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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아]서명[문집총간] : 224종(가격 직접 입력)

 
[아]서명[문집총간] : 224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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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아 : 224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아]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아001 아계유고(鵝溪遺稿) 이산해(李山海, 1539~1609) 3[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02 악록집(岳麓集) 허성(許筬, 1548~161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03 안락당집(顔樂堂集) 김흔(金訢, 1448~1492) 2책 1개 서강대,충남대,국립중앙도서관
아004 안분당시집(安分堂詩集) 이희보(李希輔, 1473~154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05 안와유고(安窩遺稿) 홍낙인(洪樂仁, 1729~1777)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06 안촌집(安村集) 배응경(裵應褧, 1544~1602)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07 안촌집(安村集) 박광후(朴光後, 1637~1678)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008 암서집(巖棲集) 조긍섭(曺兢燮, 1873~1933) 17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09 야계집(倻溪集) 송희규(宋希奎, 1494~155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0 야곡집(冶谷集) 조극선(趙克善, 1595~1658)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11 야당유고(野堂遺稿) 유혁연(柳赫然, 1616~168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2 야당유고(野塘遺稿) 김남중(金南重, 1596~1663)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13 야은일고(隱逸稿) 전녹생(田祿生, 1318~137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4 야은집(冶隱集) 길재(吉再, 1353~141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5 야촌집(野村集) 손만웅(孫萬雄, 1643~1712)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16 약봉유고(藥峯遺稿) 서성(徐, 1558~1631) 2책 1개 서정철(徐廷徹)
아017 약산만고(藥山漫稿) 오광운(吳光運, 1689~1745)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18 약재집(約齋集) 유상운(柳尙運, 1636~1707) 6책 1개 유민성(柳民城)
아019 약재집(約齋集) 권병(權炳, 1723~1772)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20 약천집(藥泉集) 남구만(南九萬, 1629~1711) 17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21 약포유고(藥圃遺稿) 이해수(李海壽, 1536~1599)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22 약포집(藥圃集) 정탁(鄭琢, 1526~1605)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3 약헌유집(藥軒遺集) 서종화(徐宗華, 1700~174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4 약헌집(約軒集) 송징은(宋徵殷, 1652~1720)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5 양곡유고(亮谷遺稿) 이의길(李義吉, 1596~1633)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26 양곡집(陽谷集) 소세양(蘇世讓, 1486~1562) 7책 1개 연세대 중앙도서관,일본 동양문고
아027 양곡집(陽谷集) 오두인(吳斗寅, 1624~168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28 양서집(瀼西集) 이광윤(李光胤, 1564~1637)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29 양심당집(養心堂集) 조성(趙晟, 1492~1555) 1책 1개 일본 봉좌문고
아030 양와집(養窩集) 이세구(李世龜, 1646~1700)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1 양원유집(陽園遺集) 신기선(申箕善, 1851~1909)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2 양직집(養直集) 도성유(都聖兪, 1571~164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33 양촌집(陽村集) 권근(權近, 1352~1409)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4 양파유고(陽坡遺稿) 정태화(鄭太和, 1602~1673)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5 양포유고(楊浦遺藁) 최전(崔澱, 1568~158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36 어계집(漁溪集) 조려(趙旅, 1420~148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7 어당집(峿堂集) 이상수(李象秀, 1820~1882) 12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38 어우집(於于集) 유몽인(柳夢寅, 1559~1623)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 중앙도서관
아039 어촌집(漁村集) 심언광(沈彦光, 1487~1540)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40 여암유고(旅菴遺稿) 신경준(申景濬, 1712~178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41 여와집(餘窩集) 목만중(睦萬中, 1727~1810) 12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42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정약용(丁若鏞, 1762~1836) 76책 15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43 여헌집(旅軒集) 장현광(張顯光, 1554~1637) 12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44 여호집(黎湖集) 박필주(朴弼周, 1680~1748) 15책 3개 하버드대학
아045 역암집(櫟菴集) 강진규(姜晉奎, 1817~1891)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46 역양집(嶧陽集) 문경호(文景虎, 1556~1619)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047 역옹유고(櫟翁遺稿) 이정신(李正臣, 1660~1727)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48 역천집(櫟泉集) 송명흠(宋明欽, 1705~1768)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49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성해응(成海應, 1760~1839) 88책 18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50 연석(燕石) 유언호(兪彦鎬, 1730~1796) 13책 3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051 연암집(燕巖集) 박지원(朴趾源, 1737~1805)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52 연재집(淵齋集) 송병선(宋秉璿, 1836~1905) 24책 5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53 연천집(淵泉集) 홍석주(洪奭周, 1774~1842) 20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54 연파시초(蓮坡詩鈔) 김진수(金進洙, 1797~1865)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55 연헌잡고(蓮軒雜稿) 이의무(李宜茂, 1449~150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56 열암집(悅菴集) 하시찬(夏時贊, 1750~1828)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57 염헌집(恬軒集) 임상원(任相元, 1638~1697)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58 영은집(瀛隱集) 남공수(南公壽, 1793~1875)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59 영재집(泠齋集) 유득공(柳得恭, 1748~1807)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60 오룡재유고(五龍齋遺稿) 남명학(南溟學, 1731~179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1 오리집(梧里集) 이원익(李元翼, 1547~1634)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2 오봉집(五峯集) 이호민(李好閔, 1553~1634)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3 오봉집(梧峯集) 신지제(申之悌, 1562~1624)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64 오봉집(鰲峯集) 김제민(金齊閔, 1527~1599)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65 오산집(五山集) 차천로(車天輅, 1556~1615) 5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아066 오산집(梧山集) 서창재(徐昌載, 1726~1781)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67 오서집(梧墅集) 박영원(朴永元, 1791~1854) 12책 2개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68 오아재집(聱齋集) 강석규(姜錫圭, 1628~1695)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69 오음유고(梧陰遺稿) 윤두수(尹斗壽, 1533~160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70 오재집(寤齋集) 조정만(趙正萬, 1656~1739)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71 오천집(梧川集) 이종성(李宗城, 1692~1759) 12책 2개 국사편찬위원회
아072 오탄집(梧灘集) 심유(沈攸, 1620~1688)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073 오한집(聱漢集) 손기양(孫起陽, 1559~1617)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74 옥계집(玉溪集) 노진(盧, 1518~1578) 6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75 옥동집(玉洞集) 문익성(文益成, 1526~1584)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76 옥봉집(玉峯集) 백광훈(白光勳, 1537~1582)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77 옥산시고(玉山詩稿) 이우(李瑀, 1542~1609)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78 옥수집(玉垂集) 조면호(趙冕鎬, 1803~1887)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79 옥오재집(玉吾齋集) 송상기(宋相琦, 1657~1723)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0 옥천집(玉川集) 조덕린(趙德鄰, 1658~1737)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81 온계일고(溫溪逸稿) 이해(李瀣, 1496~1550)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082 온유재집(溫裕齋集) 윤종섭(尹鍾燮, 1791~187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3 완구유집(宛丘遺集) 신대우(申大羽, 1735~180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4 완당전집(阮堂全集) 김정희(金正喜, 1786~1856)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85 완암집(浣巖集) 정내교(鄭來僑, 1681~175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6 완정집(浣亭集) 이언영(李彦英, 1568~163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7 외암유고(巍巖遺稿) 이간(李柬, 1677~1727)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8 외와집(畏窩集) 최림(崔琳, 1779~1841)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89 외재집(畏齋集) 이후경(李厚慶, 1558~163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0 외재집(畏齋集) 이단하(李端夏, 1625~1689)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1 요은집(鬧隱集) 고여흥(高汝興, 1617~167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2 용계유고(龍溪遺稿) 김지남(金止男, 1559~163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3 용담집(龍潭集) 박이장(朴而章, 1547~162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4 용문집(龍門集) 조욱(趙昱, 1498~155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5 용서집(龍西集) 윤원거(尹元擧, 1601~167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6 용암집(龍巖集) 박운(朴雲, 1493~156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097 용와집(慵窩集) 유승현(柳升鉉, 1680~1746)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098 용이와집(龍耳窩集) 권뢰(權𡋃, 1800~1873)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099 용재유고(慵齋遺稿) 이종준(李宗準, ?~1499)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00 용재집(容齋集) 이행(李荇, 1478~1534) 7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01 용재집(庸齋集) 김근행(金謹行, 1713~1784) 15책 3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아102 용주유고(龍洲遺稿) 조경(趙絅, 1586~1669)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03 용포집(龍浦集) 이유(李, 1669~174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04 용헌집(容軒集) 이원(李原, 1368~1429)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05 우계집(牛溪集) 성혼(成渾, 1535~1598) 9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임창재
아106 우계집(雨溪集) 김명석(金命錫, 1675~176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07 우고집(雨皐集) 김도행(金道行, 1728~1812)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08 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 구치용(具致用, 1590~1666)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09 우담집(愚潭集) 정시한(丁時翰, 1625~1707)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10 우득록(愚得錄) 정개청(鄭介淸, 1529~159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1 우복집(愚伏集) 정경세(鄭經世, 1563~1633) 16책 3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아112 우사집(雩沙集) 이세백(李世白, 1635~1703)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3 우암고(寓菴稿) 홍언충(洪彦忠, 1473~1508) 3책 1개 일본 궁내청 서릉부
아114 우암유집(寓庵遺集) 김주(金澍, 1512~156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5 우암집(寓庵集) 남구명(南九明, 1661~1719)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16 우원집(尤園集) 이정국(李楨國, 1743~1807)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17 우원집(愚園集) 임성원(林聲遠, 169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8 우재집(迂齋集) 조지겸(趙持謙, 1639~1685)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19 우정집(憂亭集) 김극성(金克成, 1474~154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0 우천집(愚川集) 정칙(鄭, 1601~1663)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1 우천집(牛川集) 정옥(鄭玉, 1694~176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2 우헌집(寓軒集) 박상현(朴尙玄, 1629~169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3 우헌집(寓軒集) 유세명(柳世鳴, 1636~1690)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24 운강집(雲岡集) 박시묵(朴時默, 1814~187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25 운계만고(雲溪漫稿) 김종정(金鍾正, 1722~1787)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6 운곡집(雲谷集) 이희발(李羲發, 1768~1850) 11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27 운곡행록(耘谷行錄) 원천석(元天錫, 133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8 운석유고(雲石遺稿) 조인영(趙寅永, 1782~1850)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29 운암일고(雲巖逸稿) 김연(金緣, 1487~1544) 1책 1개 김준식(金俊植)
아130 운암집(雲菴集) 박문일(朴文一, 1822~1894) 25책 5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아131 운양집(雲養集) 김윤식(金允植, 1835~1922)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아132 운와집(芸窩集) 홍중성(洪重聖, 1668~173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33 운재유고(雲齋遺稿) 이중경(李重慶, 1724~1754)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34 운창집(芸窓集) 박성양(朴性陽, 1809~1890) 6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35 운천집(雲川集) 김용(金涌, 1557~162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36 운평집(雲坪集) 송능상(宋能相, 1710~1758)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37 운포유고(雲浦遺稿) 여성제(呂聖齊, 1625~1691) 2책 1개 국민대학교 성곡도서관
아138 운학집(雲壑集) 조평(趙平, 1569~1647)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39 운호집(雲湖集) 임정주(任靖周, 1727~179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0 원교집(圓嶠集) 이광사(李匡師, 1705~1777)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1 원재고(圓齋槀) 정추(鄭樞, 1333~1382)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42 월간집(月澗集) 이전(李㙉, 1558~1648)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43 월고집(月皐集) 조성가(趙性家, 1824~1904) 10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44 월곡집(月谷集) 오원(吳瑗, 1700~1740)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5 월당집(月塘集) 강석기(姜碩期, 1580~1643)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6 월봉집(月峯集) 고인계(高仁繼, 1564~1647)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47 월봉집(月峯集) 고부천(高傅川, 1578~1636)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48 월사집(月沙集) 이정구(李廷龜, 1564~1635) 22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49 월연집(月淵集) 이태(李迨, 1483~1536)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50 월정집(月汀集) 윤근수(尹根壽, 1537~1616)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1 월주집(月洲集) 소두산(蘇斗山, 1627~169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2 월천집(月川集) 조목(趙穆, 1524~160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3 월헌집(月軒集) 정수강(丁壽崗, 1454~152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4 위암집(韋庵集) 이최중(李最中, 1715~1784)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55 유계집(柳溪集) 강명규(姜命奎, 1801~1867)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56 유심재집(有心齋集) 이화보(李和甫, 1714~1781)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57 유연당집(悠然堂集) 김대현(金大賢, 1553~160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8 유재집(游齋集) 이현석(李玄錫, 1647~1703)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59 유천유고(柳川遺稿) 한준겸(韓浚謙, 1557~162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0 유하집(柳下集) 홍세태(洪世泰, 1653~1725)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1 유항시집(柳巷詩集) 한수(韓脩, 1333~1384)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2 유헌집(游軒集) 정황(丁, 1512~156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3 유헌집(遊軒集) 장석룡(張錫龍, 1823~1908) 7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64 유회당집(有懷堂集) 권이진(權以鎭, 1668~1734)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65 육곡유고(六谷遺稿) 서필원(徐必遠, 1613~167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6 육우당유고(六寓堂遺稿) 이하진(李夏鎭, 1628~1682)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67 육화집(六化集) 양거안(梁居安, 1652~173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8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69 율곡전서(栗谷全書) 이이(李珥, 1536~1584) 38책 8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70 은봉전서(隱峯全書) 안방준(安邦俊, 1573~1654) 20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1 은송당집(恩誦堂集) 이상적(李尙迪, 1803~186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2 음애집(陰崖集) 이자(李耔, 1480~153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3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박은(朴誾, 1479~150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4 응와집(凝窩集) 이원조(李源祚, 1792~1871) 12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75 응재집(凝齋集) 이희지(李喜之, 1681~1722)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76 의암집(毅菴集) 유인석(柳麟錫, 1842~1915) 29책 6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77 이계집(尼溪集) 박내오(朴來吾, 1713~1785)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78 이계집(伊溪集) 남몽뢰(南夢賚, 1620~1681)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79 이계집(耳溪集) 홍양호(洪良浩, 1724~1802) 22책 4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80 이봉집(夷峯集) 황후간(黃後榦, 1700~1773)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81 이안당집(易安堂集) 조천경(趙天經, 1695~1776)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82 이암유고(庵遺稿) 송인(宋寅, 1517~158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3 이요정집(二樂亭集) 신용개(申用漑, 1463~1519)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4 이우당집(二憂堂集) 조태채(趙泰采, 1660~1722)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185 이이엄집(而已广集) 장혼(張混, 1759~1828)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6 이재유고(齋遺藁) 황윤석(黃胤錫, 1729~1791)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7 이재집(齋集) 조우인(曺友仁, 1561~1625)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88 이재집(齋集) 이의숙(李義肅, 1733~180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89 이재집(齋集) 권연하(權璉夏, 1813~1896) 9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아190 이참봉집(李參奉集) 이광려(李匡呂, 1720~178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1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이순신(李舜臣, 1545~1598)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2 이치재집(二恥齋集) 신정모(申正模, 1691~1742) 3책 1개 강경훈(姜景勳)
아193 이택재유고(麗澤齋遺稿) 권재운(權載運, 1701~1778)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194 이평사집(李評事集) 이목(李穆, 1471~149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5 이해학유서(李海鶴遺書) 이기(李沂, 1848~1909) 3책 1개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96 이호유고(梨湖遺稿) 김시탁(金時鐸, 1713~175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7 익재난고(益齋亂藁) 이제현(李齊賢, 1287~1367)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198 인산집(仁山集) 소휘면(蘇輝冕, 1814~1889)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199 인재유고(麟齋遺稿) 이종학(李種學, 1361~1392)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00 인재집(寅齋集) 신개(申槩, 1374~144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01 인재집(忍齋集) 홍섬(洪暹, 1504~158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02 인재집(齋集) 최현(崔晛, 1563~1640) 9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아203 일두집(一蠹集) 정여창(鄭汝昌, 1450~1504)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04 일봉집(一峯集) 조현기(趙顯期, 1634~1685)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05 일송집(一松集) 심희수(沈喜壽, 1548~162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06 일암유고(一庵遺稿) 윤동원(尹東源, 1685~1741)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07 일암집(一庵集) 신몽삼(辛夢參, 1648~1711)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아208 일암집(一菴集) 이기지(李器之, 1690~172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09 일엄유고(一广遺稿) 김상일(金相日, 1756~182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10 일옹집(逸翁集) 최희량(崔希亮, 1560~165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1 일재집(一齋集) 이항(李恒, 1499~1576)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2 일포집(逸圃集) 박시원(朴時源, 1764~1842)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13 임곡집(林谷集) 임진부(林眞, 1586~1657) 4책 1개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14 임당유고(林塘遺稿) 정유길(鄭惟吉, 1515~158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5 임백호집(林白湖集) 임제(林悌, 1549~158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6 임여재집(臨汝齋集) 유규(柳, 1730~1808)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17 임연재집(臨淵齋集) 배삼익(裵三益, 1534~158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18 임재집(臨齋集) 서찬규(徐贊奎, 1825~1905)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아219 임호집(林湖集) 박수검(朴守儉, 1629~169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20 입암집(立巖集) 민제인(閔齊仁, 1493~1549) 4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고려대학교
아221 입재유고(立齋遺稿) 강재항(姜再恒, 1689~1756)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아222 입재집(立齋集) 정종로(鄭宗魯, 1738~1816) 28책 6개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아223 입재집(立齋集) 송근수(宋近洙, 1818~1902)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아224 입헌집(立軒集) 한운성(韓運聖, 1802~1863)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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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계유고(鵝溪遺稿) | 이산해(李山海, 1539~1609) | 권책수 : 3[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의 문집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저작은 병란 중에 대부분 산일되었고, 이후의 작품을 저자가 자편(自編)하고 아들 이경전(李慶全)이 처음 편찬, 간행한 것으로 보이나 전하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이경전이 간행한 것으로 보이는 중간본으로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권1~2의 <기성록>에는 1592년 강원도 기성 유배지로 가는 도중의 감회, 난중에 자녀를 잃은 애환, 유배지에서 본 경물(景物) 등을 읊은 시와 영사시(詠史詩) 등이 실려 있다. 권3의 잡저 중 기(記)는 평해(平海) 일대의 촌락, 누각, 사찰에 대한 글 등이 있다. 권4는 후집으로, 시 작품을 14개의 록(錄)으로 구성하였다. 권5~6에는 <기성록>에 실리지 않은 문(文)을 소류(疏類), 차류(箚類), 발류(跋類), 기류(記類), 서류(序類) 등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차류 중 <진폐차(陳弊箚)>에서는 화전(火箭) 개발, 둔전(屯田) 설치, 수전(水戰) 육성 등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기(記)에는 송월헌(松月軒) 등의 기문이 있고, 서(序)에는 왕명을 받고 지은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 등이 있다.
▶악록집(岳麓集) | 허성(許筬, 1548~161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악록(岳麓) 허성(許筬, 1548~16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시문과 관계 기록을 모은 정사본(淨寫本)으로 그 서사(書寫) 경위는 분명치 않다. 원집 2권과 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 실린 시에는 남강(南岡) 한준(韓俊)과 차운한 시가 상당수 있다. 이밖에 이황(李滉), 조식(曺植), 이광준(李光俊), 유성룡(柳成龍), 이정형(李廷馨)에 대한 만시(輓詩)와 팔음체(八音體), 향렴체(香奩體)의 시가 실려 있다. 권2에 실린 서(序)는 <치재집서(恥齋集序)>와 이희득(李希得)에게 준 <청담경수시병서(淸潭慶壽詩並序)>, 이식(李埴)의 <기전도설(箕田圖說)>에 대한 후어(後語)이다. 상소는 광해군 때에 올린 <시폐소(時弊疏)>로서 장편의 글이다. 그밖에 퇴계 선생에 대한 제문과, 스승 유희춘(柳希春)에 대한 신도비명이 있다. 부록으로는 김세렴(金世濂)이 지은 묘갈명, 제문, 만사(挽詞), 명사들이 저자의 운에 차운한 시, 아우 허균(許筠)이 지은 <어찰송(御札頌)>이 있고, ≪한강집(寒岡集)≫에서 뽑은 서(書) 1편이 실려 있다. 척유(摭遺)에는 여러 문헌에서 저자 관계 기록을 뽑아 모아 놓았다.
▶안락당집(顔樂堂集) | 김흔(金訢, 1448~149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강대,충남대,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안락당(顔樂堂) 김흔(金訢, 1448~14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20여 년이 지난 1513년(중종8)에 아들 김안로(金安老)에 의하여 수습ㆍ편집되어 1516년(중종11)년 영주(榮州)에서 간행되었다. 본 문집은 4권 2책이다. 권1에는 시가 실려 있으며 전반부에는 편자가 수습한 시(詩)를 시체(詩體)나 창작 시기의 구분 없이 수록하고, 후반부에는 저자의 자편 행록(自編行錄)인 <부상기행록(扶桑紀行錄)>과 <관광록(觀光錄)>을 토대로 대략 창작 순서에 따라 편차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김종직(金宗直)ㆍ김극검(金克儉)이 쓴 발후(跋後)가 첨부되어 있다. 권2에는 29편의 산문(散文)을 <잡저>로 표제(標題)하여 수록하였다. 문체별로는 변(辨), 서(序), 상량문, 시책문(諡冊文), 제문, 가요(歌謠) 등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김안로가 찬(撰)한 세계와 연보가 실려 있다. 권4에는 저자와 형 김심(金諶)의 묘도 문자 및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의 기록과 인물에 대한 간략한 평을 붙인 <선집기(先執記)>가 있다. 전체적으로 공사(公事)에 관한 내용이 많아 10여 년간 문사(文事)를 담당했던 저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안분당시집(安分堂詩集) | 이희보(李希輔, 1473~154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안분당(安分堂) 이희보(李希輔, 1473~154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본래 ≪안분당집(安分堂集)≫ 12책이 간행되지 못한 채 외손(外孫)에게 전해져 오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본(傳本) 여부를 알 수 없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저자의 시문은 완본(完本)이 전하지 않고 전본(傳本)도 드물다. 또 시 이외의 다른 기록이 없어 본 시집의 전본 과정이나 필사 시기 등을 알 수 없다. 현재 저자의 일부 시편이 정사본(精寫本) 1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奎5212)에 소장되어 있다. 본 시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제역관이화종시권(題譯官李和宗詩卷)> 등 고시(古詩) 38수가 실려 있고, 권2에는 <백상루차십완운(百祥樓次十玩韻)> 등 칠언 율시 66수와 <추야유감(秋夜有感)> 등 오언 율시 4수, <궁사(宮詞)> 등 칠언 절구 3수가 실려 있다. <전옹가(田翁歌)>, <동우탄(冬雨嘆)> 등 일반 백성들의 궁핍한 생활을 그린 작품이 많으며, <등한강루(登漢江樓)> 등 여러 곳을 유람하며 지은 시들도 있다. 그밖에 승려와 교유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안와유고(安窩遺稿) | 홍낙인(洪樂仁, 1729~177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안와(安窩) 홍낙인(洪樂仁, 1729~177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에 정조(正祖)의 명(命)으로 편찬(編纂)되어, 1787년 5월에 어제서(御製序)를 붙여 내부(內府)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本集)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정조가 1787년에 지은 어제서(御製序)가 있으며, 각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著作)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차(編次)되어 있으며, 저자 집안의 숙사(塾師)인 노명흠(盧命欽)과 노긍(盧兢) 부자, 부친 봉한(鳳漢)과 아우 낙신(樂信)ㆍ낙임(樂任) 등과 시사(詩社)를 열고 수창한 것이 가장 많다. <여졸옹영매십수(與拙翁詠梅十首)>는 매화가 피어가는 걸음에 따라 미개(未開), 장개(將開), 초개(初開), 반개(半開), 진개(盡開)의 모습을 노명흠과 함께 읊었다. 권4는 소차(疏箚)이다. <청파호남대선겸부사간소(請罷湖南隊船兼附私懇疏)>는 1768년에 전라도 관찰사로서 조운선을 편대(編隊)로 만든 폐단을 아뢰면서 구례(編隊)에 따를 것을 청한 것으로, 작대법(作隊法)의 현황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안촌집(安村集) | 배응경(裵應褧, 1544~160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안촌(安村) 배응경(裵應褧, 1544~160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시부(詩賦) 200여 수로, 서(書), 소(疏), 잡록(雜錄) 약간이 2권으로 가장(編次)된 것을 8대손 배한식(裵漢植)이 유문(遺文)을 수습(收拾)하여 황재영(黃在英)에게 편차(編次)를 부탁하고, 1883년에 권연하(權璉夏)에게 받아 둔 서문(序文)을 붙여 1884년에 2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시부(詩賦)이고, 김우옹(金宇顒), 정구(鄭逑), 한준겸(韓浚謙), 오운(吳澐), 권두문(權斗文), 김륵(金玏), 김개국(金蓋國), 유성룡(柳成龍) 등과 수창(酬唱)한 것이 많고, 여정 중의 누각, 정자 등에 대해 지은 시, 절기(節氣)가 바뀔 때 느낀 소회 등을 읊은 것이 많다. 권3은 소(疏), 기(記), 서(書), 제문(祭文), 논(論), 잡록(雜錄) 등이며, 권4는 부록(雜錄)으로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 만사(輓詞), 상량문(上樑文), 문인록(門人錄) 등에서 채록한 행록(行錄), 1602년에 북경(北京)으로 사신 갈 때 받은 증유시(贈遺詩)가 있다.
▶안촌집(安村集) | 박광후(朴光後, 1637~16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안촌(安村) 박광후(朴光後, 1637~1678)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1년 기정진(奇正鎭)의 서문을 받은 후, 저자의 사손 원규(元圭)가 부록을 증보하여 아들 중회(重繪)의 소은집(素隱集)과 함께 190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기정진의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소, 서(書)이다. 시는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것이 1675년에 지은 것이므로 본서에 수록된 저자의 시는 대부분 만년작으로 추정된다. 수창시가 다수를 차지하며, 수창한 이들은 송시열(宋時烈), 나세기(羅世器) 등이다. 권2는 서(書)로서, 스승 송시열과 족숙 박치도(朴致道)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3은 잡저, 어록, 기이다. 그중 잡저의 <수록(手錄)>은 예송논쟁 이후 송시열의 신변과 광주 지역 유림의 동향을 기록한 글이고, 권4는 제문, 축문, 묘갈, 행장, 속편부록으로, <갑을록(甲乙錄)>은 예송논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된 송시열을 신구하기 위한 저자의 활동을 기록하였고, 말미에는 광주 안청리(安淸里)에 있는 저자의 집 외성당(畏省堂)에 대한 시문이 실려 있다.
▶암서집(巖棲集)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1873~1933)의 문집이다. 저자 생전에 저술의 일부가 제자들에 의하여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사후 아들 조정흠(趙廷欽)과 문인들이 시문 가운데 절반을 추려서 31권으로 편차한 다음, 1935년에 연활자로 31권 14책의 ≪심재선생문집(深齋先生文集)≫을 대구의 오성인쇄소(五星印刷所)에서 인행하였다. 본집은 이 ≪심재선생문집≫을 바탕으로 증보 재편하여 연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총분량은 37권 19책이며 문집명을 ≪암서선생문집(巖棲先生文集)≫으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나 간행 경위는 불분명하다. 권1은 부(賦)이다. 권2~6은 시(詩)이다. 이중에서 <제화병십영(題畵屛十詠)>은 고사를 그린 병풍에 쓴 시로 수양채미(首陽采薇), 반계수조(磻溪垂釣) 등에 대해 지은 것이다. 영사(詠史)는 한(漢)ㆍ당(唐)ㆍ송(宋)의 역사에 대해 읊은 것이다. 권7~15는 서(書)이다. 안부 편지, 성리학과 예에 대해 논한 것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변영만(卞榮晩)에게 답한 편지에는 공자가 노자에게 질의한 것에 대해 논한 것과 불법(佛法)과 야소교(耶蘇敎)를 유학과 비교해 논한 내용이 있다. 권16~18은 잡저이다.
▶야계집(倻溪集) | 송희규(宋希奎, 1494~155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6대손 송응벽(宋應璧)이 편찬한 연보와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수집하여 1789년 이사정(李師靖)이 산정ㆍ편차하여 만든 고본을 조카 송사이(宋師頤)의 ≪신연선생유적(新淵先生遺蹟)≫을 합편하여 1816년 활자로 초간한 후, 후손 송준필(宋浚弼) 등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하고 부록과 연보를 증보하여 재편하고 장석영(張錫英)의 교정을 거쳐 1924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권수, 원집 3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16년에 지은 정종로(鄭宗魯)의 서문과 목록, 세계, 연보 및 1898년에 지은 송기선(宋祺善)의 연보후지(年譜後識)가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계사, 책(策), 서(書), 논(論), 잠(箴), 제문, 비(碑), 유사이고, 권2~3은 부록이다. 권2에는 손자 송유경(宋惟敬)이 쓴 저자의 이력, 김취문(金就文)이 지은 행장과 묘지, 김희삼(金希參)이 지은 정려비음기(旌閭碑陰記),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묘비명을 비롯하여, 만장, 증유, <양정동년회창수(羊汀同年會唱酬)>, 청증시소(請贈諡疏) 등이 실려 있다.
▶야곡집(冶谷集) | 조극선(趙克善, 1595~165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경희(敬煕)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윤증(尹拯)과 남구만(南九萬), 이정걸(李廷傑) 등의 수정을 받아 1726년 선사한 고본에 저자의 8대손 종호(鍾灝)가 사실기략과 세계 등 관계기록을 증보하고 예설을 편집한 별집과 함께 189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4권, 별집 합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이다. 권2는 소(疏)와 계(啓)이다. 그중에서 <청포잠와이선생청백소(請褒潛窩李先生淸白疏)>는 1648년 올린 상소로 이명준(李命俊)을 청백리로 인정해 줄 것을 청한 것이다. 권3~4는 서(書)이고, 권5는 서(序), 기(記), 지(識), 논(論), 잠(箴), 설(說)이다. 권6은 잡저, 축문, 제문, 묘비기, 행장이고, 권7~10은 삼관기(三官記)이다. 삼관기는 저자가 독서와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바를 잊지 않으려고 기록한 것이다. 권11~14는 부록이고 권말에는 8세손 종호의 발문이 있다. 별집은 예설참의(禮說僭擬)로 1626년 계운궁(啓運宮)의 초상 때 인조의 복제(服制)가 논란이 되었던 일을 계기로 지은 것이다.
▶야당유고(野堂遺稿) | 유혁연(柳赫然, 1616~168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야당(野堂) 유혁연(柳赫然, 1616~1680)의 문집이다. 저자는 시(詩)에 능하다는 이름은 있었으나 본래 무장(武將) 출신으로 저술이 많지 않았다. 9세손 유석조(柳錫祚)가 제가(諸家)의 문집과 ≪정원일기(政院日記)≫ 등의 기록에서 저자의 시(詩), 소(疏), 기(記) 약간 편을 수집하고, 연기(年紀)와 경옥전말(庚獄顚末), 유사(遺事) 등의 부록을 편차한 뒤 1909년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권, 부록 3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의 시 중에 <효묘심양행차시(孝廟瀋陽行次時)>로 시작하는 제목의 시는 1637년 봉림대군(鳳林大君)이었던 효종(孝宗)이 인질로 가는 행차를 전별하면서 대신들의 시에 차운해 지은 연구(聯句)인데, 두 구절만 실려 있다. 소(疏)는 총 19편으로 대부분 사직소이다. 기(記)는 <부중옹기(負重翁記)> 1편이 있는데, 무거운 짐을 진 늙은이를 통해 노령에 지나친 중책을 맡고 있는 자신을 비유한 내용이다. 권2~4는 부록이다. 이 중 유사에는 효종(孝宗) 때 이완(李浣)과 함께 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았던 일화가 많이 있고, 저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일어났던 괴담(怪談)도 실려 있다.
▶야당유고(野塘遺稿) | 김남중(金南重, 1596~166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야당(野塘) 김남중(金南重, 1596~1663)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 후반에 전사된 괘인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되어 있고, 총목, 서(序), 발(跋)은 없다. 권1~3은 모두 시(詩)이다. 시체의 구분이 없고 저자의 시에는 <즉사(卽事)>, <우음(偶吟)> 등과 같이 즉흥적인 감흥과 경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회를 읊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기이(記異)>는 1635년 12월 9일에 인조(仁祖)의 비인 인열왕후(仁烈王后)가 승하하자, 백홍(白虹)이 해를 뚫고 큰 우레가 친 이변이 일어남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읊은 것이다. <남한즉사(南漢卽事)> 3수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가를 따라 남한산성(南漢山城)에 들어갔을 때의 참담한 현실을 묘사하였다. 만시(輓詩)는 이정귀(李廷龜), 박정(朴炡), 강유(姜瑜), 나만갑(羅萬甲), 신경진(申景禛), 이도장(李道章), 인평대군(麟坪大君), 김집(金集) 등에 대한 것이다. 수창시도 다수 실려 있는데, 주로 수창한 이들은 강유(姜瑜), 이시매(李時楳), 박일성(朴日省), 이소한(李昭漢), 이명한(李明漢), 박세채(朴世采) 등이다.
▶야은일고(壄隱逸稿) | 전녹생(田祿生, 1318~137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야은(壄隱) 전녹생(田祿生, 1318~137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사후 340여 년이 지난 1714년(숙종40)경 후손 전만영(田萬英)이 처음으로 수집ㆍ편차하였다. 그 뒤 후손 전일상(田日祥)이 1738년(영조14)에 칠곡도호부사(漆谷都護府使)로 부임하여 송림사(松林寺)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6권 2책으로, 그중 제1권은 원집, 제2~6권은 부록이다. 권1에는 ≪동문선≫과 ≪동국여지승람≫에서 수집한 시(詩) 7제(題)와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에서 인용한 시 2편이 실려 있다. 문(文)으로는 ≪동문선≫과 ≪목은집(牧隱集≫에 실려 있는 <이색사면좌대언불윤비답(李穡辭免左代言不允批答)> 1편과, ≪고려사≫의 열전 및 식화지에서 초록(抄錄)한 소(疏), 계사(啓辭)가 실려 있다. 권2~6은 부록으로 권2에는 본전(本傳)과 화상찬ㆍ성관(姓貫)ㆍ환적(宦蹟)ㆍ호종록(扈從錄)ㆍ응제록(應製錄)ㆍ공신록(功臣錄) 등이 실려 있다. 권3의 유사(遺事), 권4~5는 제현들과의 교유 등의 기록 중에서 관계 사실들을 뽑은 것이며, 권6에는 역관략(歷官略), 존모록(尊慕錄)이 첨부되어 있다.
▶야은집(冶隱集) | 길재(吉再, 1353~141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집이다. 1570년 윤지형(尹之亨)이 저자의 풍절(風節)을 사모하여 금오서원(金烏書院)을 중수(重修)하고 아울러 5대손 길회(吉誨)로 하여금 저자의 시문을 간행토록 하여 1573년 ≪야은선생행록(冶隱先生行錄)≫을 간행하였으나 이 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58년 송내희(宋來熙)가 교정한 3권 1책의 속집과, 이때 개간한 원집 3권 1책 합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본 문집은 야은선생언행습유 3권ㆍ야은선생속집 3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습유 권상(卷上)에는 7편의 유시(遺詩)와, 벼슬하기 전에 지은 <산가서(山家序)>와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지은 <후산가서(後山家序)>가 있다. 권중(卷中)에는 여러 문헌에서 뽑은 저자와 관련된 기록, 그리고 제문ㆍ사제문, 오산(吳山)ㆍ금오(金烏) 두 서원의 봉안문과 향사문 등이 실려 있다. 권하(卷下)에는 제현(諸賢)이 저자를 예찬하여 지은 <찬영제시(讚詠諸詩)>가 실려 있다. 속집의 권상(卷上)에는 새로 찾은 저자의 시(詩), 뇌(誄), 찬(贊), 서(書), 행록(行錄)이 실려 있다.
