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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자]서명[문집총간] : 111종(가격 직접 입력)

 
[자]서명[문집총간] : 111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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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자 : 111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자]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자001 자암집(紫巖集) 이민환(李民, 1573~164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2 자암집(自菴集) 김구(金絿, 1488~1534)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3 자유헌집(自濡軒集) 이만백(李萬白, 1656~171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4 자저(自著) 유한준(兪漢雋, 1732~1811) 21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5 잠곡유고(潛谷遺稿) 김육(金堉, 1580~1658) 7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06 잠암일고(潛庵逸稿) 김의정(金義貞, 1495~154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7 잠야집(潛冶集) 박지계(朴知誡, 1573~1635)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8 잠와유고(潛窩遺稿) 이명준(李命俊, 1572~163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09 장곡집(藏谷集) 권태일(權泰一, 1569~163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0 장암집(丈巖集) 정호(鄭澔, 1648~1736) 15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1 장육당유집(藏六堂遺集) 조귀석(趙龜錫, 1615~1665)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12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나식(羅湜, 1498~1546)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13 재간집(在澗集) 임희성(任希聖, 1712~178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14 재사당일집(再思堂逸集) 이원(李黿, ?~1504)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15 저촌유고(樗村遺稿) 심육(沈, 1685~1753) 18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6 저헌집(樗軒集) 이석형(李石亨, 1415~147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7 전긍재집(戰兢齋集) 김서일(金瑞一, 1694~178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18 전암집(典庵集) 강정환(姜鼎煥, 1741~1816)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19 절곡집(節谷集) 김시관(金時觀, 1677~174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0 점필재집(佔畢齋集) 김종직(金宗直, 1431~1492)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1 정관재집(靜觀齋集) 이단상(李端相, 1628~1669) 13책 3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자022 정문익공유고(鄭文翼公遺稿) 정광필(鄭光弼, 1462~1538)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23 정수재유고(靜修齋遺稿) 김응하(金應夏, 1783~183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4 정암집(正菴集) 이현익(李顯益, 1678~1717)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5 정암집(貞菴集) 민우수(閔遇洙, 1694~1756)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26 정암집(靜菴集) 조광조(趙光祖, 1482~1519)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27 정와집(訂窩集) 김대진(金岱鎭, 1800~1871) 13책 3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한국국학진흥원
자028 정와집(貞窩集) 황용한(黃龍漢, 1744~1818)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29 정유각집(貞㽔閣集) 박제가(朴齊家, 1750~1805)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0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강지덕(姜至德, 1772~183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1 정재일고(貞齋逸稿) 박의중(朴宜中, 1337~140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2 정재집(定齋集) 박태보(朴泰輔, 1654~1689)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3 정재집(定齋集) 유치명(柳致明, 1777~1861) 27책 6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4 정재집(靜齋集) 이담명(李聃命, 1646~1701) 4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자035 정좌와집(靜坐窩集) 심조(沈潮, 1694~1756)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6 정허당집(靜虛堂集) 홍주세(洪柱世, 1612~166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7 정헌집(定軒集) 이종상(李鍾祥, 1799~1870) 9책 2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자038 제봉집(霽峯集) 고경명(高敬命, 1533~1592)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39 제산집(霽山集) 김성탁(金聖鐸, 1684~1747) 9책 2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40 제암집(制庵集) 정상리(鄭象履, 1774~1848)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41 제암집(濟庵集) 김종섭(金宗燮, 1743~1791) 4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자042 제월당집(霽月堂集) 송규렴(宋奎濂, 1630~170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43 제정집(霽亭集) 이달충(李達衷, 1309~1385)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44 제헌집(霽軒集) 심정진(沈定鎭, 1725~1786)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45 제호집(霽湖集) 양경우(梁慶遇, 1568~162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46 조암집(槽巖集) 조창기(趙昌期, 1640~167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47 조암집(照菴集) 정해필(鄭海弼, 1831~1887) 4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48 조은집(釣隱集) 한몽삼(韓夢參, 1589~166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49 족수당집(足睡堂集) 홍인모(洪仁謨, 1755~1812)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50 존양재집(存養齋集) 송정렴(宋挺濂, 1612~1684)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51 존재집(存齋集) 이휘일(李徽逸, 1619~167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52 존재집(存齋集) 위백규(魏伯珪, 1727~1798) 12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53 존재집(存齋集) 박윤묵(朴允默, 1771~1849)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54 졸고천백(拙藁千百) 최해(崔瀣, 1287~1340) 2책 1개 일본 존경각
자055 졸수재집(拙修齋集) 조성기(趙聖期, 1638~1689)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56 졸옹집(拙翁集) 홍성민(洪聖民, 1536~159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57 졸은유고(拙隱遺稿) 이한보(李漢輔, 1675~1748)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58 졸재집(拙齋集) 유원지(柳元之, 1598~1674)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59 좌소산인집(左蘇山人集) 서유본(徐有本, 1762~1822) 4책 1개 일본 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
자060 주천유고(舟川遺稿) 강유선(康惟善, 1520~1549)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61 죽남당고(竹南堂稿) 오준(吳竣, 1587~166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62 죽당집(竹堂集) 신유(申濡, 1610~1665)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63 죽로집(竹老集) 신활(申活, 1576~1643)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64 죽서집(竹西集) 이민적(李敏迪, 1625~167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65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서영보(徐榮輔, 1759~1816) 8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66 죽소집(竹所集) 김광욱(金光煜, 1580~165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67 죽유시집(竹牖詩集) 구영(具瑩, 1584~1663)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68 죽유집(竹牖集) 오운(吳澐, 1540~1617)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69 죽음집(竹陰集) 조희일(趙希逸, 1575~1638)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70 죽창유고(竹窓遺稿) 구용(具容, 1569~1601) 1책 1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자071 죽창집(竹窓集) 강주(姜, 1566~165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72 죽천집(竹川集) 박광전(朴光前, 1526~1597)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73 죽천집(竹泉集) 김진규(金鎭圭, 1658~1716) 21책 4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74 죽포집(竹圃集) 박기종(朴淇鍾, 1824~1898)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075 죽하집(竹下集) 김익(金熤, 1723~1790)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76 죽헌유집(竹軒遺集) 나계종(羅繼從, 1339~1415)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77 죽헌집(竹軒集) 최항경(崔恒慶, 1560~1638) 2책 1개 기타 「法山世稿」 수록 영인본
자078 죽헌집(竹軒集) 도신징(都愼徵, 1611~1678)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자079 죽헌집(竹軒集) 김민택(金民澤, 1678~172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80 중봉집(重峰集) 조헌(趙憲, 1544~1592)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1 중산재집(重山齋集) 이지수(李趾秀, 1779~1842)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82 중암고(重菴稿) 강이천(姜彝天, 1769~180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3 중암집(重菴集) 김평묵(金平默, 1819~1891) 33책 7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84 증소집(巢集) 김신겸(金信謙, 1693~1738)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5 지락와유고(至樂窩遺稿) 이주면(李周冕, 1796~187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6 지봉집(芝峯集) 이수광(李睟光, 1563~1628) 11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87 지산집(芝山集) 조호익(曺好益, 1545~1609)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088 지산집(芝山集) 김팔원(金八元, 1524~1569)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89 지수재집(知守齋集) 유척기(兪拓基, 1691~1767)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0 지암유고(止庵遺稿) 이철보(李喆輔, 1691~1770)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1 지애집(芝厓集) 정위(鄭煒, 1740~1811)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92 지족당집(知足堂集) 권만두(權萬斗, 1674~1753)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93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 김맹성(金孟性, 1437~148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4 지천집(芝川集) 황정욱(黃廷彧, 1532~1607)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자095 지천집(遲川集) 최명길(崔鳴吉, 1586~1647)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6 지촌집(芝村集) 이희조(李喜朝, 1655~1724)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7 지촌집(芝村集) 김방걸(金邦杰, 1623~1695)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098 지퇴당집(知退堂集) 이정형(李廷馨, 1549~1607)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099 지포집(止浦集) 김구(金坵, 1211~127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0 지헌집(止軒集) 최효술(崔孝述, 1786~1870)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1 지헌집(芝軒集) 정사성(鄭士誠, 1545~1607)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자102 지호집(芝湖集) 이선(李選, 1631~1692)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3 직암집(直菴集) 신경(申暻, 1696~1766)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4 직재집(直齋集) 이기홍(李箕洪, 1641~1708)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5 직재집(直齋集) 김익동(金翊東, 1793~1860)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106 진계집(進溪集) 박재형(朴在馨, 1838~1900)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107 진명집(震溟集) 권헌(權攇, 1713~1770)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108 진암집(晉菴集) 이천보(李天輔, 1698~176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자109 진암집(進菴集) 정교(鄭, 1799~1879)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자110 진일유고(眞逸遺稿) 성간(成侃, 1427~1456)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자111 질암집(質菴集) 최벽(崔璧, 1762~1813)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일러두기>---------------------------------------------------
*총 문집 : 1,26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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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자 : 111종

▶자암집(紫巖集) | 이민환(李民寏, 1573~164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이민환(李民寏, 1573~1649)의 문집이다. ≪조문록(朝聞錄)≫은 심하(深河)의 역에서 의절(義節)을 저버렸다는 비난에 대해 적극적인 변론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또한 후손들이 문집을 발간해야만 하는 동기이기도 하였다. 1740년(영조16) 유승현(柳升鉉)의 후지(後識)에 계속되는 모함을 없애고자 ≪책중일록(柵中日錄)≫ 등을 포함한 문집을 발간한다고 하였으며, 이익(李瀷)과 이광정(李光庭)도 서문에서 저자의 무고함을 설명하고 있다. 유문은 증손(曾孫) 이수태(李秀泰)가 정리하고 그의 아들 이덕룡(李德龍)의 부탁으로 이광정(李光庭)이 교정하여 1741년(영조17)에 의성(義城)의 다정재사(茶井齋舍)에서 목판으로 개간되었지만, 목판이 화재로 소실되자 1886년(고종23) 후손 이경재(李絅在)가 누락된 유문 약간 편과 연보를 증보해 8권 3책으로 편차해서 김흥락(金興洛)의 발을 실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7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 권2~6은 문, 권7은 부록이 있다. 권수에 이익(李瀷)과 이광정(李光庭)의 서가 있고, 목록은 없으며 권말에 유승현(柳升鉉)의 후지(後識)가 있다
▶자암집(自菴集) | 김구(金絿, 1488~153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자암(自菴) 김구(金絿, 1488~1534)의 문집이다. 시문이 병란을 거치면서 많이 유실된 것을 외증손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이 모아 가장(家藏)하였고, 1659년(효종10)에 안몽윤의 아들 안응창(安應昌)이 의성 현령(義城縣令)으로 부임하여 시문(詩文)과 연보(年譜)ㆍ묘비명(墓碑銘) 등의 부록(附錄)을 수록하고 정두경(鄭斗卿)의 서문(序文)을 붙여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本集) 2권ㆍ기년록(紀年錄)ㆍ부록(附錄) 합 1책으로, 권수는 정두경(鄭斗卿)의 서(序)와 목록(目錄)이다. 권1은 시, 권2는 문(文)으로, 부(賦)ㆍ표(表)ㆍ송(頌)ㆍ책문(策問)ㆍ기우제문(祈雨祭文)ㆍ옥중상소(獄中上疏)ㆍ갈기(碣記)ㆍ수토록(搜討錄)ㆍ서독(書牘), 권미는 외현손 안응창의 발문(跋文)이다.
▶자유헌집(自濡軒集) | 이만백(李萬白, 1656~171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자유헌(自濡軒) 이만백(李萬白, 1656~1716)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종극(鍾極)이 가화로 소실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종상(李鍾祥)과 이만각(李晩慤)의 정리ㆍ교감을 받은 고본에, 7대손 익구(翊九)가 부록 등을 추가ㆍ재편하여 189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이종상이 지은 서(序)와 1873년에 이돈우(李敦禹)가, 1878년에 강난형(姜蘭馨)이 쓴 서(序) 및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서, 장편 고시가 여러 편 있는데, <모춘(暮春>과 <기우사(騎牛詞)>는 고풍청절한 의취와 지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권2는 서(書), 제문, 잡저, 유묵으로 <견문잡기(見聞雜記)>는 연이은 흉작과 환곡의 폐단 등으로 질곡을 겪는 백성의 생활상 등을 만록 형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유묵에는 소상팔경첩(瀟湘八景帖)과 선현찬산첩(先賢贊散帖)이 있다. 권3~4는 부록으로 만장, 제문, 제현창수, 제현서찰, 가장, 행장 등이다. 권말에 이만각이 1873년에 쓴 후지, 정현덕(鄭顯德)이 쓴 발과 이계로(李啓魯)가 쓴 유묵첩(遺墨帖)에 대한 발이 있다.
▶자저(自著) | 유한준(兪漢雋, 1732~1811) | 권책수 : 21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문집이다. 1783년 시문을 모아 정리하고 이후 1787년에 작품을 추가하여 29권 15책으로 마무리한 ≪자저(自著)≫가 있는데, 이를 1792년과 1802년에 다시 편차하였고, 1810년까지 지은 작품과 초기 작품 중 1802년 임술본(壬戌本)에서 누락된 글들을 모아 문체별로 수록한 ≪속자저(續自著)≫가 있다. 이후 저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지인 이채(李采)에게 시문을 6, 7책 정도로 간정하게 편차하여 간행해 달라는 부탁에, 이채는 임술본 ≪자저≫ 10책과 ≪속자저≫ 4책을 산정하여 저자의 유언에 따라 간행하려 하였으나, 문인 박종경(朴宗慶)을 비롯한 홍직필(洪直弼) 등은 유고를 그대로 간행하자는 주장에, 결국 이채가 임술본 ≪자저≫ 10책은 그대로 간행하고 아직 산정하지 않은 ≪속자저≫만 산정해서 간행하겠다는 뜻을 보였으나 끝내 문집으로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본집은 자저 29권 15책, 저초(著草) 1책, 준본(準本) 2권 1책, 속자저 4권 4책을 합부한 것으로, 총 21책이다. 자저는 권두에 이민보(李敏輔), 유언호(兪彥鎬), 박윤원(朴胤源) 등의 서문이 있다.
▶잠곡유고(潛谷遺稿) | 김육(金堉, 1580~165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의 문집이다. 실록에 1668년 김좌명(金佐明)이 수어청(守禦廳) 수어사로 동철(銅鐵)로 활자를 주조하였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때에 주조된 활자가 무신자(戊申字)로 1670년경 김좌명의 생존 시에 위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편차하여 인행(印行)한 것으로 초간본, 곧 무신자본(戊申字本)이다. 그 후 김좌명의 아들 김석주(金錫胄)가 숙종 초에 한구자(韓構字)를 주조하고 1683년경 초간본을 14권 7책으로 재편집해서 이 활자로 인행하였다. 197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잠곡전집(潛谷全集)≫이란 제명으로 잠곡유고 초간본과 후손가(後孫家)에 필사본으로 가장(家藏)되어 있던 ≪잠곡속고(潛谷續稿)≫, ≪잠곡필담(潛谷筆譚)≫, ≪종덕신편(種德新編)≫, 연보와 가장, 세승(世乘) 등을 영인하여 출판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권두에 ≪조경일록(朝京日錄)≫에 대한 윤신지(尹新之)의 서문, 권1~2는 시(詩)와 부(賦), 권3은 집두시(集杜詩), 권4~6은 소차(疏箚), 권7은 계사(啓辭) 등이고, 권말에는 신익성(申翊聖)의 <조천록후지(朝天錄後識)>가 문집 발문을 대신해 실려 있다.
▶잠암일고(潛庵逸稿) | 김의정(金義貞, 1495~154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잠암(潛庵) 김의정(金義貞, 1495~1547)의 문집이다. 시문은 아들 김농(金農)이 유고(遺稿)를 철습하여 상하 2편으로 등사(謄寫)하고 가장(家狀)을 권말에 붙여 가장(家藏)한 것을, 1833(순조33) 10세손 김종규(金宗奎)가 행장ㆍ묘갈명 등 부록(附錄)을 가장 뒤에 첨부하고 김수근(金洙根)의 서(序)와 김정균(金鼎均)의 발(跋)을 붙였으나 간행하지 못하고 졸한 뒤에 김종규의 동생 김종옥(金宗鈺)과 주손(胄孫) 김노흠(金魯欽)이, 저자가 1859(철종10)에 증작(贈爵)되고 1863(철종14) 증시(贈諡), 이듬해 개시(改諡)된 사실 및 시장(諡狀)ㆍ고유문(告由文) 등을 부록에 첨부하고 이휘재(李彙載)의 서를 받아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4권ㆍ부록 1권 합 2책으로, 권수에는 이휘재와 김수근의 서와 목록이 있고, 권1은 부(賦), 권2~3은 시, 권4는 문(文), 권5는 부록으로, 1832 유태좌(柳台佐)가 지은 행장, 1833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다. 행장에는 문집 간행 및 묘갈을 세우게 된 경위도 밝히고 있다. 권미는 김정균의 발문이다.
▶잠야집(潛冶集) | 박지계(朴知誡, 1573~163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 1573~1635)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작 간행은 박세채(朴世采)가 1690년(숙종16)에 저자의 시문을 수윤(修潤)하고, 그 후에 이를 가지고 저자의 문인 원두표(元斗杓)의 4대손 원경순(元景淳)이 1761년경(영조37)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에 목판으로 간행을 시도하였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1766년(영조42)에 김상로(金尙魯), 박성원(朴聖源), 김종후(金鍾厚) 등이 교정하고 10편으로 편정(編定)하여 저자의 5대손 박명양(朴鳴陽)이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출(印出)하였다. 문집은 총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고 매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3은 소(疏)로 구성되어 있다. 권4~5는 서(書)로 구성되어 있고, 권6은 제문(祭文), 잡저(雜著), 묘갈(墓碣)로 구성되어 있다. 권7~9은 예변(禮辨)이고, 권10은 차록(箚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장(諡狀)은 권10에 첨부되어 있다. 시는 없다. 권말에 박명양(朴鳴陽)의 발(跋)이 있다. 소 가운데 1633년에 올린 장편 상소 <만언소(萬言疏)>가 있고, 서는 대부분 예에 대한 문답이다.
▶잠와유고(潛窩遺稿) | 이명준(李命俊, 1572~16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잠와(潛窩) 이명준(李命俊, 1572~1630)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9세기 전반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연보(年譜), 원집(原集)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이종성(李宗城)이 1749년에 쓴 서(序)가 있고, 목록(目錄) 뒤에 연보가 실려 있다. 권1과 권2 앞부분은 시(詩)로, 그 내용은 금강(錦江), 공북루(拱北樓), 홍주(洪州) 등 충청도 일대와 유배지 영덕(盈德)에서의 시, 강릉 도호부사 시절 강원도 일대를 유람한 시 등이 시체별(詩體別)로 연대순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40대 이후의 시들이다. 권2 뒷부분은 소(疏), 전(箋), 서(書)이다. 특히 <진시폐소(陳時弊疏)>는 강릉 도호부사에서 해면되어 돌아와 산반(散班)에 있으면서 올린 소로, 말미에 당시 시급하게 시행해야 할 일을 9조목으로 나누어 진달하였다. 권3은 제문(祭文), 책(策), 서(序), 잡저(雜著)이고 권4는 부록(附錄)이다. 권말에 1649년에 정홍명(鄭弘溟)이 지은 발(跋)이 있다.
