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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타]서명[문집총간] : 25종(가격 직접 입력)

 
[타]서명[문집총간] : 25종(가격 직접 입력)
상품명 : [타]서명[문집총간] : 25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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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타 : 25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타]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타001 타우유고(打愚遺稿) 이상(李翔, 1620~1690) 5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타002 탁계집(濯溪集) 김상진(金相進, 1736~1811)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03 탁영집(濯纓集) 김일손(金馹孫, 1464~1498)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타004 탄만집(𢾡𢿜集) 이용휴(李用休, 1708~178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05 탄옹집(炭翁集) 권시(權諰, 1604~1672)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06 탄촌유고(灘村遺稿) 권구(權絿, 1658~1730)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타007 태계집(台溪集) 하진(河, 1597~165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08 태을암집(太乙菴集) 신국빈(申國賓, 1724~1799)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타009 태재집(泰齋集) 유방선(柳方善, 1388~1443) 2책 1개 연세대,고려대 중앙도서관
타010 태천집(苔川集) 김지수(金地粹, 1585~1639)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1 태천집(苔泉集) 민인백(閔仁伯, 1552~162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2 태촌집(泰村集) 고상안(高尙顔, 1553~162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3 태허정집(太虛亭集) 최항(崔恒, 1409~147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4 태호집(太湖集) 홍원섭(洪元燮, 1744~1807)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타015 태화자고(太華子稿) 남유상(南有常, 1696~172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6 택당집(澤堂集) 이식(李植, 1584~1647) 16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7 택재유타(澤齋遺唾) 김창립(金昌立, 1666~168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8 토정유고(土亭遺稿) 이지함(李之菡, 1517~157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19 퇴계집(退溪集) 이황(李滉, 1501~1570) 38책 8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타020 퇴당집(退堂集) 유명천(柳命天, 1633~1705) 5책 1개 강경훈(姜景勳)
타021 퇴암집(退庵集) 권중도(權重道, 1680~172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22 퇴어당유고(退漁堂遺稿) 김진상(金鎭商, 1684~175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타023 퇴우당집(退憂堂集) 김수흥(金壽興, 1626~1690)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24 퇴헌유고(退軒遺稿) 서종급(徐宗伋, 1688~1762)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025 퇴헌집(退軒集) 조영순(趙榮順, 1725~177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일러두기>---------------------------------------------------
*총 문집 : 1,262종
*본 문집 [문집총간본]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원문 자료를 활용하여 제작됩니다.
*한국고전번역원(http://db.itkc.or.kr) <한국문집총간>에서 자세한 서지 및 해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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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상세보기>----------------------------------------------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타 : 25종


▶타우유고(打愚遺稿) | 이상(李翔, 1620~169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타우(打愚) 이상(李翔, 1620~1690)의 문집이다. 저자의 詩文은 평소 저술이 많지는 않았지만 기사년(1689년) 옥사 때에 대부분 몰수되고 산일되어 가장유고(家藏遺稿)가 없었는데 사위 홍우전(洪禹傳)에 의해 처음으로 수집, 정리되었다. 이후 1743(영조19)에 從孫인 陶菴 李縡가 ≪승정원일기(政院日記)≫에서 저자의 소와 헌의(獻議)를 베껴내어 가장유고(家藏遺稿)와 합쳐서 시부(詩賦), 소의(疏議), 서독(書牘)과 잡저(雜著) 총 5권에 부록 1권으로 하였고, 저자의 외손 예문관 제학 홍계희(洪啓禧)가 1761년(영조37)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하여 수십 본을 찍어냈다. 중간은 8대손 이하용(李河用)이 후손 이한용(李翰用), 이만녕(李萬寧) 등과 함께 1928년에 원집은 초간본과 다름없이 그대로 간행하고, 원집 간행시 빠진 저자의 시문을 모아 편차한 뒤 사시(賜諡) 이후 첨가된 사실을 부록으로 증보하여 4권의 속집을 석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속집 4권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권두에 총목록이 있고, 권1~5는 저자의 시문, 권6은 부록이다. 권2~4는 소(疏)와 헌의(獻議)이다.
