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書總目(도서총목)
初學(초학) 入門書
經部(경부)
實錄[조선왕조실록]
儀軌(의궤)
古地圖(고지도)
文集類(문집류) : 1,262종
국보급 書畵帖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선정
Leipziger Buchmesse
기타 국제도서전 출품
家文을 찾아서
50%할인 선착순특판
[알림 및 공지사항]
학선재 소식지
출간희망도서 접수
우리책과 문화유산[영상]
 02)453-1040(代)

(평일)오전10시~오후5시


이메일문의
우리은행
1002-833-836076
예금주:박수준
 
 
비밀번호 확인 닫기
Leipziger Buchmesse > LBM2018 전시도서 >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
상품명 :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
판매가격 : 230,000원
총 상품 금액 0
2책(포갑포함). 2018 라이프치히 도서전 전시도서
     
 

* 책   크기 : 정본 A4(20.5 x 29.3cm)
* 비단표지 : 상단의 도서 이미지가 비단표지입니다.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 능화표지 : 전통 匠人이 손수 배접/능화판 작업으로 고급스럽게 제작됩니다.
* 포갑추가 : 포갑은 별도 품목으로 주문시 [포갑추가]를 하면 맞춤제작됩니다.

확대보기
<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본 도서는 조선 시대 궁중의 행사를 기록한 그림을 모아 정리한 모음집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대상으로 하였다.

<책1>
01.瑞蔥臺親臨賜宴圖 明宗十五年(1560年)
02.宣祖朝耆英會圖 宣祖十八年(1585年)
03.陳賀圖 宣祖三十一年(1598年)
04.權大運耆老宴會圖 肅宗十五年(1689年)
05.崇政殿進宴圖 肅宗三十六年(1710年)
06.大射禮圖 英祖十九年(1743年)
07.崇政殿甲子進宴圖 英祖二十年(1744年)
08.內賜寶墨帖 英祖三十六年(1760年)
09.宮中賀筵圖屛風 正祖三年(1779年)
10.文孝世子輔養廳契屛 正祖八年(1784年)
11.己丑進饌圖① 純祖二十九年(1829年)
12.己丑進饌圖② 純祖二十九年(1829年)

<책2>
13.戊申進饌圖① 憲宗十四年(1848年)
14.戊申進饌圖② 憲宗十四年(1848年)
15.王世子誕降陳賀圖① 高宗十一年(1874年)
16.王世子誕降陳賀圖② 高宗十一年(1874年)
17.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① 高宗十六年(1879年)
18.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② 高宗十六年(1879年)
19.丁亥進饌圖 高宗二十四年(1887年)
20.辛丑進饌圖屛風 光武五年(1901年)
21.壬寅進宴圖屛 光武六年(1902年) 4月
22.壬寅進宴圖屛風 光武六年(1902年) 11月
23.宮中行事圖(零本)
24.景賢堂受爵宴圖記
25.社稷壇國王親享圖屛風

▣영인본 견본


▣해제

01.瑞蔥臺親臨賜宴圖 明宗十五年(1560年)
▣原本 書誌
-도서명 : 瑞蔥臺親臨賜宴圖
-이명칭 : 서총대의 궁중잔치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560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24.2 × 122.7cm(그림)
-형태사항 : 1폭
-소장품번호 : 덕수 5135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瑞蔥臺親臨賜宴圖(서총대친림사연도)>는 1560년(명종 15) 9월 창덕궁 뒷뜰에 있는 서총대에 왕이 행차하여 재상들이 참여한 가운데 베푼 작은 연회 장면을 그린 것이다. 명종(明宗)은 이날 서총대에서 문신에게는 어제(御製)를 내려 시를 짓게 하고, 무신에게는 짝을 지어 활쏘기를 시켰다. 그리고 어찬(御饌)을 나누어주고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 말 등을 성적이 좋은 사람들에게 상으로 하사하였다. 중앙에 꽃무늬가 있는 큰 항아리가 있고, 붉은빛 단령을 입은 입시신(入侍臣)들이 각기 하나의 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인물들은 가운데 맨 앞쪽에 서서 악기를 부는 악공(樂工)을 보고 있기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 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는 인물들, 그리고 왕의 자리를 향해 앉은 악공과 기녀(妓女)들의 변화 있는 자세와 움직임이 보인다. 먹과 채색이 바래진 부분이 있으나 연회의 장면을 자세하게 잘 기록하여 보여주고 있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서총대의 궁중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2.宣祖朝耆英會圖 宣祖十八年(1585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宣祖朝耆英會圖
-이명칭 : 선조조기영회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585년>
-재질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40.4 × 59.2cm
-형태사항 : 1帖
-소장처 : 서울대학교박물관
▣解題
1585년(선조18) 10월에 있었던 만70세 이상, 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원로 기신(耆臣) 7인의 기영회 장면이다. 상단의 표제는 잘려나간 상태이며, 원래의 형식은 족자였으나 후대에 첩(帖)으로 개장된 것이다. 그림 좌측에 '만력을유맹추(萬曆乙酉孟秋)'라 적혀있어 1585년 10월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7인의 인사가 각자 상을 받고 앉았는데 악공(樂工)의 연주에 맞춰 2명의 여기(女妓)가 춤추고 있다. 대청 안에 있는 여기는 모두 같은 복식을 하고 있으며 16명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2명은 중앙에서 춤을 추고, 2명은 행사를 도우며, 나머지 12명은 대청 안의 탁자를 중심으로 6명씩 대칭으로 앉아 대기하고 있는 듯 하다.
화첩의 첫째 면에는 이 기영회도가 있고, 둘째 면에는 7명의 참석자의 관직,성명,자호,생년을 적은 좌목이 기록되어 있고,셋째 면에는 참석자들의 자필 찬시가 각자의 이름 아래 한수씩 적혀 있다. 참석자들은 좌의정(左議政) 노수신(盧守愼), 우의정(右議政) 정유길(鄭惟吉) ,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원혼(元混), 팔계군(八溪君) 정종영(鄭宗榮), 우찬성(右贊成) 심수경(沈守慶),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강섬(姜暹),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 임설(任設) 등이다. 각면의 세로 길이가 달라 원래는 족자의 형태로 제작하였으며, 상단의 제목과 그림의 좌우가 다소 잘린 것으로 보인다. 건물내부의 산수병풍 아래에 7명의 참석자들이 음식상을 앞에 두고, 화려한 옷을 입고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움직이는 무희들의 춤을 감상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선조조기영회도' 이미지를 이용하였다.(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www.culturecontent.com)