▶야촌집(野村集) | 손만웅(孫萬雄, 1643~171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야촌(野村) 손만웅(孫萬雄, 1643~17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익현(益顯)이 수습하고 편차하여 1774년경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을 받아 4권으로 정리해 두었다가, 7대손 영로(永老) 등이, 앞서 익현(益顯) 등이 편차한 초본에 연보와 연행일록 등을 증보하고 허훈(許薰)의 산정을 받아 1890년경 목활자로 인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이상정의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의 전반부는 시(詩)로서, 1672년부터 저자가 사망하는 1712년까지 지은 시가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2의 후반부는 소(疏), 계(啓), 장(狀)이다. <진민폐소(陳民弊疏)>는 1679년 공주 목사 재임 때에 올린 것으로, 공주 지역의 각종 폐단을 조목조목 진술하고 그 시정을 촉구한 글이다. 권3은 서(書), 잡저, 서(序), 기(記) 등이고 권4는 연행일록으로 숙종 3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 5일까지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경과를 기록하였다. 권5~6은 부록으로 편자 ㆍ의 연보, 행장, 신도비명, 묘갈문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는 정종로(鄭宗魯)의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약봉유고(藥峯遺稿) | 서성(徐渻, 1558~163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정철(徐廷徹)
조선 중기 약봉(藥峯) 서성(徐渻, 1558~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병란을 거치면서 남아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증손 서문중(徐文重)이 가장(家藏)해 오던 유집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원집 2권, 부록 2권으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했고, 그 후 1705년 아우 서문유(徐文裕)가 전주에서 ≪사가집(四佳集)≫과 함께 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나 현전하는 것이 없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27년 활자로 간행된 중간본이다. 본 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약 170여 수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왜란 시 경험과 감상을 서술한 <증의승학상(贈義僧學祥)>, 승경(勝景)을 유람하며 지은 것, 중국 사신의 접반관이 되어 사신과 차운한 시 등이 있다. 권2는 시, 잡저, 보유(補遺)이다. 시 중에는 명화(名花)와 여색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지조를 드러낸 <소의행(笑矣行)>이 있다. 잡저로는 선조인 서거정(徐居正)에 대한 제문과, 사직소 등의 글이 있다. 보유로는 시(詩), 서(序), 발(跋), 그리고 태백산사고수직절목(太白山史庫守直節目)이 실려 있다. 권3~4는 부록이다
▶약산만고(藥山漫稿) | 오광운(吳光運, 1689~1745)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 1689~1745)의 문집이다. 저자는 50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글을 정리하여 자편해 두었고, 이후 1922년 6대손인 오병서(吳炳序)와 족인인 오건상(吳建相)이 1924년에 대구에서 ≪약산만고(藥山漫稿)≫ 20권 9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5는 운문으로 권1은 부(賦), 권2~4는 시(詩), 권5는 해동악부 28편이 실려 있다. 권1의 <태화탕부(太和湯賦)>는 탕평책에 대한 저자의 열망을 담고 있다. 시로는 관서 지방을 두루 유람한 기행시, 영특한 아들을 일찍 잃은 것을 슬퍼한 <술애(述哀)> 등이 있다. 권6~8은 상소로, 이 가운데 <영남안핵사회론사소(嶺南按覈使回論事疏)>는 무신란으로 흉흉해진 영남의 인심을 진정시키고 난에 가담하지 않은 남인계 학자들을 적극 등용할 것을 청한 소이다. 권9~10은 서연강의(書筵講義), 옥당고사와 기사 3편이다. 그밖에 변(辨), 훈계, 책제(冊題), 자신의 문학관과 중국 역대 문인에 대한 평가를 짧게 기술한 문지(文指)ㆍ시지(詩指)ㆍ부지(賦指), 경설(經說), 사평(史評), 서(序), 기(記), 발(跋)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약재집(約齋集) | 유상운(柳尙運, 1636~170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유민성(柳民城)
조선 시대 약재(約齋) 유상운(柳尙運, 1636~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으로 저자의 8대손 기혁(起赫)이 1956년에 보충하여 완성한 연보가 합부되어 있다. 본집은 불분권 6책으로 목록이나 서문, 발문이 모두 실려 있지 않다. 그리고 편지글이 한편도 실려 있지 않은 특징이 있다. 책1~3은 서암록(西巖錄), 영남록(嶺南錄), 청원록(淸源錄), 관서록(關西錄) 등의 시록으로 저작 연대순으로 묶어 편차하였다. 그중에서 영남록은 1671년 경상 도사를 지낼 때의 작품을 모아놓은 것이고, 연행록은 1682년 연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이듬해에 환조할 때까지 여정에서의 견문과 수창한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책4는 소차로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이 중 1701년에 올린 <진소회소(陳所懷疏)>는 장희빈(張禧嬪)에 대해 사약의 명이 내려지자 왕세자를 위해서 선처해 줄 것을 간청하는 내용이다. 책5는 행장, 묘지명, 시장, 제문, 기이고 책6은 연보, 기연유적(耆筵遺蹟)이다. 연보는 저자의 8대손 유기혁(柳起赫)이 1956년에 보충하여 완성한 것으로 경종(景宗) 때에 청백리(淸白吏)에 오른 내용까지 실려 있다.
▶약재집(約齋集) | 권병(權炳, 1723~177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약재(約齋) 권병(權炳, 1723~1772)의 문집이다. 본집은 백형 괴(烠)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우인 이광정(李光靖)ㆍ이종수(李宗洙)의 교감을 받은 고본을, 질자 시필(時駜)과 종질 시봉(時鳳)이 김괴의 재교를 받아 1811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9권 4책이다. 권수에는 이광정이 1786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 앞에 권1~2의 목록이, 권3 앞에 권3~4의 목록이, 권5 앞에 권5~6의 목록이, 권7 앞에 권7~9의 목록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이상정에게 1750년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는 서간을 통하여 한만하게 왕래하는 것보다 수렴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광정의 충고로 자신이 학문에 매진하게 된 동기와 문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권8의 후반부는 서(序), 발(跋), 명(銘), 제문(祭文), 애사(哀辭)이다. 부인 장씨(張氏)에 대한 제문에는, 부인이 자식도 없이 죽자 이를 애도하여 재기(再期)가 되는 날 제사를 지내며 장편의 제문을 지었는데, 애틋한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권말에는 김괴가 1811년에 지은 후서(後敍)가 있다.
▶약천집(藥泉集) | 남구만(南九萬, 1629~1711)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남학명(南鶴鳴)과 손자 남극관(南克寬)이 보관하여 정리해 오다 1723년에 교서관(校書館) 철활자(鐵活字)로 34권 17책이 간행되었다. 권1~2는 시(詩)이다. 내용은 거제(巨濟)와 경흥(慶興)으로 유배 갔을 때 지은 것이 많다. 이 중 <영유시이십수(詠柚詩二十首)>는 유자나무에 얽힌 고사(故事)와 풍광(風光), 농민의 애환을 읊은 시이다. 권1의 <번방곡(翻方曲)> 11수는 당시 유행하던 한글 시조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권3~12는 소차(疏箚)와 서계(書啓)이고, 권13의 계사(啓辭) 중 <청금면신벌예계(請禁免新罰禮啓)>는 당시 면신례의 폐단을 말하며 금지할 것을 청한 내용이다. 권28~29는 기문(記文)과 잡저이다. 기로는 <함흥십경도기(咸興十景圖記)> 등이 있고, 잡저 중 <동사변증(東史辨證)>은 단군ㆍ기자(箕子)처럼 역사상 행적이 의문시되는 인물과 실제 위치에 대해 옛 기록과 사서(史書) 등을 인용해 의문점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권30~34는 서(書)이다. 스승인 송준길(宋浚吉)을 비롯해서 매부 박세당(朴世堂) 등에게 보낸 것들이다.
▶약포유고(藥圃遺稿) | 이해수(李海壽, 1536~159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약포(藥圃) 이해수(李海壽, 1536~1599)의 문집이다. 1591년 화(禍)와 임진왜란을 겪는 와중에 불태워지고 유실되어 극히 적은 양의 시문으로, 조영세(趙榮世)가 정고본에 이재(李縡)의 서문, 간행기, 세계(世系), 유사(遺事) 등을 덧붙여 3책의 목판 초간본으로 간행하였다. 총 7권 3책으로 권1은 57제(題)의 <난전습유록(亂前拾遺錄)>과 14제의 <난후습유록(亂後拾遺錄)>이다. <난전습유록>은 이이(李珥)ㆍ신응시(辛應時) 등과 수창(酬唱)한 시(詩), 원접사 때 지은 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후습유록>은 희수복삼경(喜收復三京) 등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병신잡고(丙申雜稿)>는 분조(分朝)에 있다가 서울로 들어가 관직 생활을 하며 지은 작품이다. 권3은<난후도망록(亂後悼亡錄)>과<습유록(拾遺錄)>으로, 50제의 <도망록>은 조헌(趙憲)ㆍ김천일(金千鎰) 등을 애도한 시이다. <습유록>은 이선(李選)이 수집ㆍ보충한 부분이다. 권4<송도잡영(松都雜詠)>의 시 69제와 권5<송도후록(松都後錄)>의 시 43제는 영위사(迎慰使)로서 송도에 머물면서 주고받은 것들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약포집(藥圃集) | 정탁(鄭琢, 1526~1605)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의 문집이다. 1756년에 영조가 저자의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과 유상(遺像)을 열람하고서 화상찬(畫像贊)을 지어 주며 간행을 명하였고, 정옥(鄭玉)이 가장해 오던 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1760년에 해주(海州)에서 목판으로 7권 4책을 간행하였다. 그 후 후손 정광익(鄭光翊)이 원집에서 누락된 유문을 수집하고 정필규(鄭必奎)가 편차를 담당하여 1818년 저자가 배향된 도정서원(道正書院)에서 목판으로 속집 4권 2책을 간행하였다. 원집 권1에는 시 147편과 서(書) 16편이 실려 있다. 서는 <상퇴계선생서(上退溪先生書)>를 비롯해서 퇴계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2의 차자는 임진왜란 중의 국사를 의논한 것이 많고 또 세자 섭정(攝政)의 명을 환수하기를 청한 것 등이 있다. 권3에는 선조가 피난 갈 때 요동으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평양을 사수할 것을 주장한 <청견수평양계(請堅守平壤啓)> 등이 실려 있다. 권4에는 묘지명, 잡저, <피난행록(避難行錄)> 등이 있다. 권6과 권7은 <용만견문록>과 부록이다. 속집의 구성과 편차도 원집과 거의 비슷하다.
▶약헌유집(藥軒遺集) | 서종화(徐宗華, 1700~174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약헌(藥軒) 서종화(徐宗華, 1700~174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명인(命寅)이 1776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증손 유형(有泂)이 교정하여 1861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1738년 부친을 모시고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일련의 시편 중에는 의론을 개진한 작품이 많다. <산유화(山有花)>에서는 유자의 논도(論道)를 경계했고, <유점사봉완광묘어독(楡店寺奉翫光廟御纛)>에서는 세조의 그릇된 판단을 꼬집었다. 권3~4의 앞부분은 서(書)이고 권4의 뒷부분은 국서(國書), 서(序)이다. 서(序) 가운데 <약전화수계서(藥田花樹契序)>는 전곡(錢穀)을 갹출하여 친족계를 만들게 된 취지와 경위를 적은 글이다. 권5는 기(記), 제발, 송(頌), 명(銘), 설(說), 변(辨)이고 권6은 제문이다. 권7은 애사, 묘지, 행장, 유사이고 권8은 잡저와 부록이다. 잡저 가운데 <죄기서(罪己書)>는 지난날을 반추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독려한 글이다. 권말에 아들 명인이 1776년에 지은 발과 증손 유형이 1861년에 지은 발이 있다.
▶약헌집(約軒集) | 송징은(宋徵殷, 1652~1720)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약헌(約軒) 송징은(宋徵殷, 1652~1720)의 문집이다. 영조(英祖) 연간에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들이 수습한 것으로 보인다. 14권 7책으로 편정되어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간행되었다. 권1은 시(詩) 198수이다. 주자의 감흥 시를 본떠 지은 <의감흥이십수(擬感興二十首)>를 비롯하여 소강절(邵康節)의 <안락와중음(安樂窩中吟)> 등 차운시와 송시,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권2~4는 소차(疏箚) 56편이다. 1696년 지평(持平)으로 있을 때에 올린 만언소(萬言疏) 및 사직소, 진폐소(陳弊疏) 등이 실려 있다. 권5~6은 경연강의(經筵講義), 주사(奏事), 계사(啓辭)이다. 권7~9는 서(書) 49편이다. 박세채(朴世采)에게 올린 <대학독서기차의(大學讀書記箚疑)>를 비롯하여,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에 대한 유귀삼(柳貴三)의 문목(問目)에 대답한 편지 등이 실려 있다. 권10은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 등이다. 잡저에는 양명학(陽明學)의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논박한 <양명논학변(陽明論學辨)>,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읽고 지은 <독유문(讀柳文)> 등이 실려 있다.
▶양곡유고(亮谷遺稿) | 이의길(李義吉, 1596~163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양곡(亮谷) 이의길(李義吉, 1596~1633)의 문집이다. 본집은 4대손 영운(榮運)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8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두에 서문은 없고 목록만 있다. 권1은 부(賦), 사(辭), 시(詩)로, 문체별 저작 연도에 따라 편차하였다. 그중에서 <애여생(哀余生)>은 저자의 나이 19세에 시대와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지은 것이고,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으며 느낀 것을 읊은 <독서(讀書)> 2수가 있고, <송원자건지안주(送元子建之安州)>는 벗 원두표(元斗杓)를 전송하여 지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書), 서(序), 해(解), 묘갈, 제문, 잡저, 잡지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소(疏)는 1624년에 스승 박지계와 함께 인조의 생부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을 추숭하는 문제로 올린 것으로, 이후 1632년에 이귀(李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정원대원군은 원종(元宗)으로 부인은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숭되었다. 권3은 부록으로 묘갈명, 화상찬, <향현사춘추향축문(鄕賢祠春秋享祝文)>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 저자의 외증손인 김종수(金鍾秀)가 1789년에 지은 지가 있다.
▶양곡집(陽谷集)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 중앙도서관,일본 동양문고
조선 초기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아들 소수(蘇遂)가 저자가 사행(使行)할 적에 지은 시, 퇴휴(退休)한 뒤에 지은 시와 서(序)ㆍ기(記)ㆍ비지(碑誌) 등을 모아 14권 7책으로 편집하고 박충원(朴忠元)의 서를 받아 1571년에 곡산(谷山) 임소(任所)에서 간행한 것이다. 권1~10의 시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지은 작품과 중종 28년(1533) 진하사(進賀使)로 중국에 갔을 때 지은 작품 등을 모은 것이다. 그중 권1에는 <동정추월(洞庭秋月)> 등의 응제 문자(應製文字)와 <제괴원장방축(題槐院長房軸)> 등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응제 문자 가운데 <태액청파(太液淸波)>와 <서산제설(西山霽雪)>은 진하사로 중국에 갔다가 귀국한 후 왕명에 따라 지어올린 시이다. 권11~14는 문(文)이다. 그중 권11~12는 저자가 지은 비지(碑誌)를 모은 것이고, 권14는 기(記), 서, 잡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는 <임실외민당기(任實畏民堂記)>ㆍ<신태인선정기(申泰仁善政記)> 등이고, 잡저에는 <서남공시축후(書南公詩軸後)>ㆍ<천자문발(千字文跋)> 등과 사직을 계청(啓請)하는 글이 실려 있다.
▶양곡집(陽谷集) | 오두인(吳斗寅, 1624~168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양곡(陽谷)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원(瑗)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판각하였으나 편집이 정밀하지 않아 간행하지 않은 것을, 저자의 증손 재유(載維)가 구본을 산정ㆍ재편하여 1762년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재(李縡)가 1746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목록은 각 권별로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의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작품 중 <정천사정부총용(呈天使程副摠龍)>은 10세 때 황해도 관찰사가 된 부친 오숙(吳䎘)을 따라갔다가 사신으로 온 명의 부총 정룡(程龍)을 만나 그를 한(漢)나라의 명장 정불식(程不識)에 빗대어 지어 바친 시로 정룡의 차운시와 함께 <황화집(皇華集)>에 수록되었다. 권2는 소차, 계(啓)이다. 소차 가운데 <기사진신소(己巳搢紳疏)>는 1689년 저자가 소수(疏首)로 올린 상소로 원자의 탄생을 계기로 인현왕후를 폐하려 함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을 논하는 내용이다. 권3은 응제문, 기(記), 제문, 잡저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 증손 재유가 1762년에 지은 후지가 있다.
▶양서집(瀼西集) | 이광윤(李光胤, 1564~163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양서(瀼西) 이광윤(李光胤, 1564~16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약간 권이 가장되어 있었는데,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32년 이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되었으나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연보(年譜), 원집(原集) 6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目錄), <헐마장잡영제목(歇馬庄雜詠題目)>, 연보가 있다. 권1~4는 시(詩)이다. 작품 중에는 조우인(曺友仁), 김수(金睟), 이항복(李恒福) 등의 시에 차운한 시, 풍광(風光)을 읊은 시, <차장천사벽제역단오운(次張天使碧蹄驛端午韻)>ㆍ<차공천사벽제우우운(次龔天使碧蹄遇雨韻)>ㆍ<차화천사태평루운오절(次華天使太平樓韻五絶)> 등 사신 접대 때 지은 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5에는 교서, 표(表), 전(箋), 소(疏), 차자(箚子), 서(書)가 있고, 권6에는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지(墓誌), 부록(附錄)이 있다. 그중에서<의병통문(義兵通文)>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영남의 유사(儒士)들에게 의병에 참가하기를 권하는 통문이다. 끝에는 부록으로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갈명(墓碣銘)이 있다.
▶양심당집(養心堂集) | 조성(趙晟, 1492~155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봉좌문고
조선 시대 양심당(養心堂) 조성(趙晟, 1492~155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568년(선조1) 박계현(朴啓賢)이 저자의 시문을 1책으로 엮고 권수에 자신이 지은 서(序)를 붙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에는 시(詩) 80여 수와 문(文) 8편이 실려 있다. 시는 오ㆍ칠언의 절구ㆍ율시ㆍ배율ㆍ고시가 섞여 배열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지은 작품들이다. 문(文)은 <여일지서(與溢之書)>, <여공근서(與公瑾書)>, <여헌지서(與獻之書)>의 편지글 3편과 <논금(論琴)>, 그리고 자신의 당호(堂號)를 <양심당(養心堂)>으로 삼고 이에 대하여 쓴 <양심당서(養心堂序)>, 음률(音律)에 대하여 논한 <율려의문(律呂疑問)>, 산술(算術)에 대하여 논한 <삼백제해(三百題解)>, 1551년에 능성(綾城)의 수령인 홍흠중(洪欽中)에게 ≪명의잡저(明醫雜著)≫의 간행을 부탁하며 지은 <명의잡저발(明醫雜著跋)>이 수록되어 있다. 율려(律呂)에 밝을 뿐 아니라 의약과 산수에도 정통하였고,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성리학에 밝았으며, 음악 이론에도 조예가 깊었던 저자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양와집(養窩集) | 이세구(李世龜, 1646~1700)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양와(養窩) 이세귀(李世龜, 1646~17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은 소론의 중진인 아들 이광좌(李光佐)가 행록과 유사를 지어 가장하였고, 가화(家禍)의 영향과 후손의 영체(零替)로 인하여 저자의 문집이 간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으로, 불분권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1~3은 시(詩)로서, 특정시기별로 묶은 감문록(甘文錄), 대주록(岱州錄) 등의 시록이 실려 있다. 책4는 소(疏), 서(書)이다. 지평, 장령 등 관직을 사직하는 소와 윤증, 남구만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책5~9는 설(說)과 가례로서, <물격설(物格說)>은 ≪대학장구≫의 격물설에 관해 문답식으로 심도 깊게 쓴 것이며, <답삭녕형별폭(答朔寧兄別幅)>은 1693년에 삭녕 군수인 이세필에게 예송의 핵심 사안인 정체(正體)의 개념을 논설한 것이다. 책10~11은 제문, 묘지 등이고 책12~13은 발, 제(題), 서(序), 명(銘), 잡저 등이다. 그중에서 <유사군록(遊四郡錄)>은 1692년의 유람기이고, <서노릉신비수의후(書魯陵慎妃收議後)>는 1698년에 노산군 복위의 타당성과 신비 복위의 어려움을 피력하며 지은 것이다.
▶양원유집(陽園遺集) | 신기선(申箕善, 1851~1909)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양원(陽園)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에 가장과 시장, 제문 등을 부록으로 붙인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권1~2는 시(詩)이고, 권3~4는 소(疏)이다. <언사소(言事疏)> 7편은 국내의 정치 사범의 논죄와 벌칙에 관해 법부대신으로서 올린 상소문이고, <변명소(辨明疏)>는 군부대신으로 재직할 때 군함 계약에 관한 부정 혐의에 대해 변명한 것이다. 권11에 실린 잠(箴) 중에는 입지(立志)ㆍ위학(爲學)ㆍ사친ㆍ계색(戒色)에 대한 것이 있고, 찬(贊) 중에는 정암(靜菴)ㆍ퇴계(退溪)ㆍ율곡(栗谷)ㆍ사계(沙溪) 등을 기린 <본조육군자찬(本朝六君子贊)>이 있으며, 논(論) 중에는 남녀가 서로 지켜야 할 법도에 대해 쓴 <변남녀론(辨男女論)>이 있다. 권15는 문답으로 스승 임헌회를 찾아가서 문답한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사우문답(師友問答)>, 스승과 동문들의 문답을 적은 것으로 성리학, 시국관, 처세관, 인물평 등을 담은 <명강문답(明剛問答)> 등이 있다. 권17에 실린 잡저에는 <계몽천자문(啓蒙千字文)>, <병정일기(丙丁日記)>, <봉사일기(奉使日記)>가 실려 있다.
▶양직집(養直集) | 도성유(都聖兪, 1571~164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양직(養直) 도성유(都聖兪, 1571~164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대부분 화재로 산일되어 약간 편만이 전해졌다. 본집은 1851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수(卷首)에 1851년에 이원조(李源祚)가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만(挽)이다. 그중에서<정축춘문강화지기감음(丁丑春聞講和之奇感吟)>은 청나라와의 강화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하고 삼학사(三學士)를 애달파 하는 내용이다. 권2는 부(賦), 서(書), 제문(祭文), 고유문(告由文), 오경도(五經圖)이다. 특히 오경도는 오경의 관계와 용도를 도식으로 나타낸 <오경체용합일지도(五經體用合一之圖)>, <오경각분체용지도(五經各分體用之圖)>와 학문의 이치ㆍ요체ㆍ도리ㆍ조목을 기술한 것이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가장(家狀), 묘갈명(墓碣銘), 묘지(墓誌)와 1708년에 서원으로 승격된 용호서원과 관련된 <용호사봉안문(龍湖祠奉安文)> 등이 있고 박명섭(朴命燮)이 지은 <오경체용도서(五經體用圖序)>, 유사(遺事), 만(輓), 수창시(酬唱詩), 사우간독(師友簡牘)이다.
▶양촌집(陽村集) | 권근(權近, 1352~1409)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권도(權蹈)에 의해 처음 문집이 편찬되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74년 10세손 권주(權儔)가 진주(晉州)에서 40권 10책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에는 응제시(應製詩) 31수가 실려 있고, 권5~7에는 <점마행록(點馬行錄)>, <봉사록(奉使錄)>, <남행록(南行錄)>과 약간 편의 시(詩)가 실려 있다. 권8에는 정도전(鄭道傳)의 시(詩)에 차운하여 지은 <신도팔경(新都八景)> 등의 시가 실려 있다. 권9에는 중국 사신들과 수창(酬唱)하고 그들을 전송하는 시 등이 실려 있다. 권10에는 말년(末年)에 지은 시 117수와 호정(浩亭) 하륜(河崙)의 시 6수가 첨부되어 있다. 권11부터는 다양한 문체의 산문이 실려 있다. 특히 권34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의 역사 사실 가운데에서 28칙(則)을 택하여 저자의 의견을 붙인 <동국사략론(東國史略論)>이 실려 있고, 권35에는 고려시대 인물 24인의 행적을 기록한 간단한 전기(傳記) 자료인 <동현사략(東賢史略)>이 실려 있다.
▶양파유고(陽坡遺稿) | 정태화(鄭太和, 1602~167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 1602~1673)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간행되지 않은 괘인사본(罫印寫本)이며 서사(書寫) 경위는 ㆍ이나 철종 연간에 저자의 후손들이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이 서사본(書寫本)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원집 15권과 부록 합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통진 현감(通津縣監) 시절의 시,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 시절의 시 등이 있다. 권7~8은 계(啓), 소차(疏箚), 정사(呈辭), 밀계(密啓) 등이다. 권9는 제문, 표전(表箋), 발(跋) 등이다. 권10은 <포사일기(曝史日記)>이다. 권11은 <기해일기(己亥日記)>이다. 효종의 임종(臨終), 조정 신료들의 집상(執喪) 절차를 정하는 과정 등등, 효종의 상례(喪禮)를 치르는 전체 과정이 날짜별로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권12는 세자책봉조사(世子冊封詔使)의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으로 칙사를 접대하고 같은 해 복명하기까지의 일기인 <서행기(西行記)>이고, 권13~14는 정사(正使)가 되어 2차에 걸쳐 명나라에 다녀온 일기인 <음빙록(飮氷錄)>이다. 권15는 불윤비답(不允批答), 어찰(御札)이다.
▶양포유고(楊浦遺藁) | 최전(崔澱, 1568~158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양포(楊浦) 최전(崔澱, 1568~158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유해(有海)가 수집ㆍ편차하고 김현성(金玄成)의 선사를 거쳐 1625년 목판으로 초간한 후, 새로 수집한 시문을 이홍주(李弘胄)의 선사를 거쳐 1636년 추각하고 유묵을 제외한 초간본과 합편한 추각후쇄본(追刻後刷本)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613년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서문, 1621년 신흠(申欽)이 지은 서(敍), 목록이 있다. 첫 작품은<제오수사문(祭吳水使文)>으로 17세 때인 1584년 4월에 지은 자형 오운(吳沄)에 대한 제문이고, 1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저자가 10세 이전에 지은 것에서부터 다양하다. 잡저는 <독역잡설(讀易雜說)>로, ≪주역(周易)≫을 읽으며 ‘천체대이무외 천행건이불식(天體大而無外天行健而不息)’, ‘인자이천지만물위일체(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 등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부록은 묘갈명(墓碣銘), 만사(挽詞) 등과 한준겸(韓浚謙)이 지은 <과양포구거(過楊浦舊居)>이다. 그 뒤로 임숙영(任叔英)이 1612년에 지은 행장(行狀)이 실려 있고 권말에 김장생(金長生)이 162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어계집(漁溪集) | 조려(趙旅, 1420~148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어계(漁溪) 조려(趙旅, 1420~14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516년(중종11)에 손자 조적(趙績) 형제가 시 약간 수를 모아 강혼(姜渾)의 서(序)를 받아 간행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에 9대손 조영석(趙榮祏)이 안음 현감(安陰縣監)으로 있을 때 여러 본을 모아 서로 참고하여 잘못된 것을 고치고 서차(敍次)를 바로잡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1901년에 후손 조석규(趙錫奎)가 속집(續集)을 간행하였다. 본 문집의 권1에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성문준(成文濬)이 지은 전(傳)을 비롯하여 <노릉지전(魯陵志傳)>,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노릉지전>은 윤순거(尹舜擧)가 지은 것으로 생육신열전(生六臣列傳)에 실려 있는 저자 약력(略歷)이다. 묘갈명은 이미(李薇)가 지은 것으로서 저자를 백이(伯夷)ㆍ숙제(叔齊)에 비유한 내용 때문에 구본(舊本)에도 실리지 않은 것을 중간시에 수록한 것이다. 속집인 권3에는 원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여러 관계 기록이 많다. 조선 세종과 성종 때 활약한 문신이며 단종 폐위시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저자의 자취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어당집(峿堂集) | 이상수(李象秀, 1820~1882)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어당(峿堂) 이상수(李象秀, 1820~1882)의 문집이다. 문인 윤병수(尹秉綬)의 발의로 박문호(朴文鎬), 오한응(吳翰應)과 함께 1년 동안 유문을 수집한 뒤 이를 취사(取捨) 편차하였다. 그런 다음 1899년 가을부터 박문호, 오한응과 저자의 장자 건초(建初)가 정리 교정하여 24권으로 편차하고 목천(木川)의 삼한(三閒)에서 1900년 가을부터 인출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1901년 봄에 완료하였다. 본집은 24권 1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병수(尹秉綬)와 박문호의 서(序), 1863년에 윤정현(尹定鉉)이 지은 초고서(草藳序), 각 권에 수록된 문체의 종류만 나열한 간략한 총목(總目)이 있다. 권1~5는 부(賦), 시(詩)이다. 권13~14는 기(記)이다. 권13은 21세부터 36세까지 지은 것으로 산수와 유적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기록한 산수유기(山水遊記)가 많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를 모신 소현서원(紹賢書院) 일대를 유람하고 쓴 <유석담기(遊石潭記)>, 함경도를 유람하고 쓴 <알이공유상기(謁二公遺像記)>, 그밖에 속리산, 금강산 등을 유람하고 쓴 작품들이 있다. 권말에 오한응이 190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어우집(於于集) | 유몽인(柳夢寅, 1559~1623)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유점사(楡岾寺) 승려가 40권을 간행하여 소장해 두었었다고 하는데 이 초간본은 일찍부터 없어진 듯하다. 그 후 7대 방손(旁孫) 유금(柳琹), 8대 방손 유영무(柳榮茂) 등이 수집, 편차하여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6권, 후집 6권으로 되어 있고, 부록이 후집에 첨부되어 있다. 원집 권1~2에는 시, 권3~6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시는 시록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데, 권1에는 관동록(關東錄), 성사록(星槎錄), 남수록(南繡錄), 북수록(北繡錄), 서수록(西繡錄), 호서록(湖西錄), 등이 실려 있다. 권2에는 조천록(朝天錄), 남귀록(南歸錄), 등이 실려 있다. 권3~4에는 서(序)와 기(記)가 실려 있다. 권6에 실린 잡저에는 서원통문(書院通文), 송사(送辭), 화첩(畫帖), 논(論) 등의 글이 있다. 후집 권1~2는 시(詩), 권3~6은 문(文)으로, 전집과 동일하게 편차되어 있다. 문장과 외교로 이름을 떨쳤으며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야담집 ≪어우야담≫의 지은이로 유명한 저자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어촌집(漁村集) | 심언광(沈彦光, 1487~154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어촌(漁村) 심언광(沈彥光, 1487~154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손생(孫甥) 홍춘년(洪春年)이 1572년(선조5)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유집(遺集) 4책을 간행하였으나, 병란을 거치면서 거의 산일(散佚)되었다. 그 후 1889년(고종26) 후손 심양수(沈陽洙)ㆍ심영수(沈榮洙)ㆍ심승탁(沈升鐸)에 의해 문집이 중간되었다. 본 문집은 13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10은 저자의 시문(詩文)이고, 권11~13은 부록이다. 권수에 실린 서문은 송시열(宋時烈)ㆍ박세채(朴世采)ㆍ이민서(李敏敍)가 지은 것으로 신원(伸寃)을 위한 글이다. 시문은 1530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때의 작품인 <동관록(東關錄)>, 1536년 평안도 경변사(警邊使)로 나갔을 때의 작품인 <서정고(西征稿)>, 1537년 8월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을 때의 작품을 모은 <북정고(北征稿)> 등을 수록하고 있다. 권10은 <귀전록(歸田錄)>으로 1538년 파직되어 향리로 돌아가 경호(鏡湖) 별업(別業)에서 몰(歿)하기까지의 작품이다.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저자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여암유고(旅菴遺稿) | 신경준(申景濬, 1712~178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저자의 문인들 및 홍양호(洪良浩)가 주축이 되어 유문을 수습하고 편차한 것으로 보이나 1910년에 가서야 목활자로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13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장연(長淵) 현감 재임 중에 지은 <민은시(民隱詩)> 등이 있다. 권2는 <화방재사(畫舫齋辭)> 1편과 서(書) 10편이다, <화방재사>는 옥천 군수 신씨(申氏)가 연안에 누선(樓船)이 정박한 모양의 화방재(畫舫齋)를 짓자 여기에 기문과 아울러 지어준 노래로, <어부가(漁父歌)>의 형식을 빌어 지었다. 권3은 서(序)이다. 강계지(疆界誌), 도로고(道路考), 훈민정음의 편리함과 우수성에 대해 논한 <운해(韻解)> 등 자찬(自撰) 저술에 대한 서문이 포함되어 있다. 권7~10의 잡저 중 <소사문답(素沙問答)>은 색깔[素]과 형태[沙]의 문답을 통해 음양(陰陽), 소장(逍長) 등에 관한 상대적 가치에 관해 논한 글이다. <시칙(詩則)>에서는 시의 체격(體格)을 48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고, <시중필례(詩中筆例)>에서는 시를 구성하는 14가지 요법을 설명하였다.
▶여와집(餘窩集) | 목만중(睦萬中, 1727~1810)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여와(餘窩) 목만중(睦萬中, 1727~1810)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에 대한 정리는 손자 태석(台錫)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이후의 문집 편찬에 대한 경위는 알 수가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여와집≫은 전사경위(轉寫經緯)가 분명(分明)하지 않은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본집(本集)은 24권 1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이나 목록(目錄)은 없다. 권1~10은 시(詩)이다. 거주지나 부임지 및 유배 등 특정 시기별로 묶은 11개의 시록(詩錄)으로 되어 있다. 형식면에서는 남인 문단의 시풍인 듯 장편 고시가 많은 편이다. 권13은 기(記), 발(跋)이다. 기는 1757년 김포에 터를 잡고 지은 여와(餘窩), 이경환(李景煥)의 애일당(愛日堂), 이인섭(李寅燮)의 사우당(四友堂), 이원(利原)에 유배되었을 때 그곳의 산수와 다보사(多寶寺)를 유람하고 쓴 것이다. 권14는 소(疏)이다. 1807년에 이익운(李益運)이 자신과 아들의 억울함을 상소하여 하소연하자 그의 죄를 변척하여 올린 것 등이 있다. 권24는 연보이다. 1811년 2월 예조 좌랑 신필복(愼必復)을 보내 치제한 내용까지 수록되어 있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권책수 : 76책 | 포갑수 : 15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외현손 김성진(金誠鎭)이 가장유고를 바탕으로 문집을 편차하여 1938년부터 1943년까지 5년에 걸쳐 경성의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연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서는 154권 76책이며, 시문집, 경집(經集), 예집(禮集), 악집(樂集), 정법집(政法集), 지리집(地理集), 의학집(醫學集)으로 분류되어 있다. 시문집은 25권으로, 현실 비판적이고 사실성이 뛰어난 시를 포함해 대책(對策), 소(疏), 원(原), 설(說)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중 설(說)에는 저자의 과학 지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 많고, 논(論)에는 <전론(田論)> 등 실용을 중시한 내용의 작품이 많다. 경집은 48권 24책으로,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있다. 예집은 24권 12책으로, <상례사전(喪禮四箋)>, <가례작의(嘉禮酌儀)> 등이 있다. 악집에는 <악서고존(樂書孤存)>이 있고, 정법집에는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등이 있고, 지리집에는 <강역고(疆域考)>와 <대동수경(大東水經)>이 있으며, 의학집에는 <마과회통(麻科會通)>과 <의령(醫零)>이 있다.
▶여헌집(旅軒集) | 장현광(張顯光, 1554~1637)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문집이다. 1638년 봄부터 저자의 아들 장응일(張應一)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遺文)을 수집하고 교정하기 시작해 1642년에 간행을 완료하여, 성리설 8권 6책과 원집 11권 6책(또는 5책)의 목판본을 내놓았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중간본으로 19세기 말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목판본이다. 원집 13권, 속집 10권 합 12책이다. 원집의 시는 영천(永川), 선산(善山), 인동(仁同)의 경치를 읊은 것이 가장 많다. 소(疏) 중에 <응지진언소(應旨進言疏)>는 진변(震變)을 계기로 올린 응지 상소이다. 서(書)에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잡저 중에는 이기론(理氣論)에 대한 작품, 육경(六經)을 존중하여 고문으로 돌아갈 것을 말한 작품 등이 있다. 논(論) 가운데 <문무일체론(文武一體論)>에서는 문(文)은 경(經), 리(裏)가 되고 무(武)는 위(緯), 표(表)가 되어 일체(一體)임을 강조하였다. 속집에는 실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 이(理), 천(天), 지(地), 인(人)의 세계를 도표로 나타내어 설명하였다.
▶여호집(黎湖集) | 박필주(朴弼周, 1680~1748)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하버드대학
조선 시대 여호(黎湖) 박필주(朴弼周, 1680~1748)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까지 필사본으로만 전하고 있다. 본집은 권1~2는 시(詩)이다. 권1은 1694년 15세 때 선유봉(仙遊峯)을 유람한 시로부터 1731년 김천건(金天健)의 만시(挽詩)까지 140제가 실려 있으며, 권2에는 1732년 송도(松都)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박연(朴淵)>, <숭악(崧岳)> 등을 비롯하여 1748년 임종 때에 지은 절필시(絶筆詩)인 <문종(聞鐘)>, <추회(秋懷)>까지 120제가 실려 있다. 권3~8은 상서(上書), 상소, 서계(書啓), 헌의(獻議)와 같은 공거문(公車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9~16은 편지로, 전기에는 김창흡(金昌翕), 이희조(李喜朝), 김간(金榦) 등 스승과 동료와 주고받은 것이 많고, 후기에는 후배, 문인들과의 문답(問答), 강목(講目)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권17~18은 잡저이다. 성리학적인 주제와 개념을 논한 글들이 많다. 권32도 잡저인데, 이 부분은 쇄록(瑣錄)으로, 당시의 세태와 개인적인 일, 선현의 일화, 조상의 유사(遺事), 중국 고사, 안의 노복들을 가르치는 <계유가중(戒諭家衆)> 등이 있다.
▶역암집(櫟菴集) | 강진규(姜晉奎, 1817~1891)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역암(櫟菴) 강진규(姜晉奎, 1817~189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시대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유집을 가장(家藏)해 오다가 1920년에 아들 유(鍮)와 조카 용(鎔)이 동지 한두 명과 수교(讎校)하고 사문(斯文)의 증정(增訂)을 거쳐 원집(原集)을 6책으로 정리하고, 별집(別集) 1책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1970년에 현손 시창(是昌)이 병선(兵燹)으로 전체 판수(板數)의 2/3만 보존되어 있으므로 다시 원집 12권, 보유 2권 합 7책으로 편차하여 석판본(石版本)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2권, 별집 2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권별 목록이 있고, 목록에 저자가 생전에 편찬한 ≪금계록≫, ≪경호록≫ 등에 수록된 글의 출처를 밝혀 놓았다. 권4는 소(疏), 연설(筵說)이다. 권12는 잡저(雜著)이다. <서사기이충정공순절후(書沙磯李忠貞公殉節後)>는 1866년 병인양요로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결한 이시원(李是遠)의 순절에 대해 쓴 글이고, <유엄목문(諭欕木文)>은 엄나무에 비유하여 벽사(辟邪)에 대한 생각을 쓴 것이다. 권말에 1920년 장남 유와 조카 용이 지은 발(跋)이 있다.
▶역양집(嶧陽集) | 문경호(文景虎, 1556~161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역양(嶧陽) 문경호(文景虎, 1556~1619)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문재박(文再博)ㆍ문연박(文演博)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최흥벽(崔興璧)의 교정을 거쳐 1811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광정(李光靖), 이헌경(李獻慶), 유항주(兪恒柱)가 쓴 서(序)가 있고, 그 뒤에 연보(年譜)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총 92제가 오언절구, 오언사운, 칠언절구, 칠언사운 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소(疏)와 서(書)인데, 소는 기축옥사에 연루된 최영경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상소로서 최영경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밝혀진 뒤 이 사건의 배후에 정철(鄭澈) 뿐 아니라 성혼(成渾)이 실질적인 주모자임을 논하며 죄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이 소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문경호는 정인홍의 사주를 받아 정인(正人)을 무고하였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권3은 기(記), 발(跋), 잡저(雜著)이고 권4는 잡저, 제문(祭文), 수묘문(修墓文), 묘지(墓誌)이며, 권5~6은 부록으로 만장(挽章), 행록(行錄), 상량문과 봉안문 등이다.
