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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차]서명[문집총간] : 77종(가격 직접 입력)

 
[차]서명[문집총간] : 77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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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차 : 78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차]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차001 창계집(滄溪集) 임영(林泳, 1649~1696)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2 창계집(滄溪集) 문경동(文敬仝, 1457~152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3 창랑집(滄浪集) 성문준(成文濬, 1559~162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4 창사집(昌舍集) 손명래(孫命來, 1664~172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5 창석집(蒼石集) 이준(李埈, 1560~1635) 14책 3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차006 창설재집(蒼雪齋集) 권두경(權斗經, 1654~1725)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07 창암집(蒼巖集) 김상채(金尙彩, 171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8 창주유고(滄洲遺稿) 김익희(金益熙, 1610~1656)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09 창주집(滄洲集) 심지한(沈之漢, 1596~1657)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10 창하집(蒼霞集) 원경하(元景夏, 1698~176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1 척암집(拓菴集) 김도화(金道和, 1825~1912) 29책 6개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12 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김구용(金九容, 1338~1384) 2책 1개 조성목(趙誠穆),국립중앙도서관
차013 척재집(惕齋集) 이서구(李書九, 1754~1825)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4 천곡집(泉谷集) 송상현(宋象賢, 1551~159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5 천묵유고(天默遺稿) 이상형(李尙馨, 1585~1645)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16 천사집(川沙集) 김종덕(金宗德, 1724~1797)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17 천재집(泉齋集) 신필흠(申弼欽, 1806~1866)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18 천파집(天坡集) 오숙(吳䎘, 1592~163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19 첨모당집(瞻慕堂集) 임운(林芸, 1517~157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0 청강집(淸江集) 이제신(李濟臣, 1536~1583)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1 청계집(淸溪集) 홍위(洪葳, 1620~166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2 청계집(靑溪集) 양대박(梁大樸, 1543~159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3 청대집(淸臺集) 권상일(權相一, 1679~1759) 9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24 청련집(靑蓮集) 이후백(李後白, 1520~1578)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25 청령자유고(淸泠子遺稿) 최수철(崔守哲, 1683~171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6 청륙집(靑陸集) 김덕겸(金德謙, 1552~1633) 9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27 청벽집(靑壁集) 이수연(李守淵, 1693~1748)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차028 청봉집(晴峯集) 심동구(沈東龜, 1594~166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29 청사집(晴沙集) 고용후(高用厚, 1577~1652)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30 청성집(靑城集) 성대중(成大中, 1732~1809)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1 청송집(聽松集) 성수침(成守琛, 1493~1564)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2 청음집(淸陰集) 김상헌(金尙憲, 1570~1652)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3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덕무(李德懋, 1741~1793) 31책 6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4 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심수경(沈守慶, 1516~1599)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5 청천당집(聽天堂集) 장응일(張應一, 1599~1676)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36 청천집(靑泉集) 신유한(申維翰, 1681~1752) 8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차037 청파집(靑坡集) 이육(李陸, 1438~149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38 청풍자집(淸風子集) 정윤목(鄭允穆, 1571~1629)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39 청하집(靑霞集) 권극중(權克中, 1585~1659)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차040 체소집(體素集) 이춘영(李春英, 1563~160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1 초간집(草澗集) 권문해(權文海, 1534~1591)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차042 초당집(草堂集) 허엽(許曄, 1517~158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3 초려집(草廬集) 이유태(李惟泰, 1607~1684) 16책 3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44 초암전집(初庵全集) 김헌기(金憲基, 1774~1842)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45 초암집(初菴集) 신혼(申混, 1624~1656)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차046 초원유고(椒園遺藁) 이충익(李忠翊, 1744~181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7 초정유고(草亭遺稿) 박수현(朴守玄, 1605~1674) 5책 1개 박형원 등 *신규
차048 촌은집(村隱集) 유희경(劉希慶, 1545~163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49 총쇄(叢瑣) 오횡묵(吳宖默, 1834~1906) 24책 5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차050 최와집(最窩集) 김규오(金奎五, 1729~179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1 추강집(秋江集) 남효온(南孝溫, 1454~149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2 추담집(秋潭集) 김우급(金友伋, 1574~1643)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53 추담집(秋潭集) 유창(兪, 1614~169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4 추담집(秋潭集) 김여만(金如萬, 1625~1711)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55 추담집(秋潭集) 성만징(成晩徵, 1659~1711)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56 추담집(秋潭集) 고유(高裕, 1722~1779)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차057 추산집(秋山集) 박홍중(朴弘中, 1582~1646)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58 추암집(추菴集) 김하구(金夏九, 1676~1762)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차059 추재집(秋齋集) 조수삼(趙秀三, 1762~1849)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60 추탄집(秋灘集) 오윤겸(吳允謙, 1559~163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1 추파집(秋坡集) 송기수(宋麒壽, 1507~1581)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2 추포집(秋浦集) 황신(黃愼, 1562~1617)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차063 춘당집(春塘集) 오수영(吳守盈, 1521~160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64 춘소자집(春沼子集) 신최(申最, 1619~165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5 춘정집(春亭集) 변계량(卞季良, 1369~1430)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차066 춘주유고(春洲遺稿) 김도수(金道洙, 1699~173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7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 오달제(吳達濟, 1609~163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68 충암집(冲庵集) 김정(金淨, 1486~1521) 7책 2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차069 충재집(冲齋集) 권벌(權橃, 1478~1548)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70 취사집(炊沙集) 이여빈(李汝, 1556~1631)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71 취흘집(醉吃集) 유숙(柳潚, 1564~163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72 치서집(菑墅集) 한경의(韓敬儀, 1739~182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73 치암집(恥菴集) 이지렴(李之濂, 1628~169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74 치암집(癡庵集) 남경희(南景羲, 1748~1812)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75 치재유고(齋遺稿) 홍인우(洪仁祐, 1515~1554)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차076 치헌집(癡軒集) 김덕오(金德五, 1680~174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차077 침계유고(梣溪遺稿) 윤정현(尹定鉉, 1793~1874)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차078 침우당집(枕雨堂集) 장지완(張之琬, 180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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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차 : 78종


▶창계집(滄溪集) | 임영(林泳, 1649~1696)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계(滄溪) 임영(林泳, 1649~1696)의 문집이다. 임정(林淨)은 저자의 유문을 수습하고 필사하여 최석정(崔錫鼎)과 김창협(金昌協)에게 산정과 교정을 받아 원집(原集) 26권, 부록(附錄) 1권 합 27권의 정고본(定稿本)을 완성한 다음, 청도 군수 재임 중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27권 1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6은 원집이며, 권27은 부록이다. 권두에 원집 총목차(總目次)와 임정의 발(跋)이 실려 있다. 권3~5는 소차(疏箚)로, 1690년 초고만 짓고 올리지 않은 글은 권5의 말미에 모아놓았다. 주 내용은, 옥당(玉堂) 재직 시 동료들과 함께, 언로를 넓힐 것, 추국(推鞫)을 이유로 경연(經筵)을 정지하지 말 것, 국구 민유중(閔維重)에게 병판(兵判)을 맡기지 말 것, 호포법(戶布法)을 실시하지 말 것 등을 청한 것이다. 권25~26은 일록(日錄)인데, 저자가 18세 때부터 독서의 과정, 사색의 결과, 교유한 인물들과 나눈 이야기 등을 일기(日記)로 기록한 것으로서 성리설 등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권미에는 김창협의 서(序), 남구만(南九萬)의 서(序)가 실려 있다.
▶창계집(滄溪集) | 문경동(文敬仝, 1457~152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계(滄溪) 문경동(文敬仝, 1457~15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외손 장씨가(張氏家)에 전해오던 초고본을 바탕으로 1723년 장세상(張世相)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산천정사(山泉精舍)에 비장(祕藏)한 후, 1790년 장태희(張泰煕)와 김상인(金相寅)이 초고본(草稿本)과 산천정사본(山泉精舍本)을 참고하여 교정ㆍ편차하고 김약련(金若鍊)의 교정을 거친 정고본(定稿本)을 1906년 장진각(張鎭恪) 등이 영천(榮川)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세계도, 외예록, 원집 4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790년에 김약련이 지은 서문과 세계도, 외예록, 목록이 있다. 세계도는 저자의 5대조 문문귀(文文龜)를 시작으로 저자의 딸들까지 기록하고 있고, 외예록은 저자의 외손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1은 부(賦), 시(詩)이고, 권2는 사(辭), 시(詩)이며, 권3은 시(詩)로 차운시가 대부분이고, 권4는 시(詩)와 습유, 부록이 있다. 특히 부록에는 이황(李滉)이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 있으며, 권미에는 1723년에 권두경(權斗經)이 지은 발, 장세상(張世相)의 지(識), 1906년에 이중린(李中麟)이 지은 발이 있다.
▶창랑집(滄浪集) | 성문준(成文濬, 1559~162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랑(滄浪) 성문준(成文濬, 1559~1626)의 문집이다. 아들 성직(成㮨)은 1662년경 가장(家藏)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편차한 뒤 형 성익(成杙)의 <나진시고(懶眞詩稿)>를 부집(附集)으로 함께 간행하려고 정두경(鄭斗卿)의 서문(1662년)과 신량(申湸)의 발(1663년)을 받았으나 미처 간행하지 못하고, 표질(表姪) 윤선거(尹宣擧)가 1667년 <우계속집(牛溪續集)>을 편차하면서 저자의 문집 <창랑집(滄浪集)> 2책을 다시 교정하고 송시열에게 묘지명을 받았으며, 증손 성지선(成至善)이 1682년 이 교정본에 박세채(朴世采)의 발(跋)을 받아 전라도 관찰사 신익상(申翼相)의 도움으로 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정두경이 지은 서가 있고, 권1~2는 시, 권3~4는 문(文)이다. 권3~4는 잡문(雜文)인데, 그중 <상해평부원군서(上海平府院君書)>는 1608년 윤근수(尹根壽)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성혼(成渾)을 신원(伸寃)한 광주 목사 신응구(申應榘)의 상소가 정철(鄭澈)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큰 분란을 일으키자, 소를 작성하는 데 참여했던 저자의 변명을 담은 내용이다.
▶창사집(昌舍集) | 손명래(孫命來, 1664~172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사(昌舍) 손명래(孫命來, 1664~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소실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5대손 종만(鍾萬)ㆍ종갑(鍾甲)이 부록 등을 증보하여 1874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우윤(李佑贇)이 1840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로, 입사(入仕) 이후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7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권2는 시(詩), 만(輓), 부(賦), 서(書)이다. 그중에서 <안락와부(安樂窩賦)>는 낙양에 있는 안락와를 소재로 소옹(邵雍)을 기리고 혼란한 말세를 개탄하며 월과로 지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잠(箴), 송(頌), 논(論), 책(策)이다. 권4는 책(策)과 책문이다. 책 가운데 <일본책(日本策)>은 백성을 돌보아 민심을 얻고 마땅한 사람으로 장수를 선택하여 일본을 방비할 계책을 삼을 것과 아울러 병자호란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북방에 대한 경계책도 세울 것을 역설한 것이다. 권5는 문(文), 비표, 행장, 설(說) 등이고 권6은 부록으로 만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이진상이 1874년에 지은 발, 세계도, 목록이 있다.
▶창석집(蒼石集) | 이준(李埈, 1560~1635)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시대 창석(蒼石) 이준(李埈, 1560~163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서발이 없으며 연보, 행장(行狀) 등에도 문집 관련 기사가 전혀 없어 그 간행 경위나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 다만 속집 권5의 <제난고후(題亂稿後)>의 기록으로 보아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수집하여 정리해 두었고, 형 이전(李㙉)이 다시 정리하여 편차하였지만, 정확히 어느 시기에 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796년 완성된 ≪누판고(鏤板考)≫에 ≪창석집(蒼石集)≫ 18권이 상주 옥성서원(玉成書院)에 보관되어 있고, ≪상주읍지(尙州邑誌)≫에도 본 문집의 존재가 보이는 걸로 보아 최소한 1796년 이전에 상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손자 신와공(新窩公)이 삼자(三子) 이문규(李文圭)가 편차한 ≪문사록(聞斯錄)≫을 종손(宗孫) 이민배(李敏培)와 족제(族弟) 이학배(李學培) 등과 부록과 연보 4권으로 정리하고 정종노(鄭宗魯)의 교정과 연보발(年譜跋)을 받고 또 유후조(柳厚祚)의 시장(諡狀)을 받아 1871년경 4권 2책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原集) 18권 10책과 속집(續集)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설재집(蒼雪齋集) | 권두경(權斗經, 1654~1725)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창설재(蒼雪齋)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시고에 대해서만은 손수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시록에 있는 자주와 시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아들 권모가 문집의 수습과 편차를 맡고, 이재의 산정을 거쳐, 유치명(柳致明)이 문집을 교정한 1832년에서 1860년 사이에 본집이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1864년 이후에 봉안문 등이 추각되어 후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권1~7은 시록, 권8~16은 문(文), 권17~18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728년에 이재(李栽)가 쓴 편집 서문이 있다. 한편 저자는 장주문(章奏文)에 뛰어나 1717년 영남 유소(儒疏)를 초하기도 하였으니, 본집에는 상소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권8~10은 편지글인데, 그중에서 권10에, 1689년~1703년 사이 갈암에게 보낸 편지에는, 환국으로 정국에 참여한 갈암에게 당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경계한 글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재에게 보낸 편지에는 친분을 유지하면서 서로 학문의 의문처와 갈암의 묘지 및 ≪도산언행록(陶山言行錄)≫의 편찬, 간행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창암집(蒼巖集) | 김상채(金尙彩, 171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암(蒼巖) 김상채(金尙彩, 1710~?)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의 손자 종식(宗軾)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장혼(張混)의 협조(協助)를 받아 1816년 이이엄자(而已广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아들 제량(濟良)의 ≪삼성재유고(三省齋遺稿)≫가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3권 1책이다. 권수(卷首)에는 조종영(趙鍾永)이 1816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있다. 권1~2는 사언(四言), 절구(絶句), 율시(律詩), 고시(古詩)이다. 그중에서 사언 <팔잠(八箴)>은 저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인간의 덕목을 효제충신(孝悌忠信)과 예의염치(禮義廉恥) 8항목으로 나누어 운문 형식으로 기술한 것이고, 칠언율시(七言律詩)의 <술계자질시(述誡子姪詩)>는 저자 가문의 자제 3인이 관직을 얻자 이를 기념하고 자질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권3은 서(序), 기(記), 행장(行狀), 잡저(雜著)이다. 권말(卷末)에 손자 종식이 1816년에 지은 제(題), 장혼의 후서(後敍), 조인영(趙寅永)이 1816년에 지은 서후(書後)가 수록되어 있다.
