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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파]서명[문집총간] : 24종(가격 직접 입력)

 
[파]서명[문집총간] : 24종(가격 직접 입력)
상품명 : [파]서명[문집총간] : 24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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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파 : 24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파]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파001 파곡유고(坡谷遺稿) 이성중(李誠中, 1539~1593)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02 팔곡집(八谷集) 구사맹(具思孟, 1531~1604) 3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파003 팔사유고(八斯遺稿) 배유화(裵幼華, 1611~1673)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04 팔송집(八松集) 정필달(鄭必達, 1611~1693)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05 팔오헌집(八吾軒集) 김성구(金聲久, 1641~1707)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06 팔우헌집(八友軒集) 조보양(趙普陽, 1709~1788)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07 평암집(平庵集) 권정침(權正忱, 1710~1767)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08 폐추유고(敝帚遺稿) 임홍량(任弘亮, 1634~1707) 2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파009 포암집(圃巖集) 윤봉조(尹鳳朝, 1680~1761) 11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0 포옹집(抱翁集) 정양(鄭瀁, 1600~166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1 포은집(圃隱集) 정몽주(鄭夢周, 1337~1392)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12 포음집(圃陰集) 김창집(金昌緝, 1662~171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3 포저집(浦渚集) 조익(趙翼, 1579~1655) 18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4 포헌집(逋軒集) 권덕수(權德秀, 1672~1759)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15 표암고(豹菴稿) 강세황(姜世晃, 1713~1791) 3책 1개 고전자료총서 수록 영인본
파016 표옹유고(瓢翁遺稿) 송영구(宋英, 1556~162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17 표은집(瓢隱集) 김시온(金是, 1598~1669)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파018 풍고집(楓皐集) 김조순(金祖淳, 1765~1832) 8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19 풍서집(墅集) 이민보(李敏輔, 1717~1799) 9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파020 풍석전집(楓石全集) 서유구(徐有榘, 1764~1845)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21 풍암집(楓巖集) 김종필(金終弼, 미상)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22 풍애집(楓崖集) 안민학(安敏學, 1542~160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23 풍월정집(風月亭集) 이정(李婷, 1454~148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파024 필운고(弼雲稿) 김영행(金令行, 1673~1745)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러두기>---------------------------------------------------
*총 문집 : 1,26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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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상세보기>----------------------------------------------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파 : 24종


▶파곡유고(坡谷遺稿) | 이성중(李誠中, 1539~159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파곡(坡谷) 이성중(李誠中, 1539~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스스로 당로자(當路者)에게 기휘(忌諱)되는 시가 있다고 여겨 만년에 초고를 몇 상자 태워버렸고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나 많이 산일되어 시문 약간 만이 ≪파곡유고≫란 이름으로 가장(家藏)되어 있던 것과, 손자 이명웅(李命雄)이 저자가 한산 군수(韓山郡守)와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은 <한산음(韓山吟)>, <호서음(湖西吟)> 2책을 수습하여 이것을 성율(聲律)에 따라 편차하고, 또 비표(碑表)도 편말에 붙여서 1책으로 만든 다음, 김세렴(金世濂)의 서문을 받아 1640년에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고, 판목이 산실되는 것을 염려하여 가산성(架山城)의 가흥사(架興寺)에 보관하였다. 그 후 6세손 이성경(李星慶)이 판목을 보각(補刻)하였는데, 이때 종형(宗兄) 이홍경(李弘慶)이 다시 수습한 시 약간 편과 저자가 아들 이유징(李幼澄)과 주고받은 편지 약간 편을 추각(追刻)하여 1749년에 자신의 발을 붙여 문집을 간행하였다. 문집은 권으로 분리되지 않은 1책으로 되어 있다. 본집은 여러 차례 보각(補刻)으로 인해 자체(字體)와 자획이 일정하지 않고, 선명하지 않다.
