍(朴孝兢)과 사위 유명환(兪命煥)의 제문, 손자 시홍의 행장이다.
▶소산집(小山集) | 이광정(李光靖, 1714~1789)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 1714~17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遺稿)는 1789년에 저자가 졸한 뒤 아들 이우(李㙖)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교정해 놓았으나 그가 졸할 때까지 간행되지 못하였으며, 1810년 이후 1834년 이전인 순조(純祖) 연간에 이병원(李秉遠) 등의 종손이 중심이 되어 목판으로 13권 7책을 간행하였다. 권1은 시(詩)이다. 10세에 백형(伯兄)과 갈라산(葛蘿山)에 놀러가 지은 <갈라산>을 시작으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외조부의 시에 차운한 시, 삼각산ㆍ금오산 등에 놀러가서 읊은 시, 만사(輓詞) 등이 있다. 권2~7은 장(狀), 서(書), 잡저이다. 편지의 내용은 문집의 간행과 교정 등에 대해 논한 것, 성의설(誠意說)ㆍ소목설(昭穆說), 인체(仁體) 등을 논한 것, 주서(朱書)의 의문 나는 곳에 대해 논한 것 등 학문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 잡저로는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이치와 형세상 서로 병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 <천리인욕동행이정변(天理人欲同行異情辨)>, 심술(心術)을 무너뜨리는 과거(科擧)의 폐단을 시정해야 한다고 말한 <과거설(科擧說)> 등이 있다.
▶소송유고(小松遺稿) | 이지용(李志容, 1825~189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소송(小松) 이지용(李志容, 1825~1891)의 문집이다. 초간은 저자 사후에 아들 교문(敎文)이 상중(喪中)임에도 가장되어 있던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기우만(奇宇萬)과 상의하여 간행하기로 한 뒤 시문을 7권으로 편차하고, 교문이 지은 가장(家狀)을 바탕으로 기우만의 행장을 붙이고, 기양연(奇陽衍)의 서문을 받아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이후 교문이 초간 당시 빠뜨린 왕복 서간문 약간 편을 수습하여 원집에 넣고 화수시(花樹詩) 및 유사(遺事), 묘지명, 묘갈명을 부록 2편으로 첨부하여 재편한 것을 조성가(趙性家)의 편마(編摩)를 거쳐 기우만의 교감을 받아 인역(印役)을 시작하여 10월에 완성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기양연이 1893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 앞에 권별로 목록이 있는데 권5와 6은 하나로 묶어 놓았다. 권1~4는 시(詩)이다. 처지나 사물의 감흥에 따라 지었거나 벗들과 수창한 시가 주류를 이룬다. 권6은 임술의책(壬戌擬策)이다. 권미에는 교문이 1893년 초간 때 지은 지(識)와 1898년 중간 때 지은 지, 고의상(高儀相)이 1898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소암집(疎菴集) | 임숙영(任叔英, 1576~162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소암(疎菴)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저자가 몰(沒)한 뒤에 문인 권임(權恁)이 유초(遺草)를 수습하여 이식(李植)에게 편정(編定)을 부탁하였고, 이를 1635년에 충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00년대에 목판으로 간행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8권, 습유, 부록으로 되어 있다. 시 중 <술회기정강화이동악사군(述懷寄呈江華李東岳使君)>은 716운(韻)의 장편 배율로서 우리나라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는 역사에 대한 저자의 포폄이 담겨 있다. <곡내(哭內)>는 궁핍하게 살다 저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곡하는 내용이다. 기(記) 중 <해갑와기(蟹甲窩記)>는 1621년에 친구 이명준(李命俊)의 정사(精舍)인 해갑와(蟹甲窩)에 대해 쓴 기문(記文)으로 저자의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인생관이 드러나 있다. 제(制)로는 <봉죽부인제(封竹夫人制)>가 있는데, 죽부인(竹夫人)을 의인화하여 여름 동안의 공로에 대해 벼슬을 내리고 쉬게 하면서 내년 여름에 다시 부를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권7에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소암집(素巖集) | 김진동(金鎭東, 1727~180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소암(素巖) 김진동(金鎭東, 1727~18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은 아들 희분(煕奮)과 희질(煕質)이 정리하고, 유문은 저자의 현손 진영(震永)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습 정리하였다. 본집 내에 서, 발 등이 없고 간행 연도에 관련한 구체적 언급도 없어 간행시기를 확정할 수 없지만, 1880년에 쓴 이돈우(李敦禹)의 행장과 1882년 권연하(權璉夏)가 작성한 묘지명으로 추측컨대 1882년~1909년 사이에 목판으로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서는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권3은 서(序), 기(記), 발지(跋識), 송(頌), 상량문(上樑文), 잡저(雜著)이다. 송은 경술생(庚戌生)인 공자(孔子)와 주자(朱子)를 찬미하며 원자(元子)의 탄생을 송축한 <경술생성인송(庚戌生聖人頌)>이다. 권6은 부록이다. 조술도, 김약련 등의 만사 8편, 조술도, 김종발(金宗發), 남한조(南漢朝), 유범휴, 김희주(金煕周)의 제문 11편, 이돈우의 행장, 권연하의 묘갈명이 실려 있다.
▶소암집(所菴集) | 이병원(李秉遠, 1774~1840)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소암(所菴) 이병원(李秉遠, 1774~184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집(遺集)은 사손 문직(文稷)이 1870년에 편집(編輯)하고 저자의 편서인 ≪결송장보(決訟場補)≫와 함께 정본(定本) 수십 권을 손수 선사(繕寫)해 두었다고 한다. 이후에 1904년 증손 찬도(贊燾) 등이 다시 편찬(編纂) 사업을 추진(推進)하여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게 되었다. 본집(本集)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904년에 쓴 김도화(金道和)의 서(序),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전체적으로 영남(嶺南) 일대의 학문적 사승과 교류를 가졌던 인물에 대한 만사(挽詞)와 교유시(交遊詩)가 많이 실려 있다. 권2~12는 서(書)로, 영남의 당대 명유(名儒)들과 나눈 학술 서간(書簡)은 이 시기 영남 학술의 핵심적인 논점들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글들이다. 권13~14는 잡저(雜著)이다. <시아배(示兒輩)>는 주자(朱子)가 여조겸(呂祖謙)에 보낸 편지 구절 중에 아들 주숙(朱塾)에 대한 걱정의 내용을 인용하여 자식들에게 호인(好人)이 되도록 당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요재집(逍遙齋集) | 최숙정(崔淑精, 1432~148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소요재(逍遙齋) 최숙정(崔淑精, 1432~148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후손이 무오사화를 당하여 수습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그 후 순조 연간에 후손 최인점(崔仁漸)ㆍ최만점(崔晚漸) 등이 비로소 지지(地誌)ㆍ야승(野乘)ㆍ≪기아(箕雅)≫ㆍ≪동문선≫ 및 선현의 유집 가운데에서 저자의 유문을 수습하고, 가장소본(家藏小本)을 합하여 1813년 2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권수에는 1813년에 지은 서영보(徐榮輔)ㆍ김우순(金愚淳)의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으며, 목록의 시제(詩題) 밑에는 인용서의 출전을 밝혀 놓았다. 권1에는 시 264수가 시체별로 실려 있다. 그의 시는 문체가 화려하면서도 순박하고, 단아하고 잡박(雜駁)하지 않아 당시(唐詩)의 기풍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2는 문으로 <세심당기(洗心堂記)>ㆍ<동인시화서(東人詩話序)>ㆍ<청구풍아발(靑丘風雅跋)> 3편이 실려 있다. 부록 상에는 서거정(徐居正) 등 우인(友人)들의 수창시(酬唱詩) 16제가 실려 있으며, 부록 하에는 문집 간행 당시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묘지명과 기실(記實)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813년에 지은 박종훈(朴宗薰)의 발(跋)이 실려 있다.
▶소은유고(素隱遺稿) | 신천익(愼天翊, 1592~166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은(素隱) 신천익(愼天翊, 1592~1661)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원만(元萬)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하여 1691년 남구만(南九萬)의 편차(編次)를 거쳐 1696년 정의현(旌義縣)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해익(海翊)의 ≪호산행록(湖山行錄)≫이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남구만이 지은 서문이 있다. 본집은 크게 시(詩), 부(賦), 문(文)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는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있고, 부(賦)는 대부분 창작 연도와 배경이 제목 아래 주석으로 자세히 부기되어 있다. 특히 <칠회부(七懷賦)> 7수 연작은 광해조의 난정(亂政)을 개탄하는 내용이며, <장귀사(將歸辭)>는 인목대비 폐위에 강개하여 지은 것이다. 참고로 저자는 사부(辭賦)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에는 제문, 명(銘), 잠(箴), 설(說), 소(疏) 및 묘도문자(墓道文字) 등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상소(上疏)>는 저자 58세 때 올린 글이다. 정심(正心)이 치국(治國)의 근본임을 논하고 아울러 병을 이유로 체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소재집(疎齋集) | 이이명(李頤命, 1658~1722)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소재(疎齋)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의 문집이다. 신임옥사(辛壬獄事)로 저자와 아들이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그 후 1725년에 유집을 수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손자 이봉상(李鳳祥)이 20권 10책으로 재편차하여 1759년에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행하였다. 권1~2에는 부(賦) 2편과 시(詩) 137제가 연도순으로 실려 있는데, 남해 유배시에 지은 것들, 1704년 동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오는 도중의 견문을 쓴 것들이다. 산문 중에 <도서(圖序)> 3편은 저자가 중국에서 구입한 도서에 대한 것으로 지리(地理)와 관방(關防)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권11~12는 찬(贊), 명(銘), 잠(箴), 잡저이다. 김창집(金昌集)의 <화상찬(畫像贊)>, 이동로(李東魯) 집안에 전해져 온 북에 대해 쓴 <전경고명(傳慶鼓銘)>, 숙종의 병환을 근심하여 지은 <병중이심잠(病中移心箴)>, 삼한(三韓) 이래의 역사 지명에 대한 고증을 전거를 들어가며 서술한 <강역관방도설(疆域關防圖說)>, 유배 시에 선조들과 선현들의 덕행과 일화를 기록한 <만록(漫錄)> 등이 있다. 서독(書牘)은 노론계 핵심 인물과 주고받은 것들이 많다.
▶소재집(歗齋集) | 변종운(卞鍾運, 1790~186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소재(歗齋) 변종운(卞鍾運, 1790~186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만년에 남긴 10편의 자편고를 윤정현이 3권으로 선정하고 서문을 써주었고, 사후 종인 변원규(卞元圭)가 7권 2책으로 산삭해 만든 본을, 손자 변춘식(卞春植)이 1890년에 연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시초(詩鈔) 4권, 문초(文鈔) 3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중에서 <중야문금(中夜聞琴)>은 한밤중에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느낀 감상을 읊은 것이고, <이이의(而已矣)>는 중인으로 태어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스러움이 나타난 작품이며, <도비(逃婢)>는 고달품을 견디다 못해 달아난 어린 여종을 잘 돌보아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걱정하는 내용이다. 문초에는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질광설(質狂說)>은 30세 때 쌍도(雙島)에 머물며 광인(狂人)을 만나 광(狂)에 대해 논한 내용이고, <각저소년전(角觝少年傳)>은 연약한 소년이 씨름 솜씨를 발휘하여 악승(惡僧)을 징벌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며, <청계혜원선사전(淸谿惠圓禪師傳)>은 불교의 지옥을 유교 시각으로 해석하여 그 실재를 부정하는 혜원선사의 기행(奇行)을 그린 것이다.
▶소재집(穌齋集) | 노수신(盧守愼, 1515~1590)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10여 년이 지난 1602년(선조35)에 조카 노대하(盧大河)가 저자의 초고(草稿)를 정리하여 목판으로 간행하고 그 판목을 속리산의 사찰에 보관하였으나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52년 저자의 손자인 노준명(盧峻命)이 1665년(현종6)에 간행한 삼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10권, 연보, 행장, 내집(內集) 2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의 시는 부(賦) 3수를 필두로 1499편이 저작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대부분은 진도 유배 때 지은 작품이고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해유산록(己亥遊山錄)> 등이 들어 있다. 내집 중 <양정록(養正錄)>은 저자가 두 조카에게 주려고 정단몽(程端蒙)의 <자훈(字訓)>과 주자(朱子)의 <동몽수지(童蒙須知)>에 설명을 붙인 것이고, <서기록(庶幾錄)>은 치심(治心), 양위(養胃), 보신(保腎)하는 요점과 음선(飮膳), 의대(衣襨), 흥거(興居)에 관한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시ㆍ문ㆍ서예에 능하며, 양명학(陽明學)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저자의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소전집(少痊集) | 김덕승(金德承, 1595~165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전(少痊) 김덕승(金德承, 1595~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문과 관계기록을 수집ㆍ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시, 칠언시, 만(挽), 부(賦)이다. 시는 1613년부터 1647년까지 지은 것으로 홍익한(洪翼漢), 이명한(李明漢) 등과 수창한 작품이 있다. 권2는 계(啓), 소(疏), 기(記), 제문, 서(書), 잡저이다. 계(啓)는 1625년부터 1635년 사이에 사헌부 또는 사간원에 재직 시에 올린 대계(臺啓)이고, 기의 <상방제명기(尙方題名記)>는 상의원의 관원 명단에 덧붙인 글로 1647년 상의원 정으로 재직 시에 지은 것이다. 잡저의 <천사대관(天槎大觀)>은 1624년 동지 겸 성절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경로를 묘사한 그림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은 해로 사행의 경로를 29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각 지역의 연혁, 인근 지역과의 거리, 산천 및 유적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관련된 시를 인용한 경우도 많다. 권2 말미에는 김우량(金宇梁)이 지은 행장과 박세당(朴世堂)이 지은 묘지가 실려 있다.
▶소정고(卲亭稿) | 김영작(金永爵, 1802~186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소정(卲亭) 김영작(金永爵, 1802~186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으로 시고(詩稿) 2권 1책, 문고(文稿) 4권 2책으로 이루어진 전사자(全史字) 인본(印本)이 전하고 있는데, 간행과 관련된 서발문 등의 기록이 없어 명확한 편간 경위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시고의 표제지에 간기(刊記)가 있어 저자의 아들 홍집(弘集)이 1891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시고(詩稿) 2권, 문고(文稿) 4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시고(詩稿)는 편년순으로, 문고(文稿)는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책별(冊別)로 목록이 있다. 시고 권1의 <제이기리척형시권(題李綺里戚兄詩卷)>은 저자의 인척으로 ≪기리총화(綺里叢話)≫를 지은 이현기(李玄綺)의 시권(詩卷)을 읽고 쓴 제시(題詩)로 그의 작품이 이상은(李商隱)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다구시(茶甌詩)>는 역대의 다구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조선의 청화백자(靑華白磁)로 만든 다구를 자세히 묘사한 시이다. 문고 권1은 소(疏), 의(義), 서(書)이다. 문고 말미(末尾)에는 아들 홍집이 지은 묘표(墓表)가 부록(附錄)으로 실려 있다.
▶소총유고(篠䕺遺稿) | 홍유손(洪裕孫, 1452~152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소총(篠䕺) 홍유손(洪裕孫, 1452~152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유실되었다가 8세손 홍술조(洪述祖)가 집안에 전해오는 구본(舊本)을 얻어 행장(行狀)과 유사(遺事)를 첨부한 뒤에, 이경일(李敬一)의 서(序)를 받아 1810년에 활자본 1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상ㆍ하 2권ㆍ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본집 상권에는 제문(祭文)ㆍ부(賦)ㆍ자설(字說)ㆍ서(序)ㆍ기(記)ㆍ서(書)ㆍ묘갈(墓碣)ㆍ묘지명(墓誌銘)이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는데, <조소명태자부(弔昭明太子賦)>, <경연부(經筵賦)>등의 작품이 있다. 하권에는 시(詩) 45제가 수록되어 있는데, <식생어(食生魚)>, <제금강산(題金剛山)>, <장진주(將進酒)>, <정부사(征婦詞)> 등의 작품이 있다. 부록에는 행장과 유사(遺事)가 실려 있는데, 유사는 <가장소기(家藏小紀)>ㆍ<명신록(名臣錄)> 등에서 채록한 간략한 기사를 모은 것이다. 세조(世祖)의 찬위(簒位) 후 세속에서 벗어나 남효온(南孝溫)ㆍ이총(李摠) 등과 교유하면서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했고, 노자ㆍ장자의 학문을 토론하며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낸 저자의 다양한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소호당집(韶濩堂集) | 김택영(金澤榮, 1850~1927)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자편(自編)하여 여러 번 간행하였는데, 본집은 1922년에 연활자로 인행된 ≪합간소호당집(合刊韶濩堂集)≫에 이후 인행된 4종의 속편을 합부한 것이다. 본집은 원집 21권 8책, 보유(補遺) 2권 1책, 속(續) 5권 1책, 차수정잡수(借樹亭雜收) 4권 1책, 속집 불분권(不分卷) 1책 합 1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시집에는 평양(平壤), 삼남(三南) 등지를 유람하여 경치를 묘사한 기행시,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조병세(趙秉世)와 민영환(閔泳煥)을 추모하는 시 등이 있다. 원집 문집의 권2~3에는 <유학경위서(儒學經緯序)>, <강역고보론서(疆域考補論序)> 등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8에 실린 잡언(雜言)에는 문학, 경학(經學), 시화(詩話),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문인의 작품 평가 등 다양한 내용이 있으며, <홍삼지(紅蔘志)>에는 각종 문헌에서 수집한 홍삼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속(續) 5권에 실린 <단씨조선기(檀氏朝鮮記)>는 단군조선의 성립과 천부경(天符經)이 실려 있는데, 천부경에는 저자가 주석을 달았다.