03.陳賀圖 宣祖三十一年(1598年)
▣原本 書誌
-도서명 : 陳賀圖
-이명칭 : 필자미상진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598년>
-재질 : 지(紙) / 종이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30.3 x 37.9cm(그림)
-형태사항 : 10폭 병풍
-소장품번호 : 덕수 5576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이 수습되자 宣祖가 환궁 후 백관들의 첫 진하를 받는 장면을 그린 병풍이다. 병풍 끝에 내력를 적은 글이 있다. "萬曆壬辰兵亂, 宣祖大王播遷于龍灣。兵亂平定後, 還御于興化門大闕, 初受百官進賀矣。卽命?師以表紀念矣。進賀之禮, 宣朝時初有之事。各大闕門二層, 此門一層也。(만력 임진년 병란으로 선조대왕이 용만으로 파천하였다. 병란 평정 후, 흥화문 대궐로 돌아와서 처음 백관의 진하를 받았다. 곧 명하여 기념을 표하였다. 진하의 예는 선조조 때 처음 있었던 일이다. 각 대궐문은 2층인데, 이 문은 1층이다.)"  본 그림의 실제 제작년은 명확하지 않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궁중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4.權大運耆老宴會圖 肅宗十五年(168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權大運耆老宴會圖[일명 賜宴圖(본관 11596), 三學士圖(본관 11415)]
-이명칭 : 권대운 기로연회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689년경>
-재질 : 사직(絲織) / 삼베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39.0 x 60.0cm(그림)
-형태사항 : 1폭
-소장품번호 : 본관 11596 / 본관 11415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권대운(權大運, 1612~1699)이 1689년(肅宗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기로회 입소와 정치적 재기를 자축하기 위해 열었던 연회를 그린 그림이다. 원래 8폭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모임 참석자를 묘사한 중앙의 두 폭이 남아있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권대운 기로연회도> - 조선의 집단 초상화'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5.崇政殿進宴圖 肅宗三十六年(1710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崇政殿庚寅進宴圖
-이명칭 : 필자미상숭정전진연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10년>
-재질 : 지(紙) / 종이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62.1 x 123.6cm(전체)
-형태사항 : 1폭
-소장품번호 : 덕수 3388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1710년(숙종 36),  숙종(肅宗)이 앓던 천연두가 완쾌되고 성수(聖壽)가 50세 됨을 경하하여 그 해 4월 25일에 경희궁의 승정전에서 진연이 시행되었다. 그때의 연회장면이다.
실록에, "임금이 숭정전(崇政殿)에 나아가 잔치를 받았다. 세자(世子)가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술잔을 올리며 헌수(獻壽)하였는데, 술잔을 아홉 차례 올리고 곧 거두었다. 영의정(領議政) 이여(李畬)가 억외(抑畏) 하는 마음을 더욱 보존하라는 뜻으로 앞에 나아가 진계(陳戒)하니, 임금이 가납(嘉納)하였다. 판부사(判府事) 이이명(李頤命)이 명일(明日)의 내연(內宴, 왕후가 내빈(內賓)을 모아 베푸는 잔치) 때에 더욱더 잘 조섭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庚申/上御崇政殿, 受宴。世子率百官, 稱觴獻壽, 觴九行乃撤。領議政李畬, 以益存抑畏之意, 進前申戒, 上嘉納之。判府事李頣命請於明日內宴時, 益加善攝, 上從之。)"라 하였다. 이튿날 있었던 하교를 보면 가뭄으로 미뤄왔는데, 세자의 진달을 더이상 물리칠 수 없어 행하였다고 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숭정전 연회'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6.大射禮圖 英祖十九年(1743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大射禮圖
-이명칭 : 필자미상대사례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43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59.7 x 259.8cm(전체)
-형태사항 : 1軸
-소장품번호 : 덕수 3267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目錄
<大射禮圖>
御射圖
侍射圖
賞罰圖
座目 및 成績
大射禮圖序
▣解題
1743년(英祖19) 윤 4월 7일에 있었던 대사례(大射禮) 행사를 그린 기록화다. 대사례는 조선시대 임금이 성균관에 거동하여 옛 성인에게 제향(祭享)하고, 신하들과 더불어 활을 쏘던 예(禮)이다.
본 <대사례도(大射禮圖)>는 두루마리 형식으로 어사도(御射圖)·시사도(侍射圖)·시상도(施賞圖)로 이루어진 3장면의 그림, "어사삼획(御射三獲)"이라고 쓴 어사의 성적, 집례관(執禮官) 이덕인(李德寅)과 집사관(執事官) 이섭원(李燮元)의 관직과 성명, 밀창군(密昌君, 1677∼1746) 이하 시사관(侍射官) 30명의 좌목과 성적, 1743년(영조 19) 8월에 쓴 병조판서 서종옥(徐宗玉, 1688∼1745)의 '대사례도서(大射禮圖序)'로 구성되어 있다. 동일 내용의 그림이 연세대학교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대사례'는 임금이 성균관에 나아가 석전례(釋奠禮)를 지낸 뒤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하는 의식이다. 오례(五禮) 중 군례(軍禮)에 해당하는 의식으로 임진왜란 이후 폐지되었으나 영조가 시의에 맞게 의문(儀文)을 정비하여 부활시켰다. 이 <대사례도>는 1743년(영조 19) 윤 4월 7일에 거행된 대사례 의식을 기록한 횡권(橫卷)이며, 관련 내용이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어사도'에 영조가 활 쏘는 모습, '시사도'에 2명씩 짝을 지어 활을 쏘는 신하들의 모습, 그리고 '시상도'에 결과에 따라 상벌을 내리는 의식의 전 과정을 순서대로 담았다. 좌목과 서문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 참여한 시사자들이 발의해 만든 기념물로 생각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의장기를 비롯해 악기, 의물, 복식 등의 종류와 묘사가 『대사례의궤』의 기록과 일치한다. 인물묘법이나 기물의 세부 표현이 치밀하며, 상·하단부의 수목은 18세기 중엽의 산수화풍을 보여준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실록은 이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庚申/上曉詣太學, 行酌獻禮, 仍御明倫堂, 以喜雨觀德, 命題試士。時方苦旱, 而是夜雨下, 所以志喜也。平朝雨晴, 上御下輦臺, 行大射禮。發乘矢三獲, 侍射人密昌君 樴等三十人。耦射畢, 以其中否, 施賞罰有差。以貫革試擧子取六十人。考試訖 取韓光肇、李渙、朴盛源、申晦、金陽澤、崔台衡等六人, 卽日放搒。(임금이 새벽에 태학(太學)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거행하고, 이어 명륜당(明倫堂)에 거둥하여, '희우관덕(喜雨觀德)'으로 글제를 내어 시사(試士)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바야흐로 대단히 가물었는데, 이날 밤에 비가 내려 그 기쁨을 표시한 것이었다. 아침이 되어 비가 개이자, 임금이 하련대(下輦臺)에 거둥하여 대사례(大射禮)를 거행하였다. 승시(乘矢)를 쏘아 세 번 맞혔는데, 시사(侍射)한 사람은 밀창군(密昌君) 직(樴) 등 30명이었다. 짝을 지어 활쏘기를 마치자, 그 맞힌 여부에 따라 차등 있게 상과 벌을 내렸다. 그리고 과녁(貫革)으로 거자(擧子)를 시험하여 60명을 뽑았다. 고시(考試)를 마치고, 한광조(韓光肇)·이환(李渙)·박성원(朴盛源)·신회(申晦)·김양택(金陽澤)·최태형(催台衡) 등 6인을 뽑아 즉일로 방방(放榜)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궁중행사 대사례 장면'을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7.崇政殿甲子進宴圖 英祖二十年(1744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崇政殿甲子進宴圖
-이명칭 : 갑자년 숭정전의 궁중 잔치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44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19.7 × 334.8㎝
-형태사항 : 6폭 병풍
-소장품번호 : 본관 11601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갑자년[1744년(영조 20년)] 9월, 영조의 기로소(耆老所) 입사(入社)를 축하하고자 10월 7일 경희궁 숭정전에서 열린 진연 장면을 그리고 참석자 좌목을 적은 병풍이다. 제1~3폭에 숭정전을 중심으로 한 회랑 안에 행사 장면을 그렸는데, 건물 내부에는 임금과 왕세자 자리, 병풍과 음식상[饌案] 등이 갖추어져 있다.
실록은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임금이 숭정전(崇政殿)에서 신하들의 진연(進宴)을 받았는데, 종신(宗臣)의 도정(都正) 이상과 의빈(儀賓),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기구(耆舊)의 여러 신하들, 친공신(親功臣)과 문신 정2품 이상에서는 실직·군함(軍銜)을 논하지 아니하고, 종2품 이상에서부터 당상관 정3품에 이르기까지는 바야흐로 실직에 있는 자와 비록 군함에 있을지라도 나이 70세 이상인 사람들과, 양도(兩都)의 유수(留守)·기백(畿伯)·승지·한주(翰注)·옥서(玉署) ·미원(薇垣) ·백부(柏府) ·춘방(春坊)에서는 바야흐로 시임에 있는 자들과 음관(蔭官)과 무신 2품 이상에서는 시임 장신(將臣)·실직 총관(摠管)인 사람과 비록 군함에 있을지라도 일찍이 장수의 직임을 지낸 자와 일찍이 동반(東班)의 실직 곤수(閫帥)를 거친 자 가운데 나이 70세 이상인 자들은 모두 참여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금일의 일은 즐거움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다만 그 날만을 점치고, 그 즉시 행하라.’ 하였다."
하였다. 왕세자가 첫번째 술잔을 올렸고, 영의정 김재로(金在魯)·판중추 부사 김흥경(興慶)·종신(宗臣) 서평군(西平君) 이요(李橈)·금평위(錦平尉) 박필성(朴弼成)·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호조 판서 김약로(金若魯)·영성위(永城尉) 신광수(申光綬)가 차례에 따라 의식대로 술잔을 올렸다. 임금이 기사(耆社)의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연회를 마치면 마땅히 옛날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연회를 내려 주던 관례에 의하여 전전악(殿前樂)을 내려 주고, 의당 그 남은 찬(饌)을 가지고 본사(本司)에 회연(回宴)하도록 하라."
하고, 음식 한 쟁반을 봉조하(奉朝賀) 이의현(李宜顯)의 집에 보내라 명하니, 그가 노병으로 연회에 참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탁(大卓)을 거두자, 입직한 군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록 명하고, 연회에 참석한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주량에 따라서 술을 마시게 하였다. 또 서울과 외방의 서민(庶民)들 가운데 나이 8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 차등 있게 미곡과 고기를 내려 주도록 명하였다. 예조 판서 이종성(李宗城)이 나아와서 말하기를,