▶장곡집(藏谷集) | 권태일(權泰一, 1569~163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장곡(藏谷) 권태일(權泰一, 1569~1569)의 문집이다. 본집은 김도명(金道明)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유형진(柳衡鎭) 등의 교감(校勘)을 거쳐 1860년 주계서원(周溪書院)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권수에 이휘녕(李彙寧)이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차(箚), 교서(敎書), 서(書)이다. 그중에서 <관동유산시(關東遊山詩)>는 1606년 강원도 군향어사 때에 금강산, 영랑호(永朗湖), 낙산사(洛山寺)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장편시이다. 권2는 서(書), 축문(祝文), 제문(祭文), 잡저(雜著)이다. 서는 김상헌(金尙憲), 정전(鄭佺), 동서 김영조(金榮祖) 등에게 보낸 것이다. 그중에서 <여옥당동료(與玉堂同僚)>는 전에 차자로 올린 고제(古制)를 따르자던 논의를 신중하게 다루자고 동료들을 설득하는 내용이다. 권3은 부록으로 교서(敎書)와 유서(諭書), 증유(贈遺), 만사(輓詞), 제문(祭文), 신도비명(神道碑銘), 행장(行狀)과 언행문견록(言行聞見錄)이 있다. 권말에 김도명(金道明)이 1860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장암집(丈巖集) | 정호(鄭澔, 1648~1736)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장암(丈巖) 정호(鄭澔, 1648~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자 정희하(鄭羲河)가 시문과 편지글을 수습하여 정리하였으나 유실된 것이 많아 완질을 이루지 못하였고 편차한 유고도 간행하지 못하던 차에, 종손 정실(鄭宲)이 1755년 안동 부사로 나가자 바로 간행에 착수하여 1756년 철활자(鐵活字)로 26권 15책을 인행하였다. 본집 말미의 정실의 지(識)에, 가장초고를 오랫동안 보관하기도 힘들고 지금 시기를 놓치면 다시 간행할 기약이 없기에 우선 정희하(鄭羲河)가 편차한 대로 철활자로 인행하였다고 하고, 또 미처 수습하지 못한 문자는 이후 얻는 대로 보충하겠다고 하였으나 문집에 습유나 추보가 추가된 이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후 추각은 행해지지 않은 듯하다. 본집은 26권 15책으로, 권두에 총목 및 권별 목록이 있고, 서(序)와 부록문자는 없으며, 권말에 정실의 지(識)가 있다. 권1~2는 시(詩), 권3~9는 소차, 계사, 서계, 헌의, 권10은 편지글, 권11은 경의문답(經義問答)과 독서만록, 권12~21은 묘지명, 신도비, 묘갈, 묘표, 시장, 행장, 권22~26은 제문과 산문, 잡저, 응제록, 권26은 잡저이다.
▶장육당유집(藏六堂遺集) | 조귀석(趙龜錫, 1615~166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장육당(藏六堂) 조귀석(趙龜錫, 1615~1665)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태동(泰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68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남구만(南九萬)이 1690년에 찬한 저자의 묘표음기(墓表陰記)를 추각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김수흥(金壽興)이 1685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시에 대해 김수흥은 “맑고 원만하며 자유자재하다.”고 평하였고, 남구만은 “우아하고 기운차면서도 공교롭고 치밀하며, 밝고 유창하면서도 사리에 절실하다.”고 평하였다. 권2는 문으로 제문, 소(疏), 차자, 계사, 간독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은 6편 가운데 4편이 가족에 대한 것이다. 상소는 모두 사직소이다. 사직소 중 <옥당연명사직소(玉堂聯名辭職疏)> 3편은 분관(分館) 문제와 타위(打圍) 문제를 다루었고, <집의시사직잉진시폐소(執義時辭職仍陳時弊疏)>는 시폐(時弊)를 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집으로 남구만이 1690년에 지은 묘표음기가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 박세채가 1678년에 지은 발이 수록되어 있다.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 나식(羅湜, 1498~154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장음정(長吟亭) 나식(羅湜, 1498~1546)의 문집이다. 사후 30여 년이 지난 뒤 전라도 관찰사 심방숙(沈方叔)이 이우춘(李遇春)이 소장한 저자의 시 50여 수를 얻어 저자의 문인 허엽(許曄)에게 서(序)를 부탁하자, 허엽은 자신이 수습한 시 수십 편을 보태고 서를 붙인 것을, 1578(선조11) 간행하였고, 5대손 나양좌(羅良佐)가 비석을 세우고 시고를 중간하려던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송시열(宋時烈)의 묘표를 추록하고 박세채(朴世采)의 서를 받아 1678(숙종4) 불분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912 후손 나상일(羅相一) 등이 저자의 유고에 동생 나숙(羅淑), 나익(羅瀷)의 시문을 부집(附集)하여 ≪장음정집(長吟亭集)≫ 2권 1책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서ㆍ시ㆍ부ㆍ보유ㆍ부록의 불분권 1책이다. 시는 77수로, <고주조박(孤舟早泊)>이란 말로 뒷날 화기(禍機)가 된 <한중우음(閑中偶吟)>과 1537년 김안로(金安老)를 배척하다 죽은 동생 나익에 대한 <제명원구전서곡(弟明源柩前書哭)> 등이 있고, 부록은 <묘표>로서 1678(숙종4) 송시열이 지은 것이다.
▶재간집(在澗集) | 임희성(任希聖, 1712~178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재간(在澗) 임희성(任希聖, 1712~1783)의 문집이다. 저자는 임준(任㻐) 등과 교유(交遊)하였고, 원고를 자편(自便)하여 보관하던 것이 수십 권에 이르러 산삭(刪削)이나 수정(修正)할 필요는 없었으나 권질(卷帙)이 너무 많으므로 초고(草稿)를 산삭 선별(選別)하는데, 시(詩)는 문인(門人) 토목와(土木窩) 최중순(崔重純)이 하고, 문(文)은 족질 임천상(任天常)이 선별하였고, 묘도(墓道)나 실기(實紀)는 저자의 유언(遺言)에 따라 그대로 취한 것을, 장손 임백희(任百禧)가 옥구(沃溝)에 부임한 1813년에 임천상(任天常)의 발(跋)을 붙여 활자(活字)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本集)은 6권 3책으로, 서(序)는 없고 매 권별(卷別) 목록(目錄)이 있으며, 권미(卷尾)에는 발문(跋文)이 있다. 권1은 시(詩), 권2는 편지글, 기(記), 서(序), 제발(題跋), 잠명(箴銘), 잡저(雜著), 권3~6은 제문(祭文), 애사(祭文), 광명(壙銘),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행장(行狀) 등이다.
▶재사당일집(再思堂逸集) | 이원(李黿, ?~150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재사당(再思堂) 이원(李黿, ?~1504)의 문집이다. 유고 2책을 후손 이홍업(李弘業)이 가장(家藏)하다가 임진왜란 이후로 유실된 다음, 후손 이인엽(李寅燁)이 <유금강록(遊金剛錄)>을 발견하여 정염(丁焰)의 <행록(行錄)>과 ≪동문선(東文選)≫ 등에 전하는 시부(詩賦) 약간 편을 뽑아 편차하여, 1698년(숙종24) ≪익재집(益齋集)≫ 간행 시에 부집(附集)으로 간행하였고, 후손 이종형(李鍾泂)ㆍ이용우(李用雨) 등이 ≪동문선≫ㆍ≪기아(箕雅)≫에서 집록(輯錄)한 시문과, 사우제가(士友諸家)에서 수집한 시문 약간 편을 다시 증보 편차하여 본집 1권과 부록 1권으로 엮었으며, 1938년 송준필(宋浚弼)에게 교감과 서문(序文)을 받아 1939년 논산에서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권수에 송준필의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ㆍ부ㆍ계ㆍ공사(供辭)ㆍ잡저ㆍ기, 권2는 부록으로 행록, 묘도문자 및 유사 등을 모은 것이고, 권미는 유묵과 김태진(金泰鎭), 후손 이규하(李圭廈)ㆍ이종호(李鍾浩)ㆍ이용우(李用雨)의 발문이다.
▶저촌유고(樗村遺稿) | 심육(沈錥, 1685~1753)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저촌(樗村) 심육(沈錥, 1685~1753)의 문집이다.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으로 강화학파의 중심인물이며 이진병(李震炳), 윤순(尹淳), 윤선(尹璿) 등과 교유하였다. 평생 몇 번의 소명(召命)에 나아갔다가 돌아온 것 외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대부분을 강학(講學)과 유람(遊覽)으로 보냈는데, 특히 영조대(英祖代)에 영의정(領議政)까지 올랐던 부친 심수현(沈壽賢)을 배행하여 의주(義州), 관동(關東), 영남(嶺南) 등지는 물론 중국의 연경(燕京)까지 다녀오면서 견문을 넓혔다. 따라서 이때 지은 시작(詩作)이나 일기(日記) 등이 유고(遺稿)로 남게 되었지만, 저자에 대해 묘도문자(墓道文字)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저자의 문집으로 전하는 것도 1938년에 등사(謄寫)된 필사본(筆寫本)이 전부다. 본집은 47권 18책으로, 권두(卷頭)에 총목록(總目錄)과 권별 목록이 있고, 서발(序跋)은 없다. 권1~24는 시(詩), 권25~34는 편지글, 권35~41은 잡저(雜著), 권42는 서(序), 설(說), 논(論), 제문(祭文), 권43~46은 묘갈명(墓碣銘), 유사(遺事),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 권47은 간독(簡牘)이다.
▶저헌집(樗軒集) | 이석형(李石亨, 1415~147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의 문집이다. 사위 송여해(宋汝諧)가 시문을 모아 상ㆍ하 권으로 편집한 것을, 성종의 명으로 교서관에서 주자(鑄字)로 인행(印行)하였고, 증손 이계(李계(啓-口/山))가 1587년(선조20)에 초간본에 따로 후집과 별집을 만든 다음 행장 뒤에 세계와 연보를 첨부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의흥(義興)에 소장된 판본이 소실되자, 고손 이정귀(李廷龜)가 1624년(인조2) 용인 묘소에 신도비를 세우면서 완산부(完山府)에서 중간본에 비문과 발을 첨부하여 재간하였으나, 역시 병자호란 때 판본까지 유실되어 7대손 이희조(李喜朝)가 경상감사 김인(金演)에게 부탁하여 1705년(숙종31) ≪홍재전서≫의 일부 글과 장천사(張天使)의 시 등을 별집에 첨부하고, 발문과 교유서를 부기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931년 15대손 이기승(李箕承) 등이 성기운(成璣運)의 발을 붙여 다시 중간하였다. 문집은 본집 2권ㆍ후집ㆍ별집ㆍ행장ㆍ세계ㆍ연보 합 2책이다.
▶전긍재집(戰兢齋集) | 김서일(金瑞一, 1694~178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전긍재(戰兢齋) 김서일(金瑞一, 1694~178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중일(重鎰)이 1868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유주목(柳疇睦)이 1868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대부분이 만시(輓詩)이다. 권2는 서(書)로서, 병산, 풍산, 호계의 사림에게 문집 간행, 효자 선양, 선현 배향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편지, 관찰사 김화진(金華鎭), 이은(李溵), 부사 이창운(李昌運) 등에게 인사를 전하는 편지, 족제 김서구(金敍九)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편지 등이 있다. 권3은 기(記), 발(跋), 묘지명, 뇌사, 상량문, 제문이다. 그중에서 <이대윤효행실기(李大胤孝行實記)>는 저자의 벗 이존중(李存中)의 아들 이대윤(李大胤)의 효행을 기록한 글이고, <근제정훈록후(謹題庭訓錄後)>는 1714년에 지은 것으로 저자의 선조 대현(大賢)이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직할 때에 아들 연조(延祖)에게 전해준 교훈을 읽고 쓴 글이다. 권4는 부록으로 김민원(金敏源)이 지은 가장을 비롯하여 행장, 묘갈명, 만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전암집(典庵集) | 강정환(姜鼎煥, 1741~181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전암(典庵) 강정환(姜鼎煥, 1741~18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대우(大瑀)가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유고를 산정하여 김영한(金甯漢)의 행장을 김승규(金昇圭)에게 서(序)를 받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8권, 사우록(師友錄)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승규의 서와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곤양(昆陽), 통영(統營), 진해(鎭海)의 정부(貞婦) 3인의 행적을 읊은 시, 1812년 4월 정주성(定州城) 화공(火攻)으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진압된 것을 기뻐하며 지은 시와 명(明)나라가 후금(後金)을 칠 때 원병으로 나가 활동했던 강홍립(姜弘立)과 김응하(金應河)의 전기인 강로전(姜虜傳)과 김장군전(金將軍傳), 그리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기록인 강도록(江都錄)과 남한록(南漢錄)을 읽고 감상을 읊은 시 등이 있다. 권7은 잡저(雜著)이다. <성리차록(性理箚錄)>은 성리학의 여러 논제들에 대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 등이 있다. 권말에 사우록과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용진(金容鎭)의 발(跋)이 있다.
▶절곡집(節谷集) | 김시관(金時觀, 1677~174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절곡(節谷) 김시관(金時觀, 1677~174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언근(彥根)이 수집ㆍ편차하여 1865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병학(金炳學)이 1865년에 쓴 서문과 총목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대체로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주로 친족과 친우 간에 수창한 시, 감흥시들이 많다. 만시는 각 시체의 맨 끝에 별도로 묶어 놓았다. 권2는 서(書)로, 스승인 김창협, 김창흡, 김창집과 주고받은 것, 이재의 문인인 신이의(愼爾儀)와 임성주(任聖周)에게 쓴 것, 족질인 김원행(金元行)에게 쓴 것 등이다. 내용은 주로 학문적인 의견을 문답한 것이다. 권3은 서(書), 서(序), 기(記), 발, 잡저이다. 서(書)는 모두 김득성(金得性)에게 보낸 것인데, 주로 예설과 경서 중의 의문처에 대한 질의응답을 한 내용이다. 잡저에는 <오륜설(五倫說)>, 친구 윤득휴(尹得休)의 동생에게 ‘여각(汝覺)’의 자(字)를 지어주게 된 경위와 뜻을 설명한 <윤득상자설(尹得相字說)> 등이 있다. 권4는 제문, 행장, 부록이고 권말에 족손 김세균(金世均)이 1865년에 지은 발이 있다.
▶점필재집(佔畢齋集)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집이다. 생질 강백진(康伯珍) 등이 시문 25권과 ≪이준록(彝尊錄)≫을 모으고 조위(曺偉)의 편집을 거쳐 선사(繕寫)하였으나 무오사화로 거의 유실되고 남은 것을, 1520(중종15)에 강중진(康仲珍)이 숭산(嵩善, 선산(善山))에서 읍재(邑宰)의 도움을 받아 간행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거의 잃어버렸다. 이후 1649(인조27) 경상감사 이만(李曼)이 중간하고, 1789(정조13)에 이헌경(李獻慶)의 서(序)를 붙여 간행하고, 1892(고종29) 송병선(宋秉璿)의 발(跋)을 첨부하여 간행하고, 1917년에 김계현(金啓鉉) 등이 대구에서 간행하였는데, 모두 초간본을 교정ㆍ보판(補板)한 후쇄본이다. 문집은 시집 23권ㆍ문집 2권ㆍ이준록 2권ㆍ연보ㆍ부록 합 9책으로, 시집 권1~23은 각체시(各體詩)를 창작 시기 순으로 배열하였고, 연보는 손자 김뉴(金紐)가 1580(선조13)에 작성하고 1789(정조13) 이헌경(李獻慶)이 교정을 보아 문집에 합부(合附)한 것으로 무오사화사적과 문인록이 포함되어 있으며, 김뉴의 발이 있다. 부록은 신도비명과 장현광(張顯光)의 발이다.
▶정관재집(靜觀齋集) | 이단상(李端相, 1628~1669)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의 문집이다. 아들 이희조(李喜朝)가 상중(喪中)에 가장(家藏) 문적(文籍)을 두루 상고하고 저자와 지구(知舊)들 사이에 주고받은 서독(書牘)을 널리 수습하여 편정을 마친 뒤에, 박세채(朴世采)에게 산정(刪正)을 부탁하였다. 문인 임영(林泳)과 함께 산정(刪正)하고, 그중 시는 김수항(金壽恒)과 남용익(南龍翼)이 교정하여 문인(門人) 함경도 관찰사 윤지선(尹趾善)이 김수흥(金壽興)과 민유중(閔維重)의 도움을 받아 함경도 감영(監營)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6권, 별집 6권, 연보 2권, 속집 10권으로 총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卷頭)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과 박세채의 서문 및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시, 권4~7은 교서(敎書), 소(疏), 계(啓), 권8~13은 편지글, 권14는 서(序), 발(跋), 제문(祭文), 공이(公移), 권15~16은 부록(附錄) 등이다. 속집은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1~8은 잡저이고, 권9~10은 부록이다. 속집은 원집과 별집의 간행시 누락된 글을 실었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을 주제별로 재편집하였다.
▶정문익공유고(鄭文翼公遺稿) | 정광필(鄭光弼, 1462~153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수부(守夫) 정광필(鄭光弼, 1462~1538)의 문집이다. 6대손 정재륜(鄭載崙)이 시문(詩文) 약간과 비문(碑文) 및 유사(遺事)를 모으고 증손 정창연(鄭昌衍)의 <구동계소(救桐溪疏)>를 부록(附錄)하여 1책으로 편집한 후, 7대손 정복선(鄭復先)이 합천군수로 부임한 1702년(숙종28)에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중간은 15대손 정훈모(鄭薰謨) 등이 초간본의 내용에 안로(安璐)가 지은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에서 초출(抄出)한 기록과 12대손 정기선(鄭基善)의 주차(奏箚), 저자가 지은 이항(李沆)의 묘표(墓表)를 더하여 2권 1책으로 편집하고, 후손 정인찬(鄭寅燦)의 교정(校正)과 13대손 정만조(鄭萬朝)의 서문(序文)을 받아 1934년 서울에서 석인(石印)으로 중간하였다. 문집은 유고(遺稿)와 부록(附錄) 합 1책으로, 시는 대부분 율시고, 묘갈명은 처남 송여해(宋汝諧)와 그 아우 송여익(宋汝翼)을 위해 지은 것이며, 부록은 세계, 신도비명, 사적, 부인의 관계 기록, 증손 정창연(鄭昌衍)의 상소문이다. 권미에는 7대손 정복선의 발이 있다.
