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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類(문집류) : 1,262종 > 신활자본-서명별 > [나]서명[신활자본] : 66종(비단표지)

 
[나]서명[신활자본] : 66종(비단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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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 서명별 > 나 : 66종    *새창으로 보기
책번호 [나]서명 저자 권책수 포갑수 판본소장처
나001 나산집(蘿山集) 조유선(趙有善, 1731~1809)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2 나와집(懶窩集) 기언정(奇彦鼎, 1716~1797) 4책 1개 7대손 기세익(奇世翊) 소장본
나003 나은집(懶隱集) 이동표(李東標, 1644~1700) 6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4 나재집(懶齋集) 채수(蔡壽, 1449~1515)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5 나재집(懶齋集) 신열도(申悅道, 1589~1659) 4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06 낙서집(洛西集) 장만(張晩, 1566~1629)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07 낙애유고(洛涯遺稿) 김안절(金安節, 1564~1632)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8 낙재집(樂齋集) 서사원(徐思遠, 1550~1615) 4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09 낙전당집(樂全堂集) 신익성(申翊聖, 1588~1644)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0 낙정집(樂靜集) 조석윤(趙錫胤, 1606~1655)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1 낙촌집(洛村集) 이도장(李道長, 1603~1644) 1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12 낙하생집(洛下生集) 이학규(李學逵, 1770~1835) 20책 4개 일본 천리대학도서관
나013 난국재집(蘭菊齋集) 이예환(李禮煥, 1772~1837)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4 난설헌시집(蘭雪軒詩集) 허초희(許楚姬, 1563~1589)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5 남간집선(南磵集選) 나해봉(羅海鳳, 1584~1638)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16 남계집(南溪集) 박세채(朴世采, 1631~1695) 56책 1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7 남계집(藍溪集) 표연말(表沿沫, 1449~1498) 2책 1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18 남당집(南塘集) 한원진(韓元震, 1682~1751) 22책 4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19 남명집(南冥集) 조식(曺植, 1501~1572) 3책 1개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20 남악집(南岳集) 조종저(趙宗著, 1631~1690)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1 남양시집(南陽詩集) 백분화(白賁華, 1180~1224) 1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22 남창잡고(南窓雜藁) 김현성(金玄成, 1542~1621)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3 남천집(南川集) 권두문(權斗文, 1543~1617)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24 남촌집(南村集) 송이석(宋履錫, 1698~1782)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25 남충장공시고(南忠壯公詩稿) 남연년(南延年, 1653~1728) 1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6 남파상국집(南坡相國集) 심열(沈悅, 1569~1646)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7 남파집(南坡集) 홍우원(洪宇遠, 1605~1687)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28 남포집(南圃集) 김만영(金萬英, 1624~1671) 6책 1개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외
나029 내암집(來庵集) 정인홍(鄭仁弘, 1536~1623) 7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0 내재집(耐齋集) 홍태유(洪泰猷, 1672~1715)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1 내헌집(耐軒集) 이재영(李在永, 1804~1892)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32 냉천유고(冷泉遺稿) 박종여(朴宗輿, 1766~181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33 노가재집(老稼齋集) 김창업(金昌業, 1658~1721)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4 노계집(蘆溪集) 박인로(朴仁老, 1561~1642)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5 노백헌집(老柏軒集) 정재규(鄭載圭, 1843~1911) 27책 6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36 노봉집(老峯集) 민정중(閔鼎重, 1628~1692) 6책 1개 고려대 중앙도서관,연세대 중앙도서관
나037 노사집(蘆沙集) 기정진(奇正鎭, 1798~1879) 17책 3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38 노서유고(魯西遺稿) 윤선거(尹宣擧, 1610~1669) 13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39 노암집(魯庵集) 김종일(金宗一, 1597~1675) 2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40 노애집(蘆厓集) 유도원(柳道源, 1721~1791)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41 노우집(魯宇集) 정충필(鄭忠弼, 1725~1789) 3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42 노은집(老隱集) 임적(任適, 1685~1728) 2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3 노주집(老洲集) 오희상(吳常, 1763~1833) 14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44 노주집(蘆洲集) 김태일(金兌一, 1637~1702)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45 노촌집(老村集) 임상덕(林象德, 1683~1719) 5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46 녹리집(里集) 고성겸(高聖謙, 1810~1886) 7책 2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47 녹문집(鹿門集) 임성주(任聖周, 1711~1788) 13책 3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48 농려집(農廬集) 강헌규(姜獻奎, 1797~1860) 5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49 농산집(農山集) 신득구(申得求, 1850~1900) 5책 1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나050 농수집(農叟集) 최천익(崔天翼, 1712~1779)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51 농암집(農巖集) 김창협(金昌協, 1651~1708) 22책 5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52 농암집(聾巖集) 이현보(李賢輔, 1467~1555) 4책 1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성균관대학교
나053 농은유고(農隱遺稿) 윤추(尹推, 1632~1707)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54 농포집(農圃集) 정문부(鄭文孚, 1565~1624)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55 뇌계집(㵢谿集) 유호인(兪好仁, 1445~1494) 2책 1개 일본 존경각
나056 뇌연집(雷淵集) 남유용(南有容, 1698~1773) 15책 3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57 누실집(陋室集) 이중연(李重延, 1711~1794) 2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58 눌암집(訥菴集) 박지서(朴旨瑞, 1754~1819) 4책 1개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나059 눌와집(訥窩集) 이약렬(李若烈, 1765~1836) 4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60 눌은집(訥隱集) 이광정(李光庭, 1674~1756) 11책 2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61 눌재집(訥齋集) 양성지(梁誠之, 1415~1482) 3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62 눌재집(訥齋集) 박상(朴祥, 1474~1530) 6책 1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나063 눌헌집(訥軒集) 서성구(徐聖, 1663~1735) 3책 1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나064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장헌세자(莊憲世子, 1735~1762) 3책 1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나065 능허집(凌虛集) 박민(朴敏, 1566~163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나066 능호집(凌壺集) 이인상(李麟祥, 1710~1760) 2책 1개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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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문집 : 1,262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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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산집(蘿山集) | 조유선(趙有善, 1731~180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나산(蘿山) 조유선(趙有善, 1731~180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후손과 문인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49년 정고본(定稿本)을 완성하고 1858년 저자의 손자 정휴(鼎休)가 묘표(墓表)를 추록하여 1859년 가을에 12권 4책의 인행을 완료하였다. 본집은 12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이 있고,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8~9는 잡저(雜著)이다. 1799년에 지은 <향약조례(鄕約條例)>, 전정(田政), 군제(田政), 조적(糶糴) 등 8가지 시무에 대해 고전(古典)을 근거하여 지은 <시무책(時務策)>, 전제(田制), 찰민정(察民情), 명농법(明農法) 등 농정의 8가지 폐해를 열거하여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의응지농정책(擬應旨農政策)>, 고려 태조가 개성으로 정도(定都)한 이후 수성한 내력을 적고 지금은 황폐해져버린 반월성(半月城)을 국가의 방어적 차원에서 다시 수축해야 함을 논한 <고도수성론(故都修城論)> 등이 있다. 권12는 부록이다. 아우 유헌(有憲)이 지은 행장, 홍직필(洪直弼)이 지은 묘지명, 부록습유(附錄拾遺)로 저자의 손자 정휴가 지은 묘표가 실려 있다.
▶나와집(懶窩集) | 기언정(奇彦鼎, 1716~1797)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7대손 기세익(奇世翊) 소장본
조선 시대 나와(懶窩) 기언정(奇彦鼎, 1716~17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학중(學中)은 가장을 지어 행적을 정리하고, 1911년 7대손 세철(世哲)과 후손 관섭(觀燮)은 송병순(宋秉珣)의 서문을 받고 이듬해 1912년 5대손 동필(東弼)과 족질 헌섭(憲爕)이 방손 기동준(奇東準)의 발문을 받아 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10권 4책이다. 권수에는 송병순이 1911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의 앞에 권1~3의 목록이, 권4 앞에 권4~5의 목록이, 권6 앞에 권6~7의 목록이, 권8 앞에 권8~10의 목록이 있다. 제목에 나오는 이름이 상당수 자(字)로 호칭되고 있어 대상 인물의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이 중에서 <북관록(北關錄)> 19수 중의 <황제총(皇帝冢)>은 송(宋)나라 휘종(徽宗)의 것으로 전해지는 회령(會寧) 운두산성(雲頭山城) 아래의 어느 무덤을 소재로, 가을날 무덤의 퇴락한 풍경에서 한때 풍류를 즐기던 일국의 황제가 이국의 땅에서 외로이 숨을 거두게 된 사연을 떠올리며 감상에 잠기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저자의 방손 동준과 5대손 동필이 1912년에 지은 발이 있다.
▶나은집(懶隱集) | 이동표(李東標, 1644~170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 1644~170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한응(漢膺)과 5대손 형상(衡相)이 남아 있는 시문들을 수습하여 원집 5책, 속집 1책으로 정리하였고, 한응(漢膺)과 형상(衡相)이 몰한 후인 1880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9권, 속집 2권 합 6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의 권수에는 허전(許傳)의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詩)로, 대체로 시기별로 편차되어 권1에는 출사하기 전의 작품들이, 권2에는 출사한 이후의 작품들이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중에서 <수전종교행(水田種蕎行>은 시골 노인의 이야기에 빗대어 장부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말하였고, <풍악로차최상사운(楓嶽路次崔上舍韻)>부터 <숙해상(宿海上)>까지 시들은 저자가 1690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지은 작품들이다. 권3은 소(疏), 차(箚), 계(啓), 전(箋)이고 권4는 서(書)이다. 권5~6은 서(序), 기(記),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 행록(行錄) 등이고 권7~9는 부록(附錄)이다. 속집은 시문과 서(書)가 수록된 권1~2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재집(懶齋集) | 채수(蔡壽, 1449~1515)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초기 나재(懶齋) 채수(蔡壽, 1449~151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현손 채유린(蔡有隣)이 1568년 유고(遺稿)를 모아 편집ㆍ간행하였으나 전하지 않고, 그 후 후손 채지윤(蔡之沇)이 구본(舊本) ≪나재집≫에 지문(誌文)ㆍ연보(年譜)ㆍ세론(世論) 등을 덧붙여 목판으로 중간본을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이 중간본을 교정하고 보판(補板)한 후쇄본이다. 본집은 문 1권과 시 1권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수록된 이순형(李純亨)의 <인천세고서(仁川世稿序)>에서는 나재ㆍ졸재(拙齋)ㆍ휴암(休巖)으로 전해온 인천 채씨(仁川蔡氏)의 문장 가업(文章家業)에 대해 기술하였다. 본집 권1에는 <독학부(獨鶴賦)> 1편과 기(記) 7편, 김심(金諶)의 신도비명, 임사홍(任士洪)ㆍ김수온(金守溫)을 탄핵하는 내용의 <홍문관예문관합사상소(弘文館藝文館合司上疏)>, 강희맹(姜希孟)의 행장, 박흔(朴昕)의 묘지문, 대책문(對策問) 3편이 실려 있고, 장편 기행문인 <유송도록(遊松都錄)>이 있다. 권2의 시집에는 약 200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송경ㆍ금강산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과 선위사ㆍ성절사 때 지은 작품이 많다.