"≪시경≫의 소아편(小雅篇) 녹명장(鹿鳴章)은 곧 뭇 신하들을 연향(燕饗)하는 악장인데, 거기에 말하기를, ‘내게 주행(周行)을 보여 주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주행이란 것은 큰 도[大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성왕(聖王)들이 연락(燕樂)할 즈음을 다하여 도움을 구하는 뜻이 이와 같이 간절하였습니다. 금일의 연회는 곧 성상께서 기사(耆社)에 들어가시는 초기로 기구(耆舊)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연석에서 주상을 모셨는데, 옛날에도 양로(養老)하고 걸언(乞言)하던 예가 있었으니, 여러 노신들을 불러서 노성(老成)한 신하들의 변론을 물어본다면 더욱 성덕(聖德)에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 여러 노신을 선소(宣召)하라 명하자, 기사의 당상관 신사철(申思喆)·이진기(李震箕)·윤양래(尹陽來)·정수기(鄭壽期)·이성룡(李聖龍)·조석명(趙錫命) 등이 차례로 나아와서 부복(俯伏)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경들을 부른 것은 옛날 선왕(先王)들이 걸언(乞言)한 규범을 따르고자 함이니, 경들은 각기 말하도록 하라."
하므로, 신사철이 말하기를,
"금일에 나라의 형세와 인심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성산(聖算)이 점차 높아지셨다고 하여 갑자기 정사에 싫증이 나고 고달파 하는 뜻을 내시지 말고 분발하시는 것이 곧 노신의 바람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좋다. 어찌 힘쓰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 윤양래가 말하기를,
"성상께서는 인(仁)·덕(德)과 공명(公明)을 아울러 가지셨는데, 오로지 이 세 가지에 더 면려(勉勵)하시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유의하겠다."
하고, 이성룡이 말하기를,
"성상께서 오늘날 거행하신 일은 위로 자성(慈聖)의 뜻을 본받으신 것이고 한가로히 편안하게 지내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경≫의 당풍편(唐風篇) 실솔장(蟋蟀章)에 이르기를, ‘지나치게 편안함이 없는가?’라고 하였으니, 옛날 사람들이 연락(燕樂)할 즈음에 깊이 걱정하고 멀리 염려한 것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신은 이것을 가지고 앙면(仰勉)하고자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말이 더욱 좋다. 요(堯)임금과 걸왕(桀王)의 구분은 다만 털끝 만한 작은 차이뿐이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하겠는가?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늙었으니, 지금 책임을 면할 줄을 알고 있다. 동궁(東宮)의 나이가 바야흐로 어리므로 더욱 보양(輔養)하는 것이 급하니, 경들의 아뢴 말들을 춘방(春坊)으로 하여금 글로 적어서 동궁에게 올리게 하겠다. 또 임금과 신하의 사이에도 또한 마땅히 서로 힘써야 하는데, 경은 모름지기 경의 자식을 잘 가르쳐서 나의 원량(元良)을 섬기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정수기를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이 노인은 자식을 잘 가르쳤다."
하였는데, 이성룡의 아들 이형만(李衡萬)은 일찍이 간관(諫官)이 되었으나 언사(言事)로 죄를 얻었으며, 정수기의 아들 정우량(鄭羽良)과 정휘량(鄭翬良)은 자못 탕평책(蕩平策)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성상의 하교가 이와 같은 데까지 미쳤던 것이다. 이리하여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유신들이 서로 잇달아 임금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렸는데 다시 ‘지나치게 편안함이 없는가?’라고 말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조금 전에 춘방관(春坊官)에게 명하여 글로 써서 세자에게 올리라고 하였는데, 원량(元良)이 바야흐로 이 자리에 있으니, 악공(樂工)을 불러서 이 실솔장을 노래하게 하여 동궁에게 들려 주도록 하라."
하니, 공인(工人)들이 곧 궁전의 계단으로 나아가 서서 실솔장을 노래하였다. 사직(司直) 권적(權𥛚)이 시위(侍衛)로서 바야흐로 연회에 임금을 모시다가 시를 지어 가지고 술에 취하여 나아와서 아뢰니, 승지가 그를 추국하자고 청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녹비(鹿皮)를 상으로 주었다. 연회를 끝마치자 예방 승지(禮房承旨)가 진연청(進宴廳)의 당상관과 함께 어선(御膳)을 받아 앞에 있었고 기사(耆社)의 여러 신하들이 뒤에 있었는데, 향당악(鄕黨樂)을 연주하면서 앞에서 인도하여 가다가 곧바로 영수각(靈壽閣)에 이르니, 임금이 명한 것이었다. 밤이 새도록 즐겁게 마시다가 파하였고 종부(宗府)에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하였다. 금평위(錦平尉)는 곧 효종[孝廟]의 부마였는데, 이때 나이가 90세였으므로 특별히 명하여 지팡이를 붙들고 전(殿)을 올라와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 임금이 술잔을 들고서 말하기를,
"특별히 경(卿)을 위하여 조금 마시겠다."
하고, 이어 어찬(御饌)을 내려 주어 자손들과 더불어 같이 즐거워하게 하였다. 또 비국(備局)에 하교하기를,
"나의 한결같은 마음은 위로 선왕조(先王朝)를 추모하고 아래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계술(繼述)하는 방도는 따라서 보호하는 것이 중한데, 무릇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정치에 관계되면 부지런히 강구할 것이고, 또한 여러 도(道)와 여러 고을에 마땅히 신칙하여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정책을 다하기에 힘쓰도록 하라."
[註 210] 옥서(玉署) : 홍문관.
[註 211] 미원(薇垣) : 사간원.
[註 212] 백부(柏府) : 사헌부. [註 213] 춘방(春坊) : 세자 시강원.
영조의 기로소 가입을 기록한 ≪ 耆社慶會帖≫ 에 자세하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갑자년 숭정전의 궁중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8.內賜寶墨帖 英祖三十六年(1760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內賜寶墨帖[庚辰]
-이명칭 : 내사보묵첩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60년>
-재질 : 지(紙)
-작가 : 不明
-크기 : 73.2 x 24.4cm
-형태사항 : 1帖
-소장품번호 : 본관 8207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1760년(영조 36) 1월 20일, 영조가 기로소(耆老所) 및 충훈부(忠勳府) 대신들에게 선찬을 하는 장면. 영조는 "노인을 기르는 뜻과 공적을 기르는 도는 임금이 먼저 힘쓸 것이다" 라 하였다.
실록은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上御明政殿月臺, 宣饌于耆堂勳臣。上, 手書御製, 以賜耆社勳府諸臣, 上曰: "今日之會, 圖繪作帖, 以御製, 書於上面, 諸臣各賜一件。"
임금이 명정전 월대에 나아가 기사 당상과 훈신(勳臣)에게 선찬(宣饌)하였다. 임금이 손수 어제시(御製詩)를 써서 기사(耆社)·훈부(勳府)의 여러 신하들에게 주고,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의 모임을 그림으로 그려서 작첩(作帖)하고 어제시를 상면(上面)에 써서 여러 신하들에게 한 벌씩 하사하라."
하였다.
○上命司直洪重徵致仕。重徵以耆堂入侍, 宣饌後進曰: "先臣屢上休致之章, 而未蒙允許, 臣之繼志述事, 在於致仕矣。" 上曰: "所陳之意可尙, 特允其請。" 手書褒美之。
임금이 사직(司直) 홍중징(洪重徵)에게 치사(致仕)할 것을 명하였다. 홍중징이 기사 당상으로서 입시하였는데, 선찬한 뒤에 나아가 말하기를,
"선신(先臣)이 누차 휴치(休致)의 글장을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는데, 신이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는 길은 오직 치사에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진달한 뜻이 가상하니, 특별히 그 소청을 윤허한다."
하고, 손수 글을 써서 포장(褒奬)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 내사보묵첩'을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09.宮中賀筵圖屛風 正祖三年(177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宮中賀筵圖屛風
-이명칭 : 궁중하연도병풍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79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각 폭 182.0 x 59.0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본관 8221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본 그림은 1779년(正祖 3년) 11월 10일, 정조가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서 자전 탄신(慈殿誕辰) 진하를 행한 장면으로 보인다.
실록은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庚寅/親行慈殿誕辰陳賀于仁政殿, 仍陞座受賀。
인정전(仁政殿)에서 자전 탄신(慈殿誕辰)의 진하(陳賀)를 친히 행하고 이어서 보좌(寶座)에 올라가 진하를 받았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궁중에서 경사를 베푸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0.文孝世子輔養廳契屛 正祖八年(1784年)
▣原本 書誌
-도서명 : 文孝世子輔養廳契屛
-이명칭 : 문효세자보양청계병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784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각 폭 160.0 x 58.0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본관 10804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1784년(정조 8) 1월, 정조의 첫 번째 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가 두 명의 보양관과 처음으로 만나 인사하는 의식을 그린 궁중행사도이다.
문효세자는 의빈성씨(宜嬪成氏, 1753~1786)가 낳은 아들로, 정조의 첫 번째 아들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정조는 매우 기뻐했고, 아들이 두 살이 되던 1783년(정조 7) 11월, 원자로 결정하였다. 문효세자의 보양관으로 우의정(右議政) 이복원(李福源, 1719~1792)과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익(金熤, 1723~1790)이 낙점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784년 1월 15일, 창덕궁 대은원(戴恩院)에서 문효세자와 보양관 두 명이 서로 인사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그 행사를 그린 것이 바로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입니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문효세자와 보양관들의 첫만남'을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1.己丑進饌圖① 純祖二十九年(182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己丑進饌圖[일명 純祖御極三十年進饌圖]
