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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 > 문집총간-서명별 > [하]서명[문집총간] : 114종(가격 직접 입력)

 
[하]서명[문집총간] : 114종(가격 직접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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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하 : 114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하]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하001 하거집(荷居集) 양헌수(梁憲洙, 1816~1888) 5책 1개 전쟁기념관
하002 하곡집(荷谷集) 허봉(許, 1551~1588)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03 하곡집(霞谷集) 정제두(鄭齊斗, 1649~1736) 22책 4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04 하당집(荷塘集) 권두인(權斗寅, 1643~1719)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5 하려집(下廬集) 황덕길(黃德吉, 1750~1827)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6 하서전집(河西全集) 김인후(金麟厚, 1510~1560)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7 하서집(荷棲集) 조경(趙璥, 1727~1787)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8 하원시초(夏園詩鈔) 정지윤(鄭芝潤, 1808~185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09 하음집(河陰集) 신집(申楫, 1580~1639) 5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10 하의유고(荷衣遺稿) 홍적(洪迪, 1549~1591)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11 하정집(荷亭集) 김영수(金永壽, 1829~1899) 4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12 하정집(亭集) 이덕주(李德胄, 1696~1751) 4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13 하지유집(下枝遺集) 이상진(李象辰, 1710~1772)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14 학고집(鶴集) 김이만(金履萬, 1683~1758) 6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15 학곡집(鶴谷集) 홍서봉(洪瑞鳳, 1572~164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16 학당유고(鶴塘遺稿) 조상경(趙尙絅, 1681~1746)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17 학림집(鶴林集) 권방(權訪, 1740~1808) 7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18 학봉집(鶴峯集) 김성일(金誠一, 1538~1593) 10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19 학사집(鶴沙集) 김응조(金應祖, 1587~1667)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20 학서집(鶴棲集) 유태좌(柳台佐, 1763~1837) 10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21 학송집(鶴松集) 전유형(全有亨, 1566~1624) 1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22 학암집(鶴巖集) 조문명(趙文命, 1680~1732)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23 학암집(鶴庵集) 최신(崔愼, 1642~1708)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24 학주전집(鶴洲全集) 김홍욱(金弘郁, 1602~1654)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25 학천집(鶴泉集) 성여학(成汝學, 1557~?)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26 학포집(學圃集) 양팽손(梁彭孫, 1480~1545)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27 학포헌집(學圃軒集) 서경창(徐慶昌, 175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28 학호집(鶴湖集) 김봉조(金奉祖, 1572~1630)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29 한강집(寒岡集) 정구(鄭逑, 1543~1620) 11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30 한사집(寒沙集) 강대수(姜大遂, 1591~1658)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31 한송재집(寒松齋集) 심사주(沈師周, 1691~175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32 한수재집(寒水齋集) 권상하(權尙夏, 1641~1721) 16책 3개 권희종(權熙宗
하033 한음문고(漢陰文稿) 이덕형(李德馨, 1561~1613)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34 한정당집(閒靜堂集) 송문흠(宋文欽, 1710~1752)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35 한주집(寒洲集) 이진상(李震相, 1818~1886) 22책 4개 내당서사
하036 한천유고(寒泉遺稿) 정민교(鄭敏僑, 1697~1731)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37 한포재집(寒圃齋集) 이건명(李健命, 1663~1722)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38 함계집(涵溪集) 정석달(鄭碩達, 1660~1720) 3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39 항재집(恒齋集) 이숭일(李嵩逸, 1631~169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0 해봉집(海峯集) 홍명원(洪命元, 1573~1623)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1 해석유고((海石遺稿) 김재찬(金載瓚, 1746~1827) 6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42 해악집(海嶽集) 이명환(李明煥, 1718~176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3 해옹고(海翁藁) 홍한주(洪翰周, 1798~1868)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4 해월집(海月集) 황여일(黃汝一, 1556~1622) 7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45 해은유고(海隱遺稿) 강필효(姜必孝, 1764~1848) 13책 3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하046 해장집(海藏集) 신석우(申錫愚, 1805~1865)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7 해좌집(海左集) 정범조(丁範祖, 1723~1801) 19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48 행명재시집(溟齋詩集) 윤순지(尹順之, 1591~1666)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49 향산집(響山集) 이만도(李晩燾, 1842~1910) 14책 3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하050 향은집(薌隱集) 이장찬(李章贊, 1794~186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51 허백당집(虛白堂集) 성현(成俔, 1439~1504) 8책 2개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52 허백정집(虛白亭集) 홍귀달(洪貴達, 1438~1504) 6책 1개 고려대 중앙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하053 허암유집(虛庵遺集) 정희량(鄭希良, 1469~150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54 현곡집(玄谷集) 조위한(趙緯韓, 1567~1649)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55 현곡집(玄谷集) 정백창(鄭百昌, 1588~163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56 현암유고(玄巖遺稿) 최유연(崔有淵, 1587~1656) 1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57 현와집(弦窩集) 윤동야(尹東野, 1757~1827)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58 현주집(玄洲集) 조찬한(趙纘韓, 1572~1631)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59 현주집(玄洲集) 이소한(李昭漢, 1598~164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60 현주집(玄洲集) 윤신지(尹新之, 1582~1657)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61 형재시집(亨齋詩集) 이직(李稷, 1362~1431) 1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62 호고와집(好古窩集) 유휘문(柳徽文, 1773~1832) 15책 3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63 호곡집(壺谷集) 남용익(南龍翼, 1628~1692) 9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64 호곡집(壺谷集) 유범휴(柳範休, 1744~1823) 7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65 호봉집(壺峯集) 이돈(李燉, 1568~1624) 1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66 호은집(壺隱集) 홍수주(洪受疇, 1642~1704)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67 호음잡고(湖陰雜稿) 정사룡(鄭士龍, 1491~1570) 8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68 호정집(浩亭集) 하륜(河崙, 1347~141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69 호주집(湖洲集) 채유후(蔡裕後, 1599~1660) 3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70 혼재집(渾齋集) 안교익(安敎翼, 1824~1896)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71 홍도유고(弘道遺稿) 이서(李, 1662~1723) 11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72 홍애유고(洪崖遺槀) 홍간(洪侃, ?~1304)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3 홍재전서(弘齋全書) 정조(正祖, 1752~1800) 100책 20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4 화계집(花溪集) 유의건(柳宜健, 1687~1760)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5 화곡집(禾谷集) 정사호(鄭賜湖, 1553~1616)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76 화곡집(華谷集) 황택후(黃宅厚, 1687~1737)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7 화담집(花潭集) 서경덕(徐敬德, 1489~1546) 2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하078 화당집(化堂集) 신민일(申敏一, 1576~165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79 화산집(華山集) 정규한(鄭奎漢, 1751~1824)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0 화서집(華西集) 이항로(李恒老, 1792~1868) 22책 4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81 화암집(和菴集) 신성하(申聖夏, 1665~1736)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2 화은집(和隱集) 이시항(李時恒, 1672~1736) 8책 2개 국민대 성곡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3 화재집(華齋集) 황익재(黃翼再, 1682~174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4 화천집(華泉集) 이채(李采, 1745~1820) 8책 2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85 화포유고(花浦遺稿) 홍익한(洪翼漢, 1586~1637) 2책 1개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86 환재집(瓛齋集) 박규수(朴珪壽, 1807~1876) 5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87 활산집(活山集) 남용만(南龍萬, 1709~1784)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88 활수옹유고(活水翁遺稿) 윤대순(尹大淳, 1779~1865)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89 활재집(活齋集) 이구(李榘, 1613~1654)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0 황고집(黃集) 신수이(愼守彝, 1688~1768)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1 회곡집(晦谷集) 권춘란(權春蘭, 1539~1617)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하092 회곡집(晦谷集) 조한영(曺漢英, 1608~1670)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3 회당집(晦堂集) 장석영(張錫英, 1851~1926) 22책 4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하094 회병집(晦屛集) 신체인(申體仁, 1731~1812) 6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95 회산집(檜山集) 정환(丁煥, 1497~154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6 회와시고(晦窩詩稿) 이인엽(李寅燁, 1656~1710)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7 회와집(悔窩集) 안중관(安重觀, 1683~1752)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098 회은집(晦隱集) 남학명(南鶴鳴, 1654~1722)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하099 회재집(晦齋集) 이언적(李彦迪, 1491~1553)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0 회정집(晦亭集) 민재남(閔在南, 1802~1873) 5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하101 회헌집(悔軒集) 조관빈(趙觀彬, 1691~1757) 10책 2개 국립중앙도서관
하102 효산집(曉山集) 이수형(李壽瀅, 1837~1908)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하103 후계집(后溪集) 조유수(趙裕壽, 1663~174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4 후계집(後溪集) 이이순(李淳, 1754~1832)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5 후산집(后山集) 허유(許愈, 1833~1904) 10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6 후산집(后山集) 이종수(李宗洙, 1722~1797) 9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하107 후암집(厚庵集) 권렴(權濂, 1701~1781)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8 후재집(厚齋集) 김간(金榦, 1646~1732) 26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09 후조당집(後彫堂集) 김부필(金富弼, 1516~1577) 3책 1개 김준식(金俊植)
하110 후천집(朽淺集) 황종해(黃宗海, 1579~1642)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11 휴옹집(休翁集) 심광세(沈光世, 1577~1624) 3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도서관
하112 희락당고(希樂堂稿) 김안로(金安老, 1481~1537) 6책 1개 김일근(金一根)
하113 희암유고(希菴遺稿) 현덕승(玄德升, 1564~162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하114 희암집(希菴集) 채팽윤(蔡彭胤, 1669~1731) 14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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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집(荷居集) | 양헌수(梁憲洙, 1816~1888)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전쟁기념관
조선 시대 하거(荷居) 양헌수(梁憲洙, 1816~18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족친 양진화(梁鎭華)가 편집하고 아들 주현(柱顯)과 주겸(柱謙)이 유적을 정리하여 김영수(金永壽)에게 시장(諡狀)을, 한장석(韓章錫)에게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이재완(李載完)과 이건창(李建昌)에게 묘지명(墓誌銘)을 받고, 김윤식(金允植)에게 행장을 받은 이후에 필사된 괘인사본(罫印寫本)인데 전사 경위나 필사 연도는 알 수가 없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부록(附錄)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양진화가 1883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총목록(總目錄)이 실려 있으며, 권4와 부록에는 별도의 목록이 있다. 권1은 소(疏), 계(啓), 책(策), 격(檄), 서(書)이다. 격은 <토양박도주격(討洋舶都主檄)>으로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을 때 출전하여 작성한 것이다. 부록은 김윤식이 1893년에 지은 행장(行狀), 저자의 관력을 기록한 <종정록(從政錄)>, 저자의 막하에 있던 종사(從事) 이호익(李鎬翼) 등 21인과 중군(中軍) 이승연(李承淵) 등 21인의 본관, 가족관계, 관직을 기록한 <막하록(幕下錄)>이 실려 있다.
▶하곡집(荷谷集) | 허봉(許篈, 1551~158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하곡(荷谷) 허봉(許篈, 1551~15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을 처음 정리한 것은 동생 허균(許筠)으로, 관각(館閣)에서 왕명을 받고 동인시부(東人詩賦)를 찬집하면서 저자의 시를 구하자 허균이 114편을 뽑아 <하곡시초(荷谷詩鈔)>로 만들고 나머지 136편을 모아 보유(補遺)로 붙인 것이었다. 허균은 이를 황해도 수안(遂安) 군수로 나가면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손자 허징(許징(山/徵))이 시집속보유(詩集續補遺)와 잡저보유(雜著補遺) 87편을 모아 두었다가 그 아들 허지(許墀)에게 준 것과 종손(宗孫) 허량(許量)은 저자의 자필고본(自筆稿本)인 <조천기(朝天記)> 3편과 <과강록(過江錄)>을 가장(家藏)해 둔 것에, 허균이 만든 연보까지 합하여 저자의 증손 허규(許奎)가 합편, 교정하고 문인 금각(琴恪)의 종인(宗人) 금사문(琴師文)이 글씨를 쓴 것을 증손 허지(許墀)가 충청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면서 1707년 공산(公山)에서 목판 4책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모두 29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38세의 짧은 삶의 역정이 묻어나는 작품이 많다. 시초보유 끝에 1605년에 쓴 허균의 발이 있다.
▶하곡집(霞谷集) | 정제두(鄭齊斗, 1649~1736)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 1649~173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을 처음 정리하려고 시도한 이는 아들 정후일(鄭厚一)과 사위 이징성(李徵成), 문인 심육(沈錥) 등이었다. 두 번째로 본집의 정리를 시도한 것은 저자의 증손 정술인(鄭述仁)과 손서 신대우(申大羽) 등이었다. 신대우는 정술인의 부탁으로 1802년경 묘표(墓表)를 짓고, 문집의 정리에도 착수하였다. 본집은 22권 22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크게 정집(正集), 부집(附集), 내집(內集), 외집(外集)의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22권의 전체 목록(目錄)과 정문승(鄭文升)이 1856년경 본집을 편차할 때 지은 목록발(目錄跋)이 실려 있다. 권1~9가 정집이고, 권10~11이 부집이며, 권12~19는 내집이고, 권20~22가 외집인데 목록에서만 구분되어 있고, 본문 내에서는 권수제 등이 없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권8~9는 학변(學辨)과 존언(存言)이다. <학변>은 성리학의 골격을 제서(諸書)에서 추출하여 요약한 것이다. 전적으로 주자학과의 접목을 통한 포용적 입장에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존언>은 조선의 유일한 양명학서(陽明學書)이다.
▶하당집(荷塘集) | 권두인(權斗寅, 1643~171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하당(荷塘) 권두인(權斗寅, 1643~1719)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 아들들이 10여 권의 시문을 수습한 후, 이광정(李光庭)이 11권으로 편차하고 다시 산삭을 가하여 원집 8권으로 정리하였다. 그 후 박손경(朴孫慶)이 원집에서 누락된 시문과 다시 수습한 유문 등을 교정하여 속집 2권으로 편차하여 가장해오다가 1810년 5대손 권재덕(權載德)이 주관하여 원집 8권과 속집 2권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고, 김한동(金翰東)의 발문을 받아 붙였다. 문집은 원집 8권, 속집 2권 합 5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 권두에 1753년에 이광정의 서문 및 총목록이 있다. 권3은 서(書)와 잡저(雜著)로, 서(書)는 도산사림(陶山士林), 권두경(權斗經) 등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 가운데 도산의 사림들에게 보낸 편지는 ≪퇴계집(退溪集)≫ 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제시한 내용이다. 잡저에는 친척간의 친목을 강조한 <원박(原薄)>, 영춘현(永春縣) 백성들이 공물로 부과된 석용(石茸)을 채취하느라 겪는 고통에 대해 적은 <석용설(石茸說)>, 권상원(權尙遠), 정윤목(鄭允穆) 등에 대한 전(傳)이다. 권미에는 김한동(金翰東)의 발문이 있다.
▶하려집(下廬集) | 황덕길(黃德吉, 1750~182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 1750~1827)의 문집이다. 저자가 졸한 지 10여 년이 지난 1838년에 저자가 평소에 자편한 ≪방언(放言)≫을 바탕으로 문인 안경위(安景褘)가 산고를 수집하고 선사하여 14권 7책으로 엮어 ≪두호방언(斗湖放言)≫이라 명명하였으나, 간행은 하지 못하였다. 허전(許傳)의 문인 노상직(盧相稷)은 허전이 스승인 하려의 문집을 간행하려고 했던 유지를 받들어 서둘러 ≪하려집≫을 간행하고자 1915년에 밀양의 노곡(蘆谷)에서 자편고 ≪방언≫과 안경위가 엮은 ≪두호방언≫을 바탕으로 문집 간행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이후에 저자의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간행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저자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던 창원의 인사들까지 발 벗고 나서서 족척 황수건(黃洙建), 박지목(朴志睦), 조병규(趙昺奎) 등이 참여하였다. 허전이 지은 행장과 발 등 부록 문자를 첨부하여 1918년에 ≪하려선생문집(下廬先生文集)≫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9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세계와 총목이 있다. 서는 없고 1917년에 지은 노상직의 발과 1918년에 지은 이용구의 발이 권말에 있다. 권8~9는 잡저이다.
▶하서전집(河西全集) | 김인후(金麟厚, 1510~1560)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유고 십여 권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등의 시서(詩書)가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이에 저자의 문인 조희문(趙希文)이 8년간 수집한 초본(草本)을 백광훈(白光勳)이 초서(抄書)하고 저자의 문인 양자징(梁子澂)과 신각(申覺)이 교정 및 간역(刊役)을 맡아 전라 감사 송찬(宋贊)의 협조로 1568년에 간행하였다. 그 뒤 김수항(金壽恒)이 저자의 현손 김시서(金時瑞), 외증손 이실지(李實之) 등과 함께 문집 중간(重刊)을 도모하여, 박세채(朴世采)의 편집을 거쳐 초간본에 부록을 첨부하여 14권으로 재편하고 별집 9권을 추가하여 1686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문집은 원집 12권, 부록 4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어제사제문(御製賜祭文), 사제문(賜祭文), 문묘종사교서(文廟從祀敎書), 문묘종사반교문(文廟從祀頒敎文), 문묘승배축문(文廟陞配祝文)과 서(序), 발(跋) 및 총목차가 있다. 서는 송시열(宋時烈)의 서와 조희문의 구서(舊序)이며, 발은 이직보(李直輔)의 전집본발(全集本跋)과 박세채가 중간시 지은 구발(舊跋)이다.
▶하서집(荷棲集) | 조경(趙璥, 1727~178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하서(荷棲) 조경(趙璥, 1727~178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정리해 두었던 가장유고를 바탕으로 아들 조진구(趙鎭球)가 11권 5책으로 편차하여 은륜비(恩綸碑)를 부록으로 붙인 뒤 조카 조진명(趙鎭明)이 평양에서 1789년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본서는 원집 11권 5책, 연보 1책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발은 없고 권머리에 권별로 수록 문체를 소개한 총목이 있고, 권마다 목차가 달려 있다. 원집 11권 말에는 부록 끝에 조진구가 쓴 지(識)가 있다. 권4~5는 소차, 서계, 헌의, 전(箋)이다. 1763년 홍인한(洪麟漢)과의 대립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용서받은 뒤 다시 검열에 제수되자 이를 사직하는 상소로부터 1787년 내각의 봉심을 빠뜨렸다는 일로 인해 자인하며 치사를 청하는 소까지 실려 있다. 이 중 1767년에 올린 <이부교리진소회소(以副校理陳所懷疏)>는 유곤록(裕昆錄)에 대한 상소인데 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실제 올리지는 못하였으나, 저자의 정치적인 입장과 지조를 확실히 드러낸 상소로 평가받고 있다. 유곤록은 영조가 송덕상의 상소에 노하여 산림이 당론을 주도해 나라를 망친다는 뜻으로 지어 반포한 글이다.