▶나재집(懶齋集) | 신열도(申悅道, 1589~165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나재(懶齋) 신열도(申悅道, 1589~1659)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9세기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9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권마다 목록이 있다. 권1은 시로, 서장관으로 부경할 때 상사 송극인(宋克訒)과 수창한 시 및 사행 중 각처에서 소회를 읊은 시가 가장 많다. 권2는 교서, 사제문, 소, 계이다. 그중에서 <청물견신사잉자핵계(請勿遣信使仍自劾啓)>에서는 강화 사신을 보내지 말 것을 주장한 정온(鄭蘊)을 옹호하고 간관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체직을 청하였다. 권3은 <조천시문견사건계(朝天時聞見事件啓)>로, 서장관이 되어 1628년 7월 11일 사조하고 해로로 부경하여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권4는 명(明)나라의 도독 모문룡(毛文龍), 등주 군문, 예부(禮部)에 올린 정문(呈文)이고 권5는 서(書)이고, 권6은 잡저, 서(序), 발(跋), 상량문, 축문이고 권7은 제문과 묘표지이다. 권8은 행장이고, 권9는 부록으로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행장과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묘지가 있다.
▶낙서집(洛西集) | 장만(張晩, 1566~162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낙서(洛西) 장만(張晩, 1566~1629)의 문집이다. 본집은 족현손 보현(普顯)이 저자의 증손 세광(世光)과 함께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장보현(張普顯)의 종자 붕익(鵬翼)의 협조를 받아 1730년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이의현(李宜顯)이 1730년에 지은 서문이 있고, 목록이 권마다 실려 있다. 권1은 시(詩)로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배율, 오언고시 등이 시체별로 수록되었고, 권2와 권3은 소(疏)와 차(箚)인데 주로 지방관 재직 시에 지역의 상황을 아뢴 것부터 국사에 대한 건의, 사직상소 등이다. 권4는 계사, 의(議), 장계, 기행, 서(書)이다. 계사는 대부분 군병과 병량을 마련했다고 보고하는 내용이다. 권5~7은 부록으로, 권5는 행장을 비롯하여 묘지명, 묘표음기, 만사 등이며, 권6은 서행증언(西行贈言)으로 1623년 4월에 도원수가 되어 서행할 때 여러 사람들이 지어 준 글을 기록한 것이다. 권7은 서정록(西征錄)으로 김기종(金起宗)이 이괄(李适)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권말에 장보현이 1730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낙애유고(洛涯遺稿) | 김안절(金安節, 1564~1632)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낙애(洛涯) 김안절(金安節, 1564~1632)의 문집이다. 본집은 5대손 김인준(金仁俊)이 종가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한 후, 인준(仁俊)의 아들 제묵(濟默)이 7대손 익현(益顯)과 다시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801년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2권, 부록(附錄) 합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유한준(兪漢雋)이 지은 서문이 있으며, 목록은 권별로 실려 있다. 권1은 부(賦)와 시(詩)인데, 그중에서 <술회봉정인리제군자(述懷奉呈仁里諸君子)>는 임진왜란 때의 참혹한 상황, 모친을 모시고 온계(溫溪)로 피란한 일, 나랏일에 대한 걱정 등을 나타낸 부(賦)이며, <연악연구(淵嶽聯句)>는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김원진(金遠振), 김지복(金知復) 등 11명과 모여 읊은 연구이다. 권2는 서(序), 제문(祭文), 행장(行狀), 잡저(雜著)이다. 부록은 사실(雜著), 김도(金濤)가 지은 행장, 신석번(申碩蕃)이 지은 묘표, <화암서원사적(花巖書院事蹟)>이고, 권말에는 1801년에 6세손 김제묵(金濟默)이 지은 발문과 김근순(金近淳)이 지은 제후(題後)가 수록되어 있다.
▶낙재집(樂齋集) | 서사원(徐思遠, 1550~161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들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목판으로 초간한 후, 후손 택렬(宅烈)이 증보ㆍ재편하여 1843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며, 원집 7권, 연보 3권, 부록 합 4책이다. 권수에 박광석(朴光錫)과 서인순(徐麟淳)이 1843년에 지은 중간서와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서 시체별로 편차되고, 각각 연대순으로 실려 있는데, 차운시와 경물을 읊은 시가 많다. 권2는 시(詩), 장편, 만사, 부이다. 시는 칠언사운이고 장편은 칠언이며, 차운시가 많은 편이다. 권3~4는 서(書)인데, 대부분 정구에게 올린 편지와 체찰사나 방백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권5는 묘갈, 비문, 제문, 축문이고 권6~7은 잡저이다. 그 중에서 <공부차록(工夫箚錄)>은 공부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인도(仁圖), 구인도(求仁圖) 등의 도상이 붙어 있다. 연보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권1은 연보이고, 권2~3은 연보의 부록이다. 행록, 묘갈명, 상량문, 이강서원에 봉안하는 글 등이 있고, 부록은 척독으로 정구(鄭逑), 김우옹(金宇顒), 이호민(李好閔), 정경세(鄭經世)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낙전당집(樂全堂集) | 신익성(申翊聖, 1588~1644)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자편 초고(自編草稿)를 바탕으로 저자의 아들 신면(申冕), 신최(申最) 등이 수습, 편정(編定)하여 1650년을 전후해서 ≪낙전당고(樂全堂稿)≫ 26권과 ≪낙전당속고(樂全堂續稿)≫ 17권으로 사본(寫本)을 만든 다음, 1654년 이민구(李敏求)의 산정(刪定)을 거쳐 1681년경에 저자의 외손 김석주(金錫胄)가 활자로 간행하였다. 본 문집은 15권 7책으로 되어 있다. 시 가운데<오자시(五子詩)>는 정홍명(鄭弘溟), 최명길(崔鳴吉), 장유(張維), 박미(朴瀰), 이명한(李明漢) 등을, <십자편(十子篇)>은 앞의 5인을 포함하여 이식(李植), 이민구(李敏求), 정백창(鄭百昌), 등을 읊은 것이다. 서(序)로는 송서(送序), ≪청허당집(淸虛堂集)≫ 등 문집의 서문, 수서(壽序), 증서(贈序) 등이 있다. 기(記)로는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개혁을 주도하다 기사사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한 김식(金湜)의 사당에 대한 기문인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이 있다. 당시의 풍물과 시무(時務), 정사(政事)에 대한 내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낙정집(樂靜集) | 조석윤(趙錫胤, 1606~1655)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낙정(樂静) 조석윤(趙錫胤, 1606~1655)의 문집이다. 문인 제자들이 가장(家藏)되어 오던 시문을 수습, 편차하여 간행을 준비한 것을 저자의 처조카인 민시중(閔蓍重)이 1670년경 14권 7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시는 1636년 영남을 순검(巡檢)할 적에 지은 것, 1637년 호란(胡亂)을 겪은 뒤의 심경을 적은 것, 1639년 진주 목사(晉州牧使) 시절 지은 것, 등이 실려 있는데, 특히 유배 시절이나 한가로이 거할 때 지은 차운시가 많다. 책교문(冊敎文)에는 1651년 대제학으로서 지은 <인열왕후추상휘호옥책문(仁烈王后追上徽號玉冊文)> 등이 실려 있다. 소(疏) 중에는 정묘호란 이후 자강(自强)에는 힘쓰지 않고 피폐(皮幣) 등으로 화친만을 일삼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정예병을 양성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을 주장하며 올린 것들이 있다. <응지진언차(應旨進言箚)> 등의 차(箚)와 내수사 노비의 진고(陳告) 문제, 공물 방납(防納)의 문제, 김자점(金自點)의 원찬(遠竄) 문제 등을 진달한 계사가 실려 있다.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치며 국가의 안보를 지키려 했던 저자의 고민과 노력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낙촌집(洛村集) | 이도장(李道長, 1603~164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 1603~1644)의 문집이다. 본집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숙종 연간 이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시(詩), 소(疏), 전(箋), 정문(呈文), 서(序)이다. 시는 최현(崔晛), 김령(金坽), 정경세(鄭經世) 등을 애도한 만시와 이신언(李愼彦), 최항경(鄭經世) 등의 시에 차운시, 홍주일(洪柱一), 임진부(林眞怤)에게 준 증시 등과 1641년에 신병으로 사직하면서 ‘황극(皇極)’과 ‘대지(大志)’를 세워 중흥의 기틀을 다질 것을 아뢴 <사헌납소(辭獻納疏)>, 팔거현(八莒縣)을 대구부(大邱府)에 예속시키지 말기를 청한 내용으로 올린 소(疏)와 정문 등이다. 권2는 기(記), 축문, 제문, 묘지, 비음, 행장이고 그중에서 <사시헌기(四時軒記)>는 1607년에 성주 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송영구(宋英耈)를 기리며 1643년에 지은 기이다. 권3은 부록으로, 1674년에 허목(許穆)이 지은 묘비명, 1657년에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 장남 원정(元禎)이 지은 가장과 장응일(張應一), 김수현(金壽賢) 등이 지은 만사, 제문 등이다.
▶낙하생집(洛下生集) | 이학규(李學逵, 1770~1835) | 권책수 : 20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일본 천리대학도서관
조선 시대 낙하생(洛下生)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여러 종의 사본(寫本)을 수집(蒐集)하여 저술(著述)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집한 본으로, 불분권(不分卷) 20책으로 되어 있다. 책1은 춘성당집(春星堂集)과 죽수집(竹樹集)으로 소회를 읊은 서정시(敍情詩)가 많다. 책2는 삼 재배에 관한 농서(農書)인 삼서(蔘書)이다. 책3~5는 인수옥집(因樹屋集)으로, 김해부(金海府) 주변에서 채집한 고시(古詩), 가요(歌謠), 잡체(雜體) 등이 실려 있다. 책6은 영남악부(嶺南樂府)로, 영남에 관련된 사건(事件)과 인물을 소재로 68장의 서사시(敍事詩)를 지어 엮은 것이다. 책7~10도 인수옥집(因樹屋集)으로, 주변에서 수집한 민요(民謠), 증시(贈詩) 등이 들어 있다. 책11에는 <월식설(月食說)>, <성운설(聲韻說)> 등이 실려 있다. 책14~15는 문의당집(文漪堂集)으로 <조석설(潮汐說)>, <전론(錢論)> 등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문물과 제도와 역사(歷史)와 풍속(風俗)에서부터 천문학(天文學)과 음운학(音韻學)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연구 성과를 살필 수 있으며, 기층민에 대한 깊은 관심을 느낄 수 있는 자료이다.
▶난국재집(蘭菊齋集) | 이예환(李禮煥, 1772~183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난국재(蘭菊齋) 이예환(李禮煥, 1772~1837)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기표(基鑣)는 하백원(河百源)을 찾아가 정정(訂正)을 부탁하여 유고를 4권으로 산정하고 발문을 받았으며, 김면근(金勉根)에게 고정(攷訂)과 함께 후서(後序)를 받았다. 저자의 손자 규현(奎鉉)이 홍직필(洪直弼)로부터 서문을 받았는데, 문집도 이무렵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홍직필이 1851년에 지은 서(序)와 김면근(金勉根)이 1849년에 지은 후서(後序)가 있으며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권4는 제문(祭文), 서(序), 발(跋), 잡저(雜著), 행장(行狀), 묘표(墓表), 전(傳)이다. 잡저는 ≪대학장구≫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한 <대학퇴기(大學退記)>, 문하의 학인들이 지켜야할 것을 13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한 <수안서사약속(洙岸書社約束)>, 자신의 재호(齋號)의 의미를 풀이한 <난국재기(蘭菊齋記)> 등이 있다. 전은 기이한 호를 가진 이황(李鎤)이라는 선비에 대해 쓴 <병부전(病夫傳)>이다. 말미에는 김석주의 행장이 첨부되어 있다. 권말에 하백원의 발이 있다.