▶창주유고(滄洲遺稿) | 김익희(金益熙, 1610~165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주(滄洲) 김익희(金益熙, 1610~165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중자(仲子) 김만증(金萬增)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교정하여 15권으로 편차하였고, 이것을 손 김진옥(金鎭玉)이 1708년 용담(龍潭) 현령으로 재임할 때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김진규(金鎭圭)가 지은 서문에는, 저자가 평소에 세상에 문집이 많이 간행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유고를 간행치 말 것을 아들들에게 부탁하였으나 저자의 시문이 세상에 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한 송시열의 말에 따라 김만증과 김진옥이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저자의 9대손 김명수(金命洙)가 상주 목사로 재임하던 1901년에 활자로 중간본을 인출하였다. 이 중간본에는 초간본 18권에 김만증의 묘지와 남구만의 시장(諡狀)이 첨부되어 있고, 끝에는 송근수(宋近洙)의 중간 발문이 실려 있다. 문집은 18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2~7은 시로, 과제(課製), 만시(輓詩), 송시(送詩), 차운시가 대부분이다. 권8은 봉사(封事)로, 1654(효종5)에 올린 <갑오봉사(甲午封事)>가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종손 김진규의 문집 서(敍)가 실려 있다.
▶창주집(滄洲集) | 심지한(沈之漢, 1596~165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창주(滄洲) 심지한(沈之漢, 1596~1657)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악청(樂淸)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7대손 노삼(魯三)이 1863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별집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마다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부(賦), 사(辭), 시(詩)이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의 세태에 대한 염려와 울분을 엿볼 수 있는 시가 많은데, <상시(傷時)>는 청(淸)나라를 섬겨야 하는 현실을 한탄한 작품이다. 권2는 소차이고 권3은 소차, 계(啓), 서(書), 서(序), 제발이다. 그중에서 소차의 <사간시차자(司諫時箚子)>는 새로 즉위한 효종에게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도록 청하는 내용이고, <응지소(應旨疏)>는 금산 현감으로 재직 중 구언에 응하여 올린 상소로 고을의 폐단을 아뢴 것이다. 권4는 표전, 응제록, 잡저, 묘지, 행장, 제문, 고문, 부록이다. 그리고 별집은 저자가 별도의 저술로 편찬한 월괘도설이다. 권두에 1656년 저자가 지은 자서와 1720년 정호가 지은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1656년 저자가 지은 발문과 1706년 권상하(權尙夏)가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창하집(蒼霞集) | 원경하(元景夏, 1698~176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창하(蒼霞) 원경하(元景夏, 1698~176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전주(全州)에서 목판으로 초간된 후, 아들 인손(仁孫)이 영조(英祖)의 명으로 어제서(御製序)를 추가하여 1773년 운각활자(芸閣活子)로 인행한 중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0권 5책이다. 권수에 영조의 어제서와 총목이 있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주요 수창자는 오원(吳瑗), 김원행(金元行) 등이다. 그중에서 <강로행(江鷺行)>은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마음은 탐욕스러운 해오라기와 해오라기에게 잡아먹히는 물고기를 노래함으로써 살상을 일삼는 붕당의 폐해를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권3~6은 소차이고 권7은 서(書), 서(序), 기(記)이다. 권8은 신도비(神道碑), 묘지(墓誌),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이고 권9는 행장(行狀), 시장(諡狀), 유사(遺事), 제문(祭文), 논(論), 설(說) 등이다. 권10은 잡저, 응제록이다. 응제록은 대부분 홍문관과 예문관 제학을 역임할 때 왕명을 받고 지은 것으로 친제제문(親祭祭文)을 비롯하여 각종 궁중 행사와 관련된 교서(敎書)와 반교문(頒敎文), 책문, 악장 등이다.
▶척암집(拓菴集) | 김도화(金道和, 1825~1912) | 권책수 : 29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집이다. ≪원집≫은 손자 헌주(獻周)가 유문을 수습하여 저자의 문인들과 1916년에 간역을 시작하여 1917년에 목판본 초간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속집≫은 금석문자 중 산일되어 원집에 싣지 못한 것과 시문, 서찰 중 수습되지 못한 것을 수집한 후 속집 6권으로 만들었고, 정확한 간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945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부록≫은 4권 2책으로 목판본과 석인본 두 종류가 있다. ≪별집≫은 1956년경 2권 2책으로 연활자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36권 19책, 속집 13권 6책, 부록 4권 2책, 별집 2권 2책이 합부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3~8은 소(疏), 서(書)이다. 부록은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곽도(郭鋾) 등이 지은 만사 99편이 실려 있다. 권말은 급문록(及門錄)으로, 문인 하대운(河大運) 등 216인에 대한 관련 기록이다. 별집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사(詞), 시, 조(詔), 소(疏), 서(書), 격문, 비, 지(誌), 잡저, 고유문, 전이다. 권미에 채헌기가 1956년에 쓴 발문이 있다.
▶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 김구용(金九容, 1338~138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조성목(趙誠穆),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김명리(金明理)가 편차하여 1400년 진양 목사(晉陽牧使)로 나갔을 때 관찰사 조박(趙璞)의 협조를 얻어, 2권 2책의 목판본으로서 저자의 유고를 모은 본집과 저자와 교유한 사람들의 시문을 모은 외집(外集)으로 편차하고, 서ㆍ발 및 세계ㆍ행적은 본집 권수에 수록하여 간행하였다. 그 후 17세손 김상원(金相元)이 1884년경 그의 종숙 김병식(金秉湜) 등과 함께 2권 2책의 활자본으로서 정환요(鄭煥堯) 및 17세손 김상원(金相元)의 서와 허전(許傳)의 발을 권수에 추가하고, ≪여지승람≫ 등의 문헌과 대교한 소주를 붙여 문집을 개간하였다. 1964년에는 영천(永川) 약은정(藥隱亭)에서 중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문집을 개간하였다. 문집은 본집 상ㆍ하 2권과 외집 합 2책으로 되어 있으며, 본집은 모두 저자의 시이고 외집은 부록으로 저자와 교유한 사람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권수에는 1399년 하륜(河崙)이 지은 서, 1386년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서, 이색(李穡)이 지은 발과 아들 김명리가 지은 세계행사요략(世係行事要略)이 실려 있다.
▶척재집(惕齋集) | 이서구(李書九, 1754~1825)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 1754~1825)의 문집이다. 본집은 간본은 없고 사본만이 남아 있는데, 시(詩)와 문(文)이 함께 수록된 16권 8책의 완전한 형태의 문집으로 서발이 없어 필사자와 필사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저자의 5대손 이순용(李淳鎔)이 소장한 사본을 조본으로 하여 1932년 9월에서 11월에 걸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등사한 것이다. 본집은 원집 16권과 연보를 합하여 8책으로 되어 있다. 서발은 없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로, 박지원(朴趾源), 이덕무(李德懋) 등과 교유하며 지은 시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덕무에 관한 시가 많다. <송이무관수초재심장념조입연(送李懋官隨蕉齋沈丈念祖入燕)>은 심염조(沈念祖)의 수행원으로 연경에 가는 이덕무를 전송하며 지은 시이다. 권9는 제문, 행장, 묘표, 묘지, 묘갈, 전, 잡저이다. 제문은 대부분 친척에 대한 것으로, 어려서부터 저자를 양육한 외숙모 이씨에 대한 <제구모이숙인문(祭舅母李淑人文)>, 장모 남씨에 대한 <제외고공인의령남씨문(祭外姑恭人宜寧南氏文)>이 있고, 이밖에 유언호(兪彦鎬), 강감찬(姜邯贊) 등에 대한 제문이 있다.
▶천곡집(泉谷集) | 송상현(宋象賢, 1551~159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9대손 송달호(宋達浩)가 가장(家藏)된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편차하여 1834년 동래(東萊) 부사(府使)로 부임한 이탁원(李鐸遠)에게 산정(刪定)과 서문을 받아 1835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문집은 초간본이 저자의 사후 240여 년이나 지난 뒤에 발간되어서 인지 내용이 매우 영세하여 부록을 합쳐 2권 1책 분량으로 간행되었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수에는 이탁원이 쓴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시, 표(表), 조(詔), 교(敎)가 실려 있다. 시 중에, <절구불음주(絶口不飮酒)>는 육언시(六言詩)로 송대(宋代) 악비(岳飛)가 금(金)의 군사들이 침입하자 좋아하던 술을 끊고 적을 평정한 뒤에야 술을 마시겠다고 한 충성심을 찬탄한 내용의 시이다. <의당위숙옥사부립부비(擬唐魏叔玉謝復立仆碑)>는 당(唐) 태종(太宗)이 참언(讒言)을 듣고 위징(魏徵)의 비석을 넘어뜨렸다가 요동정벌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위징의 충성을 생각하여 다시 비석을 세운 고사를 인용하여, 위징의 입장에서 감사하는 뜻을 쓴 시이다.
▶천묵유고(天默遺稿) | 이상형(李尙馨, 1585~164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천묵재(天默齋) 이상형(李尙馨, 1585~1645)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이근(頤根)이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713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권두(卷頭)에 권상하(權尙夏)가 1713년에 쓴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전란으로 유고가 상당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인지 49제의 적은 양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차와 계사이다. 특히 소차는 1628년에 올리려고 했던 봉사부터 1640년에 향약을 다시 설립할 것을 청하는 의소까지 16편이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3은 서(書), 응제록, 제문 및 잡저와 쇄언(瑣言)이다. 권4는 정문(程文)인데, 부(賦) 2편과 성인(聖人)이 인정을 사단 혹은 칠정으로 언급하였으나 거기에 ‘회(悔)’가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일에 후회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책문(策問)에 답한 대책문(對策文)이 수록되어 있다. 권5~6은 부록이다. 부록 상은 연보(年譜), 지(識), 묘갈명(墓碣銘)이고 부록 하는 만사(輓詞)와 봉안제문(奉安祭文)과 석채축문(釋菜祝文)이다.
▶천사집(川沙集) | 김종덕(金宗德, 1724~179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1724~1797)의 문집이다. 사후 유적의 정리와 문집 등 저술 간행은 아우 김종발(金宗發)이 수집 정리하여 종질 당진(堂進)의 주관 하에 10책으로 편차하여 1806년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9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으며,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문집의 규모에 비해 시(詩)가 적고 편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성리학자 문집의 특징이다. 권2~13은 모두 서(書)이다. 권2~3은 1759년~1781년 동안 스승 이상정에게 올린 36편의 편지로서, 1771년에 올린 ≪심경강록(心經講錄)≫에 대한 장편의 문목은 저자가 대산의 사후 이 유업을 이어 완성하게 된 이유를 짐작케 하는 글이다. 권14~16은 잡저(雜著)이다. 권14는 <인설의품(仁說疑稟)>으로 주자(朱子)의 인설(仁說)과 인설도(仁說圖)에 대해 분석하고 나름대로 문답을 설정하여 인에 대한 개념을 추론한 것인데, 1765년 짓고 1766년 스승 이상정에게 질정을 받은 것이다. 권19는 행장으로 스승 이상정, 부친 김남응(金南應)의 유사와 아우 김종경, 김종섭의 가장이 실려 있다.