▶팔곡집(八谷集) | 구사맹(具思孟, 1531~160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팔곡(八谷) 구사맹(具思孟, 1531~1604)의 문집이다. 아들 구성(具宬)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8책의 팔곡유고(八谷遺稿)를 직접 편차하여 7권으로 정리한 뒤 선사(繕寫)해서 가장해 두었는데, 외손서(外孫婿) 이식(李植)은 유고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간행하기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원고(元稿)를 산절해 4권 분량으로 편찬하였다. 이것을 저자의 사남 구굉(具宏)이 목판으로 간행하였지만,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전하지 않게 되자 저자의 외손 심장세(沈長世)가 1646년 영천 군수로 부임하면서, 원집(原集)을 다시 휘별(彙別)로 편차하고 또 저자의 삼남 구용(具容)의 ≪죽창유고(竹窓遺稿)≫를 부집(附集)하여 1648년 영천에서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4권, 부록, 잡고(雜稿)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 권수에는 장유(張維)의 서(序)와 목록이 실려 있다. 잡고는 <난후조망록(亂後弔亡錄)>으로, 임진왜란 이래로 행적이 뛰어나 기록할 만한 사람을 뽑아 시를 지어 애도하고, 충현(忠賢)을 포장(褒奬)하고 투속(偸俗)을 격려하기 위한 글이다. 권미에는 1686년에 쓴 이단하(李端夏)의 잡고발(雜稿跋)이 실려 있다.
▶팔사유고(八斯遺稿) | 배유화(裵幼華, 1611~1673)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팔사(八斯) 배유화(裵幼華, 1611~1673)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상선(相善) 등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8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연하(權璉夏)가 1889년에 쓴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 서(書), 잡저, 제문이다. 시는 주로 만년에 지은 작품들이다.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내용은 친지간의 차운시, 유람의 감흥, 만시(輓詩) 등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서(書)는 이자고(李子固), 배상유(裵尙瑜), 금화중(琴和仲), 성사익(成士翼), 강흡(姜恰)에게 보낸 것인데, 서로 문안하며 친교를 다지는 일상의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2는 부록(附錄)으로 증유(贈遺), 냉천기(冷泉記),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증유는 성직(成稷), 이희무(李希楙), 윤순거(尹舜擧) 등 저자의 교유인사들에게서 받은 시문이다. <냉천기(冷泉記)>는 저자가 집을 지었을 때 옆에서 솟은 냉천의 내력과 의미에 대해 정칙(鄭侙)이 쓴 글이다. 권말에 저자의 7대손 배상선(裵相善)이 1889년에 쓴 지(識)가 있다.
▶팔송집(八松集) | 정필달(鄭必達, 1611~169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팔송(八松) 정필달(鄭必達, 1611~1693)의 문집이다. 본집은 9대손 재성(之栻)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와 방손 광두(光斗)의 등사본을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곽종석(郭鍾錫)의 산정을 거쳐 1902년 진양 용산재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곽종석이 1902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로, 오언시와 칠언시가 대부분인데, 저자가 평생 지은 시를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3권으로 나누었다. 권1은 저자가 20세경부터 50세경까지 지은 시로서 친척붕우 사이에 수창한 차운시와 송별시가 많고, 권2는 53세부터 59세까지 지은 시로 55세에 단양 군수가 되어 중원(中原) 일대를 유람한 시가 특징이다. 권3은 59세부터 83세까지 지은 시로 금강산, 해금강 및 강릉 일대를 두루 돌아보는 중에 지은 시들이 주를 이룬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명(銘), 잠(箴), 송(頌), 찬(贊)이다. 권6은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祝文), 묘지명(墓誌銘)이다. 권7은 부록(附錄)이고 권말에 정재성(鄭載星)의 후지(後識)와 간기(刊記)가 있다.
▶팔오헌집(八吾軒集) | 김성구(金聲久, 1641~170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1641~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진동(鎭東)이 김희삼(金希參), 김우옹(金宇顒) 등 의성 김씨 일문 20여 명의 문헌을 수집 편차하고, 그 후 6대손 승지 우수(禹銖)가 안동 사림의 도움을 받아 1873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 세계도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제주에서 지은 것이 많으며, 시체 구분 없이 실렸다. 작품에는 제주에서 가르친 세 명의 제자에게 성취하길 바라며 준 <증별삼동자(贈別三童子)>, 이봉징(李鳳徵)ㆍ현일(玄逸) 등을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3은 소(疏), 계사, 연주, 경연강의, 장(狀)으로 1678년에 수찬으로서 재해를 만나 수성하는 도리 등을 논하여 올린 <청응천미재소(請應天弭災疏)> 등이 있다. 권4는 서(書), 명, 제문, 행장, 잡저이고 권5~6은 남천록(南遷錄)으로, 정의 현감으로 좌천되어 가는 과정에서부터 부임 후의 일들을 일기체로 담았다. 권7은 부록으로 행장, 서비음후, 묘지명, 사제문, 만사 등이고 권말에는 1873년에 외예 권연하(權璉夏)가 지은 발과 6대손 우수가 지은 지가 있다.
