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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部1 > 05.禮類(예류) > 禮記(예기) >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개정중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개정중
상품명 :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개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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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冊(4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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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화표지 견본>                                                       <포갑 견본>

*서지(書誌)(원본 기준)
서명 : 禮記集說大全 
저자 : 陳澔 集說 
판사항 : 木板本 
간사자 : 刊寫者未詳 
형태사항 : 30卷18冊 ; 27.5 x 18.7 cm 
주기사항 : 序 : (元)陳澔

*목차(目次) 
禮記集說大全
一冊
 序
 凡例 
 總論 
 卷之一     曲禮上 
二冊
 卷之二     曲禮下 
三冊
 卷之三     檀弓上 
四冊
 卷之四     檀弓下 
五冊
 卷之五     王制
六冊
 卷之六     月令 
七冊
 卷之七     曾子問 
 卷之八     文王世子 
八冊
 卷之九     禮運 
 卷之十     禮器 
九冊
 卷之十一   郊特牲 
 卷之十二   內則 
十冊
 卷之十三   玉藻 
 卷之十四   明堂位 
十一冊
 卷之十五   喪服小記 
 卷之十六   大傳, 少儀 
十二冊
 卷之十七   學記 
 卷之十八   樂記 
十三冊
 卷之十九   雜記上
 卷之二十   雜記下 
十四冊
 卷之二十一 喪大記
 卷之二十二 祭法, 祭義 
十五冊
 卷之二十三 祭統, 經解 
 卷之二十四 哀公問, 仲尼燕居, 孔子間居 
十六冊
 卷之二十五 坊記, 中庸
 卷之二十六 表記
十七冊
 卷之二十七 緇衣, 奔喪, 問喪
 卷之二十八 服問, 間傳, 三年問, 深衣, 投壺 
十八冊
 卷之二十九 儒行, 大學, 冠義, 昏義, 鄕飮酒義 
 卷之三十   射義, 燕義, 聘義, 喪服四制 

*견본이미지 및 해제(解題)







<영인본 견본>

『예기』는 유학의 기본 경서인 오경(五經)의 하나로서 중국 周나라 말기 이후 漢나라 때까지의 각종 생활의례와 예절문화 및 유교 학설을 집록한 책. 사서오경 중 가장 방대하여 동양학의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명한 말은 바로 이 책의 49편 중의 한 편에 불과한 「대학」에 들어 있는 글이며「중용」또한 『예기』에 있는 한 편의 글에 불과하다. 이 외에 『악경』이라고도 하는「악기」등은 음악연구가에게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예기집설』이란 원나라의 진호(陳澔)가 『예기』에 대한 당시까지의 중요한 주석을 모아 이를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책으로서 『예기』에 관한 주석서로서는 가장 권위 있는 책이다. 이는 明나라의 호광(胡廣)이 『예기대전』을 편찬하면서 바로 진호의 『예기집설』을 기본 자료로 삼았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예기집설대전』이란 『예기대전』과 같은 책이다. 조선시대 정조, 순조 연간(1820)에 『예기대전』을 편찬하면서 『예기집설대전』이라고 제하였다.

『예기』는 총 49편(篇)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사서(四書) 중의 『대학(大學)』·『중용(中庸)』이 들어 있었다. 『예경(禮經)』이라고 하지 않고 『예기』라고 한 것은, 예(禮)에 관한 기록, 또는 주석(註釋)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 책은 주대(周代) 말기와 진한(秦漢) 시대 여러 유학자들의 고례(古禮)에 관한 학설들을 집록한 것으로서, 일명 『소대례(小戴禮)』 또는 『소대례기(小戴禮記)』라고도 한다.