-이명칭 : 기축진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29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50.2 x 54.0cm(그림)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근대 230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덕수 1665]본이 함께 전한다.
▣目錄
-明政殿外進饌(명정전외진찬)
-慈慶殿內進饌(자경전내진찬)
▣解題
1829년(純祖 29, 기축년) 2월에 궁중에서 거행된 잔치의 장면이다. 1829년에 순조의 사십 세 생일과 왕위에 오른 지 삼십 년을 맞아 왕세자가 올린 잔치이다. 조선 시대의 궁중 잔치는 왕을 중심으로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는 외연外宴과 비와 빈, 관리의 부인이 함께하는 내연內宴이 따로 진행되었다.
오른쪽 세 폭은 2월 9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거행된 외진찬 장면을, 다음 세 폭은 같은 달 12일에 자경전에서 열린 내진찬의 장면이다. 실록에 이 날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기축년의 궁중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2.己丑進饌圖② 純祖二十九年(182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己丑進饌圖[일명 純祖御極三十年進饌圖]
-이명칭 : 기축진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29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50.0x53.6cm(그림)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덕수 1665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근대 230]본이 함께 전한다.
▣目錄
-明政殿外進饌(명정전외진찬)
-慈慶殿內進饌(자경전내진찬)
▣解題
1829년(純祖 29, 기축년) 2월에 궁중에서 거행된 잔치의 장면이다. 1829년에 순조의 사십 세 생일과 왕위에 오른 지 삼십 년을 맞아 왕세자가 올린 잔치이다. 조선 시대의 궁중 잔치는 왕을 중심으로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참석하는 외연外宴과 비와 빈, 관리의 부인이 함께하는 내연內宴이 따로 진행되었다.
오른쪽 세 폭은 2월 9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거행된 외진찬 장면을, 다음 세 폭은 같은 달 12일에 자경전에서 열린 내진찬의 장면이다. 실록에 이 날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앞의 해제 참조)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기축년의 궁중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3.戊申進饌圖① 憲宗十四年(1848年)
▣原本 書誌
-도서명 : 戊申進饌圖
-이명칭 : 무신진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48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41.5 × 49.5cm(전체)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본관 13243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덕수 1663]본이 함께 전한다.
▣目錄
1. 仁政殿陳賀圖(인정전 진하도)
2. 通明殿進饌圖(통명전 진찬도)
3. 通明殿夜進饌圖(통명전 야진찬도)
4. 通明殿憲宗會酌圖(통명전 헌종회작도)
▣解題
1848년(憲宗 14) 3월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의 육순(六旬)과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망오(望五: 41세)에 거행된 진찬례를 여덟 폭 병풍에 그린 이 그림은 궁궐 안에서의 성대한 의례와 연회를 담고 있다. 궁중행사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이러한 궁중연회행사는 의례 절차를 적은 의주(儀註)와 세부사항을 기록한 절목(節目)에 맞게 진행하였다. 그리고 왕실가족, 조정의 신하,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고 풍년이 들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때에 치러졌으며 흉년이나 가뭄이 들 때에는 비용 절약 차원에서 생략되기도 하였다. 대왕∙왕대비∙대왕대비의 생신과 왕의 등극 주년(登極周年)을 기념하여 그려진 궁궐진찬도(宮闕進饌圖)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펴고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을 통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한 기록화로 볼 수 있다. 또한 각종 의례절차를 통한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국빈 대접을 위한 잔치에 필요한 각종 기물과 상징물, 악공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인물들의 발빠른 움직임,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상을 나르고 술잔을 올리는 하인들의 분주함 등 행사장 주변에서 엮어내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장면이 있어 당대의 궁중 풍속화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실록에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1월 1일>
○大王大妃殿寶齡六旬, 王大妃殿寶齡望五。 上, 詣仁政殿, 親上致詞箋文表裏, 仍頒敎受賀, 赦。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의 보령(寶齡)은 육순(六旬)이 되고 왕대비전(王大妃殿)의 보령은 망오(望五)가 되었다.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치사(致詞)·전문(箋文)·표리(表裏)001) 를 친히 올리고, 이어서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진하(陳賀)를 받고 사유(赦宥)하였다.
[註 001] 표리(表裏) : 옷감의 겉감과 안찝.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17일>
○辛卯/行進饌禮于通明殿。
통명전(通明殿)에서 진찬례(進饌禮)를 행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19일>
○癸巳/上御通明殿, 行會酌禮。
임금이 통명전에 나아가 회작례(會酌禮)를 행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21일>
○進饌所堂郞以下, 司饔院都提調以下, 梨園尙方提調以下, 施賞有差, 進饌堂上禮曹判書金興根, 吏曹參判金鼎集, 開城留守趙秉駿, 黃海監司尹定鉉, 行都承旨尹致秀, 郞廳副應敎尹致英, 竝加資, 仍敎曰: "副司果李奎憲, 以己丑進饌所郞廳, 又參今番慶禮, 事甚稀貴, 亦切愴懷, 不可無別般示意, 工曹參議除授。"
진찬소(進饌所)의 당상(堂上)·낭청(郞廳) 이하와 사옹원 도제조(司饔院都提調) 이하와 이원(梨園)·상방(尙方)의 제조(提調)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주었다. 진찬 당상(進饌堂上) 예조 판서 김흥근(金興根)·이조 참판 김정집(金鼎集)·개성 유수(開城留守) 조병준(趙秉駿)·황해 감사 윤정현(尹定鉉)·행도승지(行都承旨) 윤치수(尹致秀), 낭청(郞廳) 부응교(副應敎) 윤치영(尹致英)을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이어서 하교하기를,
"부사과(副司果) 이규헌(李奎憲)이 기축년019) 의 진찬소 낭청(進饌所郞廳)으로서 이번 경례(慶禮)에 또 참여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또한 슬픈 생각이 절실하므로 특별히 뜻을 보이지 않을 수 없으니,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제수(除授)하라."
하였다.
[註 019] 기축년 : 1829 순조 29년.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무신년의 궁중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4.戊申進饌圖② 憲宗十四年(1848年)
▣原本 書誌
-도서명 : 戊申進饌圖
-이명칭 : 무신진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48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각 폭 136.1 × 47.6(전체)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덕수 1663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본관 13243]본이 함께 전한다.
▣目錄
1. 仁政殿陳賀圖(인정전 진하도)
2. 通明殿進饌圖(통명전 진찬도)
3. 通明殿夜進饌圖(통명전 야진찬도)
4. 通明殿憲宗會酌圖(통명전 헌종회작도)
▣解題
1848년(憲宗 14) 3월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의 육순(六旬)과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망오(望五: 41세)에 거행된 진찬례를 여덟 폭 병풍에 그린 이 그림은 궁궐 안에서의 성대한 의례와 연회를 담고 있다. 궁중행사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이러한 궁중연회행사는 의례 절차를 적은 의주(儀註)와 세부사항을 기록한 절목(節目)에 맞게 진행하였다. 그리고 왕실가족, 조정의 신하,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고 풍년이 들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때에 치러졌으며 흉년이나 가뭄이 들 때에는 비용 절약 차원에서 생략되기도 하였다. 대왕∙왕대비∙대왕대비의 생신과 왕의 등극 주년(登極周年)을 기념하여 그려진 궁궐진찬도(宮闕進饌圖)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펴고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을 통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한 기록화로 볼 수 있다. 또한 각종 의례절차를 통한 공적 영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국빈 대접을 위한 잔치에 필요한 각종 기물과 상징물, 악공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인물들의 발빠른 움직임,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상을 나르고 술잔을 올리는 하인들의 분주함 등 행사장 주변에서 엮어내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장면이 있어 당대의 궁중 풍속화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실록에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1월 1일>
○大王大妃殿寶齡六旬, 王大妃殿寶齡望五。 上, 詣仁政殿, 親上致詞箋文表裏, 仍頒敎受賀, 赦。