▶팔우헌집(八友軒集) | 조보양(趙普陽, 1709~178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팔우헌(八友軒) 조보양(趙普陽, 1709~17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현식(顯湜)ㆍ현좌(顯佐)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인행(李仁行)의 교수를 받아 1831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인행이 1831년에 지은 서(序), 세계도, 목록이 있다. 권1~3의 중반부까지는 강엄(江淹)의 <한부(恨賦)>를 의작한 <의한부(擬恨賦)> 1편 외에 시(詩)이다. 저자는 일생의 대부분을 향리에서 보낸 관계로 시 역시 향리의 공간과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대다수이다. 권3의 후반부는 서(書)이고 권4는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5는 논(論), 설(說), 변(辨), 잠(箴), 명(銘), 제문(祭文)이다. 권6은 뇌사(誄辭), 상량문(上樑文), 행장(行狀), 묘지명(墓誌銘), 잡저(雜著)이다. 잡저 중에서 <백이전주해(伯夷傳註解)>는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의 구절들에 대해 저자가 직접 주해(註解)를 단 것이다. 권7은 부록(附錄)으로 행장,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이고 권말에 박시원(朴時源)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평암집(平庵集) | 권정침(權正忱, 1710~176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평암(平庵) 권정침(權正忱, 1710~1767)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사후에 후인들에 의해 문집 간행을 위한 여러 차례의 교수가 이루어졌고, 현손 영하(泳夏)가 간행에 착수하여 1877년 허전의 서문을 받고 1878년 문중 사람들과 함께 다시 교정을 가해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허전(許傳)이 1877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저자의 작품들은 대개가 사도세자의 참변이 있은 1762년 이전의 작품들로 차운시 및 만시, 평소의 한정(閑情)을 읊은 것이 주를 이룬다. 권3은 소(疏)이고 권4는 잡저, 서(書)이다. 잡저 중에서 <연설(筵說)>은 1757년과 1762년 영조와 대담한 기록이 주를 이룬다. 권5는 잡저, 변(辨)이고 권6은 잡저, 정문(呈文), 서(序), 지(識), 기(記), 잠(箴), 명(銘), 송(頌), 상량문이다. 권7은 제문, 애사, 행록, 묘지이고 권8은 부록으로 행록후서, 행장, 묘갈명, 묘지명, 가장, 유사 등이 실려 있다. 권말에 이돈우(李敦禹), 문손(門孫) 연하(璉夏), 현손 영하(泳夏)가 1878년에 지은 후서가 있다.
▶폐추유고(敝帚遺稿) | 임홍량(任弘亮, 1634~170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폐추(敝帚) 임홍량(任弘亮, 1634~17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6대손 성모(聖模)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68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신응조(申應朝)가 1868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시로서 시체의 구분이나 저작 연대순에 관계없이 수록되어 있고, 내용은 차운시, 증별시, 송시 등 다양하다. 함께 수창한 사람으로는 임상원(任相元), 정두경(鄭斗卿), 신정(申晸) 등이 있다. 권3은 서(書), 잡저이다. 서의 <상김상서좌명(上金尙書佐明)>은 귀계 김좌명에게 부친 임준(任晙)의 명을 부탁하는 내용이고 잡저의 <관동기행(關東記行)>은 저자가 통천 군수에 제수되었다가 8월 7일 파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관동의 여러 곳을 유람하고 지은 것이다. 권4는 서(序), 발, 상량문, 제문, 행장이다. 서 가운데 <증영주사군덕장서(贈瀛洲使君德章序)>는 제주 목사가 되어 떠나는 종제 임홍망에게 주는 글로, 제주의 역사와 산업적ㆍ지리적 중요성을 논하면서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권말에 임헌회(任憲晦)가 1866년에 지은 발이 있다.