▶역옹유고(櫟翁遺稿) | 이정신(李正臣, 1660~172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역옹(櫟翁) 이정신(李正臣, 1660~1727)의 문집이다. 유문은 저자 사후 사남 이철보(李喆輔)가 중심이 되어 행장 및 묘지, 묘표를 짓는 등 유적과 유문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사본이다. 본집은 9권 6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1은 화산록(花山錄), 내주록(萊州錄), 동관록(東關錄), 연행록(燕行錄), 습유록(拾遺錄)으로, 관직에 재임할 때 지은 시문을 수록하였다. 권2~4는 소차(疏箚)와 의계(議啓)로, 소차는 대부분 정세와 관련하여 관직을 사임하는 사직소이고, <사도승지재소(辭都承旨再疏)>는 1721년 최규서(崔奎瑞), 최석항(崔錫恒) 등의 상소를 퇴각하여 언로를 막은 승지들과 유복명(柳復明) 등을 탄핵한 대신들을 견책하고 파면하여 임금의 권세와 기강을 거두어 잡을 것을 진달한 것이다. 권6은 지장(誌狀)이고 권7~8은 연행록으로 1721년 3월 4일 하직하여 4월 30일 조양문(朝陽門)을 통해 북경에 들어가기까지의 기록이다. 권9는 부록으로 행장, 묘표, 부인 유씨(柳氏)의 언해본 제문 반편(半篇)을 자손들이 한역한 <제고실정부인문(祭故室貞夫人文)> 등이 있다.
▶역천집(櫟泉集) | 송명흠(宋明欽, 1705~1768)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1705~176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아들 송시연(宋時淵)과 임성주(任聖周), 김원행(金元行) 등이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는 데 참여하였고, 1805년 송시연이 성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19권 10책을 목판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권1~3은 시(詩)이다. 시를 수창한 대상은 대부분 일가친척이나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고, 시의 내용은 유람한 지역이나 배알한 서원들을 읊은 것이 많다. 권4는 소(疏), 서계, 헌의이다. 소(疏) 중에서 1763년에 올린 <출성후갱진연대미필지회소(出城後更陳筵對未畢之懷疏)>는 임금의 노여움을 사 결국 관직이 삭탈되고 서인(庶人)이 되어 전리(田里)로 방축되는 일을 겪는 계기가 되었다. 권5~11은 서(書)이다. 성리학에 대한 문답, 상례 등에 대한 물음에 조목조목 답한 내용 등이 있다. 권12~13의 앞부분은 잡저이다. ≪대학장구≫에 대한 문답을 기록한 <옥유강록(玉溜講錄)>, 경구(警句)를 이것저것 모아 놓은 잡지, 화전(花田)에서 이재(李縡)와 성리학에 대해 문답한 <화전기문(花田記聞)> 등이 있다. 그밖에 서(序), 기(記), 제발(題跋), 논(論) 등이 실려 있다.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 성해응(成海應, 1760~1839) | 권책수 : 88책 | 포갑수 : 18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61권, 외집 70권, 속집 17권, 행장 합 88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 가운데 <참마항(斬馬巷)>은 김유신(金庾信)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 취한 사이 자신을 태우고 창가(娼家)에 이른 말의 목을 친 내용을 읊은 시이며, 그밖에 기행시, 영사시(詠史詩), 영물시(詠物詩), 애시(哀詩), 만시(挽詩) 등이 있다. 문(文) 중에는 휴정대사(休靜大師)를 모신 수충사(酬忠祠)의 기문, 철원과 단양의 산수를 유람한 유람기(遊覽記), 계절마다 금강산의 이름이 다른 연유를 설명한 <풍악설(楓嶽說)>, 의로운 행동을 한 인물과 말[馬]에 대해 쓴 전(傳), 패수(浿水)는 대동강이고 살수(薩水)는 청천강이라는 사실을 여러 사료를 근거로 고증한 <답조운석서(答趙雲石書)> 등의 편지, 중국의 시대별 경학(經學)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한학(漢學)과 송학(宋學)을 서로 보완해야 경의(經義)가 분명해진다고 본 <육경설(六經說)> 등의 작품이 있다. 그밖에 경(經)에 대한 제설(諸說)을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부기(附記)한 <경해(經解)> 등이 있다.
▶연석(燕石) | 유언호(兪彦鎬, 1730~1796)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칙지헌(則止軒) 유언호(兪彥鎬, 1730~1796)의 문집이다. 저자 생전에 자편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전하지 않고, 현재 전하는 저자의 문집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13책의 필사본뿐이다. 또 시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실되어 본 문집에는 시가 실려 있지 않다. 책1에는 서(序) 13편이 실려 있다. 장인인 민우수(閔遇洙)의 61수를 축하하는 수서(壽序), 서도(西都)에서 승경(勝景)을 유람하고 지은 <증김장사수서(贈金丈士修序)>, 의서(醫書) 가운데 요언(要言)을 뽑아 분류하여 엮은 ≪백가정수(百家精蒐)≫에 대한 서문 등이 있다. 책2는 기(記) 13편으로, 연월암(淵月菴), 우헌(愚軒) 등 건축물에 대한 기문과, 이심원(李深遠)의 거처에서 벗들과 모여 문주(文酒)를 즐겼던 시말을 기록한 <동원아집기(東園雅集記)> 등이 있다. 책3은 제발(題跋)이다. 장인 민우수가 저자에게 보내 준 편지 40여 편을 민우수 사후에 첩(帖)으로 엮은 뒤 발을 쓴 <섬호서독발(蟾湖書牘跋)> 등이 있다. 책4에는 가장하고 있던 검(劒)에 대해 지은 <삼인검찬(三寅劔贊)>, 국화를 넣어 만든 베개에 대해 지은 <국침명(菊枕銘)> 등이 있다.
▶연암집(燕巖集)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택영(金澤榮)이 저자의 글을 원집 6권 2책으로 편찬하여 1900년에 전사자로 간행하였으며 다음 해인 1901년에 같은 양식으로 속집 3권 1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932년 저자의 후손 박영철(朴榮喆)이 박종채(朴宗采)의 정리본을 17권 6책으로 정리하여 서울에서 연활자로 인행한 삼간본이다. 권1~5는 원집, 권6~10은 별집, 권11~15는 <열하일기(熱河日記)>, 권16~17은 <과농소초(課農小抄)>로 구성되어 있다. 문체별로는 서(序), 기(記), 발(跋), 서(書), 시(詩) 등 다양한 문체가 실려 있다. 내용은 우도(友道)가 무너진 세태를 탄식한 것,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을 주장한 것, 서민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서술한 것, 양반 사회의 위선적인 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 등 뛰어난 문장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특히 <열하일기>는 1780년 저자가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중국의 성경(盛京), 북경(北京), 열하(熱河)를 돌아보고 지은 것으로 변화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뛰어난 필치로 생생하게 전하는 연행문학(燕行文學)이다.
▶연재집(淵齋集) | 송병선(宋秉璿, 1836~1905) | 권책수 : 24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동생 송병순(宋秉珣)과 정기연(鄭璣淵) 등 문인들이 1907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3권 2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는 부(賦)와 시(詩)이다. 부는 서정부(西征賦)로 관서 지방을 유람하고 경치와 고사에 대해 읊은 것이다. 시는 관서(關西), 관동(關東)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가 많다. 권4의 소(疏)에는 사직소와 의제(衣制)를 개혁하지 말 것을 청한 소, 양인의 교주당(敎主堂) 설치를 금지할 것을 청한 소, 흉적(凶賊)을 토벌할 것을 청한 소 등이 있다. 권5~16은 서(書)이다. 편지의 대부분은 성리학과 예(禮)에 대해 질의하고 논한 것이다. 권17~22는 잡저이다. 이중에서 <수문잡지(隨聞雜識)>는 ≪맹자≫, ≪서경≫ 등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적은 것이다. 권18에 실린 설(說) 중에서 <벽사설(辟邪說)>은 노자와 양묵(楊墨) 등 이단을 물리쳐야 한다는 내용이고, <장희설(長噫說)>은 예악형정(禮樂刑政)과 의관문물(衣冠文物)이 파괴되고 있음을 직시하며 성현의 학문을 지키자고 제언한 내용이다.
▶연천집(淵泉集) | 홍석주(洪奭周, 1774~1842)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1774~1842)의 문집이다. 본집은 1876년 저자의 외손 한장석(韓章錫)이 산정ㆍ편차한 정고본을 20세기 초에 전사한 사본이다. 본집은 44권 20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로는 전라도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것, 강원도에 산불 피해가 있을 때 위유어사(慰諭御史)로 파견되어 지은 것,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 관직에서 물러나 동생들과 한가로이 한강 가를 주유(舟遊)하며 지은 것이 많다. 소차 중에 1810년에 올린 <팔조진계겸사부제학직제학소(八條陳戒兼辭副提學直提學疏)>는 홍문관 부제학과 규장각 직제학을 사직하면서 순조(純祖)에게 학문을 강론하여 마음을 바르게 할 것 등 여덟 조목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잡저 중에 <힐수문(詰睡文)>은 잠을 의인화하여 주인과 잠이 문답하는 형식으로 쓴 글이고,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은 실사구시란 시비의 실을 구하는 것임을 밝힌 글이다. 그밖에 7년간 주역을 읽으면서 터득한 것을 기록한 <독역잡기(讀易雜記)> 등의 작품이 있다. 저자의 문집은 동생인 홍길주(洪吉周), 홍현주(洪顯周)의 시문을 함께 모은 ≪영가삼이집(永嘉三怡集)≫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연파시초(蓮坡詩鈔) | 김진수(金進洙, 1797~186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연파(蓮坡) 김진수(金進洙, 1797~1865)의 문집이다. 저자는 중인(中人) 가문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고, 연경과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서사집(西社集), 호령집(湖嶺集), 관해집(關海集), 연사집(燕槎集), 벽로집(碧蘆集) 등 11권, 금강북정행기(金剛北征行紀) 3책, 약간 권의 서(序), 논(論), 잡문을 남겼다. 저자가 졸하고 3년 뒤인 1868년에 아들 김동필(金東弼)이 가장되어 있던 시문을 편차해 두었는데, 그 후 손자 김돈희(金敦煕)가 시(詩) 2권만을 직접 필사하여 1928년 석판(石板)으로 간행하였다. 먼저 연경에 가는 도중과 연경에 가서 지은 시로는, <도만(渡灣)>, <석문령(石門嶺)>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연도잡영은 등희(燈戱), 태자하(太子河), 이제묘(夷齊廟) 등에 대해 지은 7언 절구 35수가 있다. 국내 산천을 유람하며 지은 시로는 경주, 통영 등의 경상도 지방을 유람할 때 지은 것, 금강산을 거쳐 동해안을 유람할 때 지은 것 등이 있다. 이밖에 환갑을 맞이하여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회포를 적은 <육십세음(六十歲吟)>과 송시(送詩), 증시(贈詩), 차운시 등이 실려 있다.
▶연헌잡고(蓮軒雜稿) | 이의무(李宜茂, 1449~150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연헌(蓮軒) 이의무(李宜茂, 1449~150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遺稿)는 평소 시문을 모아 두지 않아 거의 산일되었으나, 삼남(三男) 이행(李荇)이 흩어진 시문을 모아 두었고, 1529년 오남(五男) 이미(李薇)가 수집한 유고를 3권 1책으로 만들어, 1530년 강릉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6대손 이광하(李光夏)가 1696년 초간본에 자신의 발문을 붙여 함흥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권1에는 부(賦)와 잡저가 실려 있다. 부는 응제(應製)에서 장원한 <형화부(螢火賦)>ㆍ<희우부(喜雨賦)> 등이 있으며 잡저로는 여묘시(廬墓時)의 정회(情懷)를 읊은 작품과 효제(孝悌)를 강조하는 내용의 글이 많다. 권2에는 오언ㆍ칠언을 중심으로 각 체의 시(詩)를 편년 및 형식에 관계없이 <잡시류(雜詩類)>란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권3에는 전마(戰馬)를 점고(點考)하기 위해 관서 지방을 순행(巡行)할 때의 시를 모은 <관서기행록(關西紀行錄)> 등이 있다. 청렴하고 기세(氣勢)가 활달했다는 평을 받는 저자의 시문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열암집(悅菴集) | 하시찬(夏時贊, 1750~182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 1750~1828)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성필(聲弼)과 종손 정익, 정창(正昌) 등이 수습 편차하여 1834년에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에게 서문을 받고 서능보(徐能輔)와 윤종대(尹鍾大)의 발문을 붙여 달성하문(達城夏門)의 세거지인 대구(大邱)의 독무암서(獨茂巖棲)에서 1836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이후회(李詡會)와 홍직필이 1834년에 지은 서(序)가 있으며, 책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요 수창자는 유양선(柳養善), 임희택(任希澤) 등이다. 권4는 발(跋), 찬(贊), 명(銘), 잡저(雜著)이다. 명 가운데 <괴헌고정명(槐軒古井銘)>은 유계(柳溪)에 있는 곽재겸(郭再謙)의 유허에 사당을 지을 때 수백 년 간 매몰되었던 우물이 완연한 모습으로 발견되자 선인들이 강학하며 덕을 기르던 옛 도를 회복하기를 기원하며 1785년에 지은 것이다. 권미(卷尾)에 서능보가 1835년에, 윤종대가 1836년에 지은 발(跋)과 “세병신암서개간(歲丙申巖棲開刊)”의 간기(刊記)가 있다.
▶염헌집(恬軒集) | 임상원(任相元, 1638~169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염헌(恬軒) 임상원(任相元, 1638~16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생전에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의 아들 임수간(任守幹)이 정리된 유고(遺稿)를 수습하여 편차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증손 임희성(任希聖)이 가장되어 오던 유집(遺集)을 1761년부터 1765년 사이에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5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1~25는 시(詩)이다. 우(雨)와 설(雪)을 주제로 한 시(詩)만도 200여 제가 넘고, 기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화 등 자연 현상을 소재로 한 시가 매우 많다. 또 견흥(遣興)이나 서감(書感), 독서시(讀書詩)도 자주 등장하는 제목이다. 산문 가운데 <수성난어창업론(守成難於創業論)>은 1665년 문과별시 수석 때의 작품이다. 기(記)로는 윤심(尹深)의 무근당(無近堂), 남구만(南九萬)의 우산정사(愚山精舍), 천마산(天磨山) 대흥사(大興寺) 등에 대한 작품이 있다. 서(序)로는 자신의 저술인 ≪교거쇄편(郊居瑣編)≫의 서를 비롯하여 ≪송파시집(松坡詩集≫, ≪죽당집(竹堂集)≫, ≪익재집(益齋集)≫에 지은 서문 등이 있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영은집(瀛隱集) | 남공수(南公壽, 1793~187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영은(瀛隱) 남공수(南公壽, 1793~187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저자 사후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삼종제 흥수(興壽)가 저자의 장자인 유옥(有鈺)과 함께 유문(遺文)을 찬차(撰次)하고 여러 문인(文人)들에게 수차례의 교감(校勘)을 받아 7권 4책으로 정리한 뒤 이만인(李晩寅)의 서문(序文)을 받아 1895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1891년 이만인이 작성한 서문과 목록(目錄)이 있다. 권1~2의 전반부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詩體)의 구분 없이 저작연도 순으로 편차(編次)되어 있고, 남몽양(南夢陽), 이준상(李準祥) 등 47인을 애도(哀悼)하는 만시(挽詩)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권3의 후반부는 잡저(雜著)이다. <장서계(藏書誡)>는 자손들에게 장서의 효율적인 방법과 중요성을 말하고, 장서보다 독서가 중요함을 깨우쳐주는 글이고, <구상유설(狗相乳說)>은 형네 개가 새끼를 낳고 병이 나자 동생네 개가 젖을 먹였다는 일화에 빗대어 남상규(南尙圭) 형제의 효행(孝行)과 우애(友愛)를 기록한 것이다. 권말(卷末)에 삼종제 흥수의 발문(跋文)이 있다.
▶영재집(泠齋集) | 유득공(柳得恭, 1748~180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문집이다. 저자는 20대 후반부터 글을 모아 편차해 두었던 것으로 보이나 글 중에서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만이 별도로 편차되어 간행되었을 뿐이고, 문집은 간행되지 않은 채 ≪영재집(泠齋集)≫, ≪영재서종(泠齋書種)≫ 등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다. 본집은 ≪영재집≫을 저본으로, 15권 4책이다. 시 가운데 <이십일도회고시>는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 도읍지 21곳을 대상으로 칠언절구 형식으로 지은 43수의 서사시이다. 기행시로는 <열하기행시(熱河紀行詩)> 49수와 <요야거중잡영(遼野車中雜詠)> 33수 등이 있다. 서(序)로는 ≪동시맹(東詩萌)≫, ≪병세집(並世集)≫, ≪발해고(渤海考)≫에 대한 것과 정조의 명을 받고 이덕무가 편찬한 일본의 지리, 물산 등에 대한 ≪청령국지(蜻蛉國志)≫의 서(序) 등이 실려 있다. 그밖에 해금을 잘 연주했으나 불우한 삶을 산 유우춘에 대한 전기 <유우춘전(柳遇春傳)>, 저자의 조부인 유한상이 병아리들의 우애를 목격하고 칠언시로 지어 주었던 것을 다시 글로 엮은 <의계설(義鷄說)>, 과거의 폐단을 지적한 <과폐책(科弊策)> 등의 작품이 있다.
▶오룡재유고(五龍齋遺稿) | 남명학(南溟學, 1731~179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오룡재(五龍齋) 남명학(南溟學, 1731~1798)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사자(嗣子) 양룡(陽龍)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유한준(兪漢雋)의 교수(校讎)를 받아 1801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本集)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가 1800년에,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과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이 1801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문(文)에는 서(書), 제문(祭文), <만록(漫錄)>, <북설(北說)>, 강주(講奏), <환향전책(還餉殿策)> 등이 있는데, <북설>은 북방지역의 습속,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어지지만 유풍(儒風)이 이어져 근래에 이재형(李載亨), 한몽린(韓夢麟) 등이 문학을 진흥한 일, 왜란과 호란 때의 호국(護國), 영조대의 북방 인재 등용 등에 대한 기술이다. 강주(講奏)는 1765년과 1766년에 유생으로서 경연에 참여하여 영조와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환향전책>에서는 임금이 몸소 절약하고 엄중한 법으로 수령을 다스려야 환향의 폐단을 없앨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오리집(梧里集) | 이원익(李元翼, 1547~1634)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의 친손(親孫)인 이수강(李守綱)과 족질(族姪) 이희년(李喜年)에 의해 처음 정리되었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증손인 이상현(李象賢)이 편차하여 1691년에 간행한 함흥본(咸興本) 원집과 현손(玄孫) 이존도(李存道)가 편찬하여 1705년에 간행한 속집을 합한 것이다. 원집 권1은 시(詩), 제문(祭文), 잡저(雜著), 대책(對策), 표(表)이고, 권2부터 권6까지는 <변정응태무주문(辨丁應泰誣奏文)> 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차(疏箚)이다. 부록에는 연보(年譜)와 묘지(墓誌) 및 일사장(逸事狀) 등이 실려 있다. 보유(補遺)는 대부분 잡저로 이루어져 있다. 속집은 2권의 소차(疏箚) 등과, <인견주사(引見奏事)> 2권, 그리고 연보를 포함한 부록으로 되어 있다. <인견주사>에는 1596년 성주(星州)에서 환조(還朝)하여 인견한 것과 1623년 이괄(李适)의 난 때 공주(公州)에서 호종(扈從)하면서 인견한 기록과 1626년 모문룡(毛文龍) 모반 계획을 감지하고 그를 논의한 인견 기사와 1627년 정묘호란 때의 인견 기사 등이 실려 있다.
▶오봉집(五峯集) | 이호민(李好閔, 1553~1634)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죽은 지 3년 만에 아들 이경엄(李景嚴)이 가장유고(家藏遺稿)를 정리하여 이식(李植)에게 교정을 부탁해 발문을 받고, 저자의 조카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경의(李景義)에게 보내어 1636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15권과 부록 합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636년에 쓴 이민구(李敏求)의 서문이 실려 있고 목록이 있다. 권1~6에는 1000여 수의 시(詩)가 실려 있다. 저자의 시는 서경시(敍景詩)와 증시(贈詩), 차운시(次韻詩) 등 다양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주(義州)에 피난 갔을 때 지은 시와 여러 차례 중국을 오가며 지은 시, 사신과의 차운시가 많은 편이다. 권7~15는 문(文)인데, 이 중<안경명(眼鏡銘)>은 중국 사람들이 안경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노쇠함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다. 그밖에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식은 저자의 글을 두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격조 속에 평담(平淡)한 생각을 담은 것이 특징이라고 평가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오봉집(梧峯集) | 신지제(申之悌, 1562~162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봉(梧峯) 신지제(申之悌, 1562~1624)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신진귀(申震龜)가 회산잡영 등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39년 이광정(李光庭)의 교정을 거쳐 1740년에 의성 장대서원에서 목판으로 초간한 원집과, 현손 진귀(震龜)가 새로 수집한 시문과 자신이 찬한 연보를 김이만(金履萬)의 산정을 거쳐 편차한 별집을 1789년에 6대손 체인(體仁)이 7대손 정오(鼎五)와 함께 교감ㆍ개편하여 목판으로 초간한 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과 별집을 합본한 5책으로, 원집은 4책이고, 별집은 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에 1739년에 이광정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같은 해에 지은 권상일(權相一)의 발문이 있다. 각 책의 앞에 목록이 있다. 권1~5는 시(詩)이고, 권6~7은 기, 서(序), 차, 교, 제문, 묘지, 서(書), 습유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미에 1739년에 권상일이 지은 문집발과 간기가 있다. 별집은 목록, 시, 소, 서(書), 지발, 제문 등 70여 편과 연보가 있으며, 1742년에 김이만이 지은 별집발과 6세손 신체인이 지은 별집개편후지(別集改編後識)가 있다.
▶오봉집(鰲峯集) | 김제민(金齊閔, 1527~159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봉(鰲峯) 김제민(金齊閔, 1527~1599)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도기(道器)가 수집ㆍ편차한 고본(稿本)을 외현손 제주 목사 이익태(李益泰)가 1695년 제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에, 1804년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과 1829년 저자의 증직관계기록(贈職關係記錄)을 모은 속집(續集)을 헌종 연간(憲宗年間)에 후쇄(後刷)한 것이다. 본집은 원집 3권, 속집 합 3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편집 체제가 조금 뒤섞여 있다. 권수에 1684년에 윤증(尹拯)이 지은 서(序)와 1804년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행장이 있다. 권1은 권수제(卷首題)가 ‘오봉선생집’으로 되어 있는 부분과 ‘오봉유고’로 되어 있는 부분이 있고, 권2에는 <진보방요무소(進保邦要務疏)>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과 외적을 방어하는 방도 등을 논한 <보방요무(保邦要務)> 42조 중 23조가 실려 있으며, 권3에는 <보방요무> 19조와 제문 등이 있다. 원집 권미에는 1695년 이익태(李益泰)가 지은 발문이 있고, 속집에는 증직과 시호를 내려 줄 것을 청하는 소본(疏本)과, 이후 1829년 저자가 이조 판서를 증직 받은 기록이 있다.
▶오산집(五山集) | 차천로(車天輅, 1556~161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중기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1556~1615)의 문집이다. 정조(正祖)가 저자의 문집을 수집, 고정(攷定)하여 활자로 인출(印出)해 올리라고 명을 내렸고 홍양호(洪良浩)가 후손이 올린 ≪오세유고(五世遺稿)≫ 10여 권을 산정(刪定)해 8권으로 편차하여 1791년(정조15)에 평양에서 목활자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1909년 12세손 차일룡(車一龍)이 이미 간행된 원집과 함께 속집 4권 합 6책을 상주(尙州)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 권1~4에는 각 체의 시가 실려 있다. 내용은 주로 권필(權韠), 이수광(李睟光) 등 당시 문인들과의 수창시와 승경(勝景)을 읊은 시, 춘첩자(春帖子)나 영상시(迎祥詩), 만시(挽詩) 등인데, 특히 중국 사신의 접대와 관련된 시가 많다. 권5에는 서(序), 기(記), 발(跋), 서독(書牘), 잡저, 소장(疏章), 비명, 묘지명, 제문이, 권6에는 교서(敎書), 고유문(告由文), 계(啓), 가요(歌謠), 전(箋), 표(表), 상량문, 인(引), 권선문(勸善文), 노포(露布), 세계도(世系圖)가 실려 있다. 속집에도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오산집(梧山集) | 서창재(徐昌載, 1726~178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오산(梧山) 서창재(徐昌載, 1726~178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명윤(明胤)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손 간발(榦發)이 이인행(李仁行)에게 수교(讎校)를 받아, 저자가 직접 성편(成篇)하고 이상정의 손자 이병원(李秉遠)이 교정한 ≪관례고정≫과 함께 1831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3은 서(書)이다.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대부분 스승이나 문인, 조카들과 경서, 예서 등에 대해 질의 응답한 것으로, 별지나 문목을 덧붙여 작성하였다. 권4는 잡저, 서(序), 발(跋)이다. 잡저는 ≪중용장구≫의 여러 의문점들에 대한 견해를 진술한 <중용질의(中庸質疑)>이다. 권5는 잠(箴), 명(銘), 상량문, 제문, 행장, 묘지이다. <성인육잠(成人六箴)>은 조카 영윤의 관례를 앞두고 성인이 닦아야 할 지신(持身), 사친(事親) 등의 여섯 조목을 들어 규계(規戒)한 것이다. 권미에 종손 간발이 1831년에 지은 발이 있다.
▶오서집(梧墅集) | 박영원(朴永元, 1791~1854)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서(梧墅) 박영원(朴永元, 1791~1854)의 문집이다. 저자의 장남 박도빈(朴道彬)은 저자가 졸한 이후부터 1860년대 초반 사이에 행장과 묘표, 묘지명을 직접 짓고, 시장(諡狀)을 정원용(鄭元容)에게 받아 두었는데, 이 글들은 모두 부록으로 편차되어 있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불분명한 괘인선사본이다. 본집은 16책이지만, 책1, 6, 7과 목록 또는 책16은 낙질(落帙)된 낙질본이다. 시는 시록 형태로 묶여 전해지는데, 내직에서 근무할 때 지은 시를 모은 반춘록(伴春錄), 수원부 유수 시절 지은 시를 모은 화축록(華祝錄), 진하겸사은사정사로서 연경(燕京)에 다녀오는 길에 지은 시를 모은 연사록(燕槎錄), 함경도 관찰사 재직 시절 지은 시를 모은 풍패록(豐沛錄) 등이 있다. 책5는 응제록(應製錄)과 사명록(詞命錄)이다. 책8~9는 공거록(公車錄)이고, 책10은 경연과 서연(書筵)에서 경전을 강의한 것을 기록한 강의(講義)이다. 책11은 가승(家乘)과 집안의 제례, 상례 등에 대하여 자손에게 당부하는 글인 시곤록(示昆錄)이다. 책12~13은 건연록(巾衍錄)으로 각종 문체의 글들이 실려 있다. 책14~15는 부록이다.
▶오아재집(聱齖齋集) | 강석규(姜錫圭, 1628~169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오아재(聱齖齋) 강석규(姜錫圭, 1628~16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주우(柱宇)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1738년 저자의 문인 권섭(權燮)의 편차를 거쳐 만든 고본을, 저자의 7대손 학수(學秀)가 6대손 영로(永老)의 산정을 거쳐 191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5는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는 고산 찰방 재임 때에 지은 <갑인초원우관감음(甲寅草原郵館感吟)>, 과제로 지은 <궁전팔영(宮殿八詠)> 등이 있다. 권6은 부, 표, 잠, 명, 송, 찬, 전(箋), 상량문, 애사, 서(書)이다. 권7은 소장, 교서, 주문이다. 성혼과 이이의 문묘 출향이 부당함을 진달하고 복향하여 줄 것을 청한 <우율양현신변소(牛栗兩賢申卞疏)>,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올린 <기사오월상소(己巳五月上疏)> 등이 있다. 권8은 기, 서(序), 발, 식, 논이고 권9는 설, 전(傳), 제문, 묘지, 묘갈명, 묘표이다. 권10은 선조와 기성에 살던 장처사(張處士)와 김담(金譚)의 행장이고, 권말에는 1916년에 7대손 학수(學秀), 6대손 영로, 9대종손 조원(祚遠)이 쓴 발이 있다.
▶오음유고(梧陰遺稿) | 윤두수(尹斗壽, 1533~160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 1533~1601)의 문집이다. 시문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유실된 것을 아들 윤방(尹昉)이 수집 정리하여 1635(인조13)에 장유(張維)와 김상헌(金尙憲)의 서문을 받아서 목활자로 간행하였고, 윤두수의 5대손 윤순(尹淳)이 평안도 관찰사로 나간 형 윤유(尹游)와 초간본에 싣지 못한 습유(拾遺)를 덧붙여 원집 3권, 부록 합 2책을 1728(영조4)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2는 시로 시체의 구별 없이 창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권1은 임진란 이전의 작품들로 옥당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내구마를 하사받은 <소자적벽유(蘇子赤壁遊)>를 비롯하여 140여 수의 시가 실려 있고, 권2는 임진란 이후의 작품들로 왜란 때 임금을 호종하던 중에 지은 <의주작(義州作)>을 비롯하여 150여 수가 실려 있다. 권3은 문(文)으로 임진왜란 때의 방어책이나 군량미 운송에 관한 계책, 무사를 양성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대책 등 대부분 임란(壬亂)과 관계된 글이 있다. 부록에는 최립(崔岦)의 신도비명(神道碑銘)과 신흠(申欽)의 비음기(碑陰記), 권말에는 아들 윤방의 발문이 있다.
▶오재집(寤齋集) | 조정만(趙正萬, 1656~173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재(寤齋) 조정만(趙正萬, 1656~17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손 덕수(德洙)가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한 고본을, 현손 기진(基晉)과 5대손 면호(冕鎬)가 1877년 교수ㆍ재편한 괘인사본으로 그 전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자연 경물을 대상으로 지은 시, 함께 시사를 열었던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시보(金時保), 김창집(金昌集)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권3은 소(疏), 헌의(獻議), 전장, 서(書), 행장, 비명 등이다. 그중에서 <우재송문정공변무소(尤齋宋文正公辨誣疏)>는 1684년에 성균관 유생의 소두로서 윤증의 무패한 형상을 극론하고 송시열을 변송한 것이며, 그 외에 충청도 관찰사, 공조 참의, 공조 판서 등의 관직을 사직하는 소가 있다. 권4는 제발, 상량문, 잡저, 부록이다. 권말에 이이명(李頤命)이 1708년에, 이희조(李喜朝)가 1712년에 시고에 붙인 제(題)와 이의현(李宜顯)이 1726년에 지은 발, 현손 기진이 1877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오천집(梧川集) | 이종성(李宗城, 1692~1759)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 시대 오천(梧川) 이종성(李宗城, 1692~1759)의 문집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5대손으로, 조현명(趙顯命), 박문수(朴文秀) 등과 교유하였으며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적극 옹호한 소론(少論) 준론(峻論)의 영수(領袖)이다. 시문(詩文)을 수집(蒐集)하고 편차(編次)한 이는 양자 이경륜(李敬倫)이고, 본집(本集)을 교수(校讐)한 사람은 족현손(族玄孫) 이유원(李裕元)이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15권과 부록(附錄) 5권 합 12책으로, 권두(卷頭)에 이유원(李裕元)의 서문(序文)이 있다. 권1은 1725년부터 1748년 사이에 지은 총 366수의 시고 말년의 작품은 유실된 듯하다. 권2~8은 소차(疏箚) 215편, 권9는 계(啓), 의(議), 옥당고사(玉堂故事), 서(序), 기(記), 발(跋), 응제문(應製文), 권13은 제문(祭文), 권14는 편지글, 권15는 가범(家範), 부록(附錄)은 모두 5권으로, 권1~4까지는 이경륜(李敬倫)이 찬한 연보(年譜)이고, 권5는 이유원(李裕元)의 신도비명(神道碑銘)과 고묘문(告墓文), 이경륜(李敬倫)의 묘지(墓誌), 홍양호(洪良浩)의 용만기혜비(龍灣紀惠碑)가 있다.
▶오탄집(梧灘集) | 심유(沈攸, 1620~168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오탄(梧灘) 심유(沈攸, 1620~16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한주(漢柱)가 수집ㆍ편차하여 의성에서 170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상하(權尙夏)와 김진규(金鎭圭)가 1708년에 지은 서(序)가 있고, 목록이 실려 있다. 권1~12는 시로, 시체별 분류를 해 놓았다. 각 시체 내에서는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용안 현감, 옥천 군수, 안변 부사, 황해도 관찰사 등 지방관 재직 시, 왜사 접위관 시 지은 시들이 다수이다. 권13은 표전, 교서, 하장, 소(疏) 등이다. 표전은 동지, 정조, 탄일, 평복을 하례하는 전문 4편과 승하를 진위하는 전문 2편이고, 교서는 김석익(金鎭圭)과 이선(李選)에게 내린 것이다. 이밖에 <경시관복명후진호남민정소(京試官復命後陳湖南民情疏)>는 1670년 호남에 경시관으로 다녀와 자연재해가 심해 대동수미, 군포, 조적 등을 완전히 감면시키지 않으면 안 될 실상을 진달한 것으로, 끝에 묘당과 의논하여 처리하겠다는 비답이 부기되어 있다. 소는 대부분 사직소이다. 권14는 행장으로 조부 집(諿), 부친 동귀(東龜)에 대한 것이다.
▶오한집(聱漢集) | 손기양(孫起陽, 1559~161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오한(聱漢)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문집이다. 증손 손석관(孫碩寬)이 유고를 철습하여 등사하였고, 5대손 사익(思翼)이 1781년 저자의 시문과 관계기록을 다시 수집ㆍ편차하고 1782년 이광정(李光靖)의 교감을 거쳐 만든 정고본을, 7대손 종하(鐘夏) 등이 다시 이상발(李祥發)의 산정을 받아 182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원집 4권, 연보,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82년에 이광정, 채제공이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2제와 ≪배민록(排悶錄)≫에 실린 총 179제의 시이고, 권2는 ≪철조록(輟釣錄)≫으로 128제의 시가 실려 있다. 권3은 소, 서(書), 서(序), 기, 비명, 제문, 전(箋), 상량문, 전(傳)이고 권4는 잡저, 연보, 부록이다. 특히 <일록(日錄)>은 난중일록으로, 1598년 1월 1일부터 1599년 3월 27일까지의 기록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갈명, 제문, 만사와 저자 관련 기록, 이익이 지은 <칠탄정제영(七灘亭題詠)> 등이 있다. 부록의 말미에 5세손 손사익과 7세손 손종하가 지은 문집후지가 있으며 마지막에 1825년에 유심춘이 지은 발문이 있다.
▶옥계집(玉溪集) | 노진(盧禛, 1518~1578)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정염(丁焰)이 유고(遺稿)를 초록(抄錄)하여 임진왜란 전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사실이 1602(선조35)에 이정귀(李廷龜)의 묘지명과 1632(인조10) 정온(鄭蘊)의 중간본 서문에 언급되어 있을 뿐 간행시기와 간행 경위는 ㆍ이다. 손자 노척(盧脊)이 전쟁으로 유실된 초간본을 바탕으로 수집ㆍ증보하고 정온의 서문을 받아 1633(인조11)에 목판본으로 간행하였고, 후손 노극수(盧極壽), 노완수(盧琬壽), 노봉수(盧鳳壽) 등이 원집 간행할 때 빠진 유고와 저자 관계 기록을 수집하고 김세균(金世均)의 서문을 받아 1873(고종10)에 후천(後川)에서 속집(續集)을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7권, 속집 4권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권수에는 서(序)와 목록이 있고, 권1은 시, 부, 표(表) 등이 있고 권2는 제문, 권3은 행장과 묘비지, 권4는 소, 계, 장 등이 있고 권5는 잡저, 주(奏) 등이다. 권6부터는 외집으로서 묘도문자들이고 권7은 제문이다. 속집의 권1~3은 원집과 비슷하며, 권4는 외집이다. 권미에는 발과 간기가 있다.
▶옥동집(玉洞集) | 문익성(文益成, 1526~158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옥동(玉洞) 문익성(文益成, 1526~1584)의 문집이다. 사후 300여 년이 지난 후에 정리되어 남은 저작이 얼마 안 되는 것을 후손 문경순(文景純), 문욱순(文郁純), 문병조(文秉祚) 등이 수집하고 편차하여 유후조(柳厚祚)와 허전(許傳)의 서(序)를 받아 1873(고종10) 입곡(立谷)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연보, 원집 2권 합 1책이고 부록은 권2에 합편하였다. 권수에 유후조와 허전의 서문과 목록, 세계도(世系圖), 연보가 있고, 권1에 시(詩), 부(賦), 문(文)이 수록되었는데, 시는 시체별(詩體別)로 80여 수이다. 권2에는 1558(명종13)에 지은 김태정(金台鼎)의 묘갈과 행장이 있고, 부록에는 <남명선생사우록(南冥先生師友錄)>에서 뽑은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가승(家乘)에서 뽑은 유사(遺事), 이만부(李萬敷)의 묘갈명, 이용기(李用基)의 후록(後錄)과 묘지명, 10대손 문욱순의 가장(家狀), 허전의 행장, 송석경(宋錫暻)의 <도연서원봉안문(道淵書院奉安文)>, 부록 끝에 이용기의 발문이 있다.