▶난설헌시집(蘭雪軒詩集) | 허초희(許楚姬, 1563~1589)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3~1589)의 시집이다. 동생 허균(許筠)이 지은 발문(跋文)에 의하면, 저자의 시문은 매우 많았지만 유명(遺命)에 따라 소각하였고, 전하는 것은 모두 허균이 평소 암송한 것을 기록하여 편집한 것이라 한다. 시(詩)는 시체별(詩體別)로 총 49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이백(李白)의 악부체(樂府體)의 시들을 변형시켜 창작한 것이 있고, 혼인 초에 공부하는 남편 김성립(金誠立)과 떨어져 살아야 했을 뿐 아니라 금슬도 좋지 못해 느낀 불행한 심정을 읊은 내용이 있으며,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어미의 슬픔을 노래한 것과 오빠 허봉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읊은 내용이 있는데,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선경(仙境)의 이상향(理想鄕)을 읊은 내용이 주로 차지한다. 저자의 뛰어난 능력은 인정하지만 저자의 시를 암송하여 편찬한 동생 허균이 고인(古人)의 시나 명(明)나라 시인의 시를 표절하거나 위작(僞作)하였다는 논란도 많다. 이 문집에 실린 작품이 모두 저자의 작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지만 섬세한 감성을 아름다운 필치로 노래한 작품들이 많아 한시(漢詩) 연구 자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남간집선(南磵集選) | 나해봉(羅海鳳, 1584~163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남간(南磵) 나해봉(羅海鳳, 1584~1638)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저자가 1634년 중자 휴(休)를 시켜 수집(蒐集)하고 선사(繕寫)한 자편고(自編稿)에 6대손 학신(學愼)이 행장(行狀)과 묘표(墓表) 등 부록(附錄)을 추가(追加)하여 1799년 목판(木板)으로 간행(刊行)하였다. 본집은 1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卷頭)에 저자가 1634년에 쓴 자서(自序)가 있고, 그 뒤에 목록(目錄)이 있다. 권1의 앞부분은 시(詩)가 시체별(詩體別)로 이루어져 있고, 그 내용은 일상적인 감회(感懷)나 물상(物像)에 대한 감흥시(感興詩) 외에도 호란(胡亂)과 관련하여 비분강개(悲憤慷慨)한 내용의 시(詩)들이 있다. 권1의 뒷부분은 1624년에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이 소식을 듣고 2월에 임연(林堜)을 의장(義將)으로 삼아 도내(道內)에 창의(倡義)할 것을 호소(呼訴)하는 <토역괄모의격(討逆适募義檄)>과 서(序), 기(記), 전(傳), 상량문(上樑文)으로 구성된 문(文)과 잠(箴), 행장(行狀), 묘표(墓表)이다. 권말(卷末)에는 1799년에 쓴 임육(任焴)의 서(序)와 이동식(李東埴)의 발(跋)이 실려 있다.
▶남계집(南溪集) | 박세채(朴世采, 1631~1695) | 권책수 : 56책 | 포갑수 : 1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간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1732년 초에 조현명이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의 목판본 간행을 완료하여 봉진한 것으로 보인다. 정집의 시는 470여 제이다. 이지겸, 송시열 등과 차운한 시와 만시, 애시 등이 있다. 소(疏) 중에 <정주경연고사(程朱經筵故事)>는 정자와 주자가 경연 및 주대와 관련하여 올린 차자나 주장(奏狀) 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덧붙여 놓은 것이고, <진시무만언소(陳時務萬言疏)>는 시무에 대해 12조항으로 방안을 개진한 내용이다. 서(書)는 <문답논사(問答論事)>와 <강학논예(講學論禮)>로 나누어 편차하였다. 잡저로는 <성학지행로맥(聖學知行路脈)> 등을 도(圖)로 그리고 설명을 붙인 것, 정주퇴율(程朱退栗)의 성리학설과 육학 등에 관해 적은 <편록(編錄)> 등이 있다. 의로는 1660년 기해복제에 관해 기년복의 타당성을 논한 <복제사의(服制私議)> 등이 있다. 기사(記事) 가운데 <기소시소문(記少時所聞)>은 김장생, 김상헌 등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다.
▶남계집(藍溪集) | 표연말(表沿沫, 1449~149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남계(藍溪) 표연말(表沿沫, 1449~149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생전에 화재로 소실된 데다 뒤에 병란을 겪어 남아 있는 것이 드물었다. 본 문집은 후손 표석준(表奭峻)ㆍ표인해(表仁海) 등이 가장(家藏)되어 오던 시문을 수록하고, 그 뒤에 저자의 관계 기록을 부록으로 합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시는 9제가 실려 있는데, 유호인(兪好仁)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시 등이 있다. 잡저로는 존덕성(尊德性)ㆍ도문학(道問學)의 일을 논한 <논학(論學)>이 있고, 서(序)로는 <필원잡기서(筆苑雜記序)>가 있으며, 기(記)로는 산음현(山陰縣)에서 유배 생활할 때 쓴 <고인정기(故人亭記)>가 있다. 권2에 실린 <사화수말(史禍首末)>은 무오사화의 시말에 대한 기록이고, <무오당적(戊午黨籍)>은 무오사화에 연루된 35명의 약전(略傳)이다. 권3에는 김종직ㆍ유호인 등이 지은 저자와 관련 있는 시를 모은 <제현시장(諸賢詩章)>, 무오사화에 화를 당한 사람의 신원ㆍ추증을 청한 글 등이 실려 있다. 권4는 저자의 유사(遺事), 행장, 묘지, 신도비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초기 사림파의 학문관과 정치관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남당집(南塘集) | 한원진(韓元震, 1682~1751)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4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문집이다. 1754년 윤봉구(尹鳳九)가 지은 행장을 통해 저자의 저술을 살펴보면, 평소 스승 권상하에게 질정한 내용을 적은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 스승의 명으로 찬한 <주서동이고(朱書同異攷)>와 <퇴계집소석(退溪集疏釋)>, <의례보(儀禮補)>가 있고, <장자변해(莊子辨解)>, <선학통변(禪學通辨)>, <양명집변(陽明集辨)>, <거관록(居觀錄)>, <한씨부훈서(韓氏婦訓書)>, <가례소의첨론(家禮疏義籖論)>, <가례원류의록(家禮源流疑錄)>, <근사록주설(近思錄註說)>,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심경부주차기(心經附註箚記)> 등과 시문집 30권이 가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위와 같은 유문은 저자 사후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정리가 이루어져 1765년 총 44권 2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운문으로는 1728년에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차운해 지은 사(辭), 주자의 <감춘부(感春賦)>에 차운하여 지은 부(賦), 그리고 시 168제가 있다. 시는 1705년에 지은 <산해대무(山海大霧)>를 시작으로 1750년 권상하의 절필시에 차운한 시까지가 저작 시기순으로 실려 있다.
▶남명집(南冥集) | 조식(曺植, 1501~157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계명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04년(선조37) 문인 정인홍(鄭仁弘)이 수집하여 합천 해인사에서 목판으로 처음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609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보유본(重刊補遺本)이다. 운문으로는 시(詩), 부(賦), 명(銘)이 있다. 시의 내용은 문인 등에게 지어 준 것, 김해ㆍ덕산ㆍ진주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것, 만시(挽詩) 등이다. 부로는 원천이 있는 물과 같이 학문으로 근본을 삼고 경(敬)으로 근원을 삼아야 함을 노래한 <원천부(原泉賦)>, 군덕(君德)에 따른 민심의 향배에 나라의 안위가 달려 있음을 읊은 <민암부(民巖賦)> 등이 있다. 산문으로는 이황(李滉), 이준경(李浚慶), 성운(成運) 등과 주고받은 편지, 행단(杏壇)에서 공자가 학문을 강론하는 의미를 안연(顔淵)이 서술하는 형식으로 지은 <행단기(杏壇記)>, 왜인의 도발에 대한 고식적인 정책을 우려하여 지은 책문제(策問題) 등이 있다. 오로지 학문과 제자들 교육에만 힘쓰면서 성리학적 토대 위에서 실천궁행과 경과 의(義)를 강조한 대학자의 학문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자료이다.
▶남악집(南岳集) | 조종저(趙宗著, 1631~1690)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악(南岳) 조종저(趙宗著, 1631~1690)의 문집이다. 본집은 윤자 의징(儀徵)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최석정(崔錫鼎)의 산정을 거친 고본을, 계자 의상(儀祥)과 손자 진희(鎭禧)가 1704년 교서관에서 운각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1704년에 최석정이 쓴 서가 있다. 권1~2는 시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고, 작품에는 영남의 비장으로 가는 최후상을 송별하며 읊은 <송최주경좌영남막(送崔周卿佐嶺南幕)>, 과제인 <차황좌설후조조운(次黃佐雪後早朝韻)> 등 6수, 최후상, 홍처량 등을 애도한 만시, ‘간재(艮齋)’라 자호한 후 당시의 심경을 술회한 <자조(自嘲)>, 우국충정으로 신종, 선조, 인조, 효종을 추모하고 표류한 한인의 상박을 애탄하며 지은 <사억일탄시(四憶一歎詩)> 등이 있다. 권3은 서(序), 기이고 권4는 서(書), 제문이다. 권5는 소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부묘를 청한 <대관학유생청신덕왕후부묘소(代館學儒生請神德王后祔廟疏)> 등이 있다. 권6에는 장인 김태기(金泰基)의 묘갈, 묘지, 교서등이 있고 부록으로 1692년에 최석정이 지은 묘지명이 있다.
▶남양시집(南陽詩集) | 백분화(白賁華, 1180~1224)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고려 시대 남양(南陽) 백분화(白賁華, 1180~1224)의 문집이다. 본 시집은 현존하는 문집 가운데 오래된 판본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에 판각된 경판(經板)들과 함께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다. 권두에 이함(李涵)의 서문이 있으나 간행 경위는 지면의 마멸이 심하여 알 수 없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943년 해인사에 소장된 잡부(雜部)를 새로이 인출(印出)할 때 간행된 후쇄본이다. 본 시집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간 당시 1천여 수의 유시(遺詩) 중에 200여 수를 뽑아 간행하였다고 하나 목판이 유실되거나 마모가 심한 것이 많아 현재 전해지는 것은 82제 111수뿐이다. 본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차운구지부곡유제(次韻仇知部曲留題)>는 여행 중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시로, 구구하게 매이지 않으려는 저자의 호방한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남창잡고(南窓雜藁) | 김현성(金玄成, 1542~1621)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1542~1621)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이 직접 수사(手寫)한 오칠언절구(五七言絶句) 100여 편을 문인인 오숙(吳䎘)에게 남겼고, 오숙이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 장유(張維)의 서문을 받아 1634년에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으며, 문(文)은 없고 모두 시(詩)이다. 권두에 1634년에 장유가 지은 서문이 있다. 오언절(五言絶), 칠언절(七言絶), 오언율(五言律), 칠언율(七言律)의 시 138제가 시체별(詩體別)로 실려 있고 주로 지방관으로 나가 있으면서 주변의 풍광을 읊은 서정시가 많고 그밖에 송별시, 증시 등이 있는데 시를 수창(酬唱)하던 이로는 권필(權鞸), 심종직(沈宗直), 김치(金緻), 김계휘(金繼輝), 이정귀(李廷龜) 등이 있다. 특히 칠언율의 <부가산시숙송도게마어청석동(赴嘉山時宿松都憩馬於靑石洞)>은 가산 군수(嘉山郡守)로 부임하던 1585년에 송도를 지나며 감회를 읊은 것이고<송일본회답사(送日本回答使)>는 1607년에 일본으로 사신 가는 여우길(呂祐吉), 경섬(慶暹), 정호관(丁好寬) 등에게 지어 준 송별시이다.