▶하원시초(夏園詩鈔) | 정지윤(鄭芝潤, 1808~185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하원자(夏園子) 정지윤(鄭芝潤, 1808~185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詩)가 인멸될 것을 걱정하던 친구들 중 장지완(張之琬), 박치량(朴穉良), 김석준(金奭準)은 저자가 글을 지을 때마다 항상 챙겨 두었고, 최성환(崔瑆煥)은 이 초고에 약간의 편차를 가하여 1854년 활자로 초간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책으로서, 분권이 되어 있지 않다. 권수에는 친구 최성환이 1854년에 지은 제사(題辭)와 1839년에 지은 자서가 있다. 내용은 모두 시(詩)로서, 총 103제이다. 편차는 대략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만, 간지가 표기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저작 연도를 알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고, 시의 제목 또한 너무 간략하여 시를 짓게 된 경위나 배경을 알기 어렵다. 시 중에서 <곡아(哭兒)>는 가난하여 자식을 제대로 장사 지내지 못하는 아비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안정사춘일(安定寺春日)>은 저자가 불교에 심취했음을 보여 주는 시로서, 이상적은 1847년에 저자가 묘향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지은 <문정수동입향산위승(聞鄭壽銅入香山爲僧)>의 각주에서, 저자는 진작부터 불가에 귀의하려는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음집(河陰集) | 신집(申楫, 1580~163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하음(河陰) 신즙(申楫, 1580~1639)의 문집이다. 본집은 권창(權僘)과 신정주(申鼎周)가 1800년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유회문(柳晦文)과 치명(致明) 부자의 교정을 거친 후 1825년 목판으로 초간하고, 7대손 신홍좌(申弘佐)가 초간시 누락된 시문과 부록을 증보ㆍ재편하여 1835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9권 5책이다. 권수에는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은 부, 시, 사이다. 부 2편 중에서 <빈부(貧賦)>는 어느 선비와 진신 선생(搢紳先生) 간의 빈궁과 부귀에 대한 문답을 통해 군자의 수신과 낙도, 출처에 대해 논한 글이다. 시는 19세부터 졸할 때까지 지은 것이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4는 소, 장계, 정문, 장이고 권5는 서(書)와 서(序)이다. 권6은~7은 전(箋), 상량문, 송, 잡저, 록(錄)이다. 특히<평왜송(平倭頌)>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황제의 은덕과 대의를 지켜 외적을 막아낸 선조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권8은 제문, 묘지, 행장이고 권9는 부록이다. 권말에는 유치명과 7대손 신홍좌가 지은 발이 있는데, 모두 1835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의유고(荷衣遺稿) | 홍적(洪迪, 1549~159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하의(荷衣) 홍적(洪迪, 1549~159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인하여 대부분 산일되었는데, 왜란이 끝난 뒤에 처남 한준겸(韓浚謙)이 약간 편의 유문을 수습하였고 저자의 아들 홍여익(洪汝翼), 홍여량(洪汝亮) 등이 한준겸이 수습한 유문을 바탕으로 시(詩) 230여 수와 <장연성갈지(長淵城碣誌)> 등의 문(文), 행장 등 부록을 수집 편차한 것을 증손 홍경렴(洪景濂)이 1692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시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 칠언율, 오언배율, 칠언배율, 고시로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할 때 지은 수창시와 응제시, 기행시, 지인들과 수창한 시 등이다. 잡저는 명(銘), 제문, 표(表), 갈지 등이다. 제문은 용신(龍神)과 풍양(豐壤) 선영에 제사하는 글이고, <장연성갈지(長淵城碣誌)>는 1583년 장연 현감으로 부임하여 1586년 장연성의 수리를 끝마치고 성의 규모, 시설, 공사 책임자 등을 기록한 글이다. 부록은 시(詩) 10제와 행장이다. 시는 이산해(李山海), 이순인(李純仁) 등과 수창한 시와 만시이고 행장은 처남 한준겸이 1612년에 지은 것이다.
▶하정집(荷亭集) | 김영수(金永壽, 1829~189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하정(荷亭) 김영수(金永壽, 1829~1899)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상당히 많았으나 대부분 정리가 안 된 초고 상태의 것이었고, 잃어버린 것이 태반이었다. 저자가 졸한 후 가장초고를 차자 김갑수(金甲洙)가 편차하고, 생질 홍순형(洪淳馨)이 산삭하여 약간 권으로 만들었다. 이를 홍순형에게 보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발문을 쓰게 하여 1916년에 8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16년에 홍순형이 지은 서(序), 윤명섭(尹命燮)이 지은 발(跋)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있고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연광정(練光亭), 부벽루(浮碧樓)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 첩문(帖文)에 붙인 시, <차묘향산사태사운(次妙香山四太史韻)>은 영변 부사로 있을 때 묘향산에 갔다가 심상규(沈象奎), 김이소(金履素) 등의 시첩을 보았었는데 아들이 영변 부사로 간다 하자 그때를 생각하며 화운시를 지은 것이다. 권4는 내제집(內製集)과 외제집(外製集)이다. 내제집은 옥책문, 금책문 등으로 왕실 내부에 관련된 글이다. 외제집은 교서, 치제문으로 신료들에 관한 글이다. 끝에 윤명섭이 지은 발이 있다.
▶하정집(芐亭集) | 이덕주(李德胄, 1696~175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하정(芐亭) 이덕주(李德胄, 1696~175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반(磐)과 종자 강(矼) 등이 수집ㆍ편차하여 1788년 저자의 조부 현조(玄祚)의 ≪경연당집(景淵堂集)≫, 생조부 현량(玄亮)의 ≪나은집(懶隱集)≫, 아버지 한보(漢輔)의 ≪졸은집(拙隱集)≫과 함께 활자로 초간한 후, 종자 공과 반(磐)의 아들 정하(正夏)가 습유 등을 산절ㆍ재편하여 1794년 활자로 인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습유 4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 권1은 시(詩), 사(辭)이다. 시는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는데 1713년에 지은 시부터 실려 있다. 저자는 평소 상고적 문학관을 가지고 <고시(古詩)>를 시의 전범으로 삼았다. 권2~4는 문(文)이다. 문체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습유는 시와 문을 구분하고, 문은 다시 서(書)와 잡저로 나눠 저작 연대순으로 수록하였다. 권1은 시(詩), 서(書)이다. 서는 1725년부터 1746년까지의 것이다. 권2는 서(書)이고 권3은 서(書), 잡저(雜著)이다. 권4는 송지(訟誌)로, 장단, 공주 등 산송 사건별로 글을 배열하였고, 말미에 종자 공의 지(識)가 있다.
▶하지유집(下枝遺集) | 이상진(李象辰, 1710~177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하지(下枝) 이상진(李象辰, 1710~1772)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홍진(弘辰)과 문인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하여 저자의 자자(姊子) 권명우(權明佑)의 교감ㆍ편차를 받아 179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범조(丁範祖)가 1793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이다. 부는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로, 자연에 은거하여 산수를 즐기고 학문에 전심하고자 한 마음을 적었고, 시는 산수경물과 은거하는 삶을 읊은 시, 교유인물들과의 수창시와 만시가 주를 이룬다. 권3은 서(書)로, 권상일(權相一), 이광정(李光庭)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4는 잡저, 서(序), 기(記)이다. 잡저 중에서 <위갈봉김공송계이공정순상문(爲葛峯金公松溪李公呈巡相文)>은 임진왜란 때에 공을 세운 김득연(金得硏)과 이형남(李亨南)에게 은전을 내려달라고 순찰사에게 올린 것이며, <사읍지찬술도감문(辭邑誌撰述都監文)>은 경상도 읍지 찬술 과정에 누락된 이광정을 추록하여 주기를 청하는 내용이다. 권5~6은 설, 잠, 제문, 행장 등이고 권7은 부록으로 행장,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학고집(鶴臯集) | 김이만(金履萬, 1683~1758)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학고(鶴皐)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재편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11권 6책으로 되어 있고,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1~6은 부(賦), 시(詩)이다. 시는 저자가 생전에 자편한 것인데 초고, 중고, 만고의 세 시기로 나누어 시체별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하였다. 한가롭게 고향 제천(堤川)에 퇴거해 있으면서 지은 한거시와 각지를 유력하며 지은 기행시, 중국 사서(史書)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영사시 등이 많은 편이다. 권7은 소(疏), 전(箋), 서(書)이다. 소의 <단계서원청액소(丹溪書院請額疏)>는 선조 김담(金淡)을 향사한 순흥(順興)의 단계서원에 대한 사액을 청한 것으로 사림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고, 나머지는 사직소이다. 권8은 서(序), 기(記), 발(跋), 축문, 제문이고 권9는 잡저로 <산사(山史)>이다. 산사는 <천하명산기(天下名山記)>를 읽던 중 영동 및 단양 유람에 대한 기록만 있는 것을 깨닫고는 과거 자신이 유람했던 곳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기록으로 남기면서 이름 지은 것이다. 권10은 잡저, 비갈표이고 권11은 행장, 부록이다.
▶학곡집(鶴谷集) | 홍서봉(洪瑞鳳, 1572~164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 1572~164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병자호란 때에 산일된 것을, 아들 홍명일(洪命一)이 수집하고 정리 하였다. 이것을 문인 용안 현감 박승건(朴承健)과 외손 박세주(朴世柱)가 이경석(李景奭)의 서문을 받아 1653년경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간본에는 이경석의 서문이 실려 있지 않고 첫 장이 사본으로 대치되어 있다. 이후 초간본의 목판이 화재로 소실되자 증손 홍구채(洪九采)가 내용을 증보하고 홍명일의 ≪보옹유고(葆翁遺稿)≫를 부집으로 첨부하여 1706년 운각인서체자로 약간 본을 간행하였다. 본집의 구성은 원집 9권, 부록 2권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경석의 서문이 실려 있고, 권1~6은 시이고, 권7~9는 문이며, 부록이 2권인데, 부록을 제외하고 각 권마다 머리에 목록이 있다. 시는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고 각 체 내에서는 대략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각 체마다 수록 편수가 목록에 기재되어 있다. 문은 소차와 계사 등의 공거문(公車文)을 앞에 배열하고 신도비명과 제문(祭文) 순으로 구성하였다. 각 권마다 보유는 따로 뒤에 ‘보유(補遺)’로 명시하여 수록하였다.
▶학당유고(鶴塘遺稿) | 조상경(趙尙絅, 1681~1746)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학당(鶴塘) 조상경(趙尙絅, 1681~17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묘도문자의 작성 등으로 볼 때 사후 아들들에 의해 수습된 듯하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괘인사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책1은 시(詩)이다. 저작 시기별로 묶어 편차되어 있는데 1701년부터 1744년까지 지은 시로, 수창한 대상은 신정하(申靖夏), 윤양래(尹陽來) 등이다. 책2는 연사록(燕槎錄)으로 1731년 11월부터 1732년 5월 복명하기까지 북경에 다녀온 여정과 그 여정 중에 수창한 시 143제를 별도의 시록으로 묶어 놓았다. 책3~7은 소(疏), 계사, 주어이다. 대부분 사직상소이고 계사의 <청추노징채방색계(請推奴徵債防塞啓)>는 1713년 7월 도하의 백성들에 대한 추노와 징채를 봄까지 미뤄 백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달라고 청한 글이다. 책8은 잡저이고 책9~14는 일기이다. 1710년 6월 전시에 병과(丙科)로 합격한 일로부터 1745년 예조 판서로 있을 때까지의 관직생활 중에 있었던 주요한 사건이나 임명 기사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책15~16은 부록으로 치제문, 가장, 유사, 시장 등이 실려 있다.
▶학림집(鶴林集) | 권방(權訪, 1740~1808)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학림(鶴林) 권방(權訪, 1740~1808)의 문집이다. 손자 책(策)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 편차하고, 1844년에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발문(跋文)을 붙여 문집 11권 6책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원집(原集)은 원집 11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정주(定州)에서 만난 김성곤(金聖坤)이 가학(家學)을 이어 정진하는 모습을 기리면서 떠도는 자신의 심신(心身)이 보전되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차김자정견기운(次金子正見寄韻)>, 압록강(鴨綠江) 가 농민의 곤궁한 삶과 자신의 애환을 그린 <원가행(怨歌行)> 등이 있다. 권3은 시(詩), 소(疏)로, <응지구언소(應旨求言疏)>는 1806년에 우레의 변고로 조야에 구언할 때 영남(嶺南) 유생들이 주장한 임오의리론(壬午義理論)을 강조하고, 하늘이 우레로써 경계하므로 천명을 두려워하고 법을 밝혀 간악한 무리를 척결해야 하며 과거제와 군정 등의 폐단을 혁파하여 덕치를 구현할 것을 주장한 것인데 정원(政院)의 저지로 진달되지 못하였다. 권미(卷尾)에 유치명이 1844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학봉집(鶴峯集) | 김성일(金誠一, 1538~1593)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 수집, 편차된 것은 여강서원(廬江書院)의 산장(山長) 이홍조(李弘祚), 종손(從孫) 김시온(金是榲) 등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왜란과 호란을 겪는 와중에서 산일되고 남은 가장(家藏) 수록본(手錄本)과 1642년 저자의 사위 김영조(金榮祖) 등이 간행한 ≪해사록(海槎錄)≫ 등을 수집, 편차하여 원집 8권, 부록 합 4책으로 만들어 1649년 여강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중간(重刊)은 원집과 속집 판본의 완결(刓缺)이 심해지면서 10대손 김진구(金鎭龜), 김진화(金鎭華) 등에 의해 도모되었다. 이들은 1847년부터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과 함께 문집을 재편, 교정하였는데, 고이(考異)와 두표(頭標)를 붙이고 속집에는 습유(拾遺)를 더하고 원집의 형태대로 호당삭제(湖堂朔製) 등으로 재편하여 원집을 7권 4책, 속집을 5권 3책으로 만들었다. 본집은 원집 7권, 속집 5권, 부록 4권 합 1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권2의 시문은 저자의 일본에 대한 인식과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학사집(鶴沙集) | 김응조(金應祖, 1587~166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시대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158~1667)의 문집이다. 유성용(柳成龍), 장현광(張顯光),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저자의 시문은 1734년경 증손 목사공(牧使公) 김정(金정(亻+政))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김정의 중형(仲兄) 동추공(同樞公) 金价(金价)가 연보 및 부록을 추가하였으며, 이광정(李光庭)이 편차하였다. 이 가운데 시는 저자가 <산중록(山中錄)>으로 자편(自編)해 놓았던 것이다. 1774년, 김정의 차자(次子) 김서필(金瑞必)이 위의 고본(稿本)을 간행하기 위하여 의산서원(義山書院)의 원유(院儒)들과 의논하여 재원(財源)을 마련하였으나 원고(元稿)의 분권(分卷) 차제(次第)가 가지런하지 않고 자획에도 잘못된 것이 많으며 연보에 간혹 누락된 기사가 있는 등 문제점이 대두되어 수교(讐校)하여 바로잡아 정고본을 만들었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1776년경에 현손 김서필(金瑞必)이 주도하여 원유(院儒)들의 협조와 이상정(李象靖)의 도움을 받아 위 정고본을 손보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본집은 원집 9권, 외집 1권, 세계도, 연보, 부록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2는 시이다.
▶학서집(鶴棲集) | 유태좌(柳台佐, 1763~183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학서(鶴棲) 유태좌(柳台佐, 1763~1837)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자 기목(祈睦)이 가장을 짓고 삼자 교목(敎睦)과 손자 도성(道性)이 수집 편차하여 유상조(柳相祚)에게 묘지명과 이휘재(李彙載)에게 행장, 이종상(李鍾祥)에게 묘갈명을 받아 1902년경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20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2권 단위로 결책되어 있으며 각 책의 앞부분에 목록이 있다. 권5~7은 중용강의조대(中庸講義條對)이다. 1797년 초계문신으로 응제한 것인데, 정조의 조문(條問)을 먼저 제시하고 자신의 견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권10은 기(記), 발, 잡저, 전이다. <해동보첩후지(海東寶帖後識)>는 중제 석좌(奭佐)를 위해 구입했던 서첩을 동생의 사후에 상자에서 다시 발견하고 지은 글이다. 젊은 시절 과거를 보기 위해 석좌와 서울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해진 서첩을 팔고자 하여 보니 양사언(楊士彦), 송인(宋寅) 등 명필의 글씨와 이우가 김수우(金守愚)를 위해 지은 후지(後識)가 붙은 것이므로 이것을 구하여 동생에게 주었는데, 서예에 취미가 있던 석좌가 매우 좋아하며 손에서 잠시도 놓지 않았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학송집(鶴松集) | 전유형(全有亨, 1566~162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학송(鶴松) 전유형(全有亨, 1566~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미리 강도(江都)에 보관하였다가 병자호란 때 대부분 산일된 것을 손자 전기연(全起淵)이 저자의 일기(日記)와 괴산(槐山) 구가에서 찾은 시문을 수습하여 약간 권으로 부록하고 말미에 모문룡(毛文龍)의 답서(答書)를 첨부하여 1책으로 만들어 가장하였다. 그 후 증손 전이장(全爾樟)이 거창 현감으로 재임 중 형 전이근(全爾根) 등의 협조를 받아 1713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학송일기(鶴松日記)와 문집(文集)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송일기는 1592년 4월 13일 왜적이 침입한 기사부터 1623년 12월 동지중추부사가 된 일까지 기록한 것이다. 문집은 조(詔), 논, 소(疏), 변(辨), 설(說), 비명, 시(詩), 정문(呈文) 등이다. 그중에서 <사물설(四勿說)>은 여러 제자 중에 안자(顔子)만이 예(禮)의 전체대용(全體大用)을 깨닫고 하나의 물자(勿字)를 들었는데도 시청언동(視聽言動)을 살펴 능히 사욕을 제거했다며 성현의 가르침에 대해 논한 것이다. 권말에 증손 전이근(全爾根)이 1713년에 지은 지(識)가 실려 있다.
▶학암집(鶴巖集) | 조문명(趙文命, 1680~173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암(鶴巖) 조문명(趙文命, 1680~1732)의 문집이다. 사후 문집의 간행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묘도문도 동생 조현명(趙顯命)이 지은 간략한 묘표 한 편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저자가 남긴 시문과 저술의 규모도 필사본으로만 전하는 저자의 시문집을 통해 그 대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필사본으로는 초고본(草稿本), 괘인정사본(罫印淨寫本), 정사본(淨寫本)이 있다. 본집은 불분권 6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1797년 지은 정조의 어제서가 있다. 총목은 없고, 책6에만 목록이 달려 있다. 책1~2는 시이다. 책1에는 초년부터 1715년경까지 지은 시 297제가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책2에는 맨 앞에 다시 1700년대에 지은 시 36제가 실리고, 그 뒤에 1725년의 사행 때 지은 연행록(燕行錄) 116제, 1726년 이후 1732년 졸할 때까지의 시 121제가 차례로 실려 있다. 책6은 연행일기(燕行日記), 부록이다. 연행일기는 1725년에 사은 겸 주청사 서상관으로 연경에 다녀올 때의 일기이다. 부록은 1728년의 분무 공신 녹훈 때 받은 교서, 영조 연간의 치제문 4편, 동생 조현명이 지은 묘표이다.
▶학암집(鶴庵集) | 최신(崔愼, 1642~170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학암(鶴庵) 최신(崔愼, 1642~1708)의 문집이다. 5대손 최경조(崔擎祖)가 문집의 간행을 위한 본격적인 유고의 정리와 묘표 등 부록을 작성하였다. 이후 권돈인(權敦仁)이 북도 유생들을 권장하기 위해 저자의 증직을 청한 것과 함께 1882년 저자의 추증과 증시가 이루어진 것을 계기로 다시 문집 간행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듯하다. 저자의 9대손 최병진(崔秉鎭)은 김상현(金尙鉉)에게 시장을, 민태호(閔台鎬)에게 행장을 받는 등 부록을 강화하고, 송근수(宋近洙)와 심순택(宋近洙) 등에게 서발을 얻어 1884년 연활자로 6권 3책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부록을 포함해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1만이 가장유고를 바탕으로 수습해 편차한 것이고 나머지는 송시열의 문중에서 저자와 관계된 기록을 얻어 기재한 것이다. 권두에는 송근수와 권돈인의 서문 2편이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공사(供辭), 서(序)와 서(書)로, 그중에서 상소는 1684년에 올린 만언소(萬言)이다. 저자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송시열과 윤증(尹拯)의 갈등을 조정에 알려 노소론 간에 내재해 있던 알력을 공공의 논란으로 끌어낸 계기가 된 상소이다.