▶정수재유고(靜修齋遺稿) | 김응하(金應夏, 1783~18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수재(靜修齋) 김응하(金應夏, 1783~1830)의 문집이다. 차자 일형(日炯)이 흩어져 있던 시문과 가장 원고를 모아 4권으로 편차 교정하여 초고를 완성하고, 종손 규서(奎書)가 초고를 바탕으로 한장석(韓章錫)의 서문과 이시달(李時達)의 본전(本傳)을 추가하여 1878년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연대 미상인 한장석의 서와 이시달이 저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본전, 그리고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작품 중에 모란, 매화, 낙조, 눈, 비 등과 같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특히 <화조팔영(花鳥八詠)>은 8가지의 꽃과 새를 소재로, 그것이 각각 상징하는 명칭으로 제목을 삼아 읊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제발, 설(說), 변(辨), 찬(贊), 잡저이다. <제임가원괴석기후(題任可遠怪石記後)>는 임가원의 <괴석기>에 대한 것으로 이것을 통해 자신을 살피는데 경계를 삼을 만하다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차자 일형이 산일된 원고를 수습 교정한 뒤의 감회를 밝힌 글과 1878년에 종손 규서가 문집을 간행하면서 지은 발문이 있다.
▶정암집(正菴集) | 이현익(李顯益, 1678~171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암(正菴) 이현익(李顯益, 1678~1717)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상진(商進)이 수집ㆍ편차하여 177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양행(金亮行)이 1773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1703년 개성, 1706년 속리산, 1708년 철원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권2~6은 서(書)로,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전문(傳文)과 소주(小註), 미발(未發)과 이발(已發) 등의 개념에 대한 논쟁, 선학(禪學)에 경도된 이덕수의 주장을 주자의 학설에 입각하여 반박한 것 등이다. 권7은 서(序), 기(記), 제발이다. <송계통서(送季通序)>는 파주로 독서하러 떠나는 아우 현태(顯泰)를 전송하는 글이고, <서유기(西遊記)>는 개성 천마산(天磨山)을 유람한 경위를 기록한 글이다. 권8~17은 잡저이다. <주역설(周易說)>은 ≪주역≫ 상하경(上下經)과 계사전(繫辭傳) 소주의 오류를 바로잡은 저술이다. 권18은 잡저, 제문, 지명이고 권19~20은 잡지이다. 대부분 주자의 저술과 거기에 수록된 제현의 주석에 대한 논평이다.
▶정암집(貞菴集) | 민우수(閔遇洙, 1694~175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암(貞菴) 민우수(閔遇洙, 1694~1756)의 문집이다. 아들 민백첨(閔百瞻)과 민백겸(閔百兼)이 먼저 죽었기 때문에 손자 민이현(閔彝顯)과 민종현(閔鍾顯)이 유문을 수습하였고, 행장을 지은 1779년에 십여 권이 가장되자 증손 민치복(閔致福)의 주도하에 오희상(吳煕常)의 산삭과 교정을 거쳐 편집되었지만, 이 유고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간행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경위를 알 수 없다. 다만 본집에 쓰인 활자가 김숭겸(金崇謙)의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 중간본, 김원행(金元行)의 ≪미호집(渼湖集)≫등과 다 같은 운각인서체자로서 어미의 형태나 광곽에 나타나는 특징 등이 매우 유사하여, 역시 비슷한 시기인 1799년경에 같은 조임틀을 이용하여 인쇄하였으리라 추정될 뿐이다. 서발은 없으며, 권수에 총목 및 각 권별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권2는 소(疏), 권3~8은 편지글, 권9는 서(序), 기(記), 제발, 명, 전(箋), 상량문, 권10~11은 묘지, 권12는 비(碑)와 묘갈, 묘표, 권13~14는 행장, 제문, 애사, 권15는 잡지, 16은 부록으로 김양행(金亮行)의 행장과 유언호(兪彥鎬)의 묘지명이 실려 있다.
▶정암집(靜菴集) | 조광조(趙光祖, 1482~151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문집이다. 1681(숙종7) 박세채(朴世采)가 교정ㆍ편차한 정고본을 조위수(趙渭叟)가 부록을 줄이고 연보를 제외하여 남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고, 1685(숙종11) 박세채가 정고본대로 대구에서 중간하였고, 양회연(梁會淵)이 호남사림과 협의하여 감사(監司) 민정식(閔正植)의 협조 하에 위의 두 본을 바탕으로 재편하고 부록을 증보하여 1892(고종29) 능주(綾州) 삼지재(三芝齋)에서 목판으로 중간하였고, 1929년 양회규(梁會奎)가 삼지재본(三芝齋本)의 일부분을 보각(補刻)하고 추각(追刻)하여 간행하였으며, 1935년 한규복(韓圭復)ㆍ이필훈(李弼薰) 등이 새로 찾은 소ㆍ차ㆍ연중기사(筵中記事) 등을 추가하고, 편집하여 용인에서 석인(石印)으로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5권ㆍ부록 6권ㆍ속집원집 1권ㆍ속집부록 5권 합 5책으로, 권수에는 숙종어제시(肅宗御製詩) <독정암집유감(讀靜菴集有感)>, 1730(영조6) 민진원(閔鎭遠)이 쓴 어제시에 대한 후지(後識) 등이 실려 있고, 권미는 정범조(鄭範祖)와 후손 조명교(趙命敎)의 중간발문이 실려 있다.
▶정와집(訂窩集) | 김대진(金岱鎭, 1800~1871)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한국국학진흥원
조선 시대 정와(訂窩) 김대진(金岱鎭, 1800~187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 사후에 문인 김상수(金常壽), 김성진(金城鎭), 김진한(金鎭瀚), 김경진(金敬鎭) 등이 유문(遺文)을 수집 등사(謄寫)하여 문집 초본(草本) 18권을 완성한 뒤 교정을 거쳐 12책으로 편차하였다. 이 초본을 1883년 5월에 권연하(權璉夏)가 도연서원(陶淵書院)에서 1차로 교정하여 현전하는 10책 분량으로 정리하였다. 몇 년 뒤에 김흥락(金興洛)에게 말감(末勘)하게 하고 간행 직전에 또다시 김석락(金奭洛), 김진린(金鎭麟), 김양진(金養鎭) 등이 모여서 교감하여 1888년 1월에 간역을 시작하여 1889년 6월에 20권 10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0권 10책, 속집(續集) 4권 2책, 부록(附錄) 2권 1책 합 13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 권두에 서문은 없고 총목만 있다. 권1~2는 시(詩), 소(疏)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속리산(俗離山)을 유람하며 읊은 시와 퇴계(退溪), 학봉, 대산(大山) 등 안동 일대 선현의 시에 차운한 것이 있다. 권8~11은 잡저(雜著)이다.
▶정와집(貞窩集) | 황용한(黃龍漢, 1744~1818)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정와(貞窩) 황용한(黃龍漢, 1744~181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중이(中彝)가 수집 정리하고 김희화(金煕華)의 서문과 남상교(南尙敎)의 발문을 받아 1865년경에 목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김희화의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3은 사(詞), 시(詩)이다. <초우두곡우출서사(初寓斗谷偶出書事)>는 1795년 두곡에 우거하며 지은 것으로 그곳의 겨울 풍광과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을 읊은 것이고, <토엄성회정서(土广成懷井瑞)>는 새 집을 짓고 나서 지금은 없어져 버린 삼종제 노한(魯漢)이 그려 줘 벽에 붙여두고 연구하던 선천도(先天圖)를 기억하며 지은 것이다. 권4~6은 서(書)이다. 이헌순에게 보낸 편지는 분량도 많고 이황(李滉)의 저술, 시론(詩論), 역학(易學), 성리학(性理學) 등 다루는 주제도 광범위하다. 권7은 서(序), 기(記), 전(傳), 잠(箴), 지(識)이다. 서(序)는 1816년에 지은 김진강이 대를 이어 소장하고 있는 의성 김씨(義城金氏) 가문의 네 보물인 검(劍)ㆍ적(笛)ㆍ연(硯)ㆍ침(枕)에 대한 서이다.
▶정유각집(貞㽔閣集) | 박제가(朴齊家, 1750~1805)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유(貞蕤)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재 간본은 없고, 사본으로 시집 ≪정유각집(貞蕤閣集)≫과 문집 ≪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이 있으며 모두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알 수 없다. 본집은 시집 5책, 문집 4책 합 9책으로, 시집은 초집~오집이며, 권두에 1768년 19세 때 엮은 초기 시집에 대한 이덕무(李德懋)의 서문과 1776년 7월에 사신으로 연경에 갔던 유금(柳琴) 일행이 받아온 청인 반정균(潘庭筠), 이조원(李調元)의 서문이 있다. 초집 210제의 시 중에서 <측상(廁上)>은 측간에 앉아 내다보이는 봄날의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저자의 재기를 엿볼 수 있다. 사집(四集)에는 146제의 시가 실려 있다. 팽원서(彭元瑞), 기윤(紀昀), 옹방강(翁方綱) 등 청의 문인들을 묘사한 <속회인시(續懷人詩)> 18수가 실려 있다. 권2에는 문(文)이 실려 있는데, <응지진북학의소(應旨進北學議疏)>는 1798년에 영평 현령으로 있던 저자가 농업 개혁을 위해 농서를 구한다는 정조의 명에 응하여 바친 글이다. 그 내용은 농법의 개량보다는 현재의 법을 고치는 변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 강지덕(姜至德, 1772~183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여류시인 정일당(靜一堂) 강지덕(姜至德, 1772~1832)의 문집이다. 저자의 남편 윤광연(尹光演)이 유문을 수습 정리하고 1834년과 1835년에 각각 윤제홍(尹濟弘)의 서문과 윤수경(尹守慶)의 발문을 받고 1836년에 스승 송치규(宋穉圭)의 서후(書後)를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애초에 활자로 인쇄한 후 이를 복각(覆刻)한 것으로 보이며 사용된 활자는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추정된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윤제홍이 1834년에 지은 서와 목록이 있다. 시는 절구가 31제로 대부분이고, 5언절구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편 윤광연을 대신해서 지은 것도 8제나 된다. 서는 오빠 강일회(姜日會), 윤광주(尹光周) 등 가족이나 남편의 종친에게 보낸 것이다. 그중에서 종친에게 보내는 5편은 남편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척독은 모두 남편에게 쓴 것으로, 학문과 수신 등에 관한 것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다. 권말에는 1830년 겨울에 ‘정일당(靜一堂)’이라 쓴 저자의 서적(書蹟)이 있고, 송치규가 1836년에 지은 서후와 윤수경이 1835년에 지은 발이 있다.
▶정재일고(貞齋逸稿) | 박의중(朴宜中, 1337~140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조선 초 정재(貞齋) 박의중(朴宜中, 1337~1403)의 문집이다. ≪용재총화≫ 등의 기록에,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문집이 세상에 유전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전하지 않고, 편찬ㆍ간행에 관한 경위조차 전무하다. 그 후 후손 박원식(朴元植)ㆍ박인성(朴演性) 등이 ≪고려사≫와 제현들 문집 속에서 시문을 집일(輯佚)하여 유고 1권을 편집하고, 제현들 문집과 가승에서 관계 기록을 모아 부록을 엮었다. 이를 18세손 박인선(朴麟善)이 교수(校讎)하여 발문을 쓰고 김영한(金寧漢)ㆍ박인하(朴寅廈)의 서문을 붙여 1924년 김제 삼송재(三松齋)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1책으로, 권1은 본집, 권2는 부록, 권3은 척유이다. 권수는 1923년 김영한과 18세손 박인하가 쓴 서문 및 목록이다. 시 중에는 고려 말 도학ㆍ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숭인ㆍ이색ㆍ정몽주 등과 주고받은 교유시가 많고, 문으로는 우왕때 문하사인으로서 올린 <계일예소(誡逸豫疏)>와 예문관 재직시에 지은 <계주서(誡酒書)> 및 <도통설(道統說)>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923년에 쓴 박인선의 발문이 실려 있다.
▶정재집(定齋集) | 박태보(朴泰輔, 1654~1689)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문집이다. 부친 박세당(朴世堂)이 저자의 유고를 수집하고 편차하여 1698년 외사촌 남학명(南鶴鳴)에게 행장을 받고, 1699년 윤증(尹拯)에게 묘표를 받아 1702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892년에 6대손 박제억(朴齊億)이 원집과 별집을 중간하면서 후집 6권을 추가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9권, 별집 5권, 부록, 후집 6권 합 10책으로, 권두에 부록까지의 목록이 있고, 후집은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서(序)는 없다. 권4 뒷부분~권7은 차(箚), 소(疏), 계(啓) 등으로, 본집에서 가장 비중이 두어진 부분이다. 특히 남학명에게 답한 편지는 정황돈(程篁墩)의 ≪심경부주(心經附註)≫의 의문점을 물은 데 답한 것이고, 조형보(趙衡輔)에게 보낸 편지도 이와 관련한 것이다. 본집이 간행된 뒤 이 편지들을 본 윤증은 후환이 있을까 우려하기도 하였다. 나양좌에게 보낸 편지는 송시열의 공척을 받은 윤선거(尹宣擧)의 강도사(江都事) 등을 변석한 헌납 김두명(金斗明)이 지은 상소의 미비점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맨 뒤에 6대손 박제억의 발문이 실려 있다.
▶정재집(定齋集) | 유치명(柳致明, 1777~1861) | 권책수 : 27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1777~1861)의 문집이다. 원집은 아들 유지호(柳止鎬)와 문인 이돈우(李敦禹), 김흥락(金興洛)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교정, 산삭하여 1881년에 정고본을 만들고, 이를 1883(고종20) 36권 19책으로 안동 용담사(龍潭寺)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의 간행 이후로 속집의 간행과 아울러 부록 문자의 취합도 이루어져 1899년에 아들 유지호와 문인 유정호 등이 주도하여 간행을 한 듯하다. 본집은 원집 36권, 속집 12권, 부록 5권 합 27책으로, 서(序)와 발(跋)은 없다. 권2~16은 서(書)이다. 권17~21은 잡저이다. 그중에서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은 격물치지의 중요성과 차서를 밝힌 글로서, 학문을 하되 격물치지의 방법을 쓰지 않으면 이단에 빠지게 되고, 선후의 차서를 알지 못하면 잡박(雜博)하게 될 뿐임을 말하였다. 권23은 발(跋), 자사, 명(銘), 뇌문이다. 발로는 외손 김대수(金大銖)가 20세가 넘었는데도 학문에 뜻을 두지 않아 ≪대산실기(大山實紀)≫ 중에서 초학자에게 해 주는 말을 뽑아 주며 지은 지학첩(志學帖)에 대한 제후(題後)이다.
▶정재집(靜齋集) | 이담명(李聃命, 1646~170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정재(靜齋)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세기 후반에 활자로 초간한 후, 종10대손 강진(綱鎭)이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부친 원정(元禎)의 ≪귀암집(歸巖集)≫과 함께 1937년 칠곡 경암재(景巖齋)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고,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은 시(詩)와 소(疏)로서, 시는 만시가 절반을 차지한다. 권2~3 은 소(疏)이다. 소는 관직생활 중에 올린 사직소가 대부분으로 시기별로 배열되었으며, <논수포시재소(論收布試才疏)>는 양병과 시재(試才)에 대한 의견을 상달한 것이고, <낙빈서원청액소(洛濱書院請額疏)>는 박팽년의 후손이 사육신을 함께 향사하다가 지역유지들과 의논하여 사당을 세워 배향하게 되었으니, 특별히 낙빈서원(洛濱書院)에 사액을 내려주기를 청한 상소이다. 권4는 계사, 함사, 유서, 장(狀), 서(書)이다. 권5는 잡저, 축문, 제문, 묘지 등이고 권7~8은 부록으로, 만사는 이현일(李玄逸) 등이 지은 것이고, 묘갈명은 유치명(柳致明), 영사비명(永思碑銘)은 배정휘(裵正徽)가 지은 것이다.
▶정좌와집(靜坐窩集) | 심조(沈潮, 1694~175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좌와(靜坐窩) 심조(沈潮, 1694~17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1756년 산정한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하고 부록문자를 증보한 괘인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4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절반가량은 만시(輓詩)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강학의 과정에서 지은 것으로 도학적 색채가 농후하다. 권2~8은 서(書)로, 한원진(韓元震), 이간(李柬) 등에게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경전의 난해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질정을 구하는 내용, 태극도설에 대한 논의, 성리설과 예설에 대해 답하는 내용, ≪예기≫, ≪대학장구≫, ≪중용장구≫ 등에 대한 문목에 답하는 것 등이다. 권9~11은 잡저이다. 그중에서 <서경차의(書經箚疑)>는 ≪서경≫에 보이는 기삼백(朞三百)과 천체의 둘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며, <중용차의>는 ≪중용장구≫의 난해처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내용으로 총 8조목이다. 권12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제(題) 등이고 권13~14는 잡지이다. 권말에 세계도, 연보, 아들 낙현(樂賢)이 지은 가장, 김근행(金謹行)이 지은 행장, 족손 기택(琦澤)이 지은 묘지명이 있다.
▶정허당집(靜虛堂集) | 홍주세(洪柱世, 1612~166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정허당(靜虛堂) 홍주세(洪柱世, 1612~1661)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만종(萬宗)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0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상ㆍ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남구만(南九萬)의 서문이 있다. 권상은 시체별 시로, 칠언시가 비교적 많으며, 내용은 차운시와 영물시(詠物詩)가 많은데, 작품수가 적어 저자의 시세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제벽(題壁)>은 저자가 시인으로 명성을 드날리게 된 시이다. 권하는 서(序), 발(跋), 기(記), 서(書), 잡저(雜著), 제문(雜著), 묘지명(墓誌銘), 부록(附錄)이다. 특히 잡저(雜著)의 <종남문답(終南問答)>은 종남산(終南山) 아래 거처하면서 천지음양(天地陰陽)ㆍ소식영허(消息盈虛)의 이치, 예악명물(禮樂名物)ㆍ의장도수(儀章度數)의 문장, 고금사변(古今事變)ㆍ치란흥망(治亂興亡)의 연유, 인물출처(人物出處)ㆍ현부시비(賢否是非)의 구분 등을 과객(過客)이 질문하고 저자가 대답하는 식으로 자세히 논한 글이다. 부록의 <시종아(示宗兒)>는 아들 홍만종(洪萬宗)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권면한 글이다. 권말에는 임방(任埅)의 발문이 실려 있다.
