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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 > 죽창한화(竹窓閑話)[이덕형,박이서,소북칠학사]

 
죽창한화(竹窓閑話)[이덕형,박이서,소북칠학사]
상품명 : 죽창한화(竹窓閑話)[이덕형,박이서,소북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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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도(朝天圖) 항해조천도(航海朝天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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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文을 찾아서 : 밀양박씨편①
『≪韓琴新譜≫와 마포 水明亭 이야기』관련문헌

*본 도서는 수명정 1대 건립자 泌川(비천) 朴彛叙(박이서)[1561~1621] 관련 기록문헌이다.


▣ 原本 書誌
-도서명 : 竹窓閑話
-편저자 : 竹泉 李德泂[명종 21(1566)∼仁祖 23(1645)] 著
-판사항 : 筆寫本
-형태사항 : 78張; 29.4 x 18.0 cm

*저자 소개
-姓名 : 李德泂(이덕형)
-字 : 遠伯
-號 : 竹泉
-諡 : 忠肅
-本貫 : 韓山
-父 : 李澳[護軍], 母 : 驪興閔氏[閔元宗의 女]
-配 : 高靈申氏[申湛의 女], 延安李氏[李承尹의 女]
-生沒年 : 明宗 21(1566)∼仁祖 23(1645)
-小北 七學士(補外)의 한 분. 泌川(비천) 朴彛叙(박이서) 등과 교유 

*목차

*견본이미지 및 해제

<컬러 영인본>



*원문의 '錫五'는 '錫吾'의 오자. '錫吾(석오)'는 박이서의 字이다. 박이서가 만력황제 진위사로 연경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심양이 청나라에 함락되자 산해관에서 해로로 귀국하던 중 여순 근처 철산취 해상에서 배가 침몰하여 죽게 된 사연과  4년 뒤 자신이 사신이 되어 북경에 갈 때 꿈에서 만나 바다 풍랑이 잠잠해져 무사히 귀국하게 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박이서의 사행록은 진향사로 동행했던 李必榮의 ≪庚申朝天日錄≫(1620~1621)에 상세하다.
이덕형의 사행록은 서장관으로 동행했던 洪翼漢의 ≪花浦朝天航海錄≫(1624~1625)에 상세하며, 사행록을 그림으로 기록한 ≪航海朝天圖≫ 화첩이 전해진다.

*소북 칠학사의 탄생 배경이 되는 일화. 박이서 등 홍문관의 젊은 관료들이 이이첨, 홍여순 등 대북파들의 전횡을 논핵하였다가 오히려 폐출되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의 공적에 대한 논공행상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정진하여 당시 사림들이 이들을 '소북 칠학사'라 칭하였다. 