▶손곡시집(蓀谷詩集) | 이달(李達, 1539~161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0)의 문집이다. 최경창(崔慶昌)의 조카이자 저자의 제자였던 유형(柳珩)이 1613년경 저자의 시를 모아 1권으로 편차하여 <서담집(西潭集)>이란 이름으로 간행하려고 이수광(李睟光)에게 발문을 받았으나 실제 간행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저자의 시는 제자인 허균(許筠)이 평소에 기억해 두었던 200여 수와 홍유형(洪有炯)에게서 얻은 130여 수 등 모두 360여 수를 이재영(李再榮)에게 유별로 편차하여 6권으로 만들도록 하고, 1618년(광해군10)에 자신의 서문을 붙여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고풍(古風) 10제(題)가 실려 있다. 첫머리의 <반죽원(班竹怨)>은 순(舜)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 여영(女英)의 일을 읊은 것이다. 권2에는 가(歌) 6제가 실려 있다. 첫머리의 <만랑무가(漫浪舞歌)>는 악부시(樂府詩)의 형식을 빌려 만랑옹(漫浪翁)의 검무(劍舞) 동작을 읊은 것이다. 권3에는 오언률(五言律), 권4에는 칠언사운(七言四韻), 권5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육언절구(六言絶句)가 실려 있다. 권6은 저자가 가장 즐겨 지었던 칠언절구(七言絶句)가 실려 있다.
▶손암집(損庵集) | 조근(趙根, 1631~168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손암(損庵) 조근(趙根, 1631~1680)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영기(榮期)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이 일실된 후, 종자 영복(榮福)이 집록한 시문과 이지규(李志逵)가 찬한 연보를 바탕으로 영복의 계제 영석(榮祏)이 다시 시문을 증보ㆍ재편하고 배천 군수로 부임하여 1749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연보, 부록 합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이의현(李宜顯)이 174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소차와 계이다. 특히 소차는 1664년 태학생 윤헌(尹攇) 등이 서필원(徐必遠)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정거하라는 명을 받게 되자, 윤헌 등과 같은 처벌을 받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사학유생을 대신하여 지은 소를 필두로, 1678년에 이르기까지 23편이 실려 있다. 권3은 서독이다. 권4는 서(序), 기, 찬, 발이고 권5는 행장, 묘지명, 제문 및 축문이다. 권6~7은 잡저이고 권8은 시로, 박태징(朴泰徵) 등의 시에 차운하였으며, 만시는 인선왕후(仁宣王后) 등에 대한 것이다. 권말에는 연보와 부록으로 유사, 만사, 제문 및 조카 영석이 1749년에 쓴 발이 실려 있다.
▶손와유고(損窩遺稿) | 최석항(崔錫恒, 1654~172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손와(損窩) 최석항(崔錫恒, 1654~1724)의 문집이다. 본집은 1933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등사한 사본으로, 원집 13권, 기실(紀實) 합 6책이다. 권1~5는 시(詩)이다. 1683년의 태백산(太白山) 봉화사각행(奉化史閣行)과 1686년의 관서 어사(關西御史), 1690년 이후 양천(陽川), 고양(高陽), 옥천(沃川) 수령, 1716년의 강화 유수 때 지은 서경시나 서정시가 주로 실려 있다. 그 외에 만시(挽詩), 증별시(贈別詩), 송시(送詩)가 실려 있다. 권6~10은 소(疏)이다. 대부분이 사직소이고, 진정소(陳情疏)와 진소회소(陳所懷疏)가 다수이다. 권11은 계사(啓辭)이다. 권12에는 경상 감사 시절 만들어 올린 영남여지도(嶺南輿地圖)의 서(序), ≪호은집(壺隱集)≫의 서(序), 강화 참성단(塹城壇) 등의 기(記), 수석시첩(壽席詩帖), 병인창수시첩(丙寅唱酬詩帖), 선루수창시(仙樓酬唱詩) 등 자신의 시첩에 지은 발(跋)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13은 시장(諡狀)이다. 기실은 행장으로, 1779년경에 손자가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맨 뒤에 유사(遺事) 성격의 일화(逸話)가 부기(附記)되어 있다.
▶손재집(損齋集) | 조재호(趙載浩, 1702~176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손재(損齋) 조재호(趙載浩, 1702~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일제 강점기 때 가서야 후손 또는 문인가에 소장되어 있었을 산일된 유고를 바탕으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서발이나 묘도문자 없이 시(詩)와 소차(疏箚)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詩) 223제이다. 권1에는 춘천(春川), 양주(楊州) 등에 우거하거나 다녀올 때 지은 시들을 모아 놓았고, 권2에는 청담동(淸潭洞)과 북한산(北漢山), 수락산(水落山) 등 서울 근교에서 지은 시, 집안의 매회(梅會) 때 지은 시 등 매화(梅花)와 관련된 시, 임천(林川) 부처(付處) 때 지은 시가 많다. 권3~4는 소차이다. 개성 유수(開城留守) 시절에 군적 이정(軍籍釐整)에 불만을 품은 향유에 의해 부모 묘소의 사초(莎草)가 훼손당하자 사직한 상소, 평안 감사 제수 후 물자가 풍부한 요지라 부임하려 한다는 지평 서해조(徐海朝)의 소척(疏斥)을 받고 사직한 상소와 당습(黨習)의 타파를 주장한 상소, ≪천의소감(闡義昭鑑)≫ 찬수(簒修)의 공로로 내린 상을 사양하는 상소 등이 있다. 각지를 유람하며 지은 서경시(敍景詩)가 많이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손재집(損齋集) | 남한조(南漢朝, 1744~1809)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1744~1809)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남한호(南漢皓), 유치명(柳致明) 등에 의해 수습되어 정종로(鄭宗魯)와 황용한(黃龍漢) 등의 교정을 거쳐 1835년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5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용유동반석(龍遊洞盤石)>에서는 용유동의 기암괴석이 침식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강조하여 용이 놀다간 흔적이라는 속설을 변파하고, 공상(供上)으로 파산 지경에 있는 궁핍한 어민의 생활을 그린 <어촌십절(漁村十絶)>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11은 서(書)이다. 안정복에게는 형이하학을 하여 실질적인 것을 얻어야 한다며 세도(世道)를 경계한 편지에 동감하며 보낸 것과 외삼촌 김진동에게는 임오화변(壬午禍變) 이후 삼십 년 만에 장헌세자 신원 만인소를 올린 감개를 전한 것이다. 권12는 잡저로, <이성호천주실의발변의(李星湖天主實義跋辨疑)>는 이익이 <발천주실의(跋天主實義)>를 지으면서 ≪천주실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나 신후담(愼後聃), 안정복 등의 서학서에 대한 논평이 이어졌는데, 저자는 유학적 시각에서 발문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손재집(遜齋集) | 박광일(朴光一, 1655~172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1655~17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자 박하진(朴夏鎭) 등이 수습하여 20편을 만들고 이민보(李敏輔)의 산정을 거쳐 1782년에 목활자본 10권 5책으로 인행하였다. 권1은 부(賦) 1수와 시(詩) 80여 수이다. <차유통(次幽通)>은 후한의 반고(班固)가 지은 <유통부(幽通賦)>에 차운한 것이다. 화양동(華陽洞)에 들어갈 때에 지은 시 등이 실려 있다. 권2는 소(疏) 6편이다. 최석정(崔錫鼎)이 엮은 ≪예기유편(禮記類編)≫에 대해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내용 등이 있다. 권3~4는 서(書)인데, 주로 경전의 뜻을 토론하는 내용이다. 권5~7은 잡저이다. 예설(禮說)에 대한 문답과 <삼재일태극도설(三才一太極圖說)>, <하도생성수설(河圖生成數說)> 등 저자의 학문 성향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권8은 서(序), 발(跋), 기(記), 제문, 묘지, 묘표, 행장이다. 권9는 우암선생어록(尤庵先生語錄)이다. 경전과 예설에 대한 제가(諸家)의 주석에서부터 윤휴(尹鑴)와 윤증(尹拯)에 대한 비판, 기타 신변 잡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권10은 근사록차기(近思錄箚記)이다.
▶송강집(松江集) | 정철(鄭澈, 1536~159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계자(季子) 정홍명(鄭弘溟)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신흠(申欽)의 도움을 받아 1622년경 편찬하고, 1633년 2권 1책의 ≪송강유고(松江遺稿)≫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94년(고종31) 후손 정운학(鄭雲鶴)이 원집 2권, 속집 2권, 별집 7권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삼간본이다. 원집에는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등의 연작시, 증시(贈詩), 제시(題詩), 차운시(次韻詩) 등이 실려 있으며, 금강산 유람, 강원도와 함경도 관찰사 시절, 임진왜란 발발 후, 사은사 시절 등에 지은 시들이 많다. 산문으로는 잡저, 소차(疏箚) 등이 실려 있다. 속집에 실린 잡저는 기문(記文)과 통문(通文)이고, 소(疏)는 지방관 재임 시에 지은 시폐(時弊)를 진달하는 글 등이고, 계(啓)는 임진왜란 당시 올린 장계 등이고, 제문은 스승인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양응정(梁應鼎)에 대한 글 등이다. 서(書)는 성혼(成渾), 이희삼(李希參) 등에게 보낸 것이다. 별집에는 저자의 시문(詩文), 연보, 부록이 실려 있다.
▶송계집(松溪集) | 이요(李㴭, 1622~165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계(松溪) 이요(李㴭, 1622~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진익(鎭翼)이 저자가 1656년에 자편한 시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영조의 명에 따라 1774년 교서관에서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에 정조의 어제문과 전교 등을 1825년 추인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저자가 1656년에 자신의 시를 자편하고 쓴 자서가 수록되어 있고 각 권마다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효종과 수창한 시이고, 권2~3은 사행에 지은 시와 동료들과 수창한 시이다. 권4는 소차, 서(書), 장계, 정문, 제문, 잡저이다. 특히 소차는 <유철피체후진소회소(兪㯙被逮後陳所懷疏)>를 제외하고 모두 사행과 관련하여 상전을 사양하거나 죄를 청하거나 체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5~7에는 연도기행이 상, 중, 하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는데, 1656년 이시백(李時白) 등과 진주사로 연경에 다녀온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는 저자의 현손 진익의 발문과 후손 낙중(樂重)이 1825년에 순조의 명으로 영조와 정조의 어제문 및 정조의 전교를 추인하여 합편하고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송곡집(松谷集) | 조복양(趙復陽, 1609~1671)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 1609~167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조지겸(趙持謙)이 수습하였으나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 조카 조지항(趙持恒)이 능주 목사(綾州牧使)가 되어 목판으로 간행하고, 1705년에 최석정(崔錫鼎)에게 서문을 받았다. 총 12권 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3~6은 소차와 계사이다. 권7에는 책문(冊文), 교명문(敎命文), 반교문(頒敎文), 교서(敎書), 불윤비답(不允批答), 전(箋), 상량문이 실려 있다. 권8에는 정식표전(程式表箋), 책문, 서계(書契), 제문이 실려 있고, 권9에도 제문 23편이 실려 있다. 표전은 중국 역사에 나오는 사건을 글제로 삼아 표전 문체에 맞추어 지은 의전(擬箋)과 의표(擬表)이고, 책문은 시사(試士)를 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들과 그 효용을 물은 것, 정인(正人)을 널리 찾아 사부(師傅)로 삼아 원자(元子)를 교육시키는 방법에 대해 물은 것 등이다. 서계는 우리나라에 표류해 왔다가 도망간 아란타(阿蘭陀) 사람들에 대해서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답하는 글이다. 권10에는 비지, 음기, 행장이 실려 있다. 권11~12는 부록이다.
▶송담집(松潭集) | 송남수(宋柟壽, 1537~162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담(松潭) 송남수(宋柟壽, 1537~1626)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손자 송국사(宋國士)와 증손 송규렴(宋奎濂) 등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686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원집(原集)에, 증손 규렴(奎濂)이 1687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검신요결(檢身要訣)>과 1696년 추각(追刻)한 김창협(金昌協)의 발문(跋文)을 합부(合附)한 것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수(卷首)에 1686년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序)가 있고, 권미(卷尾)에 1696년 김창협이 지은 발이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이며, 작품 전반에 걸쳐 시주(詩酒)와 금서(琴書)로 소일하며 담박한 삶을 살고자 했던 저자의 성향이 드러나 있다. 권2는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칠언배율(七言排律), 오언고시(五言古詩), 잡저(雜著)와 부록(附錄)으로 <검신요결(檢身要訣)>이 있다. 특히 <검신요결>은 성현(聖賢)의 격언(格言)을 초록하여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일종의 수신서이며, 이에 대해 1623년에 지은 자지(自識)와 1687년 송시열이 지은 발이 있다.
▶송당집(松堂集) | 조준(趙浚, 1346~140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송당(松堂) 조준(趙浚, 1346~140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 사후에 아들 조대림(趙大臨)이 수집하여 간행을 도모하였고, 9대손 조성(趙䃏)이 1669년에 가장유고(家藏遺稿)를 바탕으로 4권 2책을 간행하였으나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1년 17세손 조재명(趙載明)ㆍ조재곤(趙載坤) 등이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2는 시(詩), 권3~4는 문(文)이다. 권수에는 초간 때 쓴 이원정(李元禎)의 발(跋)과 후손 조성의 지(識)가 실려 있으며, 후손 조재명ㆍ조재곤이 지은 2편의 중간서(重刊序)가 실려 있다. 권1~2에는 시(詩)가 각체별(各體別)로 수록되어 있다. 칠언율시 중에는 1376년 강릉도 안렴사로 나갔을 때 지은 시,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 지은 시도 포함되어 있다. 권3~4에는 소(疏)ㆍ전(箋) 등의 문(文)이 실려 있는데, 대사헌 재임 시 올렸던 <논전제소(論田制疏)>ㆍ<진시무(陳時務)> 6편과 <진정전(陳情箋)> 1편이 실려 있다.
▶송당집(松堂集) | 박영(朴英, 1471~154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문집이다. 1655년 4대손 박경길(朴敬吉)이 남아 있는 백록동규해(白鹿洞規解)ㆍ대학경일장(大學經一章) 사본(寫本)과 약간의 시문을 수습하여 부록을 붙이고, 박진경(朴晉慶)ㆍ이이송(李爾松)의 발을 받아 종제(從弟)인 박경지(朴敬祉)에게 간행하도록 하였다. 이어 초간본의 편차가 잘못되었다는 사론(士論)에 따라 개간(改刊)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05년에 종손 박문호(朴文浩) 등이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중간한 삼간본이다. 본 문집은 목록ㆍ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시 19제, 서(書) 2편, 기(記) 2편 등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자찬묘표(自撰墓表)>와 <백록동규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2에는 <대학도>와 <대학경일장연의(大學經一章演義)>가 실려 있다. 권3에는 부록으로서 <도통상승차제록(道統相承次第錄)>과 <문인록> 등에서 뽑은 저자 관련 기사와 신도비명이 실려 있다. 권4에는 김재로(金在魯)가 지은 시장(諡狀)을 비롯하여 각 서원의 봉안문(奉安文) 등이 실려 있다. 시문 이외에도 의학에 관한 저술들이 있었으나 임진란으로 산일되었다.
▶송당집(松塘集) | 유홍(兪泓, 1524~159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당(松塘) 유홍(兪泓, 1524~1594)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손자 유백증(兪伯曾)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수습(收拾)하여 정두경(鄭斗卿)의 산정(刪定)을 거쳐 1642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되었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卷首)에 정두경(鄭斗卿)이 1641년에 지은 서문(序文)이 실려 있다. 전체가 시집(詩集)으로, 시체별(詩體別), 연대별(年代別) 구분 없이 실려 있다. 권1의 시(詩)는 저자가 여러 지방의 관직(官職)을 역임했기 때문에 지방의 누각(樓閣)과 동헌(東軒)에 대한 차운시(次韻詩)가 많은 편이다. 권2의 시(詩)는 사은사(謝恩使)로 북경(北京)에 다녀오면서 오고가는 여정에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권3의 시(詩)는 두보(杜甫)와 이백(李白), 왕안석(王安石)과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등의 시에 차운한 시와 사행길에서 지은 것이 주이고, 권4의 시(詩)는 진보(眞寶), 경주(慶州), 동래(東萊), 단천(端川), 길주(吉州)의 동헌운(東軒韻)을 차운한 시와 만시(挽詩)를 비롯해 사행길에서 지은 시이고, 권미(卷尾)에 정두경(鄭斗卿)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실려 있다.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 | 이언진(李彦瑱, 1740~176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목관(松穆館) 이언진(李彥瑱, 1740~1766)의 문집이다. 저자는 임종에 앞서 세상에 지인(知人)이 없음을 한탄하며 원고를 불살랐는데 이때 타다 남은 원고를 부인이 거두어 보관하여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저자의 문집은 활자본과 목판본 2종이 있는데 모두 1860년에 간행된 것이다. 본집은 활자본으로, 1권 1책이다. 목록은 없으나 권두에 이용휴(李用休)가 쓴 서(序)가 있고 이어서 박지원(朴趾源), 김조순(金祖淳),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저자에 대한 전(傳)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문집에서 초록한 것이다. 이어서 시(詩) 301수가 실려 있고, 찬(贊) 2편, 명(銘) 1편, 편지 2편이 실려 있다. 저자의 시는, 당시(唐詩)보다는 명(明)ㆍ청(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전인(前人)을 답습하지 않고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해 나갔다. 시의 내용은 자신의 인생관이나 전원(田園)의 생활, 불교(佛敎)나 수양(修養)에 대한 것, 시문에 대한 자부심을 읊은 것이 많다. 편지는 1763년 일본 사행시 아우에게 보낸 것으로, 학문과 독서를 권면하면서 아울러 사행 뱃길의 괴로움과 병고 등을 서술하고 있다.