▶정헌집(定軒集) | 이종상(李鍾祥, 1799~1870)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 1799~187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30년이 지난 1899년 겨울 경주(慶州) 지역의 사류(士類)들에 의해 문집의 편간이 논의되고, 저자의 종자 재령(在齡)이 저자의 행적을 수집하여 저자의 문인이자 사위인 이만윤(李晩胤)에게 연보를 부탁하였다. 이 연보가 문집에 편차된 뒤 1900년 경주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2는 소(疏), 계(啓), 책(策), 서(書)이다. 서는 유후조(柳厚祚), 조두순(趙斗淳) 등에게 보낸 것이다. 유후조에게 보낸 편지는 병인양요 이후의 것으로 보이는데, 양이(洋夷)들이 물러갔지만 대비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조두순에게 보낸 것은 백성들의 피폐한 사정을 알리는 편지 및 조금이라도 결가(結價)를 증액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팔도에 관문(關文)을 돌리라는 것과 내년부터 환모(還耗)를 받을 때 백성들의 사정에 따라 곡식이나 돈으로 걷자고 제안하는 편지이다. 권말에 세계도(世系圖)와 부록(附錄)인 연보(年譜)가 있으며, 연보 끝에는 문집의 간행경위를 알 수 있는 사위 이만윤이 쓴 후기(後記)가 있다.
▶제봉집(霽峯集) | 고경명(高敬命, 1533~159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편수록본(自編手錄本)의 형태로 사후에도 아들 고용후(高用厚)에 의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고용후의 <남선인유고유감(覽先人遺稿有感)>에, 저자가 의병으로 출전하면서 평소 저술한 시문을 맡겼고, 이후 고용후는 정유재란 중에도 등에 지고 다니며 간직해 왔다고 한다. 1614(광해군6) 이항복(李恒福)에게 산정(刪定)과 편차(編次)를 부탁하고 서문도 받아 1616(광해군8) 남원 부사로 부임하자 시 외에 약간의 문을 더 수집하여 유집(遺集) 1권으로 편차한 뒤 1617(광해군9) 원집과 유집, 속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리고 속집은 원집과는 별도로 유근(柳根)이 가려 뽑은 약 42수 가량의 시를 간행시 속집으로 편차한 것인데, 판식과 글자체가 원집과 약간 달라서 판하본(板下本)이 달리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집은 원집 5권과 유집 1권, 속집 1권 합 6책으로, 권수에는 이항복의 서문이 있고 말미에 유근의 발이 실려 있으며 목록은 없다. 원집 5권은 전체가 모두 1100여 수의 시로 시체의 구분 없이 연도별로 배열되어 있고, 속집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제산집(霽山集) | 김성탁(金聖鐸, 1684~1747)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의 문집이다. 아들 김낙행(金樂行)이 유문을 수습하고 정리하였으나 정사도 하기 전에 졸하였다. 이후 조카 김도행(金道行)의 주도 아래, 1780년 저자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유관현(柳觀鉉)의 아들 유도원(柳道源), 유장원(柳長源) 등의 편차와 교정을 거쳐 16권 8책으로 만들어졌지만, 문집의 간행은 1795년 손자 김시전(金始全)의 호소와 채제공(蔡濟恭)의 협조로 저자의 신원과 복관이 행해진 1801년에야 재용을 마련하여 아들 김낙행의 문집과 함께 목판으로 간행되어 반질한 후 목판은 세거지인 안동 경산재(景山齋)에 보관되었다. 1881년 경산재의 화재로 책판이 소실되자 1893년 후손과 영남의 사람들이 원집 18권 9책, 부록 1책, 합 10책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16권, 연보, 부록 합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목록이 달려 있고 서발은 없다. 별책엔 연보와 부록이 있다. 연보는 숙종 10년 저자가 태어난 해부터 순조 30년 개장 때까지의 기록이다. 부록은 종자 김도행(金道行)이 기록한 유사, 채제공이 지은 묘갈명, 권덕수(權德秀) 등이 지은 제문과 만사 등이다.
▶제암집(制庵集) | 정상리(鄭象履, 1774~184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제암(制庵) 정상리(鄭象履, 1774~1848)의 문집이다. 아들 민각(民覺)이 난고(亂藁)를 수습하여 정사(淨寫)하고 손자 선우(善愚)가 재종질 민병(民秉)에게 유사와 교정을 받고, 유후조(柳厚祚)에게 서문을 받아 1873~1876년경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유후조가 1869년에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 앞에 권1~2 목록이, 권3 앞에 권3~4 목록이, 권5 앞에 권5~6 목록이, 권7 앞에 권7~8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 만사(挽詞)이다. <쾌륙아만사(快戮阿瞞詞)>는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서 건륭제(乾隆帝)가 조운선의 계속된 파선으로 원인을 찾던 중에 장하(漳河)의 수원(水源)에서 조조(曹操)의 무덤을 발견하고는 그 시신을 참시하고 유비와 제갈공명의 사당을 세운 일을 읽고 지은 것이다. 권5는 서(書), 잡저이다. <의여고산서당산장서(擬與高山書堂山長書)>는 ≪대산실기(大山實記)≫ 문인록의 명조(名祖) 현주(懸註) 부분에 유성룡과 김성일(金誠一)의 이름을 직서(直書)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이다. 권미에 저자의 재종질 민병이 1873년에 지은 후지(後識)가 있다.
▶제암집(濟庵集) | 김종섭(金宗燮, 1743~179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제암(濟庵) 김종섭(金宗燮, 1743~1791)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서발(序跋)이 없어 편찬(編纂) 및 간행경위(刊行經緯)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저자의 아들 경진(經進)이 수집(收集) 편차(編次)하고 저자의 백형 종덕(宗德)이 교감(校勘)한 고본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詩體)와 관계없이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간혹 달려 있다. 권6의 뒷부분~7은 잡저(雜著), 설(說), 발(跋), 잠(箴), 묘지명(墓誌銘)이다. <독박남야갑을록차록(讀朴南野甲乙錄箚錄)>은 주자(朱子)가 장식의 인설을 논한 것을 일찍이 이상정(李象靖)이 변설한 적이 있는데 박손경(朴孫慶)의 갑을록(甲乙錄)을 읽고 이상정이 오인한 부분을 발견해 다시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에 근거해 변증한 것이다. 책문(策文)은 맹자(孟子)의 정통성, 퇴계학(退溪學)의 의의, 미발시(未發時)의 공부, 경재잠(敬齋箴)과 공구근외(恐懼謹畏), 복괘(復卦)의 천지지심(天地之心)에 관한 것이다.
▶제월당집(霽月堂集) | 송규렴(宋奎濂, 1630~170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제월당(霽月堂) 송규렴(宋奎濂, 1630~1709)의 문집이다. 신임옥사 때 유배지에서 졸한 송상기(宋相琦)의 부친으로, 70세 이후 10년간 한거하는 동안 시문을 정리하여 유고 약간 권을 남겼고, 이것을 아들 송상기가 1723년 신임옥사에 연루되어 죽기 전에 행장을 지으면서 다시 수습,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현손 송기정(宋基鼎)은 원본에서 산일되고 남은 시(詩), 부(賦), 장소(章疏) 및 산문들을 수집하여 원집 7권으로 편차하고, 아들 송상기의 행장, 박필주(朴弼周)의 신도비명, 이교악(李喬岳)이 제진한 치제문과 기타 만사 등을 부록으로 만들어서 김상휴(金相休)의 질정을 받아 1819년 목활자로 원집 7권, 부록 합 4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록이 있고, 서문은 없다. 권1~3은 사(辭), 사(詞), 시로 시기는 갑술환국 이후, 잠시 중앙 관직에 나올 때, 한거하던 시절로 구분된다. 권4~6은 소(疏), 계(啓)이고, 부록은 김유(金楺)가 제진한 미호서원철향제문(渼湖書院腏享祭文), 만사이고, 권말에 현손 송기정의 발문이 실려 문집 간행의 시말을 알려주고 있다.
▶제정집(霽亭集) | 이달충(李達衷, 1309~138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제정(霽亭) 이달충(李達衷, 1309~1385)의 문집이다. 문집(文集)은 조선 세종조에 손자 이영상(李寧商)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춘천에서 간행되었다. ≪고려사 열전≫에 문집이 널리 유전(流傳)되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윤회(尹淮)의 발문(跋文)만이 ≪동문선≫ 등에 전하고 있다. 이후 후손 이덕배(李德培)가 ≪동문선≫과 ≪여지승람(輿地勝覽)≫ 등에서 유문(遺文)을 집일(輯佚) 편차하고, 이호신(李祜新)ㆍ이철신(李喆新) 형제가 문선(文選)ㆍ풍아(風雅) 등에서 철습(掇拾) 보완한 뒤, 1836년(헌종2) 후손 이벽수(李璧秀)가 개본(改本)과 정사(淨寫)를 거쳐 태백산 부석사(浮石寺)에서 간행하였고, 1918년에 영주(榮州)에서 이를 후쇄(後刷)하였으며, 1939년에 이순영(李舜榮) 등이 원주(原州)에서 연활자로, 1965년에는 후손 이재길(李宰吉) 등이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헌집(霽軒集) | 심정진(沈定鎭, 1725~178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제헌(霽軒) 심정진(沈定鎭, 1725~1786)의 문집이다. 생전에 정리해둔 자편고(自編稿)를 저자의 우인(友人)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 조경(趙璥)이 1786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本集)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序文)이나 부록(附錄) 등은 없으며, 목록(目錄)은 각 권의 앞에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감초안작(感初鴈作)>은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학업을 이루려는 청운의 꿈을 담은 내용이고, <백전가(栢田歌)>는 잣을 공물로 바치는 회양현(淮陽縣) 백성들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북청(北靑)에서 이항복(李恒福)의 유적지와 여진족(女眞族)의 유허를 둘러보고 지은 <숙신유허잡영(肅愼遺墟雜詠)>이 있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경학(經學)에 대한 주장을 담은 <중용귀신설(中庸鬼神說)>과 <역설(易說)>이 있고, 귀먹고 말 못하는 이철(已鐵)이 오히려 장애를 통해 도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쓴 <농눌자이철전(聾訥者已鐵傳)>이 있다. 말미에는 심재진(沈載鎭)과 오재순(吳載純)이 1786년에 쓴 발문 2편이 목판으로 판각되어 첨부되어 있다.
▶제호집(霽湖集) | 양경우(梁慶遇, 1568~162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 1568~1629)의 문집이다. 저자는 60세가 되던 1627년에 쓴 자편발문(自編跋文)에서 정사용(鄭士龍)의 예를 들면서 자신도 기력이 쇠하여 더 이상 시를 지을 수 없을 것이라 하고, 그동안 지었던 시문을 산절(刪節)하여 시 2책, 문 1책으로 정리한 뒤 아들에게 정서(淨書)하게 하여 후사에게 남겨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후 남들의 부탁으로 짓게 될 시들은 속집으로 편차할 것이라는 계획까지 밝혀 두었다. 손자 양도(梁燾)가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부친 양진핵(梁振翮)의 ≪이촌집(伊村集)≫을 부집한 뒤 김상헌(金尙憲)과 김류(金瑬)의 서를 받아 1647년에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외에 10권 4책의 필사본이 전해지는데 초간본에 비해 시문의 양이 많아졌고 편차도 약간 달리하고 있어 초간 이후 재간을 위해 다시 수집 정리된 사본인 듯 하나 그 서사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시 8권, 문 3권의 원집과 시 1권, 문 1권의 속집 총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서 두 편이 실려 있으며 목록은 없다. 전체적으로 문체를 기준으로 분권하였기 때문에 각 권의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조암집(槽巖集) | 조창기(趙昌期, 1640~167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조암(槽巖) 조창기(趙昌期, 1640~16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정례(正禮)가 저자의 상소를 모은 ≪조사간봉사(趙司諫封事)≫를 1711년 봉화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후, 증손 덕상(德常)이 새로 수집한 시문과 함께 재편하여 1761년 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목록이 있다. 권1은 해서록(海西錄)으로, 수록된 시들은 1671년에서 1672년까지 황해도 도사로 있던 시기에 지은 것이다. 소재는 계절의 변화, 지인들의 방문과 전송, 명승지 유람, 관직 생활의 감회 등 다양하다. 권2는 기(記), 서(書), 주의, 소(疏)이다. 권3은 소(疏), 전(箋), 책(策)이다. 상소는 황해도 도사 때 올린 <청대소(請對疏)>와 <무주부사시진소회론성무소(茂朱府使時陳所懷論城務疏)>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직소이다. <사지평겸진소회소(辭持平兼陳所懷疏)>는 1672년 사헌부 지평에 임명된 것을 사양하며 정치의 요체를 6조목으로 진언한 글이다. 권4는 부록으로 제문, 유사, 행장 등이고 권말에는 종자 정례가 ≪조사간봉사≫를 간행할 때 지은 지(識)와 증손 덕상(德常)의 발이 있다.
▶조암집(照菴集) | 정해필(鄭海弼, 1831~188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조암(照菴) 정해필(鄭海弼, 1831~18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장자 유원(逌源)이 유문(遺文)을 수습하고 송병선(宋秉璿)에게 산정(刪定)과 서문(序文)을 부탁하여 정리하였고, 이후 1903년 저자의 장손 운목(雲穆)이 선조 정철(鄭澈)의 ≪송강집(松江集)≫에 장자 정기명(鄭起溟)의 유고(遺稿) ≪화곡유고(華谷遺稿)≫를 부각(附刻)했던 고사를 따라 저자의 장자 유원의 ≪국일유고(菊逸遺稿)≫를 부집(附集)하여 활자로 문집을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송병선이 1900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으며 권별로 권목(卷目)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조부와 부친의 시 및 사우들의 시에 차운한 것,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등 선유(先儒)의 시에 차운한 것, 그때그때의 감회를 읊은 시, 만시 등이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편차되어 있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혼서(婚書), 잡저(雜著)이다. 권8은 부록(附錄)으로 송병선이 1901년에 지은 행장(行狀), 송근수, 송병선, 정해조, 송병순이 지은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조은집(釣隱集) | 한몽삼(韓夢參, 1589~166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1589~16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5대손 응익(應益)이 가장고본(家藏稿本)을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780년경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안정복이 1780년에 쓴 서문과 세계도(世系圖)가 있고,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붙어 있다. 권1은 고시(古詩),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와 율시(律詩)로 시체별(詩體別)로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고, 대략 저작 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서정시나 차운시(次韻詩)보다 만시(輓詩)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권2는 서(書), 서(序), 발(跋), 제문(祭文)이다. 특히 서간이 1편뿐인 것으로 보아 저자의 유문(遺文)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서는 이시분(李時馩)에게 보낸 답장인데,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의 학문과 절의를 선양할 방도를 논의하였다. 권3은 행장(行狀), 비지(碑誌), 잡저(雜著)이고 권4는 부록(附錄)으로 행장(行狀), 갈명(碣銘), 만사(輓詞), 제문(祭文), 봉안문(奉安文) 등이 실려 있다.
▶족수당집(足睡堂集) | 홍인모(洪仁謨, 1755~181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족수거사(足睡居士) 홍인모(洪仁謨, 1755~1812)의 문집이다. 1824년에 저자의 아들들인 석주(奭周), 길주(吉周), 현주(顯周)가 유문 중에서 시(詩)와 문(文) 약간 편을 편정하고, 모친의 ≪영수합고(令壽閤稿)≫를 함께 실어 전사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總目)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연대순으로만 수록되어 있고 14세가 되던 1768년부터 1806년까지 지은 것이다. 권3~4는 시(詩), 사(辭)이다. 1807년부터 1811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서흥 부사(瑞興府使) 재임 중에 지은 것이 많다. 잡영(雜詠)이 많으며 당시(唐詩)를 모의하여 지은 것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또 세 아들 석주, 길주, 현주와 차운한 시가 많다. <연구(聯句)> 2편 중 첫 번째 시는 저자와 처 영수합 서씨, 세 아들이 함께 지은 것이고, 두 번째 것은 영수합 서씨와 함께 지은 것이다. 권5는 서(書), 서(敍), 잡저(雜著), 제문(祭文), 경의(經義)이다. 권미에는 1824년에 아들 길주와 현주가 쓴 발문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존양재집(存養齋集) | 송정렴(宋挺濂, 1612~168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존양재(存養齋) 송정렴(宋挺濂, 1612~1684)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지식(之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연보 등 부록을 증보하여 이근옥(李根玉) 등이 1901년 합천 신천서당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 사(辭)이다. <술회부(述懷賦)>는 1637년에 지은 것으로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간신이 나라를 그르치는 시국에 비분강개하고, 족숙인 송치원(宋致遠)과 종제 정속(挺涑)이 재능을 펴지 못함을 위로한 부이다. 권2는 소(疏), 책(策), 논(論)이다. 권3은 서(書), 기(記), 서(序), 잠(箴), 제문이다. 권4는 축문, 행장, 묘갈명이다. 부록 권1에는 연보, 아들 지식이 쓴 행장, 묘갈명, 묘지명, 유사가 실려 있고, 말미에는 후지가 붙어 있다. 권2에는 만시, 제문, <고암서원봉안문(古巖書院奉安文)>, <신천서원봉안문(新川書院奉安文)>, <신천서원상량문(新川書院上樑文)>, <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이 실려 있다. 권말에 허전(許傳)이 지은 발이 있다.
▶존재집(存齋集) | 이휘일(李徽逸, 1619~167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1619~1672)의 문집이다. 일찍부터 거업(擧業)을 포기하고 성리학과 역학에 전념하였으나 저술은 많지 않다. 1672년(현종13) 연보 기사에 이현일이 존재선생(存齋先生) 행장을 찬하고 홍여하(洪汝河)에게 지명(誌銘)을 부탁하고, 사자(嗣子) 이의(李檥)이 유문을 수집, 편차하였다고 한 걸로 보아 아들 이의(李檥)의 주도하에 유문의 수집과 편차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의가 1685년(숙종11)에 죽음으로 인해 무산되고, 유문은 이현일(李玄逸)이 보관해 오다가, 1694년(숙종20) 권해(權瑎)의 서문을 받아 간행을 준비하였으나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하고 이현일이 북쪽으로 유배되어 다시 무산되었다. 다만 본집의 내용 중에 인산서원(仁山書院) 봉안문(奉安文)을 통해 저자가 서원에 제향된 시기가 1696년(숙종22)이므로 이즈음에 서원의 유생이 중심이 되어 저자의 유문을 습유(拾遺)로 붙여서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권두에 권해의 서문과 함께 총목이 실려 있다. 권1~6은 저자의 시문이 문체별로 실려 있으며, 권7은 습유, 권8은 부록으로 되어 있다.