▶포암집(圃巖集) | 윤봉조(尹鳳朝, 1680~1761)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포암(圃巖) 윤봉조(尹鳳朝, 1680~1761)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제 윤봉구(尹鳳九), 윤봉오(尹鳳五) 등의 도움으로, 아들 윤심재(尹心宰)가 유고를 수습 정리하여 편차한 뒤 예천 군수로 부임한 1767년~1769년 사이에 22권 11책의 목판으로 간행된 듯하다. 본집은 22권 11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1~6에는 시(詩)가, 권7~22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저자의 시는 전겸익(錢鎌益)에 가깝고, 문은 대각체(臺閣體)에 능하여 상소문과 차자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서발은 없고, 매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2에는 서(序)가 있다. 이 중에서 <해상록서(海上錄序)>는 임란시기 강항(姜沆)과 함께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정희득(鄭希得)의 피로(被虜) 사실을 기록한 글에 적어준 서문이고, <동유록서(東遊錄序)>는 안여해(安汝諧)가 송시열(宋時烈)을 따라 제주로 갈 때 강진(康津) 만덕사(晚德寺)에서 함께 수일 동안 강론하며 지은 글에 대한 서문이다. 권15의 <학역천견(學易淺見)>은 장현광(張顯光)의 <역학도설(易學圖說)>에 미진한 점이 있어 선유의 설을 보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포옹집(抱翁集) | 정양(鄭瀁, 1600~166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포옹(抱翁) 정양(鄭瀁, 1600~166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손자 첨의당(瞻依堂) 정천(鄭洊)이 수집하여 보관해 왔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남은 것이 없었다. 그 뒤 9대손 정일원(鄭一源)이 봉화의 사덕사(竢德祠), 각화사(覺華寺) 등에서 유문을 수집하여 등사(謄寫)하여 가장(家藏)해 왔는데 정일원(鄭一源)의 아들 정운호(鄭雲灝)가 이것을 증보하여 원집(原集)을 만들고 연보, 세계, 부록을 첨부하여 2책으로 편차하였다. 정운호는 1913년 8월에 간역(刊役)을 시작하고 11월에 김학수(金鶴洙)에게 서문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1914년에 제천(堤川) 월림(月林) 계산(桂山)에서 활자로 간행을 완료하였다. 문집은 8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에 1913년에 김학수가 쓴 서문이 실려 있고, 이어서 권1~5의 원집 목록이 실려 있다. 권2는 서(書)이다. 송시열(宋時烈), 유계(兪棨), 윤문거(尹文擧), 등에게 보낸 편지가 인물별로 실려 있다. 처음 수령으로 부임하는 친구에게 보낸 <답혹인(答或人)>에는 거관절목(居官節目)이 들어 있는데, 이는 수령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방도를 22조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포은집(圃隱集) | 정몽주(鄭夢周, 1337~139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정종성(鄭宗誠)이 수집ㆍ편차하여 1439년 목판으로 간행하였지만 전하지 않는다. 정세신(鄭世臣)이 신계 현령(新溪縣令)으로 부임하여 1533년에 문집을 간행하였고, 명종ㆍ선조 연간에 개성부(開城府)에서 한호(韓濩)의 글씨로 판각되어 간행, 1584년에는 선조의 명에 의하여 유성룡(柳成龍)이 세 본의 연보를 비교하여 행장ㆍ본전까지 참고하여 연보고이(年譜攷異)를 만들고, 새로 찾은 시문을 습유로 편차하고 목록을 첨부하였다. 그러나 이 교정본은 미처 간행되기도 전에 영천(永川)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유생들이 가져다가 1584년경 간행하고 판각은 서원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7년 두 종의 문집이 목판으로 간행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영천 구각본(永川舊刻本)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상(遺像)을 추가하고 11행 18자의 목판본으로 간행된 문집이다. 이후로도 1608년에 정응성(鄭應聖)이, 1659년에는 정운익(鄭雲翼)이, 1866년에는 정원필(鄭元弼)이 각각 문집을 간행하였다. 