▶남천집(南川集) | 권두문(權斗文, 1543~1617)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남천(南川) 권두문(權斗文, 1543~1617)의 문집이다. 본집은 후손들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10대손 동철(東轍)이 1864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고, 저자의 삼종제 두남(斗南)의 묘갈명(墓碣銘)이 부집(附集)되어 있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는데 권두에 1833년에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서문이 있고, 권미에 1864년에 후손 권동철(權東轍)이 지은 지(識)가 있다. 권1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오언사운(五言四韻), 칠언절구(七言絶句), 칠언사운(七言四韻), 만사(輓詞)이고 교유한 사람들과 수창한 시들이 다수이고, 권2는 평창 군수로 재임 중에 왜란을 맞아 왜군에게 포로가 되어 20여 일간 끌려 다닌 일을 기록한 ≪호구일록(虎口日錄)≫이다. 권3은 소(疏), 전(箋), 서(書), 제문(祭文)이며, 권4 부록은 문인 김응조(金應祖)가 지은 행장, 이민구(李敏求)가 지은 묘갈명, 김응조가 지은 <호구일록발(虎口日錄跋)>, 홍여하(洪汝河)가 지은 <서호구일록후(書虎口日錄後)>, 사우록(師友錄) 등에 나타난 저자에 대한 기록, 구호서원(鷗湖書院)의 봉안문(奉安文) 및 상향축문(常享祝文), 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남촌집(南村集) | 송이석(宋履錫, 1698~178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남촌(南村) 송이석(宋履錫, 1698~1782)의 문집이다. 본집은 구체적인 간행 경위가 불분명하지만, 저자 사후 130여 년이 지났을 무렵 후손 결익(夬翼)이 권상익(權相翊)에게 받은 묘갈명과 1921년에 후손 필린(必璘)이 찬한 묘지가 문집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1921년 이후에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7권 3책이다.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의 전반부는 시(詩)이고, 권1의 후반부~2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그중에서 <방덕천서원(訪德川書院)>은 1738년 진주(晉州)의 덕천서원(德川書院)을 방문하여 조식(曺植)의 학덕을 추모한 시이고, 편지는 거상(居喪) 시에 유념할 사항을 기술한 이규수에게 보낸 편지 외에는 대부분 안부나 상장례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권2의 후반부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3~4는 축문, 제문, 뢰(誄), 상량문, 묘지이고 권5는 행장이다. 권6은 묘갈명이고 권7은 부록으로 이만운(李萬運)이 지은 행장, 권상익이 지은 묘갈명, 후손 필린이 1921년에 지은 묘지, 장석우(張錫愚)가 지은 매양서원(梅陽書院)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이 수록되어 있다.
▶남충장공시고(南忠壯公詩稿) | 남연년(南延年, 1653~1728) | 권책수 : 1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현암(玄岩) 남연년(南延年, 1653~1728)의 문집이다. 본집은 홍계희(洪啓禧)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시(詩) 100편을 선정하여 편차한 고본을 홍성원(洪聖源)의 정사를 거쳐 174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불분권 1책으로 시와 부록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민우수(閔遇洙)가 1748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시는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대체로 ‘애군우국(愛君憂國)’의 충정을 주제로 삼았으며 무인의 호방한 기개가 담겨있어 홍계희는 ‘격렬장위(激烈壯偉)’하다고 평하였다. 남용익(南龍翼), 박종택(朴宗澤) 등의 시에 차운한 시와 유성일(柳星一) 등에게 준 증시가 많으며, <감회(感懷)>, <만음(漫吟)> 등 소회를 읊은 시,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 선천 의검정(倚劍亭) 등지에서 지은 시와 <송춘(送春)>, <완사녀(浣紗女)> 등의 감성적인 시가 실려 있다. 부록에는 홍계희가 1746년에 제진한 치제문, 황경원(黃景源)이 지은 행장, 이재(李縡)가 지은 신도비명, 이관명(李觀命), 이의현(李宜顯) 등이 지은 만사가 있으며, 말미에 홍계희가 1748년에 쓴 지(識)가 있다.
▶남파상국집(南坡相國集) | 심열(沈悅, 1569~1646)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남파(南坡) 심열(沈悅, 1569~1646)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 사후 20년이 지난 뒤에 조원기(趙遠期)가 저자의 손자인 심추(沈樞)와 함께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 편차하여 6권 3책으로 만들었고, 저자의 이성종질(異姓從姪)인 임의백(任義伯)이 1665년(현종6)에 6권 3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은 시이고, 권2~6은 문(文)이다. 시로는 신익성(申翊聖), 권필(權韠) 등과 차운한 시가 있고, 만시(挽詩)가 많다. 소(疏)는 30편이 있다. 차(箚)는 80여 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호조판서시차(戶曹判書時箚)>에서는 은을 빌려 쓰고 갚아야 할 대금을 인삼으로 충당할 것, 청나라 사신 접대비를 절약할 것, 대마도와의 소 무역을 그만둘 것, 염철사(鹽鐵使)를 보내지 말 것 등을 건의하였다. 전(箋)은 명나라 희종(熹宗)의 등극(登極) 때 보낸 하전(賀箋) 등이고, 서장(書狀)은 외직에 있을 때에 올린 것으로서 그 지역 백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심오하고 전아하면서도 호방하고 활달하다는 평을 받는 시 작품과 저자의 실무 역량을 보여주는 글들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남파집(南坡集) | 홍우원(洪宇遠, 1605~1687)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남파(南坡) 홍우원(洪宇遠, 1605~168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의 손자 홍일항(洪日恒)이 원집 5책, 연보 1책으로 집성하였다. 그 후 저자의 현손(玄孫) 홍복전(洪福全)이 강의(講義), 계사(啓辭), 장보(狀報), 잡저, 서(書) 등을 모아 1책을 추가하여 총 7책으로 편정(編定)하여 1782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 권1~3은 시 470여 제(題)와 부(賦) 5편이다. 시는 지방관 시절, 유배 시절 지은 것이 많고, 민생 문제를 다룬 시, 허목(許穆)의 81세 궤장 하사를 축하하며 지은 시 등이 있고, 만시(挽詩), 송시(送詩), 증시(贈詩)가 다수 실려 있다. 계사에는 대사헌에 제수되었을 때 사직하는 글과 송준길(宋浚吉)의 관작을 추탈(追奪)할 것을 청하는 글 등이 실려 있다. 잡저 중 <목근침설(木根枕說)>은 길에 버려진 나무 뿌리를 주워 목침을 만든 것으로 임금이 인재를 찾아서 등용해야 함을 비유한 글이며, <백흑난(白黑難)>은 백(白)과 흑(黑)이 서로 시비를 논하는 내용인데, 1680년(숙종6) 경신환국(庚申換局)을 겪으면서 파직당해 귀양 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남포집(南圃集) | 김만영(金萬英, 1624~1671)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외
조선 시대 남포(南圃) 김만영(金萬英, 1624~1671)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 사후 나만성(羅晩成), 나경성(羅景聖) 등의 제자 및 외손들이 수습하여 1차 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 문집은 저자의 문인 나만성(羅晩成) 등이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바탕으로, 저자의 5대손 양국(亮國) 등이 시문을 추가ㆍ재편하여 1831년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부록 2권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김유헌(金裕憲)의 후서, 한용간(韓用幹)의 신간발, 이현일(李玄逸)의 구발, 목록이 있다. 권1~7은 시로, 문체별로 편차되어 있다. 일부 시에는 세주가 달려 있는데, 자주와 편자주가 혼재되어 있다. 권4의 <사증남교리(謝贈南校理)>는 1660년 암행어사로 내려왔던 남구만(南九萬)이 저자를 방문하고 갈 때 사례하며 준 것이다. 권8~10은 소, 서(書), 서(序) 등이다. 권11은 경의설(經義說)로 주로 경문에 관한 것들인데, ≪중용장구≫에 대한 글들이 많다. 권14~15는 남교일기(南郊日記)이고, 권16은 경세통전(經世通典)으로 사민(士民), 내관제(內官制) 등으로 나누어 각각에 해당하는 전례(典例)와 그 근거를 제시한 글이다.
▶내암집(來庵集) | 정인홍(鄭仁弘, 1536~1623)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저자가 참형(斬刑)된 관계로 고의로 글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적었다. 1908년(순종2) 저자의 신원복작(伸寃復爵)이 행해지자 후손들이 유문 수집에 착수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저자의 상소문과 차자를 발췌하고 사우(師友) 문집 중에 있는 금석문과 시문을 수습하여, 가장초고(家藏草稿)와 아울러 편차하여 1911년에 목활자로 15권 7책을 간행하였다. 시는 20여 수가 실려 있는데 결구(缺句)가 많다. 이 중 <영송(詠松)>은 11세 때 해인사에서 독서하던 중 양희(梁喜)가 불러주는 운(韻)에 따라 지은 것으로, 이 시로 인해 그의 사위가 되었다 한다. <수우당최영경신원봉사이(守愚堂崔永慶伸寃封事二)>는 기축옥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최영경을 위해 1590년(선조23)에 올린 봉사이고, <사의장봉사(辭義將封事)>는 임란 이후 의병장에 제수되자 이를 사양하면서 올린 봉사인데, 5000字나 되는 장문이다. <공사(供辭)>는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국문을 받을 때 오명을 쓰고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내용이다.
▶내재집(耐齋集) | 홍태유(洪泰猷, 1672~171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내재(耐齋) 홍태유(洪泰猷, 1672~1715)의 문집이다. 저자가 졸한 뒤 홍익종(洪益宗) 등 아들 세 사람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집하여 편차한 뒤 1730년에 총 5권 3책의 정고본을 운각활자로 간행하게 되었다. 본집은 1755년경 목판으로 간행된 중간본이다. 시(詩)는 220여 제가 실려 있는데, 여주 이호(梨湖)에 내재(耐齋)를 짓고 우거하면서 자연 현상을 소재로 지은 시와, 단양ㆍ오대산 등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들이 많다. 서(書)의 주요 내용은 명리를 좇지 말 것을 권면한 것, 과거 공부의 폐단을 강조한 것, 시학(詩學)을 논한 것 등이다. 서(序)로는 저자가 여주에 만든 사창계(社倉稧)의 서, 송서(送序) 등이 있다. 기(記)로는 <소요와기(逍遙窩記)> 등과 1709년 지은 <설악산유람기>가 있다. 제후(題後)로는 백성들이 부역을 피하여 불도(佛徒)가 되는 현실을 비판한 <제원도후(題原道後)> 등이 있다. 잡저로는 해적의 침입이 있으리라는 소문이 일자 조정에서 일어난 축성 논의에 반대하여 지은 <축성의(築城議)>, 1705년에 부친 홍치상(洪致祥)의 무고사(誣告事)를 적어 호소한 <무제(無題)> 등이 있다.
▶내헌집(耐軒集) | 이재영(李在永, 1804~189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 1804~1892)의 문집이다. 족자 능기(能耆)가 유문을 수습하여 권주욱(權周郁)에게 행장을, 이중린(李中麟)에게 교정과 묘지명을, 진보(眞寶)의 방산(舫山) 허훈(許薰)에게 유고의 교정과 서문을 받았으나 간행경위가 불분명하다. 다만 석화의 몰년인 1916년 이전에는 간행되었을 것으로 생각될 뿐이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907년에 지은 허훈의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2는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이다. 잡저 가운데 <내헌설(耐軒說)>은 저자 자신의 호를 지은 내력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사설(古査說)>은 1856년 여름 어느 날 산수도를 보다가 잠이 들어 꿈속에서 금오산(金烏山)을 유람하고 이튿날 아들 능충이 나무토막을 보내온 일을 계기로 지은 것이다. 권3은 발(跋), 상량문, 고유문, 제문이다. 발은 이순상(李舜相)의 ≪송국재유집(松菊齋遺集)≫, 안유중(安瑜重)의 ≪만포집(晩浦集)≫, 사위 권주욱의 부탁으로 ≪영가세고(永嘉世稿)≫에 쓴 것 등이다. 권7은 부록(附錄)으로, 권주욱이 지은 행록(行錄), 이중린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이다.