▶존재집(存齋集) | 위백규(魏伯珪, 1727~1798) | 권책수 : 12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의 문집이다. 1801년에 아들 위도립(魏道立)과 조카 위도한(魏道僩)이 가장되어 있던 유고를 수습 정리하고 존재목록을 작성하였고, 후손 위병석(魏炳錫)과 족손 위영복(魏榮馥)이 일족과 함께 문집을 간행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에 위의 위도립 등이 정리한 유고를 임헌회(任憲晦)에게 맡기어 편차와 교정을 부탁하고 서문을 받은 뒤 부록을 첨가하여 1875년 목활자로 24권 12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 총 24권 1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875년에 쓴 임헌회의 서문이 있으며, 이어서 총목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7세 때 지은 <영성(詠星)>을 비롯하여 <매운(梅韻)> 16수는 매화를 읊은 연작시 등이 있다. 권2~3은 상소 3편인데, 그중에 권2는 전체가 유명한 <만언봉사(萬言封事)>로 저자가 정현신보(政絃新譜)의 저술 이후 계속 연구해왔던 각종 폐단과 그 시정 방법을 총괄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저자의 사회 개혁 사상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글 등이다. 끝으로 권24는 부록으로 저자 생전에 정조의 소명과 지우를 받았던 기록이 일부 발췌되어 있다.
▶존재집(存齋集) | 박윤묵(朴允默, 1771~1849)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 1771~1849)의 문집이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이루어진 괘인사본으로, 저자 생존 시에 편차한 자편고를, 저자 사후에 아들들이 만년의 작품들을 보충 정리하여 완성한 것이다. 서문은 1836년 최면(崔沔)이 썼고, 필사는 세 아들 박기복(朴基福)ㆍ박기호(朴基祜)ㆍ박기조(朴基祚)가 분담하였는데, 각 책 끝에 작은 글씨로 등사자가 표시되어 있다. 본집은 26권 1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최면의 서문이 있고, 권미에 박기수(朴綺壽)의 발(跋)이 있으며, 권별 목록이 있다. 권1 앞부분 부(賦)는 <이조부(異鳥賦)>, <춘조부(春鳥賦)>, <추려부(楸廬賦)>이다. 권1 중간부터 권22까지 2,600여 제의 시가 실려 있는데, 주로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지어 “맑고 깨끗하며 참신하다.”, “간결하고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26은 부록으로, 김주교(金周敎)의 행장, 서준보(徐俊輔), 권대긍(權大肯) 등의 만사 7편, 윤정현(尹定鉉)의 묘갈, 서준보의 묘지명이 실려 있고, 추록은 저자 사후 1880년에 아들 박기복이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자 법전에 의거하여 내려진 추증 교지이다.
▶졸고천백(拙藁千百) | 최해(崔瀣, 1287~134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존경각
고려 말 졸옹(拙翁) 최해(崔瀣, 1287~1340)의 문집이다. 김태현(金台鉉)의 문인으로 이제현(李齊賢)ㆍ민사평(閔思平) 등과 교유하였으며 나려(羅麗) 명현의 시문을 뽑아 ≪동인지문(東人之文)≫ 25권을 편찬하였다. 1354년(공민왕3) 진주(晉州)에서 초간되어 1질(帙)이 일본 존경각(尊經閣)에 소장되어 있다.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의하면 정국경(鄭國徑)이 전라도 안찰사로 있을 때, 민사평(閔思平)의 부탁으로 ≪동인지문(東人之文)≫과 ≪졸고(拙藁)≫를 받아 간행하였는데, 이 판본의 간행 경위는 알 수 없으며, 곽충수(郭忠守) 등이 간행한 현존 진주본(晉州本)과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그 후 1930년에 일본(日本) 동경(東京) 육덕재단(育德財團)에서 1354년 초간본을 존경각(尊經閣) 총간으로 영인하였다. ≪졸고천백(拙藁千百)≫ 2권에는 저자의 시(詩)는 실려 있지 않고, 서(序)ㆍ기(記)ㆍ묘지명(墓誌銘) 등 43편의 문(文)만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354년 진주개판(晉州開板) 때의 간기(刊記)가 있다.
▶졸수재집(拙修齋集) | 조성기(趙聖期, 1638~1689)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1638~1689)의 문집이다. 아들 조정례(趙正禮)가 수습하여 시문을 활자로 대략 1690년대에 간행하였고, 분량은 저자에 대한 부록문자가 수록되지 않은 11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710년 조정례는 봉화 현감으로 재임하면서 저자의 행장, 묘지 등 부록문자를 권12로 편차하여 봉화현에서 목판본 12권 6책의 중간본을 간행하고 태백산 각화사에 판목을 보관하였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맨 앞에 총목차가 있으며, 권1, 권2에는 각기 권목차가 있고, 권3~12는 두 권씩 묶여져 책별로 목차가 실려 있다. 각 책마다 ‘태백산사고장(太白山史庫藏)’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권1~2는 시 500수로 임영(林泳), 김창흡(金昌翕) 등에게 준 증시, 병화, 국화 등 꽃을 읊은 시가 실려 있다. 권11은 잡저(雜著)로 퇴계와 율곡의 사단칠정, 인도(人道), 이기설(理氣說)에 대하여 저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인데, 40세경에 다시 읽어보니 자신의 이론에 부족함이 많음을 알았다는 내용의 후지가 첨부되어 있다. 권미에는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졸옹집(拙翁集)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졸옹(拙翁) 홍성민(洪聖民, 1536~1594)의 문집이다. 당대의 문장(文章)으로 평소에 지은 저술이 많았으나 1591년(선조24) 신묘사화(辛卯士禍)로 유배되고, 이어 임진왜란으로 인해 원고가 대부분 유실되었지만, 말년에 과거에 지은 시문(詩文) 900여 편을 기억을 더듬어 기록해 놓은 유고(遺稿)가 가장(家藏)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아들 홍서익(洪瑞翼)이 편차(編次)하고, 1631년(인조9) 손자 홍명구(洪命耈)가 안동부사(安東府使)로 부임하여 부친의 편차본을 교수(校讎)하여 목판본으로 10권을 간행하였다. 이후 1633년(인조11) 경상도 관찰사로 나오자 초간본 판본의 결획(缺劃)과 오류를 교정하고, 1634년(인조12) 장유(張維), 김상헌(金尙憲), 조희일(趙希逸)의 서발에 자신의 발을 붙여 보각후쇄(補刻後刷)하였다. 문집은 총 10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5는 시로, 칠언절구 중에는 도잠(陶潛), 양웅(揚雄), 문천상(文天祥) 등 역대의 중국 인물을 주제로 지은 연작시 35수가 있다. 권6은 조(詔), 대(對), 설(說), 논(論), 전책(殿策)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미에 김상헌의 서(敍)가 실려 있다.
▶졸은유고(拙隱遺稿) | 이한보(李漢輔, 1675~174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졸은(拙隱) 이한보(李漢輔, 1675~1748)의 문집이다. 본집은 1788년 손자 반(磐), 강(矼) 등이 저자의 자편 원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나은집(懶隱集)≫, ≪경연당집(景淵堂集)≫, ≪하정집(芐亭集)≫과 함께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시는 저자의 초년작부터 말년작까지 비교적 온전히 수록되었다. 권2~8은 문(文)으로, 문체에 관계없이 시기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의 <잡록서(雜錄序)>와 <서제(序題)>는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여 사고(私稿)를 엮고 소감을 적은 글이다. 권3은 대부분 예제에 대한 친지들의 질문에 답하는 서간이고 권4는 상제에 관한 의견을 피력한 글이다. 권5~6은 서(序), 발(跋), 행장, 행록, 실기 등이다. 권7은 ≪심의통편(深衣通編)≫의 서(序), 후설, 도설(圖說), 그리고 부록과 속록의 발이다. ≪심의통편≫은 심의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한데 모은 책이다. 권8은 저존록(著存錄)으로, 가묘의 운용과 제례의 절차 등을 규정한 저술이고, 예서(禮書)를 참고하고 가문에서 행해지는 독특한 관례를 반영하였다.
▶졸재집(拙齋集) | 유원지(柳元之, 1598~1674)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졸재(拙齋) 유원지(柳元之, 1598~1674)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종춘(宗春)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1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권두에 서문은 없고 문집 전체에 대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의 구분 없이 1621년부터 1673년까지 지은 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작품 중에 <현재유회시아(縣齋有懷示兒)>는 1656년 진안 현감으로 있으면서 고향에 있는 자식들에게 조고의 유지를 받들어 충효에 힘쓸 것을 당부하며 지어 준 것이다. 권3~4는 소(疏)이고 권5~9는 서(書)이다. 권10~11은 잡저이다. 특히 <진북계성리자의설후변(陳北溪性理字義說後辨)>은 진순(陳淳)의 <성리자의(性理字義)>를 읽고 의문나는 점을 기록한 것으로 1672년에 지은 것이고 <화담집(花潭集)>, <율곡집(栗谷集)>, <여헌집(旅軒集)>, <우복집(愚伏集)>을 읽고서 든 의문점이나 생각을 정리한 독서 후기가 몇 편 있다. 권12는 잡저, 서(序), 기(記)이고 권14는 묘갈, 묘지, 행장이다. 권말에는 저자의 5대손 유종춘(柳宗春)이 1791년에 쓴 발문이 있다.
▶좌소산인집(左蘇山人集) | 서유본(徐有本, 1762~182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대판부립중지도도서관
조선 시대 좌소산인(左蘇山人) 서유본(徐有本, 1762~1822)의 문집이다. 서발문이나 사기(寫記) 등의 관련 기록이 없어 명확한 편사(編寫) 경위를 알 수 없고, 다만 괘인지(罫印紙) 판심 하단 우측에 필사되어 있는 ‘풍석암서옥(楓石庵書屋)’이, 서유구가 1837년 ‘자연경실장(自然經室藏)’ 괘인지를 쓰기 전까지 사용하던 것으로 보아, 1837년 이전에 동생 유구가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문집이 8권 4책의 분량임에도 문체를 시(詩)와 문(文)만으로 간단히 구분한 점과 편집을 수정하려는 흔적이 일부 보이는 점, 오자는 붉은 글자로 정정하고, 종이를 덧붙어 새로 정서한 곳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정고본(定稿本)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3은 문(文)으로 모두 서(書)이다. 수신자는 김영(金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안사람이며 내용은 주로 상례에 관한 것이다. 권4는 문으로 서(書)와 변(辨)이다. 권8은 문이다. 1794년에 쓴 <진주순난제신전(晉州殉難諸臣傳)>은 집전(集傳)으로 김시민(金時敏), 최경회(崔慶會) 등이 진주성을 지키고 나라를 방어한 것과 진주성 싸움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주천유고(舟川遺稿) | 강유선(康惟善, 1520~154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주천(舟川) 강유선(康惟善, 1520~1549)의 문집이다. 1550(명종5) 30세의 나이에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지 못했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강복성(康復誠)이 정리하고, 평안도 관찰사 한준겸(韓浚謙) 등이 1607(선조40) 선천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강복성은 1610(광해군2)에 전주 부윤으로 있으면서 친구 이호민(李好閔)에게 본집의 인본(印本)을 보내 서문을 받았으나 추각(追刻)되지는 않았다. 문집은 원집과 부록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과 발문은 실려 있지 않으며, 간행 이후에 이호민이 쓴 서문은 그의 문집 ≪오봉집(五峯集)≫에 들어 있다. 원집에는 시, 사, 부, 조문, 제문, 묘비명, 서(序), 설, 서(書), 소, 기, 논이 실려 있다. 시 가운데 <견덕양유고유감증인(見德陽遺稿有感贈人)>은 기묘사림 기준(奇遵)의 문집을 보고 기묘년의 사화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주봉설(酒蜂說)>은 술잔에 빠져 죽은 벌을 비유로 들어 자신이 죽는 길인데도 욕심 때문에 물러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경계한 글이다. 인종에게 올린 상소에는 조광조(趙光祖) 등 기묘사림의 신원을 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죽남당고(竹南堂稿) | 오준(吳竣, 1587~166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남(竹南) 오준(吳竣, 1587~1666)의 문집이다. 시문은 저자 사후 20여 년 뒤 외손 이봉조(李鳳朝)가 1689년(숙종15) 간성(杆城) 군수(郡守)로 있을 때, 본가(本家)의 초고(草稿) 및 가장(家藏) 장첩(粧帖) 원본(元本) 등을 수습하고 그동안의 견문(見聞)을 참고하여 시문 712수와 부록을 합하여 13편 175장이 되는 것을 간행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원집 12권과 부록 합 3책의 목판본을 말하는 것으로 목록과 발문(跋文)을 제외하면 모두 175판이다. 본집은 원집 12권, 부록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없고 맨 앞에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8은 시 460여 제(題)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칠언배율, 오언고시, 칠언고시를 각기 1권씩으로 편차하였는데, 칠언율시가 가장 많아 상하로 나누어 놓았고 상에는 여러 차례 심양(瀋陽)을 다녀오면서 지은 시들이다. 오언배율에는 인조와 효종의 만시(挽詩)와 정두경(鄭斗卿), 이명한(李明漢)과 나눈 시가 있다. 부록은 만사(挽詞) 21편으로, 이경석(李景奭) 등이 지은 것이고, 권말엔 외손 이봉조의 발이 붙어 있다.
▶죽당집(竹堂集) | 신유(申濡, 1610~1665)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당(竹堂) 신유(申濡, 1610~1665)의 문집이다. 본집은 계자 선함(善涵) 등이 저자가 1659년에 자편한 시고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689년 임상원(任相元)의 산정을 거쳐 만든 고본을, 18세기 후반에 시만을 분리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의 문과 부록을 합부한 것이다. 본집은 15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저자가 1659년에 쓴 서문이 있다. 권1~10은 시록(詩錄)이다. 권1은 심관록(瀋館錄), 구성록(駒城錄), 옥당록(玉堂錄)이다. 저자가 시강원 문학으로 1639년 2월에 세자를 모시고 16개월에 걸쳐 심양에 다녀오는 여정에 읊은 시, 여러 직책을 거치며 지은 시를 편차한 것 들이다. 권2~3은 해사록(海槎錄)이다. 권4~10은 은대록(銀臺錄), 연대록(燕臺錄) 등이다. 권11은 소(疏)이고 12는 제진문(製進文), 전문, 계사, 장(狀)이다. 권13은 서기(序記), 잡문, 제문이고 권14는 묘갈, 묘지, 행장이다. 권15는 부록으로,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신도비명, 1666년에 현종이 내린 제문을 지제교 이단하(李端夏)가 대작한 사제문이 실려 있다.
▶죽로집(竹老集) | 신활(申活, 1576~164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로(竹老) 신활(申活, 1576~1643)의 문집이다. 본집은 4대손 신방달(申邦達)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2년 이주원(李周遠)의 교감을 거친 후, 후손들이 순조 연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조술도(趙術道), 한치응(韓致應)의 서와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로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와 만사이다. 저자의 시에 대해 이주원(李周遠)은 ‘청일고아(淸逸高雅)’하다고 하였으며, 그 가운데 <문서보(聞西報)>, <문심양변입산서회(聞瀋陽變入山書懷)>, <탄시사술회(歎時事述懷)> 등은 병자호란 당시의 비애감을 읊은 것이다. 권2는 소(疏), 서(書), 서(序), 원규이다. 특히<계해의상봉사(癸亥擬上封事)>는 저자의 시국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1623년에 지은 장편 의소이고, <상여헌장선생문목(上旅軒張先生問目)>은 상례 중 특히 연복제에 대해 장현광에게 질의하는 글인데, 답글이 덧붙여져 있다. 권3은 기와 잡저이다. 권4는 부록으로 연보, 행장, 묘갈명, 묘지명, 봉안문, 상향축문 등이고, 끝에 이주원과 이우재(李愚在)가 지은 발이 있다.
▶죽서집(竹西集) | 이민적(李敏迪, 1625~167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서(竹西) 이민적(李敏迪, 1625~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자 전라도 관찰사 사명(師命)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685년 전주(全州)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684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序)가 수록되어 있다. 권1~3에는 소차(疏箚) 31편이 시기별(時期別)로 편차(編次)되어 있다. 그 내용은 재이(災異)로 인해 진계(陳誡)한 소차(疏箚), 구언(求言)에 응한 소차, 시사(時事)를 논한 소차이다. 이외에 걸군소(乞郡疏)는 1660년부터 1662년에 걸쳐 노모의 봉양을 위해 지방관이 되기를 청한 것이다. 권4에는 계사(啓辭), 양부(養父)인 이정여(李正輿)의 행록(行錄), 효종(孝宗) 7년에 실시된 전시(殿試)에서 장원한 정문(程文)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정문은 일명 ‘정심질욕구언육재지책(正心窒慾求言育才之策)’이라고 하는데, 당시에 효종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글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송시열은 서문에서 저자에 대해 알려면 이 대책(對策) 한 편으로 충분하다고 평하였다.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 서영보(徐榮輔, 1759~181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 1759~18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언제 누구에 의해 편차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동년 급제한 이만수(李晩秀)의 시장에 가장되어 있던 유고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본집의 필사자와 필사 연대는 불분명하다. 광곽에 교정과 편차를 위해 첨가한 글들과 교정첨지가 많이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교정고본으로 추측된다. 본집은 불분권 8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다. 각 책마다 목록이 있다. 책1은 시로, 규장각에서 숙직하며 이덕무에게 보낸 <직리원시이무관검서(直摛院詩李懋官檢書)>, 부평 오곡에 기거할 때 신위(申緯)의 방문을 받고 지은 <자하객지념삼연서(紫霞客至拈三淵書)>, 유득공의 시에 화답하는 <수유혜보검서(酬柳惠甫檢書)> 등이 있다. 책2는 시, 서(序), 발로 <송인서(送人序)>는 홍충 병영의 성첩을 보수한 공로로 특별히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떠나는 김영수(金永綬)에게 명장 척계광(戚繼光) 같은 인물이 되도록 권하는 글이다. <송극옹부연서(送屐翁赴燕序)>는 1803년에 연경으로 떠나는 이만수에게 주는 글과 시이다. 책8은 예기차록(禮記箚錄)이다.
▶죽소집(竹所集) | 김광욱(金光煜, 1580~165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소(竹所) 김광욱(金光煜, 1580~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세기 전반에 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저자의 종자 김수익(金壽翼)의 청악루유고(靑岳樓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사부(詞賦)이고, 권2~3은 모두 시로서 구성은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차운시, 전송시(餞送詩), 만시이다. 권4는 소차, 계사, 장(狀)이다. 그중 소차는 주로 맡고 있던 관직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 제주에서 공마(貢馬)를 들여온 것에 대해 해명하는 것, 인조반정 이후 적몰전답(籍沒田畓)의 조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데 대하여 해명하는 것이다. 권5는 응제문, 제문, 갈명, 일록, 보유이다. 특히 일록 중 <경란록(經亂錄)>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1636년 12월 13일부터 다시 입도(入都)하는 1637년 2월 22일까지 저자가 겪은 호란의 참상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부록(附錄)은 묘지명, 사제문(賜祭文), 제문이다.