문집은 본집 3권ㆍ연보고이ㆍ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음집(圃陰集) | 김창집(金昌緝, 1662~171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포음(圃陰) 김창집(金昌緝, 1662~1713)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에 곧 바로 유문(遺文)을 수집하고 정리한 사람은 셋째 형인 김창흡(金昌翕)이다. 그가 시문을 몇 권으로 정리해 가장해 오다가 문인 유척기(兪拓基)가 경상도 감사로 나가게 되자 1726년 비용을 대어 운각활자(芸閣活字)로 6권 3책의 문집을 인행하였는데, 최종적인 산정과 교정 등은 조카인 김신겸(金信謙) 등이 맡았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는 간략한 총목이 있다. 권1은 시이다. 16세 때 영암에 유배되어 있던 부친을 찾아가 지은 <배가친유월출산……(陪家親遊月出山……)>부터 1712년 <이강중만(李剛仲挽)>까지 약 125제의 시가 연도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형식은 오언율시가 많은 편이다. 권2~4는 서(書)로, 모두 16명에게 보낸 44편이 실려 있다. 일반적인 문집과 달리 형제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권2의 제일 앞에 편차되어 있는데 내용도 일반적인 안부보다 수양과 학문의 태도, 심성 등 성리학에 대한 질문 등이 많다. 권5는 잡저와 일록(日錄)이다. 맨 뒤에 김신겸이 1726년에 지은 본집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포저집(浦渚集) | 조익(趙翼, 1579~1655) | 권책수 : 18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이자 조현양(趙顯陽)의 아들인 조지항(趙持恒)과 조지정(趙持正)이 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게 되었는데, 가장(家藏)되어 있던 문집 15권과 나머지 가장초고(家藏草稿), <심법(心法)> 12장, <개혹천어(開惑淺語)> 1책, <도촌잡록(道村雜錄)> 1책 등을 합하여 35권으로 편차하여 ≪포저집(浦渚集)≫을 간행하였다. 본집에는 부록문자(附錄文字)가 함께 실리지 못하고 후에 ≪포저연보(浦渚年譜)≫가 5권 2책으로 간행되어 윤증(尹拯)이 지은 연보, 윤선거(尹宣擧)가 지은 묘지명,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 송준길(宋浚吉)이 지은 시장(諡狀), 기타 제문(祭文), 만사(挽詞) 등이 실렸다. 부록문자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던 것은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의 말단 문구가 문제되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1683년에 이 신도비명을 완성하였는데 말단의 저자 학문에 관한 평가가 문제를 야기하였다. 본집은 35권 18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는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이다. 권18~25는 잡저(雜著)인데, 저자의 학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글들이 실려 있다.
▶포헌집(逋軒集) | 권덕수(權德秀, 1672~175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포헌(逋軒) 권덕수(權德秀, 1672~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안동 사림(安東士林)과 후손들이 가장되어 있던 ≪담타시고(淡唾詩藁)≫와 황원일기(黃猿日記) 등의 기타 유저를 수습 편차하고, 182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만사이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7언시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수창자는 이재(李栽), 권구(權榘), 김명석(金命錫) 등이다. 권2는 소(疏), 서(書)이다. 소의 <청물훼사빈영당소(請勿毁泗濱影堂疏)>는 김진(金璡)을 배향한 사빈서원(泗濱書院)에 대한 훼철 명령의 부당함을 진달한 것이고, <사은변무잉청복거소(謝恩辨誣仍請復渠疏)>는 이인좌의 난에 안동 사림들이 받은 무함이 탕척된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도랑의 복개를 요청한 것이다. 편지는 김세호(金世鎬), 이재, 권두경, 김간(金侃) 등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3은 잡저고 권4는 서(序), 지발, 잠(箴), 상량문, 축문 등이다. 권5는 부록으로 이산두(李山斗), 이재경(李載坰) 등이 지은 만사 외에 제문, 행장 등이 있다.