▶탁계집(濯溪集) | 김상진(金相進, 1736~181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탁계(濯溪) 김상진(金相進, 1736~1811)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제 상소(相韶)와 문인(門人) 이원숙(李元肅)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을, 손자 직신(直信)이 교수하여 저자의 문인들의 협조를 받아 1828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과 범례(凡例)가 있고, 책별로 묶은 목록이 있다. 권5~7은 잡저로, 허벅다리 살을 베어 부모의 병간호를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님을 주장한 <규고설(刲股說)>이다. 권10은 유사(遺事), 전(傳), 시(詩)이다. <상원일화이명구삼백시(上元日和李鳴九三白詩)>는 달[月], 눈[雪], 머리[頭]의 삼백(三白)을 소재로 1797년에 지은 장시인데, 모두 109개의 ‘백(白)’ 자가 나타나 있다. 저자는 1799년 이후로 줄곧 병마에 시달렸는데 1802년에 지은 <병중감회(病中感懷)>에서는 평생의 학문은 정주(程朱)만을 흠모하여 국가를 위해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고자 하였으나 오활한 유학자밖에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였다. 권미에 손자 직신이 1828년에 지은 발이 있다.
▶탁영집(濯纓集) | 김일손(金馹孫, 1464~149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탁영자(濯纓子)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문집이다. 중종 때 신원복작되자, 조카 김대유(金大有)가 약간 권을 수집하여 시휘(時諱)에 저촉되지 않는 것을 바쳤다. 1519년 김안국(金安國)이 서문를 짓고 목판본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초간본에 완결이 많아지자 1668년 송시열(宋時烈)의 서문을 받아 목판본 6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삼간은 송환기(宋煥箕)가 유문을 첨입하고 편차와 세계ㆍ범례를 교정하여 <세계> 등을 부록에 싣고 1827년에 조인영(趙寅永)의 발을 받아 목판본 7권 3책으로 간행하였다. 사간은 1834년 ‘문민(文愍)’의 시호가 내리자 삼간본에 청시사적(請諡事蹟)을 추가하고 다시 판을 새겨 1838년 사림들이 목판본 8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오간은 1903년 김영호(金榮灝)가 본집 3권ㆍ속집 1권ㆍ연보 2권ㆍ연보속 1권 합 7권 7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8권ㆍ속집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의 부는 소인이 정치를 문란하게 하고 임금을 오도하는 것을 탄식한 <질풍지경초부(疾風知勁草賦)>와 같이 거의 시사에 대한 글이다. 끝에 1925년에 간행된 사실을 알 수 있는 판권지가 있다.
▶탄만집(𢾡𢿜集) | 이용휴(李用休, 1708~178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 1708~1782)의 문집이다. 현재 전하는 저자의 유집은 모두 필사본으로 ≪혜환시초(惠寰詩鈔)≫와 ≪혜환시집(惠寰詩集)≫, ≪혜환잡저(惠寰雜著)≫, ≪혜환집초(惠寰雜著)≫, ≪탄만집(탄(炭+攵)만(曼+攵)集)≫으로, ≪탄만집≫은 여타의 이본들에 비해 시(詩)와 문(文)을 고루 갖추고 있는 불분권 1책의 괘인사본이다. ≪혜환시집≫과 ≪혜환잡저≫가 가장 초기의 고본인 듯한데 일부만 남아 있고, ≪혜환시초≫는 아마도 좀 더 온전한 형태일 때의 ≪혜환시집≫에서 뽑아놓은 것인 듯하다. ≪탄만집≫은 ≪혜환시집≫과 ≪혜환잡저≫를 조본으로 삼은 듯하며, 현재 남아 있는 사본들 가운데 시와 문을 고루 갖추고 있는 선본이라고 보이나, 역시 편차와 교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미정고본(未定稿本)이라 하겠다. 본집은 불분권 1책의 필사본으로 권수제나 판심제 없이 표지제만 있다. 서발, 목록도 없으며, 시를 비롯하여 각 체의 문이 분권 없이 문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명(銘)은 주로 기물이나 건축물에 대한 것이 많다. 잠(箴)은 윗사람 것을 덜어서 아랫사람에게 보태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손상익하잠(損上益下箴)>이다.