▶죽유시집(竹牖詩集) | 구영(具瑩, 1584~166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죽유(竹牖) 구영(具瑩, 1584~166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치성(致成)과 치겸(致兼)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저자의 문인 광주 목사(光州牧使) 윤변(尹抃)과 장성 도호부사(長城都護府使) 소두산(蘇斗山) 등이 1668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된 시집으로, 권수에 송시열(宋時烈)이 1664년에 지은 시고서(詩稿序)가 있다. 권상은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그중에서 <갑신초도유감(甲申初度有感)>은 저자가 환갑을 맞은 1644년에 숭정황제(崇禎皇帝)가 사망하고 북경(北京)이 무너지자 태어나던 갑신년 당시에는 만력인(萬曆人)이었음을 대비하여 감회를 쓴 것이다. 권중은 부모를 연달아 여읜 지 1주갑이 되어 추모의 정을 읊은 시인 <계사유감(癸巳有感)> 등 오언율시(五言律詩), 오언고시(五言古詩), 만시(輓詩)이고 권하는 부록(附錄)으로 만시(輓詩), 제문(祭文),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이며 권말에 문집 간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간(主刊), 서사(書寫), 교정(校正), 각수(刻手) 등으로 구분하여 새겨 놓은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죽유집(竹牖集) | 오운(吳澐, 1540~161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유(竹牖) 오운(吳澐, 1540~161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고는 ≪율계난고(栗溪亂稿)≫라는 형태로 약간의 시문이 가장된 것을 바탕으로 7대손인 오명현(吳命顯)이 가장 ≪율계난고≫를 바탕으로 시문을 수집하고, 자편한 연보와 부록을 추가하여 초본을 편차한 후, 1783년 7대손 오사중(吳司重)이 수정하여 고본을 만들고, 이를 6대손 오후상(吳厚相)이 최흥벽(崔興璧)과 함께 다시 산정하여 만든 정고본을 8대손 오경정(吳慶鼎)이 1824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83년에 이급(李級)이 지은 서문, 이수정(李守定)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권3은 소(疏),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제문이고, 권4는 행적, 묘갈명, 묘지, 묘표, 잡저이며 권5~6은 세계도, 연보, 부록이다. 특히 세계도는 제1세 학린(學麟)부터 13세인 저자에 이르는 계보이다. 부록 상에는 광해군이 내린 사제문과 사림제문, 만사가 있고, 부록 하에는 아들 오여벌(吳汝橃)이 지은 가장, 사위 조형도가 지은 행장,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갈명 등이 있다.
▶죽음집(竹陰集) | 조희일(趙希逸, 1575~1638)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 1575~1638)의 문집이다. 아들 조석형(趙錫馨)이 거상중(居喪中)에 수습, 정리한 정사본(淨寫本)에 김류(金瑬)와 이경석(李景奭)에게 산정(刪定)을 부탁하였지만, 모두 산정을 마치지 못하고 졸하였으며, 조석형 또한 졸하여 간행을 하지 못하였다. 그 뒤 손자 조경망(趙景望)이 가장(家藏)되어 오던 정사본(淨寫本)을 바탕으로 다시 유고를 정리하여 김수항(金壽恒)에게 부탁하여 산정을 마쳤고, 이민서(李敏敍)의 서문을 받아 태인(泰仁) 현감으로 재임할 때에 5권 5책의 목판본으로 간행을 하였다. 1684년 조경망이 합천 군수로 부임하면서 초간본의 책판(冊板)을 해인사(海印寺)로 옮겨 보관하였는데, 화재로 소실되고 조경망은 1695년에 졸하였다. 그 뒤 조경망의 아들 조정만(趙正萬)이 강서(江西) 현령으로 재임할 때인 1704년에 초간본을 16권 6책으로 증보, 재편하여 강서 임소에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16권, 부록 1권, 합 6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에는 송시열의 신도비명과 당대 명사들의 제문과 만장(挽章)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증손(曾孫) 조정만이 쓴 후지(後識)가 있다.
▶죽창유고(竹窓遺稿) | 구용(具容, 1569~160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조선 시대 죽창(竹窓) 구용(具容, 1569~16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권필(權韠)이 가장된 저자의 시 94제를 가져와 자신의 시 2수를 지(志)와 함께 수록하여 1권으로 편차한 후 보관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의 생질 심장세(沈長世)가 1648년 부친 구사맹(具思孟)의 ≪팔곡집(八谷集)≫을 중간(重刊)하면서 부집(附集)으로 초간(初刊)한 후, 함경도 관찰사 정호(鄭澔)가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1704년 함흥(咸興)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의 시집으로, 권수에 1605년 권필이 지은 서(序)와 1704년 정호(鄭澔)가 지은 서(序)가 있다. 상권과 하권은 시(詩)와 습유의 시 2수를 포함해 270여 수의 시이다. 그중에서<무산잡영(巫山雜詠)>은 정유재란으로 왕자를 성천(成川)으로 배종하던 부친을 따라가, 흘골산(紇骨山) 유역에서 고향을 그리며 비류강(沸流江) 등의 풍경을 읊은 칠언 절구 10수이다. 부록에는 1602년에 권필이 지은 지(志)가 있고, 권필ㆍ이안눌(李安訥)ㆍ거천로(車天輅)ㆍ윤신지(尹新之)가 저자를 회고하면서 지은 시 7수가 실려 있으며, 1655년에 윤신지가 쓴 후지가 있다.
▶죽창집(竹窓集) | 강주(姜籀, 1566~165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창(竹窓) 강주(姜籒, 1566~165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사후에 작은아들 강백년(姜栢年)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654년 목판(木板)으로 초간(初刊)한 후, 시문(詩文)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ㆍ재편하여 1668년 목판으로 간행(刊行)되었는데, 본 문집은 1668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이다. 본집은 10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이 1654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 권말에 1668년에 지은 조경(趙絅)의 발(跋)과 1661년에 지은 허목(許穆)의 발(跋)이 실려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권1~7은 476제의 시와 부(賦) 1편이다. 권8은 서(序), 기(記), 설(說)이다. 그중에서 <타두와기(打頭窩記)>는 조금만 삼가지 않아도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 비좁은 집에서 사는 유 학사(柳學士)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슬설(蝨說)>은 미미한 이도 사람의 나태함을 경계시키고 게으름을 일깨운다는 내용이다. 권9는 교서(敎書)와 제문(祭文)이고 권10은 부록으로 김시국(金蓍國)이 지은 신도비명과 정두경이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죽천집(竹川集) | 박광전(朴光前, 1526~159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죽천(竹川) 박광전(朴光前, 1526~1597)의 문집이다. 시문은 문인인 선정달(宣廷達)이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었는데 주자서(朱子書)에 대한 질의(質疑) 1책만 따로 간행되었을 뿐 오랫동안 산정도 거치지 못한 초고 상태로 있었던 듯하다. 연보에 의하면 1739년 ‘문집성(文集成)’이라고 하여 이 시기에 저자의 후손 박봉석(朴鳳錫) 등이 편차해 성서(成書)해서 윤봉조(尹鳳朝)에게 서문을 받아 간행을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1754년 봄에 5대손 박내석(朴乃錫) 등이 불분권 1책으로 간행하였지만 전하지 않는다. 1809년에 후손 박재환(朴在煥), 박형덕(朴馨德) 등이 이후에 수집한 시문을 증보하고 범례와 연보 등의 내용을 수정하여 송치규(宋穉圭)의 고열(考閱)을 거쳐 용산서원(龍山書院)에서 4권 2책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권1~5는 저자의 시문이고 권6~9는 부록문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제문은 1610년에 저자를 좌승지에 추증할 때에 내린 제문과 1707년에 용산서원을 사액할 때에 내린 제문이다. 마지막에는 1930년에 죽곡정사(竹谷精舍)에서 간행한다는 인권지(印權紙)가 실려 있다.
▶죽천집(竹泉集)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 권책수 : 21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35권, 별집 1권, 부록 3권 합 21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1773년의 영조 어제서문이 있고, 목록은 각 권별로 실려 있다. 원집 권1~5는 부, 시(詩)이다. 권6은 기, 제, 잡저, 의(議)이고, 권7은 연주(筵奏), 의주(擬奏)이다. 연주는 대부분 청(淸)ㆍ왜(倭)와의 현안 문제와 관련한 것이고, 의주는 한(漢)나라 때의 고사 3건을 놓고 지은 것이다. 권8~10은 책문, 반교문 등이다. 권13은 서(書)로, 대부분 안부를 묻고 권면, 책려하는 내용이다. 권14~30은 소(疏), 차, 계로 각기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31은 가장으로 부친 김만기(金萬基)에 대한 것인데, 후에 추각된 부분이다. 권35는 행장, 비명이다. 맨 뒤에 민진원(閔鎭遠)이 1729년에 쓴 발문이 있다. 별집은 전(傳), 서(序), 제문, 소, 계, 묘지명 등이다. 부록은 권1에 이이명이 지은 행장, 권2에 정호(鄭澔)가 1720년에 짓고 김양택(金陽澤)이 1754년에 추록한 묘지명, 이의현(李宜顯)이 지은 묘표, 이재(李縡) 등이 지은 만시(挽詩)가 실려 있다.
▶죽포집(竹圃集) | 박기종(朴淇鍾, 1824~189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죽포(竹圃) 박기종(朴淇鍾, 1824~18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은 족질 순상(舜相)과 임상(琳相)의 부탁으로 오계수(吳繼洙)가 행장을, 이용원(李容元)이 묘갈명을 완성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문인 송영술(宋榮述), 고태주(高兌柱), 최택현(崔澤鉉)과 동족(同族) 우상(禹相), 홍상(洪相), 기용(淇龍), 임상 등이 간행을 결의하고,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시고(詩稿)와 산문을 유별로 편집한 뒤 1911년 기우만(奇宇萬)에게 서문을 받아 1912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기우만이 1911년에 지은 서(序), 권1~4까지의 목록(目錄)이 있는데 목록은 책별로 묶은 것이다. 권2는 소(疏)이다. 권4는 문(文), 발(跋)이다. 그중 부인 광산 김씨(光山金氏)에 대한 제문은 1천 3백여 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남편의 도리를 못한 회한(悔恨), 그리고 두 딸들에 대한 부모의 염려 등 신산(辛酸)한 저자의 가족사가 드러나 있다. 권말에 과방록(科榜錄), 박순상ㆍ오근후(吳根厚)ㆍ박임상이 지은 3편의 발(跋), 나경성(羅經成)이 1912년에 지은 후서(後敍)가 있다.
▶죽하집(竹下集) | 김익(金熤, 1723~1790)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죽하(竹下) 김익(金熤, 1723~1790)의 문집이다. 본집은 20권 10책의 필사본으로 각 필사본은 모두 괘인사본으로 비교적 깨끗하게 선사된 편이며, 서발은 없으나 총목과 목록이 실려 있다. 수록 작품의 순서나 편수도 모두 같으며 체제나 소주의 내용도 똑같은 걸로 보아 동일한 사본을 등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시의 소주 내용이 자주인 듯한 걸로 보아 저자가 정리해둔 시고를 바탕으로 정리된 듯하다. 소차나 연주 등의 주의류 외에 기타 저술은 적은 편이고 정밀하게 산정이 이루어진 상태는 아닌 듯하다. 문집은 2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발이나 부록 등은 없고, 권수에는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권20에는 기가 잔약해도 맥은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는 <유맥설(諭脈說)>, 민속놀이인 윷놀이의 연원을 추리하여 그 의의를 논한 <쌍사서(雙四敍)>가 있으며, 요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양보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변론한 글, 두보가 소동파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지은 팔진도시에 대해 해명했다는 일화를 다룬 <변동파소두공부변명팔진도시(辨東坡笑杜工部辨明八陣圖詩)> 등 흥미 있는 내용도 실려 있다.
▶죽헌유집(竹軒遺集) | 나계종(羅繼從, 1339~141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헌(竹軒) 나계종(羅繼從, 1339~1415)의 문집이다. 본집은 사후에 문인 이곤(李悃), 김양익(金良翼) 등이 유고와 유적 등을 수집 편차하고 주소를 달아 13권으로 만들고, 3년 뒤인 1418년 2월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가 8세손 나치학(羅致學)이 1권으로 재편한 것을 나치학의 장인 이덕수(李德秀)의 도움으로 1650년에 활자로 10질을 간행하였다. 본서는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권은 시(詩), 찬(贊), 서(書)이고, 하권은 부록(附錄)이다. 권두에 1649년에 이익성(李翼成)이 지은 중인서(重印序)가 있다. 시는 81제이며, 시체를 구분하지 않았고 대체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고, 찬(贊)은 이곡(李穀), 정가신(鄭可臣), 박형(朴衡), 최사성(崔思誠), 나익희(羅益禧), 이존오(李存吾) 등의 화상찬(畫像贊)이 있으며, 서는 12편으로, 정몽주(鄭夢周), 장예(張輗), 이집(李集), 권근(權近) 등에게 준 편지인데, 결자가 많다. 하권은 부록으로, 연보, 묘지, 행장이다. 연보는 초간본의 간행 사실까지 기록되어 있고, 묘지의 내용은 대부분 결락되어 있으며, 행장은 1418년에 길재(吉再)가 지은 것이다.
▶죽헌집(竹軒集) | 최항경(崔恒慶, 1560~163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기타 「법산세고(法山世稿)」 수록 영인본(影印本)
조선 시대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 1560~163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집안의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燒失)되고 약간 편만이 가장(家藏)되어 왔다가 1867년에 본손이 시문(詩文), 부록(附錄)을 2권으로 부집(裒輯)하여 이원조(李源祚)에게 교감(校勘)을 받고, 그 뒤에 다시 서문(序文)을 받아 4권 2책의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本集)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이원조가 지은 서문과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로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율시(七言律詩), 만(挽)이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다. 권3에는 서(書), 설(說), 제문(祭文), 잠(箴)과 부록(附錄)으로 만(挽), 제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예설(禮說)>은 정구(鄭逑)의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를 교감한 뒤에 지은 글로서, 저자의 예에 관한 견해를 볼 수 있는 글이다. 권4는 부록으로 기문록(記聞錄), 현손 최후대(崔后大)가 지은 유사(遺事)를 비롯하여 묘갈명(墓碣銘), 묘도비명(墓道碑銘) 등이 있다.
▶죽헌집(竹軒集) | 도신징(都愼徵, 1611~16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죽헌(竹軒) 도신징(都愼徵, 1611~1678)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필호(必鎬) 등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동급(李東汲)의 고정을 거친 고본을, 종8대손 전호(顓浩)가 저자의 중형 신여(愼與)의 ≪휘헌집(撝軒集)≫과 함께 1936년 달성 용호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 소이다. 시는 오언시와 칠언시가 뒤섞여 있는데, 편수가 매우 적어서 저자의 시세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내용은 지인들과 수창하거나 일상의 소소한 심정을 읊은 것이 대부분이다. <용궁읍폐소(龍宮邑弊疏)>는 1676년 용궁현의 삼정(三政)에 대해 실제 수치를 들어 그 문란한 상황과 해결책을 진달한 상소이다. 권2는 소로, <의소(擬疏)>라는 제목으로 상소의 형식을 빌려 저자의 경륜을 개진한 14항목의 글이다. 권3은 잡저, 제문, 행장, 묘갈문이다. 특히 잡저의 <금호문답(琴湖問答)>은 인선왕후의 상복문제를 계기로 당시 왕실의 예제 전반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전개한 예론에 관한 장편의 글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는 도진수(都鎭壽) 등의 후지와 판권지가 있다.
▶죽헌집(竹軒集) | 김민택(金民澤, 1678~172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죽헌(竹軒) 김민택(金民澤, 1678~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선재(善材)와 증손 준(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종제 양택(陽澤)이 1760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종질 초재(楚材)의 ≪묵재유고(默齋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천보(李天輔)가 176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조광한(趙匡漢), 이규서(李奎瑞) 등을 애도한 만시가 포함되어 있다. 권2는 소차, 달사, 영서, 비답, 서(序), 기(記), 잡저이다. 소차에는 영남 유생들을 대신하여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한 거제서원(巨濟書院)의 사액을 청한 것이 있는데 이후 반곡서원(盤谷書院)으로 사액되었다. 잡저에는 <열부상낭전(烈婦尙娘傳)>, <아자혼서(兒子婚書)> 등이 있다. 권3은 행장이고 권4는 행장, 제문, 애사, 고문, 서(書)이다. 권5는 부록으로 민우수(閔遇洙)가 1753년에 지은 행장, 이천보가 1759년에 지은 묘표이고 권말에는 족숙 김진상(金鎭商)이 1755년에 지은 발이 있다.
▶중봉집(重峰集) | 조헌(趙憲, 1544~1592)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은 안방준(安邦俊)이 봉사(封事)와 잡저(雜著) 등의 유문(遺文)을 수집하여 전집 6권으로 분류하여 편집한 다음 <항의신편(抗義新編)>이라고 제명(題名)하여 1620년경 전라 감사 유색(柳穡)과 함께 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가 수집(蒐集)한 유문은 저자의 자필(自筆)의 수고(手稿)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문건이었다. 이후 문집의 형태를 갖추어 간행을 주관한 사람은 송시열(宋時烈)로, 1639년 저자의 아들 조완배(趙完培)의 집에서 이유태(李惟泰) 등과 함께 문집의 간행을 상의하였으며, 저자의 증손이자 자신의 제자인 조광한(趙匡漢)과 함께 <유적(遺蹟)>, <동환봉사(東還封事)>, <유문(遺文)> 등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문집의 초본을 완성하여 윤선거(尹宣擧)의 교정을 거쳐 1666년 전라 감사 민유중(閔維重)이 간행하였다. 중간은 저자의 후손과 노론계(老論系)의 주도 하에 편집되었으며, 초간시 누락되었던 시문은 물론 이미 간행된 글도 모두 문집에 포함시켜 간행하였다. 문집은 권수, 원집 13권, 부록 7권 합 10책이다.
▶중산재집(重山齋集) | 이지수(李趾秀, 1779~184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중산재(重山齋) 이지수(李趾秀, 1779~1842)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손자 주익(周翼)이 수습(收拾) 정리(整理)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저자 문인(門人)들의 협조를 받아 1859년 봄에 활자(活字)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송달수(宋達洙)가 1858년에 지은 서문(序文)이 있고,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2는 소(疏), 연설(筵說)이다. 1828년 호서 유생(湖西儒生)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공이 있는 김정운(金鼎運)의 증시(贈諡)를 청하기 위해 올리려 했던 소가 있다. 권3은 서(書)이다. 조종순에게 쓴 편지에는 문(文)을 삼품(三品)으로 나누고 문이 사변(四變)하였다고 하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저자의 문예관(文藝觀)을 살펴볼 수가 있다. 권8은 부록(附錄)으로 김박연(金博淵)이 1858년에 지은 행장, 송내희(宋來煕)가 1856년에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중암고(重菴稿) | 강이천(姜彝天, 1769~180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중암(重菴) 강이천(姜彝天, 1769~18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기백(耆伯)이 원래는 8권으로 편성할 생각이었던 듯하지만 권별로 수록 문체만 제시하고 권차를 따로 규정하지 않은 점과 본문의 편집 상태를 고려하면 아직 정리 중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집은 불분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문체별 총목이 있고, 작품 제목을 수록한 목록이 중간 중간 제시되어 있다. 책1은 부(賦), 시(詩)이다. 부는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 있으니 처한 상황에 만족해하며 삶을 마치겠다는 내용의 <등고부(登高賦)>를 비롯해, <한경사(漢京詞)>는 한양의 산세, 종묘제악에서부터 각종 문화예술을 노래한 106수의 장편 연작시이다. 책3은 잠(箴), 명(銘), 찬(讚), 제발, 제문, 묘지명, 신도비, 행장, 잡저이다. <서촌민부사(書村民婦事)>는 도적에게 살해당한 남편의 복수를 이루고 자진한 제천(堤川)의 어느 열부(烈婦)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이화관총화(梨花館叢話)>는 주위에서 보고 들은 민간의 기이한 일화나 서화(書畫)에 관한 이야기를 간결한 필치로 기록한 것이다. 권말에는 1850년에 쓴 서준보(徐俊輔)의 발문이 있다.