대왕 대비전(大王大妃殿)의 보령(寶齡)은 육순(六旬)이 되고 왕대비전(王大妃殿)의 보령은 망오(望五)가 되었다.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치사(致詞)·전문(箋文)·표리(表裏)001) 를 친히 올리고, 이어서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진하(陳賀)를 받고 사유(赦宥)하였다.
[註 001] 표리(表裏) : 옷감의 겉감과 안찝.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17일>
○辛卯/行進饌禮于通明殿。
통명전(通明殿)에서 진찬례(進饌禮)를 행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19일>
○癸巳/上御通明殿, 行會酌禮。
임금이 통명전에 나아가 회작례(會酌禮)를 행하였다.
<헌종실록 15권, 헌종 14년 3월 21일>
○進饌所堂郞以下, 司饔院都提調以下, 梨園尙方提調以下, 施賞有差, 進饌堂上禮曹判書金興根, 吏曹參判金鼎集, 開城留守趙秉駿, 黃海監司尹定鉉, 行都承旨尹致秀, 郞廳副應敎尹致英, 竝加資, 仍敎曰: "副司果李奎憲, 以己丑進饌所郞廳, 又參今番慶禮, 事甚稀貴, 亦切愴懷, 不可無別般示意, 工曹參議除授。"
진찬소(進饌所)의 당상(堂上)·낭청(郞廳) 이하와 사옹원 도제조(司饔院都提調) 이하와 이원(梨園)·상방(尙方)의 제조(提調)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주었다. 진찬 당상(進饌堂上) 예조 판서 김흥근(金興根)·이조 참판 김정집(金鼎集)·개성 유수(開城留守) 조병준(趙秉駿)·황해 감사 윤정현(尹定鉉)·행도승지(行都承旨) 윤치수(尹致秀), 낭청(郞廳) 부응교(副應敎) 윤치영(尹致英)을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이어서 하교하기를,
"부사과(副司果) 이규헌(李奎憲)이 기축년019) 의 진찬소 낭청(進饌所郞廳)으로서 이번 경례(慶禮)에 또 참여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고 또한 슬픈 생각이 절실하므로 특별히 뜻을 보이지 않을 수 없으니,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제수(除授)하라."
하였다.
[註 019] 기축년 : 1829 순조 29년.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무신년의 궁중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5.王世子誕降陳賀圖① 高宗十一年(1874年)
▣原本 書誌
-도서명 : 王世子誕降陳賀圖
-이명칭 : 왕세자탄강진하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74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각 폭 101.2 × 38.5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덕수 2690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그림과 동일한 내용의 병풍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한다.(뒤 참조)
▣解題
1874년(高宗 11) 2월, 고종의 둘째 아들인 순종(純宗)의 탄생을 기념하여 산실청 관원들이 만든 그림 병풍이다. 첫 아들이 태어난 지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난 이후 얻은 원자였기에 순종의 탄생은 더욱 큰 경사가 되었다. 고종은 순종의 탄생 당일 지시를 내려 죄인들을 풀어주고 관직을 박탈당한 이들을 재임용하게 하는 등 은혜를 베풀었으며, 생후 7일이 되는 날 순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서 거행하였다. 병풍의 첫 폭과 마지막 폭에는 순종의 탄생 당시 설치된 산실청에서 일했던 관원들의 관직과 품계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간 여덟 폭에는 당시 인정전에서 진행된 행사장면이 한 눈에 보이도록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졌다. 행사장인 인정전은 평생사선구도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림으로써 넓은 공간을 입체감 있게 담아내었으며, 그 주변을 청록의 산수가 서운瑞雲(상서로운 구름)과 함께 부드럽게 에워싸고 있어 궁궐의 위엄과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행사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자세 및 소용된 물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탁월한 회화성과 함께 기록적 성격을 지닌 궁중기록화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록은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고종실록 11권, 고종 11년 2월 8일>
初八日。敎曰: "中宮殿今日卯時, 誕生元子。諸般擧行, 令該曹依例爲之。" 又敎曰: "天祐宗祊, 元子誕生, 此實我東方無疆之慶, 慈聖嘉悅無比。 第七日當親上致詞箋文、表裏于大王大妃殿。仍爲臨殿受賀矣。" 又敎曰: "輕囚爲先放釋。" 又敎曰: "向來宥放之典, 予有所斟量而然矣。今番擧國同慶之會, 不可無示意之擧。 前右議政韓啓源, 特爲敍用。" 又敎曰: "向來處分, 卽公議、事體之不可已者也。今此邦國有慶之日, 不可無斟量者存。古今島島配罪人南廷順, 特爲放釋。" 又敎曰: "文蔭武罷削人, 竝蕩滌敍用, 令該曹付軍職。"
전교하기를,
"중궁전(中宮殿)이 오늘 묘시(卯時)에 원자를 낳았으므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조에서 규례대로 하게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하늘이 종묘사직을 도와 원자가 태어났으니, 이것은 사실 우리나라의 더없는 경사이다. 자전(慈殿)의 기쁨이 비길 데 없을 것이니, 이레째 되는 날에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에게 직접 치사(致詞), 전문(箋文), 표리(表裏)를 올리겠다. 그리고 이어 전(殿)에 나아가 진하(陳賀)를 받겠다."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경죄수(輕罪囚)는 우선 풀어 주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지난번에 용서하여 석방해 준 조치는 내가 참작한 바가 있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번에 온 나라가 함께 기뻐하는 때에 뜻을 표시하는 조치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 우의정(右議政) 한계원(韓啓源)을 특별히 서용(敍用)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지난번의 처분은 사실 공론과 원칙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라에 경사가 있는 오늘 참작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고금도(古今島)에 정배(定配)한 죄인 남정순(南廷順)을 특별히 풀어 주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문관과 음관, 무관으로서 파삭(罷削)된 사람들은 다 탕척(蕩滌)하고 서용하되 해조에서 군직(軍職)에 붙이게 하라."
하였다.
禮曹啓曰: "今此元子誕生, 謹稽謄錄, 則告宗廟、永寧殿、社稷、景慕宮, 行於第三日; 頒敎陳賀, 行於第七日。今亦依此擧行乎?" 敎曰: "第七日曉頭, 設行陳賀, 依此爲之。" 又啓曰: "元子宮供上之節, 今二月初八日爲始擧行之意, 分付各該司何如?" 敎曰: "依己巳年例擧行。"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이번에 원자(元子)가 태어났습니다. 삼가 등록(謄錄)을 상고하여 보니,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 사직(社稷), 경모궁(景慕宮)에 고유(告由)하는 것은 사흘째 되는 날에 거행하고, 반교(頒敎)와 진하(陳賀)는 이레째 되는 날에 거행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이대로 거행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이레째 되는 날 새벽에 거행하고, 진하도 이대로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원자궁(元子宮)에 대한 공상(供上) 의절을 이달 2월 8일부터 거행하라는 내용으로 각 해사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기사년(1869)의 규례대로 거행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11권, 고종 11년 2월 14일>
十四日。 詣仁政殿, 親上致詞箋文、表裏于大王大妃殿, 仍受賀、頒赦。 御便殿, 受奎章閣、太學、宗親府、弘文館進箋。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친히 대왕대비(大王大妃)에게 치사(致詞)와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올렸다. 이어 진하(陳賀)를 받고 사전(赦典)을 반포하였다. 편전(便殿)에서 규장각(奎章閣)과 성균관(成均館), 종친부(宗親府)와 홍문관(弘文館)에서 올린 전문을 받았다.
親上致詞箋文、表裏陳賀時, 濟用監提調以下及産室廳都提調以下, 施賞有差。禮房承旨李喬翼、對擧承旨金學初、宣敎官金完秀、左通禮張原相、右通禮李冕雨、藥院提調朴齊寅, 竝加資。副提調李會正, 正卿陞擢; 完平君 李昇應, 百官加親授。
친히 치사(致詞), 전문(箋文), 표리(表裏)를 올리고 진하(陳賀)할 때의 제용감 제조(濟用監提調) 이하와 산실청 도제조(産室廳都提調)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였다. 예방 승지(禮房承旨) 이교익(李喬翼), 대거 승지(對擧承旨) 김학초(金學初), 선교관(宣敎官) 김완수(金完秀), 좌통례(左通禮) 장원상(張原相), 우통례(右通禮) 이면우(李冕雨),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박제인(朴齊寅)에게 모두 가자하고, 부제조(副提調) 이회정(李會正)은 정경(正卿)으로 승탁(陞擢)하였다. 완평군(完平君) 이승응(李昇應)에게 백관가(百官加)를 친수(親授)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왕세자의 탄생 기념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6.王世子誕降陳賀圖② 高宗十一年(1874年)
▣原本 書誌
-도서명 : 王世子誕降陳賀圖屛風
-이명칭 :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재질 : 섬유 - 견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269.0 × 43.5cm
-형태사항 : 10폭 병풍
-소장품번호 : 창덕 6407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앞 참조)
▣解題
1874년(고종 11) 2월 고종(高宗)의 둘째 아들인 순종(純宗)의 탄생을 축하하며 관원들이 진하(陳賀)했던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제2폭에서 제8폭에 걸쳐 그려진 그림은 전체적으로 평행사선구도가 이용되었으며 진하례(陳賀禮) 광경은 부감법(俯瞰法)을 써서 표현하였다. 진하례가 열리고 있는 창덕궁 인정전을 중심에 배치하고 양쪽 옆으로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나무, 산봉우리 등을 그렸다. 인정전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높게 표현하여 실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인정전 안에 오봉병(五峰屛)을 펼친 임금의 자리를 중심으로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관리들, 의식의 진행을 맡은 이들과 음악을 담당한 악대, 고종 임금의 가마, 종친과 무관들, 의장대 등 당시 행사에 동원된 모든 인원과 여러 기물들을 밝고 선명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제1폭과 제10폭에는 관원들의 이름과 관직, 품계 등이 적혀있다. 필묘와 채색, 묘사 면에서 다소 수준이 떨어지고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 보관하는 병풍이 아닌, 당시 관원들이 제작하여 나누어 가진 계병(禊屛) 중 한 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1폭 화면 중앙과 왼쪽 테두리 중앙에 채색 박락되었다. 제2폭 오른쪽 테두리 하단 채색 박락되었다. 비단바탕에 얼룩이 있으며 마모되었다. 화면 중앙에 펜으로 낙서되었다. 제4폭 화면 하단 배접부분이 찢어졌다. 제5폭 화면 중앙의 채색부분이 박락되었다. 제6폭 화면 하단 채색 박락되었다. 제7폭 화면 상단 비단 바탕과 화면 상단 왼쪽 채색이 박락되었다. 제10폭 왼쪽 하단 테두리 부분이 찢어짐. 하단에 연필로 낙서가 있다. 전체적으로 각 폭이 접히는 부분이 마모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엷게 박락되었다.
