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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錄[조선왕조실록] > [01]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

 
[01]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
상품명 : [01]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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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본 기준)

-도서명 : 太祖康獻大王實錄
-편저자 : 春秋館(朝鮮) 編, 河崙(朝鮮) 等奉敎撰 ; 鄭麟趾(朝鮮) 等奉敎增修.
-판사항 : 寫本/活字本
-발행사항 : 世宗30年(1448) 
-형태사항 : 15卷13冊 ; 54×31.8 cm(大小不同)
-일반사항 : 卷 2,5,7,8,10,11,31 (5冊)後寫: 43.2×31.4 cm.
 卷末: 永樂十一年癸巳三月日…河崙奉等敎撰進. 正統十三年戊辰六月日,鄭麟趾等奉敎增修.
 卷頭書名: 太祖康獻大王實錄.
-특기사항 : 國寶 제151호,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



*목차



太祖康獻大王實錄

<1책>
卷一之三 : 總序(제1권 첫머리에 태조의 가계 내력 및 고려말 왕조 개창 이전까지의 
                       略史와 태조의 활동을 수록),
                태조1년(1392년) 7월 17일(즉위) ~ 태조2년 6월 29일

<2책>
卷四之九 : 태조2년 7월 1일 ~ 태조5년 6월 29일

<3책>
卷十之十五 : 태조5년 7월 1일 ~ 태조7년 12월 29일




*해제


<능화표지>









<영인본 견본>


《태조실록(太祖實錄)》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즉위원년(1392)부터 7년(1398)까지 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모두 15권 3책이며, 처음에는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후에 활자로 간행되었다.

1392년 7월에서 1398년 9월까지의 太祖 재위기간 동안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表題는 「太祖康獻大王實錄」으로 되어 있다. <奎12760>本은 1606년(宣祖 39)에 간행된 것으로 訓鍊都監活字本이다. 이 본은 임란중 全州史庫를 제외하고 나머지가 모두 소실되어 이의 보존을 위해 이 시기에 다시  재간된 太白山本이다. 1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奎12719> 本은 조선초기이래 傳存해온 鼎足山本이다. 본서는 1409년(太宗 9) 8월 28일 河崙·柳觀·鄭以吾·卞季良 등에 의하여 편찬이 시작되어 1413년 3월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내용이 복잡하고 중복된 기사가 많아 여러 번 개수되었다. 즉 1438년(世宗 20)卞季良이 撰한 「獻陵(太宗)碑文」에 太祖末年의 鄭道傳亂과 定宗 2년의 朴苞 亂에 대한 誤書로 인하여 定宗·太宗實錄과  함께 개수하여 1442년 9월에  완료하였다.
이 때 改修 담당자는 申계·權堤·安止·南秀文 등이 었다. 이후 1448년(世宗  30) 鄭麟趾가 增修하였고, 1451년(文宗 元)에 廢王 禑를 辛禑로 고치는 간단한 改修가 있은 후에 완성되었다. 




<해제 2>


세계기록유산 朝鮮王祖實錄, 春秋館(朝鮮) 編.