▶송봉유고(松峯遺稿) | 오익승(吳益升, 1620~167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봉(松峯) 오익승(吳益升, 1620~1679)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명호(明鎬)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0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송병준(宋炳俊)이 1908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그중에서 <등노성산부(登老誠山賦)>는 1646년 저자 나이 27세 때 옥천의 노성산에 올랐다 읊은 것이고 시는 시체별 분류하였는데, 칠언고시의 <적강선인시(謫降仙人詩)>는 적소 덕원에 있던 송시열에게 올린 것으로, 송시열을 유배 온 신선에 우의하여 지은 것이고, 칠언절구의 <증묘시(憎卯詩)>는 1676년 장기(長鬐)에 위리안치된 송시열에게 드린 것이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설(說), 상량문이다. 서(書)는 스승 송시열, 이명하(李鳴夏)와 이수징(李壽徵)에게 보낸 것들로 <상순상서공필원서(上巡相徐公必遠書)>는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진휼해 달라는 내용이다. 권3은 소(疏), 제문, 묘갈, 잡저이고 권4는 잡록, 의례이다. 권5~6은 부록으로 유사, 행장, 묘표, 제문, 연보 등이고 끝에 간기(刊記)가 있다.
▶송사집(松沙集) | 기우만(奇宇萬, 1846~1916) | 권책수 : 26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인 양회갑(梁會甲)의 주도로 1919년에 편차해 둔 50권의 정고본을 저본으로 사용하여 석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2권, 원집 50권, 속집 2권 합 26책이다. 원집 권1은 시(詩) 192제이다. 학문을 면려하면서 지어준 시,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疏)이다. 이 중에서 <을미소(乙未疏)>는 1895년 명성황후가 승하했다는 소식이 반포되고 얼마 후 원수에 대한 복수, 단발령 철회 등을 주장하며 올린 상소이다. <병신소(丙申疏)>는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소식을 접하고 장성(長城)에서 거의(擧義)하고 나주로 가서 전열을 정비한 상황을 아뢴 상소이다. <을사소(乙巳疏)>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올린 상소로 매국노를 처단하고, 세금을 견감해 줄 것 등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3~10은 서(書)이다. 을미년 이후의 정세에 대한 논의 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권11~12는 잡저이다. 이중에는 <윤고열읍문(輪告列邑文)>, 격문 등 거의와 관련하여 열읍(列邑)과 병영에 유시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송서집(松西集) | 강운(姜橒, 1773~183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서(松西) 강운(姜橒, 1773~18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생전인 1834년에 실화로 8할 정도가 사라진 것을, 손자 한규ㆍ하규(夏奎)와 종손 명규(命奎) 등이 수습하고 1849년에 1차 정리하여 가장(家狀)하였다. 이후 저자의 증손 용(鎔)이 정리 재편한 것을 5대손인 강수원(姜壽元)이 영주에서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드물게 목록에는 연기가 빠지거나, 시제가 달리 쓰인 데가 보인다. 권1~2는 시(詩)이다. 운원잡영(雲院雜詠)은 1827년 12월~1828년 4월까지 소수서원의 강회에 동주(洞主)로 참여하여 지은 시와 강회가 끝난 후 원생과 소백산에 오르며 지은 시이다. 이황의 시에 차운하고, 첩운(疊韻)으로 지은 것이 많다. 권7은 기, 발(跋), 설(說), 고유문, 상량문, 제문이다. <유소백기(遊小白記)>는 1828년에 이황의 후손 이야순(李野淳)의 권유로 이황이 1549년 4월 22일 소백산을 유람한 것에 맞춰 이 날짜에 10여 일간 유람한 내용을 담은 유기이다. 권말에는 문인이자 족손인 명규가 1849년에 지은 발과 증손 용의 발이 있다.
▶송소집(松巢集) | 권우(權宇, 1552~159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소(松巢) 권우(權宇, 1552~1590)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상일(相一)이 가장초고를 산정한 정고본을 7대손 달충(達忠)이 정종로(鄭宗魯)의 교감과 경광서원(鏡光書院)의 협조를 받아 1811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가 1811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사(辭)이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 서(書)는 조목(趙穆), 유성룡(柳成龍), 이덕홍(李德弘) 등과의 편지이다. 권3은 제문, 잡저, 행장이다. 제문은 이황(李滉), 남치리(南致利), 구봉령(具鳳齡), 이안도(李安道) 등에 대한 것이고 잡저의 <제설변해(諸說辨解)>는 이(理), 성(性) 등에 대해 여러 주석을 비교하며 설명한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 사제문, 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다. 권미에 장현광(張顯光)이 1637년에 지은 발문, 이준(李埈)이 지은 발문, 김득연(金得硏)이 지은 발문, 김응조(金應祖)가 1658년에 지은 지(識), 김방걸(金邦杰)이 지은 <어사서첩후발(御賜書帖後跋)>, 7대손 권달충(權達忠)이 1811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송암유고(松菴遺稿) | 김면(金沔, 1541~159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암(松菴) 김면(金沔, 1541~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200여 년이 지날 때까지 가장되어 오다가, 1772년에 후학 한방윤(韓邦胤)이 김씨 문중의 가장에서 시문과 일록을 수습하고, 1774년에 최재억(崔載億), 이회근(李悔根)이 편차한 고본을, 1785년 송암선생실기(松庵先生實記)로 증산ㆍ재편하여 1786년 활자로 인행한 후,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하고 재편하여 1884년 이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 1774년에 김수묵(金守默)이 지은 서문, 1785년에 김중조(金重祚)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문, 권2는 보유, 권3은 부록이다. 권1은 시(詩), 서(書), 문(文)인데, 문(文)은 1592년에 호남을 순찰한 권율(權慄)에게 보낸 이문(移文)과 왜란 중에 선영(先塋)에 고하는 글이다. 권2는 보유이고, 권3은 부록으로, 교서, 유서, 장계, 사제문, 제문, 행장, 신도비명, 도암서원(道巖書院)의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ㆍ봉안문(奉安文)ㆍ이건시고문(移建時告文), <청시청액소초(請諡請額疏草)>, <공충도각읍유생통문(公忠道各邑儒生通文)>이다.
▶송암집(松巖集) | 권호문(權好文, 1532~1587)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중기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이 병화로 산일된 뒤에 아들 권행가(權行可)가 난고(亂稿)를 수습하여 제현(諸賢)의 교정까지 거쳤으나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1679년에 안동에서 목판으로 원집이 간행되었고, 1809년에 후손 권택부(權宅孚) 등이 속집을 간행하였고, 1957년 후손 권영갑(權寧甲) 등이 석인(石印)으로 연보를 포함한 별집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6권과 부록, 속집 6권, 연보와 별집 2권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시는 도학과 은둔에 뜻을 둔 뒤 학문에 매진하던 시기, 스승인 퇴계가 죽은 뒤 유고의 정리와 강학 활동에 열중하던 시기의 작품 등이 권별로 나뉘어 실려 있다. 권6은 <잡의집록(雜儀輯錄)>으로, 자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을 지시한 <가잠(家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우리 실정에 알맞게 기술한 <동감(洞鑑)>이 있다. 속집 권6에는 현존하는 경기체가(景幾體歌) 중 마지막 작품인 <독락팔곡(獨樂八曲)> 등이 실려 있다. 별집은 연보와 시문(詩文)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의 문인으로 평생을 산림처사로 지낸 저자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송암집(松巖集) | 이로(李魯, 1544~159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송암(松巖) 이로(李魯, 1544~15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火)를 겪고 나서 거의 산일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8대손 이현즙(李賢楫)이 가내(家內)에 남아 있는 시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간행을 도모하였고, 1852년 이현준(李賢俊), 이현곤(李賢坤) 등이 묘지명, 시장(諡狀), 행장(行狀) 등을 더하여 6권 3책으로 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시(詩) 62제(題)와 만사(挽詞), 부(賦)가 실려 있다. 시에는 <승평동헌우음(昇平東軒偶吟)>, <승평환선정(昇平喚仙亭)>, <병산횡루근차유서애(屛山黌樓謹次柳西厓)>로 시작하는 제목의 작품과 그 화운시(和韻詩) 6제(題)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상소 및 왜서(倭書)에 답하는 문제로 올린 신묘봉사(辛卯封事)와 명장(明將) 이여송(李如松)에게 올린 계(啓), 임란과 관계된 격문 등이 있다. 권3은 서간(書簡)과 잡저, 제문 및 묘도문이다. 권4는 김성일(金誠一), 조종도(趙宗道), 곽재우(郭再祐), 이제신(李濟臣) 등에 관한 유사(遺事)이다. 권5는 연보이고, 권6은 부록이다. 상소ㆍ편지ㆍ격문 등 임진왜란과 관련된 작품이 많이 실려 있는 자료이다.
▶송암집(松巖集) | 이재형(李載亨, 1665~174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암(松巖) 이재형(李載亨, 1665~174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아들들과 문인들에 의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 편차되어, 1758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서(書)는 120여 편이 인물별,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성리학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 많다. 잡저 가운데 <성명도설(性命圖說)>은 ≪중용장구≫ 수장(首章)과 <태극도(太極圖)> 및 제가(諸家)의 설(說)을 참작하여 도(圖)를 만들고, 이에 대해 객(客)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설명을 붙인 것이다. <수필록(隨筆錄)>은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수(數)와 ≪중용장구≫ 제27장, 그리고 건괘(乾卦) 육효(六爻) 등에 관한 12조목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기타 ≪근사록(近思錄)≫ 및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의 의목(疑目), 최두추(崔斗樞)의 문집 서문, 생친(生親)의 개장기(改葬記) 등이 있다. 시(詩)는 맨 뒤에 20제가 실려 있는데, ≪대학장구≫ 독후시(讀後詩), 무계호(武溪湖)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 최두병(崔斗柄)과의 차운시, 박명세(朴命世), 현취장(玄就章) 등에 대한 만시(挽詩) 등이다.
▶송애집(松崖集) | 박여룡(朴汝龍, 1541~161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송애(松崖) 박여룡(朴汝龍, 1541~16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전란을 겪는 동안 거의 유실된 것을 후손 박서동(朴瑞東)이 유고(遺稿)를 수집, 편차하여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교정(校正)을 거친 후 1776년 목판(木板)으로 처음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50년 후손 박상준(朴相駿) 등이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에는 <석담어록(石潭語錄)>이 실려 있는데, 대체로 율곡(栗谷)에게 배울 때의 문답을 기록한 것이다. 권2에는 저자의 유고 7편이 실려 있는데, <은병정사청액소(隱屛精舍請額疏)>ㆍ<동문계서(同門契序)>와 <약속(約束)> 16조(條)ㆍ<박윤생채갈설(駁尹甥採葛說)> 등이 글이 있다. 권3은 연보이고, 권4는 가장(家狀), 행장(行狀), 신도비명(神道碑銘)과 방현사기(傍賢祠記), 청가증사시서(請加贈賜諡書)와 향현사봉안제문(鄕賢祠奉安祭文), 방현서원봉안제문(傍賢書院奉安祭文) 등이다. 율곡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그 공으로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봉되었던 저자의 작품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송애집(松崖集) | 김경여(金慶餘, 1596~165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 1596~16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손자와 증손 등이 수습해 정리해 두었는데, 1932년에 가서 8대손 김철원(金喆源)과 9대손 김정옥(金正玉)이 정고본(定稿本)을 바탕으로 6권 2책의 원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1936년에는 김철원이 산일되었거나 미처 인출(印出)되지 않은 공사 문자(公私文字)를 모아 2권 1책의 속집을 만들어 활자로 인행하였다. 원집 권1은 시 8제(題)이다. 외사촌 송국택(宋國澤)에게 준 송시(送詩)와 외삼촌 송희진(宋希進)에게 차운한 시 외에는 모두 만시(挽詩)이다. 권2는 소(疏)와 계(啓)이다. 권3은 서(書), 제문, 잡저이다. 권4는 습유로, 부(賦), 표(表), 명(銘)이다. 부로는 송시열 등을 염두에 두고 인재 등용을 강조한 <현자국가지주기부(賢者國家之舟驥賦)>, 인의충신(仁義忠信)으로 안민(安民)하는 것이 곧 최강의 갑병(甲兵)임을 말한 <안민시갑병부(安民是甲兵賦)> 등이 있다. 명(銘)은 우 임금이 구정(九鼎)을 만든 뜻을 알고 지은 <우정명(禹鼎銘)>이 있다. 권5~6은 부록이다. 속집 권1은 계(啓), 서(書), 책(策)이고, 권2는 부록이다.
▶송오집(松塢集) | 정전(鄭佺, 1569~163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오(松塢) 정전(鄭佺, 1569~1639)의 문집이다. 김성일(金誠一), 유성룡(柳成龍), 구봉령(具鳳齡)의 문인이고 권태일(權泰一), 김시추(金是樞), 정영방(鄭榮邦) 등과 교유하였다. 본집은 고본이 화재로 인하여 불타 버린 뒤에 7대손 정지정(鄭之貞)이 1835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6대손 래검(來儉)과 8대손 동규(東逵)ㆍ운규(雲逵) 등이 저자의 6대손 래성(來成)의 ≪사헌집(思軒集)≫과 함께 186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권2는 소(疏), 서(書)이다. 소 가운데 <청오현종사소(請五賢從祀疏)>는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5현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청원하는 상소이다. 권3은 서(書), 고유문, 제문, 책(策), 논(論), 묘지명, 행록이다. 권4는 부록(附錄)으로, 만사(附錄), 제문(祭文), 묘갈명(墓碣銘)이다. 권말에 7대손 정지정(鄭之貞)이 1835년에 지은 후지(後識)와 유형진(柳衡鎭)이 186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송와집(松窩集) | 안명하(安命夏, 1682~175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송와(松窩) 안명하(安命夏, 1682~1752)의 문집이다. 본집은 족현손 효완(孝完), 효식(孝寔) 등이 이상정(李象靖)의 교정을 거친 시문을 바탕으로 산정ㆍ편차하여 187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허전(許傳)이 1873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 사(詞)이다. 기행시, 유람시가 많은데 특히 선현들의 유지를 돌아보고 지은 것들이 눈에 띈다. 권3의 앞부분은 정석달(鄭碩達), 권중도(權重道) 등의 만장이고 권3의 뒷부분~권5의 앞부분은 이현일(李玄逸), 정만양(鄭萬陽) 등에게 보낸 서(書)이다. 권5의 뒷부분은 서(序), 기(記), 발(跋), 명(銘)이다. 권6~7은 잡저, 축문, 제문, 애사, 행장이고 권8~9는 록(錄)이다. 그중에서 <금양문견차록(錦陽聞見箚錄)>은 이현일이 우거하던 금양에 찾아가 배울 적에 견문을 모아 놓은 것으로 일상 예절부터 예제에 대한 문답까지 다양하다. 권10~11은 부록으로 행장, 사우제운(師友諸韻), 제문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족현손 효식의 지(識)와 조성교(趙性敎)의 발(跋)이 있다.
▶송월만록(松月漫錄) | 임득명(林得明, 1767~182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의 문집이다. 서발문(序跋文)이나 부록은 물론 목록도 없으며 권차(卷次)나 판차(板次)도 적혀 있지 않다. 다만 매 책 첫머리에 “송월만록회진임득명자도저(松月漫錄會津林得明子道著)”라는 제(題)가 달려 있어 책의 구분으로 삼고 있다. 시의 편차도 기본적으로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만 종종 잘못 뒤섞인 작품도 보이며, 시 구절에 비점을 찍은 것들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저자의 작품을 수습하여 정리 중이던 고본으로 보인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5책으로 되어 있는 시집으로, 저자가 1804년부터 1821년 사이에 지은 시 총 1,192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자연에 대한 소회, 유람 중에 보고 느낀 점, 친족과 잔치를 하는 흥겨움을 노래한 것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송석원시사의 주요한 구성원으로서 동료 시인들과 수창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책2는 1810년부터 1812년까지의 시 274제가 실려 있다. 내용은 궁협(窮峽)에 사는 둔전민(屯田民)들의 고달픈 삶과 시골 노인이 허리에 낫을, 손엔 도끼를 들고 힘들게 나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것 등이 있다.