▶옥봉집(玉峯集) | 백광훈(白光勳, 1537~158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1537~1582)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임진왜란으로 거의 없어지고 남은 유고를 아들 백진남(白振南)이 ≪옥봉유고≫란 이름으로 수집 편차하였는데,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를 왕명으로 ≪동국시문(東國詩文)≫을 찬집(撰集)하던 이정귀(李廷龜)가 보고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는 윤안성(尹安性)에게 간행을 권하였고, 이에 백진남(白振南)이 상ㆍ중ㆍ하 3권과 보유(補遺)로 편차된 유고를 선사(繕寫)하여 1608년 호남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에 1609년 이정귀와 유근(柳根)의 서문, 윤광계의 후서를 받았고 이후 1611년 신흠(申欽)의 서를 덧붙였다. 별집(別集)은 1742년(영조18) 5대손 백수형(白受珩), 백수경(白受璥)이 집에 보관한 저자의 편지글을 간행하면서 원집을 재편차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별집초간(別集初刊)의 부록(附錄)에는 이이(李珥)와 정철(鄭澈)의 만사(挽詞)와 이희조(李喜朝)가 수정한 연보, 정호(鄭澔)의 묘갈명과 수독후서(手牘後書)가 수록되어 있으며 간행자인 백수경의 별집발문(別集跋文)이 있다. 문집은 원집 상ㆍ중ㆍ하 3권과 별집 1권 합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산시고(玉山詩稿) | 이우(李瑀, 1542~160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옥산(玉山) 이우(李瑀, 1542~1609)의 문집이다. 증손 이동명(李東溟)이 수집하고 편차하여 1675년(숙종1) 영해 부사(寧海府使) 재임 시 간행하기 위해 송시열(宋時烈)에게 서문(序文)을 받고 이단하(李端夏)가 지은 <옥산전(玉山傳)>을 받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파직으로 귀향하게 되어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후 1680년(숙종6) 경주 부윤(慶州府尹)에 부임되자 간행을 서둘러 목판 1책(冊)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과 부록 합 1책인데, 원집에는 시(詩) 140제(題)를 시체(詩體) 구분 없이 창작 연대순으로 배열하였고, 잡저(雜著)는 괴산 군수(槐山郡守)로 재임할 시기에 지은 함안 군수(咸安郡守)의 제문(祭文)을 비롯하여 <논서법(論書法)>, <화후발(畫後跋)>, <조일인금평(趙逸人琴評)>이 실려 있는데, 저자의 그림과 글, 거문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드러내주는 글이다. 부록(附錄)에는 1671년(현종12) 송시열이 지은 묘표(墓表)와 이조참판 겸 성균관대제학 이단하이 1675년에 지은 <옥산전>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 이동명이 간행 경위에 대해 밝힌 발문(跋文)이 첨부되어 있다.
▶옥수집(玉垂集) | 조면호(趙冕鎬, 1803~1887)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3~1887)의 문집이다. 현존하는 저자의 문집으로 필사본 ≪옥수집(玉垂集)≫ 2종이 있다. 그중 규장각에 소장된 본은 습유 1권을 포함하여 33권 16책으로 되어 있는데, 각 책 말미에 저자의 손자 ‘조규식(趙奎植)이 소장한 사본을 소화(昭和) 10년 3월에 등사한 것’이라는 내용의 도장이 찍혀 있고, ‘교정제(校正濟)’라는 글씨의 작은 도장도 찍혀 있다. 이 사기(寫記)로 볼 때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등사하여 교정까지 마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집은 원집 32권, 습유 1권 합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고, 권마다 권목이 있다. 권1~27은 부(賦), 시(詩), 게(偈)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11은 1865~1866년 8월까지 지은 것으로, 홍종응과 수창하거나 그의 시에 차운한 시, 심승택(沈承澤)이 주최한 시회에 나아가 지은 시 및 병인양요의 발발 원인 등을 시간 순서에 따라 그려낸 장편시 <서사잡절(西事雜絶)>이 실려 있다. 권30은 기, 설, 제(題), 발, 찬, 해(解), 변(辨), 전(傳), 명, 서후(書後)이다.
▶옥오재집(玉吾齋集) | 송상기(宋相琦, 1657~1723)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 1657~172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다. 강진 유배 기간에 아들 송필환(宋必煥)과 자신의 시문초고를 정리한 것을, 송필환이 유고를 수습하고 편차하여 이의현(李宜顯), 이병상(李秉常)의 산정을 받았으며, 송필환의 아들 송재희(宋載禧)가 김재로(金在魯), 유척기(兪拓基), 김원행(金元行), 홍계희(洪啓禧)의 교정을 받아 간행하였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편지글은 한 편도 싣지 않았고, 또 산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시문이 누락되었다. 손자 송재희가 남원 부사로 있을 때 비용을 마련하고 당시 대제학 김양택(金陽澤)의 도움으로 운각의 새활자본으로 1760년에 경국(京局)에서 인쇄하였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서문이 없다. 권1~4는 사(辭), 시(詩)이고, 권5~11은 소차, 계(啓), 의(議), 권12는 반교문, 책문, 교명문, 교서, 전(箋), 장, 상량문, 악장, 권13은 서(序), 기(記), 제발, 권14는 비명, 묘지명, 묘갈명, 묘표, 권15는 시장, 행장, 권16은 제문, 권17은 ≪남천록(南遷錄)≫ 상ㆍ하, 권18은 부록이다.
▶옥천집(玉川集) | 조덕린(趙德鄰, 1658~1737)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문집이다. 본집은 1788년경에 손자 조운도(趙運道)와 조술도(趙述道) 등이 유문을 수습하여 집안에 보관해오다가 후손 조승기(趙承基), 조병희(趙秉禧) 등이 1894년 권연하(權璉夏), 이만인(李晚寅) 등의 교감을 거쳐 1897년 가을 간역(刊役)을 시작하여 1898년 봄에 18권 9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권두에 총목록이 있고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2는 시(詩), 권3~4는 소(疏), 전문(箋文), 장(狀), 권5~6은 서(書), 권7은 잡저와 서(序), 권8은 기(記), 발(跋), 명(銘), 권9는 상량문, 축문, 제문, 애사, 권10~14는 비문, 묘갈명, 묘표, 묘지명, 권15~17은 행장, 권18은 부록으로 이상정(李象靖)의 행장, 채제공(蔡濟恭)의 묘갈명, 권구(權榘), 유승현(柳升鉉) 등의 제문, 유성화(柳聖和), 배행검(裵行儉)의 만사가 있고, <북천증행시(北遷贈行詩)>와 저자가 제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강진에서 졸할 때 홍중기(洪重夔)에게 한 말을 권상일(權相一)이 기록한 <강진역책시사적(康津易簀時事蹟)>이 첨부되어 있다.
▶온계일고(溫溪逸稿) | 이해(李瀣, 1496~155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의 문집이다. 6대손 이현룡(李見龍)이 전쟁으로 사라지고 남은 시고(詩稿)와 고가(古家)에 소장된 기록물 등에서 수습한 시를 합하고, 제현증별창수시(諸賢贈別唱酬詩)와 묘지ㆍ묘갈ㆍ행장 등으로 부록을 만든 것을, 7대손 이세택(李世澤) 등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쳐 필사해둔 고본(稿本)에 세계도(世系圖) 및 7대손 이급(李級) 찬(撰)한 연보를 합하여 총 4권 3책으로 만들고, 1772(영조48)에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을 받아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간행하였다. 권1은 시로서, 진휼어사(賑恤御史)ㆍ황해도관찰사 및 충청도관찰사시에 지은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시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동생인 이황(李滉)과 창수(唱酬)한 시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권2는 습유(拾遺), 권3은 부록(附錄)으로 이황의 묘지ㆍ묘갈, 권4도 부록으로 이광정(李光庭)이 찬한 행장(行狀), 유사척록(遺事摭錄)과 저자가 제향된 삼봉서원(三峯書院)ㆍ청계서원(淸溪書院)의 관계 기록, 권미에는 7대손 이세택의 발(跋)이 있고, 세계도와 연보는 별책(別冊)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유재집(溫裕齋集) | 윤종섭(尹鍾燮, 1791~187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온유재(溫裕齋) 윤종섭(尹鍾燮, 1791~1870)의 문집이다. 1876년 아들 재관(在寬)이 오치기(吳致箕)에게 유고의 산정과 발문을 받았고, 1878년 문인 김성익(金性翼)이 간행을 준비하는 동안 손자 용선(龍善)이 신응조(申應朝)에게 서문을 받았으며, 이듬해 1879년 김직연(金直淵)에게 추가로 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878년 신응조가 지은 서문과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생애 전반에 걸쳐 비교적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시제(詩題)에 창작 시기가 자세하다. 저자는 평생 세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유람했는데, 이 때문인지 금강산의 명승에서 지은 시가 상당하다. 이밖에 <논역(論易)> 21수를 비롯하여 김창흡(金昌翕)의 시에 차운한 것이 많아 그 영향을 짐작케 한다. 김창흡의 숙부 김수증(金壽增)이 은거한 강원도 화천의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묘사한 <곡운가증조시중(谷雲歌贈趙時仲)>은 7언 148구의 장편시이다. 권5는 행장, 전, 제문이다. 권말에 1876년 오치기가, 1879년 김직연이 지은 발문이 있다.
▶완구유집(宛丘遺集) | 신대우(申大羽, 1735~180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완구(宛丘) 신대우(申大羽, 1735~1809)의 문집이다. 양명학자이자 소론인 정제두(鄭齊斗)의 문인(門人)으로 강화학파(江華學派)이면서 서예가(書藝家)이다. 아들 신진(申縉), 신작(申綽), 신현(申絢) 형제가 저자가 생전에 엮은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시문(詩文)을 더 정선(精選)하여 재편집하였고 이충익(李忠翊)이 1816년에 서문(序文)을 썼다. 문집의 글자는 팔분체(八分體)이고, 시(詩)를 단 한 편도 싣지 않았으며, 문(文)도 문체별로 분권하여 권수는 10권이나 된다. 권1~4는 잡저(雜著)와 편지글, 서(序), 기(記)이고, 권5~10은 묘도문자(墓道文字)로 묘지(墓誌), 묘갈(墓碣), 신도표(神道表), 행장(行狀) 및 제문(祭文)이다.
▶완당전집(阮堂全集)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문집이다. 저자는 저술로 자립(自立)하는 걸 원치 않아 두 번이나 원고를 불태웠지만, 문인 남병길(南秉吉)이 남은 시(詩)를 수집 편차하여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 7권 2책을 전사자(全史字)로 1867년 겨울에 인행(印行)하였으며, 종현손 김익환(金翊煥)이, 증손 김기원(金沂元)과 종현손 김승렬(金承烈)이 각각 수집(蒐集)한 시문(詩文)에 이미 간행된 ≪담연재시고(覃揅齋詩藁)≫, ≪완당척독(阮堂尺牘)≫, ≪완당집(阮堂集)≫을 재편차하고 홍명희(洪命憙)의 교정(校正)을 거친 후 김영한(金寗漢)과 정인보(鄭寅普)의 서문을 받아 ≪완당전집(阮堂全集)≫ 10권 5책으로 1934년에 서울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연활자(鉛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권1은 고(攷), 설(說), 변(辨), 권2는 소(疏), 서독(書牘), 권3~5는 서(書), 권6은 서(序), 기(記), 제발(題跋), 권7은 전(箋), 명(銘), 송(頌), 잠(箴),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묘표(墓表), 잡저(雜著), 권8은 잡지(雜識), 권9~10은 시(詩), 권말에는 김승렬의 발(跋)이 있다.
▶완암집(浣巖集) | 정내교(鄭來僑, 1681~175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완암(浣巖) 정내교(鄭來僑, 1681~1759)의 문집이다. 홍세태(洪世泰), 신정하(申靖夏)의 문인으로 김창흡(金昌翕), 이병연(李秉淵), 조현명(趙顯命), 어유봉(魚有鳳), 김재로(金在魯) 등과 교유하였다. 비록 중인(中人) 출신이었으나 뛰어난 재주와 인품을 바탕으로 사대부 신정하(申靖夏), 홍상한(洪象漢), 김창흡(金昌翕), 조현명(趙顯命) 등과 교유하고 양반 자제들인 김종후(金鍾厚), 김종수(金鍾秀), 홍낙명(洪樂命), 홍봉한(洪樂命) 등에게 시(詩)를 가르친 연유로 문집 제작을 이들의 도움을 받아 출간한다. 김종수(金鍾秀) 형제 등과 문인들이 모여 편차(編次)와 교정 작업을 하고 영의정 홍봉한이 재물을 보태 1765년 겨울에 완영(完營)에서 4권 2책으로 개각(開刻)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卷首)에 이천보(李天輔)의 서문(序文)과 목록(目錄)이 있고, 권말(卷末)에 홍봉한(洪鳳漢)의 발문(跋文)이 있다. 권1~3은 사(辭), 시(詩), 권4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전(傳), 잡저(雜著), 잠(箴), 명(銘), 찬(贊),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애사(哀辭), 묘문(墓文)이다.
▶완정집(浣亭集) | 이언영(李彦英, 1568~163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 1568~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이횡(李鈜)과 이건(李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최흥벽(崔興璧)과 김굉(金㙆)의 교정을 거쳐 순조 연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의 시문집으로 서(序)ㆍ발(跋)이 없다. 권1은 시(詩)와 만(輓)이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었으며 차운시와 증시가 대부분이다. 권2는 서(書), 소(疏), 정사(呈辭), 계(啓), 장계이다. 그중에서<상한강선생문목(上寒岡先生問目)>은 정구에게 상례에 대해 질문한 것이며, <민후형남원유소(閔候馨男願留疏)>는 선정을 베푼 성주 목사 민형남의 유임을 청한 것이다. 권3은 잡저인 <운계한화(雲溪閒話)>로, 조상의 유적, 지인들의 일화, 정묘호란 때의 일 등을 세세히 기록하여 자손들이 참고하도록 하였다. 권5는 제문과 축문, 기우문 등이고, 권6은 연보로 1680년에 묘갈을 세운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권7~8은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명, 유사 등과 장현광의 서독, 허목(許穆)의<완석정기(浣石亭記)>와 민형남(閔馨男), 오도일(吳道一) 등 7인이 지은 <완석정제영(浣石亭題詠)>이다.
▶외암유고(巍巖遺稿) | 이간(李柬, 1677~1727)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외암(巍巖) 이간(李柬, 1677~1727)의 문집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 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이며, 호락논쟁(湖洛論爭)의 주역이었다. 본집은 아들 이이병(李頤炳)이 수습(收拾)하고 정리(整理)하여 경산 현령(慶山縣令)으로 있을 때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으나, 저자가 <여송무관임인(與宋務觀壬寅)>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승 한수재(寒水齋)의 실수를 드러내는 불경을 저질렀다는 윤봉구(尹鳳九)의 주장에 따라 내용을 손보긴 하였지만, 윤봉구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한수재 문하에서 저자가 갖고 있던 특성을 더 강화시켰으니, 한수재 사후 팔학사 문하 간의 반목을 그대로 반영한 거라 하겠다. 본집은 16권 8책으로 서발(序跋)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는 없다. 권1~2는 시(詩)로, 제(題)가 연도순(年度順)으로 배열(排列)되었고, 권3은 상소(上疏)와 연설(筵說), 권4~11은 편지글, 권12~13은 잡저(筵說)로 성리설(性理說) 특히 이기(理氣)에 관한 자신의 논점을 정리해 놓은 글이고, 권14는 서(序)와 기(記), 권15는 제문(祭文), 권16은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이다.
▶외와집(畏窩集) | 최림(崔琳, 1779~1841)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외와(畏窩) 최림(崔琳, 1779~1841)의 문집이다. 최익현(崔益鉉)의 행장과 이용원(李容元)의 묘지명을 받아 1900년경에 손자 세현(世顯)과 증손 임수(任壽)에 의해 수습 정리된 가장초고를 족증손 진수(瑨壽) 등이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송병선(宋秉璿)이 1899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총목이 있다. 권별 앞에 별도로 목록이 있다. 권3은 박제상(朴齊尙), 이인필(李寅弼), 이두신(李斗臣), 이의협(李義協), 심석현(沈錫賢)에게 쓴 편지이다. 권4는 서(序), 기(記), 발(跋), 잠(箴), 상량문, 제문이다. 발의 <지주부자여와시첩후(識朱夫子黎渦詩帖後)>는 1823년 송치규를 찾아뵈었을 때 송시열(宋時烈)이 김만균(金萬均)에게 훈계하여 쓴 묵첩(墨帖)을 보고 지은 후지(後識)이다. <서경은이선생독서시후(書耕隱李先生讀書詩後)>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의 독서시(讀書詩)가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의 의대찬시(衣帶贊詩)와 함께 깊이 새길만한 내용임을 밝힌 것이다. 권14는 부록으로 종인 최익현의 행장, 이용원의 묘갈명, 족손 세학(世鶴)의 행록이 실려 있다.
▶외재집(畏齋集) | 이후경(李厚慶, 1558~163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외재(畏齋) 이후경(李厚慶, 1558~1630)의 문집이다. ≪의례문해(疑禮問解)≫ 2권을 비롯하여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질의한 다수의 성리학(性理學) 관계 저술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이를 외손 곽명세(郭鳴世)가 정구의 <언행록(言行錄)>과 연보 및 예곡(禮谷) 곽율(郭율(走+日))의 행장, 대암(大庵) 박성(朴惺)의 언행록, 그리고 수창시(酬唱詩), 서(書), 표(表), 잡저(雜著)를 부집(裒集)하고, 제현(諸賢)의 뇌사(誄辭), 간독(簡牘) 등을 붙여 2권으로 편차하고 1709년(숙종35)에 곽수구(郭壽龜)의 발을 받은 뒤, 후손 이혼연(李渾然)ㆍ이욱연(李郁然)ㆍ이기원(李基遠) 등이 곽명세(郭鳴世)가 편차한 정고본(定稿本)에 저자의 아들 이도보(李道輔)의 문집 ≪익암유고(益庵遺稿)≫를 권말에 부집(附集)하고, 이광정(李光庭)의 서(序)와 묘갈명을 받아 권만(權萬)의 교정을 거쳐 1744년(영조22)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세계도(世系圖), 목록, 연보, 원집(原集) 4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 서, 제문, 권2는 행장, 권3은 언행록, 연보, 등이 있고, 권4는 부록, 권미에는 발(跋)이 있다.
▶외재집(畏齋集) | 이단하(李端夏, 1625~168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1625~16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작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본집에 서발(序跋)이 없고 간행과 관련된 기록조차 없어 편차와 간행 시기 및 주관자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유문의 수집과 편차는 조카 수곡(睡谷) 이여(李畬)가 간행은 질손(姪孫)인 이기진(李箕鎭)이 주관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붙었으며, 서발(序跋)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 없이 전체가 시문(詩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로 구성되어 있다. 권3~5는 소차(疏箚), 응제문(應製文), 서(序), 발(跋), 기(記)로 이루어져 있다. 권6~7은 편지글러 이루어져 있다. 권7~11은 묘지명(墓誌銘), 행장(行狀), 시장(諡狀), 제문(祭文) 등의 묘도문자(墓道文字)와 잡저(雜著)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 조찬한(趙纘韓)의 유사(遺事)와 제문(祭文)이 있고, 잡저(雜著)로는 상량문(上樑文), 복제(服制)에 대해 갑(甲)과 을(乙)을 설정하여 견해를 피력한 <갑을논예변(甲乙論禮辨)>, 책제(策題) 가 있다.
▶요은집(鬧隱集) | 고여흥(高汝興, 1617~16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 1617~1678)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한덕(漢德)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윤광소(尹光紹)의 고정을 거쳐 1792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광소가 1778년에 지은 서(序)와 종인 정헌(廷憲)이 1791년에 지은 서가 있고 그 뒤에 목록과 범례가 실려 있다. 권1~2는 문견록(聞見錄) 상ㆍ하와 시이다. 저자의 저술 비중에 입각해 일반적인 문집 편차 방식을 따르지 않고 문견록을 앞세우고 그 뒤에 시를 수록하였다. 문견록에는 오경과 그 내용을 전체와 대용으로 설명한 <오경대지도(五經大旨圖)>를 비롯하여 <천인이기도(天人理氣圖)>, <대학지도(大學之圖)>, <중용지도(中庸之圖)>, <중용석의(中庸釋義)>, <가례석의(家禮釋義)> 등이 있고, 시는 친우와 반등산에서 노닌 흥취를 읊은 <유반등(遊半登)> 등이다. 부록에는 윤증(尹拯) 등 31인이 지은 만사와 부장, 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 있고, 권말에 고택겸(高宅謙)이 1792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이택(李澤)의 발, 증손 한덕(漢德)이 1792년에 지은 지가 있다.
▶용계유고(龍溪遺稿) | 김지남(金止男, 1559~163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용계(龍溪) 김지남(金止男, 1559~1631)의 문집이다. 본집은 ≪내사(內史)≫, ≪소설(小說)≫, ≪내학(內學)≫, ≪좌사절요(左史節要)≫ 등과 함께 가장되어 있었는데, 외손 이관하(李觀夏)가 저자의 유고를 수습하여 1654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40년 후 묘갈명과 서문을 보태어 이선부(李善溥)가 1697년에 추각후쇄하였다. 본집은 부록, 원집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오도일(吳道一)이 지은 서문, 부록으로 정두경(鄭斗卿)이 지은 묘갈명이 있다. 권1~4는 모두 시이며,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권1은 1591년 저자가 33세 때부터 47세 때인 1605년까지 지은 시 129제이고 권2에는 1606년 48세에 왜(倭)의 사신을 접대하는 접위관(接慰官)이 되었을 때 지은 시부터 1616년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갔던 해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다. 권3에는 1617년부터 1623년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는데, 교유하던 지인들에게 주는 증시, 송별시가 많다. 권4에는 1624년 순천 부사(順天府使)로 있을 때부터 졸하기 전까지 지은 시가 실려 있으며, 권미에 외증손 이선부가 1697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용담집(龍潭集) | 박이장(朴而章, 1547~162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 1547~1622)의 문집이다. 저자가 남긴 글은 서재(書齋) 모덕와(慕德窩)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것을, 8대손 박규환(朴奎煥)이 가내의 전존된 잔고(殘稿)를 모으고 부록을 붙여 7권 3책으로 만들었으나 1901년(광무5) 박규환의 사망으로 중단되고, 1911년 9대손 박인현(朴寅鉉), 박윤현(朴允鉉) 등에 의하여 활자로 인행(印行)되었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1년 정래석(鄭來錫)이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1~2는 부(賦), 시이다. 권3은 교서(敎書), 소(疏), 차(箚), 계(啓), 연설(筵說), 책(策)이다. 권4는 서(書), 서(序), 논(論), 제문(祭文), 행장(行狀)이다. 권5는 연보인데, 여기에는 영조 2년(1726)의 신도비명(神道碑銘) 찬술 기사까지 실려 있다. 권6에는 노수신(盧守愼)의 증시(贈詩)를 비롯하여 저자에게 보낸 시와 편지, 만장(挽章), 제문(祭文)을 모은 것이고, 권7은 조경(趙絅)이 지은 행장 등 묘도문자(墓道文字)를 중심으로 편차한 것이다. 권말에 장석영(張錫英)과 9대손 박인현과 박윤현이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용문집(龍門集) | 조욱(趙昱, 1498~155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우암(愚菴) 조욱(趙昱, 1498~1557)의 문집이다. 저자가 자정(自定)한 ≪보진암고(葆眞菴藁)≫ 10권과 제자들이 기록한 ≪언행록(言行錄)≫ 1권이 임진왜란 때 유실되고 남은 것을 1778(정조2)에 7대손 조시간(趙時簡)이 수집하고, 가장(家藏)되어 오던 몇 편의 서간(書簡)과 잡저(雜著) 등을 수록하여 세계도(世系圖)ㆍ연보(年譜)를 작성하여 부록(附錄)과 함께 첨부, 모두 6권 3책으로 편집한 후, 1779(정조3)에 김종후(金鍾厚)의 서문(序文)을 받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6권 3책으로, 권수에는 김종후의 서문과 총목, 권1~4의 운문(韻文)은 유실되고 남은 ≪보진암고≫를 수록하고, 권5는 서간과 선고묘표(先考墓表) 등의 잡저, 권6은 세계도ㆍ연보ㆍ부록으로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ㆍ≪청강소설(淸江小說)≫ㆍ≪정암집(靜庵集)≫ 등에서 관계 기록을 채록한 <언행척록(言行摭錄)>과 교분을 맺었던 이황(李滉)ㆍ신광한(申光漢) 및 후인의 시장(詩章)이 수록되어 있다.
▶용서집(龍西集) | 윤원거(尹元擧, 1601~167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 1601~1672)의 문집이다. 아들 윤유(尹揄) 등이 시문을 수집하고 윤증(尹拯)이 산정(刪定)을 한 후 2편으로 엮어 정사(精寫)하여 가장(家藏)해 온 고본(稿本)을 바탕으로 증보하여 1775(영조51)에 족현손(族玄孫) 윤광소(尹光紹)가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권4의 <단대걸시(斷帶乞詩)>와 <소혼교(銷魂橋)>, 권5는 습유(拾遺)로, <제종제자진문(祭從弟子縉文)>과 <노서선생여유시남서(魯西先生與兪市南書)>는 원집(原集) 간행 이후에 추각(追刻)된 것으로 보인다.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2권 합 7권 2책으로, 권1~2는 시, 권3은 소, 제문, 권4는 잡저(雜著), 묘표(墓表), 묘갈(墓碣), 과체(科體)로 구성되어 있다. 권5 습유는 윤증의 편찬본이 아니라 1775년 간행 당시 윤광소(尹光紹)가 수습 정리한 글이다. 부록은 상은 연보이고, 하는 저자에 대한 행장(行狀), 제문(祭文), 만장(挽章), 구산서원봉안제문(龜山書院奉安祭文), 향사축문(享祀祝文) 등인데, 행장(行狀)은 윤증이, 제문은 윤문거(尹文擧), 이유태(李惟泰) 등이, 만장(挽章)은 송시열, 이유태(李惟泰) 등이 지은 것이다.
▶용암집(龍巖集) | 박운(朴雲, 1493~156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용암(龍巖) 박운(朴雲, 1493~15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오랫동안 초고 형태로 가장되어 오다가 1700년대에 정간(鄭榦)이 초고를 바탕으로 산정하여 1757년에 시부(詩賦) 1권, 문(文) 1권, <격몽편>과 <자양심학지론> 1권, 부록 1권 합 4권 2책을 ≪용암선생문집(龍巖先生文集)≫으로 편차하고, 따로 ≪용암선생별집(龍巖先生別集)≫ 5책으로 편차하였는데, 후손들이 문집과 별집을 모두 정사하여 가장하였고, 이후 1778년 후손들이 이상정(李象靖)의 발문을 받아 4권 2책의 ≪용암선생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는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詩), 부(賦)가 실려 있다. 권2에는 서(書), 잡저, 서(序), 제문, 묘표, 행장이 실려 있다. 권3은 <격몽편(擊蒙編)>과 <자양심학지론(紫陽心學至論)>이다. 권4는 부록으로, 이황(李滉)이 지은 묘갈명(墓碣銘), 김취문(金就文)이 지은 묘지, 최응룡(崔應龍)이 지은 정려비음기(旌閭碑陰記), 사우문인록(師友門人錄)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1757년에 쓴 정간의 발문과 1778년에 쓴 이상정(李象靖)의 발문이 실려 있다.
▶용와집(慵窩集) | 유승현(柳升鉉, 1680~174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용와(慵窩) 유승현(柳升鉉, 1680~1746)의 문집이다. 본집은 19세기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광정(李光靖)이 1784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권2 끝에 김근행(金謹行), 권두기(權斗紀) 등에 대한 만시 21수를 별도로 모아 놓았고, 1737년 제주 등 여러 곳으로 이배된 김성탁(金聖鐸)과의 수창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 권3은 서(書), 잡저, 기(記), 지발, 명(銘), 전(箋), 상량문, 제문, 묘갈명, 행장 등이다. 친우 김성탁과 주고받은 편지가 많은 편인데 1738년에 쓴 편지는 유배지의 생활을 물은 것이고, 1743년에 쓴 편지는 이황의 ≪이학통록(理學通錄)≫ 간행에 대한 생각을 전한 것이다. 서의 <여예안의병장이익경(與禮安義兵將李益卿)>은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진압되고 난 뒤 이수겸(李守謙)에게 안무사(安撫使)와 상의한 후 파병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 제문, 행장, 묘갈명 등이고, 권말에는 유묵(遺墨)이 실려 있다.
▶용이와집(龍耳窩集) | 권뢰(權𡋃, 1800~187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용이와(龍耳窩) 권뢰(權뢰(土+耒), 1800~1873)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손자 용한(龍漢), 용한(用漢)과 종질 태두(泰斗) 등은 유문을 수집 등사하여 정리하고, 이후 저자의 증손 오영(五永) 등이 별집과 부록을 추가하고 김도화(金道和)로부터 서문을 받아 1909년경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9권, 속편 1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09년 김도화가 쓴 서와 목록이 있다. 권3의 전반부는 상언(上言), 장(狀), 서(書)이다. 상언은 6대조 권용현, 증조 정래(正來), 조부 중엄(重儼) 등 삼세(三世)의 효를 포증하여 일문지병정(一門之幷旌)이라는 특은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는 것이다. 장은 선조조의 충신이자 효자인 정곽(鄭廓) 등에 대한 정읍(呈邑)의 내용이다. 권7~8은 별집으로 5편의 일기류이다. 1829년과 1837년의 <경행일록(京行日錄)> 및 <동정일기(東征日記)>는 6대조 권용현의 지효(至孝)를 기릴 정려를 청하기 위해 서울로 발행한 여정과 회계서원의 기문과 묘갈명, 행장 등을 받는 경위를 자세하게 일기식으로 쓴 것이다. 말미에 증손 오영이 문집 간행의 배경과 경과를 적은 발이 있다.
▶용재유고(慵齋遺稿) | 이종준(李宗準, ?~149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1499)의 문집이다. 후손 이창욱(李昌郁)이 유문(遺文)을 모으고 저자의 동생 이홍준(李弘準)의 ≪눌재유고(訥齋遺稿)≫를 부집(附集)하여 1책으로 만든 뒤, 권사협(權思浹)ㆍ이야순(李野淳)의 교정과 편차를 거쳐 1824년(순조24)에 1차 간행하고, 후손 이상진(李相晉)ㆍ이상승(李相昇) 등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기록과 조야(朝野)의 여러 유고(遺稿)에서 널리 수습한 시문을 추가하여 최익현(崔益鉉)의 서(序)를 받아 1901년(광무5) 목활자로 2차 간행하였으며, 1911년 후손 이상진(李相晉)ㆍ이도형(李道炯)과 김형모(金瀅模)ㆍ서익수(徐翊洙) 등이 저자의 유문과 후현(後賢)의 글을 증보 편집하여 3차 간행하였다. 본집은 사화와 병란으로 흩어진 유고와 관계 기록을 수습하여 편집한 것으로, 권수에는 서(序)ㆍ세보도(世譜圖)ㆍ목록이 있고 본집은 시ㆍ소(疏)ㆍ잡저ㆍ부록으로 편차되어 있다.
▶용재집(容齋集) | 이행(李荇, 1478~1534)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문집이다. 시문 일부는 저자가 엮어 둔 것이고 그 밖의 산고(散稿)를 손자 이형(李泂)이 수습, 교정(校定)하여 10권 7책으로 편집한 것을 손자 이광(李洸)이 1586년(선조19)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 활자로 1차 인행하고, 1589년(선조22)에 이광이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 태인현감 황언(黃鶠)에게 위촉, 목판으로 2차 간행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판목과 소장본 모두 유실하였으며, 증손인 이안눌(李安訥)이 1634년(인조12)에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 청주목사인 종제 이경증(李景曾)에게 개판(開板)을 부탁하자 종질 진사 이재(李材)와 함께 청주 보살사에서 목판으로 3차 간행하였다. 문집은 행장ㆍ목록ㆍ본집 10권ㆍ외집 합 7책으로, 권수에는 주세붕이 지은 행장과 본집 목록과 구간ㆍ신간에 대한 간기, 권1~8은 시, 권9~10은 문으로 1554년(명종9)에 초간되어 정사룡(鄭士龍)이 찬(撰)한 ≪화남악창수집(和南岳唱酬集)≫의 발 등이 첨부되었으며, 본집 끝에는 1634년(인조12) 이안눌이 지은 중간 발문이 있다. 외집에는 부와 외집 목록이 있다.
▶용재집(庸齋集) | 김근행(金謹行, 1713~1784)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용재(庸齋) 김근행(金謹行, 1713~1784)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여러 명이 나누어 필사한 각필사본(各筆寫本)으로, 본문의 오자와 낙자에 대한 교정부호와 연작시나 산문의 경우 하나의 작품 내에서도 산절(刪節) 대상의 표시 및 제목이나 목록에 시문의 초선을 위해 가점이 되어 있는 점, 목록과 본문의 수록 내용에 일부 차이가 보이는 점, 내용이 보충될 것을 대비하여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공백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리 단계의 사본으로 보인다. 본집은 15권 15책이다.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1ㆍ3ㆍ5를 제외한 나머지 권에는 권목이 있다. 권1~2는 시(詩), 소(疏)이다. 소는 모두 의소(擬疏)로서, 1749년 성균관의 유생 구건(具楗)이 권상하(權尙夏)의 행장과 관련하여 스승인 한원진(韓元震)을 변호하기 위하여 지은 <의상변사무소(擬上辨師誣疏)>와 탕평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시비와 선악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지적한 <의상론탕평소(擬上論蕩平疏)> 등이다. 권5~9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스승 한원진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질설(氣質說) 등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질정을 청하는 내용이 많다.
▶용주유고(龍洲遺稿) | 조경(趙絅, 1586~1669)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작에 대해서는 정확히 할 수는 없다. 1671년(현종12) 허목(許穆)의 신도비명에 문집 10권이 가장(家藏)되어 있다고 한 것 외에 본집의 서발(序跋)이 없어 분명한 간행 경위를 알기 어렵지만, 아들 조위봉(趙威鳳)과 손(孫) 조구원(趙九畹)의 묘갈명(墓碣銘)에 조위봉이 1674년(현종15) 10월 능주(綾州) 목사로 부임하자 유문을 간행하기 위해 문집을 교정하고 편차하였으나 착수하기 전에 경직(京職)에 보임되면서 간행에 실패하고, 손자 조구원이 1703년(숙종29) 순천(順天) 부사(府使)에 제수되자마자 공인(工人)을 모아 간행에 착수하여 5개월 만에 일을 마쳤으며 판목은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본집은 23권 9책으로 권두(卷頭)에 총목(總目)이 있으며, 부록이나 서발은 없다. 권1~5는 시로 구성되어 있고, 권6~22는 문(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23은 ≪동사록(東槎錄)≫이 수록되어 있다. 130여 수의 시는 도성을 떠나 부산으로 가는 도중과 배편으로 대마도에 도착한 때, 그리고 일본을 여행하던 중에 지은 시들이다.
▶용포집(龍浦集) | 이유(李濰, 1669~174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용포(龍浦) 이유(李濰, 1669~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박주종(朴周鍾)의 교감을 받아 1872년경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주요 수창자는 채팽윤(蔡彭胤), 이만장(李萬長) 등이다. 권2는 시(詩), 소(疏), 서(書)이다. 시 가운데 <차기정성중(次寄鄭成仲)>은 1738년에 정지집(鄭之鏶)에게 준 것이며, <병중우음(病中偶吟)>에서는 조존성찰(操存省察)하는 선비의 자세가 엿보인다. 권3은 서(書), 기(記), 발(跋), 잠(箴), 잡저, 제문(祭文), 묘지(墓誌)이다. 편지에는 1713년에 권상일(權相一)에게 선친의 담제(禫祭)에 관한 예를 의논한 것을 비롯하여 채팽윤 등에게 보낸 것이 있다. 권4는 행장, 유사, 부록이다. 행장은 이식(李㵓)의 가장과 이동표(李東標)의 행장후소서(行狀後小敍)이며, 유사는 부친 지태(之泰), 모친 이씨, 삼남 기(䅲)에 대한 것이다. 권말에 박주종이 1872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용헌집(容軒集) | 이원(李原, 1368~142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의 문집이다. 1476년(성종7) 처음 간행된 철성이씨세고(鐵城李氏世稿)인 ≪철성연방집(鐵城聯芳集)≫에 편입된 저자의 시문을 이육(李陸)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평재(平齋) 이강(李岡)의 시 1권 40수와 이원의 시 1권 231수를 모아 1책으로 만든 후, 경상 감사(慶尙監司) 윤호(尹壕)의 도움을 받아 1차 간행하였고, 1925년에 권상규(權相圭)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저자의 관자(官資)ㆍ제배(除拜) 및 소ㆍ계ㆍ헌의 등의 글을 초출(抄出)한 것에 후손 이종박(李鍾博)이 가승(家乘)을 바탕으로 연보를 만든 다음, 저자의 시문 및 제가의 찬술문자(撰述文字)를 합하여 4권 2책으로 편차하여 후손 이우기(李宇基)ㆍ이정태(李庭泰) 등이 1957년 청도(淸道) 군자정(君子亭)에서 석인(石印)으로 2차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에는 연보와 정인지(鄭麟趾)의 서(序), 목록이 있고, 권1~2는 시, 권3은 문, 권4는 증유(贈遺)ㆍ척록(摭錄)ㆍ부록이다. 권미에는 권상규의 후서(後敍)와 이중구(李仲久)의 발이 있다.
▶우계집(牛溪集) | 성혼(成渾, 1535~1598)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임창재(任昌宰)
조선 중기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집이다. 율곡(栗谷)과 우계(牛溪) 문하를 중심으로 하여 아들 성문준(成文濬)이 초고(草稿) 500여 장을 수집하고 편차하였으며 제자들이 당시 북인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초고의 40% 정도를 산절한 300여 장만 1621(광해군13) 임실에서 목판으로 초간하였고, 속집은 외손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윤증(尹拯)이 편차하고 윤증의 당질 윤경교(尹敬敎)가 충청도 관찰사로 1682(숙종8) 공주에서 6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중간은 1809(순조9) 후손 성긍주(成肯柱)가 밀양에 군수로 나가면서 판각하고 창녕 물계서원에 판목을 보관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속집 6권, 연보 1권, 연보부록 합 8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원집 권두에 목록이 있고, 권1은 시인데, 저작연대순으로 실려 있으며 편자주가 다수 들어있다. 권2~6은 문이다. 소명을 사양하거나, 관직 사면을 청하는 등의 소(疏)와 이이(李珥)와 이기를 논한 편지 등이다. 속집 6권은 원집과 비슷한 구성으로 권1은 시, 권2~6은 문이다. 이어 세계도, 연보와 연보부록이 실려 있다.