▶천재집(泉齋集) | 신필흠(申弼欽, 1806~186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천재(泉齋) 신필흠(申弼欽, 1806~1866)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종질 종호(鍾浩)와 익호(翼浩), 족손 상익(相翼) 등이 유문(遺文)을 수습 정리하고 방산(舫山) 허훈(許薰)의 교감(校勘)을 받아 1895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권연하(權璉夏)가 1895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근래 유상(遊賞)에 탐닉하여 자신도 모르게 시를 여러 편 짓게 되어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한 옛사람의 교훈을 어겼다 하며 앞으로는 시를 짓지 않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의 긴 제목을 붙인 시도 보인다. 권6은 잡저, 서(序), 기(記)이다. <의계설(義雞說)>은 암탉 두 마리가 피차의 소산(所産)을 가리지 않고 병아리를 돌보는 것을 보고 인성(人性)을 빗대어 논한 글이고, <대책(對策)>은 고을 수령을 대신하여 왕의 구언(求言)에 응한 글로 삼정(三政)에 관한 개선책을 제시한 글이다. 권7은 발(跋), 명(銘), 상량문(上梁文), 축문(祝文), 뇌사(誄辭), 제문(祭文)이다. 권말(卷末)에 허훈이 1895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천파집(天坡集) | 오숙(吳䎘, 1592~163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천파(天坡) 오숙(吳䎘, 1592~1634)의 문집이다. 1638년(인조16)에 박미(朴瀰)가 지은 발(跋)에 의하면, 이해에 동지성절사로 부경(赴京)하게 되었는데 같이 간 부사 오숙이 평양에 이르렀을 때 저자의 시문 5권을 보여 주면서 발문을 부탁하였다고 하였다. 이로써 보면 1638년 이전에 이미 오숙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시문을 정리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646년 오숙이 진주 목사가 되면서 간행을 도모, 이경석(李景奭)과 정두경(鄭斗卿)에게 서문(序文)을 받았다. 오숙은 기존 5권으로 정리해 두었던 것을 다시 시 3권, 문 1권 합 4권으로 재편하여 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오숙은 1647년 4월에 진주 목사에서 체차되었으니, 적어도 그 이전에는 간행을 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646년 초간 때 지어준 이경석과 정두경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1~3은 詩로 43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관직 생활 중 중국 사신과 관찰사 등을 지낸 경력이 많았던 만큼 그때마다 지었던 작품이 많다. 맨 끝에 1638년 박미(朴瀰)가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첨모당집(瞻慕堂集) | 임운(林芸, 1517~157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1517~15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후손 및 용문서원의 원유들이 가장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간행하였다. 형 임훈(林薰)의 문집 ≪갈천집(葛川集)≫도 이들에 의해 1665년 간행되었는데, 두 사람이 배향되어 있는 용문서원이 1662년 사액된 이후 이들의 문집 간행이 착수된 것으로 보인다. 송시열(宋時烈)의 서문(序文)이 1669년에 쓰인 것 등을 고려할 때 아마도 ≪갈천집≫이 간행되고 나서 본집의 간행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序)와 목록은 없다. 권1은 시부와 습유이다. 권2는 <유천마록(遊天磨錄)>, 책문, 논이다. 책문 3편은 제목을 자술하여 지은 글들이다. <석면반상복론(釋冕反喪服論)>은 주나라 성왕이 죽고 강왕이 즉위시 군신의 조회를 받고 나서 면복을 벗고 상복으로 돌아갔던 것을 경(經)과 권(權)의 도리로 논한 글이다. 권3은 1595년에 아들 임승순(林承順)의 부탁으로 이칭(李偁)이 지은 저자의 행장, 허목(許穆)이 지은 묘갈명이다. 특히 묘갈명은 초간본과 개각본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주는 글이다.
▶청강집(淸江集) | 이제신(李濟臣, 1536~158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청강(清江) 이제신(李濟臣, 1536~158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차례 병란(兵亂)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산일되었고, 이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추득(追得)하여 엮은 유고가 시 1책, 문 8책, 후청쇄어(鯸鯖瑣語) 1책이었다. 이것을 아들 이명준(李命俊)이 덕산 현감으로 있으면서 간행하기로 하고, 저자의 사위 신흠(申欽) 등이 산정하여 1610년 덕산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초간본에서 누락된 시문을 모은 8책이 가전(家傳)되어 오다가 1927년 중간되었으니, 1922년 11대손 이정노(李正魯)가 지은 속집발과 지(識)를 통해 그 시말을 알 수 있다. 본집은 세계급자손보(世系及子孫譜), 부록 2권, 원집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는 서(序)가 있고, 目錄은 없다. 이어 세계급자손보(世系及子孫譜)가 실려 있는데, 시조로부터 저자의 증손대(曾孫代)까지 수록되어 있다. 부록은 상, 하로 나뉘어 있고 원집 권1은 시, 권2는 사(辭), 찬(贊), 명(銘), 변(辨) 등이고 권3~4는 지명(誌銘), 갈명(碣銘), 묘표(墓表) 등이 실려 있으며, 맨 뒤에는 신흠이 지은 발이 있다.
▶청계집(淸溪集) | 홍위(洪葳, 1620~16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계(清溪) 홍위(洪葳, 1620~1660)의 문집이다.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아들 홍천서(洪天敍)에 의해 수집되었다. 1686년 홍천서는 저자와 교분이 두터웠던 김수항(金壽恒)에게 유고(遺稿)의 산정(刪定)을 부탁하였으나 김수항이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하여 사사되자 중단되었다. 이에 1694년 갑술환국의 이듬해인 1695년 다시 그의 아들 김창협(金昌協)에게 부탁하여 산정 받아 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홍천서는 송시열에게 묘지명을 부탁하여 받았다. 이렇게 김수항, 송시열 등 서인의 도움으로 간행을 도모하던 본집은 기사환국을 계기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개되어 그 이듬해인 1695년에 8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을 보게 된 것이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는 1695년 김창협이 쓴 서가 있다. 권1~2는 시로, 1655년 호당(湖堂)에서 김수항, 이단상, 이은상 등과 창수한 시를 모은 <호당창수록(湖堂唱酬錄)>과 <서행록(西行錄)>, <영영록(嶺營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4~6은 소(疏), 차(箚), 계(啓)이다.
▶청계집(靑溪集) | 양대박(梁大樸, 1543~159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청계도인(靑溪道人) 양대박(梁大樸, 1543~1592)의 문집이다. 만년에 지은 1000여 편의 시를 전주 부윤(全州府尹) 남언경(南彥經)이 빌려갔다가 임진란 때 잃어버리고 저자도 곧 의병에 참가했다가 과로로 죽는 바람에 더 이상의 저술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아들 양경우(梁慶遇)와 양형우(梁亨遇)가 평소 외우던 부친의 시 70여 편과 가장(家藏)되어 있던 난고(亂稿) 중 100여 편의 시를 찾아내어 시집 2권으로 편차하여 허균(許筠)의 서문을 받고, 중국인 웅화(熊化)의 서문을 받아 1617년(광해군8) 장성 현감(長城縣監)으로 나간 다음 해 1618년 4월 ≪청계유고(靑溪遺稿)≫ 2권 1책을 장성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4권과 부록으로 되어 있다. 권1~2는 시로, 이 중 <청계(靑溪)>는 주지번(朱之蕃)이 향탕(香湯)에 손을 씻은 뒤에 읽어야 한다고 극찬한 시이며, <봉정송강상국(奉呈松江相國)>은 강계(江界)에 안치되어 있는 정철(鄭澈)에게 보낸 시인데 이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저자의 시는 그의 시가 중국 사신 등달(滕達)에 의해 <심경칠자시(瀋京七子詩)>로 편집되기도 하였다.
▶청대집(淸臺集) | 권상일(權相一, 1679~1759)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조석철(趙錫喆)과 증손 준(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연보 2권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1797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4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특히 ≪퇴계집≫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5는 소(疏), 전이다. 소는 대부분 사직소이고, 전은 1756년에 노병을 위로하여 쌀과 어물 등을 내려준 것에 대해 사례하는 내용이다. 권6~9는 서(書)로, 편지를 주고받은 대상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는데, 90여 명이 넘는 인사들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권10은 잡저, 명(銘), 상량문, 제문이고 권11은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12는 묘갈, 권13은 묘표, 묘지, 행장이고 권14는 행장이다. 권15~16은 관서록(觀書錄)이다. 연보 권1~2는 1790년 ‘희정(僖靖)’의 시호를 받은 일까지 기록된 연보 및 유사, 제문, 만사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는 조석철이 1796년에 지은 발이 있다.
▶청련집(靑蓮集) | 이후백(李後白, 1520~157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문집이다. 본집은 목판(木板)으로 간행되었는데, 누가 정리하고 언제 간행하였는지 분명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간행본에 실린 행장이 현손 이석형(李碩亨)의 요청으로 1686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것이므로, 1686년 이후에 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이다. 권수에 목록(目錄)과 1686년에 송시열이 지은 행장이 있다. 내용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육언절구(六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칠언배율(七言排律),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서(序), 삭훈문(削勳文), 보유(補遺)이다. 서문(序文)은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의 저술을 모아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을 모방하여 유희춘(柳希春)이 찬집한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에 대한 것이다. 삭훈문은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킨 이들에게 준 위사공신(衛社功臣)을 혁파하여 녹권(錄卷)을 거둘 것을 선포한 반교문이고 보유는 <전철구서(傳鐵狗書)>, <무제(無題)>, <탑송(塔松)>이다.
▶청령자유고(淸泠子遺稿) | 최수철(崔守哲, 1683~171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령자(淸泠子) 최수철(崔守哲, 1683~1712)의 문집이다. 본집은 18세기 초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된 초간본(初刊本)으로 그 인행경위(印行經緯)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상, 하 2권 1책의 시집(詩集)으로, 시체(詩體)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차(編次)되어 있다. 권상의 시(詩)는 1701년부터 1708년까지 지은 것이고 권하의 시(詩)는 1711년부터 1712년 죽기 전까지 지은 것으로, 병중의 심회를 읊은 내용이 많다. 주로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최창대(崔昌大), 이하영(李夏英), 종제 수범(守範) 등과 수창하였고, 종제와 이광일(李匡一), 유아기에 죽은 아들에 대한 만시가 있다. 이 중에서 <문수사(文殊寺)>, <중흥사(重興寺)> 등은 1711년에 종제들과 북악(北嶽)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것이고, <서회기군서요화(書懷寄君敍要和)>는 종제 수범(守範)에게 보낸 연작시로 심회를 읊은 것이다. 그리고 권하에 있는 부록(附錄)에는 최석정(崔錫鼎)이 저자의 부인 이씨(李氏)의 부탁으로 1715년에 쓴 묘지명(墓誌銘)과 최석정, 최석항(崔錫恒), 최창대가 지은 제문(祭文)이 실려 있다.
▶청륙집(靑陸集) | 김덕겸(金德謙, 1552~163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륙(靑陸) 김덕겸(金德謙, 1552~163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난리를 겪는 동안 산일되어 전하지 않고 중년에 지은 것도 화재로 인해 대부분 산일되었다. 아들 김상(金尙)이 산일되고 난 나머지를 수집 편차하여 2책으로 만들었는데 시(詩)가 459수, 잡저가 33편이었다. 이식(李植)이 산정하고 1647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647년에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4는 시이다. 권1과 권2는 임진란 후의 참담한 상황에서부터 사신으로 가거나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동료를 전송하는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권3은 송별시와 만사가 많고, 권4는 동헌이나 누각을 읊은 시, 차운시와 만시가 많다. 권5는 잡시습유이고, 권6은 잡저, 게첩, 소(疏), 잠(箴), 제문, 사부이다. 그 중에서 잡저는 이정귀(李廷龜)의 정자인 보만정(保晩亭)에 대한 서문, 문천상(文天祥)과 정몽주(鄭夢周)의 유사를 모아 만든 ≪성인록(成仁錄)≫에 대한 발문 등이며 권미에 아들 김상이 1647년 경주 부윤 때 지은 지(識)와 이식이 1645년에 지은 제(題)가 있다.
▶청벽집(靑壁集) | 이수연(李守淵, 1693~174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청벽(靑壁) 이수연(李守淵, 1693~1748)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이순(頤淳)이 저자의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계산세고(溪山世稿)에 수록한 것이 19세기 전반에 목판으로 간행된 후, 저자의 족5대손 만인(晩寅)과 6대손 중린(中麟) 등이 소실되고 남은 저자의 시문을 바탕으로 증보ㆍ재편하여 19세기 말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총목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만시(輓詩)의 비중이 높고 지인들이나 친인척에게 보내는 차운시(次韻詩), 증시(贈詩) 등이 있다. 권2는 서(書)이다. 경광서원(鏡光書院)의 사림, 이광정(李光庭), 조현명(趙顯命)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3은 기(記), 발(跋), 제문, 고유문, 부록이다. 기는 남경장(南慶章)의 부탁으로 지은 <영양남씨남흥동재사중수기(英陽南氏南興洞齋舍重修記)>이고, 부록은 저자를 시강원에 천거하는 안찰사 김상성(金尙星)의 계사(啓辭)와 저자 사후 조정에 정려를 요청하는 관찰사 남태량(南泰良)의 계사, 문후손 휘양(彙陽)이 지은 사전(史傳) 등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는 족5대손 만인이 지은 발과 6대손 중린이 지은 지(識)가 있다.