『예기』의 성립에 대해서는 그 설이 일정치 않다. 공자(孔子)는 3대(三代:夏·殷·周) 이래의 문물제도·의례(儀禮)· 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공자가 죽은 후 각국으로 흩어져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이 예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생전의 스승에게서 들은 가르침, 학설, 스승과 나눈 대화 등을 문자로 정착시켰고, 다시 그것을 그들의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그 후에 제자의 제자 또는 그 문류(門流) 후학들에 의해 기록된 예설(禮說)들이 늘어나서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2백여 편이나 되었다.
이 때에는 전문적으로 예학(禮學)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게 되었으며,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은 그 중 흩어져 있는 예설들을 수집·편찬하였다. 대덕은 대대(大戴)라 일컬어지고, 대성은 소대(小戴)라 일컬어진다. 대덕과 대성은 숙질간으로 대덕이 대성의 숙부가 된다. 두 사람 다 선제(宣帝:B.C.50년 경) 때 학자인 후창(后倉)의 학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한대(漢代) 정현(鄭玄)의 『육예론(六 藝論)』에는 “지금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禮)는 대덕과 대성의 학(學)이다. 대덕은 기(記) 85편을 전했으니 곧 대대례(大戴禮)이고, 대성은 예 49편을 전했으니 곧 예기(禮記)이다”라고 해서 『예기』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즉 대덕의 85편은 『대대례기』, 대성의 49편은 『소대례기』로 일컬어지며, 정현이 『주례(周禮)』·『의례(儀禮)』와 함께 『소대례기』에 주석을 붙여 삼례(三禮)라 칭하게 된 후로 『소대례기』가 『예기』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대대례기』는 산일(散逸)되어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40편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대대례기』 85편에서 49편을 정리 편찬한 것이 『소대례기』인지, 아니면 이 두 책이 각각 별개로 편찬되어 전승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학자들은 대개 후자로 본다. 또한 대성이 산삭(刪削)한 것이 46편이었으며, 그 뒤 한말(漢末) 마융(馬融)이 그것에 다시 『월령(月令)』·『명당위(明堂位)』·『악기(樂記)』 세 편을 보태 49편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각 편의 작자(作者)에 대해서도 여러 유학자의 예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예컨대 『치의(緇衣)』는 공손니자(公孫尼子)가 찬술(撰述)하였고, 『중용(中庸)』은 자사(子思)의 저술이며, 『월령(月令)』은 여불위(呂不韋)가 수정한 것, 『왕제(王制)』는 한나라 문제(文帝) 때 박사(博士)의 찬록(撰錄)이며, 『악기』는 순경(荀卿), 또는 하간헌왕(河間獻王)·모생(毛生) 등의 저작이고, 『대학(大學)』은 증자(曾子)가 전한 것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확실한 근거는 없으며, 나머지 편들은 더욱 그렇다. 그 내용은 여러 사람의 기록을 모은 것이므로 체계가 없고 번잡하며 편차의 배열도 일정한 원칙이 없다.
따라서 이를 체계적으로 유별로 분류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은 『별록(別錄)』에서 『예기』를 10가지 로 분류해서 ① 통론(通論)에 해당하는 편은 『단궁상(檀弓上)』·『단궁하(檀弓下)』·『예운(禮運)』·『옥조(玉藻)』·『대전(大傳)』·『학기(學記)』·『경해(經解)』·『애공문(哀公問)』·『중니연거(仲尼燕居)』·『공자한거(孔子閑居)』·『방기(坊記)』 ·『중용(中庸)』·『표기(表記)』·『치의(緇衣)』·『유행(儒行)』·『대학(大學)』, ② 제도(制度)를 내용으로 한 편은 『곡례상(曲禮上)』·『곡례하』·『왕제(王制)』·『예기(禮器)』·『소의(小儀)』·『심의(深衣)』, ③ 명당음양기(明堂陰陽記)에 관해서는 『월령(月令)』·『명당위(明堂位)』, ④ 상복(喪服)에 관한 기록은 『증자문(曾子問)』·『상복소기(喪服小記)』·『잡기상(雜記上)』·『잡기하』·『상대기(喪大記)』·『분상(奔喪)』·『문상(問喪)』·『복문(服問)』·『한전(閒傳)』·『삼년문(三年問)』·『상복사제(喪服四制)』, ⑤ 세자법(世子法)은 『문왕세자(文王世子)』, ⑥ 자법(子法)은 『내칙(內則)』, ⑦ 제사(祭祀)에 관해서는 『교특생(郊特牲)』·『제법(祭法)』·『제의(祭義)』·『제통(祭統)』, ⑧ 길례(吉禮)로는 『투호(投壺)』·『향음주의(鄕飮酒義)』, ⑨ 길사(吉事)로는 『관의(冠義)』·『혼의(昏義)』·『사의(射義)』·『연의(燕義)』·『빙의(聘義)』, ⑩ 악기(樂記)로 『악기(樂記)』 등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양계초(梁啓超)는 5가지로 분류해서 ① 예의 의미 및 학술에 대한 통론, ② 의례에 대한 해석, ③ 공자와 그 제자 및 당시 사람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것, ④ 고대의 제도와 그에 대한 고증 내용, ⑤ 격언을 기록한 것이라고도 하였다.
『예기』를 통해서 유교에서 예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으며, 특히 여기에서는 예가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적인 원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유교가 추구하는 이상사회의 모델이 담겨져 있는데, 그것은 만민의 신분적 평등과 재화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인륜의 구현을 특징으로 하는 대동세계 (大同世界)이다.『예운』에서는 "대도(大道)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하게 된다. 어진 적이 있는 자나 재능이 있는 자는 뽑고, 믿음을 가르치고 화목함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어버이만을 친애하거나 자기의 자식만을 친애하지 않게 된다. 노인은 안락하게 삶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충분히 자기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며, 어린이는 안전하게 자랄 수 있고, 홀아비·과부·부모 없는 고아·자식 없는 외로운 사람과 병든 사람들이 모두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에게는 시집을 갈 곳이 있다. 