<흑백 영인본>


조선 인조(仁祖) 때의 이덕형(李德泂)의 수필집이다. 여기에는 여러 명사들에게 얽힌 일화와 그밖의 한국 고사(故事)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 저자의 선조인 목은 이색(李穡)을 비롯하여 그 일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에 관한 설화들도 많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설화나 고사에 그친 것이 아니고, 문장 하나 하나에 담겨진 권선징악적인 필치는 독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저자 이덕형은 자를 원백(遠伯), 호는 죽천(竹泉),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관찰사 이언호(李彦浩)의 증손이요, 이오(李澳)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년)에 진사(進士)가 되고, 159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에 등용되었다가, 봉교(奉敎)ㆍ응교(應敎) 등을 역임했다.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에게 반정 사실을 보고하고 능양군(綾陽君)에게 어보(御寶)를 내리게 했다. 어보(御寶)가 내려지기 전에 능양군에게 불려 갔으나 그는 절을 하지 않았다 하여 유명한 얘기로 전해진다. 1624년(인조 2년)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 나라에 다녀 와서 형조 판서ㆍ판의금부사ㆍ지돈녕부사를 역임,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저서에는 이 ≪죽창한화≫ 외에 ≪송도기이(松都記異)≫ 1권이 있다. ≪죽창한화≫의 죽창(竹窓)은 저자의 호 죽천(竹泉)을 딴 것이요, 한화(閑話)는 한담(閑談)과 마찬가지로서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학적인 분야에서 따진다면 이 글은 설화에 속한다. 이 설화는 구전(口傳)에 의한 민족의 지적(知的)표현, 이 밖에 민요ㆍ이언(俚言)ㆍ속담까지도 포함된다. 이들 전승적 설화는 대략 신화ㆍ전설ㆍ민담(民譚) 등으로 분류된다. 이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유존되어 온 역사를 더듬어 그 변천된 점에 대한 개편, 또는 윤색(潤色)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또 설화는 전승됨에 있어 종으로 전달될 뿐만 아니라, 횡으로도 널리 민족 사이에 전파ㆍ분포된다. 한 민족의 설화는 다른 민족 사이에도 유포되어 거의 그 민족 본래의 설화와 같이 되는 것도 있으며, 또 그것이 분포되는 곳의 환경에 있어서의 변화, 민족성에 의한 동화를 뜻하는 변화도 있다. 이와 같은 설화 전승의 변화와 분포 지역과의 연구는 사회 인류학의 가장 흥미있는 한 분과이며, 전설학에 있어서의 풍토와 분류 두 분과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설화는 은ㆍ주 시대에는 신화나 전설을 주제로 삼은 것은 거의 없고, 겨우 시ㆍ서ㆍ좌전ㆍ국어ㆍ장자ㆍ열자ㆍ한비자ㆍ초사 등에 간간이 보일 뿐이다. 진한(秦漢) 시대에 이르러 민간 신앙의 발생에 따라서 민간의 설화가 문학의 소재가 되었고, 위진ㆍ육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시대의 사조였던 신선사상에다가 불설(佛說) 및 인도의 신화 전설의 요소까지 가미되어서 성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 중국의 설화를 수록한 것으로서는 ≪태평광기(太平廣記)≫ㆍ≪설부(說郛)≫ 등을 들 수가 있다. 이상에서 설화문학에 대한 가치를 대강 알아 보았는데, 이 ≪죽창한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 글 내용이 말해 줄 것이므로 여기에는 사족을 달지 않는다. 끝으로 이 국역의 원본은 조선고서간행회본을 사용했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이민수)

*소북 칠학사(小北七學士)
姓名 生沒 初名 本貫
金藎國(김신국) 1572(宣祖 5) ~ 1657(孝宗 8)   景進 後瘳   淸風人
李必亨(이필형) 1571(宣祖 4) ~ 1607(宣祖 40)   而泰     廣州人
朴彛(박이서) 1561(明宗 16) ~ 1621(光海君 13) 錫吾 泌川,東皐 忠簡 密陽人
宋馹(송일) 1557(明宗 12) ~ 1640(仁祖 17)   德甫 伴鶴翁   礪山人
南以恭(남이공) 1565(明宗 20) ~ 1640(仁祖 18)   子安 雪蓑   宜寧人
朴慶業(박경업) 1568(宣祖 1) ~ 未詳 承業 應休 巖叟,秋灘   高靈人
崔東立(최동립) 1557(明宗 12) ~ 1611(光海君 3)   卓爾 杏園,杏雨   朔寧人
○補外
李必榮(이필영) 1573(宣祖 6) ~ 未詳   而賓 晩晦 忠正 廣州人
李德泂(이덕형) 1566(明宗 21) ~ 1645(仁祖 23)   遠伯 竹泉 忠肅 韓山人
慶暹(경섬) 1562(明宗 17) ~ 1620(光海君 12)   退夫 三休子,石村,七松   淸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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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窓閑話≫①26張
朴參判彛叙字錫吾。忠厚善良。篤於朋友。與余最親。己未冬余以黃海監司遞來。翌日早朝錫吾來見。坐語良久。適盲人池億千又來。
참판 박이서(朴彛叙)의 자(字)는 석오(錫吾)로, 충후(忠厚)하고 선량(善良)하며 친구로 독실히 지냈는데 나와 가장 친하였다. 기미년(광해군 11, 1619)[59세] 겨울에 내가 황해 감사로 있다가 벼슬이 바뀌어 돌아오니, 그 이튿날 석오가 찾아왔다. 그와 한참 동안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마침 맹인 지억천(池億千)이 또 왔다.