▣본 저작물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17.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① 高宗十六年(187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
-이명칭 : 순종의 천연두 회복기념 잔치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79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16 × 46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본관 9657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병풍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하다.(뒤 참조)
▣解題
1879년(고종 16) 12월 28일에 왕세자(순종)가 천연두에서 회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진하(陳賀) 의식을 거행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제1폭에는 수문장 겸 초관이었던 이상덕(李相德)이 쓴 서문이 있고, 제8폭에는 행사를 준비한 관원들의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이 병풍이 왕세자가 병중에 있는 동안 궐내의 야간 순찰을 돌며 궁궐을 호위했던 오위장(五衛將)과 초관들이 발의하여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행사 장면은 2~4폭과 5~7폭으로 각각 세 폭에 걸쳐 그렸는데, 왕세자의 천연두 회복을 진하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전에 그려진 왕세자의 책례 도상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병풍은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문효세자책례계병(文孝世子冊禮圖屛)≫의 내용으로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과 동궁연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된 두 행사를 그리고 있는데, 2~4폭은 인정전의 왕세자 책봉례(冊封禮) 장면을, 5~7폭은 왕세자가 중희당에서 책인을 받는 수책의(受冊儀) 장면을 그렸다. ≪문효세자책례계병≫은 1784년(정조 8) 8월 2일에 행해진 의식을 그린 것으로 이 병풍과 시차가 100년 이상 되지만 도상과 그린 기법은 동일한데, 19세기 초까지 자주 채택되었던 평면도형 구도와 세 폭에 걸쳐 한 장면을 구성하는 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각의 공포 등에 사용된 밝은 녹색과 무인(武人)의 의복에 보이는 밝은 청색 등은 19세기 말의 특징이다.
그림의 좌목에 의하면 ‘本所將官座目’이라고 쓴 아래에 가선대부 용양위호군(嘉善大夫 龍驤衛護軍),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그리고 선전관(宣傳官)·오위도총부경력(五衛都摠府 經歷)·수문장(守門將)·형조정랑(刑曹正郞)을 겸임하고 있는 초관(哨官) 등 정4품부터 종9품의 실직을 가진 관원들 15명의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 ‘本所’라고 하는 것은 창덕궁에 있는 위장소(衛將所)인 남소(南所)와 서소(西所)를 가리키며 ‘將官’이라함은 이곳에서 교대로 숙직하며 순경(巡更)의 임무를 다했던 오위(五衛)의 장(將)들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 계병은 왕세자가 병중에 있는 동안 궐내의 야간 순찰을 돌며 궁궐을 호위하였던 오위장(五衛將)과 초관(肖官)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 도병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견 두후평복을 축하하는 칭경진하례처럼 보인다. 이상덕(李相德)이 쓴 서문에서도 12월 28일 인정전에서 거행된 진하반교례(陳賀頒敎禮)를 서두에 언급하며 그 의식을 계병에 형상화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내용과 도상은 서울대박물관 소장의 <文孝世子冊禮圖屛>과 관련이 깊다. 인정전과 동궁인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된 두 행사를 도회한 점뿐만 아니라 건축적 구조와 주변 묘사가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왕세자의 두후평복을 경축하는 계병임에도 불구하고 진하례를 그리지 않고 왕세자 책례의 도상을 차용하였음을 짐작 케 하는 작품인 것이다.(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순종의 천연두 회복기념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18.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② 高宗十六年(1879年)
▣原本 書誌
-도서명 : 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
-이명칭 : 순종의 천연두 회복기념 잔치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79년>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80 × 57.1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창덕 6408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본 병풍도와 동일한 내용의 병풍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하다.(앞 참조)
▣解題
1879년(고종 16) 12월 28일에 왕세자(순종)가 천연두에서 회복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진하(陳賀) 의식을 거행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제1폭에는 수문장 겸 초관이었던 이상덕(李相德)이 쓴 서문이 있고, 제8폭에는 행사를 준비한 관원들의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를 통해 이 병풍이 왕세자가 병중에 있는 동안 궐내의 야간 순찰을 돌며 궁궐을 호위했던 오위장(五衛將)과 초관들이 발의하여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행사 장면은 2~4폭과 5~7폭으로 각각 세 폭에 걸쳐 그렸는데, 왕세자의 천연두 회복을 진하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전에 그려진 왕세자의 책례 도상을 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병풍은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문효세자책례계병(文孝世子冊禮圖屛)≫의 내용으로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과 동궁연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된 두 행사를 그리고 있는데, 2~4폭은 인정전의 왕세자 책봉례(冊封禮) 장면을, 5~7폭은 왕세자가 중희당에서 책인을 받는 수책의(受冊儀) 장면을 그렸다. ≪문효세자책례계병≫은 1784년(정조 8) 8월 2일에 행해진 의식을 그린 것으로 이 병풍과 시차가 100년 이상 되지만 도상과 그린 기법은 동일한데, 19세기 초까지 자주 채택되었던 평면도형 구도와 세 폭에 걸쳐 한 장면을 구성하는 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전각의 공포 등에 사용된 밝은 녹색과 무인(武人)의 의복에 보이는 밝은 청색 등은 19세기 말의 특징이다.
제1폭 오른쪽 중앙에 충식이 있다. 제2폭 오른쪽 테두리 하단에 충식이 있다. 왼쪽 테두리 하단에 충식이 있다. 제5폭 테두리 전체적으로 마모되었다. 제7폭 오른쪽 상단에 충식이 있다. 화면 하단에 충식이 있다. 제8폭 화면 하단에 충식이 있다.
그림의 좌목에 의하면 ‘本所將官座目’이라고 쓴 아래에 가선대부 용양위호군(嘉善大夫 龍驤衛護軍),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그리고 선전관(宣傳官)·오위도총부경력(五衛都摠府 經歷)·수문장(守門將)·형조정랑(刑曹正郞)을 겸임하고 있는 초관(哨官) 등 정4품부터 종9품의 실직을 가진 관원들 15명의 직함과 이름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 ‘本所’라고 하는 것은 창덕궁에 있는 위장소(衛將所)인 남소(南所)와 서소(西所)를 가리키며 ‘將官’이라함은 이곳에서 교대로 숙직하며 순경(巡更)의 임무를 다했던 오위(五衛)의 장(將)들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즉 이 계병은 왕세자가 병중에 있는 동안 궐내의 야간 순찰을 돌며 궁궐을 호위하였던 오위장(五衛將)과 초관(肖官)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 도병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견 두후평복을 축하하는 칭경진하례처럼 보인다. 이상덕(李相德)이 쓴 서문에서도 12월 28일 인정전에서 거행된 진하반교례(陳賀頒敎禮)를 서두에 언급하며 그 의식을 계병에 형상화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내용과 도상은 서울대박물관 소장의 <文孝世子冊禮圖屛>과 관련이 깊다. 인정전과 동궁인 중희당(重熙堂)에서 거행된 두 행사를 도회한 점뿐만 아니라 건축적 구조와 주변 묘사가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왕세자의 두후평복을 경축하는 계병임에도 불구하고 진하례를 그리지 않고 왕세자 책례의 도상을 차용하였음을 짐작 케 하는 작품인 것이다.(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본 저작물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19.丁亥進饌圖 高宗二十四年(1887年)
▣原本 書誌
-도서명 : 丁亥進饌圖
-이명칭 : 정해년의 궁중잔치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1887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47.1 x 47.9cm(그림)
-형태사항 : 10폭 병풍
-소장품번호 : 덕수 6184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1887년(高宗 24) 2월에 대왕대비(大王大妃)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팔순(八旬)을 기념하여 경복궁(景福宮)에서 열린 진찬을 그린 것이다. 고종은 1월 13일 경복궁 근정전에 나아가 대왕대비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며 옥책(玉冊) 등을 올렸다. 이를 축하하는 내진찬(內進饌)과 야진찬(夜進饌)이 1월 27일에 열리고 1월 28일에는 고종이, 1월 29일에는 왕세자가 주빈이 되어 잔치가 열렸다.
실록에 이 날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고종실록 24권, 고종 24년 1월 27일>