▶우계집(雨溪集) | 김명석(金命錫, 1675~176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계(雨溪) 김명석(金命錫, 1675~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엽운(曄運)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족증손 회운(會運)의 편차ㆍ교감을 받은 고본을, 1880년대 이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선조들의 문집에서 차운한 시가 종종 보이고, 도연(陶淵), 선유정(仙遊亭), 사빈서원(泗濱書院) 등 안동 지역 내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찾아 읊은 시들이 많다. 함께 어울리며 시를 수창한 이들은 재종제 김성탁(金聖鐸), 권만(權萬) 등이다. 권3은 만사, 서(書), 잡저, 제문, 유사이다. 잡저 중 <시제손(示諸孫)>은 자손들에게 종고조 용(涌)의 팔자부(八字符)와 족숙 학배(學培)의 이자훈(二字訓) “근근(謹勤)”의 의미를 전하며 권면하는 내용이다. 서(書)는 권구, 김성탁 등에게 보낸 것들로 일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권4는 부록으로 족증손 회운이 지은 행장, 권연하(權璉夏)가 지은 묘갈명, 유관현(柳觀鉉) 등이 지은 만사, 이유원(李猷遠) 등이 지은 제문이 실려 있다.
▶우고집(雨皐集) | 김도행(金道行, 1728~181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고(雨皐) 김도행(金道行, 1728~1812)의 문집이다. 저자는 문장을 여사(餘事)로 여겨 외부의 청탁을 받지 않았고 일부 수응하는 경우에도 초고를 남겨두지 않아 문집의 분량이 많지 않다. 본집은 손자 조운(祚運)이 족현손 대진(岱鎭)의 교정을 받은 고본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발은 없고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는 많지 않은 편인데 그중에서 만시(輓詩)가 29편이나 된다. 권2~4는 서(書)이다. 인물별,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외부인에게 보낸 편지가 권2와 권3 앞부분에 배열되어 있고, 권3은 대부분 일가의 족형, 족질, 족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5는 잡저, 잠명, 축문, 제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자식마저 죽자 음독자결한 유장원의 딸에 대해 적은 <서유인유씨원사경개후(書孺人柳氏寃死梗槪後)> 와 문방구를 두고 읊은 <필잠(筆箴)> 등이 있다. 권8은 부록으로, 김회운의 제문에 저자가 기대를 걸었던 문인 김호운과 김붕운이 모두 죽어서 저자의 유문을 정리할 이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있다.
▶우교당유고(于郊堂遺稿) | 구치용(具致用, 1590~166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우교당(于郊堂) 구치용(具致用, 1590~1666)의 문집이다. 본집은 9대손 연승(然昇)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22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6권 2책의 시문집으로 각 책별로 목록을 실었으며, 권수에 1922년 권영호(權永頀)가 지은 서(序)가 있다. 권1~5는 시(詩)이다. 작품 중에는 남구만을 청안(靑眼)으로 맞이하며 읊은 <약천남군래방(藥泉南君來訪)>, 심양에 구금되었을 때의 비참한 심경을 읊은 삼학사 홍익한의 절명시(絶命詩)에 차운한 <인보홍서윤상사시운(忍步洪庶尹上巳詩韻)>, 가을 저녁 낙화암을 지나며 지은 <백마강선유작(白馬江船遊作)>, 부친의 제자인 이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기정택당이판서(寄呈澤堂李判書)> 등이 있다. 권6은 서(書), 제문(祭文), 묘지(墓誌), 기(記)와 부록(附錄)이다. 서(書)에는 장현광에게 어류(語類), 통편(通編) 등에서 의의(疑義)를 모아 질정을 청한 것과 1638년에 심서규(沈瑞奎)에게 존양(存養)과 성찰(省察)을 통해 실천하는 학문에 대해 역설한 것 등이 있다. 권말에 1922년에 8세손 승조(承祖)가 쓴 발(跋)이 있다.
▶우담집(愚潭集) | 정시한(丁時翰, 1625~1707)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문집이다. 손자 정사신(丁思愼)이 저자의 연보를 찬하고 부록과 시문을 수집 정리하여 선산 부사 재임 시 유고를 유집 2권, 부록 2권 합 4권으로 편차하여 신익황(申益愰)에게 발문을 부탁하는 등 간행을 준비하였지만, 1750년경 이익이 쓴 묘갈명에 여전히 유고의 형태로 가장(家藏)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현재 전하는 문집은 일제시기 목판으로 간행된 원집 9권, 부록 3권의 12권 6책인데, 여기 ≪변무록(辨誣錄)≫ 2권을 합쳐 7책으로 전하기도 하고 ≪변무록≫만 따로 전하기도 한다. 본집은 원집 9권, 부록 3권, ≪변무록≫ 2권을 합하여 모두 7책으로, 권두에 총목록이 있고 서와 발은 없다. 권1~3은 시와 소, 권4~6은 편지글, 권7~8은 사칠변증(四七辨證), 권9는 잡저, 권10~12는 부록, 권말은 ≪정곡공변무록(鼎谷公辨誣錄)≫이고, 끝으로 저자의 사후 1708년에 문인 조식(趙湜)이 진주 목사로 재직 시 손자 정사신과 함께 ≪변무록≫을 교정 정리하여 3권으로 편차해서 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려 한다는 후지가 있지만, 현재 전존본이 없어 실제 간행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우득록(愚得錄) | 정개청(鄭介淸, 1529~159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이다. 생전에 자편(自編)하여 ≪수수기(隨手記)≫ 9권과 ≪우득록(愚得錄)≫ 3권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문집이 적몰되었다가 돌려받는 과정에서 ≪수수기≫는 분실되었다. 1657(효종8) 저자의 사우가 훼철되자 윤선도(尹善道)는 만언소(萬言疏)를 짓고 ≪우득록≫을 교정하였지만 당시 서인이 집권하던 당시라 간행되지 못하였다. 나만성(羅晚成)과 나두동(羅斗冬)이 1688(숙종14) 수초본(手草本)을 기준으로 윤선도의 해옹교정본(海翁校正本)과 합하여 새로이 정고본(定稿本)을 편찬하고, 나두춘(羅斗春)이 1691 전라 감사 이현기(李玄紀)의 지원을 받고 1692 여름 외손 윤세태(尹世泰)와 고윤(高玧) 등이 주관하여 전라 감사 홍만조(洪萬朝)의 도움으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문집은 원집 3권, 부록 2권으로, 권수에 허목의 서가 있고, 저자의 자편인 권1과 2는 모두 논학(論學), 석의(釋義), 논례(論禮), 논리(論理)와 서(序), 기, 시이고, 제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보이는 권3은 상소와 제문, 서(書)이다.
▶우복집(愚伏集) | 정경세(鄭經世, 1563~1633)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문집이다. 사위 송준길(宋浚吉)과 사손(嗣孫) 정도응(鄭道應)이 주관하여 가장초고(家藏草稿)를 20권 10책으로 정리 편차하여 1657년(효종8)에 상주 도남서원(道南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원집 초간본에는 서발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 등이 없이 저자의 시문만으로 구성되었다. 별집은 원집에서 빠진 유문과 연보 등 부록문자의 편차도 이루어져 연보는 송준길이 1633년부터 본집과 <정원일기(政院日記)> 등을 상고하여 1644년 경에 일단락되었으며 아울러 행장도 지어 1658년 송시열의 시장(諡狀)과 조경(趙絅)의 신도비명을 받았지만 간행되지 못하고, 후손 정상리(鄭象履) 등이 연보와 부록을 포함한 별집 8권 4책을 편차하여 1821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20권, 별집 12권 합16책으로,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 권3은 주문, 교서, 자첩, 소차, 권4~7은 권3에 이어 소차, 권8은 의, 계사, 정문, 권9~13은 편지글, 권16은 표, 전, 계, 격, 상량문 등, 권17은 신도비명, 권18은 갈명, 묘표, 권19는 묘지, 권20은 행장이다.
▶우사집(雩沙集) | 이세백(李世白, 1635~170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사(雩沙) 이세백(李世白, 1635~1703)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의현(李宜顯)이 수습 정리하고 외사촌 김창흡(金昌翕)이 시문을 산정하고 편차하여 이의현(李宜顯)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1712년에 대구에서 10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초간본 간행 후 이의현이 1725년 행장을 짓고, 이재(李縡)에게 시장을 부탁하여 1726년 저자의 연시례(延諡禮)를 행한 다음, 또 연보를 찬하고, 묘지명과 신도비명 등 부록문자를 정리한 뒤 1741년경 원집의 일부를 개각함과 동시에 부록 5권을 추각하였다. 본집은 원집 10권과 부록 5권 합 4책으로, 서두에 김창흡의 서문과 총목이 있고, 권1~3은 시(詩), 권4~8은 소차(疏箚) 등 공거문(公車文), 권9~10은 응제문과 문(文)이다. 부록은 모두 5권으로, 권1은 세계도와 연보, 권2는 이재의 시장, 권3은 이재의 신도비명, 민진원(閔鎭遠)의 묘지명, 이의현의 묘표음기, 권4는 숙종의 유제문(諭祭文)과 세자의 치제문, 지인의 제문, 만사(挽詞), 권5는 교서와 불윤비답(不允批答)과 별장 북계정사(北溪精舍)에 대한 김창협(金昌協)과 권상하(權尙夏)의 기문이 있다.
▶우암고(寓菴稿) | 홍언충(洪彦忠, 1473~150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궁내청 서릉부
조선 초기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문집이다. 시문(詩文)은 딸 홍씨(洪氏)가 가장(家藏)해 둔 것을 외손서(外孫婿)인 김우굉(金宇宏)이 청주목사(淸州牧使) 김중노(金仲老)에게 일을 맡기어 유고(遺稿) 부(賦) 2편, 제문(祭文) 1편과 시 200여 수에 자신의 발문(跋文)을 붙여 3권 3책의 목판본으로 1582년(선조15)에 간행하였고, 1720년(숙종46) 종후손(從後孫) 홍상민(洪相民)ㆍ홍상욱(洪相勖) 형제가 부계홍씨세계(缶溪洪氏世系)를 권수에 싣고 권말 부록(附錄)에 봉안시제문(奉安時祭文)ㆍ건암서원향축문(建嵒書院享祝文)ㆍ묘갈(墓碣) 등과 제현들의 애모하는 글을 모으고, 권두경(權斗經)의 서(序)와 홍상민(洪相民)의 발(跋)을 붙여 4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저자의 시문 3권으로 권1은 부(賦), 제문(祭文), 시 80여 수, 권2는 시 100여 수, 권3은 60여 수, 권미에는 김우굉의 발이 있다.
▶우암유집(寓庵遺集) | 김주(金澍, 1512~156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우암(寓庵) 김주(金澍, 1512~1563)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산실되고 남용익(南龍翼)이 만든 <기아(箕雅)>와 읍지(邑誌)에 몇몇 작품만 전해지자, 6대손 김래(金䅘)가 가전(家傳)되던 금연응제시(禁宴應製詩)와 김주가 방백(方伯)으로 있으면서 관내 주현(州縣)의 정우(亭宇)에 제영(題詠)한 것, 성천도기(成川圖記), 논(論), 표(表), ≪소재집(蘇齋集)≫ 등의 기록과 김래의 종질 김득현(金得顯)이 수집한 자료를 합하고, 이복원(李福源)의 서(序)를 받아 모두 7권 1책을 1789(정조13) 목판본(木板本)으로 간행하였고, 후손 김문연(金文演)이 초간본이 너무 소략한 것을 한탄하고 제가(諸家)의 가장(家藏), 명산(名山)의 비장(祕藏) 등에서 관련 기록들을 찾아 후손 김주연(金胄演) 등의 도움을 받아 1874(고종11)에 6권 3책의 활자본(活字本)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7권 1책으로 권1~4는 시, 권5는 서ㆍ기ㆍ명ㆍ묘갈명, 권6은 논ㆍ책ㆍ교서ㆍ표, 권7은 김래와 김득현이 만든 유사(遺事)와 이복원(李福源)의 시장(諡狀), 권말은 김래의 발이다.
▶우암집(寓庵集) | 남구명(南九明, 1661~171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암(寓庵) 남구명(南九明, 1661~1719)의 문집이다. 본집은 4대손 홍양(鴻陽)이 손자 용만(龍萬)과 증손 경희(景羲)가 교감한 시문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5대손 유귀(有龜)가 저자의 외후손 이종상(李鍾祥)의 교정을 받아 1860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유태좌(柳台佐)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작품의 절반 이상이 제주의 풍토와 생활상을 그린 것이다. 권1~2는 부(賦) 2편 외에 모두 시(詩)이다. <증문부(憎蚊賦)>는 모기를 탐관에 빗대어 그 피해를 열거하였고, 시는 장편고시가 많다. 권3은 남정일기(南征日記), 서(書), 기(記), 제문 등이다. 기 가운데 <서산점마기(西山點馬記)>는 공마(貢馬)를 점검하면서 말들의 정연한 모습에 견주어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는 목민관을 풍자한 것이다. 권4는 설(說)과 잡저이다. 설 가운데 말 이외에는 귀한 산물이 없는 것이 오히려 한라산의 모습을 보전하게 됐음을 서술한 <신산설(神山說)>등에서는 특이한 제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였다. 권5는 부록이고 권말에 외현손 이종상이 1860년에 쓴 후서가 있다.
▶우원집(尤園集) | 이정국(李楨國, 1743~180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원(尤園) 이정국(李楨國, 1743~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광일(光一)이 가장을 짓고 유심춘(柳尋春)에게 행장을, 유태좌(柳台佐)에게 묘갈명을 받아 유적을 정리하고 유고도 수습하여 초고 상태로 가장하였으나, 서발(序跋)이나 간기(刊記) 등이 없어 간행 경위는 분명하지 않고, 증손 택건(宅鍵)의 편교(編校)한 것으로 보아, 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한 시기는 고종(高宗) 연간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편차되어 있다. <경차무이도가곡십장(敬次武夷櫂歌曲十章)>은 주자(朱子)의 운을 밟아 심법(心法)을 궁구하는 모습 등을 읊었다. 권4~6에 나누어 수록된 강의는 정조의 ≪중용장구≫에 대한 93개 조항의 세세한 문목에 대하여 주자의 학설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답한 것이며, 저자의 학문적 역량이 집약되어 있어 본집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권8은 부록이다. 유심춘의 행장, 아들 광일의 가장, 유태좌의 묘갈명, 족제 정보(楨輔)의 입석고사(立石告辭)와 김굉(金㙆)의 뇌사(誄辭)와 최화진(崔華鎭), 안이진(安爾鎭) 등의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우원집(愚園集) | 임성원(林聲遠, 169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원(愚園) 임성원(林聲遠, 1695~?)의 문집이다. 현전하는 저자의 문집은 편찬 연도를 추정할 만한 서발(序跋)이 없다. 본 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罫印寫本)이다. 본집은 불분권 2책이다. 책1은 시(詩)이다. 대부분의 시는 삼청동(三淸洞), 필운동(弼雲洞), 옥호동(玉壺洞) 일대에서 같은 처지의 여항인들과 시사(詩社)를 열거나 인근을 유람하며 지은 것이다. 이 가운데 오언율시 <승가사(僧伽寺)>와 칠언율시 <신천전사득심자(信川田舍得深字)>는 ≪풍요속선(風謠續選)≫에 선발된 명편이다. 책2는 시(詩)이다. 우원(愚園), 유괴원(柳槐園) 등지에서 지은 시가 많다. 우원은 필운대(弼雲臺) 인근에 있었던 저자의 정사(精舍)이며, 유괴원은 필운대 아래 적취대(積翠臺) 동쪽에 있던 박령(朴坽)의 거처이다. 이밖에 적취대, 옥류동(玉流洞) 등 서울과 그 인근의 명승에서 지은 시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필운대>는 204구에 달하는 장편 오언고시(五言古詩)로 필운대의 연혁과 경관을 자세히 묘사하였으며, 이밖에 김시해(金時楷), 김성진(金聲振), 이한귀(李漢龜), 이성중(李聖中) 등과 지은 연구가 있다.
▶우재집(迂齋集) | 조지겸(趙持謙, 1639~168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재(迂齋) 조지겸(趙持謙, 1639~1685)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어 자세한 간행 경위를 알 수 없고, 저자가 졸하기 전에 부친 조복양(趙復陽)의 ≪송곡집(松谷集)≫과 연보를 기초(起草)해 두고, 본집의 시(詩) 곳곳에 작시 배경을 설명하는 자주(自註)를 단 것으로 보아 만년에 자편(自編)한 것으로 보이며, 송곡(松谷) 연보에 ≪우재집(迂齋集)≫을 인출한 다음 송곡 연보를 산절하여 간행(刊行)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본집도 1741년 송곡 연보를 인출한 시기에 손자 조한보(趙漢輔), 조한필(趙漢弼) 및 손서 이기언(李箕彥), 이광원(李匡元) 등이 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고, 권수에 세계(世系)와 각 권별로 목차(目次), 권1~2는 부(賦), 시(詩)이고, 권3~4는 서(疏), 계사(啓辭)이다. 권5는 서(序), 기(記), 송(頌), 전(箋), 교서(敎書), 공사(供辭)이고, 권6~7은 권선문(勸善文), 상량문, 제문이다. 권8은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행록(行錄)이고, 권9는 행장(行狀)이다. 권10~11은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제문과 만사이다.
▶우정집(憂亭集) | 김극성(金克成, 1474~154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우정(憂亭) 김극성(金克成, 1474~154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200여 년 만에 적손 김양흠(金亮欽)이 우연히 민가에서 습득하여 등사(謄寫)하고, 김양흠의 손자 김영수(金永秀)ㆍ김헌수(金憲秀) 등이 정귀석(鄭龜錫)의 교감(校勘)을 받아 시 600여 수와 문(文) 7편을 4권으로 편집하고 부록 2권을 붙여 3책으로 정고(定稿)한 후 1860년(철종11)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2권 합 3책으로 권수는 송내희(宋來熙)의 서문과 목록이, 본집은 문체별로 권1은 오언절구와 칠언절구, 권2는 오언사율, 권3은 칠언사율, 권4는 연구와 오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 잡저, 묘갈문, <황조시편후지(皇祖詩篇後識)>, 권5~6은 부록으로 권5는 교서(敎書)ㆍ소원록(溯源錄)ㆍ행장(行狀)ㆍ이경탁(李慶倬)이 찬(撰)한 행장후지(行狀後識) 및 심지원(沈之源)의 가장(家藏)ㆍ시장(諡狀), 이정귀(李廷龜)의 신도비명이 있으나 시장은 일문(逸文)이고, 권6은 중종이 내린 제문과 제인(諸人)의 제문과 만사(輓詞)가 있으며, 권말엔 정귀석의 발문이 있다.
▶우천집(愚川集) | 정칙(鄭侙, 1601~166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천(愚川) 정칙(鄭侙, 1601~1663)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창흥(昌興)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21년 이재(李栽)의 교감을 거친 후, 저자의 6대손 내천(來川) 등이 183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1721년에 이재(李栽)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연대순으로 배열하였으며 권2는 대체로 우천에 복거한 이후의 시들을 실었다. 권3은 부(賦), 잠(箴), 명(銘), 문(文), 소(疏), 서(書)이고 권4는 잡저이다. 특히 <논시사죄언(論時事罪言)>은 사의(私意)에 급급해 자강을 도모하지 못하는 시류(時流)를 통박하였는데 호란이 일어나자 선견으로 회자되었고, <관소미통감(觀少微通鑑)>는 <통감절요(通鑑節要)>의 소략함을 지적하고 ‘산용보유(刪冗補遺)’할 뜻을 밝혔다. 권5는 설(說), 발(跋), 서(序), 기(記), 전(傳)이고 권6은 변(辨), 축문, 제문, 묘지, 갈명이다. 권7은 부록으로 행장, 묘지명, 제문, 만사가 있고 권말에 유태좌(柳台佐)가 쓴 발, 1833년에 종6대손 내성이 쓴 지(識)와 유묵 2판이 있다.
▶우천집(牛川集) | 정옥(鄭玉, 1694~176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천(牛川) 정옥(鄭玉, 1694~1760)의 문집이다. 본집은 7권 4책의 목활자본이 전하고 있는데, 서문이나 발문 등 간행 경위를 추적할 만한 근거가 없어 간행 연도를 밝히기 어렵고 후손들에 의해 1863년 이후에 목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7권 4책이다. 권수에 저자의 4대손 창익(昌翼)이 지은 연보, 교서, 유서, 1761년 왕세자가 내린 사제문, 이인행(李仁行)이 지은 오천서원(梧川書院) 봉안문과 상향축문,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詩)로서, 오랜 관직 생활을 반영하여 연상시(延祥詩), 춘첩자(春帖子), 지방관 시절 임지의 명승을 방문하고 지은 시가 많다. 권3은 소(疏)이고 권4는 소(疏), 계(啓), 전(箋)이다. 특히 황해도 관찰사 시절에 올린 사직소가 8편에 달하는데, 남인 출신의 저자가 노년에 관찰사에 임명된 것에 대하여 영조의 특혜로 이루어진 자의적 인사라는 비판이 많았으며 저자 역시 부담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권5는 서(書), 상량문, 행장, 묘갈명, 비명, 발(跋), 기(記) 등이다. 권6은 제문이고 권7은 부록으로 제문, 만사, 행장, 묘갈명,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우헌집(寓軒集) | 박상현(朴尙玄, 1629~169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우헌(寓軒) 박상현(朴尙玄, 1629~169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이 ‘모연지기(暮年知己)’라 하였고, 본집에도 우암(尤庵)과의 편지, 만시(挽詩)와 제문(祭文)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 우암과의 관계를 강조한 1780~1790년대 경에 활자로 인행(印行)한 초간본은 전하는 것이 없고, 1889년(고종26)에 송기노(宋綺老)에게 발문을, 1898년(광무2)에 후손 박태동(朴泰東), 박협동(朴協東) 등이 송근수(宋近洙)에게 서문을 받아 상하 2책을 5권 2책으로 분권(分卷)하여 목활자로 중간(重刊)하였다. 문집은 5권 2책으로 권두에 송근수의 서문과 총목록이, 권1은 시, 권2~4는 편지글, 권5는 잡저로 <음양소장도(陰陽消長圖)>, <이설(理說)>과 퇴계(退溪)와 고봉(高峯)의 사칠왕부서(四七往復書)에 대한 제후(題後) 등이 실려 있다. 권말은 1717년 권상하(權尙夏) 지은 묘갈명, 이희조(李喜朝)가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권차(卷次) 외에 첨부되어 부록(附錄)에 해당하는 글인데, 권수제(卷首題)는 없고 판심제(板心題)가 각기 우헌선생묘갈명(寓軒先生墓碣銘), 우헌선생묘지명(寓軒先生墓誌銘)으로 되어 있다.
▶우헌집(寓軒集) | 유세명(柳世鳴, 1636~169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우헌(寓軒) 유세명(柳世鳴, 1636~1690)의 문집이다. 저자는 유운용(柳雲龍)의 후손으로 촉망받는 학자였으나, 일찍 죽고 자손도 가세가 한미하여 유성룡(柳成龍)의 자손인 유심춘(柳尋春)이 가장을, 유태좌(柳台佐)가 묘갈명을 지어 문집의 편찬과 간행을 주관하였지만, 종6대손 유의목(柳懿睦)의 발문에 따르면, 유종춘(柳宗春), 유상춘(柳象春) 등이 유고를 수습하고 정리하여 시문 7권과 부록 1권으로 편차하고 교정하여 정고본 한 질을 정사하였음에도 10여 년이 지난 1825년에 종인(宗人)들의 도움을 받아 목판의 판각을 끝내고 1833년에 유태좌의 주관 하에 간역을 마쳤다고 한다. 문집은 저자의 시문 7권과 부록 1권 합 4책으로, 권두에 총목록, 권1~2는 시(詩)이고, 권3은 교서, 주문(奏文), 소(疏), 서(書)이다. 권4는 이현일(李玄逸), 이담명(李聃命) 등 친지와 주고받은 편지글이고, 권5는 논(論), 설(說), 기(記)이다. 권6은 서(序), 기(記), 논(論), 발(跋), 책(策), 전(箋), 잠(箴), 제문이고, 권7은 제문, 묘표, 묘지, 행장이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은 유의목(柳懿睦)의 발문이 있다.
▶운강집(雲岡集) | 박시묵(朴時默, 1814~187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 1814~1875)의 문집이다. 아들 재형(在馨)은 자신의 문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산정하라는 부친의 유지에 따라 원고를 세 번 바꾼 뒤에야 유고(遺稿)를 3책으로 완성한 다음, 손자 내현(來鉉)이 1894년 김도화(金道和)에게 서(序)를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한 듯하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도화가 1894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저작 연대나 시체를 구분하지 않고 편차되어 있다.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등 ≪소학≫의 편목을 제재로 핵심 내용을 시화(詩化)한 <독소학(讀小學)>등 ≪소학≫을 중시하여 만년까지 수시로 읽고 음미하며 스스로 “나는 소학 중의 사람이다.”라고 했던 저자의 추향(趨向)을 보여 준다. 권2~3은 서(書)이다. 외세의 침입이 극심해지는 시국을 걱정하거나 서로의 근황과 경조사에 대한 인사를 전하는 내용 외에 선조(先祖)와 선유(先儒)의 유집 편찬에 관한 일 및 서원(書院) 철폐령에 따라 그곳에 봉안된 사적(事蹟)의 처리 문제 등 실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권말에 아들 재형이 쓴 발문이 있다.
▶운계만고(雲溪漫稿) | 김종정(金鍾正, 1722~1787)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운계(雲溪) 김종정(金鍾正, 1722~1787)의 문집이다. 손자 동헌(東獻)이 가장되어 오던 유고를 간행하기 위해 필사해 정리하던 고본으로 보이지만 분명한 필사 시기와 전해온 경위는 미상인 괘인사본이다. 본서는 원집 32권, 습유 3권, 부록 합 1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목록에 실린 작품 제목에도 산삭과 교정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에 뛰어나다는 평을 듣지는 못했지만 일상의 감상을 읊거나 업무차 외지로 나가게 된 경우 명승지에서 지은 것, 차운시(次韻詩)와 만시(挽詩) 등의 교유시가 고루 실려 있다. 권8은 잡저이다. <심폐편(審弊篇)>은 부역과 과세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개혁을 촉구한 글인데 저자가 경기, 강원, 관서, 영남 등지에 어사로 다니면서 민폐를 직시하였기에 보다 실정에 가까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듯하다. 부록에는 이득일(李得一)의 <경기감사교서(京畿監司敎書)>, 윤승렬(尹承烈)의 <강원감사교서(江原監司敎書)>, 신대전(申大傳)이 엮은 유사(遺事), 이희관(李羲觀)의 사제문, 본문은 없고 제목만 남은 조인영(趙寅永)의 시장이 실려 있다.
▶운곡집(雲谷集) | 이희발(李羲發, 1768~1850)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곡(雲谷) 이희발(李羲發, 1768~1850)의 문집이다. 손자 유재(維在)에 의해 수집 편차되어 유치명(柳致明)의 행장과 이명적(柳致明)의 묘지명과 홍우순(洪祐順)의 신도비명을 받았으나, 서문과 발문이 없어 명확한 편찬 내력은 알 수 없고, 다만 권수에 수록된 연보의 말미에 보이는 기사를 고려하면 1899년에 목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20권 1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연보와 권1~18의 목록이 있다. 권3은 소(疏)로, <청조치황정소(請措置荒政疏)>는 1828년 흉년에 대하여 황정을 펼칠 것을 주장한 것으로, 무천책(貿遷策)을 써서 영남 연해 30여 읍의 곡물을 사들여 실어오고, 공명첩을 발급하자는 내용이다. 권8은 전(傳), 설(說), 찬(贊), 명(銘), 전(箋), 교(敎), 율부(律賦), 부(賦), 책(策)이다. 권21에는 1847년 저자가 기로사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며 정홍경, 한익상(韓益相) 등 13명이 지은 시를 모은 기사첩(耆社帖), 유치명, 정홍경 등 20명이 지은 만사, 1852년 조정에서 내린 사제문(賜祭文), 오재광(吳載光), 김양교(金養敎) 등이 지은 제문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운곡행록(耘谷行錄) | 원천석(元天錫, 133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의 문집이다. 고려 말 원주(原州) 치악산(雉岳山)으로 은거하여 지은 야사(野史) 6권을 후손에게 꺼내보지 마라고 유언을 하였음에도 증손이 꺼내본 다음 시대를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으로 화를 당할 것을 우려하여 불태워 시고(詩稿)만 남았으나 이것도 시사(時事)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어 감춰둔 것을, 1603년(선조36) 강원도 관찰사 박동량(朴東亮)이 2권으로 된 ≪운곡집(耘谷集)≫을 얻어 절개를 드러낸 시만 추려 모아 <시사(詩史)>라고 하였다. 1800년(정조24) 13대손 원효달(元孝達)이 정범조(丁範祖)의 서(序)와 정장(鄭莊)의 발(跋)을 받고도 간행하지 못하다가, 16대손 원은(元櫽)이 가장(家藏)된 수고본(手稿本)과 박동량이 편차한 시사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1858년(철종9) 석재(石齋)에서 개간(開刊)하였다. 문집은 행록(行錄) 5권ㆍ사적(事蹟) 합 3책으로, 권수는 서(序), 권1~5는 시(詩), 사적(事蹟), 권미는 발(跋)이 실려 있다.
▶운석유고(雲石遺稿) | 조인영(趙寅永, 1782~1850)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의 문집이다. 양자(養子) 조병기(趙秉夔)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하고 편차(編次)하여 저자의 맏사위 김학성(金學性)이 산정(刪定)하고 교감(校勘)하였으나 1858년에 조병기(趙秉夔)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가 1868년 손자 조영하(趙寧夏)가 김학성(金學性)이 완성한 정고본(定稿本)을 가지고 20권 10책의 활자본(全史字)으로 초간(初刊)하였다. 본집(本集)은 20권 10책으로, 권수(卷首)에 윤정현(尹定鉉)과 맏사위 김학성(金學性)의 서(序)가, 권말(卷末)에 손자 조영하(趙寧夏)의 발(跋)이 있고 각 권 목록(目錄)이 있다. 권1~4는 시(詩), 권5~7은 소차(疏箚), 권9는 서(序), 권10은 기(記), 발(跋), 잡저(雜著), 권11은 응제문(應製文), 전문(箋文), 상량문(上樑文), 권12~13은 제문(祭文), 비문(碑銘), 묘갈(墓碣), 묘표(墓表), 권14는 지문(誌文), 행장(行狀), 권15는 가장(家狀), 권16~20은 시장(諡狀), 권말(卷末)에 손자 조영하(趙寧夏)의 발(跋)이다.
▶운암일고(雲巖逸稿) | 김연(金緣, 1487~154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김준식(金俊植)
조선 시대 운암(雲巖) 김연(金緣, 1487~154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8세손 김영(金瑩)이 채제공(蔡濟恭)에게서 서문을, 정범조(丁範祖)에게서 발문을 받고, 연보와 관계 기록을 수집 편차하여 1783년경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연보, 원집 2권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와 부(賦), 대책, 논(論), 기(記), 소(疏), 전(箋) 등 13편이 있는데, 특히 소(疏)는 성균관 유생들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1519년에 사사(賜死)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권2는 부록으로 행장, 신도비명, 묘지명, 가장, 사제문, 제문, 만사, 별장이 있는데, 행장은 1783년에 정범조가 지은 것이고, 신도비명은 같은 해에 채제공이 지은 것이다. 묘지명은 외손 박성(朴惺)이 지었고, 가장은 아들 김부의(金富儀)가 지었다. 제문은 이언적(李彦迪), 장응정(張應旌)이 지었고, 이언적과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만사가 있다. 별장에는 이자(李耔), 송인수(宋麟壽), 이황(李滉), 성수침(成守琛), 정응두(丁應斗), 성세창(成世昌), 홍섬(洪暹) 등이 저자에게 지어 준 송별시 14제가 실려 있다.
▶운암집(雲菴集) | 박문일(朴文一, 1822~1894) | 권책수 : 25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암(雲菴) 박문일(朴文一, 1822~1894)의 문집이다. 초고(草藁)의 망실을 우려한 문인(門人)들이 원집(原集) 12권, 속집(續集) 및 부록(附錄) 13권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초간본(初刊本)의 권질(卷帙)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이유로 백례행(白禮行), 노덕제(盧德濟), 김응묵(金應默) 등의 문인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의 예에 따라 1911년에 초간본의 내용을 요약(要約)하여 17권 9책으로 문집을 중간(重刊)하였다. 본집(本集)은 원집(原集) 12권, 속집 18권, 연보(年譜) 2권 합 25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卷頭)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2는 말미(末尾)에 실려 있는 조수초목(鳥獸草木) 및 기물(器物)을 읊은 시에서 소소한 사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권11은 서(序), 기(記), 발(跋),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비문(碑文), 행장(行狀)이다. 연보(年譜)는 상ㆍ하로 되어 있다. 저자의 아우 문오(文五)가 작성한 것으로, 1822년 저자의 출생부터 1897년 운곡정당(雲谷正堂)에 저자의 영정을 봉안할 때까지의 사실이 실려 있다.
▶운양집(雲養集)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문집이다. 박규수(朴珪壽), 유신환(兪莘煥)의 문인이자 김육(金堉)의 후예로, 온건개화정책(穩健開化政策)을 주장하였으며 한일병합 뒤에 일본의 작위를 받았으나 3ㆍ1운동 때는 독립 승인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총독부와 일본 정부에 전달하여 징역형을 선고받고 작위를 삭탈 당하였다.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직접 교감을 보고 상당량을 산삭하여 16권으로 편차해 둔 것을 1911년에 정화음(鄭華陰)이 등사하고 1912년에 문인 정윤수(鄭崙秀)가 교정하고 황병욱(黃炳郁)이 편집하여 1914년 강설산관(絳雪山館)에서 석판으로 16권 8책의 230질이 간행되었고, 중간은 1917년에 문인 정윤수(鄭崙秀), 이빈승(李斌承) 등이 교정하고 황병욱(黃炳郁)이 편집하여 서울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로 15권 5책으로 인행하였으며, 권수에 이빈승의 <약전(略傳)>, 말송겸징(末松謙澄) 등이 지은 중간제사(重刊題辭) 7편, 윤희구(尹喜求) 등의 중간서(重刊序) 3편을 첨부하고, 약간 편의 시문을 증보하여 15권 5책으로 다시 편차하고, 권말에 정만조(鄭萬朝)와 김택영(金澤榮)의 발문을 붙였다.
▶운와집(芸窩集) | 홍중성(洪重聖, 1668~17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운와(芸窩) 홍중성(洪重聖, 1668~17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양호(良浩)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병연(李秉淵)의 교정을 받은 고본을, 양호의 아우 명호(明浩)가 1784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4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초기의 작품은 김창흡의 영향 아래 악부(樂府) 고풍(古風)을 띄었고 중년 이후에는 성당풍(盛唐風)에 침잠하여 특히 두보(杜甫)를 선호하였다. 주요 수창자는 이병연, 홍세태 등이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 상량문, 계(啓), 설(說), 서(書), 지명이다. 서(序) 가운데 <남천세고서(南川世稿序)>는 석희박(石希璞), 석만재(石萬載) 부자의 세고를 산정하고 지은 것이며, 기(記) 가운데 <산앙재기(山仰齋記)>는 증산 현감 때 강학처를 세워 재명(齋名)을 짓고 구양수(齋名)와 소식(蘇軾)의 여훈으로 문풍이 진일보하기를 기원하며 쓴 것이다. 권6은 행장, 제문, 애사이고 권말에 재종제 중일(重一)이 지은 행장과 손자 양호가 1784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운재유고(雲齋遺稿) | 이중경(李重慶, 1724~175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재(雲齋) 이중경(李重慶, 1724~1754)의 문집이다. 저자는 31세에 요절하고 자식도 어렸기 때문에, 저자 사후 20여년 후에 아들 진굉(鎭紘)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조진도(趙進道)가 교감ㆍ편차한 고본(稿本)에, 손자 한응(漢膺)이 부록을 증보(增補)하여 1831년 이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실려 있고 서문은 없다. 권2는 서행잡영(西行雜詠)과 서(書), 제문이다. 서행잡영은 1751년 관서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시인데 저자의 자주(自註)가 실려 있어 생전에 서정록(西征錄)과 함께 정리해 둔 글인 듯하다. 권3은 잡저로, 서정록서(西征錄序)가 실려 있다. 1751년 개성(開城), 평양(平壤), 의주(義州) 등 관서 지역을 두루 유람하고 서해안을 따라 다시 돌아오는 115일 동안 4,000여 리의 여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글이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정리한 것인데 산천과 도리, 풍속뿐만 아니라 고금의 연혁이나 민간의 이야기까지 모두 실어 후일 와유(臥遊)의 거리로 삼고자 한다고 하였다. 권미에 조진도가 1784년에 쓴 서후(書後)가 실려 있다.
▶운창집(芸窓集) | 박성양(朴性陽, 1809~189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운창(芸窓) 박성양(朴性陽, 1809~1890)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인이자 척표질(戚表姪)인 이해익(李海翼)이 유초(遺草)를 수집하여 10계(呇)로 촬략(撮略)하고 1910년 봄 교감(校勘)을 완료하여 저자의 아들 승철(勝喆)에게 보내자, 승철은 성석용(成錫庸)과 비용을 마련하여 같은 해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5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930년 이환익(李桓翼)이 쓴 서문과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로 권목(卷目)이 있다. 권2는 소(疏)이다. 이 중에서 <개의제시진소회소(改衣制時陳所懷疏)>는 1884년 6월 관리들의 의복 제도를 바꾸도록 한 것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이다. 권11은 설(說), 발(跋), 명(銘), 잠(箴), 찬(贊), 상량문이다. 조선의 유맥(儒脈)과 관련하여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을 다룬 <국조칠선생찬(國朝七先生贊)>, 평안도 출신으로 병자ㆍ정묘호란 때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최효일(崔孝一), 차예량(車禮亮) 등에 대한 <관서칠의사찬(關西七義士贊)>이다. 권말에 박의동(朴儀東), 박기서(朴驥緖), 한진석(韓鎭錫)이 1930년에 지은 발(跋)이 실려 있다.