▶표암고(豹菴稿) | 강세황(姜世晃, 1713~179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전자료총서 수록 영인본(影印本)
조선 시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6권 3책의 ≪표암고(豹菴稿)≫와 5권 2책의 ≪표암집(豹菴集)≫이 현재 필사본의 형태로 전하고 있다. 이 중에서 ≪표암고≫는 권5의 제발 중 손석휘(孫錫輝)의 글씨를 평한 글들 말미에 1792년 아들 빈(儐)이 적은 주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표암 사후에 강빈이 정리한 것으로 생각된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1~3은 시(詩)로, 작품은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32세에 안산으로 이주하기 이전의 작품, 이후 안산에서 20여 년간 거주하던 시기의 작품, 마지막으로 다시 서울로 이주한 이후 만년 20여 년간의 작품으로 구분된다. 권4는 서(序), 기(記), 설(說), 소인, 서(書), 잡저이다. 기문은 김홍도의 호인 단원(檀園)에 대한 것이고,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는 임금의 남여(藍輿)를 타고 궁궐을 구경한 일에 대해 쓴 것이다. 권5는 제발(題跋), 찬(讚), 명(銘)이다. 제발은 서화첩(書畫帖)에 붙인 것들이 대부분이고, 중국 유명 서화가들의 작품과 조선의 서예가와 주변 인물들의 서화에 붙인 것들이다.
▶표옹유고(瓢翁遺稿) | 송영구(宋英耈, 1556~162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 1556~1620)의 문집이다. 성혼(成渾)의 문인(門人)이고 이항복(李恒福), 황신(黃愼), 이정귀(李廷龜) 등과 교유(交遊)하였다. 본집은 7대손 송문술(宋文述)이 산일(散佚)되고 남은 시문(詩文)을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793년경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3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김종수(金鍾秀)의 서(序)가 있다. 권1은 시(詩)이고, 권2는 시와 잡저(雜著)로, 시는 총 226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수록되어 있고, 각 시체(詩體) 내에서 다시 저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부(賦)와 상량문(上樑文), 서(序), 지(誌), 서(書) 등 모두 6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부(賦)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위왕(魏王)의 호(瓠)를 소재로 삼은 것이고, 2통의 편지는 장만(張晩)과 이항복(李恒福)에게 보낸 것이다. 권3은 부록(附錄)으로, 연보(年譜)와 사제문(賜祭文), 유근(柳根) 등 23인이 지은 만사(挽辭)와 이정귀(李廷龜)가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실려 있다. 권말(卷末)에 이민보(李敏輔)가 지은 발(跋)이 있다.
▶표은집(瓢隱集) | 김시온(金是榲, 1598~166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손자 태중(台重)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권두경(權斗經)과 이재(李栽) 등의 교정을 거친 후, 1735년 이후 현손 도행(道行)이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두에 이현일(李玄逸)이 쓴 서문과 목록(墓誌)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문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오언율(五言律) 중에서 <몽등관어대(夢登觀魚臺)>는 1669년 저자가 작고하기 며칠 전 꾼 꿈의 내용을 읊은 것으로 저자의 기상을 알 수가 있다. 권2는 서(書)로, 김응조(金應祖), 이홍조(李弘祚), 이조영(李朝英), 김시종(金時宗), 이복(李馥) 등과 주고받은 것이다. 권3은 서(書), 제문(祭文), 묘지(墓誌)이다. 서(書)는 대부분 자손들과 주고받은 것이고 묘지(墓誌)는 종조고 김씨(金氏), 숙부 김용(金涌)과 정부인 이씨(貞夫人李氏)의 합장에 대한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 제문, 이보(李簠)가 1703년에 지은 <와룡초당기(臥龍草堂記)>, 조덕린(趙德鄰)이 1732년에 지은 <유사후서(遺事後敍)>가 실려 있다.
▶풍고집(楓皐集) | 김조순(金祖淳, 1765~1832)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김유근(金逌根)이 하고, 간행은 삼남 김좌근(金左根)이 한 것을 알 수 있다. 종형인 김용순(金龍淳)에게 출계한 장남 김유근은 저자가 죽자 유문을 수집하여 편차까지 완료하였으나, 끝내 문집의 간행을 이루지 못하고 1840년 사망하였고, 김유근이 만든 고본을 가지고 저자의 삼남인 김좌근이 1854년 정리자로 인행하였던 것이다. 본집은 16권 8책이다. 권수에 철종이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고, 권말에 정원용(鄭元容) 등이 지은 발(跋)이 있다.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6은 시(詩)로, 권2의 <지정청우령배곡희부(池亭聽禹伶俳曲戱賦)>는 판소리 소리꾼 우가(禹家)의 공연 모습을 그린 작품이고, 권3의 <증금사(贈琴師)>는 저자가 49세 때인 1813년 직접 거문고를 배우는 어려움을 묘사해 지은 시이다. 권4의 <석훈(昔訓)>은 옛 성현의 말씀에 따라 세속의 아첨하는 말과 음탕한 소리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겠다는 내용의 시이고, 권9의 <관서음사변통주(關西蔭仕變通奏)>는 음사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서도(西道) 지역에 대한 인사를 개선할 것을 아뢰는 글이다.