▶청봉집(晴峯集) | 심동구(沈東龜, 1594~166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봉(晴峯) 심동구(沈東龜, 1594~1660)의 문집이다. 본집은 중자 유(攸)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1673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5는 시(詩)이다. 저자는 <당음(唐音)>과 두시(杜詩)를 좋아하였다. 수창한 이들은 이경석(李景奭), 박장원(朴長遠) 등 서인계 문인들 뿐만 아니라 조경(趙絅), 이민구(李敏求) 등 남인계 문인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권6은 표전, 비답, 교서, 부(賦), 송(頌), 명(銘), 찬(贊), 설(說), 서(敍)이다. 그중에서 <의당이백사소견금란전표(擬唐李白謝召見金鑾殿表)>는 이백(李白)이 하지장(賀知章)의 추천으로 금란전(金鑾殿)에서 현종을 알현한 일을 소재로 지은 것으로 이백이 소명을 거절하여 올리는 표문을 의작하였다. 이밖에 <동지하전(冬至賀箋)>, <대전탄일전(大殿誕日箋)>, <원손탄생하전(元孫誕生賀箋)> 등은 저자가 유배되기 전에 지은 것이다. 말미에 실린 <장녕시권소서(長寧詩卷小敍)>는 저자가 장흥에 유배 중이던 1644년부터 1649년까지 지은 시를 모은 시권에 쓴 자서이다.
▶청사집(晴沙集) | 고용후(高用厚, 1577~165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 1577~1652)의 문집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아들로 조흥빈(趙興賓)의 고변사건에 연루되어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 부친 고경명과 두 형, 그리고 누이까지 모두 임진란에 순절하여 충신 효자 가문의 자손이라는 명예를 입고 환로(宦路)에 올랐지만 불우하게 일생을 마치고 적사(嫡嗣)도 없었다. 1680년 서자 고부선(高傅善)이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여 김수항(金壽恒)에게 문집의 산정(刪定)과 서문을 부탁하였음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문집이 간행되었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누판고(鏤板考)≫에 청사집(晴沙集)의 판목이 저자 부친의 사우인 광주 포충사(褒忠祠)에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완영(完營)에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완영책판목록(完營冊板目錄)≫이 작성된 시기가 대략 1759년경이므로 적어도 이전에 목판으로 간행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집의 구성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1631년 저자가 동지사로 중국에 갔을 때 서광계(徐光啓)에게 받은 서문과 김수항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1은 시이다. 권말의 중국인과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청성집(靑城集) | 성대중(成大中, 1732~180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문집이다. 아들 성해응(成海應)의 가집의례에, 시문 외에 송사전(宋史筌) 1권, 췌언(揣言) 1권, 질언(質言) 1권, 성언(醒言) 3권 등이 있었으나 너무 박잡하여 문집으로 편차하기 어려우므로 시문만을 편정하여 산삭하여, 손자 성헌증(成憲曾)이 부친의 뜻을 이어 1840년 조인영(趙寅永)에게 서문을 받고, 조만영(趙萬永)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운각활자로 문집을 10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권두에 조인영이 1840년에 쓴 서문이 실려 있다. 각 권마다 첫머리에 목록이 달려 있고, 권1~4는 시(詩), 권5~10은 문(文)이며, 부록은 실려 있지 않다. 권1~4는 시로, 1763년 서기관으로 조엄(趙曮)을 따라 일본에 다녀오던 때를 전후한 시기의 시가 많다. 전(傳)은 모두 충성과 효행의 실질이 있는 자들을 입전한 것이다. 한순계(韓舜繼)는 선조 연간의 학자로 동기(銅器)를 팔아 노모를 봉양하고 신역을 직접 부담한 인물이며, 유찬(柳澯)은 광해군 때 지조를 지키느라 사직하였는데 인조반정 이후 종부인 유몽인(柳夢寅)에게 연루되어 억울하게 유배가 죽은 인물이다.
▶청송집(聽松集) | 성수침(成守琛, 1493~156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문집이다. 본 문집이 처음 간행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영천(靈川) 신응구(申應榘)에게 준 편지에서 본집에 부록(附錄)된 <절효선생묘지명(節孝先生墓誌銘)>을 인용하고 있고 <청송행장(聽松行狀)>이 1576년에 지어진 것을 미루어 보면 선조 연간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1806년 8세손 성긍주(成肯柱)가 풍기 군수(豐基郡守)로 있을 때 초간본을 가장초본(家藏草本)과 교수(校讎)하여 그 탈오(脫誤)를 고치고 아울러 시 약간 편을 얻어 부록에 첨입(添入)한 후 경상도 관찰사 윤광안(尹光顔)의 발을 받아 풍기의 욱양서원(郁陽書院)에서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은 시, 권2~3은 부록이다. 권1은 시로서, <산거잡영(山居雜詠)>은 말년에 구작(舊作)을 기억하여 칠언절구를 모아 스스로 이름 붙인 것이다. 권미에는 1806년에 지은 윤광안의 발이 실려 있다.
▶청음집(淸陰集) | 김상헌(金尙憲, 1570~1652)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문집이다. 1645년 이후 지은 작품들을 차례로 정리하여 자신의 시문을 스스로 산정(刪定), 자편(自編)하였다. 이에 본집은 저자 사후 바로 간행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이나, 본집의 간행 사실을 알려주는 서발이 없어 자세한 것을 알 수 없지만, 1653년경 아들 김광찬(金光燦)이 주도하여 간행을 시작, 40권 16책의 목판으로 이듬해쯤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중간을 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었지만, 김수항(金壽恒)과 김수흥(金壽興)이 유배되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 하에서, 단지 연보만 1767년에 저자의 현손 김용겸(金用謙)이 김상용(金尙容)의 7대손인 경상 감사 김응순(金應淳)과 함께 간행하였다. 본집은 40권 16책이다. 권9는 <조천록(朝天錄)>으로, 1626년 성절겸사은진주사(聖節兼謝恩陳奏使)로 북경에 다녀올 때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으로, 모문용(毛文龍)이 우리나라를 무날(誣捏)한 사정을 진달하기 위하여 예부(禮部)와 병부(兵部)에 올린 정문(呈文), 정묘호란의 소식을 듣고 청병(請兵)하기 위하여 병부(兵部)에 올린 정문(呈文) 등이 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권책수 : 31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문집이다. 1795년에 정조는 저자의 생전의 수고를 생각하여, 저자의 아들 이광규(李光葵)를 검서관에 임명하고, 문집을 편찬하는 데 쓸 비용으로 500냥을 특별히 하사하며 각신, 초계문신, 지친 등에게도 힘닿는 대로 간행 비용을 보태라고 하교하였다. 이에 심환지(沈煥之), 김재찬(金載瓚) 등이 비용을 내 거의 2,000냥의 문집 간행 비용이 마련되었다. 정조의 명으로 저자의 문집 간행을 주관하게 된 윤행임(尹行恁)이 간본을 초선하고 서문과 묘갈문을 썼고, 남공철(南公轍)이 서문과 묘표를, 박지원이 행장을, 이서구(李書九)가 묘지명을, 성대중(成大中)이 발을, 아들 이광규가 유사를 지어, 1797년에 ≪아정유고(雅亭遺稿)≫가 운각활자로 인행되었다. 이미 인행된 ≪아정유고≫ 외에 남아있던 상당량의 가장유고를 편차한 사본이 ≪청장관전서≫이다. 권수제에 아들 이광규가 정리 편집하고, 이원수(李畹秀)가 교정하여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본집은 67권 31책으로, 서발은 없다. 각 권마다 권두에 목록을 실었다. 권3~4는 영처문고(嬰處文稿)이고, 권32~35는 청비록(淸脾錄)이다.
▶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 심수경(沈守慶, 1516~159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청천당(聽天堂)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정사본(淨寫本) 1책 48장의 시집으로, 서(序)나 발(跋)이 없고 서사(書寫) 경위도 분명치 않다. 저자의 또 다른 필사본 ≪청천당수고(聽天堂手藁)≫는 1592년 7월부터 1597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미루어 저자 말년의 작품으로 보인다. 본 문집이 1556년 강원도 관찰사 시절의 작품 등 전 생애에 걸쳐 지어진 시들을 싣고 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본 문집에는 이 수고본(手藁本)의 작품이 모두 실려 있지는 않으며, 실려 있는 작품 중에도 내용상의 차이점이 보인다. 문집은 저자의 시를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등 시체별로 나누어 1책으로 엮어 놓았다. 내용은 저자가 각도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여선지 각도의 지명과 명승이 시제(詩題)에 자주 오르고 있다. 그리고 화답과 차운시 류에서는 서교(西郊) 송찬(宋贊)과 나눈 작품이 40여 수에 달하고, 죽계(竹溪) 안한(安澣)과의 작품도 다수 실려 있다.
▶청천당집(聽天堂集) | 장응일(張應一, 1599~167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1599~1676)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순조 연간 이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권수에 이상정(李象靖)이 쓴 서(序)와 목록이 있고, 발은 없다. 권1은 시로서 시체의 구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평소 저자가 매화를 사랑하여 이와 관련된 <옥매(玉梅)>, <납매(臘梅)>, <팔매돈(八梅墩)> 등의 시를 지었다. 권2는 비답, 소(疏), 계사이다. 그중 비답은 우의정 한흥일(韓興一)과 영의정 김육(金堉)의 사직에 대한 불윤비답이고, <구강빈계사(救姜嬪啓辭)>는 1646년 2월에 올린 것으로,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 강씨(姜氏)에 대한 사사의 명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한 것이다. 권3은 서(書), 서(序), 기, 발, 축문, 제문이다. 서(書)는 주고받은 대상에 따라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4는 잡저, 묘지, 묘갈이다. 특히 잡저는 1638년에 지은 <추정록(趨庭錄)>으로 양부인 장현광(張顯光)에게 보고 들은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권5~6은 부록으로 가장, 묘갈명, 과정록약(過庭錄略), 사제문, 만장, 신장(贐章)이 실려 있다.
▶청천집(靑泉集) | 신유한(申維翰, 1681~175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 문생들이 유고를 수집하고, 선대로부터 교분이 있던 이미(李瀰)가 영남의 관찰사로 부임하여 1770년에 유고 중 뛰어난 시문만을 정선하여 6권 3책으로 편찬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872년경부터 종손 신태진(申泰鎭)은 가장하고 있던 유고를 바탕으로 널리 유문을 모으고 부록을 보강하여 1877년에는 속집의 편차를 완료하였다. 이에 친족들과 향토 사림의 협조를 받아서 족손 신두상(申斗相)과 함께 간행을 준비하여 영간소(營刊所)를 설치하고 권연하(權璉夏)의 서문과 신재석(申在錫)의 후지를 받았지만, 신태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업은 지지부진해져 간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1891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6권 3책, 속집 12권 5책 합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 권수에는 이미의 서문이 실려 있다. 속집 권3~6은 해사동유록(海槎東遊錄)으로, 일기체의 사행록이다. 권3에는 이해 4월 11일 대궐을 출발하여, 6월 20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는 과정과 일본에 도착하고 난 뒤 폭풍을 만나 객관에 머무르는 8월 초까지의 기록이 실려 있다.
▶청파집(靑坡集) | 이육(李陸, 1438~149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청파거사(青坡居士) 이육(李陸, 1438~1498)의 문집이다. 연산군 때에 이경동(李慶仝) 등이 문집과 함께 운각(芸閣)에서 간행하려 하였으나, 흉년으로 인하여 간행되지 못하였다가 박은(朴誾)이 다시 편찬하던 중 1504년 갑자사화로 화를 당하자, 저자의 유집도 함께 유실되었다. 그 후 집 안에서 보관하고 있던 어릴 적의 시축(詩軸) 약간 편과 ≪극담(劇談)≫ 1질을 찾아내 아들 이험(李嶮)이 선사(繕寫)하고, 강혼(姜渾)의 서(序)와 자신의 지(識)를 붙여 1512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1은 시, 권2는 문이다. 권수에는 성현이 쓴 청파비명(靑坡碑銘)이 있다. 권1에는 시가 실려 있는데, 1462년 이후 3년간 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수학하던 시기에 지은 시를 비롯하여, 과거급제 후 관직생활에 이르는 기간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문을 수록하였는데, 영남을 유람하면서 지은 <지리산기(智異山記)>와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을 비롯하여 설(說), 서(序), 묘갈명(墓碣銘), 그리고 1464년 온양 별시문과에서 장원한 대책(對策)이 수록되어 있다.