▶운천집(雲川集) | 김용(金涌, 1557~162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운천(雲川) 김용(金涌, 1557~1620)의 문집이다. 본집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편찬되고 간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1694년(숙종20) 권해(權瑎)의 서문과 조덕린(趙德鄰)의 행장(行狀)에서, 현손 김창석(金昌錫), 김세흠(金世欽), 김세호(金世鎬)의 부탁으로 짓는다고 한 걸로 보아 이들이 문과 급제한 다음 문집 간행을 도모하였으나 1694년에 일어난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남인(南人) 계열인 이들이 모두 파직되는 바람에 문집 간행이 중단되었다가 1720년(숙종46)경에 이들이 졸하기 전 묵계서원(默溪書院)에서 원집 5권과 부록 합 4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집은 원집(原集) 5권,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권해(權瑎)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 부(賦)이다. 권3은 소(疏), 서(書), 잡저(雜著), 서(序), 교서(敎書), 전(箋),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제문(祭文), 묘갈(墓碣), 묘지(墓誌)이다. 권5는 언행록(言行錄)으로, 숙부 김성일(金誠一)에 대한 것이다. 권6은 부록이다. 권말에 저자의 유묵(遺墨) 9수가 실려 있다.
▶운평집(雲坪集) | 송능상(宋能相, 1710~175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평(雲坪) 송능상(宋能相, 1710~1758)의 문집이다. ≪순조실록(純祖實錄)≫ 9년 3월 27일조에 “……≪상례비요(喪禮備要)≫도 조목(條目)에 따라 폄하한 것이 더없이 망측하니 직명(職名)을 삭제하고 문판(文板)을 파기하소서.”라는 유생(儒生) 윤우대(尹遇大) 등의 상소(上疏)에 따라 저자를 유일(遺逸)에서 삭제(削除)하고 문집의 각판을 파기시키라는 명(命)이 내리지만 문집의 저본 <상례비요지두사기(喪禮備要紙頭私記)>에 유생들이 비판했던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고, 초간본(初刊本)의 판각이 지례(知禮) 이참봉택(李參奉宅)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왕명대로 파기시키지 않고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문집의 간행은 1802년 이후와 위의 상소가 올라온 1809년 이전에 송환장과 송환기의 주도하에 문인 이의조(李宜朝)의 도움을 받아 10권 4책의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0권 4책으로,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다. 권1은 시(詩), 권2는 소(疏), 서계(書啓), 장(狀), 권3~7은 편지글, 권8은 서(序), 기(記), 인(引), 제문(祭文), 고문(告文), 권9~10은 잡저(雜著)이다.
▶운포유고(雲浦遺稿) | 여성제(呂聖齊, 1625~169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민대학교 성곡도서관
조선 시대 운포(雲浦) 여성제(呂聖齊, 1625~1691)의 문집이다. 본집은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그 인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권3 전반부까지는 소차이다. 사직소가 대부분이고, 그밖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출향(文廟黜享)을 반대하는 <옥당진차(玉堂陳箚)>, 경연에서 <사물잠(四勿箴)>을 강하고 물러나와 부친 여이징(呂爾徵)의 글을 올리는 <진선신사잠신석운어차(進先臣四箴申釋韻語箚)> 등이 있다. 권3의 후반부는 서계, 계사, 피혐이다. 권4는 염찰사로서 올린 서계, 연중주사, 자서문, 묘표음기, 집책, 의(義)이다. 특히 서계는 모두 유배에서 풀려 귀경하는 도중 우의정과 영의정에 제수되는 과정에 근신이 전하는 유지(有旨)에 대해 자신의 처지를 아뢰는 내용이고, 집책의 <문율려(問律呂)>는 회시에 급제한 과문으로 율려의 상생을 통해 치세의 방법을 제시한 내용이다. 의는 모두 ≪주역≫에 관한 것으로 <기제괘(旣濟卦)>의 글을 출처로 한 <수유의녀종일계(繻有衣袽終日戒)>와 <계사전(繫辭傳)>의 글을 출처로 한 <용사지칩이존신(龍蛇之蟄以存神)>이 있다.
▶운학집(雲壑集) | 조평(趙平, 1569~164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운학(雲壑) 조평(趙平, 1569~1647)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조병용(趙柄鏞)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족손 성희(性憙)의 교정과 사림의 협조를 받아 1898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1권, 부록 5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송병선(宋秉璿)과 족손 조성희(趙性憙)가 1898년에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3은 시체별로 편차된 시이다. 권4는 <갑자소(甲子疏)>로서, 북쪽 지방으로 백성들을 이주(移住)시키는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다. 권5는 서(書)이고, 권6은 잡저(雜著)이다. 권7은 서(序)로, 그중에서 <노송당일본행록서(老松堂日本行錄序)>는 세종 연간에 일본에 회례사(回禮使)로 갔던 송희경(宋希璟)이 사행(使行)의 노정(路程)과 산천(山川), 풍속(風俗), 제도(制度) 등을 기록한 기행문에 붙인 서문이다. 권8은 기(記)이고, 권9는 제문이다. 권10은 명(銘), 비명, 갈명, 행장 등이다. 부록은 행장과 묘갈명, 제문, 만사와 저자에 대한 기사를 모은 척록(摭錄)과 연보 등이다. 권말에는 1898년 기우만(奇宇萬)이 지은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운호집(雲湖集) | 임정주(任靖周, 1727~179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운호(雲湖) 임정주(任靖周, 1727~1796)의 문집이다. 유문은 사후에 아들 걸(杰)이 수집 편차하여 6편으로 만들고, 1817년 청산 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성주의 아들 조(照)의 협조를 받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책별로 권1ㆍ2, 권3ㆍ4, 권5ㆍ6의 목록이 묶여 있다.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권1~2는 서(書)이다.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김지행과는 ‘격물설(格物說)’에 대해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았고, ‘천지지성(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 등이 있다. 김희에게는 한원진(韓元震)의 심설(心說)에 대해 변론하고 질의한 장편의 편지가 있다. 권4는 잡저이다. 내용은 부녀자들의 사치스런 머리장식인 다리[髢]는 망국의 징조임을 개탄하여 지은 것, 읍기(邑妓)의 폐해를 들어 기녀를 없애는 것이 풍속을 바르게 하고 백성이 재물을 낭비하지 않게 하는 방법임을 논한 것, 오늘날 백성들이 궁핍하게 된 폐단 중의 하나인 담배 재배를 금할 것을 논한 것 등이 있다. 권미에 족질 노(魯)가 1817년에 지은 발이 있다.
▶원교집(圓嶠集) | 이광사(李匡師, 1705~177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문집이다. 정제두(鄭齊斗), 윤순(尹淳)의 문인으로 강화학파(江華學派)이며 서예가로 나주괘서(羅州掛書) 사건에 연루되어 23년간 유배 생활하다 졸하였다. 본집은 부령(富寧) 유배 시에 지은 시문을 모아 ≪두남집(斗南集)≫이란 제명(題名)으로 편차(編次)해 둔 것을 바탕으로 저자의 사후 유문을 더 수집, 정리한 필사본들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났던 아들 이영익(李令翊)이 시문을 수습하고 묘지를 부탁하는 등 유적을 정리하였으나 간행하기 전에 졸하여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0권 4책의 필사본으로, 목록(目錄), 서발(序跋) 등은 없다. 권1~3은 시(詩), 권4~5는 잡저와 편지, 권6은 제문(祭文), 권7은 묘지명(墓誌銘), 묘표(墓表), 신도비명(神道碑銘), 묘갈명(墓碣銘), 권8은 잡문, 권9는 행장과 기실(記實), 권10은 저자의 대표작인 <서결(書訣)>로 1764년 신지도(薪智島)에서 쓴 글로 서예가로서 터득한 서도(書道)의 원리와 실제를 정리한 총 7,200여 자의 장문(長文)이다. 부록엔 저자의 문인이자 종제인 이광려(李匡呂)가 지은 묘지(墓誌)가 있다.
▶원재고(圓齋槀) | 정추(鄭樞, 1333~138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원재(圓齋) 정추(鄭樞, 1333~1382)의 문집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아들 정탁(鄭擢)이 수집하고 정리하여 1405년(태종5), 1406년에 권근(權近)과 하륜(河崙)에게 서(序)를 받고, 1418년(태종18) 강원감사 홍여방(洪汝方)에게 문집 간행을 부탁하자, 홍여방이 영월군사(寧越郡事) 허형(許衡)에게 명하여 문집이 간행되었으며, 1607(선조40)년경 8대손 정구(鄭逑)가 설곡(雪谷) 정포(鄭誧)ㆍ원재 정추ㆍ복재(復齋) 정총(鄭摠)의 조(祖)ㆍ자(子)ㆍ손(孫) 3대의 문집을 합집(合集)하여 만든 ≪서원세고본(西原世稿本)≫ 8권 속, 권3~5에 ≪원재선생집(圓齋先生集)≫ 상ㆍ중ㆍ하 3권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은 상ㆍ중ㆍ하 3권 1책으로, 권수에는 권근과 하륜이 각각 쓴 서가 있고, 상권과 중권은 시(詩), 하권은 문(文), 권말에는 영월군사 허형이 쓴 발(跋)이 있다.
▶월간집(月澗集) | 이전(李㙉, 1558~164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월간(月澗) 이전(李㙉, 1558~1648)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이증록(李增祿)이 해남 현감으로 있으면서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712년 5월부터 역사를 시작해 50일 만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 있고, 이후 1802년에 이요복이 원집 3권은 초간본을 번각하고 여기에 행장과 연보 등을 증보하여 원집 3권, 연보 2권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 있다. 본집은 원집 3권, 부록, 연보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상정(李象靖)이 1780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와 소(疏)이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잡저, 잠, 제문, 묘지, 행장이다. 특히 잡저에는 저자가 평생 주서(朱書)를 공부하면서 긴요한 문자를 분류하여 기록한 책인 ≪성학요결≫, ≪중류일호(中流一壺)≫, ≪향상요결(向上要訣)≫의 서발을 비롯해 향약과 관련된 글들이 기재되어 있다. 부록은 묘갈명과 제문, 만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보는 권수에 세계도, 권1은 연보, 권2는 행장과 <환시일록(懽侍日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말에 저자의 6대손 이요복(李堯福)이 지은 연보발이 있다.
▶월고집(月皐集) | 조성가(趙性家, 1824~1904)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 1824~1904)의 문집이다. 손자 용숙(鏞肅), 조카 찬규(纘奎), 증손 만제(萬濟) 등이 저자 문인들과 함께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습 정리한 뒤 1929년에 하동(河東)의 서강정사(西岡精舍)에서 활자로 문집을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이 있다. 권1~5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류를 이루는 것은 영물시와 기행시인데 그중에도 기행시가 대부분이다. 권13은 기(記), 발(跋), 명(銘), 혼서(昏書)이다. <임헌참마검명(林軒斬馬劍銘)>은 정세필(鄭世弼)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칼에 대한 명으로 정세필이 좋은 말을 타고 서울에 갔을 때 어떤 자가 말을 벼슬과 바꾸자고 하자 즉석에서 말의 목을 자르고 귀향했다는 내력이 있는 칼로서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권19는 <사상일기(沙上日記)>이다. 이 일기는 1859년 8월 10일부터 시작하여 9월 23일 환가할 때까지 약 40여 일간 기정진을 곁에서 모시면서 성리학 등의 난제(難題)나 옛 성현들의 사적에 관해 들었던 내용들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다.
▶월곡집(月谷集) | 오원(吳瑗, 1700~1740)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월곡(月谷) 오원(吳瑗, 1700~1740)의 문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시문(詩文)을 자주 정리해두어 비교적 많은 유문을 남겼다. 1716년에 짓고 1720년에 부기(附記)한 <자제시초후(自題詩草後)>에서 17세 이전의 시 60여 수를 수록한 것과 <제시고후(題詩稿後)>와 <제동습속고(題童習續稿)> 및 작품의 후지(後識) 등을 보면 1729~1730년에 걸쳐 자신의 글을 또 정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으며, 또 남유용(南有容)이 1724년 <제오백옥원유종암시권후(題吳伯玉瑗遊鐘巖詩卷後)>와 1734년 본집 권5의 <백옥시집발(伯玉詩集跋)>을 써 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자편(自編) 시고 등을 바탕으로 아들 오재순(吳載純) 등이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1752년 14권 7책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14권 7책으로, 서발은 없고, 권수에 총목과 각 권 목록이 있다. 권1~5는 시, 권6~8은 소차와 응제록, 권9~10은 서(序), 제발, 기(記), 권11은 편지글, 권11 뒷부분~12는 묘지명, 묘표, 행장, 시장, 유사, 권13~14는 제문과 애사, 권14의 뒷부분은 잡저이다.
▶월당집(月塘集) | 강석기(姜碩期, 1580~164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월당(月塘) 강석기(姜碩期, 1580~1643)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생전에 유고를 정리해 두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후에 강빈(姜嬪)의 옥사(獄事)로 멸문(滅門)이 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유문(遺文)을 거두어 정리하지 못하였다.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이명한(李明漢)이 찬한 시장(諡狀)이나 신익성(申翊聖)이 찬한 신도비명(神道碑銘)에도 ≪의례문해(疑禮問解)≫ 일부(一部)가 가장(家藏)되어 있다고 할 뿐 문집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고의 정리는 1718년(숙종44) 저자가 신원되어 복작되던 즈음에야 행해진 듯하다. 강명달(姜命達)이 쓴 지(識)에 의하면, 1717년 증손(曾孫) 강봉서(姜鳳瑞)가 수년 간 유문을 수집 정리하여 외후손(外後孫)인 박사수(朴師洙)와 함께 편차 교정하고 부록까지 정리해서 정서해 두었으나 재력이 모자라 간행하지 못하다가 1772년(영조48) 5대손 강명달이 음성(陰城) 현감(縣監)으로 나가면서 강봉서의 교정본에 의례문해(疑禮問解)를 별집(別集)으로 편차하고 정포(鄭宲)의 서(序)를 받아 활자로 간행한다고 하였다. 본서는 원집(原集) 8권, 별집(別集) 2권 합 5책이다.
▶월봉집(月峯集) | 고인계(高仁繼, 1564~164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월봉(月峯) 고인계(高仁繼, 1564~164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시고 몇 권만 가장되던 것을 증손 고한상(高漢翔)과 현손 고사건(高師健)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문경(聞慶)의 종인(宗人) 집에서 얻은 서(書)와 사우의 문집에서 찾은 제문(祭文), 행장(祭文) 등의 글을 합하여 권두경(權斗經)의 교정을 거쳐 6책으로 편찬하였다. 그 후 7대손 몽찬(夢贊)과 후손 택룡(宅龍) 등이 재편하여 1859년경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홍상민(洪相民)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17세부터 83세 때까지 지은 시와 만시(挽詩)가 있고, 권2는 첫머리의 <과조동관(過鳥東關)> 이하 모두 호중잡영(湖中雜詠)으로 저자가 호서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지은 기행시가 대부분이다. 권3은 서(書)이고 권4는 제문, 서(序), 묘지, 묘갈, 행록이다. 권5는 부록으로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행장을 비롯하여 묘비명, 제문등이 있고, 권두인(權斗寅), 권두경, 채헌징(蔡獻徵), 이휘재(李彙載)가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권미에는 6세손 고유(高裕)와 7세손 고몽찬(高夢贊)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월봉집(月峯集) | 고부천(高傅川, 1578~163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월봉(月峯) 고부천(高傅川, 1578~1636)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고만기(高萬紀)가 1677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6대손 시좌(時佐)가 1725년 선사한 후, 7대손 휘진(輝鎭)ㆍ면진(勉鎭)과 8대손 제원(濟遠) 등이 1861년 6대손 시홍(時鴻)의 교정과 기정진(奇正鎭)의 산정을 거쳐 1864년경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9권 1책이다. 권수에는 서(序), 전교, 예부 복제가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이고 권2는 정문으로서 시, 표, 논이다. 그중에서<곽자의궁사극치지론(郭子儀窮奢極侈之論)>은 향시에서 수석한 글로서, 곽자의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은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부득이 그러했던 것이므로 후세 사람들이 본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권3은 소차와 계사이고, 권4는 응제록으로서 제문, 축문, 교서이다. 권5는 하대표(河大豹)에 대한 묘갈문이고 권6~8은 부록이다. 권9는 연보로서 1578년 저자의 출생에서 1861년 후손들이 유집을 정리한 기사까지 수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현손 고만기(高萬紀)가 1737년에 지은 것, 6대손 고시좌가 1785년에 지은 것 등 4편의 발이 수록되어 있다.
▶월사집(月沙集) | 이정구(李廷龜, 1564~1635)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문집이다. 생전에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오고, 여러 번 접반사(接伴使)를 지낸 관계로 중국의 학사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진주사(陳奏使)로 가선 학사 왕휘(汪煇)에게, 조사(詔使)로 온 양지원(梁之垣)과 강왈광(姜曰廣)에겐 접반사가 되어 자신의 시를 보여주고 받은 서문이 있다.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이후 시작은 <폐축록(廢逐錄)>, 공사(公私) 수답문자(酬答文字)는 <권응록(倦應錄)> 등으로 작품을 정리한 <자편고(自編稿)>를, 아들 이명한(李明漢)과 이소한(李昭漢)이 공주 목사로 있던 문인 최유해(崔有海)에게 교정과 간행을 부탁하고 충청 감사 박명부(朴明榑)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1636년 74권 2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초간본의 판목이 훼손되고 산일되자 손자 이익상(李翊相), 증손 이희조(李喜朝) 등이 이희조의 부친인 이단상(李端相)의 교우 민정중(閔鼎重)과 경상 감사 이세화(李世華)의 협조를 받아 1688년 원집 63권, 부록 5권 총 20책의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63권, 부록 5권, 별집 7권으로 구성되어 합이 22책이다.
▶월연집(月淵集) | 이태(李迨, 1483~153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월연주인(月淵主人) 이태(李迨, 1483~1536)의 문집이다. 증손 이유(李瑜)가 보관한 시문이 임진왜란 때 가장문헌(家藏文獻)과 함께 소실됨에, 5대손 이만재(李萬材)ㆍ6대손 이지복(李之復)ㆍ9대손 이천섭(李天燮)이 선현의 수기(手記) 중에서 시 7편, 묘갈명 1편을 찾고 수창시(酬唱詩)ㆍ언행척록(言行摭錄)을 수집하여 1책을 만들고, 여주이씨(驪州李氏) 세고(世稿) ≪철감록(掇感錄)≫ 권3에 수록된 ≪월연선생유고(月淵先生遺稿)≫에 1873(고종10) 10대손 이장운(李章運)과 11대손 이종술(李鍾述)이 행장ㆍ묘갈 및 쌍경(雙鏡)ㆍ월연사적(月淵事蹟) 등의 부록을 첨부하고 허전(許傳)의 서(序)와 이돈우(李敦禹)의 발(跋)을 받아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1차 간행하고, 1910(융희 4) 이종술이 세계도를 추가하고 이익구(李翊九)의 발문을 받아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2차 간행하였으며, 1911 후손 이수형(李守馨)ㆍ이우구(李宇九) 등이 종손을 달리 기록한 세계도와 이현보(李賢輔)의 종택에서 얻은 유묵 2판을 추가하고 이중직(李中稙)의 발문을 받아 2권 1책의 목활자로 3차 간행하였다. 문집은 2권 1책이다.
▶월정집(月汀集) | 윤근수(尹根壽, 1537~1616)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1537~161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으면서 거의 산일(散佚)되었고, 남은 가장(家藏) 초고를 손자 단양군수(丹陽郡守) 윤정지(尹挺之)가 편집(編輯)하고 교정(校正)하고 김육(金堉)의 도움을 받아 종손(宗孫) 함경도 관찰사 윤이지(尹履之)와 함께 나누어 1647년(인조25) 단양과 함흥(咸興)에서 처음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6세손 윤득관(尹得觀)이 주육논란(朱陸論難), 한문토석(韓文吐釋), 만록(漫錄) 등을 합편(合編)하여 1773년(영조49)에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活字)로 별집을 간행하였다. 한편 별집의 박필주(朴弼周)의 서문과 윤득관의 지(識)에 속집 간행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여력이 부족하여 미처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고선책보(古鮮冊譜)≫의 기록에 사본(寫本)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간행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집은 원집 7권, 조천록(朝天錄), 부록(附錄), 별집 4권 합 6책이다. 그의 시에 대해서는 윤신지(尹新之)나 신흠(申欽) 모두, 고문을 중시하는 기풍을 창도(倡道)하였다고 평하였다.
▶월주집(月洲集) | 소두산(蘇斗山, 1627~169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월주(月洲) 소두산(蘇斗山, 1627~1693)의 문집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제자로서 금고(禁錮) 중에 죽어 자손도 가세도 한미해져 유고(遺稿)를 수습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사위 권변(權忭)이 소략하나마 유고를 정리하고 묘지명(墓誌銘)을 지은 다음, 5대손 소수헌(蘇洙憲)이 가장(家藏)된 유집(遺集)을 정리하고 제현(諸賢)의 문집에서 저자의 글을 수집하여 정고본(定稿本)을 한 부를 만들었으며, 7대손 소휘면(蘇輝冕) 등이 다시 산삭(刪削)과 수집을 더하고 부록(附錄)을 첨가하여 조두순(趙斗淳)의 서문과 김병학(金炳學)의 발을 받아 1866년(고종3) 활자로 5권 3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권두에 조두순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 권2~3은 소(疏), 계사(啓辭), 장계(狀啓)의 공거문(公車文)과 서(書), 잡저(雜著), 권4~5는 부록(附錄)으로, 권4는 제문과 만사, 묘지, 신도비명, 행장이 있다. 권5는 연보와 유사이다. 연보는 고종 3년에 문집의 편차와 간행에 대한 기사까지 실려 있어 문집 간행 즈음에 편차된 것으로 보인다. 권말엔 1866년 김병학(金炳學)의 월주집발(月洲集跋)이 실려 있다.
▶월천집(月川集) | 조목(趙穆, 1524~160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의 문집이다. 1662(현종3) 허목(許穆)이 예안 현감(禮安縣監) 이석관(李碩寬)의 청탁으로 아들 조석붕(趙錫朋)이 소장한 초고 4권을 산정하고, 이어 서애 비판 관계 기록을 정리한 후인 1666(현종7)경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권수는 허목(許穆)의 서(序)와 본집의 목록, 세도(世圖), 연보가 있으며, 본집은 시(詩), 소(疏), 서(書), 변의(辨疑), 잡저(雜著), 발(跋),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갈(墓碣), 묘지(墓誌), 논(論)의 순서로 ≪퇴계집(退溪集)≫의 편차와 매우 흡사하다. 권1의 시는 대략 저작 시대에 따랐으며, 퇴계선생 및 그 문도들과의 수창시가 많다. 권2의 상소는 대부분이 사직소인데, 이 중 <갑오진정소(甲午陳情疏)>는 왜구와의 강화를 극력 반대하는 상소문이다. 권3의 서(書)는 객체(客體)의 비중에 따라 편차하였는데 모두 21편이다. 특히 퇴계에게 보낸 편지는 5편에 불과한데, 이는 전란으로 대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4는 퇴계와 여러 가지 경서에 대하여 저자가 묻고 퇴계가 답하는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권미에 김응조(金應祖)의 발문이 있다.
▶월헌집(月軒集) | 정수강(丁壽崗, 1454~152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월헌(月軒) 정수강(丁壽崗, 1454~1527)의 문집이다. 1542년(중종37) 아들 정옥형(丁玉亨)이 유별(類別)로 편차하여 권수에 조부 정자급(丁子伋)의 유고 약간 편을, 권미에 백부 정수곤(丁壽崑)의 시문을, 권중에 자신의 차운시 약간 편을 저자의 원운 아래에 붙이고 자신의 발문과 함께 3권으로 성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7세손 정시윤(丁時潤)이 순천부사가 되어 저자의 손자 정응두(丁應斗)의 시 약간 편을 추부(追附)하고, 권유(權愈)의 서(序)를 받아 1702년(숙종28)에 활자로 간행하였지만, 이 중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중간시(重刊時) 소략했던 ≪충정공유고(忠靖公遺稿)≫에 시 9수를 보충하여 권미에 보입하고 아울러 중간시말(重刊始末)과 10세손 정범조(丁範祖)ㆍ정재원(丁載遠)의 발을 붙여 1773년(영조49)에 5권 3책의 목판본으로 호남에서 개간하였으며, 1960년 후손 정대의(丁大懿)가 전남 화순군 적벽에서 5권 3책의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5권 3책으로, 권수는 영조의 어제어필(御製御筆)ㆍ전교, 권유의 서 등이 있다. 권1~4는 시, 권5는 문, 권미는 정옥형의 초간발과 정범조ㆍ정재원의 개간발이다.
▶위암집(韋庵集) | 이최중(李最中, 1715~178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위암(韋庵) 이최중(李最中, 1715~1784)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의병(義秉)이 가장(家藏)된 20권의 유집을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정리하고, 유한준(兪漢雋)에게서 행장과 서문을 받았지만 간행하지 못하고 졸하였다. 이후 저자의 문집은 조진관(趙鎭寬)의 서(序)와 함께 6권 3책이 전사자(全史字)로 인행되었으나, 서발문이나 사기(寫記) 등의 관련 기록이 없어 명확한 서사(書寫) 경위는 알 수 없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는 조진관이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다. 권4는 소차(疏箚), 전(箋)이다. 그중 1770년에 올린 <사대사헌소(辭大司憲疏)>는 영조가 자신의 생각에 어긋나는 말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꺾어버리고, 의도에 부합하는 말을 한 신하는 그 현부를 따지지 않고 사정을 봐주어 언로(言路)가 막히고 사기(士氣)가 저하되었음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 것이다. 1774년에 올린 <함경감사걸치사소(咸鏡監司乞致仕疏)>는 그간의 개인적 삶과 관직 생활을 회고하고 영조에게 10년이나 이른 나이에 치사를 청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끝에는 영조가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토로한 긴 분량의 비답이 첨부되어 있다.
▶유계집(柳溪集) | 강명규(姜命奎, 1801~186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계(柳溪) 강명규(姜命奎, 1801~1867)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 목활자본 ≪유계집(柳溪集)≫ 8권 4책이 전하고 있는데,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편간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부록에 수록된 아들 임()이 1898년에 지은 가전에 언급되어 있고, 필사본의 필사후기가 1920년에 작성된 점 등으로 볼 때 1898~1920년에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의 전반부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나 저작 연도와 무관하게 편차되어 있는데, 일부 시에는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권3의 후반부~4의 전반부는 잡저이다. <두문동지(杜門洞志)>는 14대조인 회중(淮仲)이 두문동 24인 중의 한명으로 정조(正祖)가 그의 충절을 높이 산 사실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주자(朱子)에 대한 태도를 보여 주는 <독주선생서(讀朱先生書)> 등과 존주론에 대한 입장과 천주교 교리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통 성리학에 대한 고수 의지를 보여주는 <독존주록(讀尊周錄)> 등이 있다. 권6은 책(策), 축고문, 제문이다. 권미에 4남 임이 1898년에 지은 가전이 있다.
▶유심재집(有心齋集) | 이화보(李和甫, 1714~178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심재(有心齋) 이화보(李和甫, 1714~1781)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아들 요흠(堯欽)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고 조진관(趙鎭寬)이 수교(讐校)하여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대부분 서간(書簡)으로 되어 있으며 일반적인 문집(文集)과 달리 시(詩)가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다. 별도의 서발문(序跋文)은 없으며 권수(卷首)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서(書)이다. <답취촌신공서(答醉村愼公書)>는 ‘성(性)’에 대한 글을 지어보라는 신이의의 권유에 대하여 거절의 뜻을 고한 것으로, 자신의 신심(身心) 상에 힘을 쏟지 않고 고원한 것만을 추구하며 이기설(理氣說)을 모르면 아무리 요임금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시를 당하는 타락한 사풍(士風)을 비판하고 있다. 권4는 경의문답(經義問答)과 예의문답(禮疑問答)이다. 경의문답은 사서(四書)의 본문과 주자주(朱子註), 세주(細註)의 해석에 대하여 이경유, 이진해, 심원진, 이정섭(李鼎燮), 조덕(趙悳)의 문목과 저자의 답변을 함께 수록한 것으로, 문목 밑에 해당 원문의 위치를 각주로 밝혀 놓았다.
▶유연당집(悠然堂集) | 김대현(金大賢, 1553~160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序跋)이나 지(識) 등이 없어 문집의 간행 경위와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8대손 김종탁(金宗鐸)이 지은 <도림추원사이건기(道林追遠祠移建記)>에 1804년 추원사의 공역을 시작해서 1806년에 마쳤다고 하였는데, 이 기사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806년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와 서(書)이고, 권2는 소(疏)와 논(論)이다. 그중에서 <척화소(斥和疏)>는 오늘의 정세를 보면 이적(夷狄)의 환란(患亂)과 살육이 어느 때보다도 심하니 일본과 강화하지 말 것을 청한 상소(上疏)이다. 권3은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 제문(祭文), 상량문(上樑文)이다. 권4는 부록이다. 김상헌(金尙憲)이 1635년에 지은 유사를 비롯하여 정경세(鄭經世)가 지은 묘갈명(墓碣銘),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년기(行年記), 사제문(賜祭文), 신경진(辛慶晉)이 지은 만사(輓詞), 김굉(金㙆)이 지은 구호서원(鷗湖書院)에 봉안하는 글 등이 있다.
▶유재집(游齋集) | 이현석(李玄錫, 1647~1703)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유재(游齋) 이현석(李玄錫, 1647~1703)의 문집이다. 남인(南人)계 학자로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과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등 집안의 문장을 이을 재목으로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있었다. 저자는 치열한 당쟁기(黨爭期)에 당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필(文筆)에 집중하여 ≪사자경륜집(四子經綸集)≫, ≪명사강목(明史綱目)≫, ≪유재집(游齋集)≫을 남겼는데, 특히 ≪명사강목≫ 1714년 숙종(肅宗)이 예람(睿覽)한 뒤 정사(淨寫)하였으나 간행(刊行)하지 못하다가 1726년 다시 왕명(王命)으로 후손들이 교정을 본 뒤 관에서 운각활자(芸閣活字)로 간행하여 연강(筵講)에도 활용하였지만 조선의 선계(璿系)를 무함한 주린(朱璘)의 사평(史評)이 첨입된 사실로 이 부분이 세초(洗草)되고 저자의 관작도 추삭(追削)되었다. 문집의 경우는 관계 기록이 없어 편찬과 간행 시기가 불분명하고, 다만 저자가 자편한 원고를 아들 이한겸(李漢謙)이 수집 정리하여 간행한 듯하다. 본집은 24권 8책으로 권1~11까지는 시집(詩集)이고 권12~24까지는 문집(文集)이다. 첫머리에는 권별로 시록명(詩錄名)과 목록(目錄)이 있다.
▶유천유고(柳川遺稿) | 한준겸(韓浚謙, 1557~162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유천(柳川)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의 문집이다. 초기에 지은 시문은 임진왜란에 소실되고 중년에 지은 시문은 이괄(李适)의 난에 잃어버린 것을 모아 시집 몇 권을 만들었지만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공사(公私) 문적(文籍)과 함께 없어져 버린 것을, 아들 한회일(韓會一)이 선친과 교류한 제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시문 수십 편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분량이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산문도 제문(祭文), 비지(碑誌), 행장(行狀) 등 전기자료(傳記資料)가 대부분이다. 본집은 간행 경위를 알 수 없지만, 이식(李植)이 저자의 서문과 형 한백겸(韓百謙)의 서문을 쓴 시기가 거의 비슷하고, 한백겸의 아들 한흥일(韓興一)이 전주 부윤으로 있을 때 문집을 간행한 것으로 보아, 그때 조카 한흥일이 선친의 문집과 함께 숙부의 문집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운문과 산문을 구분하여 ≪유천집(柳川集)≫과 ≪유천문집(柳川文集)≫으로 나누고, 권수는 이식과 신익성(申翊聖)의 서문이 있으며, 간략한 연보가 있다. 전반부는 운문으로, 칠언의 율시와 절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후반부는 산문이다.
▶유하집(柳下集) | 홍세태(洪世泰, 1653~1725)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유하거사(柳下居士)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문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원고를 자편하고 간행에 필요한 경비까지 마련해선 문생들에게 문집의 간행을 누차 부탁하였으며, 또 졸하기 두어 달 전인 1724년 11월에 시문을 직접 편정한 다음 부인 이씨(李氏)에게 보관을 부탁하는 한편 자서에 이러한 시말을 기록하였다. 권두의 자서에 김석주(金錫胄)가 자신을 고적(高適), 잠참(岑參)에 비의하며 칭찬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문집은 1730년에 사위 조창회(趙昌會)와 문인 김정우(金鼎禹)가, 자편한 10권에 시 4권을 보유(補遺)로 덧붙여 14권으로 증보하고 부록으로 정내교(鄭來僑)의 묘지명을 추가하여 활자로 인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14권, 부록 합 6책으로, 권두에 자편하고 지은 자서가 있고, 자서 끝에 ‘홍세태인(洪世泰印)’과 ‘유하거사인(柳下居士印)’이 찍혀 있다. 권1~8은 부(賦)와 시(詩), 권9는 서(書), 서(序), 기(記), 전(傳), 권10은 제발, 지(識), 찬(贊), 명(銘), 묘지명, 소(疏), 논(論), 잡저, 제문 등이고, 권11~14는 보유, 권미는 부록으로 정내교가 지은 묘지명이 있다.
▶유항시집(柳巷詩集) | 한수(韓脩, 1333~138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유항(柳巷) 한수(韓脩, 1333~1384)의 문집이다. 중자(仲子) 한상질(韓尙質)이 유고를 수집ㆍ편차하고 양촌(陽村) 권근(權近)에게 비점(批點)을 받아 저자의 문하 전라도 관찰사 성석용(成石瑢)과 금산 현감(錦山縣監) 이통훈(李通訓)이 1400년(정종2) 금산(錦山)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자획이 너무 가늘어 보기에 불편한 단점과 임진왜란 이후 판본이 거의 불타서 없어졌으므로, 8대손 한준겸(韓浚謙)이 숙부 함경백(咸鏡伯)과 한효순(韓孝純)의 권유를 받고 간행에 착수하여 선사(繕寫)까지 마쳤지만 임기가 만료되어 간행하지 못하다가 1602년(선조35) 호남(湖南)에 부임하였을 때 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856년(철종7) 후손 한진정(韓鎭庭)이 ≪목은집(牧隱集)≫에서 채록한 수편의 시문을 부록으로 붙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시집은 단권(單卷) 1책으로, 권수는 권근(權近)의 서(序)와 이색(李穡)의 <한문경공묘지명(韓文敬公墓誌銘)>, 우왕의 교서(敎書)가 있고, 본집에는 147제(題) 206수의 시가, 권미는 간행 경위를 밝힌 윤회종(尹會宗)의 지(識)와 한준겸의 발문이 있다.
▶유헌집(游軒集) | 정황(丁熿, 1512~15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문집이다. 5대손 정재흥(丁載興)이 가장수고(家藏手稿)를 정리하여 권상하(權尙夏)에게 유문(遺文)의 편차와 교정을 부탁하고 영천서원(寧川書院)의 도움을 받아 송상기(宋相琦)의 서문과 민진후(閔鎭厚)의 발문, 정재흥(丁載興)의 서발(書跋)을 붙여 1715(숙종41)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7대손 정부혁(丁復爀)이 연보(年譜)를 작성하고 유문을 여러 전적에서 수집, 증보하여 정문혁(丁文爀)과 외손 정일환(鄭日煥)이 1801(순조1) 원집 4권과 부록을 합하여 3책으로 편집하여 정일환이 교수(校讐)하고 발문을 쓰고 송환기(宋煥箕)의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유문의 증보는 자손들에 의해 계속 이루어져 1933년에 후손 정대익(丁大翊), 정양수(丁養洙)가, 1941년 12대손 정원상(丁元常), 정항규(丁杭圭) 등이 속집을 5권 2책으로 편집하여 장수 영모재(永慕齋)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1권 합 3책으로, 권수에 송환기의 서문과 송상기의 서문 및 목록이 있고, 권말에는 정일환의 중간발과 민진후, 정재흥의 초간발이 있다.
▶유헌집(遊軒集) | 장석룡(張錫龍, 1823~190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헌(遊軒) 장석룡(張錫龍, 1823~190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자(嗣子) 승원(承遠)이 수집(蒐集) 편차(編次)하였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졸하였고, 이후 손자 길상(吉相)이 수차례의 감교(勘校)를 거쳐 1925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11권, 연보(年譜) 3권 합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다. 원집 권1~3은 시(詩)이다. 대체로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명승을 유람하고 감상을 읊은 것, 차운시, 만시 등이 많다. 권5는 차(箚), 교서(敎書), 표(表), 전(箋), 진향문(進香文), 고유문(告由文)이다. 차자는 홍문관 부수찬과 부교리로 있을 때 올린 것으로 법강(法講)과 소대(召對)에 힘써 우임금이 촌음(寸陰)을 아낀 것, 탕임금의 일신(日新)한 덕, 성왕(成王)의 무일(無逸)을 본받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권말에 손자 길상이 문집을 간행하며 지은 발(跋)이 있다.
▶유회당집(有懷堂集) | 권이진(權以鎭, 1668~173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수만헌집(收漫軒集)≫을 산정ㆍ재편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19세기 초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을, 1917년 후쇄한 것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11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주요 수창자는 홍영(洪璄), 홍만우(洪萬遇) 등이다. 권3~4는 소(疏)로,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의상소(擬上疏)>는 1704년에 임금이 자신을 수양할 수 있도록 세 가지 근본과 바른 정사를 확립하도록 여섯 가지의 급선무를 제언하고, 시사를 풍자하여 강세귀(姜世龜)와 최석정(崔錫鼎)을 변론하고 김춘택(金春澤)을 성토하여 지은 것이다. 권5~6은 장계, 의(議)이고 권7은 서(書), 서(序), 기(記)이다. 권8은 기(記), 제발이고 권9는 비(碑),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이다. 권10은 묘표, 행장, 행록이고 권11은 축문, 제문, 전(傳), 잠(箴), 잡저 등이다. 권12는 부록이고 권말에 간기(刊記)가 있다.