▶학주전집(鶴洲全集) | 김홍욱(金弘郁, 1602~165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 1602~1654)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에는 곧 삭탈관직과 자손, 근친 금고(禁錮)의 명이 내려 문집 간행이 시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아들 김세진(金世珍)이 문집 간행을 도모하여 행장을 짓고, 송시열(宋時烈)에게 신도비명을 받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고, 다만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한 유고의 수집에만 힘을 기울였다. 처음 문집이 간행된 것은 강빈(姜嬪)의 위호(位號)가 회복되고 저자에게 증직(贈職)의 조처가 내린 뒤 8월에 김세진의 아들 김두벽(金斗壁)이 경상도 개령 현감으로 있으면서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7대손 김만재(金萬載), 김경희(金景喜), 김좌희(金佐喜) 등이 계획하여, 8대손 김상유(金商裕), 김상휴(金商休) 등의 도움을 받아 구본을 교정하고, 일시(逸詩) 5편을 추가하고, 연보, 부록을 추보하여 새로 편차해서 15권 6책으로 정리하여 서울 흥성암(興盛菴)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0권, 부록 5권 합 6책이다. 권1~6은 시이다. 권2는 <남행록(南行錄)>, 권3는 <서행록(西行錄)>이 실려 있다. 권7은 소(疏)와 차자(箚子)이다.
▶학천집(鶴泉集) | 성여학(成汝學, 155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 155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는 외손(外孫)인 도정(都正) 한후명(韓厚明)이 수집 편찬하여 정서(淨書)해두었다가 1706년 그 조카 이야(李壄)가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자 이돈(李墪)의 서를 실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의 구성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고 전체가 모두 시인 시집이다. 권두에 두 판이 빠진 이돈의 서문이 있으며 기타 저자 관계 기록이나 부록 문자는 없다. 저자의 시는 내용상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지우(知友)들과 주고받은 차운시와 당시(唐詩)에 차운한 시, 그리고 <야음(夜吟)>, <유감(有感)>, 등의 서정시가 많다. 시 중 약 50여 수가 심종직(沈宗直), 이수광(李睟光),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과 주고받은 시이다. 그중에서 이수광의 경우는 시우(詩友)로 각별히 생각한 저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지봉집(芝峯集)≫에도 학천(鶴泉)에 차운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또 저자는 당시(唐詩)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는 이달(李達),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등 삼당시인(三唐詩人)이 활약하던 때인 만큼 시대적 조류이기도 했다.
▶학포집(學圃集) | 양팽손(梁彭孫, 1480~154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양응정(梁應鼎)이 10여 권으로 편집한 정고본(定稿本)이 있었으나 정유재란을 겪는 중에 모두 일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현손 양세남(梁世南)이 흩어진 시문을 수습하고, 12대손 양집(梁楫)이 부록을 만들고 6권으로 편집하여 1840년 화순 월곡에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그 후 1914년에 후손 양재경(梁在慶)ㆍ양회원(梁會源) 등이 능주 쌍봉리에서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이때에 분량이 9권으로 늘어났다. 1940년에 후손 양회갑(梁會甲) 등이 중간본을 가지고 상당부분을 삭제, 수정(修訂), 추가하여 추각(追刻)하였다. 문집은 본집 2권ㆍ부록 7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서(序)ㆍ범례ㆍ목록, 권3~9는 부록이다. 권3에는 저자의 원조(遠祖)부터 손자까지의 인물들을 차례대로 열거하고 간단한 인적사항을 밝힌 세계원류(世系源流)와 가장이 있다. 권4에는 연보가 있다. 이는 본 문집을 추각하면서 대폭 개정한 것으로 기묘사화를 전후한 시기에 있어서 저자의 거취와 주변 상황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권미에는 5편의 발이 실려 있다.
▶학포헌집(學圃軒集) | 서경창(徐慶昌, 175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포헌(學圃軒) 서경창(徐慶昌, 1758~?)의 문집이다. 편사(編寫) 경위(經緯)는 불분명한 필사본(筆寫本)이다. 본집(本集)은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천수경(千壽慶) 등이 지은 <학포헌기(學圃軒記)> 2편과 목록(目錄)이 있다. 사(詞), 부(賦), 시(詩), 제문(祭文), 서(書), 설(說), 서(序), 전(傳)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1815년에 지은 <을해탄(乙亥歎)>은 질병(疾病)과 기근(饑饉)으로 유망(流亡)하며, 관청(官廳)의 부역(負役)으로 생활을 할 수 없는 등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극명(克明)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인삼(人蔘) 재배의 상황(狀況)과 모순점을 상세히 개진하고 그 개선책(改善策)을 제시한 <의상재상서(擬上宰相書)>, <전군적삼폐설(田軍糴三弊說)>은 당시 군정(軍政)의 조목별(條目別)로 피력(披瀝)한 것이다. 서(序)는 <종저방서(種藷方序)>로서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구마를 경작하면 구황(救荒)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아울러 언문본(諺文本)도 편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말미(末尾)에는 중형(仲兄)의 제문(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학호집(鶴湖集) | 김봉조(金奉祖, 1572~16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 1572~1630)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이나 지(識) 등이 없어 문집의 간행 경위와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다만 돈녕도정(敦寧都正) 유규(柳규(氵+奎))가 지은 행장에 저자의 6대손 김상섭(金相燮)과 7대손인 김종석(金宗錫) 등이 유집을 가져와 교정을 부탁하였다는 것으로 유추하면, 본집은 순조 초년 후손 김상섭 등이 가장본을 바탕으로 수집하고 유규의 교정을 거친 후 1813년경 저자가 구호서원(鷗湖書院)에 봉안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판으로 간행된 것이다. 본집의 구성은 세계도, 연보, 총목과 원집 4권 합 2책으로 되어 있으며 서, 발은 없다. 권1은 시로서, 50여 수의 각 체의 시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소(疏), 장계(狀啓), 전(箋) 등의 공거문(公車文)이다. <왜정장계(倭情狀啓)>는 1623년 12월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보낸 원지차(源智次)의 접위관으로 차임되어 동래로 내려갔을 때 올린 8건의 장계이다. 당시 접견 절차상의 예우문제와 세견선(歲遣船)의 증가 등 저들의 요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우리나라와 대마도 간의 외교 및 무역 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한강집(寒岡集) | 정구(鄭逑, 1543~1620)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문집이다. 저자 시문의 정리와 간행은 1636년 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병자년에 호란의 조짐이 나타나자 문인 배상룡(裵尙龍), 이서(李서𥳕) 등이 문집 보전을 위하여 급박하게 등사(謄寫)하여 겨우 호란이 일어나기 전에 간행을 마쳤고, 그렇기 때문에 교감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중간(重刊)은 허목(許穆)이 지은 중간서문(重刊序文)에, 와오(訛誤)를 교정하고 편류(編類)를 고정(考定)하여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을 만들었다고 한 걸로 보면, 1680년경 허목의 주도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15권, 속집 9권, 별집 3권 합 27권 11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卷首)에 허목의 중간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와 만사(挽詞)로 구성되어 있다. 권9는 잡저(雜著)이다. 자신이 편차한 것과 이황, 김종직, 김굉필의 시 뒤에 적은 제후(題後), 서후(書後) 등이 대부분이고, 주자의 설을 중점으로 지은 <심의제조법(深衣製造法)> 등이 실려 있다. 속집은 권1~6, 권7~9 둘로 나뉘어 목록이 따로 달려 있다. 체제는 원집과 비슷하다.
▶한사집(寒沙集) | 강대수(姜大遂, 1591~165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 1591~1658)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병화(秉和)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유주목(柳疇睦)의 산정을 받아 1870년 방곡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별로 목록을 실었다. 권수에 유후조(柳厚祚)와 유주목(柳疇睦)이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 만사이다. 작품 중에는 인조반정으로 처형된 정인홍(鄭仁弘)의 집을 지나며 지은 <과야정파댁(過倻鄭破宅)>, 밀양 부사로 있을 때 읊은 <차영남루판상운(次嶺南樓板上韻)>, 졸년에 격양가를 부르며 태평을 칭송한 <문첩(門帖)> 등이 있다. 권3은 불윤비답(不允批答), 교서, 소차이고 권4는 소차, 계사, 서(書)이다. 권5는 전(箋), 계(啓), 서(序), 기(記), 발(跋), 상량문, 잡저, 제문이다. 권6은 비(碑)와 증조부 강인수(姜仁壽), 박인(朴絪), 이양재(李樑材)의 갈명(碣銘) 등이고, 권7은 부록으로 묘갈명(墓碣銘), 가장(家狀), 행장(行狀), 사제문, 제문, 만사가 있다. 권말에는 1870년에 방8대손 영흠(泳欽)이 쓴 발(跋)과 간기(刊記)가 있다.
▶한송재집(寒松齋集) | 심사주(沈師周, 1691~175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한송재(寒松齋) 심사주(沈師周, 1691~1757)의 문집이다. 본집은 종자 정진(定鎭) 등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한 고본(稿本)을, 저자의 손자 문영(文永)이 재편하고 부록을 추가하여 1796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는 남유용(南有容)이 1769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1739년 무렵부터 말년까지의 작품들이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관직 생활이나 벗들과의 교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일상과 밀착된 소재의 시들이 많은 편이다. <살송충(殺松蟲)>은 의릉 참봉(懿陵參奉)으로 있을 때 당시 원릉(園陵)에 창궐하던 송충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노래한 장편의 고시(古詩)이다. 권3은 문(文)이다. 별도의 문체 구분 없이 서(書), 서(序), 기(記), 발(跋), 고유문(告由文), 제문(祭文), 애사(哀辭), 행장(行狀),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행장, 묘지명, 유사(遺事)와 상기(像記), 제문 등이 수록된 부록(附錄)이고 권말에 저자의 손자 문영이 1796년에 지은 발이 있다.
▶한수재집(寒水齋集) | 권상하(權尙夏, 1641~1721) | 권책수 : 16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권희종(權熙宗)
조선 시대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1755년경부터 권진응(權震應)의 주도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간행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경상도 관찰사 황인검(黃仁儉)의 협조로 대구 감영에서 원집 34권, 연보 1책 총 16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34권과 연보 1권, 합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는 1761년 윤봉구(尹鳳九)가 쓴 서문이 있고, 원집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2~3은 상소와 서계, 수의 등으로, <사호조참의소(辭戶曹參議疏)>에는 유장태(柳長台)가 저자의 부친과 송시열(宋時烈)과의 관계를 무함한 것에 대해 변무한 내용이 있고, <변우암선생피무소(辨尤庵先生被誣疏)>는 이경석(李景奭)의 손자 이하성(李厦成)이 우암을 비난한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해 반박한 것이고, <사대사헌소(辭大司憲疏)>는 박필기(朴弼基)가 격쟁하여 송시열을 비난한 것을 변론한 것이다. 권4~20은 서(書)로, 257편이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인물의 배열 순서를 살펴보면 스승 우암이 가장 앞에 있고 다음은 동문 이단하(李端夏), 이여(李畬) 등에게 보낸 것인데, 대체로 생년에 따라 수록하였다.
▶한음문고(漢陰文稿) | 이덕형(李德馨, 1561~1613)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의 문집이다. 저자는 매우 많은 시문을 남겼으나 병화(兵火)를 겪는 바람에 대부분 유실되었고, 남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아들 상주 목사 이여규(李如圭)와 선산 부사 이여황(李如璜)이 문집으로 간행하려다 1633년에 이여황이 세상을 떠나자 1634년에 이여규가 이준(李埈)의 발문(跋文)을 받아 상주에서 8권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손자 이상정(李象鼎)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얻은 소차(疏箚)나 계사에 습유, 잡저 등을 더 수집하여 1668년 조경(趙絅)의 서문(序文)을 받고 상주에서 12권의 목판으로 중간하였다. 문집은 원집 12권 6책, 부록 4권 3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1668년에 조경이 지은 서와 목록이 실려 있다. 권1~2는 시로, 절구에는 왜란 기간에 승군(僧軍)으로 활약하거나 축성(築城)에 동원된 승도(僧徒)들과 나눈 시가 매우 많다. 권10~11은 간독이다. 권11의 <답왜장서(答倭將書)> 이하 습유까지는 중간 때 넣은 것이다. 총 110여 편 가운데 이항복(李恒福)에게 보낸 것이 77편이나 되고, 천장(天將)이나 왜장(倭將)들과 나눈 편지도 다수이다.
▶한정당집(閒靜堂集) | 송문흠(宋文欽, 1710~175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정당(閒靜堂) 송문흠(宋文欽, 1710~175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을 처음 정리한 사람은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이인상(李麟祥), 신소(申韶) 등이다. 이인상이 1760년에 졸하고 1764년에 저자가 상소로 인해 서인이 되어 전리로 방축되는 등 집안에 화란이 닥치면서 문집 간행에는 손을 대지 못하다가 종자 송시연(宋時淵)이 다시 문집 간행을 주도한 것 같다. 본집은 1788년 사위 김광묵(金光默)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정리되어 있던 8권 4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없고 맨 뒤에 송시연이 지은 발문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5~6은 잡저로, 권6은 치포관에 대해 논한 <치관설(緇冠說)>, 백이가 주(周)나라를 섬기지 않은 의를 논한 3편의 <백이론(伯夷論)> 등이다. 권7은 잡저, 서(序), 기, 발, 명, 찬, 송이다. 잡저의 <부인복식고(婦人服飾攷)>는 부인복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고, <전제잡고(田制雜攷)>는 정현(鄭玄)의 주를 인용하여 여러 전제(田制)를 설명하고 끝에 왕기천리도(王畿千里圖)를 첨부하였다. 권말에는 송시연이 지은 발이 첨부되어 있다.
▶한주집(寒洲集) | 이진상(李震相, 1818~1886)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내당서사
조선 시대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에 문인 곽종석(郭鍾錫), 이두훈(李斗勳) 등이 아들 이승희(李承煕)에게 문집간행을 권유하자, 이승희가 문인 이조현(李祚鉉)과 함께 이두훈과 이영훈(李英勳)이 재정 후원을 받아 일을 추진하고, 허유(許愈)에게 교정을 부탁하여, 1894년 정본을 완성하여 거창(居昌) 정천(井泉)의 원천정(原泉亭)에서 목활자로 49권 25책의 문집을 초간하였다. 1897년 도산서원에 문집을 헌정하지만, 저자의 심즉리설(心卽理說)이 퇴계의 학설과 다른 이단으로 공표하고 문집을 되돌려 보내고 1902년 영남 퇴계학파에 속한 인사들이 문집을 불사르기까지 하였다. 1925년 가을 사림들이 산음 이동서당(尼東書堂)에 모여 자금을 조달하여, 1928년에 성주의 삼봉서당에서 목판으로 원집 38권 부록 5권 합 22책의 문집을 중간하였다. 본집은 목록 2권, 원집 38권, 부록 5권 합 2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목록, 부록목록이 있다. 권4는 소(疏), 책(策)이다. 권31~34는 잡저이다. 뒤에 이승희가 지은 후지, 김황(金榥)이 지은 중간발, 손자 이기원이 지은 중간발이 있다.
▶한천유고(寒泉遺稿) | 정민교(鄭敏僑, 1697~173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천(寒泉) 정민교(鄭敏僑, 1697~1731)의 문집이다. 본집은 형 내교(來僑)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산정ㆍ편차한 고본을 문인 오도옥(吳道鈺) 등이 1739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2권 1책이다. 권수에 오원(吳瑗)이 1738년에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와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수세시작(收稅時作)>은 평안도에서 해세(海稅)를 감독할 때 지은 것으로 가혹한 세금 징수와 인정(仁政) 등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였다. 경상도 감영에서 서기(書記)의 직책을 맡았을 때에는 관찰사 조현명(趙顯命)과 주고받은 시가 주를 이루고 연구시와 첩운시가 많다. 권2는 문(文)이다. <증평양외성제자서(贈平壤外城諸子序)>는 영남과 호남이 인재의 부고(富庫)라는 기존 통념을 반박하며 관서 지역을 차별하는 사회적 통념과 모순을 논박한 글이고, <유후론(留侯論)>에서는 장량(張良)이 홍구(鴻溝)의 약속을 어기고 항우를 공격하도록 권한 것이 상도가 아닌 권도임을 논변하였다. 부록으로 형 내교가 지은 본말, 묘지명, 묘표가 있고 권말에 조현명이 1739년에 지은 발과 형 내교가 1738년에 지은 발이 있다.
▶한포재집(寒圃齋集) | 이건명(李健命, 1663~1722)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한포재(寒圃齋)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이복상(李復祥)이 만들어 놓았던 정고본(定稿本)을 바탕으로 1758년에 10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서문(序文)은 없고, 맨 앞에 총목(總目)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달려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1691년의 금강산(金剛山) 유람, 이후 한거 중 온양(溫陽), 보령(保寧) 등의 유람,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내외 관직 생활, 1697년 호서 어사(湖西御史), 1698년 사은사 서상관(謝恩使書狀官), 이후 내외 관직 생활, 1705년경 백씨 이관명(李觀命)의 영유(永柔) 임소(任所) 방문, 1717년 원접사(遠接使)로 의주행(義州行), 1721년 책봉주청사(冊封奏請使), 1722년 나로도(羅老島) 유배 시절에 지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권3~7은 소차, 계사, 연명 차자는 곧 소론이 노론 사대신(四大臣)의 죄안을 삼아 결국 옥사까지 일으키게 되었다. 계사는 1721년 8월에 왕세제의 책봉이 끝난 뒤 유봉휘(柳鳳輝)가 상소하여 이를 비난하였을 때 다른 대신, 삼사와 함께 합문(閤門)에 나아가 그의 국문을 청한 계사 등이다.
▶함계집(涵溪集) | 정석달(鄭碩達, 1660~172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 1660~1720)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남 중기(重器)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손자 일찬(一鑽)이 산교ㆍ재편하여 영천 사림의 협조를 받아 1790년 저자의 장남 중기의 ≪매산집(梅山集)≫과 함께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상정(李象靖)이 1773년에 쓴 서(序)가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로, 고체시와 그 밖의 시체로 나누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철학적 사유를 담은 작품이 특히 많으며, 주요 수창자는 정규양(鄭葵陽), 정만양(鄭萬陽) 등이다. 권3~4는 서(書)로 정시연(鄭時衍), 이현일(李玄逸) 등에게 보낸 편지가 인물별ㆍ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5는 잡저, 서(序), 기, 애사, 행록 등이다. 잡저의 <발몽설(發蒙說)>은 1694년에 문답식으로 삼재(三才)를 통섭하여 ‘태극, 음양’ 등의 명목에 따라 이치와 작용 등을 요약 설명하고 ‘위인지리(爲人之理)’ 부분은 상세히 논설하여 정리한 것이다. 권6은 부록으로 만사, 제문, 행장, <매곡정사석채고유문(梅谷精舍釋菜告由文)>과 상향축문이 실려 있다.
▶항재집(恒齋集) | 이숭일(李嵩逸, 1631~169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항재(恒齋) 이숭일(李嵩逸, 1631~1698)의 문집이다. 본집은 조카 이재(李栽)가 수습하고 직접 2책으로 정사하여 가장해 왔다. 그 뒤 현손 이우근(李宇根)이 이재의 수사본을 바탕으로 삼고 이후에 수집한 것을 덧붙여서 6권 3책으로 편정하고 1808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을 1910년 가을에 후손 이수승(李壽昇)과 이현채(李鉉埰) 등이 일부 개각하여 중인하였다. 문집은 6권 3책으로, 권두에 이우(李㙖)의 서문 및 전체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고시, 오언소시, 오언근체, 칠언소시, 칠언근체, 소(疏)이다. <봉송갈암형이사업부소(奉送葛庵兄以司業赴召)>는 1689년에 성균관 사업에 제수되어 서울로 올라가는 숙씨 이현일(李玄逸)을 전송하는 송시이다. 전체적으로 갈암에게 보낸 시(詩)가 많다. <차질자유청량산운(次姪子遊淸凉山韻)>은 조카 이재의 <유청량산시(遊淸凉山詩)>에 대한 차운시로, 첫 수의 운자를 써서 경계하는 시 2수를 지어 주었다. 권6은 부록이다. 이재의 행장, 갈암의 묘지명, 권두인(權斗寅)의 묘갈명 및 문인 사우의 제문 및 만사와 박신윤(朴身潤)의 일기이다. 끝에는 유묵 4판이 첨부되어 있다.