▶풍서집(豐墅集) | 이민보(李敏輔, 1717~1799)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풍서(豐墅) 이민보(李敏輔, 1717~1799)의 문집이다. 유고의 정리에 관한 기록이나 부록문자(附錄文字) 등이 미비해 편찬 과정이 분명하지 않아서 편차의 시기는 확정하기 어려우나 이조원(李肇源)이 1832년 반역죄로 흑산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어 1849년에야 신원되었으니, 1814년 이후 1832년 전에 이조원에 의해 정리되었든가 1849년 이후 후손들에 의해 수집 정리된 듯한데, 이조원의 행장(行狀) 등을 살펴보아도 이에 대한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에 재편차(再編次)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저자가 자편한 원고를 바탕으로 사후에 후손들이 수습, 재정리하여 여러 벌의 필사본(筆寫本)을 남겼고, 이를 대상으로 고종(高宗) 연간에 다시 재산정하여 편차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 채 교정본(校訂本)으로 전해지게 된 듯하다. 본집은 괘지(罫紙)에 정사된 사본(寫本)으로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실려 있으며, 서발과 부록문자는 실려 있지 않다. 권1~5는 시(詩), 권6~8은 상소(上疏)와 편지를 포함한 산문(散文), 권9~18은 지장(誌狀)으로, 시와 묘도문(墓道文)의 비중이 매우 높다.
▶풍석전집(楓石全集) | 서유구(徐有榘, 1764~1845)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문집이다. 정조대에 성세를 누린 소론 가문이었으나 중부 서형수(徐瀅修)가 김달순(金達淳)의 옥사에 연루되어 저자도 관직에서 물러나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업에 관한 저술을 하였다. 풍석고협집(楓石鼓篋集)은 저자가 18세인 1781년부터 1788년까지의 글을 자편하고, 서형수(徐瀅修)의 서문(序文)과 자인(自引)을 붙여 자편한 문집이고, 금화지비집(金華知非集)은 편찬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나, 그 내용이 저자가 관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고, 권3에 있는 <여계제사침서(與季弟士沈書)>에 있는 구절을 보면 1809년에 저자가 정계에서 물러난 후 김화(金華)에 살 때 자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본래 따로 되어 있던 풍석고협집과 금화지비집을 누가 합편하고 전사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본집은 풍석고협집 6권, 금화지비집 12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788년에 중부 서형수의 <풍석고협집서(楓石鼓篋集序)>, 이유원(李裕元)의 <풍석집서(楓石集序)> 및 저자의 <자인>이 있다. 풍석고협집은 권1~6으로 되어 있다. 금화지비집은 권1~12로 되어 있다.
▶풍암집(楓巖集) | 김종필(金終弼, 미상)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풍암(楓巖) 김종필(金終弼, ?~?)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방6대손 김육(金堉)이 그의 숙부가(叔父家)에 가장(家藏)된 고본(稿本)을 1635년 안변(安邊)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내용은 모두 시(詩)이다. 권수(卷首)에는 1635년에 지은 신익성(申翊聖)의 서문(序文)이 있고, 권미(卷尾)에는 1635년에 지은 김육(金堉)의 발문(跋文)이 있다. 시(詩)는 72제의 시(詩)가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편차(編次)되어 있다. 그중에서 <방언(放言)>은 위태로운 벼슬살이보다는 자연(自然)에 은거(隱居)하여 살겠다는 저자의 마음을 표현한 칠언율시(七言律詩)로서,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린 저자의 유일한 시(詩)인데 본집에 실린 시(詩)와는 글자의 출입(出入)이 있다. <하처난망주(何處難忘酒)> 2수는 백거이(白居易)의 시 제목을 취하여 지은 것으로 자연에 은거할 때 더욱 술이 필요함을 말한 시이고, <억석행(憶昔行)>은 1497년 5월에 불족봉(佛足峰)에 오르고 백운암(白雲庵), 금강사(金剛寺) 등지를 유람(遊覽)한 것을 회상(繪像)하며 지은 장편시(長篇詩)이다.