▶육곡유고(六谷遺稿) | 서필원(徐必遠, 1613~167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육곡(六谷) 서필원(徐必遠, 1613~1671)의 문집이다. 본가(本家)의 몇 차례 화재로 인해 유고(遺稿)가 대부분 소실되었다. <호서수군방략(湖西水軍方略)>과 <서원교폐절(目(書院矯弊節目)>과 같은 저작조차 남지 않았는데, 아들 서경조(徐敬祖)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중에서 저자의 소장(疏章) 70편과 계사(啓辭) 12편을 찾아내고, 또 남은 시문을 수습하여 약간 권을 선사(繕寫)해 가장(家藏)해 두었다. 이후 1790년(정조14) 문중에서 저자와 조부 소호공(蘇湖公) 서용갑(徐龍甲), 아들 의암(宜菴) 서경조(徐敬祖)의 문집을 ≪삼세유고(三世遺稿)≫로 간행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본집의 정리와 편차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6세손 서영지(徐榮智)와 서영인(徐榮仁) 등이 이 가장본(家藏本)을 바탕으로 부록문자를 정리하여 이약우(李若愚)의 서와 김기찬(金基纘)의 발을 붙여 1865년(고종2)에 활자로 6권 3책을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1~4는 시문, 권5~6은 부록이다. 권두에 이약우(李若愚)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말에 김기찬의 발과 6세손 서영지의 지(識)가 있다
▶육우당유고(六寓堂遺稿) | 이하진(李夏鎭, 1628~168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육우당(六寓堂) 이하진(李夏鎭, 1628~1682)의 문집이다. 본집은 북정록(北征錄)ㆍ진양록(晉陽錄)ㆍ운양록(雲陽錄) 등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된 교정고본으로, 중복 수록된 작품과 해당 ‘록(錄)’에서 빠져 잘못 편차된 작품에 표시를 하는 등 가필(加筆)과 교정의 흔적이 있는데, 그 전사경위나 전사자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불분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수에는 1743년에 오광운(吳光運)이 지은 서(序)가 있다. 책1~3은 시로, 저자의 행적에 따라서 시기별로 분류하여 ‘록(錄)’으로 묶어 시체 구분 없이 실었고 자주와 편자주(編者註)가 있으며, 연행시집(燕行詩集)인 북정록과 유배시집(流配詩集)인 운양록의 비중이 가장 크다. 책4는 문으로 서(序), 기, 잠, 사, 명, 제문, 표전, 교서, 계사, 피혐, 소, 유문, 계문 등이 있다. 작품에는 이서우와 창의문 밖 북서에서 피서하며 지은 <피서북서서(避暑北署序)>, 복거지 매산의 풍광을 읊고 ‘매(梅)’의 기상을 기리며 1654년 정월에 지은 <복거매산기(卜居梅山記)>, 유배지 운산의 진산(鎭山)인 백벽산에 다녀와서 지은 <백벽산기(白碧山記)> 등이 있다.
▶육화집(六化集) | 양거안(梁居安, 1652~173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육화(六化) 양거안(梁居安, 1652~1731)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재경(在慶)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관계기록을 수집ㆍ편차하여 1903년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 아우 거역(居易)의 육봉공유문(六峯公遺文)과 종제 거웅(居雄)의 생원공유문(生員公遺文), 저자의 장자 정유(井維)의 처사공유문(處士公遺文)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3권, 부록 1권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기우만(奇宇萬)이 1892년에 지은 서(序), 이건창(李建昌)이 1894년에 지은 서, 족손 상형(相衡)이 1898년에 지은 서가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로서 시는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칠언시의 비중이 높다. 그중에서 <임노촌기관시별장(林老村棄官時別章)>은 1719년에 병으로 사직하고 서울로 가는 임상덕을 송별한 것이며, <차채후래임견증운(次蔡侯來臨見贈韻)>은 1724년에 능주 목사로 부임한 채성윤(蔡成胤)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권3은 서(書), 잡저, 서(序), 제문, 행장, 유사 등이다. 부록에는 가장, 묘갈명(墓碣銘) 등이 있고, 권말에 5대손 상욱(相郁)과 방손 재경이 190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 |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의 문집이다. 저자는 말년에 문집 간행을 염두에 두고 <송씨부(宋氏婦)>부터 <안자소락론(顔子所樂論)>까지 초년 저작 8편과 <자로론(子路論)> 이하 중년과 만년의 저작 32편을 묶어 모두 40편으로 정리하여 초본 1책을 만들어 아들 재준(在峻)에게 주었지만 아들이 저자보다 일찍 졸하여, 본집은 계제 정주(靖周)가 자편고를 산정ㆍ재편하여 1796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상편은 전(傳), 논(論), 발(跋), 설(說)이다. 전은 송능상(宋能相)의 처 청주 한씨(淸州韓氏), 무인(武人) 홍씨(洪氏)의 아내 최씨(崔氏)와 딸에 대한 것이고, 논은 예양(豫讓), 보과(輔果) 등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논평으로 명분론과 정통론에 입각해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편은 잠(箴), 명(銘), 찬(贊), 제문, 인(引), 경의(經義)이다. 경의는 ≪대학장구≫, ≪중용장구≫의 주요 장구에 대한 해설로, 1786년부터 저술을 시작하여 성주, 정주와의 토론을 거쳐 완성한 것이다. 권말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신광우와 정주의 발이 있다.
▶율곡전서(栗谷全書) | 이이(李珥, 1536~1584) | 권책수 : 38책 | 포갑수 : 8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문집이다. 박여룡(朴汝龍)의 주도하에 1611년(광해군3) 해주 소현서원(紹賢書院)에서 ≪율곡선생문집(栗谷先生文集)≫ 11권이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이후 활자본으로 원집 11권의 중간이 행해졌으나 시기와 간행의 주체는 불분명하다. 1672년(현종13) 박세채(朴世采)가 초본 중 원집 간행 시 누락된 글을 바탕으로 해주, 강릉, 파주의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저작을 모아서 중요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자료를 속집(續集)으로 하고 나머지를 외집(外集)으로 편찬하였다. 별집은 ≪이정전서(二程全書)≫의 체제를 모방하여 제자들이 작성한 어록(語錄) 및 여러 문헌에서 저자 관계 기록을 수집하여 편찬하였다. 전서(全書)는 저자의 모든 저작과 묘도문자 및 관련기록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전체를 일별하면 권1~18은 시문집(詩文集), 권19~26은 성학집요(聖學輯要), 권27은 격몽요결(擊蒙要訣), 권28~30은 경연일기(經筵日記), 권31~32는 어록(語錄), 권33~38은 부록(附錄)이고, 부록 뒤에 부록속편(附錄續編)과 습유(拾遺) 6권이 있다. 전체 분량은 44권 23책이다.
▶은봉전서(隱峯全書) | 안방준(安邦俊, 1573~1654)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은봉(隱峯)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문집이다. 1680년대 무렵 문인 서경휘(徐景翬)가 편차(編次)한 것을 1769년에 5대손 안창현(安昌賢)이 송덕상(宋德相)에게 서문을 받고 또 송덕상, 김종후(金鍾厚), 이기경(李基敬) 등의 교정을 거쳐 편차(編次)를 정하여 10권의 정고본(定稿本)으로 만들어 1773년에 간행을 마친 뒤 이기경(李基敬)에게 발문을 받았다. 이후 후손 안수록(安壽祿) 등은 초간본(初刊本) ≪우산집(牛山集)≫에 ≪기묘유적(己卯遺蹟)≫, ≪혼정편록(混定編錄)≫, ≪항의신편(抗議新編)≫, 연보(年譜), 부록(附錄) 등을 합편(合編)하여 ≪은봉전서(隱峯全書)≫의 정고본(定稿本)을 만들고 정주방(鄭胄邦)에게 부탁하여 등본(謄本) 2질(帙)을 만들어 간행에 대비한 다음, 종손(宗孫) 안영환(安永煥)이 족숙(族叔) 안정수(安廷洙), 족형(族兄) 안길환(安吉煥), 족제(族弟) 안기환(安琪煥) 등과 함께 당시의 보성군수 유건환(兪建煥)의 도움을 받아 1864년 보성 대계서원(大溪書院)에서 목활자로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38권, 부록 2권으로, 권수는 송래희(宋來熙)와 조병덕(趙秉悳)의 서문이 있다.
▶은송당집(恩誦堂集) | 이상적(李尙迪, 1803~186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3~1865)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으로 나누어 저자 생전에 중국에서 간행되었는데, 우선 원집(原集)은 1847년 사행을 떠나기 전에 서문 <자지(自識)>를 쓰고, 연경에서 간행할 목적으로 1824년에서 1847년까지의 시(詩)를 모아 편찬(編纂)한 자편고(自編稿)를 가지고 가자, 1848년 청인 오찬(吳贊)이 주관하여 목판(木板)으로 원집을 간행하고, 판목을 초광성 점포에 보관해 두었으며, 속집은 1859년 허종형(許宗衡)에게 속집의 서문(序文)을 받고 1860년대 초에 북경(北京)에서 간행되었던 듯하다. 본집은 원집 12권, 속집 12권 합 4책으로, 권두(卷頭)에 청인 양부거(楊夫渠)가 전서체(篆書體)로 은송당집(恩誦堂集)이라고 쓴 속표지가 있고, 권수(卷首)에는 <자지(自識)>와 화상(畫像)이 수록되어 있는데, <자지>에 헌종(憲宗)이 자신의 시를 애호하여 몸소 읊은 것으로 인하여 문집을 은송당집이라고 명명한다는 사연을 기록하였고, 화상은 아들 이용림(李用霖)이 그린 것으로 청의 문인 오곤전(吳昆田)의 찬과 공헌이(孔憲彜)의 화상찬(畫像贊)이 있다.
▶음애집(陰崖集) | 이자(李耔, 1480~153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음애(陰崖) 이자(李耔, 1480~1533)의 문집이다. 사화(士禍)와 병란을 겪는 중에도 시(詩) 3,656수와 명(銘)ㆍ표(表)ㆍ부(賦)ㆍ사(辭)ㆍ전(傳)ㆍ기(記)ㆍ서(序)ㆍ설(說) 등 각 체의 글 74편이 남아 있었는데, 이 중에 가장(家藏)되어 오던 유고(遺稿)를 6대손 이도흥(李道興)과 족종손(族從孫) 영남백(嶺南伯) 이이장(李彝章)이 수록하고 제가의 문집ㆍ야승ㆍ패설 및 인가고첩(人家古帖)ㆍ충재일록(冲齋日錄) 등에서 채록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하고 새로 편집한 연보를 권수에 합하여 1754년(영조30)에 김재로(金在魯)의 서문(序文)을 받아 간행하였다. 문집은 연보ㆍ총목ㆍ본집 4권 합 2책으로, 권수는 김재로의 서와 6대손 이도흥이 편차한 연보와 총목이 있다. 권1은 시, 권2는 문, 권3은 일록ㆍ잡저, 권4는 부록이다. 각 권 앞에는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 박은(朴誾, 1479~15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 1479~1504)의 문집이다. 1514(중종9)에 친구 이행(李荇)이 남아 있는 시문 약간 편을 모아 편차하고 또 교유간(交遊間)에 흩어진 것을 합하여 1질로 엮어 간행하였으나 현재 전하지 않고, 1580(선조13)에 아들 박공량(朴公亮)이 원집에 빠진 글을 수습해 둔 것을 손자 박유(朴愈)와 박무(朴懋)가 ≪별고(別稿)≫라 하여 초간본과 합질, 상ㆍ하권으로 간행하고 심수경(沈守慶)에게 발문을 받았으며, 1651(효종2)에는 정두경(鄭斗卿) 등이 전라감사 심택(沈澤)에게 부탁하여 전주에서 중간하였고, 1709(숙종35)에는 유득일(兪得一)이 정홍좌(鄭弘佐)에게 부탁하여 2권 1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으며, 1795(정종19)에는 정조가 박공량이 편한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중에서 문집에 빠져 있는 것을 첨부ㆍ증보하여 간행하게 하였는데 권수에 심환지(沈煥之)가 쓴 정조의 어제서와 목록을 싣고 부록에 초ㆍ중간서 3편을 실었고, 1843(헌종9)에는 김학언(金學顏)이 충렬사에 소장되어 있던 삼간본의 완결된 곳을 보완하여 중인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합 2책이다.
▶응와집(凝窩集) | 이원조(李源祚, 1792~1871)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조카 진상(震相)이 수습 정리하여 문인 장복추(張福樞), 송인호(宋寅護), 허훈(許薰) 등과 선석암(禪石菴)에서 산삭 교정이 이루어진 다음, 진상의 아들 승희(承煕)가 중심이 되어 문인 김태응(金台應), 송인호 등과 다시 교열하고 12책으로 편차하여 1892년에 문집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2권 1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권2는 권1 후반부에 이어 특정 시기별로 묶은 탐라록 하(耽羅錄下), 패서록(浿西錄), 금강록(金剛錄), 월성록(月城錄), 포천록(布川錄) 등의 시록(詩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라록 하에는 귤을 읊은 시, 일본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사람에게 얻은 한유(韓愈)의 시집을 개장하고 지은 시, 체직되었을 때 지은 시 등이 있다. 패서록은 자산 부사 시절 지은 시다. 권11~12는 잡저(雜著)이다. 권11의 <산방우물록(山房寓物錄)>은 1859년 5월에 지은 것으로, 중국 및 우리나라의 학술과 관련하여 저자의 생각을 차록하였고, <양불동이고(洋佛同異考)>에서는 천주교와 불교의 동이를 논하였다.
▶응재집(凝齋集) | 이희지(李喜之, 1681~172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응재(凝齋) 이희지(李喜之, 1681~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문상(文祥)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776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외종제 조명정(趙明鼎)이 1776년에 쓴 서문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20세인 1700년부터 1722년 옥중에서 주고받은 시까지 수록되어 있다. 주로 수창한 대상은 외사촌형 이하곤(李夏坤), 외숙부, 김춘택(金春澤), 종제 기지(器之) 등이다. 권2는 문(文)이다. <제석자경문(除夕自警文)>은 1703년 세밑에 지난 생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어 지은 것이다. <여이형재대서(與李兄載大書)>는 문인화가이자 평론가인 이하곤에게 쓴 편지로 어린 딸의 죽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제문에는 조정위(趙正緯), 부인 유씨(兪氏) 등에 대한 것이 있고, <환문암중수권연문(煥文菴重修勸緣文)>은 부여 백마강 서쪽 나부산(羅浮山)에 있는 환문암의 중수를 촉구하는 글인데 이 환문암은 저자의 증조부 이경여(李敬輿)가 세운 월계암(月桂庵) 옛터에 있다.
▶의암집(毅菴集) | 유인석(柳麟錫, 1842~1915) | 권책수 : 29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의 문집이다. 중국 흥경현(興京縣) 평정산(平頂山)에 스승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문인들이 스승의 문집이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활자본으로 약간을 간행하여 나누어 소장하기로 하고 1916년 제자 이직신이 산정하였는데, 김두운(金斗運) 등 일부 문인들이 타국살이로 인하여 문집이 정밀하게 교정되지 못하고 부실하게 편차될 바에야 모든 글을 빠짐없이 수록하여 간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남아 있던 저자의 글을 모두 수록하고 인쇄하였다. 간역(刊役)은 1917년 관전현(寬甸縣) 철산사(鐵山社) 호구(虎溝)에 소재한 문인 백삼규(白三圭)의 집에서 이루어졌는데, 1918년 일본군이 난입하여 40여 질을 압수해 소각하였므로 현재 남아 전하는 문집이 매우 적다. 권1~3은 시(詩), 권4는 소(疏), 권5~26은 편지글, 권27~40은 잡저, 권41~45는 서(序), 기(記), 제발, 명(銘), 찬(贊), 송(頌), 격(檄), 상량문, 고축, 권46~50은 제문, 애사, 비(碑), 묘갈, 묘표, 묘지 등이고, 권51은 우주문답(宇宙問答), 권52~54는 도모편(道冒編)으로 미완성 저술이다.
▶이계집(尼溪集) | 박내오(朴來吾, 1713~178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계(尼溪) 박내오(朴來吾, 1713~1785)의 문집이다. 시문은 생전에 수차례 초고를 정리하여 성섭(成涉), 하일호(河一浩), 이우육(李宇錥), 박규순(朴奎淳)에게 서문을 받아두었고, 50세 이후에는 초년의 시문을 따로 모아 별록(別祿)을 엮는 등, 저자는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여 꾸준히 자편고를 만들어 두었다. 저자 사후 현손 규호(圭浩)가 유적을 정리하여 저자의 5대손 헌소(憲韶)의 주관 하에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2권 5책이다. 권수에는 신헌구(申獻求)와 박치복(朴致馥)이 1893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6은 서(序), 기(記)이다. 서는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신구도(天命新舊圖)>를 개선하고 그 경위를 기록한 것과 집안 선조들에 관한 기록을 모아 정리한 ≪밀성가장(密城家藏)≫이다. 권9는 별록(別錄)이다. 어린 시절에 지은 시문을 별도로 모은 것으로, 시(詩) 18제와 <장려미앙궁부(壯麗未央宮賦)>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말미에는 노년에 별록을 엮게 된 경위를 서술한 자전적 성격의 후서(後敍)가 있다. 권말에는 저자의 외예 김진호(金鎭祜)의 발(跋)이 있다.
▶이계집(伊溪集) | 남몽뢰(南夢賚, 1620~168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 1620~168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100여 년이 지나서야 증손 성천(聖天)과 현손 상의(象毅)가 유고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6권 3책으로 편차한 다음 이상정(李象靖)의 교감을 거쳐 1778년에 이상정의 서문을 받아 1820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3책과 속집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이상정이 1778년에 쓴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에는 부와 시, 권2에는 시와 습유로 수록된 시 1수가 있다. 권3은 소, 서(書), 잡저이고, 권4는 잡저와 서(序)이다. 권5~6은 기, 발, 명, 전(箋), 상량문, 제문, 묘표 등이다. 속집은 권수에 이가환(李家煥)이 쓴 서(序)가 있다. 권1에 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권2에는 저자의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친 장문의 <응지소(應旨疏)> 1편이 수록되어 있고, 김방걸(金邦杰), 손만웅(孫萬雄) 등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권3은 부록이다. 권말에는 속집 간행 과정과 참여 인원을 자세히 기록한 10세손 우룡(佑龍)의 속집발과 족후손 병두(炳斗)가 쓴 속집발이 수록되어 있고, 다음에 판권지가 있다.
▶이계집(耳溪集) | 홍양호(洪良浩, 1724~1802)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의 문집이다. 심육(沈錥)의 문인(門人)으로 신경준(申景濬), 신대우(申大羽), 이광려(李匡呂), 송재도(宋載道) 등과 교유하였다. 1794년 동지겸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로 연경(燕京)에 가서 예부 상서(禮部尙書) 기윤(紀昀)에게 시집(詩集)과 문집(文集) 각각의 서문(序文)을 받아온 것으로 보아 생전에 시문을 어느 정도 정리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1802년 손자 홍경모(洪敬謨)가 저자가 자편(自編)한 유고(遺稿) 18권에 다시 소차(疏箚), 비지(碑誌) 및 관각(館閣) 수응문자(酬應文字)를 더 정리해 넣어 총 38권으로 합편(合編)하고, 외집(外集) 12권을 교정(校訂)하여 선사(繕寫) 대교(對校)한 다음, 두계(荳溪) 박종훈(朴宗薰)과 족질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의 교정(校正)을 받고, 다시 1839년경 경수당(警修堂) 신위(申緯)에게 교정(校正)받은 다음 1843년 취진자(聚珍字)로 원집(原集) 38권, 외집(外集) 12권 합 50권 22책으로 간행하였다. 원집 38권, 외집 12권 합 22책으로, 권두에 기윤의 시집과 문집의 서문(序文) 2편이 있다.
▶이봉집(夷峯集) | 황후간(黃後榦, 1700~177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이봉(夷峯) 황우간(黃後榦, 1700~1773)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기재(基在)와 향생 조성렴(趙性濂) 등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76년 이돈우(李敦禹)의 교정을 받은 고본을, 저자의 현손 기우(基宇)와 종6대손 수청(洙淸) 등이 1909년 석현재(石峴齋)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 이돈우가 1876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전반부에는 오언시(五言詩), 후반부에는 칠언시(五言詩)가 실려 있는데 대체로 저작 연대에 따라 편차되어 있다. 권2~3은 서(書)이다. 스승, 동학, 문생과 학문적 견해를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며 대상인물의 연배와 중요성을 고려하여 편차되어 있다. 권4는 서(序), 기(記), 뇌사(誄詞), 제문(祭文)이고 권5는 잡저(雜著), 묘표(墓表), 가장(家狀), 행장(行狀), 유사(遺事)이다. 권6은 부록(附錄)으로 증언서(贈言序), 서(書), 문목(問目), 만사(輓詞), 제문(祭文) 등이고 권말에 조성렴(趙性濂)의 발(跋)과 장석영(張錫英), 현손 기우, 종6대손 수청이 1909년에 지은 발이 있다.
▶이안당집(易安堂集) | 조천경(趙天經, 1695~177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이안당(易安堂) 조천경(趙天經, 1695~17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술요(述堯)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강세백(姜世白)ㆍ이경유(李敬儒)의 교수를 받은 후, 후손 기평(基平)이 저자의 외증손 이병화(李秉樺)의 재교를 받은 고본을 1852년 이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강세백과 이경유(李敬儒)가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 구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평이하고 담박한 내용의 시가 주를 이루며 형제나 친인척, 가까운 지인들과 수창한 시가 많다. <추차안지평분황시운(追次安持平焚黃時韻)>은 무신년 난리 때 사재를 털어 군사를 도운 함안 사람 안성흥(安聖興)의 공을 기려 지은 것이다. 권3은 시(詩), 만(輓)이다. 그중에서 <봉완동사제강(奉翫東史提綱)>부터 <손순(孫順)>까지는 우리나라 사서(史書)를 읽고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 생각한 것을 정리한 시로, 역사적 배경, 사실 등에 대한 자세한 소주가 달려 있다. 권4는 서(書), 장(狀), 잡저, 서(序), 상량문, 제문, 애사, 부록이다. 권말에 외증손 이병화가 1852년에 쓴 발문이 있다.
▶이암유고(頤庵遺稿) | 송인(宋寅, 1517~158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이암(頤庵) 송인(宋寅, 1517~1584)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병화로 산일된 것을 손자 송기(宋圻)가 순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여 가장(家藏)하였으나 전해진 것이 없고, 선조 말에서 광해군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34(인조12) 증손 송희업(宋熙業)이 간성 군수(杆城郡守)로 나가 소실된 판각을 보각(補刻)하면서 이식(李植)과 장유(張維)의 서(序)를 받아 함께 실었다. 현재 전하는 판본은 12권의 속집과 별집, 부록과 부록보유까지 편차한데다, 잡기(雜記) 내용 중 후대 간행된 ≪혼정편록(混定編錄)≫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뒤에 증보가 행해졌음을 추측케 한다. 따라서 증보의 주체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누판고(鏤板考)≫나 이이명(李頤命)의 소장인(所藏印) 등으로 볼 때 숙종 연간에 중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집은 서ㆍ총목ㆍ원집 4권, 속집 4권, 별집 2권, 부록 2권, 후서(後敍) 합 4책으로, 권수에 장유의 서와 총목이 있다. 특히 저자가 금석문의 대가였음을 반증하듯이 저자가 쓴 비갈목록(碑碣目錄)과 목각서법목록(木刻書法目錄) 50여 개가 있고, 권미에는 이식의 후서가 있다.
▶이요정집(二樂亭集) | 신용개(申用漑, 1463~151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이요정(二樂亭) 신용개(申用漑, 1463~1519)의 문집이다. 아들 신한(申瀚)이 초고(草稿)를 거두어 가장(家藏)해 두었다가 1541년(중종36)에 숙부 신광한(申光漢)의 질정을 받아 간행한 초간본에 김안국(金安國)ㆍ심언광(沈彥光)의 서(序)와 신광한의 발문을 첨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고, 후손 신응구(申應榘)가 심열(沈悅)의 집에 보관된 1본을 선사(繕寫)하여 가장해 두었던 것을 1682년(숙종8)에 신응구의 손자 신익상(申翼相)이 전라감사로 나갔을 때 전주에서 15권 3책으로 간행하였으며, 이 중간본에 <습유(拾遺)>로 일시(逸詩) 2편과 신흠(申欽)이 지은 화상기(畫像記), 사록(史錄)에서 뽑은 유사(遺事)를 원집 부록 뒤에 붙이고 신익상의 발을 첨부하였다. 문집은 본집 15권ㆍ부록ㆍ습유 합 3책으로, 권수는 김안국(金安國)의 서(序)와 심언광(沈彥光)의 서가 있고, 권미엔 6대손 신익상의 발과 당제(堂弟) 신광한의 발이 있다.
▶이우당집(二憂堂集) | 조태채(趙泰采, 1660~172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이우당(二憂堂) 조태채(趙泰采, 1660~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문(序文)과 발(跋文)문이 없어 구체적인 수습 경위를 알 수 없지만 이재(李縡)의 신도비명(神道碑銘)에, 저자의 장남 군수(郡守) 조정빈(趙鼎彬)이 가장(家狀)을 찬차하여 중구 민진원(閔鎭遠)에게 묘문을 부탁했다고 하였으며, 이의현(李宜顯)의 묘표에는, 대사헌 조관빈(趙觀彬)의 부탁을 받고 짓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정빈과 조관빈 등에 의해서 시문(詩文)이 수습되어 1758년에 홍봉한(洪鳳漢)이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健命), 이이명(李頤命)의 문집과 함께 운각 활자(芸閣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문집은 6권 3책으로 서문과 발문은 없으며, 각 권의 권목록이 있다. 전체적으로 시(詩)와 소차 등 공거문(公車文)의 비중이 높고 편지나 문(文)이 없어 유고(遺稿)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거나 책정(冊定) 때 누락된 부분이 있는 듯하다. 권1에서 권2의 전반까지는 시(詩), 권2의 후반부터 권6의 전반까지는 소차(疏箚), 권6의 후반에는 계사(啓辭), 수의(收議), 치제문(致祭文), 교서(敎書), 불윤비답(不允批答), 묘표(墓表), 명(銘)이 있다.
▶이이엄집(而已广集) | 장혼(張混, 1759~1828)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이엄(而已广) 장혼(張混, 1759~1828)의 문집이다. 여항 시인(閭巷詩人)으로 교서관(校書館) 감인소(監印所)에서 교정(校正)을 보았으며 천수경(千壽慶), 왕태(王太), 윤제홍(尹濟弘)과 교유(交遊)하였다. 이이엄자(而已广字)라는 목활자(木活字)를 만들어 자신의 저술(著述)과 다른 여항문인(閭巷文人)들의 시문집(詩文集)을 인행(印行)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문집(文集)은 간행(刊行)하지 않아 간본(刊本)은 없고, 사본(寫本)만이 남아 있다. 30대에 자편고(自編稿)한 ≪이이자초(而已自艸)≫는 모두 4책으로 필사본(筆寫本)이고, 57세 때에 자편(自編)한 문집(文集)도 윤제홍(尹濟弘), 홍석주(洪奭周), 이서구(李書九)의 평(評)을 옮겨 적고 저자가 직접 선사(繕寫)하여 한 질을 만들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 만년(晩年)의 시문집(詩文集)인 ≪비단집(篚段集)≫ 20권 또한 전하지 않는다. 전하는 것은 다만 14권 8책의 괘인사본(罫印寫本)으로 간행(刊行)한 ≪이이엄집(而已广集)≫뿐이다. 본집(本集)은 14권 8책으로, 권1~10은 시(詩)이고 권11~14는 문(文)이며, 서(序), 발(跋), 목록(目錄)은 없다.
▶이재유고(頤齋遺藁) | 황윤석(黃胤錫, 1729~1791)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문집이다. 1821년 송헌진(宋獻鎭)이 찬한 행장에 ≪이수신편(理藪新編)≫, ≪산뢰잡고(山雷雜攷)≫ 등과 ≪난고(亂稿)≫ 100여 권 및 문집 수십 권 등이 거론되고 있고, 1824년 이서구(李書九)의 묘갈명에 ≪이재집(頤齋集)≫ 40권과 기타 찬록 십여 종이 가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황수경(黃秀瓊)은 송헌진(宋獻鎭)과 이서구에게 행장과 묘갈을 부탁하고, 조종영(趙鍾永), 조인영(趙寅永), 김매순(金邁淳) 등에게 질정하여 유고를 편차하였는데, 이때 김매순이 황수경에게 본집이 장차 대문헌이 될 것이니 서두르지 말고 진행하되 율력, 차주 등의 문자는 별집으로 만들라고 충고하였으며, 조인영도 역범주해(易範註解) 등의 글은 함부로 고증하기 어려우니 별집으로 간행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황수경은 시문 26권 13책으로 산정하여 1829년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조인영의 도움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고, 별집의 간행을 위해 유고의 일부를 다시 정리해둔 듯하나 재력 부족으로 이루지 못하였다. 본서는 26권 13책으로, 권수는 조인영의 서문이 있고, 권1~6은 시, 권6~26은 문이다.
▶이재집(頤齋集) | 조우인(曺友仁, 1561~162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이재(頤齋) 조우인(曺友仁, 1561~1625)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이식(李植)의 찬정(撰定)을 거친 고본(稿本)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은 없다. 권1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칠언배율(七言排律), 가사(歌詞)가 있는데, 이식(李植)의 주석(註釋)과 시평(詩評)이 곳곳에 실려 있다. 권2에는 소(疏), 갈명(碣銘), 서(書), 기(記), 설(說), 서(序), 지(志), 잡저(雜著), 인(引), 제문(祭文), 부(賦)가 있는데, 그중에서 <구언소(求言疏)>는 1600년에 재변으로 인한 구언(求言)의 하교(下敎)가 내리자 이에 응하여 지은 것으로 만언소(萬言疏)라고 불리는 장편(長篇)의 상소(上疏)이며, <대인문경청설관방소(代人聞慶請設關防疏)>는 왜란이 끝난 10여 년 뒤에 지은 것으로, 문경에 관방을 설치하여 왜적과 오랑캐에 대비할 것 등 국방 강화 대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재집(頤齋集) | 이의숙(李義肅, 1733~180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재(頤齋) 이의숙(李義肅, 1733~1805)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승연(承淵)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사위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김재삼(金在三)의 협조를 받아 1836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原集) 8권, 부록(附錄)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2의 목록은 권1 앞에, 권3~4의 목록은 권3 앞에, 권5~6의 목록은 권5 앞에, 권7~8의 목록은 권7 앞에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附錄)와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간혹 달려 있다. <납월여유호령지행……(臘月予有湖嶺之行……)>은 백형 상목(商穆)이 아산(牙山)을 거쳐 예천(醴泉)으로 가는 저자에게 지어준 시에 화답한 것이고, <필운대여하곡종씨……(弼雲臺與霞谷從氏……)>는 백종형 의호(義浩), 박지원(朴趾源) 등과 함께 필운대(弼雲臺)를 중심으로 노닐며 지은 것으로, 화창한 봄날의 경관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친우들과 만나 반가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권8은 잡저(雜著)이다. 권말에 종자 승연이 1836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이재집(頤齋集) | 권연하(權璉夏, 1813~1896)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1813~1896)의 문집이다. 저자가 만년에 평생 저술한 많은 시문을 직접 정리하고 저자 사후에 손자 상기(相耆)가 김흥락(金興洛)에게 행장(行狀)을, 이만도(李晩燾)에게 묘갈문(墓碣文)을 받아 유적(遺蹟)과 유문(遺文)을 정리하여 9책으로 산정 편차하였으며, 간역(刊役)은 족질 희연(煕淵)이 일을 주관하고 삼종손 상익(相益)이 원본을 선사(繕寫)하였다. 이후 저자의 문인 및 친족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1906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7권 9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9는 발(跋), 명(銘), 상량문(上樑文)이다. 권10은 애사(哀辭), 축문(祝文), 제문(祭文)이다. 1868년 문양리사(文陽里社)가 훼철될 때 이진철(李晉哲)과 이동완(李棟完)의 신위(神位)를 매판(埋版)하면서 올린 축문, 1868년 문산리사가 훼철될 때 홍우정(洪宇定)의 신위를 매판하면서 올린 고유문(告由文), 임천서원이 훼철될 때 이봉(移奉)하면서 올린 고유문, 삼계서원이 훼철될 때 신위를 매판하는 고유문이다. 권미(卷尾)에 저자의 손자 상기가 지은 발(跋)이 있다.
▶이참봉집(李參奉集) | 이광려(李匡呂, 1720~178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월암(月巖) 이광려(李匡呂, 1720~1783)의 문집이다. 저자는 이광사(李匡師)의 문인(門人)으로 강세황(姜世晃), 신대우(申大羽) 등과 교유(交遊)하였으며 소론(少論)계 강화학파(江華學派)이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인척인 이만수(李晚秀), 신대우(申大羽), 서영보(徐榮輔)와 족질 이충익(李忠翊)이 문집을 수습(收拾)하였으나 가장 유고(家藏遺稿)는 거의 없고 사후에 수습된 유문(遺文)을 대상으로 산정(刪定)하여 분량이 적다고 하였지만, 시(詩) 중에는 저자의 자주(自註)가 붙은 것도 종종 있는 걸로 보아 가장(家藏)된 유문(遺文)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듯하다. 게다가 본집의 이름을 특이하게 ≪이참봉집(李參奉集)≫으로 붙인 것은, 저자가 서문(西門) 밖 월암(月巖)에서 살아 남들이 ‘월암(月巖)’이라고 칭하였지 생전(生前)에 자호(自號)하질 않았기 때문에 일찍이 참봉(參奉)에 제수(除授)되었던 것을 빌미로 해서 ≪이참봉집(李參奉集)≫으로 제명하였다고 한다. 문집은 4권 2책으로, 시(詩) 2권, 문(文) 2권이고, 권두(卷頭)에 이만수(李晚秀), 신대우(申大羽)의 서문(序文)이 있으며,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 이순신(李舜臣, 1545~1598) | 권책수 : 8책 | 포갑수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문집이다. 문집은 정조(正祖)의 명을 받아 원임 직각(原任直閣) 윤행임(尹行恁)이 저자의 시문과 관계 기록을 수집, 편차하고 검서관(檢書官) 유득공(柳得恭)이 감인(監印)하여 예문관(藝文館)에서 1795년(정조19) 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중간본(重刊本)은 1918년에 최남선(崔南善)이 초간본에 구독(句讀)를 찍어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鉛活字)로 간행하고, 1921년에는 이관화(李觀化)가 경남 통영에서 역시 연활자로 간행하였으며, 1934년에는 서장양(徐長鍚)이 청주(淸州)에서 석판본(石板本) 16권 6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14권 8책으로, 권 머리에 윤음(綸音), 비명(碑銘), 권수(卷首)가 편차되어 있다. 권수는 교유(敎諭) 22편, 사제문(賜祭文) 13편, 도설(圖說) 9편과 세보(世譜), 연표(年表)가 실려 있다. 이 중 도설에는 중국 황제가 저자의 전공(戰功)을 찬양하여 내린 하사품과 거북선에 대한 그림과 해설이 실려 있다. 총 14권 가운데, 권1~8은 저자의 시문이고, 권9~14까지는 부록이며, 권말에 윤행임(尹行恁)의 발문이 있다.
▶이치재집(二恥齋集) | 신정모(申正模, 1691~174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강경훈(姜景勳)
조선 시대 이치재(二恥齋) 신정모(申正模, 1691~1742)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상헌(相憲)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김도화(金道和)의 교감을 받아 1899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이다. 권수에는 1898년에 지은 김도화의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부와 사는 1724년에 지은 <농은와사기정신상사(聾隱窩辭寄呈申上舍)>를 제외하면 모두 유배 중에 지은 것들이다. 시는 유배 이후에 지은 시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며, 유산시와 모친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시가 자주 보인다. 권2는 시(詩), 서(書)이고 권3은 서(書),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잠명, 설(說), 변(辨), 상량문이다. 그중에서 <이치재명(二恥齋銘)>은 저자가 자신에게 나라를 배반하여 충을 어기고 부모와 떨어져 효를 훼손하게 된 두 가지의 부끄러운 과오가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하여 유배소의 소재(小齋)를 ‘이치재’로 명명하고 그 경위를 기록한 글이다. 권4는 제문, 애사, 뇌문, 유장, 묘갈명이고 권5~6은 부록이다. 권말에는 종5대손 돈식(敦植)이 1899년에 지은 발이 있다.
▶이택재유고(麗澤齋遺稿) | 권재운(權載運, 1701~17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이택재(麗澤齋) 권재운(權載運, 1701~1778)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 권달시(權達時)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1787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서 저자의 아우 계운(啓運)의 ≪풍뢰헌유고(風雷軒遺稿)≫가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채제공(蔡濟恭)이 1786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작품에는 저자의 서재 이택재 인근에 있는 서소고(舒嘯皐), 척구류(滌垢流), 화원(花園), 죽계(竹階) 등의 경물을 읊은 연작시, 의성현(義城縣)으로 가는 여정과 풍경,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읊은 기행시 등이 있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서(序), 기(記), 제문(祭文), 설(說), 변(辨), 발(跋), 명(銘)이다. 권4는 잡저(雜著), 유묵(遺墨)이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행장,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전(傳), 만사(輓詞),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이밖에 권섭(權燮), 권만(權萬), 권치(權緻), 권정침(權正忱)이 저자에게 보낸 시와 김광헌(金光憲)의 <이택재유적후(麗澤齋遺蹟後)> 및 읍지인물조(邑誌人物條)가 실려 있다.
▶이평사집(李評事集) | 이목(李穆, 1471~149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한재(寒齋) 이목(李穆, 1471~1498)의 문집이다. 유문(遺文)은 무오사화 때 산실된 것을 아들 이세장(李世璋)이 시문을 수집ㆍ편차하고 손자 이철(李鐵)이 1585(선조18) 무송재(茂松宰)로 부임하여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고, 그 후 임진왜란으로 판목이 유실되고 전본(傳本) 또한 귀해지자 증손 이구징(李久澄)이 묘표와 보유를 첨입하여 1책으로 정사(精寫)한 후, 청송재(靑松宰)로 있던 1631(인조9)에 ≪이평사집(李評事集)≫으로 제명하여 목판으로 중간하였으며, 삼간은 후손 이존수(李存洙)ㆍ이응호(李膺浩) 등이 ≪한재집(寒齋集)≫으로 개제(改題)하여 1914년 목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시ㆍ문ㆍ부록 합 2권 1책으로, 권1에는 시, 권2에는 책문(策問)ㆍ기(記)ㆍ해(解)ㆍ제문ㆍ송(頌), 부록에는 김일손(金馹孫)의 <감구유부후서(感舊遊賦後序)>, 권오복(權五福)의 증시(贈詩), 이충(李种)의 만시(挽詩)에 이어 남곤(南袞)이 지은 <유자광전(柳子光傳)> 등을 싣고,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묘표음기(墓表陰記)>와 <보유>를 첨록하였다. 권말에는 이구징의 발이 있다.