▶냉천유고(冷泉遺稿) | 박종여(朴宗輿, 1766~181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냉천(冷泉) 박종여(朴宗輿, 1766~1815)의 문집이다. 저자의 증손 정양(定陽)이 정리하여 이응진(李應辰)의 교정을 받고 한장석(韓章錫)에게 묘갈명을 받아 1895년 7월에 저자의 유고 3책, ≪덕은유고≫ 1책, ≪경암유고≫ 2책을 전사자(全史字)로 인행하기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완성하였다. 본집은 7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조병덕(趙秉悳)이 1869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總目)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이다. 시체에 관계없이 편차되어 있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른 흥취를 읊은 시들이 주를 이루며, 병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내용도 여러 편 보인다. 부친 윤원(胤源), 계부 준원(準源)의 시에 차운한 것이 있고, ≪목은집(牧隱集)≫에서 차운한 것이 6수 보인다. 만시로는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에 대한 것이 13수에 이른다. 권7은 부록으로 이요중(李堯中), 중종형 종경, 홍직필의 제문, 이규복의 애사(哀辭), 아들 운수의 언행록, 홍직필의 묘지명, 한장석의 묘갈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언행록은 제목만 있고 내용은 운수의 ≪덕은유고(德隱遺稿)≫에 실려 있다.
▶노가재집(老稼齋集) | 김창업(金昌業, 1658~1721)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김언겸(金彥謙), 김신겸(金信謙)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유고를 수습하였고, 족질 김시보(金時保)가 1730년대 5권의 시집을 산정하였다. 증손 김이익(金履翼)이 1798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판각한 후 인본(印本)을 집에 보관해 오다 1820년 김조순의 서문을 추각(追刻)하여 반포하였다. 본 문집은 원집 5권, 부록 합 3책인데, 원집은 전체가 980여 수의 시(詩)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은 아들 김신겸(金信謙)이 지은 묘표이다. 시는 1678년에 부친 김수항(金壽恒)이 영암에서 철원으로 이배(移配)되었을 때에 배소(配所)에서 부친과 함께 지내면서 지은 것, 만시(輓詩), 차운시, 나무와 꽃에 대해 읊은 영물시 등이 실려 있다. 동교잡영(東郊雜詠)은 서울 동교(東郊) 송계(松溪)에 거처할 때 지은 시들로서 춘추로 감역(監役)이 적간(摘奸)을 나와 민간에 폐단을 저지르는 것을 풍자한 <가비(可悲)>, 만시, 차운시 등이 실려 있다. 연행운지록(燕行塤篪錄)은 1712년 사신 가는 김창집(金昌集)을 따라 연경을 다녀올 때에 지은 시를 따로 모은 것이다.
▶노계집(蘆溪集)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중기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1690년(숙종16)이다. 이후 1831년 후손 박천주(朴天柱)와 박희주(朴希柱)가 원집과 부록 상하권으로 나누고 가사(歌辭) 1권을 별록으로 편차한 뒤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에는 세계도(世系圖), 네 개의 도(圖)와 시(詩), 전(傳), 기(記)가 실려 있다. 도는 중용성도(中庸誠圖), 태학경도(大學敬圖), 등으로 성리학 개념을 도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시는 100수 가량이 실려 있는데, <문족부(捫足賦)>는 자모(慈母)의 엄한 교육이 자식을 현철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며, <증최상사기남(贈崔上舍起南)>은 이욕(利慾)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드러난 작품이다. <경전가(耕田歌)>, <사시음(四時吟)>, <안분음(安分吟)> 등은 자연에 은거해 지내며 농경을 일삼는 청빈한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그 외에 자전적인 글인 <무하옹전(無何翁傳)>과 <몽견주공기(夢見周公記)>가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행장과 묘갈명, 저자의 운에 차운하여 지은 시 등이 들어 있다. 권3은 국한문혼용가사로 가사 7편과 단가(短歌) 60수가 실려 있다.
▶노백헌집(老柏軒集) | 정재규(鄭載圭, 1843~1911) | 권책수 : 27책 | 포갑수 : 6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백헌(老柏軒)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문집이다. 원집은 사후에 사림들이 수습하고 49권 25책으로 편차하여 1912년에 활자로 인행하였는데 자세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부록은 원집 간행 후에 행장, 묘갈명 등의 묘도문자가 정리되었고, 연보(年譜)는 문인 정기(鄭琦)가 수년에 걸쳐 초창(草創)한 뒤 여러 문인들이 세 차례 교정을 하여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1936년에 아들 현춘(鉉春)이 저자의 족질 현수(鉉洙), 족숙 방엽(邦燁)과 함께 노백서사(老柏書舍)에서 연보 및 묘도문자, 문인록 등을 5권 2책으로 편차하여 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49권 25책, 부록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원집의 총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대체로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7~32는 잡저(雜著)이다. 권미에 문인 남창희(南昌煕)가 1936년에, 정기가 1934년에, 이교우가 1935년에 지은 발문 및 아들 현춘이 1936년에 지은 발이 있고, 부록의 간행 연도를 알 수 있는 ‘병자모춘노백서사활인(丙子暮春老柏書舍活印)’이라는 간기(刊記)가 있다.
▶노봉집(老峯集) | 민정중(閔鼎重, 1628~1692)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 중앙도서관,연세대 중앙도서관
조선 후기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734년에 증손 민백남(閔百男)이 태인 현감으로 재직 중일 때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고 이재(李縡)에게 서문을 받아 12권 6책의 목판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권1은 사(辭), 부(賦), 시(詩)이다. 사와 부는 동생 민유중(閔維重)의 <산중백설사(山中白雪辭)>에 차운한 것과 주자의 <공동부(空同賦)>에 차운한 것 1수씩이다. 시는 56제(題)가 실려 있는데, 함경도 관찰사 재임 중 김수항(金壽恒)이 함경북도 시관(試官)으로 나왔을 때 서로 차운한 시, 동지사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와 만시(挽詩) 등이 실려 있다. 권2~5에는 소차, 계사, 서계, 헌의가 실려 있다. 내용은 당시의 주요 사건에 대해 정책을 세운 것들이다. 서(書) 중에 송준길에게 보낸 편지에는 노적(虜賊)에 대한 대응, 진구(賑救)에 대한 일 등이 언급되어 있고, 송시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이의 묘비를 새기는 일, 계후자(繼後子)에 관한 예제 등 예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주를 이룬다. 잡저로는 <자경명(自警銘)>, <자경서(自警序)> 등이 실려 있다.
▶노사집(蘆沙集) | 기정진(奇正鎭, 1798~1879) | 권책수 : 17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집이다. 손자 기우만(奇宇萬)이 1881년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883년 봄에 장성의 담대헌(澹對軒)에서 활자(活字)로 처음 인행하였다. 본집은 문인들 사이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1902년 목판으로 간행된 삼간본(三刊本)이다. 본집은 목록, 원집28권, 부록 2권 합 17책이다. 권1~2는 시 272제이다. 지구(知舊), 제자들과의 차운시, 증시(贈詩)가 많다. 권3은 소(疏), 사장(辭狀), 책(策)이다. 이중에서 <병인소(丙寅疏)>는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고 조정에서 양이(洋夷)와 화의(和議)하자는 논의가 일자 비분강개하여 올린 상소이다. 권4~5는 서(書)이다. 음양이기(陰陽理氣),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심기체질(心氣體質) 등 학문적인 내용이 많다. 권16에는 저자의 3대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통설(理通說)>, <납량사의(納凉私議)>, <외필(猥筆)> 등의 잡저가 실려 있다. 권25에 실린 <소모격문(召募檄文)>은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江華)를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擧義)를 위하여 지은 격문이다.
▶노서유고(魯西遺稿) | 윤선거(尹宣擧, 1610~1669)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후기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저작을 잘 정리해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의 문집은 아들 윤증(尹拯)이 직접 정리하고 편차하여 1712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원집 권1~2는 시이다. 총 330여 수가 실려 있는데, 교분이 깊었던 제현(諸賢)과 차운한 시와 40여 수의 만시(挽詩), 금강산과 관동(關東)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가 많다. 권3~4는 38편의 상소이다. 그중 <태학청참로사소(太學請斬虜使疏)>는 청(淸)의 사신을 베고 화의(和議)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 소이고, <사지평강외진정소(辭持平江外陳情疏)>는 효종의 소명(召命)이 있자 올린 것으로, 정축년(1637)에 강도(江都)에서 실절(失節)했다는 죄를 자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권5~12는 총 270여 편의 서(書)인데, 출처(出處)의 도(道)와 강도(江都) 사건에 대해 논한 것, 성혼(成渾)과 그 제자들을 비롯한 인물에 대해 논한 것 등과 문답한 것 등이 있다. 이 문집은 저자의 아들인 윤증과 송시열의 갈등인 회니 문제(懷尼問題)와 관련한 중요한 자료로, 당시 정계의 의식 성향과 동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암집(魯庵集) | 김종일(金宗一, 1597~1675)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노암(魯庵) 김종일(金宗一, 1597~1675)의 문집이다. 본집은 6대손 희영(煕永)이 여러 문집과 정원일기 등에서 저자의 시문을 집일하고, 연보 등 부록을 합편하여 1850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권수에 1848년 정홍경(鄭鴻慶)이 쓴 서문과 목록, 연보가 있다. 권1은 시이다. 대부분 만시로 장현광(張顯光), 신지제(申之悌) 등에 대한 것이다. 권2는 소(疏), 계(啓), 서(書), 제문, 갈명, 묘지명, 행장이다. 그중에서 <논강도실수소(論江都失守疏)>는 1637년 병자호란 때 윤방(尹昉), 김자점(金自點) 등이 종묘사직을 지키지 못한 것을 논죄하여 올린 것이다. 권3은 책(策), 잡저이다. 잡저의 <심양일승(瀋陽日乘)>은 1637년 7월 19일부터 1639년 4월 15일까지 시강원 사서가 되어 청(淸)나라에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들어가 일어났던 일들과 본국으로 송환되어 영덕으로 유배가기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권4는 부록이고 권말에는 유치명(柳致明)이 지은 발, 이종상(李鍾祥)이 지은 후지, 김희영이 1849년에 지은 후지, 강시영(姜時永)이 1850년에 지은 발이 있다.
▶노애집(蘆厓集) | 유도원(柳道源, 1721~1791)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애(蘆厓) 유도원(柳道源, 1721~1791)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아들 유범휴(柳範休)와 종제 유장원(柳長源)이 주축이 되어 유문을 정리하였고, 19세기에 10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시는 60여 세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경(敬)과 성(誠)을 주안으로 더욱 매진해 갈 것을 다짐하는 <자탄(自歎)>이 맨 앞에 놓여 있고, <동암연상록(東巖聯床錄)>, <토와만록(土窩謾錄)> 등 세 편의 시록(詩錄)과 주왕산(周王山), 보경사(寶鏡寺) 일대를 유람하면서 쓴 기행시 <동유기행(東遊紀行)> 등이 있다. 서(書)는 이상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가 가장 많은데, ≪구사당집(九思堂集)≫의 교정과 간행을 의논한 것, 상복 제도에 대해 질의한 것 등이 있다. 잡저로는 수신(修身)과 관련된 경구(警句)들을 모아 놓은 <일성록(日省錄)>, 50세에 49년간의 잘못을 알았던 거백옥을 거울삼아 50세에 지은 <지비십계(知非十戒)>, 이(理)ㆍ기(氣)ㆍ심(心)ㆍ성(性)ㆍ정(情)ㆍ충서ㆍ존양성찰(存養省察)ㆍ계구신독(戒懼愼篤) 등 30조목의 유교 기본 개념에 대한 생각을 밝힌 <동자문(童子問)> 등이 있다.