▶탄옹집(炭翁集) | 권시(權諰, 1604~167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권시(權諰, 1604~16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직접 정리한 시록(詩錄)을 중심으로 저자의 손 권이진(權以鎭)과 증손 권정징(權瀞徵) 등이 수습하고 권정징이 이익(李瀷)에게 서문을 받았다. 이 서문을 받을 때를 전후해서 문집이 간행된 것인데 이 서문은 문집에 실리지 않았으며 문집 간년(刊年)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문집의 권미에 간기(刊記)가 있는데, 서문을 쓴 이익이 ‘증손 장수 현감 권정징(權瀞徵)이 유집을 가지고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라고 했는데 권정징이 영조 연간 1738년경에 장수 현감을 역임했음은 ≪장수현읍지(長水縣邑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완결(刓缺)된 일부 판목을 보각하고 새로 연보를 첨부한 보각후쇄본이 간행되었다. 연보에 기록된 마지막 연대가 1869년이므로 정사년은 1917년으로 추정된다. 문집은 원집 12권, 부록 1권 합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고, 책별로 앞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이다. 권3은 소(疏), 수의(收議)인데, <논대왕대비복제급윤선도안률소(論大王大妃服制及尹善道安律疏)>가 통해 송시열 측이 서인(西人)들에게 강한 논박을 받았다.
▶탄촌유고(灘村遺稿) | 권구(權絿, 1658~173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탄촌(灘村) 권구(權絿, 1658~1730)의 문집이다. 본집은 8대손 봉집(鳳集)이 윤하중(尹夏重)의 협조를 받아 192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인표(鄭寅杓)가 1929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서(書), 서(序), 제발, 발(跋)이다. 그중에서 편지는 조지겸(趙持謙), 한태동(韓泰東) 등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제발 가운데 <제수사소학대문후(題手寫小學大文後)>는 1691년에 자손들이 늘 풍송하고 실천에 옮기기를 바라며 지은 것이다. 권2는 제문, 축고문으로 제문은 조지겸, 최진혁(崔進爀) 등에 대한 것이다. 권3은 잡저 <노문일기(魯門日記)>로 세 차례에 걸쳐 노성(魯城)에서 가르침 받은 일을 기술하였으며, 권4~5는 잡저 <이택문변(麗澤問辨)>이고 권6은 잡저 <석원일기(石院日記)>로 1697년 가을 석실서원에서 3개월 남짓 강마할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권7은 만록(謾錄)으로, 고성 지역을 조사 답사하고 고성에 우거했던 인물들의 옛일, 시문 등의 다양한 내용을 적었다. 권8은 부록이고 권말에 8대손 봉집이 1929년에 지은 발이 있다.
▶태계집(台溪集) | 하진(河溍, 1597~165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태계(台溪) 하진(河溍, 1597~165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아들 하해우(河海宇)가 수집, 정리하여 처음 간행하였다. 그 연도와 장소는 초간본의 간기(刊記)를 통해 알 수 있다. 곧 연도는 강백년(姜栢年)이 서문을 쓴 해이기도 한 1683년이며 장소는 진주 응석사(凝石寺)였다. 중간(重刊)은 1900년에 가서 9대손 하겸락(河兼洛) 등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이전에 현손(玄孫) 하대관(河大觀)이 유고 부록을 편차하여 이익(李瀷)에게 부록발(附錄跋)을 받고, 또 5대손 하옥(河鋈)과 종형(從兄) 하횡(河鑅)이 이야순(李野淳)에게 속집과 부록의 발을 받았을 것으로 보아, 1831년 이전에 속집이 편차되고 부록이 또 추보되었으나 간행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초간본의 판본이 여러 차례 불에 탄데다 1894년 동학난으로 훼손이 심하여 문집의 중간(重刊)을 의논하고 1899년 봄부터 진주에 역소(役所)를 열고 누차 수교(讎校)하여 1900년에 간행을 완료하였다고 하였다. 본집은 원집 6권, 부록 2권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강백년이 지은 서문이 있고, 그 뒤에 총목록이 있다.
▶태을암집(太乙菴集) | 신국빈(申國賓, 1724~179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태을암(太乙菴) 신국빈(申國賓, 1724~1799)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 현대(鉉大)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된 고본을 1944년 밀양 경정당(景貞堂)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943년 송준필(宋浚弼)이 쓴 서문과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詩), 사가(詞歌), 고부(古賦)이다. 졸년인 1799년에 지은 <기미입춘감음이절(己未立春感吟二絶)>은 75세 평생을 되돌아보고 자손들에게 면학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권5는 잡저 중에서 <경두후서시제아(經痘後書示諸兒)>와 <기몽(記夢)>은 1789년 마마를 앓고 회복된 뒤에 쓴 글이고, <노인독서해조(老人讀書解嘲)>와 <수설(睡說)>에서는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변치 않는 저자의 근면한 독서 습관을 볼 수 있으며, 1795년 과거를 보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서행일기(西行日記)>도 있다. 권7~8은 부록이다. <승상증하시(升庠贈賀詩)> 9편은 1795년 저자가 72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며 권사호(權思浩), 이귀성(李龜星) 등 저자와 교유하던 당대의 문인 학자들이 지은 것이다.