▶송월재집(松月齋集) | 이시선(李時善, 1625~171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월재(松月齋) 이시선(李時善, 1625~1715)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되어 오던 하화편과 저자의 다른 시문을 수집하고, 이후 저자의 현손 명현(命顯) 등이 간행을 위해 이익(李瀷)에게 묘지명과 발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간행 연도와 그 경위가 분명하지는 않으나, 1763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한 듯하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이광정(李光庭)과 정범조(丁範祖)가 쓴 서(序)가 있다. 권1에는 저서에 대한 서발과 <춘추(春秋)>, <삼례(三禮)>, <논어>, <맹자> 등을 읽고 자득한 견해를 기록한 글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천지의 조화와 운행의 이치를 논한 <복언(伏偃)>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기자찬(箕子贊)>, <왕도표(箕子贊)> 등과 향약에 대한 서문이고, 권3은 <음덕송(陰德頌)>, <영응설(靈應說)> 등과 자제들을 훈계하는 글이다. 권4는 <참동계경서(參同契經序)>, <천명론(天命論)> 등이고, 권5에는 중국의 산천에 대한 기록인 <오악지(五嶽志)>과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등이다. 권6은 시, 서(書), 제문이고 권7은 부록이다. 권말에 이익이 1763년에 쓴 발이 있다.
▶송은집(松隱集) | 박익(朴翊, 1332~139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839년경 후손 박세신(朴世臣) 등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1832~1835년간 자인(玆仁)의 후손가에서 저자의 유고가 발견되고 또 청도(淸道)의 후손가에서 영정(影幀)과 시첩(諡牒) 및 비표(碑表) 등이 발견되자, 후손 박세진(朴世震) 등이 이화(李鏵)에게 유고의 찬차(撰次)ㆍ감교(勘校)를 의뢰하고 네 아들의 문집인 ≪우당유고(憂堂遺稿)≫ㆍ≪인당유고(忍堂遺稿)≫ㆍ≪아당유고(啞堂遺稿)≫ㆍ≪졸당유고(拙堂遺稿)≫를 부편하였으며, 홍명주(洪命周)의 서문(序文)을 붙여 1책으로 편찬하였다. 그 후 신계서원(新溪書院)이 창건되자 4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 현존하는 초간본이다. 권수에는 두 편의 서(序)와 목록, 권1에는 시(詩) 16제(題)와 문(文) 5편, 문(文)은 잠(箴) 2편, 전(箋) 1편, 제문 1편, 유서(遺書) 1편, 권2에는 만(輓)ㆍ화상찬(畫像贊)과 묘소문(墓所文)ㆍ묘표(墓表), 권3은 부록, 권4는 속집으로 신계서원 창건과 봉안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송자대전(宋子大全) | 송시열(宋時烈, 1607~1689) | 권책수 : 113책 | 포갑수 : 2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에 대한 수습과 정리는 저자가 사사(賜死)된 이후 권상하(權尙夏)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787년 간행된 기영본(箕營本) ≪송자대전(宋子大全)≫에, 1901년 13권 6책으로 중간(重刊)된 ≪송자대전≫에 대한 주해서(註解書)인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1927년 간행된 ≪송서습유(宋書拾遺)≫, 1929년 3권 2책으로 ≪송서습유≫ 이후에 다시 남은 저자의 유문과 부록문자를 모아 간행한≪송서속습유(宋書續拾遺)≫를 합부한 것이다. ≪송자대전≫을 살펴보면, 권1~4는 시부(詩賦), 권5~26은 공거문(公車文)이다. 권27~129는 서간문으로, 모두 5500여 편이다. 권130~153은 잡저와 기(記), 서(序), 발(跋), 제문 등이다. 잡저의 내용은 경서에 대한 의론과 예설(禮設), 자설(字說), 시사(時事)에 대한 글, 자손에게 전하는 것 등이다. 서(序)는 모두 104편으로 시문집 등 간행 서적에 대한 서(序), 족보서(族譜序), 송서(送序), 도서(圖序)와 모임에 대한 서(序) 및 시서(詩序)이다.
▶송재유고(松齋遺稿) | 나세찬(羅世纘, 1498~155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나금주(羅金柱)
조선 중기 송재(松齋) 나세찬(羅世纘, 1498~155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火)에 산일되었으나 7세손 나치경(羅致褧)이 유고 약간 편을 모아 편집하고, 8세손 나성오(羅星五)가 1777년에 11행 22자의 목활자로 처음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30년에 간행된 중간본을 1864년경 증보한 추각본(追刻本)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이다. 38세 때 벼슬에서 물러나 구거(舊居) 주변의 경관을 읊은 <거평동팔경(居平洞八景)>을 비롯하여 사가독서 시절에 이황(李滉)ㆍ김인후(金麟厚)ㆍ임억령(林億齡)과 수창한 <차옥당실마운(次玉堂失馬韻)>이 있다. 부(賦)에는 25세 때 세상을 개탄한 <애병백부(哀病柏賦)>를 비롯하여, 30세 때 정시초시(庭試初試)에서 장원한 <희우부(喜雨賦)> 등 25편이 실려 있다. 권2의 논(論)으로는 <숭절의론(崇節義論)>과 <위무공억계론(衛武公抑戒論)>이 있다. 책(策)으로는 <속상책(俗尙策)>, <예제책(禮制策)> 등이 있다. 권3의 소(疏)에는 <옥중혈소(獄中血疏)>, <홍문관소(弘文館疏)>등이 있다. 이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송재집(松齋集) | 이우(李堣, 1469~151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송재(松齋) 이우(李堣, 1469~151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遺稿)는 원집은 유실되고, 조카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원집 중에서 수서(手書)해 둔 시집 1권이 남아 있었는데, 퇴계가 여기에 자신이 지은 묘지ㆍ연보 및 이항(李沆)이 지은 묘지명과 최숙생(崔淑生)이 지은 묘갈명을 습유하여 가장(家藏)하였다. 1584년 외종손 오운(吳澐)이 이 수초본(手抄本)을 간행한 것이 초간본이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584년 간행된 원집과 1900년 간행된 속집이 합본된 규장각장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2권과 습유, 속집 2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1은 관동 지방을 유람하며 지은 <관동행록(關東行錄)>이고, 권2는 사직하고 고향인 예안에 머물면서 지은 <귀전록(歸田錄)>이다. 속집 권1에는 시 20여 수가 실려 있는데 만시(輓詩)ㆍ차어제시(次御製詩)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2는 문으로 서(序) 1편, 기(記) 2편이 실려 있다. 권3은 부록으로 강원도 관찰사로 나갈 때 받은 교서와 <유사(遺事)> 및 <유사척록(遺事摭錄)> 등이 실려 있는데, <척록>은 여러 문헌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사를 뽑아 편차한 것이다.
▶송재집(松齋集) | 한충(韓忠, 1486~152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송재(松齋) 한충(韓忠, 1486~15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고종 연간에 와서야 한성리(韓星履)가 한장석(韓章錫)의 서문(序文)을 받아 1889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2권ㆍ습유(拾遺) 1권ㆍ부록 4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 권1은 시, 유사(遺事), 부(賦), 책(策), 소(疏)로 되어 있다. 이 중 유사는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 복자(卜者)의 시, 충청 수사로 임지에 갈 때의 <축득노두시(祝得老杜詩)>ㆍ<별세후작(別世後作)> 등을 저자의 <유찬시일기(流竄時日記)>와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등에서 모은 것이다. 권2에는 서(書), 기(記), 송(頌), 명(銘), 계사(啓辭), 경연계사(經筵啓辭), 공장(供狀)이 실려 있다. 이 중 <송재명(松齋銘)>은 사철 푸른 소나무를 귀하게 여겨 지은 글로 저자의 지절(志節)이 잘 나타나 있다. 권3은 <어류습유(語類拾遺)>와 <사실습유(事實拾遺)>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저자의 언어(言語)를 추록한 것으로 보이며, 후자는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ㆍ≪기유록보유(己卯錄補遺)≫ 등에서 집록(輯錄)한 것이다. 권4 이하는 부록이다.
▶송정집(松亭集)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 1553~1612)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이 지은 시문을 ≪송정세과(松亭歲課)≫란 이름으로 편차해 놓았는데, 저자의 6대손인 하정중(河正中)과 하달중(河達中)이 이를 바탕으로 1788년(정조12)에 6권 3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39년 석판(石版)으로 간행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원집 5권, 속집 3권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채제공(蔡濟恭)과 이현석(李玄錫)의 서(序), 원집(原集) 목록이 실려 있다. 원집의 권1~2에는 부(賦)와 시(詩), 권3~5에는 문(文), 그리고 부록이 있다. 부(賦)에는 <충렬묘부(忠烈廟賦)>, <동정부(東征賦)> 등이 있다. 설(說)에는 <이두한유시문평(李杜韓柳詩文評)>이 있다. 서(序) 중 <운금정잡영권후서(雲錦亭雜詠卷後序)>, <진양연고서(晉陽聯稿序)> 등이 있다. 그밖에 기(記), 발(跋), 전(箋), 송(頌), 상량문(上樑文), 기우문(祈雨文), 제문, 통문(通文), 명(銘), 묘지(墓誌) 등이 있다. 속집(續集)의 권1은 시(詩), 권2는 문(文), 권3은 연보(年譜)이다.
▶송죽당집(松竹堂集) | 정문익(鄭文翼, 1571~163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죽당(松竹堂) 정문익(鄭文翼, 1571~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래경(來卿)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래경의 아들 기영(基永)이 1898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세계(世系), 연보(世系), 원집(原集)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신헌구(申獻求)가 지은 서문과 총목(總目), 세계(世系), 연보(年譜)가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세계는 시조(始祖)에서 19대인 저자의 부친까지 기술되어 있고, 연보는 저자가 태어난 1571년부터 이장한 1700년까지 기술되어 있다. 권1~2는 시인데, 칠언시 중에는 1628년에 금국(金國) 회답상사(回答上使)가 되어 심양(瀋陽)에 갈 때 지은 시와 1634년에 사신 갈 때 지은 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권3은 책(策), 소(疏), 계(啓), 서(書), 문(文)이다. 특히 책은 저자가 41세인 1611년에 문과에 합격할 때 과제로 제출한 것인데,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에 대해 7가지 조목으로 쓴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사제문, 제문, 만장과 가장, 묘갈명 등이며, 권말에 9세 방손 정윤영(鄭胤永)과 정기영(鄭基永)이 지은 발문이 있다.
▶송천유집(松川遺集) | 양응정(梁應鼎, 1519~158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25편이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정유란 때 유실되어 남은 것이 거의 없었는데 손자 양만용(梁曼容)과 그의 아들 양세남(梁世南)이 간행을 도모하였고, 9대손 양찬영(梁纘永)이 정고본(定稿本)을 바탕으로 하여 1842년 금성에서 목활자로 처음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3권 합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정두경(鄭斗卿)과 신천익(愼天翊)이 지은 서문이 실려 있다. 원집 권1~2에는 시부(詩賦), 권3~4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권3에는 1540년 생원시에 장원한 작품인 의문(疑問)과 의(義), 책문(策問), 책제(策題)가 실려 있는데, 책제는 1564년 고시관으로서 낸 시제(試題)로 여기서 장원한 이이(李珥)의 글이 첨부되어 있다. 권4에는 제문, 묘갈명, 기문(記文), 서(書)가 실려 있고, 문인(門人) 백광훈(白光勳)이 기록한 저자의 언행록(言行錄)이 실려 있다. 권5~7은 부록이다. 불교와 관련한 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의 의병 활동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송파일고(松坡逸稿) | 박전(朴全, 1514~155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파(松坡) 박전(朴全, 1514~1558)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여러 차례 이사하고 화재가 나서 거의 산일되었고, 벼슬할 때 지은 일기(日記) 1권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본집에는 일기가 실려 있지 않다. 본집은 8대손 박주원(朴周元)이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유문을 모아 유고를 편차하고, 9대손 박구일(朴龜一)이 1809년에 정종로(鄭宗魯)에게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09년에 지은 정종로의 서문이 있다. 본집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장편, 칠언장편, 육언, 명(銘), 사(辭), 설(說), 책(策)이 있는데, 특히 명(銘)은 관(冠), 리(履), 장척(長尺), 시(匙), 호(戶), 창(窓), 병(屛), 궤(几)에 대해 지은 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고, <문충효책(問忠孝策)>은 1546년 증광 문과에 합격했을 때 지은 책문으로, 자식과 신하로서 충효를 다해야 함을 말했다. 그리고 정종로가 지은 행장(行狀)과 8대손 박주원이 지은 가장(家狀)이 실려 있다.
▶송파집(松坡集) | 이해창(李海昌, 1599~165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송파(松坡) 이해창(李海昌, 1599~1655)의 문집이다. 본집은 계자 만익(晩益)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임상원(任相元)의 교정을 거친 후, 만익의 아들 필상(必相)과 필중(必重) 형제가 171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2책이다. 권두에 임상원(任相元)이 쓴 서문이 있고 목록은 없다. 권1은 문(文), 서(序), 기(記), 묘명, 교서, 비답, 조(詔), 전(箋), 소(疏), 잠(箴)이다. 그중에서 문에는 1639년 충주 유배시, 근심을 의인화하여 지은 <책수문(責愁文)>, 인조 때 역적집안으로 멸문의 화를 당한 월당 강석기(姜碩期)에 대한 제문 등이 있다. 권2~7은 시로, 유배지에서 친우들과 수창하거나 경물을 읊은 시들이 많다. 칠언절구 중 <임진피출야음(壬辰被黜夜吟)>은 1652년 관직 생활 중 세 번째로 파출되었을 때의 심경을 읊은 것이다. <봉증천사정총병(奉贈天使程摠兵)>은 1633년 청나라에서 온 사신 가운데 한 사람인 부총관 정룡(程龍)에게 지어 올린 것으로 <황화집(皇華集)>에서 뽑아 실었다는 편자의 주가 있다. 권말에 최석정(崔錫鼎)이 1715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송파집(松坡集) | 이서우(李瑞雨, 1633~1709)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송파(松坡) 이서우(李瑞雨, 1633~170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외손 강박(姜樸)이 소장하고 있던 고본을 저자의 증손 수일(秀一)이 1781년 등사한 후,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편차된 괘인사본으로, 일반적인 문집에 있는 권두의 목록과 서문, 권미의 발문 등이 없으며, 저자의 행력을 밝혀 놓은 묘도문자(墓道文字)나 연보(年譜) 등도 없다. 권1~10은 시(詩)이다. 시는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재소에 따라 묶어 편차하였다. 작품에는 과제로 지은 시에서부터 교유한 이들과 수창한 시, <송정사희(送鄭士希)>, <송족인남환(送族人南還)> 등 벼슬에 있을 때 지은 시, 금강산을 유람한 시 등 모두 2,300여 수의 작품으로 다양하다. 권11은 사부, 명(銘), 잠(箴), 송(頌), 찬(贊), 비답 등이고, 권12는 발(跋), 기(記), 설(說), 서(書) 등이다. 권13은 묘지이고, 권14는 신도비이다. 권15~16은 묘갈이고 권17~18은 묘표, 시장, 행장이다. 권19는 소로 제수된 여러 관직을 사직하는 상소가 대부분이다. 권20은 잡저, 여문과 청암록(靑巖錄)이 부록되어 있다.
▶송호집(松湖集) | 유언술(兪彦述, 1703~177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송호(松湖) 유언술(兪彦述, 1703~17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병주(秉柱)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된 고본을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재직 중이던 1832년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3은 사(辭), 시(詩)이다. 저자는 만년에 접어들수록 <노(老)>, <병(病)> 등의 경우처럼 자신의 일상과 감흥, 신변잡기를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을 다수 창작하였다. 권4는 소(疏), 계사(啓辭), 전문(箋文)이다. 계사 가운데 <병인삼사합계(丙寅三司合啓)>는 1746년에 윤급(尹汲), 민백상(閔百祥) 등과 함께 연명으로 올린 것으로, 소론 인물이 연잉군의 세제책봉과 대리청정을 반대했던 사실과 신임옥사 등을 들어 이들의 추탈관직을 요구하였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 묘표, 행장이고 권6은 잡저이다. <연경잡지(燕京雜識)>은 1749년 11월에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을 때 당시 노정과 북경에서 견문한 사항들을 항목별로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부록으로 민종현(閔鍾顯)이 지은 청시행장(請諡行狀)이 있고 권말에 손자 성주(星柱)가 1832년에 지은 발이 있다.