▶노우집(魯宇集) | 정충필(鄭忠弼, 1725~1789)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노우(魯宇) 정충필(鄭忠弼, 1725~1789)의 문집이다. 본집은 동생 동필(東弼)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유규(柳규(氵+奎))의 교감ㆍ정리를 받은 고본을, 저자의 5대손 석호(錫祜)가 1881년 경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이돈우(李敦禹)가 1881년에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시체 구별 없이 저작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2의 <서정(西征)>은 1783년에 달성(達城), 금호(琴湖) 등을 거쳐 정구(鄭逑)를 모신 회연서원(檜淵書院)까지 다녀온 유람의 여정을 그린 장시이다. 권3은 서(書)이다.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권4는 잡저이다. <학설(學說)>은 혹자와의 질의응답 형식을 빌려 학문을 하는 자는≪대학장구≫의 입덕(入德)하는 차례대로 공부할 것을 주장하였고, <후천괘도설(後天卦圖說)>은 선천육십사괘원도(先天六十四卦圓圖), 후천괘구도(後天卦舊圖), 후천괘신도(後天卦新圖)를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권6은 부록이다. 동생 동필의 행장, 유규의 묘지명, 최효술(崔孝述)의 묘갈명이 실려 있다.
▶노은집(老隱集) | 임적(任適, 1685~1728)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노은(老隱) 임적(任適, 1685~1728)의 문집이다. 본집은 셋째 아들 경주(敬周)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한 고본을, 계자 정주(靖周)가 정리ㆍ교정하여 1794년 청산(靑山)에서 셋째 아들 경주의 ≪청산자고(靑山子稿)≫와 함께 활자로 인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4권, 부록 합 2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두보(杜甫)와 진여의(陳與義)의 시풍을 이었다고 평가된다. 권2는 서(書), 서(序), 기(記), 제발, 설(說), 의(議), 전(傳), 논(論)이다. 제발에는 이희(李熺)가 관서지방을 유람하고 지은 <서행록(西行錄)>에 제한 것, 설에는 홍제유(洪濟猷)를 독려하기 위해 쓴 <과거설(科擧說)> 등이 있다. 권3은 잡저, 제문이고 권4는 신첩(申牒), 책(策)이다. 신첩의 <양성현보순영장(陽城縣報巡營狀)>은 양성 현감으로 재직할 때에 양역(良役)의 폐단을 제거해 줄 것과 그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순영에 보고한 것이다. 부록은 송명흠(宋明欽)이 1764년에 쓴 묘지명이고 권말에는 셋째 아들 경주가 쓴 후서(後序)와 계자 정주가 1794년에 쓴 지(識)가 실려 있다.
▶노주집(老洲集) | 오희상(吳煕常, 1763~1833) | 권책수 : 14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주(老洲) 오희상(吳煕常, 1763~1833)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글을 모아 정리하고 ‘유자고(孺子稿)’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다. 1892년 목활자로 인행된 초간본은 증손 오준영(吳俊泳), 오학영(吳學泳)과 고손 오정근(吳正根), 오형근(吳衡根) 등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27권 14책으로, 시가 전혀 없는 점이 특징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묘 배향을 청하는 소(疏), 동궁(東宮)이 관원을 보내 저자의 안부를 묻자 답례로 감격의 뜻과 함께 학문에 힘써 성덕(聖德)을 닦을 것을 아뢴 달사(達辭)가 있다. 서(書)로는 송후연(宋厚淵)에게 양명학(陽明學)에 물들지 말기를 당부하는 내용, 권중업(權中業)에게 과거의 폐해에 대해 언급한 내용 등이 있다. 그밖에 오상(五常)은 오행(五行)의 이(理)이며, 천지간의 모든 생물이 이 이치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오상변(五常辨)> 등이 실려 있다. 권23~26는 잡지(雜識)로, 일상사에서 얻은 교훈, 자신과 관련된 일화, 독서하다가 깨달은 점, 사건이나 역사 사실에 관한 논평,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성리학 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 많다.
▶노주집(蘆洲集) | 김태일(金兌一, 1637~170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 1637~1702)의 문집이다. 본집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47년 이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으로 그 간행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5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목록만 있고, 서(序), 발(跋)은 실려 있지 않다. 권1~2는 부(賦)와 시(詩)이다. 시는 모두 350여 제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아우인 해일(海一)과 이동표(李東標) 및 승려들과 수창한 시도 많이 있으며, 특히 이동표에게는 자(字)인 군칙(君則) 외에도 고산산인(孤山散人) 등 다양한 호칭으로 시를 읊어주면서 자주로 상대가 이동표임을 밝히고 있다. 권3은 소, 서(書), 서(序), 기(記), 발 등이다. 특히 서(書)는 기해복제(己亥服制)에 대해 변론한 유원지(柳元之)의 <존요록(尊堯錄)>을 간행하기에 앞서 허목(許穆)에게 이를 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로 부치지는 못했던 것과, 또 한 통은 동주(洞主)인 신필성(申弼成)에게 홍여하(洪汝河)를 존향하도록 애써줄 것을 당부하는 편지로 저자가 졸한 해에 쓴 것이다. 권4는 상량문, 갈지, 행장이고 권5는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만사, 제문이 실려 있다.
▶노촌집(老村集)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 1683~1719)의 문집이다. 본집은 부인 박 숙인(朴淑人)이 저자의 업적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정리한 10권 5책을 1735년경 활자로 인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170수가 실려 있는데, 1711년 독서당에 있을 때 응제로 수석을 하여 초피(貂皮)를 하사받은 작품 <자장행단연(自將幸澶淵)>과 이와 관계된 <감군운시(感君恩詩)>, <춘첩(春帖)>, 이밖에 만시(挽詩)와 송시(送詩), 서정시 등이 실려 있다. 상소 중 <환향후사직겸론시사소(還鄕後辭職兼論時事疏)>는 8,2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북한산의 축성, 군정(軍政)과 세제(稅制)의 개혁 등 시사 전반에 걸친 문제를 다루었다. 논(論)으로는 저자의 문장관을 피력하고 역대 문장가들을 비평한 문론(文論)과 불론(佛論)ㆍ노자론(老子論)ㆍ장주론(莊周論) 등 유가로서 이단을 공격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다. 그밖에 담배를 의인화하여 담배가 병을 낫게 해 준다고 찬양한 <담파고전(淡婆姑傳)>, 부인과 형제를 위해 가범(家範)이 될 만한 수칙이나 긴요한 글을 적은 <거가절언(居家切言)> 등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녹리집(甪里集) | 고성겸(高聖謙, 1810~1886) | 권책수 : 7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녹리(甪里) 고성겸(高聖謙, 1810~1886)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 사후 9년 뒤인 1895년에 아우 문겸(文謙)과 숙겸(淑謙)의 주도로 상주(尙州) 녹리정(甪里亭)에서 인출되었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실려 있다. 본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권1~7이 시문으로 빼어난 시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부는 선친이 생전에 심어 놓고 아끼던 강성황(江城黃)이라는 품종의 국화에 대해 읊으며 추억한 <강성황부(江城黃賦)>가 있다. 시는 <문서학성행우분유작(聞西學盛行憂憤有作)>은 천주교가 성행하여 윤리도덕과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무너짐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시대상을 알 수 있으며, 7언절구 33수로 구성된 <전원락(田園樂)>은 전원생활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권10은 서(序), 기(記), 지(識), 발, 상량문이다. 기는 광해군 시절에 이이첨(李爾瞻)에게 반대하여 낙향했던 선조 인계(仁繼)와 관련된 정자인 월봉정(月峯亭)을 중수한 기록, 녹리정을 건립하기도 전에 기문부터 지어놓은 <녹리암장기(甪里巖莊記)>이다. 권말에는 아우 문겸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녹문집(鹿門集) | 임성주(任聖周, 1711~1788) | 권책수 : 13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동생인 임정주(任靖周)에 의해 수습, 정리되어 1795년 활자로 간행되었다. 이 문집은 학문적 논쟁을 다룬 서독(書牘)을 문집 앞머리에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서(書)는 325편이 실려 있는데, 성리설과 예설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많다. 임정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서연에 입시한 일, 서로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 등이 실려 있고, 누이 윤지당(允摯堂)에게 보낸 편지에는 ≪중용장구≫, ≪대학장구≫를 설명하고 경의를 보내 주는 등 학문적으로 이끌어주는 내용과, 자식을 잃고 살 뜻을 잃은 누이를 위로하는 애틋한 심정이 담긴 내용이 실려 있다. 잡저 중 <녹로잡지(鹿廬雜識)>는 인성(人性)과 물성의 동이(同異)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이고, <위학지요(爲學之要)>는 경전이나 성현의 말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소감을 적은 글이다. 시(詩)는 34제가 실려 있는데, 새해 아침에 읊은 <자경(自警)>, 민익수(閔翼洙)ㆍ유숙기(兪肅基) 등에 대한 만시(挽詩), 김원행(金元行)의 <신기음(神氣吟)>에 차운하여 지은 <심성잡영(心性雜詠)> 36수 등이 실려 있다.
▶농려집(農廬集) | 강헌규(姜獻奎, 1797~186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농려(農廬) 강헌규(姜獻奎, 1797~1860)의 문집이다. 저자가 생전에 자편해둔 것을 삼남 면(𨬋)이, 백형 진()과 중형 류(鎏)가 수집했으나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저자의 유고를 교정하고, 원집 9권 부록 1권 총 10권으로 편차하여 1895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이다. 부(賦)는 주자(朱子)의 부에 차운하여 지은 <차감춘부(次感春賦)> 1편이 있다. 저작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시는 얼마 없지만 중간 중간 섞여 있는 만시(挽詩) 등으로 추정해 볼 때 편차는 시체에 관계없이 연대순으로 배열된 것으로 보인다. 권3은 서(書)로, 40명에게 보낸 글이 대상별로 실려 있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유학(諭學)>은 학문의 유래와 전수방법, 과거와 학문과의 관계 등 초학자가 지녀야 할 학문 자세에 대해 설명한 것이고, <여생문답(呂生問答)>은 1834년 상중에 찾아온 여생(呂生)이란 과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복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권말에 삼남 면이 1895년 문집을 간행하면서 경위를 서술한 발문이 실려 있다.
▶농산집(農山集) | 신득구(申得求, 1850~1900) | 권책수 : 5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조선 시대 농산(農山) 신득구(申得求, 1850~1900)의 문집이다. 저자의 사후에 문인 장진학(張鎭學)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12권 5책으로 초출(抄出)하여 1917년 봄에 고흥 지역의 문중에서 인행(印行)하였다. 본집은 12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目錄)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편지는 임헌회(任憲晦), 신좌모(申佐模), 신응조(申應朝), 송근수(宋近洙) 등 87인에게 보낸 것으로 인물에 따라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권5는 잡저(雜著)이다. <우필(偶筆)>은 1899년 복제에 관하여 전거를 들어 ‘우임활수(右袵闊袖)’와 ‘좌임착수(左袵窄袖)’를 비교하여 지은 것이다. 권말에 <오성각거일언도(五聖各擧一言圖)>, <중용도(中庸圖)>, <맹자호연지도(孟子浩然之圖)>, <사물잠도(四勿箴圖)>가 실려 있다. 권12는 가장(家狀), 유사(遺事), 전(傳)이다. 가장은 부친 제모(濟模), 모친 여산 송씨(礪山宋氏), 종백부 희모(曦模)에 대한 것이고, 유사는 종조 세록에 대한 것이며, 전(傳)은 신여량(申汝樑), 신정빈(申正彬)과 신직구(申直求), 조석윤(曺錫胤), 한사검(韓思儉) 등에 대한 것이다.