▶풍애집(楓崖集) | 안민학(安敏學, 1542~160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풍애(楓崖) 안민학(安敏學, 1542~160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차례 전란을 겪는 동안 대부분 유실되었고, 남아 있는 유고를 후손 안국광(安國光)ㆍ안세광(安世光) 등이 수집, 편차하여 이간(李柬)의 서(序)를 받고 윤봉조(尹鳳朝)의 서를 받았으나 간행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6대손 안태원(安泰源) 등이 이미 편차되어 있던 문집을 다시 증보, 2권 1책으로 재편하여 1802년에 면천(沔川)의 숭학사(崇學寺)에서 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그 뒤로 1897년에는 서울에서 활자로 문집을 중간하였는데, 똑같이 2권 1책이고 간행 경위는 자세하지 않다. 문집은 목록, 원집 2권, 부록 합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726년에 쓴 이간의 서와 1738년에 쓴 윤봉조의 서가 실려 있다. 권1은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승 박순(朴淳)을 비롯하여 성혼(成渾), 송익필(宋翼弼) 등과 주고받은 시가 많다. 권2는 기(記), 서(書), 제문(祭文), 잡저(雜著)이다. 이 중 <여홍주목사서(與洪州牧使書)>는 왜란 직후의 전정(田政) 및 요역(徭役)의 문란을 지적하고 이의 개혁을 홍주 목사에게 촉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풍월정집(風月亭集) | 이정(李婷, 1454~148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풍월정(風月亭) 이정(李婷, 1454~1488)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죽은 이듬해에 성종의 명에 따라 1489년 운각(芸閣)에서 인행한 초간본이 일실된 후, 7대손 이경(李絅)이 산일된 초간본 중 1편을 최석정(崔錫鼎)의 집에서 구하고, 또 호남에서 1편을 구하여 합 2책을 수집한 것을 1721년에 8대손 이하상(李夏相)이 교정하고 유숭(兪崇)의 발문을 받고, 1727년에 이하상이 목판으로 원집 2권, 보유 합 2책을 간행하였다. 권두에 1489년에 임원준(任元濬), 어세겸(魚世謙), 임사홍(任士洪), 신종호(申從濩)가 지은 서문과 성종(成宗)이 지은 <어제기존형화상찬(御製記尊兄畫像贊)>, 임사홍이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있다. 권1에는 오언배율, 칠언배율, 오언율시가 실려 있다. 시는 대부분 성종이 지은 시에 화답하는 것이고, 권2에는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실려 있다. 권미에 1489년에 성현(成俔)이 지은 <월산대군시집서(月山大君詩集序)>가 있다. 보유에는 칠언율시, 칠언배율, 오언율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고시, 사언고시 등이 실려 있고 마지막에 1721년에 지은 유숭의 제후(題後)와 간기(刊記)가 있다.
▶필운고(弼雲稿) | 김영행(金令行, 1673~1745)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필운옹(弼雲翁) 김영행(金令行, 1673~1745)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이건(履健)이 1747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정사본(淨寫本)으로서, 저자의 아우 정행(正行)의 ≪송창유고(松牕遺稿)≫가 부집되어 있다. 본집은 시고(詩稿) 4책, 문고(詩稿) 5책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책1~4는 시고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저자의 자주(自註)가 달려 있다. 수록된 시를 보면 실제로 1691년부터 1729년 지평 현감(砥平縣監)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유람시, 계부 시보(時保)의 시에 차운한 것들이 매우 많다. 만년에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들이 많다. 책5~9는 문고이다. 책8~9는 잡저로 정장(呈狀), 서(書)가 포함되어 있다. <서도봉원벽(書道峯院壁)>은 1697년에 지은 것으로 조광조(趙光祖)와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한 도봉서원의 폐단과 그 개혁 방안을 논한 글이고, <정병조장(呈兵曹狀)>은 1717년 서연에서 익위사의 폐단에 대해 진달하였다가 익위사가 대간의 탄핵을 받게 되자 처결을 청하는 내용이다. 권말에 장남 이건이 1747년에 지은 발이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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