二十七日。詣萬慶殿, 行進饌禮于大王大妃殿 【上進第一爵, 中宮殿進第二爵, 王世子進第三爵, 世子嬪進第四爵, 命婦班首進第五爵。】。進味數、致詞。 樂作, 頒花。 又行夜進饌禮。
만경전(萬慶殿)에 가서 대왕대비전께 진찬례(進饌禮)를 행하였다. 【상(上)이 제1작(爵)을 올리고 중궁전(中宮殿)이 제2작을 올리며, 왕세자(王世子)가 제3작을 올리고, 왕세자빈(世子嬪)이 제4작을 올리며, 명부(命婦)의 반수(班首)가 제5작을 올렸다.】 음식 몇 가지와 치사(致詞)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꽃을 나누어 주었다. 또 야진찬례(夜進饌禮)를 행하였다.
賜饌頒花于時原任大臣、奉朝賀、承史、閣臣、玉堂、春桂坊、內務堂郞、二品以上、六曹·兩司長官。
시임 대신(時任大臣)와 원임 대신(原任大臣), 봉조하(奉朝賀), 승지(承旨)와 사관(史官), 규장각(奎章閣)·홍문관(弘文館), 세자 시강원(世子侍講院)과 세자 익위사(世子翊衛司), 내무부(內務府)의 당상(堂上)과 낭청(郎廳), 2품 이상, 육조(六曹),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장관(長官)에게 꽃을 나누어 주고 사찬(賜饌)하였다.
敎曰: "稧屛依丁丑年例爲之, 儀軌廳處所, 前內弓房爲之。物力令戶、兵曹, 限二千兩區別, 如或不足, 自親軍營隨所入上下。"
전교하기를,
"계병(禊屛)은 정축년(1887)의 전례대로 만들고 의궤청(儀軌廳)의 처소는 전내궁방(前內弓房)으로 하라. 물력(物力)은 호조(戶曹)와 병조(兵曹)로 하여금 2,000냥(兩) 에 한하여 구별하되 만약 부족하면 친군영(親軍營)에서 들어오는 대로 지급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24권, 고종 24년 1월 30일>
三十日。行會酌。
회작(會酌)을 베풀었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정해년의 궁중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20.辛丑進饌圖屛風 光武五年(1901年)
▣原本 書誌
-도서명 : 辛丑進饌圖屛風
-이명칭 : 신축진찬도병풍
-국적/시대 : 한국(韓國)-대한제국(大韓帝國) <1901년>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49.5 x 95.6cm(그림)
-형태사항 : 10폭 병풍
-소장품번호 : 창덕 6406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解題
1901년(光武 5) 5월 헌종(憲宗)의 계비(繼妃)였던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 홍씨(洪氏)가 대왕대비로서 71세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진찬을 그린 10폭 병풍이다. 제1, 2폭은 경운궁(慶運宮) 중화전(中和殿) 진하, 제3, 4폭은 5월 13일의 내진찬, 제5, 6폭은 5월 13일의 야진찬, 제7, 8폭은 16일의 고종황제 회작, 제9폭은 18일의 재익일회작(再翌日會酌)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의 시점을 택하여 전각과 인물 위주로 행사 장면을 묘사하였다. 조선시대 궁중행사도의 일반적 특징을 따르면서 대한제국기에 제작된 작품으로서의 시대적 특징도 동시에 나타나는데, 그 예로 종전에 붉은색으로 표현했던 바닥에 까는 침구류와 보자기류, 평상과 접이의자 등의 기물을 황색으로 채색한 점과 제2폭에 의장기로서 태극기가 나타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제10폭에는 행사를 준비한 진찬소(進饌所) 관리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각 폭에 접히는 부분이 박락되었다. 두 폭이 한 화면을 이룬다. 화면 전체적으로 채색 박락된 부분이 많다.
▣본 저작물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신축진찬도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21.壬寅進宴圖屛 光武六年(1902年) 4月
▣原本 書誌
-도서명 : 壬寅進宴圖屏
-이명칭 : 임인진연도병
-국적/시대 : 한국(韓國)-대한제국(大韓帝國) <1902년>
-재질 : 섬유-견
-작가 : 不明
-크기 : 
-형태사항 : 10폭 병풍
-소장품번호 : 유물 192 
-소장처 : 국립국악원
▣目錄
제01폭 : 耆老所 <御帖奉安> : 기로소에서 이종필이 어첩을 봉안하는 장면
제02폭 : 耆老所 <進几杖> : 기로소에서 황제에게 궤장을 올리는 장면.
제03폭 : 慶運宮 中和殿 <耆社錫宴> : 궤장을 받은 황제가 기로신들에게 술을 내리고 잔치를 베푸는 장면. 대사령을 내림.
제04폭 : 慶運宮 德慶堂 <進賀> : 황태자와 백관이 황제께 축하 글을 올리는 장면. 기로소 당상을 위로함.
제05폭 : <親臨賜宴> : 황제가 기로소에 들어간 관원들에게 내린 잔치에 친림한 장면
제06폭 : 慶運宮 咸寧殿 <外進宴> : 황제를 위해 황태자와 문무백관들이 잔치를 올리는 장면
제07폭 : 慶運宮 咸寧殿 <內進宴> : 황제를 위해 황태자비와 내외명부가 잔치를 올리는 장면
제08폭 : 慶運宮 咸寧殿 <夜進宴> : 밤에 황제를 위해 황태자가 잔치를 올리는 장면
제09폭 : 慶運宮 咸寧殿 <翌日會酌> : 이튿날 황태자가 수고한 관원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장면
제10폭 : 進宴廳 명단
▣解題
임인년(광무 6, 1902) 고종이 望六(51세)이 되어 숙종과 영조의 뒤를 이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한 진연을 그린 10폭의 병풍이다. 제1폭에서 5폭까지는 3월 27일과 28일 양일간 거행된 입기로소(入耆老所)와 관련된 행사의 장면을 그렸고, 제6폭부터 제9폭까지는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거행된 진연 장면을 묘사했다. 제10폭은 진연례를 담당했던 관리들의 직급과 성명을 기록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국립국악원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임인진연도병'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22.壬寅進宴圖屛風 光武六年(1902年) 11月
▣原本 書誌
-도서명 : 壬寅進宴圖屛風
-이명칭 : 임인진연도병풍
-국적/시대 : 한국(韓國)- 대한제국(大韓帝國) <1902년>
-재질 : 섬유-견
-작가 : 不明
-크기 : 161.5 x 47.7cm(그림)
-형태사항 : 4폭 병풍
-소장품번호 : 창덕 6405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解題
1902년(광무 6) 11월에 거행된 진연을 그린 그림으로 고종의 어극(御極) 40년을 축하하기 위해 황태자가 올린 진연을 도회한 것이다. 제1, 2폭은 관명전(觀明殿) 야진연(夜進宴)의 광경이고, 제3폭은 황태자익일회작(皇太子翌日會酌)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의 시점을 택하여 전각과 인물 위주로 행사 장면을 묘사하였다. 제4폭에는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진연청(進宴廳) 당상(堂上)과 낭청(郎廳)의 좌목(座目)을 썼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진연의궤인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에 따르면 이 진연은 두 차례 일자를 연기한 끝에 11월 4일에 외진연(外進宴)을, 8일에는 외진연과 야진연을 거행하였고 다음날인 9일에는 황태자의 회작(會酌)과 야연(夜燕)을 베풀어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이 병풍은 관명전 야진연의 광경을 그린 부분과 관명전 황태자익일회작의 모습을 그린 부분, 진연청 당랑의 좌목만이 남아 있는데, 통상적인 궁중연향도병(宮中宴享圖屛)의 내용 구성을 감안하면 앞부분에 진하(陳賀), 중화전(中和殿) 외진연, 관명전 외진연을 그린 여섯 폭이 결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1폭 상단(上段) 지붕 부분에는 밑그림의 흔적이 남아 있고, 왼쪽 지붕에 비해 채색이 치밀하지 못하다. 제1폭 2폭과 한 그림. 왼쪽 상단의 비단이 찢어졌다. 전체적으로 박락이 심하고 곰팡이가 슬었다. 2폭 화면의 안료가 묻었다. 제2폭 1폭과 한 그림. 오른쪽 테두리 상단 비단이 찢어졌다. 전체적으로 박락이 심하고 곰팡이가 슬었다. 1폭 화면의 안료가 묻었다. 제3폭 밑그림 없이 채색되어있다. 곰팡이가 슬었다. 제4폭 좌목으로 구성. 곰팡이가 슬었다. 전체적으로 병풍 다리 있다. 관리에 주의를 요한다.
▣본 저작물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 임인진연도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23.宮中行事圖(零本)
▣原本 書誌
-도서명 : 宮中行事圖
-이명칭 : 궁중행사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재질 : 종이-기타
-작가 : 不明
-크기 : 73.4 x 118.1cm
-형태사항 : 1폭
-소장품번호 : 고궁 58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解題
조선시대 궁궐에서 거행되었던 궁중 잔치를 그린 그림의 일부이다. 선명한 붉은색과 녹색의 채색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그린 궁중기록화이나 전체적인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며 어떤 행사를 기록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화면이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상하단을 이어 붙인 상태이다. 상단에는 문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궁중 잔치 광경이 그려져 있다. 행사장에는 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녹색 혹은 청색 단령을 착용한 사람들이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다. 이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있으며 각자의 앞에 놓인 상에도 꽃이 놓여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도 단 위에 자리잡았으며 단 아래에 처용무 복장의 무용수들이 있다. 단 아래 좌우에는 무기를 든 무관들과 의장물을 든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 근처에 가마를 멘 이들과 白馬를 몰고 가는 이들이 있다. 화면 중앙의 문에 현판이 걸려 있으나 문의 이름은 씌어 있지 않다. 화면 하단에는 등간격으로 주선이 그어져 있어 좌목을 기록하기 위한 공간으로도 생각되나 아무런 내용도 씌어 있지 않다. 화면 하단의 좌측 가장자리에 1과의 圓形 인장과 2과의 方形 인장이 세로로 나란히 붉은색으로 날인되어 있다. 그림의 위쪽 가장자리와 우측에 걸쳐 화면 1/3 가량의 바탕천과 안료가 심하게 박락되어 그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나머지 부분도 부분적으로 박락되고 변색되었다.
인문(印文)은 각각 ‘□□壽南山’, ‘金命衡’, ‘保晩齋藏’이다. 김명형(1679-1736)은 조선 후기 문신이고, ‘보만재’는 역시 조선 후기 문신인 서명응(徐命膺)(1716-1787)의 호(號)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1710년(숙종 36)에 당시 공조좌랑(工曹佐郎)이었던 김명형이 경희궁(慶熙宮) 숭정전(崇政殿)에 열린 진연에 참석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묘사된 장면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숭정전진연도(崇政殿進宴圖)>(1710)나 ≪숭정전갑자진연도(崇政殿甲子進宴圖)≫(1744)의 장면과 매우 흡사하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진연도의 특징을 보인다.
▣본 저작물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e뮤지엄,www.emuseum.go.kr)