▶수계집(修溪集) | 이승배(李升培, 1768~183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수계(修溪) 이승배(李升培, 1768~1834)의 문집이다. 장남 규석(奎錫)이 가장을 짓고, 동생 규섭(奎燮)과 저자의 유문을 수습 편차한 뒤 정상리(鄭象履)에게 교정과 함께 행장을 받는 한편 강세륜(姜世綸)에게도 묘갈명을 받아, 손자 기보(耆輔)가 종제 기영(耆泳) 등과 간행 작업을 재개하여 만사, 제문 등의 부록을 증보하고 목록을 합하여 10권 5책으로 완성한 뒤 황만선(黃萬善)과 감정(勘定)을 진행하여 45일 만에 마무리 짓고, 1865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865년 유주목(柳疇睦)이 지은 서와 총목이 있다. 여타의 문집과는 다르게 권별 목록이 권9에 별도로 편차되어 있는 것이 특기할 점이다. 권5는 설(說), 논(論), 잠찬(箴贊), 잡저이다. 설에는 주로 성리학적 주제와 모란과 장기에 대한 내용이 있다. 논에는 상법(相法) 등의 미혹됨을 주장한 <상명복론(相命卜論)>과 <석재론(惜才論)> 등이 있다. 잠찬 중 <돈륜잠(惇倫箴)>에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요약하였다. 잡저로는 <독소문(讀蘇文)>, <계아(戒兒)> 등이 있다. 권말에 1865년 손자 기보가 지은 지(識)가 있다.
▶수곡집(壽谷集) | 김주신(金柱臣, 1661~172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곡(壽谷) 김주신(金柱臣, 1661~17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경종대(景宗代)에 운각인서체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서(序), 설(說), 변(辨)이다. 권2는 서(書)이다. 박세당(朴世堂)에게 ≪남화경(南華經)≫에 대해 묻는 내용, 김창협(金昌協)에게 부친의 지문(誌文)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등이 있다. 권3은 소차(疏箚) 16편이다. 권4는 <선대지문(先代誌文)>으로, 우리나라의 문적(文籍)을 널리 상고하고 선조의 행적을 수집하여 지은 것이다. 권5는 묘지명, 권6은 묘표(墓表), 묘갈추기(墓碣追記), 광기(壙記), 언행록(言行錄)이다. 권7~8은 행장, 제문, 축문, 애사(哀辭)이다. 권9는 <거가기문(居家記聞)>과 <수사차록(隨事箚錄)>으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다. 권10~11은 <산언(散言)>이다. 경전의 구절을 해석하거나 문장을 평하거나 예제(禮制)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 등 다양한 수상(隨想) 180여 조(條)가 실려 있다. 권12는 별고(別稿)로, 시(詩), 부(賦), 책(策), 경의(經義), 잡저가 실려 있다.
▶수곡집(睡谷集) | 이여(李畬, 1645~1718)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곡(睡谷) 이여(李畬, 1645~1718)의 문집이다. 저자는 평소 자신의 저술을 수습해두지 않았고, 또 중년(中年) 이전의 저작들은 집안의 화재로 유실된 것이 많았다. 이후 남은 시문은 종자(從子) 이기진(李箕鎭)에 의해 수습되고 정리되어, 1739년 대구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9권 10책이다. 권1~2는 시(詩)이다. 권1에는 주로 청장년기의 작품 140제 가량이 실려 있는데, 출사(出仕) 이전에 경기와 충청 등지를 다니며 지은 시가 많다. 권3~7은 소차(疏箚)이다. 저자의 소차는 완곡한 표현과 명철한 논리로 인해 숙종(肅宗)이 가납(嘉納)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권8~9는 연주(筵奏)와 수의(收議), 책문(冊文), 교문(敎文), 불윤비답(不允批答), 능지(陵誌), 악장(樂章), 제문(祭文) 등의 응제록(應製錄)이다. 권10~11는 제문(祭文), 서(序), 기(記), 발(跋), 설(說), 논(論), 서후(書後), 상량문, 모연문이다. 권11~16은 묘도문자이다. 권17은 잡저(雜著)로, 대부분이 조상의 산소 자리를 옮기거나 정하면서 생긴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18~19는 편지이다.
▶수당유집(修堂遺集) | 이남규(李南珪, 1855~190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이문원(李文遠)
조선 시대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 1855~190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고본(稿本) 형태의 ≪만수졸사(晩修拙辭)≫ 11책이 남아 있으며, 이를 다시 전사한 ≪수당유집(修堂遺集)≫ 2종이 있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0책으로 되어 있다. 책1에 실린 시(詩) 중에서 영흥잡영(永興雜詠)은 19수로 이루어진 연작시(連作詩)로, 관북(關北) 지방의 백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생활상을 그리고 있는데, 관리의 가혹한 수탈, 원산항 개항으로 인한 곡물가의 폭등, 외국 상인 앞잡이들의 발호 등이 묘사되어 있다. 책1의 <한서문답(寒棲問答)>은 예산에 있는 한서대(寒棲臺)에서 은사(隱士), 사객(詞客), 부도(浮屠), 유협(遊俠), 가객(歌客) 등 17인과 수창(酬唱)한 시들을 모은 것이다. 책2는 서(書)이다. 1906년 여규형(呂圭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조병세(趙秉世)와 민영환(閔泳煥)이 자결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국난(國難)에 임해 울분을 토하고 한탄한 내용이 들어 있다. 책3에 실린 소차(疏箚)는 격변기에 처한 저자의 처세관(處世觀)과 가치관(價値觀)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수몽집(守夢集) | 정엽(鄭曄, 1563~162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몽(守夢) 정엽(鄭曄, 1563~162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손들이 영락하여 거두지 못하였는데, 문인이자 사위인 나만갑(羅萬甲)이 수습하여 편차하고 1661년(현종2)에 나만갑의 아들 나성두(羅星斗)가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있을 때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8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詩), 권2~8은 문(文)이다. 시 중에 오언절구 <몽배자안(夢拜慈顔)>은 모친을 생각하는 애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체의 후반에는 일정량의 만시(挽詩)가 편차되어 있다. 권2에는 제문, 묘지(墓誌), 행장이 실려 있다. 권3은 잡저이다. 이 가운데에 스승 송익필(宋翼弼)의 시집 후서인 <구봉선생시집후서(龜峯先生詩集後序)>가 실려 있고,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정자(亭子)에 대한 기문인 <양성당기(養性堂記)>도 수록되어 있다. <금강록>은 1618년 사위인 나만갑, 이상질(李尙質)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것이다. 권4~5는 소차(疏箚)인데, 벼슬을 사양하는 소차가 많다. 권6은 계사(啓辭)이며, 권7은 교서(敎書)이다. 권8은 서독(書牘)이다. 임진왜란 이후 정치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수북유고(水北遺稿) | 김광현(金光炫, 1584~164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북(水北) 김광현(金光炫, 1584~16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희순(羲淳)이 고본(稿本)을 바탕으로 교감(校勘)ㆍ산정(刪定)하고 연보(年譜)와 부록(附錄)을 합하여 1805년 대구(大丘)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木板)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부록(附錄)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김희순(金羲淳)이 1805년에 지은 발문(跋文)이 있고, 총목(總目) 및 세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시(詩)로서 월과(月課)로 지은 시, 조천(朝天)하러 가거나 임지(任地)로 가는 지인들에게 주는 송시(送詩), 상대의 시에 차운(次韻)한 시, 유배지인 삼수(三水)로 출발하면서부터 사면되어 돌아올 때까지의 시, 순천 부사(順天府使) 시절의 시, 만시(挽詩) 등과 같이 가능한 한 주제별로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권4는 문(文)으로 편지, 송서(送序), 명(銘) 등이고, 부록(附錄)에는 저자가 출생한 1584년부터 신도비를 세운 1753년까지 재록(載錄)된 연보(年譜)를 비롯해 신도비명(神道碑銘), 비명후록(神道碑銘), 묘표음기(墓表陰記),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수북정집(水北亭集) | 김흥국(金興國, 1557~162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북정(水北亭)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화재로 인해 문고(文稿)는 전혀 없이 시(詩) 약간 편만 남아 있던 것을 저자의 6대손 김재련(金載鍊)과 7대손 김호철(金浩喆), 김호일(金浩一) 등이 주축이 되어 수집(蒐集) 편차(編次)하고 송치규(宋穉圭)의 서문(序文)과 송흠대(宋欽大)의 발문(跋文)을 받은 뒤, 황옥(黃鈺)이 써 준 행장(行狀) 등을 첨부하여 1832년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저자의 시(詩)를 모은 시고(詩稿)와 부록(附錄)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卷頭)에 송치규가 1831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目錄)이 있다. 시(詩)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고시, 장단구(長短句)로 이루어진 칠언고시로 총 160제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부록에는 황신(黃慎)의 후손 황옥(黃鈺)이 지은 행장과 신흠(申欽)이 수북정(水北亭)의 팔경(八景)을 읊은 시 및 저자의 시에 차운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 송흠대(宋欽大)와 이지수(李趾秀)가 1832년에 지은 발(跋)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산집(修山集) | 이종휘(李種徽, 1731~1797)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산(修山) 이종휘(李種徽, 1731~179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동직(李東稷)이 가장유고를 수집, 편차하여 1799년 중엽에 운각활자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 중에 기성(箕城)ㆍ포석정(鮑石亭) 등의 회고시(懷古詩), 계림(鷄林)ㆍ백제(百濟) 등의 궁사(宮詞)는 저자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序)에는 우리나라 8개 강줄기를 탐구한 ≪수경(水經)≫을 저술하고 지은 서문, 영유(嶺儒)의 후박(厚朴)한 시들을 모은 ≪운부시휘(韻府詩彙)≫ 등에 대한 서문과 여러 편의 송서(送序)가 있다. 논(論)은 주로 중국 사론(史論)을 모은 것이다. <고사고려유림전론(古史高麗儒林傳論)>에서는 유림이 기자(箕子)와 조선 왕조를 이은 가교였음을 강조하였다. <만필(漫筆)>에는 성몽정(成夢井)ㆍ정몽주(鄭夢周)ㆍ김굉필(金宏弼) 등에 대한 인물평, 자경(自警)의 뜻이 담긴 글,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것에 대해 논한 글 등이 있다. 그 외 <동국여지잡기(東國輿地雜記)> 등 우리 강역(疆域)에 대한 관심과 옛 영토 회복에 대한 의지가 녹아 있는 작품이 많이 실린 역사 자료이다.
▶수색집(水色集) | 허적(許𥛚, 1563~164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색(水色) 허적(許적(示+啇), 1563~1640)의 문집이다. 저자 생전에 ≪상고집(尙古集)≫이라는 이름의 자편(自編) 정고본(定稿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 사후에 후손들이 이를 바탕으로 내용을 보완하고 ≪수색집(水色集)≫으로 바꾸어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61년에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권수에 허균(許筠)이 쓴 서문이 실려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1000여 수의 시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내용은 함경도 고산찰방(高山察訪) 시절에 지은 것, 충청도와 경상도 지방과 금강산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이 주를 이루고, 허균, 김세렴(金世濂), 남이공(南以恭)과 수창한 시가 다수 실려 있으며, 임숙영(任叔英), 이귀(李貴), 이춘원(李春元) 등에 대한 만사(挽詞)가 있다. 권7에는 부(賦), 제문, 기(記)가 실려 있다. 권8에는 <청행삼년상추숭입묘소(請行三年喪追崇入廟疏)>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미에는 허목(許穆)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권필(權韠)과 이안눌(李安訥)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저자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암유고(守庵遺稿) | 박지화(朴枝華, 1513~159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암(守庵) 박지화(朴枝華, 1513~1592)의 문집이다. 저자는 한미한 서얼 출신인 관계로 가장(家藏)된 유고(遺稿)가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 사후(死後) 90여 년이 지난 1683년경 관복재(觀復齋) 김구(金構)가 홍문관에 보관된 사본(寫本)을 발견하고는 이후 용강 현령으로 부임하여 이를 틈틈이 고정(考正)한 뒤 1684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1은 시, 권2는 문이다. 시 중에 <청가(聽歌)>는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이 죽은 뒤에 그의 비(婢) 석개(石介)의 노래를 듣고 지은 시이다. 이밖에 만시(輓詩)와 남을 대신하여 지은 작품 등이 실려 있다. 권2에는 고청거사(孤靑居士) 서기(徐起)의 묘갈명, 이경기(李慶祺)의 묘표, 박민헌(朴民獻)의 행장 등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침술(鍼術)에 정통한 이이(李耳)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부록에는 유사(遺事)를 비롯하여 저자에 대한 만시, 애도시, 시화(詩話)가 실려 있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유ㆍ불ㆍ도에 두루 통하였던 저자의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수암집(修巖集) | 유진(柳袗, 1582~16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암(修巖) 유진(柳袗, 1582~16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유위하(柳緯河)가 종손 성화(聖和)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조덕린(趙德鄰)의 편차를 거쳐 1734년 목판으로 초간한 후, 시문과 연보 등이 증보ㆍ재편되어 1773년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4권, 연보 2권 합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계사이다. 시는 저작 시기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차운시가 많고, 소(疏)는 사직 상소이다. 권2는 모두 서(書)이다.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김염조(金念祖)와 이홍조(李弘祚) 등에게 보내는 것이다. 권3은 기, 발, 잡저, 제문, 지명, 행장, 유사이고 권4는 일록과 일기이다. 그중에서 <임자일록(壬子日錄)>은 임자년, 1612년 1월 사당에 다례를 드리는 일부터 9월 세마인 중형을 장사 지낸 일까지의 기록이다. 연보의 권1은 연보 내용이고, 권2는 부록으로, 행장, 언행록과 만시, 제문 등이다. 연보 말미에 ‘계사칠월병산서원중간(癸巳七月屛山書院重刊)’이라는 간기(刊記)가 적혀 있다.
▶수와집(守窩集) | 백경해(白慶楷, 1765~184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수와(守窩) 백경해(白慶楷, 1765~18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아들 종걸(宗杰)이 정리하고 시문의 편차는 친우 홍직필(洪直弼)을 도움을 받아 산정하여, 증손 이행(彝行)이 박문일(朴文一)의 서문을 받고 가장의 일부 내용을 증보하여 1906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884년 박문일이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제발(題跋), 기(記)이다. 기에는 1796년 태백산 유람기와 정주(定州) 오봉산(五峰山) 사우(祠宇)의 중건에 대한 것 등이 있다. 권4는 기, 서(書)이다. 기는 <북행일기(北行日記)>로 1813년 길주(吉州)로 귀양 갔다 돌아온 130여 일 동안의 기록이다. 서는 종자 종륜(宗倫), 홍직필 등에게 보낸 것으로 그중 <대관서제인정정부서(代關西諸人呈政府書)>는 관서 차별의 부당성을 토로하고 고른 인재의 등용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부록에는 아들 종걸이 기술한 가장과 유사, 홍직필의 신도비명, 신석우(申錫愚)의 신도비명, 종인 주진(周鎭)과 김동건(金東健)의 묘지명 2편 및 증손 이행의 지(識)가 붙어 있다.
▶수은유집(睡隱遺集) | 이홍조(李弘祚, 1595~166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은(睡隱) 이홍조(李弘祚, 1595~1660)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태화(泰和)가 수집ㆍ편차하여 1742년 눌은 이광정(李光庭)의 교감을 거친 후, 1771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광정의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잡저, 제문, 묘지, 행적 등이다. 시(詩)는 대부분 만년작으로 저자가 46세 되던 1640년 이후의 것이다. 만시(挽詩)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수창한 이들은 이재욱(李再煜), 이민순(李民淳), 이호(李皞), 유인배(柳仁培), 이설(李渫), 김단(金煓), 이이송(李爾松), 김시침(金時忱), 권산립(權山立) 등 안동 지역의 인사들이다. 잡저(雜著)의 <김진사묘표개조후기사(金進士墓表改造後記事)>는 1658년 영해부(寧海府)에 소재한 김택(金澤)의 묘소를 정비한 경위를 기록한 글이다. 권2는 부록(附錄)으로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후서(後敍),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 만사(挽詞) 그리고 저자를 안동(安東) 소호(蘇湖)의 서산영당(西山影堂)에 봉안할 때 현손 상정(象靖)이 지은 <서산영당봉안문(西山影堂奉安文)>이 실려 있다.
▶수은집(睡隱集) | 강항(姜沆, 1567~161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수은(睡隱) 강항(姜沆, 1567~1618)의 문집이다. 윤순거(尹舜擧)가 금구 현령(金溝縣令)으로 재직하던 중 저자의 시문과 <간양록> 등을 편차 정리하고 1658년 송시열(宋時烈)의 서문(序文)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원집 4권, 간양록, 부록, 별집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1에는 약 180제(題)의 시가 실려 있다. 권2는 부(賦)와 산문이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지은 하전(賀箋), 송(頌), 상량문, 명(銘) 등이 있다. 권3은 상소, 정문(呈文), 서(序), 기(記), 서(書), 잡저 등이다. 잡저 중 <시화(詩話)>에서는 작시(作詩)보다 주시(註詩)가 더 어렵고, 작문(作文)보다 평문(評文)이 더 어렵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권4는 행장과 비명(碑銘)이다. 별집에는 과제(課製)와 시 12제(題), 부(賦) 2편, 의조(擬詔)와 의표(擬表) 8편, <문무병용장구지도의(文武並用長久之道議)> 1편, <존심양성설(存心養性說)> 1편, 그리고 책제(策題)와 대책(對策) 4편이 실려 있는데, 풍수지리(風水地理), 역대(歷代) 도읍(都邑)의 설치, 참위설(讖緯說) 등에 관한 것들이다.