▶태재집(泰齋集) | 유방선(柳方善, 1388~1443)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고려대 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 1388~1443)의 문집이다. 아들 유윤경(柳允庚)과 유윤겸(柳允謙)이 가장(家藏)하고 있던 저자의 음고(吟藁)를 바탕으로 유고를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문인 이보흠(李甫欽)의 도움을 얻어 1450년(세종32)에 영천(永川) 북습서당(北習書堂)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후 병란 등으로 판본이 망가지고 편질(篇帙)이 산실되자 다시 중간을 도모하였다. 이에 14대손 유천식(柳天植)ㆍ유명오(柳明五) 등이 하시찬(夏時贊)이 지은 연보ㆍ세계도와 정규양(鄭葵陽)이 지은 행장 및 유사 등을 부록으로 엮어 1815년(순조15)에 원주 송곡서원(松谷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5권 2책으로서 권수에는 서거정(徐居正)이 쓴 초간서문과 이주정(李周禎)의 중간서문이 실려 있으며, 각 권에는 권목차(卷目次)가 실려 있다. 권1~3은 시, 권4는 문으로 부ㆍ서(序)ㆍ기(記)ㆍ제문ㆍ잡저가 실려 있다. 권5는 부록이다.
▶태천집(苔川集) | 김지수(金地粹, 1585~163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천(苔川) 김지수(金地粹, 1585~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계손(繼孫)이 시문과 조천록(朝天錄)을 수집ㆍ편차하여 1697년 김창협(金昌協)의 산정을 거쳐 민진원(閔鎭遠)의 협조를 받아 170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에, 새로 수집한 시문과 관계기록(關係記錄)을 증보하고 목록을 편차하여 1892년 이후 활자로 인행하여 합편한 것이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고, 1697년에 김창협이, 1703년에 민진후(閔鎭厚)가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만사, 제문, 소(疏), 논(論), 묘갈, 봉명제책문시제(奉命制策問試題), 서(序), 표(表) 및 저자에 대한 시장과 묘갈명이다. 권2는 조천록과 조천하러 가는 저자를 배웅하면서 제현(諸賢)이 지은 신장(贐狀), 사행길에 받은 중화제현(中華諸賢)이 찬한 글, 시 및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3은 부록이다. <황조배신전(皇朝陪臣傳)>과 <존주록(尊周錄)>은 저자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고, <사실(事實)>은 후손 용재(龍載)가 1892년 저자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에 1635년의 <을유동경계안(乙酉同庚稧案)>이 실려 있다.
▶태천집(苔泉集) | 민인백(閔仁伯, 1552~162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천(苔泉) 민인백(閔仁伯, 1552~162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명종조(明宗朝) 기사의 승려보우조(僧侶普雨條)에서 ≪태천일기(苔泉日記)≫를 인용하고 있지만, 현재 전하는 <태천집(苔泉集)>에는 이 조항이 실려 있지 않다. 또 행장이나 신도비명에도 저자의 문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중엽까지 유문에 대한 정리가 행해지지 않은 듯하다. 고종(高宗) 초기에 8대손 민희직(閔羲直)이 저자와 아들 민성(閔垶)의 유적을 모아 ≪태천용암양세실기(苔泉龍巖兩世實記)≫를 편집하여 간행하고자 계획하였는데 본집에 실린 민태호(閔台鎬)의 서는 이 ≪양세실기(兩世實記)≫의 서문이다. 그 후 후손 민기용(閔璣容)이 1874년(고종11)에 유고를 수집하여 6권 2책으로 편차한 뒤 <용암실기(龍巖實記)>를 附集으로 하여 활자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태천용암양세실기서(苔泉龍巖兩世實記序)>와 <태천집서(苔泉集序>가 실려 있다. 일반 문집과는 달리 시문이 적고 일기(日記)나 필기류(筆記類)의 기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태촌집(泰村集) | 고상안(高尙顔, 1553~162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란과 가화(家火)로 인해 대부분 산일되고 <농가월령(農家月令)>, <효빈록(效嚬錄)> 등 몇 권이 가장(家藏)되어 있으면서, 오랫동안 책정(冊定)을 거치지 못한 채 초고의 형태로 전해져 오다가 1897년 문중 후손들이 영고재(穎皐齋)에 모여 간행할 것을 의논하였다. 간행을 주관한 주손(胄孫) 고영(高영(氵+穎))은 족숙(族叔)인 고익상(高益相)ㆍ고언묵(高彥默) 등과 함께 가장유고(家藏遺稿) 및 다른 문집 중에 수록된 유적을 수집하여 교감ㆍ편차하였다. 이것을 재차 교정하여 6권 3책으로 엮어, 1898년 3월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그중 권1~5는 저자의 시문이고 권6은 부록이다. 