▶해봉집(海峯集) | 홍명원(洪命元, 1573~1623)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해봉(海峯) 홍명원(洪命元, 1573~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을 처음 수집, 편차한 것은 장자(長子) 홍처후(洪處厚)였다. 저자의 행장을 짓기도 한 홍처후(洪處厚)는 병란 이후 유락(遺落)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하여 3백여 편을 모아 3권의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어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부사로 나가서 3권 3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716년 증손 홍우영(洪禹寧)이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면서 증손 승지(承旨) 홍우서(洪禹瑞)와 현손 수찬(修撰) 홍계적(洪啓迪)이 상의하여 가장원초(家藏原草) 및 초간본을 참고, 대조하여 시 285편과 문(文) 17편을 선사(繕寫)하여 5권으로 편차하여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3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1~3 모두 시이고, 서(書) 2편, 정문(呈文) 3편, 의ㆍ기 각 1편, 제문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550여 수의 시 중 107수를 차지하는 <제고씨화보(題顧氏畫譜)>는 고씨(顧氏)의 화보(畫譜)에 나온 인물을 읊은 시로,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 당(唐)의 이사훈(李思訓), 명(明)의 주단(朱端)등 동진 이후 명 나라 때까지 107명을 다루고 있다.
▶해석유고((海石遺稿) | 김재찬(金載瓚, 1746~182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해석(海石) 김재찬(金載瓚, 1746~182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두 종류의 필사본으로, 12권 6책의 ≪해석유고(海石遺稿)≫와 10권 5책의 ≪해석집(海石集)≫이 남아 있는데, 모두 서발이 붙어 있지 않아 편찬, 전사 경위 등이 분명하지 않다. 이 두 책을 비교해 보면, 시(詩)는 모두 권1~4에 편차되어 있으나, 문(文)은 편차가 다르고 수록 내용에 약간 출입이 있다. 예컨대, 서(書)는 ≪해석유고≫에는 권7, ≪해석집≫에는 권5에 실려 있고, ≪해석유고≫에는 ≪해석집≫에 실린 것보다 제문 3편, 전(箋) 19편, 묘지 8편이 더 실려 있다. 또한 권차가 일부 매겨져 있지 않은 ≪해석집≫에 비해, ≪해석유고≫는 판심까지 권차가 정돈되어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분량이나 편차에서 ≪해석유고≫가 더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본서는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이 있고, 각 권의 앞에는 목록이 첨부되어 있다. 권1~4는 시, 권5~12는 문이다. 권11~12에는 시장(諡狀) 8편이 실려 있는데, 양대박(梁大樸), 한익건(韓翼謇), 이병태(李秉泰), 이민보(李敏輔), 김한철(金漢喆) 등에 대한 것이다.
▶해악집(海嶽集) | 이명환(李明煥, 1718~176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해악(海嶽) 이명환(李明煥, 1718~1764)의 문집이다. 저자의 두 아들 소(素)와 청(靑)이 유고를 정리하여 1792년 오재순(吳載純)의 서문을 받은 뒤에 1801년경 유한준(兪漢雋)의 수교를 받아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로 인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1792년 오재순이 쓴 서(序)가 실려 있고, 권1과 권3의 첫머리에 목록이 실려 있다. 구성의 특이점은 각 권 내에서 문체별로 구분하여 별면을 하였다는 것이다. 즉 권이 끝나지 않아도 해당 문체가 끝나면 판(板)을 바꾸어 해당 판을 일부 비워두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다. 권1~2는 부(賦), 소사(騷辭), 시(詩), 소차, 유문, 장(狀)이다. 소사 중 <광초(廣招)>는 1751년 간언을 하다 삼수(三水)로 귀양가 죽은 오찬(吳瓚)을 애석해하며 기리는 내용이다. 배소에서 죽은 그의 영혼을 부른다는 의미에서 <광초>라고 이름하였는데 2,200여 자의 장편(長篇)이고 구절마다 고사와 유래를 설명한 자세한 자주(自註)가 붙어 있다. 권3은 서(序), 후서(後敍), 기(記), 잠(箴), 명(銘), 찬(贊), 송(頌), 축(祝)이다.
▶해옹고(海翁藁) | 홍한주(洪翰周, 1798~1868)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해옹(海翁) 홍한주(洪翰周, 1798~1868)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고 6권, 문고 6권으로 이루어진 괘인사본이다. 사본은 잘 정서되어 양호한 상태이지만, 누구에 의해 언제 필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본집은 시고 6권, 문고 6권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서발은 없고, 권두에 시고 목록과 문고 목록이 있다. 시고는 작은 시집 여럿을 한데 모아 놓은 체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집은 대체로 연대순으로 배열되었으며, 저자가 시를 지을 당시에 머물던 곳의 지명, 주제 등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내용은 시사나 사회 문제보다는 주로 유람한 곳의 자연 풍광을 노래한 서정적인 것이 많고, 송별시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권2는 호해집하(湖海集下), 영물집(詠物集), 영표집(嶺表集), 남원창수집상(南園唱酬集上)으로 되어 있다. 문고 권1~2는 서(書)이다. 편지글은 대체로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윤일선(尹一善), 서유영(徐有英), 권대응(權大膺), 심의덕(沈宜德), 송주헌(宋柱獻), 이완희(李完煕), 윤정현(尹定鉉), 유진오(兪鎭五) 등에게 주는 편지이고, 홍현주(洪顯周)와 홍직필(洪直弼)에게 올리는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해월집(海月集) | 황여일(黃汝一, 1556~1622)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해월헌(海月軒)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5대손 황상하(黃尙夏)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774년에 이상정(李象靖)의 교감을 거친 뒤 1776년에 명계서원(明溪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권두에 1774년에 이상정(李象靖)이 지은 서문이 있다. 권1~4는 시(詩)이다. 저자는 차천로(車天輅), 임제(林悌)에 비견될 정도로 시에 능하다고 평가되는 인물인 만큼 산일된 원고를 수습한 중에도 시가 전부 513제가 남아 있다. 권5는 부(賦), 대책, 논이고 권6은 유성룡(柳成龍), 이항복 등에게 보낸 서(書)이다. 권7은 원수 권율(權慄)의 종사관을 사직하는 등의 소(疏) 3편과 장계, 교서, 전, 표, 송, 기, 서(序), 발이고, 권8은 <유내영산록(遊內迎山錄)> 등의 잡저와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9~12는 1598년 정응태(丁應泰)의 무국에 대한 변무를 위해 진주사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기록인<은사록(銀槎錄)>이다. 권13은 효자 주경안(朱景顔)에 대한 전과 정담(鄭湛)에 대한 묘지 등이고, 권14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제문 등이 실려 있다.
▶해은유고(海隱遺稿) | 강필효(姜必孝, 1764~1848)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해은(海隱) 강필효(姜必孝, 1764~1848)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문은 아들 강헌규(姜獻奎)와 문인 김소(金熽), 손자 집(鏶) 등이 편차하여 60권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손자 면(金+冕)이 종질 제(濟)와 함께 산정하여 20권으로 휘편(彙編)하고, 원집에서 빠진 것은 따로 속(續) 2권으로 만든 후에, 부록 2권을 추가하여 1895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0권, 부록 2권, 속 2권 합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9는 서와 잡저이다. <정전도(井田圖)>는 정전설을 알기 쉽게 도해(圖解)하고 설명을 곁들인 것이고, <겸괘도(謙卦圖)>는 ≪주역(周易)≫ 64괘 중에 회(悔), 린(吝), 흉(凶), 구(咎)가 없는 것은 오직 겸괘이고, 또 겸괘는 간체(艮體)로서 곤괘(坤卦)의 아래에 있어 겸손을 나타내는 괘이므로 특별히 쉽게 이를 알려주기 위해 풀이한 것으로, 겸손의 뜻인 겸괘로 자경(自警)하고 후대의 사람 중에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려 한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권17은 발(跋), 봉안문, 서원축문, 제문이다. 권말에 1894년 손자 면이 쓴 발이 있다.
▶해장집(海藏集) | 신석우(申錫愚, 1805~1865)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해장(海藏) 신석우(申錫愚, 1805~1865)의 문집이다. 저자의 손자 양균(養均)이 가장초고(家藏草藁)를 당시 문(文)은 윤종의(尹宗儀)와 박규수가 편차(編次)하고, 시(詩)는 조면호(趙冕鎬)가 산교(刪校)하였는데 시는 비교적 순탄하게 정리된 것으로 보이나 문은 작업에 차질이 있어서 저자의 조카 연익(淵翼)이 저자의 문고(文藁)를 선사(繕寫)하고 8책으로 편정한 것을 1878년 윤종의가 다시 산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다시 부록으로 제문(祭文), 유사(遺事), 시장(諡狀)을 붙여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8권 13책으로 되어 있다. 권1~8은 시를 수록하였고, 권9~17은 문을 수록하였다. 권1ㆍ2, 권3ㆍ4, 권5ㆍ6, 권17ㆍ18은 책별로, 권9~16은 권별로 목록이 있다. 그리고 권7과 권8은 목록이 없다. 권1은 부(賦), 가행(歌行), 시이다. 권3은 시이다. <종감저(種甘藷)>는 1836년에 고구마 수본(數本)을 구해서 서유구(徐有榘)의 ≪종저보(種藷譜)≫에 나오는 대로 재배한 일에 대해 지은 시이다. 권12는 기, 발(跋)이다. 권미에 1874년과 1878년에 쓴 윤종의의 발 2편이 실려 있다.
▶해좌집(海左集) | 정범조(丁範祖, 1723~1801) | 권책수 : 19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 1723~1801)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여러 차례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여 자편해 둔 것으로 보인다. 1787년 찬한 자서에, 그간의 시문을 모은 것이 시(詩) 16편, 문(文) 23편이며, 이후의 작품들은 후집으로 할 계획이라고 되어 있다. 저자가 부친상을 당한 1785년 이후 상기(喪期) 동안 기존의 시문을 산정하고 이후의 작품도 계속 모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유문은 저자 사후에 바로 간행에 들어가지는 못한 듯하다. 1805년에 아들 정약형(丁若衡)이 사망하고, 동생 정신조(丁藎祖)도 한치응(韓致應)에게 행장을 부탁하며 장록을 남긴 채 1811년 사망하여, 문집 간행은 한동안 소강상태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867년에 증손 정대식(丁大植)이 황주 목사로 있으면서 이명적(李明迪)에게 묘갈을 부탁하고, 서문을 받아 그해에 39권 19책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총 39권 19책으로, 권수에는 자서와 이명적의 서가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권1~16은 시, 권17~39는 문이다. 부록은 한치응이 정신조가 지은 가장을 바탕으로 1818년경 찬한 행장이다.
▶행명재시집(涬溟齋詩集) | 윤순지(尹順之, 1591~166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행명(涬溟) 윤순지(尹順之, 1591~1666)의 문집이다. 저자는 정묘호란 이후 초야에 묻혀 있던 10여 년 간 하루도 시를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시작을 하였으나 원고를 거의 남겨 놓지 않았고, 문(文)도 남겨 놓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남은 시고(詩稿)를 처음 정리한 것은 양자 윤전(尹塼)으로,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시를 수집, 1692년경 외족(外族) 박세채(朴世采) 등에게 산정(刪定)을 부탁하여 간행하려 하였다. 이때 박세채는 저자의 유지(遺志)를 따른다는 입장에서 초고의 1,2할만 취할 정도로 정선(精選)하여 산정하고 발문까지 써 두었으나 윤전 등의 죽음으로 실제 간행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그 후 1725년 증손 윤항(尹沆)이 강서 현령으로 나가게 되자 이곳에서 문집을 간행하고자 하였다. 이에 당시 부제학으로 있던 종증손 윤순(尹淳)에게 편차를 부탁하니, 윤순이 이미 박세채가 산정해 놓았던 유고를 바탕으로 시집을 6권으로 편차하여 강서에서 목판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본집은 시집으로 원집 5권, 속집 1권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박세채의 발이 실려 있다.
▶향산집(響山集) | 이만도(李晩燾, 1842~1910)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문집이다. 저자 생전에 자편(自編)한 ≪인출편(訒出編)≫을, 저자 사후에 아들 중업(中業)이 절약(節略) 편차하여 원집 19권으로, 자제와 문인 등 각처에 소장된 시문을 수집 편차하여 별집 6권으로 엮고 부록 2권을 추가하여 14책으로 편성하고 족질 중철(中轍)과 족손 강호(康鎬)의 발문에, 중업이 편술한 연보 1책도 별도로 이루어져 손후익(孫厚翼)이 산정하였지만, 1916년 9월 일경(日警)이 판목을 불사르고 묘비를 깨뜨리는 사건으로 간행이 중지되었다가, 손자 동흠(棟欽)이 원집을 추보(追補)하고, 족질 중균(中均)에게 발문, 권노섭(權魯燮)에게 별집 발문을 받고,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거쳐, 1948년에 원집 19권, 별집 6권, 부록 2권 합 14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여 50질을 반질하였다. 본집은 원집 19권, 별집 6권, 부록 2권 합 14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과 별집에 각각 목록이 있다. 권2는 교(敎), 소(疏), 차(箚), 경연강의, 계(啓)이다. 권7은 잡저(雜著)로 <송감쇄론(宋鑑瑣論)>이다. 권미에 중철과 강호가 1916년에, 중균이 1931년에 지은 발이 있다.
▶향은집(薌隱集) | 이장찬(李章贊, 1794~18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향은(薌隱) 이장찬(李章贊, 1794~1860)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1879년 아들 승혁(承赫)이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편집하고 청양 현감(靑陽縣監)으로 재직 중인 심기택(沈琦澤)에게 서문을 받아 두었다가, 이후 전체 유집의 10분의 1가량만 편차하여 신응선(申應善)에게 수교(讎校)와 서문을 받아 1897년에 간행되었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879년에 쓴 심기택의 서(序), 1889년에 쓴 이정필(李正弼)의 서, 1897년에 쓴 신응선의 서가 있다. 권2는 사(辭), 전(傳), 잠(箴), 명(銘), 발(跋), 논(論), 설(說), 서(序), 기(記)이다. 권3은 역학원류(易學源流), 역학기의(易學記疑)이다. 권4는 주역강해(周易講解), 대학경의(大學經義), 대학설(大學說), 대학도이다. 주역강해는 1845~1849년에 완성된 저술로 주자의 ≪중용혹문≫과 ≪대학혹문≫의 예를 따라 문답 형식으로 9개의 도설이 실려 있다. 대학경의, 대학설, 대학도는 ≪대학장구≫의 자의(字義)에서 대의(大義)에 이르는 저자의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권말에는 1897년에 쓴 이용원(李容元)과 아들 승혁의 발문이 있다.
▶허백당집(虛白堂集) | 성현(成俔, 1439~1504)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 1439~150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성세창(成世昌)이 편집하여 중종ㆍ선조 연간에 처음 간행하였다. 그 후 점차 산일되어 문중에서조차 소장본이 남아 있지 않던 중, 정조ㆍ순조 연간에 후손 성천주(成天柱)가 비서각에 전해 온 구본(舊本)을 발견하여 이를 등사하여 간직하였다. 이어 성재억(成載億)이 이를 다시 등사하고 성재숭(成載崇)이 와류된 것을 교정하였으며, 1842년 봄 12대손 성재항(成載恒) 등이 성재숭의 교정본을 구하여 나주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시집 14권ㆍ보집(補集) 5권ㆍ풍아록(風雅錄) 2권ㆍ습유 1권ㆍ문집 14권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842년 후손 성근묵(成近默)이 지은 중간서와 목록이 있다. 시집 14권에는 각체(各體)의 시 630여 제가 저작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보집 5권에도 저작 연대순으로 200여 제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풍아록 2권은 가집(歌集)으로서 총 119편이 각체별(各體別)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508년에 문인 김안국(金安國)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으며 권미에는 성재숭과 성근수(成近壽)가 각각 지은 발이 실려 있다.
▶허백정집(虛白亭集) | 홍귀달(洪貴達, 1438~1504)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 중앙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의 문집이다. 1610년 외현손(外玄孫) 최정호(崔挺豪)가 구례현감으로 부임하였을 때 현손 홍호(洪鎬)에게 가장본(家藏本)을 얻고 전라도 관찰사 정경세(鄭經世)의 도움을 받아 간행하였으며, 정경세가 서문을, 최정호가 발을 썼다. 그 후 헌종조에 후손 홍종구(洪宗九)가 저자의 유문을 모으고 동암공(東庵公)이 작성한 연보를 아울러 속집 3책을 편집하여 간행하려던 중 졸하자 홍인찬(洪麟璨) 등이 이 일을 속행(續行), 1842년 유치명(柳致明)의 교감을 거친 후 홍은표(洪殷標) 등이 선수(繕修)하여 1843년에 간행하였다. 원집은 3권 3책으로 시 1권, 문 2권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정경세의 서가 있다. 권1은 출사 이후부터 1504년 참화를 당하기 직전까지의 시 313제가 실려 있다. 권미에 최정호의 발이 실려 있다. 속집은 6권 3책으로 시 4권, 문 1권, 연보ㆍ행장 1권으로 되어 있다. 권1~4에는 시가 있고, 권6은 부록이며, 권미에는 유치명이 지은 속집 후서와 후손 홍인찬 등이 쓴 속집 발이 있다.
▶허암유집(虛庵遺集) | 정희량(鄭希良, 1469~150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 1469~1502)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이우(李堣)가 귀양지에서의 시편을 구하여 이행(李荇) 등의 출간 권유를 받고, 1511년(중종6)에 김사형(金士衡)과 함께 편집ㆍ간행하였다. 그 후 임진란으로 판본이 귀하게 되자 방손(傍孫) 정조(鄭造(?))가 족친(族親) 정흠(鄭欽)에게서 ≪허암유고≫ 1본을 얻어 1621년 ≪수양세고(首陽世稿)≫의 간행과 함께 초간본의 편차에 따라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삼간은 1897년에 11세손 정광숙(鄭光淑) 등이 속집 3권을 편성, 원집과 함께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사간은 14세손 정종하(鄭宗夏)ㆍ정종은(鄭宗殷) 형제 등이 유림의 도움으로 1940년 연활자로 증보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3권ㆍ속집 3권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3은 모두 시집으로 1498년 무오사화로 장류되었던 의주ㆍ김해 적소(謫所)에서 지은 작품이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었다. 속집엔 저자가 둔적한 이후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세상에 유전하던 시를 모아 ≪별고≫로 붙였다. 권미에는 1897년에 쓴 후손 정광숙(鄭光淑)ㆍ정홍석(鄭鴻錫)ㆍ정면석(鄭冕錫)의 발문이 실려 있다.