▶청풍자집(淸風子集) | 정윤목(鄭允穆, 1571~162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 1571~1629)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황해도 관찰사 정옥(鄭玉)이 현손 정밀(鄭峚)과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한 고본을 편차하여 1760년 목판으로 초간한 원집과 6대손 필규(必奎) 등이 원집에 누락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25년 목판으로 간행한 속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4권 2책, 연보, 속집 2권 1책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사(辭),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이다. 그중에서<복거사(卜居辭)>는 장야평에 거처를 정하고 주위를 소요하며 경광을 읊은 것이다. 권2는 오언고시인데, <서회(書懷)>는 임진왜란 때 북관에 있을 때 어수선한 상황을 걱정한 내용이다. 권3은 오언고시, 칠언고시, 잡시, 서(書), 제문이고 권4는 잡저, 부록, 유묵이며 권말에 정옥(鄭玉)이 지은 발문과 정밀이 1760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속집의 권수에는 연보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사(辭),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이고 권2는 오언고시, 칠언고시, 잡시, 서(書), 제문, 부록이며 권말에 정필규가 182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청하집(靑霞集) | 권극중(權克中, 1585~165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 1585~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1659년 수습한 자편고를 바탕으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문인 김우징(金遇澄)이 민진원(閔鎭遠)의 협조로 1704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저자의 묘갈명과 행장을 1720년 이후 추각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문집, 시집 7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민진원이 1704년에 쓴 발(跋), 후에 추각한 조문명(趙文命)이 지은 묘갈명, 1665년에 정두경(鄭斗卿)이 쓴 시집서(詩集序), 저자가 생전에 자편한 시고에 쓴 서설, 정두경이 저자에게 보낸 시(詩) 2수, 후에 추각한 이재(李縡)가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권1~7은 모두 시이다. 정두경은 저자의 시에 대해 “청원하고 부박하며 당송(唐宋)을 넘나드는데, 특히 당풍(唐風)이 농후하다. 재격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오묘한 이치를 많이 언급하였으니, 참으로 유도자(有道者)의 작품이다.”라고 평하였다. 특히 최치원(崔致遠)이 음주던 유상대에서 고인을 읊은 시, 특이한 자연물을 읊은 <박물삼장(博物三章)>, 칠언사운과 칠언소시에 같은 제목으로 읊은 <관기(觀妓)> 등의 시들이 눈에 띈다.
▶체소집(體素集) | 이춘영(李春英, 1563~160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체소(體素) 이춘영(李春英, 1563~1606)의 문집이다. 아들 이시재(李時材)가 가장(家藏)해 온 유문 3권을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626년(인조4) 신흠(申欽)의 교정을 거치고 서문을 받는 등 일찍부터 간행을 계획하였지만, 이때 간행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후 저자의 외질(外姪)인 김육(金堉)이 1638년(인조16)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서 저자의 글을 1책으로 초선(抄選)하여 간행하였다. 1647년(인조25) 차남 이시해(李時楷)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되자 곧 저자의 유문 전고(全稿)를 간행할 것을 도모하여, 김상헌(金尙憲)에게 글을 부탁하고 정홍명(鄭弘溟)에게 발문을 받아서 신흠(申欽)의 서문을 함께 실어 1648년 3권 3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서는 원집 3권, 보유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 신흠의 서문, 정홍명, 김상헌의 발문이 실려 있다. 목록과 부록은 없다. 보유에, 허균의 뇌사(誄辭)가 유일한 문자이다. 문은 양한 이하를 추종하였고, 또 각종 시화에 나오는 저자의 일면을 보더라도 성품이 오만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의 시는 풍부하고 화려하였으며 호한(浩汗)하다고 평을 받고 있다.
▶초간집(草澗集) | 권문해(權文海, 1534~159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 오랫동안 편수를 거치지 못한 채 초고(草稿) 상태로 있다가 병란을 거치면서 많이 산일(散佚)되었던 듯하다. 이 가장 초고(家藏草稿)를 경종 연간에 저자의 증손 권경(權暻)과 4대손인 권봉서(權鳳瑞)가 권두경(權斗經)에게 부탁하여 시 부분을 편차 교정하는 등 문집의 간행을 준비하였고, 8대손 권도상(權道相)이 외후손 황용한(黃龍漢)과 함께 다시 교정을 보고 정리하여 1812(순조12)에 부록과 함께 4권 3책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권수에 정종노(鄭宗魯)의 서문과 목록, 연보가 실려 있으며, 원집 4권, 부록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이다. 저자가 퇴계(退溪)의 제자였으므로 함께 시를 수창한 사람도 같은 문인인 김성일(金誠一), 김극일(金克一), 김부륜(金富倫) 등이었고, 김효원(金孝元), 이산해(李山海) 등 동인 계열과 비교적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권3은 문(文), 권4는 잡기(雜記)와 대동운옥범례(大東韻玉凡例), 권5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본집 편집과 교정에 참여한 황용한의 발이 있다.
▶초당집(草堂集) | 허엽(許曄, 1517~158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정사본(淨寫本)의 형태로 남아 있는데, 서(序), 발(跋)이나 관계 기록이 없어 편찬이나 서사(書寫) 경위 등을 알 수 없다. 저자의 아들 허봉(許篈)의 ≪하곡집(荷谷集)≫이나 딸 허초희(許楚姬)의 ≪난설헌집(蘭雪軒集)≫은 동모제(同母弟) 허균(許筠)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되었는데, 부친인 저자의 문집과 이모형(異母兄)인 허성(許筬)의 문집 ≪악녹집(岳麓集)≫의 간행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고 정사본으로만 남아 있다. 문집은 총목록, 원집, 부록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록, 시목록이 실려 있다. 본집에는 시 12제가 실려 있다. 시는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두주가 있다. <중흥사제등월축(重興寺題燈月軸)>은 1540년 겨울에 심수경(沈守慶), 윤결(尹潔)과 함께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할 때 시를 짓고 <등월축(燈月軸)>이라고 하였는데, 뒤에 송인(宋寅), 정유길(鄭惟吉) 등이 여기에 차운하였다. 부록의 척록은 ≪견한잡록(遣閒雜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소재집(蘇齋集)≫ 등에서 저자와 관련된 기록을 뽑은 것이다.
▶초려집(草廬集) | 이유태(李惟泰, 1607~1684)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1607~1684)의 문집이다. 손자 이단성(李端誠)이 가장(家藏) 25책의 유고와 부친 이옹(李顒)가 편찬한 연보를 바탕으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1694년 호남의 금산서원(錦山書院)에 제향하려다가 실패하고, 1709년에는 호서 유생들의 상소로 충현서원(忠賢書院)에 배향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1711년에도 공주 유생의 상소로 갈산(葛山)에 서원을 세웠으나 미처 배향되지도 못하고 철회되는 비운을 맞는 등, 문집 간행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가장초고(家藏遺稿)는 다시 저자의 5대손(이름 ㆍ)이 임성주(任聖周), 김지행(金砥行)과 함께 교정(校正)하였고, 다시 김정묵(金正默)의 손을 거쳐 17책으로 산정하였는데, 그중 서 1권과 부록 1권이 빌려간 이웃집의 화재 등으로 훼손되었다. 이후 7대손 이경(李鏡)의 주도로 유고를 수습하여 14책으로 정리한 뒤, 종형 이횡과 함께 1863년 봄에 목활자로 인행(印行)하는 일을 시작하였으나 이횡의 죽음으로 1865년에 가서 26권 14책의 목활자본으로 완성하였다. 본집은 원집 26권 14책과 연보 4권 2책으로 모두 30권 16책이다.
▶초암전집(初庵全集) | 김헌기(金憲基, 1774~184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초암(初庵) 김헌기(金憲基, 1774~1842)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 사위 백응진(白膺鎭), 문인 김제오(金濟五), 백일현(白一顯) 등이 유고(遺稿)를 모아 ≪남산속고(男山續稿)≫를 만들고, 구고(舊稿)의 편차(編次)를 따르면서 속고(續稿)와 합편(合編)하여 ≪초암집(初庵集)≫을 만들어 가장(家狀)하였다. 1881년에 김택영(金澤榮), 박재현(朴載鉉), 최중건(崔中建) 등이 ≪초암집≫을 교정(校正)하여 14권으로 만들고 85부를 개성(開城)에서 간행하였다. 중간(重刊)은 장시순, 임황식(林晃植)이 주사를 맡아 보았고, 김원배(金元培), 윤재청(尹在淸), 김환철(金煥喆) 등이 간행(刊行) 자금을 대어 중국의 남통(南通) 한묵임서국(翰墨林書局)에서 1921년에 250부를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總目), 1828년에 쓴 자서(自序), 연보(年譜), 증손 영락(永樂)이 지은 행략(行略), 유묵(遺墨), 범례(凡例), 목록(目錄)이 있다. 권6은 잡저(雜著)이다. 권7은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찬(贊), 자사(字辭), 혼서(婚書), 축문(祝文)이다.
▶초암집(初菴集) | 신혼(申混, 1624~165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초암(初菴) 신혼(申混, 1624~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신사년에 제주목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12권, 별집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1663년에 조경(趙絅)이 쓴 서(敍)가 있다. 권1~6은 시로서, 520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맏형인 죽당(竹堂)의 시에 차운한 시가 많다. 장소, 관직, 연도 등으로 시록의 제목을 붙여 편차하여 저자의 행력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권7에는 부, 표, 전(箋), 주, 제, 비답, 송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箋)은 모두 방백을 대신하여 지은 대작이며, 비답은 좌의정 김육(金堉)의 초도정사에 대한 불윤비답이다. 그리고 옥과 현령에 재직할 당시 백성의 폐단을 아뢰는 <계사재옥과시략진민막소(癸巳在玉果時略陳民瘼疏)> 등이 있다. 권8은 소, 차이고 권9는 서(書), 서(序)이고 권10은 기이며 권11은 논(論)과 잡저이다. 권12는 제문, 비지, 행장, 척독 등이고, 별집의 권1은 약관록(弱冠錄) 상으로 20세 이전에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2는 약관록 하로 20세 이전에 지은 문이 수록되어 있다.
▶초원유고(椒園遺藁) | 이충익(李忠翊, 1744~181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초원(椒園) 이충익(李忠翊, 1744~1816)의 문집이다. 저서로는 문집 2권과 ≪담로(談老)≫, ≪두시약설(杜詩略說)≫ 각 1권이 가장되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문집 2권의 필사본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담로≫와 ≪두시약설≫은 전존 여부가 불확실하다. 다만 본집 중에 저자가 편찬한 책에 대한 서후(序後)가 실려 있어 그 저술의 대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문집은 서발(序跋)이나 관계 기록이 전혀 없어 유고(遺稿)의 수습과 편찬 경위를 알 수 없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2책으로 책1은 시(詩), 책2는 문(文)으로 구성된 필사본(筆寫本)이다. 이 외에 목록(目錄)이나 서발, 부록(附錄) 등은 없다. 책1에는 시(詩) 290여 제가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묘지명(墓誌銘)과 제문(祭文)은 대부분 저자의 친인척이나 지우들에 대한 것이다. 특히 자씨(姊氏)의 묘지명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매우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가 고생만 하다가 일찍 죽은 누이에 대한 연민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기강태옹사(記康泰雍事)>는 유배 간 부친을 뵈러 가는 길에 여러 모로 편리를 보아준 이산(夷山)의 여관주인의 일을 적은 것이다.
▶초정유고(草亭遺稿) | 박수현(朴守玄, 1605~1674) | 책권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박형원 등
조선 시대 초정(草亭) 박수현(朴守玄: 1605~1674)의 문집이다. 자(字)는 태현(太玄)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시(詩)와 문장(文章)에 능하였던 그는 소암(疎菴)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의 문하에서 수학(受學)하였고, 조선 중기에 소북파(小北派) 팔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으로 불리었다. 소북 팔문장은 草亭 朴守玄(박수현), 南谷 任翰伯(임한백), 滄溟 南翧(남선), 雪峯 姜柏年(강백년), 竹堂 申濡(신유), 庥菴 李休徵(이휴징), 沙川 沈𪗆(심제), 晩洲 鄭昌胄(정창주)가 그들이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과 남인이 정쟁으로 다툴 때, 학식과 명망이 높았던 이들은 막역한 친분으로 당대 사림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본 유고(遺稿)는 8백30여 수(首)의 시(詩)와 60여 편(篇)의 문(文)이 문집형식의 5책으로 된 필사본(筆寫本)이다. 당시에 교류하였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심경을 여과 없이 읊은 작품들이 저작의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어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또한 초정(草亭)이 병자호란(丙子胡亂) 이후의 침체된 나라의 분위기와 관련하여 산중(山中)의 제왕인 호랑이를 의인화(擬人化)한 <산군전(山君傳)>은 가전체(仮傳體) 문학의 귀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시를 주제로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할 만큼 특히 시(詩)에 능했으며 거문고에도 능하여 당대 제일가는 한양 풍류객이자 소북의 결속을 주도했던 학자이다.