권수에는 정종로(鄭宗魯)가 저자의 후손 고정규(高挺奎)의 부탁을 받고 지은 서가 실려 있고, 목록이 있다. 권2에는 만사, 전, 서가 있다. 권4~5에는 <효빈잡기(效嚬雜記)>가 실려 있다. 권4의 <총화(叢話)> 편에는 주로 당대 인물들의 일화나 저자의 체험담이 실려 있고, 권5의 <여화(餘話)> 편에는 야담류의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태허정집(太虛亭集) | 최항(崔恒, 1409~147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전기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 1409~147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에 아들 최영린(崔永潾)ㆍ최영호(崔永灝) 형제가 수집하였으며, 처남 서거정(徐居正)이 그중 정수만을 모아 편집하고 1486(성종17)에 간행하였다. 그 뒤 증손 최흥원(崔興源)이 서봉(徐崶)에게 부탁하여 1569(선조2)에 경상우수영에서 3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초간과 중간은 현재 전하지 않는데다, 중간본은 7대손 최온(崔蕰)이 타본과 비교하여 문의를 살피고 두주를 붙여 1625(인조3)에 다시 간행하였다. 이상의 제본(諸本)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거의 없어져서 8대손 최정현(崔鼎鉉)이 권미에 보유를 넣고, 최온의 두주를 등각하여 1707(숙종33)에 3권 2책의 목판본으로 중간하였다. 오간은 16대손 최병하(崔炳夏)가 최병익(崔炳益)의 집에서 구인(舊印) 1질을 얻어 족보와 함께 간행하였다. 문집은 3권 2책으로서 시집 1권ㆍ문집 2권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서거정의 서와 비명 및 강희맹의 묘지문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문집편찬ㆍ간행 경위를 알려주는 구간기사(舊刊記事)와 9대손 최시옹(崔是翁)의 중간발이 실려 있다.
▶태호집(太湖集) | 홍원섭(洪元燮, 1744~180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태호(太湖) 홍원섭(洪元燮, 1744~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종원(鍾遠)이 저자의 자편고(自編稿)에 부친 현규(顯圭)의 ≪삼삼재시백선(參三齋詩百選)≫을 부집하여 저자의 고종사촌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의 서문을 받아 1840년에 전사자(全史字)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조인영이 1840년에 지은 서(序)가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4는 소(疏), 계(啓), 장(狀), 서(書)이다. 계의 <화성둔전사의계(華城屯田事宜啓)>는 1795년에 유수 조심태(趙心泰)를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정조가 수원을 자립 기반을 갖춘 도시로 육성하기 위하여 경영한 둔전의 현황을 보고한 것이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상량문(上樑文), 잡저(雜著)이다. 서의 <삼락재서(三樂齋序)>는 바둑, 술, 시를 즐겨 재명(齋名)을 ‘삼락(三樂)’이라고 한 송요수(宋堯叟)에게 지어 준 것이고, <김충의공유사후서(金忠毅公遺事後序)>는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죽임을 당한 김문기(金文起)가 단종의 칠신(七臣)으로서 사육신과 같은 위치로 평가받아야 함을 강조하며 1799년에 지은 것이다.
▶태화자고(太華子稿) | 남유상(南有常, 1696~172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태화(太華) 남유상(南有常, 1696~1728)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유용(有容)이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저자의 붕우 민우수(閔遇洙), 오원(吳瑗), 이천보(李天輔)의 산정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민응수(閔應洙)의 협조를 받아 1736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민우수와 오원이 1736년에 지은 서(序), 이천보가 1732년에 지은 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황경원(黃景源)의 서가 있다. 권1~3은 시(詩)로,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기행시, 유배 중에 지은 것과 석방되어 돌아와 오원의 별서에 기거할 당시에 지은 시들이 많다. 권4는 제문(祭文), 서(書), 서(序), 발(跋), 기(記), 잡저(雜著)이다. 기 가운데 <유용연기(遊龍淵記)>, <유동화기(遊桐華記)>, <유가야기(遊伽倻記)>는 1720년 봄에 경상도 지역의 용연사(龍淵寺), 동화동(桐華洞), 가야산(伽倻山) 일대를 차례로 유람하고 지은 연작 기행문이다. 권말(卷末)에 안중관(安重觀)의 발(跋)이 있고 부록(附錄)으로 행록(行錄), 유사(遺事), 묘갈명(墓碣銘)이 있다.