▶현곡집(玄谷集) | 조위한(趙緯韓, 1567~164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정리하여 9권의 자편고(自編稿)로 만들어 놓았으며 1626년 60세 되는 해에 신흠(申欽)에게 부탁하여 이 자편고 9권에 대한 서문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 사후 유고를 아들 조억(趙億)이 14권 3책을 고산(高山) 현감으로 재직 중인 1658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4권 3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는 신흠의 자편고에 대한 서, 이경석(李景奭), 조경(趙絅), 정두경(鄭斗卿)의 서가 있다. 권1~10은 사, 부, 시로, 왜란기에 지은 시작(詩作)이다. 권12는 격 책, 제, 논, 책, 서(書), 서(序), 기, 발이다. 격은 1630년 유흥치(劉興治)의 토벌을 위한 가도(椵島) 공격에 앞서 명을 받고 지어 올린 것이다. 책제는 산수와 인물의 관계, 기질의 변화에 관해 논하라는 것이고, 논은 숙향(叔向)이 자신을 구해준 기해(祁奚)에게 사례(謝禮)하러 가지 않았던 일을 논한 것이다. 책은 숙폐(宿弊)를 개혁 관해 지은 것이다. 서는 중국에 갔을 때 소홀한 빈접에 대한 항의와 사행 중 지은 시의 평가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현곡집(玄谷集) | 정백창(鄭百昌, 1588~16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현곡(玄谷) 정백창(鄭百昌, 1588~163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이듬해에 병자호란으로 1천여 편이 유실되고 5, 6권이 남은 상황에서, 아들 정선흥(鄭善興)이 호란 이후 10여 년에 걸쳐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 시 400여 수와 잡저 약간 수를 얻어 이를 편차하여 8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시집 6권, 문집 2권, 지문(誌文)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서문(序文)이 있다. 시집 6권은 시체별(詩體別)로 편차되어 있다. 각 권별 편차 원칙은 분명하지 않으며, 자주(自註)와 편자주(編者註)가 섞여 있다. <왕손초(王孫草> 등 한림원에 있을 때 과작(課作)으로 지은 시, 외삼촌 홍무적(洪茂績)이 거제(巨濟)로 정배되었을 때 지은 시, 등 양근(楊根) 대탄(大灘) 가에 퇴거(退居)하여 임숙영(任叔英), 이식(李植) 등과 교유하면서 지낼 때 지은 시, <옥류천(玉溜泉)> 등 원접사 종사관이 되어 사신을 빈접할 때 지은 시 등이 특히 많다. 이식은, 저자가 특히 고시를 잘하는데 부사(浮詞)나 누어(累語)를 없애 순수하게 일가를 이루었다고 평하였다.
▶현암유고(玄巖遺稿) | 최유연(崔有淵, 1587~1656)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현암(玄巖) 최유연(崔有淵, 1587~1656)의 문집이다. 본집은 생질 맹주서(孟胄瑞)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재편하여 167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별집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육언, 칠언율시이다. 작품에는 중양절에 정두경에게 준 <시동명(示東溟)>, 연경에 다녀올 때 지은 <요양(遼陽)> 등이 있다. 권2는 오언고시이고, 권3은 칠언고시와 부(賦)이다. 권4는 논(論), 설(說), 기(記), 명(銘), 전(傳), 행장, 소(疏), 서(書)이다. 그중에서 <선유봉기(仙遊峯記)>, <양의당기(兩宜堂記)>, <농암기(聾巖記)>에서는 저자가 중국 항주(杭州)의 서호(西湖) 보다 낫다고 평한 복거지 서호 주변의 경물에 대한 감정을 기술하였다. 별집에는 시와 유묵이 있다. 유묵은 <섬강정서(蟾江亭序)>, <반포오부서(反哺烏賦敍)>, <와유명산부서(卧遊名山賦敍)>와 연경에 다녀와서 1646년에 지은 <연운기행서(燕雲記行序)>인데, 그중에서 <반포오부> 1편만 본문이 문집에 실려 있다. 권말에 생질 맹주서가 1675년에 쓴 발(跋)이 있다.
▶현와집(弦窩集) | 윤동야(尹東野, 1757~182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현와(弦窩) 윤동야(尹東野, 1757~1827)의 문집이다. 본집은 족손 병효(炳斅)가 가장유고(家藏遺稿)에 저자가 당시의 명석(名碩)들과 창수(唱酬)한 것을 모아 이근용(李根容)에게 교정과 서후(書後)를 받아 초성(抄成)한 뒤 1870년경 자신과 형 병주(抄成)의 발문을 추가하여 간행에 대비하였고, 1894년 증손 성도(成道)가 사재(私財)를 문중에 맡기면서 판각을 부탁하였으나,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과 갑오경장(甲午更張) 등으로 착수하지 못하다가 1897년에 다시 종족들이 논의하여 물력(物力)을 내어 보조하고 증손 택규(宅逵)와 족현손 주하(胄夏)의 교감을 거쳐 거창의 수목재(修睦齋)에서 목활자(木活字)로 인행되었다. 본집은 원집 6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장복추(張福樞)가 1897년에 쓴 서문과 목록(目錄)이 있다. 권3~4는 소(疏)와 서(書)이다. 소권5는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이다. 권말(卷末)에는 족손 병주(炳周)와 병효가 1870년에 쓴 초본발(草本跋), 이근용이 1865년에 쓴 서초본후(書草本後), 윤병항(尹炳恒)이 1897년에 쓴 간본발(刊本跋)이 있다.
▶현주집(玄洲集) | 조찬한(趙纘韓, 1572~163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장남 조휴(趙休)가 병란 때에도 선고(先考)의 신주와 유고를 지니고 다녔으며, 용궁(龍宮) 현감(縣監)으로 내려가게 되자 1641년 이식(李植)의 서를 받아 문집을 정리하여 간행하려다 병으로 죽었다. 그 이후 차남 조비(趙備)가 사업을 이어받아 1654년 임실에 부임하면서 이경석(李景奭)의 서를 받아 1655년 임실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임실 객관에 보관되어 있던 판목이 1669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손(孫) 조구상(趙龜祥)이 무주 부사로 나가서 1710년 무주에서 1백여 본을 목활자로 인출(印出)하여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무주적상산성(茂朱赤裳山城) 누각(樓閣)에 보관하였다. 본집은 15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詩文의 분량과 내용에 따라 冊을 구분하였으며 각 책의 첫머리마다 목록이 실려 있다. 본집의 구성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권1~9는 시집, 권10~11은 여집(儷集), 권12~13은 부집(賦集), 권14~15 상하는 문집(文集)으로 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권의 판심(板心)도 시, 여, 부, 문으로 되어 있다.
▶현주집(玄洲集) | 이소한(李昭漢, 1598~164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현주(玄洲) 이소한(李昭漢, 1598~1645)의 문집이다. 자는 도장(道章)이고 호는 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저자는 일찍부터 신동이라 불릴 만큼 문장에 뛰어나 평소 저술이 많았으나 대부분 강도(江都)의 변란에 산실되고 말았다. 아들 이은상(李殷相)이 1663년 승지가 되면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 초록한 것 및 괴원(槐院), 예원(藝苑)의 응제문자(應製文字)와 동사록(東槎錄), 호당(湖堂)의 수창시(酬唱詩), 전송(傳誦)되던 시편(詩篇) 등을 모아 만년의 저작과 함께 편차하여 가장(家藏)해 오다가 1674년에 교서관이 갖고 있던 무신자(戊申字)로 7권을 간행하였다. 그 후 1912년에 8대손 이의익(李儀翼)과 이환익(李桓翼)이 초간본의 정고본(定稿本)을 저본으로 서간 등 몇 편의 유문을 더 수집해 추가하고 부록 1권을 증보하여 8권 2책을 옥천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의 구성은 좀 특이하여 발과 부록이 권두에 있고, 저자의 시문을 담은 원집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은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명이다. 권1~5는 약 500여 편의 각 체의 시가 특정시기별로 모은 시록(詩錄)으로 편차되어 있다.
▶현주집(玄洲集) | 윤신지(尹新之, 1582~1657)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현주산인(玄洲散人) 윤신지(尹新之, 1582~1657)의 문집이다. 본집은 자편고를 후손들이 18세기 전반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13권, 부록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자서가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7은 시 500여 제가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그중에서 권4의 불혹록(不惑錄)은 46세 이후 50세 초반에 지은 시이고, 교산록(喬山錄)은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승하한 뒤 목릉에 안장하던 과정에서 지은 시이다. 권8은 선고 윤방(尹昉), 선비 정혜옹주(貞惠翁主), 의창군 이광(李珖)의 행장이다. 권9는 인빈김씨(仁嬪金氏), 강즙(姜楫), 윤취지(尹就之) 등의 비지(碑誌)이고 권10은 제문과 잡저이다. 권11은 서(序), 발, 제후이고, 권12는 차자, 소, 계사이다. 권13은 회은록(懷恩錄)으로 저자가 15세 때인 1594년에 경운궁(慶運宮)에서 선조를 처음 배알하여 시를 칭찬받은 일부터 시작하여 부마로서 사랑받은 일화들, 인조 즉위 후 조정의 예장(禮葬)을 맡아 치른 일 등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부록으로 외증손 김만기(金萬基)가 지은 행장이 있다.
▶형재시집(亨齋詩集) | 이직(李稷, 1362~143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형재(亨齋) 이직(李稷, 1362~1431)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사후 30년이 지난 1465년(세조11)에 손자 이영진(李永蓁)이 김종직에게 교수와 편차를 부탁하여 고율시 296편을 4권으로 편집하고, 아울러 잡저 3편과 저자의 수초연보(手草年譜)를 붙여 간행하였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뒤 1618년(광해군10) 후손 이욱(李稶)이 1587년(선조20) 영산(靈山) 계성촌(桂城村) 종형 집에서 ≪형재유고≫ 1질을 얻어 선사(繕寫)까지 마쳤으나,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유실하였다. 그 후에 한원(翰苑)의 기사관으로 부임하여 옥당(玉堂)에 있던 ≪형재집≫을 여가에 등사하고, 1618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와천(訛舛)된 것을 바로잡아 원성(原城)에서 간행하였다. 본 시집은 4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96수의 시가 실려 있다. 권수에는 초간 시의 김종직의 서문이 실려 있다. 시는 김종직이 편차한 것으로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권미에는 이욱(李稶)과 이응협(李應協)의 발문이 실려 있다.
▶호고와집(好古窩集) | 유휘문(柳徽文, 1773~1832)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호고와(好古窩) 유휘문(柳徽文, 1773~1832)의 문집이다. 아들 치교(致喬)가 유고를 수습하여 등사에 착수하여 판독이 어려운 초본은 문세와 의리에 따라 추정하여 정리하고 저자의 문인 신필흠(申弼欽), 족자 치호(致皜) 등도 상수(象數), 율려(律呂) 등을 교정하였으며, 이후 종증손 필영(必永)이 문중의 점문(漸文), 지호(止鎬) 등과 저자의 저술들을 모아 함께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물력 등의 제한으로 1896년에 먼저 원집 10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19권, 별집 8권, 부록 2권 합 15책이다. 권수에 원집 목록이 있다. 권3~9는 서(書)이다. 권3은 족조 장원(長源), 남한조(南漢朝) 등과 학술적 논의를 주고받은 것이다. 권4는 남한호(南漢皜)와 주고받은 것이다. ≪대학혹문≫, ≪중용장구≫, ≪역학계몽≫의 도설(圖說), 복제(服制) 등에 대해 질의하고, 의견을 개진한 내용이 실려 있다. 권10~17은 잡저이다. 권14는 만록(謾錄)이다. 이기설을 비롯하여 성리학 논설과 의례 등의 학설 중에 논란과 의의가 있는 곳에 자신의 견해를 밝혀 정리하고 있다. 권18은 서(序), 기(記), 지발(識跋), 설(說)이다.
▶호곡집(壺谷集) | 남용익(南龍翼, 1628~1692)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의 문집이다. 저자가 1680년에 한 번 정리해 두었던 ≪호곡만필(壺谷漫筆)≫을 1689년 기사환국으로 삭탈관작된 뒤 명천(明川)으로 유배가서 졸하기 전 다시 정리하고 새로 지은 글들을 함께 엮어 자편(自編)한 것을 바탕으로 저자 사후에 유문이 간행되었으나 간행의 시기와 장소, 주도한 인물이 누구였는가 하는 것은 본집에 서발 등이 실려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다만 저자의 가장(家狀)을 지은 아들 남정중(南正重)이 간행을 주도하여, 1695년경 장인(丈人)인 경상 감사 이인환(李寅煥)의 도움을 받아 18권 9책의 목판본으로 본집을 간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18권 9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목록은 없다. 권1~10은 시이다. 곳곳에 저자의 자주(自註)가 실려서 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권13~권14 앞부분은 과제록(課製錄), 응제록(應製錄), 여문(儷文)이다. 이 가운데 <원자정호후반교문(元子定號後頒敎文)>은 1689년에 원자(경종)의 조기 정호(定號)를 반대하다가 왕명으로 정해지자 대제학으로서 지어 올린 것이다. 권18 뒷부분은 잡저(雜著) 4편이다.
▶호곡집(壺谷集) | 유범휴(柳範休, 1744~182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호곡(壺谷) 유범휴(柳範休, 1744~182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차남 정문(鼎文)이 가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졸한 데다 서발(序跋) 등이 없어 간행 주체나 경위를 알 수 없지만, 부록의 연보 말미 기사에 “상삼십칠년경자간행문집(上三十七年庚子刊行文集)”이라고 하여 경자년인 1900년에 간행되었음을 명기하였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7은 시(詩), 서(書)이다. 권1은 스승 이상정(李象靖), 김강한(金江漢)에게 보낸 21편으로, 이상정에게는 문하에 입문한 소감을 적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1772년에 보낸 것을 비롯하여 1776년에 저자를 격려하여 써 준 16자에 대한 의미를 정리하면서 평생의 지결(旨訣)로 삼겠노라 다짐한 것이 있는데, 16자 지결의 전수는 수곡파 문인들이 학봉계열의 퇴계학맥을 발전시켜 나가는 진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권9는 잡저(雜著)이다. <노심설(奴心說)>은 마음[心]은 천군(天君)인데 천한 노예[奴]가 천군의 위에 자리 잡아 ‘노(怒)’가 되면 하늘과 땅이 뒤바뀐 형상이 되므로 항상 마음이 주재가 되어야 ‘노(怒)’를 없앨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호봉집(壺峯集) | 이돈(李燉, 1568~162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호봉(壺峯) 이돈(李燉, 1568~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詩文)은 소본(疏本)을 포함하여 유고의 상당 부분이 산일(散逸)되었는데, 8대손 평원(平源)ㆍ규원(奎源)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1913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卷頭)에는 1897년에 신태관(申泰觀)이 지은 서문(序文)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절구(絶句)와 율시(律詩)이고, 권2는 장편시(長篇詩)와 배율(排律) 외에 제문(祭文), 서(序) 및 부록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상량문(上樑文), 만사(挽詞), 산수정차운(山水亭次韻), 제현타주(諸賢唾珠)이다. 작품 중에서 <습수탄(拾穗歎)>은 이삭을 주워 연명하는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지 않는 위정자를 비판한 것이고 제문은 스승 정구(鄭逑)에 대한 것이다. 부록(附錄)의 저자 행장(行狀)은 성만징(成晩徵)이 지었으며, 묘갈명(墓碣銘)은 족후손 이만규(李晩煃)가 저자의 10대손 이운희(李運煕)의 청으로 지었다. 권말에 1913년 이중직(李中稙)이 지은 지(識)와 안택호(安宅鎬)가 지은 발(跋)이 있다.
▶호은집(壺隱集) | 홍수주(洪受疇, 1642~170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호은(壺隱) 홍수주(洪受疇, 1642~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우철(禹哲)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최석정(崔錫鼎)의 산정을 거쳐, 당질 우전(禹傳)과 조카 우채(禹采)의 협조를 받아 1722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최석항(崔錫恒)의 서(序), 권말에는 홍우전(洪禹傳)의 발(跋)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은 야성록(野城錄), 지동록(芝洞錄), 연행록(燕行錄), 수창록(酬唱錄) 등의 시집으로, 지인들의 시에 화답하거나 사행에 오르는 지인들을 위해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권4는 소(疏), 불윤비답(不允批答), 교서(敎書), 전(箋), 치제문(致祭文), 제문, 잡저이다. 특히 잡저 중에서 <가질우익우정처허여문(家姪禹翊禹鼎處許與文)>은 조카 우익(禹翊)ㆍ우정(禹鼎)이 함께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여 ≪의례경전(儀禮經傳)≫과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선물한 일을 기록한 글이다. 권5는 과체시, 과체표, 과책이고 권6은 부록으로 만사와 1705년에 내려진 이대성(李大成)이 지은 치제문, 홍수헌(洪受瀗), 홍우채(洪禹采) 등이 지은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호음잡고(湖陰雜稿) | 정사룡(鄭士龍, 1491~1570)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 1491~157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551년에 저자가 정리하여 자편(自編)한 정고본(定稿本)이 남아 있었는데 이 정고본을 증편(增編)하여 1573년경에 8권 8책의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중간은 1962년에 후손 정승모(鄭升謨)ㆍ정운홍(鄭雲弘) 등이 석인(石印)하여 문집을 8권 4책으로 간행하였다. 후손 정승모ㆍ정진한(鄭鎭漢)ㆍ정국진(鄭國鎭)ㆍ정운홍 등의 발이 첨부되어 있다. 본 문집은 시고(詩稿) 6권ㆍ문고(文稿) 2권ㆍ부록 합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551년에 지은 저자의 자서(自序)가 실려 있다. 시고 6권에는 각체시(各體詩)가 창작 배경에 따른 편명으로 묶어져 있는데, 이 중 <조천록(朝天錄)>과 <신안일록(新安日錄)>은 1537년 중국사신을 영접할 때 지은 작품이고, <용만일록(龍灣日錄)>은 1544~1545년 동지사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지은 작품이다. 부록으로 당고(唐皐)ㆍ공용경(龔用卿) 등 중국사신들이 저자에게 지어 준 시문 7편이 실려 있다.
▶호정집(浩亭集) | 하륜(河崙, 1347~141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말 조선 초 호정(浩亭) 하륜(河崙, 1347~1416)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시문 20권을 자편(自編)하여 보관하였다고 하나 이 수고본은 간행되어 전해지지 못하였다. 이에 후손 하진달(河鎭達)이 여러 전적(典籍)에서 저자의 시문을 찾아 집일(輯佚)ㆍ편차하고, 후인들의 기록을 모아 부록(附錄)으로 엮어 1847년(헌종13) 진주 오방재(梧坊齋)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 후 8년 뒤인 1855년 경충재(景忠齋)에서, 하필규(河必奎)가 초간본과는 별도로 수집ㆍ편차한 것으로 오방재의 초간본이 와류(訛謬)된 부분이 있게 되자 후손 하문도(河文圖)의 교수(校讎)를 거쳐 활자본 2권으로 간행하였다. 1940년에는 후손 하속(河涑)이 증보ㆍ재편하여 석인본(石印本) 2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1은 시(詩), 권2~3은 문(文), 권4~5는 부록(附錄)이다. 권수에는 서문 및 목록, 권미에는 발문이 실려 있다.
▶호주집(湖洲集) | 채유후(蔡裕後, 1599~166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 1599~16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유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1677년경에 저자의 아들 채시구(蔡時龜)가 장성(長城) 부사(府使)로 있을 때에 저자의 수필 시고 1책을 간행하고, 이어서 남은 시문을 간행하려던 중 졸하여 완간하지 못하였으며,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저자의 종손(從孫) 채명윤(蔡明胤)과 채팽윤(蔡彭胤) 등이 채시구(蔡時龜)의 뜻을 이어 시문을 수집하여 증보하고 저자의 내질(內姪) 윤지완(尹趾完)과 수시로 상정(商定)하여 편차를 정하고 윤지완에게 서문을 받았다. 1701년에 홍만조(洪萬朝)가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에 채팽윤(蔡彭胤)이 저자의 문집을 가지고 가서 간행을 부탁하여 홍만조의 허락을 받았으나, 마침 홍만조가 파직되어 간행하지 못하고, 4년이 지난 1705년에 가서 홍만조가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에 다시 채팽윤의 증정(証定)을 거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7권, 습유로 총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1701년 6월에 윤지완이 지은 서문이 있고, 이어서 전체 목록이 있다. 권1~4는 시이다. 권미에는 후손 채팽윤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혼재집(渾齋集) | 안교익(安敎翼, 1824~1896)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혼재(渾齋) 안교익(安敎翼, 1824~1896)의 문집이다. 저자의 유적과 유문은 사후 사자(嗣子) 정호(鼎鎬)와 문인들에 의해 수습 정리되어 임석영(林奭榮)에게 행장을 받고, 전우(田愚)에게 묘갈명을, 송병준(宋炳俊)에게 행장에 대한 발(跋)을 받고, 임석영에게 편차(編次)를 부탁하는 동시에 문집의 서문까지 받았으나 곧바로 간행되지는 못하고, 1909년 전우가 저자의 동문인 한서교(韓序敎)에게 보낸 편지를 권미(卷尾)에 덧붙여 목활자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임석영이 1905년에 지은 서(序), 총목(總目), 권목(卷目)이 있다. 권2~7은 서(書)이다. 그 대상은 사우(師友), 제자, 가족 등 다양한데, 대상의 유형별로 권차를 나누었다. 권8~9는 잡저(雜著)이다. 권미에 전우의 글인 <여한서교(與韓序敎)>가 있는데, 이는 저자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아니고, 전우가 한서교에게 편지로 만백(晩柏) 홍리우(洪理禹)와 혼재(渾齋)는 조병덕의 고제(高弟)이면서 ≪숙재집(肅齋集)≫ 간행을 박인화(朴寅和)가 제멋대로 산삭하도록 함으로써 스승에게 누를 끼쳤다고 간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이다.