▶농수집(農叟集) | 최천익(崔天翼, 1712~1779)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농수(農叟) 최천익(崔天翼, 1712~1779)의 문집이다. 본집은 문인 이학해(李學海)ㆍ최기대(崔基大) 등이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1784년 목판으로 초간한 후, 흥해 사림(興海士林)과 방예 홍식(洪植)ㆍ세윤(世允) 등이 시문을 증보ㆍ재편하여 1896년 목판으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권엄(權엄(示+嚴))이 1780년에 지은 서(序)가 있다. 권상은 시(詩), 서(書)이다. 서 중에서 권엄에게 보낸 편지는 모두 3통으로, 중복(中伏)에 짐바리를 옮기라는 것은 백성들의 식복(食福)을 빼앗는 것이니 여름에는 예전에 하던 대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 수령직이 끝나 흥해를 떠나는 권엄을 전별하면서 이후로도 교유를 지속할 것을 청하는 내용 등이다. 권하는 서(序), 기(記), 행장, 명(銘), 설(說), 제문, 부(賦), 서(書), 부록이다. <신축제언기(新築堤堰記)>는 김영수(金永綬)가 흥해 군수로 온 뒤 가뭄에 대비하여 새로 제방을 쌓은 일에 대한 경위를 적은 것이다. 행장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권복흥(權復興)에 대한 것이다. 권말에 손만익(孫萬翼)이 지은 행장이 있다.
▶농암집(農巖集)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 권책수 : 22책 | 포갑수 : 5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문인 김시좌(金時佐), 어유봉(魚有鳳) 등이 수습하고 편정하여 1709년 9월에 저자의 아우 김창흡(金昌翕)에게 서문을 받아 운각인서체자본 34권 17책으로 처음 인행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원집 36권, 속집 2권, 별집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집의 권1~6은 부(賦) 4편과 시(詩) 890여 수이다. 한겨울에 얼음 뜨는 사람들의 고생스런 모습을 보고 지은 <착빙행(鑿氷行)>, 만사(挽詞), 아우 김창흡과의 화운시(和韻詩)가 실려 있다. 소차(疏箚)에는 연촌서원(煙村書院), 덕수서원(德水書院), 옥병서원(玉屛書院)에 사액(賜額)할 것을 청한 것, 오현(五賢)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한 것 등이 있다. 서(書)는 288편이 실려 있는데, 부친 김수항(金壽恒)에게 올린 편지를 비롯하여 형제 등 집안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많다. 그밖에 송시열(宋時烈)에게 올린 문목(問目) 및 권상하(權尙夏), 조성기(趙聖期)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문목은 ≪서전(書傳)≫, ≪중용장구≫, ≪맹자≫, ≪심경≫ 등에 대해서 의문 나는 조목을 질문한 것이다.
▶농암집(聾巖集) | 이현보(李賢輔, 1467~1555)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성균관대 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1665년(현종6)에 외손 김계광(金啓光)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여러 차례 난리를 거치면서 유고(遺稿)의 태반이 없어졌다. 후손들이 간행을 의논하여 가장(家藏)하고 있던 시문 약간 편을 수습하고, 김계광의 편차를 고증하여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1911년에 후손 이재명(李在明)에 의해 속집(續集)이 간행되었다. 본 문집은 원집 5권ㆍ속집 2권ㆍ연보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의 권1~3은 시문이고, 권4~5는 부록이다. 시는 유배를 당했던 1505년 이후 중년과 만년(晚年)의 작품들로, 걸양(乞養)하여 외직에 있는 동안이나 귀향해서 지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권2에는 이황에게 쓴 편지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잡저로서 기(記)ㆍ 발(跋)ㆍ서(序)ㆍ제례(祭禮) 등의 글과 가사(歌詞)가 수록되어 있다. 속집에는 시(詩)ㆍ서(書)ㆍ묘갈이 수록되어 있고 연보는 권수에 세계도(世系圖)가 있고 부록으로 교서와 제문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농은유고(農隱遺稿) | 윤추(尹推, 1632~1707)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농은(農隱) 윤추(尹推, 1632~170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사후 손자 윤동수(尹東洙)가 수습하여 정리하였으며, 백형 윤증(尹拯)이 손수 시문을 골라 산정하였으나 노론과 소론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저자의 시문도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6대손 윤자일(尹滋一)이 중심이 되어 편정하여 1916년경에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시(詩)는 330여 수가 실려 있는데, 백형 윤증, 이황(李滉), 도연명 등의 시에 대한 차운시, 나양좌(羅良佐)에게 준 송시, 박세당(朴世堂) 등에 대한 만시, 이안눌(李安訥)의 시를 읽고 감회를 읊은 시 등이 실려 있다. 서(書)는 전체가 나양좌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내용은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것 외에 시사(時事),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의논 등 당시 당론과 관계된 것이 많다. 별집은 청송재변록(靑松齋辨錄)이다. 그중에서 <북소옥소변(北疏沃疏辨)>은 송시열의 문인 최신(崔愼) 등이 상소하여 부친 윤선거(尹宣擧)와 백형 윤증을 무함하자 그에 대해 조목별로 변론한 것이고, <회여사본말(懷驪事本末)>은 송시열과 윤휴(尹鑴)의 불화에 대한 시말(始末)을 기록한 것이다.
▶농포집(農圃集) | 정문부(鄭文孚, 1565~162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중기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문집이다. 저자는 박래장(朴來章)의 역옥(逆獄)에 연루되어 장살(杖殺)되었기 때문에 그 유문의 수집이 쉽지 않았다. 저자 사후 80여 년이나 지난 1708년에 가서야 증손 정구(鄭構)가 유문을 수집 편차하고 부록을 붙여 간행하였다. 본집은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시문(詩文)이 함께 실려 있다. 7세에 지은 <옥안불급한아색(玉顔不及寒鴉色)>, 8세에 지은 <초월(初月)>, 14세에 지은 <월명화락우황혼(月明花落又黃昏)>을 비롯하여 이성길(李成吉)과 나눈 시, 사은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올 때 지은 시, 후에 장살의 계기가 된 영사시(詠史詩) 등이 주를 이루고, 상촌(象村) 신흠(申欽), 박경심(朴慶深) 등과의 차운시, 기타 송시(送詩), <선종대왕만장(宣宗大王挽章)> 등이 실려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순찰사 민정중(閔鼎重)이 저자를 포함한 의사(義士) 10여 명의 후손에게 포상할 것을 청한 장계와 윤허의 뜻을 담은 비변사의 회계(回啓), 저자의 신원(伸寃)과 포증(褒贈)을 청한 이단하(李端夏)의 상소 등이 실려 있다. 임진왜란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뇌계집(㵢谿集) | 유호인(兪好仁, 1445~149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일본 존경각
조선 초기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 1445~1494)의 문집이다. 저자 생전인 1490년에 시고(詩藁)를 자편(自編)하여 성종에게 진헌하였다는 기록이 ≪성종실록≫에 보이며, 1496년 성현(成俔)이 쓴 <뇌계시집서(㵢溪詩集序)>로 보아 이때를 전후하여 ≪뇌계시집≫이 편집ㆍ간행되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 후 1530년경 아들 유환(兪瑍)이 동료의 도움을 받아 함양(咸陽)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일본 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본으로, 초간본을 추각(追刻)ㆍ보판(補板)한 간년(刊年) ㆍ의 후쇄본이다. 본 문집은 7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시로는 삼국사(三國史)를 열람하고 지은 <동도잡영(東都雜詠)> 25수, 안동 민간에서 근심하는 모양을 서술하고자 지었다는 <화산십가(花山十歌)> 등이 실려 있고, <안동교방요(安東敎坊謠)>, <영천교방요(永川敎坊謠)> 등의 교방요(敎坊謠) 4수가 실려 있다. 문(文)에는 송도를 유람하고 기록한 <유송도록(遊松都錄)>, <황산곡집발(黃山谷集跋)> 등이 있으며, 그밖에 <영천향교요(永川鄕校謠)>ㆍ<안동향교요(安東鄕校謠)>등의 가요(歌謠)도 실려 있다.
▶뇌연집(雷淵集)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 권책수 : 15책 | 포갑수 : 3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뇌연(雷淵) 남유용(南有容, 1698~1773)의 문집이다. 저자는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자편(自編)해 놓고, 동생 남유정(南有定)과 장도순(張道純) 등에게 베끼도록 하고, 1772년경 문인 이민보(李敏輔)에게 산정, 교감하도록 하였다. 저자는 이재(李縡)의 문인으로서 정조(正祖)의 원손(元孫) 시절 사부(師傅)로 발탁되어 보도(輔導)하는 공을 세웠으므로 사후 1778년 정조가 운각(芸閣)에 명하여 문집을 간행해 주도록 하여 1783년에 30권 15책이 재주한구자(再鑄韓構字)로 간행되었다. 시(詩)는 18세에 지은 <관용호도(觀龍虎圖)>부터 <절필시>까지 914제(題)가 실려 있는데, 권8 후반에는 악부, 사령(詞令) 등만 따로 모아 놓았다. 소차(疏箚)로는 영조를 노엽게 해 해남으로 유배가는 계기가 된 <논시사소(論時事疏)>, ≪명사강목(明史綱目)≫이 문제되었을 때 자신의 견해를 밝힌 <상언사사소(上言史事疏)> 등이 있다. 권29~30의 <아언(雅言)>은 ≪시경(詩經)≫에 대해 황경원(黃景源) 및 김순택(金純澤)과 주고받은 의견을 모아 놓은 것으로, 시에 조예가 깊었던 저자의 시각을 통해 ≪시경≫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누실집(陋室集) | 이중연(李重延, 1711~1794)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누실(陋室) 이중연(李重延, 1711~1794)의 문집이다. 본 문집은 저자의 6대손 종대(鍾岱)가 산일되고 남은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이재기(李載基)의 교정을 받아 1903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교유 인물들과의 수창시와 만시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자연을 읊거나 은거하는 삶을 노래한 작품들이 있다. 권2는 서(書)로, 홍중효(洪重孝), 채제공(蔡濟恭) 등 친인척과 스승, 친구들에게 보낸 것들로 안부를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권3은 서(序), 기(記), 지(識), 상량문, 축문, 제문, 애사, 묘지이다. 기 중에서 <수월암중수소기(水月菴重修小記)>는 무주(無住) 홍호(洪鎬)가 처음 세운 수월암(水月菴)을 1746년 3월에 중수하게 되면서 지은 것이고, <가첩후지(家牒後識)>는 1771년에 진보 이씨(眞寶李氏) 선대의 고적(古蹟)을 모아서 가승을 편찬하고 쓴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 만사, 제문, 가장, 묘지명, 묘갈명, 찬(贊)이다. 권말에 이재기(李載基)가 1903년에 지은 발이 있다.