朝鮮朝 太祖에서 哲宗에 이르는 약 470여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편찬·기록한 史書이다.  본서는 일정한 시기에 일괄적으로 동시에 편찬된 것이 아니고 前王이 죽은 뒤 다음 왕이 즉위하면서 實錄廳을 개설하고 前王代의 諸記錄을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다. 책명을 각 왕별로 《太祖實錄》·《世宗實錄》등으로 부르기도 하나 원래는 해당 왕의 廟號·諡號등을 합해 완전한 책명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본서의 史體는 각 왕을 중심으로 매일 매일 日字順으로 기록하는 編年體의 형식을 위하고 있다.  이와같은 實錄의 편찬은 朝鮮王代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역사기록 형식은 일찌기 중국의 梁나라에서 비록되었고 이후 중국의 역대왕조는 대대로 이 선례를 따라 실록을 편찬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高麗時代 부터 實錄을 편찬하여 특별히 설치한 史庫에 간직하였다. 그러나 《高麗王朝實錄》 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본서 편찬의 시초는 太祖가 1408년(太宗 8)에 죽은 뒤 다음해 8월 太宗이 河崙에게 《太祖實錄》의 편찬을 명함으로써 비롯된다.  《定宗實錄》과 《太宗實錄》은 1423년 (世宗 5) 11월부터 편찬이 시작된다. 實錄을 편찬할 때는 春秋館내에 임시로 實錄廳 혹은 纂修廳 (燕山君日記는 修正廳 또는 日記廳)을 설치하고 領議政 또는 左右議政을 摠裁官으로 삼고 大提學과 문필로 이름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都廳 및 各房의 堂上에 임명한다.  各房의 구성은 해당 왕의 재위기간이 길 경우는 6房이나 대체로 3房으로 나누어져 있다. 實錄을 편찬하는 기본자료는 時政記와 史官의 史草이다.  기타 해당 왕의 재위기간 동안 각 관청의 기록인 《各司騰錄》· 《承政院日記》 혹은 각 개인의 일기·疏草·文集·野史도 편찬의 자료로 이용된다. 후기에 내려 오면 《備邊司騰錄》·《日省錄》도 자료로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자료를 수집한 다음 각 房의 堂上과 郎廳은 이들 자료들을 年月日順으로 分類, 編年體 형식의 實錄 初草를 작성하여 都廳에 넘긴다.  都廳에서는 郎廳에서 올린 初草 가운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또한 추가로 보충할 부분은 보충하여 2차 원고인 中草를 작성한다. 이러한 中草를 바탕으로 摠裁官과  都廳堂上이 이들을 校閱하여 문장과 체재를 통일하고, 최종적으로 修正·筆削을 가하여 正草를 만들게 된다. 이 正草本으로 실록을 인쇄하여 史庫에 봉안하고, 實錄의 기본자료로 이용한 諸史草 및 初·中·正草는 모두 洗草한다.  이 洗草는 방대한 종이가 소모되어 그 종이를 다시 이용키 위한 것이다. 朝鮮初期의 太祖·定宗·太宗의 3대 實錄은 처음 각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春秋館, 1부는 고려시대부터 실록을 보관했던 忠州史庫에 간직했다. 그러나 실록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1445년 (世宗 27)에 다시 2부를 등사하여  全州와 星州에 새로운 史庫를 설치하여 1부씩 分藏하였다. 《世宗實錄》이후는 매 편찬시에 활자로 인쇄하여 上記 4史庫에 보관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春秋館·忠州·星州에 실록을 보관했던 각 史庫가 불에 타서 소실되고 全州史庫의 실록만이 남게 되었다.  따라서 정부에서 太祖에서 明宗까지 13代 실록을 內藏山에 옮겼다가 이 후 海州·江華島·妙香山 등지로  옮기면서 보관하였다. 1603년(宣趙 36) 7월부터 1606년 3월까지 13代 실록을 다시 3부씩 출판하여 최종 교정본 및 兵火를 면한 全州史庫의 原本 실록을 합쳐 5부를 만들었다.  또한 史庫를 江華島 摩尼山, 慶北 太白山, 平北 妙香山, 江原道 五臺山에 설치하여 각각 1부씩 보관시켰다.  즉 春秋館·太白山·妙香山에는 宣祖代 출판된 新印本,  摩尼山에는 原本인 全州史庫의 실록,  五臺山에는 校正本을 보관시켰다. 1617년(光海君 9)에 편찬된 宣祖實錄도 이와 같이 하였다. 그런데 1624년(仁祖 2) 李适의 亂으로 서울  春秋館 實錄은 소실되었다.  또한 1633년 後金과의 관계가 악화됨으로 정부에서는 이를 염려하여  妙香山史庫를 赤裳山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摩尼山 實錄은 1636년 丙子胡亂으로 크게 파괴되었으나 顯宗때 완전히 보수하였다. 이 후 摩尼山 史庫는 1678년(肅宗 4) 江華島 鼎足山에 신설한 史庫로 이전되었다.  仁祖 이후의 실록은 4部를 인쇄,  鼎足山·太白山·赤裳山·五臺山 史庫에 간직하고 朝鮮朝 末期까지 완전히 보관하여 왔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합병하면서 鼎足山本 및 太白山本은 奎章閣圖書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되어 宗親府 건물에 보관되었다.  赤裳山本은 昌德宮 藏書閣에 보관되었다.  五臺山本은 동경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으나  1923년 關東大地震때 소실되었고 이 가운데 27책이 서울대 도서관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 총독부에 이관되었던 鼎足産本과 太白山本은 1929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京城帝大 도서관에 이관되어 보관되었다. 赤裳山本은 해방 다음해의 도난사건과 6.25동란의 와중속에 대부분 流實되었다.  
*출처 : 서울대규장각/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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