24.景賢堂受爵宴圖記
▣原本 書誌
-도서명 : 景賢堂受爵宴圖記
-이명칭 : 경현당수작연도기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재질 : 사직(絲織)-견(絹) / 비단에 먹
-작가 : 김상복 글(金相複 撰), 김홍도 그림(金弘道 畵)
-크기 : 126.5 x 53.0cm
-형태사항 : 2점
-소장품번호 : 신수 3856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영조대왕이 경현당에서 헌작의 예를 행한 내용 기록한 것이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경현당에서의 궁중 잔치'를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25.社稷壇國王親享圖屛風
▣原本 書誌
-도서명 : 社稷壇國王親享圖屛風
-이명칭 : 사직단국왕친향도병풍
-국적/시대 : 한국(韓國)-조선(朝鮮)
-재질 : 사직(絲織) / 비단에 채색
-작가 : 不明
-크기 : 127.0 x 50.0cm
-형태사항 : 8폭 병풍
-소장품번호 : 신수 12356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解題
궁중의 예법과 규모 등의 자세한 일의 경과나 경비 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여 꾸민 병풍을 '의궤도 병풍'이라 한다. 이 병풍은 모두 여덟 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왕이 친히 사직단에 나와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제사에 사용된 그릇 등의 그림 및 이에 대한 기록으로 꾸며져 있다. 제6폭은 위쪽에 의궤도를 그리고 아래쪽에 내용을 설명하였으며, 제7폭과 제8폭에는 의궤도가 없다. 이 병풍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사직단과 대제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사직단 국왕친향도 병풍'을 이용하였다.(출처 : 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책수에 따라 주문후 배송까지 1주일~보름 정도 소요됩니다.
비단배접지의 문양과 색상은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본의 상태에 따라 영인본의 인쇄가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본이 일부 缺失된 고서는 원본에 준하여 그대로 발행됩니다.
잘못된 책은 교환해드립니다.
 
 
 
 
 
상호명 : 학선재(學善齋) 사업자등록번호 : 206-92-90181 [사업자정보확인]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제2010서울노원0214호
[이용약관] [개인정보 취급방침] 개인정보담당자 : 박수준 대표 : 박수준
사업장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132길 9(논현동) 마루빌딩 1층 박선희한복(內)
工房●서울특별시 노원구 한글비석로14길 8, 210-1506
Copyright ⓒ 도서출판 학선재 All Rights Reserved. 02)453-1040(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