▶이해학유서(李海鶴遺書) | 이기(李沂, 1848~190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시문집 ≪귀독오서집(歸讀吾書集)≫을 정리하고 1892년에 자서(自序)를 쓰고 이정직(李定稷)에게 <해학시문집서(海鶴詩文集序)>를 받은 것을, 사후 아들 이낙조(李樂祖)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한 시문을 문인 정인보(鄭寅普)에게 편차를 받고 서문과 묘지명을 지은 뒤 강동희(姜東曦)의 교정을 받아 12권 3책의 ≪이해학유서(李海鶴遺書)≫를 편찬하였으나 간행되지 못한 채 사본(寫本)으로 소장하고 있다가 김상기(金庠基)가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필사본 ≪이해학유서≫를 저본으로 삼아 표점과 두주 작업을 하고 강동희의 발문을 붙여 1955년에 한국사료총서 3집으로 ≪해학유서(海鶴遺書)≫를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서는 12권 3책으로, 권수는 정인보(鄭寅普)와 이정직(李定稷)의 서문과 이건창(李建昌)의 <질재기(質齋記)>, 황현(黃玹)의 제문, 황현과 김택영(金澤榮)의 애도시, 정인보의 묘지명 및 목록이 있다. 권1은 전제망언(田制妄言)으로 척량설(尺量說)이 부기되었고, 권2는 급무팔제의(急務八制議), 권3~12는 문록으로 문(文), 부(賦), 시(詩)가 실려 있다.
▶이호유고(梨湖遺稿) | 김시탁(金時鐸, 1713~175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이호(梨湖) 김시탁(金時鐸, 1713~175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허증(許增) 등의 문인들이 언행록을 작성하고 박성원(朴聖源)에게 행장을, 김원행(金元行)에게 묘갈명을 위촉하여 유적을 수집ㆍ편차하여 1771년경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1책이다. 권수에는 이의철(李宜哲)이 1771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그중 이재에게 보낸 것이 16편으로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작성 시기는 1736~1743년이며 심설(心說), 의례, 경서 구절의 해석, 과거와 학문의 모순, 개성에서의 강학 활동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권2는 잡저이다. <참전지결(參前旨訣)>은 규모(規模), 계제(階梯) 등의 주제로 경훈(經訓) 중에서 요어(要語)를 취하여 엮은 것이며, <인론(人論)>은 유학적 관점에서 인간됨의 의미와 근거에 대해 논구한 것이다. <천상일기(泉上日記)>는 1732년, 1734년, 1736년, 1740년 한천(寒泉)의 이재 문하에서 수학할 때 받았던 가르침을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다. 말미에 찬정(纂定)의 동기와 원칙을 기술한 허증의 발(跋)이 있다.
▶익재난고(益齋亂藁) | 이제현(李齊賢, 1287~136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문집이다. 생전에 아들 이창로(李彰路)와 장손 이보림(李寶林)이 수집ㆍ편차하고 이색(李穡)의 서(序)를 받아 1363년(공민왕12)에 처음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고, 중간은 1432년(세종14) 세종(世宗)의 명에 의하여 ≪역옹패설(櫟翁稗說)≫과 함께 간행, 3간은 1600년(선조33)에 후손 이시발(李時發)이 ≪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 ≪櫟翁稗說≫ 4권과 이광윤(李光胤)의 가장본 ≪효행록(孝行錄)≫ 1권까지 함께 간행, 4간은 1693년(숙종19)에 이세석(李世碩)이 찬한 연보(年譜)를 붙여, 허영(許穎)이 목판(木板)으로 간행, 5간은 1698년(숙종24)에 이인엽(李寅燁)이 간행하였는데 권말에 이원(李黿)의 ≪재사당산고(再思堂散藁)≫가 부집(附集)되었으며, 6간은 1814년(순조14) 연보(年譜)에 사실(事實)을 추가하고 습유(拾遺)를 첨록(添錄)하여 보판(補板) 간행하였고, 7간은 1923년에는 하겸진(河謙鎭)의 서(序)를 받아 연활자(鉛活字)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10권 3책이다.
▶인산집(仁山集) | 소휘면(蘇輝冕, 1814~1889)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1814~1889)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遺文)은 손자 진형(鎭衡)이 여러 문인들과 함께 수습하여 가장(家藏)하고 있다가 이후 목활자(木活字)로 인행(印行)되었으나, 전본(傳本)에 서문과 발문이 없어 인행시기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본집(本集)은 17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이 있고, 책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으며, 편자주(編者註)가 있다. 주로 차운시(次韻詩)이다. 권2~12는 서(書)로, 성리설과 상장제례(喪葬祭禮)에 관한 문답이 주된 내용이다. 권15는 제문(祭文), 비(碑),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행장(行狀), 행록(行錄), 전(傳)이다. 전은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제원우(濟源郵) 전투에서 우리(郵吏) 이광석(李光碩)과 함께 순절한 조연(趙淵), 조헌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청주(淸州) 상당산성(上黨山城) 전투에서 순국한 박천붕(朴天鵬)에 대한 것이다. 권17은 손자 진형이 지은 가장(家狀), 문인 권헌수가 지은 묘표, 문인 이사희가 지은 유사(遺事)가 있다.
▶인재유고(麟齋遺稿) | 이종학(李種學, 1361~139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인재(麟齋) 이종학(李種學, 1361~1392)의 문집이다. 정몽주가 피살된 후,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가 함창(咸昌)에 유배되고, 장사현(長沙縣)으로 이배(移配)되던 중 손흥종(孫興宗)에 의해 무촌역(茂村驛)에서 교살 당하였다. 유고는 정리되지 못한 채 약간의 편만이 후손 가에 전해져 오던 것을, 1519년(중종14) 5대손 이자(李耔)가 우상(右相) 이유청(李惟淸)의 집에서 얻고는 직접 편집하고 선사(繕寫)하여 1책(冊)으로 만들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노수신(盧守愼)이 입수(入手)하여 가장(家藏)하였다. 이에 10대손 공산 현감(公山縣監) 이태연(李泰淵)이 우연히 노준명(盧峻命)에게 이자의 선사본(繕寫本)을 얻어 1650년(효종1) 불분권(不分卷) 1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불분권 1책의 시집(詩集)으로, 남행록(南行錄)ㆍ관동록(關東錄)ㆍ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ㆍ부록ㆍ발로 구성되었고, 권미는 이자의 발과 박상(朴祥)의 발 및 10대손 이태연의 발이 있다.
▶인재집(寅齋集) | 신개(申槩, 1374~144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인재(寅齋) 신개(申槩, 1374~1446)의 문집이다. 후손 신현국(申鉉國)ㆍ신우균(申佑均) 등이 ≪동문선≫과 ≪승정원일기≫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수집한 후, 가장(家藏)하고 있던 연보ㆍ묘갈을 붙여 4권 2책으로 편차하여 간행한 초간본으로, 소ㆍ계ㆍ전은 ≪정원일기≫에서, 시ㆍ서ㆍ기는 ≪문선≫에서 뽑은 것을, 후손 신재희(申在熙)ㆍ신창균(申漲均) 등이 1929년 문경(聞慶) 상강정(上江亭)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3권ㆍ부록 1권 합 2책으로, 권수는 목록과 유묵, 권1은 시, 기, 소로 ≪동국여지승람≫ㆍ≪동문선≫ 및 역사서에서 채록한 것이고, 권2는 소와 전, 권3은 계와 문, 잡저, 권4는 부록으로 연보, 정원일기, 사제문, 사전(史傳)과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명, 1745년(영조21) 후손 신종하(申宗夏)가 지은 <자손록(子孫錄)>, 9대손 신확(申瓁)이 지은 묘표, 신익성(申翊聖)이 지은 <서양졸당후기(書養拙堂後記)>가 있다. 권미는 후손 신현국의 발문이 있다.
▶인재집(忍齋集) | 홍섬(洪暹, 1504~158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인재(忍齋) 홍섬(洪暹, 1504~1585)의 문집이다. 증손 홍석(洪錫)이 수집, 편차하여 3책으로 만들고, 송시열(宋時烈)이 산정(刪定)하여 1668(현종9)년에 서문(序文)을 지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외속(外屬) 전라도 관찰사 박경후(朴慶後)가 홍석의 고본(稿本)을 가지고 송시열의 서문을 뺀 채 1693년(숙종19) 전주에서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으며, 1712년(숙종38)에는 홍석의 손자 옥과 현감 홍가상(洪可相)이 송시열의 서문만을 추각(追刻)하고 자신의 서문을 붙여 ≪추각초간본≫을 간행하였고, 1935년에 후손 홍병후(洪昺厚), 홍사철(洪思哲) 등이 중종, 인종, 명종, 선조의 실록 중에서 저자의 관력 및 소차 등을 발췌하고, 원집(原集)에 없는 글을 보입(補入)하여 석인본(石印本) 3책으로 중간하였다. 문집은 목록(目錄), 원집 4권 4책으로, 권수는 송시열의 서와 홍가상의 지(識) 및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권2~3은 비지(碑誌), 권4는 잡저(雜著)와 구퇴록(求退錄) 및 부록(附錄)이 있다.
▶인재집(訒齋集) | 최현(崔晛, 1563~1640)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인재(訒齋) 최현(崔晛, 1563~1640)의 문집이다. 유고는 가화(家禍)로 산일되고 수고(手稿)도 화재로 소실되어 족손(族孫) 최상건(崔象乾)ㆍ최두남(崔斗南)이 대를 이어 유고를 모았으나 책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5대손 최수이(崔壽頤) 등이 여러 일가에 소장된 유고를 모은 초고로 성편(成編)한 다음, 권두인(權斗寅)과 권두경(權斗經)의 교정을 받아 권두인에게 묘갈명(墓碣銘)을, 권두경에게 발문을 받았으나 서문을 잃어버려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이후 6대손 최광벽(崔光璧)이 정고본(定稿本)을 바탕으로 정사(淨寫)하여 이상정(李象靖), 채제공(蔡濟恭), 정범조(丁範祖)에게 질정을 받은 후, 이상정(李象靖)에게 행장(行狀)을, 채제공에게 신도비명(神道碑銘)과 서문(序文)을 받고, 정범조(丁範祖)에게 묘지명(墓誌銘)과 서문(序文)을 받고, 최종적으로 편차를 마쳐 원집 13권, 별집 2권, 습유(拾遺) 1권, 연보 1권, 부록 1권 합 18권으로 1778년(정조2)에 삼치당(三治堂)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原集) 13권, 별집 2권 습유, 연보, 부록으로, 권수에 정범조의 서(序)와 채제공의 서가 있다.
▶일두집(一蠹集) | 정여창(鄭汝昌, 1450~15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문집이다. 저자가 저술한 <용학주소(庸學註疏)>, <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 등을 무오사화 때 부인이 소각해 버린 후, 선조의 명으로 기묘명현(己卯名賢)을 추장(推獎)하기 위해 행적과 시문을 모으도록 하였지만, 자료의 유실로 수습하지 못하다가, 정구(鄭逑)가 관계 기록을 수습 편차하고, 장현광(張顯光)의 발을 붙여 함양 유생들이 ≪문헌공실기(文獻公實紀)≫ 1책을 간행하고 판본을 남계서원에 소장한 다음, 이재(李縡)의 수정(修正)을 받아 중간하였으며, 1919년 남계서원 원유들이 유루(遺漏)된 시문과 제현찬술을 찾아 모으고 세계원류(世系源流) 및 사우문인록(師友門人錄)을 더한 것에 후손 정환주(鄭煥周)의 수집본과 서로 검정하여 시ㆍ서ㆍ잡저ㆍ행장을 1권에 수록하고 부록을 덧붙여 속집(續集)을 만들고 전우(田愚)의 교감을 받아 총 7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유집(遺集) 3권ㆍ속집 4권 합 2책으로, 유집은 권수에 범례와 목록이 있다. 권1에 시, 권2~3은 부록, 속집은 권수에 목록이 있고, 권1은 시와 편지글, 잡저와 행장, 권2 이하는 부록이고, 권미는 전우의 발이 있다.
▶일봉집(一峯集) | 조현기(趙顯期, 1634~1685)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일봉(一峯) 조현기(趙顯期, 1634~168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제4자 정강(正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회덕 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1717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저자의 윤자 정위(正緯)의 일묵헌유고(一默軒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9권, 별집 상ㆍ하 2권 합 6책으로 권두에 김창흡(金昌翕)이 1717년에 쓴 서, 김진표(金震標)가 1663년에 쓴 서, 저자 자신이 1663년에 쓴 자서가 있다. 원집 권1~2는 시이다. 시는 주로 스승인 신최(申最)와 동문이며 친우인 심기(沈機), 김석주(金錫胄) 등과 수창한 것이 많다. 1648년 안변부를 유람할 때 지은 시들이 여러 편 있고, 1657년과 1658년에 조광조(趙光祖)와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도봉서원에 가서 머무르며 지은 작품도 여러 편 있다. 권3은 록(錄), 명, 서(書), 서(序), 잡저이고 권4는 제문, 소, 논이다. 권5~7은 행장이고, 권8~9는 봉사이다. 별집 상은 집책(執策)으로 고관의 문책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기술한 것이고, 별집 하는 사서의해(四書疑解)로 사서 중의 의문처에 대한 해석을 문답식으로 풀이한 것이다.
▶일송집(一松集) | 심희수(沈喜壽, 1548~162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 1548~1622)의 문집이다. 문집의 편찬과 간행은 경위를 밝혀 주는 자료가 없어 확실히 알 수 없고,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일송침상국문집서(一松沈相國文集序)>에, “공(公)을 곡(哭)한 지 28년이 지났는데 공의 손자 심유행(沈儒行)이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는 글로 보아, 1649년(인조27)경에 심유행이 문집을 간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유고는 별도로 편집되어 사본으로 남아 있다가 후에 앞의 원집과 합쳐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집은 원집 8권, 유고 합 5책으로, 서발(序跋)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 없이 저자의 시문만 실려 있다. 원집의 권1~4는 시이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 등이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칠언율시가 특히 많고 각 체 내의 편차 원칙은 불분명하다. 권5~7은 차(箚)와 의(議)이다. 권8은 제문 및 묘도문자이다. 유고에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고, 잡저(雜著) 2편이 실려 있다. 시는 원집과 유사한 구성과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일암유고(一庵遺稿) | 윤동원(尹東源, 1685~174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암(一庵) 윤동원(尹東源, 1685~174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윤광집(尹光緝)과 손자 윤홍기(尹弘基)가 수집하고 정리하였으나 1761년 윤광집이 사망하고 이듬해 윤홍기마저 사망하자 문집 간행은 윤광소(尹光紹)의 몫으로 남겨지나, 1749년 ≪명재선생연보(明齋先生年譜)≫ 간행(刊行), 1757년 ≪파평세보(坡平世譜)≫ 증수(增修), 1775년 ≪가례원류(家禮源流)≫ 수윤(修潤), 1776년 ≪명재선생언행록(明齋先生言行錄)≫ 편차(編次), 1778년 ≪명재유고(明齋遺稿)≫ 중편(重編), 1779년 ≪명재선생언행록(明齋先生言行錄)≫ 간행(刊行) 등 일가의 문집 간행으로 저자의 문집을 간행하지 못한 것을 1786년 이후에 6권 2책의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권수(卷首)에 총목(總目)만 있고,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은 소(疏), 권2는 편지글과 잡저, 권2 뒷부분~권4는 묘지갈명(墓誌碣銘), 가장, 행장, 권5~6은 부록으로, 권5에 윤광집의 연보, 권6엔 윤광소의 묘표음기, 이양원(李養源)의 행장 및 심육(沈錥), 조현명(趙顯命), 이철보(李喆輔), 이양원(李養源) 등의 제문이 있다.
▶일암집(一庵集) | 신몽삼(辛夢參, 1648~171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암(一庵) 신몽삼(辛夢參, 1648~171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족후손 신자순(辛子順)과 손자 신필전(辛必㙉), 증손 신덕종(辛德鍾) 등이 수습(收拾)하고 이광정(李光庭)이 편정(編定)하였는데, 시문을 편정한 시기는 1755년경이다. 원집(原集)의 편정이 끝난 뒤 신덕종은 이광정에게 행장(行狀)을 받고 이상정(李象靖)에게 서문(序文)을 받았으나 간행(刊行)되지 못하고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1865년경에 후손들에 의해 인행(印行)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권두에 이상정의 서문과 총목록이 있고, 권1은 시(詩), 권2~3은 편지글, 권4~5는 답문(家藏), 권6은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잠명(箴銘), 상량문(上樑文), 권7은 축문(祝文), 제문(祝文), 행록(行錄), 부록(附錄)에는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이광정의 행장(行狀), 이상정(李象靖)의 묘갈명(墓碣銘), 유치명(柳致明)의 상향축문(常享祝文), 유치호(柳致皜)의 봉안문(奉安文), 이휘준(李彙濬)의 상량문(上樑文) 등이 있으며, 권미(卷尾)에는 이원조(李源祚)의 발문(跋文)이 있다.
▶일암집(一菴集) | 이기지(李器之, 1690~172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일암(一菴) 이기지(李器之, 1690~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봉상(鳳祥)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저자의 우인 김신겸(金信謙)의 산정ㆍ편차를 받은 고본을, 부제학 조영순(趙榮順)이 1768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1책이다. 권수에는 김원행(金元行)이 1768년에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1711년부터 1722년까지의 작품들이 저작 연도순으로 시체 구분 없이 편차되어 있는데, 1720년의 시들은 부친을 따라 연경에 다녀오는 여정에서 겪은 일들을 소재로 지은 것이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제문, 애사, 고문이다. 서(書)는 청나라 한림검토 진법과 이양신(李亮臣)에게 보낸 것이다. 기는 연경에 다녀오며 지은 것들로서, 의무려산(醫巫閭山), 경도(瓊島) 등을 유람한 기록, 천주당을 방문했을 때 서양화를 보고 그 모습을 상세히 기술한 <서양화기(西洋畫記)>, 천주당에서 혼천의를 보고 지은 <혼의기(渾儀記)>가 포함되어 있다. 부록에는 김신겸이 지은 묘표가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 장남 봉상이 1768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일엄유고(一广遺稿) | 김상일(金相日, 1756~182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엄(一广) 김상일(金相日, 1756~1822)의 원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아들 숙(肅/心)은 저자의 묘갈문(墓碣文)을 직접 찬(撰)하고 저자가 성현서(聖賢書)와 성리등편(性理等篇)에서 요의(要義)를 취하고 의견을 더하여 지은 ≪문견록(聞見錄)≫과 평소에 지은 시문(詩文)을 합하여 이를 ≪농수일득(聾叟一得)≫ 4책으로 엮었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이후 손자 재직(在直)이 1852년 무렵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煕)에게 산정(刪定)을 받아 3권 2책으로 편차한 뒤 ≪일엄유고(一广遺稿)≫란 이름을 붙이고 아들 숙의 유고 ≪소안재유고(小安齋遺稿)≫를 더하여 1853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本集)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총목(總目)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일부 글에는 편찬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교감기(校勘記)가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권3은 서(序), 기(記), 발(跋), 설(說), 잠(箴), 명(銘), 제문(祭文), 잡저(雜著)이다. 권미(卷尾)에는 송내희가 1852년 손자 재직에게 보낸 편지를 절록(節錄)한 형식의 발(跋)과 재직이 185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일옹집(逸翁集) | 최희량(崔希亮, 1560~165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일옹(逸翁) 최희량(崔希亮, 1560~165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화(兵禍)에 산일되었는데, 5대손 제동(齊東)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장헌주(張憲周)의 교정을 거쳐 1846년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31년에 지은 오치우(吳致愚)의 서문과 1846년에 지은 장헌주(張憲周)의 서문이 실려 있고, 이어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절구(七言絶句)와 잡저(雜著) 6편이 실려 있다. 잡저 중에서<비은정기(費隱亭記)>는 저자가 은거한 나주(羅州)의 금성산(錦城山)의 남쪽 자락 대박산(大朴山) 아래 삼주(三洲) 가에 세운 비은정의 기문으로, 이곳의 지리적 위치와 주위 경관, 유유자적한 저자의 삶 등에 대해 기술하였다. 권2는 부록이다. 연보(年譜) 형식을 취하여 생년 기사부터 1774년 병조 판서에 추증된 기사까지 수록한 유사(遺事)와 행록(行錄), 신도비명(神道碑銘), 시장(諡狀)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 1773년에 지은 안치택(安致宅)의 후서와 1846년에 5대손 최제동(崔齊東)이 지은 후지(後識)가 있다.
▶일재집(一齋集) | 이항(李恒, 1499~157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의 문집이다. 5세손 이성익(李星益)이 임진왜란 때 누실(漏失)된 유고(遺稿)를 수습하고 종인(宗人) 이준구(李俊耈)가 박세채(朴世采)의 교정과 서문(序文)을 받아 1673(현종14) 1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고, 이성익의 손자 이수(李邃)가 여러 문집을 참고하고 장로(長老)에게 유전(流傳)되는 글을 모아 <유사(遺事)> 약간 편으로 속록(續錄)을 만들고 여기에 <남고서원사액제문(南皐書院賜額祭文)>과 <일재선생유허비후지(一齋先生遺墟碑後誌)>를 추보(追補)하고 조정(趙정(日+政))에게 속록발(續錄跋)을 받아 1759(영조35) 원집과 함께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으며, 9세손 이동협(李東莢)이 여러 문헌을 참고하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1887(고종24)에 1권 1책의 목활자로 전주에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原集)과 속록(續錄)으로, 박세채의 서(序)ㆍ시(詩)ㆍ서(書)ㆍ잡저(雜著)ㆍ부록(附錄)ㆍ송시열(宋時烈)의 발(跋)로 구성된 원집(原集)과, 유사(遺事)ㆍ사액제문(賜額祭文)ㆍ유허비후지(遺墟碑後誌)ㆍ조정의 발로 구성된 속록이 합쳐진 불분권(不分卷) 1책이다.
▶일포집(逸圃集) | 박시원(朴時源, 1764~184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일포(逸圃) 박시원(朴時源, 1764~1842)의 문집이다. 아들 종교(宗喬)가 지은 가장을 바탕으로 유치명(柳致明)에게 행장을, 강필효(姜必孝)에게 묘갈명을 받아 저자의 유적을 정리하였다. 이후 영천의 사림들이 유문을 부집(裒輯)하고 이휘녕(李彙寧)의 발문을 받아 문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5는 설(說), 전(傳), 뇌사(誄辭), 축문이다. 설 중에서 <사군물기설(事君勿欺說)>은 1798년 초에 경연을 마친 뒤 정조가 지은 부(賦)가 몇 편이나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500여 편을 지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는데, 보름 후에 과거 합격으로 사은했을 때 정조가 이를 기억했던 일을 서술하였다. 전 중 <체상여인전(髢商女人傳)>은 가난한 가발 장수 여인이 길가에서 명주를 주어 주인을 찾아주고는 반반씩 나누어 갖자는 제안도 거절했다는 얘기를 듣고 쓴 것이다. <열부유인송씨전(烈婦孺人宋氏傳)>은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병으로 먼저 죽자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에 자결한 열부 이동욱(李東煜)의 처에 관한 것이다. 권말에는 이휘녕이 지은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임곡집(林谷集) | 임진부(林眞怤, 1586~165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주석(柱奭)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29년 유심춘(柳尋春)의 교감을 거쳐 완성한 선사본을, 주석의 아들 호원(灝源)과 8대손 수계(秀桂)가 1834년 대전서숙(大田書塾)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세계도(世系圖), 연보(年譜), 원집(原集) 8권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유심춘(柳尋春)이 1829년에 지은 서(序)와 세계도, 연보와 차남 여백(汝栢)이 쓴 연보 발(跋), 목록(目錄)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증시(贈詩)와 차운시(次韻詩)가 많은 편이며, 권4는 서(書)로서 정온, 이원익 등 26인과 주고받은 것으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5는 서(序), 기(記), 빌(跋), 설(說)이고 권6은 잡저와 제문(祭文)이다. 그중에서 잡저의 <서상록(西上錄)>은 1635년 12월 대군사부에 제수되자 정온을 따라 상경하여 이듬해 1월에 사직하고 귀향한 여정을 간략하게 기술한 것이다. 권7은 갈명, 행장, 전(傳), 행장이고 권8은 예략(禮略)과 후집이다. 권말에는 1834년에 7대손 호원이 쓴 지(識)가 있다.
▶임당유고(林塘遺稿) | 정유길(鄭惟吉, 1515~158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 1515~1588)의 문집이다. 시문이 많았으나 두 차례의 왜란으로 대부분 산일된 것을 아들 정창연(鄭昌衍)이 잔고(殘稿)를 바탕으로 유고(遺稿)를 수집하고, 1621(광해군13) 외손(外孫) 김상용(金尙容), 김상헌(金尙憲)이 선사(繕寫)하여 책을 만들어 1622(광해군14) 신흠(申欽)의 서문(序文)까지 받았으나 간행하지 못하다가 증손(曾孫) 정태화(鄭太和)가 1637(인조15)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부친 정광성(鄭廣成)의 유지를 받들어 위의 선사본(繕寫本)에다 1632년 이후 만들어진 세계(世系)와 연보(年譜)를 앞에 실어 1638(인조38) 2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연보와 원집(原集) 상하 2권 합 2책으로, 권수에 신흠의 서문과 외손 김상헌의 지(識) 및 세계와 연보가 있고, 상하 2권에는 시(詩)가 대부분이고, 문(文)에는 ≪황화집(皇華集)≫의 서문(序文)을 비롯하여 응제(應製)한 서(序)ㆍ발문(跋文), 묘갈명(墓碣銘) 등이 있으며, 권미에는 증손 정태화의 초간 발문이 있다.
▶임백호집(林白湖集) | 임제(林悌, 1549~158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의 문신이다. 시문은 1607년(선조40) 동생 문화공(文化公) 임환(林懽)이 수집하여 이항복(李恒福)에게 편차와 서를 부탁한지 얼마 안 돼 문화공이 졸하여 간행되지 못하고, 1617년(광해군9) 종제(從弟) 임서(林㥠)가 함양(咸陽) 군수(郡守)로 재임 시 이항복이 산정(刪定)한 시집을 보충하여 목판본 4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이 후 임서의 현손 임상원(林象元)이 1759년(영조35) 영광(靈光) 군수 재임 시 저자의 6대손 임광원(林匡遠)의 집에 소장된 장판(藏板)을 가져다가 간행하면서 임상원은 저자의 작품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부록으로 첨부하였으며 자신의 발을 권말에 붙였다. <원생몽유록>은 한문소설로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숙종도 열람하고서 묵인하였다고 한다. 한문소설 중 ≪몽유록(夢遊錄)≫ 계통의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저자의 시문으로 권1~3에는 시, 권4에는 문이 있고, 권수에는 신흠(申欽)의 서(序)와 이항복이 초고를 편차한 뒤 지은 서가 있는데 이 글은 앞뒤가 없어진 결문이다. 이어 총목이 있다.
▶임여재집(臨汝齋集) | 유규(柳, 1730~180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임여재(臨汝齋) 유규(柳, 1730~1808)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 사후 손 운조(雲祚)와 학조(鶴祚), 유태좌(柳台佐) 등이 소실되고 남은 가장(家藏) 유문(遺文)을 수습(收拾)하여 편차(編次)하고 이희발(李羲發)의 교정을 거쳐 1849년 이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서(本書)는 9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卷頭)에 1841년 이희발이 지은 서문(序文)과 총목록(總目錄)이 실려 있다. 권3은 편지글로, 이만운(李萬運)과의 편지는 ≪계몽전의(啓蒙傳疑)≫에 나오는 주학(籌學)에 대한 자세한 해설법(解說法)이 실려 있고, 이인행(李仁行)에게 보낸 편지에도 승제법(乘除法)이나 양전법(量田法), 기삼백(朞三百)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어 저자가 산율(算律)과 성력(星曆)에 정통했다는 평을 증명해준다.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옹호하는 의리를 천명하는 영남 유생(嶺南儒生) 연명소(聯名疏)를 올리는 일에 대한 논의는 유일춘과 아우 유미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권9는 부록(附錄)으로 유태좌의 행장(行狀), 홍명주(洪命周)의 묘갈명(墓碣銘), 정홍경(鄭鴻慶)의 묘지명(墓誌銘)이 있다.
▶임연재집(臨淵齋集) | 배삼익(裵三益, 1534~158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1534~15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배용길(裵龍吉)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가장을 짓고 유성룡(柳成龍)에게 신도비명을 청하였으나 유고를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9대손 배한주(裵翰周)가 배용길이 편차한 고본을 가지고 유치명(柳致明)의 서문을 받아 185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수에 1855년 유치명이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이며, 차운시와 증시가 대부분이다. 권3은 시와 소(疏), 계사, 정문이며 특히 시는 사행(使行) 때의 시를 모아둔 것이다. 권4는 서(書), 명(銘), 전(箋), 축제문, 갈지, 조천록(朝天錄)이다. 서는 김성일(金誠一), 권호문(權好文) 등 지인들과의 문안 편지이며, 아들 배용길에게 보낸 것에는 학업에 매진하기를 당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권5~6은 부록으로 연보, 어찰, 유지, 교서, 조천별장(朝天別章), 사제문, 제문이 있고, 아들 배용길이 지은 가장과 유성룡이 1596년에 지은 신도비명,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묘지명, 계문제자록(溪門諸子錄) 등이 공신 추록을 청하는 계(啓)가 실려 있다.
▶임재집(臨齋集) | 서찬규(徐贊奎, 1825~1905)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문인 이화상(李華祥)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1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권수(卷首)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서문을 수록하고, 부록에 손자 갑수(甲洙)의 가장(家狀)을 추가한 목판본은 1931년에 신현구(申鉉求) 등이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의 임연당(臨淵堂)에서 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집은 17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0~11은 잡저이다. <교성보의(嶠省堡議)>는 1875년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방어책을 논한 것으로 자수자강(自守自强)과 산성(山城)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필(謾筆)>은 천지조화를 이루는 이기론(理氣論)을 논한 것으로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의 주(主)가 된다고 설명하고 서교(西敎)를 비판하고 위정벽이(衛正闢異)가 급선무임을 역설하였다. <잡기(雜記)>는 군자의 학문, 입지, 용심 등 여러 가지 학문,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글이다. 권미에 문인 이화상가 190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임호집(林湖集) | 박수검(朴守儉, 1629~169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 1629~1698)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양후(良垕)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현손 상순(尙淳)ㆍ문순(文淳)이 1812년 제천 광암(堤川廣巖)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810년에 김선(金銑)과 1805년에 강화석(姜華錫)이 지은 서(序)와 연보, 차남 양후가 지은 행장초가 있다. 권1~4는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으며 두보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고 이일경(李一卿), 이봉령(李鳳齡), 강재망(姜宰望) 등과 교유한 시 등이 있으며, 자주를 달았다. 권5는 주(奏), 표(表), 전(箋), 문(文), 잡저이다. 이영선(李榮先), 곽세익(郭世翼) 등을 추도한 제문, 의림지 동쪽의 우륵이 살았다는 옛 터에 우륵당을 중건하고자 1691년에 쓴 <우륵당중건권유문(于勒堂重建勸諭文)>, 이봉(李逢)의 시집과 곽세익의 <자경편(自警篇)>에 부친 서문 등이 있다. 권6은 서(序), 비명, 기, 서(書)와 책문이다. 권말에는 1812년에 현손 상순이 쓴 발과 “제천북광암개간(堤川北廣巖開刊)”의 간기(刊記)가 있다.
▶입암집(立巖集) | 민제인(閔齊仁, 1493~154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고려대학교
조선 시대 입암(立巖) 민제인(閔齊仁, 1493~1549)의 문집이다. 시문은 아들 민사안(閔思安)이 안정 현령(安定縣令)으로 있을 때 손자 민여경(閔汝慶)이 편차하여 간행하였으나 임진왜란 시 없어진 것을, 손자 민여임(閔汝任)이 본집 6권에 유근(柳根)의 서와 민여임의 발을 실어 간행하였으며, 6대손 민진후(閔鎭厚)는 시문을 수합ㆍ채록하여 <보유(補遺)>로 편집하였으며, 1736(영조12) 7대손 민응수(閔應洙)가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구판(舊板)을 보각(補刻)과 함께 당숙 민진후가 편집한 보유를 교수하여 부록 아래에 계간하고 보유 뒤에 민응수의 발문을 실었는데, 대구 용연사에 보관하던 판목이 훼손되자 12대손 민영휘(閔泳徽)가 1926년 족숙 민달호(閔達鎬)와 함께 보각 후쇄하면서 <추보(追補)>라 하고, 끝에 민영휘가 지은 중간서와 14대손 민병승(閔丙承)ㆍ11대손 민달호가 지은 발문을 실었다. 문집은 본집 6권 3책과 부록ㆍ보유ㆍ추보 1책으로, 권수에 유근의 서, 권1~5까지는 시, 부록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신도비명과 민시중(閔蓍重)의 발, 보유와 추보가 있다.
▶입재유고(立齋遺稿) | 강재항(姜再恒, 1689~1756)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입재(立齋) 강재항(姜再恒, 1689~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강택일(姜宅一)의 가장에 유집 및 동사평증(東史評証), 추원록(追遠錄) 및 유고를 수집하여 정리하였으나 정고본(定稿本)의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윤광안(尹光顏)이 경상 감사로 재직 시에 본집의 교정을 보고 선사하여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화재로 초고(草稿)가 소진되고 단지 전사본(傳寫本) 한 본만 겨우 전해졌다. 이후 6대손 강욱(姜욱(金+昱)), 강일(姜鎰), 강훈(姜훈(金+薰)) 등이 1912년 윤광안의 교정본인 원집과 부록 20권을 조금도 가감이 없이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서문은 없고, 끝에 6세손 강욱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으며, 권1~6은 시(詩), 권7은 편지글, 권8~11은 잡저(雜著), 권12~13은 서(序), 기(記), 발(跋), 잠(箴), 명(銘), 찬(贊), 권14~17의 앞부분은 논(論), 변(辨), 의(議), 설(說), 권17 뒷부분은 상량문, 제문, 권18~19는 애사, 묘갈명비지, 행장, 전, 부록으로 자지명(自誌銘)과 강택일(姜宅一)의 가장, 윤광소(尹光紹)의 묘지명이다. 끝에 강욱이 지은 발이 있다.
▶입재집(立齋集) | 정종로(鄭宗魯, 1738~1816) | 권책수 : 28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집이다. 저자는 이상정(李象靖), 최흥원(崔興遠)의 문인(門人)이자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6세손으로 퇴계(退溪), 서애(西厓), 우복(愚伏)의 적전(嫡傳)을 이었다고 일컬어진다. 남한조(南漢朝)와 교유(交遊)하였으며 영남 남인(嶺南南人)의 석학이다. 아들 정상진(鄭象晉), 정상관(鄭象觀) 등이 저자의 유문(遺文)을 꾸준히 모아 23책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수계(修溪) 이승배(李升培), 노암(魯菴) 정필규(鄭必奎), 긍암(兢菴) 강세규(姜世揆)와 조카 정상리(鄭象履)가 1829년 북장사(北長寺)에 모여 분담하여 교감(校勘)하고 편차(編次)하여 20여 차례 교정한 뒤 1835년에 목록(目錄) 2권과 더불어 원집(原集) 48권 24책을 상주(尙州)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으며, 별집(別集)은 연보(年譜)에 1910년 별집 4책을 간행하였다는 기록밖에 없지만, 원집에서 누락된 글과 이후 수습한 유고를 산정하여 원집과 유사한 원칙하에 편차하고, 부록문자(附錄文字)를 덧붙여 9권 4책의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48권 24책, 별집 9권 4책 합 28책이다.
▶입재집(立齋集) | 송근수(宋近洙, 1818~1902)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입재(立齋) 송근수(宋近洙, 1818~190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조카 병선(秉璿)이 행장과 묘표를 지어 유적을 정리한 활자본 ≪입재집(立齋集)≫이 전하고 있는데 간행과 관련한 기록이 본집 내에는 없고, 다만 ≪연재집(淵齋集)≫의 송병선 연보에 1905년 6월, 사우(士友)들과 옥천(沃川)의 용문영당(龍門影堂)에 모여 유고를 교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05년 이후에 활자로 인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본집은 21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매권 권수에 권목(卷目)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는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시는 주로 선조 송시열(宋時烈)의 자취나 유적이 있는 곳을 소재로 지은 선배들의 시에 차운한 것과 여행 중에 지은 것들이다. 권3은 소차(疏箚)이다. 권9~10은 잡저(雜著)로 <성산잡록(星山雜錄)>이다. 상(上)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행지(行止)나 일화,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견해들을 채록한 것으로 우암과 관련된 기록이 많다. 권21은 부록으로 1903년에 내린 고종의 사제문, 동궁사제문, 종자 병선이 1903년에 지은 행장과 묘표가 실려 있다.
▶입헌집(立軒集) | 한운성(韓運聖, 1802~1863)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입헌(立軒) 한운성(韓運聖, 1802~1863)의 문집이다. 아들 석찬(錫瓚)과 석관(錫瓘)에 의해 수습 정리되어 임헌회(任憲晦)에게 묘갈명을, 조병덕(趙秉悳)에게는 행장을 받고, 가장(家藏)되어 있던 시문 또한 수습하여 이응진(李應辰)에게 발문을 받았으나, 문집의 실제 간행이 이루어졌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발문의 작성 연도가 본집에 나타난 가장 후대의 기록이므로 1880년 이후 두 아들의 주도하에 활자로 문집이 인행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본집은 16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總目)이 있다. 권16은 소(疏), 잡저(雜著), 부록(附錄)이다. 잡저의 <예설변(禮說辨)>은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에 호칭을 두고 논란이 일자, 이에 대해 변론한 것으로, 예에 관한 조예를 볼 수 있다. <잡록(雜錄)>은 소식이 <이백비음기(李白碑陰記)>에서 이백의 기상을 칭찬한 부분에 대해 도의(道義)와 접목되지 않은 사람의 기상은 대단할 것 없다고 반론하는 내용이다. 부록은 조병덕이 1869년에 지은 행장, 임헌회가 1865년에 지은 묘갈명이다. 권미에 이응진이 1880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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