錫吾曰此盲善卜。欲見久矣。以小紙書給五條曰令須問之。余略敍寒暄。卽以錫吾五條問之。池肓曰來辛酉年不吉。余又問曰所謂不吉乃尋常厄患耶。池盲曰以卜書推之似是大厄。余甚無聊。錫吾察余色辭。始親問曰此吾命也。辛酉當有死亡之患耶。池盲素老神。旋答曰更思之。辛酉有吉星來救。當有膝下之痛。七十五六歲運盡云云。
석오는 말하기를,
“이 맹인이 점을 잘 친다기에 내가 보고자 한 지가 오래일세.”
하고는, 조그만 종이에 다섯 가지 조목을 써서 주면서 나더러 물어 보라는 것이다. 나는 대강 인사를 끝내고 나서 곧 석오가 써 준 다섯 가지 조목을 물어보니, 지맹인(池盲人)은 말하기를,
“오는 신유년[광해 13(1621)]이 불길합니다.”
했다. 나는 또 묻기를,
“소위 불길하다는 것은 심상한 액환(厄患)인가?”
했더니, 지맹인은,
“점괘로 보면 큰 화액일 듯합니다.”
했다. 나는 듣고 몹시 무료했다. 석오는 나의 얼굴빛을 살펴보더니 비로소 자기가 친히 묻기를,
“이것은 바로 나의 운수요. 그런데 신유년에는 마땅히 죽을 운수란 말이요?”
하니, 지맹인은 본래 노신(老神)한 사람이라, 얼른 대답하기를,
“다시 생각해 보니 신유년에는 吉星이 구해주어서 슬하에 슬픈 일이 있겠고 75ㆍ76세에 명이 다하겠습니다……”

錫吾更不問而起去。余又問之。則曰辛酉必有橫死之厄。似難免矣。
석오는 다시 더 묻지 않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가 간 뒤에 내가 또 물었더니, 그는 말하기를,
“신유년에 반드시 횡사할 액운이 있는데, 아마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錫吾果於庚申秋赴京。以奴胡陷遼路梗。由水路出來。辛酉五月。渰海而沒。池盲之言果驗矣。
석오는 과연 경신년 가을에 중국 서울에 갔는데, 오랑캐가 요동(遼東) 길을 막는 바람에 수로로 나오다가, 신유년 5월에 바다에서 엄사(渰死)하였으니, 지맹인의 말이 과연 맞았다.

後甲子余以奏請使由水路赴京。祭錫吾於海邊。
그 뒤 갑자년[인조 2(1624)], 내가 주청사(奏請使)로서 수로(水路)로 중국 서울을 가다가 바닷가에서 석오를 제사지냈다.

乙丑四月竣事回到登州。登船之夜夢錫吾以壺酒來餞。慇懃敍話宛如平日。覺來不勝感愴。舟行六日少無風波之險。來泊我國地方。豈非錫吾之靈默佑而然也。平生相厚之義無間幽明。嗚呼悲哉。
을축년에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 등주(登州)에 이르러 배를 탔는데, 그날밤 꿈에 석오가 술병을 가지고 와서 나를 전송하면서, 은근히 정회를 말하는 것이 완전히 평시와 같았다. 꿈에서 깨고 나니 서글픔을 이기지 못했다. 배를 타고 6일 동안이나 오는데, 조금도 풍파가 없이 편하게 우리 나라 땅에 닿았으니, 어찌 이것이 석오의 영혼이 도와주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평생에 서로 좋게 지내던 의리가 이승과 저승의 간격이 없었으니, 아! 슬픈 일이다.

錫吾弱冠登第。官至吏曹參判。方有重望。人皆以公輔期之。至於渰死。不幸之尤甚。而以錫吾之賢。而乃至於此。豈非命也。嗚呼悲哉。其胤𥶇今爲參判。良可慰也。
석오는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이조 참판에 이르고 바야흐로 중한 인망(人望)이 있어 남들이 모두 공보(公輔)의 자격으로 기약했는데, 엄사에 이르렀으니, 이보다 불행한 일이 있겠는가. 석오의 어진 인품으로도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 아! 슬픈 일이다. 그 아들 박로(朴𥶇)가 지금 참판이 되었으니 진실로 위로가 된다.


≪竹窓閑話≫②35張
*이 글은 소북 칠학사(小北七學士) 의 내력을 설명하는 글이다.