▶택당집(澤堂集) | 이식(李植, 1584~1647)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택풍당(澤風堂) 이식(李植, 1584~1647)의 문집이다. 저자는 당대의 문장가로 불리어 상당한 양의 저작을 남겼으며, 또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도 시문이 유실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고,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정조(精粗)에 따라 원집과 속집으로 자편(自編)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세에 남길 것이 못 되고 또 주현에 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자손에게 간행하지 말 것을 유교로 남겼다. 저자의 아들 이단하(李端夏)가 직접 간행하지 못하고 1658년경 스승 송시열에게 유고를 보여 주며 간행을 부탁하자, 저자가 자편해 두었던 원집 10권ㆍ속집 4권에다 김수항(金壽恒)이 1637년 이후의 작품 중에서 선정한 시 2권을 붙여 속집을 6권으로 편차하고, 송시열이 다시 나머지 원고 중에서 문(文)만을 추려내 별집을 18권으로 편차하였으니 총 34권 16책이다. 이를 1672년에 영남 감영에 보내 정본(淨本)을 만들고 다음 해에 호남으로 보내어 1674년 4월 송시열의 서문을 붙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의 구성은 원집 10권, 속집 6권, 별집 18권으로 총 34권 16책이며, 권수에 송시열의 서문과 간략한 총목이 있다.
▶택재유타(澤齋遺唾) | 김창립(金昌立, 1666~168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택재(澤齋)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의 문집이다. 본집은 우인들이 유시를 수집하여 저자의 숙형 창흡(昌翕)의 산정을 받아 1684년 활자로 초간한 후, 백형 창집(昌集)이 묘지명 등을 추가하여 강화 유수로 재직 중이던 1700년 강화에서 홍유인(洪有人)의 ≪칩와유고(蟄窩遺稿)≫와 함께 운각활자로 인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시와 부록으로만 되어 있다. 권수에 김석주(金錫胄)가 168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시(詩)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오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김창협은 저자의 시가 맑고 유연하고 호탕하며 격조가 높으면서도 정취가 풍부하다고 평하였다. 작품 중 <야등국사암(夜登國師巖)>은 부친의 유배지에서 지은 시로 10세 때 도선(道詵) 국사의 탄생 설화가 있는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에서 지은 것이고, <철원(鐵原)>은 궁예의 옛 성터를 바라보며 회고한 것이다. 부록에는 행장, 묘표, 묘지명, 전(傳), 애장이 실려 있다. 권말에는 1684년에 김수항, 김창흡 등이 지은 발과 지은 연도가 표기되지 않은 김만중(金萬重)의 발이 있으며, 간기(刊記)가 있다.
▶토정유고(土亭遺稿) | 이지함(李之菡, 1517~157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평소 저술을 좋아하지 않아 가장(家藏)되어 있는 원고(原稿)가 미미하였는데, 이선(李選)이 홍문관 응교로 재직하던 중 전현(前賢)의 유집(遺集)을 고열(考閱)하면서 저자의 유고 1질을 묶어 ≪토정유고(土亭遺稿)≫라고 하고 교서관에 소장해 두었다. 이것을 현손 이정익(李禎翊)이 가져다 열람하고는 가장된 옛 기록들과 서로 참고하여 산윤(刪潤)을 가하고 합하여 한 편을 만들어서 현손 이정억(李禎億), 외현손 조세환(趙世煥)과 함께 간행하기 위해 송시열(宋時烈)과 권상하(權尙夏)에게 발문을 받아서, 1720(숙종46)에 이정익이 경주 부윤으로 나갔을 때 2권 1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상ㆍ하 2권과 부록 합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상에는 시와 설(說)이 있는데, 설 중 <과욕설(寡慾說)>은 맹자의 과욕설을 나름대로 해석한 글로, 저자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힌다. 이 글들은 을사사화 이후의 정치 상황에서 관계(官界)에 진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각처로 떠돌며 강학하였던 그의 행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퇴계집(退溪集) | 이황(李滉, 1501~1570) | 권책수 : 38책 | 포갑수 : 8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중기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집이다. 유문에 대한 정리는 저자가 몰한 직후인 1571년부터 시작되었다. 1573년 선조가 유성룡(柳成龍) 등의 요청에 따라 ≪퇴계집(退溪集)≫을 교서관에서 인출(印出)하라고 명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완성되지도 못했다. 본집의 간행은 1600년에 도산서원에서 조목(趙穆)의 주도로 유성룡이 산절한 중초본(中草本)을 무시한 채, 산절되지 아니한 초본(草本)으로 간행하였다. 이 경자본이 간행되자마자 유성룡이 경자본에 대한 불만을 강력하게 토로하며 경자본을 교정하였으며, 정경세(鄭經世) 등이 이를 교정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개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문집은 원집 49권, 별집 1권, 외집 1권, 연보 4권, 속집 8권, 그리고 퇴계선생문집고증(退溪先生文集攷證) 즉 문집고증(文集攷證)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권9~40은 서(書)이다. 분량으로 보아 대략 원집의 3분의 2를 상회하는, 따라서 본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권41은 잡저(雜著)이다. 이 잡저는 저자의 학문적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저작들이다.