▶중암집(重菴集) | 김평묵(金平默, 1819~1891) | 권책수 : 33책 | 포갑수 : 7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의 문집이다. 손자 김춘선(金春善)과 사위 홍재귀(洪在龜), 문인 유기일(柳基一)이 수습하여 유실에 보관하고 있던 유고를 김춘선이 교정하고 증손 김익증(金益曾)이 편집하여 1905년에 관서의 사인 김병식(金昞植), 김관식(金寬植) 등이 개천(价川)의 숭화재(崇華齋)에서 원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원집 말미에 유인석의 발(跋)과 별집 <우암송선생사실기(尤菴宋先生事實記)>가 있다. 원집이 인행된 후, 지도(智島)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때 호남의 문인들이 원집에서 산삭해서는 안 되는데 산삭된 것이 있고, 유문이 널리 유포되지 못했으며, 또 원집에 근간이 되는 골자가 빠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가장 수본(手本)과 원집에서 산삭된 부분을 수집하여, 1912년 능주(綾州)에서 별집 11권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54권 28책, 별집 11권 5책 합 3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에는 권두에 목록 1책과 권미에 별집 1책이 첨부되어 있는데, 별집은 <우암송선생사실기>이다. 서(序)는 없고, 권미에 1906년에 유인석이 지은 발이 있다. 별집에는 권두에 목록이 있다.
▶증소집(橧巢集) | 김신겸(金信謙, 1693~173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증소(橧巢) 김신겸(金信謙, 1693~1738)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으로, 1856년경 저자의 현손 정근이 화재로 불타버리고 남은 가장유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유문을 추가로 수집하여 5대손 병우의 협조 하에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총목이나 서발문은 없으며 권별로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6은 시(詩)이다. 1708년부터 만년까지의 작품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등주록(登州錄), 호유록(湖遊錄), 해유록(海遊錄) 등의 시록을 포함하여 지인이나 친척들과 각지를 유람하며 수창한 시편들이 대다수이다. 권7은 서(書), 제문이다. 서는 유숙기(兪肅基), 민우수(閔遇洙), 이희지(李喜之) 등에게 보낸 것과 1729년에 지은 아들 양행(亮行)의 혼서(婚書)가 수록되어 있다. 권9는 발(跋), 행장, 애사이고 권10은 묘지, 묘표, 유사이다. 유사에는 백부 김창집, 중부 김창협, 부친 김창업에 대한 것과 1722년 거제(巨濟)에서 압송되는 도중에 성주(星州)에서 사사된 김창집의 임종 때의 상황을 기록한 <성산유사(星山遺事)>가 수록되어 있다.
▶지락와유고(至樂窩遺稿) | 이주면(李周冕, 1796~187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락와(至樂窩) 이주면(李周冕, 1796~187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장손 승근(承根)과 이면익(李冕翼)이 주도하여 1888년에 6권 3책의 목활자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각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대체로 저자와 교분이 있던 스승 및 친우와 어울리며 지은 시가 많고 호남(湖南)의 한풍루(寒風樓), 대선루(待仙樓)를 비롯하여 단양의 삼선암(三仙巖), 사인암(舍人巖) 등을 유람하며 남긴 제영시(題詠詩)가 있다. 송시열의 유적 화양동(華陽洞)을 유람하고, 주희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 차운하여 화양구곡(華陽九曲)을 읊은 <입화양동차무이구곡운(入華陽洞次武夷九曲韻)>이 있다. 권3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서는 저자의 가계를 구보(舊譜)에 의거하여 조부까지 이름과 호, 관작, 생졸, 모습, 언행 등을 정리한 ≪완산이씨보승(完山李氏譜乘)≫, 족질 정현(定鉉)의 대작(代作)으로 선조 기홍(箕洪)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유배되었던 회령(會寧)의 구허(舊墟)에 세운 삼일사(三一祠) 강당(講堂)에 대한 것 등이다. 말미에 장손 승근이 1888년에 쓴 발문이 있다.
▶지봉집(芝峯集) | 이수광(李睟光, 1563~1628)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문집이다. 저술은 시문 23권, <채신잡록(采薪雜錄)> 1권, <독서록해(讀書錄解)> 1권, 제사(題辭) 1권, <병촉잡기(秉燭雜記)> 2권, <경어잡편(警語雜編)> 1권, <잉설여편(剩說餘編)> 2권, 지봉류설(芝峯類說) 20권, 昇平志 2권, 찬록군서(纂錄群書) 5부 25권 중 ≪지봉유설(芝峯類說)≫, ≪승평지(昇平志)≫, ≪찬록군서(纂錄群書)≫를 제외한 시문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아들 이성구(李聖求), 이민구(李敏求)가 편차하여 신익성(申翊聖)의 도움을 받아 1633년(인조11) 의령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초간본에 장유(張維)와 이준(李埈), 신익성(申翊聖)의 서발(1633년)이 실렸고, 이정귀(李廷龜)와 이식(李植)의 서발(1634년)은 문집 간행 이후 받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문집은 원집 31권, 부록 3권 합 1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이정귀, 장유가 쓴 서와 이식, 이준, 신익성이 쓴 발이 있고, 이어 유묵(遺墨)과 총목이 실려 있다. 원집(原集)의 권1~20은 시, 권22~31은 문이다. 원집 끝에는 이준의 제와 간기가 실려 있다.
▶지산집(芝山集) | 조호익(曺好益, 1545~160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24~1569)의 문집이다. 저자의 글들은 자손들이 계속 단명하여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로 거의 산일되었고 1579년 정사성(鄭士誠)이 지은 행장도 없어졌다. 그러다가 현손 김호(金灝)가 이황의 문집에서 저자와 관련된 글을 찾아내고 저자 동문들의 집을 방문하여 저자의 글을 찾아서 3책으로 편차한 뒤에, 이유장(李惟樟)의 행장과 이현일(李玄逸)의 묘갈명을 받아 정리하였으며, 8대손 김도복(金道復)도 채제공(蔡濟恭)에게 지문(誌文)을 청하여 받았지만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후손 김종한(金宗漢)과 김종우(金宗愚)가 다시 유문을 수집해서 약간 권으로 편차하여 김시찬(金是瓚)의 정정(訂正)을 거쳐 1826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826년 김시찬(金是瓚)이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 시, 서(書), 찬(贊), 지(識), 설(說), 제문(祭文), 부록이다. 시는 김극일(金克一), 이황 등의 시를 차운한 것, 경물(景物)에 대한 시가 대부분이다.
▶지산집(芝山集) | 김팔원(金八元, 1524~156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산(芝山) 김팔원(金八元, 1524~1569)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이 수집ㆍ편차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일실한 후, 종한(宗漢)ㆍ종우(宗愚)가 다시 유문을 수집ㆍ편차하여 김시찬(金是瓚)의 정정을 거쳐 1826년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826년 김시찬(金是瓚)이 지은 서문,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이다. 권2는 시(詩), 서(書), 찬(贊), 지(識), 설(說), 제문(祭文), 부록(附錄)이다. 시는 정탁(鄭琢), 김극일(金克一), 이황(李滉), 김부륜(金富倫)의 시를 차운한 것, 경물(景物)에 대한 시가 대부분이다. 부록은 이유장(李惟樟)이 지은 행장, 이현일(李玄逸)이 지은 묘갈명,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묘지명, 구봉령(具鳳齡)이 지은 제문, 김부륜이 지은 만사 등이다. 사우증유(師友贈遺)에는 이황, 구봉령, 조목(趙穆) 등이 저자에게 준 시와 저자의 시를 차운한 시 등이 있고, 사우척언(師友摭言)에는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정사성사록(鄭士誠事錄), 조목(趙穆)의 기록, 구봉령의 유어 등에서 뽑은 저자에 관한 기록이 있다.
▶지수재집(知守齋集) | 유척기(兪拓基, 1691~1767)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수재(知守齋) 유척기(兪拓基, 1691~176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유언현(兪彥鉉)이 저자의 문집을 간행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790년에 죽고, 증손 유춘주(兪春柱)가 족부 유한준(兪漢雋)에게 산정과 서문을 부탁하였다. 이에 유한준은 전본을 가지고 착오를 바로잡고 번잡한 글을 산절하는 등 15권으로 편차하여 만든 정고본을, 5세손 유치익이 평양윤으로 있을 때 김병학의 서와 이우(李㘾)의 발을 덧붙여 1878년에 전사체활자로 인행하였다. 문집은 15권 8책으로 권수에 김병학의 서문과 총목이 있고,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2~5는 소차, 서계, 의(議)로, 1715년 예문관 검열을 사직하는 상소부터 1760년 치사하기까지 올린 100편의 소차는 저자의 노론 준론의 정치적 의리를 대변하여 탕평책에 반대하는 내용이며, 시무에 관한 내용은 적은 편이다. 그중에서 <청감적소(請減糴疏)>에서는 탐관오리들이 조적을 이용하여 행패가 막심하니 환곡정책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고, 소론 이광보(李匡輔) 등을 공척한 <사검열겸진사관사소(辭檢閱兼陳四館事疏)>등이 있다. 권미에는 이우의 발문과 유치익의 지(識)가 실려 있다.
▶지암유고(止庵遺稿) | 이철보(李喆輔, 1691~1770)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암(止庵) 이철보(李喆輔, 1691~1770)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복원(福源)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불분권 8책으로 되어 있다. 목록이나 서발문은 없다. 책1~2는 시(詩)이다. 부친 이정신(李正臣)의 선천(宣川) 유배지로 귀성하여 지은 시, 직임을 수행하면서 지은 시, 금강산 기행 때의 시, 1747년 동지사 부사로 연경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은 시편을 모은 정묘연행록(丁卯燕行錄) 등과 만년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책3은 교서, 잡저, 치제문, 제문이고 책4~5는 소(疏), 의(議)이다. 책6은 묘문, 시장, 행장이고 책7~8은 서연일기(書筵日記), 정사연행일기(丁巳燕行日記), 동유록(東遊錄)이다. 서연일기는 1723~1724년과 1733~1736년 서연과 경연에서 영조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고, 정사연행일기는 1737년 왕세자책봉주청사 서장관(世子冊封奏請使書狀官)으로 연행에 다녀오는 중에 일어난 것들을 기록한 글이다. 동유록은 회양(淮陽)에서 치러진 장남의 혼사를 계기로 1740년 3월부터 4월까지 가족, 친지들과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기행록이다.
▶지애집(芝厓集) | 정위(鄭煒, 1740~181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애(芝厓) 정위(鄭煒, 1740~1811)의 문집이다. 문집의 간행 경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들 규석(奎錫)과 기석(箕錫)이 간행을 주관하고, 손자 대영(大永)이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정고본(定稿本)을 완성하고, 후손들이 목판으로 7권 4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유치명이 1845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봉화담옹운(奉和澹翁韻)> 2수는 정구가 성주 회연(檜淵)에 초당을 짓고 앞뜰에 매화 100그루를 심어 조성한 백매원에서 모임을 갖고 족조 동우와 읊은 것이다. 권4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상량문, 축문이다. 잡저 가운데 <독유이제군규장각강의(讀柳李諸君奎章閣講義)>는 정조가 ≪중용장구≫의 의의를 묻자 유태좌(柳台佐), 이영발(李永發) 등이 강의한 내용을 보고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을 근거로 자기의 의견과 다른 점을 보충 설명한 것이다. 권7은 부록이다. 유범휴(柳範休)가 1819년에 지은 행장, 이만운(李萬運)이 지은 묘지명과 이만운, 최흥벽, 이관운(李觀運) 등이 지은 제문이 있다.
▶지족당집(知足堂集) | 권만두(權萬斗, 1674~175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족당(知足堂) 권만두(權萬斗, 1674~1753)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양연(養然)과 주손 찬복(燦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문손 한모(翰模)의 편차를 받아 190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가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잡저이다.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만시는 뒤에 따로 배치되었는데 그 분량이 상당하다. 서(書)는 황익재(黃翼再), 정권(鄭權) 등에게 보낸 것들로 이 중에서 1728년 김영갑에게 보낸 편지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당하여 고을에 병사와 무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힘을 보태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2는 서(序), 기(記), 발(跋), 제문, 유사, 부록 등이다. 서(序)의 <반궁수창록서(泮宮酬唱錄序)>는 지성균관사 조태억이 관원 및 제생들과 창수한 시들을 엮은 ≪반궁수창록(泮宮酬唱錄)≫에 붙인 것이고, <사례집요서(四禮輯要序)>는 관혼상제 의식과 절차들을 여러 전적에서 모아 편차한 ≪사례집요(四禮輯要)≫에 대한 것이다. 권말에 문손 한모가 1907년에 지은 발이 있다.
▶지지당시집(止止堂詩集) | 김맹성(金孟性, 1437~148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지당(止止堂) 김맹성(金孟性, 1437~148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사후에 친구였던 극암(克庵) 이창신(李昌臣)이 시(詩) 300여 수를 수습 편차하여 저자의 질서인 김응기(金應箕)에게 주어 간행(刊行)을 맡겼다. 김응기는 이를 조위(曺偉)에게 교정(校正)을 받아 이규(李逵)에게 주어 1501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고, 1914년에 방손 김병훈(金秉勳)이 자신의 선조 김주(金輳)의 ≪운암집(雲巖集)≫을 간행하면서 저자의 문집을 중간(重刊)하고자 하여, 초간본(初刊本)에 부록(附錄)을 첨가하여 2권 1책으로 편차하고 노상직(盧相稷)의 교감을 거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의 시집으로, 권두에 1501년에 조위가 지은 서문이 있다. 시 245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고, 그 내용은 절기의 변화나 풍광을 읊은 것과 차운시, 송별시 등이며, 만시(輓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유호인(兪好仁), 조위, 표연말(表沿沫), 서거정(徐居正), 양희지(楊煕之) 등 당대의 문인들이 지은 시에 차운한 작품들이 많다. 권미에 1501년에 김응기(金應箕)가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지천집(芝川集) | 황정욱(黃廷彧, 1532~160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 1532~1607)의 문집이다. 아들 황혁(黃赫)이 수집, 편차하였는데, 황혁이 1612년 무고(誣告)로 투옥되어 옥사하는 바람에, 가장되어 있던 문적(文籍)이 모두 금중(禁中)으로 압수되는 속에 이 유고도 들어 있었다. 그 후 금중에서 한 귀인이 발견하고 저자의 사위 이욱(李郁)이 가져다 가장해 두었다. 인조 즉위 후 저자의 관작이 회복되자 외손 이후원(李厚源)이 1632년 단양 군수로 나갔을 때 목판으로 처음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는 장유(張維)의 서문(序文)이고, 권3은 교서(敎書), 서계(書契), 서(書), 차자(箚子), 소(疏), 전(箋)인데, 이 중 <답일본서계(答日本書契)>는 임란 이전에, <의여일본관백서(擬與日本關伯書)>와 <격일본국관백서(檄日本國關伯書)>는 임진란 이후 유배 생활 중에 정유재란을 획책하던 일본 관백을 의리로써 힐책한 글이다. <상도당서(上都堂書)>는 임진란 중에 있었던 항복 문서 문제의 본말과 실상을 해명하여 올린 글이다. <의진장서차자(擬進長書箚子)>는 만년에 자신의 신원을 청하는 내용이다.
▶지천집(遲川集) | 최명길(崔鳴吉, 1586~1647)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문집이다. 여러 차례의 병란을 겪으면서 초고가 많이 산일되어 본집에 실린 시도 병자호란 이후에 지은 작품뿐이다. 저자의 시문은 친구 이시백(李時白)의 아들이자 저자의 문인 이민(李憫)이 여러 문인과 함께 시문의 수집과 편차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저자의 아들 최후상(崔後尙)과 최후량(崔後亮)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수집 정리한 다음, 이민이 나주 목사로 나간 1664년 즈음에 나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이시백의 종손 이익저(李益著)가 나주 목사로 나가면서 판이 닳은 것은 개각(改刻)하고 결손된 것은 보각(補刻)하였으며, 최석정(崔錫鼎)은 박세당(朴世堂)에게 서문을 부탁하여 1692년 이를 받아 이 보각본에 실었다. 본집은 19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와 목록은 없다. 권1~6은 시로, 권3에는 <북비수창록(北扉酬唱錄)>가 있고, 권4~5는 <북비수창록속고(北扉酬唱錄續稿)>가 있다. 권7~14는 소차(疏箚)로 국정 전반에 걸친 내용이 실려 있다. 특히 정묘ㆍ병자호란을 전후하여 올린 여러 편의 봉사(封事)에는 주화(主和)의 이유와 대책 등이 소상히 언급되어 있다.
▶지촌집(芝村集) | 이희조(李喜朝, 1655~1724)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촌(芝村) 이희조(李喜朝, 1655~172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이민보(李敏輔)와 문인 이태중(李台重), 남유용(南有容)을 중심으로 해서 1754년 이태중(李台重)이 평안도 감영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집은 32권 15책이 모두 저자의 시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부록문자는 없다. 권말에 본집을 간행한 이태중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詩)이고, 권2~4는 소(疏), 권5~16은 서(書), 권17~21은 각 체의 문(文), 권22~27은 묘도문자, 권28~32는 별집같은 성격으로 잡저, 차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상서(上書)에서는 송시열이 윤휴(尹鑴)와 윤선거(尹宣擧)를 배척하게 된 동기로 기해예론(己亥禮論)과 기유의서(己酉擬書)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자신이 초록한 ≪송문정문초(宋文正文抄)≫ 2책을 올렸는데, 당시 저자가 상서와 책자를 밀봉하여 올렸기 때문에 소론측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권30은 우암선생어록(尤庵先生語錄)으로, 1673년 저자가 처음 우암을 뵈었던 때부터의 질문과 우암의 답변을 날짜별로 수록하였는데 우암의 덕행과 학문에 관한 것을 알 수 있다.