▶수재유고(壽齋遺稿) | 이곤수(李崑秀, 1762~178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재(壽齋) 이곤수(李崑秀, 1762~1787)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친 성원이 수습 정리한 유문을 1789년 정조의 명으로 내각에서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이 있고, 권마다 권목이 있다. 권1은 응제록으로 왕명으로 지은 글들이다. 시(詩), 표(表), 교지, 불윤비답(不允批答), 축문, 제문, 명(銘)이 있다. 권2~4는 은과록(恩課錄)으로, 권2는 부(賦), 시(詩), 표전이고, 권3은 조(詔), 제(制), 고(誥), 교(敎), 노포(露布), 전책, 집책, 의(義), 서(序), 잠(箴), 명(銘)이며, 권4는 강의이다. 부와 시는 1782~1786년 사이에 과제로 지은 것이 많다. 표전부터 노포까지는 모두 의작(擬作)으로 주로 중국 당(唐)ㆍ송(宋) 때의 고사를 소재로 지은 글들이다. 권8은 부록이다. 정조가 1787년 저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내린 전교와 저자의 부친 성원에게 전한 유지(諭旨), 1788년 서이수(徐理修)를 보내 치제할 때의 어제유제문(御製諭祭文) 그리고 이복원(李福源)이 지은 묘지명, 윤행임(李福源)이 지은 유사가 수록되어 있다.
▶수정재집(壽靜齋集) | 유정문(柳鼎文, 1782~183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선 시대 수정재(壽靜齋) 유정문(柳鼎文, 1782~1839)의 문집이다. 유장원(柳長源)의 문인으로 이병원(李秉遠), 강운(姜橒), 이병하(李秉夏) 등과 교유하였다. 본집은 아들 치유(致游)가 수습(收拾) 정리(整理)하고 교정(校正)까지 마친 정고본(定稿本)을 1900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本集)은 12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문집 전체에 대한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월암(月巖)> 이하는 태백록(太白錄)으로 1828년에 있었던 소백산(小白山), 태백산(太白山) 등지의 유람 때 지은 것이다. <양양금인(襄陽琴引)>은 청백리(淸白吏)로 알려진 유경시(柳敬時)가 소유했던 양양금(襄陽琴)에 대해 읊은 것으로 그 내력을 알 수 있는 자세한 소서(小序)가 있다. 권3~7의 앞부분은 서(書)이다. 김도수에게는 부모의 상(喪)에 27개월 복(服)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의문에 황수일(黃壽一)의 설(說)을 근거로 답한 것이고, 김헌운에게는 서원(書院)의 향사(享祀) 때 홀기(笏記)를 쓰고 삼헌(三獻)하면서 절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점을 여러 가지 설을 들어 설명한 뒤 바로잡기를 바라며 보낸 것이다.
▶수종재집(守宗齋集) | 송달수(宋達洙, 1808~185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종재(守宗齋) 송달수(宋達洙, 1808~18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송병찬(宋秉瓚)과 삼남 송병종(宋秉琮)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02년 13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인행하였다. 권1은 시 55제이다. 이 중에서 <성산별곡번사(星山別曲翻辭)>, <훈민가번사(訓民歌翻辭)>, <주문답번사(酒問答翻辭)>은 정철(鄭澈)의 가사와 시조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고, <화양구곡차무이도가운(華陽九曲次武夷棹歌韻)>은 1844년 여름 화양동의 암서재(巖棲齋)에 머물 때 주자(朱子)의 <무이도가(武夷棹歌)>에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계, 헌의(獻議)이다. 권3~6은 서(書)이다. 이 중에서 1852년 동생 송근수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자가 북한산, 도봉서원, 남한산성 등지를 둘러보면서 보낸 것으로, 유람하는 노정(路程)이 잘 기록되어 있다. 권7~8은 잡저이다. <전례변설(典禮辨說)>은 헌종(憲宗)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축식의 호칭이 논란이 되었는데, 저자가 공자, 정자 등의 학설을 참고하여 변설한 글이다. <석명사전(石名士傳)>은 돌의 견강(堅剛)한 덕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의 글이다.
▶수초당집(遂初堂集) | 권변(權忭, 1651~172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초당(遂初堂) 권변(權忭, 1651~1726)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장수 현감(長水縣監) 헌(攇)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저자의 방5대손 사건(思健)이 186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사건의 부친 제민(躋敏)의 ≪연서유고(淵西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봉구(尹鳳九)가 1765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부(賦)와 시체별 시(詩)로 편차되어 있는데, 대부분 아우 및 친지들과 담담한 어조로 수창한 것이다. 칠언고시의 <두류산(頭流山)>은 백부가 건네준 <두류가(頭流歌)>를 읽은 후에 학이 되어 신선을 만난 꿈을 꾸고 나서 지은 도가풍의 작품이다. 권2는 소장(疏章)으로, 사직 상소들이고 권3은 서(書)가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4는 행장, 비명, 제문 등이고 권5는 서(序), 발(跋), 상량문, 잠(箴), 명(銘)이다. 권6은 부록으로 유사와 일기이다. 일기는 ≪승정원일기≫의 1696년부터 1741년까지의 기사 중 저자와 관련된 기사를 초출하여 구성한 것이다. 권7은 부록이고 권말에 1869년 5대손 사검(思儉)이 지은 지(識)가 있다.
▶수촌집(水村集) | 오시수(吳始壽, 1632~168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촌(水村) 오시수(吳始壽, 1632~1681)의 문집이다. 1932년에 9대손 오재순(吳在淳)에 의해 석판으로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6권, 부록 4권 합 5책이다. 권1~2에는 시(詩) 217제가 실려 있다. 권1 후반부에 1670년 전라도 관찰사 시절의 시작(詩作)인 <완산록(完山錄)>, 1673년 영릉(寧陵)의 천릉(遷陵) 때 지은 시 등과 1680년 삼수(三水) 유배 때 지은 시, 다시 서울로 잡혀와 옥중(獄中)에 있을 때 지은 시가 차례대로 실려 있다. 권3~5는 서(書), 소차(疏箚)이다. 권6은 기(記), 설(說), 관각문(館閣文), 치제문(致祭文), 제문, 잡저이다. 기(記)는 평안 감사 시절 지은 평양 부벽루(浮碧樓)의 중수기 등이고, 설(說)은 분매(盆梅)를 주제로 지은 것이다. 부록 권1에는 교서, <상언초(上言草)>, <격쟁원정(擊錚原情)>, 교지(敎旨)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오석명(吳錫溟)이 지은 것으로 된 <운체록(隕涕錄)>이 있다. 권3에는 이서우(李瑞雨)가 지은 행장, 유명천(柳命天)이 지은 묘지명, 민암(閔黯)과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신도비명, 이서우가 지은 치제문이 있다.
▶수촌집(水村集) | 임방(任埅, 1640~172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수촌(水村) 임방(任埅, 1640~1724)의 문집이다. 1760년대에 저자의 외손인 홍봉한 등에 의해 운각인서체자로 인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3권 6책이다. 권1~5는 시(詩), 권6~12는 문(文)이고, 권13이 부록이다. 시는 약 950여 수의 시가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1651년 12세에 지은 <설후(雪後)>부터 졸년(卒年)인 1724년의 <갑진입춘(甲辰立春)>까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고르게 실려 있다. 상소(上疏)는 25편인데, 이 중에서 <걸체직겸진소회소(乞遞職兼陳所懷疏)>는 숙종이 내린 전위(傳位)의 명에 반대하지 않은 소론(少論)을 처벌하기를 청한 것으로 이후 반대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 상소이다. 계(啓) 중에는 유정기(兪正基)의 처 신씨(申氏)가 행실이 패악하고 훼절(毁節)하였으니 이혼을 허락하라는 내용의 계가 3편이나 된다. 편지는 스승인 우암(尤庵)에게 올린 문목(問目)을 비롯하여 유생들에게 보낸 것들이다. 기(記)는 산음(山陰)의 춘라대(春羅臺)ㆍ용연대(龍淵臺) 등 누대(樓臺)에 대한 것이다. 그 외에 제문, 축문(祝文), 행장, 묘지(墓誌) 등이 실려 있다.
▶수헌집(睡軒集) | 권오복(權五福, 1467~149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 1467~1498)의 문집이다. 저자가 무오사화(戊午史禍)의 화를 입은 후 시문은 불태워지거나 산일(散佚)되었다. 이에 중형(仲兄) 권오기(權五紀)가 중종반정 이후 비안 현감(庇安縣監)으로 부임하여 저자의 시 100여 수 및 잡문 약간 편을 수집하여 1질(帙)을 엮고, 1509년에 강혼(姜渾)의 발문(跋文)을 받아 이를 가장(家藏)하였다. 여기에 후손 권문해(權文海)가 1584년 승지 정여인(鄭汝仁)으로부터 얻은 기우제문 10여 편을 보태어 1585년에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시집 2권ㆍ문집 1권ㆍ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1490년 11월 행대(行臺)의 명(命)을 받고 관동에 갔을 때 지은 시 60여 편이 실린 <관동록(關東錄)> 등이 있다. 권2에는 1496년 야성 현령(野城縣令)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1498년 사화 직전까지의 시 30여 제가 실려 있다. 권3은 잡저이고, 부록에는 김일손(金馹孫)이 지은 <서육현배(書六絃背)>을 비롯하여 <무오사화사적(戊午史禍事蹟)>, <무오당적(戊午黨籍)> 등 사화 관계 기록을 수록하였다.
▶수현집(壽峴集) | 석지형(石之珩, 161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수현(壽峴) 석지형(石之珩, 1610~?)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규서(奎瑞)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성천 부사(成川府使) 정협(鄭悏)의 협조를 받아 170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상ㆍ하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이 1670년에 쓴 서문과 허목(許穆)이 1674년에 쓴 서문이 있다. 권상은 시체별(詩體別) 시와 문(문)이다. 시는 칠언절구가 가장 많고 내용은 대부분 일상생활의 감흥과 근심 등 소소한 감정을 읊은 시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고열행(苦熱行)>은 가뭄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참상과 이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저자의 심정이 장편의 구절 속에 애절하게 드러나 있다. 권하는 문(文)이다. 그중에서 <오위귀감(五位龜鑑)>은 역(易)의 5효가 바로 군위(君位)라서 군도(君道)에 가장 절실하므로 자세히 부연 설명하여 효종에게 바친 것이다. 이 <오위귀감>에 대해 효종은 은혜로운 비답(批答)과 함께 호피(虎皮)를 하사하였다. 권말에 김성호(金性豪)가 1698년에 쓴 발문과 아들 규서가 1709년에 쓴 지(識)가 있다.
▶숙재집(肅齋集) | 조병덕(趙秉悳, 1800~1870)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숙재(肅齋) 조병덕(趙秉悳, 1800~1870)의 문집이다. 유고는 차남 조장희(趙章煕)와 문인 조운제(趙雲躋)가 26권으로 편차하고 교정하여 정고본을 만들었고, 이를 문인 박인화(朴寅和)의 주도하에 8개월 동안 작업하여, 1903년에 함경도 홍헌(洪獻)의 경남재(景南齋)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시 146제가 실려 있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것과 절기의 변화에 따른 소회(所懷)를 읊은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흡초음(吸草吟)> 5수는 흡연의 공(功)과 해(害), 경계할 점 등에 대해 읊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계, 의(議)이다. 권3~18은 서(書)이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차남 조장희에게 보낸 것이 많은데, 학문에 정진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과 공부 방법, 일상 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점 등을 적었다. 홍직필(洪直弼)에게 올린 편지에는 상례(喪禮)의 의문을 묻는 내용이 많고, 한성운에게 보낸 편지에는 스승 홍직필의 문집을 편찬하는 일이 늦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내용과 야소교(耶蘇敎)가 성행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은 만고의 변고(變故)라고 논변한 내용이 있다.
▶순암집(醇庵集) | 오재순(吳載純, 1727~179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순암(醇庵) 오재순(吳載純, 1727~179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정조의 특별한 관심 속에 아들 오희상(吳煕常)과 오연상(吳淵常)이 유고를 재차 산정하고 교정해 놓았다가 1808년에 가서 부(賦) 2수, 시(詩) 289수, 문(文) 174수, 잡지 174조목 총 10권으로 활자 간행하였다. 권1~2는 부(賦), 시(詩)이다. 부는 형제와 헤어져 살게 되는 것을 탄식한 <감리(感離)>와 가까이 살던 종제(從弟)들이 이사갈 때에 권면한 <경리(警離)>이다. 시는 종암정사(鐘巖亭舍)ㆍ옥경루(玉磬樓)에서 지은 것, 관직 생활을 하며 지은 것 등이 있다. 권3은 소차(疏箚)와 응제록(應製錄)이다. 권4에 실린 서(書)의 내용은 안부를 물은 것에서부터 성리학에 대해 논한 편지 등이 있다. 권5는 기(記)이다. 22세 때 계부 등과 금강산 일대를 유람할 때 지은 <해산일기(海山日記)>, 평강 현감 때 지은 <평강산수기(平康山水記)> 등이 있다. 권10은 잡지(雜識) 174조목으로, 역(易)에 대한 설명과 수상(隨想)을 적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 경전 구절을 설명한 것, 불교(佛敎)와 노자(老子)를 비판한 것 등이 있다.
▶순암집(順菴集)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의 문집이다. 1900년 저자의 5대손 안종엽(安鍾曄)이 원집 27권과 연보 부록 등 합 15책을 활자로 인행해 반포하였다. 권1은 시(詩) 196수이다. 시의 내용은 음풍농월(吟風弄月)보다는 실생활에서 느낀 주변의 일을 읊은 내용이나 영사시, 독서시(讀書詩) 등이 많다. 권2~10은 서(書) 225편이다. 성호 선생에게 올린 편지에서는 ≪이자수어(李子粹語)≫의 교정 문제, ≪강목(綱目)≫의 범례(凡例)와 포폄(褒貶)의 문제, 부친상을 치르면서 문의한 상례의 절목, 천주학의 천당지옥설의 허탄함 등을 논하였다. 권10은 동사문답(東史問答)으로, ≪동사강목(東史綱目)≫을 편찬하면서 역사관이나 기타 사론(史論) 등에 문답한 편지 15편을 따로 모아놓았다. 권11~17은 잡저로, <경서의의(經書疑義)>, <제경시말(諸經始末)>, <상헌수필(橡軒隨筆)>, <호유잡록(戶牖雜錄)> 등 성리학이나 사론(史論)에 관계된 내용이 많으며, 천주학을 배척한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 등도 있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글들과 토지, 국방, 향촌의 사회상 등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다.
▶순암집(順菴集) | 이병성(李秉成, 1675~17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순암(順菴) 이병성(李秉成, 1675~1735)의 문집이다. 본집은 형 병연(秉淵)이 산정ㆍ편차한 고본을, 윤자 도중(度重)이 이질 유엄(柳儼)의 협조를 받아 1741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6권,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의현(李宜顯)과 어유봉(魚有鳳)이 1740년에 지은 서와 윤봉조(尹鳳朝)가 1741년에 지은 서가 있가 있다. 권1~4는 시(詩)로,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시기별로 12개의 시록으로 묶여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그중에서 호서록(湖西錄)은 1692년 이후 보령(保寧)에 거주할 때 지은 것들이고, 악하록(嶽下錄)은 1698년 이후에 지은 것들이다. 후교이록(朽橋二錄)은 1712년 9월 이후에 지은 시들이고, 덕봉록(德峯錄)은 1717년 이후 양성 현감(陽城縣監) 시절에 지은 것들이다. 권5는 서(書), 서(序), 기(記), 제발이다. 권6은 제문, 애사, 광지이고 부록에는 형 병연이 1740년에 지은 유사가 실려 있다. 권말에 조유수(趙裕壽)가 1741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유최기(兪㝡基)의 발, 유엄이 1740년에 지은 발이 있다.
▶순재고(純齋稿) | 순조(純祖, 1790~1834)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 1790~1834)의 문집이다. 이름은 이강(李玜)이다. 순조가 승하하고 헌종이 즉위한 뒤 남공철(南公轍) 등은 왕명을 받아 순조와 익종의 어제를 편찬 간행하여 1836년 5월 19일에 진상하자 헌종은 봉모당(奉謨堂), 문헌각(文獻閣), 오처사고(五處史庫), 외규장각(外奎章閣) 등 12곳에 각 1질을 봉안토록 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별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 율부(律賦), 악장(樂章), 치사(致詞), 사(詞)이다. 시에는 숙종, 영조 등 선대왕의 어제(御製)에 차운한 시, 선대왕의 능묘를 오가며 지은 시, 왕실의 누각에서 쓴 제영시가 보인다. <현령(懸鈴)>, <목침(木枕)>, <곡정(曲釘)>처럼 주변의 사물을 통해 세상사를 표현한 작품도 다수 있다. 권5는 잠(箴), 명(銘), 송(頌), 찬(贊)이다. <십팔반기부마기명(十八般技附馬技銘)>은 십팔반무예에 사용하는 병기인 월도(月刀), 제독검(提督劍) 등에 대한 설명이다. 그밖에 영조가 ≪대학장구≫에 쓴 어제서(御製序)에 대한 찬이 있다. 권9는 윤음(綸音)이다. 권15~20은 비(批), 판(判)이다.