▶퇴당집(退堂集) | 유명천(柳命天, 1633~1705)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강경훈(姜景勳)
조선 시대 퇴당(退堂) 유명천(柳命天, 1633~1705)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손 경종(慶種)이 1756년 저자의 자필고본을 바탕으로 산정ㆍ편차하여 안산에서 괘선지에 선사한 사본으로 그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시집 5권, 문집 5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전체 목록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본집 권1~5는 시집이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시집에는 석갈록(釋褐錄), 귀성록(龜城錄), 환조록(還朝錄) 등 11개의 시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집 권1~2의 앞부분은 소차로 대부분 관직과 품계를 사양하거나 사직하는 상소이다. 이밖에 <대사간진회소(大司諫陳懷疏)>는 1677년에 올린 것으로 송시열(宋時烈)의 죄를 종묘에 고하자는 고묘론(告廟論)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자 논변한 것이다. 권3~4는 비명, 갈명, 지명, 음기, 행장, 제문, 기우문, 축문이다. 권5는 교명문(敎命文), 표전, 불윤비답, 교서, 상량문, 서(序), 기, 제발이다. 그중 교명문은 1690년 왕세자와 왕비 책봉을 할 때의 것이다. 기 가운데 <천연재기(天淵齋記)>는 저자가 음성 유배지에서 안산으로 돌아와 지은 서재에 대한 기문이다.
▶퇴암집(退庵集) | 권중도(權重道, 1680~172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암(退庵) 권중도(權重道, 1680~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정팔(正八)과 5대손 기홍(基鴻)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김진호(金鎭祜) 등의 산정 교감을 받아 1898년에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김성탁(金聖鐸)이 1740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이 중에서 엄천강(嚴川江) 장항동을 유람하고 지은 연작시 <유장항동구영(遊獐項洞九咏)>과 지리산에 관련된 시가 여러 수 있다. 권2는 서(書)로서, 편지를 왕복한 대상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는데, 주로 성리설(性理說), 예제 등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 많다. 권3은 서(序), 기(記), 제문이고 권4는 잡저이다. 권5는 행록, 묘갈명이고 권6은 찬집(纂輯)으로서, ‘천지저경(天地底敬)’부터 ‘거경실효(居敬實效)’까지 모두 41조 353항으로 이루어진 <낙민언경록(洛閩言敬錄)>으로, 정호, 정이 형제와 주자가 논한 경(敬)의 요어와 경에 대해 가장 긴절한 제유(諸儒)의 논설을 섞어 분류해 찬집한 것이다. 권7은 부록이고 권말에는 외예 김진호(金鎭祜)가 1898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퇴어당유고(退漁堂遺稿) | 김진상(金鎭商, 1684~175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 1684~1755)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손 상정(相定)이 편차한 고본을, 손자 상목(相穆)이 1805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4는 시(詩)이다. 족형인 김진성(金鎭成), 이천기(李天紀), 신석봉(申錫鳳), 이기진(李箕鎭) 등과 수창한 시 및 두보(杜甫)의 시와 ≪간재집(簡齋集)≫, ≪농암집(農巖集)≫ 등에서 차운하여 지은 시가 다수 있다. 권5~7 앞부분까지는 소(疏)로, 1717년부터 1753년까지 관직에 있으면서 올린 것으로 대부분 사직상소이다. 그리고 <논왕세자부당위단의빈행연서(論王世子不當爲端懿嬪行練書)>와 <논단의빈연사재서(論端懿嬪練事再書)>는 1718년 세자빈 심씨(沈氏)의 상사(喪事)에 상이 대공복(大功服)을 입었다가 뒤에 기복(期服)으로 개복(改服)해야 된다는 의논이 일어났는데, 이때 왕세자가 연제(練祭)를 행하는 것의 부당함을 예제(禮制)를 들어 논설한 것이다. 권7 뒷부분은 달사(達辭)이고 권말에는 손자 상목이 1805년에 쓴 지(識)가 실려 있다.