▶지촌집(芝村集) | 김방걸(金邦杰, 1623~169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유문을 아들들이 거두어 가장하여 오다가, 유치명(柳致明)의 수교를 거치고 그의 서문을 받아 후손들이 1865년에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유치명의 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절구, 율시, 배율, 고시인데 칠언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칠언절구는 <과송도(過松都)>, <평양유감(平壤有感)> 등 행로 중의 감회를 읊은 시가 대부분이며, 칠언율시는 <차태질운(次台姪韻)>, <만이별검(輓李別檢)> 등 차운시나 만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권2는 소로, 일홍(日虹)의 재이가 발생하여 구언의 하교가 내리자 임금이 입지를 바르게 하고 실제에 힘써야 한다는 대책을 연명으로 올린 <홍문관청우재수성소(弘文館請遇災修省疏)>, 영양 현민을 대신해 영해부에 속해 있는 영양을 독립시켜 줄 것을 호소한 <영양복현소(英陽復縣疏)> 외에는 모두 사직 상소이다. 권3은 서(書), 기, 발, 축문, 제문, 구묘문(丘墓文)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와 제문, 행장, 묘갈명, 행년기(行年記)가 실려 있고 권말에 간기(刊記)가 있다.
▶지퇴당집(知退堂集) | 이정형(李廷馨, 1549~160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퇴당(知退堂) 이정형(李廷馨, 1549~160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란을 겪는 중에 많이 유실되었고, 또 저자가 죽기 전에 서소(書疏) 등을 불태워 버렸으나 <동각잡기(東閣雜記)>, <황토기사(黃兎記事)>, <용사기사(龍蛇記事)>, <수춘잡기(壽春雜記)>, <지퇴당집(知退堂集)>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뒤 현손(玄孫) 이진기(李縉基)가 여러 자손 집안에 흩어져 있던 유고를 수집 편차하여 1질(帙)로 선사(繕寫)해 두고 후일 간행하기를 기약하며 발문까지 써 두었으나 간행되지 못하였다. 1870년 안세영(安世永)은 저자의 10세손 이규복(李圭復)의 부탁으로 이진기가 편차한 고본(稿本)을 수교(讐校)하여 원집과 부록을 모아 2권으로 묶고 <동각잡기(東閣雜記)>와 <황토기사(黃兎記事)> 등은 5권으로 묶어서 별도로 ≪퇴당잡기(退堂雜記)≫라는 제목을 달아 편차하였는데 이 2차 편집본도 간행되지 못하였다. 다시 후손 이종은(李鍾殷)이 이용구(李容九)의 서문을 받아 간행을 준비하였으나 결국 이루지 못하여 필사본으로 전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집은 15권 6책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권5는 을사사화의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지포집(止浦集) | 김구(金坵, 1211~127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시대 지포(止浦) 김구(金坵, 1211~1278)의 문집이다. 18대손 김동호(金東灝) 등이 ≪동문선(東文選)≫ㆍ≪고려사(高麗史)≫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뽑아 정리ㆍ교수(校讎)하고 1795년 송환기(宋煥箕)에게 서문(序文)을 받았으며, 여기에 16대손 김홍철(金弘哲)이 편차한 연보와 정실(鄭宲)이 지은 신도비문(神道碑文)을 붙여 1801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은 시(詩), 권2~3은 문(文)이고 권3에는 부록이 부편되어 있다. 권수에는 1795년 외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이 있다. 권1에는 시가 시체별(詩體別)로 묶어져 있는데, 그중에 저자가 1240년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원(元)에 갔을 때 지었다는 <북정록(北征錄)>이 실려 있고, 권2는 <응제록(應製錄)>이 실려 있다. 권3에는 계(啓), 소(疏), 서(書), 비명(碑銘)이 실려 있다. 이어 신도비문(神道碑文)이 부편, 권미에는 외손 김인순(金麟淳)의 발(跋)이 있다.
▶지헌집(止軒集) | 최효술(崔孝述, 1786~1870)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헌(止軒) 최효술(崔孝述, 1786~1870)의 문집이다. 현재 저자의 문집으로 15권 7책의 목판본 ≪지헌선생문집(止軒先生文集)≫이 전하고 있으나 서발문 등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편간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서영곤(徐永坤)의 ≪겸산집(兼山集)≫에 시교로부터 ≪지헌집≫ 1부를 받고 감사를 표하는 편지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1878~1913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5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서문은 없고 목록만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전체적으로 자연 경물을 감흥에 따라 표현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도학적 기풍을 노래한 작품이 다수를 이룬다. 권7~9는 잡저(雜著)이다. 권7은 유학의 세부적인 이론에 대한 해설이 주를 이룬다. <만록(謾錄)>은 하도낙서(河圖洛書), 도서지삼동이이(圖書之三同二異), 삼십육궁설(三十六宮說), 역괘(易卦) 등 역(易)과 관련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장설(手掌說)>은 손바닥을 통해 음양오행설을 독특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였다. 권15는 부록(附錄)이다. 이돈우(李敦禹)가 지은 행장과 이학래(李鶴來)가 지은 묘표가 수록되어 있다.
▶지헌집(芝軒集) | 정사성(鄭士誠, 1545~160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 1545~160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가화(家火)와 전란에 대부분 산실되었고 일찍이 창석(蒼石) 이준(李埈)의 행장도 함께 없어졌다. 1741년(영조17)에 저자의 위판을 봉안했던 옥계서원(玉溪書院)이 서원 금령(禁令)에 의해 철향(撤享)되면서 증손 정선(鄭鍹)이 유문과 사적(事蹟)을 수습하여 간직해 두었다. 이후 6대손 정중묵(鄭重默), 정중섭(鄭重燮)이 정조 연간에 다시 유문을 수집하고 이상정(李象靖)에게 행장(行狀)을 받는 등 문집의 정리에 착수하여 시문, 잡저 약간 편에 연보와 만사(挽詞), 사우(師友) 간의 서찰(書札)을 부록으로 합해 2책으로 편차하였다. 이 정고본(定稿本)을 1821년(순조21) 7대손 정래성(鄭來成)이 퇴계의 후손인 이수정(李守貞)의 서문과 자신의 발을 붙여 저자의 동생인 매창공(梅窓公)의 유고와 함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4권, 연보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 권2~3은 문(文)이고, 권4는 부록(附錄)이다. 권수에는 이수정의 서가 있다. 권1에는 시 37제(題)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퇴계 문인들과 주고받은 시이다. 권3은 제문, 잡저이다.
▶지호집(芝湖集) | 이선(李選, 1631~169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지호(芝湖) 이선(李選, 1631~169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이 늦게까지 간행되지 못한 것은 아들 이성휘(李聖輝)와 이창휘(李昌輝), 이장휘(李長輝)가 1699년 과거옥사(科擧獄事)에 연루되어 변방에 정배되어 선집을 정리하여 간행하지 못하였다. 1853년 조두순(趙斗淳)이 연석에서 저자의 일을 아뢰어 증시와 증직, 후손의 녹용을 청하고, 다음 해 시호 정간(正簡)을 받고, 조두순의 서문을 받아 가장본을 바탕으로 시문만을 정리하여 1856년을 전후한 시기에 활자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13권 6책으로, 부록문자는 없다. 권두에 1856년에 조두순의 서(序)가 실려 있다. 권2~3은 소차와 계사, 서계, 헌의(獻議)로, 1680년의 <응지진언소(應旨進言疏)>는 호포법의 시정과 충절의 장려를 청한 것으로 사육신, 김종서(金宗瑞) 등의 죄적을 없애줄 것과 이괄의 난 때 김자점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김원량(金元亮)의 신원을 청한 것이다. 권13은 전(傳)으로, <영릉육대군전(英陵六大君傳)>은 세종의 후사 중 안평, 임영 등 여섯 대군의 전기로서 단종과 세조를 둘러싸고 벌어진 안평과 금성(錦城)의 활약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직암집(直菴集) | 신경(申暻, 1696~1766)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직암(直菴) 신경(申暻, 1696~176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신대부(申大傅)가 가장유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하여 편차하고 사손 신소(申素)가 선사하였는데, 가화가 연이어 가전 서적이 태반은 유실되고 저자의 수필 원고도 산망되었다. 특히 경서의 해석과 예론에 관한 글들이 많이 산일되었는데, 외손 김세연(金世淵)이 주축이 되어 재차 편집하여 김회연(金會淵)이 경상 감사로 재직하던 1811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서는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없고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2는 소(疏), 수의, 서계로, <재서겸진후재선생유의서(再書兼陳厚齋先生遺意書)>는 1756년에 올린 이른바 병자상소로 김간(金榦)의 유지를 통해 박세채(朴世采)의 학문 연원과 도덕을 밝힌 후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처럼 문묘에 종사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권3~6은 서(書)로, 권3은 스승 김간에게 보낸 것으로, 회니(懷尼)에 대한 박세채의 태도를 노론의 입장에서 논의한 것, 성리학에 대해 질의한 것, 그중에 특히 문집간행(文集刊行)에 대한 것이 많아 박세채의 남계집(南溪集)≫ 간행에 대한 논의 등이 있다.
▶직재집(直齋集) | 이기홍(李箕洪, 1641~170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직재(直齋) 이기홍(李箕洪, 1641~1708)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이주면(李周冕)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시문을 수습하여 선사하고 부록문자(附錄文字)를 덧붙여 인행하려고 하였으나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이민현(李敏鉉)의 장질이자 저자의 7대손인 이승근(李承根)이 1888년에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인 송근수(宋近洙)의 교정(校正)과 산정을 거쳐 10권 5책을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序文)은 없으며, 각 권별로 권목록(卷目錄)이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시(詩)로, 1675년 2월에 이희조(李喜朝)가 찾아왔을 때 지은 <감시음(感時吟)>, 같은 해 5월에 꿈에 우암 송시열을 뵙고 깬 뒤 지은 <기몽(記夢)>, 가릉 천곡에서 지낼 때에 지은 <천곡팔경(泉谷八景)>, 우암 송시열에게 올린 시(詩), 종성 적소에 있는 이유태(李惟泰)에게 부친 시 등이다. 권8은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잡저(雜著)이다. 서(序)는 1673년에 송시열에게 가르침을 청한 서, 북방에 귀양가 있을 때에 저술한 ≪자성편(自省編)≫에 대해 1689년에 지은 서 등이다.
▶직재집(直齋集) | 김익동(金翊東, 1793~18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직재(直齋) 김익동(金翊東, 1793~1860)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20여 년 뒤 아들 덕흠(悳欽)이 이돈우(李敦禹)에게 행장을 받고, 저자의 동문인 김흥락(金興洛)과 유지호(柳止鎬)에게 비문을 구하여 문집을 정리한 이후 1908년 손자 희교(羲敎)의 주도로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이돈우가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사(詞), 부(賦), 시이다. 부는 이한중(李漢中)이 사는 마을을 읊은 <녹문동부(鹿門洞賦)>와 인심, 세로(世路) 등을 바다 풍경의 변화에 맞춰 비유적으로 그려낸 <관해부(觀海賦)>이다. 시는 지도(智島)에 유배 중이던 유치명(柳致明)을 찾아가는 경로에서 지은 시, <음시제손(吟示諸孫)>은 저자가 64세 때 손자에게 지어준 시로, 저자의 뚜렷한 학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권3은 서(書)이다. 유치명에게는 율곡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옳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납득시켜달라는 내용, ≪태극도설≫, ≪중용장구≫ 등의 학문에 관한 질의가 대부분이다. 권말에는 장석룡(張錫龍) 및 김도화(金道和)가 1908년에 지은 발이 있다.
▶진계집(進溪集) | 박재형(朴在馨, 1838~190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진계(進溪) 박재형(朴在馨, 1838~1900)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9권 4책의 목판본 ≪진계문집(進溪文集)≫이 전하고 있으나 서발문 등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편간 경위는 불분명하다. 다만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의 행장에 저자의 손자 순열(淳烈)이 행장을 부탁했다고 한 내용과 권말 판권지에 저자의 장손 순병(淳炳)이 발행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손자들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되어 있고,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도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2~5는 서(書)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시국을 우려하거나 선친과 선현들의 문집에 관련된 일, 아우와 아들의 죽음 등 잇따른 상사를 겪은 뒤의 심사 등을 전하는 내용으로 수신인별로 묶어 편차하였다. 권6은 잡저(雜著), 서(序), 기(記)이다. 잡저는 태극, 음양, 춘하추동, 오행, 사단칠정, 인심, 도심 등에 대해 논한 <성리유설(性理類說)>이고, 서는 진계(進溪)라는 자호(自號)의 의미를 서술한 <진계자서(進溪自敍)>이다. 권9는 부록으로 셋째 아들 창현(昌鉉)이 쓴 가장(家狀)이 실려 있다.
▶진명집(震溟集) | 권헌(權攇, 1713~177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진명(震溟) 권헌(權攇, 1713~1770)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혁수(赫洙)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교수ㆍ선사한 고본을, 7대손 관식(觀植)이 산정ㆍ재편하여 1937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민보(李敏輔)가 179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6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부는 마음과 여름의 무더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사는 승려 혜상인(惠上人)이 강원도 영월로 유람하러 가면서 글을 청하자 써준 것이다. 시 중에서 <관서도호곡(關西都護曲)> 9수와 <후관서도호곡(後關西都護曲)> 8수는 평안도의 풍속과 백성들의 생활상을, <고한탄(苦旱歎)>과 <고우탄(苦雨歎)>은 가뭄과 장마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삶을, <친경행(親耕行)>은 초봄에 임금이 동대문 밖 친경전(親耕田)에 나아가 친경하던 광경을, <황창랑가(黃娼郞歌)>는 황창무(黃昌舞)의 공연 모습을 적은 것이다. 권9는 논(論), 전(傳), 찬(贊), 명(銘), 설(說), 상량문, 잡저, 묘지, 묘음기, 비(碑), 제문이다. 권말에 6대손 혁수의 발(跋), 7대손 관식의 발이 있다.
▶진암집(晉菴集) | 이천보(李天輔, 1698~176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진암(晉菴) 이천보(李天輔, 1698~1761)의 문집이다. 본집은 1758년 집안의 화재로 타고 남은 초고를, 종제 이정보(李鼎輔)와 이익보(李益輔)의 부탁으로 황경원(黃景源)이 시(詩) 504수, 문(文) 163편을 뽑아 8권 4책으로 편차한 것을, 이익보 등이 1762년에 운각활자로 간행하였다. 1781년에는 아들 이문원(李文源)이 경상도 관찰사에 부임하여 초간본을 판하본으로 본집을 복각 간행한 뒤, 판목은 대구 용연사(龍淵寺)에 보관하였다. 문집은 8권 4책으로 시 504수, 문 163편이 실려 있다. 권수에는 친구 남유용(南有容)과 황경원(黃景源)의 서문이 실려 있고, 각 권 머리에는 목록이 실려 있다. 권4~5에는 소차(疏箚), 계(啓), 서계(書啓)와 의(議)가 실려 있는데, 그중에서 <응지소(應旨疏)>는 임인옥안(壬寅獄案)을 무옥(誣獄)으로 처리할 것을 청한 내용이다. <걸해본직서(乞解本職書)> 이하 상서(上書)는 대리 중이던 사도세자에게 올린 것인데, 저자는 세자와 영조와의 사이가 안 좋던 시기에 조정하느라고 상당히 고심했던 듯하다. 권미에는 본집의 간행을 맡았던 이정보와 김양택(金陽澤)의 발문이 실려 있다.
▶진암집(進菴集) | 정교(鄭墧, 1799~187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진암(進菴) 정각(鄭墧, 1799~1879)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손자 규영(奎永)은 1885년경 저자의 재종질 은석(恩錫)과 유문을 수습 등사하여 5권으로 정리하고 은석으로부터 가장을 받고 노상직(盧相稷)과 이상석(李相奭)에게 각기 묘갈명과 행장을 받아 수차례의 교정을 거쳐 문집을 4책으로 산정하고 1915년 배상우(裵相禹)와 안희원(安禧遠)의 발문을 받아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서문은 없고, 목차만 있다. 권2~3은 책(策), 서(書)이다. <대삼정책(對三政策)>은 전부(田賦), 군적(軍籍), 환정(還政) 등 삼정(三政)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고 지적하고 덧붙여 필자가 거주했던 성주(星州)의 사례와 이전에 행했던 제도를 예로 들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권4는 잡저(雜著), 서(序)이다. 잡저에는 중국의 인물인 엄광(嚴光), 창해(滄海)의 유래, 경전에 나오는 ‘태왕전상(太王剪商)’에 대한 견해, 설총(薛聰)이 부친 원효(元曉)를 화장한 사실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권말에는 배상우가 1915년에 지은 발과 안희원이 지은 발이 있다.
▶진일유고(眞逸遺稿) | 성간(成侃, 1427~145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 1427~1456)의 문집이다. 유방선(柳方善)의 문인으로, 김수온(金守溫)ㆍ서거정(徐居正)ㆍ이승소(李承召)ㆍ강희맹(姜希孟)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은 저자 사후에 형 성임(成任)이 유고(遺稿)를 모으고, 동생 성현(成俔)이 편집하여 1467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467년 서거정과 성현이 쓴 서문(序文)이 실려 있으며, 권1~3에는 107제 241수의 시가 실려 있다. 시집의 편차는 일정하지 않으나, 권1에는 급제한 이후 관직생활과 관련된 시가 많고, 권2~3에는 명승(名勝)의 유람과 교유시가 많은 편이다. 권4에는 부(賦) 2편, 서(序) 4편, 기(記) 3편, 설(說) 1편, 서후(書後) 1편, 전(傳) 1편, 전(箋) 1편 등 13편의 글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1458년 이승소(李承召)가 쓴 발(跋)이 실려 있으나, 이 중 1판(板)이 낙장(落張)되어 있다.
▶질암집(質菴集) | 최벽(崔璧, 1762~181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질암(質菴) 최벽(崔璧, 1762~1813)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제석(濟奭)이 수습 정리한 것에, 족제 옥(沃/玉)의 서문과 1930년 이중철(李中轍)의 서문을 받고, 족현손 현필(鉉弼)의 발문을 받아, 현손 해규(海奎)가 경주(慶州)의 용산단소(龍山壇所)에서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6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이중철이 1930년에 지은 서(序)와 족제 옥이 1817년에 지은 서가 있다. 목록은 권1 앞에 권1~4목록이 있고, 권5 앞에 권5~6목록이 있다. 권1~4는 저자가 초계문신에 선발되었을 때 지은 것들을 ‘규장각내제(奎章閣內製)’라는 제명으로 실어 놓았고, 권5는 시(詩), 서(書) 등 일반적인 작품이 실려 있으며, 권6은 부록이다. 권1은 시, 부(賦), 계(啓), 서(序), 기(記), 설(說), 명(銘), 상량문이다. 권2는 표전(表箋), 책(策)이다. 표전은 모두 의작(擬作)이다. 책의 <문태극(問太極)>은 태극과 심(心)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도가와 불씨의 설을 성리학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심을 바르게 닦는 법을 밝히고 있다. 권말에 족현손 현필이 1930년에 쓴 발과 판권지가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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