▶숭덕재유고(崇德齋遺稿) | 이윤경(李潤慶, 1498~156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숭덕재(崇德齋) 이윤경(李潤慶, 1498~1562)의 문집이다. 본집은 병란에 산실되었는데, 이준경(李浚慶)의 9세손 이기덕(李基德)이 불에 타고 결락된 유고 일본(一本)을 얻어, 이것을 정밀하게 교정하고 다시 선사한 다음 1768년에 자신의 서문을 붙여 ≪숭덕재유고(崇德齋遺稿)≫로 명명하여 가장하였고, 13세손 용태(容泰)가 교정ㆍ재편하여 1914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목록이 있고, 서문은 없다. 권1~2에는 시(詩)와 부(賦)가 실려 있다. 연대를 알 수 있는 간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지은 시기는 분명치 않다. 권3에는 소(疏), 서(書), 제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사제문, 의시, 만사, 제문, 척록, 행장, 묘갈명이 실려 있다. 사제문은 이면유(李勉諭)가 지었고, 의시는 1579년에 저자의 시호를 의논할 때의 것이다. 권미에는 저자의 13세손 이용태(李容泰)가 1914년에 쓴 발문이 실려 있다. 발문 뒤에는 저자의 시문집을 ‘문집(文集)’이라고 하지 않고 ‘유고(遺稿)’라고 한 것은 저자의 시조인 이집(李集)의 ‘집(集)’ 자를 기휘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숭악집(崧岳集) | 임창택(林昌澤, 1682~172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숭악(崧岳) 임창택(林昌澤, 1682~1723)의 문집이다. 저자는 사후에 생전의 효행을 인정받아 1732년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유문과 행적의 정리가 시도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합 2책으로, 권1은 시(詩), 권2~4는 문(文)이다. 시 중에 <전가(田家)>, <전부(田婦)>와 같은 작품은 민생 문제와 관리들의 무절제한 행동에 대해 읊은 것으로 저자의 강개한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해동악부(海東樂府)>는 역대 고사를 악부로 읊은 것으로, 시조(始祖) 설화와 야사(野史)를 소재로 하고 있다. 권2에는 문(文), 서(書), 서(序), 제문, 기문(記文), 명(銘)이 실려 있다. <악령문(岳靈問)>은 송악산 신령에게 송도의 인물이 끊어진 것을 탄식하며 대화하는 내용이다. 수신자의 답서(答書)는 한(漢)나라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의 문장을 평가하면서 자신의 문장관을 밝힌 것이다. 기문으로는 <청학정기(靑鶴亭記)>와 <숭악초려기(崧岳草廬記)>, 1707년 천마산, 성거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등이 실려 있다. 권3은 잡저로서 <양친론(養親論)> 상ㆍ하 2편이 있다.
▶습재집(習齋集) | 권벽(權擘, 1520~159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습재(習齋) 권벽(權擘, 1520~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권필(權韠)이 시만을 정선(精選)하여 4권으로 편차하고 1608년에 이정귀(李廷龜)와 최립(崔岦)의 서(序)를 받아 공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47년에 저자의 증손 권집(權諿)이 자신의 발문을 붙여 1653년(효종4)에 4권 1책으로 간행한 목판 중간본이다. 본 시집은 원집 4권, 보유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1~4에는 약 3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고 보유에 24수의 시가 있다. 시 중에 인물이나 배경, 시의 출전에 대한 주(註)가 달려 있는데, 저자의 자주(自註)로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편차를 담당한 권필(權韠)의 주(註)인 듯하다. 권2의 시 가운데 <차이견발숙령관(次而見發肅寧館)> 등은 1572년 조사(詔使) 한세능(韓世能), 진삼모(陳三謨)가 나오자 정유일(鄭惟一),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원접사 정유길(鄭惟吉)의 종사관이 되었을 때 지은 시이다. 권4는 말년의 작품으로 생일 때마다 전년에 지은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이 많다. 이밖에 임진란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시도 많다.
▶습정집(習靜集) | 송방조(宋邦祚, 1567~161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습정(習靜) 송방조(宋邦祚, 1567~161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과 유묵은 거의 수십 권이 되었으나 여러 차례 병화를 겪는 동안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후 11대손 좌헌(左憲)이 그의 조부 지평공(持平公)이 집일한 고본을 후손 병순(秉珣)의 교정을 거쳐 1907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각 권의 앞에 목록이 있다. 권수에는 1907년에 송병순(宋秉珣)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습유이고 시에는 저자의 자주가 간간이 붙어 있다. 권2는 소(疏), 서(書), 계(啓)이다. 권3은 기(記), 발(跋), 설(說), 잡저, 제문, 묘문, 비음기(碑陰記)이다. 그중에서 <서신기(書紳記)>는 조헌(趙憲)을 따라 왜적과 싸우다가 금산(錦山)에서 순절한 이득부(李得夫)의 인품과 충절을 기리는 내용이고<유향산일기(遊香山日記)>는 1610년에 승문원 저작으로 의주(義州)에 갔다가 귀로에 묘향산 등지를 유람한 기록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을 비롯해 묘지명, 유사, 제문, 만사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1907년 후손 송태헌(宋台憲)과 11대손 송좌헌(宋左憲)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시남집(市南集) | 유계(兪棨, 1607~1664)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후기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44)의 문집이다. 서인(西人)의 중심 세력이었던 저자의 문집은 문인 윤증(尹拯)이 박세채(朴世采)와 상의를 거쳐 1688년 문집의 편차와 교정을 끝내고 저자의 계자(季子)인 유명흥(兪命興)이 169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4권, 부록 3권 합 11책과 별집 9권, 부록 합 4책으로 총 15책이다. 원집 권1~7은 시로 약 80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임천(林川) 등지에 유배되어 있던 때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강학(講學)에 힘쓰던 시기의 작품이 많다. 권8~11은 교서(敎書), 소차(疏箚)와 계사(啓辭)이다. 권12~13은 서간문이다. 스승인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으로부터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윤순거(尹舜擧), 윤문거(尹文擧), 윤증 등과 주고받은 80여 편이 실려 있다. 권14~17은 잡저이다. 지역 특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폐단에 대한 글과 삼경(三經)에 대한 저자의 의문점이나 연구 내용을 기록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별집은 후손들이 원집을 편차한 윤증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발간한 것으로 윤증 일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편차되었다.
▶시암집(是庵集) | 임화세(任華世, 1675~173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시암(是庵) 임화세(任華世, 1675~1731)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만제(萬濟)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9년 남경희(南景羲)의 교감을 받은 고본을, 저자의 사손 기종(箕鍾) 등이 부록 등을 증보ㆍ재편하여 저자의 외현손 이재목(李在穆) 등의 교감을 받아 186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남경희가 1809년에 지은 서(序)와 이만각(李晩慤)이 1868년에 지은 후서가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체나 저작 연도에 관계없이 편차되어 있고 경주의 명승고적을 소재로 읊은 시가 상당하다. 그중에서 <차서사가거정어문정세겸계림십이영(次徐四佳居正魚文靖世謙雞林十二詠)>은 1705년 경주 낭산(狼山) 남쪽에 우거할 때 지은 것으로 과거 번성했던 영화를 뒤로 하고 황폐해진 고도(古都)의 유허에서 느끼는 감회를 전현의 운을 빌려 풀어 놓았다. 권3은 기(記), 제문(祭文), 애사, 행장(行狀)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 유사, 묘갈명, 제문 등이고 권말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허전(許傳)의 발(跋)과 외현손 이재목의 지(識)가 있다.
▶시암집(時庵集) | 조상우(趙相禹, 1582~165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시암(時庵) 조상우(趙相禹, 1582~1657)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조상규(趙橡圭)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45년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845년에 지은 송내희(宋來煕)의 서(序)가 실려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그중에서<헌수가(獻壽歌)>와 <감로천(甘露泉)>은 어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시인데, 1608년에 조사(詔使)가 서울에 왔을 때 이 시를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고 한다. 권2는 봉사(封事)와 서(書)이다. 특히<을축봉사(乙丑封事)>는 원종(元宗)을 추숭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하는 내용으로 1625년에 올린 것이다. 권3~4는 서(書)이고 권5는 잡저(雜著), 서(序), 잠(箴), 찬(贊),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지(墓誌), 묘표이다. 그중에서 잡저의 <명육남설(名六男說)>은 여섯 아들의 이름과 자(字)를 짓게 된 동기를 기술한 것이다. 권6~7은 부록으로 유사와 부기된 매곡공지, 지(識) 및 부록 문자이다. 권말에는 1845년에 6대손 조한규(趙韓圭)가 지은 발(跋)이 있다.
▶시암집(時庵集) | 남고(南皐, 1807~1879)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시암(時庵) 남고(南皐, 1807~1879)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효술(孝述)은 김흥락(金興洛)에게 행장을 받고, 이돈우(李敦禹)에게 묘갈명을, 1895년경에는 김도화(金道和)에게 묘지명을 받아 유적을 정리한 후, 1892년경 김양진(金養鎭)에게 초고의 교감을 위촉하였으며, 1900년 저자의 문인 남계환(南啓煥) 등의 도움을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5권 8책이다. 권수에 총목이 실려 있다. 권7~9는 잡저로 곤면록(困勉錄)이다. 이는 ≪중용장구≫의 애써서 알고 힘써 행한다는 ‘곤지(困知)’, ‘면행(勉行)’에서 딴 이름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사이에 보고 들은 것을 차록한 것이다. 권10~11은 잡저이다. <축묘설(畜猫說)>은 고양이와 쥐의 관계를 빗대어 소인과 군자를 풍유한 것이다. <고죽설(枯竹說)>은 풍상(風霜)이 내리칠 때도 꺾기지 않던 대나무가 우로가 적게 내리자 말라 죽어버린 일을 계기로 그 원인에 대한 감회를 적은 것이고, <양죽설(養竹說)>은 대나무를 기르는데 칡덩굴이 휘감아 자라지 않자 이를 없앤 일화를 통해 소인과 군자의 관계를 규정한 것이다. 권말에는 유지호(柳止鎬)의 발(跋)이 있다.
▶시와유고(是窩遺稿) | 한태동(韓泰東, 1646~168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시와(是窩) 한태동(韓泰東, 1646~1687)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덕필(德弼)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39년 성산(星山)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으며, 목록 말미에 간기(刊記)가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이다. <지일부(至日賦)>는 1667년 동짓날에 화산(花山) 별서에서 일신할 것을 다지며 짓고 이듬해에 후지(後識)를 붙여 관성(觀省)의 자료로 삼고자 한 것이고, 시는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3은 소계(疏啓)로, 대부분 사직소(辭職疏)이며, <의상소(擬上疏)>는 전라 도사 재직 때 도사의 주요 임무인 연분(年分)과 고강(考講)에 대한 효율적 실시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권4~5는 서(序), 기(記), 제문(祭文), 책문(策問), 상량문(上梁文), 행장(行狀) 등이다. 권6~7은 과체(科體)로서, <기형제칠정부(璣衡齊七政賦)>는 1669년 정시에서 장원한 것이고, 권8은 부록으로 제문(祭文), 만사(挽詞), 의시와공사전(擬是窩公史傳) 등이 실려 있다.
▶식산집(息山集) | 이만부(李萬敷, 1664~1732)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문집이다. 1813년 정종로(鄭宗魯)와 유림이 북장사(北長寺)에서 교정을 마치고 정본을 만들어 원집 22권, 별집 4권, 속집 10권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시(詩)로는 영남을 유람하고 도남 서원(道南書院)에서 강학하던 시기에 지은 것, 곤궁한 생활로 상주(尙州)를 떠나 화음(華陰)으로 분가하면서 도중의 산천과 지리, 고사 등을 기술한 것 등이 있다. 그 외에 악부체(樂府體), 이백(李白)의 청련체(靑蓮體) 등 잡체(雜體)를 모방한 시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편지는 부친, 숙부, 형제들과의 편지와 남인과 소론(少論)의 학자 및 문인들과의 편지가 실려 있는데, 내용은 대부분 학문에 관한 것, 가례(家禮) 등 의례에 대한 문답이다. 서문 중 <사례종요서(四禮綜要序)>, <역통서(易統序)>, <노여론서(魯餘論序)>, <사서강목서(四書講目序)>는 모두 자신이 편찬한 책의 서문이다. 별집 4권은 <누항록(陋巷錄)>과 <재진록(在陳錄)> 등 별록(別祿)을 모은 것인데, 저자가 거주하거나 유람한 지역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속집 10권은 원집과 유사한 양식으로 편차되어 있다.
▶식암유고(息庵遺稿) | 김석주(金錫胄, 1634~1684)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식암(息庵) 김석주(金錫胄, 1634~16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1685년~1689년 사이 편차(編次)가 이루어졌고 곧 교서관인서체자(校書館印書體字)로 인행(印行)되었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23권과 보유(補遺), 별고(別稿) 2권으로 모두 1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賦) 가운데 <서기부(鼠機賦)>는 부귀영화를 탐하다 주벌(誅罰)을 당하는 벼슬살이를, 미끼를 탐하다 덫에 걸린 쥐에 비유한 내용이다. 시(詩)는 만시(挽詩), 차운시(次韻詩), 증시(贈詩), 송별시(送別詩), 동래 부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시 등 내용이 다양하다. 서(序) 중에 <해동사부서(海東辭賦序)>는 저자가 우리나라 사부(辭賦) 57편을 뽑아 엮고 지은 것이다. 전(傳)으로 <곽장군전(郭將軍傳)>이 있는데, 이는 곽재우(郭再祐)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활약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잡저(雜著) 중에서 <의훈(醫訓)>은 수척한 몸을 걱정하는 이에게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으로 살찌우라는 의원의 충고를 적은 것이고, <답사문(答士問)>은 진정한 선비의 기풍(氣風)에 대해 논한 글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식암집(息庵集) | 황섬(黃暹, 1544~161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식암(息庵) 황섬(黃暹, 1544~161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약간권(若干卷)이 가장(家藏)되어 있었다. 본집에 실려 있는 이익(李瀷)이 지은 행장(行狀)의 내용으로 보아, 18세기 중반에는 이미 저자의 유고가 수습 정리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1769년 원집 5권, 연보(年譜) 합 3책을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며, 권두에 1769년에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서문(序文),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 권3~4는 문(文), 권5는 부록(附錄)이다. 권1~2는 주로 지인의 시축(詩軸)이나 누대(樓臺)의 현판의 시에 차운한 시, 송별할 때 지어준 시(詩) 등이고, 권3~4에는 비답(批答), 소(疏),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찬(贊), 전문(箋文), 책문(冊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행장(行狀)이 있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이익이 지은 행장(行狀), 황시(黃是)가 지은 묘지(墓誌), 제문(祭文), 우곡서원(愚谷書院)에 봉안할 때 지은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 만사, 신도비명이 있고, 마지막에 1708년에 우곡서원에 봉안될 때까지를 기록한 연보가 있다.
▶식우집(拭疣集) | 김수온(金守溫, 1409~148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김정상(金正相)
조선 초기 식우(拭疣) 김수온(金守溫, 1409~148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성종(成宗)의 명으로 교서관(校書館)에서 인행(印行)되었으나 화재로 전질(全帙)이 거의 없어지고, 권2, 권4만 낙질본(落帙本)으로 전하였다. 그 후 1673년 14대손 김우준(金禹濬)이 ≪속동문선(續東文選)≫ㆍ≪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및 가장(家狀) 등에서 모은 저자의 시문을 필사하여 낙질본과 함께 1책으로 엮었다. 권2에는 기(記) 35편이 실려 있고 <동인시화서(東人詩話序)>는 필사(筆寫)로 추기(追記)되어 있다. 기는 대부분 절이나 누각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세조대의 고승인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의 동생인 관계로 회암사(檜巖寺)ㆍ상원사(上元寺)ㆍ정인사(正因寺) 중창기(重創記) 등 사찰 관계 기록이 많다. 권4에는 부(賦) 2편과 시 200여 제가 실려 있다. 특히 1456년 명나라 사신 진감(陳鑑)을 맞이하며 지은 <희청부(喜晴賦)>로 명나라에까지 명성이 널리 퍼져 김희청(金喜晴)이라 불렸다 한다. 보유에는 시ㆍ문이 각체별(各體別)로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14대손 김우준의 경제식우집후(敬題拭疣集後)가 실려 있다.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 김집(金集, 1574~165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문집이다. 이 문집은 돈암서원(遯巖書院)을 중심으로 문인(門人)들이 주도하여, 1710년 여름 유고(遺稿) 15권 7책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1에는 38수의 만시(挽詩)와 병중에 지은 시 등이 있다. 권2는 <차구봉시(次龜峯詩)> 180여 수로 노년에 스승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시에 차운한 시를 모아 놓은 것이다. 권3은 소(疏)이다. 대부분이 사직소이다. 권4는 <경연주사(經筵奏辭)> 2편이다. 권5는 잡저(雜著) 9편이다. 제문, 제사(題辭), 서(序) 등이 들어 있다. 권6~7은 서(書) 100여 편이다. 권6에 부친 김장생(金長生), 이시백(李時白), 김상헌(金尙憲) 등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 권7에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이유태(李惟泰) 등 문인에게 보낸 편지를 인물별로 모아 놓았다. 권8~10은 묘갈(墓碣), 묘지(墓誌), 묘표음기(墓表陰記)이다. 권13은 <고금상례이동의(古今喪禮異同議)>이다. 권14~15는 부록이다. 성리학과 예제(禮制)에 관한 내용이 많아 17세기 예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암집(愼庵集) | 이만각(李晩慤, 1815~187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신암(愼庵) 이만각(李晩慤, 1815~1874)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인 이재기(李載基)와 외종제 유지호(柳止鎬)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한 고본(稿本)을, 저자의 외종질 유연박(柳淵博)과 족자 중철(中轍) 등이 유정호(柳廷鎬)의 산정 교감을 받고 만사와 제문, 가장과 행장 등을 부탁하여 받은 뒤 부록으로 붙여 10권 5책으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2~6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대체로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성리학 내지 전적에 대한 주석 및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거나 시문에 대한 품평을 담고 있다. 권7은 잡저, 자설, 서(序), 기(記)이다. 자설은 이건(李건(王+建))의 자(字)를 덕표(德杓)로, 권상고(權相皐)의 자를 순해(舜諧)라고 짓게 된 이유를 적은 것이다. 서는 김진화(金鎭華)의 ≪탄와집(坦窩集)≫과 임화세(任華世)의 문집에 붙인 서문 등이 있고, <송이법조책오흥서(送李法祖責吳興序)>는 임천서원이 훼철되자 항소한 일로 오흥(吳興)으로 유배 가는 이문직(李文稷)을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권미에 저자의 족자 중철이 지은 발(跋)이 있다.