萬曆己亥。大司憲洪汝諄因緣宮腋。氣勢張甚。恣行彈駁。頗有傾危士林之漸。朝廷患之。三司因公論劾之。論劾累月始 允削黜矣。汝諄陰嗾不逞之徒。假托草野公論。連日投疏。
만력(萬曆) 기해년(1599, 선조 32)[39세]에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이 궁중과 인연이 있어 기세를 몹시 부리고 맘대로 탄핵과 공박을 하여 자못 사림을 기울어뜨리고 위태롭게 할 조짐이 보이므로, 조정에서는 이를 근심하다가 삼사(三司)가 공론을 인하여 그를 탄핵했다. 탄핵을 논의한 지 여러 달 만에 비로소 윤허를 얻어 그를 삭직하여 내쫓았다. 홍여순은 은밀히 옳지 못한 무리들을 사주하여 초야(草野)의 공론이라고 가탁해서 날마다 소를 올렸다.

上心已疑其分朋相軋。讒間隨之。汝諄蒙敍還朝。黨援益熾。反攻前日彈劾之人。斥逐殆盡。
상의 마음이 이미 붕당(朋黨)을 나누어 서로 알력하고 참소와 이간이 따르는 것을 의심하던 터이라서, 홍여순이 용서를 받고 조정에 돌아왔다. 그는 당(黨)의 응원이 더욱 세력을 얻게 되자 도리어 전일에 탄핵한 사람을 공박하여 모두 배척하고 쫓아 버렸다.

執義金藎國。司諫宋馹。掌令崔東立。持平朴慶業。校理朴彛叙。吏曹正郞李必亨。吏曹佐郞南以恭。竝削黜。獨校理柳希奮以戚里得免。
이리하여 집의 김신국(金藎國)ㆍ사간 송일(宋馹)ㆍ장령 최동립(崔東立)ㆍ지평 박경업(朴慶業)ㆍ교리 박이서(朴彛叙)ㆍ이조 정랑 이필형(李必亨)ㆍ이조 좌랑 남이공(南以恭) 등이 모두 사직되어 내쫓겼는데, 그 중 유독 교리 유희분(柳希奮)만이 척리(戚里)이므로 면할 수 있었다.

慶暹以掌令。余以校理。李必榮以修撰。皆除拜未久。旣罷還敍。幷補外。慶得靈光。余除礪山。李爲豐基。
경섬(慶暹)은 장령(掌令)으로, 나는 교리로, 이필영(李必榮)은 수찬으로 모두 벼슬을 제수받은 지 오래지 않아서 파직되었다가 도로 서용되어 모두 외직으로 나갔다. 이때 경섬은 영광(靈光)으로, 나는 여산(礪山)으로, 이필영은 풍기(豐基)로 나갔다.

後數年時論稍定。余三人得通淸路。金藎國等。九年後戊申始敍。是歲汝諄謫死海島中。
그 뒤 몇 해를 지나 시론(時論)이 차차 정해지자, 우리 세 사람은 무두 통청(通淸)의 길을 얻고, 김신국 등은 9년 후 무신년(선조 41, 1608)[48세]에 비로소 서용되었는데, 이해에 홍여순은 귀양가서 섬 안에서 죽었다.

于今四十年怳如隔世事。存者只五人。少年時事想來瞿然。其時有人。以被譴儕輩命運。問於卜者咸忠獻。咸卜曰皆宰相之命。前途極遠。但其中一人壽限不足。十一人中九人皆至宰列。一人爲通政守監司。是亦宰相也。獨李正郞必亨蒙敍遽殞。年三十八。咸盲之言果驗。可謂神卜矣。
그런 지가 지금 40년 인데 마치 저 세상 일과 같아서 살아 남은 자가 겨우 5인 밖에 없으니, 젊은 시절의 일을 생각하면 실로 두렵기만 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견책받은 사람들의 운명을 점장이 함충헌(咸忠獻)에게 물었더니, 함씨 점장이는 말하기를,
“모두 재상이 될 운수이며, 전도는 매우 멉니다. 다만 그 중 한 사람은 수(壽)가 부족하나 11명 중에 9명은 모두 재상의 반열에 오를 것이요, 한 사람은 통정(通政)으로 수감사(守監司)가 될 것이니, 이 역시 재상입니다.”
했다. 그런데 유독 정랑 이필형(李必亨)만이 서용되고 갑자기 죽으니 그때 나이 38세였다. 함씨 맹인의 말이 과연 맞았으니, 신묘한 점괘라 이를 만하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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