재물을 땅에 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힘이 있어도 자기만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간사한 모의는 닫혀져서 생겨나지 않고, 도절란적(盜竊亂賊)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바깥문을 닫지 않고 안심하고 생활한다.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기초한 대동사상은 동양인들 모두에게 보편적 이상사회로 자리하였으며,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특히 청말(淸末)의 강유위 (康有爲)는 대동세계가 공자의 이상적인 사회제도이며, 『춘추(春秋)』의 태평세(太平世)가 곧 대동이라고 하였다. 대동사상은 안인사상(安人思想)·균화사상(均和思想)과 함께 유교의 3대 사회사상 중의 하나이다. 나중에 사서로 독립된 『대학』이나 『중용』은 말할 것도 없고, 『학기』에서는 유교의 교육이론을 밝혀 주고 있으며, 『악기(樂記)』는 유교 예술철학의 정수를 밝혀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곡례』·『내칙』·『소의』 등 여러 편에서는 일상생활의 행위규범을 기록하고 있다.
『예기』는 고금을 통해서 수많은 주석(註釋)이 있다. 그 중 정현의 주석이 가장 먼저 권위를 인정받았다. 정현은 『예기』를 주석하면서 아주 신중하고 엄밀한 학문적 자세를 취했다. 그는 원전(原典)을 존중했으며, 잘못임이 분명한 대목일지라도 원문의 글자를 고치는 법이 없이 주석으로 자세하게 지적해 두는 데 그쳤다. 이러한 정현의 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당대(唐代)의 공영달(孔穎達) 같은 학자는 "예(禮)는 바로 정학(鄭學)이다"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공영달은 당태종(唐太宗)의 명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수하면서 정현의 주를 바탕으로 웅안생(熊安生)·황간(皇侃)의 의소(義疏)를 참작해 독자적인 정리를 하였다.
이후로 예기는 정주공소(鄭注孔疏)라 해서 정현의 주와 공영달의 소가 원전 못지 않게 존중되었다. 대표적인 주석서나 참고서로는 『예기정의』를 비롯하여 송대(宋代) 위식(衛湜)의 『예기집설(禮記集說)』, 원대(元代) 오징(吳澄)의 『예기찬언(禮記纂言)』, 진호(陳澔)의 『운장예기집설(雲莊禮記 集說)』, 청대(淸代) 항세준(杭世駿)의 『속위씨예기집설(續衛氏禮記集說)』, 만사대(萬斯大)의 『예기우전(禮記偶箋)』, 강영(江永)의 『예기훈의택언(禮記訓義擇言)』·『심의고오(深衣考誤)』, 방포(方)의 『예기석의(禮記析疑)』, 초순(焦循)의 『채옹월령장구(蔡邕月令章句)』, 호배휘(胡培)의 『연침고(燕寢考)』, 혜동(惠棟)의 『명당대도록(明堂大道錄)』 등이 있다. 『예기』의 판본은 원문『經文』만을 수록한 것, 원문과 주석을 합록한 20권 본(本), 정의(正義)만 수록한 단소본(單疏本) 70권, 원문·주·소를 모두 수록한 63권 본 등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명대(明代) 호광(胡廣) 등이 칙명(勅命)을 받아 찬정(撰定)한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 30권이 널리 읽혀지고 판각(板刻)도 되었다. 이는 원래 『오경대전』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는 판본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 『예기』가 어느 때 전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의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이나 『주서(周書)』 등에 "서적으로는 오경(五經)이 있다"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수용된 듯하며, 통일신라 이후로는 관리 등용시험에 필수과목이 되는 수가 많았다. 우리 나라에서 저술된 예기 관계 문헌으로는 『예기대문언독(禮記大文諺讀)』과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이 유명하다. 『예기천견록』은 고려말 권근(權近)의 14년에 걸친 연구의 결실로서, 우리 나라에서의 첫 번째 『예기』 주석서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예학의 흥성과 함께 뛰어난 학자들에 의한 수많은 연구와 주석서가 이루어졌다. 『예기대문언독』은 예기에 국문으로 토를 달아 영조 43년(1767)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한 책으로서, 책 끝에 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 등이 서로 토론하여 토를 달았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밖에 김재로(金在魯)의 『예기보주(禮記補註)』, 박성원(朴聖源)의 『예기류집(禮記類輯)』 등이 있다.
고대에 예의 영역은 국가의 통치제도에서부터 사회적 도의 규정, 개인적 수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였다. 따라서 통치의 수단이며 동시에 교화의 방법이었던 예를 기술한 이 『예기』는 유교적 예치주의(禮治主義)를 선양해 주는 것으로서 중시되었으며, 그 영향은 『주례(周禮)』나 『의례(儀禮)』보다 더욱 큰 것이었다. 곧 『예기』는 중국의 전국시대·진한 시기 유교사상이나 사회사상을 연구하는 데는 필독서이며, 유교의 예치주의·예 사상을 아는 데에도 기본이 되는 책이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우리의 생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사이즈 : 정본 A4(28.5 x 20cm) / 문고본 B5(25 x 17cm) [일부 품목 예외]
*인쇄용지 : 전통한지인 순지에 인쇄하여 원본의 질감을 살렸습니다.[일부 예외]
*능화표지 : 한지에 능화문양을 입혀 옛책처럼 표지를 재현하여 제작됩니다.
*비단표지 : 비단천으로 제본하여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사정에 따라 비단의 색상과 문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포갑추가 : 포갑은 별도 품목으로 주문시 [포갑추가]를 하면 맞춤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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