▶홍도유고(弘道遺稿) | 이서(李漵, 1662~1723)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옥동(玉洞) 이서(李溆, 1662~1723)의 문집이다. 본집은 전사경위가 분명하지 않은 사본이다. 본집은 12권 1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권수에 이익(李瀷)이 1754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4는 시(詩), 부(賦), 조(操), 명(銘), 찬(贊)이다. 시는 성리학적 사유를 주제로 지은 도학시가 대부분으로 오언절구 연작과 장편고시가 많은 편이며, 윤태일(尹兌一), 등에 대한 장편의 만시가 있다. 권5는 동유록(李觀徵), 서(序), 기(記), 논(論), 제문, 잡저이다. 동유록은 1700년 8월 17일에 금강산 유람을 떠나 10월 12일 본가에 돌아올 때까지의 일기체 기행시문이다. 권6~11상은 잡저로, 경학적 사유 체계를 서술한 것이 대부분이며, 경전의 문구 해설, 문학, 역사,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수시로 차록한 것이 실려 있다. 권11하는 행장과 묘갈명이고 권12는 서찰과 필결(筆訣)이다. 특히 필결은 ≪주역≫의 구조를 도입하여 태극과 음양오행론을 서론(書論)에 접목시키고, 유가의 심법(心法)을 익혀 ‘중화(中和)’와 ‘중정(中正)’을 구현하는 것을 서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삼은 독자적인 이론서이자 비평서이다.
▶홍애유고(洪崖遺槀) | 홍간(洪侃, ?~130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 말 홍애(洪崖) 홍간(洪侃, ?~1304)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시명(詩名)을 떨쳤으나, 유문을 수습하여 편찬ㆍ간행에는 이르지 못하여 대부분의 시(詩)가 소실되고 일부만이 세상에 유전(流轉)되어 ≪동문선(東文選)≫ㆍ≪대동시림(大東詩林)≫ㆍ≪청구풍아(靑丘風雅)≫ 등 여러 문헌에 흩어져 전하였다. 1608년 10세손 홍방이 옥당(玉堂)에 있을 때 ≪동문선≫ㆍ≪청구풍아≫ㆍ≪대동시림≫ 및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 등에서 고시(古詩)ㆍ배율(排律)ㆍ근체절구(近體絶句) 40여 수를 채록(採錄)하고, 여기에 목록(目錄)ㆍ세계(世系)ㆍ부록(附錄) 등을 덧붙여 1629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12세손 홍만조(洪萬朝)가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전에 당형(堂兄) 홍만종(洪萬鍾)이 이곳의 부사로 있을 때 중간하려고 베껴두었던 책자(冊子)를 가지고 1688년 중간하였다. 본 문집은 목록(目錄)ㆍ세계(世系)ㆍ본집(本集)ㆍ부록(附錄)의 불분권(不分卷) 1책(冊)으로 되어 있으며, 권미에는 발(跋)이 실려 있다.
▶홍재전서(弘齋全書) | 정조(正祖, 1752~1800) | 권책수 : 100책 | 포갑수 : 20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제22대 왕 정조(正祖, 1752~1800)의 문집이다. 이름은 이산(李祘)이다. 저자는 평소 자신의 문집 편차를 위해 규장각, 이문원, 대내에 각각 책장을 비치해 두고, 어제가 있을 때마다 각신에게 내려 주어 편집하고 정서하게 하였으며, 규장각에선 10년을 단위로 1질로 묶어서 편찬하였다. 두 번째 편집은 1798년 저자가 서호수(徐浩修)에게 문집의 편집을 지시하고 공동으로 선사 작업을 감독하게 하였으나, 다음 해 편집을 주관하던 서호수가 사망하자 중단되었다가 다시 서영보(徐榮輔)에게 속편과 교사 작업을 맡기고 정대용 등에게 교정을 분담시켜 완성한 것이다. 세 번째로 문집을 편집한 것은 서거한 다음해인 1801년 12월이었다. 이때 184권 100책으로 권차가 정해지고, 서명도 ≪홍재전서(弘齋全書)≫로 확정되었다. 순조는 이 3차 편집본을 토대로 수정하여 1814년 3월에 정리자로 30질을 인쇄하게 하여 규장각, 수원의 화령전(華寧殿), 사고(史庫) 5곳, 내각, 홍문관 등 주요기관에만 각각 1질씩 보관하게 하였다. 이 책의 권말(卷末)에는 교정 및 감인에 참여한 각신들의 명단인 <교정감인제신(校正監印諸臣)>이 있다.
▶화계집(花溪集) | 유의건(柳宜健, 1687~176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계(花溪) 유의건(柳宜健, 1687~1760)의 문집이다. 본집은 이종상(李鍾祥)이 문인들이 수집ㆍ편차한 고본(稿本)과 외손 남경희(南景羲)가 정선ㆍ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1867년 교감ㆍ재편한 후, 현손 기택(基澤)과 사손 상엽(祥燁)이 최세학(崔世鶴)의 교정을 받아 1883년 활자(活字)로 인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11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홍양호(洪良浩)의 서(序)와 총록(總錄)이 있다. 권1~6은 시(詩)로, 대부분 향촌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을 꾸밈없이 묘사한 것이 많다. 예컨대 <결초위방석희음이절(結草爲方席戲吟二絶)>은 풀을 엮어 방석을 짜고 지은 시 등이 있다. 권7은 시(詩), 잠(箴), 명(銘), 찬(贊), 행장(行狀), 상량문(上樑文)이다. 권8은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 등에게 보낸 서(書)이다. 권9는 서(序), 서(敍), 기(記)이고 권10은 발(跋), 전(傳), 논(論)이다. 권11은 논(論), 잡저, 잡설, 부록이다. 권말에 남용만(南龍萬)이 지은 시집후소서(詩集後小敍), 이종상(李鍾祥)이 지은 후지(後識), 최세학이 지은 소지(小識)가 있다.
▶화곡집(禾谷集) | 정사호(鄭賜湖, 1553~161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화곡(禾谷) 정사호(鄭賜湖, 1553~1616)의 문집이다. 본집은 10대손 정화용(鄭和用)과 정화영(鄭和永)이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고, 저자의 큰아들 현원(玄源)의 ≪초동당유고(苕蘔堂遺稿)≫와 작은 아들 성원(星源)의 ≪자연정유고(自然亭遺稿)≫를 부집(附集)하여 1899년 청주(淸州) 화곡촌(禾谷村)의 자연정(自然亭)에서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수에 1898년에 송근수(宋近洙)가 지은 서(序)와 목록, 연보가 있다. 권1은 오언 절구, 오언 율시, 칠언 절구, 칠언 율시, 부(賦), 소(疏), 차(箚), 계(啓)이다. 그중에서<계사십조(啓事十條)>는 직무를 소홀히 한 관원의 처벌 등 국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제언(提言)이다. 권2는 서(書)와 제문(祭文)이고 권3은 교서(敎書) 3편과 이춘영(李春英)이 지은 <유연당기(悠然堂記)>, 이호민(李好閔)이 지은 <동경계의서(同庚契議序)>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行狀)과 신도비명 등이고 권미에는 정화영(鄭和永)ㆍ정화옥(鄭和玉)이 지은 발(跋)과 정화용(鄭和用)ㆍ정장환(鄭章煥)이 지은 지(識)가 있다.
▶화곡집(華谷集) | 황택후(黃宅厚, 1687~1737)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곡(華谷) 황택후(黃宅厚, 1687~17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 유고를 수집, 정리하고 연보 등 부록을 지은 자는 차자인 황덕순(黃德諄)이다. 시사 활동과 산수유람 때 지은 시 등 천여 편이나 되었으나 대부분 산일되고, 남은 것은 관서수창록(關西酬唱錄), 심주록(沁州錄), 경중에 있을 때 지은 시와 <소대풍요록(昭代風謠錄)>에 실린 것뿐이었다. 황덕순은 여기에다 다른 문인과 수창한 시를 수집하고 행장과 <초상의절록(初喪儀節錄)> 등 유고 중의 시문 약간 편을 첨가하여 시 161수, 문 6편 총 167편을 4권 1책으로 편차하였다. 또 황덕순은 모친 밀양 박씨가 언문으로 기록해 둔 집록을 바탕으로 연보와 행장을 지어 부록으로 싣고 구상(具庠), 오태현(吳泰賢) 등에게 서발을 받아 1794년 운각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4권과 부록 합 1책으로 권1~3은 시집이고, 권4는 문집이다. 매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수에는 1794년 구상, 이득신(李得臣) 등의 서(序)가 있고 권말에는 이영로(李永老)가 지은 발이 있다. 권1~3은 시이다. 부록으로는 아들 황덕순(黃德諄)이 1794년경에 지은 연보와 가장이 있다.
▶화담집(花潭集) | 서경덕(徐敬德, 1489~154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시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 박민헌(朴民獻)ㆍ허엽(許曄)이 수집ㆍ편차하여 명종ㆍ선조 연간에 10행 20자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이 본은 서ㆍ발이 없고 문과 시를 상ㆍ하권으로 묶은 2권 1책이다. 1601년에 윤효선(尹孝先)이 임진왜란 때 구본(舊本)이 거의 유실된 것을 보고 아들 서응기(徐應麒)에게서 1책을 얻어 민유청(閔惟淸)에게 전사(傳寫)를 부탁하고 자신의 선사발(繕寫跋)을 붙여 보관해 둔 것을, 1605년에는 홍방(洪霶)이 사우간(士友間)에서 유고를 얻어 문집을 간행하였다. 삼간은 중간본을 저본으로 간행한 것이고, 오간은 1786년에는 조유선(趙有善)ㆍ마지광(馬之光)이 개성에서 4권 2책의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2권ㆍ부록 2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원인손(元仁孫)과 윤숙(尹塾)이 지은 서, 목록이 실려 있다. 본집 권1에는 부 1편과 시 100여 수가 실려 있으며, 권2는 문으로 소ㆍ서ㆍ잡저ㆍ서ㆍ명이 실려 있다. 부록에는 문인록이 실려 있는데, 민순(閔純)ㆍ박순(朴淳)ㆍ허엽 등 24인의 문인들이 약술되어 있다.
▶화당집(化堂集) | 신민일(申敏一, 1576~165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당(化堂) 신민일(申敏一, 1576~165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여러 자손의 집에 산재하였는데 그마저도 여러 차례 화란을 겪어 약간 편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에 아들 신양과 손자 신명규(申命圭)가 유문을 수집하여 상중하 3책으로 편차,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었지만, 1688년에 신명규가 세상을 떠나고, 서문과 묘지문을 써 주기로 하였던 박세채(朴世采)도 1695년에 세상을 떠나고, 신양(申懹) 마저 1706년에 졸하여 간행을 하지 못하였다. 그 후 1719년에 현손 신사철(申思喆)이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자 증손 신임(申銋)이 위의 정고본을 그에게 보내어 간행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해인 1720년 4월에 5권 3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서와 목록은 없다. 권1~2는 사부(辭賦), 시, 명(銘), 잠(箴), 상량문, 제문이다. 사부에는 <알경현묘사(謁景賢廟辭)>가 있다. 권3~4는 서(序), 기(記), 논(論), 설(說), 발(跋), 잡저(雜著), 서(書), 돈유초(敦諭草), 소차(疏箚), 계사(啓辭), 묘지명(墓誌銘), 보유(補遺)로 구성되어 있다.
▶화산집(華山集) | 정규한(鄭奎漢, 1751~182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산(華山) 정규한(鄭奎漢, 1751~1824)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아들 수린(秀麟)이 유고(遺稿)를 수집 편차하여 정재풍(鄭在豐)의 발문(跋文)과 황옥(黃鈺)의 행장(行狀), 송치규(宋穉圭)의 묘표(墓表), 송흠대(宋欽大)의 서문(序文)을 받아 1830년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서는 원집(原集) 6권, 부록(附錄) 합 3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卷頭)에 송흠대가 1830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총목차(總目次)가 실려 있다. 권1은 사(詞), 부(賦), 시(詩)로, 저자가 문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만큼 다양한 문체의 운문(韻文)이 실려 있다. 칠언고시(七言古詩) 중 <여객부유적벽하(與客復遊赤壁下)>는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를 모방해 지은 작품으로 1795년 삼상(三上)으로 뽑혔던 응제시(應製詩)이다. 권2~4는 서(書)와 소(疏)이다. 권4의 <답박회중용학의의(答朴晦中庸學疑義)>는 박종열과 ≪중용장구≫, ≪대학장구≫의 각 장별 의문점을 상세히 논한 장문의 편지인데, 정재풍에게 보낸 <용학의의(庸學疑義)>와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말미(末尾)에 1825년 정재풍이 쓴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화서집(華西集) | 이항로(李恒老, 1792~1868)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문집이다. 본집은 1899년에 간행되었다. 유중교(柳重敎)의 연보에, 1869년 차남 이복(李墣)과 문인 김평묵이 함께 유집을 교정하고, 1870년 5월에 유실을 만들어 유묵과 유의 등과 함께 보관했다고 했으며, 또 문인 김평묵의 ≪중암집(重菴集)≫ 연보에도 1870년에 이복, 김평묵, 유중교가 정본 16권, 부록 6권 합 22권의 문집을 만들어 유실에 보관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1870년에 정고본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가지고 1899년 문인 이근원(李根元), 유중악(柳重岳) 등이 충주(忠州) 병산(屛山)에 있는 홍승의(洪承義) 서재에서 목활자를 써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32권, 부록 9권 합 2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 있다. 권3은 소(疏), 차(箚)이다. 권4~13은 서(書)이다. 권5의 <답이휴범(答李休範)>은 이기부(李箕溥)에게 이(理)와 기(氣)의 관계에 대해 논한 것이다. 부록은 권1~9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이 있다. 권8은 김평묵이 지은 행장이고, 권9는 김평묵이 지은 연보와 김평묵, 유중교가 지은 화상찬이 실려 있다.
▶화암집(和菴集) | 신성하(申聖夏, 1665~1736)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암(和菴) 신성하(申聖夏, 1665~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자 경(暻)이 가장초고 중에서 시(詩)만을 선정ㆍ편차하여 1748년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의 시집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고 자주와 편자주가 있으며,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작품에는 <추야(秋夜)>, <부벽루차최호운(浮碧樓次崔顥韻)> 등 10대 초반에 부친의 북방지역 임지에서 지은 것을 비롯하여 고조부 신경진(申景禛)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비하던 일과 유덕을 기린 것으로 악부시의 특징을 살려 지은 <동문행(東門行)>, 고려가 망하자 평산 황의산(黃衣山)에 은거한 선조 신안고(申晏高)의 절의를 기려 지은 <배록동(排祿洞)>, 여러 차례 개성 지역을 유람하고 지은 <고무담(鈷鉧潭)>, 예천 군수 시절에 단양팔경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구담(龜潭)>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구일감회(九日感懷)>는 술잔 기울일 벗들은 가고 없어 중양절에 홀로 시를 지으며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다. 부록에는 묘갈명, 애사, 장일감음(葬日感吟)과 추만이 실려 있고 권말에 차남 경이 1748년에 지은 발이 있다.
▶화은집(和隱集) | 이시항(李時恒, 1672~1736)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민대 성곡도서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화은(和隱) 이시항(李時恒, 1672~1736)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인 숙인 김씨(淑人金氏)가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선정ㆍ편차하여 1738년 평양에서 저자의 김장군유사(金將軍遺事)와 함께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의 제1~6권에, 초간본을 등사한 괘인사본의 제7~8권을 합부한 것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덕수(李德壽)가 1738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이 있다. 권1은 사부, 시(詩)이다. 사부의<서경부(西京賦)>는 <삼도부(三都賦)>의 소략한 부분을 보충하여 평양의 국조사(國朝事), 인물 등을 아우르고 ‘서경(西京)’과 ‘동도(東都)’를 주객으로 의인하여 대화체로 노래한 장편 대작이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3은 시(詩)이고, 권4는 소(疏), 여문(儷文)이다. 여문 중에서 상량문은 1712년 관찰사 이제(李濟)가 대동문 남쪽에 세운 초연대(超然臺)와 저자가 화포에 세운 보만당(保晩堂)에 대한 것이다. 권5는 서(序), 기(記), 제발, 설(說), 잡록이고 권6은 서(書), 제문이다. 권7은 부친 정한(廷翰) 등에 대한 행장이고 권8은 비갈표와 부록이다.
▶화재집(華齋集) | 황익재(黃翼再, 1682~174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백화재(白華齋) 황익재(黃翼再, 1682~1747)의 문집이다. 본집은 증손 황태희(黃泰煕)가 1785년 안정복(安鼎福)에게서 행장을 받아 놓은 뒤 집안에 보관 중이던 시문을 수집 편차하고, 이후 19세기에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정종로(鄭宗魯)의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무주(茂朱)에 우거 중이던 1715년 9월 구천동(九千洞), 용추(龍湫) 등지를 유람할 때 지은 시, 유배 중에 지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疏), 계(啓), 장(狀)이다. 장(狀)은 순천 부사 재직 시 지은 것들로 궁가(宮家)와 아문(衙門) 절수처(折受處) 등의 폐단과 그 대책에 대해 논한 글이다. 권3~4의 앞부분은 서(書)이고 권4의 뒷부분은 제문, 묘지갈이다. 권5~6의 앞부분은 소환록(素患錄)으로 세 편의 일기로, <무신일기(戊申日記)>, <경술일기(庚戌日記)>, <편관일기(編管日記)>이다. 권6의 뒷부분은 잡저이다. 권7은 부록으로 연보, 행장, 광지, 묘갈명, 봉안문 등이 실려 있다.
▶화천집(華泉集) | 이채(李采, 1745~1820) | 권책수 : 8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화천(華泉) 이채(李采, 1745~1820)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아들 광문(光文)이 가장을 짓고 오희상(吳煕常)에게 묘갈명을 받고, 손자 희(土+喜)가 교정을 완료하였으며, 1886년 희의 아들 호익(鎬翼)이 충주 목사 재임 중에 경비를 마련하여 문집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16권 8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총목이 수록되어 있고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7은 서(書)이다. 1797년에 쓴 <답화양원유(答華陽院儒)>는 화양서원의 정비(庭碑) 문자를 조부 이재가 지었는데 화양서원의 유생들이 개작된 것으로 의심하자 저자는 집안에 따로 가장하는 것도 없으며, 당시 김원행(金元行) 등 제장(諸丈)이 초(草)한 것과 동일하다고 하였다. 권9는 서(序), 기(記), 전(傳), 제발(題跋), 명(銘)이다. 그중 <삼열묘중건기(三烈廟重建記)>는 선산에 삼열묘(三烈廟)를 새로 짓게 된 경위를 기록한 것이다. 전은 영암(靈巖)의 승려 지원(靈巖)에 관한 것인데, 불도였지만 군신 간의 의(義)를 지킨 지원의 행적을 드러내어 당대의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권미에 손자 희가 1886년 문집 간행 시에 쓴 발(跋)이 있다.