▶촌은집(村隱集) | 유희경(劉希慶, 1545~163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의 문집이다. 생전에 자신이 지은 시를 한평공(韓平公) 이경전(李慶全)에게 보여 주면서 산정(刪定)을 부탁하고 서를 받아 1628년 1권의 시집으로 정리해 두었다. 저자 사후에 정리해둔 시집을 여러 아들이 운각(芸閣) 활자를 써서 인출하였다. 손자 유자욱(劉自勗)이 저자와 여러 문인의 창화시(唱和詩)를 모은 <침류대록(枕流臺錄)>과 <임장도제영(林莊圖題詠)>을 합하여 다시 1권의 시고로 만들고 이것과 초간본을 합하여 김창협(金昌協)에게 산정과 편차를 부탁하였다. 여기에 유몽인(柳夢寅)의 <유희경전(劉希慶傳)>, 김창협의 묘표와 남학명(南鶴鳴)의 행록, 홍세태(洪世泰)의 묘지명, 이민구(李敏求)의 ≪동주집(東州集)≫에 실린 기사를 전재한 유사(遺事)를 합하여 부록 1권으로 묶어 1705년경 3권의 선사본(繕寫本)으로 만들었다. 그 뒤 유태웅(劉泰雄)이 호남의 만호(萬戶)로 나간 1707년에 3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구성 되어 있는 시집이다. 권수에는 1707년에 쓴 김창협의 서가 있고, 1628년에 쓴 이경전의 인(引)이 실려 있으며, 목록은 없다.
▶총쇄(叢瑣) | 오횡묵(吳宖默, 1834~1906) | 권책수 : 24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채원(茝園)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의 문집이다. ≪총쇄록(叢瑣錄)≫ 전체에서 시문(詩文)을 초선하여 수록한 24책의 괘인사본으로 현전하는 저자의 시문 선집 중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체제를 살펴보면 ≪총쇄록≫을 초선하여 만든 소규모 지역별 선집들을 통합하여 크게 시(詩)와 문(文)으로 재편하고, 다음 단계에서 시(詩)는 지역별과 시기별로, 문(文)은 문체별로 구분하여 편차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본은 표지의 책차(冊次)가 어떠한 기준으로 순서를 정한 것인지 불분명하고, 권차(卷次) 역시 연결되지 않는 면이 있으며, 일부 중복 수록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정리 단계의 미정고본(未定稿本)로 생각된다. 본집은 본래 24책으로 되어 있으나 합부된 제24책의 채인총쇄록시초(茝人叢瑣錄詩抄)는 본 총간의 편집방침에 따라 수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권수(卷首)에 김인길(金寅吉)이 지은 총쇄만선서(叢瑣謾選序)가 있고, 책20을 제외한 책별 목록이 있다. 책1~14는 시(詩)로, 시체와 관계없이 저작 시기별로 묶어 편차하였다. 책15~18은 문(文)으로 총쇄록선(叢瑣錄選)이다. 책21은 설(說)이다.
▶최와집(最窩集) | 김규오(金奎五, 1729~179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최와(最窩)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현(耳鉉)과 문인ㆍ붕우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한 고본을, 종손 정건(貞健)이 교수ㆍ정리하여 종중(宗中)의 협조를 받아 184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김노겸(金魯謙)이 1848년 문집 간행시 지은 서문이 있고, 책별로 권1, 권3, 권5, 권7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4는 잡저이다. 1770년의 <문화양서원통문(問華陽書院通文)>은 경인호통(庚寅湖通)이라 불리는데 저자와 송시열(宋時烈) 후손측 유림이 대립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으로, 발단은 예전에 윤봉구가 지은 <화양서원묘정비문(華陽書院廟庭碑文)>의 명시(銘詩) 내용이 인물성이설(人物性異說)을 주장한 것이라 하여 인물성동설(人物性同說)을 지지하던 김창협(金昌協), 송덕상(宋德相) 등 낙론(洛論)의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병계(屛溪)의 설을 적극 지지하던 저자가 이 통문을 지어 윤봉구가 송시열, 권상하 학문의 적통이라며 반박한 것이다. 말미에 1832년 문집의 편차와 교정, 간행 과정을 상술한 김정건(金貞健)의 발문이 실려 있다.
▶추강집(秋江集) | 남효온(南孝溫, 1454~149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추강거사(秋江居士)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문집이다. 1504년(연산군10)에 <소릉복위소(昭陵復位疏)>에 추죄(追罪)되어 부관참시 되자 저자의 시문은 약간 편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외증손 유홍(兪泓)이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바탕으로 산일(散佚)된 유고를 수습하고 신호(申濩)ㆍ권응인(權應仁)의 교수(校讎)를 받아 1577년(선조10)에 경상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유홍의 증손 유방(兪枋)이 1673년(현종14)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을 통하여 구본(舊本)을 얻게 되자, 전에 전사(傳寫)하여 성질(成帙)해 둔 유고와 비교ㆍ교정하여 1677년(숙종3)에 금구(金溝)에서 5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목록ㆍ본집 8권ㆍ유묵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금강산기행기의 수작으로 꼽히는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와 심(心)ㆍ성(性)ㆍ명(命)ㆍ귀신(鬼神)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철학사상을 담고 있는 <심론(心論)>ㆍ<성론(性論)>ㆍ<명론(命論)>ㆍ<귀신론(鬼神論)>이 대표적이다. 특히 <육신전(六臣傳)>은 사육신의 전기(傳記)로서 당시 기휘(忌諱)에 저촉되는 것을 비장한 각오로 쓴 것 등이다.
▶추담집(秋潭集) | 김우급(金友伋, 1574~1643)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 1574~1643)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오준선(吳駿善)의 교감을 거쳐 1929년 장성의 요월정(邀月亭)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저자의 장남 여옥(汝鈺)의 미산공실기(薇山公實記)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목록,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구상(具庠)이 지은 서(序)와 전체 목록, 권말에 1928년에 오준선(吳駿善)이 지은 발(跋)과 1929년에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권1~7은 모두 1,450제의 시(詩)이고, 권8은 서(書), 계, 책, 서(序), 기(記), 설(說), 명(銘), 상량문, 제문, 묘표이다. 그중에서 <중화책(中和策)>은 기수의 변화와 응변의 방도에 대해 말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요체는 수령을 잘 선택하는 데 달려 있는데 뇌물이 횡행하는 탓에 화기가 줄어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부록은 행장, 묘지명, 고유축문 등이며, 권말에 8대손 김긍현(金肯鉉)이 1929년에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의 요월정에서 간행한다는 판권지가 있다.
▶추담집(秋潭集) | 유창(兪瑒, 1614~169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추담(秋潭) 유창(兪瑒, 1614~1690)의 문집이다. 본집은 목판(木板)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송시열(宋時烈)과 박세채(朴世采)가 각각 1681년과 1682년에 지은 한거록서(閑居錄序)가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원(卷元)~형(亨)은 시로, 시체에 관계없이 대체로 저작 연대순에 따라 편차되어 있다. 권형(卷亨)의 마지막 부분에는 ≪한거록(閑居錄)≫에 실려 있는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올 때 지은 시들이 상당하다. 권이(卷利)는 소차로 대부분 관직과 품계를 사양하거나 사직하는 상소이다. 권정(卷貞)은 계사, 서(書), 서기, 제문, 가장, 묘지명, 책문, 잡저이다. 특히 계사 가운데 첫 번째 <피혐계사(避嫌啓辭)>는 1654년 열무로 인해 백성들이 원망하고 비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 경계하며 언로를 막지 말아 달라고 청하는 내용이고, 잡저 가운데 <설빈옹자서(雪鬢翁自敍)>는 저자 나이 76세인 1689년에 지은 것으로 ‘설빈옹(雪鬢翁)’이라 자호한 경위와 당론을 경계하고 안분자족을 삶의 지표로 하였다는 것을 서술하였다.
▶추담집(秋潭集) | 김여만(金如萬, 1625~171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김여만(金如萬, 1625~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윤재(潤在)ㆍ영재(泳在)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유도헌(柳道獻)의 교감을 거쳐 190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905년에 유도헌(柳道獻)이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로, 편차에 일정한 기준을 두지는 않은 듯하나 자주와 후서가 있는 작품이 많아 작품의 배경과 지어진 시기,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차운시가 대부분이고, <탄김권이간지적(歎金權二諫之謫)>은 1707년에 이잠(李潛)의 옥사와 관련하여 교리 김세흠(金世欽)과 지평 권두기(權斗紀)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된 사건을 읊은 시이다. 권2는 만시(輓詩)이고, 권3은 서(書)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4는 제문이고, 권5는 행장, 선고, 선비, 재종형 김여옥(金如玉), 망자 하윤(夏鈗)에 대한 묘지, 잡저로 <인인설(人人說)>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이현일(李玄逸)의 아들 이재(李栽)가 지은 행장과 행록 및 행록보유가 수록되어 있고, 만시, 애사, 제문 등이 실려 있다.
▶추담집(秋潭集) | 성만징(成晩徵, 1659~171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담(秋潭) 성만징(成晩徵, 1659~1711)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석(檡) 등이 산일되고 남은 유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사림의 협조를 받아 1926년 상주(尙州)의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으며 각 책별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1702년에 황강에 가서 지은 <경차선생운(敬次先生韻)> 등 권상하의 시에 차운한 것이 가장 많다. 권2~5는 서(書)로, 주로 예설을 변론(卞論)하고 이기설, 경설에 대하여 토론한 것이며, 권상하, 정호, 이세필, 권욱(權煜), 권섭(權燮), 이태수(李泰壽) 등에게 보낸 편지가 많다. 권6은 기(記), 제발이다. 기 가운데 <자족당기(自足堂記)>는 남극주(南極柱)의 당명(堂名)을 풀이하면서 안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권7은 잡저, 제문, 축문, 행장, 전(傳), 잡기(雜記)이다. 잡저 가운데 <만동사시비변(萬東祠是非辨)>은 1704년에 만동묘 향사를 옹호하며 반노론계의 격렬한 논쟁에 맞서 지은 것이다. 권8은 부록으로 묘표, 가장, 만사 등이고 권말에 7대손 석이 1926년에 쓴 발이 있다.
▶추담집(秋潭集) | 고유(高裕, 1722~177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추담(秋潭) 고유(高裕, 1722~1779)의 문집이다. 사손 익겸(益謙)이 유적을 정리하여 편차해 놓은 글이 타버리고 누락된 글만 남았는데, 이 신여본(燼餘本)이나마 발간하고자 1888년에 고준상(高浚相), 고세림(高世林)이 일을 주관하고, 사종손 문겸(文謙)의 편찬을 거친 뒤 선사하여 교정을 받고, 퇴계 후손 이만인(李晩寅)의 서문을 받아 189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이만인의 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 구분 없이 대략 저작 시기순으로 편차되어 있지만 저작연대가 밝혀진 시가 거의 없어서 일부는 편차가 뒤섞여 있기도 하다. <고의(古意)>는 자신의 경륜을 펼치지 못하고 초목처럼 스러져가는 신세를 한탄한 내용이다. 권2는 소(疏), 책문, 전(箋),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설(說)이다. 일반적으로 공거문(公車文)은 연도별로 편차되나 <사지평소(辭持平疏)>가 가장 앞에 배치된 것은 저자의 주요한 글로 여겨서인 듯하다. 이 상소에서 성균관의 유생이 당을 지어 서로 공격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권미에 문겸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추산집(秋山集) | 박홍중(朴弘中, 1582~1646)|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추산(秋山) 박홍중(朴弘中, 1582~1646)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박동규(朴東奎) 등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이양연(李亮淵)의 산정을 거쳐 저자의 종형 홍미(弘美)의 관포집(灌圃集)과 1846년 경상도(慶尙道) 귀산현(龜山縣)에서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권두에 1846년에 이약우(李若愚)가 지은 서(序)와 1845년에 이양연(李亮淵)이 지은 행장이 있다. 상권은 시(詩)이고 하권은 서(序), 기(記), 소(疏), 서(書), 묘지, 제문, 잡저, 전(傳), 표(表), 책(策)이다. 그중에서<신구남이공소(伸救南以恭疏)>는 1613년에 올린 것으로 이원익(李元翼)과 남이공의 신구(伸救)를 청하는 당론(讜論)이며, <논구박래장소(論救朴來章疏)>와 더불어 폐모론(廢母論)을 둘러싼 정치적 견해가 드러난 소이다. <응변책(應變策)>에서는 인심을 모아 국세를 회복하여 국내의 환란을 방지할 것 등을 역설하고, 군제(軍制)를 개편하고 연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등 국방 정책에 대한 의견을 펼쳤다. 권말에 1846년에 성근묵(成近默)과 7대손 박동규(朴東奎)가 지은 발이 있다.