▶퇴우당집(退憂堂集) | 김수흥(金壽興, 1626~169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 1626~1690)의 문집이다. 김상헌(金尙憲)의 손자로 기사환국 때 장기(長鬐)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적소에서 졸하였으며, 이단상(李端相), 신정(申晸), 박세채(朴世采) 등과 교유하였다. 사위 이희조(李喜朝)는 시문 유초(遺草)를 습(收拾), 편차(編次)하는 과정에서 산정에 잘못이 있을까 염려하여 되도록 많은 시문을 싣고자 하였으나 종자 김창흡(金昌翕) 및 아들 김창열(金昌說)은 간략한 쪽을 따르고자 하였다. 이렇게 산정된 유고는 1710년 임피 현령으로 재직 중인 저자의 아들 김창열에게 보내졌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선사(繕寫), 교정(校正)의 최종 단계를 거치게 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김창열이 물력을 대어 10권 5책이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쇄되었다. 문집은 10권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권마다 앞부분에 권목록이 있다. 권3~6은 소차(疏箚)로, 1661년 올린 <진시폐소(陳時弊疏)>는 15조목을 아뢰는 장문의 상소이다. 권7은 계(啓)로, <염문별단서계(廉問別單書啓)>에는 17조목의 구체적인 개혁 의견이 들어 있다. 권미에는 사위 이희조(李喜朝)가 1710년에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퇴헌유고(退軒遺稿) | 서종급(徐宗伋, 1688~176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퇴헌(退軒) 서종급(徐宗伋, 1688~176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서문은 없고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대개가 일상생활에서 지인들과 화운하거나 관직 생활 중의 심회를 읊은 것이다. 이 가운데 <영회(詠懷)> 이하 여러 작품들은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을 당시 지은 것이며, <관서백연시연주초구화(關西伯延諡宴走草求和)> 이하 몇 편은 홍원 현감(洪原縣監)으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시들이다. 권2~3은 소(疏)이고 권4~5는 응제록으로 반교문, 옥책문, 악장, 교서, 제문, 치제문, 불윤비답이다. 권6~7은 이기진(李箕鎭), 김취로(金取魯) 등의 시장과 가장, 행장, 비명, 묘갈명이다. 권8은 묘지, 책(策), 서(序), 전(箋), 장(狀), 서(書)이고 권9는 상량문, 혼서, 제문, 축문, 기(記), 일록이다. 일록은 조고비묘의 비문을 청하기 위해 청풍(淸風) 황강(黃江)에 있던 권상하(權尙夏)를 찾아뵈러 가면서 적은 일기이다. 권10은 부록으로 저자가 받은 교서와 묘지명, 작자 ㆍ의 묘지, 제문, 만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퇴헌집(退軒集) | 조영순(趙榮順, 1725~177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퇴헌(退軒) 조영순(趙榮順, 1725~1775)의 문집이다. 본집은 중자 정철(貞喆)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824년경 전사자(全史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김이양(金履陽)이 쓴 서문(序文)과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卷別)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1~3은 시(詩)로, 권 끝에 공주(公州) 객관(客館)에서 졸(卒)하기 직전에 지은 <절필(絶筆)> 3수가 실려 있다. 권4는 소(疏)이다. 이 중에서 <사부수찬겸진소회서(辭副修撰兼陳所懷書)>는 1754년에 올린 충역(忠逆)을 논하고 권귀(權貴)를 배척(排斥)하는 내용의 상소(上疏)인데, 이로 인해 배공사당인(背公死黨人)으로 지목되어 제주(濟州) 대정현(大靜縣) 유배에 처하는 명(命)이 내렸다가 다시 해남현(海南縣)에 양이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광좌등삼적복관후……(李光佐等三賊復官後……)>는 1772년 소론인 이광좌, 최석항, 조태억에 대한 추복이 행해지자 항소를 올린 것인데, 이 일로 인해 갑산 정배에 서민으로 강등되는 처분을 당하였다. 권미에 김조순(金祖淳)이 1824년에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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