▶화포유고(花浦遺稿) | 홍익한(洪翼漢, 1586~163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 1586~1637)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외손 심정기(沈廷耆)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689년경 임상원(任相元)의 산정을 거친 고본(稿本)을, 저자의 손자 지례 현감(知禮縣監) 우석(禹錫)이 1709년 지례(知禮)에서 목판(木板)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目錄)이 있다. 권수에는 1689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쓴 서(序), 권미에는 1709년에 김진규(金鎭圭)가 쓴 발(跋)이 있다. 권1은 시(詩)로, 조천 시에 여조겸(呂祖謙)의 동래서원(東萊書院)을 참배하고 지은 것 등과 김한(金汗)의 참호(僭號)에 격분하여 지은 <문노로참호(聞奴虜僭號)>, 심양에 구금되어 비참한 심경을 읊은 절명시(絶命詩) 등이 있다. 권2는 과체(科體)로 지은 표(表)와 부(賦)이다. 권3~4는 문(文)으로 금한(金汗)을 배척하고 사신을 참수하여 대의(大義)를 밝힐 것을 진달한 <척화소(斥和疏)> 등이 있다. 권5는 부록(附錄)으로 묘갈명(墓碣銘), 묘표음기(墓表陰記), 전(傳), 계사(啓辭), 회계(回啓), 제문(祭文) 등이다.
▶환재집(瓛齋集) | 박규수(朴珪壽, 1807~1876)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 1807~1876)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우 박선수(朴瑄壽)에 의해 수집 교정된 다음 이후 문인 김윤식(金允植)이 주도하여 유고의 편집ㆍ간행이 이루어졌다. 김윤식의 문집 ≪속음청사(續陰晴史)≫에 간행 과정이 상세히 나타나 있는데, 김윤식은 1911년 9월 28일에 조기원(趙蘷元)을 시켜 본서를 필사하게 하였고, 조기원의 필사가 마음에 들지 않자 10월 3일에 황병욱(黃炳郁)으로 바꾸어 필사하게 하여, 11월 30일에 중초본을 완성하였다. 1912년 4월에 총독부의 간행 허가를 받아, 5월 2일부터 보성사(普成社)에서 연활자(鉛活字)로 간행을 시작하였는데, 1913년 7월 4일에 본서 5책을 200부 간행하였다. 본서는 11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11년에 김윤식이 지은 서(序), 아우 박선수(朴瑄壽)가 짓고 김윤식이 손질한 행장초, 총목이 있다. 권4는 잡저와 서(序)이다. <답김덕수논기전존의(答金德叟論箕田存疑)>는 기자가 조선에 와서 실시한 정전(井田)은 성안에만 시행된 것이 아니라 도읍지 전체에 걸쳐 시행된 것임을 논술한 글이다. 권7은 윤음, 발(跋), 자문, 서계이다.
▶활산집(活山集) | 남용만(南龍萬, 1709~1784)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활산(活山) 남용만(南龍萬, 1709~1784)의 문집이다. 본집은 간행경위와 연도가 불분명하다. 다만 문집 내에 있는 저자의 차남 경희가 편집한 <어록(語錄)>의 말미에 손자인 봉양(鳳陽)이 1826년에 쓴 어록지가 있는 점으로 볼 때 1826년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790년 정범조(丁範祖)가 지은 서(序), 1793년 홍양호(洪良浩)가 지은 서, 목록이 있다. 권1~2는 부(賦), 고시, 율시 등이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시는 만시나 차운시를 제외하면 저자 자신이 한거 중에 느낀 정회와 주변 경물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권3은 소(疏), 서(書)이다. 권4는 잡저, 설(說), 논(論)이다. 잡저의 <독맹자편말(讀孟子篇末)>은 하늘이 세상의 필요에 따라 성인을 냈기 때문에 시간상의 간격이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 작품이다. 권5는 서(序), 기(記)이고 권6은 발(跋), 명(銘), 상량문, 축문, 제문, 비명이다. 권7은 묘지명, 묘갈명, 행장이고 부록에는 어록, 행장, 묘갈명, 만사 등이 실려 있으며, 말미에 손자 봉양의 지(識)가 붙어 있다.
▶활수옹유고(活水翁遺稿) | 윤대순(尹大淳, 1779~186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활수옹(活水翁) 윤대순(尹大淳, 1779~186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약간 권이 가장되어 있었으나 간행되지 못하다가 저자의 계자 봉주(鳳柱)가 유고를 수습하고 묘도문자를 받은 뒤 1869년 종인 육(堉)에게 서문을 받고, 1882년 김상현(金尙鉉)의 서문과 김성근(金聲根)의 발문을 받아 목활자로 인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종인 육이 1869년에, 김상현이 1882년에 쓴 서문이 있고, 총목이 실려 있다. 권2는 제문, 묘도문, 잡저이다. 제문은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을 제향하는 경성(鏡城) 정북사(靖北祠)에 김종서(金宗瑞)를 배향하는 과정에서 지은 것이다. 잡저 중에서 <중용의(中庸義)>는 저자가 김원행(金元行)의 문인 김회빈(金晦彬)에게 ≪중용장구≫를 배우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총 20조이다. 권3은 잡저이다. 권4는 공령문(功令文), 부록(附錄)이다. 공령문은 저자가 과시(科試)에서 제출한 글로, 이 중 책에는 삼정(三政)의 폐단을 개혁할 방안 및 육관제도(六官制度)의 변천과 운영 방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실려 있다. 권말에 1882년에 쓴 김성근의 발문이 있다.
▶활재집(活齋集) | 이구(李榘, 1613~1654)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활재(活齋) 이구(李榘, 1613~1654)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사번(師蕃)과 증손 유춘(囿春)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20년대에 이만부(李萬敷)의 찬차를 거친 고본에, 행장과 묘갈명을 부록에 추가하여 1805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7권, 부록 합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수에는 1723년에 권두경이 지은 서(序)와 이만부가 지은 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소(疏)이다. 시에는 철리시(哲理詩), 존명배청(尊明排淸)의 의지를 표명한 작품, 권구(權坵) 등과 교유한 작품 등이 있다. 권2는 서(書), 잡저이고 권3은 잡저이다. 그중에서 <변론이기서(辨論理氣書)>와 <성리설의록(性理說疑錄)>은 이이와 장현광의 학설에 대한 선구적 비판으로 평가된다. 권5~6은 역사상의 인물과 사건에 대하여 성리학적인 명분론에 입각하여 평론한 것을 모아 놓은 간사잉어(看史剩語)이다. 권7은 잠명, 제문 등이고, 부록에는 행장, 묘갈명, 제문, 근암서원봉안문, 만사가 있다. 권말에는 1737년에 이유(李濰)가 지은 발과 채헌징(蔡獻徵)이 지은 발이 있다.
▶황고집(黃臯集) | 신수이(愼守彝, 1688~1768)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彝, 1688~1768)의 문집이다. 본집은 1845년 증손 필우(必祐)와 현손 재정(在正), 재성(在誠)이 홍직필(洪直弼)에게 다시 행장을 받고, 유문을 수집 편차하여 같은 해 홍직필에게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3책이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서 고시, 절구, 율시, 사자시,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가사는 원래 한글이었으나 저자의 아들 의명(義明)이 오언육구(五言六句)의 한시로 번역하였다. 원작은 시조(時調)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3~4는 서(書)로 이재(李縡), 민우수(閔遇洙) 등에게 보낸 것이다. 권5는 서(序), 발(跋), 기(記), 설(說), 상량문, 제문이고 권6은 애사, 고축문, 잡저이다. 그중에서 <감설(感說)>은 눈 내리는 광경을 보고 이치를 설파하는 내용이며, <치재규범(致齋規範)>은 경건한 태도로 치재에 임하지 않는 세태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권7은 묘갈명, 묘표, 행장이고 권8은 부록으로 김종후(金鍾厚)와 홍직필이 지은 행장이 실려 있다. 김종후의 행장은 미완성인데 말미에 그 이유를 밝힌 아우 김종수(金鍾秀)의 기록이 있다.
▶회곡집(晦谷集) | 권춘란(權春蘭, 1539~161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권점래(權漸來)와 권국관(權國觀)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78년 목판(木板)으로 초간한 후, 7대손 권엽(權曄)이 새로 수집한 습유와 부록을 추가ㆍ재편하여 1833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세계도, 부록, 습유 합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김굉(金㙆)이 지은 후서, 저자의 외예 안복준(安復駿)이 1776년에 지은 서(序), 목록이 있다. 권1은 오언시, 칠언시, 소(疏), 서(書), 묘갈, 명(銘), 상량문 등이다. 권2는 권우(權宇), 조목(趙穆) 등의 제문(祭文)과 구봉령에 대한 봉안문과 축문 등이 있으며, 부록으로 세계도와 권태정(權泰精)이 지은 가장,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묘지명이 있고, 김득연(金得硏)이 지은 <여강서원제문(廬江書院祭文)> 등 제문 9편과 정구(鄭逑) 등이 지은 만장(挽章), 서원봉안문(書院奉安文) 등이 있다. 습유(拾遺)에는 저자의 시(詩), 서(書), 제문, 잡저와 부록으로 사우들이 지어 준 시(詩)와 서(書), 행장이 있고, 권미에 7대손 권엽이 1833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회곡집(晦谷集) | 조한영(曺漢英, 1608~1670)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회곡(晦谷) 조한영(曺漢英, 1608~1670)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서 임영(林泳)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694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2권, 부록 합 4책으로 되어 있다. 시가 8권, 문이 4권으로 각 권의 첫머리에 목록이 있고 서문은 없다. 권1은 무협록(巫峽錄)으로 저자가 12세에 그간 지은 시를 모아 편집하여 붙인 이름이다. 권2는 서원록(西園錄)으로, 1634년에서 1637년 사이 벼슬하기 전에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고성 군수로 재직하던 부친을 뵈러 갔다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며 지은 시가 대부분이다. 권3은 연막록(蓮幕錄)이고, 권4는 설교록(雪窖錄), 권5는 춘성록(春城錄), 권6은 여강록(驪江錄), 권7은 애만록(哀挽錄)으로 만시이고, 권8은 습유록(拾遺錄)이다. 권9는 잡저로 과제(科製), 서(序), 묘갈, 축문, 하전, 비답, 교서, 잠(箴), 책제가 실려 있다. 과제는 대부분 정시, 월과 등에 써낸 답안이다. 권10은 제문이고, 권11은 소(疏)이며 권12는 계사이다. 부록은 제문, 만시, 묘지명, 신도비명이고 말미에 임영이 1694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회당집(晦堂集) | 장석영(張錫英, 1851~1926)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독립운동가 추관(秋觀) 장석영(張錫英, 1851~1926)의 문집이다.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허유(許愈), 곽종석(郭鍾錫), 이승희(李承煕), 윤주하(尹胄夏)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은 사후에 아들 우원(右遠)과 문인 손후익(孫厚翼)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전고(全稿)의 삼분의 일을 선정ㆍ교감하여 22권으로 편차하고 1931년 6월에 조선총독부의 출판 허가를 받고 9월에 추가로 허가를 받아 1932년 9월에 칠곡(漆谷) 녹동서당(甪洞書堂)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목록 2권, 원집(原集) 43권 합 22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 권1~2는 시(詩)이다. <방별가(放鼈歌)>는 모친의 묘소에 비석을 세우고 꿈에 어떤 사람이 자라를 주며 어버이께 드리라 하자 처음엔 기뻐하다 어버이가 안 계신다는 생각에 자라를 놓아주며 슬퍼한 것으로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방별고사(放鼈故事)를 본뜬 것이다. 권3~17은 서(書)이다. 1878년 스승 이진상에게 올린 편지를 시작으로 주고받은 사람별로 연대순으로 실려 있고, 성리학에 대해 논한 내용이 많다. 권미에 손후익(孫厚翼)이 지은 발(跋)과 1932년 9월에 칠곡 녹동서당에서 발행하였다는 판권지가 있다.
▶회병집(晦屛集) | 신체인(申體仁, 1731~181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 1731~1812)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목판(木板)으로 판각된 후, 시문(詩文)의 일부(一部)와 부록문자(附錄文字)를 활자(活字)로 보각(補刻)하여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으로 간행경위(刊行經緯)는 분명(分明)하지 않다. 본집(本集)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서문(序文)은 없고 목록(目錄)이 있다. 권6은 잡저(雜著)이다. <천학종지도변(天學宗旨圖辨)>은 안정복(安鼎福), 이헌경(李獻慶), 조술도(趙述道) 3인의 천주교(天主敎) 변척(辨斥) 글을 읽고 그 글에 실려 있던 ‘천학종지도(天學宗旨圖)’가 사욕(私慾)을 내세웠으므로 천주학(天主學)이 이단(異端)임을 증명(證明)하고, 세 사람의 설(說)을 보완(補完)하기 위해 1791년에 쓴 것이고, <중하상부재이면변(中何嘗不在裏面辨)>은 남헌(南軒) 장식(張栻)이 주장한 ‘이발지후중하상부재이면(已發之後中何嘗不在裏面)’설을 펴는 선배들의 행태를 지적하고 주자(朱子)의 정론(正論)을 들어 후학(後學)을 경계한 것이다. 권12는 부록(附錄)이다. 이병원(李秉遠)이 1834년에 지은 행장(行狀)이 실려 있다.
▶회산집(檜山集) | 정환(丁煥, 1497~154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회산(檜山) 정환(丁煥, 1497~1540)의 문집이다. 본집은 방손 우(堣)가, 아우 황(熿)의 ≪유헌집(游軒集)≫에 부편된 저자의 시(詩)와 관계기록(關係記錄)을 바탕으로 외예 이도보(李道普) 집에서 찾은 시와 조천록(朝天錄) 등을 수집ㆍ편차하여 1765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박성원(朴聖源)과 유최기(兪㝡基)가 1764년에 지은 서문,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에는 시와 책(策)이 실려 있다. 시는 대부분 경상도 도사로 재임 중이던 1538년부터 1539년 1월까지 지은 것으로 날짜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는 <조천록(朝天錄)>과 <서행기(西行記)>이다. <조천록>은 1537년 7월 1일 의주성(義州城)을 출발하여 북경에 갔다가 동년 11월 14일 파사보(婆娑堡) 천변(川邊)에서 압록강을 건너 의주성에 돌아올 때까지의 5개월 동안의 사행(使行) 여정을 일기체로 기록한 부경일록(赴京日錄)이다. 권3 부록에는 묘표, 사액문 등이 있고, 권미에는 1765년에 지은 이기경(李基敬)의 발문, 외예손 이도보의 발문, 1765년에 지은 방손 정우의 서발후(書跋後)가 실려 있다.
▶회와시고(晦窩詩稿) | 이인엽(李寅燁, 1656~1710)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회와(晦窩) 이인엽(李寅燁, 1656~1710)의 문집이다. 현재 저술로 남아 있는 것은 본 ≪회와시고(晦窩詩稿)≫와 ≪회와연주(晦窩筵奏)≫인데, 둘 다 필사본으로 서발(序跋)이 없어 편찬 정리한 주체나 시기를 짐작할 수 없다. 본집도 목록(目錄)이 없어서 전체의 규모도 알 수가 없으며, ‘우차(又次)’ ‘우득(又得)’ ‘재첩(再疊)’ ‘삼첩(三疊)’ 등과 같이 제목의 손질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저자의 시를 있는 대로 수집하여 연대순으로 수록해 놓고 교정을 보던 중의 미정고본(未定稿本)으로 보인다. 본집은 불분권 1책 92장의 필사본으로 권말에 일부 낙장이 있는 결본이다. 서발이나 목록, 부록문자 없이 전문이 시로만 구성되어 있는 시고(詩稿)이다. 총 388제의 시가 시체에 관계없이 연도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간간이 시록이 섞여 있다. 1685년작인 <삼막사차존와운(三藐寺次存窩韻)>으로 시작해서 1704년 이덕성(李德成)의 만시로 끝나는데, 중간에 1709년 졸한 송규렴(宋奎濂)의 만시나 1708년 졸한 김창협(金昌協)의 만시도 실려 있는 등 저작 연도가 뒤섞여 있어 아직 배열이 끝나지 않은 교정본으로 보인다.
▶회와집(悔窩集) | 안중관(安重觀, 1683~175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회와(悔窩) 안중관(安重觀, 1683~1752)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종학(鍾學)과 종필(鍾弼) 등이 저자의 자편고를 산정ㆍ재편하여 1904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남정철(南廷哲)이 1902년에 쓴 서문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저자는 당대 이름난 문인들과 교류하여 이병연(李秉淵), 홍세태(洪世泰), 정내교(鄭來僑), 정후교(鄭后僑), 김상리(金相履) 등과 수창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고, 두보(杜甫), 육유(陸游) 등과 당률(唐律)에 차운한 시가 많은 편이다. 권4는 서(序), 제발이다. 권5는 제발, 기(記)이다. 제발은 부친의 ≪죽애집(竹涯集)≫, 남유상(南有常)의 ≪태화자고(太華子稿)≫ 등에 대한 발문이 있고, 왕안석(王安石)의 <백이론(伯夷論)> 등을 읽고 지은 후기가 있다. 권6은 기(記), 논(論)이고 권7은 설(說), 잡저(雜著), 행록(行錄), 행장(行狀)이다. 권8은 찬(贊), 명(銘), 서(書), 상량문, 제문 등이고 권말에는 외예손 이종원(李種元)이 1904년에 지은 발과 6대손 종학이 1902년에 지은 지(識)가 실려 있다.
▶회은집(晦隱集) | 남학명(南鶴鳴, 1654~172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은(晦隱) 남학명(南鶴鳴, 1654~1722)의 문집이다. 본집은 1723년경 운각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으로 현전하는 저자의 문집에는 간행 주체나 시기를 알 수 있는 서발 등의 관련 기록이 없어 간행 경위가 불분명하다. 본집은 5권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이다. 박태유(朴泰維) 등과 교유한 시가 많으며, 자연에 대한 찬미로 맑은 시상을 노래하였다. <기박제사원낙교교거(寄朴弟士元樂郊郊居)>는 박태보에게 정겨운 봄의 느낌을 그리움과 함께 전한 것이며, <광진별서제반석(廣津別墅題磐石)>은 광나루 아차산 별서에서 한정을 노래한 것이다. 권2는 기(記), 서(序), 제발, 제문이고 권3은 서(書), 잡문이다. 편지는 이세귀(李世龜) 등에게 보낸 것이다. 잡문에는 석왕사에서 태조가 불경을 전한 고사를 새로 각석할 때 지은 <석왕사비(釋王寺碑)>, <유훈(遺訓)> 등이 있다. 권4는 행장, 유사, 묘문이고 권5는 잡설로 <예제(禮制)>는 관례, 혼례 등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는 예제에 대해 기술한 것이고, <풍토(風土)>는 전국을 답사한 경험을 실어 지명의 유래와 연혁을 밝힌 것이다.
▶회재집(晦齋集) | 이언적(李彦迪, 1491~155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수집하였고, 1565년경 이황(李滉)이 수교(讎校)한 후 행장을 지어 붙여 정고본(定稿本)이 완성되었다. 이 정고본을 1574년 손자 이준(李浚)이 노수신(盧守愼)의 서와 유희춘(柳希春)과 허엽(許曄)의 발을 붙여 간행하였다. 그 후 옥산서원에서 여러 차례 개간되었는데, 1631년에는 위의 별집을 습유로 개제(改題)하여 기간본(旣刊本) 권4에 별집 1권을 습록(拾錄)하고 새로 권11~13을 편성하여 여기에 별집 2~4권을 각각 수록하여 총 13권 5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본집 13권ㆍ세계도ㆍ연보ㆍ부록 합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는 1574년에 노수신이 지은 서가 있다. 권4에는 <서천록(西遷錄)>으로 1547년 강계에 안치되면서부터 몰년(沒年)에 이르기까지의 시 36제를 실었으며 각 체의 습유시 15제 및 시구의 이작(異作)을 밝힌 고이(考異)가 포함되어 있다. 권5에는 부와 잡저로서 성리학에 관한 글 등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숭정4년 4월 옥산서원 중간(崇禎四年四月玉山書院重刊)’의 간기(刊記)가 있다.