▶추암집(추菴集) | 김하구(金夏九, 1676~176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추암(추(秋/木)菴) 김하구(金夏九, 1676~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신치달(申致達)ㆍ김만보(金萬寶) 등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신치달의 아들 신대중(申大重)과 김성련(金聖鍊)이 유범휴(柳範休) 등에게 교감을 받아 182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정구(鼎九)의 ≪정자공유고(正字公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6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시찬(金是瓚)이 182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고시, 절구, 율시, 육언, 관화록(觀化錄), 만사이다. 칠언시의 비중이 가장 크고, 아우인 용구(龍九)와 정구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관화록은 저자가 죽기 전 1759년부터 1761년까지 지은 시들을 별도로 모아 놓은 시록이다. 권4는 소(疏), 서(書), 잡저이다. 소(疏)의 <의남강서원청액소(擬南江書院請額疏)>는 영덕(盈德)에 있는 남강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의소(擬疏)이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설(說), 명(銘), 상량문이고 권6은 제문, 애사, 행장, 묘갈명, 부록이다. 권말에는 유묵과 신창조(申昌朝)가 182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추재집(秋齋集) | 조수삼(趙秀三, 1762~184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문집이다. 저자는 1789년에 이성원(李性源)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추재집(秋齋集)≫과 ≪경원시총(經畹詩叢)≫ 15책을 가져가 중국의 문인 주문한(朱文翰)과 강연(江漣)에게 보이고 서문(序文)을 받았다. 연활자본(鉛活字本) ≪추재집≫ 권말의 송백옥(宋伯玉)의 ≪추재시고≫ 발(跋)에 우연히 시전에서 ≪추재시고≫를 구하여 읽은 뒤에 발을 써서 저자의 손자인 조중묵(趙重默)에게 준다는 내용이 있고, ≪호산외사≫에도 저자의 시문을 조인영(趙寅永)이 간행하려고 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로 간행되지는 않은 듯하다. 본집은 김진환(金晉桓)이 편집하여 오세창(金晉桓)의 제자(題字)를 받아 1939년 8월에 자신의 아들 김낙훈(金洛勳)이 경영하는 보진재에서 연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머리에 김명희(金命喜), 탄옹(坦翁), 신의(申㦉)가 쓴 3편의 제사(題辭)가 있다. 다음에 중국인 주문한, 강연이 쓴 2편의 서(序)가 있다. 1권부터 6권까지는 시이고, 권2에 실린 <서구도올(西寇檮杌)>은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소재로 한 오언시(五言詩)이다.
▶추탄집(秋灘集) | 오윤겸(吳允謙, 1559~163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시대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 1559~1636)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저술을 즐기지 않아 본래 유문이 많지 않았는데 유명(遺命)으로 인해 문집의 간행을 자제해 오다가 손(孫) 이 오도일(吳道一)이 성주(星州) 목사(牧使)로 나가게 되자 직접 가장초고(家藏草稿)를 3책으로 편집하고 연보와 부록을 합하고 박세채(朴世采)의 발을 받아 1692년에 성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연보, 원집(原集) 3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목록과 연보가 있다. 권2에는 소(疏), 차(箚)가 실려 있는데, 소 중 <평강현진폐소(平康縣陳弊疏)>는 평강현감(平康縣監)으로 재직할 때 출참(出站)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과 기인(其人)의 역(役)이 무겁다는 것, 포수(炮手)가 과다하다는 것 등의 폐단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제하여 주기를 주청한 상소이다. 권3에는 차(箚), 계사(啓辭), 의(議), 정문(呈文), 서(書), 제문(祭文), 책(策)이 실려 있다. 차에는 <논부묘미안차(論祔廟未安箚)>, 계사에는 <변정인홍무훼회재퇴계양선생계사(辨鄭仁弘誣毁晦齋退溪兩先生啓辭)>, 의에는 <서얼통사로의(庶孽通仕路議)>등이 있다.
▶추파집(秋坡集) | 송기수(宋麒壽, 1507~1581)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추파(秋坡) 송기수(宋麒壽, 1507~158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사후 170여 년이나 지난 뒤 8대손 송현필(宋賢弼)은 산일된 유고를 수습하여 원집 2권과 부록 3권, 연보 합 2책으로 꾸며 1753(영조29)경에 목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후손 송해운(宋海運)이 문집과 실록 등의 기록에서 저자의 글을 모두 수집해 증보해서 영호남의 유림들과 함께 교정을 보아 8권 4책으로 편차하고 유동준(柳東濬)의 서문과 이의국(李義國)의 발문을 받아 1931년 대전에서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권수의 연보, 목록까지 합하여 5권 2책이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3~5는 부록이다. 권3은 언행록(言行錄)이고, 권4에는 삼남 송응순(宋應洵)이 쓴 가장 및 외손 신흠(申欽)이 1624년경 찬한 신도비명과 묘지가 실려 있다. 권5의 사우추허록(師友推許錄)은 정경세(鄭經世)의 일록(日錄)이나 기재일기(企齋日記) 등에서 저자 관계기사를 추출한 것이고, 끝으로 1552년 퇴계가 저자의 종형 송인수(宋麟壽)의 죽음을 위로하며 보낸 서(書) 1편을 별부하였다.
▶추포집(秋浦集) | 황신(黃愼, 1562~161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추포(秋浦) 황신(黃愼, 1562~1617)의 문집이다. 저자는 평소 저술을 즐기지 않아 생전에 원고를 정리해 두지 않았으며 아들 황일호(黃一皓)가 모아 두었던 유고도 병자ㆍ정묘호란에 불타 버려 집안에 남아 있는 글이 거의 없었다. 그 후 저자의 손자 황윤(黃玧)이 저자의 손서(孫婿)인 이선(李選)과 함께 오칠언 시와 소차(疏箚), 서독(書牘)의 글을 모아 2권으로 분류, 편찬하고 또한 황일호가 지은 시, 서(序), 기(記) 약간 수를 그 아래에 붙였다. 이것을 저자의 외증손(外曾孫) 호남 方伯(方伯) 이사명(李師命)이 김석주(金錫胄)의 서를 붙여 1684년(숙종10)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김석주의 서가 실려 있다. 권1에는 시, 소차, 계사 등이 실려 있는데, 수록된 시가 적은 것은 수집했던 유고를 호란에 다시 분실했기 때문인 듯하다. 소차 가운데 <변논망사무왕소(卞論亡師誣枉疏)> 스승 성혼(成渾)을 변무(卞誣)하는 내용이다. <청토대마도소(請討對馬島疏)>는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본 대마도의 형세를 나열하고, 대마도를 토벌해서 후환을 없애야 함을 역설한 내용이다.
▶춘당집(春塘集) | 오수영(吳守盈, 1521~160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춘당(春塘) 오수영(吳守盈, 1521~1606)의 문집이다. 본집은 11대손 정락(鼎洛)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이만인(李晩寅)의 산정을 받아 2책으로 만들고 1898년 허훈(許薰), 이만유(李晩由), 금우열(琴佑烈)에게 발문을 받아 목활자(木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서문(序文)은 없고 권수에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詩)이며 대체적으로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스승이나 동문의 시를 차운한 시, 다른 이에게 준 시 등이 대부분이고 만시 등이 있다. 권3은 시(詩), 서(序), 지(識), 제문(祭文)으로 특히, 제문은 1571년 3월 이황의 장례 때에 지은 것과 이충(李冲), 이빙(李憑)에 대한 제문이다. 권4는 <퇴계선생이력초기(退溪先生履歷草記)>와 부록이다. <퇴계선생이력초기>는 1501년 이황이 태어난 해부터 1596년 기대승(奇大升)이 지은 지석(誌石)을 묻은 것까지 연보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부록은 이황이 용수사(龍壽寺)에서 지어 준 시, 낙모봉(落帽峯)에서 저자의 운을 차운해 지어서 준 시 등이며 권말에는 1898년에 허훈, 이만유, 금우열이 지은 발이 실려 있다.
▶춘소자집(春沼子集) | 신최(申最, 1619~165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춘소(春沼) 신최(申最, 1619~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의화(儀華)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표질 김석주(金錫胄)가 1682년 한구자(韓構字)로 인행한 초간본으로서, 의화의 ≪사아자유고(四雅子遺稿)≫와 묘지명이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사(辭), 부(賦)이다. <화귀거래혜사(和歸去來兮辭)>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으며 고금의 사람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화운한 것이다. 권2는 시(詩)이고 권3은 원(原), 서(序)이다. 권4는 기(記), 설(說), 논(論), 변(辨)이다. 기(記) 가운데 <정허당기(靜虛堂記)>와 <장육당기(藏六堂記)>는 붕우 홍주세와 조귀석(趙龜錫)의 요청으로 당(堂)의 명명 의미를 서술해 준 것이다. 권5는 전(傳), 소(疏), 서독, 잡저이고 권6은 제문, 뇌(誄), 묘지갈표이다. 권7은 행장이고 권8은 책(策)으로 인(仁), 상위, 감여, 의약 등에 대해 묻는 책문에 답한 것이다. 부록에는 조현기(趙顯期)가 1659년에 지은 행장, 이민구가 지은 묘갈명, 김석주가 지은 묘지명이 실려 있다.
▶춘정집(春亭集) | 변계량(卞季良, 1369~1430)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의 문집이다. 문인(門人) 정척(鄭陟)이 찬집한 것을 왕명에 의해 집현전에서 유의손(柳義孫)ㆍ김서진(金瑞陳)이 수교(讎校)하여 선사(繕寫)한 뒤에 경상감사 권맹손(權孟孫)이 12권 5책의 목판본으로 밀양에서 처음 간행하였다. 초간본이 거의 유실되자 저자를 향사하고 있는 거창(居昌)의 병암서원(屛巖書院) 유생들이 각지로 탐방한 끝에 흥해(興海)에서 문집 1질을 찾아내어 김시찬(金是瓚) 등의 교수와 증보를 거쳐 1825년에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12권 5책, 속집 4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원집 권1~12와 속집 권1은 저자의 시문, 속집 권2~4는 부록이다. 원집 권수에는 1824년에 심상규(沈象奎)가 지은 중간서와 권제(權踶)ㆍ안지(安止)가 1442년경 지은 초간서ㆍ발, 그리고 1822년에 김시찬이 지은 중간지가 실려 있고 이어 목록이 있다. 속집 권미에는 17세손 변두성(卞斗星)이 지은 발과 판권지가 첨부되어 있다.
▶춘주유고(春洲遺稿) | 김도수(金道洙, 1699~173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춘주(春洲) 김도수(金道洙, 1699~1733)의 문집이다. 저자는 워낙 젊은 나이에 졸한 관계로 생전에 따로 시문을 편차해 놓을 기회는 없었을 듯하고, 사망 당시에 아들 김성무(金聖懋)도 3세에 불과하였으니 다른 친족이나 가까이 지냈던 벗들에 의해 편차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집은 운각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부록문자 없이 원집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발이나 인기(印記) 등이 전혀 없어 편찬, 간행 사항도 알 수 없다. 본집은 원집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타 부록문자나 서발은 없으며, 총목 없이 권별 목록만 각기 달려 있다. 권2는 서(序), 기(記), 서(書), 애사, 제문, 설(說), 명(銘), 전(傳), 비(碑), 제(題), 논(論)이다. 설(說)에는 18, 19세 때 패설에 빠졌을 당시 편찬한 ≪제가문수(諸家文粹)≫에서 후에 도가서와 불서를 산절하고 문중자, 한유를 첨가한 뒤 지은 <산정제가문수설(刪定諸家文粹說)>이 실려 있는데, 참고로 ≪제가문수≫에 관해서는 ≪서당사재(西堂私載)≫에 그 서문이 실려 있음을 밝혀 둔다. 또한 거처에 옮겨 심은 대나무를 치인(治人)에 비유한 <죽설(竹說)> 등이 있다.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 | 오달제(吳達濟, 1609~163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오달제(吳達濟, 1609~1637)의 문집이다. 저자는 젊은 나이에 변을 당해 남긴 글이 별로 없었던 데다 후사로 들인 오도현(吳道玄) 마저 일찍 죽어 자손이 유고를 정리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당질(堂姪)인 오도일(吳道一)의 발문에 저자의 유문은 시부(詩賦와 표책(表策), 편지와 소장(疏章) 등 겨우 30여 편밖에 없다고 하였으며, 저자의 유사에 대한 정리는 처형인 남일성(南一星)과 처조카인 남구만(南九萬) 등 처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후 사손(嗣孫)으로 들어온 오수일(吳遂一)이 1697년에 유문을 수집, 정리하고 제현(諸賢)의 저자 관계 기록을 부록으로 편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1930년 후손 오계환(吳季煥)이 내용의 증감없이 석판본으로 중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1권과 부록 1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윤증(尹拯)의 발문과 목록이 실려 있다. 원집에는 시부 19편과 표 2편, 책 3편, 소 2편, 잡저 2편, 서 3편으로 총 30편의 매우 적은 분량의 시문이 실려 있다. 그중 소는 <시무팔조(時務八條)>와 <척화소(斥和疏)> 2편이다. 끝으로 당질 오도일이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충암집(冲庵集) | 김정(金淨, 1486~1521)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규장각한국학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초기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당질인 김천우(金天宇)가 유고를 모아 신광한(申光漢)에게 교정(校正)과 산정(刪定)을 부탁하였으나, 김천우의 사망으로 간행에는 이르지 못하고, 허백기(許伯琦)가 별도로 수습한 유고를 신광한이 소장하고 있던 원고와 합하여 본집과 외집으로 나누어서, 1552년 공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증손 김성발(金聲發)이 초간본 외집의 편차가 일정하지 못한 점을 바로잡아 외집의 시문을 창작 시기에 따라 본집에 편차시키고, 아울러 잘못 수록된 한충(韓忠)의 사직소(辭職疏)를 삭거(削去)하여 목판 5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5권ㆍ연보 2권 합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신광한의 서(序)가 있다. 권1~3은 각체(各體)의 시를 대체로 연대순에 따라 수록하였다. 그중 권3에는 진도와 제주 유배 시에 지은 시를 모은 <해도록(海島錄)> 및 <문견록(聞見錄)> 15제의 시가 포함되어 있다. 권4는 문으로 제주 유배 기간에 견문을 적은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등을 수록하였다. 권미에는 허백기의 발과 김성발의 지(識)가 실려 있다.