▶신야집(新野集) | 이인행(李仁行, 1758~183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신야(新野) 이인행(李仁行, 1758~1833)의 문집이다. 현재 저자의 문집으로 활자본 ≪신야선생문집(新野先生文集)≫이 전하는데, 서발문이 없어 명확한 간행 경위를 알 수 없다. 다만 부록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후대의 것인 유치명(柳致明)의 행장이 씌어진 1836년 이후에 목활자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간략한 총목록이 실려 있고, 작품 제목을 나열한 목록은 보이지 않는다. 권4는 서(書)이다. 부친에게 보낸 편지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것에는 1792년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5는 잡저, 서(序)이다. 권12~13은 서천록(西遷錄) 상ㆍ하와 소청록(疏廳錄)이다. 서천록은 유배시 기록으로, 권12에 서천록 상은 1802년 2월 2일 강세륜(姜世綸)에게 이가환의 무리로 탄핵당한 일부터 유배지인 위원에 있던 그해 12월까지의 기록이며, 권13에 서천록 하는 1803년 1월부터 석방되어 1805년 4월 집에 돌아올 때까지의 기록이다. 권14는 부록으로 유치명이 1836년에 쓴 행장과 박시원(朴時源)이 쓴 유사, 아들 연호(淵浩)가 쓴 가장이 있다.
▶신와집(愼窩集) | 정재경(鄭在褧, 1781~185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 1781~1858)의 문집이다. 증손 유원(逌源)이 본집과 ≪조암집≫의 서문을 송병선(宋秉璿)에게 부탁하였고, 두 문집이 목활자와 동활자가 섞여 있는 동일 활자본인 점 등으로 인해 ≪조암집≫이 간행된 1903년 즈음에 본집 또한 현손 운목(雲穆)이 함께 인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송병선이 1900년에 지은 서문 및 자서(自序)가 있고, 총목이 있으며 권별로 상세 목록이 있다. 권2는 소(疏), 서(書)이다. 유생들을 대신하여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순절한 세 충신에 대한 부조지전(不祧之典)을 청하는 소가 있다. 홍직필에게 1847년 보낸 편지는 선조인 정철(鄭澈)의 ≪송강집(松江集)≫ 속집(續集) 간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선조의 사적(事蹟)을 소장하고 있다면 빌려 줄 것을 청하며 보낸 것이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ㆍ잠(箴)ㆍ찬(贊), 혼서(婚書), 상량문(上樑文), 축사(祝辭)이다. 서는 친우 서병순(徐秉淳)이 주(酒), 색(色), 재(財)의 ‘삼불혹(三不惑)’을 써서 붙인 것을 보고 당부의 말을 한 것 등이다.
▶신재집(信齋集) | 이영익(李令翊, 1738~178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신재(信齋) 이영익(李令翊, 1738~1780)의 문집이다. 본집은 불분권 2책의 필사본으로 시 1책, 문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1의 <동국악부(東國樂府)>는 악부체(樂府體) 영사시로 단군신화부터 고려말 고사까지 신화와 야사(野史)에서 주로 소재를 택하여 자신의 역사관을 가지고 기술하였는데, 편마다 서(序)를 두어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밖에 시의 내용은 가문의 불행과 가난한 집안 살림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학문에 힘쓰기를 권면한 것들이 많다. 책2는 문(文)으로 잡저, 서(書), 제문, 애사(哀辭), 묘도문(墓道文)이다. 잡저로는 논설(論說)과 서(序), 기(記), 명(銘) 등 다양한 문체의 글이 고루 들어 있다. 풍수지리의 허구성이나 불교 윤회설(輪廻說)의 황당함, 음양가(陰陽家)의 궤변, 독자적인 사상 없이 남의 문장(文章)만 모방하는 폐단 등을 변론한 내용이 많다. 편지는 이충익(李忠翊), 신대우(申大羽), 유곤(柳混)에게 보낸 것들인데, 경전을 고증한 것, 양명학(陽明學)의 시비득실을 논한 것,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로된 시가 좋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문과 애사는 대부분 친인척을 대상으로 하였다.
▶심석재집(心石齋集) | 송병순(宋秉珣, 1839~1912)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순국지사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문집이다. 아들 증헌(曾憲)과 사방 사우(士友)들이 ≪학문삼요(學問三要)≫, ≪사례축식(四禮祝式)≫ 등과 유집(遺集) 14권 및 유서(遺書)를 모아 10여 책으로 선사하여 가장하고, 언행의 대개를 기록하여 연보를 편찬하여 35권 15책의 목활자본 ≪심석재선생문집≫이 전하고 있는데 서발문 등의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간행 경위를 알기가 어렵다. 다만 말미에 ‘장계술고정사개간(長溪述古精舍開刊)’의 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청(山淸) 장계(長溪)의 술고정사(述古精舍)에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35권 1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권마다 권목(卷目)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차운시와 경치를 보고 감회를 적은 시가 많다. 권4는 소(疏)로 1865년 만동묘의 복원을 청하기 위해 지은 <의청복만동묘소(擬請復萬東廟疏)>이다. 권5~11은 서(書)이다. 세도(世道)가 점점 무너지는 것, 갑신정변, 단발령 등 이적(夷狄)의 풍습으로 변하는 것을 한탄한 것 등이 대부분이다. 권12~14는 잡저(雜著)이다. 권말에 장계 술고정사에서 개간(開刊)했다는 간기가 있다.
▶심암유고(心庵遺稿) | 조두순(趙斗淳, 1796~1870) | 권책수 : 30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심암(心庵)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의 문집이다. 본집은 30권 30책의 괘인사본으로 전사경위는 불분명하나 저자가 졸한 지 얼마 안 되어 본집의 체재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권1~10은 시(詩)이다. <알궐리사(謁闕里祠)>, <입해인(入海印)> 등 10대 때에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부친의 임소에 따라가서 지은 것,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연경(燕京)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 예조 참판으로서 태조의 영정 구본을 가지러 함경도 영흥(永興)의 준원전(濬源殿)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 동지춘추관사로서 ≪순조실록(純祖實錄)≫의 봉안을 위해 태백산 사고(史庫)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 등이 있다. 권17에 실린 연주(筵奏)에는 성학(聖學)에 힘쓸 것, 재용(財用)을 절약할 것 등 26조가 실려 있다. 권28에는 서(序) 42편이 있는데, 이 중에서 <서신사록서(書辛巳錄序)>는 의원 임덕경(任德卿)이 1821년 전염병이 돌 때 침술로 많은 사람을 구한 사실을 기록한 글에 써 준 것이고, <풍요삼선서(風謠三選序)>는 유재건(劉在建) 등이 19세기 초중반에 활약한 위항시인(委巷詩人)의 시를 모아 엮은 ≪풍요삼선≫에 쓴 서문 등이 있다.
▶십성당집(十省堂集) | 엄흔(嚴昕, 1508~154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내각문고
조선 중기 십성당(十省堂) 엄흔(嚴昕, 1508~1543)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아들인 엄인술(嚴仁述)이 정리하여 1585년(선조18)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간본(刊本)이 대부분 유실되었던 듯하다. 이 초간본이 유전(流傳)되다가 일인(日人)들에 의해 전사(傳寫)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상하(上下) 2권, 부록 합 2책이다. 권 상(上)에는 부(賦), 사(辭), 전(箋), 잠(箴), 명(銘), 송(頌)이 있고 변(辨)으로는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 두 사람의 사론(史論)을 평하고, 유종원의 사론에 동조하는 <한유논사변(韓柳論史辨)>이 있다. 그리고 시(詩) 137제(題)가 실려 있다. 추수를 마쳐도 먹을 양식이 없는 백성의 질고를 다룬 애민시(愛民詩),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종사관이 되어 원접사 소세양(蘇世讓)의 시에 차운한 시, 병풍(屛風)에 제(題)한 시 등이 실려 있다. 권 하(下)에는 시 167제가 실려 있다. 대동강ㆍ부벽루ㆍ백상루 등의 명승지를 다니면서 지은 시와 응제시(應製詩) 등도 실려 있다. 부록에는 갈문(碣文), 지명(誌銘), <십성당명(十省堂銘)>, <십성당설(十省堂說)>이 실려 있다.
▶십청집(十淸集) | 김세필(金世弼, 1473~153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의 문집이다. 1627년 이식(李植)이 충주 목사(忠州牧使)로 나갔을 때, 저자가 향사(享祀)된 검암서원(劍巖書院)을 참배하고, 증손 김인룡(金仁龍)의 집에서 유고 1책을 얻어 교정ㆍ편집하여 ≪십청선생유고(十淸先生遺稿)≫ 1책을 정고(定稿)하고, 1629년 자신의 서문을 붙여 후손가에 전하게 하였다. 그 후 1748년 7세손 김광악(金光岳)이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신도비명 등 부록 문자를 합하고 민우수(閔遇洙)에게 발을 얻어 4권 2책을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하였다. 권1~3은 본집으로 각 체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연행록(燕行錄)≫ 및 ≪관동록(關東錄)≫ 등에서 발췌한 것도 있다. 산문은 서(序)ㆍ설(說)ㆍ명(銘)ㆍ묘표(墓表)ㆍ행장(行狀) 순으로 실려 있다. 권4는 부록이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趙光祖)를 사사(賜死)하자, 임금의 처사가 부당하다고 규탄하다가 장배(杖配)되었고, 이후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후진을 교육한 저자의 여러 작품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쌍계유고(雙溪遺稿) | 이복원(李福源, 1719~179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쌍계(雙溪) 이복원(李福源, 1719~179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간행되지 못한 채 현재까지 필사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권1에는 183제의 시가 실려 있다. 금강산 및 관동(關東) 일대를 유람할 때에 지은 것 등 기행시(紀行詩)가 많은 편이다. 그 외 만사(挽詞),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60세에 심한 안질(眼疾)로 인해 저술과 독서를 폐한 채 살았는데, <행재가(幸哉歌)>에서는 실명(失明)을 편히 받아들이며 한 눈으로나마 희미하게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한편 시의 끝부분에는 <몽작(夢作)>, <몽중영우(夢中詠雨)> 등 꿈과 관련된 작품 10편이 실려 있다. 권2~10은 산문으로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잡저 가운데 <설악왕환일기(雪嶽往還日記)>는 1753년 재종제 이조원(李祖源)과 설악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행 일기이다. 또 운법(韻法)에 대한 <칠언쌍운변(七言雙韻辨)>, 왕명으로 궁내에 있는 <장경교(長慶橋)> 등 다섯 개의 다리 이름에 대해 쓴 짧은 글이 있으며, 끝에는 <몽제약사(夢題藥肆)> 등 꿈과 관계된 4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쌍매당협장집(雙梅堂篋藏集) | 이첨(李詹, 1345~140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이석찬(李錫瓚),김상기(金尙基)
고려 말 조선 초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1345~140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아들 이소축(李小畜)에 의하여 태조ㆍ세종 연간에 편찬ㆍ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의 저본은 권1~2는 후손 이석찬씨 소장 필사본, 권22~25는 김상기씨 소장 초간본의 복사본이다. 권1~14는 시(詩), 권15는 사(辭)ㆍ부(賦)ㆍ설(說), 권16~25는 문(文)이다. ≪한국문집총간≫의 권1에는 186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2는 <관광록(觀光錄)>으로 1400년 계품사(啓稟使)로, 1402년 하등극부사(賀登極副使)로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후반부에는 하륜(河崙)과 차운한 시가 많다. 권22에는 잡저 46편, 책문(策問) 2편, 책(冊) 2편이 실려 있다. 잡저에는 삼국 시대의 역사ㆍ제도에 관한 저자의 식견 등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밖에 수 편의 화상찬(畫像贊)과 화상자찬(畫像自讚)ㆍ객대(客對) 등이 실려 있다. 권23에는 원(原), 논(論), 전계(傳契), 문(文)이 실려 있는데, <저생전(楮生傳)>은 가전 작품(假傳作品)이다.
▶쌍백당유고(雙柏堂遺稿) | 임광택(林光澤, 1714~179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쌍백당(雙柏堂) 임광택(林光澤, 1714~1799)의 문집이다. 생전에 어느 정도 정리해 두었던 원고를 아들 흥관(興寬)이 초선하여 정리하고, 손생 김진항(金鎭恒)이 전사한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저자가 생전에 지은 자서가 있으며 목록은 없다. 권1~3에는 1763년부터 말년 무렵까지의 시(詩)들이 시체와 상관없이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투계(鬪鷄)>는 투계판에서 싸우는 싸움닭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며, <절사장발인공출홍제교즉사감분(節使將發因公出弘濟橋卽事感憤)>은 청나라에 가는 사신의 모습을 보고 수치를 잊고 공언(空言)을 일삼는 지배층과 야만족에게 굴복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잡영(雜咏)>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금전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인간이 짐승으로 타락하는 것이고, <조향유(嘲鄕儒)>는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벼슬인양 거만을 떠는 시골 선비들의 행태를 풍자한 것이다. 권4는 문(文)이다. <제귀매문(祭鬼魅文)>은 저자가 이사온 후 집에서 창문을 두드리고 등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자 그 집에 사는 귀신에게 각자 유명(幽明)의 도리를 따르자고 달래는 내용이다.
▶쌍백당집(雙栢堂集) | 이세화(李世華, 1630~170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쌍백당(雙柏堂) 이세화(李世華, 1630~17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정진(廷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종자 홍주 목사 정제(廷濟)가 1721년에 홍주에서 활자로 초간한 후, 정제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1723년에 초간본을 정사하여 대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723년에 조태억(趙泰億)이 지은 서와 총목이 있다. 권1은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는 고향에 잣나무 두 그루를 심고 세한송백의 정신을 표현한 <제수식쌍백(題手植雙柏)>, 유배지에서의 비감을 읊은 <용만적소(龍灣謫所)>, 파주의 화석정에서 탈진의 삶을 그리며 읊은 <화석정(花石亭)> 등이 있다. 권2는 소와 소차로서 대부분 사직계이고, 겨울가뭄으로 인한 참담한 상황을 설명하고 ‘보양성궁(保養聖躬), 협화인심(協和人心), 절성용도(節省用度), 수치융무(脩治戎務)’ 4조를 진달한 <평안병사진소회소(平安兵使陳所懷疏)>, 인현왕후의 폐위를 거두어 줄 것을 극간한 <기사진신소(己巳搢紳疏)> 등이 있다. 권말에는 이정제가 1721년에 쓴 발과 1723년에 쓴 속발이 있다.
▶쌍봉집(雙峯集) | 정극후(鄭克後, 1577~165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쌍봉(雙峯) 정극후(鄭克後, 1577~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4대손 정상문(鄭相文)이 1708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6대손 동필(東弼) 등이 1809년 경주(慶州)의 하계정사(霞溪精舍)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서 문묘향사지(文廟享祀志)가 합편되어 있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권두에 이형상(李衡祥)이 1708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이고, 권2는 소(疏)와 서(書)이다. 그중에서<청보호능침수졸소(請保護陵寢守卒疏)>는 선릉 참봉(宣陵參奉) 때에 올린 것으로, 침삭된 능졸을 보호할 것과 능향이 정지된 잘못을 논하였다. 권3은 잡저이다. 그중에서 <서장선생우주요괄첩후(書張先生宇宙要括帖後)>는 장현광의 사후에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등사하고 선생의 표제를 모아 가전하려 하면서 선생을 추모하며 지은 지(識)이다. 권4는 서(序), 기(記), 명(銘), 송, 상량문, 축문, 제문, 비명, 묘지, 묘갈이다. 권5는 부록으로 행장, 묘지명, 묘갈명, 제문, 만사이고, 끝 부분에 ‘숭정후삼기사하계정사개간(崇禎後三己巳霞溪精舍開刊)’이라는 간기(刊記)가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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