▶회정집(晦亭集) | 민재남(閔在南, 1802~1873)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회정(晦亭) 민재남(閔在南, 1802~1873)의 문집이다. 저자는 죽기 전에 기정진(奇正鎭)의 제안으로 자신의 묘갈명을 짓고 그 서문을 기정진에게 부탁해둔 것을, 종자 치량(致亮)과 주손(胄孫) 준식(準植)이 수집 편차한 다음, 정재규(鄭載圭)에게 행장을 받고 기정진이 1873년에 지어둔 묘갈명서(墓碣銘序)와 저자의 시문을 함께 편집하여 1909년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9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다. 권4~5는 서(書)이다. 기정진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많은데, 그중에는 ≪중용장구≫와 ≪대학장구≫에 대해 질문하고 기정진이 답한 것이 있다. 권7은 논(論), 설(說), 잡저이다. <약설(藥說)>은 똑같은 처방인데도 사람에 따라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이유를 논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병을 다스리는 것과 같음을 설명한 것이다. <연소설(蓮沼說)>은 족인 장혁(章爀)의 지취를 듣고 지은 것으로 주돈이의 <애련설> 이후 주돈이의 풍도를 들은 사람마다 연꽃을 심고 아끼지만, 군자가 되려면 연꽃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밝혔다. 부록으로, 1909년 정재규가 지은 행장과 1873년 기정진이 지은 묘갈명서가 있다.
▶회헌집(悔軒集) | 조관빈(趙觀彬, 1691~1757)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회헌(悔軒) 조관빈(趙觀彬, 1691~1757)의 문집이다. 본집은 조영현(趙榮顯)과 조영경(趙榮慶) 등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생전에 정리해 두었던 시고와 유문을 바탕으로 수습 편차하여 당시 새로 주조된 운각활자로 1762년경에 간행되어 반포되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본집은 20권 10책이다. 서발은 없고, 권수에 총목이 있으며, 권마다 따로 목록이 실려 있다. 20권 중 8권이 시이고 5권이 소차를 위주로 한 공거문(公擧文)으로, 저자의 시에 대한 편향과 관력을 드러내준다 하겠다. 권9~13에는 108편의 소차와 계(啓) 1편, 의(議) 1편이 실려 있다. 권14는 서(書)이다. 민진원(閔鎭遠), 이의현(李宜顯) 등 당대의 노론계 주요 인사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대부분의 편지내용은 정치적인 사안인데, 특히 1730년에 민진원과 이의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1729년 기유처분으로 노론 4대신 중 이건명(李健命)과 조태채(趙泰采)만 신원이 되고 이이명(李頤命)과 김창집(金昌集)은 신원이 되지 않아 당면한 의리는 바로 이 두 대신의 신원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며, 두 사람에게 여기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효산집(曉山集) | 이수형(李壽瀅, 1837~1908)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효산(曉山) 이수형(李壽瀅, 1837~1908)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남은 6책 정도의 유고(遺稿)를, 손자 규호(圭浩)가 문손 훈호(熏浩)에게 가장(家狀)을 받고, 족제 수악(壽岳)에게 유집(遺集)의 교고(校考)와 묘갈명을, 척암(拓菴)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김도화가 1911년에 지은 서(序), 목록(目錄)이 있다. 권1~2는 부(賦), 시(詩)이다. 부는 강계(江界)의 사달재(舍達齋)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이언적(李彦迪)을 조문하며 존모의 뜻을 부친 것이다. <도망(悼亡)> 23수는 1880년 봄에 강계 유배지에서 자신을 돌봐주었던 첩의 죽음을 애도한 시이다. 권5는 기(記), 발(跋), 송(頌), 명(銘), 상량문(上樑文), 축문(祝文), 제문(祭文)이다. 강계에 귀양갔을 때 이언적이 거처하였던 부구재(涪舊齋)를 방문하고, 1876년에 그 옆에 작은 당을 지어 송월당(松月堂)이라 하고 그 의의를 밝힌 <송월당기(松月堂記)>이다. 권8은 부록(附錄)으로 족제 수악이 지은 묘갈명(墓碣銘)과 문손 훈호가 지은 가장(家狀)이 수록되어 있다.
▶후계집(后溪集) | 조유수(趙裕壽, 1663~174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계(后溪) 조유수(趙裕壽, 1663~174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적명(迪命)이 강릉 부사로 재직 중이던 1747년 강릉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1~6은 시(詩)로, 시체에 관계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저자는 무주 부사에서 물러난 후에는 거의 실직에 나가지 않고 동교(東郊)의 신촌(新村)에 우거하면서 송성명(宋成明), 홍중성(洪重聖) 등과 시사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는데 시도 그 시기의 전후로 분량이나 창수자 등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권7은 행장, 묘지명, 묘표, 묘갈, 제문이고 권8은 소(疏), 서(序), 기(記), 상량문, 간독, 잡저, 부(賦)이다. 소는 장례원 판결사를 사직하는 상소이고, 서(序)에는 이의승(李宜繩)의 ≪원옹집(園翁集)≫과 기영회(耆英會) 시첩에 쓴 것이 있다. 잡저에는 흡곡 현령 재직 시 안축(安軸)의 시판(詩板)을 새겨 걸고 지은 후제(後題), 유운서가 양양(襄陽) 지역을 유람하고 지은 현산록(峴山錄)에 대한 제후(題後), 우리 연해에 출몰하는 해적을 발본색원하여 후환을 없앨 것을 주장한 <논해적형세(論海賊形勢)> 등이 있다.
▶후계집(後溪集) | 이이순(李頤淳, 1754~183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계(後溪) 이이순(李頤淳, 1754~1832)의 문집이다. 본집은 생전에 저자가 스스로 교감을 보고서 보관해 두었는데, 저자가 졸한 뒤에 아들 이휘병(李彙炳)과 종질 이휘녕(李彙寧)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ㆍ편차하고 부록 문자를 첨부하여 김양휴(金養休) 등의 교정을 거쳐 1861년경 6권 3책의 활자로 인행하였다. 그 후 아들 이휘병이 초간본을 바탕으로 하고, 종손 이만숙(李晩淑)이 지은 유사를 비롯한 부록 문자와 초간본에서 빠진 내용을 증보하고 편차도 재편하여 10권 6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와 발은 없다. 권1~2는 시(詩)이다. <국조사시(國朝史詩)>는 단군 이래로 고려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읊고, 조선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시대를 내려가며 자세히 언급한 280운의 시이다. 권3은 소(疏), 서(書)이다. 소는 1803년 12월에 인정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구언의 교지를 내린 것에 응해 지었으나 올리지 않은 응지소, 족인을 대신해 지은 사직소, 김부필에게 내린 시호가 이황과 같은 문순(文純)이므로 시호를 바꾸어 달라고 청한 소이다. 권5는 잡저이다.
▶후산집(后山集) | 허유(許愈, 1833~1904) | 권책수 : 10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산(后山) 허유(許愈, 1833~1904)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가 졸한 직후부터 동문사우와 문인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동문후배인 이승희(李承煕)가 저자의 아들 허규(許珪)의 부탁으로 행장을 짓고, 문집의 교정에 착수하여 1906년 10월에 교정을 완료하였고, 3년이 지난 1909년에 이르러 문인들이 19권 10책의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1964년에는 문인 허상규(許祥奎) 등이 8권 2책의 속집을 연활자로 인행하였는데, 원집에서 빠진 시문을 모아 편차하고, 부록으로 송호언(宋鎬彦)이 지은 서술(敍述), 이승희의 행장, 곽종석(郭鍾錫)의 묘갈명, 장석영(張錫英)의 묘지명을 수록하였다. 또한 대표적인 저서인 ≪성학십도부록(聖學十圖附錄)≫ 2권 1책도 동시에 인행하였다. 본집은 19권 10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목록 상ㆍ하권이 있고, 서(序)와 발(跋)은 없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권3~10은 서(書)이다. 편지는 주로 학문을 논한 것이 많다. 권14는 발(跋)이다. 발은 강대수(姜大遂)의 연보, 정식(鄭拭)의 ≪명암집(明菴集)≫, 한대기(韓大器)의 ≪고송일집(孤松逸集)≫등에 대한 발이 있다.
▶후산집(后山集) | 이종수(李宗洙, 1722~1797) | 권책수 : 9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후산(后山) 이종수(李宗洙, 1722~1797)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우강(宇綱)이 유사를 짓고 이우(李㙖)에게 행장을 받아 유적을 정리하였지만 어떤 상태였는지 불분명하다. 더구나 서발문이나 간기 등의 관련 기록이 없어 편찬 간행의 명확한 경위를 알 수 없는데, 필사본으로 전하는 ≪연보≫의 말미에 있는 기사로 보아 1823년 무렵 목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18권 9책이다. 권수에는 목록이 있다. 권2~11의 서(書)는 문집 전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저자의 사승, 교유 관계와 학문적 활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권5의 서(書) 중에서 1761년에 유장원에게 보낸 <여유숙원(與柳叔遠)>에는 ≪주자대전≫과 ≪주자어류≫가 자료에 문제가 있으나 잘 살핀다면 집주나 장구와 표리가 되어 서로 보완이 된다고 주장하고, 수용의 실재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인들의 폐단을 언급하였다. 권10의 서 중에서 <답이계승(答李季昇)>은 독서에만 급급하고 사색에는 소홀한 이우급에게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한 입심(立心)이 필수적임을 강조하였다. 권12~15는 잡저이다. 말미에는 아들 우강의 유사가 첨부되어 있다.
▶후암집(厚庵集) | 권렴(權濂, 1701~1781)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후암(厚庵) 권렴(權濂, 1701~178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이복(以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고, 1812년 7월에 간역을 시작하여 12월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8권 4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3 전반부는 시(詩)가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연작시가 다수 남아 있는데 <암내십사(菴內十事>는 소두(梳頭), 세면(洗面) 등 집안의 일상을 읊은 것이고, <암외십완(菴外十玩)>은 송(松), 죽(竹) 등 애호하는 사물을 묘사하며 수신의 자세를 읊은 것이다. 권3 후반부는 가(歌), 사(詞)이다. 이 중에서 <춘사(春詞)> 2편은 1750년과 1768년에 지은 것으로 안빈낙도와 관물찰리의 의지를 표현했다. 권4는 서(書)로, 인물의 중요성과 저작 연대를 함께 고려하여 편차하였다. 권5는 잡저로, 설(說), 발(跋), 명(銘), 유록, 정문, 고문 등 여러 문체가 섞여 있다. 권6은 서(序), 기(記)이고 권7은 애사, 축문, 제문, 명, 전, 행략, 기사이다. 권8은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유사, 만사(輓詞)가 실려 있고 권말에 아들 이복이 18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후재집(厚齋集) | 김간(金榦, 1646~1732) | 권책수 : 26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연세대학교
조선 시대 후재(厚齋) 김간(金榦, 1646~1732)의 문집이다. 1758년 호남에서 저자의 문집을 간행해 올리도록 하라는 영조의 명이 내리면서 본격적인 편찬 작업에 들어가 원인손(元仁孫)이 1766년 전주 감영에서 목판으로 초간하였다. 본집은 원집 46권, 별집 4권, 연보 2권 합 26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은 맨 앞에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자주(自註)가 자세하고, <차우재송선생철영시운(次尤齋宋先生鐵嶺詩韻)>에만 원운이 부기되어 있다. 권8~16은 문답(問答)이다. 편지 가운데 문답 부분을 경의(經義), 예의(禮疑)로 크게 나누고, 다시 경의에서는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으로 분류하고 예의에서는 통례, 관례, 혼례, 상례등로 분류하여 각기 이에 해당하는 편지들을 나누어 실어 놓았다. 권1 후반~권4는 잡저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孝章世子) 상을 즈음하여 대왕대비[仁元王后]와 왕대비[宣懿王后]의 복제를 정제두(鄭齊斗)의 의견대로 손복과 질복(姪服)으로 입어야 함을 논한 <복제사의(服制私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인물 등에 관해 수필 형식으로 지은 글을 모은 <수록(隨錄)> 등이 있다.
▶후조당집(後彫堂集) | 김부필(金富弼, 1516~157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김준식(金俊植)
조선 시대 후조(後彫)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영(瑩)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에, 1822년에 받은 증시기록(贈諡記錄) 등을 증보하여 재편한 괘인선사본으로 그 서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2권 합 3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원집 권1~2에는 시 178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스승 퇴계 이황과 관련된 시와 사제 김부의(金富儀) 등과 수창한 시, 동문인 황준량(黃俊良), 조목(趙穆) 등과 차운한 시, 매화를 소재로 지은 시 등이 있다. 권3은 서(書), 제문, 잡저로 편지는 이황 등에게 보낸 편지와 혹인의 문목에 답한 편지가 대부분이다. 권4는 독서차록(讀書箚錄)이다. ≪심경≫, ≪주자연보(讀書箚錄)≫ 등을 읽으면서 수시로 기록한 것으로 단어와 문장의 풀이와 고증이 많다. 부록 권1에는 방손 김시찬(金是瓚)이 지은 가장, 한치응(韓致應)이 지은 행장, 김조순(金祖淳)이 지은 시장, 박성(朴惺)이 지은 묘지,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묘갈명이 실려 있고, 권2에는 만사, 제문, 사문증유, 동문증답, 제가척언, 청작시소, 예조회계 등이 실려 있다.
▶후천집(朽淺集) | 황종해(黃宗海, 1579~1642)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후천(朽淺) 황종해(黃宗海, 1579~16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아들 황곡립(黃鵠立)이 수집하고 편차하여 1676년에 강백년(姜栢年)에게 서문을 받았고, 1700년경에는 저자의 손자 황명후(黃命厚)가 권유(權愈)에게 서문을 받았다. 1676년 이전에 이미 수습, 편차된 초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저자의 증손 황응하(黃應河)와 종증손(從曾孫)인 고성 현령 황찬(黃燦)이 1713년에 최석정(崔錫鼎)의 서문을 받아 고성현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8권,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두에 1676년에 강백년이 쓴 서문, 1713년에 최석정이 쓴 서문, 1700년경 권유가 쓴 서문이 차례대로 실려 있고, 이어서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은 시이다. 예시(禮詩)는 사친(事親), 자녀교훈지방(子女敎訓之方), 군신, 부부, 형제, 장유, 붕우 등의 인륜에 대한 내용이다. 권2는 소(疏), 서(書)이다. 권3~5는 답문(答問)로, 예(禮)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 글이다. 권미의 부록에는 허목(許穆)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 실려 있고, 1713년에 고성현에서 간행했다는 간기가 실려 있다.
▶휴옹집(休翁集) | 심광세(沈光世, 1577~1624)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휴옹(休翁) 심광세(沈光世, 1577~162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아들 심억(沈檍) 등에 의해 수집되어 이식(李植)의 산정(刪定)을 거쳐 1636년에 시와 소(疏) 등이 불분권 1책으로 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형태의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소(疏)가 제외된 시고(詩稿)만으로 이루어진 목판 간본(刊本)이 남아있다. 중간은 1859년에 저자의 9세손 심경택(沈敬澤)이 초간본을 대본으로 하지 않고 가장본(家藏本)을 바탕으로 초간본의 시고를 2권으로 분권하고 해동악부(海東樂府)와 산문(散文), 부록을 증보하여 5권 3책으로 재편하여 목판 5권 3책으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5권 3책이다. 권두에 1859년에 9세손 심경택이 쓴 중간서(重刊序)와 1635년에 이경석(李景奭)이 쓴 초간본 서(序), 1636년 이식이 쓴 초간본 발(跋)이 실려 있다. 매권 첫머리에는 각 권의 목록이 실려 있다. 권3은 해동악부이다. 해동악부는 고성(固城) 유배지에서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에서 감계가 될 만한 것 44편을 골라서 가시로 읊은 것을 1617년에 모아 엮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식이 지은 행장과 묘표가 들어 있다.
▶희락당고(希樂堂稿) | 김안로(金安老, 1481~1537)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김일근(金一根)
조선 초기 희락당(希樂堂)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이른바 ‘정유삼흉(丁酉三兇)’의 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간행되지 못하고 저자의 후손가에 비장(秘藏)된 채 세전(世傳)되어 왔다. 근래에 김일근(金一根) 교수가 후손가에서 이 비장된 고본(稿本)을 입수하여 저자의 부친인 김흔(金訢)의 ≪희락당집(顔樂堂集)≫ 필사본과 함께 해제를 붙여서, 1974년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2책으로 합본 영인하였다. 본 문집은 8권 6책으로 되어 있고, 권1~4는 시, 권5~8은 문이다. 시에는 구(句)마다 단어의 전거 혹은 인용된 고사(故事)의 출처를 밝힌 저자의 소주가 붙어 있으며, 각체(各體)의 시가 창작 배경별로 실려 있다. <구금언(九禽言)>은 새소리를 취하여 그 뜻을 부연한 금언체(禽言體)의 시이다. 권8은 잡저로서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이다. 1525년(중종20) 경기도 용천(龍泉)에 유배되어 있을 때 배소(配所)에서의 근심을 풀고 적막함을 달래기 위하여 지은 일종의 필기류(筆記類)로서 대략 40측(則)이다. 이것은 ≪대동야승(大東野乘)≫ 권13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글자의 이동(異同)과 오자가 많다.
▶희암유고(希菴遺稿) | 현덕승(玄德升, 1564~162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희암(希菴) 현덕승(玄德升, 1564~1627)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저자가 졸한 후 문인 서정연(徐挺然)이 수집ㆍ편차한 시고(詩稿)를 바탕으로 1883년 저자의 8대손 영익(永益)이 수집ㆍ재편하고 부록(附錄)을 추가(追加)한 후, 방9대손 익동(翼東)이 1902년에 활자(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이다. 권수에 최익현(崔益鉉)이 1902년에 지은 서(序), 8세손 현영익(玄永益)이 1883년에 지은 서, 그리고 각 책머리에 목록(目錄)이 실려 있다. 권1~권3은 시(詩)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점을 읊은 것들과 차운시, 지인들과 수창한 시와 만시가 있다. 권4는 서(書), 서(序), 발(跋), 묘지(墓誌), 잡저와 부록이다. 특히 부록에는 서정연(徐挺然)의 종손인 서몽량(徐夢良)이 지은 <행장략(行狀略)>, 다른 문집에서 저자에 관한 글을 초록한 보유(補遺), 1564년에 태어난 저자의 벗들이 계를 조직한 내력을 밝힌 이정귀(李廷龜)의 <가정갑자동경계좌목서(嘉靖甲子同庚稧座目序)> 등이 있고, 권말에는 1636년에 장유(張維)가 지은 <서희암선생시고후발삼십운(書希菴先生詩稿後跋三十韻)>이 실려 있다.
▶희암집(希菴集) | 채팽윤(蔡彭胤, 1669~1731)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의 문집이다. 본집은 조카 채응일(蔡膺一)이 사후에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였고, 아들 채제공(蔡濟恭)이 이를 산정 편차하여 1774년 4월에 평안도 관찰사가 되면서 그해 겨울에 간역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1775년 봄에 완성하였는데, 시(詩) 20권과, 문(文) 9권 총 29권 14책의 목판본이었다. 본집은 29권 14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채제공이 1775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목록은 권별로 달려 있다. 권1은 부이다. 1691년 23세 때 호당 응제로 지은 <정후견만물개춘의부(靜後見萬物皆春意賦)>, 조간자(趙簡子)가 결제(駃騠)를 얻었다가 병들게 한 일을 읊은 <병구부(病駒賦)>, 양양 부사 시절에 지은 <태평루차등루부(太平樓次登樓賦)> 등이다. 권2~20은 시이다. 1,880여 제의 많은 시가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이에 따라서 7개의 시록이 사이사이에 함께 편차되어 있다. 시를 지을 때와 후에 정리할 때 붙인 많은 자주가 실려 있다. 권28은 제발, 논(論), 설(說), 잡저이다. 맨 뒤에 족손 채홍리(蔡弘履)가 177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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