▶눌암집(訥菴集) | 박지서(朴旨瑞, 1754~1819)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조선 시대 눌암(訥菴) 박지서(朴旨瑞, 1754~181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사순(士淳)이 가장을 지어 유적을 정리하면서,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8책으로 정고한 것을, 증손 기형(夔衡), 일형(一衡) 등이 다시 교수 산정하고, 사장(事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을 증보하여 4책으로 재편한 후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1908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곽종석이 1908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독퇴계서초서(讀退溪書抄序)>는 일본인 처사(處士) 촌칠종장(村七宗章)이 이황의 문집을 초집한 10책에 그의 제자가 지은 서를 읽고, 바른 의리를 얻는 데 왜인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며 기쁜 마음에 읊은 것이다. 권4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잡저 가운데 <산가설변(山家說辨)>은 산천의 길흉에 매달리는 풍수의 폐단을 열거하면서 발복(發福)을 바라고 묘지를 고르기에 앞서 ‘성효(誠孝)’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권미에 족증손 주형(周衡)이 1908년에 지은 후서(後序)와 증손 일형이 1908년에 지은 발이 있다.
▶눌와집(訥窩集) | 이약렬(李若烈, 1765~1836) | 권책수 : 4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눌와(訥窩) 이약열(李若烈, 1765~1836)의 문집이다. 1896년 저자의 족증손 도복(道復)이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약간 편을 선정하였는데, 저자의 방예 정수(定洙)가 도복이 선정한 것이 너무 소략하다고 생각되어 시문과 부록문자를 증보하고 이교우(李敎宇)의 정정을 거쳐 7권 4책으로 재편하여, 종중(宗中)과 사림의 협조를 받아 1934년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족증손 도복이 1896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2는 시(詩)이다. <문가산쉬우적입근감탄유부(聞嘉山倅遇賊立慬感歎有賦)>는 가산 군수 정시(鄭蓍)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당하여 온 가족이 대항하다가, 아버지는 죽고 그는 아우의 은닉으로 죽음을 면한 사실을 읊은 것이다. <자적출관서조정견사호모……(自賊出關西朝廷遣使號募……)>는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청천강 이남과 이북 41주에서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였으나, 의주(義州)의 김견신(金見臣)과 허항(許伉) 등만이 적을 섬멸하여 공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1934년 방예 정수가 쓴 발이 있다.
▶눌은집(訥隱集) | 이광정(李光庭, 1674~1756) | 권책수 : 11책 | 포갑수 : 2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시대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 1674~1756)의 문집이다. 저자는 83세라는 장수를 누리면서 많은 시문을 지었으나 62세 되던 1735년에 평소 거처하던 녹문정사(鹿門精舍)의 화재로 많은 시문이 불에 탔다. 저자 사후에 사손(嗣孫) 이종훈(李宗勛)과 문인들이 유고를 수집, 편차하여 간행 준비를 해 나갔고, 1808년에 손자 이사욱(李師勛) 등이 부록 1권을 추가하여 총 22권 11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1~3에는 이백의 <명고가(鳴皐歌)>에 차운한 <녹문가사(鹿門歌辭)>, 초왕(楚王)의 장화대(章華臺) 축조를 말리려는 장석(匠石)이 초왕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지은 <산목부(山木賦)> 등과 차운시, 만시(挽詩), 송별시 등이 있다. 소(疏)는 서원 철폐 명령에 반대하여 지은 것 등이 있으며, 서(書) 중에는 고전제(古田制)와 향약(鄕約) 등을 실행해 보고자 의논한 내용, ≪주서(朱書)≫와 ≪사서육경(四書六經)≫을 똑같이 중시하여 강학해야 함을 강조한 내용 등이 실려 있다. 권21의 만록(漫錄) 가운데 <망양록(亡羊錄)>은 21조(條)의 우화와 풍자 섞인 글과 당시의 속언과 고어 가운데 교훈이 될 만한 글을 모아 놓은 작품이다.
▶눌재집(訥齋集) | 양성지(梁誠之, 1415~148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초기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문집이다. 규장각의 설치를 건의했던 저자의 유의(遺意)를 기리고자, 정조가 1791년에 각신 서영보(徐榮輔)로 하여금 유고를 모아 정유자(丁酉字)로 간행하게 하였다. 이에 공사재적(公私載籍)을 널리 모아 주의(奏議)ㆍ잡저ㆍ고금시(古今詩) 약간 편을 부집(附集)하여 5권으로 만들고, 광묘사시(光廟賜詩)와 제현(諸賢)의 시문 및 유사(遺事)를 부록 1권으로 만들었다. 본 문집은 주의ㆍ잡저ㆍ고금시 순으로 편차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가 경제실용(經濟實用)을 중시하고 문장은 여사(餘事)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권1~4의 주의는 집현전 교리로부터 공조 판서에 이르는 근 40년간의 재임 기간 중 올린 것으로, 그 대략은 종사대계(宗社大計)ㆍ변방중사(邊方重事)ㆍ군국비계(軍國秘計) 등 24가지에 관한 것이다. 권5의 잡저에는 서(序), 기(記), 서(書), 전(箋), 송(頌)이 실려 있다. 권6은 부록으로 <광묘어사시(光廟御賜詩)> 1제(題)와 전기 자료, 서거정(徐居正)의 시문 등이 있다. 세조대의 정책과 각종 제도의 운영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눌재집(訥齋集) | 박상(朴祥, 1474~1530) | 권책수 : 6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 중기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8백여 수가 남아 전하였는데, 동생 박우(朴祐)가 7권으로 산정하였고, 이 산정본을 1547년(명종2)에 임억령(林億齡)이 금산 임소에서 시 7권과 행장 1권 합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한국문집총간≫의 저본은 1843년(헌종9)에 광주 목사 조철영(趙徹永)이 간행한 사간본으로, 본집 7권ㆍ속집 4권ㆍ별집 1권ㆍ부록 2권 합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 7권은 부(賦) 3편과 시이다. 속집 4권은 김수항(金壽恒)이 편집한 것으로 저자의 시문과 문인들의 글이다. 별집 1권은 본ㆍ속집에 빠진 시문을 여러 문헌에서 뽑아 수록한 것으로, 부와 을해년 봉소(封疏)할 당시 지은 시 및 김정(金淨)ㆍ유옥(柳沃)의 차운시가 포함되어 있고, 이어 신도비명ㆍ묘갈명을 비롯하여 서간ㆍ표(表) 등의 글이 실려 있다. 부록으로는 윤구(尹衢)가 지은 행장, 김정이 짓고 저자가 첨삭한 <청복고비신씨소(請復故妃愼氏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미에는 김창협(金昌協)의 발문이 실려 있다. 청렴하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저자의 타고난 시재(詩才)와 웅장한 기풍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이다.
▶눌헌집(訥軒集) | 서성구(徐聖耈, 1663~1735)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눌헌(訥軒) 서성구(徐聖耇, 1663~17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7대손 상종(相鍾) 등이 산일되고 남은 시문을 수집ㆍ편차하여 권연하(權璉夏) 등의 교감을 받아 1898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권연하가 1890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1편과 시(詩)이다. <석과불식부(碩果不食賦)>는 역(易)의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는 박괘(剝卦) 상구효(上九爻)의 의미를 풀어낸 것이다. 권2는 시(詩), 서(書), 서(序), 기(記), 명(銘)이다. 기(記) 가운데 <낙천당기(樂天堂記)>는 박천구(朴天球)에게 ‘낙천명(樂天命)’하기를 바라며 지어준 것이고, <눌헌기(訥軒記)>는 눌헌을 짓고 ‘근언(謹言)’과 ‘영모(永慕)’의 뜻을 새기며 지은 것이다. 권4~5는 잡저인 학리도설(學理圖說)로 총 50개의 도설을 수록하여 천인합일의 오묘함을 집약하였으며, 문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권6은 부록이고 권말에는 족후손 재정(在正)이 1896년에 지은 발, 지은 연도가 기록되지 않은 7대손 상종이 쓴 발, 5대손 상렬(庠烈)이 1898년에 지은 후지가 있다.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 | 장헌세자(莊憲世子, 1735~1762) | 권책수 : 3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 제21대 왕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 장헌세자(莊憲世子) 이선(李愃, 1735~1762)의 문집이다. 정조(正祖)가 말년에 직접 저자의 시문과 비답 등을 수집하여 문집을 편찬하고 교정까지 보아, 순조 초 ≪홍재전서(弘齋全書)≫와 함께 규장각 각신들의 교정을 거쳐 1814년 정리자(整理字)로 인행하였다. 본서는 7권 3책으로 서발은 없고 각 권마다 권두에 목록이 달려 있다. 사(辭)ㆍ부(賦)ㆍ시는 부모의 만수무강을 송축하는 내용, 주역의 팔괘에 대한 내용 등이다. 그 외 독후감을 적은 시, ≪주역≫ 사상과 도가의 양생술이 담긴 시 등이 있다. 소(疏)로는 1752년 영조가 계속 전위(傳位)의 명을 내리자 올린 <사전위소(辭傳位疏)> 등이 있다. 수서(手書), 돈유(敦諭) 등에는 재상에 대한 예우, 자신의 위태로운 처지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 당파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 등이 있다. 그밖에 1752년 꿈에 황룡(黃龍)을 본 다음 날 정조를 낳고는 꿈속의 용을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지은 <경춘전화룡찬(景春殿畫龍贊)>, 무예에 대한 상당한 조예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예보육기연성십팔반설(藝譜六技演成十八般說)> 등의 작품도 있다.
▶능허집(凌虛集) | 박민(朴敏, 1566~163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능허(凌虛) 박민(朴敏, 1566~1630)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1631년에 문인 제자들이 유집을 편찬하고 연보, 행록, 사우록 등을 서술하여 약간 권으로 만들었고, 1640년 소실된 후, 증손 태무(泰茂)가 시문을 집일하고 자편한 사우록과 함께 1741년 편차한 고본에 6대손 지서(旨瑞)가 부록(附錄)을 증보하여 1799년경 목판(木板)으로 간행하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정범조(丁範祖)가 1797년에 지은 서문, 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 부(賦), 서(書)이고, 권2는 잡저(雜著)이다. 그중에서 책문은 1626년에 지은 것으로 전왕의 제도를 따라 지키는 준수(遵守), 변통하여 개혁하는 경장(更張)에 대해 논한 것이다. 권3과 권4는 부록이다. 권3은 세계(世系), 연보(年譜), 행장, 묘지명, 묘갈명, 언행총록(言行總錄), 언행별록(言行別錄), 유사, 보유이고 권4는 <사우록(師友錄)>이다. 정구(鄭逑), 최영경(崔永慶), 김우옹(金宇顒) 등 97명의 행적이 간략하게 적혀 있고, 권말에 증손 박태무가 1741년에 지은 발문과 조술도(趙述道)가 1799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능호집(凌壺集) | 이인상(李麟祥, 1710~1760) | 권책수 : 2책 | 포갑수 : 1개 | 판본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 시대 능호(凌壺)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이영장(李英章) 등이 저자가 생전에 정리해 두었던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779년에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시(詩)는 411수인데,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등의 시를 차운한 것, 천일대(天一臺)ㆍ신륵사 동대(東臺) 등 경관을 읊은 것,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것, 송문흠(宋文欽)을 위해 부채에 산거도(山居圖)를 그려주고 적은 연구(聯句), 단양의 명소에 대해 지은 것과 만사(輓詞) 등이 실려 있다. 서(書)는 지인들과 일상사에 대해 말하며 우의(友誼)를 나눈 것이 대부분인데, 자신을 규계(規戒)해 주기를 바란 내용, 명(明)나라의 멸망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한탄한 내용, 사명대사가 임진난에 의(義)를 규합하여 적을 친 것을 칭송한 내용, ≪주자서≫를 읽은 감상 등이 실려 있다. 서(序)로는 여씨향약을 모방하여 서호에서 결사하고 조약을 정하고 나서 지은 <서호사약서(西湖社約序)> 등이 있으며, 기(記)로는 구담(龜潭)의 부정(桴亭), 다백운루(多白雲樓)에 대해 지은 것 등이 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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