▶충재집(冲齋集) | 권벌(權橃, 1478~154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화(士禍)와 병란으로 대부분 산일되고, 죽은 후 120여 년 만에 후손 권목(權霂)ㆍ권유(權濡) 등이 김추길(金秋吉)ㆍ남형회(南亨會)와 함께 사림에서 전송(傳誦)되는 것과 가장일기(家藏日記)에서 약간 편의 시문을 수집하여 본집을 만들어서, 1671년 삼계서원(三溪書院)에서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이동완(李棟完)과 후손 권두경(權斗經)이 초간시에 빠진 시문을 추입(追入)하여 <습유(拾遺)>를 만들고, 부록을 증보ㆍ산삭하여 1705년에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으며, 후손 권빈(權薲)이 사우(士友)의 의론을 채집하여, 이광정(李光庭)의 서(序)를 받아 1752년에 9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권수ㆍ본집 9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홍여하(洪汝河)의 서(1671년), 허목(許穆)의 <독권충정공일고(讀權忠定公逸稿)>(1681년) 등과 세계도ㆍ연보ㆍ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시ㆍ계사ㆍ서ㆍ제문ㆍ묘갈ㆍ묘표ㆍ대책, 권2에는 잡저, 권3~6에는 일기, 권7에는 조천록ㆍ유묵, 권8~9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취사집(炊沙集) | 이여빈(李汝馪, 1556~163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취사(炊沙) 이여빈(李汝馪, 1556~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증손 이기정(李基定)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3권으로 편차하였고 7대손 이시묵(李時默)이 1824년에 이인행(李仁行)에게 서(序)를 받고, 이시검(李時儉), 이시탁(李時鐸) 등이 1831년에 유심춘(柳尋春)에게 다시 서(序)를 받아 6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중원(鄭重元), 이인행(李仁行), 유심춘(柳尋春)이 쓴 서(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이고 권2는 표, 책, 소(疏), 서(序), 기(記), 전(傳)이다. 특히 <취사노옹전(炊沙老翁傳)>은 취사노옹으로 자호한 연유를 설명한 것으로 그간의 자호 변천사가 곁들여 있다. 권3은 제문, 행장, 잡저이고 권4~5는 시사잡록(時事雜錄)으로, 정여립(鄭汝立), 이몽학(李夢鶴), 김직재(金直哉) 등의 모반 사건을 필두로 임해군(臨海君)과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죽음, 폐모론, 인조반정 등 당시의 다양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6은 부록으로 현손 이진만(李鎭萬)의 지(識)가 첨부된 연보와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행장 등이다.
▶취흘집(醉吃集) | 유숙(柳潚, 1564~163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취흘(醉吃) 유숙(柳潚, 1564~163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도 오랫동안 정리되지 못하였는데 이휘지(李徽之)가 쓴 신도비명에 의하면, 문장이 대부분 산일되어 약간 편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에 7대손 유영보(柳榮輔)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1839년(현종5)에 신재식(申在植)의 서문까지 받았으나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1882년(고종19)에 춘천 약계서당(藥溪書堂)에서 비로소 문집을 목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4는 시이고, 권5는 문이며, 각 권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수에는 신재식(申在植)이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술에 취하면 말을 더듬는다는 뜻의 취흘로 호를 삼은 연유와 저자의 7대손 류영보(柳榮輔)가 저자의 유고 약간 권을 가지고 와서 서문을 부탁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권5는 계사, 표, 교서, 서, 기우문 등이다. 계사는 <논이첨계(論爾瞻啓)> 한 편인데, 권력을 천단하고 당여를 심으며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그르친 자라고 하며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한 계사이다. 부록은 이휘지(李徽之)가 지은 신도비명이다.
▶치서집(菑墅集) | 한경의(韓敬儀, 1739~182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치서(菑墅) 한경의(韓敬儀, 1739~18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흥교(興敎)와 장손 영희(永煕)가 마지온(馬之溫)의 행장을 받아 정리하였으나 문집 내에 서발 등이 없어 간행 주체나 편찬 경위 및 활자로 인행한 연대는 분명하지 않아 1832년 이전에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이다. 서(序)는 하음백(河陰伯) 이규보(李奎報)로부터 분파된 하음 이씨(河陰李氏)의 가보(家譜),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기사(騎士)로 응모하여 토벌에 가담한 18인의 종정계(從征稧), 숭산(崧山) 남쪽에 김응중(金應中) 등이 수계(修稧)하여 세운 호연대(浩然臺)에 대한 것이다. <서민한천득반장설(庶民韓天得反葬說)>은 어려서 부친을 잃은 한천득이 북청(北靑)으로 가서 곡절 끝에 신이한 선몽(先夢)을 꾸고 부친을 반장하게 된 이야기이다. 부록에는 마지온이 1822년에 지은 행장과 허무(許懋) 등 300여 인이 1821년에 저자를 학문과 효행으로 포증하여 줄 것을 관부에 청원한 <사림청포사적(士林請褒事蹟)>이 있다.
▶치암집(恥菴集) | 이지렴(李之濂, 1628~169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치암(恥菴) 이지렴(李之濂, 1628~1691)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응서(膺緖)가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44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844년에 홍직필(洪直弼)이 쓴 서(序)와 총목이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6은 서(書)로 저자의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는 학문 경향과 노ㆍ소론의 정객과 학자를 아우르는 교유관계 및 예송이 일어날 당시의 정황이나 세태를 살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며 수신 인물별에 따라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특히 박세채에게 보낸 편지는 성혼이 초선한 ≪율곡집≫의 문제점 등을 거론하며 개정에 관해 논의한 것, 예송 문제로 사판에서 삭제되어 지평으로 옮겨 간 박세채에게 시비에 대해 ‘반구저기’할 것 등과 자신도 이거할 계획이 있음을 말하였다. 권7은 행장, 기, 발, 설, 혼서, 잡저, 시이다. 작품에는 1686년에 지은 부친 이초옥의 행장, 처남 이척연이 선조의 별업이 있는 광진에 퇴락한 영우정을 중건하여 1661년에 이경석과 함께 지은 <영우정기(影友亭記)> 등이 있다. 권8은 부록으로 연보와 이민곤(李敏坤)이 지은 행장이 있다.
▶치암집(癡庵集) | 남경희(南景羲, 1748~181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 1748~18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외손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이 저자의 아들 기양(驥陽)과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여 그중 7분의 3을 산삭(刪削)하고 지인들과 함께 교감(校勘)하여 저자의 사후 49년이 되는 1860년에 목판(木板)으로 12권 6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7은 발(跋), 논(論), 설(說), 찬(贊), 잠(箴), 명(銘), 잡저(雜著)이다. 논 가운데 <송의론(宋義論)>은 거록대전(巨鹿大戰)에서 46일 동안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부장인 항우(項羽)에게 죽임을 당한 송의를 논평한 것이다. <치암설(癡庵說)>은 심하게 어리석으나 교화할 수 있는 것이 ‘치(癡)’라고 정의하고 자신의 어리석음 6가지를 들어 자신의 호에 대한 풀이를 하였고, <전창위상마설(全昌尉相馬說)>은 말 감정을 잘했던 선조의 사위 유정량(柳廷亮)이 조련한 과하마(果下馬)와 광해군(光海君)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후손에게 듣고 지은 것이다. 권미에 외손 이종상이 1860년에 지은 후지(後識)가 있다.
▶치재유고(耻齋遺稿) | 홍인우(洪仁祐, 1515~155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 1515~155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07년경 아들 홍진(洪進)에 의해 관동록 등 저자의 수록(手錄)을 바탕으로 수집, 편차되어 간행되었다. 1576년에 이이(李珥)에게 <유풍악록발(遊楓嶽錄跋)>을 받고 아들 홍적(洪迪)이 유고를 정리하였다. 또 1606년 아들 홍진(洪進)이 사직하고 나서 유고의 간행을 실행에 옮겨 1607년경 허성(許筬)의 서문(序文)을 싣고 목판으로 완성하였다. 이후 1639(인조17)경 증손 홍유형(洪有炯)이 문집을 중간하였다. 본집은 부록, 원집 3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1607년에 허엽(許曄)의 아들 허성이 지은 서문이 있고, 목록은 없다. 서(書) 20편 가운데에는 이황(李滉)에게 보낸 편지와 답서가 가장 많은 분량으로 앞쪽에 실렸고, 서경덕(徐敬德), 노수신(盧守愼), 허충길(許忠吉) 등과 나눈 편지가 그 뒤에 실려 있다. 권2는 일록초(日錄鈔)로, 관학유생으로 지낼 때부터 이후 서경덕과 이황을 만나 수학한 시기, 금강산을 유람한 시기, 부친상을 당해 거상하는 시기 등의 교유 내용과 심경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일기이다.
▶치헌집(癡軒集) | 김덕오(金德五, 1680~174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치헌(癡軒) 김덕오(金德五, 1680~1748)의 문집이다. 문인 권전(權烇)과 서자 김대연(金大淵)이 유고를 수습하고 정리하여 이상정(李象靖)의 교정과 서문까지 받았으나 형편상 간행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집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치헌정(癡軒亭)의 중수를 계기로 남공수, 김대진(金岱鎭)이 5권 2책으로 재편차하고 교정하여 1870년에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중간은 곽종석(郭鍾錫)이 1912년에 지은 발문에 의하면, 대산 이상정 및 김대진이 편차한 원집에는 사학의변과 기주연법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간행하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권순모(權舜模)와 남조와(南朝洼)가 편차를 주도하여 원집 4권 2책, 속집 2권 2책 합 6권 4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한다고 하였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그 뒤에 이상정과 김대진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권3 뒷부분은 기(記), 제문(祭文), 뇌사(誄辭)이다. <우죽기(愚竹記)>는 자신이 은거하는 곳 인근 밭에 뿌리만 남은 대나무를 가져다 심고서 지은 것인데, 대나무에 대한 고사(故事)를 나열하고 자신이 우죽을 좋아하는 뜻을 적은 것 등이다.
▶침계유고(梣溪遺稿) | 윤정현(尹定鉉, 1793~187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침계(梣溪)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문집이다. 본집은 불분권 4책의 초고본이다. 전체적으로 산삭과 교정의 표시가 있고, 작품의 제목이 본문과 다른 글씨체로 쓰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본은 교정을 위해 만들어진 교정고본으로 판단된다. 이에 비해 ≪침계선생유고≫는 문체별로 권이 나누어져 있고, 권마다 목록이 수록되어 있으며, 해정한 글씨체로 필사가 된 6책의 괘인선사본인 걸로 보아 ≪침계초고≫를 조본(祖本)으로 하여 만들어진 사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분량면에서 4책인 ≪침계초고≫에 비해 2책이 더 많은 것은, 권2의 치사, 악장문, 옥책문 등의 응제문과 권6~11까지의 시장, 행장, 신도비, 제문 등이 추가되었기 때문인데, 아마도 ≪침계초고≫ 이외에도 조본으로 삼았던 고본(稿本)이 더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1은 총목, 책2는 권1, 책3은 권2~3, 책4는 권4~5, 책5는 권6, 책6은 권7~11이고, 책마다 앞에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서발과 부록이 없다. 권2는 치사, 악장문, 상량문, 시책문, 옥책문, 능제문, 치제문, 기우제제문, 능지이다.
▶침우당집(枕雨堂集) | 장지완(張之琬, 180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침우(枕雨) 장지완(張之琬, 1806~?)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정사(淨寫)하여 ≪침우담초(枕雨談草)≫로 엮었으며, 1857년 현기(玄錡) 등의 도움을 받아 ≪비연상초(斐然箱抄)≫를 간행하였다. 본서의 간행 경위는 자세하지 않으나, ≪비연상초≫에 수록된 시문의 상당수와 함께 그 이후의 저술이 포함된 점으로 미루어 저자 사후 아들 윤창(允蒼)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목록과 이존소(李存沼)가 지은 소전(小傳)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저자가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지은 기행시가 상당하다. 저자는 민정(民情)과 풍속(風俗)을 묘사한 시를 짓는데 뛰어났으며, 잡은 이를 놓아주는 내용의 <방슬시화경산장인(放蝨詩和鏡山丈人)>, 흰 꿩의 상서(祥瑞)를 읊은 <백치시(白雉詩)> 등 독특한 작품도 보인다. 권6은 전(傳), 애뢰(哀誄)이다. <고행삼전(孤行三傳)>은 세 여인의 열행(烈行)과 효행을 기록한 글로 김황(金璜)의 처 하씨(河氏)는 남편의 무덤에서 30년간 시묘하였고, 최석겸(崔錫謙)의 처 김씨(金氏)는 투장(偸葬)한 무덤을 파헤쳐 선산을 지킨 인물이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책사이즈 : 정본 A4(28.5 x 20cm) / 문고본 B5(25 x 17cm) [일부 품목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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